2023년 7월 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7-02조회 385추천 62
2023년 7월 2일 주일 오후
찬송: 71장, 190장
본문: 갈라디아서 6장 6절 ~ 10절
성경 말씀은 하나의 서적이 아니고 단순히 글이 아니고 말씀이고 실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상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비가 내려오면 그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땅을 적시고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고 합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실제고 실상입니다. 사람의 말은 실 없는 말고 굉장히 많고 무책임한 말, 의미없는 말도 많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말을 쉽게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말을 가장 논리적으로 쉽게 하는 사람들이 대개 사기꾼들입니다. 사기꾼들은 목적이 사기를 치기 때문에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고 내 한 말 그대로 계산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집니다. 대통령의 말은 가치가 크기 때문에 말 하나 잘못하면 큰일이 납니다. 나라가 엉망이 되고 해야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는 것이 직책입니다. 우리는 말을 조심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내가 한 말, 말과 인격은 가치관이 다 보일 수 있습니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일은 없다고 합니다. 말을 내뱉으면 가벼워집니다. 하나님 말씀은 말씀 자체가 실상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이걸 염두에 두고 할 것이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평생을 통해서 많은 말을 하고 많은 행동을 합니다. 이 수많은 생활 가운데에서 기본적으로 생각할 것은 사람의 할 말이 다르고 성경 읽고 신앙생활 잘 하려고 노려해야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신앙생활하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하나님 몇 번 했을 때 다섯가지 정도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가르침을 받는 자는 함께합니다. 집회가면 강사 목사님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내부로 들어가면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신 하는 것을 가르켜서 전하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인간의 말을 전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합니다. 이게 사기꾼들입니다. 선지자는 선지자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두우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립니다. 그래서 사기를 치는 겁니다. 그래야 돈과 권위가 나오기 때문에, 이 시대에도 그런 분들은 굉장히 많을 수 있고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조심해야합니다. 전하면서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냐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입니다. 일차적으로 성경에 있어야하고, 성경에 있는 말씀, 성경 가지고 해석할 때는 천주교는 뭘 봅니까. 천주교의 경전은 성경을 씁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성경을 씁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증인도 되고 안식교도 되고 하나님의 교회도 나오고 온갖 게 다 나옵니다.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성경에 그런 예가 나옵니다. 예수 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으로 편집하는 사람들이 이단입니다. 성경에 해석을 할 때 모르면 기준을 뭘로 잡지요. 성경을 생각할 때 뭘 잡습니까. 자기와 다른 사람의 구원의 유익을 찾아야합니다. 구원이 뭡니까. 구원이란 사람을 거쳐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을 말씀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으로 사람을 만드는 건데 틀리면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단들은 자기들이 맞고 정통을 틀렸다고 합니다. 정통이 타락하기도 합니다. 전통이 마지막까지 전통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천주교입니다. 천주교의 출발이 뭡니까. 천주교를 거슬러 올라가면 첫 출발이 누가 나오나요.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전해서 로마로 가서 천주교가 되었는데, 타락한 천주교가 잘못되었으니 복음 전한 바울이 잘못되었는가 아니죠. 전통이 타락한 게 천주교입니다. 타락하니까 배역이 붙죠. 타락한 천주교에서 개혁해서 칼빈주의가 나왔습니다. 칼빈주의는 타락 안한다고 합니다. 모르는 소리지.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종이되고 은혜를 받는 것이 됩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유한하고 자존자며 창조주며 근본이신 그에게 연결이 되는 겁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그 외에는 다 하나님이 아닌 이상 그 누구라도 그에게 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백 목사가 신이 아니다, 틀릴 수 있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유인의 자세고 하나님께만 배우고 학생에게 선생님이 되는 것은 어리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기관을 통해서 가르칩니다. 그래서 기관이라던지가 중요합니다. 자연을 어지럽히고 파괴시키면 받는 법은 못 받게 되어집니다. 그 자세는 하나님만 가르치는 어릴 때는 잘 못 알아들어도 자라날수록 생각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말씀으로 생각해서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따져봐야지 자기 신앙도 있고 자기 구원이 되는 것이지 남의 것 들어봐야 자기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좋은 것은 무엇이 좋은 것이라 그러는가요, 술꾼에게 좋은 것은 술입니다. 