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4-주후(삼15:1-3)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인가?2014-09-15조회 298추천 25
20140914 주후
사무엘상 15:1-3
세상의 모든 종교를 크게 나누면 둘로 나눌 수 있어서, 하나는 우리 기독교가 있고 하나는 다를 이 자를 써서 이종교라고 기독교 외에 모든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종교는 불교든 유교든 힌두교든 어떤 종교든 이슬람교까지 변질된 것까지 변질이 됐으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사람에게서 나왔고, 사람에게서 나왔고 그말은 사람으로 말미암았다 그말이고 사람이 만들어냈다 그말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왔고 또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들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종교들은 안에 내용이 어떻게 사람 생각할 때 깊고 오묘하고 또 특이한 그런 것들이 많이 있을지라도 결국 그 근본을 파서 들어가보면 그 뿌리 근본은 사람 범위를 한계를 넘어설 수가 없는 것이고 사람의 머릿속에서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의 상상으로 사람의 추측과 추론으로 나온 것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종교들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겁니다. 사람을 평안하게 행복하게 또 마음에 위로를 주도록 소망을 주도록 그래서 이 세상을 평안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이종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사람에게서 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하나님이 만드신 종교가 우리 기독교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 세상은 사람이 주인이고 사람이 주체고 중심이 되어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전부다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 되고 사람 때문에 있어야 되는 것이 이 세상에 모든 것들입니다. 그거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점점 이게 심화되어지고, 그래서 모든 세계는 점점 민주주의 다시 말하면 인본주의가 점점 되어져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게 경제가 발전되고 모든 문화 문명이 발전이 될수록 그 모든 발전의 근본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고 인간이 표면적으로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중심의 세상이 될 수 밖에 없고 거기에 맞지 않고 배치되는 것은 그 모든 세상과 마찰이 되어지고 부딪히고 그래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일곱 머리와 열 뿔 그 전부는 하나고 거기 반대되는 것은 하나만 반대되는데 그게 무엇인가요? 어린양만 반대가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기독교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근본 인간과 맞지 않았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있기 때문에 세상 모든 이종교와 그 근본이 다르고 나아가는 방향 자체가 완전히 틀린 것이 기독교입니다.
또 하나는 기독교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게 기독교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 기독교다. 이 말씀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첫 번째 기독교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아시지요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000씨 이해가 되요? 하나님을 위한 것 이거 이해되면 굉장히 큰건데? 쉽게 이해될 것 같지가 않은데.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을 해서 있다 이거 이해되는 것 같으면 깊은 걸 이해하는 건데. 이걸 알아야 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있다, 이거는 이해가 되십니까? 교리적으로 맞습니까? 첫째, 기독교란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종교들, 불교는 누구에게서 나왔습니까? 불교는 석가에게서 나왔고 사람에게서 나왔고, 불교는 누구 위해서 있습니까? 석가를 위해서 있습니까,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까? 불교는 모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불교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왔고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다. 모든 종교 유교나 힌두교나 모든 종교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는데 사람을 위해서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는 겁니다. 이거 이해가 되요? 00씨? 어렵지요. 하나님에게서 나왔는데 사람을 위해 있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라서 이걸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바로 못합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있다 그말입니다. 이거는 논리적으로 000 샘 맞습니까? 두 번째. 하나님을 위하여 이거는 하나님을 위한 거지요. 그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세상은 있고 그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 위하여 있다는 겁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그리 말하는 것이고,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이걸 기억을 하고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 말씀의 결론은 바로 이겁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위한, 그게 낫겠네요.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있다 그렇게 말하면 될런지요. 이것이 기독교고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역사, 이 세상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들과 산천초목과 바다와 모든 것들을 다 만들어내시고 만드신 모든 것을 하나하나 움직여서 이 세상을 운영해가시는 하나님의 주권 섭리 역사의 방향은 전부 몇 가지를 향하고 있습니까? 000샘 마음 속에, 몸이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고 마음 속에 다른 게 있어도 그럴 수 있어요. 예배 시간에 졸리는 것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은 몸이 정말 피곤해서 그럴 수 있고 그러면 일을 조절하면 되고, 마음 속에 다른 게 있으면 그리 될 수 있습니다. 몸이란 것은,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 겁니다. 깊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넓게 생각지 못하고 좁게 생각하면 사람이 좁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앞에 말씀드린 두가지를 기억을 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주권 섭리역사는 몇 가지를 향하고 있습니까? 00이 몇 가지? 두 가지? 뭐 뭐 두 가지? 두 가지는 맞아요 답이. 그런데 그 두가지가 뭡니까? 하나님의 모든 주권 역사는 두가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 두가지가 뭐지요? 첫째 하나님을 위하여. 또 하나는요?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이쪽으로 다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게 성경이고 우리가 배운 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본문에 보니까, 사무엘을 보내서 사울에게 전해라. 너희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을때 피곤한 틈을 타서 너희들을 괴롭혔던 아말렉을 내가 추억을 하노라. 지금 가서 그 아말렉 족속을 한말로 말하면 씨족을 모조리 멸해버려라. 멸족을 시켜 버려라 그말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진노하신 그 진노의 이유가 무엇인가. 위로는 첫째는 하나님 때문이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대하고 배반한 것이 깔려있고, 그다음 아말렉은 하나님의 직접 보다는 아말렉은 하나님의 직접보다는 아말렉은 그들은 몰라서 그랬을 수 있습니다. 아말렉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부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인데 어쨌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그 섭리역사를 아말렉이 방해를 했고, 거기 대해서 하나님을 진노하신 겁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노여워 하시는 것은 결국 하난데, 첫째는 하나님 자체를 배반하는 우상 섬기는 것. 가장 진노하시는 것이고, 1계명 2계명 다 같은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구원을 방해하고 인간 구원을 손해 끼치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구원 도리를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이스라엘을 보내서 족속을 모조리 남녀 소와 또 젖먹이까지 짐승들까지 모조리 다 죽여서 없애버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없애버릴 그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들 구원하는데 대적하고 방해되는 그 족속입니다. 그러면 오늘로 말하면 무엇인가?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 백성 인간 구원에 손해되고 방해되는 우리 속에 있는 자타의 속에 있는 모든 마음의 요소들, 몸의 요소들 모든 것들을 우리들이 전부다 없애 버려라. 그런데 그 없애버리는 것은, 내 속에 있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생각과 지식과 가치관과 사고 방식과 내 속에 삐뚤어진 지식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되고 손해끼치는 그런 마음에 심적의 모든 요소들을 없애버리는 것은 자기 스스로 다 뽑아내버려야 되고, 이거는 아말렉을 진멸하듯이 내 속에 있는 구원 역사에 방해되는 요소를 모조리 다 뽑아내야 되고 죽여서 없애 버려야 됩니다. 없애 버려야 되고, 내 몸에 습성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내 몸으로 활동하고 접촉하는 모든 활동과 접촉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되고 손해끼치는 그런 내 모든 생활과 습성과 그런 요소들을 모조리 다 없애버리라 그말입니다. 박멸을 해 버려라 이게 아말렉을 통해서 주시는 도리입니다. 생각해봐야 됩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말씀하신 아말렉을 진멸해버려라 이거는 전제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는게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되는 그 족속들 전부다를 멸해버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고, 노아 홍수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전부 다 멸해버리신 것은 그거는 그 중심 주체가 그 땅에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했다 그랬는데 그 죄악이라는 죄악의 기준이 이 세상 사람들이 판단하는 나라의 법이라든지 나라의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적인 이런 것이 하나님이 판단하신 세상을 멸망시킬 죄악이 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온 세상을 멸망시키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가득찼다는 그 죄악의 기준은 잣대는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뒤로 두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람의 딸들이라 그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온갖 것들,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남녀 결혼 이성으로 말씀을 하셨지만은 이거는 하나의 가장 상징적이며 대표적인 것이고 말하자면, 다른데 말하면 본남편을 두고 아내가 간부로 더불어 놀아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음녀로 더불어 놀아나는 이와 같은 이치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배워가고 닮아가서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고 그분으로 사는 이 생활은 멀리하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온갖 편리한 것, 아름다운 것 찬란한 것, 발달된 것 온갖 좋은 것들 그런 21세기 문화의 온갖 종류 그런 것들에게 마음을 다 뺏기고 정신을 다 뺏기고, 마음과 정신 뺏기니까 시간 다 빼앗겨 버리고 몸에 노력 힘 다 빼앗겨 버리고 하나님은 간 곳이 없어서 성경 읽을 시간이 있습니까? 기도할 시간이 있습니까? 말씀을 가지고 명상할 시간이 있습니까? 인생을 한번 돌아볼 그런 시간이 있습니까? 이런거는 전혀 없고 눈에 보이는 생활, 먹고 사는 것이야 지금 시대에, 미안한 말이지만, 얻어만 먹어도 배부르게 먹고 살만한 그런 시대인데 사람들이 왜 바쁘냐? 왜 시간이 없느냐 왜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느냐?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는 것은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고 더 잘 먹어야 되고 더 맛있고 좋은 것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고 더 편리하게 살아야 되니까 그래서 시간이 없게 되는 겁니다. 그것 줄여서 기본적으로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고 신앙생활 해나가면 어지간한 직장에서 마음껏 자유할 것이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또 인간구원 위해서 노력할 그런 것들은 꽉 찼습니다.
