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주전(눅10:25-37)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자2014-10-12조회 286추천 27
본문: 누가복음 10장 25절-37절(요약/2014.10.12.주일)
제목: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자
1. 영생 얻는 질문과 이웃
1)율법사와 예수님의 문답
-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계명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 마음 목숨 힘 뜻 다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라
-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2)이웃이 누구인가, 이웃을 어떻게 사귀는가?
2. 본문의 비유와 해석
1)어떤 사람이
- ‘어떤 사람’이라 했으니 불특정의 사람
-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해당될 수 있는 경우
- 나도 내 주변의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음
- 즉 나도 강도 만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
2)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 예루살렘은 하나님 백성의 중심지
- 이스라엘의 수도로 성전이 있고 하나님이 계신 곳
- 하나님 모시고 말씀 지키며 믿음으로 사는 곳
- 여리고는 하나님 없는 곳
- 여리고로 내려가는 것은 하나님, 말씀, 믿음 떠나는 것
- 신앙의 후퇴, 타락하여 내려가는 것
- 내려가는 이유는 ①힘들고 어려워 어려움 피해 ②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3)강도를 만나매
- 강도는 불한당, 땀 흘리지 않고 이득 취하는 무리
- 마귀는 불한당, 하나님 하신 것을 제가 했다 하며 사람을 미혹
- 강도(불한당) 마귀 만난 것은 미혹의 세상, 사람, 미혹의 모든 것들 만난 것
- 그 옷을 벗기고: 대속의 옷, 믿음의 옷, 진실의 옷, 성결의 옷을 벗기고
- 때려: 양심을 때리고, 생각을 때리고, 마음을 때리고 행동을 때려
- 거반 죽게 된 것: 새사람은 숨만 붙어 있지 죽은 자와 같고 옛사람이 강해진
- 죄 가운데, 사망 가운데 빠져 믿음은 완전히 죽은 상태로
4)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하여 가고
- 당시 유대 나라는 정교일치의 체제
- 제사장은 종교 지도자이면서 정치 지도자
- 가장 존경 받는 사람, 가장 실력 있고 힘 있는 사람
- 레위인은 성전의 업무를 맡은 사람들
- 하나님의 도를 잘 알고 봉사와 희생을 하는 사람들
- 제사장도 레위인도 상한 사람을 보고 피하여 도망
- 교회 지도자, 정치 지도자, 수고와 희생의 사람도 구원치 않아
- 강도 만난 사람은 낙망할 수밖에 없고, 자력 회생은 불가능 상태
5)어떤 사마리아인이 구출
-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앙숙 관계
- 앗수르의 북 이스라엘 멸망 후 이방인들 들어와 오랜 세월 거주, 혼혈
- 사마리아는 이방인의 마을이 되고 유대인들과 원수처럼 된 관계
- 사마리아인 오는 것 보고 이제는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
- 불쌍히 여겨 나귀에서 내려 가까이 가서
-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주며 부탁, 부비가 더 들면 올 때 주리라
-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
3.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자
1)사마리아인의 7가지 은혜
①나귀에서 내려: 부요 영광 내놓고 낮아지고 사람 되어 오셔서
②포도주를 붓고: 보혈의 공로로 죄를 씻겨서
③기름을 붓고: 성령으로 감화 감동시켜
④붕대로 싸매고: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⑤자기 짐승에 태워: 인간이 본 지위를 회복시켜
⑥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지상 교회에 맡겨
⑦부비가 더 들면 올 때: 재림하실 때 갚으리라
2)사마리아인으로 이웃을 삼고,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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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율법사라는 것은 다른 말로 교법사라 그리 말하는데 교법사란 말은 가르칠 교자 법법자 법을 가르치는 사람 율법사라 말은 법을 연구하고 잘아는 사람을 율법사라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여기 율법사는 로마에 법을 연구하는 거기 중점을 둔 것이라고도 말하나 그냥 세상 상식이고 성경에 기록된 율법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연구하는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율법사라 혹은 교법사라 그리 말합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여기 시험이란 것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험치는 그런 의미보다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가르치고 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니까 율법을 잘 아는 이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대해서 얼마만큼 정확하게 잘 아는가? 말하자면 예수님의 그 실력을 시험하는 그런 비슷한 의미로 시험했다 그리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성자 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우리 구주로 오셨지마는 성경에 많이 기록돼 있고 그 때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구주신줄 알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마는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분이 엘리야다 예레미야다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다 혹은 세례요한이다 이렇게 그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 잘 못 알고 있었습니다. 글런데 예수님은 자존하시며 창조주시며 전지 전능하신 완전자이신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지극히 크고 영화로우신 분이신데 많은 사람은 그를 사람인줄 알았고 이 율법사도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자기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거나 혹 자기보다 모르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해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람은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알면은 감히 이렇게 시험해서 물어볼 수가 없는겁니다. 어쨌든 예수님을 시험해서 물어보기를 율법사가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면 오늘 봉독한 말씀 전체는 영생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고 있고 그런데 예수님께서 답하시기를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하나님의 법에 하나님의 모든것은 영생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하나님이 영생케하는것이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생하는 법을 성경 말씀 율법에 기록해 놓으셨으니까 니가 어떻게 영생하느냐고 묻는데 네가 율법사니까 하나님의 법을 알 것이 아니냐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으며 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율법에 아무리 바로 기록되어 있어도 읽는 사람이 잘 못 읽으면 헛일이니까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첫째 뭘 물었다고요?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두번째는요? 너는 어떻게 읽느냐. 요거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성경의 진리는한 진리입니다. 구원얻는 도리는 하나고 한 진리인데 한 진리를 읽는 사람에 따라서 열 가지로 읽고 백 가지로 읽고 수 없이 많은 깨달음으로 읽게 되기 때문에 성경에서 많은 교파가 생겨지고 많은 이단들도 생겨지게 되는겁니다. 성경은 한 진리인데 한 진리 말씀을 우리가 읽을 때 정확하게 바로 읽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고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시니까 이 사람이 똑똑하게 대답했습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예. 성경 율법을 읽어보니까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한 말로 말하면 너의 가진 마음과 몸 가진 전부를 다하여 첫째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번째는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요래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영생 얻는 법은 무엇인가? 한 말로 말하면 사랑이고 그 사랑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 얻는 법입니다. 이게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입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되 내 전부를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나의 가진 전부를 다 드려서 이웃을 사랑할 때 그것이 무슨 방법입니까? 영생을 얻는 방법이다 그 말입니다. 요래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이렇게 읽었습니다. 하고 주님에게 말씀드리니까 예수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바로 읽었다 바로 봤고 바로 깨달았다 그대로 행해라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율법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똑똑하게 정확하게 하나님 앞에 실력있는 사람으로 좀 더 자기를 돋우어 보이려고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그러면 영생얻는 법을 물으니까 말씀하시기를 전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 번째는 누구를 사랑하라고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니까 이 율법사가 다시 묻기를 하나님은 제가 보지는 못해도 정확하게 몰라도 내가 믿는 분이니까 알겠는데 이웃이라 그러면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굉장히 많은데 이웃이 누가 이웃입니까? 이리 물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의 핵심은 이 이웃을 말씀합니다. 다 같이 해보십시다 이웃. 이웃.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웃이라 그러면 가까이 사는 사람들 혈육은 아닌데 일가 친척은 아닌데 옆에 주변에 가까이 있는 그런 사람들. 이웃이라 말하지요. 이웃은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 하는 말도 있지요. 영생얻는 법을 물었고 영생얻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율법사가 다시 묻기를 그러면 이웃이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이 나의 이웃이 됩니까 하고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고 지칭은 했으나 그 어떤 이라는 말 속에 특정한 계층이라던지 특징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의 뒤에 읽어보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이 어떤 사람은 누가 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 속에는 제사장도 들어갈 수 있고 율법사도 들어갈 수 있고 또 가난한 사람도 들어갈 수 있고 부자도 들어갈 수 있고 그 누구든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전부 다 이 어떤 사람이 하는 이 어떤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유지마는 생각해봐야 됩니다. 지금 율법사가 첫째 뭘 물었습니까? 영생얻는 법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네 전부를 다하여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이웃을 사랑하라. 율법사가 하나님은 알겠는데 이웃이 누구입니까 물어서 이웃을 설명하는 그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할 때 그 이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 비유 입니다. 이 때 부터. 요 내용을 읽어보면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그러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라고 지칭 하면서 특징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누가 될지 모릅니다. 비유로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으나 그 실상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그 어떤 사람이 이 속에 들어갈지 모릅니다. 누구든 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저나 여기계시는 여러분 누구나 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입니다. 수도가 예루살렘입니다. 수도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서울이라 그러지요 그 나라의 서울. 그 나라의 수도. 가장 그 나라에 중심되는 거기가 수도인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 백성의 중심지고 그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있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집을 두 글자로 성전이라 그럽니다. 거룩할 성자 집전자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 있는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그 성전은 하나님 백성들의 하나님 섬기는 생활의 중심입니다. 성전생활이 하나님 섬기는 생활의 중심이고 전부라 그리 말할 수 있어서 예루살렘을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의 전부,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믿음으로 사는 생활 요 생활에 전심전력 다 기울이고 사는 믿음으로만 사는 이 생활 여기에 전 가치와 욕망과 노력을 다 기울이는 이 생활을 가리켜서 예루살렘이라 말합니다. 이 때는 지명으로 말씀하셨으나 이 지명이 가르치는 도리는 신앙생활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으로 사는 생활 여기에 전 가치와 욕망을 두고 전심 전력을 여기 기울이는 소망을 하늘에 두고 믿음으로 사는 이 생활을 가리켜서 예루살렘 생활이라 그리 말합니다. 믿음으로만 사는 생활입니다. 모든것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하나님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 요 생활을 기러켜 예루살렘 생활이라 그리 말합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다가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여리고는 크게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 도시 중에 하나지마는 그러나 정확하게 요 지명의 비교적으로 따져 본다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것은 타락해서 내려가는 겁니다. 하나님 만으로 전부삼던 사람이 하나님을 좀 멀리하고 인간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전부삼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 순종으로 전부삼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 보다도 다른 말 지식도 참고하고 그리 내려가고. 믿음 만으로 전부삼던 사람이 믿음 아닌 세상 방법을 쓰고 이래가지고 점점 속화되고 후퇴하고 식어지고 타락해서 내려가는 것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생활이 되는겁니다.