게임 좋아하는 것들의 좋은 것은 게임이 좋습니다. 돈 좋아하는 인간들에게는 돈이 좋고, 노는 인간들은 노는 게 좋습니다. 성경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은겁니다. 뭐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좋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하는 자는 말씀대로 해라, 살아라가 되는데 하나 더 주의할 것은 여기 6절 말씀에 말씀을 가르치는 잡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입니까. 누구에게 한 말씀입니까. 가르침은 받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오해하지 않도록 하려면 너무 길어집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그래서 기관이라는 것은 소중합니다. 자녀는 부모와 함께 부모가 가르치는 경우대로 합니다. 두 번째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사람은 다 누구나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속아서 망하고 실패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속는 경우에는 거의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일수록 경계하고 더 살핍니다.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가는데 되겠습니까. 어느날 갑자기 연락와서 제주도에 굉장히 좋은 땅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 생각도 없는데 그런데 친한 사람이 가까운 사람이 그러면 생각을 많이 해 볼겁니다. 작심하고 속이는 사람들도 있고 연락이 없었던 아는 사람들, 지인이 옛날에 저 어릴 때 지인이라는 말을 안 썼거든요. 그런데 아는 사람들, 지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아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왔습니다. 어디 산이 있습니다. 같이 투자하면 돈 벌 수 있습니다. 그 말 듣고 현장 가보지도 않고 부동산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고보니까 거기 저 산꼭대기입니다. 모르면 속기 쉽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일수록 속은 사람이 없는데 많아지고 높아집니다. 그런데 그리 되는 겁니다. 자기를 기준해서 가장 어려운 곳은 어디입니까,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속지 남에게 속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내가 나에게 속는가, 그런데 옛사람 새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있고 나 아닌데 참 나 중생된 새사람은 속습니까 안 속습니까. 안 속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속는 사람은 속는 겁니까. 속이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자기 자신이 속는 겁니다. 속으면 나 자체가 속는 겁니다.
금 덩어리인데 돌 덩어리 취급합니다. 그 존재보다 하찮게 낮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불러놓고 대꾸도 안하고 불러만 놓습니다. 사람은 무시를 당합니다. 어떤 사람의 인간 관계는 구원 관계입니다. 구원 관계는 상대방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에 무시를 당합니다. 그런 것을 가르켜서 십자가라고 합니다. 나를 무시하는데 알고 무시하든 모르고 무시하든 아무 유익이 없는데, 그럴 때는 인간관계도 우리 자신 말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사슴을 갖다 놓고 말입니다. 말입니까. 사슴입니까. 사슴입니다. 그런데 사슴을 사슴이라고 하면 다 죽여버리니까 말이라고 그럽니다. 말을 갖다놓고 사슴입니다 하면 말이 사슴이 되는 수가 있습니까.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고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죽여 놓으니까 사슴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고 말인데 사슴입니다. 순금을 갖다 놓고 구리네, 정금 아니네. 순금입니다. 그런데 사기꾼이 구리네 한다고 구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실력이라는 말은 실제로 있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피동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사람은 정치가가 실력이 있으면 백성들이 반대를 해도 합니다.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은 나라가 어떻게 하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 사람 같은 사람이 싱가포르에 총통, 그렇게 잘 통했다고 합니다. 국민들이 뭐라고 그러든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라를 살렸죠. 싱가포르도 그 사람 덕분에 잘 삽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한 분입니다. 누가 뭐라고 그러든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송곳을 발로 차면 자기가 다치지요. 성경에 나와 있지요. 사도 바울이 하도 사울 때 예수님을 핍박을하고 다 잡아 죽이니까 불러서 네가 그런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깨지나 안 깨지지.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이 뭐라 그래도 밀고 나갑니다. 계란으로 바위치면 바위가 깨집니까? 열 판을 던져도 안 깨져? 1톤을 다 부워버립니다. 바위가 깨집니까 안 깨집니까.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이 어찌하든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속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노래를 불러봐야 그분이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립니다. 저만 손해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기억합시다. 