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주후(계17:13-14)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2014-11-24조회 295추천 27
20141123 주후
요한계시록 17:13-14
우리 공회, 우리 교회에서 좀 오래 믿은 분들은 이 본문의 말씀을 머릿속에 완전히 다 외워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의미도 잘 알고 계시리라 그리 생각합니다. 말세가 되어질수록 이런 말씀들은 더욱 더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이 되고, 또 무엇보다도 가장 방향과 근본적으로 꼭 붙들고 있어야 되는 말씀이 됩니다. 세상말에 좀 험한 말인데, 죽을 쑤어서 개를 준다 그럽니까? 죽 써서 개 준다 그런 말이 있고, 호박씨를 까서 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먹으려고 죽을 쑤었을건데 그걸 잘못하면 그만 엉뚱한데 다 간다 그말이고, (호박씨 까먹어 봤습니까, 학생들? 자, 누구한테 물어볼까. 여기 우리 000씨만 해도 호박씨 까먹는 것 잘 모르지요. 어느정도쯤 되면 알란가. 아마 40 밑으로 되는 분들은 호박씨 까먹는 것 잘 모를 것 같아요. 저희들 어릴때는 시골에서 먹을 게 많이 없으니까 호박씨 그걸 갖다가 말려가지고 까먹습니다. 까면은 한 개씩 넣으면 작으니까 입에 씹는 맛도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하나 하나 까가지고 한주먹 모아 놓습니다. 그래가지고 한 입에 톡 털어넣으면 고소하고 맛있거든요. 그래서 호박씨를 까서 한 입에 톡 털어넣는다 그런 말이 생깁니다.) 열심히 땀 흘려서 일을 하든지 뭔가를 마련해서 자기 뜻한바가 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한꺼번에 실패가 된다던지 없어지게 되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죽 써서 개 준다는 말도 그런 것이 들어있고. 신앙 생활에 중요한 것은, 사람이 길을 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외국 사람이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에 왔습니다. 부산에 왔는데, 택시를 잡고 ‘범일동에 좀 갑시다.’ 그러는데 택시기사가 보니까 외국 사람이거든요. 이제 봉을 만난 겁니다. 저기 부산역에서 범일동까지 오는데 택시타면 5분만 하면 오지요? 5분만 하면 오는데, 뱅 돌아서 여기 바로 오지 아니하고 저 삼거리에서 해운대쪽으로 가는데로 돌아가지고 진시장으로 뱅 돌아서 서면 로타리 돌아가지고 뱅뱅 돌아오면 몇 배는 더 걸리거든요? 그렇게 돌아오면 5분만 하면 되는 길을 한 20분 걸리면 돈을 그만큼 많이 받게 되겠지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바가지를 써야 됩니까? 그 외국 사람이 왜 5분만 하면 되는 길을 시간 허비하고 돈 허비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뭘 몰라서요? 길을 모르니까 그런거지요. 길을 모르니까. 자기가 갈 길을 모르면 그리 되는 겁니다. 어딜 가도 이런 방향적인 그런 지명적인 그런 방향길을 몰라도 어디로 갈지 몰라서 헤매게 되는 것이고, 인생길을 몰라도 사람이 인생의 생에서 방황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부족하고 못나고 무지해도 자기대로의 꿈, 희망, 목표, 방향인데 그게 있는 사람은 열심히 바로 잘 살 수 있고, 그것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는 재미가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한번씩 들어보면은, 사는 재미가 없다 그런 말을 하는데, 그거는 젊은 사람들이 아주 못된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보지도 않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아주 자포자기적인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배가 불러서 하는 말이고, 너무 철이 없어 하는 그런 말인 것이고, 나이가 좀 들어서 살만큼 살아가지고 50이나 되고 이렇게 된 사람들이 수십년을 살아도 뭐가 잘 안될때, 그럴때 목표도 없고 또 방향도 없고 그러면 살 맛이 없는 그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주 대단히 불행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선 안 됩니다, 세상적으로도. 뭔가 자기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목표란 것은 하나의 욕심이라 그리 말할 수 있고, 욕심이 있는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뭔가 아주 열심히 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 한번씩 말씀드렸는데, 게으른 것보다는 차라리 뭐라도 하라고요?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이걸 권장할 건 아니지만은,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해라 그럽니다. 그 사람이 도둑질 하는 것은 나쁜 것인데,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뭔가 하는게 낫다 그말입니다. 할 일 없으면 길에 가서 길이라도 쓸어주고 휴지라도 주워주고, 맨땅이라도 팠다가 다시 묻어도 게으른 것보다는 뭔가를 하는 것이 낫다 그말입니다. 사람이 목적이 없으면 그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목표를 정하고 그 정하는 것이 이룰 수 없는 그런 욕심에 의해서 이룰 수 없는 그런 것을 가지는 것은 잘못이지만은, 뭔가 하면 되겠다는 그런 걸 정해놓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그 사람이 사람다운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을 열심히 벌던지, 공부를 열심히 하던지, 또 뭔가를 기술을 열심히 연마하던지, 사람을 사귀던지, 뭔가 열심히 부지런하게 치열하게 사는 그 사람이 쓸모있는 사람이고 실력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이 방향만 바로 틀면 아주 좋은 훌륭한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아무짝에도 못 쓰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고 아무것도 안하는 한 달란트 받은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은 아무짝에도 못 쓸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도, 인생을 살아도, 신앙생활해도 방향이 첫째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어디를 향해서 내가 지금 가고 있는가?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 목표, 목적 그게 방향이니까, 또 소망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을 정해놓고 그곳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방향을 모르면, 방향이 없으면 길을 가지 못하겠지요. 당연하지요. 방향을 모르면 길을 갈 수가 없고, 방향이 틀리면 전부다 틀려버리게 되는 겁니다. 탈북을 해서 남한으로 오고 싶은데 그만 사기꾼들한테 속아가지고 돈을 잔뜩 지불했는데 차를 타고 남한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중국 땅을 뱅뱅 돌아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면 어찌 되겠습니까? 다 죽을 것 아니겠습니까? 방향이 틀려버리면. 신앙 생활의 방향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로 잡고, 또 방향은 바로 잡았는데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현장, 눈 앞에 닥치는 그 현장이 잘못되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깁니다.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방향을 바로 정하고 현장을 바로 보면서, 그래서 사람이 길을 갈때는 눈은 어디 봅니까? 눈은 앞을 보고, 그 앞은 뭡니까? 내가 걸어갈 방향을 보고. 발은 땅을 밟고 가는 겁니다. 그 땅을 밟는 게 방향을 향해서 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방향을 보면서 길을 걸어가는데, 방향이 틀리면 내가 밟고 가는거는 전부다 틀리는 것이고, 방향은 맞는데 가는 길이 돌이 있는지, 수복이 있는지, 뭐 걸리는게 있는지를 안 살피고 그냥 가버리면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발병도 나고, 사고도 생기니까 문제가 생기겠지요. 그러니까 방향을 보면서 현장도 같이 보면서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신앙의 방향이 어디냐? 그 방향을 바로 알고 그곳을 보며 가야 되고, 그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는 현장의 현실 생활을 또 바로 걷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되겠다, 이걸 가르치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그 두가지를 찾아낼 수 있고, 뽑아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 말씀 드리기 위해서, 인류 역사를 크게 세 토막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지요. 6천년 역사가 천지창조부터 노아 홍수까지 약 2천년, 그리고 노아 시대때부터 예수님 초림때까지 약 2천년, 예수님 이후부터 오늘까지 약 2천년, 세 토막으로 2천년씩 6천년으로 되어있는게 성경 기록의 역사고. 그런데 그때 그때마다 노아 시대때 노아 시대 마지막 그때 사람들 말 속에는 말세라는 말이 많이 있었을 겁니다, 안봐도. 노아는 보나 마나, 노아와 그 식구들은 ‘말세야, 말세’ 그런 말을 수없이 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 시대에 그래도 좀 정신 차린 사람들은 없었는데, 생각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했을 겁니다. 그러면, 제일 처음 말세, 노아 시대 그 말세 그때는 시대 상황이 어떠했던가? 말세에는 세상이 타락할대로 타락해서 온 세상이 패괴했고 질서도 없고 이거는 도덕 윤리도 다 깨지고, 한 마디로 엉망이 되어지고 모든게 다 혼돈스러운 그런 세상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부 세상 속에 빠져서 자기들 좋아하는 그대로 다 취해 사는 그런 세상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죄악이 온 세상에 가득찬 그때가 노아시대 첫째 토막에 말세의 모습이었고, 두 번째, 노아 식구를 시작으로 다시 두 번째 세상이 시작될 그때는 세상이 깨끗했을건데, 그 깨끗했던 세상이 좀 지나고 난 다음에 노아의 후손들 중에서 함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서 뭘 합니까? 성경을 알아야지요? 함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서, 창세기 11장에 열심히 건설해서 탑을 쌓아서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아서 하나님이 제 아무리 홍수를 퍼부어도 우리 조상들은 실력 없고 무지해서 그 까짓 홍수에 다 멸해졌지만은, 우리는 실력있고 과학이 발달됐으니까 탑을 쌓아가지고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해서 하나님이 홍수를 내려부으면 우리가 올라가서 ‘설마 하늘 꼭대기까지 비가 오겠느냐’ 그래가지고 무슨 탑을 쌓습니까? 바벨탑을 쌓는 그게 노아 후손들의 타락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점점 타락해서 내려와가지고 이스라엘 종교 말년 그때는 온 세상이 또 교회를 중심으로 외식하는 시대. 전부다 껍데기만 있고 속은 없는.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되,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과 실제 생활은 전혀 없는 외식으로 가득찬 그런 시대가 되어졌고. 그게 그때 말세의 모습이었고, 그래서 주님이 오셔가지고 교회를 완전히 새롭게 하고, 세상 전부를 그렇게 하지는 않아도 새롭게 하고 초대교회를 새로 세워서 초대 교회는 성령의 교회고 참 깨끗한 그런 성경적인 교회가 되어졌는데, 그 초대교회가 2천년 세월 속에, 2천년 되기 전에도 불과 몇백년 만에 점점 타락을 하고. 