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8일 주일오전
김동민2020-03-08조회 218추천 25
2020년 3월 8일 주일오전
찬송: 9장, 77장
본문: 요한복음 4장 23절~25절
세상이라는 것은 이어지고 있고 나아지고 있는 세상이고 어제도 세상이고 오늘도 세상이고 내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세상입니다.
요즘 같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이런 현실도 세상입니다.
요즘 원치 않게, 예상치 하게 전염병이 퍼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소속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니까 교회 된 우리들의 가는 길을 세상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하니까 비웃기도 하고 방해도 하고 그렇습니다.
우리 모이는 곳이 학교 학원 이런 행사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종교행사인데, 예배를 되도록 모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 요즘입니다.
좀 전염병이 괜찮아질 때까지만 모이지 않는 게 좋은 거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예배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본문에 보니까 아버지께 참으로 위대한 자들은 참으로 예배드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예수님 출현 당시에 구약시대의 말기라고 합니다. 이때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를 많이 드렸을 겁니다.
예수님이 보셨을 때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껍데기고 진짜 예배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 영은 사람들의 영과 차원이 다른 영입니다.
여러 곳에서 실시간으로 드리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그런 분들은 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사람의 몸은 물질이고 마음은 영입니다. 사람은 영물인데, 중생 되지 못한 영들은 활동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 표현이나 이치나 생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말하자면 영이시란 말은 표현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나타낼 수 있는 신비한 표현이 영이기 때문에 영이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지, 사람과 천사나 악마와 동급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시니라. 신령은 영적인 세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예배에 함께하시고 계속하는 것을 신령이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와 같은 것이 굉장히 중요했고 그러한 것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예배의 출발은 어디서부터인가요? 구약의 제사로부터입니다. 그런데 구약은 어린 때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뭔가를 보여서 가르쳐야하는데, 그래서 형식이 필요합니다. 성전이 있고 유월절이 있고 안식일이 있고 다 정해져 있고, 제사를 드리는 방법도 있고, 아론의 자손을 제사장이라고 보고 그들만 제사를 지내고 그러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고, 이것을 어기면 벌을 받아서 죽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되고, 날짜 절기들이 있고 장소가 준비되어있고 모양도 갖추어야합니다.
금실 청실 자실 금 은 동 이런 것으로 어떻게 만들고 다 하나님께서 모양을 알려주셨는데, 그런 거까지 맞추어놓고 그것들이 중요한 형식이었습니다.
신약시대는 세월이 지나서, 장성한 시대입니다. 꼭 보여주지 않아도 위치를 가르쳐서 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런 실상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거슬러 올라가서 차이를 보자면 구약은 어릴 때, 보이는 기준, 제도가 굉장히 중요했고 신약은 장성한 시대라서 보이는 것보다는 설명을 해서 알아듣도록, 그래서 이치가 중요하고 실상이 중요한 때가 신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고 죄를 사함 받는 것이고 목표고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의 형식은 짐승을 잡아서 제단에 바쳐서 드리지요. 다섯가지 대표적인 제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형식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형식이 중요했고, 형식은 장소, 반드시 성전이어야합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어야하고, 솔로몬 죽고 나서,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열 지파가 자기 왕위를 빼앗길까 싶어서 사마리아에 가짜 제단을 만들어놓고, 다른 사람들을 세워놓고 예배를 드리다가 절단나고 그랬습니다.
소나 나귀나 염소나 짐승을 잡아서 짐승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그리고 아론의 자손이 제사장을 해야하고, 하나님께서 하신대로 해야하고, 제사장 의복으로 입고 그렇게해서 해야하는데 안 그러면 죽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장소, 날짜, 방법, 순서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신약시대로 와서 신약의 예배는 어찌되느냐, 신약시대는 장성한 시대라 그렇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구약과 의미는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가 신약의 예배로 발전이 되어졌고 성장이 되어졌다고 볼 수 있겠고 구약의 제사와 동일합니다. 말하자면, 구원의 방편을 주신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구약의 제사가 성장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목적은 구약과 마찬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몸과 마음을 껍데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껍데기는 알맹이가 목적이지만 껍데기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형식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껍데기가 알맹이 자체였습니다. 알맹이가 목적인데, 알맹이가 목적이지만 예배도 구약시대만큼은 아니지만 형식이 있고, 시간이 있고, 순서가 있습니다. 이게 신약시대 예배인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순서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습니다.
