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1-08-01조회 261추천 26
2021년 8월 1일 주일 오후
찬송: 157장(고요한 바다로), 158장(내 주의 지신 십자가)
본문: 베드로전서 5장 7절 ~ 10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은혜는 다른 말로 복이라고 하고, 가치 있는 복, 하늘의 복을 은혜라고 말을 합니다. 은혜가 무엇인가, 은혜는 복인데, 복 중에서도 하늘에 속한 복을 은혜라고 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태어났는데, 자녀가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로 안되고 부모님도 자기 원하는대로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타락하여 유전자를 골라서 한다는 그런 것이 있는데 끝이 좋지를 못합니다. 그런 것이 자연의 원리 속에 많이 나타나있습니다. 과학으로 그런 것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다 멸망하는 길입니다. 인간의 과학이 발달해서 대기를 오염시키고 열이 올라가서 수온이 올라가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지고 천 년만에 이런 인간의 과학의 산물입니다. 인간의 과학이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터뜨리면 온 지구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이 편리한데 넓게 보면 욕심으로 지나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은혜의 하나님. 학생들은 보니까 배우면 기억을 해야하는데, 그래서 주일학교 가르치는 분들은 말을 많이 해 놓으면 나중에 뭐 배웠어하면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주입식이라고 합니다. 간단 명료하게 줄여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그리고 간단 간단하는 것이 좋지, 설교자는 은혜롭게 설교했는데, 오늘 본문도 없고 제목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어떤 하나님입니까.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은혜란 무엇이라고요. 복인데 하늘의 복, 영원한 복, 완전한 복.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것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은혜로 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부 다 은혜입니다. 그들의 창조, 목적도 은혜고 예정도 은혜고 주권 섭리도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하나님은 은혜입니다. 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좋습니까. 영원히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영원토록 좋은 것만 주십니다. 우리들이 거부만 안하고 거절만 안 하면 순종만 하면, 순종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믿음이라고 그러지요.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면 자기를 부인하고 주관을 부인하고 자기 옛사람, 삐뚤어진 모든 욕심, 감정을 거부하고 갓난아이처럼 주님 말씀을 모두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면 은혜가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이건 교리로 따져봐야합니다. 빼내심은 택함이고 부르심은 중생입니다. 중생은 대속을 입은 사람에게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중생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목적과 예정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염두에 두고 주님은 목적을 두셨고 예정을 두셨습니다. 주님의 대속을 염두에 두고 우리를 택하신 겁니다. 주님의 택함의 변화에 대속을 두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으로 대속을 하시고 그리스도로 완성을 하시는 건데, 그러면 우리를 예수로 대속하시고 그리스도로 길러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의 형상을 닮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만 모인 나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인 사람이 영원한 영광의, 다시 말하면 찬송이라고 그러고 영광의 찬송은 무엇 위에 건설되느냐 질문드려봅니다. 자기의 영원 영광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구원은 영광의 찬미입니다. 그 찬송은 무엇 위에 이루어지며 건설되는 것이 영광입니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영광, 찬송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 위에 영광이고 찬송입니다. 베푸는 것이 없는, 나에게서 나가는 것이 없고 희생하는 것이 없는데, 나에게 영광의 찬송은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은혜를 받고 혜택을 입었으면 그 전부에 따라서 영광을 돌리게 되고 감사하고 찬송을 하게 되고 그것이 영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1등은 모든 2등을 밟고 올라가야합니다. 모든 2등은 적어도 모든 1등에게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찬양을 못합니다. 정말고 2등이 1등에게 진실로 박수를 보낸다면 그 2등은 앞으로 1등을 하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제일 표정 안 받은 사람이 은메달 딴 사람이라고 하지요. 세상의 모든 것에는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시켜서 상대방은 나를 밟고 올라가라, 나를 딛고 올라가라. 내가 디딤돌이 되어줄게. 나는 짊어지고 그런 것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뒤집어져서 나를 밟고 올라간 그 사람이 영원토록 내가 당신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것을 아니까 환하게 빛이 있습니다.