그래도 전체적으로 말하면 그래도 그때만 해도, 중세 시대만 해도,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찾고 두려워하고 인간 이상의 존재를 찾는 그런 모습들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종교 개혁될 그 당시 그때부터 사람들이 하나님이라는 신이라는 그 존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문주의, 인본주의가 급속도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오늘 말세지말에는 그게 아주 강하게 드러나서, 그래서 말세지말이 되면은 어떤 모습이 되느냐? 그것을 여기 본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말세지말이 되면은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되어지고, 그 세상 속에 사는 믿는 사람들은 인생의 방향, 믿음의 방향을 어떻게 정하며, 그 정해놓은 방향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하는 것을 여기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말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저희는 크게 말하면 몇 가지 뭉텅이가 저희입니까?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저희는 짐승, 일곱 머리, 열 뿔. 이거는 상징이라 그랬습니다, 상징. 짐승은 세상이고, 이걸 우리가 들을 때 짐승이 세상이라 그럴때, ‘짐승이 세상이다.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짐승이 세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러면 세상은 뭘 말하는가?’를 명상해서 생각하면서 들어보셔야 됩니다. 짐승은 세상, 일곱 머리는 뭡니까? 머리는 세상 속에 가득찬 모든 인간의 지식과 그 지식으로 만든 사람들의 인생을 끌고 가는 사상과 주의와 또 종교들, 이런 것들을 일곱 머리라 그리 말씀했고 세상에 있는 전부를 다 머리라 그럽니다. 그 다음 열 뿔이란 것은, 뿔은 힘을 말했다 그랬습니다, 힘. 뿔이란 것은 힘을 말했는데, 세상에 있는 모든 힘. 그러면 일곱 머리는 하나에 사람들의 생각이니까 그 머리에서 나오는게 사람들의 가치관이고 그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 뭐가 나오는 겁니까? 사람들의 지식에서 인간의 모든 가치관이 생겨지고, 그 가치관에서 또 나오는 것이 사람들의 욕심이라던지 소망이 생겨지고, 그 소망은 바로 인간들의 살아가는 인생길의 방향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지식과 지식에서 나오는 그런 사상이나 주의나 이런 것들은 인생의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방향을 끌고 가는 것이고, 그게 일곱 머리고. 열 뿔이란 것은 그 방향을 소망과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과 방법을 열 뿔이라 힘이라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일곱 머리는 뭐라 그랬습니까? 일곱 머리는 지식이고 사상이고 주의들인데, 그 사상이라 말은 사람의 모든 걸어갈 그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게 사상입니다. 주의라는 것. 그러면 지식 거기서 사람들이 ‘무엇이 더 좋다, 가치있다,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야 되며,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사람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성취하고 달성하고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면은 인생 살이를 바로 하는 것이 되는가?’ 인생은 한번뿐인 인생인 것을 사람이 알고, 한번만 주어진 인생 70년, 80년 가면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죽으면 끝나는, 안 믿는 사람들 표현으로, 그런 인생살이를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서 70년, 80년 살아서 집을 한 채 장만할까? 회사를 만들까? 돈을 많이 모아서 부동산을 사서 자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까? 이름을 남겨줄까? 뭘 할까? 그런 사람들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짓고 끌고가는 원동이 되는 게 지식이고, 사상이고, 주의들이라 그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수단과 방편을 가리켜서 뭐라 한다고요? 열 뿔이고, 그게 바로 힘이라 그말이지요, 힘. 힘이란 것은 수단이고 방법입니다. 나라의 법이란 것은 뭡니까? 나라의 법은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입니다. 통치 수단, 법이 없으면 통치를 못하지 않습니까? 군대란 것은 나라를 지키는 힘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방법. 사람 숫자가 많아야 되고, 사람 숫자보다도 돈이 많아서 무기를 아주 최첨단의 무기를 잘 사놓고 만들어놓으면 사람 대신에 무기를 가지고 나라 지킬 수 있으니까 그것도 나라 지키는 국방의 방법이다 그말입니다. 세금을 거두는 것은, 나라 살림 살아가는 그런 수단이기 때문에 나라에 세금 거두는 그런 법을 만들어놓는 겁니다. 그게 전부다 말하자면 힘이다 그말이지요. 언론이란 것도, 언론이란 것은 사회 모든 구석 구석에 잘못된 것, 어두운 구석을 밝혀내서 드러내가지고 그런 것을 고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혼자 안되니까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많은 사람의 목소리 큰 목소리 내는 것도 자기 목적 성취를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그것도 하나의 수단이고. 그게 전부다 다른 말로 말하면 무엇이라고요? 힘이고, 그 힘을 성경에 말하기를 ‘열 뿔’. 세상의 모든 수단, 방법, 힘을 가리켜서 통틀어 전부다 열 뿔로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짐승, 일곱 머리, 열 뿔이 있습니다. ‘저희가’ 일곱 머리, 짐승 일곱 머리 열 뿔입니다.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한 뜻이니까 뜻이란 그 속에는 생각과 소원과 목적과 욕심 이런게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한 뜻이라 그말은, 한 마음, 한 소원, 한 생각, 한 목표, 한 방향이라 그말입니다. 그런데 짐승 일곱 머리 열 뿔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지식과 힘들이 다 하나로 모아가지고 하나되서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 짐승의 능력 권세, 또 일곱 머리와 열 뿔의 능력과 권세,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 방법 실력과 부여받은 수권 범위 전부의 능력과 권세겠는데, 말하자면은 자기에게 주어진 전부, 자기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과 주어진 주권에 전부를 다 가지고 한 뜻을 가지고 자기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그러면 세상에게 주더라 그말은, 한 뜻을 가지고 전부 모아가지고 세상에 줬으니까 주더라 그말은 모으더라는 뜻이고 합하더라는 것이고 하나가 되더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세가 되니까 짐승과 일곱 머리 열 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의 지식과 거기서 나온 모든 것들과 모든 것의 힘들이 전부다 똘똘 뭉쳐가지고 하나가 되어지더라. 뭉쳐지더라, 단합이 되어지더라 이게 말세지말 세상에 되어질 모습을 본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걸 좀 더 생각해보면, 그러면 주체가 짐승이 있고 일곱 머리 있고 열 뿔이 있는데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줬습니다. 짐승은 뭐라 그랬습니까? 짐승은 세상입니다. 세상인데, 그 짐승이 그 앞에 보면은 13장입니까? 17장 3절에 보니까,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자가 탄 짐승이지요. 그 짐승이 바로 이 세상이다 그말인데, 이걸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세상이 짐승이다’. 그러면 세상이 무엇이 세상인가? 세상이란 것은, 어느 하나로 딱 단정지어서 말할 수 없겠지요. 지구가 세상인가? 물질계 우주가 세상인가? 지구라는 것은, 하나의 공간이고 우주는 더 넓은 공간이 되겠고,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지구라는 땅덩어리 속에는 6천년 세월 속에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그 지구에 살면서 인간들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이리 저리 단합하고 좋아하고 그래가지고 만들어내놓은 그런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그런 것들이 말하자면은 6천년 역사 속에 사람들이 만들어내놓은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유형 무형에 과학도 있고 그 속에는 경제 발전도 있고, 문화도 있고 유행도 있고, 종교도 있고 정치도 있고, 또 교육도 있고, 미계할때부터 문명이 발달된 오늘까지 발달되고 발전된 세상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 세상의 모습들 그 속에,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21세기 세상 속에 발달된 그 세상에 있는 제도와 조직과 그런 모든 문화들 이런 것 전부다가 한말로 말하면 세상인데 그게 짐승이다 그말이지요. 그 속에 가장 중심되는 것은 사람이 그 속에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악령이고. 그러면 일곱 머리 열 뿔,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과 그 지식으로 만든 모든 것들과 사람들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사상과 주의나 이런 것들이 다 합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 되어지는 모든 세상 힘들이 다 합해가지고 자기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줬는데, 이거는 이들이 무슨 인격이 있어서 일곱 머리 열 뿔이 지정리가 있고 인격이 있고 자의성이 있어가지고 그것을 양도 증명서를 받고 인계인수하고 그렇게 주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것들이 전부다 세월 속에 다 합해가지고 하나로 되어지더라 그말입니다. 세월 속에서 하나가 되어지는데, 그 하나가 되어지는 그 중심 속에 하나를 그렇게 만드는 주체자가 무엇인고 하니, 그 주체자가 전부 인간이겠고. 인간 없는 세상은, 지금은 인간 없는 세상이 있긴 있지만은 이 세상에 사람이 없으면, 인류가 다 없으면 이 세상은 황폐화되고 세상말로 말하면 자연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인간이 있으니까 그 인간들에 의해서 세상은 인간들의 생각대로 욕망대로 실력껏 이 세상은 발달이 되어지고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져가는 그런 세상이 되어져서 그래서 결국 말하면 짐승에게 주더라 그말은, 세상에게 주는 것이고 이 세상에 주인 주체가 되어지는 인간에게 주더라 그말인데, 어떤 특정한 인간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그 세상이 그런 세상으로 세월 속에 인간들의 생각과 인간들의 욕망과 인간들의 모든 하나님 없는 그런 깨달음에 의해서 생겨지는 그 방향으로 모든 세상은 흘러가더라, 그렇게 만들어지더라 그런 뜻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흘러가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그 속에는 악령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데 그렇게 되어지는 방향이 무엇인고 하니, 말세가 되니까 세상은 전부 하나님은 점점 멀어지고 뒤로하고 인간이 전면에 들어가서 인간이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고 인간이 주가 되고, 인간이 하나님이 되어지는 그런 세상이 점점 점점 되어져 가더라. 그리고 이 세상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지는 그런 세상이 점점 되어져 가더라 그말입니다.