신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찾아들어가고 알아들어가고 그분을 만나 교제하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실력적으로 닮아가는 것이 신앙이고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안 읽으면 신앙생활은 못 합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리 예수 믿어봐야 안되는 겁니다. 왜 그럴 시간이 없느냐? 왜 바쁘냐. 바쁜 이유가 결국 들어가보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맞춰야 되니까. 좀 더 자기가 편리하게 그렇게 살기 위한 그것 때문에 바쁜 것이지, 그것 확 줄여놓고 나면 바빠야 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배 시간에 참석 못할 이유가 없고, 새벽기도 참석 못할 이유가 없고, 성경 읽을 시간이 없을 이유가 없고, 기도할 시간이 없을 이유가 하나도 없고, 집회 못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런 것 다 핑계되면 시간이 없어선데, 매여서 왜 시간이 없고 왜 매이느냐? 결국 돈 때문이고 그 돈은 자기 생활의 편리때문인데 그것만 줄여버리면 다 해결되는 겁니다. 그걸 안 줄이니까 해결이 안되는 거지요. 사람이란 것이 다 그렇습니다. 남쪽에, 지금은 남북이 그렇지만은, 서울에서 남북으로 갈라지는 북쪽 가는 열차, 남쪽 가는 열차에 양 발을 얹고 있으면 그 발이 가랑이가 찢어지지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어느 한 쪽에 타야 됩니다. 북쪽 가는 차를 타든 남쪽 가는 차든 타든 그래야 되지 양다리 걸치고 있으면 사람은 못 사는 겁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되고 자기만 죽고 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하나님은 2등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은 내가 세상에 한 개만 바치겠습니다. 하나님께 99를 다 바치고 세상에는 한 개만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다 좋아하고 그래 하라 그러지만은 하나님은 원치 않습니다. 한 개라도 두고 오려면 나는 필요없다. 너의 전부를 다 바치던지 아니면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모습이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노아 시대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잔인하게, 참 잔인무도하게 모조리, 거기는 젖먹이도 있을 것이고 아기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냘픈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불쌍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에별 종류의 사람들이 거기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 표현으로 말하면 눈 질끈 감고 홍수 내려서, 요즘 우리 나라에 국지성 호우가 많이 쏟아지니까, 지난 추석 전에 부산에 불과 몇시간 쏟아지니까 부산 난리가 났었지요 홍수가 나가지고. 불과 몇시간입니다. 몇시간 쏟아지니까 난리가 나는데 하늘에서 쏟아지고 땅에서 터져 올라오고 40일 동안 쏟아부으면 온 세상에 물이 가득찬다는 것이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리 되는 겁니다. 그렇게 모조리 다 홍수에 몰아넣어서 다 전멸을 시켜버리신 분이 하나님인데,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가? 당신을 멀리 한다고. 인간들이 당신을 배반한다고. 당신 뜻을 거슬린다고 하나님께서 잔인하게 모조리 다 죽여버린 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느냐를 오전에 예를 들어 말씀을 드렸지요. 인간 너희들은 안 그러냐? 너희들은 너희들 먹는 곡식, 너희들이 먹을 곡식을 벌레들이 먹는다고 그 벌레를 어떻게 너희들이 용서를 해줘? 벌레를 풀어놓고 다 밭 매어져? 농약을 쳐서 벌레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리는 겁니다. 그 벌레 입장에서는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도 생명이다. 이 벼가 인간 너희 양식뿐이 아니고 우리 양식도 되는 거다. 우리도 벼 좀 먹고 살자. 그런데 인간이 벌레보다 강하니까 모조리 약을 쳐서 다 죽여버립니다. 메뚜기를 모조리 다 죽여버리니까 메뚜기가 잘 없지요. 사람이 길러서 잡아먹어야 되는데 그 잡아먹어야 되는 소, 돼지한테 병이 들어가니까 그거 먹으면 사람이 병들 수 있고 위험하니까 전염된다고. 병 들지도 아니한 그런 소를 300만 마리를 모조리 다 죽여버리고 매장시켜버리는 게 인간입니다. 인간이 왜 그렇게 잔인합니까? 그렇게 할 때 그게 합법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돈을 줘가면서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라. 왜 그렇게 합니까? 인간이 중심이니까. 이 세상은 인간 중심이고 인간이 주체고 소 돼지는 인간을 위해서 있는 거니까. 이게 이런 차원에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거기서 더 올라가면 나중에는 인간끼리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지금은 서로 돕는게 있고 UN도 있고 있지요. 만약에 세계 이 지구상에 식량이 다 고갈되서 먹을 게 없어지고 쌀이 없어진다 그러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누가 살아 남겠습니까? 가장 강한 민족만 살아남습니다. 약육강식에. 짐승들만 그런게 아닙니다. 인간들의 본성은 바로 그런 겁니다. 그게 인간 수준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되어있으면서 겉으로 도덕적인 척, 윤리적인 척, 인간은 안 그런 척, 인권있는 척, 바탕을 알고 그런 것도 해야 되고 바로 찾아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본성을 찾아 들어가보면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을 다 전멸해버린 것, 노아시대 홍수로 다 쓸어버린 것, 소돔 고모라 멸망 시킨 것을 인간이 잔인하다 말 못합니다. 하나님은 주인입니다. 인간이야 인간끼리는 더 한 것이고, 인간과 짐승들은 같은 피조물입니다. 수준 차이지. 짐승에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짐승이 눈물 안 흘립니까? 짐승은 안 슬퍼합니까? 송아지가 애미소가 송아지 데려가는데 송아지를 떼 보지요? 애미소가 울고 불고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까. 송아지 새끼를 떼니까 갈때까지 울고 간다고. 소가 들을까 싶어서 소 흉도 못 본다 그러지 않습니까. 아는 사람들 다 그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있는 짐승, 이성이 있는 짐승을, 마음이 있는 짐승을 사람이 잡아 먹습니다. 식물은 생명이 없습니까? 고등 동물이라 하여, 고등 존재라 하여 저등의 존재를 당연한듯이 마구 죽이고 잡아 먹는 것이 인간인데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과는 존재 차원 자체가 다르다 그말이지요. 인간을 만드신, 사람이 뭔가를 만들어내도, 그래서 이 세상에서 창조라는 것은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은 다 제조지요, 제조. 발견이고 발명이고 제조지, 창조라는 것은 없는 겁니다. 사람들이 창조라는 말을 예사로 쓰는데 그것 전부다 가증스런 말이고 참람된 말들입니다. 전부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걸 가지고, 예를 들어 인간이 물을 가지고 피를 만들었다. 그러면 인간이 피를 없는 가운데 만든 것인가? 하나님이 내놓으신 물, 재료가지고 인간이 연구해가지고 찾아낸 것일 뿐이지 인간이 없는데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생명을 만들었다,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렸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것 하는 것이지 달리 한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하자면은, ‘유’라는 하나님이 존재해 계시니까 ‘유’고, 그 ‘유’에서 ‘유’가 나왔다. 그분에게서 모든 존재가 다 생겨졌다 그말입니다. 그분이 계신, 그래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존자시면서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 전쟁 이기고 난다음에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을 마중 나왔습니까?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지요. 이름이 뭐지요? 멜기세덱이 있는데, 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이 뭘 드렸습니까? 자기 얻은 것에 십분지 일을 드렸습니다. 뭡니까? 십일조입니다. 십일조가 무슨 뜻입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랬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말이지요. 히브리서에 보면 그래놨습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끝도 없고,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 멜기세덱 제사장인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자존자입니다. 시작한 날도 없고 끝도 없고 언제 계셨는지 모르고 언제까지 계신지 영원한데 그래서 그분은 자존자라. 