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일 주일 오전 - 항상 근신하고 깨어있으라
김동민2021-08-01조회 240추천 43
2021년 8월 1일 주일 오전
찬송: 52장(샘물과 같은 보혈은), 103장(저 높은 곳을 향하여)
본문: 베드로전서 5장 7절 ~ 10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흔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씨를 뿌리는 그대로 거두게 되어있습니다. 농사를 잘 지으면 추수가 좋을 것이고 농사를 짓는 과정이 잘못되면 추수는 잘못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여름 뜨거운 날씨에도 약을 뿌리고 요즘은 또 덜하지만은 제초하고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 가을에는 풍성한 곡식을 추수하게 됩니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고 차근차근 설계도를 그려서 그 설계도대로 재료를 쓰고 잘 지어나가면 좋은 집이 되어지고 편리한 집이 되어집니다. 우리나라에도 건축의 인식이 많이 발달되어있습니다. 전부 건축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니까, 일본 사람들이 보면은 작은데 단단하고 또 실용적인 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집을 잘 짓는데 인생에서는 집을 짓는 생애가 이런 비유를 가지고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인생과 관련된 것을 철학이라고 하지요. 인생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학자가 아닐지라도 한 번 뿐인 인생을 살고 가는 사람이 주는대로 먹고 지내고 대충 살다가 죽어서 없어지는 허무한 그런 인생살이, 돼지는 돼지답게 살고 개는 개답게 살고, 사람도 사람인데 고급스럽고 저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철학을 가져야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될 것인가, 잘 사는 것인가, 이게 인생인가. 가치 있는 것인가.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은 호랑이도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나는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지, 부족하면 내 자식들이라도 우리 아버지 참 존경스러웠다. 좀 좋은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귀한데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진주를 돼지 코에 걸어놓고 돼지 귀에 걸어놓으면 우스운 것처럼, 귀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귀하게 살지 않으면 돼지 목의 진주처럼 되는 겁니다. 우리는 잘 살아야하는데, 그 잘 사는 것이 인간 농사를 잘 하는 것입니다. 천하 모든 사람들은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집은 두 가지입니다. 세상에 물질 집은 수 없이 많은데 인간 공사는 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기초를 반석 위에 세워서 영원불변, 갈수록 더 온전하고 완전해져가는 그런 집이 있습니다. 이게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진리라고 그럽니다. 진리는 불변입니다. 그 진리 위에 건설된 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입장 저런 형편, 사정, 자기 욕심, 사정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이 시간에 이 사건에 대해서 하늘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니라, 그 분의 소망이 무엇인가, 이걸 말씀으로 찾고 현실도 찾고 양심도 찾아서 그것을 자기 뜻대로 좀 욕을 먹어도 손가락질을 당해도, 그 뜻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영감 위에 건설된 것을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말과 행동과 판단과 이것 모든 것들이 말씀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것이 반석입니다. 주님 대속, 그리스도의 대속, 사죄 위에 죄 없는 것을 멸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뜻을 함께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바로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고, 우리 모두의 생애가 그 위에 건설되어지는 겁니다. 돈 위에, 감정 위에, 자존심 위에. 좋은 것입니다만은 가족을 위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 내팽겨치고 놀러다니고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나 물질 위에 명예 위에 가족 위에 별에 별 것 위에 건설된 것이 많은데 믿는 우리는 반석 위에, 주님의 대속 위에, 영감의 진리 위에 세워야합니다.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되셔야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아무리 좋은 것이 와도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복음성가에 그런 찬송이 있죠.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주님보다 더 귀하고 높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고, 오직 나한테는 주님 뿐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홍수가 나서 다 쓸모가 없는데, 주변을 돌아보니까 너무 좋으니까 넘치는 자유와 넘치는 풍성함과 넘치는 문화와 온갖 즐길거리 많은 거기에 다 쓸려가서 주일 지키는 사람도 없고 기도하는 사람도 없고 성경읽는 사람도 없고 주님 섬기는 사람도 없는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주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을 하고 집을 짓는 기회는 한 번 뿐입니다. 