어떤 사람이 첫째 기억하십시다. 여기 있는 저도 될 수 있고 여러분들 다 모두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리 되지 않는다 장담 못합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다 그럽니다. 사람은 대동소이합니다. 자칫 한눈 팔면 아차하는 순간에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릅니다. 천하에 성자고 영웅이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던 다윗왕이 한 순간 한눈 팔 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일반인도 생각하기 어려운 그런 큰 어마어마한 살인죄 음행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그런 죄를 지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벧엘에 살다가 어렵고 힘이 드니까 조금씩 조금씩 피해서 점점 남방으로 내려가다가 하나님 없는 세상 애굽까지 타락해서 내려가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그랬기 때문에 이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 누구든 다 포함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래 되지 않는다고 장담하면 선 줄로 생각한 자이기 때문에 넘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모시고 말씀 순종으로 전부 삼고 믿음으로 전부 삼던 이 생활 이 속에 모든게 다 있습니다. 하나님 계시면 거기 전부다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우주도 영계도 생명도 평강도 존귀도 영광도 부요도 모든 행복도 성공도 승리도 전부 하나님 그분에게 다 있습니다. 그분에게 있는 것을 받는 방법이 말씀 순종이고 이게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 모시고 말씀 순종하는 믿음생활 하면은 그 속에 인생의 참된 기쁨이, 쾌락이, 성공이, 진정한 행복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 세상 사람들은 이 깊은 내면을 깨닫지 못하니까 껍데기 행복을 찾습니다. 돈이 많아야 몸이 건강해야 행복하고 직장이 튼튼해야 되고 행복의 성공의 조건들 영광의 조건들이 굉장히 많으나, 성경은 모든 행복은 하나님께 있고 모든 성공 영광 존귀는 그분에게 있고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외부로 보기에는 어떻게 보잘것 없이 보여도 그의 신분이 어떠해도 형편이 어떠해도 나아만 집에 포로로 끌려간 계집종은 신분이 끌려가기를 포로였고 신분이 종이였지마는 그는 그 나아만 아람 나라의 아무도 가지지 못했던 그 나라에 실력있고 공신이었던 나아만 대장 조차도 아람나라의 왕까지도 심지어 이스라엘 나라의 왕과 수많은 사람이 가지지 못했던 참된 평안을 나아만 집의 종으로 끌려간 그 여종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여종은 그 열악한 최악의 형편 속에서 그는 참된 평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을 그 여종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쁨과 감사로 충만 했습니다. 뒤에 드러나지 않았으나 존귀 영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외모로 보기에 보잘것 없는 여종이었습니다. 그런 신분 형편이었는데 그는 참된 행복 참된 만족, 참된 기쁨, 참된 감사, 참된 존귀, 영광, 능력까지 다 가지고 있었으니 지금도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해서 오늘도 그리될 수 있는데 그 조건이 오늘 몇 가지라 말했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리 된다고요? 하나님 모시고 말씀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면 그 속에 전부 다 있습니다. 이 생활을 한 말로 말하면 이게 무슨 생활입니까?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생활입니다. 이 속에 전부 다 있습니다. 거기 성전이 있습니다. 거기 기독자의 모든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인지라 이리 살아가다 보면 이대로 계속 살아나가면 좋겠는데 이대로 계속하지를 못하고 사람이기 때문에 가다보면 힘이 들때 있고 조금씩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씀과 멀어지고 믿음이 식어지면 여리고로 점점 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면 참된 인생의 행복은 점점 자기에게서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지마는 많은 도리 큰 도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 내려갔는가?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으로 전부삼고 말씀 순종으로 전부삼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만 전부로 삼고 이렇게 살아가다가 왜 믿는 사람들이 이탈되고 탈선해서 세상으로 가게 되느냐? 이유는 크게 두가지니 하나는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점점 남방으로 내려간 이유는 기근 때문에 어려워서 배가 고파서 힘이 들어서 그리 내려 갔습니다. 두 번째 누가복음 15장입니까.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도와서 가업을 힘써 함께 이루어 나가면서 큰 일을 해 나가던 둘째아들 탕자가 아버지 모시고 아버지 업을 도와서 앞으로 상속받아 자기것 될 것이고 그러면 그 속에 부족한 것이 없는 모든게 전부 다 있는데 이 탕자에 머리속에 늘 내가 살고 있는 이 환경, 요즘은 일탈이란 말을 긍정적으로 쓰고 예사롭게 쓰는데 일탈이라 말은 타락이라 말이고 죄짓는다는 뜻입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그 현상세계, 이걸 어떤 사람들은 또 개혁이다 보수다 이리 연결 시키는데 조금 다른 차원으로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세상 살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형편, 자기 현실 상황, 말하자면 일상생활 가정주부 같으면 남편 모시고 아들 딸 자녀들 기르고 남편 뒷바라지 하고 자녀 양육하고 집안일 챙겨보고 그래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그게 여인으로서 최고의 행복이라 그리볼 수도 있는 것인데 그리 살다 보니까 항상 1년 열 두달 보는 그 남편을 보니까 그 남편 얼굴이 지겹다 그말이지요. 항상 보던 그 눈코입 그 얼굴이니 남편 얼굴이 지겹고 남편은 아내 얼굴이 권태가 나고. 자식들도 항상 그대로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 처럼 그리 느껴지니까 어떤 남자들이 여자들이 그 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권태를 느껴서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 여자 말고 다른 여자가 없을까 이 남자 말고 다른 남자가 없을까 하고 일탈 탈선해 나가서 그것이 바로 가정이 다 깨지고 쫄딱 망하는 길인데도 그런 생활을 사람들은 예사롭게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님 섬기며 순종해 살고 자기 실력을 쌓아나가는 생활이 학창 생활에 중요하고 전부가 되는 생활인데 늘 그 생활 반복해야 되니까 재미가 없으니까 뭔가좀 특별한 재미가 없을까 하고 나가는 것이 탈선의 지름길입니다. 그리 나가다 보면 헛바람이 들게 되고 안볼 것을 보게 되는 그게 바로 선악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악과가 얼마든지 많아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실과가 에덴동산에 꽉 찼고 하나님 모시고 그분 말씀 순종을 하고 에덴 동산의 주인으로 살면 거기서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 노릇하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데 거기 마귀 귀신이 들어와가지고 꼬아서 하나님 말씀을 정말 믿느냐? 선악과를 따 먹으라 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하나님 말씀만 듣던 사람이 마귀 말을 듣고 보니까 거기에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따먹고 나니까 눈이 정말 열려 버렸습니다. 그게 인간의 타락입니다. 탕자가 바로 그리 나갑니다. 부모님 밑에서 말씀 순종하고 아버지 가업을 도와서 일했는데 그 생활이 지겹고 여기서 떨어져 다른 나라고 가면 다른 생활은 어떨까 하고 꿈꾸는 그 생활이 탕자의 생활인데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이유는 요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뭣 때문에 내려간다고요? 힘이 들어서 어려워서 두번째는요? 뭔가 좀 더 재밌는 일이 없을까 호기심으로 타락해 내려온 이것이 타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그 다음 좋은 일을 만났습니다. 뭘 만났습니까? 성경에 보니까 어떤 좋은일 만났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누구를 만났습니까?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 강도가 구약 성경에는 불한당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니 불자 땀한자 노릴 당자 땀흘리지 아니하고 이득 취하는 도둑놈 그게 바로 불한당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을 만나매 요 불한당입니다. 성경의 불한당은 마귀를 말하고 마귀는 제가 하지 않고 전부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제가 능력있고 지식있다고 하여서 사람을 미혹시켜 꼬아서 넘어뜨리는게 마귀가 쓰는 수법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 마귀를 만났는데 마귀를 만났다 말이 무슨 말일까 생각해보면 마귀를 만났습니다 .