이런 세계가 있기 때문에, 주님은 그런 세계를 알기 때문에 십자가에 그렇게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저도 그 깨달음을 알았을 때 참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고진감래라고 하지요. 고진감래입니다. 고생을 다 하고 나면 달콤한 것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생한 것이 없는 달콤한 것은 없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은 없겠지요.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쥘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논리적으로 보면 간접이 맞는데 자세히 보면 직접입니다. 기독교는 독재주의입니다. 교역자들이 많은 사람이 뜻도 모르고 그분 앞에 민주주의입니다 외친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 사람은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독재라는 말은 혼자서 다 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혼자 다 하는 것입니다. 독재주의, 하나님 모든 것을 다 하고 절대 예정 절대 주권 무슨 뜻인가요. 독재입니다. 천주교는 독재이지요. 교황이 있으니까. 그런데 명동 성당에 누가 가장 많이 가던가요, 민주투사들이 마지막에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명동 성당을 민주화 성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그냥 독재입니다.
사람은 머리가 하나 밖에 없지요. 그래서 기독교는 사람의 머리털 숫자까지 다 세고 계시고 개미 한 마리, 수 만 마리 수 억마리 그 수염이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나무 이파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습니다. 좀 과장인 거 같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가 하나님의 예정 속의 들지 않았다면 그것의 움직임은 무엇인가, 바람은 어디서 부는 것인가. 그렇게 근본으로 따져 들어가면 뭐가 나옵니까. 진화론입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들, 친히 온전케 하시며, 우리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것입니다.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틀을 견고케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만드시고 환란은 무엇을 만든다고 했습니까. 환란은 인내를 만들고, 연단을 만듭니다. 그것이 굳게 강하게 틀이 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해주십니다.
무력없는데 평화는 없습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 설교를 보면 전부 피난 준비, 환란 준비, 죽음 준비입니다.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재림을 준비하자. 준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대적 마귀가 우리의 적입니다. 적이라는 것은 올림픽에 경쟁자를 적이라고 그렇지 않지요. 경쟁자를 적이라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당 야당을 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희안하게 야당보다도 적이 더 친구 같고 한 편인 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주고 받고 하면서 타협해야할 다른 쪽은 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내분이라고 하고, 내분은 곧 망합니다. 왜 근신하는가, 내 목숨을 빼어갈 때, 마귀는 내 육의 목숨은 안 빼앗아갑니다. 마귀가 빼앗아가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입니다. 돈을 줄 거니까 믿음 주고 구원 달라. 출세를 줄거니까 칭의를 주라. 머리 한 번 조아리면 천하를 다 줄게 이럽니다. 영원한 구원을 절단내는 우는 사자같이 잡아먹을까 하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집니다. 대적 마귀가 오는 상황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마귀는 항상 따라다닙니다. 틈만 나면 잡아먹으려고합니다. 오전에 말씀드리면 양을 이리 가운데에 놔둠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현실이 우리의 현실과 같다고 했습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그래야하지, 그래야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이지 한 번도 울지도 않고 아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나서 죽을 때까지 웃기만 하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인생 자체가 괴로울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고생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한 전투입니다. 먹어야 살기 때문에 먹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식욕을 주신 것은 식욕이 있어야 음식을 먹고,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입맛이 있을 때 먹기 싫습니다. 그런데 안 먹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합니다. 잠을 자야하는데, 불면증에 걸리면 죽을 지경입니다. 누웠는데, 잠이 안 온다. 괴롭습니다. 잠보다 맛있는 게 있습니까. 그 잠이 안 올 때는 괴롭습니다. 뭐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것이 전부 다 전투입니다. 실제로 보면 공부도, 공부를 잘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공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해야하니까, 하다보니까 재미가 생겨지고 아는 것으로 지식으로 활용이 많아지고 알아주니까 재미가 있어지는 것이지요.
직장이 가고 싶어서 갑니까, 결혼은요.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좋아서 하는 것은 아마추어라고 합니다.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괴롭습니다. 그렇지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공부도 직장생활도 가정도 교육도 인생 자체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죄가 없고 타락이 없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죄 때문에, 사망 때문에 괴로움이 생겼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 끝에서, 환란을 통과해서, 괴로움 없는 원래의 에덴 동산을 회복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 속에서 영원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이기 때문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그거 때문에라도 전투가 계속 됩니다.