한 번만 주신 기회에 잘 지어서 반석 위에 짓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여기에 염려 없는 분이 계신가요. 살아가다가 수 많은 근신 걱정이 생깁니다. 학생들은 시험 잘못 칠까 염려, 직장에서 문제가 생길까 염려. 별의 별 염려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아이들은 염려가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어린 아이들은 염려나 걱정거리가 있나요. 젖먹이도 배고프니까 염려가 있긴 합니다. 사람은 다 염려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야할 것도 있고 하지 말아야할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려라고 합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겠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말씀하셨는데 주님도 짐을 지셨고 주님도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주님이 짐이 너무 무거워서 기도하실 때, 그런데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교인을 사랑하는 참된 목자는 교인들을 위해서 다 기도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시험 드는 사람이 있으면 염려하고 걱정을 합니다. 별의 별 염려를 다 하는데 그런 염려는 하지 말아야합니까 해야합니까. 그런 염려는 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 보셨나요. 내가 할 수 있는대로 전도해서 노력을 해 보셨습니까. 오래 믿어도 그럴 수 밖에 없고 나아서는 가족밖에 없고 혈육밖에 없고 세상 밖에 없는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너 나 위해서 뭘 했냐. 이렇게 됩니다. 해 보셔야 합니다. 전도를 못해도 심방을 못해도, 우리 교회의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장로님, 집사님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고, 기도라도 해야합니다. 그래야 부끄럽지 않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자기가 바쳐봐야 진리가 깨달아지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이름만 가지고 소속만 교인이고 속에는 다른 사람 안중에도 없고 자기를 위해서 합니다. 그 사람 천국 가서 벌거벗은 사람이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영원토록 가치없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염려라는 것은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염려가 아니고 돈을 위해서, 한 달에 500만원 받아야하는데, 지금 직장은 300만원이니까 어디를 가야하나 이런 염려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과장인데 어떻게 하면 부장이 될까, 전부 자기중심, 물질중심. 그런 염려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원치않게 조심하고 있는데도 염려거리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노력은 해야합니다 당연히. 그런데 노력을 하지만은 마지막에 결과는 해결이 되든지 안 되는지 주님께 맡겨두는 것이지, 그것의 해결을 내가 쥐고 있으면, 예수 믿는 사람을 염려하는 것이면 해결이라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위해서 염려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입니다. 든든한 아버지를 둔 실력 있고 능력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그런 집에 아들들은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해주시고 자기만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많은 염려거리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해결할 수 없는 고통받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뭐라고 합니까. 하늘의 뜻에 맡겨라.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아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런 말을 안 하죠. 과학의 하나님, 물질의 하나님. 다 탈선이 되어집니다. 그 다음 8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근신이라는 것은 삼가라는 뜻입니다. 삼가다. 삼간다는 말은 조심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조심할 것인가, 살아가는 것을 조심해라는 뜻입니다. 신중해라.
무엇을 근신할 건인가, 우리 모든 생활을 근신하고 조심해라, 잘 살펴라 경계해라, 절제해라. 먹는 것도 좀 절제해라. 입는 것도 삼가라. 구경거리가 너무 많은 세상인데 즐길 것도 절제해라. 모든 것을 천천히, 성경에 이스라엘에 가장 나쁜 왕 이름이 무엇이지요.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못되고 나쁜 왕. 아내는 이쁘게 생겼고, 그 이세벨은 성경에 아주 나쁜 여인인데, 가장 나쁜 왕 이름이 뭐라고요? 아합입니다. 죄를 많이 지으면서 너 포도원 좋은데 그거 나한테 줘, 내가 더 좋은 밭을 줄테니까. 하니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데, 못 팝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이니까 아무것도 못하니까 이세벨이 물어보니까 사정을 듣고 거짓말로 죽였습니다. 그때 많은 잘난 사람들, 이세벨 손아귀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너 시체들이 땅에 장사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듣고 아합은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데 그렇게 나쁜 말인데, 겁이 나서 베옷을 입고 나는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벌벌 떨면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냅니다. 그렇게 벌벌떠는 것을 근신이라고 합니다.