세 번째, 사람의 생애라는 것은 심신의 언행심사로 평생을 살아야합니다. 언행심사라고 일반 교단은 잘 안 쓸거고 설교록에는 많이 나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과 생각을 언행심사라고 합니다. 언행심사가 심신의 작용으로 평생을 살아야합니다. 개인이든지 집에 있든지 직장 가든지 학교 가든지 사람의 모든 생애는 언행심사입니다. 그것이 혼자이리 때도 있고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집에 있을 때도 있고 들에 있을 때도 있고 차 탈 때도 있고 전부 심신의 언행심사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말은 한 마디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행동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어느정도로 간섭하시냐, 왜 이렇게 간섭하셔서 내가 침 삼킬 동안 찰나를 눈동자 굴리는 것도 하나님이 놓치지 않습니다. 내 입이 안 할 말을 하고 안 들을 걸 듣고 안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됩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걸 생각하니까 조심히 합니다. 저거도 깨닫고 노력이 됩니다.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100점을 받았습니다. 놀 때 다 놀고 90점을 받았습니다. 결과가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죠. 제가 질문드려봅니다. 육체가 뭘까요. 무엇을 육체라 합니까. 일반 교단에서는 고깃덩어리를 말합니다. 몸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고깃덩어리라고 합니다. 육체의 우리 말입니다. 육체는 한문 글자로 쉽게 풀면 고깃덩어리가 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고깃덩어리 안에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합해서 심신이라고 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서 몸이라는 것은 마음을 따라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마음의 작용입니까. 고깃덩어리입니까. 마음의 작용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껍데기가 됩니다. 마음을 좋게하는 건 고깃덩어리 좋게, 만족시키는 겁니다. 고깃덩어리 아니면 사람이라는 것은 마음, 영, 영이 있어야 사람이지 영이 없는 심신만 있는 것을 짐승이라고 합니다. 심신이 없고 영만 가진 존재를 영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천사와 악령이 있습니다.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 육체인데 영을 끊어버리고 심신을 육체라고 합니다. 그 위에서는 썩어짐 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생각하는 것은 영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영생을 그립니다. 믿는 사람은 생각해보면 압니다. 양심적으로 알기 때문에, 아는 겁니다. 네 번째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선이 뭐냐 아는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을 행하되 현재 우리들이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렵게 복잡하게 하기보다 교리, 일반 생활으로 말하면 바른 노선에서 신앙생활을 하는겁니다. 선이 되어집니다. 주일학교 설교도 예배시간에 찬송 인도도 선입니다. 예배 시간에 교독하는 것도 선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선이고 차량 안내도 운행도 선입니다. 예배당 청소 당번도 선입니다. 예배는 늦어도 3분 전에, 집회 참석도 선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한 생활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아라, 낙심이라는 말의 뜻은 마음이 떨어진다고합니다. 흐려진다, 가라앉는다입니다. 왜 마음이 가라앉는가 낙심 되는 것은 세월 속에 넓어집니다. 그러다가 한 달 일년 가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청소도 안하고 엉망으로 해버립니다. 그게 흐려지는 것이고 낙심을 하는 겁니다. 설교 준비를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하니까 시간이 줄어들고 노력이 줄어들고 말씀이 줄어듭니다. 교독하는 학생들이 성경을 읽어보는지,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다기 교독할 거 읽어보고 합니다. 찬송가도 미리 해보고 해서 합니다. 처음에는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처음과 지금이 같아야합니다. 왜 낙심이 되어질까, 정체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되지 않습니다. 어찌된다고요, 고인물은 썩게됩니다. 항상 고인물인데 안 썩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신데 끝없이 알아가고 배워가고 닮아가야하는데 새로운 것 때문에 낙심이 되어집니다. 그게 정체가 되니까 가라앉는 겁니다. 주일학교 설교하는 사람들이 틀린 것입니다. 교독하는 아이들이 실수를 하고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예배당 청소는 어떤 곳은 형식입니다. 집회 참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건강은 얼굴 보면 나타납니다. 얼굴을 노랗게 뜨면 문제가 생긴 겁니다. 외부적인 신앙 생활이 힘을 쓰면 속이 되는겁니다. 요즘 우리 교회 전체적으로 낙심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피곤하지 않은 때가 오고,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신앙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복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전부가 엉망이 되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어떤 사람은 끝까지 갑니다. 어떤 사람은 낙심합니다. 어디까지 가지.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71장, 190장
본문: 갈라디아서 6장 6절 ~ 10절