보이는 형식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가 보이는 게 전부였고, 알맹이는 몰랐고, 신약시대는 알맹이가 목적입니다.
예배에 바꿀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습니다. 신앙의 유익을 따라서 예배당을 바꿀 수 있다, 몸이 아플 때 바꾸고, 예배시간도 조절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바꿀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배 자체는 절대 바꾸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산 제사를 드리는 영적 예배, 예배를 드리는 그 자체는 바꾸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날짜인데, 주일은 절대로 바꾸지 못합니다. 이것은 절대 바꾸지 못합니다.
전염병에 걸린 할아버지가 와도 이건 못 바꿉니다. 이건 내가 죽어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조심스럽게 바꿀 수 있습니다. 장소를 바꾸는 게 신앙에 손해가 된다면 바꾸면 안되고 시간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백목사님 집회는 어떤 분들에게는 1년 52주일을 지키는 것보다 집회를 하루 지키는 것이 더 힘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만약에 거기에 가서 크게 바뀐다면 그게 더 중요할 수가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예배 자체입니다.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이건 바꾸지 못하고,
결론적으로 지금 이러는 것은 불변성때문입니까 가변성 때문입니까?
가변성 때문이지요. 장소? 바꿀 수 있습니다.
장소도 지금 실시간으로 드리는 분들이 많고 시간도 바꿀 수 있습니다.
경상도 산골 사람들이 자존심이 셉니다. 호남사람들은 순종성이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환경, 장소, 입장에 따라서 사람은 바뀝니다. 예배는 분위기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혼자드리는 예배와 둘이 드리는 예배는 다르고 수십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또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가 되면 모이기를 피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장소 발꿀 수 있고 시간 바꿀 수 있으나, 우리는 사람이고 약하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다같이 잠깐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
찬송: 9장, 77장
본문: 요한복음 4장 23절~25절
세상이라는 것은 이어지고 있고 나아지고 있는 세상이고 어제도 세상이고 오늘도 세상이고 내일도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세상입니다.
요즘 같은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이런 현실도 세상입니다.
요즘 원치 않게, 예상치 하게 전염병이 퍼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소속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니까 교회 된 우리들의 가는 길을 세상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하니까 비웃기도 하고 방해도 하고 그렇습니다.
우리 모이는 곳이 학교 학원 이런 행사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종교행사인데, 예배를 되도록 모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 요즘입니다.
좀 전염병이 괜찮아질 때까지만 모이지 않는 게 좋은 거라고 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예배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본문에 보니까 아버지께 참으로 위대한 자들은 참으로 예배드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예수님 출현 당시에 구약시대의 말기라고 합니다. 이때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를 많이 드렸을 겁니다.
예수님이 보셨을 때입니다.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껍데기고 진짜 예배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 영은 사람들의 영과 차원이 다른 영입니다.
여러 곳에서 실시간으로 드리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그런 분들은 더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사람의 몸은 물질이고 마음은 영입니다. 사람은 영물인데, 중생 되지 못한 영들은 활동할 수가 없으니까, 그런 표현이나 이치나 생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말하자면 영이시란 말은 표현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나타낼 수 있는 신비한 표현이 영이기 때문에 영이라고 한 것이기 때문이지, 사람과 천사나 악마와 동급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시니라. 신령은 영적인 세계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 예배에 함께하시고 계속하는 것을 신령이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와 같은 것이 굉장히 중요했고 그러한 것들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예배의 출발은 어디서부터인가요? 구약의 제사로부터입니다. 그런데 구약은 어린 때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뭔가를 보여서 가르쳐야하는데, 그래서 형식이 필요합니다. 성전이 있고 유월절이 있고 안식일이 있고 다 정해져 있고, 제사를 드리는 방법도 있고, 아론의 자손을 제사장이라고 보고 그들만 제사를 지내고 그러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고, 이것을 어기면 벌을 받아서 죽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되고, 날짜 절기들이 있고 장소가 준비되어있고 모양도 갖추어야합니다.