백 목사님의 사진은 항상 먼 산을 봅니다. 잠시라도 근신을 항상 하십니다. 그렇게 긴장했는데, 세상 요즘 의사들은 적당한 긴장은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알맞은 긴장은 건강에도 좋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건강에도 좋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믿는 사람은 근신해야합니다. 보이는대로, 환경에 따라서 집에가서 집에 가는 사람이 됐다가 초상집에 가면 슬픈 사람 됐다가 술집에 가면 즐겁다가 여기 갔다 저기 갔다가 그런 줏대없는 인생은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이 아닙니다. 근신하고 깨어서,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깬다는 말은 깨는 거 반대말은 자는 것입니다. 자는 것은 숨은 쉬는데 죽은 것과 같은 것이 잠 자는 자입니다. 믿는 사람은 깬 자로 살아야합니다. 잠을 자면 잠 자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말하면 술 취한 사람입니다. 깨었으니까 들립니다. 깨니까 느낌이 있습니다. 감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깬다는 말입니까.
모든 것은 전부다 말씀으로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각도에서, 모든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 번째, 구원 목적으로 해야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구원 목적으로 해야합ㄴ다. 어떻게 해야 참 사람이 되게 할까. 그게 깨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망으로.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두 번째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마귀는 귀신이기 때문에 영물이라서 사람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라서 사람의 마음은 신기한 물질인데도 시공을 초월합니다. 귀신은 마음보다 더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없는 곳이 없습니다. 없는 때가 없고 없는 장소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귀신의 것입니다. 집에 가면 집에 있습니다. 부엌에 아침 식사 준비하는 곳에도 마귀가 있습니다. 학교에도 마귀가 있고, 사무실에도 마귀가 있습니다. 교회는 귀신이 못 들어옵니까. 십자가 부적이라고 도망가면 그게 영물입니까. 목사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목사에게는 귀신이 안 들어갑니까. 귀신은 다윗 왕에게도 들어왔습니다. 귀신은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권세 있는 자가 귀신입니다.
사자, 맹수의 왕이라고 합니까. 그 사자가 으르렁거리면서 돌아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지간한 동물들은 전부 다 도망쳐버립니다. 마귀가 무리의 대적 마귀, 너희의 대적 원수 적입니다. 너희를 잡아 죽이려는 구원을 절단내려는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가 먹을 것을 삼키려고 으르렁거리고 있듯이 그 마귀가 너희를 잡아먹으려고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환경입니다. 믿는 사람이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계실 때도 중세에도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 세계가 끝나는 그 날까지 마귀는 있습니다.
