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주후(마23:13-15)
작성중2014-12-23조회 278추천 25
20141221 주후
마태복음 23:13-15
외식이란 것은,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이 외식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겉은 좋은데 속은 나쁜 것, 겉은 아름다운데 속은 흉한 것, 겉은 꾸몄는데 속은 꾸미지 않아서 제대로 던져둔 것, 또 겉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사람들이 보이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고 또 가치로 여기고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중시하여 사람들의 보기 좋고 듣기 좋고 사람들이 좋게 보는 그것은 주력을 하고 하나님이 보시는데 대해서는 별로 관심 없는 무관심한 것 이런 것들이 다 외식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서 여기 본문에, 일곱 가지를 말씀했는데 한번 더 생각해보면 첫째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 말씀하고 그다음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는 이 말씀하고 비슷한 그런 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면 천국 문이란 것이 무엇인가. 천국은 우리가 들어가고자 하는 곳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목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천국 들어가는 것. 천국에 문이 있는데, 천국에 문이 있습니까? 천국에 문이 있습니까? 천국의 문은 어떻게 생겼는가요? 요즘은 문 모양도 워낙 많아서, 재료도 많고 형태도 많아서 네모로 된 문도 있고 동그란 문도 있고 또 여러 가지 빙빙 도는 그런 문도 있고 나무문도 있고 철문도 있고 유리문도 있고 별별 문이 많은데 천국의 문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혹시 보신 분이 계시는지요? 또 천국의 문은 그 재료가 무엇으로 되어있습니까? 여기 보니까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았다 그랬습니다. 닫으면 아주 못 여니까 번호 자물쇠로 잠궜는지, 특수키로 열어야 되는지, 그럼 여기 천국 문이라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거는 비유라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앞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지 않고 있으니까 그 다음 그 사람을 따라 줄에 섰는데 그 사람이 들어가야 순서대로 그 다음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앞에 사람이 딱 맞고 있으니까 뒤에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게 사람이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가고 사람이 막는다고 못 들어가고 그렇게 되는 게 맞습니까? 천국은 누가 보내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천국 갈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천국 갈 수 있나요?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 믿으면 예수님 공로로 택한 백성은 다 천국에 가는 겁니다. 그런데 천국 들어가는 문을 누가 막았다고 해서 예수 믿어도 못 들어간다 그런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런데 어쨌든 여기 본문에 보니까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한다고 말씀을 했으니까 그렇다면 이 성경은 틀림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천국 보내는 사람을 누구든지 막을 자도 없는 것도 성경이고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정죄함이 없으면 천국 가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 본문에 보니까, 천국 문을 막아서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한다 그랬으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그 종류가 몇 종류라는 뜻입니까? 두 종류라는 말이 틀림 없는 거지요. 이런 깨달음을 두고 이 시대 최고의 깨달음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이런 깨달음이 없으면 이런 성경은 결코 해석을 못합니다. 오늘 찬송에, 김선생님이 사랑을 말씀하셨는데 그 사랑의 정의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성경 속에도 수많은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이 뭐냐? 요한1서 4장에 말씀하신 그 사랑,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성경 속에 수많은 사랑을 해석을 못합니다. 온 세상 천지 사랑을 외치는데 가장 사랑을 많이 외치는 곳이 교횐데, 그 사랑을 많이 외치는 교회들이 타락을 이끌고 있으니까 문제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연애당이 된지는 오래됐고, 그 사랑을 외치는 교회들이 타락을 하니까 문제입니다. 그 교회들이 사랑을 여기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건데, 그 하나님의 사랑의 정체가 뭐냐? 사랑을 다른 말로 바꾸면 뭐라 그럽니까? 사랑은 구원이고, 사랑은 대속입니다. 그 대속은 사죄, 칭의, 화친, 소망입니다. 사람의 죄를 없게 해주는, 그 죄는 도덕이 아니고 세상 법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게 만드는,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어주는게 사랑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라 행하도록 만들어주는게 사랑이고 하나님을 알려 깨달아 알게 하고 그 분을 찾고 만나고 모시고 그 분 닮아가게 하는게 사랑이고 영원한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게 사랑인데, 이것을 모르니까 말만 사랑이지 실제 사랑은 남자 여자 서로 사랑해야지, 남학생 여학생이 서로 사랑을 해야지, 처녀 총각이 서로 사랑해야지 그래서 교회 오빠니 누나니 하는 더러운 말들이 생기는 겁니다. 아주 지저분한 말들이. 참 대마귀의 말인데, 큰 문제입니다. 알아야 되는데.
그래서 천국에 보니까 천국은 예수 믿으면 택한 백성이면 누구나 가는 겁니다. 이거는 아무도 못 막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막아도 못 막는데, 막히지 않는데 여기 보니까 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한다 그랬으니까 이 천국은 기본 구원 천국,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행위 여하에 따라서 들어가는 그 천국을 말하는 것이니까 건설구원에 대한 것이다 그말입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노니 네가 땅에서 메면 천국에서도 메이고 네가 풀면 천국에서 풀린다, 천국 들어가는 열쇠가 베드로한테 있는데 그거는 건설구원의 면을 말하는 것이지 기본구원의 천국 열쇠를 베드로가 받았다면, 베드로가 뭐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이라 말인데,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 다음 막바로 사탄이 됐는데 베드로가. 말이 안 맞지요. 여기 말씀하신 막는다 말은, 인간이 행위적으로 들어갈 천국을 못 들어가게 막는다, 이거는 얼마든지 막히는 겁니다. 막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기본구원을 받아 천국 가는데 우리 행위적으로 건설구원적으로 천국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고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모시고 닮아가는 그게 천국 가는 모든 과정들이고 요소들입니다. 그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천국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들어가고 싶은 사람, 천국 들어가고 싶은 사람 이 사람은 기본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입니다. 알든 모르든 천국에 들어가야 되겠는데 그말은 다시 말하면 건설구원을 잘 이루어가야겠는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순종해서 자기를 하나씩 둘씩 고치고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모시고 닮아가는 이런 생활을 해야 되겠는데 앞에 섰는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이 누굽니까? 인도자입니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목사들입니다 예를 들면. 앞에 목사가 설교할 때 이걸 말을 해야 알지요? 목사가 천국 가는 그런 깨달음을 가지고 그런 행위를 하고 그걸 알고 그렇게 하면 그 말을 할 수 있는데 이걸 모르니까 말도 안하지요. 보니까 목사가 돈만 챙기고 교권이나 챙기고 명예나 챙기고 이런 것만 챙기고 앉았으면, 겉은 안 그러지요. 문제는 속입니다. 지금 말씀하신게 전부 외식은 겉은 번들번들한 겁니다. 아주 머리에 기름도 바르고 인물도 훤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제가 우리 총공회 어느 목사님을 한분 봤는데 그 분은 저하고 친하지는 않은데 앞면은 있고 잘 아는 분입니다. 지금 제법 큰 교회 목사님인데 그분이 언제 장례식때 한번 왔는데 보니까 제 느낌에 ‘아, 이 분은 무게가지고 목회하는 분이구나.’ 설교를 들어봐도 기도 봐도 속에 내용은 거의 없는, 총공회 백목사님께 오래전부터 배운 목사님인데도 들어보니까 진리도 별로 없고 영감도 별로 없고 그냥 그만그만한 목사님인데 보니까 무게를 얼마나 잡던지 무거워서 저같은 사람 백명을 얹어놔도 안될만큼 그렇게 말과 행동을 얼마나 무겁게 하던지 옆에 보니까 그 무게에 눌러서 그렇게 교인들이 따라가는. 이분은 무게 가지고 목회하는 분이구나 느낌이 딱 들만큼 그런 분이였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면은 옷도 잘 입었지요 벗틀도 좋지요 말도 신중하지요 무겁게 하지요 아주 걸음 천천히 겉지요 그러니까 뭐가 속에 꽉 들어있는 것 같은데 속에 들어가보면은 그런 분이면 속이 무거우니까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권능이 꽉 차서 한마디 한마디 말에서 교인들이 팍팍 녹고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데, 들어보니까 속은 별로 무게에 비해서 그만큼 많이 안되더라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껍데기는 나무랄게 없습니다. 너무 지나쳐 탈이고 너무 잘해서 탈입니다. 속이 비었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건설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대로 주어진 그 현실 현실마다 그 현실들에 해당된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음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게 자기 진리고 그대로 순종하면 겨자씨 믿음이고 자기 고쳐지는게 되는데, 그것 하나씩 하나씩 쌓여지면 자기 고쳐지고 고쳐진만큼 하나님을 만나서 동행을 하고 닮아가는 것이 되는건데, 설교하는데 이거는 속에 없고 말은 잘하는데 말속에 자기 행함과 변화가 없으니까 말 속에 능력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따라가고 싶어도 앞에 탁 맞고 있으니까 교인들이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알지만은 앞에서 가지 않으니까, 안간다 말은 그 앞에 있는 인도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그런 생활을 안하니까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사는 노력과 자기 변화가 없는 그 상태로 서있으니까 교인들이 천국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 그말입니다. 교회적으로 말하면 목사고, 주일학교반으로 말하면 반사 선생님이 앞에서 천국에 들어가야 줄줄이 양떼들이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는데 반사선생님이 앞에 딱 맞고 있으니까 학생들이 못 들어가고, 구역장 집사님이 앞에 딱 맞고 있으니까 식구들이 못 들어가고, 가정의 선지자된 사람이 앞에 막고 있으니까 식구들이 못 들어간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말씀하신 천국은 우리의 행위적인 천국, 건설구원적인 천국, 우리 성화적인 그런 천국을 말씀하는 것이고, 앞선 사람이 그렇게 하지를 않으니까 몰라서 안하든, 알고도 안하든 안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속한 사람들은 못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로 알아서 깨달음을 바로 가지니까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 받았으니까, 그런데 베드로만 받았습니까? 천주교는 베드로만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 통해서만 천국 들어간다 그러는데, 베드로만 받았습니까? 저도 받았는데요? 천국 열쇠 안 받은 분 계십니까? 다 받았지요, 우리가. 받았으니까 열고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내가 들어가면 내게 속한 사람 다 따라 들어오는 것이고. 그런데 닫고, 막고, 자기도 안 들어가고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도 못 들어간다 그말입니다. 행위적으로 생활적으로 우리의 심신의 언행심사 활동적으로 이게 천국 문을 막고 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부로 드러나게 막는 것도 있고, 또 드러나지 않는데도 막는게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그래서 이게 외식인데, 드러나는 잘못된 것은 조금 설명하면 되고 또 오해를 풀면 되고 그리 될 수 있는데 드러나지 않는 잘못된 것은 이거는 하나님과 자기 관계기 때문에 이거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이게 가장 어렵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 문을 막는데,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면은 천국 문을 막고 있지 않습니다. 잘 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속에 들어가보면 천국 문을 막고 있거든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무슨 말씀인지 좀 추상적이고 어렵습니까? 설교하면 설교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은혜 받으면 피곤이 다 풀리지요. 이상하게 피곤도 풀립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한편으로 짐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해결이 되니까 평안하게 되고, 그러면서 마음 속에 가책을 느끼는 동시에 소망도 느끼고 각오와 결심도 생겨지고 힘도 받고 이렇게 되어지는건데, 설교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하니까 말은 전하는데 이게 없다 그말이지요. 이게 없으니까 막히는 거지요. 하나님의 능력이 안나가니까 막혀있으니까 자기도 못 들어가는 것이고 들어가고자 하는 교인들도 못 들어간다 그말입니다. 경험을 해보신분들은 서로 통하겠지요.
