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4일 주일오전 : 하나님의 주권
김동건2022-08-15조회 277추천 24
2022/08/14 주전
역대상 29장 11절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뭐든지 사람이 마음이 있으면 간절하게 되고 간절함이 있으면 곧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간절함과 기도는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입으로 말만 하고 간절함이 없으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보다 마음의 간절함을 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번 집회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주권이라는 말은 주인의 권리라는 뜻인데, 지금 21세기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된 시대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인간의 부지런함이. 그 속엔 인간의 욕심, 자기중심, 이기주의가 노력을 하게 하고 노력이 지식을 발달시켰다 그리 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물리 속에 담아두신 물질에 인간의 욕심이 부지런하게 만들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물리를 찾아서
이걸 잘 응용하고 적용해서 발달시킴이 전부 문명의 발전이고 과학의 발달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됐는데
기묘하게도 인간 역사 통틀어서 경제가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면 인간성은 반대로 갑니다. 대부분 다 그렇습니다.
가난하면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몸이 약해지면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못나면 심한 경우엔 자기 비하를 하고, 보통은 좀 겸손해집니다. 건방지지 않고 거만하지 않고
조심합니다.
가난하면, 몸이 약하면 보통 고개를 숙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사람이 배가 고프면 겸손한데 배가 부르면 배부른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지식은 여러 가지로 크게 나뉘는데 지식이란 물리, 물질의 이치
인간의 인문학 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인문학이란 것은 좀 접어두고, 물질의 이치가 많이 발견되게 되고 또 이걸 잘 활용할수록
과학이 발달되고 그러면 경제가 발달되면서 사람이 배불러집니다.
사람이 배불러지면 건방져지고 거만해집니다.
가정, 개인이든지 뭔갈 많이 가지고 뛰어나면 대부분 인간성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세계적인 재벌인데 많은 사람이 인간성이 좋다 그럽니다.
그런 재벌인데도 전혀 거만, 교만하지 않고 인물도 좋다. 진짜 그런 사람이라 그럽니다.
그런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라도 흔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돈이 많고 권력이 있으면 인간성이 안 좋아지게 됩니다.
과학이 발달되면 인간성이 내려가게 되고, 더 발달되면 과학이 종교를 지배하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종교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의 의미나 목적은 이미 사라지게 된다 이 말입니다.
지금 시대 종교는 실질적으로 없습니다.
어느 종교든 논리로 따져보면 이 말에 반박 못할 겁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런 것에 인정하면 종교가 무너지니까 그런 말은 못 해도, 내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21세기 과학을 못 이깁니다.
그리고 실제 논리로 따지면, 참된 기독교를 제외한 기독교에서 파생된, 탈선된 계통의 종교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잘못 붙들고 있으나
막연하게라도 알고 있으니까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종교)들은 논리로 따질 땐 실질적인 역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교리가 철저하고 세밀하게 되어있을 건데, 그 속에서 살아계신 분이 실제 그리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신의 존재 역사는
거기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으론 과학을 못 이기고 무너집니다.
문제는 참된 교회도 있는데, 그런 교회들도 다 과학에 점령된다. 이게 문제입니다.
실제 진실한, 드물지만 올바른 교회에 속한 믿는 사람들은 원래 과학에 점령되지 않지만 생활면으로 점령돼서
실제 생활의 면에서는 과학의 종이 되어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이 들면서
두 면 사이에 끼어 고통받으며 하루하루 사는게 이 시대 진실한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 생각합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그러지 않을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부인할수 없고
그 누가 뭐라해도 부인할수 없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역사가 있습니다.
논리라는 것은, 말이며 글입니다. 성경 자체는 틀림없는 절대불변의 진리이지만 글이고 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땐 글이고 전할 땐 말입니다.
이 글과 말속에 하나님의 존재가 계십니다.
문제는 내가 믿어지는 게 문젭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그 누가 뭐라 그래도 부인할 수 없도록 믿어지는 역사. 그 방법이 뭘까요.
왜 여기 계시는 분들은 하나님과 성경을 믿습니까.
찬송가 63장 후렴에 나와있습니다. 예수 예수 믿는것은 받은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아는 부인할수 없는 증거. 내 속에서 내 영이 작용하고 내 마음이 확신할 수 있는 하나님이 살아계심 역사의 증거가 너무 뚜렷하게
우리속에만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탈선된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이런 거 없습니다.