마귀가 어떻게 생겼는가요?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 마귀를 만났습니다.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비유의 실상은 믿는 사람이 예루살렘 생활에서 탈선해 내려가면 마귀만난다 그 말입니다. 그 마귀가 어떻게 생겼는가? 마귀는 어찌 생겼습니까? 마귀를 만났답니다. 불한당 마귀. 어떻게 생귄 마귀를 만났을까? 마귀를 만났다 그 말은 한 말로 말하면 같이 해 보시겠습니다. 미혹을 만난 것. 뭘 만났다 말입니까? 미혹의 좋은 것을 만났다 그 말입니다. 이 사람의 정신을 생각을 혼을 쏙 빼앗아 갈 수 있는 좋은것을 이 사람이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니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진리를 버리고 나니까 내 귀에 듣기 좋고 내 마음에 흡족한 말들이 귀에 쏙쏙들어온 말들이 수도 없이 많구나. 믿음을 저버리고 나니까 믿음이란 것은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되니까 나 부인하고 내가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믿음을 떠나고 니니까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자유자가 되었구나.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보니까 강도를 만났는데 마귀를 만났는데 그 마귀가 생긴 모습을 보니까 미혹이란 놈이고 그 미혹이 생긴것을 보면은 하나님을 떠나니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피조물을 만납니다. 좋은 일들. 또 말씀을 떠나고 나니까 인간의 좋은 이치들을 만나게 되고. 믿음을 떠나니까 자유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서 꼼짝도 못하고 이거 고치시요 저거 고치시요 이거 회개하십시요 이렇게 사십시요 주일 어기면 안됩니다. 오전예배 오후예배도 참석해야 됩니다. 대예배는 네 번이라서 삼일예배 오일예배도 드려야 됩니다. 새벽예배 드려야 됩니다. 양심 어기면 안됩니다. 성경 하루에 몇 장 읽으십시요. 기도 하십시요. 반사새오할 하십시요. 자꾸 말씀을 기준해서 자기를 변화시키는 성화를 강조하고 행위를 강조하니까 나사를 너무 조으면 터져버립니다. 나사 조아 보셨습니까? 나사를 힘에 넘치게 조아 버리면 터져버립니다. 그래서 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해 버리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유력한 목사님이 한 말입니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괴로워서 탈선해서 나갑니다. 나가고 나서 어떤 분이 탈선해 나간 목사님을 만났는데 편안한 복장으로 그리 행복하게 다니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디 다니십니까? 은퇴하고 우리 노부부가 여행다닙니다. 은퇴하고 여행다니니까 이렇게 좋습니다. 은퇴하기 전까지 월급받고 퇴직금 받고 돈 모아가지고 편안하게 여행도 다니니까 이렇게 편하고 좋습니다. 편안하고 좋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만약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믿음과 멀어진 탈선의 평안이고 인본의 평안이라면 그게 바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만난 강돕니다. 여기 강도라는 것은 마귀라는 것이고 마귀 만났다 그 말은 마귀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이고 마귀역사는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전부를 가지고 활용을 하는데 그 마귀가 사람을 미혹할 때는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예수님께서 사십일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마귀가 예수를 뭘로 시험했습니까? 사십일을 굶었지, 배가 고프지, 너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능력있지, 돌이 많지, 이 돌 가지고 떡 만들어 먹어라. 가장 갈급한 가장 필요한 그의 마음에, 허영심 있는 사람에게는 그 허영심을 부풀려서 어떤 사람이 집안에서 살림 도구 중에서 아주 화려한 그런 장농이 필요하다 갈급하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마귀가 그거 마련할 수 있는 거기로 자꾸 이끌어갑니다. 우리집에 냉장고가 고장이 났는데 요즘 냉장고가 아주 편리한게 나온다던데 거기 마음이 가 있는 가정주부에게는 어쨌든 믿음을 버리고 말씀을 좀 양보해서 좋은 냉장고를 구입할 수 있는 그 방법을 마귀가 자꾸 가르쳐준다 말입니다. 그것에 바로 강도만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게 되는겁니다. 마귀는 흉악하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좀 험한 말이지마는 남자 꼬아가지고 남자 등꼴 빼먹는 창기들은 얼굴이 굉장히 아름다운 미인들입니다. 얼굴이 못생긴 사람은 거기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얼굴이 잘 생겨야, 미인이라야 남자들이 혹 넘어가니까. 마귀가 우리 성도를 꾀울 때는 성도가 좋아하는걸 가지고 꼬웁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마귀만났으니까 이 마귀는 돈을 한보따리 가져와서 여기 돈이 있다. 예루살렘 떠나니까 하나님 지긋지긋 한데 말씀 귀가 따가워서 듣기 싫었는데 그거 떠나고 나니까 돈이 한보따리 오지 않느냐? 돈이 한보따리 옵니다. 좋은 직장도 옵니다. 좋은 결혼 조건도 옵니다. 좋은 형편도 옵니다.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닥쳐옵니다. 그게 강도 만난겁니다. 불한당 만났다니까 믿는 사람이 믿음 떠나니까 바로 쫄딱 망하지 않습니다. 좋은거 만납니다. 만나가지고 그 다음 어찌 되었느냐? 이 강도가 강도가 하는 짓이 뭐겠습니까? 길 가는 사람들 두드려 패고 헤치고 심하면 죽이고 돈 빼앗아 가지요. 강도가 이 사람의 옷을 배앗고 때려서 거반 죽었다 그 말은 자력으로 살아날 수 없는 지경이라 말입니다. 완전히 죽어서 자기 스스로는 살아날 수 없을 만큼 때려서 만들어 놨습니다. 때려서 반쯤 죽여놓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믿는 성도가 하나님 떠나고 진리 떠나고 믿음 떠나면 좋은걸 만납니다. 마귀 미혹이니까 좋은거 만나는데 그 때 부터 마귀는 만나는 그 순간 좋은 것을 취하는 순간 나에게 있는 옷을 마귀는 빼앗아 버립니다. 무슨 옷입니까? 대속의 옷입니다. 사죄가 옷이고 칭의가 옷이고 화친이 옷이고 소망이 옷인데 나에게서 옷을 점점 실질적으로 빼앗아가지 못하나 건설적으로 빼앗아 버립니다. 믿음을 벗겨버립니다. 나의 진실을, 나의 밝은 양심을, 나의 거룩을, 나의 신앙 양심을 벗거버립니다. 그 다음에는 두드려 팹니다. 내 마음을 때립니다. 지식으로 때립니다. 자꾸 말을 하고 눈에 보여주고 이래가지고 사람들을 통해서 피조물을 통해서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고 생각이 나도록 내 마음과 정신과 생각을 때려서 내 행동까지 때려서 반쯤 죽게 만들어 놓는데 이 죽는 것은 뭐가 죽는 것이겠습니까? 마귀가 미혹의 것을 가지고 반쯤 죽였으니까 어떤걸 죽였겠습니까? 우리 속에는 사람이 몇이 있습니까?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옛사람은 마귀편이기 때문에 자꾸 돋아서 튼튼하게 만들고 새사람은 어쨌든 옷을 벗기고 때려서 죽도록 만드는게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요래 믿음을 떠나니까 마귀가 옷을 벗기고 때려가지고 새사람은 쭉 뻐드러져서 손도 꼼짝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하고 자력으로 살아날 수 없도록 완전히 거반 죽었다고 했습니다. 요렇게까지 만들어 놓고 마귀가 도망을 쳤다 말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만큼 만들어 놓고 마귀는 도망을 처 버렸습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을 떠나면 요래 됩니다. 그런데 이리 되고도 문제는 요래 된 사실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그래도 다행입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오면 멀리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서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가 먹을 것이 없어서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자가 없는지라 그 때 비로소 깨닫고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일꾼이 얼마나 많은고. 내가 여기서 굶어 죽다니. 내가 왜 이지경이 되었는가. 내 주관대로 살고 아버지 집을 떠나 살았기 때문에 이모양 이꼴이 되었구나. 돌아가야 되겠다. 돌아가되 일꾼의 하나로 보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 아버지는 떠난 아들 보내놓고 날이면 날마다 동구밖에 나가서 아들 돌아오기를 학수 기대하고 기다리다가 피골이 상접이 되서 고개도 못들고 터덜터덜 찾아온 아들을 보고 얼마나 좋았던지 맨발로 쫓아나가 안고 손에 가락지 끼우고 큰 잔치 한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이고 사람 아끼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이게 하나님 아버지 형상 닮은 성도는 사람을 이렇게 아끼는겁니다. 그러니까 그 탕자는 걸어라도 왔으니까 다행입니다. 그런데 많은 예수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여리고로 타락해 내려가다가 마귀 만나서 옷 벗겨지고 뚜드려 맞아서 새사람 완전히 죽어져서 믿음이 깨지고 진실도 깨지고 성결도 깨지고 심신의 기능은 엉망 진창이 되서 새사람은 완전히 죽어 반쯤 죽은 상태로 있으면서도 자기가 마귀한테 미혹된줄도 옷 빼앗긴줄도 맞아서 죽은 지경이 된줄도 모르고 하루 세 끼 밥 잘 먹고 옷 잘 입고 그리 살고 있으니 족한줄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는 어떤지 생각해봐야 됩니다.