누구로 말미암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존하신 하나님이고,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처음과 나중이오 시작과 끝이다.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 세상 지구상 물질계 영계 모든 존재는 그 무엇이든 천사든 영계든 뭐 크든 작든 어떤 신비한 존재든간에 보잘 것 없는 것이든 간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모든 존재는 생겨졌고, 그분이 있으므로 시간도 공간도 존재도 활동도 모든게 다 생겨지게 되어졌고, 그분이 끝나면 아무것도 없는 건데 그 분은 끝이 없으니까 영원히 있는 것이고, 알파와 오메가고, 그래서 그분은 전부다고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겨졌기 때문에 그분은 주인입니다. 모든 존재의 주인이 그분이다. 주인이니까 주인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포도원 품꾼 비유에 그랬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하루종일 일했는데 한 달란트 주고, 저 사람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한 데나리온 주고 불공평 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아 내가 너한테 잘못 한게 없다. 처음에 너 하루종일 일하고 한 데나리온 받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냐. 저 사람이 한 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 주는 것은 내 마음이다, 내 마음. 내 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누가 불읩니까? 그 항의하는 그 인간이 잘못이지요. 주인이 알아서 하는 것인데. 도자기를 만들다가 마음에 안들면, 수십개를 만들어서 열심히 정성들여 빚어가지고 도자기 안에 구웠는데, 넣고 구웠는데 만들어진것 보니까 마음에 안듭니다. 모조리 다 깨어버립니다. ‘그 아까운 걸 왜 깹니까?’ ‘내 마음에 안 들어서’ 할 말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깝다 그러지만은 주인이 마음에 안 들면은 깨버리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간섭 못하는 것이고 더욱이 만듦을 받는 그 도자기 자체는 그 주인에게 더욱 더 말을 못 하는 겁니다. 너는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만들어서 너는 있는 것이고 내가 깨면 없어지는게 너라는 존재다. 하나님이라는 분은 인간을 만드신 주인입니다. 없는 가운데서.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 신학자들이 이 사실을 알건데도 이런 말들을 잘 안합니다. 이런 설교를 하면은 아는 분들은 꿈뻑 넘어가버립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무엇인가? 기독교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 한분의 종교다 그말입니다. 그분에게서 나왔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 향해서 찾아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놓고 정해놓고 그 백성을 당신의 뜻이 있어 인도해내시고 구원해내시는데 아말렉 족속이 방해를 했습니다. 방해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조리 다 씨족을 멸해버려라 그럴때, 그 아말렉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런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니까 사람이 볼때는 사람이지만은 하나님 보실때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모기가 많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우리 어여쁜 아기가 쌔근쌔근 자고 있는데 모기들이 달라 들어서 애기를 물려고 그럽니다. 모기장이 없어 모기장 쳐놨는데도 뚫고 들어왔습니다. ‘이놈의 모기’ 하고 가서 모기채를 가지고 탁 잡아 죽이던지 아니면 모기약을 뿌려서 죽여버립니다. 피가 터지도록. 모기 대가리가 탁 터져버립니다. 죽여버리지요. 모기는 ‘나도 좀 먹고 살자’. 모기는 피를 빨아먹고 살아야되는데 자기 자식 피 좀 빨아먹는다고 생명을 죽여? 모기를 죽여? 하면 모기를 죽인다고 항의하는 그 인간이 이상합니까? 모기를 죽이는 사람이 이상합니까? 누가 이상합니까? 따지고 보면 다 그렇다 그말이지요.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 앞에 인간에게 내 아들을 내 아들 딸 어여쁜 내 아기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보다 이스라엘을 방해하는 아말렉 족속은 그 모기보다 하나님 앞에 더 못한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때려죽어도 아무 잘못이 없는 겁니다 그거는. 하나님 편에서. 이걸 세상 사람들이 이해를 하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은 이해를 못하지요. 이런 성경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이게 성경이고 이게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이 세상은 점점 인본주의화 되어져 갑니다, 세상은. 성경입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한 몸통입니다. 뿔은 열 개고 머리는 일곱인데 몸통은 하나입니다. 그 이름이 뭐라고요? 짐승인데, 그 이름이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전부다 똘똘 뭉쳐 하나입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이 나라 저나라 겉으로는 다 대립되는 것 같으나 속에 들어가보면 전부다 인본주의라는 그 하나로 전부다 뭉쳐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전부 그 인본주의에 다 동화되고 하나되고 다 거기 들어갑니다. 안 들어가는 종교 안 들어가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종교든 교혁이든 문화든 정치든 철학이든 뭐든지 그 속에 다 들어갑니다. 안 들어가는 거는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름이 뭐라고요 성경에? 어린양이고 그 어린양은 바로 기독교고, 왜 안들어가느냐? 그 기독교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종교기 때문에 이 세상 인본주의와 맞을 수도 없고 그 속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 한분만을 전부 삼고 믿는 이런 성도를 만드시려고 하니까 그런 세상을 만들어놨고 그 성도가 참된 성도인지 아브람에게 니가 참 믿는지 안 믿는지 지금까지는 잘 왔는데 내가 너의 믿음을 좀 더 알아봐야 되겠다 하고 백세에 낳은 아들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모레아 산에 가서 칼로 찔러 죽여서 번제로 태워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라고 시험을 하시듯이, 그래야 내가 알겠다 시험을 하시듯이, 네가 잘 믿는데 이 세상을 인본주의로 하나되는 그 세상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못 견디는데 하나님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만으로 전부 삼는 그런 성도인지 아닌지를 내가 모르겠으니까, 봐야 되겠다 하고 세상을 그래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래서 당하는 것이 말세에 참된 성도들이 당하는 환난이고 고통이고 어려움이 되는 겁니다. 그럴때 하나만 양보하면 됩니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신앙을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일본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 예수를 못 믿게 한 거 아닙니다. 일본식 기독교를 믿어라. 예배 드리기 전에 우리 정부 차원에서 우리나라 전부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되겠으니까 예배당안에 십자가도 걸어놓고 그 옆에 국기나 하나 걸어놓고 예배 드리기 전에 찬송하기 전에 기도하기 전에 말씀 선포하기 전에 예배 드리기 전에 절 딱 한번만 하고 예배 드리면 아무 말도 안 합니다. 적극 협조해줍니다. 좋아합니다. 공산주의식 기독교를 믿으면 적극 찬성해줍니다. 예수 믿지 말라 말 안합니다, 그 사람들. 성경 얼마든지 들고 다니라 합니다. 보라 합니다. 하나만 딱 내놔라 합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만으로 전부 삼는 그걸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게 전부입니다. 그것 내놓으면 생명 끊어지고 정조 판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것 내놓으면 들어가보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것 붙들려 그러면 나중에는 전부다 내놔야 되는데. 오늘 우리는 그리 향해서 가고 있는데 마지막에 그게 어떤 형태로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되는 아말렉을 내 사랑하는 아기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를 탁 때려죽이듯이 하나님의 백성 구원하는 역사에 방해하는 아말렉을 하나님께서 사울을 보내서 모조리 다 죽여버린 겁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아깝다고 살려두니까 사울을 하나님께서 죽여버린 겁니다. ‘내가 죽이라는 인간을 안 죽여? 네가 죽어야지.’ 하나님께서 사울을 나중에 비참하게 자살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칼로 자기가 죽었습니다. 