오늘날 21세기 지식의 발전과 발달로 인한 과학의 발전, 경제 발전 이것이 모든 인간성을 파괴하고 나아가서 모든 종교를 점령하고
또 나아가서 교회를 점령을 해서 오늘날 하나님은 그냥 이름만 있고, 구름 속에만 있고, 상상 속에만 있고 실존하시는 하나님으로
현실에 나의 생활에, 내 심신의 작용인 부부생활, 학교생활, 경제생활, 사람과의 관계, 말 한마디 한마디, 내 욕심, 생각에 따라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응하시는 이 실제 역사가 있는 이런 것을 믿는 사람이 실제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뒤로 가고 돈이 하나님이 되어있고 돈은 못하는 게 없고 안되는 게 없으니까 그 돈을 만드는 과학이 하나님 돼서
돈, 과학이 주권자고 그런 걸 만든 인간의 두뇌가 주권자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이 갈 곳 없는 이런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지금 시대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교리를 알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번 집회 주제를 하나님의 주권을 주제로 생각해봤습니다.
주로 교리 내용이 많은데, 교리란 것은 성경을 읽고 성경 깨달음을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정리한 것을 교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주로 하나님의 주권에는 교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교리가 많아도 실제 생활에 적용되지 않으면, 써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면으로 배운 말씀 복습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앞에선 좀 전체적으로 말씀드렸고
하나님의 주권. 주권이란 주인의 권리란 뜻인데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왜 알아야 할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생명체라는 것은. 뭐든지 마찬가지인데 생명체 중에서도 저급의 생명체는 그냥 본능으로만 살아갑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정도 차인 있어서 이성을 가지고 나름대로 생각과 계산과 대화를 하는 그런 생명체도 많이 있는데
그런 것 보다 사람은 영장의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때 생명체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입니다.
움직이면서 영향을 받는데, 물론 무생물체들도 다른것들의 작용에서 영향은 받습니다.
나무는 식물입니다 생명체지만, 식물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고, 동물은 움직인다는 뜻이어서 동물입니다.
나무는 식물이지만 가만히 있는데 바람이 불면서 나무가 흔들리는 것 처럼.
바람은 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람이 부니까 가만히 있고싶은 나무가 아무리 힘써도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그러니까 낙엽이 떨어지게 되고 낙엽이 떨어지면 청소하는 분들은 일이 힘들어지게 되고,
이런 여러가지로 파생된 작용들의 상호간 관계가 얽혀서 세상이 돌아가고 있고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사는겁니다.
그러니까 과일을 심었는데 모든 과일은 과일이 맺히기 전에 꽃이 핍니다. 그런 꽃도 안피고 맺히는 과일이 있습니다 무화과라고 합니다.
꽃이 피지 않고 과일이 열린다 해서 이름이 무화과라고 합니다. 무화과를 제외한 모든 과일들은 과일이 생기기 전에 꽃이 핍니다.
그 꽃속에서 과일이 조금식 생깁니다. 그런데 꽃이 피는데 보니까 많은 꽃들에게 벌이 와서 암꽃 수꽃을 수정시킵니다.
이 꽃에서 먹어서 저 꽃에 옮겨주고 그래야지 호박도 생기고 오이도 열리고 수박도 열리고 과일이 맺어집니다.
근데 벌이 없으면 그게 안된다 그 말이죠.
벌이 없으면 수정이 안돼니까 열매도 안열립니다. 그러니까 식물이 그냥 나서 스스로 꽃피고 열매 맺으면 돼는데
벌이 와서 작용을 해줘야 열매가 맺히는겁니다. 벌은 그걸 또 빨아서 벌통에서 꿀을 만듭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벌이 없으면 생명 대부분이 죽어버린다 하네요.
식물이 없으면 뭐가 죽습니까? 초식동물이 죽습니다. 초식동물이 죽으면요?육식동물이 죽습니다 그러면 먹을것이 없으니 사람도 죽습니다.
이렇게 자연이란 건 연결이 다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내가 사는 나를 기준으로 내 주변을 아는 것과 모르는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걸 아는 걸 가르켜 지식이라 그러고 이걸 알아서 그 모든 관계를 바로 되어가는걸 보고 겸손이라고 합니다.