믿는 사람에게 주신 모든 환란은 불가피하게, 피할 수 없는 그런 것은 우리에게 겪고 나면 인내가 만들어집니다. 원치 않게 인내가 만들어집니다.
징계를 통해서 내가 고통을 겪고 앞날에 거름으로 삼고, 자기에게 삼으면 연단시키는 과정이 됩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고통들을 전부 피해버립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부부사이에, 직장에, 자녀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살펴서 하나님이 주신 환란이라는 것을 깨닫고 앞날을 자신을 복되게 만드는 그런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환난은 세상의 환난입니다. 스스로 하는 환란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때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죄, 칭의를 위해서 하늘의 소망을 위해서 피하지 않고 당했습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렵습니다. 예배당에 가는 수를 줄이시오, 이럴 때 예배를 드리고 집회를 합니다. 집회를 안하면 누가 가장 편합니까. 신풍 목사님이 제일 편하지요. 그런데 누가 제일 집회를 강조합니까. 신풍 목사님이 강조하십니다.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잘은 모르겠는데, 이번 집회 코로나 때문에 못 합니다 하면 대부분은 좋아하실걸요. 그런데 해야하니까 합니다. 그런데 전부 의를 위해서 합니다. 이런 것을 겪고나면, 그만큼 실력이 자랍니다. 인내가 자랍니다. 연단이 되고 공회적으로 구원이 옵니다. 그래서 신앙 노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문에서 우리 할 일은 네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근신해라, 두 번째 깨어라, 세 번째는 믿음을 굳게 하고 네 번째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57장(고요한 바다로), 158장(내 주의 지신 십자가)
본문: 베드로전서 5장 7절 ~ 10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은혜는 다른 말로 복이라고 하고, 가치 있는 복, 하늘의 복을 은혜라고 말을 합니다. 은혜가 무엇인가, 은혜는 복인데, 복 중에서도 하늘에 속한 복을 은혜라고 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태어났는데, 자녀가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로 안되고 부모님도 자기 원하는대로 자녀를 낳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타락하여 유전자를 골라서 한다는 그런 것이 있는데 끝이 좋지를 못합니다. 그런 것이 자연의 원리 속에 많이 나타나있습니다. 과학으로 그런 것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다 멸망하는 길입니다. 인간의 과학이 발달해서 대기를 오염시키고 열이 올라가서 수온이 올라가고 북극의 빙하가 녹아지고 천 년만에 이런 인간의 과학의 산물입니다. 인간의 과학이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터뜨리면 온 지구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이 편리한데 넓게 보면 욕심으로 지나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 은혜의 하나님. 학생들은 보니까 배우면 기억을 해야하는데, 그래서 주일학교 가르치는 분들은 말을 많이 해 놓으면 나중에 뭐 배웠어하면 머리 속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주입식이라고 합니다. 간단 명료하게 줄여서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그리고 간단 간단하는 것이 좋지, 설교자는 은혜롭게 설교했는데, 오늘 본문도 없고 제목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어떤 하나님입니까. 은혜의 하나님입니다. 은혜란 무엇이라고요. 복인데 하늘의 복, 영원한 복, 완전한 복.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완전한 것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것을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은혜로 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부 다 은혜입니다. 그들의 창조, 목적도 은혜고 예정도 은혜고 주권 섭리도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하나님은 은혜입니다. 복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좋습니까. 영원히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영원토록 좋은 것만 주십니다. 우리들이 거부만 안하고 거절만 안 하면 순종만 하면, 순종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믿음이라고 그러지요.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면 자기를 부인하고 주관을 부인하고 자기 옛사람, 삐뚤어진 모든 욕심, 감정을 거부하고 갓난아이처럼 주님 말씀을 모두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면 은혜가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이건 교리로 따져봐야합니다. 빼내심은 택함이고 부르심은 중생입니다. 