이런 세상이 되고 있습니까? 지금 세상이 이런 세상이 되고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어느 나라,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인간, 인본주의, 인권을 말하고 주장하는 그것이 힘을 얻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그러니까 지금 이번에 UN에서 북한 인권을 두고 뭔가를 결의를 하니까 북한의 저 독한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어쩔 줄 모른다 그러지요. 북한 정권을 UN 법정에 세워야 된다 이런 결의를 하니까, 최종적인 결의됐는지 모르겠지만은, 그 인권을 말하니까 일당 독재국가 북한 저기서도 그것 때문에 아주 많이 당황을 한다 그러지요. 그런데 저 이슬람교 저 사람들은 종교국가고 종교전이 되다 보니까, 거기는 인권은 아주 뭐 같이 여기는데, 저 사람들도 시간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말세가 되면 이게 점점 심화가 되어져서 사람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사람이 오로지 전부다. 모든 나라의 정치 제도와 조직과 법과 모든 교육과 모든 것 전부다가 사람에게 다 맞춰지는 이게 세계의 흐름이고, 말세 시대의 흐름이 되어지는 겁니다. 사람이 전부다 그말이지요. 이게 결코 나쁜 말이 아니고 대단히 좋은 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걸 자꾸 말하는 겁니다. 어쨌든 모든 것은 전부다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 되고 사람 때문에 있어야 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전부다다. 이게 이 세상이 말하는 마지막 시대에 모습이 점점 되어져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어느 주의나 사상이나 종교나 할 것 없이 전부다 인간 중심, 그런 주장이 되어지니까 사람이 여기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은 어디에도 어떤 경우도 있을 수가 없다 그말이지요. 온 세상이 전부다 이리 되어지는, 이게 자연적으로 성경적으로 보니까 시대적으로 이렇게 모든 것이 주장이 흘러가고 조직과 제도가 흘러가고 모든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자연적으로 흘러가서 인간이 제일이다는 여기에는 이론이 없는 겁니다. 이론이 없고 이견이 없고 전부다가 공산주의, 민주주의, 정치제도 할 것 없이 전부다 이쪽에는 다 하나가 되어지는 겁니다. 겁데기로 말하면, 지금은 좀 덜하지만은 공산주의, 민주주의가 많이 싸웠고, 종교 종교끼리도 많이 싸웠고, 또 같은 나라안에서 단체와 단체끼리 시비하고 싸우는 이런 모습이 많이 보여져도, 민족과 민족이 싸우고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이런게 보여져도 그 속에 들어가서 인본주의 사상이라는 이 사상, 사상이란 것은 혈육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상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사상에는 민족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상이라는 건, 종교도 일종에 사상인데, 그 사상은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을 다 초월하는 그런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런데 가장 큰 사상이 바로 인본주의 사상이니까 이 인본주의 사상은 말세가 되면은 동서양이 따로 없고 흑인 백인이 따로 없고 온 세상 전부다가 뭉쳐서 인본주의, 인간이 제일 전부라는 여기에는 다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된다 말이지요. 이게 말세지말 세상이 되어지는 그런 모습이고 흐름이라 그말입니다. 지금 세상이 그렇게 갑니다, 지금.
이런 걸 우리가 자세히는 몰라도 전체적인 방향으로 나라의 법이라든지, 제도 조직이라든지 또 흘러가는 유행이라든지 세계 국제정치 흐름 이런 것 속에서 우리가 살펴봐야 됩니다. 과연 그러한가? 세계는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리 되는데, 여기서 여기 합할 수 없는 종자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이 세상에 있는데, 결코 인간이 제일이고 전부라는 그 중심이라는 그 사상에 합치될 수 없는 종자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다 합해지고 다 맞는데, 하나가 되어지는데, 딱 하나만 안되는 것이니 그 종자가 뭐냐? 그 종자가 바로 하나님에 뿌리 박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종자고, 그 어린 양의 모습인 참된 기독교, 참된 교회는 그 사상과 결코 하나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대립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싸운다는 말은, 이 세상이 일부러 기독교를 이제 앞으로 드러나게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은, 어떤 특정 교회를 기독교를 그렇게 박해하고 박멸하는 그런 역사도 드러나게도 할 수 있겠지만은, 드러나게 그렇게 된다기보다 악령은 그 목적 가지고 그렇게 역사를 하고 세상을 몰아가는데, 외부로 드러나기는 그리 하지 않는데, 그런데 세상에 모든 각 나라의 법과 조직과 제도와 문화와 유행과 모든 흐름이 다 그렇게 흘러가고, 또 사람들의 인식들이 세월 속에서 그런 방향으로 사람들이 지식이 그리 되어가고 그렇게 사람들이 순간 순간 행동을 그렇게 하고 사리 판단을 그렇게 하고 생활을 그렇게 하다보니까 그런 사람들로 점점 바꾸어져 가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되면 굉장히 무섭습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결혼두고 그리 말을 하는데, 우리 공회 청년 남녀들 왠만한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서 결혼 비용을 두고는 크게 별로 걱정을 안하지요. 교회서 하면은 돈 하나도 안 드니까. 또 간단하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웬만큼 신앙 있는 분들은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고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거기 대해서 생각을 안하는데, 그런데 일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 하려면 예식장을 잡아야 되고, 예식장은 번듯한 곳을 잡아야 되고, 드레스를 입어야 되고 장식을 해야 되니까 적어도 몇 천 만원이 들어간다는게 사람들의 인식이고, 소박하게 사소하게 했다 그러는데도 몇 백만원 들고 일이천만원 들어도 아주 소박하게, 돈을 적게 들였다고 하는데도 적어도 몇 백만원이거든요. 그게 그 사람들의 인식이고, 우리 나라라는, 우리 나라에 한정된 거지만은, 대한민국 현시대는 그렇게 되어있어서 흐름이 그렇게 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말하자면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 방식과 그렇게 된 사람들의 차이인데, 그런 가정 환경 속에,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그렇게 보고 듣고 거기 참여하고 그렇게 산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이고 그렇게 안 하는 것이 이상한 겁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려면 하지만은 왜 그렇게 허례허식을 하고 돈을 그렇게 낭비를 하는지, 하루 자기 모습 과시하는데 몇 천만원, 몇 백만원 들여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전혀 상관이 없잖습니까?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자면은 이렇게 사람이 생각이 다르고 지식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르고 거기다 사람까지 달라버리니까 서로 조화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일 수가 없듯이, 닭과 오리가 서로 하나될 수 없듯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사람이 전부라는 그것이 그 사람들의 어릴적부터, 모든 것에서 듣고 보고 배우고 그렇게 살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사람으로 평생을 그렇게 살고 자녀 교육도 그렇게 시키고 모든 세상이 짜여지기를 그렇게 짜여져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전부고 중심이고 사람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종교도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 넘어서는 종교가 없다. 신문에 한번씩 보면, 종교란에 보면은 목사들, 불교, 천주교 일 하는 것 보면은 그런 방향으로 목사든지 중들이든지 신부가 그렇게 해놓은 것은 칭찬일색입니다, 전부다. 다 그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사람이 전부라는 그 방향으로.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고. 그것이 말세지말 21세기에 온 세상의 흐름인데, 문제는 그런데 성경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고, 하나님에게 종속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사람에게 손해가 가도, 사람이 살지 못해도, 사람이 마지막에는 죽어도 하나님은 드러나야 되고 그분의 뜻은 순종해야 되는 이것이 기독교라는 이것이 기독교기 때문에 이런 사상과 세상 사상은 결코 하나될 수가 없어서 문제는 이 세상이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로 가득찬 그 세상이 이 세상에 주권을 가지고 있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고 학교도, 회사도, 사업체도, 또 사회 흐름도 모든 분위기도 또 모든 집안 전체도 전부다 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신앙을 붙들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된다는 이 성경 진리를 지켜서 그대로 살아나가려고 그러면 골동품처럼 돌리는 개밥에 도토리라 그럽니까, 그것처럼 다글따글 몰려서 외통으로 몰려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 교육을 시켜야 되겠는데, 공부는 시켜야 되겠는데, 이게 공교육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학교를 보내보니까 그냥 그 감당할 수 있을만큼 되면 되겠는데 공부는 해야 되고 학교 가니까 보는 것 듣는 것 전부다가 이거는 신앙과 맞지 않는 그런 흐름이 다 있으면 부득이하게 그렇게까지해서 다녀야 되는가? 어느정도까지 되고나면 다른 길이 없는가? 다른 길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직장 생활해도 그런 세상 생활에 다 맞춰서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전세방 얻어도 어느 정도 되어야 되고, 방은 몇 칸이 되어야 되고, 아파트는 사야 되고 자동차 있어야 되고 어느 정도 먹고 살아야 되는 그런 것 맞추려면 연봉이 얼마 되어야 되고 거기 맞춰서 직장을 구하려 그러니까 직장 찾기가 그렇게 어렵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 하지 아니하고 애굽에 중심부 바로 왕의 궁에 살았어도, 40년을 살아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성민이라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았던 모세처럼, 이 세상에 살지만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멸시를 받고 천대 받고 조롱을 받아도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지, 밥을 굶고 살고 달셋방 살이 하고, 아주 가난하게 없이 살아도 계명 지키면서 살지, 이 세상에 그 시대 맞는 사람처럼 계명 어기면서 하나님 뜻 거역하며 사는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모세 신앙이고, 믿는 사람의 생활인데 그렇게 살라고 그러면 그만큼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싸움이란 것은, 이런 싸움입니다. 