상하좌우를 알고 맞는 행동을 하는것을 성경에서 겸손이라 합니다.
이걸 모르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나만 깨끗하게 바로 안다고 되는게 아닌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다 아시겠지만 내가 아무리 깨끗하고 소독한다 해도 주변사람이 그렇지 않으면 전염병에 걸리는겁니다.
그래서 옛날 생각있는 부자들은 자기 집을 기준 사방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그랬습니다.
자기 집 양식을 다 풀어가지고. 그래서 300년을 내려왔다 그러죠 그 부가.
그 사람들 배울 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경주 최부자라고
주변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어지면 부자한테 눈길이 가게되어있는겁니다
'다 굶어 죽는데 너만 잘먹냐?' 라면서 심하면 폭도가 돼고 또 점령을 하는겁니다.
옛날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것이 민중이 일으킨 민란인데.
그 중에서도 평소에 주변을 잘 살피는 사람들에겐 민란이 나도 그 집에는 영향이 가지 않습니다.
이건 일반 상식적인 그런것인데 그래서 자기 주변을 아는것과 모르는 것이 큰 차이가 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자녀가 아버지를 모르고 어머니를 모르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닌겁니다.
자식이 부모를 모를리있습니까? 다 알지요
그런데 그 부모가 어떤 아버진지 자기한테 어느정도의 중요성이 있는지 어떤 관곈지 얼마나 큰 사랑을 가졌는지
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수고,희생 이런것을 자식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걸 알면 그 자녀는 진짜 효자가 되어서 부자가 되고, 이걸 모르면 표현이 죄송하지만, 나중에 불효만 심한 놈들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공부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공부하는겁니다.
왜 하나님을 알아야 알고 공부해야하는가?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 알아야 할 자기 회사 사장도 모르고, 성향도 모르고, 회사 사장의 생각도 모르고,
사업 방침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면 그 자리에 앉혀놓겠습니까? 쫓아내버리지.
특히 사람은 자기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알아야됩니다.
내 인사권을 가진 내 위 상사를 내가 모르면 보나마나 얼마안가 쫓겨나겠죠. 보나마나.
시험을 치는데, 성적을 잘 받고싶다면 성적 점수를 정하고 문제를 내는 교수의 마음을 잘 알면됩니다.
교수가 원하는 답을 적으면 무조건 100점 준다고. 그래서 평소에 그 교수가 아주 강조하는 것 기억 잘 하고 적어두면 만점받겠죠.
제가 아는대로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고, 만드신 세상을 운영하십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분이 세상만드신것을 알고 믿지 않습니까.
그 분이 우리 인간 세계의 모든것을 주권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지 않습니까.
믿는다면 그 분 알고 그 분의 주권에 대해서 알아야 그 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 얻어봐야, 상사의 마음 얻아봐야, 손님에게 물건 팔려고 다 내주는게 장사꾼인데,
하나님의 마음을 그만큼 얻으면 참 승자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은 너무도 허무하기 짝이 없는게 오늘의 우리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 겁니다. 하나님 알기 위해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주권이란 주인의 권리라는 말입니다. 주인이 뭘까요. 주인이란 말은 쉽게 말해서 내꺼다 그 뜻입니다. 내 꺼 그게 주인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존재는 제한적이지만 주인의 권리를 다 가졌습니다. 기본적으로. 그게 주권입니다.
그 중에서 사람인 내가 주인의 권리를 가졌습니다. 내가 주권이 있다 그 말은 내것이 있다 그 말인것이지요.
내 것이 있는겁니다. 그 누구도 자기 것이 없는 사람은 없고 자기 것이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개미도 자기 것이 있습니다. 개미 그 자체는 개미 겁니다.
자기는 자기 것이고 나는 내 겁니다. 이것이 주권입니다.
내꺼니까 누구 마음대로 합니까? 내 마음대로 합니다. 주인이기 때문에.
남의 것은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내 소유를 건드리려 그러면 안돼지요.
남이 내 몸을 함부로 만지지 못하니까 나도 남의 몸 함부로 만질 수 없습니다.
아이들 장난칠 때 몸 부딪치고, 말로 장난치고, 어려서 그러지만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남의 몸에 손대는거 굉장히 조심시켜야합니다.
특히 이성간엔 어려도 조심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큰 문제 생깁니다.