아들들 다 그렇게 죽었고. 그게 성경입니다, 성경 기록이고. 그분이 바로 그렇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잘난 것, 돈 많은 것, 많이 배운 것, 유식한 것,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 구원역사에 도움이 되면은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나 그런 것들은 도움 될 것도 별로 없고 그런 거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별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많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숫자가 많아서 너희들이 잘나서 내가 뽑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모든 민족보다 오히려 숫자도 적고 못한데 못난 너희들을 내가 뽑아가지고 잘나게 만드는 것이 내 뜻이다’. 성경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못나도 상관없고 무식해도 상관없고 못 배워도 상관없고 가난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 삼는 그 신앙만, 그 중심, 그 사상, 그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소돔 고모라 성을 멸망시킨 것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 듣기 쉽게, 사람들이 알기 쉽게 그런 걸 표현할 때는 살인이 많았을 것이고 폭행도 많았을 것이고 강도도 많았을 것이고 음행죄도 많았을 것이고, 온갖 종류가 많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표현을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실상은 모릅니다. 그 도시에 죄악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말입니다. 분명한 하나 안것은 그 도시에 보나 안보나 하나님은 없었다는 겁니다. 소돔 고모라 성에. 롯 한 사람 있었고, 그 롯이 날마다 의로운 심령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롯의 의로운 심령이 뭘 보고 상했는지 모릅니다. 도둑질 하는 것 보고 감염이 됐는지, 강도짓 하는 것 보고 감염 됐는지, 이성 범죄보고 감염이 됐는지, 아니면 그 롯의 의로운 심령이 그런 것 보다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호화찬란한 21세기 문명같은 그런 보기좋은 그런 생활에 그런 문화생활에 폭 빠진 거기에 롯의 심령이 감염이 됐는지 모릅니다. 아마 확률이 그게 더 많지 않을까. 롯은 의인인데, 도덕적으로 좀 있는 사람은 살인 강도 이성범죄에 도덕적이고 의지있고 자기 수양된 사람은 거기 감염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생활 문화 하나님 없는, 창세기 6장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다 도취되듯이 그런 식으로 감염되는데는 의인들도 별 수 없이 저절로 따라가는 겁니다, 세월 속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말하자면 본보기로 모조리 유황불비로 다 태워서 없애버린 것이 소돔 고모라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의 계시입니다, 형식 계시. 하나님을 배반하면 이렇게 망한다. 전인류라도 하나님 배반하고 떠나면 전인류라도 다 전멸시키는 이것이 천국과 지옥의 계시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모신 곳은 천국이고 하나님 떠난 곳은 노아 홍수때 전인류를 다 전멸시키듯이 어떤 많은 인간이라도 지옥을 만들어서 하나님 떠난 인간은 모조리 다 던져 놓는 겁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떠나면 소돔 고모라처럼 완전히 망한다. 우리들 개인으로 말하면 내 마음과 몸의 요소, 심신의 기능 요소에 하나님 배반하고 인간 구원에 방해되는 그런 요소가 있는 것들은 모조리 다 멸망 받는다는 것을 그런 것으로도 보여주는 계시라고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기독교고 이런 하나님이고 이런 하나님의 역사기 때문에 우리들이 힘을 쓸 것은 이런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찾고 이런 하나님이고 이런 하나님의 역사인줄 알고 그분을 우리는 두려워하고 그분을 경외해야 됩니다. 경외하고 그분을 바로 섬기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결론은, 하나님의 진노는 과연 사랑인가? 그분은 본체 자체가 사랑입니다. 사랑이기 때문에 그분이 하는 모든 역사는 전부다 사랑입니다. 왜 그분이 사랑이냐? 그게 사랑이냐? 그분이 전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분 당신이 전부기 때문에. 그분이 사랑이라 하면 사랑인 겁니다. 그분이 아니라 하면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항변할 수도 없고 항변도 되지 아니하고 항변할 논리도 이론도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무엇이 제일이라고요? 000? 뭐가 제일입니까? 몰라요? 000 뭐가 제일입니까? 공과 안 배웠습니까? 000 뭐가 제일입니까? 크게. 청종이 제일이다. 기독교는 청종이 제일입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에는 순종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순종에, 지난주 말씀에서 그 순종에 거슬리는 가장 큰 대적이 뭐냐? 순종만 하면 되는데, 그 순종에 거리끼는 가장 큰 것이 바로 자기고 이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을 해야 된다고 수도없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성경에도 보면은 누구든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라. 다른 곳에 보면 해석하면 세상을 부인하고. 자기와 세상을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은 따라갈 수가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기 속에 있는 그 자기는 새사람 자기를 부인하라는게 아닙니다. 우리 속에는 둘이 있어서, 오래토록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아간 사람일수록 하나님과 말씀과 일치되는 그런 자기 심신의 요소가 많이 있고, 하나님과 말씀을 떠나서 사는 세월이 많을수록 그 속에는 하나님과 배치되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런 심신의 모든 요소를 다 부인을 해야 됩니다. 꺽어야 되고, 온 세상이 다 그리 됐을지라도 그 세상에는 내가 감염되지를 않아야 됩니다. 그 세상 따라 세상에 감염되서 세상을 따라가게 되면 신앙의 길은 걸어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 가는 사람은 많지만은 멸망이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지만은 생명길이다. 그 좁은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이 내놓으신 말씀으로만 걸어가는게 바로 좁은 길입니다. 옳고 바른 하나만 되는 참의 길을 걸어가는 것, 이것이 좁은 길입니다.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 부자가 무엇입니까? 자기 부인을 안하면 부자입니다. 세상 부인을 안하면 부자입니다. 가진 것이 있으면 부자입니다. 다 내놔야 되는데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 겁니다. 말씀 드리듯이 기도라는 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성경 읽는 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성경 읽고 주일 지키는 것은 하나의 그게 그 자체가 구원일 수 있지만 이거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방법이고. 그걸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그분 알고 그분을 만나는 방법을 알고 그분 향해 가는 길을 알고 방법을 알아서 그분 향해서 가고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되어서 그분과 교제하고 점점 그분 닮아가는 이걸 위해서 성경 읽어야 되고 기도해야 되고 예배를 드려야 되고 말씀을 자꾸 들어야 되고 생각을 해야 되고 그리 하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제목은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인가? 이 말씀에서 이게 기독교의 가장 깊은 것이고 근본인데, 이걸 알고나면 신앙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이 될 수가 있습니다. 좀 깊이 생각해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역사를 두고 의문을 가져 보셔야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그토록 잔인하게 매몰차게 진멸하게 하셨는가? 왜 노아 홍수 시대때 전인류를 그렇게 아낌없이 다 홍수에 넣어서 모조리 멸망을 시켜 버렸는가? 왜 소돔 고모라 성을 그렇게 다 태워 없애 버렸는가? 그 소돔 고모라 성의 죄악이 어떤 죄악이였을까? 롯이 감염된 그 감염의 죄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을 기준해서 살펴봐야 되지, 인간 도덕 윤리 인간관계를 기준해서 하면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깊은 알맹이를 좀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그분을 위해서 있고 그분의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이걸 위해서 온 세상은 다 있습니다.