그다음 두 번째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으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교인을 얻는 것은 천국 백성을 찾는 겁니다. 천국 백성을 삼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이 택해놓으신 천국 백성을 찾아서 인도하는게 교인 하나를 얻는 것이고 전도하는 것인데, 얼마나 많이 노력을 합니까? 노력을 하는데, 그 하나님 백성을 찾아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천국 백성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잘 이끌어 인도를 해야 되겠는데 교회 데려다놓고난 다음에는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 그랬으니까 지옥 자식이라 말은, 마귀 자식이라 말이지요. 마귀 자식이라 말은 하나님의 아들과는 정반대라 그말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마귀자식이다. 그런데 너희보다 배나 더 그랬으니까, 그러면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로 두루 다니는 그들이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입니까, 지옥 자식이라 말입니까?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온 사방 천지를 돌아다니며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구원 받읍시다.’ 심방하고 전도하고 막 돌아다니는데, 전도지 수백장 수천장 수만장 전하고 수 백집을 돌아다니고 수천집을 돌아다니고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없는 노력을 해서 한사람을 전도해서 교회로 데려다놓고, 그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그랬으니까 그 사람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라 그랬으니까 지금 이 사람을 인도해서 데려놓은 이 서기관 바리새인은 천국 백성입니까, 지옥 자식입니까? 성경을 그대로 풀면 뭐라 말입니까? 지옥 자식이라는 말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하나 지옥 자식인데 데려다놓은 사람들은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된다 그랬으니까 이들이 지금 지옥자식이라는 그 뜻 아닙니까? 지옥 자식이니까 지옥에 마귀 아들이 전도하고, 마귀가 심방하고 그말이 되지요. 그러니까 마귀에 속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데려다놓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마귀에 속한 사람이 된 것보다 배나 더 마귀 속한 사람을 만든다, 이해가 쉽게 안되지요? 어떻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 사람들이 왜 마귀에 속한 사람들이 되었는가. 세례요한이 그랬습니까? 독사의 새끼들아 그랬지요. 독사의 자식들아. 독사의 자식이니까 독사는 뱀 아닙니까? 해석이 이렇게 나가도 될지 모르겠는데. 뱀이고, 뱀 중에서 독을 가진게 독사니까, 뱀은 성경에 마귀겠지요. 마귀 중에서 독한 마귀니까 독사겠지요. 그 마귀에 속한 사람들이니까 독사의 새끼들아 그랬지요. 자식들아.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인데, 그럼 이 사람들이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고 율법을 붙들고 율법을 외치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마귀의 지옥의 자식이 될 수 있는가. 그 속에 하나님이 없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은 바로 지옥입니다. 이 세상은 말하자면은 천국과 지옥이 섞여있지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는데 모형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곳이 있으면 그 곳이 세상이지만 천국이고, 그 천국은 지상에 있지만은 그래서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제한받는 그런 천국일지라도 그 속성은, 성격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천국은, 성화라는 말은 하나님 형상으로 변화된게 성화인데, 영화라는 말은 그 성화가 무궁세계로 가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태를 영화라 그러니까 성격은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천국은 그 천국이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는다는 그거지, 그 천국의 평안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감사 영광은 무궁 세계와 분량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성격이고 같은 종류라 그말입니다. 이 세상의 천국이 무궁세계 천국과 같은 종류입니다 속성이. 다만 시간과 공간과 제한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지옥은 영원한 지옥, 그 지옥은 아닐지라도 이 세상에 지옥도 하나님 없는 곳이면 거기가 전부 하나님이 없으면 마귀가 왕이 되는데 그 마귀가 왕이 되는 그것이 겉으로 나타날때는 누가 왕입니까? 마귀가 왕이 된 그 상태를 가리켜서 뭐라 그럽니까? 마귀가 왕이된 그 상태를 가리켜서 교리적으로 뭐라고 표현합니까? 그걸 악이라 그럽니다, 악. 그 마귀가 왕이 된게 바로 악이고 그게 열매를 맺어가지고 뻗어나온게 인간 자기중심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은 전부 인간 자기 중심, 자기가 왕이 된 곳이고 자기가 왕이 된 곳은 그게 표시가 안날뿐이지 속에 들어가보면 전부 지옥입니다. 정도차이지, 하나님이 없는 곳. 그러니까 이들이 하나님 없는 상태로 율법 붙들고 아무리 지켜도, 아무리 전도하고 심방해서 교인들을 챙긴다 할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이 없고 제가 왕이 되어있는 상태고, 그런 상태에서 교인들을 자기와 같은 사람 만드는데 제가 하나 왕이면 교인들은 왕이 두 배나 되고, 더 한 자기 중심과 세상 중심의 그런 사람들을 만든다 그말입니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된다. 자기보다 배나 더 자기 중심, 자기보다 배나 더 세상 중심의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나간다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잘 아는대로, 어머니가, 어머니보다 이거는 교훈이니까, 나는 바담 뿡 해도 너는 바람 풍해라 그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나는 바담뿡 하지만은 너는 바람 풍해라. 나오는 그대로. 앞선 스승이 어떤 사고 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교훈하느냐에 따라서 따라가는 그 밑에 사람들은 그대로 될 수 밖에 없고 그게 세월이 지나가면 더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요? 반대로 말하면, 백목사님의 교훈을 우리가 받았으면 백목사님 교훈 곱하기, 우리 충성의 정도에 따라 더 깊은 깨달음을 가지면은 백목사님보다 더한 성자가 될 수 있다는게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백목사님은 칼빈보다 더 위대하다 할 수 있습니다. 들어가보면, 교리적으로. 성화정도는 모르겠지만은. 성화도 모자르진 않지 않을까. 그러니까 악도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고, 배나 더 천국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면은 반대로 되는 그런 것도 있지만은. 그래서 첫째는 천국 문을 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막는다. 여기 천국 문이라는게 어떤 건지 알아야 됩니다. 이거는 기본구원면이 아니고,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범죄한 심신의 기능이 천국 갑니까? 죄 지은 요소가 천국 가서 되겠습니까? 죄라는 것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서 죄 하나 지으면 그 죄가 점점 퍼지고 커지고 많아지고 독해지는데 하나 천국 들어가면 천국이 지옥이 되는데 되겠습니까? 먼지만한 것도 못 들어가지요. 그런데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천국 문에 못 들어간다는 것은 앞선 사람이 이런 사실을 깨닫고 죄를 안 지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나님과 동행을 해야 그래야 들어가는데 이 사람이 그걸 안하니까 뒤에 사람은 못 들어가는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껍데기 모습은 율법으로서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울만 그랬던게 아닙니다. 사울은 그때 바울되기 전에 표준은 여기 기록된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사울이 표준입니다, 표본입니다. 말하자면 변화되기전 사울의 표본. 그들처럼 사울도 되기를 원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갔습니다. 달려가다가 주님 만난 거지요. 그러니까 사울도 율법의 의로 흠이 없었고 이 당시 많은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말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주일을 너무 너무 잘 지켰고. 지금 이 시대에 이 당시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총공회 속한 교회들이고 교인들입니다. 그 외에 사람들은 이런 것조차 모르니까 더 나가있고. 가장 높은, 그래서 가장 잘 바른 세계최고의 교리 신조 행정을 가졌다는 총공회 교인들이, 그래서 다른 교단이 주일 바로 못 지키는 것 비판하고, ‘그게 주일 지키는건가? 그게 믿는 것인가? 그게 예수 믿는 것인가?’ 그렇게 비판하고 ‘예수 믿는 교리를 아는가? 신조를 아는가? 방법을 아는가?’ 그렇게 비판을 하는데 우리는 철저하게 주일을 지키는데, 성경을 수도없이 읽는데, 기도를 많이 하는데, 열심히 심방정도 하는데, 연보도 하는데, 신앙생활하는 것 같은데 뭐가 없으면 안된다고요? 그 속에 자기를 하나씩 말씀으로 고쳐나가는 실제 하나씩 고쳐나가서 변화되는 것이 없으면 우리가 바로 이들과 같은 겁니다. 이 말씀은 바로 이 시대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가장 적용 되는 것. 그러기 때문에 알고보면 다른 사람은 말할게 없습니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말나오지만은, 다른 교단 교회를 비판할게 없고 말할게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큰 문제지요. 천국 문을 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사람도 못 들어간다. 교인 하나 얻기 위해서 온 사방 천지 돌아다니다가 얻으면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된다, 그게 바로 그 사람 자신이 자기 중심과 세상 주의가 되어있는 상태에서 그리 하니까, 그러니까 그런 교훈 받으니까 더 배나 그런 사람이 된다 그말이지요.