그 다음에 간단하게 본문을 봅니다. 이 사람이 길에 버려져서 길바닥에 버려져서 죽어가고 있는데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이 사람을 봤습니다. 제사장은 정치 지도자를 겸한 종교지도잡니다. 종교 분리가 아니고 일치된 때라서 이 시대는 종교 지도잔데 동시에 정치 지도자로서 유력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 속에 교훈과 정치와 행정과 체계가 들어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인데 유력한 사람이고 존경받는 사람이고 높은 사람입니다. 제사장. 사람을 얼마든지 구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사람이 쓰러진 것을 보고 나도 강도 만날라 하고 도망을 처버렸습니다. 또 한 레위인도 또 피해서 도망처버렸습니다. 레위인은 제사장 족속인데 성전일을 주로하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성전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의 법을 잘 아는 사람이고 봉사와 희생을 자기 주 업무로 하는 사람이 레위인인데 이 사람도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도망을 처버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인은 이 사마리아 인은 이 때 사마리아는 원래 사마리아는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였으나 이스라엘이 어느 나라에 망했습니까? 앗수르 나라에 망했습니다. 앗수르 나라에 망해서 다 없어지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망하고.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다 죽여버리고 그 지방에 자기나라 사람들 갖다 놓고 그래가지고 많은 이민족들이 섞여 살고 혼혈이 되었다가 예수님 오실 때는 완전히 이방나라처럼 되어져서 이방인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수가 와서 그리 된 것이기 때문에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은 상극입니다. 서로 원수처럼 그리된 상황인데 이 사람이 쓰러저서 죽어가고 있는데 만약에 의식이 있었다면 이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이 의식이 있었다면 제사장이 지나가니까 제사장 옷을 입으면 알거든요 제사장이니까 나를 구원해 줄란가 소망을 가졌을 것인데 도망을 처버렸으니까 힘이 탁 풀어졌을 것이고 레위인이 지나가니까 레위인은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나를 구원해줄란가 하고 기대했을 것인데 또 도망처버렸으니까 기진맥진 했을 것이고 그런데 설상가상 사마리아 사람이 오니까 이제는 완전히 죽었다 겁이 나서 벌벌 떨었을 건데 뜻밖에 그 사마리아 사람이 와서 불쌍히 여겨서 가까이 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내렸다는 말이겠지요 주막으로 데려가서 돌보아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 주막 주인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바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아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누가 이웃입니까? 제사장입니까 레위인입니까 사마리아 인입니까 누굽니까? 율법사가 말하기를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께서 너도 가서 이와같이 해라. 이 말씀에서 결론은 그겁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비유하신겁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주인데 유대인들은 나사렛 괴수라 하고 원수처럼 여겨서 못에 박아 죽었습니다. 이런 관계를 사마리아인이라 비유하신 것인데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영광 다 내어 놓으시고 이 땅에 오셔가지고 피흘려 죽으시고 당신의 보혈의 공로로 성령의 감화 감동의 역사로 능력의 보호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당신이 탔던 그 보좌에 우리를 앉혀서 인간의 본지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리고 주막에 지상 교회에 데려다 맡기면서 이 사람을 돌봐주라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2천년을 상징한다 그럽니다. 만약에 모자라면 기간이 짧으면 내가 더 주겠다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는데 이 예수님이 예루살렘 생활을 떠나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새사람이 완전히 죽게된 이 비참한 지경 완전히 죽어가던 이 사람을 살린분이 구주메시야 예수님이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만약에 이런 상황이 되어져있을 때 우리들의 이웃이 누구냐 우리 이웃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제사장이 내 이웃이 아닙니다. 나의 이웃은 목사님이 내 이웃이 아닙니다. 장로님이 아닙니다. 집사님이 아닙니다.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내 이웃은 주님이 내 이웃입니다. 사마리아인 자비 베푸신 예수님이 나의 이웃입니다. 그분이 나의 이웃이고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되야 되느냐 바로 예수님께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신 것 처럼 나도 주님을 닮아서 나도 내가 강도 만난 것 처럼되었을 때는 주님만을 내 이웃 삼아 그분만을 바라봐야 되고 내가 강도 만난 자가 되지 아니하고 바로살 때는 내 주변에 강도 만난자와 같은 자가 있을 때에는 나도 주님처럼 그 사람에게 자비 베푸는 내가 되어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웃이 누군가? 이웃을 어떻게 사귀는가? 이걸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는 사마리아인 주님을 이웃 삼고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어야 되겠다 이것을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영생얻는 방법.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얻는 방법이라는 것을 성경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도리를 말씀드렸으니까 기억하시고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나도 주님처럼 사마리아인 같은 이 주님을 내 이웃으로 모시고 이 주님같은 이웃이 되어서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는 이런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후에 계속해서 좀 더 살펴 보겠습니다. 영생 얻는 법을 질문하셨고 답을 하셨고 전부 다 해서 하나님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웃이 누굽니까를 물었을 때 이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강도 만난자의 이웃은 주님이었고 주님은 그의 이웃이 되어서 그를 살렸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이웃 삼아야 되겠고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되어 그들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제목: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자
1. 영생 얻는 질문과 이웃
1)율법사와 예수님의 문답
-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계명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 마음 목숨 힘 뜻 다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라
-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2)이웃이 누구인가, 이웃을 어떻게 사귀는가?