금실 청실 자실 금 은 동 이런 것으로 어떻게 만들고 다 하나님께서 모양을 알려주셨는데, 그런 거까지 맞추어놓고 그것들이 중요한 형식이었습니다.
신약시대는 세월이 지나서, 장성한 시대입니다. 꼭 보여주지 않아도 위치를 가르쳐서 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런 실상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거슬러 올라가서 차이를 보자면 구약은 어릴 때, 보이는 기준, 제도가 굉장히 중요했고 신약은 장성한 시대라서 보이는 것보다는 설명을 해서 알아듣도록, 그래서 이치가 중요하고 실상이 중요한 때가 신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고 죄를 사함 받는 것이고 목표고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사의 형식은 짐승을 잡아서 제단에 바쳐서 드리지요. 다섯가지 대표적인 제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형식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형식이 중요했고, 형식은 장소, 반드시 성전이어야합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어야하고, 솔로몬 죽고 나서, 남북으로 갈라졌을 때 열 지파가 자기 왕위를 빼앗길까 싶어서 사마리아에 가짜 제단을 만들어놓고, 다른 사람들을 세워놓고 예배를 드리다가 절단나고 그랬습니다.
소나 나귀나 염소나 짐승을 잡아서 짐승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그리고 아론의 자손이 제사장을 해야하고, 하나님께서 하신대로 해야하고, 제사장 의복으로 입고 그렇게해서 해야하는데 안 그러면 죽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장소, 날짜, 방법, 순서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신약시대로 와서 신약의 예배는 어찌되느냐, 신약시대는 장성한 시대라 그렇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구약과 의미는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가 신약의 예배로 발전이 되어졌고 성장이 되어졌다고 볼 수 있겠고 구약의 제사와 동일합니다. 말하자면, 구원의 방편을 주신 것이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예배는 구약의 제사가 성장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목적은 구약과 마찬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몸과 마음을 껍데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껍데기는 알맹이가 목적이지만 껍데기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는 형식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껍데기가 알맹이 자체였습니다. 알맹이가 목적인데, 알맹이가 목적이지만 예배도 구약시대만큼은 아니지만 형식이 있고, 시간이 있고, 순서가 있습니다. 이게 신약시대 예배인데,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순서는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습니다.
보이는 형식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가 보이는 게 전부였고, 알맹이는 몰랐고, 신약시대는 알맹이가 목적입니다.
예배에 바꿀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습니다. 신앙의 유익을 따라서 예배당을 바꿀 수 있다, 몸이 아플 때 바꾸고, 예배시간도 조절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바꿀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배 자체는 절대 바꾸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산 제사를 드리는 영적 예배, 예배를 드리는 그 자체는 바꾸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날짜인데, 주일은 절대로 바꾸지 못합니다. 이것은 절대 바꾸지 못합니다.
전염병에 걸린 할아버지가 와도 이건 못 바꿉니다. 이건 내가 죽어도 지켜야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은 조심스럽게 바꿀 수 있습니다. 장소를 바꾸는 게 신앙에 손해가 된다면 바꾸면 안되고 시간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백목사님 집회는 어떤 분들에게는 1년 52주일을 지키는 것보다 집회를 하루 지키는 것이 더 힘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만약에 거기에 가서 크게 바뀐다면 그게 더 중요할 수가 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예배 자체입니다.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이건 바꾸지 못하고,
결론적으로 지금 이러는 것은 불변성때문입니까 가변성 때문입니까?
가변성 때문이지요. 장소? 바꿀 수 있습니다.
장소도 지금 실시간으로 드리는 분들이 많고 시간도 바꿀 수 있습니다.
경상도 산골 사람들이 자존심이 셉니다. 호남사람들은 순종성이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게 환경, 장소, 입장에 따라서 사람은 바뀝니다. 예배는 분위기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혼자드리는 예배와 둘이 드리는 예배는 다르고 수십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또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가 되면 모이기를 피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고 하셨습니다.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장소 발꿀 수 있고 시간 바꿀 수 있으나, 우리는 사람이고 약하기 때문에 조심해야합니다.
다같이 잠깐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초타 :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