그다음 세 번째는,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그말은 비중을 따지는 겁니다. 성전이 크냐, 성전에 있는 금이 크냐? 금이 크지요, 뭐. 금은 돈이 얼만데. 성전은 팔아먹을 수도 없는 건데. 제단이 크냐, 제단 위에 예물이 크냐. 성전이 크냐, 하나님이 크냐. 알고보면은 성전과 안에 있는 금, 금은 거룩한 걸 말한다면은, 성전 안에 있는 금이기 때문에 성물이 되는 것이고, 성전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금이 거룩한 금이 되는 것이고 가치있는 것이 되는 것인데, 그 금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전에는 가치를 두지 아니하고 성전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팔아먹으면 비싸게 알아주는 금덩어리는 가치로 여기고, 제단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제물 바치는 그 제단인데, 그 제단에 얹어놨기 때문에 예물이 가치가 있는 것인데, 예물보다는 제단이 비교 못할만큼 그래서 그 올려진 예물은 올려지면 예물이고 안 올려지면 별 볼일 없는 건데 그 예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은 올려놓는 예물마다 예를 들면은 항상 거룩하게 만드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그런게 제단이고 성전이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것이 금이고 예물인데, 성전이란 것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집은 그 성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사람들의 가치관은 가치의 비중을 따져볼때 하나님보다는 성전이 크고 화려하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실 때 제자들도 말하기를 이 성전에 돌들과 건물이 어떠합니까? 심히 화려하지 않습니까? 몇 년 걸렸답니까, 예루살렘 성전 짓는데? 오래 걸렸지요 아마. 몇십년이요? 오래 걸렸을 겁니다 아마. 오래 걸려놓으니까 화려하고 크고 돌도 어마어마하게 잘 지어놨습니다. 그 자랑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모든 걸 보지 못하냐. 때가 이르면 이 돌들이 다 무너져서 돌 하나도 포개지 않고 몽땅 다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 떠난 성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전이 하나님 떠나니까 그 안에서 돈 팔아먹고 짐승 팔아먹고 매매하다가 예수님께서 다 뒤집어엎고 채찍으로 휘둘러서 다 쫓아내고 그랬지 않습니까. 내 집은 무슨 집이라고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그랬는데, 그들이 뭘 만들었습니까?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은 뭡니까? 강도의 굴입니다, 강도의 소굴. 너희들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구나. 하나님 떠난 성전은 강도의 소굴입니다. 도둑놈도 소굴이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셔야 성전이 가치가 있는건데, 하나님은 가치두지 않고 성전에, 예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은 가치두지 않고 예물에, 성전은 가치두지 않고 성전을 거룩하게 만드는 금덩어리에, 그러니까 가치의 비중을 어디 두느냐 그말이지요.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 가치두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가치두고 눈에 보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껍데기 보이는 것에 가치두고 그 비중을 크게 여기지 보이지 않는 속을 살피는 것은 없는 이런 상태가 바로 세 번째 말씀하신 맹세,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의지해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되고. 왜? 성전은 별 볼 일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금덩어리 맹세하면 금덩어리 비싼 것이니까 지켜야 되고. 금덩어리는 담보로 잡아주고 성전은 담보로 안 잡아준다 그말이지요. 제단으로 맹세하면 별 볼 일 없고 안 지켜도 되고, 제단 위 예물로 맹세하면 지켜야 되고. 성전은 크니까 그걸로 담보 잡히면 지켜야 되고 하나님이야 까짓껏 보이지 않는 데 지켜도 안 지켜도 상관없고 그러니 외식 아니겠습니까. 가치의 비중을 어디 두느냐? 다 그랬습니다.
네 번째는, 십일조입니다. 박하, 회향, 근채 식물이지요. 식물인데 우리가 이름을 들으니까 박하, 회향, 근채라고 아주 비싸고 소중한 것 같은데 그 당시로 말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흔한 그런 종류의 식물들인데, 재건파들은 밥 먹는 것도 밥 한공기를 먹어서 밥 떡을 먹을때마다 십일조를, 밥 숟가락이 스무숟가락이면 몇 숟가락 떠놔야 됩니까? 두 숟가락. 또 콩나물 열 젓가락이면 콩나물 십일조 한 젓가락, 또 시금치 나물 열 젓가락이면 시금치 나물 한 젓가락, 그 당시에 실제 십일조 그렇게 뗐답니다. 그렇게 떼다보니까 엉망이 되거든요? 그리고 길가다가 절에 들어가서 부처 보면 때려 부숴버리고, 조상 단지는 깨어버리고, 우상 섬기는 것 가서 뒤집어 엎어버리고. 그래서 재건파에 머리되는 최덕지 선생님 그분이 감옥 갔을때, 우리가 존경하는 한상도 목사님, 주남선 목사님 이런 분들은 아마 황거요배, 동방요배는 했다 그러지요? 주남선 목사님은 잘 모르겠는데, 출옥 성도중에서 황거요배는, 황거, 일본 천황이 거하는 동방 동쪽을 향해서 절하는 겁니다. 할 때, 왜 절했답니까? 동방요배 황거요배는 그 성자들이, 신사참배는 목숨 걸고 반대한 분들이 황거요배는 크게 거리끼지않고 했답니다. 왜 했답니까? 천황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으니까 해도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까 살아있지만은 여기서 하는 걸 까마득히 모르는 거니까 그 살아있는 사람을 그 사람 이상으로 신격화 시키니까 2계명 어기는 우상이 되는건데, 이걸 모르니까 했다 그말이죠. 그런데 최덕지 선생님은 재건파 머리되는 여성도입니다. 그분은 안했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 안하고 황거요배 한 사람은 그냥 있었는데, 황거요배까지 안한 사람들은 감옥 안에서 포승줄로 뒤로 손발을 묶어놓고 밥을 먹여도 그냥 접시에 담아서 개처럼 핥아먹도록 그렇게 만들었답니다.그래서 손이 썩어서 구더기가 생기고. 그렇게까지 강하게 이겨낸 사람이 최덕지 선생입니다. 그렇게 만든 재건파. 그런데 그분이 여성이거든요. 안타깝게.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은. 그분이 머리가 돼서 만든 게 재건파인데, 안타깝게 치우쳤습니다. 그래서 해방후에 재건파 교인들이 출옥 성도 많은 고신파 교인들보고도 타락했다 그래서 아예 상종도 안 했답니다. 처음에는 고신 사람들도 재건파 그분들을 존경을 해서, 그렇게까지 이겼으니까 존경했는데 보니까 상종도 안하고 절교해버리고, ‘너희는 마귀 자식들, 마귀당이라’ 그래가지고 다 끊어버리니까 뭔가 이상하다 그랬는데 시간 지나고보니까 재건파는 흐지부지. 지금 교회있긴 있어도 별로 힘을 못 쓰지요. 교리가 없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재독을 왜 하느냐? 교리, 신조, 행정을 왜 지키느냐? 비디오 재독을 하기 위해서. 이런 사고방식 가지면 재건파처럼 나가는 겁니다. 비디오 재독을 왜 하느냐? 교리 신조 행정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되야지요. 교리 신조 행정을 왜 지켜야 되느냐? 나의 구원을 위해서. 그게 없으면 구원이 안되니까. 신앙 노선이니까. 가치를 어디 두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다음 십일조. 십일조의 의미가 뭐냐? 십일조라 말은, 십분지 일을 떼는데 그것은, 참 이런 것도 그 한마디 한마디 교훈이 얼마나 귀한지. 오래 믿어도 몰랐지요. 백목사님 말씀 듣기 전에는. 나와 내게 있는 전부다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로 떼는게 십일조다. 들어가서 보니까 선악과하고 똑같습니다. 선악과를 하나님께서 왜 만들어놨는가? 하필이면 동산중에 가장 잘 보이는데에, 다 그냥 먹게 하지. 선악과 볼때마다 너는 뭐라 말입니까? ‘피조물이다. 너는 하나님이 아니다. 너는 피조물이다. 너는 최고 머리가 아니다 그말이지요. 니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선악과 볼때마다 그걸 보라는 겁니다. 알고, 그걸 따먹는 순간 제가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이 선과 악의 정의를 구별짓는 선악과고, 먹는 순간 제가 하나님이 됐기 때문에 악이 된 것이고, 모든 죄악의 근본이 악이고 에덴동산에 쫓겨난 겁니다. 영원한 멸망이 된 것이고. 그게 선악과고, 그와 같은 종류로 내려온게 십일조입니다. 나와 내게 있는 전부는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를 똑 떼먹는 순간 뭡니까? 선악과하고 똑같습니다. 그게 물질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바로 선악과 따먹는 죄와 같은 겁니다. 이게 모르니까 신앙에 따라서 일일이 개인적으로 말 못해도 원리가 그런 겁니다. 무서운 거지요. 그런데 그 십일조를 그래서 꼬박꼬박 잘 바칩니다 이 사람들이.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십일조를 꼬박 꼬박 바칩니다. 바치는데, 문제는 그 십일조는 의미가 그렇게 들어있는데 표시입니다, 상징입니다. 하나의 표시. 나와 내게 있는 전부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 십일조를 하면서 이 표를 하고 이 사실을 아는 동시에 나는 전부, 나도 내 전부도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야 된다 그래서 내 속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나는 살아있지만은 죽은 자 같은 산제물로 바쳐져서 나는 살아있으나 내가 사는 건 전부 주로 인하여 사는, 주님이 내 속에 주인이 되셔서 말도 행동도 모든 사리판단도, 비판 평가 처리도 생활도 전부 하나님에게 붙들려 사는 이런 사람이 되는게 이게 십일조를 내는 목적이고 목표고 이런 사람이 되겠다는 표시로 내는 것인데, 이게 산제물이고 이것이 율법의 목적인데 이거는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고 나는 산제물이 되어 살겠다는 이거는 없고, 그냥 십일조만 꼬박 꼬박 바치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가리켜서 외식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 그말은 작은 죄는 아주 구별해서, 오전에 예를 들기를 혐오스럽게 했는데, 국을 끓여서, 그래야 기억이 남겠지요 뭐. 하루살이는 위에 파리가 떨어지니까 파리는 젓가락으로 집어냈는데, 그 국 속에는 쥐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쥐는 맛있게 먹고 있거든요? 그러면 되겠습니까? 파리 떨어진거는 젓가락 꼭 집어내서 건져내고, 그 속에 병균이 우글우글한 쥐는 맛있다고 뜯어먹으면 정상이 아니지요 그거는. 십일조는 꼬박꼬박 냅니다. 그런데 그 속에 십일조가 원하는 본목적이 되는 율법에 더 원하는바, 더 율법에 더 중한바 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의, 인, 인간을 사랑하는 자비 인, 신, 하나님 향한 믿음, 의와 인과 신을 가지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고쳐 변화시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율법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가야 되는데 이거는 이들에게 도무지 없습니다. 