우리는 신앙 싸움이고, 사상전이고 이건데, 그래서 그 싸움이란 것이 드러나서 그들이 박해한다기보다 짜여지기를 세상이 그렇게 짜여놓으니까, 물로만 가득 들어있는 거기에 기름이 들어가서 물과 섞이려그러면 기름은 동동 뜨고 물이 될 수가 없는 것처럼, 이 세상 자체가 모든 것이 전부 그런 세상으로 그렇게 다 만들어진 그 속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 지키면서 믿음 지키면서 살아가려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다 있게 되어지는데, 그 어려움이 바로 신앙 전투가 되고 싸움이 되는 건데, 문제는 그 싸움에서 우리가 지지 아니하고 그때 신앙이란 것은, 그래서 기독교라는 것은, 기독교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걸 향해 가는게 기독교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욕망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얻고자 하고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그런 세상 속에서 믿는 사람이 살아가려 하니까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그럴때 사람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어려움, 인간 관계 어려움, 자기 위신의 어려움, 수많은 세상 살이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신앙으로 성공을 하려고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걸 본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향이란 것은, 온 세상이 전부 인본과 세본 세상 주의로 나아가는 거기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우리는 신본에 신앙 천국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방향이고, 그렇게 나아가는 그 방향, 그 방향을 향해서 나아갈 때 어떻게 하면 그 방향으로 성공하고 실패하지 아니하고 나아갈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말씀하시기를,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는데, 어린 양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길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택함 받고 중생된 사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 그 말세지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한 종류 밖에 없으니 진실한 자만 이길 수 있다 그랬으니까 현장을, 세상과 하나되지 아니하고 신본과 천국 향해서 걸어가는 그 방향의 실제 현장에 걸어가는 것은 자기가 진실한 사람이 되는 그 일을 위해서 힘을 쓰는 것이라 그말이고, 진실한 사람이란 뭐냐? 사람 자체가 그 사람이 되어지는 걸 말하는 겁니다. 지난 오일밤 예배때, 예수 그리스도를 터로 삼고 그 터 위에서 지식을 건설하고 행위를 건설하고 사람을 건설하는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이고 평생 믿음 생활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 건설하는 그 건설, 그러니까 결론,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인간의 사람이 아닌, 인본의 사람이 아닌 신본의 사람이고, 세상 사람이 아닌 천국 사람으로, 그 사람 자체가 그런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이 우리 신앙에 방향, 중간 목표가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게 진실인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렇게 하려면 자기 주어진 현실 속에서 자기 지식을 아는 것을, 모든 사물과 사건과 인간관계와 당면한 자기 눈에 보이고 들려지고 접해지는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과 모든 관계 전부를 알기를 판단하는 그 잣대 삼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하고 판단도 하고 처리하는 그 지식,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답이고 교과서고 법이고 기준이고 잣대가 되는 이것이 자기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는 그 지식이니 그게 바로 지식의 진실이라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 아는 것이 진실한 지식이다 그말입니다. 사람을 아는 것도, 인간 관계를 아는 것도, 승패를 아는 것도, 행불행을 아는 것도, 물질을 아는 것도 모든 걸 알기를 그 아는 잣대를 뭘로 아느냐? 기준을 뭘로 정하느냐? 사람의 행복은 무엇이 행복입니까? 학생들의 행복은 성적순인가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그러지요. 학생들의,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은, 낙천적이고 그런 학생들이 보는 관점에서 위로하는 말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그러지만은,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행복은 성적순이지요.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은 돈 순 아닙니까, 돈?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불행한, 이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행복관은 그게 아니다 그말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넓은 집, 잘 꾸며진 그런 정원, 편리한 생활 공간, 여러 가지 문화 용품들, 이런 집이라던지 그런 가정이 되어있으면 그게 살기 좋은 그런 집이라 그게 세상 사람들이 보는 관점이지만은, 예수 믿는 사람의 관점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라. 단칸방에 살아도 하나님을 모시고 믿음 생활, 계명 지키는 그 생활 할 수 있으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고 믿는 사람의 생활이라. 못나고 가난해도 예수 잘 믿을 수 있고, 계명 잘 지킬 수 있고, 신앙 자유 할 수 있으면 그게 믿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최적의 조건이라.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인식이고, 이렇게 인식을 가지는 걸 가리켜서 그 사람의 지식이 진실하다는 겁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지니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먹을 것, 입을 것 없는 사람 있습니까?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때문에 신앙 자유 못 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핑계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그것 때문에 예배 자유 못한다는 것은 다 핑계입니다, 이 시대에는. 그 속에서 먹을 수 있지만은 사람이 ‘라면만 먹고 사나?’ 또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먹어야 되는데, ‘먹기만 하면 되나? 맛도 있어야지’ ‘영양도 있어야지’ ‘좀 고급스럽고 건강에 좋아야지’ ‘입기만 하면 되는가? 멋도 나야지’ ‘비만 피하면 되는가? 좀 넓고 편리해야지’, 전부 욕심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성경을 가감하고, ‘그래도 돈은 좀 많았으면’ ‘공부는 좀 많이 했으면’ ‘뭐는 좋았으면’, 사람들이 가감을 해서 그렇게 하기 때문에 신앙 자유, 집회 자유, 예배 자유를 못하고 여러 가지 세상에 붙들려 있는 것이지, 정말 성경대로 그렇게 믿어나간다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지요. 그게 지식이고, 그 지식대로 당면한 순간 순간 현실을, 하루 하루를 살아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나가면 사람이란 것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어서 경제 생활이든지, 인간 관계든지, 모든 사건 처리든지, 자기 앞날 미래든지, 자녀 교육이든지, 결혼이든지, 가정 생활이든지, 무엇이든지 전부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 믿음 중심으로 하는 그것을 그렇게 법으로 알고 그렇게 살고, 그렇게 실질적으로 당면한 그 순간 순간을 그렇게 살아나가다보면 자기라는 사람은 세월 속에 어느샌가 성경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져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되어져 있으면 이 세상이 인본으로 똘똘 뭉쳐서 인간 중심, 이 세상 중심, 그런 세상이 다 되어져도 그 속에 살아도 그 사람은 거기서 그들에게 삼켜지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는,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어느날 갑자기 투쟁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평소 우리의 지식이 중요합니다. 그 지식은 다른 말로 말하면, ‘관’입니다, ‘관’. 가치관, 인생관, 행복관, 또 경제관, 인간관계관. 어떻게 보느냐? 인생살이 어떻게 보느냐? 무엇을 가치로 여기느냐? 무엇이 행복이냐? 무엇이 성공이냐? 이걸 따져 보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그래서 이 지식을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그래서 이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이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전부다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것을 전부 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망원경 삼아서 보는 겁니다. 노란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 끼면 파랗게 보여지는 것이고, 검은색 안경 끼면 어둡게 보이는 것이고, 이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경으로 삼아서 이 말씀을 끼고 이 말씀을 안약으로 삼아서 이 말씀으로 모든 세상을 다 보는 겁니다. 이걸 가리켜서 지식이 진실하다. 이 말씀으로 내 지식을 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자기 앞에 닥치는 인간관계, 자기 개인 생활, 가정생활, 경건생활, 조심하는 생활, 순간 순간의 모든 생활 이대로 하나 하나 실제로 걸어가는 겁니다. 그게 말씀대로 사는 행동이 되는 것이고. 그런 지식과 행동으로 그렇게 살아나가다보면은 세월 속에 자기라는 사람은 어느샌가 그런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져 있는 겁니다. 그 지식과 그대로 사는 만큼 사람은 변화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일밤 예배때도 그 말씀 나왔는데,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말의 실수를 안하고 신중한 그런 사람이 되겠다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평소 말을 많이 하고 말과 행동이 다른 그 사람이 언행일치의 신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안되는 겁니다. 행동을 가볍게 처신하는 사람이 신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도 안되는 겁니다. 현재 날마다 시간을 허비하고 허비하고 잠을 자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겠다고 아무리 목표를 세워놔도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현재 행동을 하느냐 따라서 그 사람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이치기 때문에 변할 수가 없는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니고 바로 오늘이고 지금 이순간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거짓말을 안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현재 한번만 거짓말 하고, ‘돈이 너무 큰 손해가 되니까 이번만 거짓말 하고 다음부터 절대 거짓말 안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번만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절대 정직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 돈 억만금 손해봐도 거짓말 안해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이 순간 너무 몸이 피곤해서 지금은 병이 날 정도라서 쓰러질 그 정도 되면 모르겠지만은, 잠자기 좋아하는 사람이 ‘오늘만 자고 내일부터 안 자겠다’ 그 사람은 안됩니다. 오늘, 지금 쓰러져도 그 순간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되지, 지금 오늘만 자고, 오늘만 게임하고, 한번만 하고, 안됩니다, 그거는. 그 행동이 그 사람을 만든다 그말입니다. 보나 안보나 그 사람은 과거부터 오늘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그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행동이 사람을 만드는 것, 이걸 오늘 가장 많이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식이 그 사람의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겁니다. 어떻게 말하느냐?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러니까 바로 지금 이순간,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도 오늘 졸았지만은 내일부터는, 지나간 건 할 수 없겠지만은, 지각하는 것도. 