마귀가 끝까지 따라다니는데 성도가 죽는 날까지 있습니다. 마귀는 기가 막히게 잘생겼고, 음식으로 말하면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입니다. 온갖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주인이 마귀입니다. 마귀에게 이 세상을 빼앗겨서 마귀가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권세가 다 마귀가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의 것만 되면, 그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믿는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시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에 두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양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이리고, 이리가 가장 좋아하고 잘 먹는 것이 양입니다. 믿는 사람이 사는 세상은 이렇습니다. 이걸 기억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신해라, 깨어라. 너희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 그리고 저를 대적하라. 말씀을 하신겁니다. 여기까지 하고 오후에 계속합니다. 이리의 소굴 속에 있는 양이 믿는 사람입니다. 피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 가도 따라다니지요. 우리는 깨어있어야하고 근신해야하고, 대적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52장(샘물과 같은 보혈은), 103장(저 높은 곳을 향하여)
본문: 베드로전서 5장 7절 ~ 10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흔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씨를 뿌리는 그대로 거두게 되어있습니다. 농사를 잘 지으면 추수가 좋을 것이고 농사를 짓는 과정이 잘못되면 추수는 잘못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여름 뜨거운 날씨에도 약을 뿌리고 요즘은 또 덜하지만은 제초하고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 가을에는 풍성한 곡식을 추수하게 됩니다.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고 차근차근 설계도를 그려서 그 설계도대로 재료를 쓰고 잘 지어나가면 좋은 집이 되어지고 편리한 집이 되어집니다. 우리나라에도 건축의 인식이 많이 발달되어있습니다. 전부 건축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니까, 일본 사람들이 보면은 작은데 단단하고 또 실용적인 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집을 잘 짓는데 인생에서는 집을 짓는 생애가 이런 비유를 가지고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인생과 관련된 것을 철학이라고 하지요. 인생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학자가 아닐지라도 한 번 뿐인 인생을 살고 가는 사람이 주는대로 먹고 지내고 대충 살다가 죽어서 없어지는 허무한 그런 인생살이, 돼지는 돼지답게 살고 개는 개답게 살고, 사람도 사람인데 고급스럽고 저급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철학을 가져야합니다. 이렇게 살아서 될 것인가, 잘 사는 것인가, 이게 인생인가. 가치 있는 것인가.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은 호랑이도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나는 죽어서 이름을 남겨야지, 부족하면 내 자식들이라도 우리 아버지 참 존경스러웠다. 좀 좋은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하지 않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귀한데 아름다운데, 아름다운 진주를 돼지 코에 걸어놓고 돼지 귀에 걸어놓으면 우스운 것처럼, 귀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귀하게 살지 않으면 돼지 목의 진주처럼 되는 겁니다. 우리는 잘 살아야하는데, 그 잘 사는 것이 인간 농사를 잘 하는 것입니다. 천하 모든 사람들은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집은 두 가지입니다. 세상에 물질 집은 수 없이 많은데 인간 공사는 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기초를 반석 위에 세워서 영원불변, 갈수록 더 온전하고 완전해져가는 그런 집이 있습니다. 이게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진리라고 그럽니다. 진리는 불변입니다. 그 진리 위에 건설된 것은 반석 위에 지은 집입니다.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이런 입장 저런 형편, 사정, 자기 욕심, 사정 모든 것들을 배제하고 이 시간에 이 사건에 대해서 하늘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니라, 그 분의 소망이 무엇인가, 이걸 말씀으로 찾고 현실도 찾고 양심도 찾아서 그것을 자기 뜻대로 좀 욕을 먹어도 손가락질을 당해도, 그 뜻대로 이루어 나가는 것을 의라고 합니다. 영감 위에 건설된 것을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말과 행동과 판단과 이것 모든 것들이 말씀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것이 반석입니다. 주님 대속, 그리스도의 대속, 사죄 위에 죄 없는 것을 멸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의 뜻을 함께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가 바로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고, 우리 모두의 생애가 그 위에 건설되어지는 겁니다. 돈 위에, 감정 위에, 자존심 위에. 좋은 것입니다만은 가족을 위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 내팽겨치고 놀러다니고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그러나 물질 위에 명예 위에 가족 위에 별에 별 것 위에 건설된 것이 많은데 믿는 우리는 반석 위에, 주님의 대속 위에, 영감의 진리 위에 세워야합니다. 논리적으로,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되셔야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아무리 좋은 것이 와도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복음성가에 그런 찬송이 있죠.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주님보다 더 귀하고 높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이고, 오직 나한테는 주님 뿐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홍수가 나서 다 쓸모가 없는데, 주변을 돌아보니까 너무 좋으니까 넘치는 자유와 넘치는 풍성함과 넘치는 문화와 온갖 즐길거리 많은 거기에 다 쓸려가서 주일 지키는 사람도 없고 기도하는 사람도 없고 성경읽는 사람도 없고 주님 섬기는 사람도 없는데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주님을 섬깁니다.