없고 껍데기만 하고 있기 때문에 외식이고, 진짜 중한 것은 다 빼먹고 보잘 것 없는 것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라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큰 죄는 무엇이 가장 큰 죈가? 바로 이런 종류인데, 왜 이 외식이 왜 이렇게 무서운 죄냐 하면, 세리는, 바리새인은 소득의 십일조 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토색 불의 간음도 행하지 않고 잘 했습니다. 기도하는 세리는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기도 할때 감히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면서 말하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기 죄가 깨달아지니까 가슴을 쳤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 세리가 율법 잘 지킨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그랬으니 어느면을 두고 하는 겁니까? 그 바리새인 속에는 뭐가 없습니까? 그 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십일조 할 수 있고, 하나님 없이도 율법 다 지킬 수 있고. 그래서 목사가 설교하는데, 마귀가 설교한다는 말을 설교록에 보면 여러번 나옵니다. 마귀가 되어서도 설교할 수 있다. 심방 전도 기도할 수 있고 다 한다는 겁니다. 유창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래서 도둑질 하는 것 나쁘지요. 사람을 미워하는 것 살인죄지요, 거짓말 하는 것도 구원의 손해이니 큰 죄입니다. 또 많은 종류의 죄 많잖습니까? 그런데 가장 큰 죄는, 이웃의 소유를 탐 내는 것 거짓 증거 하는 것, 도둑질 하는 것 간음하는 것, 부모에게 살인하는 것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이런 죄도 큰 죄들입니다. 주일 어기는 것도 큰 죄고, 그런데 가장 큰 죄는 1계명입니다. 2계명부터 10계명까지 아홉가지 모든 계명의 무게하고 1계명 비중을 따지면 1계명이 비교 못할만큼 무겁지요. 나머지 아홉가지 계명은 1계명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1계명을 정상으로 지키면 나머지는 다 지키는게 정상입니다. 그게 가장 큰 계명이고 전부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하나님을 네 앞에 두지 말아라, 하나님을 바로 찾아 모신 그게 신앙이고 그게 구원이고 그게 전부입니다. 이거는 없고, 도둑질 하지 마라 사랑해라 거짓말하지 마라 백날 해봐야 그런거는 하루살이입니다.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데 하나님 모시는 거는 잊어먹었으니까 약대는 삼키는 거지요. 그게 가장 큰 것인데. 기독교의 중심이 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 다섯 번째,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 그러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한다. 그런데 그 속에는 잔, 찻잔이든지 물잔이든지, 대접 국그릇이든 밥그릇이든 그릇이지요. 잔과 대접이니까 그 안에 뭐가 있어야 됩니까? 잔이면은 차가 들었던지 물이 들었던지 대접이면 국이 들었던지 밥이 들었던지 해야 되는데 안에 보니까 뭐가 들었다고요? 그 안에는 뭐가 들었습니까? 탐욕과 방탕입니다. 탐욕과 방탕은 어디 들어있습니까? 탐욕과 방탕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사람의 마음이지요. 마음 속에 있는 것이고, 잔과 대접은요? 사람의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이겠지요. 몸에서 나오는 행동.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그 사람의 몸으로 행하는 말, 행동, 조심 조심 걸음걸이, 자기 모든 대하는 이런 것, 그래서 겉으로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하는. 그래서 1부터 읽어보니까 저희는 자기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하고, 하나님 말씀을 적어서 상자 안에 넣어놓고 이마에도 탁 차고 구약 성경 말씀대로 손목에도 매고 옷술을 크게 하고 걸음걸이는 팔자걸음을 걸었는지 아니면 무겁게 걸었는지 그렇게 걷고. 또 시장에서 문안 받고 잔치에 상석앉고 선생님 소리 받는 것 좋아하고. 자기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기도하면 사거리 길에 서서 큰소리로 기도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따라서 신앙생활하는 겁니다. 믿음 생활을. 하나님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겉은, 껍데기 신앙생활 껍데기 계명 지키는 생활 이런 종교 의식적인 생활은 훌륭합니다. 깨끗하고 흠이 없고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까 탐욕, 온갖 종류의 세상 욕심, 방탕, 마음을 주인없이 풀어나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 매인데 없이 마음이 그냥 엉망이 되는. 그래서 마음 속에 들어가보니까 하나님의 성령의 소욕이 아닌 인간의 온갖 종류의 육신의 정욕이 가득 차고. 이 세상을 향한.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는 전부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조심이라곤 전혀 없는 그런 것이 가득하다. 하나님이 없으면 이렇게 되는 거지요. 그리 된다.
그다음, 여섯 번째 회칠한 무덤이 나옵니다, 회칠한 무덤. 저는 회를 칠한다 그래서 회만 그런 줄 알았는데 ‘회칠’이라는 말 자체가 한자입니다. 회칠, 석회를 바른다 그런 뜻이랍니다. 석회, 석회 아시지요? 하얀 분말가루 된 것, 벽 같은데 바르는 하얀 색. 그걸 발라놓으면 요즘은 이런 걸 잘 안쓰는데, 옛날에는, 특히 이 지방에는 건물을 만들면 석회를 발라서 하얗게 깨끗하게 꾸미는데, 회칠한 무덤이니까 겉은 석회를 발라서 하얗게 깨끗한데 속에 들어가보면 무덤이니까 뭐가 있습니까? 죽은 사람의 뼈와 냄새나는 벌레들, 병균들이 우글우글 하겠지요. 이런 모양이 이들의 신앙 모습이었습니다. 껍데기 회칠한 무덤이라, 외부적인 그런. 겉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종교의식이라든지 모든 행사 이런거는 훌륭합니다. 모든 제도나 조직이나 교회 안에 법이나 말이나 행동이나 행사나 이런 거는 참 사랑이고 긍휼이고 자비고 그렇게 다 하는데 그 속에 사상과 사고방식과 가치관 속에 들어가니까 죽은 사람의 뼈, 죽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을 성경에 죽은 사람이라 그럽니까? 하나님 없는 사람, 하나님 없는 사람,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 그런데 죽어서 썩었으니까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져서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그런 상태가 된 그런 신앙의 모습. 이런 모습으로 교회들, 믿는 사람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선지자, 이거는 지나간 선지자,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니까, 과거에 지나간 종들의 비석과 무덤은 쌓고 꾸미면서 현재 있는 예수님은 배반하고 죽이고 있으니까 이걸 좀 생각해보면, 과거에 대해서는 항상 후회하고 탄식을 하고 눈물 흘리면서 막상 현재 자기에게 깨달아지는 주님의 그 말씀은 배척을 하고 있다 말이지요. 과거 탄식만 하고 있지, 미래 대해서는 각오 결심만 하고 있고. 현재 지킬 하나님 말씀은 다 지키지 않고 메시야 못 박아 죽이듯이 그리 하고 있다. 이렇게 일곱가지를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 하나를 좀 생각해보면서 이게 전부 외식의 실제 모습인데, 우리 모든 종류의 외식을 다 생각하면 이 속에 다 들어간다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 하나를 생각해보고 우리 속에 있는 외식을 뽑아서, 아마 이 복음을 배운 대다수의 분들은 스스로 외식하기를 원치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외식하는 수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은, 이 시대 바리새인들은 바로 우리 총공회 교인들이 되기가 가장 쉽습니다. 왜? 모든 교계에서 총공회 백파 교인들은 잘 믿는다고 자타가 공식으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간판, 총공회 소속 교인이라 그러면 달리 쳐다봅니다. ‘아, 성경대로 열심히 잘 믿는 분들.’ 그리 압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으면 다행인데, 복이 큰데, 그렇게 인식도 되고 알고 있는데 우리 실제 모습이 그리 되지 못하면 바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고 거기서 직분 가졌으면 외식하는 서기관들, 더 직분 가지면 대제사장들 이런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기를 고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그분 모시고 닮아가는 이게 자기 고치는건데, 이것이 되어야 되지, 이게 성화고 우리 구원의 방향이고 목표고 목적입니다. 이거 되지 않는 신앙생활은 다 헛일입니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거짓말을 한번 하면 가책을 받다가 두 번 하면 가책이 덜하다 열 번쯤 거짓말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가책도 없어집니다. 도둑질도 한번 하고 나면은 처음 할때는 막 벌벌 떨리다가 몇 번 하고나면은 점점 괜찮아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담배 피고 술 먹는 것은 참 큰 일 날 일이지요. 그런데 한 번 먹고 두 번 먹고 자꾸 먹으면 나중에는 가책도 없어집니다. 주일 빼는 것도 그렇습니다. 주일도 한 번 빼고 두 번 빼면은, 아마 여기 어지간한 분들은 주일 빼면은, 저도 어릴때부터 주일날 과자 사먹는 것은 바로 지옥가는 것이고 죽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서부교회 오기전까지 주일날 1원짜리 동전 하나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한테 맞아죽습니다 그러면. 시골 교회 그때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서부교회 오니까 주일날 돈은 안 쓰는데, 과자는 안 사먹는데 버스 타는게 예사거든요. 그래 같이 휩쓸려 타고 다녔지요. 그런데 뒤에 설교를 들어보니까 주일날 버스 타는 것은 양떼를 전도하기 위해서 데려오는 것도 죄다. 안할 수 있으면 안하는게 제일 좋고 부득이 하게 하면은 그런 줄 알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해야 된다. 안 하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 그러고나서부터는 안 탔지요. 다른 죄는 또 많이 지을지라도. 그러니까 어쨌든 아는대로 우리는 회개하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약하면 또 기도하고 또 일어서고 힘을 써서, 이것이 외식을 다 뽑아내고 진실한 신앙 이게 주님이 마지막에 우리에게 찾아 가시고 원하시는 가장 귀한 보배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외식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고 일곱가지 외식을 하나 하나 우리에게 찾아서 고치도록 합시다.