사무엘상 15:1-3
세상의 모든 종교를 크게 나누면 둘로 나눌 수 있어서, 하나는 우리 기독교가 있고 하나는 다를 이 자를 써서 이종교라고 기독교 외에 모든 종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종교는 불교든 유교든 힌두교든 어떤 종교든 이슬람교까지 변질된 것까지 변질이 됐으니까 세상의 모든 종교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사람에게서 나왔고, 사람에게서 나왔고 그말은 사람으로 말미암았다 그말이고 사람이 만들어냈다 그말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왔고 또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들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종교들은 안에 내용이 어떻게 사람 생각할 때 깊고 오묘하고 또 특이한 그런 것들이 많이 있을지라도 결국 그 근본을 파서 들어가보면 그 뿌리 근본은 사람 범위를 한계를 넘어설 수가 없는 것이고 사람의 머릿속에서 사람의 생각으로 사람의 상상으로 사람의 추측과 추론으로 나온 것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종교들 전부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겁니다. 사람을 평안하게 행복하게 또 마음에 위로를 주도록 소망을 주도록 그래서 이 세상을 평안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이종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사람에게서 나지 않았고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하나님이 만드신 종교가 우리 기독교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 세상은 사람이 주인이고 사람이 주체고 중심이 되어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전부다 사람을 위해서 있어야 되고 사람 때문에 있어야 되는 것이 이 세상에 모든 것들입니다. 그거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점점 이게 심화되어지고, 그래서 모든 세계는 점점 민주주의 다시 말하면 인본주의가 점점 되어져 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게 경제가 발전되고 모든 문화 문명이 발전이 될수록 그 모든 발전의 근본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고 인간이 표면적으로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중심의 세상이 될 수 밖에 없고 거기에 맞지 않고 배치되는 것은 그 모든 세상과 마찰이 되어지고 부딪히고 그래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일곱 머리와 열 뿔 그 전부는 하나고 거기 반대되는 것은 하나만 반대되는데 그게 무엇인가요? 어린양만 반대가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기독교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에 근본 인간과 맞지 않았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있기 때문에 세상 모든 이종교와 그 근본이 다르고 나아가는 방향 자체가 완전히 틀린 것이 기독교입니다.
또 하나는 기독교는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동시에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게 기독교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 기독교다. 이 말씀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첫 번째 기독교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아시지요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이해가 되십니까? 000씨 이해가 되요? 하나님을 위한 것 이거 이해되면 굉장히 큰건데? 쉽게 이해될 것 같지가 않은데.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을 해서 있다 이거 이해되는 것 같으면 깊은 걸 이해하는 건데. 이걸 알아야 되고, 두 번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있다, 이거는 이해가 되십니까? 교리적으로 맞습니까? 첫째, 기독교란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종교들, 불교는 누구에게서 나왔습니까? 불교는 석가에게서 나왔고 사람에게서 나왔고, 불교는 누구 위해서 있습니까? 석가를 위해서 있습니까, 모든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까? 불교는 모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불교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왔고 사람을 위해서 있습니다. 모든 종교 유교나 힌두교나 모든 종교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는데 사람을 위해서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는 겁니다. 이거 이해가 되요? 00씨? 어렵지요. 하나님에게서 나왔는데 사람을 위해 있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라서 이걸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바로 못합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있다 그말입니다. 이거는 논리적으로 000 샘 맞습니까? 두 번째. 하나님을 위하여 이거는 하나님을 위한 거지요. 그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세상은 있고 그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 위하여 있다는 겁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가리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 그리 말하는 것이고,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입니다. 이걸 기억을 하고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 말씀의 결론은 바로 이겁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 두 번째, 하나님을 위한, 그게 낫겠네요.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있다 그렇게 말하면 될런지요. 이것이 기독교고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역사, 이 세상을 만드시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해와 달과 별들과 산천초목과 바다와 모든 것들을 다 만들어내시고 만드신 모든 것을 하나하나 움직여서 이 세상을 운영해가시는 하나님의 주권 섭리 역사의 방향은 전부 몇 가지를 향하고 있습니까? 000샘 마음 속에, 몸이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고 마음 속에 다른 게 있어도 그럴 수 있어요. 예배 시간에 졸리는 것 말씀이 안 들리는 것은 몸이 정말 피곤해서 그럴 수 있고 그러면 일을 조절하면 되고, 마음 속에 다른 게 있으면 그리 될 수 있습니다. 몸이란 것은,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 겁니다. 깊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넓게 생각지 못하고 좁게 생각하면 사람이 좁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앞에 말씀드린 두가지를 기억을 하고, 그러면 하나님의 모든 주권 섭리역사는 몇 가지를 향하고 있습니까? 00이 몇 가지? 두 가지? 뭐 뭐 두 가지? 두 가지는 맞아요 답이. 그런데 그 두가지가 뭡니까? 하나님의 모든 주권 역사는 두가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 두가지가 뭐지요? 첫째 하나님을 위하여. 또 하나는요? 하나님의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이쪽으로 다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게 성경이고 우리가 배운 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본문에 보니까, 사무엘을 보내서 사울에게 전해라. 너희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을때 피곤한 틈을 타서 너희들을 괴롭혔던 아말렉을 내가 추억을 하노라. 지금 가서 그 아말렉 족속을 한말로 말하면 씨족을 모조리 멸해버려라. 멸족을 시켜 버려라 그말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속성,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진노하신 그 진노의 이유가 무엇인가. 위로는 첫째는 하나님 때문이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대하고 배반한 것이 깔려있고, 그다음 아말렉은 하나님의 직접 보다는 아말렉은 하나님의 직접보다는 아말렉은 그들은 몰라서 그랬을 수 있습니다. 아말렉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일부로 그러지는 않았을 것인데 어쨌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그 섭리역사를 아말렉이 방해를 했고, 거기 대해서 하나님을 진노하신 겁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가장 노여워 하시는 것은 결국 하난데, 첫째는 하나님 자체를 배반하는 우상 섬기는 것. 가장 진노하시는 것이고, 1계명 2계명 다 같은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 구원을 방해하고 인간 구원을 손해 끼치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신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구원 도리를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이스라엘을 보내서 족속을 모조리 남녀 소와 또 젖먹이까지 짐승들까지 모조리 다 죽여서 없애버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없애버릴 그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들 구원하는데 대적하고 방해되는 그 족속입니다. 그러면 오늘로 말하면 무엇인가? 오늘로 말하면 하나님 백성 인간 구원에 손해되고 방해되는 우리 속에 있는 자타의 속에 있는 모든 마음의 요소들, 몸의 요소들 모든 것들을 우리들이 전부다 없애 버려라. 그런데 그 없애버리는 것은, 내 속에 있는 것은 내 마음 속에 생각과 지식과 가치관과 사고 방식과 내 속에 삐뚤어진 지식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되고 손해끼치는 그런 마음에 심적의 모든 요소들을 없애버리는 것은 자기 스스로 다 뽑아내버려야 되고, 이거는 아말렉을 진멸하듯이 내 속에 있는 구원 역사에 방해되는 요소를 모조리 다 뽑아내야 되고 죽여서 없애 버려야 됩니다. 없애 버려야 되고, 내 몸에 습성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고 내 몸으로 활동하고 접촉하는 모든 활동과 접촉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되고 손해끼치는 그런 내 모든 생활과 습성과 그런 요소들을 모조리 다 없애버리라 그말입니다. 박멸을 해 버려라 이게 아말렉을 통해서 주시는 도리입니다. 생각해봐야 됩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말씀하신 아말렉을 진멸해버려라 이거는 전제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나는게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되는 그 족속들 전부다를 멸해버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고, 노아 홍수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전부 다 멸해버리신 것은 그거는 그 중심 주체가 그 땅에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했다 그랬는데 그 죄악이라는 죄악의 기준이 이 세상 사람들이 판단하는 나라의 법이라든지 나라의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적인 이런 것이 하나님이 판단하신 세상을 멸망시킬 죄악이 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온 세상을 멸망시키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가득찼다는 그 죄악의 기준은 잣대는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뒤로 두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람의 딸들이라 그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온갖 것들, 대표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 사람의 딸들 남녀 결혼 이성으로 말씀을 하셨지만은 이거는 하나의 가장 상징적이며 대표적인 것이고 말하자면, 다른데 말하면 본남편을 두고 아내가 간부로 더불어 놀아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음녀로 더불어 놀아나는 이와 같은 이치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배워가고 닮아가서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지고 그분으로 사는 이 생활은 멀리하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온갖 편리한 것, 아름다운 것 찬란한 것, 발달된 것 온갖 좋은 것들 그런 21세기 문화의 온갖 종류 그런 것들에게 마음을 다 뺏기고 정신을 다 뺏기고, 마음과 정신 뺏기니까 시간 다 빼앗겨 버리고 몸에 노력 힘 다 빼앗겨 버리고 하나님은 간 곳이 없어서 성경 읽을 시간이 있습니까? 기도할 시간이 있습니까? 말씀을 가지고 명상할 시간이 있습니까? 인생을 한번 돌아볼 그런 시간이 있습니까? 이런거는 전혀 없고 눈에 보이는 생활, 먹고 사는 것이야 지금 시대에, 미안한 말이지만, 얻어만 먹어도 배부르게 먹고 살만한 그런 시대인데 사람들이 왜 바쁘냐? 왜 시간이 없느냐 왜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느냐?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는 것은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고 더 잘 먹어야 되고 더 맛있고 좋은 것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고 더 편리하게 살아야 되니까 그래서 시간이 없게 되는 겁니다. 그것 줄여서 기본적으로 성경에 말씀하신대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고 신앙생활 해나가면 어지간한 직장에서 마음껏 자유할 것이고 기도하고 성경 읽고 또 인간구원 위해서 노력할 그런 것들은 꽉 찼습니다.