중생은 대속을 입은 사람에게서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중생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목적과 예정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염두에 두고 주님은 목적을 두셨고 예정을 두셨습니다. 주님의 대속을 염두에 두고 우리를 택하신 겁니다. 주님의 택함의 변화에 대속을 두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으로 대속을 하시고 그리스도로 완성을 하시는 건데, 그러면 우리를 예수로 대속하시고 그리스도로 길러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의 형상을 닮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되고, 선지자가 되고,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만 모인 나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인 사람이 영원한 영광의, 다시 말하면 찬송이라고 그러고 영광의 찬송은 무엇 위에 건설되느냐 질문드려봅니다. 자기의 영원 영광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구원은 영광의 찬미입니다. 그 찬송은 무엇 위에 이루어지며 건설되는 것이 영광입니까.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영광, 찬송이라는 것은 반드시 그 위에 영광이고 찬송입니다. 베푸는 것이 없는, 나에게서 나가는 것이 없고 희생하는 것이 없는데, 나에게 영광의 찬송은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알게 모르게 은혜를 받고 혜택을 입었으면 그 전부에 따라서 영광을 돌리게 되고 감사하고 찬송을 하게 되고 그것이 영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1등은 모든 2등을 밟고 올라가야합니다. 모든 2등은 적어도 모든 1등에게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찬양을 못합니다. 정말고 2등이 1등에게 진실로 박수를 보낸다면 그 2등은 앞으로 1등을 하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제일 표정 안 받은 사람이 은메달 딴 사람이라고 하지요. 세상의 모든 것에는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나를 시켜서 상대방은 나를 밟고 올라가라, 나를 딛고 올라가라. 내가 디딤돌이 되어줄게. 나는 짊어지고 그런 것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뒤집어져서 나를 밟고 올라간 그 사람이 영원토록 내가 당신을 먹고 자랐습니다. 이것을 아니까 환하게 빛이 있습니다.
이런 세계가 있기 때문에, 주님은 그런 세계를 알기 때문에 십자가에 그렇게 고통을 받은 것입니다. 저도 그 깨달음을 알았을 때 참 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고진감래라고 하지요. 고진감래입니다. 고생을 다 하고 나면 달콤한 것이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생한 것이 없는 달콤한 것은 없습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은 없겠지요.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쥘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논리적으로 보면 간접이 맞는데 자세히 보면 직접입니다. 기독교는 독재주의입니다. 교역자들이 많은 사람이 뜻도 모르고 그분 앞에 민주주의입니다 외친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 사람은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독재라는 말은 혼자서 다 한다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혼자 다 하는 것입니다. 독재주의, 하나님 모든 것을 다 하고 절대 예정 절대 주권 무슨 뜻인가요. 독재입니다. 천주교는 독재이지요. 교황이 있으니까. 그런데 명동 성당에 누가 가장 많이 가던가요, 민주투사들이 마지막에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명동 성당을 민주화 성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천주교는 그냥 독재입니다.
사람은 머리가 하나 밖에 없지요. 그래서 기독교는 사람의 머리털 숫자까지 다 세고 계시고 개미 한 마리, 수 만 마리 수 억마리 그 수염이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나무 이파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습니다. 좀 과장인 거 같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가 하나님의 예정 속의 들지 않았다면 그것의 움직임은 무엇인가, 바람은 어디서 부는 것인가. 그렇게 근본으로 따져 들어가면 뭐가 나옵니까. 진화론입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들, 친히 온전케 하시며, 우리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것입니다.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틀을 견고케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만드시고 환란은 무엇을 만든다고 했습니까. 환란은 인내를 만들고, 연단을 만듭니다. 그것이 굳게 강하게 틀이 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하시고 굳게 하시고 강하게 해주십니다.