마태복음 23:13-15
외식이란 것은,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이 외식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겉은 좋은데 속은 나쁜 것, 겉은 아름다운데 속은 흉한 것, 겉은 꾸몄는데 속은 꾸미지 않아서 제대로 던져둔 것, 또 겉은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사람들이 보이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고 또 가치로 여기고 그래서 사람들의 이목을 중시하여 사람들의 보기 좋고 듣기 좋고 사람들이 좋게 보는 그것은 주력을 하고 하나님이 보시는데 대해서는 별로 관심 없는 무관심한 것 이런 것들이 다 외식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중에서 여기 본문에, 일곱 가지를 말씀했는데 한번 더 생각해보면 첫째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 말씀하고 그다음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는 이 말씀하고 비슷한 그런 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면 천국 문이란 것이 무엇인가. 천국은 우리가 들어가고자 하는 곳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목표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천국 들어가는 것. 천국에 문이 있는데, 천국에 문이 있습니까? 천국에 문이 있습니까? 천국의 문은 어떻게 생겼는가요? 요즘은 문 모양도 워낙 많아서, 재료도 많고 형태도 많아서 네모로 된 문도 있고 동그란 문도 있고 또 여러 가지 빙빙 도는 그런 문도 있고 나무문도 있고 철문도 있고 유리문도 있고 별별 문이 많은데 천국의 문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혹시 보신 분이 계시는지요? 또 천국의 문은 그 재료가 무엇으로 되어있습니까? 여기 보니까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았다 그랬습니다. 닫으면 아주 못 여니까 번호 자물쇠로 잠궜는지, 특수키로 열어야 되는지, 그럼 여기 천국 문이라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거는 비유라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데 들어가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앞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지 않고 있으니까 그 다음 그 사람을 따라 줄에 섰는데 그 사람이 들어가야 순서대로 그 다음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데 앞에 사람이 딱 맞고 있으니까 뒤에 사람이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게 사람이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가고 사람이 막는다고 못 들어가고 그렇게 되는 게 맞습니까? 천국은 누가 보내는 겁니까?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천국 갈 수 있나요? 어떻게 하면 천국 갈 수 있나요?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 믿으면 예수님 공로로 택한 백성은 다 천국에 가는 겁니다. 그런데 천국 들어가는 문을 누가 막았다고 해서 예수 믿어도 못 들어간다 그런 수는 없는 거지요. 그런데 어쨌든 여기 본문에 보니까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한다고 말씀을 했으니까 그렇다면 이 성경은 틀림이 없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천국 보내는 사람을 누구든지 막을 자도 없는 것도 성경이고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정죄함이 없으면 천국 가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 본문에 보니까, 천국 문을 막아서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한다 그랬으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그 종류가 몇 종류라는 뜻입니까? 두 종류라는 말이 틀림 없는 거지요. 이런 깨달음을 두고 이 시대 최고의 깨달음이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이런 깨달음이 없으면 이런 성경은 결코 해석을 못합니다. 오늘 찬송에, 김선생님이 사랑을 말씀하셨는데 그 사랑의 정의를 바로 깨닫지 못하면 성경 속에도 수많은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이 뭐냐? 요한1서 4장에 말씀하신 그 사랑,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성경 속에 수많은 사랑을 해석을 못합니다. 온 세상 천지 사랑을 외치는데 가장 사랑을 많이 외치는 곳이 교횐데, 그 사랑을 많이 외치는 교회들이 타락을 이끌고 있으니까 문제 아니겠습니까? 교회가 연애당이 된지는 오래됐고, 그 사랑을 외치는 교회들이 타락을 하니까 문제입니다. 그 교회들이 사랑을 여기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건데, 그 하나님의 사랑의 정체가 뭐냐? 사랑을 다른 말로 바꾸면 뭐라 그럽니까? 사랑은 구원이고, 사랑은 대속입니다. 그 대속은 사죄, 칭의, 화친, 소망입니다. 사람의 죄를 없게 해주는, 그 죄는 도덕이 아니고 세상 법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게 만드는,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들어주는게 사랑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따라 행하도록 만들어주는게 사랑이고 하나님을 알려 깨달아 알게 하고 그 분을 찾고 만나고 모시고 그 분 닮아가게 하는게 사랑이고 영원한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는게 사랑인데, 이것을 모르니까 말만 사랑이지 실제 사랑은 남자 여자 서로 사랑해야지, 남학생 여학생이 서로 사랑을 해야지, 처녀 총각이 서로 사랑해야지 그래서 교회 오빠니 누나니 하는 더러운 말들이 생기는 겁니다. 아주 지저분한 말들이. 참 대마귀의 말인데, 큰 문제입니다. 알아야 되는데.
그래서 천국에 보니까 천국은 예수 믿으면 택한 백성이면 누구나 가는 겁니다. 이거는 아무도 못 막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막아도 못 막는데, 막히지 않는데 여기 보니까 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못 들어가게 한다 그랬으니까 이 천국은 기본 구원 천국, 하나님이 보내시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행위 여하에 따라서 들어가는 그 천국을 말하는 것이니까 건설구원에 대한 것이다 그말입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주노니 네가 땅에서 메면 천국에서도 메이고 네가 풀면 천국에서 풀린다, 천국 들어가는 열쇠가 베드로한테 있는데 그거는 건설구원의 면을 말하는 것이지 기본구원의 천국 열쇠를 베드로가 받았다면, 베드로가 뭐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이라 말인데,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그 다음 막바로 사탄이 됐는데 베드로가. 말이 안 맞지요. 여기 말씀하신 막는다 말은, 인간이 행위적으로 들어갈 천국을 못 들어가게 막는다, 이거는 얼마든지 막히는 겁니다. 막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기본구원을 받아 천국 가는데 우리 행위적으로 건설구원적으로 천국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목표고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모시고 닮아가는 그게 천국 가는 모든 과정들이고 요소들입니다. 그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데, 천국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들어가고 싶은 사람, 천국 들어가고 싶은 사람 이 사람은 기본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입니다. 알든 모르든 천국에 들어가야 되겠는데 그말은 다시 말하면 건설구원을 잘 이루어가야겠는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을 순종해서 자기를 하나씩 둘씩 고치고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모시고 닮아가는 이런 생활을 해야 되겠는데 앞에 섰는 사람이 누구냐? 그 사람이 누굽니까? 인도자입니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목사들입니다 예를 들면. 앞에 목사가 설교할 때 이걸 말을 해야 알지요? 목사가 천국 가는 그런 깨달음을 가지고 그런 행위를 하고 그걸 알고 그렇게 하면 그 말을 할 수 있는데 이걸 모르니까 말도 안하지요. 보니까 목사가 돈만 챙기고 교권이나 챙기고 명예나 챙기고 이런 것만 챙기고 앉았으면, 겉은 안 그러지요. 문제는 속입니다. 지금 말씀하신게 전부 외식은 겉은 번들번들한 겁니다. 아주 머리에 기름도 바르고 인물도 훤하고 옷도 깔끔하게 입고, 제가 우리 총공회 어느 목사님을 한분 봤는데 그 분은 저하고 친하지는 않은데 앞면은 있고 잘 아는 분입니다. 지금 제법 큰 교회 목사님인데 그분이 언제 장례식때 한번 왔는데 보니까 제 느낌에 ‘아, 이 분은 무게가지고 목회하는 분이구나.’ 설교를 들어봐도 기도 봐도 속에 내용은 거의 없는, 총공회 백목사님께 오래전부터 배운 목사님인데도 들어보니까 진리도 별로 없고 영감도 별로 없고 그냥 그만그만한 목사님인데 보니까 무게를 얼마나 잡던지 무거워서 저같은 사람 백명을 얹어놔도 안될만큼 그렇게 말과 행동을 얼마나 무겁게 하던지 옆에 보니까 그 무게에 눌러서 그렇게 교인들이 따라가는. 이분은 무게 가지고 목회하는 분이구나 느낌이 딱 들만큼 그런 분이였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로 보면은 옷도 잘 입었지요 벗틀도 좋지요 말도 신중하지요 무겁게 하지요 아주 걸음 천천히 겉지요 그러니까 뭐가 속에 꽉 들어있는 것 같은데 속에 들어가보면은 그런 분이면 속이 무거우니까 진리와 영감과 하나님의 권능이 꽉 차서 한마디 한마디 말에서 교인들이 팍팍 녹고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데, 들어보니까 속은 별로 무게에 비해서 그만큼 많이 안되더라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껍데기는 나무랄게 없습니다. 너무 지나쳐 탈이고 너무 잘해서 탈입니다. 속이 비었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건설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대로 주어진 그 현실 현실마다 그 현실들에 해당된 말씀을 깨닫고 그 깨달음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게 자기 진리고 그대로 순종하면 겨자씨 믿음이고 자기 고쳐지는게 되는데, 그것 하나씩 하나씩 쌓여지면 자기 고쳐지고 고쳐진만큼 하나님을 만나서 동행을 하고 닮아가는 것이 되는건데, 설교하는데 이거는 속에 없고 말은 잘하는데 말속에 자기 행함과 변화가 없으니까 말 속에 능력이 나오지를 않는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따라가고 싶어도 앞에 탁 맞고 있으니까 교인들이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알지만은 앞에서 가지 않으니까, 안간다 말은 그 앞에 있는 인도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그런 생활을 안하니까 말씀을 깨닫고 말씀대로 사는 노력과 자기 변화가 없는 그 상태로 서있으니까 교인들이 천국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간다 그말입니다. 교회적으로 말하면 목사고, 주일학교반으로 말하면 반사 선생님이 앞에서 천국에 들어가야 줄줄이 양떼들이 따라서 천국에 들어가는데 반사선생님이 앞에 딱 맞고 있으니까 학생들이 못 들어가고, 구역장 집사님이 앞에 딱 맞고 있으니까 식구들이 못 들어가고, 가정의 선지자된 사람이 앞에 막고 있으니까 식구들이 못 들어간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말씀하신 천국은 우리의 행위적인 천국, 건설구원적인 천국, 우리 성화적인 그런 천국을 말씀하는 것이고, 앞선 사람이 그렇게 하지를 않으니까 몰라서 안하든, 알고도 안하든 안하고 있으니까 그 사람에게 속한 사람들은 못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로 알아서 깨달음을 바로 가지니까 내가 너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 받았으니까, 그런데 베드로만 받았습니까? 천주교는 베드로만 받았기 때문에 베드로 통해서만 천국 들어간다 그러는데, 베드로만 받았습니까? 저도 받았는데요? 천국 열쇠 안 받은 분 계십니까? 다 받았지요, 우리가. 받았으니까 열고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내가 들어가면 내게 속한 사람 다 따라 들어오는 것이고. 그런데 닫고, 막고, 자기도 안 들어가고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도 못 들어간다 그말입니다. 행위적으로 생활적으로 우리의 심신의 언행심사 활동적으로 이게 천국 문을 막고 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외부로 드러나게 막는 것도 있고, 또 드러나지 않는데도 막는게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그래서 이게 외식인데, 드러나는 잘못된 것은 조금 설명하면 되고 또 오해를 풀면 되고 그리 될 수 있는데 드러나지 않는 잘못된 것은 이거는 하나님과 자기 관계기 때문에 이거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이게 가장 어렵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 문을 막는데,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면은 천국 문을 막고 있지 않습니다. 잘 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속에 들어가보면 천국 문을 막고 있거든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무슨 말씀인지 좀 추상적이고 어렵습니까? 설교하면 설교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은혜 받으면 피곤이 다 풀리지요. 이상하게 피곤도 풀립니다. 그러면서 마음이 한편으로 짐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해결이 되니까 평안하게 되고, 그러면서 마음 속에 가책을 느끼는 동시에 소망도 느끼고 각오와 결심도 생겨지고 힘도 받고 이렇게 되어지는건데, 설교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하니까 말은 전하는데 이게 없다 그말이지요. 이게 없으니까 막히는 거지요. 하나님의 능력이 안나가니까 막혀있으니까 자기도 못 들어가는 것이고 들어가고자 하는 교인들도 못 들어간다 그말입니다. 경험을 해보신분들은 서로 통하겠지요.