그게 바로 주권의 원리에도 들어있습니다. 내 몸의 주인은 나고 누가 만지면 싫습니다. 근데 내가 남의 몸에 손대면 돼나요? 안돼지요.
내 주권이 중요하면 남의 주권도 중요한 겁니다. 남의 주권을 존중해야 내 주권도 존중받지요. 내 주권 존중받으려면 남의 주권도 존중해야합니다.
세상말이 오는 말이 고와야 됩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됩니까?
오는 말이 고와야 하면 싸움이 생기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 말이 맞죠.
내가 먼저 다른 사람 주권을 존중해줘야 다른 사람도 내 주권을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겁니다.
남의 주권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남이 함부로 때 "나는 네 주권 침범하지 않았다. 너는 왜 내 주권 침범하냐?" 말이 되죠.
내가 먼저 남의 주권 함부로 침범 해놓고 다른 사람이 내 주권 침범했을 때 "너 왜 내 주권 침범했냐?" 그러면 "너도 그랬지 않냐?" 하면 할말없죠.
그래서 성경에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거든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거 성경입니다.
주권이란 주인의 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주권이란 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리' 다 이렇고 구체적으로 이렇습니다.
선택도 주권입니다. 선택도 뭔갈 결정하는 겁니다. '할까 말까?' '갈까 말까?' '먹을까 말까?' 다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이런것이 다 주권에 속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권은 주권인데, 주권이란 이름은 같은데, 같은 주인의 권린데,
어떤 것에도 간섭도 받지 않아야하고 영향을 받지 않아야하고. 한마디로 막히지 않아야 진짜 주권이 됩니다.
주인의 권린데 그 주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주인의 권리는 참주권이 아닌거죠.
진짜 내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주인의 권리는 주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주인의 권리입니다.
소유권이 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게 주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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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9장 11절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뭐든지 사람이 마음이 있으면 간절하게 되고 간절함이 있으면 곧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간절함과 기도는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입으로 말만 하고 간절함이 없으면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보다 마음의 간절함을 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번 집회 말씀의 제목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주권이라는 말은 주인의 권리라는 뜻인데, 지금 21세기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된 시대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인간의 부지런함이. 그 속엔 인간의 욕심, 자기중심, 이기주의가 노력을 하게 하고 노력이 지식을 발달시켰다 그리 볼 수 있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물리 속에 담아두신 물질에 인간의 욕심이 부지런하게 만들고 부지런하게 열심히 물리를 찾아서
이걸 잘 응용하고 적용해서 발달시킴이 전부 문명의 발전이고 과학의 발달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과학이 최첨단으로 발달됐는데
기묘하게도 인간 역사 통틀어서 경제가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면 인간성은 반대로 갑니다. 대부분 다 그렇습니다.
가난하면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몸이 약해지면 사람이 겸손해집니다.
자기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못나면 심한 경우엔 자기 비하를 하고, 보통은 좀 겸손해집니다. 건방지지 않고 거만하지 않고
조심합니다.
가난하면, 몸이 약하면 보통 고개를 숙입니다.
비슷한 원리로 사람이 배가 고프면 겸손한데 배가 부르면 배부른 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지식은 여러 가지로 크게 나뉘는데 지식이란 물리, 물질의 이치
인간의 인문학 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인문학이란 것은 좀 접어두고, 물질의 이치가 많이 발견되게 되고 또 이걸 잘 활용할수록
과학이 발달되고 그러면 경제가 발달되면서 사람이 배불러집니다.
사람이 배불러지면 건방져지고 거만해집니다.
가정, 개인이든지 뭔갈 많이 가지고 뛰어나면 대부분 인간성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세계적인 재벌인데 많은 사람이 인간성이 좋다 그럽니다.
그런 재벌인데도 전혀 거만, 교만하지 않고 인물도 좋다. 진짜 그런 사람이라 그럽니다.
그런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라도 흔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돈이 많고 권력이 있으면 인간성이 안 좋아지게 됩니다.
과학이 발달되면 인간성이 내려가게 되고, 더 발달되면 과학이 종교를 지배하게 됩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종교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의 의미나 목적은 이미 사라지게 된다 이 말입니다.
지금 시대 종교는 실질적으로 없습니다.
어느 종교든 논리로 따져보면 이 말에 반박 못할 겁니다.