무력없는데 평화는 없습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목사님 설교를 보면 전부 피난 준비, 환란 준비, 죽음 준비입니다. 주님 재림하시기 전에 재림을 준비하자. 준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대적 마귀가 우리의 적입니다. 적이라는 것은 올림픽에 경쟁자를 적이라고 그렇지 않지요. 경쟁자를 적이라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당 야당을 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희안하게 야당보다도 적이 더 친구 같고 한 편인 괴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지만 주고 받고 하면서 타협해야할 다른 쪽은 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것을 내분이라고 하고, 내분은 곧 망합니다. 왜 근신하는가, 내 목숨을 빼어갈 때, 마귀는 내 육의 목숨은 안 빼앗아갑니다. 마귀가 빼앗아가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입니다. 돈을 줄 거니까 믿음 주고 구원 달라. 출세를 줄거니까 칭의를 주라. 머리 한 번 조아리면 천하를 다 줄게 이럽니다. 영원한 구원을 절단내는 우는 사자같이 잡아먹을까 하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집니다. 대적 마귀가 오는 상황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마귀는 항상 따라다닙니다. 틈만 나면 잡아먹으려고합니다. 오전에 말씀드리면 양을 이리 가운데에 놔둠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 현실이 우리의 현실과 같다고 했습니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고 그래야하지, 그래야지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이지 한 번도 울지도 않고 아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나서 죽을 때까지 웃기만 하면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인생 자체가 괴로울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사는 것 자체가 고생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한 전투입니다. 먹어야 살기 때문에 먹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식욕을 주신 것은 식욕이 있어야 음식을 먹고,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입맛이 있을 때 먹기 싫습니다. 그런데 안 먹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입맛이 없어도 먹어야합니다. 잠을 자야하는데, 불면증에 걸리면 죽을 지경입니다. 누웠는데, 잠이 안 온다. 괴롭습니다. 잠보다 맛있는 게 있습니까. 그 잠이 안 올 때는 괴롭습니다. 뭐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는 것이 전부 다 전투입니다. 실제로 보면 공부도, 공부를 잘 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공부를 좋아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해야하니까, 하다보니까 재미가 생겨지고 아는 것으로 지식으로 활용이 많아지고 알아주니까 재미가 있어지는 것이지요.
직장이 가고 싶어서 갑니까, 결혼은요.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좋아서 하는 것은 아마추어라고 합니다.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괴롭습니다. 그렇지 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공부도 직장생활도 가정도 교육도 인생 자체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죄가 없고 타락이 없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죄 때문에, 사망 때문에 괴로움이 생겼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 끝에서, 환란을 통과해서, 괴로움 없는 원래의 에덴 동산을 회복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 속에서 영원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이기 때문에, 그것이 있기 때문에 그거 때문에라도 전투가 계속 됩니다.
믿는 사람에게 주신 모든 환란은 불가피하게, 피할 수 없는 그런 것은 우리에게 겪고 나면 인내가 만들어집니다. 원치 않게 인내가 만들어집니다.
징계를 통해서 내가 고통을 겪고 앞날에 거름으로 삼고, 자기에게 삼으면 연단시키는 과정이 됩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고통들을 전부 피해버립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부부사이에, 직장에, 자녀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살펴서 하나님이 주신 환란이라는 것을 깨닫고 앞날을 자신을 복되게 만드는 그런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환난은 세상의 환난입니다. 스스로 하는 환란도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신사참배 때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죄, 칭의를 위해서 하늘의 소망을 위해서 피하지 않고 당했습니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렵습니다. 예배당에 가는 수를 줄이시오, 이럴 때 예배를 드리고 집회를 합니다. 집회를 안하면 누가 가장 편합니까. 신풍 목사님이 제일 편하지요. 그런데 누가 제일 집회를 강조합니까. 신풍 목사님이 강조하십니다.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잘은 모르겠는데, 이번 집회 코로나 때문에 못 합니다 하면 대부분은 좋아하실걸요. 그런데 해야하니까 합니다. 그런데 전부 의를 위해서 합니다. 이런 것을 겪고나면, 그만큼 실력이 자랍니다. 인내가 자랍니다. 연단이 되고 공회적으로 구원이 옵니다. 그래서 신앙 노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문에서 우리 할 일은 네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 근신해라, 두 번째 깨어라, 세 번째는 믿음을 굳게 하고 네 번째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