그러니까 항상 조는 사람 항상 졸고, 지각 하는 사람 항상 지각을 하고, 하는 사람은 항상 하고 안 하는 사람은 항상 안 하고 늘 그런 것이 그 사람이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진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 방향은, 이 세상 말세가 어떤 세상이 되어질 것을 중대하게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되고 보는 시야를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란 그분은 우리가 실존의 분으로 알고, 그분을 우리 머릿속에 두고 그분이 살아계시고 그분 중심으로 모든 것 살아야 되고 나가야 되는데 그걸 가지고 세상 모든 것을 신문과 모든 흐름을 다 보면은 이 세상은 점점 하나님은 없는 그런 세상으로 되어져 가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지라도 예수 믿는 많은 교회들이 전부, 이름은 교회인데 인간이 전부다 하나님 되어있는 그런 교회가 많고, 또 하나님을 찾고 싶은데 어떻게 찾을 줄 모르니까 방황하는 그런 교회도 많고, 참 하나님을 찾아 모시고 그분 향해 나아가는 그런 진실한 교회들, 그런 신앙들은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그런 시대가 되어지기 때문에 주님이 내가 세상에 올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을 하신 그대로 지금 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시대를 보면서 그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될 것인가? 그런 시대 속에 삼켜지지 아니하고 그들과 하나되지 않아서 그런 인본주의의, 세상주의의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런 종자가 되어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식을 진실하게 해서 성경 말씀으로 안약을 삼아서 모든 걸 성경 말씀을 잣대로 삼는 그게 되어야 되고, 그대로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그런 내가 되어질 때, 그런 사람이 되어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바로의 궁에 있는 모세 같은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방향과 현장을 함께. 그러기 때문에 방향은 신본에, 천국에, 또 진실한 사람에. 현장에서는 말씀 순종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방향과 현실의 생활이라 하는 겁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고 믿으면 한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으로 내 지식을 삼아서 이 말씀 가지고 모든 것을 보는 그런 눈을 가지는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지식 삼는 진실한 지식이 되는 것이고 그대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진실한 행동이 되는 것이고 그리 되면 사람은 말씀대로의 사람이 저절로 되게 되고, 그 사람이 말세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17:13-14
우리 공회, 우리 교회에서 좀 오래 믿은 분들은 이 본문의 말씀을 머릿속에 완전히 다 외워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의미도 잘 알고 계시리라 그리 생각합니다. 말세가 되어질수록 이런 말씀들은 더욱 더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이 되고, 또 무엇보다도 가장 방향과 근본적으로 꼭 붙들고 있어야 되는 말씀이 됩니다. 세상말에 좀 험한 말인데, 죽을 쑤어서 개를 준다 그럽니까? 죽 써서 개 준다 그런 말이 있고, 호박씨를 까서 한 입에 털어 넣는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먹으려고 죽을 쑤었을건데 그걸 잘못하면 그만 엉뚱한데 다 간다 그말이고, (호박씨 까먹어 봤습니까, 학생들? 자, 누구한테 물어볼까. 여기 우리 000씨만 해도 호박씨 까먹는 것 잘 모르지요. 어느정도쯤 되면 알란가. 아마 40 밑으로 되는 분들은 호박씨 까먹는 것 잘 모를 것 같아요. 저희들 어릴때는 시골에서 먹을 게 많이 없으니까 호박씨 그걸 갖다가 말려가지고 까먹습니다. 까면은 한 개씩 넣으면 작으니까 입에 씹는 맛도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하나 하나 까가지고 한주먹 모아 놓습니다. 그래가지고 한 입에 톡 털어넣으면 고소하고 맛있거든요. 그래서 호박씨를 까서 한 입에 톡 털어넣는다 그런 말이 생깁니다.) 열심히 땀 흘려서 일을 하든지 뭔가를 마련해서 자기 뜻한바가 있는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한꺼번에 실패가 된다던지 없어지게 되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죽 써서 개 준다는 말도 그런 것이 들어있고. 신앙 생활에 중요한 것은, 사람이 길을 가는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외국 사람이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에 왔습니다. 부산에 왔는데, 택시를 잡고 ‘범일동에 좀 갑시다.’ 그러는데 택시기사가 보니까 외국 사람이거든요. 이제 봉을 만난 겁니다. 저기 부산역에서 범일동까지 오는데 택시타면 5분만 하면 오지요? 5분만 하면 오는데, 뱅 돌아서 여기 바로 오지 아니하고 저 삼거리에서 해운대쪽으로 가는데로 돌아가지고 진시장으로 뱅 돌아서 서면 로타리 돌아가지고 뱅뱅 돌아오면 몇 배는 더 걸리거든요? 그렇게 돌아오면 5분만 하면 되는 길을 한 20분 걸리면 돈을 그만큼 많이 받게 되겠지요.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바가지를 써야 됩니까? 그 외국 사람이 왜 5분만 하면 되는 길을 시간 허비하고 돈 허비한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뭘 몰라서요? 길을 모르니까 그런거지요. 길을 모르니까. 자기가 갈 길을 모르면 그리 되는 겁니다. 어딜 가도 이런 방향적인 그런 지명적인 그런 방향길을 몰라도 어디로 갈지 몰라서 헤매게 되는 것이고, 인생길을 몰라도 사람이 인생의 생에서 방황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부족하고 못나고 무지해도 자기대로의 꿈, 희망, 목표, 방향인데 그게 있는 사람은 열심히 바로 잘 살 수 있고, 그것이 없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는 재미가 없는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한번씩 들어보면은, 사는 재미가 없다 그런 말을 하는데, 그거는 젊은 사람들이 아주 못된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보지도 않고 게으르고 나태하고 아주 자포자기적인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배가 불러서 하는 말이고, 너무 철이 없어 하는 그런 말인 것이고, 나이가 좀 들어서 살만큼 살아가지고 50이나 되고 이렇게 된 사람들이 수십년을 살아도 뭐가 잘 안될때, 그럴때 목표도 없고 또 방향도 없고 그러면 살 맛이 없는 그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주 대단히 불행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선 안 됩니다, 세상적으로도. 뭔가 자기대로의 목표를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목표란 것은 하나의 욕심이라 그리 말할 수 있고, 욕심이 있는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뭔가 아주 열심히 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 한번씩 말씀드렸는데, 게으른 것보다는 차라리 뭐라도 하라고요?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이걸 권장할 건 아니지만은,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해라 그럽니다. 그 사람이 도둑질 하는 것은 나쁜 것인데,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뭔가 하는게 낫다 그말입니다. 할 일 없으면 길에 가서 길이라도 쓸어주고 휴지라도 주워주고, 맨땅이라도 팠다가 다시 묻어도 게으른 것보다는 뭔가를 하는 것이 낫다 그말입니다. 사람이 목적이 없으면 그 사람은 참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목표를 정하고 그 정하는 것이 이룰 수 없는 그런 욕심에 의해서 이룰 수 없는 그런 것을 가지는 것은 잘못이지만은, 뭔가 하면 되겠다는 그런 걸 정해놓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그 사람이 사람다운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돈을 열심히 벌던지, 공부를 열심히 하던지, 또 뭔가를 기술을 열심히 연마하던지, 사람을 사귀던지, 뭔가 열심히 부지런하게 치열하게 사는 그 사람이 쓸모있는 사람이고 실력있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이 방향만 바로 틀면 아주 좋은 훌륭한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겁니다. 아무짝에도 못 쓰는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고 아무것도 안하는 한 달란트 받은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은 아무짝에도 못 쓸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도, 인생을 살아도, 신앙생활해도 방향이 첫째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어디를 향해서 내가 지금 가고 있는가?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 목표, 목적 그게 방향이니까, 또 소망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을 정해놓고 그곳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방향을 모르면, 방향이 없으면 길을 가지 못하겠지요. 당연하지요. 방향을 모르면 길을 갈 수가 없고, 방향이 틀리면 전부다 틀려버리게 되는 겁니다. 탈북을 해서 남한으로 오고 싶은데 그만 사기꾼들한테 속아가지고 돈을 잔뜩 지불했는데 차를 타고 남한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중국 땅을 뱅뱅 돌아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면 어찌 되겠습니까? 다 죽을 것 아니겠습니까? 방향이 틀려버리면. 신앙 생활의 방향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로 잡고, 또 방향은 바로 잡았는데 그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현장, 눈 앞에 닥치는 그 현장이 잘못되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깁니다.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방향을 바로 정하고 현장을 바로 보면서, 그래서 사람이 길을 갈때는 눈은 어디 봅니까? 눈은 앞을 보고, 그 앞은 뭡니까? 내가 걸어갈 방향을 보고. 발은 땅을 밟고 가는 겁니다. 그 땅을 밟는 게 방향을 향해서 가는 거지요. 그러니까 방향을 보면서 길을 걸어가는데, 방향이 틀리면 내가 밟고 가는거는 전부다 틀리는 것이고, 방향은 맞는데 가는 길이 돌이 있는지, 수복이 있는지, 뭐 걸리는게 있는지를 안 살피고 그냥 가버리면 가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발병도 나고, 사고도 생기니까 문제가 생기겠지요. 그러니까 방향을 보면서 현장도 같이 보면서 걸어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신앙의 방향이 어디냐? 그 방향을 바로 알고 그곳을 보며 가야 되고, 그 방향을 향해서 걸어가는 현장의 현실 생활을 또 바로 걷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되겠다, 이걸 가르치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그 두가지를 찾아낼 수 있고, 뽑아낼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 말씀 드리기 위해서, 인류 역사를 크게 세 토막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지요. 6천년 역사가 천지창조부터 노아 홍수까지 약 2천년, 그리고 노아 시대때부터 예수님 초림때까지 약 2천년, 예수님 이후부터 오늘까지 약 2천년, 세 토막으로 2천년씩 6천년으로 되어있는게 성경 기록의 역사고. 그런데 그때 그때마다 노아 시대때 노아 시대 마지막 그때 사람들 말 속에는 말세라는 말이 많이 있었을 겁니다, 안봐도. 노아는 보나 마나, 노아와 그 식구들은 ‘말세야, 말세’ 그런 말을 수없이 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 시대에 그래도 좀 정신 차린 사람들은 없었는데, 생각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했을 겁니다. 그러면, 제일 처음 말세, 노아 시대 그 말세 그때는 시대 상황이 어떠했던가? 말세에는 세상이 타락할대로 타락해서 온 세상이 패괴했고 질서도 없고 이거는 도덕 윤리도 다 깨지고, 한 마디로 엉망이 되어지고 모든게 다 혼돈스러운 그런 세상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부 세상 속에 빠져서 자기들 좋아하는 그대로 다 취해 사는 그런 세상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죄악이 온 세상에 가득찬 그때가 노아시대 첫째 토막에 말세의 모습이었고, 두 번째, 노아 식구를 시작으로 다시 두 번째 세상이 시작될 그때는 세상이 깨끗했을건데, 그 깨끗했던 세상이 좀 지나고 난 다음에 노아의 후손들 중에서 함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서 뭘 합니까? 