2. 본문의 비유와 해석
1)어떤 사람이
- ‘어떤 사람’이라 했으니 불특정의 사람
-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해당될 수 있는 경우
- 나도 내 주변의 누구든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음
- 즉 나도 강도 만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
2)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 예루살렘은 하나님 백성의 중심지
- 이스라엘의 수도로 성전이 있고 하나님이 계신 곳
- 하나님 모시고 말씀 지키며 믿음으로 사는 곳
- 여리고는 하나님 없는 곳
- 여리고로 내려가는 것은 하나님, 말씀, 믿음 떠나는 것
- 신앙의 후퇴, 타락하여 내려가는 것
- 내려가는 이유는 ①힘들고 어려워 어려움 피해 ②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3)강도를 만나매
- 강도는 불한당, 땀 흘리지 않고 이득 취하는 무리
- 마귀는 불한당, 하나님 하신 것을 제가 했다 하며 사람을 미혹
- 강도(불한당) 마귀 만난 것은 미혹의 세상, 사람, 미혹의 모든 것들 만난 것
- 그 옷을 벗기고: 대속의 옷, 믿음의 옷, 진실의 옷, 성결의 옷을 벗기고
- 때려: 양심을 때리고, 생각을 때리고, 마음을 때리고 행동을 때려
- 거반 죽게 된 것: 새사람은 숨만 붙어 있지 죽은 자와 같고 옛사람이 강해진
- 죄 가운데, 사망 가운데 빠져 믿음은 완전히 죽은 상태로
4)제사장과 레위인은 피하여 가고
- 당시 유대 나라는 정교일치의 체제
- 제사장은 종교 지도자이면서 정치 지도자
- 가장 존경 받는 사람, 가장 실력 있고 힘 있는 사람
- 레위인은 성전의 업무를 맡은 사람들
- 하나님의 도를 잘 알고 봉사와 희생을 하는 사람들
- 제사장도 레위인도 상한 사람을 보고 피하여 도망
- 교회 지도자, 정치 지도자, 수고와 희생의 사람도 구원치 않아
- 강도 만난 사람은 낙망할 수밖에 없고, 자력 회생은 불가능 상태
5)어떤 사마리아인이 구출
- 사마리아인과 유대인의 앙숙 관계
- 앗수르의 북 이스라엘 멸망 후 이방인들 들어와 오랜 세월 거주, 혼혈
- 사마리아는 이방인의 마을이 되고 유대인들과 원수처럼 된 관계
- 사마리아인 오는 것 보고 이제는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
- 불쌍히 여겨 나귀에서 내려 가까이 가서
-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에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 이튿날 데나리온 둘을 주며 부탁, 부비가 더 들면 올 때 주리라
-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
3.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자
1)사마리아인의 7가지 은혜
①나귀에서 내려: 부요 영광 내놓고 낮아지고 사람 되어 오셔서
②포도주를 붓고: 보혈의 공로로 죄를 씻겨서
③기름을 붓고: 성령으로 감화 감동시켜
④붕대로 싸매고: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⑤자기 짐승에 태워: 인간이 본 지위를 회복시켜
⑥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지상 교회에 맡겨
⑦부비가 더 들면 올 때: 재림하실 때 갚으리라
2)사마리아인으로 이웃을 삼고,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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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율법사라는 것은 다른 말로 교법사라 그리 말하는데 교법사란 말은 가르칠 교자 법법자 법을 가르치는 사람 율법사라 말은 법을 연구하고 잘아는 사람을 율법사라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여기 율법사는 로마에 법을 연구하는 거기 중점을 둔 것이라고도 말하나 그냥 세상 상식이고 성경에 기록된 율법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연구하는 모세의 율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율법사라 혹은 교법사라 그리 말합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여기 시험이란 것은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험치는 그런 의미보다 예수님께서 많은 말씀을 가르치고 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니까 율법을 잘 아는 이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대해서 얼마만큼 정확하게 잘 아는가? 말하자면 예수님의 그 실력을 시험하는 그런 비슷한 의미로 시험했다 그리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성자 하나님으로 이 세상에 우리 구주로 오셨지마는 성경에 많이 기록돼 있고 그 때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 중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구주신줄 알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마는 많은 사람이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고 이분이 엘리야다 예레미야다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다 혹은 세례요한이다 이렇게 그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 잘 못 알고 있었습니다. 글런데 예수님은 자존하시며 창조주시며 전지 전능하신 완전자이신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지극히 크고 영화로우신 분이신데 많은 사람은 그를 사람인줄 알았고 이 율법사도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자기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거나 혹 자기보다 모르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해서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사람은 예수님을 잘 알지 못한 것입니다. 알면은 감히 이렇게 시험해서 물어볼 수가 없는겁니다. 어쨌든 예수님을 시험해서 물어보기를 율법사가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면 오늘 봉독한 말씀 전체는 영생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고 있고 그런데 예수님께서 답하시기를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하나님의 법에 하나님의 모든것은 영생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하나님이 영생케하는것이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영생하는 법을 성경 말씀 율법에 기록해 놓으셨으니까 니가 어떻게 영생하느냐고 묻는데 네가 율법사니까 하나님의 법을 알 것이 아니냐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으며 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율법에 아무리 바로 기록되어 있어도 읽는 사람이 잘 못 읽으면 헛일이니까 두 가지를 물었습니다. 첫째 뭘 물었다고요? 율법에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두번째는요? 너는 어떻게 읽느냐. 요거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성경의 진리는한 진리입니다. 구원얻는 도리는 하나고 한 진리인데 한 진리를 읽는 사람에 따라서 열 가지로 읽고 백 가지로 읽고 수 없이 많은 깨달음으로 읽게 되기 때문에 성경에서 많은 교파가 생겨지고 많은 이단들도 생겨지게 되는겁니다. 성경은 한 진리인데 한 진리 말씀을 우리가 읽을 때 정확하게 바로 읽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율법에 뭐라고 기록되었으며 너는 어떻게 읽느냐고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시니까 이 사람이 똑똑하게 대답했습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예. 성경 율법을 읽어보니까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한 말로 말하면 너의 가진 마음과 몸 가진 전부를 다하여 첫째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번째는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요래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영생 얻는 법은 무엇인가? 한 말로 말하면 사랑이고 그 사랑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 얻는 법입니다. 이게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입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되 내 전부를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나의 가진 전부를 다 드려서 이웃을 사랑할 때 그것이 무슨 방법입니까? 영생을 얻는 방법이다 그 말입니다. 요래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이렇게 읽었습니다. 하고 주님에게 말씀드리니까 예수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바로 읽었다 바로 봤고 바로 깨달았다 그대로 행해라 그러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율법사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똑똑하게 정확하게 하나님 앞에 실력있는 사람으로 좀 더 자기를 돋우어 보이려고 한 번 더 물었습니다. 그러면 영생얻는 법을 물으니까 말씀하시기를 전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 번째는 누구를 사랑하라고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니까 이 율법사가 다시 묻기를 하나님은 제가 보지는 못해도 정확하게 몰라도 내가 믿는 분이니까 알겠는데 이웃이라 그러면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굉장히 많은데 이웃이 누가 이웃입니까? 이리 물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의 핵심은 이 이웃을 말씀합니다. 다 같이 해보십시다 이웃. 이웃.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웃이라 그러면 가까이 사는 사람들 혈육은 아닌데 일가 친척은 아닌데 옆에 주변에 가까이 있는 그런 사람들. 이웃이라 말하지요. 이웃은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이 낫다 하는 말도 있지요. 영생얻는 법을 물었고 영생얻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율법사가 다시 묻기를 그러면 이웃이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이 나의 이웃이 됩니까 하고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라고 지칭은 했으나 그 어떤 이라는 말 속에 특정한 계층이라던지 특징을 두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 어떤 사람의 뒤에 읽어보면 하나님의 백성 중에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이 어떤 사람은 누가 될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 속에는 제사장도 들어갈 수 있고 율법사도 들어갈 수 있고 또 가난한 사람도 들어갈 수 있고 부자도 들어갈 수 있고 그 누구든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전부 다 이 어떤 사람이 하는 이 어떤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유지마는 생각해봐야 됩니다. 지금 율법사가 첫째 뭘 물었습니까? 영생얻는 법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어떻게 하라 했습니까? 네 전부를 다하여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 이웃을 사랑하라. 율법사가 하나님은 알겠는데 이웃이 누구입니까 물어서 이웃을 설명하는 그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할 때 그 이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 비유 입니다. 이 때 부터. 요 내용을 읽어보면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그러면 예루살렘에 살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라고 지칭 하면서 특징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누가 될지 모릅니다. 비유로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으나 그 실상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그 어떤 사람이 이 속에 들어갈지 모릅니다. 누구든 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저나 여기계시는 여러분 누구나 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입니다. 수도가 예루살렘입니다. 수도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서울이라 그러지요 그 나라의 서울. 그 나라의 수도. 가장 그 나라에 중심되는 거기가 수도인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 백성의 중심지고 그 예루살렘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 있습니다. 이름이 뭡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집을 두 글자로 성전이라 그럽니다. 거룩할 성자 집전자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 있는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그 성전은 하나님 백성들의 하나님 섬기는 생활의 중심입니다. 성전생활이 하나님 섬기는 생활의 중심이고 전부라 그리 말할 수 있어서 예루살렘을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의 전부,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믿음으로 사는 생활 요 생활에 전심전력 다 기울이고 사는 믿음으로만 사는 이 생활 여기에 전 가치와 욕망과 노력을 다 기울이는 이 생활을 가리켜서 예루살렘이라 말합니다. 이 때는 지명으로 말씀하셨으나 이 지명이 가르치는 도리는 신앙생활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으로 사는 생활 여기에 전 가치와 욕망을 두고 전심 전력을 여기 기울이는 소망을 하늘에 두고 믿음으로 사는 이 생활을 가리켜서 예루살렘 생활이라 그리 말합니다. 믿음으로만 사는 생활입니다. 모든것을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하나님으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 요 생활을 기러켜 예루살렘 생활이라 그리 말합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다가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여리고는 크게 말하면 이스라엘 나라 도시 중에 하나지마는 그러나 정확하게 요 지명의 비교적으로 따져 본다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것은 타락해서 내려가는 겁니다. 하나님 만으로 전부삼던 사람이 하나님을 좀 멀리하고 인간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전부삼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 순종으로 전부삼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 보다도 다른 말 지식도 참고하고 그리 내려가고. 믿음 만으로 전부삼던 사람이 믿음 아닌 세상 방법을 쓰고 이래가지고 점점 속화되고 후퇴하고 식어지고 타락해서 내려가는 것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생활이 되는겁니다.