성경 말씀은 하나의 서적이 아니고 단순히 글이 아니고 말씀이고 실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상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비가 내려오면 그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땅을 적시고 하늘로 다시 올라간다고 합니다.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실제고 실상입니다. 사람의 말은 실 없는 말고 굉장히 많고 무책임한 말, 의미없는 말도 많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말을 쉽게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말을 가장 논리적으로 쉽게 하는 사람들이 대개 사기꾼들입니다. 사기꾼들은 목적이 사기를 치기 때문에 못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고 내 한 말 그대로 계산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집니다. 대통령의 말은 가치가 크기 때문에 말 하나 잘못하면 큰일이 납니다. 나라가 엉망이 되고 해야할 말이 있고 안할 말이 있는 것이 직책입니다. 우리는 말을 조심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내가 한 말, 말과 인격은 가치관이 다 보일 수 있습니다. 말을 안 하고 있으면 일은 없다고 합니다. 말을 내뱉으면 가벼워집니다. 하나님 말씀은 말씀 자체가 실상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이걸 염두에 두고 할 것이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평생을 통해서 많은 말을 하고 많은 행동을 합니다. 이 수많은 생활 가운데에서 기본적으로 생각할 것은 사람의 할 말이 다르고 성경 읽고 신앙생활 잘 하려고 노려해야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신앙생활하려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하나님 몇 번 했을 때 다섯가지 정도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가르침을 받는 자는 함께합니다. 집회가면 강사 목사님이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런데 내부로 들어가면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대신 하는 것을 가르켜서 전하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 인간의 말을 전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합니다. 이게 사기꾼들입니다. 선지자는 선지자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두우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안 들립니다. 그래서 사기를 치는 겁니다. 그래야 돈과 권위가 나오기 때문에, 이 시대에도 그런 분들은 굉장히 많을 수 있고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조심해야합니다. 전하면서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냐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입니다. 일차적으로 성경에 있어야하고, 성경에 있는 말씀, 성경 가지고 해석할 때는 천주교는 뭘 봅니까. 천주교의 경전은 성경을 씁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성경을 씁니다. 성경에서 여호와의 증인도 되고 안식교도 되고 하나님의 교회도 나오고 온갖 게 다 나옵니다.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하면 성경에 그런 예가 나옵니다. 예수 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으로 편집하는 사람들이 이단입니다. 성경에 해석을 할 때 모르면 기준을 뭘로 잡지요. 성경을 생각할 때 뭘 잡습니까. 자기와 다른 사람의 구원의 유익을 찾아야합니다. 구원이 뭡니까. 구원이란 사람을 거쳐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을 말씀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사람으로 사람을 만드는 건데 틀리면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단들은 자기들이 맞고 정통을 틀렸다고 합니다. 정통이 타락하기도 합니다. 전통이 마지막까지 전통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천주교입니다. 천주교의 출발이 뭡니까. 천주교를 거슬러 올라가면 첫 출발이 누가 나오나요.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전해서 로마로 가서 천주교가 되었는데, 타락한 천주교가 잘못되었으니 복음 전한 바울이 잘못되었는가 아니죠. 전통이 타락한 게 천주교입니다. 타락하니까 배역이 붙죠. 타락한 천주교에서 개혁해서 칼빈주의가 나왔습니다. 칼빈주의는 타락 안한다고 합니다. 모르는 소리지.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종이되고 은혜를 받는 것이 됩니다. 피조물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유한하고 자존자며 창조주며 근본이신 그에게 연결이 되는 겁니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그 외에는 다 하나님이 아닌 이상 그 누구라도 그에게 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백 목사가 신이 아니다, 틀릴 수 있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유인의 자세고 하나님께만 배우고 학생에게 선생님이 되는 것은 어리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기관을 통해서 가르칩니다. 그래서 기관이라던지가 중요합니다. 자연을 어지럽히고 파괴시키면 받는 법은 못 받게 되어집니다. 그 자세는 하나님만 가르치는 어릴 때는 잘 못 알아들어도 자라날수록 생각을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말씀으로 생각해서 이것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따져봐야지 자기 신앙도 있고 자기 구원이 되는 것이지 남의 것 들어봐야 자기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좋은 것은 무엇이 좋은 것이라 그러는가요, 술꾼에게 좋은 것은 술입니다. 게임 좋아하는 것들의 좋은 것은 게임이 좋습니다. 돈 좋아하는 인간들에게는 돈이 좋고, 노는 인간들은 노는 게 좋습니다. 성경 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좋은겁니다. 뭐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좋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하는 자는 말씀대로 해라, 살아라가 되는데 하나 더 주의할 것은 여기 6절 말씀에 말씀을 가르치는 잡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입니까. 