신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찾아들어가고 알아들어가고 그분을 만나 교제하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실력적으로 닮아가는 것이 신앙이고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안 읽으면 신앙생활은 못 합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은 신앙생활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리 예수 믿어봐야 안되는 겁니다. 왜 그럴 시간이 없느냐? 왜 바쁘냐. 바쁜 이유가 결국 들어가보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맞춰야 되니까. 좀 더 자기가 편리하게 그렇게 살기 위한 그것 때문에 바쁜 것이지, 그것 확 줄여놓고 나면 바빠야 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예배 시간에 참석 못할 이유가 없고, 새벽기도 참석 못할 이유가 없고, 성경 읽을 시간이 없을 이유가 없고, 기도할 시간이 없을 이유가 하나도 없고, 집회 못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그런 것 다 핑계되면 시간이 없어선데, 매여서 왜 시간이 없고 왜 매이느냐? 결국 돈 때문이고 그 돈은 자기 생활의 편리때문인데 그것만 줄여버리면 다 해결되는 겁니다. 그걸 안 줄이니까 해결이 안되는 거지요. 사람이란 것이 다 그렇습니다. 남쪽에, 지금은 남북이 그렇지만은, 서울에서 남북으로 갈라지는 북쪽 가는 열차, 남쪽 가는 열차에 양 발을 얹고 있으면 그 발이 가랑이가 찢어지지 견딜 수가 없는 겁니다. 어느 한 쪽에 타야 됩니다. 북쪽 가는 차를 타든 남쪽 가는 차든 타든 그래야 되지 양다리 걸치고 있으면 사람은 못 사는 겁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되고 자기만 죽고 마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하나님은 2등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은 내가 세상에 한 개만 바치겠습니다. 하나님께 99를 다 바치고 세상에는 한 개만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세상은 다 좋아하고 그래 하라 그러지만은 하나님은 원치 않습니다. 한 개라도 두고 오려면 나는 필요없다. 너의 전부를 다 바치던지 아니면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모습이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노아 시대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잔인하게, 참 잔인무도하게 모조리, 거기는 젖먹이도 있을 것이고 아기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냘픈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불쌍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별에별 종류의 사람들이 거기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람 표현으로 말하면 눈 질끈 감고 홍수 내려서, 요즘 우리 나라에 국지성 호우가 많이 쏟아지니까, 지난 추석 전에 부산에 불과 몇시간 쏟아지니까 부산 난리가 났었지요 홍수가 나가지고. 불과 몇시간입니다. 몇시간 쏟아지니까 난리가 나는데 하늘에서 쏟아지고 땅에서 터져 올라오고 40일 동안 쏟아부으면 온 세상에 물이 가득찬다는 것이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리 되는 겁니다. 그렇게 모조리 다 홍수에 몰아넣어서 다 전멸을 시켜버리신 분이 하나님인데,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가? 당신을 멀리 한다고. 인간들이 당신을 배반한다고. 당신 뜻을 거슬린다고 하나님께서 잔인하게 모조리 다 죽여버린 겁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느냐를 오전에 예를 들어 말씀을 드렸지요. 인간 너희들은 안 그러냐? 너희들은 너희들 먹는 곡식, 너희들이 먹을 곡식을 벌레들이 먹는다고 그 벌레를 어떻게 너희들이 용서를 해줘? 벌레를 풀어놓고 다 밭 매어져? 농약을 쳐서 벌레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리는 겁니다. 그 벌레 입장에서는 자기들도 먹고 살아야 됩니다. 우리도 생명이다. 이 벼가 인간 너희 양식뿐이 아니고 우리 양식도 되는 거다. 우리도 벼 좀 먹고 살자. 그런데 인간이 벌레보다 강하니까 모조리 약을 쳐서 다 죽여버립니다. 메뚜기를 모조리 다 죽여버리니까 메뚜기가 잘 없지요. 사람이 길러서 잡아먹어야 되는데 그 잡아먹어야 되는 소, 돼지한테 병이 들어가니까 그거 먹으면 사람이 병들 수 있고 위험하니까 전염된다고. 병 들지도 아니한 그런 소를 300만 마리를 모조리 다 죽여버리고 매장시켜버리는 게 인간입니다. 인간이 왜 그렇게 잔인합니까? 그렇게 할 때 그게 합법적으로 정부 차원에서 돈을 줘가면서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해라. 왜 그렇게 합니까? 인간이 중심이니까. 이 세상은 인간 중심이고 인간이 주체고 소 돼지는 인간을 위해서 있는 거니까. 이게 이런 차원에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거기서 더 올라가면 나중에는 인간끼리 문제가 생깁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지금은 서로 돕는게 있고 UN도 있고 있지요. 만약에 세계 이 지구상에 식량이 다 고갈되서 먹을 게 없어지고 쌀이 없어진다 그러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누가 살아 남겠습니까? 가장 강한 민족만 살아남습니다. 약육강식에. 짐승들만 그런게 아닙니다. 인간들의 본성은 바로 그런 겁니다. 그게 인간 수준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되어있으면서 겉으로 도덕적인 척, 윤리적인 척, 인간은 안 그런 척, 인권있는 척, 바탕을 알고 그런 것도 해야 되고 바로 찾아나가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본성을 찾아 들어가보면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을 다 전멸해버린 것, 노아시대 홍수로 다 쓸어버린 것, 소돔 고모라 멸망 시킨 것을 인간이 잔인하다 말 못합니다. 하나님은 주인입니다. 인간이야 인간끼리는 더 한 것이고, 인간과 짐승들은 같은 피조물입니다. 수준 차이지. 짐승에 마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짐승이 눈물 안 흘립니까? 짐승은 안 슬퍼합니까? 송아지가 애미소가 송아지 데려가는데 송아지를 떼 보지요? 애미소가 울고 불고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까. 송아지 새끼를 떼니까 갈때까지 울고 간다고. 소가 들을까 싶어서 소 흉도 못 본다 그러지 않습니까. 아는 사람들 다 그렇게 말합니다. 마음이 있는 짐승, 이성이 있는 짐승을, 마음이 있는 짐승을 사람이 잡아 먹습니다. 식물은 생명이 없습니까? 고등 동물이라 하여, 고등 존재라 하여 저등의 존재를 당연한듯이 마구 죽이고 잡아 먹는 것이 인간인데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과는 존재 차원 자체가 다르다 그말이지요. 인간을 만드신, 사람이 뭔가를 만들어내도, 그래서 이 세상에서 창조라는 것은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은 다 제조지요, 제조. 발견이고 발명이고 제조지, 창조라는 것은 없는 겁니다. 사람들이 창조라는 말을 예사로 쓰는데 그것 전부다 가증스런 말이고 참람된 말들입니다. 전부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걸 가지고, 예를 들어 인간이 물을 가지고 피를 만들었다. 그러면 인간이 피를 없는 가운데 만든 것인가? 하나님이 내놓으신 물, 재료가지고 인간이 연구해가지고 찾아낸 것일 뿐이지 인간이 없는데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생명을 만들었다, 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렸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것 하는 것이지 달리 한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하자면은, ‘유’라는 하나님이 존재해 계시니까 ‘유’고, 그 ‘유’에서 ‘유’가 나왔다. 그분에게서 모든 존재가 다 생겨졌다 그말입니다. 그분이 계신, 그래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자존자시면서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소돔 고모라 전쟁 이기고 난다음에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을 마중 나왔습니까?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지요. 이름이 뭐지요? 멜기세덱이 있는데, 그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이 뭘 드렸습니까? 자기 얻은 것에 십분지 일을 드렸습니다. 뭡니까? 십일조입니다. 십일조가 무슨 뜻입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그랬는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말이지요. 히브리서에 보면 그래놨습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끝도 없고,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 멜기세덱 제사장인에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자존자입니다. 