어떤 사람이 첫째 기억하십시다. 여기 있는 저도 될 수 있고 여러분들 다 모두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리 되지 않는다 장담 못합니다. 사람은 별 사람이 없다 그럽니다. 사람은 대동소이합니다. 자칫 한눈 팔면 아차하는 순간에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릅니다. 천하에 성자고 영웅이고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던 다윗왕이 한 순간 한눈 팔 때 큰 죄를 지었습니다. 일반인도 생각하기 어려운 그런 큰 어마어마한 살인죄 음행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그런 죄를 지었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벧엘에 살다가 어렵고 힘이 드니까 조금씩 조금씩 피해서 점점 남방으로 내려가다가 하나님 없는 세상 애굽까지 타락해서 내려가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그랬기 때문에 이 속에는 하나님의 백성 누구든 다 포함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래 되지 않는다고 장담하면 선 줄로 생각한 자이기 때문에 넘어진다 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모시고 말씀 순종으로 전부 삼고 믿음으로 전부 삼던 이 생활 이 속에 모든게 다 있습니다. 하나님 계시면 거기 전부다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우주도 영계도 생명도 평강도 존귀도 영광도 부요도 모든 행복도 성공도 승리도 전부 하나님 그분에게 다 있습니다. 그분에게 있는 것을 받는 방법이 말씀 순종이고 이게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 모시고 말씀 순종하는 믿음생활 하면은 그 속에 인생의 참된 기쁨이, 쾌락이, 성공이, 진정한 행복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 세상 사람들은 이 깊은 내면을 깨닫지 못하니까 껍데기 행복을 찾습니다. 돈이 많아야 몸이 건강해야 행복하고 직장이 튼튼해야 되고 행복의 성공의 조건들 영광의 조건들이 굉장히 많으나, 성경은 모든 행복은 하나님께 있고 모든 성공 영광 존귀는 그분에게 있고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외부로 보기에는 어떻게 보잘것 없이 보여도 그의 신분이 어떠해도 형편이 어떠해도 나아만 집에 포로로 끌려간 계집종은 신분이 끌려가기를 포로였고 신분이 종이였지마는 그는 그 나아만 아람 나라의 아무도 가지지 못했던 그 나라에 실력있고 공신이었던 나아만 대장 조차도 아람나라의 왕까지도 심지어 이스라엘 나라의 왕과 수많은 사람이 가지지 못했던 참된 평안을 나아만 집의 종으로 끌려간 그 여종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여종은 그 열악한 최악의 형편 속에서 그는 참된 평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을 그 여종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쁨과 감사로 충만 했습니다. 뒤에 드러나지 않았으나 존귀 영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외모로 보기에 보잘것 없는 여종이었습니다. 그런 신분 형편이었는데 그는 참된 행복 참된 만족, 참된 기쁨, 참된 감사, 참된 존귀, 영광, 능력까지 다 가지고 있었으니 지금도 시대를 초월하고 지역을 초월하고 환경을 초월해서 오늘도 그리될 수 있는데 그 조건이 오늘 몇 가지라 말했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리 된다고요? 하나님 모시고 말씀 순종하는 믿음으로 살면 그 속에 전부 다 있습니다. 이 생활을 한 말로 말하면 이게 무슨 생활입니까?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 생활입니다. 이 속에 전부 다 있습니다. 거기 성전이 있습니다. 거기 기독자의 모든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인지라 이리 살아가다 보면 이대로 계속 살아나가면 좋겠는데 이대로 계속하지를 못하고 사람이기 때문에 가다보면 힘이 들때 있고 조금씩 하나님과 멀어지고 말씀과 멀어지고 믿음이 식어지면 여리고로 점점 내려가게 됩니다. 그러면 참된 인생의 행복은 점점 자기에게서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그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지마는 많은 도리 큰 도리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 내려갔는가?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으로 전부삼고 말씀 순종으로 전부삼고 믿음으로 사는 생활만 전부로 삼고 이렇게 살아가다가 왜 믿는 사람들이 이탈되고 탈선해서 세상으로 가게 되느냐? 이유는 크게 두가지니 하나는 아브라함이 벧엘에서 점점 남방으로 내려간 이유는 기근 때문에 어려워서 배가 고파서 힘이 들어서 그리 내려 갔습니다. 두 번째 누가복음 15장입니까.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도와서 가업을 힘써 함께 이루어 나가면서 큰 일을 해 나가던 둘째아들 탕자가 아버지 모시고 아버지 업을 도와서 앞으로 상속받아 자기것 될 것이고 그러면 그 속에 부족한 것이 없는 모든게 전부 다 있는데 이 탕자에 머리속에 늘 내가 살고 있는 이 환경, 요즘은 일탈이란 말을 긍정적으로 쓰고 예사롭게 쓰는데 일탈이라 말은 타락이라 말이고 죄짓는다는 뜻입니다. 좀 더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그 현상세계, 이걸 어떤 사람들은 또 개혁이다 보수다 이리 연결 시키는데 조금 다른 차원으로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세상 살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자기 형편, 자기 현실 상황, 말하자면 일상생활 가정주부 같으면 남편 모시고 아들 딸 자녀들 기르고 남편 뒷바라지 하고 자녀 양육하고 집안일 챙겨보고 그래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그게 여인으로서 최고의 행복이라 그리볼 수도 있는 것인데 그리 살다 보니까 항상 1년 열 두달 보는 그 남편을 보니까 그 남편 얼굴이 지겹다 그말이지요. 항상 보던 그 눈코입 그 얼굴이니 남편 얼굴이 지겹고 남편은 아내 얼굴이 권태가 나고. 자식들도 항상 그대로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생활 처럼 그리 느껴지니까 어떤 남자들이 여자들이 그 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권태를 느껴서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 여자 말고 다른 여자가 없을까 이 남자 말고 다른 남자가 없을까 하고 일탈 탈선해 나가서 그것이 바로 가정이 다 깨지고 쫄딱 망하는 길인데도 그런 생활을 사람들은 예사롭게 합니다. 아이들이 부모님 섬기며 순종해 살고 자기 실력을 쌓아나가는 생활이 학창 생활에 중요하고 전부가 되는 생활인데 늘 그 생활 반복해야 되니까 재미가 없으니까 뭔가좀 특별한 재미가 없을까 하고 나가는 것이 탈선의 지름길입니다. 그리 나가다 보면 헛바람이 들게 되고 안볼 것을 보게 되는 그게 바로 선악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선악과가 얼마든지 많아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실과가 에덴동산에 꽉 찼고 하나님 모시고 그분 말씀 순종을 하고 에덴 동산의 주인으로 살면 거기서 모든 만물에게 하나님 노릇하고 영생을 누릴 수 있는데 거기 마귀 귀신이 들어와가지고 꼬아서 하나님 말씀을 정말 믿느냐? 선악과를 따 먹으라 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 하나님 말씀만 듣던 사람이 마귀 말을 듣고 보니까 거기에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따먹고 나니까 눈이 정말 열려 버렸습니다. 그게 인간의 타락입니다. 탕자가 바로 그리 나갑니다. 부모님 밑에서 말씀 순종하고 아버지 가업을 도와서 일했는데 그 생활이 지겹고 여기서 떨어져 다른 나라고 가면 다른 생활은 어떨까 하고 꿈꾸는 그 생활이 탕자의 생활인데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이유는 요 두 가지 입니다. 첫째는 뭣 때문에 내려간다고요? 힘이 들어서 어려워서 두번째는요? 뭔가 좀 더 재밌는 일이 없을까 호기심으로 타락해 내려온 이것이 타락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여리고로 내려갔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그 다음 좋은 일을 만났습니다. 뭘 만났습니까? 성경에 보니까 어떤 좋은일 만났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누구를 만났습니까?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 강도가 구약 성경에는 불한당으로 나와 있습니다. 