그런데 스스로 그런 것에 인정하면 종교가 무너지니까 그런 말은 못 해도, 내부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21세기 과학을 못 이깁니다.
그리고 실제 논리로 따지면, 참된 기독교를 제외한 기독교에서 파생된, 탈선된 계통의 종교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잘못 붙들고 있으나
막연하게라도 알고 있으니까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종교)들은 논리로 따질 땐 실질적인 역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교리가 철저하고 세밀하게 되어있을 건데, 그 속에서 살아계신 분이 실제 그리 역사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신의 존재 역사는
거기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으론 과학을 못 이기고 무너집니다.
문제는 참된 교회도 있는데, 그런 교회들도 다 과학에 점령된다. 이게 문제입니다.
실제 진실한, 드물지만 올바른 교회에 속한 믿는 사람들은 원래 과학에 점령되지 않지만 생활면으로 점령돼서
실제 생활의 면에서는 과학의 종이 되어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작용이 있기 때문에 양심에 가책이 들면서
두 면 사이에 끼어 고통받으며 하루하루 사는게 이 시대 진실한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까 그리 생각합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그러지 않을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부인할수 없고
그 누가 뭐라해도 부인할수 없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역사가 있습니다.
논리라는 것은, 말이며 글입니다. 성경 자체는 틀림없는 절대불변의 진리이지만 글이고 말입니다.
성경을 읽을 땐 글이고 전할 땐 말입니다.
이 글과 말속에 하나님의 존재가 계십니다.
문제는 내가 믿어지는 게 문젭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그 누가 뭐라 그래도 부인할 수 없도록 믿어지는 역사. 그 방법이 뭘까요.
왜 여기 계시는 분들은 하나님과 성경을 믿습니까.
찬송가 63장 후렴에 나와있습니다. 예수 예수 믿는것은 받은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만 아는 부인할수 없는 증거. 내 속에서 내 영이 작용하고 내 마음이 확신할 수 있는 하나님이 살아계심 역사의 증거가 너무 뚜렷하게
우리속에만 있었던 겁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탈선된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이런 거 없습니다.
오늘날 21세기 지식의 발전과 발달로 인한 과학의 발전, 경제 발전 이것이 모든 인간성을 파괴하고 나아가서 모든 종교를 점령하고
또 나아가서 교회를 점령을 해서 오늘날 하나님은 그냥 이름만 있고, 구름 속에만 있고, 상상 속에만 있고 실존하시는 하나님으로
현실에 나의 생활에, 내 심신의 작용인 부부생활, 학교생활, 경제생활, 사람과의 관계, 말 한마디 한마디, 내 욕심, 생각에 따라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응하시는 이 실제 역사가 있는 이런 것을 믿는 사람이 실제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뒤로 가고 돈이 하나님이 되어있고 돈은 못하는 게 없고 안되는 게 없으니까 그 돈을 만드는 과학이 하나님 돼서
돈, 과학이 주권자고 그런 걸 만든 인간의 두뇌가 주권자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주권이 갈 곳 없는 이런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아무래도 지금 시대에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교리를 알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번 집회 주제를 하나님의 주권을 주제로 생각해봤습니다.
주로 교리 내용이 많은데, 교리란 것은 성경을 읽고 성경 깨달음을 체계적으로, 조직적으로 정리한 것을 교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주로 하나님의 주권에는 교리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교리가 많아도 실제 생활에 적용되지 않으면, 써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면으로 배운 말씀 복습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 앞에선 좀 전체적으로 말씀드렸고
하나님의 주권. 주권이란 주인의 권리란 뜻인데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왜 알아야 할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생명체라는 것은. 뭐든지 마찬가지인데 생명체 중에서도 저급의 생명체는 그냥 본능으로만 살아갑니다.
물론 그중에서도 정도 차인 있어서 이성을 가지고 나름대로 생각과 계산과 대화를 하는 그런 생명체도 많이 있는데
그런 것 보다 사람은 영장의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때 생명체는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입니다.
움직이면서 영향을 받는데, 물론 무생물체들도 다른것들의 작용에서 영향은 받습니다.
나무는 식물입니다 생명체지만, 식물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고, 동물은 움직인다는 뜻이어서 동물입니다.
나무는 식물이지만 가만히 있는데 바람이 불면서 나무가 흔들리는 것 처럼.