시작한 날도 없고 끝도 없고 언제 계셨는지 모르고 언제까지 계신지 영원한데 그래서 그분은 자존자라. 누구로 말미암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자존하신 하나님이고,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처음과 나중이오 시작과 끝이다.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이 세상 지구상 물질계 영계 모든 존재는 그 무엇이든 천사든 영계든 뭐 크든 작든 어떤 신비한 존재든간에 보잘 것 없는 것이든 간에 하나님으로 인하여 모든 존재는 생겨졌고, 그분이 있으므로 시간도 공간도 존재도 활동도 모든게 다 생겨지게 되어졌고, 그분이 끝나면 아무것도 없는 건데 그 분은 끝이 없으니까 영원히 있는 것이고, 알파와 오메가고, 그래서 그분은 전부다고 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생겨졌기 때문에 그분은 주인입니다. 모든 존재의 주인이 그분이다. 주인이니까 주인 마음대로 하는 겁니다. 포도원 품꾼 비유에 그랬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하루종일 일했는데 한 달란트 주고, 저 사람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한 데나리온 주고 불공평 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아 내가 너한테 잘못 한게 없다. 처음에 너 하루종일 일하고 한 데나리온 받기로 약속을 하지 않았냐. 저 사람이 한 시간 일하고 한 데나리온 주는 것은 내 마음이다, 내 마음. 내 것 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냐?’ 누가 불읩니까? 그 항의하는 그 인간이 잘못이지요. 주인이 알아서 하는 것인데. 도자기를 만들다가 마음에 안들면, 수십개를 만들어서 열심히 정성들여 빚어가지고 도자기 안에 구웠는데, 넣고 구웠는데 만들어진것 보니까 마음에 안듭니다. 모조리 다 깨어버립니다. ‘그 아까운 걸 왜 깹니까?’ ‘내 마음에 안 들어서’ 할 말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아깝다 그러지만은 주인이 마음에 안 들면은 깨버리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간섭 못하는 것이고 더욱이 만듦을 받는 그 도자기 자체는 그 주인에게 더욱 더 말을 못 하는 겁니다. 너는 내가 만든 것이고, 내가 만들어서 너는 있는 것이고 내가 깨면 없어지는게 너라는 존재다. 하나님이라는 분은 인간을 만드신 주인입니다. 없는 가운데서.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 신학자들이 이 사실을 알건데도 이런 말들을 잘 안합니다. 이런 설교를 하면은 아는 분들은 꿈뻑 넘어가버립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무엇인가? 기독교라는 것은 결국 하나님 한분의 종교다 그말입니다. 그분에게서 나왔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 향해서 찾아가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만들어놓고 정해놓고 그 백성을 당신의 뜻이 있어 인도해내시고 구원해내시는데 아말렉 족속이 방해를 했습니다. 방해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조리 다 씨족을 멸해버려라 그럴때, 그 아말렉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런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니까 사람이 볼때는 사람이지만은 하나님 보실때는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모기가 많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우리 어여쁜 아기가 쌔근쌔근 자고 있는데 모기들이 달라 들어서 애기를 물려고 그럽니다. 모기장이 없어 모기장 쳐놨는데도 뚫고 들어왔습니다. ‘이놈의 모기’ 하고 가서 모기채를 가지고 탁 잡아 죽이던지 아니면 모기약을 뿌려서 죽여버립니다. 피가 터지도록. 모기 대가리가 탁 터져버립니다. 죽여버리지요. 모기는 ‘나도 좀 먹고 살자’. 모기는 피를 빨아먹고 살아야되는데 자기 자식 피 좀 빨아먹는다고 생명을 죽여? 모기를 죽여? 하면 모기를 죽인다고 항의하는 그 인간이 이상합니까? 모기를 죽이는 사람이 이상합니까? 누가 이상합니까? 따지고 보면 다 그렇다 그말이지요. 아말렉 족속은 하나님 앞에 인간에게 내 아들을 내 아들 딸 어여쁜 내 아기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보다 이스라엘을 방해하는 아말렉 족속은 그 모기보다 하나님 앞에 더 못한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때려죽어도 아무 잘못이 없는 겁니다 그거는. 하나님 편에서. 이걸 세상 사람들이 이해를 하겠습니까? 안 믿는 사람은 이해를 못하지요. 이런 성경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이해를 못하는 겁니다. 이게 성경이고 이게 기독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이 세상은 점점 인본주의화 되어져 갑니다, 세상은. 성경입니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이, 한 몸통입니다. 뿔은 열 개고 머리는 일곱인데 몸통은 하나입니다. 그 이름이 뭐라고요? 짐승인데, 그 이름이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전부다 똘똘 뭉쳐 하나입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이 나라 저나라 겉으로는 다 대립되는 것 같으나 속에 들어가보면 전부다 인본주의라는 그 하나로 전부다 뭉쳐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전부 그 인본주의에 다 동화되고 하나되고 다 거기 들어갑니다. 안 들어가는 종교 안 들어가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 종교든 교혁이든 문화든 정치든 철학이든 뭐든지 그 속에 다 들어갑니다. 안 들어가는 거는 딱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름이 뭐라고요 성경에? 어린양이고 그 어린양은 바로 기독교고, 왜 안들어가느냐? 그 기독교는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종교기 때문에 이 세상 인본주의와 맞을 수도 없고 그 속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 한분만을 전부 삼고 믿는 이런 성도를 만드시려고 하니까 그런 세상을 만들어놨고 그 성도가 참된 성도인지 아브람에게 니가 참 믿는지 안 믿는지 지금까지는 잘 왔는데 내가 너의 믿음을 좀 더 알아봐야 되겠다 하고 백세에 낳은 아들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모레아 산에 가서 칼로 찔러 죽여서 번제로 태워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라고 시험을 하시듯이, 그래야 내가 알겠다 시험을 하시듯이, 네가 잘 믿는데 이 세상을 인본주의로 하나되는 그 세상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못 견디는데 하나님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만으로 전부 삼는 그런 성도인지 아닌지를 내가 모르겠으니까, 봐야 되겠다 하고 세상을 그래 만들어 놓는 겁니다. 그래서 당하는 것이 말세에 참된 성도들이 당하는 환난이고 고통이고 어려움이 되는 겁니다. 그럴때 하나만 양보하면 됩니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신앙을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일본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들이 예수를 못 믿게 한 거 아닙니다. 일본식 기독교를 믿어라. 예배 드리기 전에 우리 정부 차원에서 우리나라 전부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되겠으니까 예배당안에 십자가도 걸어놓고 그 옆에 국기나 하나 걸어놓고 예배 드리기 전에 찬송하기 전에 기도하기 전에 말씀 선포하기 전에 예배 드리기 전에 절 딱 한번만 하고 예배 드리면 아무 말도 안 합니다. 적극 협조해줍니다. 좋아합니다. 공산주의식 기독교를 믿으면 적극 찬성해줍니다. 예수 믿지 말라 말 안합니다, 그 사람들. 성경 얼마든지 들고 다니라 합니다. 보라 합니다. 하나만 딱 내놔라 합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만으로 전부 삼는 그걸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그게 전부입니다. 그것 내놓으면 생명 끊어지고 정조 판 것이고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것 내놓으면 들어가보면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것 붙들려 그러면 나중에는 전부다 내놔야 되는데. 오늘 우리는 그리 향해서 가고 있는데 마지막에 그게 어떤 형태로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방해되는 아말렉을 내 사랑하는 아기의 피를 빨아먹는 모기를 탁 때려죽이듯이 하나님의 백성 구원하는 역사에 방해하는 아말렉을 하나님께서 사울을 보내서 모조리 다 죽여버린 겁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그 말씀을 지키지 않고 아깝다고 살려두니까 사울을 하나님께서 죽여버린 겁니다. ‘내가 죽이라는 인간을 안 죽여? 네가 죽어야지.’ 하나님께서 사울을 나중에 비참하게 자살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칼로 자기가 죽었습니다. 