그다음 두 번째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얻으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교인을 얻는 것은 천국 백성을 찾는 겁니다. 천국 백성을 삼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이 택해놓으신 천국 백성을 찾아서 인도하는게 교인 하나를 얻는 것이고 전도하는 것인데, 얼마나 많이 노력을 합니까? 노력을 하는데, 그 하나님 백성을 찾아가지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천국 백성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잘 이끌어 인도를 해야 되겠는데 교회 데려다놓고난 다음에는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 그랬으니까 지옥 자식이라 말은, 마귀 자식이라 말이지요. 마귀 자식이라 말은 하나님의 아들과는 정반대라 그말이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마귀자식이다. 그런데 너희보다 배나 더 그랬으니까, 그러면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로 두루 다니는 그들이 지금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입니까, 지옥 자식이라 말입니까?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서 바다와 육지를 온 사방 천지를 돌아다니며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구원 받읍시다.’ 심방하고 전도하고 막 돌아다니는데, 전도지 수백장 수천장 수만장 전하고 수 백집을 돌아다니고 수천집을 돌아다니고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없는 노력을 해서 한사람을 전도해서 교회로 데려다놓고, 그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그랬으니까 그 사람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라 그랬으니까 지금 이 사람을 인도해서 데려놓은 이 서기관 바리새인은 천국 백성입니까, 지옥 자식입니까? 성경을 그대로 풀면 뭐라 말입니까? 지옥 자식이라는 말 아닙니까? 그 사람들은 하나 지옥 자식인데 데려다놓은 사람들은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된다 그랬으니까 이들이 지금 지옥자식이라는 그 뜻 아닙니까? 지옥 자식이니까 지옥에 마귀 아들이 전도하고, 마귀가 심방하고 그말이 되지요. 그러니까 마귀에 속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데려다놓고 난 다음에는 자기가 마귀에 속한 사람이 된 것보다 배나 더 마귀 속한 사람을 만든다, 이해가 쉽게 안되지요? 어떻게 이해가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 사람들이 왜 마귀에 속한 사람들이 되었는가. 세례요한이 그랬습니까? 독사의 새끼들아 그랬지요. 독사의 자식들아. 독사의 자식이니까 독사는 뱀 아닙니까? 해석이 이렇게 나가도 될지 모르겠는데. 뱀이고, 뱀 중에서 독을 가진게 독사니까, 뱀은 성경에 마귀겠지요. 마귀 중에서 독한 마귀니까 독사겠지요. 그 마귀에 속한 사람들이니까 독사의 새끼들아 그랬지요. 자식들아.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인데, 그럼 이 사람들이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고 율법을 붙들고 율법을 외치며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마귀의 지옥의 자식이 될 수 있는가. 그 속에 하나님이 없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은 바로 지옥입니다. 이 세상은 말하자면은 천국과 지옥이 섞여있지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천국도 있고 지옥도 있는데 모형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곳이 있으면 그 곳이 세상이지만 천국이고, 그 천국은 지상에 있지만은 그래서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제한받는 그런 천국일지라도 그 속성은, 성격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천국은, 성화라는 말은 하나님 형상으로 변화된게 성화인데, 영화라는 말은 그 성화가 무궁세계로 가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상태를 영화라 그러니까 성격은 같은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천국은 그 천국이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는다는 그거지, 그 천국의 평안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 감사 영광은 무궁 세계와 분량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성격이고 같은 종류라 그말입니다. 이 세상의 천국이 무궁세계 천국과 같은 종류입니다 속성이. 다만 시간과 공간과 제한 그 정도는 다를지라도. 지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지옥은 영원한 지옥, 그 지옥은 아닐지라도 이 세상에 지옥도 하나님 없는 곳이면 거기가 전부 하나님이 없으면 마귀가 왕이 되는데 그 마귀가 왕이 되는 그것이 겉으로 나타날때는 누가 왕입니까? 마귀가 왕이 된 그 상태를 가리켜서 뭐라 그럽니까? 마귀가 왕이된 그 상태를 가리켜서 교리적으로 뭐라고 표현합니까? 그걸 악이라 그럽니다, 악. 그 마귀가 왕이 된게 바로 악이고 그게 열매를 맺어가지고 뻗어나온게 인간 자기중심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은 전부 인간 자기 중심, 자기가 왕이 된 곳이고 자기가 왕이 된 곳은 그게 표시가 안날뿐이지 속에 들어가보면 전부 지옥입니다. 정도차이지, 하나님이 없는 곳. 그러니까 이들이 하나님 없는 상태로 율법 붙들고 아무리 지켜도, 아무리 전도하고 심방해서 교인들을 챙긴다 할지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이 없고 제가 왕이 되어있는 상태고, 그런 상태에서 교인들을 자기와 같은 사람 만드는데 제가 하나 왕이면 교인들은 왕이 두 배나 되고, 더 한 자기 중심과 세상 중심의 그런 사람들을 만든다 그말입니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된다. 자기보다 배나 더 자기 중심, 자기보다 배나 더 세상 중심의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나간다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잘 아는대로, 어머니가, 어머니보다 이거는 교훈이니까, 나는 바담 뿡 해도 너는 바람 풍해라 그말이 안되지 않습니까. 나는 바담뿡 하지만은 너는 바람 풍해라. 나오는 그대로. 앞선 스승이 어떤 사고 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교훈하느냐에 따라서 따라가는 그 밑에 사람들은 그대로 될 수 밖에 없고 그게 세월이 지나가면 더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요? 반대로 말하면, 백목사님의 교훈을 우리가 받았으면 백목사님 교훈 곱하기, 우리 충성의 정도에 따라 더 깊은 깨달음을 가지면은 백목사님보다 더한 성자가 될 수 있다는게 논리적으로 성립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백목사님은 칼빈보다 더 위대하다 할 수 있습니다. 들어가보면, 교리적으로. 성화정도는 모르겠지만은. 성화도 모자르진 않지 않을까. 그러니까 악도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고, 배나 더 천국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면은 반대로 되는 그런 것도 있지만은. 그래서 첫째는 천국 문을 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막는다. 여기 천국 문이라는게 어떤 건지 알아야 됩니다. 이거는 기본구원면이 아니고,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들어가고 못 들어가는. 범죄한 심신의 기능이 천국 갑니까? 죄 지은 요소가 천국 가서 되겠습니까? 죄라는 것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서 죄 하나 지으면 그 죄가 점점 퍼지고 커지고 많아지고 독해지는데 하나 천국 들어가면 천국이 지옥이 되는데 되겠습니까? 먼지만한 것도 못 들어가지요. 그런데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천국 문에 못 들어간다는 것은 앞선 사람이 이런 사실을 깨닫고 죄를 안 지어야,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나님과 동행을 해야 그래야 들어가는데 이 사람이 그걸 안하니까 뒤에 사람은 못 들어가는 거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껍데기 모습은 율법으로서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사울만 그랬던게 아닙니다. 사울은 그때 바울되기 전에 표준은 여기 기록된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사울이 표준입니다, 표본입니다. 말하자면 변화되기전 사울의 표본. 그들처럼 사울도 되기를 원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달려갔습니다. 달려가다가 주님 만난 거지요. 그러니까 사울도 율법의 의로 흠이 없었고 이 당시 많은 서기관들 바리새인들 대제사장들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나님 말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주일을 너무 너무 잘 지켰고. 지금 이 시대에 이 당시 서기관 바리새인들처럼 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총공회 속한 교회들이고 교인들입니다. 그 외에 사람들은 이런 것조차 모르니까 더 나가있고. 가장 높은, 그래서 가장 잘 바른 세계최고의 교리 신조 행정을 가졌다는 총공회 교인들이, 그래서 다른 교단이 주일 바로 못 지키는 것 비판하고, ‘그게 주일 지키는건가? 그게 믿는 것인가? 그게 예수 믿는 것인가?’ 그렇게 비판하고 ‘예수 믿는 교리를 아는가? 신조를 아는가? 방법을 아는가?’ 그렇게 비판을 하는데 우리는 철저하게 주일을 지키는데, 성경을 수도없이 읽는데, 기도를 많이 하는데, 열심히 심방정도 하는데, 연보도 하는데, 신앙생활하는 것 같은데 뭐가 없으면 안된다고요? 그 속에 자기를 하나씩 말씀으로 고쳐나가는 실제 하나씩 고쳐나가서 변화되는 것이 없으면 우리가 바로 이들과 같은 겁니다. 이 말씀은 바로 이 시대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가장 적용 되는 것. 그러기 때문에 알고보면 다른 사람은 말할게 없습니다. 하다보니까 그렇게 말나오지만은, 다른 교단 교회를 비판할게 없고 말할게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큰 문제지요. 천국 문을 막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사람도 못 들어간다. 교인 하나 얻기 위해서 온 사방 천지 돌아다니다가 얻으면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된다, 그게 바로 그 사람 자신이 자기 중심과 세상 주의가 되어있는 상태에서 그리 하니까, 그러니까 그런 교훈 받으니까 더 배나 그런 사람이 된다 그말이지요.