성경을 알아야지요? 함의 자손들이 시날 평지에서, 창세기 11장에 열심히 건설해서 탑을 쌓아서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아서 하나님이 제 아무리 홍수를 퍼부어도 우리 조상들은 실력 없고 무지해서 그 까짓 홍수에 다 멸해졌지만은, 우리는 실력있고 과학이 발달됐으니까 탑을 쌓아가지고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해서 하나님이 홍수를 내려부으면 우리가 올라가서 ‘설마 하늘 꼭대기까지 비가 오겠느냐’ 그래가지고 무슨 탑을 쌓습니까? 바벨탑을 쌓는 그게 노아 후손들의 타락하는 모습입니다. 그렇게 점점 타락해서 내려와가지고 이스라엘 종교 말년 그때는 온 세상이 또 교회를 중심으로 외식하는 시대. 전부다 껍데기만 있고 속은 없는.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되,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과 실제 생활은 전혀 없는 외식으로 가득찬 그런 시대가 되어졌고. 그게 그때 말세의 모습이었고, 그래서 주님이 오셔가지고 교회를 완전히 새롭게 하고, 세상 전부를 그렇게 하지는 않아도 새롭게 하고 초대교회를 새로 세워서 초대 교회는 성령의 교회고 참 깨끗한 그런 성경적인 교회가 되어졌는데, 그 초대교회가 2천년 세월 속에, 2천년 되기 전에도 불과 몇백년 만에 점점 타락을 하고. 그래도 전체적으로 말하면 그래도 그때만 해도, 중세 시대만 해도, 그 이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찾고 두려워하고 인간 이상의 존재를 찾는 그런 모습들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종교 개혁될 그 당시 그때부터 사람들이 하나님이라는 신이라는 그 존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문주의, 인본주의가 급속도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오늘 말세지말에는 그게 아주 강하게 드러나서, 그래서 말세지말이 되면은 어떤 모습이 되느냐? 그것을 여기 본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말세지말이 되면은 세상이 어떤 세상이 되어지고, 그 세상 속에 사는 믿는 사람들은 인생의 방향, 믿음의 방향을 어떻게 정하며, 그 정해놓은 방향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하는 것을 여기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그말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저희는 크게 말하면 몇 가지 뭉텅이가 저희입니까?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저희는 짐승, 일곱 머리, 열 뿔. 이거는 상징이라 그랬습니다, 상징. 짐승은 세상이고, 이걸 우리가 들을 때 짐승이 세상이라 그럴때, ‘짐승이 세상이다.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짐승이 세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러면 세상은 뭘 말하는가?’를 명상해서 생각하면서 들어보셔야 됩니다. 짐승은 세상, 일곱 머리는 뭡니까? 머리는 세상 속에 가득찬 모든 인간의 지식과 그 지식으로 만든 사람들의 인생을 끌고 가는 사상과 주의와 또 종교들, 이런 것들을 일곱 머리라 그리 말씀했고 세상에 있는 전부를 다 머리라 그럽니다. 그 다음 열 뿔이란 것은, 뿔은 힘을 말했다 그랬습니다, 힘. 뿔이란 것은 힘을 말했는데, 세상에 있는 모든 힘. 그러면 일곱 머리는 하나에 사람들의 생각이니까 그 머리에서 나오는게 사람들의 가치관이고 그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 뭐가 나오는 겁니까? 사람들의 지식에서 인간의 모든 가치관이 생겨지고, 그 가치관에서 또 나오는 것이 사람들의 욕심이라던지 소망이 생겨지고, 그 소망은 바로 인간들의 살아가는 인생길의 방향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지식과 지식에서 나오는 그런 사상이나 주의나 이런 것들은 인생의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방향을 끌고 가는 것이고, 그게 일곱 머리고. 열 뿔이란 것은 그 방향을 소망과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과 방법을 열 뿔이라 힘이라 그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겁니다.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일곱 머리는 뭐라 그랬습니까? 일곱 머리는 지식이고 사상이고 주의들인데, 그 사상이라 말은 사람의 모든 걸어갈 그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게 사상입니다. 주의라는 것. 그러면 지식 거기서 사람들이 ‘무엇이 더 좋다, 가치있다, 어떻게 사람이 살아가야 되며, 어디를 향해서 가는가? 사람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성취하고 달성하고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면은 인생 살이를 바로 하는 것이 되는가?’ 인생은 한번뿐인 인생인 것을 사람이 알고, 한번만 주어진 인생 70년, 80년 가면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죽으면 끝나는, 안 믿는 사람들 표현으로, 그런 인생살이를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서 70년, 80년 살아서 집을 한 채 장만할까? 회사를 만들까? 돈을 많이 모아서 부동산을 사서 자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까? 이름을 남겨줄까? 뭘 할까? 그런 사람들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짓고 끌고가는 원동이 되는 게 지식이고, 사상이고, 주의들이라 그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수단과 방편을 가리켜서 뭐라 한다고요? 열 뿔이고, 그게 바로 힘이라 그말이지요, 힘. 힘이란 것은 수단이고 방법입니다. 나라의 법이란 것은 뭡니까? 나라의 법은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입니다. 통치 수단, 법이 없으면 통치를 못하지 않습니까? 군대란 것은 나라를 지키는 힘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방법. 사람 숫자가 많아야 되고, 사람 숫자보다도 돈이 많아서 무기를 아주 최첨단의 무기를 잘 사놓고 만들어놓으면 사람 대신에 무기를 가지고 나라 지킬 수 있으니까 그것도 나라 지키는 국방의 방법이다 그말입니다. 세금을 거두는 것은, 나라 살림 살아가는 그런 수단이기 때문에 나라에 세금 거두는 그런 법을 만들어놓는 겁니다. 그게 전부다 말하자면 힘이다 그말이지요. 언론이란 것도, 언론이란 것은 사회 모든 구석 구석에 잘못된 것, 어두운 구석을 밝혀내서 드러내가지고 그런 것을 고치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혼자 안되니까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많은 사람의 목소리 큰 목소리 내는 것도 자기 목적 성취를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는 그것도 하나의 수단이고. 그게 전부다 다른 말로 말하면 무엇이라고요? 힘이고, 그 힘을 성경에 말하기를 ‘열 뿔’. 세상의 모든 수단, 방법, 힘을 가리켜서 통틀어 전부다 열 뿔로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짐승, 일곱 머리, 열 뿔이 있습니다. ‘저희가’ 일곱 머리, 짐승 일곱 머리 열 뿔입니다.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한 뜻이니까 뜻이란 그 속에는 생각과 소원과 목적과 욕심 이런게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한 뜻이라 그말은, 한 마음, 한 소원, 한 생각, 한 목표, 한 방향이라 그말입니다. 그런데 짐승 일곱 머리 열 뿔이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지식과 힘들이 다 하나로 모아가지고 하나되서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 짐승의 능력 권세, 또 일곱 머리와 열 뿔의 능력과 권세,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 방법 실력과 부여받은 수권 범위 전부의 능력과 권세겠는데, 말하자면은 자기에게 주어진 전부, 자기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과 주어진 주권에 전부를 다 가지고 한 뜻을 가지고 자기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그러면 세상에게 주더라 그말은, 한 뜻을 가지고 전부 모아가지고 세상에 줬으니까 주더라 그말은 모으더라는 뜻이고 합하더라는 것이고 하나가 되더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말세가 되니까 짐승과 일곱 머리 열 뿔,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의 지식과 거기서 나온 모든 것들과 모든 것의 힘들이 전부다 똘똘 뭉쳐가지고 하나가 되어지더라. 뭉쳐지더라, 단합이 되어지더라 이게 말세지말 세상에 되어질 모습을 본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데, 이걸 좀 더 생각해보면, 그러면 주체가 짐승이 있고 일곱 머리 있고 열 뿔이 있는데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줬습니다. 짐승은 뭐라 그랬습니까? 짐승은 세상입니다. 세상인데, 그 짐승이 그 앞에 보면은 13장입니까? 17장 3절에 보니까,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여자가 탄 짐승이지요. 그 짐승이 바로 이 세상이다 그말인데, 이걸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세상이 짐승이다’. 그러면 세상이 무엇이 세상인가? 세상이란 것은, 어느 하나로 딱 단정지어서 말할 수 없겠지요. 지구가 세상인가? 물질계 우주가 세상인가? 지구라는 것은, 하나의 공간이고 우주는 더 넓은 공간이 되겠고,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지구라는 땅덩어리 속에는 6천년 세월 속에 하나님이 만드신 인간이 그 지구에 살면서 인간들이 생각하고 공부하고 연구하고 이리 저리 단합하고 좋아하고 그래가지고 만들어내놓은 그런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그런 것들이 말하자면은 6천년 역사 속에 사람들이 만들어내놓은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유형 무형에 과학도 있고 그 속에는 경제 발전도 있고, 문화도 있고 유행도 있고, 종교도 있고 정치도 있고, 또 교육도 있고, 미계할때부터 문명이 발달된 오늘까지 발달되고 발전된 세상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 세상의 모습들 그 속에,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21세기 세상 속에 발달된 그 세상에 있는 제도와 조직과 그런 모든 문화들 이런 것 전부다가 한말로 말하면 세상인데 그게 짐승이다 그말이지요. 그 속에 가장 중심되는 것은 사람이 그 속에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악령이고. 그러면 일곱 머리 열 뿔,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과 그 지식으로 만든 모든 것들과 사람들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사상과 주의나 이런 것들이 다 합하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 되어지는 모든 세상 힘들이 다 합해가지고 자기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줬는데, 이거는 이들이 무슨 인격이 있어서 일곱 머리 열 뿔이 지정리가 있고 인격이 있고 자의성이 있어가지고 그것을 양도 증명서를 받고 인계인수하고 그렇게 주는 것이 아니고, 이런 것들이 전부다 세월 속에 다 합해가지고 하나로 되어지더라 그말입니다. 세월 속에서 하나가 되어지는데, 그 하나가 되어지는 그 중심 속에 하나를 그렇게 만드는 주체자가 무엇인고 하니, 그 주체자가 전부 인간이겠고. 인간 없는 세상은, 지금은 인간 없는 세상이 있긴 있지만은 이 세상에 사람이 없으면, 인류가 다 없으면 이 세상은 황폐화되고 세상말로 말하면 자연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인간이 있으니까 그 인간들에 의해서 세상은 인간들의 생각대로 욕망대로 실력껏 이 세상은 발달이 되어지고 그런 모양으로 만들어져가는 그런 세상이 되어져서 그래서 결국 말하면 짐승에게 주더라 그말은, 세상에게 주는 것이고 이 세상에 주인 주체가 되어지는 인간에게 주더라 그말인데, 어떤 특정한 인간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그 세상이 그런 세상으로 세월 속에 인간들의 생각과 인간들의 욕망과 인간들의 모든 하나님 없는 그런 깨달음에 의해서 생겨지는 그 방향으로 모든 세상은 흘러가더라, 그렇게 만들어지더라 그런 뜻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흘러가고, 그렇게 만들어지는 그 속에는 악령이 그렇게 만드는 것인데 그렇게 되어지는 방향이 무엇인고 하니, 말세가 되니까 세상은 전부 하나님은 점점 멀어지고 뒤로하고 인간이 전면에 들어가서 인간이 주체가 되고 중심이 되고 인간이 주가 되고, 인간이 하나님이 되어지는 그런 세상이 점점 점점 되어져 가더라. 그리고 이 세상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지는 그런 세상이 점점 되어져 가더라 그말입니다.