누구에게 한 말씀입니까. 가르침은 받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오해하지 않도록 하려면 너무 길어집니다.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 그래서 기관이라는 것은 소중합니다. 자녀는 부모와 함께 부모가 가르치는 경우대로 합니다. 두 번째 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사람은 다 누구나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속아서 망하고 실패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속는 경우에는 거의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일수록 경계하고 더 살핍니다. 길을 가는 사람이 길을 가는데 되겠습니까. 어느날 갑자기 연락와서 제주도에 굉장히 좋은 땅이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 생각도 없는데 그런데 친한 사람이 가까운 사람이 그러면 생각을 많이 해 볼겁니다. 작심하고 속이는 사람들도 있고 연락이 없었던 아는 사람들, 지인이 옛날에 저 어릴 때 지인이라는 말을 안 썼거든요. 그런데 아는 사람들, 지인이라는 말을 씁니다. 아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왔습니다. 어디 산이 있습니다. 같이 투자하면 돈 벌 수 있습니다. 그 말 듣고 현장 가보지도 않고 부동산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고보니까 거기 저 산꼭대기입니다. 모르면 속기 쉽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일수록 속은 사람이 없는데 많아지고 높아집니다. 그런데 그리 되는 겁니다. 자기를 기준해서 가장 어려운 곳은 어디입니까,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자기를 속지 남에게 속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내가 나에게 속는가, 그런데 옛사람 새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있고 나 아닌데 참 나 중생된 새사람은 속습니까 안 속습니까. 안 속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속는 사람은 속는 겁니까. 속이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자기 자신이 속는 겁니다. 속으면 나 자체가 속는 겁니다.
금 덩어리인데 돌 덩어리 취급합니다. 그 존재보다 하찮게 낮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불러놓고 대꾸도 안하고 불러만 놓습니다. 사람은 무시를 당합니다. 어떤 사람의 인간 관계는 구원 관계입니다. 구원 관계는 상대방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에 무시를 당합니다. 그런 것을 가르켜서 십자가라고 합니다. 나를 무시하는데 알고 무시하든 모르고 무시하든 아무 유익이 없는데, 그럴 때는 인간관계도 우리 자신 말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사슴을 갖다 놓고 말입니다. 말입니까. 사슴입니까. 사슴입니다. 그런데 사슴을 사슴이라고 하면 다 죽여버리니까 말이라고 그럽니다. 말을 갖다놓고 사슴입니다 하면 말이 사슴이 되는 수가 있습니까. 사슴을 말이라고 한다고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죽여 놓으니까 사슴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마찬가지고 말인데 사슴입니다. 순금을 갖다 놓고 구리네, 정금 아니네. 순금입니다. 그런데 사기꾼이 구리네 한다고 구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실력이라는 말은 실제로 있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피동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력 있는 사람은 정치가가 실력이 있으면 백성들이 반대를 해도 합니다. 진짜 실력 있는 사람들은 나라가 어떻게 하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 사람 같은 사람이 싱가포르에 총통, 그렇게 잘 통했다고 합니다. 국민들이 뭐라고 그러든 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나라를 살렸죠. 싱가포르도 그 사람 덕분에 잘 삽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한 분입니다. 누가 뭐라고 그러든지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송곳을 발로 차면 자기가 다치지요. 성경에 나와 있지요. 사도 바울이 하도 사울 때 예수님을 핍박을하고 다 잡아 죽이니까 불러서 네가 그런다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깨지나 안 깨지지.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이 뭐라 그래도 밀고 나갑니다. 계란으로 바위치면 바위가 깨집니까? 열 판을 던져도 안 깨져? 1톤을 다 부워버립니다. 바위가 깨집니까 안 깨집니까. 하나님은 피조물 인간이 어찌하든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스스로 속지 말라고 합니다. 아무리 노래를 불러봐야 그분이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못 가립니다. 저만 손해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아라, 기억합시다. 세 번째, 사람의 생애라는 것은 심신의 언행심사로 평생을 살아야합니다. 언행심사라고 일반 교단은 잘 안 쓸거고 설교록에는 많이 나옵니다. 말과 행동과 마음과 생각을 언행심사라고 합니다. 언행심사가 심신의 작용으로 평생을 살아야합니다. 개인이든지 집에 있든지 직장 가든지 학교 가든지 사람의 모든 생애는 언행심사입니다. 그것이 혼자이리 때도 있고 사람을 만날 때도 있고 집에 있을 때도 있고 들에 있을 때도 있고 차 탈 때도 있고 전부 심신의 언행심사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말은 한 마디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행동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어느정도로 간섭하시냐, 왜 이렇게 간섭하셔서 내가 침 삼킬 동안 찰나를 눈동자 굴리는 것도 하나님이 놓치지 않습니다. 내 입이 안 할 말을 하고 안 들을 걸 듣고 안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됩니다. 심는대로 거두는 걸 생각하니까 조심히 합니다. 저거도 깨닫고 노력이 됩니다.