그다음 세 번째는,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도다’ 그말은 비중을 따지는 겁니다. 성전이 크냐, 성전에 있는 금이 크냐? 금이 크지요, 뭐. 금은 돈이 얼만데. 성전은 팔아먹을 수도 없는 건데. 제단이 크냐, 제단 위에 예물이 크냐. 성전이 크냐, 하나님이 크냐. 알고보면은 성전과 안에 있는 금, 금은 거룩한 걸 말한다면은, 성전 안에 있는 금이기 때문에 성물이 되는 것이고, 성전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금이 거룩한 금이 되는 것이고 가치있는 것이 되는 것인데, 그 금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전에는 가치를 두지 아니하고 성전보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팔아먹으면 비싸게 알아주는 금덩어리는 가치로 여기고, 제단이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제물 바치는 그 제단인데, 그 제단에 얹어놨기 때문에 예물이 가치가 있는 것인데, 예물보다는 제단이 비교 못할만큼 그래서 그 올려진 예물은 올려지면 예물이고 안 올려지면 별 볼일 없는 건데 그 예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은 올려놓는 예물마다 예를 들면은 항상 거룩하게 만드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그런게 제단이고 성전이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것이 금이고 예물인데, 성전이란 것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집은 그 성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사람들의 가치관은 가치의 비중을 따져볼때 하나님보다는 성전이 크고 화려하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실 때 제자들도 말하기를 이 성전에 돌들과 건물이 어떠합니까? 심히 화려하지 않습니까? 몇 년 걸렸답니까, 예루살렘 성전 짓는데? 오래 걸렸지요 아마. 몇십년이요? 오래 걸렸을 겁니다 아마. 오래 걸려놓으니까 화려하고 크고 돌도 어마어마하게 잘 지어놨습니다. 그 자랑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모든 걸 보지 못하냐. 때가 이르면 이 돌들이 다 무너져서 돌 하나도 포개지 않고 몽땅 다 무너질 것이다’. 하나님 떠난 성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전이 하나님 떠나니까 그 안에서 돈 팔아먹고 짐승 팔아먹고 매매하다가 예수님께서 다 뒤집어엎고 채찍으로 휘둘러서 다 쫓아내고 그랬지 않습니까. 내 집은 무슨 집이라고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그랬는데, 그들이 뭘 만들었습니까?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은 뭡니까? 강도의 굴입니다, 강도의 소굴. 너희들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구나. 하나님 떠난 성전은 강도의 소굴입니다. 도둑놈도 소굴이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셔야 성전이 가치가 있는건데, 하나님은 가치두지 않고 성전에, 예물을 거룩하게 만드는 제단은 가치두지 않고 예물에, 성전은 가치두지 않고 성전을 거룩하게 만드는 금덩어리에, 그러니까 가치의 비중을 어디 두느냐 그말이지요. 사람들이 보고. 하나님께 가치두지 아니하고 사람들에게 가치두고 눈에 보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껍데기 보이는 것에 가치두고 그 비중을 크게 여기지 보이지 않는 속을 살피는 것은 없는 이런 상태가 바로 세 번째 말씀하신 맹세,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의지해서 성전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되고. 왜? 성전은 별 볼 일 없는 것이니까. 그런데 금덩어리 맹세하면 금덩어리 비싼 것이니까 지켜야 되고. 금덩어리는 담보로 잡아주고 성전은 담보로 안 잡아준다 그말이지요. 제단으로 맹세하면 별 볼 일 없고 안 지켜도 되고, 제단 위 예물로 맹세하면 지켜야 되고. 성전은 크니까 그걸로 담보 잡히면 지켜야 되고 하나님이야 까짓껏 보이지 않는 데 지켜도 안 지켜도 상관없고 그러니 외식 아니겠습니까. 가치의 비중을 어디 두느냐? 다 그랬습니다.
네 번째는, 십일조입니다. 박하, 회향, 근채 식물이지요. 식물인데 우리가 이름을 들으니까 박하, 회향, 근채라고 아주 비싸고 소중한 것 같은데 그 당시로 말하면 일반적으로 가장 흔한 그런 종류의 식물들인데, 재건파들은 밥 먹는 것도 밥 한공기를 먹어서 밥 떡을 먹을때마다 십일조를, 밥 숟가락이 스무숟가락이면 몇 숟가락 떠놔야 됩니까? 두 숟가락. 또 콩나물 열 젓가락이면 콩나물 십일조 한 젓가락, 또 시금치 나물 열 젓가락이면 시금치 나물 한 젓가락, 그 당시에 실제 십일조 그렇게 뗐답니다. 그렇게 떼다보니까 엉망이 되거든요? 그리고 길가다가 절에 들어가서 부처 보면 때려 부숴버리고, 조상 단지는 깨어버리고, 우상 섬기는 것 가서 뒤집어 엎어버리고. 그래서 재건파에 머리되는 최덕지 선생님 그분이 감옥 갔을때, 우리가 존경하는 한상도 목사님, 주남선 목사님 이런 분들은 아마 황거요배, 동방요배는 했다 그러지요? 주남선 목사님은 잘 모르겠는데, 출옥 성도중에서 황거요배는, 황거, 일본 천황이 거하는 동방 동쪽을 향해서 절하는 겁니다. 할 때, 왜 절했답니까? 동방요배 황거요배는 그 성자들이, 신사참배는 목숨 걸고 반대한 분들이 황거요배는 크게 거리끼지않고 했답니다. 왜 했답니까? 천황은 살아있으니까. 살아있으니까 해도 된다. 그런데 알고보니까 살아있지만은 여기서 하는 걸 까마득히 모르는 거니까 그 살아있는 사람을 그 사람 이상으로 신격화 시키니까 2계명 어기는 우상이 되는건데, 이걸 모르니까 했다 그말이죠. 그런데 최덕지 선생님은 재건파 머리되는 여성도입니다. 그분은 안했습니다. 그래서 신사참배 안하고 황거요배 한 사람은 그냥 있었는데, 황거요배까지 안한 사람들은 감옥 안에서 포승줄로 뒤로 손발을 묶어놓고 밥을 먹여도 그냥 접시에 담아서 개처럼 핥아먹도록 그렇게 만들었답니다.그래서 손이 썩어서 구더기가 생기고. 그렇게까지 강하게 이겨낸 사람이 최덕지 선생입니다. 그렇게 만든 재건파. 그런데 그분이 여성이거든요. 안타깝게.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은. 그분이 머리가 돼서 만든 게 재건파인데, 안타깝게 치우쳤습니다. 그래서 해방후에 재건파 교인들이 출옥 성도 많은 고신파 교인들보고도 타락했다 그래서 아예 상종도 안 했답니다. 처음에는 고신 사람들도 재건파 그분들을 존경을 해서, 그렇게까지 이겼으니까 존경했는데 보니까 상종도 안하고 절교해버리고, ‘너희는 마귀 자식들, 마귀당이라’ 그래가지고 다 끊어버리니까 뭔가 이상하다 그랬는데 시간 지나고보니까 재건파는 흐지부지. 지금 교회있긴 있어도 별로 힘을 못 쓰지요. 교리가 없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재독을 왜 하느냐? 교리, 신조, 행정을 왜 지키느냐? 비디오 재독을 하기 위해서. 이런 사고방식 가지면 재건파처럼 나가는 겁니다. 비디오 재독을 왜 하느냐? 교리 신조 행정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되야지요. 교리 신조 행정을 왜 지켜야 되느냐? 나의 구원을 위해서. 그게 없으면 구원이 안되니까. 신앙 노선이니까. 가치를 어디 두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다음 십일조. 십일조의 의미가 뭐냐? 십일조라 말은, 십분지 일을 떼는데 그것은, 참 이런 것도 그 한마디 한마디 교훈이 얼마나 귀한지. 오래 믿어도 몰랐지요. 백목사님 말씀 듣기 전에는. 나와 내게 있는 전부다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로 떼는게 십일조다. 들어가서 보니까 선악과하고 똑같습니다. 선악과를 하나님께서 왜 만들어놨는가? 하필이면 동산중에 가장 잘 보이는데에, 다 그냥 먹게 하지. 선악과 볼때마다 너는 뭐라 말입니까? ‘피조물이다. 너는 하나님이 아니다. 너는 피조물이다. 너는 최고 머리가 아니다 그말이지요. 니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 선악과 볼때마다 그걸 보라는 겁니다. 알고, 그걸 따먹는 순간 제가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이 선과 악의 정의를 구별짓는 선악과고, 먹는 순간 제가 하나님이 됐기 때문에 악이 된 것이고, 모든 죄악의 근본이 악이고 에덴동산에 쫓겨난 겁니다. 영원한 멸망이 된 것이고. 그게 선악과고, 그와 같은 종류로 내려온게 십일조입니다. 나와 내게 있는 전부는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를 똑 떼먹는 순간 뭡니까? 선악과하고 똑같습니다. 그게 물질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바로 선악과 따먹는 죄와 같은 겁니다. 이게 모르니까 신앙에 따라서 일일이 개인적으로 말 못해도 원리가 그런 겁니다. 무서운 거지요. 그런데 그 십일조를 그래서 꼬박꼬박 잘 바칩니다 이 사람들이.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십일조를 꼬박 꼬박 바칩니다. 바치는데, 문제는 그 십일조는 의미가 그렇게 들어있는데 표시입니다, 상징입니다. 하나의 표시. 나와 내게 있는 전부는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 십일조를 하면서 이 표를 하고 이 사실을 아는 동시에 나는 전부, 나도 내 전부도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야 된다 그래서 내 속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나는 살아있지만은 죽은 자 같은 산제물로 바쳐져서 나는 살아있으나 내가 사는 건 전부 주로 인하여 사는, 주님이 내 속에 주인이 되셔서 말도 행동도 모든 사리판단도, 비판 평가 처리도 생활도 전부 하나님에게 붙들려 사는 이런 사람이 되는게 이게 십일조를 내는 목적이고 목표고 이런 사람이 되겠다는 표시로 내는 것인데, 이게 산제물이고 이것이 율법의 목적인데 이거는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자기를 하나님에게 바쳐서 하나님이 내 주인이 되고 나는 산제물이 되어 살겠다는 이거는 없고, 그냥 십일조만 꼬박 꼬박 바치는 겁니다. 그래서 그걸 가리켜서 외식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킨다. 그말은 작은 죄는 아주 구별해서, 오전에 예를 들기를 혐오스럽게 했는데, 국을 끓여서, 그래야 기억이 남겠지요 뭐. 하루살이는 위에 파리가 떨어지니까 파리는 젓가락으로 집어냈는데, 그 국 속에는 쥐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쥐는 맛있게 먹고 있거든요? 그러면 되겠습니까? 파리 떨어진거는 젓가락 꼭 집어내서 건져내고, 그 속에 병균이 우글우글한 쥐는 맛있다고 뜯어먹으면 정상이 아니지요 그거는. 십일조는 꼬박꼬박 냅니다. 그런데 그 속에 십일조가 원하는 본목적이 되는 율법에 더 원하는바, 더 율법에 더 중한바 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의, 인, 인간을 사랑하는 자비 인, 신, 하나님 향한 믿음, 의와 인과 신을 가지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고쳐 변화시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율법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가야 되는데 이거는 이들에게 도무지 없습니다. 