이런 세상이 되고 있습니까? 지금 세상이 이런 세상이 되고 있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어느 나라,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인간, 인본주의, 인권을 말하고 주장하는 그것이 힘을 얻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말고, 그러니까 지금 이번에 UN에서 북한 인권을 두고 뭔가를 결의를 하니까 북한의 저 독한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어쩔 줄 모른다 그러지요. 북한 정권을 UN 법정에 세워야 된다 이런 결의를 하니까, 최종적인 결의됐는지 모르겠지만은, 그 인권을 말하니까 일당 독재국가 북한 저기서도 그것 때문에 아주 많이 당황을 한다 그러지요. 그런데 저 이슬람교 저 사람들은 종교국가고 종교전이 되다 보니까, 거기는 인권은 아주 뭐 같이 여기는데, 저 사람들도 시간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말세가 되면 이게 점점 심화가 되어져서 사람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사람이 오로지 전부다. 모든 나라의 정치 제도와 조직과 법과 모든 교육과 모든 것 전부다가 사람에게 다 맞춰지는 이게 세계의 흐름이고, 말세 시대의 흐름이 되어지는 겁니다. 사람이 전부다 그말이지요. 이게 결코 나쁜 말이 아니고 대단히 좋은 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걸 자꾸 말하는 겁니다. 어쨌든 모든 것은 전부다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 되고 사람 때문에 있어야 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전부다다. 이게 이 세상이 말하는 마지막 시대에 모습이 점점 되어져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어느 주의나 사상이나 종교나 할 것 없이 전부다 인간 중심, 그런 주장이 되어지니까 사람이 여기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은 어디에도 어떤 경우도 있을 수가 없다 그말이지요. 온 세상이 전부다 이리 되어지는, 이게 자연적으로 성경적으로 보니까 시대적으로 이렇게 모든 것이 주장이 흘러가고 조직과 제도가 흘러가고 모든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고 자연적으로 흘러가서 인간이 제일이다는 여기에는 이론이 없는 겁니다. 이론이 없고 이견이 없고 전부다가 공산주의, 민주주의, 정치제도 할 것 없이 전부다 이쪽에는 다 하나가 되어지는 겁니다. 겁데기로 말하면, 지금은 좀 덜하지만은 공산주의, 민주주의가 많이 싸웠고, 종교 종교끼리도 많이 싸웠고, 또 같은 나라안에서 단체와 단체끼리 시비하고 싸우는 이런 모습이 많이 보여져도, 민족과 민족이 싸우고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이런게 보여져도 그 속에 들어가서 인본주의 사상이라는 이 사상, 사상이란 것은 혈육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상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사상에는 민족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상이라는 건, 종교도 일종에 사상인데, 그 사상은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을 다 초월하는 그런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런데 가장 큰 사상이 바로 인본주의 사상이니까 이 인본주의 사상은 말세가 되면은 동서양이 따로 없고 흑인 백인이 따로 없고 온 세상 전부다가 뭉쳐서 인본주의, 인간이 제일 전부라는 여기에는 다 하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된다 말이지요. 이게 말세지말 세상이 되어지는 그런 모습이고 흐름이라 그말입니다. 지금 세상이 그렇게 갑니다, 지금.
이런 걸 우리가 자세히는 몰라도 전체적인 방향으로 나라의 법이라든지, 제도 조직이라든지 또 흘러가는 유행이라든지 세계 국제정치 흐름 이런 것 속에서 우리가 살펴봐야 됩니다. 과연 그러한가? 세계는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리 되는데, 여기서 여기 합할 수 없는 종자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이 세상에 있는데, 결코 인간이 제일이고 전부라는 그 중심이라는 그 사상에 합치될 수 없는 종자가 이 세상에 어떤 것도 다 합해지고 다 맞는데, 하나가 되어지는데, 딱 하나만 안되는 것이니 그 종자가 뭐냐? 그 종자가 바로 하나님에 뿌리 박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종자고, 그 어린 양의 모습인 참된 기독교, 참된 교회는 그 사상과 결코 하나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대립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싸운다는 말은, 이 세상이 일부러 기독교를 이제 앞으로 드러나게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은, 어떤 특정 교회를 기독교를 그렇게 박해하고 박멸하는 그런 역사도 드러나게도 할 수 있겠지만은, 드러나게 그렇게 된다기보다 악령은 그 목적 가지고 그렇게 역사를 하고 세상을 몰아가는데, 외부로 드러나기는 그리 하지 않는데, 그런데 세상에 모든 각 나라의 법과 조직과 제도와 문화와 유행과 모든 흐름이 다 그렇게 흘러가고, 또 사람들의 인식들이 세월 속에서 그런 방향으로 사람들이 지식이 그리 되어가고 그렇게 사람들이 순간 순간 행동을 그렇게 하고 사리 판단을 그렇게 하고 생활을 그렇게 하다보니까 그런 사람들로 점점 바꾸어져 가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되면 굉장히 무섭습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결혼두고 그리 말을 하는데, 우리 공회 청년 남녀들 왠만한 사람들은 결혼에 대해서 결혼 비용을 두고는 크게 별로 걱정을 안하지요. 교회서 하면은 돈 하나도 안 드니까. 또 간단하게 하면 되니까. 그렇게 웬만큼 신앙 있는 분들은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고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거기 대해서 생각을 안하는데, 그런데 일반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이렇게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 하려면 예식장을 잡아야 되고, 예식장은 번듯한 곳을 잡아야 되고, 드레스를 입어야 되고 장식을 해야 되니까 적어도 몇 천 만원이 들어간다는게 사람들의 인식이고, 소박하게 사소하게 했다 그러는데도 몇 백만원 들고 일이천만원 들어도 아주 소박하게, 돈을 적게 들였다고 하는데도 적어도 몇 백만원이거든요. 그게 그 사람들의 인식이고, 우리 나라라는, 우리 나라에 한정된 거지만은, 대한민국 현시대는 그렇게 되어있어서 흐름이 그렇게 되고 있는 겁니다. 그게 말하자면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 방식과 그렇게 된 사람들의 차이인데, 그런 가정 환경 속에,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그렇게 보고 듣고 거기 참여하고 그렇게 산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이고 그렇게 안 하는 것이 이상한 겁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려면 하지만은 왜 그렇게 허례허식을 하고 돈을 그렇게 낭비를 하는지, 하루 자기 모습 과시하는데 몇 천만원, 몇 백만원 들여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를 우리는 전혀 상관이 없잖습니까?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자면은 이렇게 사람이 생각이 다르고 지식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사는 모습이 다르고 거기다 사람까지 달라버리니까 서로 조화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물과 기름이 서로 섞일 수가 없듯이, 닭과 오리가 서로 하나될 수 없듯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사람이 전부라는 그것이 그 사람들의 어릴적부터, 모든 것에서 듣고 보고 배우고 그렇게 살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사람으로 평생을 그렇게 살고 자녀 교육도 그렇게 시키고 모든 세상이 짜여지기를 그렇게 짜여져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사람이 전부고 중심이고 사람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종교도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 넘어서는 종교가 없다. 신문에 한번씩 보면, 종교란에 보면은 목사들, 불교, 천주교 일 하는 것 보면은 그런 방향으로 목사든지 중들이든지 신부가 그렇게 해놓은 것은 칭찬일색입니다, 전부다. 다 그 방향으로 몰아갑니다. 사람이 전부라는 그 방향으로.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고. 그것이 말세지말 21세기에 온 세상의 흐름인데, 문제는 그런데 성경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에게 지음 받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고, 하나님에게 종속이 되어야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서 사람에게 손해가 가도, 사람이 살지 못해도, 사람이 마지막에는 죽어도 하나님은 드러나야 되고 그분의 뜻은 순종해야 되는 이것이 기독교라는 이것이 기독교기 때문에 이런 사상과 세상 사상은 결코 하나될 수가 없어서 문제는 이 세상이 하나님 없는 인본주의로 가득찬 그 세상이 이 세상에 주권을 가지고 있고, 주인 노릇을 하고 있고 학교도, 회사도, 사업체도, 또 사회 흐름도 모든 분위기도 또 모든 집안 전체도 전부다 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신앙을 붙들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된다는 이 성경 진리를 지켜서 그대로 살아나가려고 그러면 골동품처럼 돌리는 개밥에 도토리라 그럽니까, 그것처럼 다글따글 몰려서 외통으로 몰려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 교육을 시켜야 되겠는데, 공부는 시켜야 되겠는데, 이게 공교육을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학교를 보내보니까 그냥 그 감당할 수 있을만큼 되면 되겠는데 공부는 해야 되고 학교 가니까 보는 것 듣는 것 전부다가 이거는 신앙과 맞지 않는 그런 흐름이 다 있으면 부득이하게 그렇게까지해서 다녀야 되는가? 어느정도까지 되고나면 다른 길이 없는가? 다른 길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직장 생활해도 그런 세상 생활에 다 맞춰서 사람이 살아가는데는 전세방 얻어도 어느 정도 되어야 되고, 방은 몇 칸이 되어야 되고, 아파트는 사야 되고 자동차 있어야 되고 어느 정도 먹고 살아야 되는 그런 것 맞추려면 연봉이 얼마 되어야 되고 거기 맞춰서 직장을 구하려 그러니까 직장 찾기가 그렇게 어렵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 하지 아니하고 애굽에 중심부 바로 왕의 궁에 살았어도, 40년을 살아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성민이라 그것을 잊지 않고 살았던 모세처럼, 이 세상에 살지만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멸시를 받고 천대 받고 조롱을 받아도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지, 밥을 굶고 살고 달셋방 살이 하고, 아주 가난하게 없이 살아도 계명 지키면서 살지, 이 세상에 그 시대 맞는 사람처럼 계명 어기면서 하나님 뜻 거역하며 사는 생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모세 신앙이고, 믿는 사람의 생활인데 그렇게 살라고 그러면 그만큼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싸움이란 것은, 이런 싸움입니다. 우리는 신앙 싸움이고, 사상전이고 이건데, 그래서 그 싸움이란 것이 드러나서 그들이 박해한다기보다 짜여지기를 세상이 그렇게 짜여놓으니까, 물로만 가득 들어있는 거기에 기름이 들어가서 물과 섞이려그러면 기름은 동동 뜨고 물이 될 수가 없는 것처럼, 이 세상 자체가 모든 것이 전부 그런 세상으로 그렇게 다 만들어진 그 속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 지키면서 믿음 지키면서 살아가려 하다보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다 있게 되어지는데, 그 어려움이 바로 신앙 전투가 되고 싸움이 되는 건데, 문제는 그 싸움에서 우리가 지지 아니하고 그때 신앙이란 것은, 그래서 기독교라는 것은, 기독교라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걸 향해 가는게 기독교 아닙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욕망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 아니고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얻고자 하고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그런 세상 속에서 믿는 사람이 살아가려 하니까 많은 어려움을 만나게 되고 그럴때 사람이 그 어려움 속에서도 경제 어려움, 인간 관계 어려움, 자기 위신의 어려움, 수많은 세상 살이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신앙으로 성공을 하려고 하면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이걸 본문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방향이란 것은, 온 세상이 전부 인본과 세본 세상 주의로 나아가는 거기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우리는 신본에 신앙 천국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방향이고, 그렇게 나아가는 그 방향, 그 방향을 향해서 나아갈 때 어떻게 하면 그 방향으로 성공하고 실패하지 아니하고 나아갈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말씀하시기를,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는데, 어린 양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길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택함 받고 중생된 사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 그 말세지말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한 종류 밖에 없으니 진실한 자만 이길 수 있다 그랬으니까 현장을, 세상과 하나되지 아니하고 신본과 천국 향해서 걸어가는 그 방향의 실제 현장에 걸어가는 것은 자기가 진실한 사람이 되는 그 일을 위해서 힘을 쓰는 것이라 그말이고, 진실한 사람이란 뭐냐? 