우리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을 하고 집을 짓는 기회는 한 번 뿐입니다. 한 번만 주신 기회에 잘 지어서 반석 위에 짓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여기에 염려 없는 분이 계신가요. 살아가다가 수 많은 근신 걱정이 생깁니다. 학생들은 시험 잘못 칠까 염려, 직장에서 문제가 생길까 염려. 별의 별 염려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아이들은 염려가 없습니다. 왜 없을까요. 어린 아이들은 염려나 걱정거리가 있나요. 젖먹이도 배고프니까 염려가 있긴 합니다. 사람은 다 염려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해야할 것도 있고 하지 말아야할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려라고 합니다.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겠다.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말씀하셨는데 주님도 짐을 지셨고 주님도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주님이 짐이 너무 무거워서 기도하실 때, 그런데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교인을 사랑하는 참된 목자는 교인들을 위해서 다 기도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시험 드는 사람이 있으면 염려하고 걱정을 합니다. 별의 별 염려를 다 하는데 그런 염려는 하지 말아야합니까 해야합니까. 그런 염려는 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 보셨나요. 내가 할 수 있는대로 전도해서 노력을 해 보셨습니까. 오래 믿어도 그럴 수 밖에 없고 나아서는 가족밖에 없고 혈육밖에 없고 세상 밖에 없는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너 나 위해서 뭘 했냐. 이렇게 됩니다. 해 보셔야 합니다. 전도를 못해도 심방을 못해도, 우리 교회의 목사님을 위해서 기도도 하고, 장로님, 집사님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고, 기도라도 해야합니다. 그래야 부끄럽지 않고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자기가 바쳐봐야 진리가 깨달아지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이름만 가지고 소속만 교인이고 속에는 다른 사람 안중에도 없고 자기를 위해서 합니다. 그 사람 천국 가서 벌거벗은 사람이 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영원토록 가치없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염려라는 것은 있어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염려가 아니고 돈을 위해서, 한 달에 500만원 받아야하는데, 지금 직장은 300만원이니까 어디를 가야하나 이런 염려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과장인데 어떻게 하면 부장이 될까, 전부 자기중심, 물질중심. 그런 염려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원치않게 조심하고 있는데도 염려거리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노력은 해야합니다 당연히. 그런데 노력을 하지만은 마지막에 결과는 해결이 되든지 안 되는지 주님께 맡겨두는 것이지, 그것의 해결을 내가 쥐고 있으면, 예수 믿는 사람을 염려하는 것이면 해결이라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위해서 염려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입니다. 든든한 아버지를 둔 실력 있고 능력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그런 집에 아들들은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해주시고 자기만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많은 염려거리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해결할 수 없는 고통받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뭐라고 합니까. 하늘의 뜻에 맡겨라.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아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이런 말을 안 하죠. 과학의 하나님, 물질의 하나님. 다 탈선이 되어집니다. 그 다음 8절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근신이라는 것은 삼가라는 뜻입니다. 삼가다. 삼간다는 말은 조심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조심할 것인가, 살아가는 것을 조심해라는 뜻입니다. 신중해라.
무엇을 근신할 건인가, 우리 모든 생활을 근신하고 조심해라, 잘 살펴라 경계해라, 절제해라. 먹는 것도 좀 절제해라. 입는 것도 삼가라. 구경거리가 너무 많은 세상인데 즐길 것도 절제해라. 모든 것을 천천히, 성경에 이스라엘에 가장 나쁜 왕 이름이 무엇이지요.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못되고 나쁜 왕. 아내는 이쁘게 생겼고, 그 이세벨은 성경에 아주 나쁜 여인인데, 가장 나쁜 왕 이름이 뭐라고요? 아합입니다. 죄를 많이 지으면서 너 포도원 좋은데 그거 나한테 줘, 내가 더 좋은 밭을 줄테니까. 하니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데, 못 팝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말씀이니까 아무것도 못하니까 이세벨이 물어보니까 사정을 듣고 거짓말로 죽였습니다. 그때 많은 잘난 사람들, 이세벨 손아귀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너 시체들이 땅에 장사되지 못할 것이다. 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듣고 아합은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데 그렇게 나쁜 말인데, 겁이 나서 베옷을 입고 나는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벌벌 떨면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냅니다. 그렇게 벌벌떠는 것을 근신이라고 합니다.