아들들 다 그렇게 죽었고. 그게 성경입니다, 성경 기록이고. 그분이 바로 그렇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잘난 것, 돈 많은 것, 많이 배운 것, 유식한 것, 그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사람이 되고 그 구원역사에 도움이 되면은 요긴하게 쓰일 수 있으나 그런 것들은 도움 될 것도 별로 없고 그런 거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별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많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숫자가 많아서 너희들이 잘나서 내가 뽑은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모든 민족보다 오히려 숫자도 적고 못한데 못난 너희들을 내가 뽑아가지고 잘나게 만드는 것이 내 뜻이다’. 성경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못나도 상관없고 무식해도 상관없고 못 배워도 상관없고 가난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 삼는 그 신앙만, 그 중심, 그 사상, 그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소돔 고모라 성을 멸망시킨 것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 듣기 쉽게, 사람들이 알기 쉽게 그런 걸 표현할 때는 살인이 많았을 것이고 폭행도 많았을 것이고 강도도 많았을 것이고 음행죄도 많았을 것이고, 온갖 종류가 많았을 것이라고 그렇게 표현을 할 수 있으나 그러나 실상은 모릅니다. 그 도시에 죄악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말입니다. 분명한 하나 안것은 그 도시에 보나 안보나 하나님은 없었다는 겁니다. 소돔 고모라 성에. 롯 한 사람 있었고, 그 롯이 날마다 의로운 심령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롯의 의로운 심령이 뭘 보고 상했는지 모릅니다. 도둑질 하는 것 보고 감염이 됐는지, 강도짓 하는 것 보고 감염 됐는지, 이성 범죄보고 감염이 됐는지, 아니면 그 롯의 의로운 심령이 그런 것 보다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호화찬란한 21세기 문명같은 그런 보기좋은 그런 생활에 그런 문화생활에 폭 빠진 거기에 롯의 심령이 감염이 됐는지 모릅니다. 아마 확률이 그게 더 많지 않을까. 롯은 의인인데, 도덕적으로 좀 있는 사람은 살인 강도 이성범죄에 도덕적이고 의지있고 자기 수양된 사람은 거기 감염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생활 문화 하나님 없는, 창세기 6장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다 도취되듯이 그런 식으로 감염되는데는 의인들도 별 수 없이 저절로 따라가는 겁니다, 세월 속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말하자면 본보기로 모조리 유황불비로 다 태워서 없애버린 것이 소돔 고모라입니다. 이것이 다 하나의 계시입니다, 형식 계시. 하나님을 배반하면 이렇게 망한다. 전인류라도 하나님 배반하고 떠나면 전인류라도 다 전멸시키는 이것이 천국과 지옥의 계시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모신 곳은 천국이고 하나님 떠난 곳은 노아 홍수때 전인류를 다 전멸시키듯이 어떤 많은 인간이라도 지옥을 만들어서 하나님 떠난 인간은 모조리 다 던져 놓는 겁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떠나면 소돔 고모라처럼 완전히 망한다. 우리들 개인으로 말하면 내 마음과 몸의 요소, 심신의 기능 요소에 하나님 배반하고 인간 구원에 방해되는 그런 요소가 있는 것들은 모조리 다 멸망 받는다는 것을 그런 것으로도 보여주는 계시라고 볼 수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기독교고 이런 하나님이고 이런 하나님의 역사기 때문에 우리들이 힘을 쓸 것은 이런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찾고 이런 하나님이고 이런 하나님의 역사인줄 알고 그분을 우리는 두려워하고 그분을 경외해야 됩니다. 경외하고 그분을 바로 섬기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결론은, 하나님의 진노는 과연 사랑인가? 그분은 본체 자체가 사랑입니다. 사랑이기 때문에 그분이 하는 모든 역사는 전부다 사랑입니다. 왜 그분이 사랑이냐? 그게 사랑이냐? 그분이 전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분 당신이 전부기 때문에. 그분이 사랑이라 하면 사랑인 겁니다. 그분이 아니라 하면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항변할 수도 없고 항변도 되지 아니하고 항변할 논리도 이론도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무엇이 제일이라고요? 000? 뭐가 제일입니까? 몰라요? 000 뭐가 제일입니까? 공과 안 배웠습니까? 000 뭐가 제일입니까? 크게. 청종이 제일이다. 기독교는 청종이 제일입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에는 순종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순종에, 지난주 말씀에서 그 순종에 거슬리는 가장 큰 대적이 뭐냐? 순종만 하면 되는데, 그 순종에 거리끼는 가장 큰 것이 바로 자기고 이 세상이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을 부인을 해야 된다고 수도없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성경에도 보면은 누구든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아라. 다른 곳에 보면 해석하면 세상을 부인하고. 자기와 세상을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은 따라갈 수가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놓으셨기 때문에. 그러니까 자기 속에 있는 그 자기는 새사람 자기를 부인하라는게 아닙니다. 우리 속에는 둘이 있어서, 오래토록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아간 사람일수록 하나님과 말씀과 일치되는 그런 자기 심신의 요소가 많이 있고, 하나님과 말씀을 떠나서 사는 세월이 많을수록 그 속에는 하나님과 배치되는 요소가 많기 때문에 그런 심신의 모든 요소를 다 부인을 해야 됩니다. 꺽어야 되고, 온 세상이 다 그리 됐을지라도 그 세상에는 내가 감염되지를 않아야 됩니다. 그 세상 따라 세상에 감염되서 세상을 따라가게 되면 신앙의 길은 걸어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 가는 사람은 많지만은 멸망이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지만은 생명길이다. 그 좁은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그분이 내놓으신 말씀으로만 걸어가는게 바로 좁은 길입니다. 옳고 바른 하나만 되는 참의 길을 걸어가는 것, 이것이 좁은 길입니다.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 부자가 무엇입니까? 자기 부인을 안하면 부자입니다. 세상 부인을 안하면 부자입니다. 가진 것이 있으면 부자입니다. 다 내놔야 되는데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는 겁니다. 말씀 드리듯이 기도라는 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성경 읽는 것은 목적이 아닙니다. 기도하고 성경 읽고 주일 지키는 것은 하나의 그게 그 자체가 구원일 수 있지만 이거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방법이고. 그걸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그분 알고 그분을 만나는 방법을 알고 그분 향해 가는 길을 알고 방법을 알아서 그분 향해서 가고 자기라는 사람이 변화가 되어서 그분과 교제하고 점점 그분 닮아가는 이걸 위해서 성경 읽어야 되고 기도해야 되고 예배를 드려야 되고 말씀을 자꾸 들어야 되고 생각을 해야 되고 그리 하는 겁니다. 이게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제목은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인가? 이 말씀에서 이게 기독교의 가장 깊은 것이고 근본인데, 이걸 알고나면 신앙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이 될 수가 있습니다. 좀 깊이 생각해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역사를 두고 의문을 가져 보셔야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그토록 잔인하게 매몰차게 진멸하게 하셨는가? 왜 노아 홍수 시대때 전인류를 그렇게 아낌없이 다 홍수에 넣어서 모조리 멸망을 시켜 버렸는가? 왜 소돔 고모라 성을 그렇게 다 태워 없애 버렸는가? 그 소돔 고모라 성의 죄악이 어떤 죄악이였을까? 롯이 감염된 그 감염의 죄는 어떤 것이었을까? 하나님을 기준해서 살펴봐야 되지, 인간 도덕 윤리 인간관계를 기준해서 하면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깊은 알맹이를 좀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그분을 위해서 있고 그분의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이걸 위해서 온 세상은 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