사람 자체가 그 사람이 되어지는 걸 말하는 겁니다. 지난 오일밤 예배때, 예수 그리스도를 터로 삼고 그 터 위에서 지식을 건설하고 행위를 건설하고 사람을 건설하는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이고 평생 믿음 생활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 건설하는 그 건설, 그러니까 결론, 최종적으로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인간의 사람이 아닌, 인본의 사람이 아닌 신본의 사람이고, 세상 사람이 아닌 천국 사람으로, 그 사람 자체가 그런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이 우리 신앙에 방향, 중간 목표가 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게 진실인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렇게 하려면 자기 주어진 현실 속에서 자기 지식을 아는 것을, 모든 사물과 사건과 인간관계와 당면한 자기 눈에 보이고 들려지고 접해지는 모든 존재와 모든 사건과 모든 관계 전부를 알기를 판단하는 그 잣대 삼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하고 판단도 하고 처리하는 그 지식,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답이고 교과서고 법이고 기준이고 잣대가 되는 이것이 자기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는 그 지식이니 그게 바로 지식의 진실이라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 아는 것이 진실한 지식이다 그말입니다. 사람을 아는 것도, 인간 관계를 아는 것도, 승패를 아는 것도, 행불행을 아는 것도, 물질을 아는 것도 모든 걸 알기를 그 아는 잣대를 뭘로 아느냐? 기준을 뭘로 정하느냐? 사람의 행복은 무엇이 행복입니까? 학생들의 행복은 성적순인가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그러지요. 학생들의,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은, 낙천적이고 그런 학생들이 보는 관점에서 위로하는 말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 그러지만은,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행복은 성적순이지요.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은 돈 순 아닙니까, 돈?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불행한, 이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행복관은 그게 아니다 그말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넓은 집, 잘 꾸며진 그런 정원, 편리한 생활 공간, 여러 가지 문화 용품들, 이런 집이라던지 그런 가정이 되어있으면 그게 살기 좋은 그런 집이라 그게 세상 사람들이 보는 관점이지만은, 예수 믿는 사람의 관점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라. 단칸방에 살아도 하나님을 모시고 믿음 생활, 계명 지키는 그 생활 할 수 있으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고 믿는 사람의 생활이라. 못나고 가난해도 예수 잘 믿을 수 있고, 계명 잘 지킬 수 있고, 신앙 자유 할 수 있으면 그게 믿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최적의 조건이라. 이것이 믿는 사람들의 인식이고, 이렇게 인식을 가지는 걸 가리켜서 그 사람의 지식이 진실하다는 겁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지니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먹을 것, 입을 것 없는 사람 있습니까?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때문에 신앙 자유 못 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핑계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그것 때문에 예배 자유 못한다는 것은 다 핑계입니다, 이 시대에는. 그 속에서 먹을 수 있지만은 사람이 ‘라면만 먹고 사나?’ 또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먹어야 되는데, ‘먹기만 하면 되나? 맛도 있어야지’ ‘영양도 있어야지’ ‘좀 고급스럽고 건강에 좋아야지’ ‘입기만 하면 되는가? 멋도 나야지’ ‘비만 피하면 되는가? 좀 넓고 편리해야지’, 전부 욕심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성경은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는데, 그 성경을 가감하고, ‘그래도 돈은 좀 많았으면’ ‘공부는 좀 많이 했으면’ ‘뭐는 좋았으면’, 사람들이 가감을 해서 그렇게 하기 때문에 신앙 자유, 집회 자유, 예배 자유를 못하고 여러 가지 세상에 붙들려 있는 것이지, 정말 성경대로 그렇게 믿어나간다면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지요. 그게 지식이고, 그 지식대로 당면한 순간 순간 현실을, 하루 하루를 살아나가는 겁니다. 그렇게 나가면 사람이란 것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어서 경제 생활이든지, 인간 관계든지, 모든 사건 처리든지, 자기 앞날 미래든지, 자녀 교육이든지, 결혼이든지, 가정 생활이든지, 무엇이든지 전부다 하나님의 성경 말씀, 믿음 중심으로 하는 그것을 그렇게 법으로 알고 그렇게 살고, 그렇게 실질적으로 당면한 그 순간 순간을 그렇게 살아나가다보면 자기라는 사람은 세월 속에 어느샌가 성경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져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되어져 있으면 이 세상이 인본으로 똘똘 뭉쳐서 인간 중심, 이 세상 중심, 그런 세상이 다 되어져도 그 속에 살아도 그 사람은 거기서 그들에게 삼켜지지 아니하고 살아갈 수 있는, 승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진다는 겁니다. 이게 어느날 갑자기 투쟁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그러기 때문에 평소 우리의 지식이 중요합니다. 그 지식은 다른 말로 말하면, ‘관’입니다, ‘관’. 가치관, 인생관, 행복관, 또 경제관, 인간관계관. 어떻게 보느냐? 인생살이 어떻게 보느냐? 무엇을 가치로 여기느냐? 무엇이 행복이냐? 무엇이 성공이냐? 이걸 따져 보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그래서 이 지식을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그래서 이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이 관점에서 보는 겁니다, 전부다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것을 전부 이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망원경 삼아서 보는 겁니다. 노란색 안경을 끼고 보면 세상이 노랗게 보이고, 파란색 안경 끼면 파랗게 보여지는 것이고, 검은색 안경 끼면 어둡게 보이는 것이고, 이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경으로 삼아서 이 말씀을 끼고 이 말씀을 안약으로 삼아서 이 말씀으로 모든 세상을 다 보는 겁니다. 이걸 가리켜서 지식이 진실하다. 이 말씀으로 내 지식을 삼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자기 앞에 닥치는 인간관계, 자기 개인 생활, 가정생활, 경건생활, 조심하는 생활, 순간 순간의 모든 생활 이대로 하나 하나 실제로 걸어가는 겁니다. 그게 말씀대로 사는 행동이 되는 것이고. 그런 지식과 행동으로 그렇게 살아나가다보면은 세월 속에 자기라는 사람은 어느샌가 그런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져 있는 겁니다. 그 지식과 그대로 사는 만큼 사람은 변화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일밤 예배때도 그 말씀 나왔는데,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말의 실수를 안하고 신중한 그런 사람이 되겠다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평소 말을 많이 하고 말과 행동이 다른 그 사람이 언행일치의 신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안되는 겁니다. 행동을 가볍게 처신하는 사람이 신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도 안되는 겁니다. 현재 날마다 시간을 허비하고 허비하고 잠을 자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겠다고 아무리 목표를 세워놔도 될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현재 행동을 하느냐 따라서 그 사람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이거는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이치기 때문에 변할 수가 없는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이 아니고 바로 오늘이고 지금 이순간이라 그러지 않습니까? 거짓말을 안하는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으냐? 현재 한번만 거짓말 하고, ‘돈이 너무 큰 손해가 되니까 이번만 거짓말 하고 다음부터 절대 거짓말 안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번만 하겠습니다.’ 그 사람은 절대 정직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겁니다. 지금 이 순간에 돈 억만금 손해봐도 거짓말 안해야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이 순간 너무 몸이 피곤해서 지금은 병이 날 정도라서 쓰러질 그 정도 되면 모르겠지만은, 잠자기 좋아하는 사람이 ‘오늘만 자고 내일부터 안 자겠다’ 그 사람은 안됩니다. 오늘, 지금 쓰러져도 그 순간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야 되지, 지금 오늘만 자고, 오늘만 게임하고, 한번만 하고, 안됩니다, 그거는. 그 행동이 그 사람을 만든다 그말입니다. 보나 안보나 그 사람은 과거부터 오늘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지금의 그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행동이 사람을 만드는 것, 이걸 오늘 가장 많이 강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식이 그 사람의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그 사람을 만든다는 겁니다. 어떻게 말하느냐? 어떻게 행동하느냐? 그러니까 바로 지금 이순간, 예배 시간에 조는 사람도 오늘 졸았지만은 내일부터는, 지나간 건 할 수 없겠지만은, 지각하는 것도. 그러니까 항상 조는 사람 항상 졸고, 지각 하는 사람 항상 지각을 하고, 하는 사람은 항상 하고 안 하는 사람은 항상 안 하고 늘 그런 것이 그 사람이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진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 방향은, 이 세상 말세가 어떤 세상이 되어질 것을 중대하게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되고 보는 시야를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란 그분은 우리가 실존의 분으로 알고, 그분을 우리 머릿속에 두고 그분이 살아계시고 그분 중심으로 모든 것 살아야 되고 나가야 되는데 그걸 가지고 세상 모든 것을 신문과 모든 흐름을 다 보면은 이 세상은 점점 하나님은 없는 그런 세상으로 되어져 가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지라도 예수 믿는 많은 교회들이 전부, 이름은 교회인데 인간이 전부다 하나님 되어있는 그런 교회가 많고, 또 하나님을 찾고 싶은데 어떻게 찾을 줄 모르니까 방황하는 그런 교회도 많고, 참 하나님을 찾아 모시고 그분 향해 나아가는 그런 진실한 교회들, 그런 신앙들은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그런 시대가 되어지기 때문에 주님이 내가 세상에 올때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을 하신 그대로 지금 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시대를 보면서 그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될 것인가? 그런 시대 속에 삼켜지지 아니하고 그들과 하나되지 않아서 그런 인본주의의, 세상주의의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런 종자가 되어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식을 진실하게 해서 성경 말씀으로 안약을 삼아서 모든 걸 성경 말씀을 잣대로 삼는 그게 되어야 되고, 그대로 순간 순간을 살아가는 그런 내가 되어질 때, 그런 사람이 되어서 세상이 감당치 못할 바로의 궁에 있는 모세 같은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방향과 현장을 함께. 그러기 때문에 방향은 신본에, 천국에, 또 진실한 사람에. 현장에서는 말씀 순종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방향과 현실의 생활이라 하는 겁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고 믿으면 한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으로 내 지식을 삼아서 이 말씀 가지고 모든 것을 보는 그런 눈을 가지는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지식 삼는 진실한 지식이 되는 것이고 그대로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 진실한 행동이 되는 것이고 그리 되면 사람은 말씀대로의 사람이 저절로 되게 되고, 그 사람이 말세를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