백 목사님의 사진은 항상 먼 산을 봅니다. 잠시라도 근신을 항상 하십니다. 그렇게 긴장했는데, 세상 요즘 의사들은 적당한 긴장은 건강에도 좋다고 합니다. 알맞은 긴장은 건강에도 좋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건강에도 좋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믿는 사람은 근신해야합니다. 보이는대로, 환경에 따라서 집에가서 집에 가는 사람이 됐다가 초상집에 가면 슬픈 사람 됐다가 술집에 가면 즐겁다가 여기 갔다 저기 갔다가 그런 줏대없는 인생은 예수 믿는 사람의 생활이 아닙니다. 근신하고 깨어서, 정신을 차려야합니다. 깬다는 말은 깨는 거 반대말은 자는 것입니다. 자는 것은 숨은 쉬는데 죽은 것과 같은 것이 잠 자는 자입니다. 믿는 사람은 깬 자로 살아야합니다. 잠을 자면 잠 자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말하면 술 취한 사람입니다. 깨었으니까 들립니다. 깨니까 느낌이 있습니다. 감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깬다는 말입니까.
모든 것은 전부다 말씀으로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각도에서, 모든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 번째, 구원 목적으로 해야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구원 목적으로 해야합ㄴ다. 어떻게 해야 참 사람이 되게 할까. 그게 깨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망으로.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두 번째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마귀는 귀신이기 때문에 영물이라서 사람에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보다 더 위에 있는 존재라서 사람의 마음은 신기한 물질인데도 시공을 초월합니다. 귀신은 마음보다 더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없는 곳이 없습니다. 없는 때가 없고 없는 장소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귀신의 것입니다. 집에 가면 집에 있습니다. 부엌에 아침 식사 준비하는 곳에도 마귀가 있습니다. 학교에도 마귀가 있고, 사무실에도 마귀가 있습니다. 교회는 귀신이 못 들어옵니까. 십자가 부적이라고 도망가면 그게 영물입니까. 목사라는 이름이 있으니까 목사에게는 귀신이 안 들어갑니까. 귀신은 다윗 왕에게도 들어왔습니다. 귀신은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권세 있는 자가 귀신입니다.
사자, 맹수의 왕이라고 합니까. 그 사자가 으르렁거리면서 돌아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지간한 동물들은 전부 다 도망쳐버립니다. 마귀가 무리의 대적 마귀, 너희의 대적 원수 적입니다. 너희를 잡아 죽이려는 구원을 절단내려는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가 먹을 것을 삼키려고 으르렁거리고 있듯이 그 마귀가 너희를 잡아먹으려고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환경입니다. 믿는 사람이 사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계실 때도 중세에도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 세계가 끝나는 그 날까지 마귀는 있습니다.
마귀가 끝까지 따라다니는데 성도가 죽는 날까지 있습니다. 마귀는 기가 막히게 잘생겼고, 음식으로 말하면 기가 막히게 맛있는 음식입니다. 온갖 좋은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주인이 마귀입니다. 마귀에게 이 세상을 빼앗겨서 마귀가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권세가 다 마귀가 가지고 있습니다. 마귀의 것만 되면, 그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믿는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시면서 양을 이리 가운데에 두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양이 가장 두려워하는게 이리고, 이리가 가장 좋아하고 잘 먹는 것이 양입니다. 믿는 사람이 사는 세상은 이렇습니다. 이걸 기억해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근신해라, 깨어라. 너희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 그리고 저를 대적하라. 말씀을 하신겁니다. 여기까지 하고 오후에 계속합니다. 이리의 소굴 속에 있는 양이 믿는 사람입니다. 피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 가도 따라다니지요. 우리는 깨어있어야하고 근신해야하고, 대적해야합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