바람은 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람이 부니까 가만히 있고싶은 나무가 아무리 힘써도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그러니까 낙엽이 떨어지게 되고 낙엽이 떨어지면 청소하는 분들은 일이 힘들어지게 되고,
이런 여러가지로 파생된 작용들의 상호간 관계가 얽혀서 세상이 돌아가고 있고
모든 생명체는 그렇게 사는겁니다.
그러니까 과일을 심었는데 모든 과일은 과일이 맺히기 전에 꽃이 핍니다. 그런 꽃도 안피고 맺히는 과일이 있습니다 무화과라고 합니다.
꽃이 피지 않고 과일이 열린다 해서 이름이 무화과라고 합니다. 무화과를 제외한 모든 과일들은 과일이 생기기 전에 꽃이 핍니다.
그 꽃속에서 과일이 조금식 생깁니다. 그런데 꽃이 피는데 보니까 많은 꽃들에게 벌이 와서 암꽃 수꽃을 수정시킵니다.
이 꽃에서 먹어서 저 꽃에 옮겨주고 그래야지 호박도 생기고 오이도 열리고 수박도 열리고 과일이 맺어집니다.
근데 벌이 없으면 그게 안된다 그 말이죠.
벌이 없으면 수정이 안돼니까 열매도 안열립니다. 그러니까 식물이 그냥 나서 스스로 꽃피고 열매 맺으면 돼는데
벌이 와서 작용을 해줘야 열매가 맺히는겁니다. 벌은 그걸 또 빨아서 벌통에서 꿀을 만듭니다.
그래서 지구상에 벌이 없으면 생명 대부분이 죽어버린다 하네요.
식물이 없으면 뭐가 죽습니까? 초식동물이 죽습니다. 초식동물이 죽으면요?육식동물이 죽습니다 그러면 먹을것이 없으니 사람도 죽습니다.
이렇게 자연이란 건 연결이 다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내가 사는 나를 기준으로 내 주변을 아는 것과 모르는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걸 아는 걸 가르켜 지식이라 그러고 이걸 알아서 그 모든 관계를 바로 되어가는걸 보고 겸손이라고 합니다.
상하좌우를 알고 맞는 행동을 하는것을 성경에서 겸손이라 합니다.
이걸 모르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나만 깨끗하게 바로 안다고 되는게 아닌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다 아시겠지만 내가 아무리 깨끗하고 소독한다 해도 주변사람이 그렇지 않으면 전염병에 걸리는겁니다.
그래서 옛날 생각있는 부자들은 자기 집을 기준 사방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그랬습니다.
자기 집 양식을 다 풀어가지고. 그래서 300년을 내려왔다 그러죠 그 부가.
그 사람들 배울 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경주 최부자라고
주변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어지면 부자한테 눈길이 가게되어있는겁니다
'다 굶어 죽는데 너만 잘먹냐?' 라면서 심하면 폭도가 돼고 또 점령을 하는겁니다.
옛날부터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무서운것이 민중이 일으킨 민란인데.
그 중에서도 평소에 주변을 잘 살피는 사람들에겐 민란이 나도 그 집에는 영향이 가지 않습니다.
이건 일반 상식적인 그런것인데 그래서 자기 주변을 아는것과 모르는 것이 큰 차이가 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자녀가 아버지를 모르고 어머니를 모르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닌겁니다.
자식이 부모를 모를리있습니까? 다 알지요
그런데 그 부모가 어떤 아버진지 자기한테 어느정도의 중요성이 있는지 어떤 관곈지 얼마나 큰 사랑을 가졌는지
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수고,희생 이런것을 자식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걸 알면 그 자녀는 진짜 효자가 되어서 부자가 되고, 이걸 모르면 표현이 죄송하지만, 나중에 불효만 심한 놈들이 되는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 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공부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공부하는겁니다.
왜 하나님을 알아야 알고 공부해야하는가?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 알아야 할 자기 회사 사장도 모르고, 성향도 모르고, 회사 사장의 생각도 모르고,
사업 방침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면 그 자리에 앉혀놓겠습니까? 쫓아내버리지.
특히 사람은 자기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알아야됩니다.
내 인사권을 가진 내 위 상사를 내가 모르면 보나마나 얼마안가 쫓겨나겠죠. 보나마나.