아니 불자 땀한자 노릴 당자 땀흘리지 아니하고 이득 취하는 도둑놈 그게 바로 불한당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을 만나매 요 불한당입니다. 성경의 불한당은 마귀를 말하고 마귀는 제가 하지 않고 전부 하나님이 하신 것인데 제가 능력있고 지식있다고 하여서 사람을 미혹시켜 꼬아서 넘어뜨리는게 마귀가 쓰는 수법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 마귀를 만났는데 마귀를 만났다 말이 무슨 말일까 생각해보면 마귀를 만났습니다 .마귀가 어떻게 생겼는가요?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불한당 마귀를 만났습니다. 강도를 만났습니다. 이것은 비유입니다. 비유의 실상은 믿는 사람이 예루살렘 생활에서 탈선해 내려가면 마귀만난다 그 말입니다. 그 마귀가 어떻게 생겼는가? 마귀는 어찌 생겼습니까? 마귀를 만났답니다. 불한당 마귀. 어떻게 생귄 마귀를 만났을까? 마귀를 만났다 그 말은 한 말로 말하면 같이 해 보시겠습니다. 미혹을 만난 것. 뭘 만났다 말입니까? 미혹의 좋은 것을 만났다 그 말입니다. 이 사람의 정신을 생각을 혼을 쏙 빼앗아 갈 수 있는 좋은것을 이 사람이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니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진리를 버리고 나니까 내 귀에 듣기 좋고 내 마음에 흡족한 말들이 귀에 쏙쏙들어온 말들이 수도 없이 많구나. 믿음을 저버리고 나니까 믿음이란 것은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되니까 나 부인하고 내가 종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믿음을 떠나고 니니까 내가 내 마음대로 사는 자유자가 되었구나.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보니까 강도를 만났는데 마귀를 만났는데 그 마귀가 생긴 모습을 보니까 미혹이란 놈이고 그 미혹이 생긴것을 보면은 하나님을 떠나니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피조물을 만납니다. 좋은 일들. 또 말씀을 떠나고 나니까 인간의 좋은 이치들을 만나게 되고. 믿음을 떠나니까 자유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서 꼼짝도 못하고 이거 고치시요 저거 고치시요 이거 회개하십시요 이렇게 사십시요 주일 어기면 안됩니다. 오전예배 오후예배도 참석해야 됩니다. 대예배는 네 번이라서 삼일예배 오일예배도 드려야 됩니다. 새벽예배 드려야 됩니다. 양심 어기면 안됩니다. 성경 하루에 몇 장 읽으십시요. 기도 하십시요. 반사새오할 하십시요. 자꾸 말씀을 기준해서 자기를 변화시키는 성화를 강조하고 행위를 강조하니까 나사를 너무 조으면 터져버립니다. 나사 조아 보셨습니까? 나사를 힘에 넘치게 조아 버리면 터져버립니다. 그래서 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해 버리면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백목사님 생전에 유력한 목사님이 한 말입니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괴로워서 탈선해서 나갑니다. 나가고 나서 어떤 분이 탈선해 나간 목사님을 만났는데 편안한 복장으로 그리 행복하게 다니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디 다니십니까? 은퇴하고 우리 노부부가 여행다닙니다. 은퇴하고 여행다니니까 이렇게 좋습니다. 은퇴하기 전까지 월급받고 퇴직금 받고 돈 모아가지고 편안하게 여행도 다니니까 이렇게 편하고 좋습니다. 편안하고 좋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만약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믿음과 멀어진 탈선의 평안이고 인본의 평안이라면 그게 바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만난 강돕니다. 여기 강도라는 것은 마귀라는 것이고 마귀 만났다 그 말은 마귀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영물이고 마귀역사는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전부를 가지고 활용을 하는데 그 마귀가 사람을 미혹할 때는 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예수님께서 사십일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마귀가 예수를 뭘로 시험했습니까? 사십일을 굶었지, 배가 고프지, 너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능력있지, 돌이 많지, 이 돌 가지고 떡 만들어 먹어라. 가장 갈급한 가장 필요한 그의 마음에, 허영심 있는 사람에게는 그 허영심을 부풀려서 어떤 사람이 집안에서 살림 도구 중에서 아주 화려한 그런 장농이 필요하다 갈급하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마귀가 그거 마련할 수 있는 거기로 자꾸 이끌어갑니다. 우리집에 냉장고가 고장이 났는데 요즘 냉장고가 아주 편리한게 나온다던데 거기 마음이 가 있는 가정주부에게는 어쨌든 믿음을 버리고 말씀을 좀 양보해서 좋은 냉장고를 구입할 수 있는 그 방법을 마귀가 자꾸 가르쳐준다 말입니다. 그것에 바로 강도만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나게 되는겁니다. 마귀는 흉악하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좀 험한 말이지마는 남자 꼬아가지고 남자 등꼴 빼먹는 창기들은 얼굴이 굉장히 아름다운 미인들입니다. 얼굴이 못생긴 사람은 거기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얼굴이 잘 생겨야, 미인이라야 남자들이 혹 넘어가니까. 마귀가 우리 성도를 꾀울 때는 성도가 좋아하는걸 가지고 꼬웁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마귀만났으니까 이 마귀는 돈을 한보따리 가져와서 여기 돈이 있다. 예루살렘 떠나니까 하나님 지긋지긋 한데 말씀 귀가 따가워서 듣기 싫었는데 그거 떠나고 나니까 돈이 한보따리 오지 않느냐? 돈이 한보따리 옵니다. 좋은 직장도 옵니다. 좋은 결혼 조건도 옵니다. 좋은 형편도 옵니다.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이 닥쳐옵니다. 그게 강도 만난겁니다. 불한당 만났다니까 믿는 사람이 믿음 떠나니까 바로 쫄딱 망하지 않습니다. 좋은거 만납니다. 만나가지고 그 다음 어찌 되었느냐? 이 강도가 강도가 하는 짓이 뭐겠습니까? 길 가는 사람들 두드려 패고 헤치고 심하면 죽이고 돈 빼앗아 가지요. 강도가 이 사람의 옷을 배앗고 때려서 거반 죽었다 그 말은 자력으로 살아날 수 없는 지경이라 말입니다. 완전히 죽어서 자기 스스로는 살아날 수 없을 만큼 때려서 만들어 놨습니다. 때려서 반쯤 죽여놓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믿는 성도가 하나님 떠나고 진리 떠나고 믿음 떠나면 좋은걸 만납니다. 마귀 미혹이니까 좋은거 만나는데 그 때 부터 마귀는 만나는 그 순간 좋은 것을 취하는 순간 나에게 있는 옷을 마귀는 빼앗아 버립니다. 무슨 옷입니까? 대속의 옷입니다. 사죄가 옷이고 칭의가 옷이고 화친이 옷이고 소망이 옷인데 나에게서 옷을 점점 실질적으로 빼앗아가지 못하나 건설적으로 빼앗아 버립니다. 믿음을 벗겨버립니다. 나의 진실을, 나의 밝은 양심을, 나의 거룩을, 나의 신앙 양심을 벗거버립니다. 그 다음에는 두드려 팹니다. 내 마음을 때립니다. 지식으로 때립니다. 자꾸 말을 하고 눈에 보여주고 이래가지고 사람들을 통해서 피조물을 통해서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들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고 생각이 나도록 내 마음과 정신과 생각을 때려서 내 행동까지 때려서 반쯤 죽게 만들어 놓는데 이 죽는 것은 뭐가 죽는 것이겠습니까? 마귀가 미혹의 것을 가지고 반쯤 죽였으니까 어떤걸 죽였겠습니까? 우리 속에는 사람이 몇이 있습니까?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옛사람은 마귀편이기 때문에 자꾸 돋아서 튼튼하게 만들고 새사람은 어쨌든 옷을 벗기고 때려서 죽도록 만드는게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요래 믿음을 떠나니까 마귀가 옷을 벗기고 때려가지고 새사람은 쭉 뻐드러져서 손도 꼼짝 못하고 눈도 뜨지 못하고 자력으로 살아날 수 없도록 완전히 거반 죽었다고 했습니다. 요렇게까지 만들어 놓고 마귀가 도망을 쳤다 말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지 못할만큼 만들어 놓고 마귀는 도망을 처 버렸습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을 떠나면 요래 됩니다. 그런데 이리 되고도 문제는 요래 된 사실을 깨달아 아는 사람은 그래도 다행입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오면 멀리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 슬프고 또 외로워서 아버지 집을 떠난 탕자가 먹을 것이 없어서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자가 없는지라 그 때 비로소 깨닫고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일꾼이 얼마나 많은고. 