친구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100점을 받았습니다. 놀 때 다 놀고 90점을 받았습니다. 결과가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죠. 제가 질문드려봅니다. 육체가 뭘까요. 무엇을 육체라 합니까. 일반 교단에서는 고깃덩어리를 말합니다. 몸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고깃덩어리라고 합니다. 육체의 우리 말입니다. 육체는 한문 글자로 쉽게 풀면 고깃덩어리가 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고깃덩어리 안에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합해서 심신이라고 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해서 몸이라는 것은 마음을 따라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마음의 작용입니까. 고깃덩어리입니까. 마음의 작용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껍데기가 됩니다. 마음을 좋게하는 건 고깃덩어리 좋게, 만족시키는 겁니다. 고깃덩어리 아니면 사람이라는 것은 마음, 영, 영이 있어야 사람이지 영이 없는 심신만 있는 것을 짐승이라고 합니다. 심신이 없고 영만 가진 존재를 영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천사와 악령이 있습니다.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 육체인데 영을 끊어버리고 심신을 육체라고 합니다. 그 위에서는 썩어짐 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생각하는 것은 영이 주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영생을 그립니다. 믿는 사람은 생각해보면 압니다. 양심적으로 알기 때문에, 아는 겁니다. 네 번째 9절 우리가 선을 행하되, 선이 뭐냐 아는대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을 행하되 현재 우리들이 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렵게 복잡하게 하기보다 교리, 일반 생활으로 말하면 바른 노선에서 신앙생활을 하는겁니다. 선이 되어집니다. 주일학교 설교도 예배시간에 찬송 인도도 선입니다. 예배 시간에 교독하는 것도 선입니다. 예배를 위해서 하는 것이 선이고 차량 안내도 운행도 선입니다. 예배당 청소 당번도 선입니다. 예배는 늦어도 3분 전에, 집회 참석도 선입니다. 그런데 이런 선한 생활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아라, 낙심이라는 말의 뜻은 마음이 떨어진다고합니다. 흐려진다, 가라앉는다입니다. 왜 마음이 가라앉는가 낙심 되는 것은 세월 속에 넓어집니다. 그러다가 한 달 일년 가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청소도 안하고 엉망으로 해버립니다. 그게 흐려지는 것이고 낙심을 하는 겁니다. 설교 준비를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하니까 시간이 줄어들고 노력이 줄어들고 말씀이 줄어듭니다. 교독하는 학생들이 성경을 읽어보는지,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다기 교독할 거 읽어보고 합니다. 찬송가도 미리 해보고 해서 합니다. 처음에는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처음과 지금이 같아야합니다. 왜 낙심이 되어질까, 정체가 되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되지 않습니다. 어찌된다고요, 고인물은 썩게됩니다. 항상 고인물인데 안 썩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신데 끝없이 알아가고 배워가고 닮아가야하는데 새로운 것 때문에 낙심이 되어집니다. 그게 정체가 되니까 가라앉는 겁니다. 주일학교 설교하는 사람들이 틀린 것입니다. 교독하는 아이들이 실수를 하고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예배당 청소는 어떤 곳은 형식입니다. 집회 참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벽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건강은 얼굴 보면 나타납니다. 얼굴을 노랗게 뜨면 문제가 생긴 겁니다. 외부적인 신앙 생활이 힘을 쓰면 속이 되는겁니다. 요즘 우리 교회 전체적으로 낙심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피곤하지 않은 때가 오고,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신앙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의 복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전부가 엉망이 되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어떤 사람은 끝까지 갑니다. 어떤 사람은 낙심합니다. 어디까지 가지.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