시험을 치는데, 성적을 잘 받고싶다면 성적 점수를 정하고 문제를 내는 교수의 마음을 잘 알면됩니다.
교수가 원하는 답을 적으면 무조건 100점 준다고. 그래서 평소에 그 교수가 아주 강조하는 것 기억 잘 하고 적어두면 만점받겠죠.
제가 아는대로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고, 만드신 세상을 운영하십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분이 세상만드신것을 알고 믿지 않습니까.
그 분이 우리 인간 세계의 모든것을 주권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지 않습니까.
믿는다면 그 분 알고 그 분의 주권에 대해서 알아야 그 분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의 마음 얻어봐야, 상사의 마음 얻아봐야, 손님에게 물건 팔려고 다 내주는게 장사꾼인데,
하나님의 마음을 그만큼 얻으면 참 승자 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은 너무도 허무하기 짝이 없는게 오늘의 우리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아는 겁니다. 하나님 알기 위해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주권이란 주인의 권리라는 말입니다. 주인이 뭘까요. 주인이란 말은 쉽게 말해서 내꺼다 그 뜻입니다. 내 꺼 그게 주인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존재는 제한적이지만 주인의 권리를 다 가졌습니다. 기본적으로. 그게 주권입니다.
그 중에서 사람인 내가 주인의 권리를 가졌습니다. 내가 주권이 있다 그 말은 내것이 있다 그 말인것이지요.
내 것이 있는겁니다. 그 누구도 자기 것이 없는 사람은 없고 자기 것이 없는 존재는 없습니다.
개미도 자기 것이 있습니다. 개미 그 자체는 개미 겁니다.
자기는 자기 것이고 나는 내 겁니다. 이것이 주권입니다.
내꺼니까 누구 마음대로 합니까? 내 마음대로 합니다. 주인이기 때문에.
남의 것은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내 소유를 건드리려 그러면 안돼지요.
남이 내 몸을 함부로 만지지 못하니까 나도 남의 몸 함부로 만질 수 없습니다.
아이들 장난칠 때 몸 부딪치고, 말로 장난치고, 어려서 그러지만 어느 정도 자라고 나면 남의 몸에 손대는거 굉장히 조심시켜야합니다.
특히 이성간엔 어려도 조심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큰 문제 생깁니다.
그게 바로 주권의 원리에도 들어있습니다. 내 몸의 주인은 나고 누가 만지면 싫습니다. 근데 내가 남의 몸에 손대면 돼나요? 안돼지요.
내 주권이 중요하면 남의 주권도 중요한 겁니다. 남의 주권을 존중해야 내 주권도 존중받지요. 내 주권 존중받으려면 남의 주권도 존중해야합니다.
세상말이 오는 말이 고와야 됩니까 가는 말이 고와야 됩니까?
오는 말이 고와야 하면 싸움이 생기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이 말이 맞죠.
내가 먼저 다른 사람 주권을 존중해줘야 다른 사람도 내 주권을 함부로 손대지 말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겁니다.
남의 주권 함부로 침범하지 않고 남이 함부로 때 "나는 네 주권 침범하지 않았다. 너는 왜 내 주권 침범하냐?" 말이 되죠.
내가 먼저 남의 주권 함부로 침범 해놓고 다른 사람이 내 주권 침범했을 때 "너 왜 내 주권 침범했냐?" 그러면 "너도 그랬지 않냐?" 하면 할말없죠.
그래서 성경에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거든 네가 먼저 남을 대접하라' 이거 성경입니다.
주권이란 주인의 권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주권이란 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리' 다 이렇고 구체적으로 이렇습니다.
선택도 주권입니다. 선택도 뭔갈 결정하는 겁니다. '할까 말까?' '갈까 말까?' '먹을까 말까?' 다 선택이고 결정입니다.
이런것이 다 주권에 속하는 겁니다. 그런데 주권은 주권인데, 주권이란 이름은 같은데, 같은 주인의 권린데,
어떤 것에도 간섭도 받지 않아야하고 영향을 받지 않아야하고. 한마디로 막히지 않아야 진짜 주권이 됩니다.
주인의 권린데 그 주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주인의 권리는 참주권이 아닌거죠.
진짜 내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주인의 권리는 주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주인의 권리입니다.
소유권이 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게 주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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