내가 여기서 굶어 죽다니. 내가 왜 이지경이 되었는가. 내 주관대로 살고 아버지 집을 떠나 살았기 때문에 이모양 이꼴이 되었구나. 돌아가야 되겠다. 돌아가되 일꾼의 하나로 보소서 그러면 족하겠나이다. 아버지는 떠난 아들 보내놓고 날이면 날마다 동구밖에 나가서 아들 돌아오기를 학수 기대하고 기다리다가 피골이 상접이 되서 고개도 못들고 터덜터덜 찾아온 아들을 보고 얼마나 좋았던지 맨발로 쫓아나가 안고 손에 가락지 끼우고 큰 잔치 한 그것이 하나님의 심정이고 사람 아끼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이게 하나님 아버지 형상 닮은 성도는 사람을 이렇게 아끼는겁니다. 그러니까 그 탕자는 걸어라도 왔으니까 다행입니다. 그런데 많은 예수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서 여리고로 타락해 내려가다가 마귀 만나서 옷 벗겨지고 뚜드려 맞아서 새사람 완전히 죽어져서 믿음이 깨지고 진실도 깨지고 성결도 깨지고 심신의 기능은 엉망 진창이 되서 새사람은 완전히 죽어 반쯤 죽은 상태로 있으면서도 자기가 마귀한테 미혹된줄도 옷 빼앗긴줄도 맞아서 죽은 지경이 된줄도 모르고 하루 세 끼 밥 잘 먹고 옷 잘 입고 그리 살고 있으니 족한줄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는 어떤지 생각해봐야 됩니다.
그 다음에 간단하게 본문을 봅니다. 이 사람이 길에 버려져서 길바닥에 버려져서 죽어가고 있는데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이 사람을 봤습니다. 제사장은 정치 지도자를 겸한 종교지도잡니다. 종교 분리가 아니고 일치된 때라서 이 시대는 종교 지도잔데 동시에 정치 지도자로서 유력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 속에 교훈과 정치와 행정과 체계가 들어 있고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인데 유력한 사람이고 존경받는 사람이고 높은 사람입니다. 제사장. 사람을 얼마든지 구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사람이 쓰러진 것을 보고 나도 강도 만날라 하고 도망을 처버렸습니다. 또 한 레위인도 또 피해서 도망처버렸습니다. 레위인은 제사장 족속인데 성전일을 주로하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성전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하나님의 법을 잘 아는 사람이고 봉사와 희생을 자기 주 업무로 하는 사람이 레위인인데 이 사람도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도망을 처버렸습니다. 이 사람들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인은 이 사마리아 인은 이 때 사마리아는 원래 사마리아는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였으나 이스라엘이 어느 나라에 망했습니까? 앗수르 나라에 망했습니다. 앗수르 나라에 망해서 다 없어지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망하고. 앗수르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다 죽여버리고 그 지방에 자기나라 사람들 갖다 놓고 그래가지고 많은 이민족들이 섞여 살고 혼혈이 되었다가 예수님 오실 때는 완전히 이방나라처럼 되어져서 이방인의 마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수가 와서 그리 된 것이기 때문에 사마리아와 이스라엘은 상극입니다. 서로 원수처럼 그리된 상황인데 이 사람이 쓰러저서 죽어가고 있는데 만약에 의식이 있었다면 이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이 의식이 있었다면 제사장이 지나가니까 제사장 옷을 입으면 알거든요 제사장이니까 나를 구원해 줄란가 소망을 가졌을 것인데 도망을 처버렸으니까 힘이 탁 풀어졌을 것이고 레위인이 지나가니까 레위인은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나를 구원해줄란가 하고 기대했을 것인데 또 도망처버렸으니까 기진맥진 했을 것이고 그런데 설상가상 사마리아 사람이 오니까 이제는 완전히 죽었다 겁이 나서 벌벌 떨었을 건데 뜻밖에 그 사마리아 사람이 와서 불쌍히 여겨서 가까이 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서 내렸다는 말이겠지요 주막으로 데려가서 돌보아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주면서 주막 주인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바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아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서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누가 이웃입니까? 제사장입니까 레위인입니까 사마리아 인입니까 누굽니까? 율법사가 말하기를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님께서 너도 가서 이와같이 해라. 이 말씀에서 결론은 그겁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을 비유하신겁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주인데 유대인들은 나사렛 괴수라 하고 원수처럼 여겨서 못에 박아 죽었습니다. 이런 관계를 사마리아인이라 비유하신 것인데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영광 다 내어 놓으시고 이 땅에 오셔가지고 피흘려 죽으시고 당신의 보혈의 공로로 성령의 감화 감동의 역사로 능력의 보호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당신이 탔던 그 보좌에 우리를 앉혀서 인간의 본지위를 회복시켜 주시고 그리고 주막에 지상 교회에 데려다 맡기면서 이 사람을 돌봐주라 두 데나리온을 주면서 2천년을 상징한다 그럽니다. 만약에 모자라면 기간이 짧으면 내가 더 주겠다 말씀하신 것이라 그러는데 이 예수님이 예루살렘 생활을 떠나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새사람이 완전히 죽게된 이 비참한 지경 완전히 죽어가던 이 사람을 살린분이 구주메시야 예수님이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만약에 이런 상황이 되어져있을 때 우리들의 이웃이 누구냐 우리 이웃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제사장이 내 이웃이 아닙니다. 나의 이웃은 목사님이 내 이웃이 아닙니다. 장로님이 아닙니다. 집사님이 아닙니다. 내 이웃은 누구입니까? 내 이웃은 주님이 내 이웃입니다. 사마리아인 자비 베푸신 예수님이 나의 이웃입니다. 그분이 나의 이웃이고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되야 되느냐 바로 예수님께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신 것 처럼 나도 주님을 닮아서 나도 내가 강도 만난 것 처럼되었을 때는 주님만을 내 이웃 삼아 그분만을 바라봐야 되고 내가 강도 만난 자가 되지 아니하고 바로살 때는 내 주변에 강도 만난자와 같은 자가 있을 때에는 나도 주님처럼 그 사람에게 자비 베푸는 내가 되어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웃이 누군가? 이웃을 어떻게 사귀는가? 이걸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는 사마리아인 주님을 이웃 삼고 사마리아인 같은 이웃이 되어야 되겠다 이것을 결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영생얻는 방법. 이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영생얻는 방법이라는 것을 성경에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도리를 말씀드렸으니까 기억하시고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나도 주님처럼 사마리아인 같은 이 주님을 내 이웃으로 모시고 이 주님같은 이웃이 되어서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는 이런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후에 계속해서 좀 더 살펴 보겠습니다. 영생 얻는 법을 질문하셨고 답을 하셨고 전부 다 해서 하나님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웃이 누굽니까를 물었을 때 이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강도 만난자의 이웃은 주님이었고 주님은 그의 이웃이 되어서 그를 살렸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이웃 삼아야 되겠고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되어 그들을 사랑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