없고 껍데기만 하고 있기 때문에 외식이고, 진짜 중한 것은 다 빼먹고 보잘 것 없는 것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라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큰 죄는 무엇이 가장 큰 죈가? 바로 이런 종류인데, 왜 이 외식이 왜 이렇게 무서운 죄냐 하면, 세리는, 바리새인은 소득의 십일조 드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토색 불의 간음도 행하지 않고 잘 했습니다. 기도하는 세리는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 기도 할때 감히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지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면서 말하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기 죄가 깨달아지니까 가슴을 쳤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 세리가 율법 잘 지킨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그랬으니 어느면을 두고 하는 겁니까? 그 바리새인 속에는 뭐가 없습니까? 그 속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십일조 할 수 있고, 하나님 없이도 율법 다 지킬 수 있고. 그래서 목사가 설교하는데, 마귀가 설교한다는 말을 설교록에 보면 여러번 나옵니다. 마귀가 되어서도 설교할 수 있다. 심방 전도 기도할 수 있고 다 한다는 겁니다. 유창하게 한다는 겁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래서 도둑질 하는 것 나쁘지요. 사람을 미워하는 것 살인죄지요, 거짓말 하는 것도 구원의 손해이니 큰 죄입니다. 또 많은 종류의 죄 많잖습니까? 그런데 가장 큰 죄는, 이웃의 소유를 탐 내는 것 거짓 증거 하는 것, 도둑질 하는 것 간음하는 것, 부모에게 살인하는 것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 이런 죄도 큰 죄들입니다. 주일 어기는 것도 큰 죄고, 그런데 가장 큰 죄는 1계명입니다. 2계명부터 10계명까지 아홉가지 모든 계명의 무게하고 1계명 비중을 따지면 1계명이 비교 못할만큼 무겁지요. 나머지 아홉가지 계명은 1계명 속에 다 들어있는 것이라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1계명을 정상으로 지키면 나머지는 다 지키는게 정상입니다. 그게 가장 큰 계명이고 전부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하나님을 네 앞에 두지 말아라, 하나님을 바로 찾아 모신 그게 신앙이고 그게 구원이고 그게 전부입니다. 이거는 없고, 도둑질 하지 마라 사랑해라 거짓말하지 마라 백날 해봐야 그런거는 하루살이입니다. 하나님을 모셔야 되는데 하나님 모시는 거는 잊어먹었으니까 약대는 삼키는 거지요. 그게 가장 큰 것인데. 기독교의 중심이 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다음 다섯 번째,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 그러면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한다. 그런데 그 속에는 잔, 찻잔이든지 물잔이든지, 대접 국그릇이든 밥그릇이든 그릇이지요. 잔과 대접이니까 그 안에 뭐가 있어야 됩니까? 잔이면은 차가 들었던지 물이 들었던지 대접이면 국이 들었던지 밥이 들었던지 해야 되는데 안에 보니까 뭐가 들었다고요? 그 안에는 뭐가 들었습니까? 탐욕과 방탕입니다. 탐욕과 방탕은 어디 들어있습니까? 탐욕과 방탕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사람의 마음이지요. 마음 속에 있는 것이고, 잔과 대접은요? 사람의 겉으로 나타나는 행동이겠지요. 몸에서 나오는 행동.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그 사람의 몸으로 행하는 말, 행동, 조심 조심 걸음걸이, 자기 모든 대하는 이런 것, 그래서 겉으로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하는. 그래서 1부터 읽어보니까 저희는 자기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하고, 하나님 말씀을 적어서 상자 안에 넣어놓고 이마에도 탁 차고 구약 성경 말씀대로 손목에도 매고 옷술을 크게 하고 걸음걸이는 팔자걸음을 걸었는지 아니면 무겁게 걸었는지 그렇게 걷고. 또 시장에서 문안 받고 잔치에 상석앉고 선생님 소리 받는 것 좋아하고. 자기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기도하면 사거리 길에 서서 큰소리로 기도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따라서 신앙생활하는 겁니다. 믿음 생활을. 하나님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겉은, 껍데기 신앙생활 껍데기 계명 지키는 생활 이런 종교 의식적인 생활은 훌륭합니다. 깨끗하고 흠이 없고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들어가보니까 탐욕, 온갖 종류의 세상 욕심, 방탕, 마음을 주인없이 풀어나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것, 매인데 없이 마음이 그냥 엉망이 되는. 그래서 마음 속에 들어가보니까 하나님의 성령의 소욕이 아닌 인간의 온갖 종류의 육신의 정욕이 가득 차고. 이 세상을 향한. 그리고 마음이 움직이는 전부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조심이라곤 전혀 없는 그런 것이 가득하다. 하나님이 없으면 이렇게 되는 거지요. 그리 된다.
그다음, 여섯 번째 회칠한 무덤이 나옵니다, 회칠한 무덤. 저는 회를 칠한다 그래서 회만 그런 줄 알았는데 ‘회칠’이라는 말 자체가 한자입니다. 회칠, 석회를 바른다 그런 뜻이랍니다. 석회, 석회 아시지요? 하얀 분말가루 된 것, 벽 같은데 바르는 하얀 색. 그걸 발라놓으면 요즘은 이런 걸 잘 안쓰는데, 옛날에는, 특히 이 지방에는 건물을 만들면 석회를 발라서 하얗게 깨끗하게 꾸미는데, 회칠한 무덤이니까 겉은 석회를 발라서 하얗게 깨끗한데 속에 들어가보면 무덤이니까 뭐가 있습니까? 죽은 사람의 뼈와 냄새나는 벌레들, 병균들이 우글우글 하겠지요. 이런 모양이 이들의 신앙 모습이었습니다. 껍데기 회칠한 무덤이라, 외부적인 그런. 겉으로 나타나는 그들의 종교의식이라든지 모든 행사 이런거는 훌륭합니다. 모든 제도나 조직이나 교회 안에 법이나 말이나 행동이나 행사나 이런 거는 참 사랑이고 긍휼이고 자비고 그렇게 다 하는데 그 속에 사상과 사고방식과 가치관 속에 들어가니까 죽은 사람의 뼈, 죽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을 성경에 죽은 사람이라 그럽니까? 하나님 없는 사람, 하나님 없는 사람, 하나님과 끊어진 사람, 그런데 죽어서 썩었으니까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하나님과 완전히 끊어져서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그런 상태가 된 그런 신앙의 모습. 이런 모습으로 교회들, 믿는 사람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선지자, 이거는 지나간 선지자,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니까, 과거에 지나간 종들의 비석과 무덤은 쌓고 꾸미면서 현재 있는 예수님은 배반하고 죽이고 있으니까 이걸 좀 생각해보면, 과거에 대해서는 항상 후회하고 탄식을 하고 눈물 흘리면서 막상 현재 자기에게 깨달아지는 주님의 그 말씀은 배척을 하고 있다 말이지요. 과거 탄식만 하고 있지, 미래 대해서는 각오 결심만 하고 있고. 현재 지킬 하나님 말씀은 다 지키지 않고 메시야 못 박아 죽이듯이 그리 하고 있다. 이렇게 일곱가지를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 하나를 좀 생각해보면서 이게 전부 외식의 실제 모습인데, 우리 모든 종류의 외식을 다 생각하면 이 속에 다 들어간다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하나 하나를 생각해보고 우리 속에 있는 외식을 뽑아서, 아마 이 복음을 배운 대다수의 분들은 스스로 외식하기를 원치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외식하는 수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은, 이 시대 바리새인들은 바로 우리 총공회 교인들이 되기가 가장 쉽습니다. 왜? 모든 교계에서 총공회 백파 교인들은 잘 믿는다고 자타가 공식으로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총공회 간판, 총공회 소속 교인이라 그러면 달리 쳐다봅니다. ‘아, 성경대로 열심히 잘 믿는 분들.’ 그리 압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으면 다행인데, 복이 큰데, 그렇게 인식도 되고 알고 있는데 우리 실제 모습이 그리 되지 못하면 바로 외식하는 바리새인이고 거기서 직분 가졌으면 외식하는 서기관들, 더 직분 가지면 대제사장들 이런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기를 고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그분 모시고 닮아가는 이게 자기 고치는건데, 이것이 되어야 되지, 이게 성화고 우리 구원의 방향이고 목표고 목적입니다. 이거 되지 않는 신앙생활은 다 헛일입니다. 하면 할수록 오히려 거짓말을 한번 하면 가책을 받다가 두 번 하면 가책이 덜하다 열 번쯤 거짓말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가책도 없어집니다. 도둑질도 한번 하고 나면은 처음 할때는 막 벌벌 떨리다가 몇 번 하고나면은 점점 괜찮아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담배 피고 술 먹는 것은 참 큰 일 날 일이지요. 그런데 한 번 먹고 두 번 먹고 자꾸 먹으면 나중에는 가책도 없어집니다. 주일 빼는 것도 그렇습니다. 주일도 한 번 빼고 두 번 빼면은, 아마 여기 어지간한 분들은 주일 빼면은, 저도 어릴때부터 주일날 과자 사먹는 것은 바로 지옥가는 것이고 죽는 것인줄 알았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서부교회 오기전까지 주일날 1원짜리 동전 하나 써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한테 맞아죽습니다 그러면. 시골 교회 그때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서부교회 오니까 주일날 돈은 안 쓰는데, 과자는 안 사먹는데 버스 타는게 예사거든요. 그래 같이 휩쓸려 타고 다녔지요. 그런데 뒤에 설교를 들어보니까 주일날 버스 타는 것은 양떼를 전도하기 위해서 데려오는 것도 죄다. 안할 수 있으면 안하는게 제일 좋고 부득이 하게 하면은 그런 줄 알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해야 된다. 안 하는 방법을 찾아야 된다. 그러고나서부터는 안 탔지요. 다른 죄는 또 많이 지을지라도. 그러니까 어쨌든 아는대로 우리는 회개하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약하면 또 기도하고 또 일어서고 힘을 써서, 이것이 외식을 다 뽑아내고 진실한 신앙 이게 주님이 마지막에 우리에게 찾아 가시고 원하시는 가장 귀한 보배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외식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고 일곱가지 외식을 하나 하나 우리에게 찾아서 고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