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1주전-(계2:8-11)
지식의 중요성2014-09-01조회 300추천 23
본문: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요약/2014.08.31.주일)
제목: 지식의 중요성(서머나교회 5대관에서)
1. 서머나교회
1)서머나교회
- 7교회 중 2번째 교회
- 책망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
- 주님과 모든 것이 같은 교회
2)찾아가신 주님
- 처음이요 나중이요(시간관)
-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생사관)
- 내가 네 환난과(평안과)(고락관)
-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빈부관)
-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교회관)
- 5대관을 말씀
2. 지식의 중요성
1)지난 말씀 복습
- 전전주는 영에 대한 말씀으로
- 지난주는 양심에 대한 말씀으로
- 양심은 지식의 지배, 인도를 받으므로 지식 선택이 더 중요
2)지식의 중요성
- 지식의 정의: 과거 현재를 아는 것(모든 만사물에 대하여)
- 지식의 근본: 조물주가 세상에 넣어 놓은 지식을 인간이 발견(발명)
- 지식의 역할: 모든 생각, 비판, 평가, 판단의 기준, 양심을 지배
- 지식의 종류: 인간 지식(물리, 인문), 하나님 지식
- 지식의 결과: 인간 지식은 유한, 하나님 지식은 무한, 영원
- 지식에 따라: 지식에 따라 ‘관(觀)’이 생겨지니
‘관(觀)’이란 어떻게 보느냐 하는 말이니
그렇게 보고, 인식, 판단, 생각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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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오늘 봉독한 교회 이름이 무엇입니까? 서머나 교회입니다. 신약교회 요한계시록 2장 3장에 보면 신약 시대 모든 교회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교회를 일곱 개 적어놨는데 그 중에 두 번째 교회가 서머나 교횝니다. 신약시대 7교회 중 2번째 교회가 서머나 교횝니다. 일곱 교회를 차례차레 적어 놓으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구원의 도리의 중요성의 순서에 따라 기록해 두셨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 에베소 교회의 처음사랑에 대한 말씀이 중요하고 그 다음 서머나 교회는 우리에게 두 번째로 아주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하나님께서 교회마다 그 교회에 잘 못된 점들을 지적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지적이 없는 잘 못된 책망이 없는 교회가 두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 서머나 교회고, 그 다음 하나는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하나님의 책망이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고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서머나 교회의 모든 면이 주님과 다르지 않고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다르면 주님과 다르니까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으나 주님과 모든 생각이나 또 목표나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주님과 같으니까 동일하니까 주님의 책망이 있을 수가 없고 칭찬만 있는 그런 교회라 주님과 모든 것이 같은 교회였습니다.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주님이 서머나 교회에 찾아가신 모습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다른 말로 말하면 알파와 오메가라 시작과 끝이라는 말입니다. 시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이고 나중이니까 시작과 끝이니까 그 가운데 모든 시간은 다 들어 있습니다. 시간관을 말씀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죽었다가 살아났다. 죽을 사자 살 생자 사생이고 일반적으로 생사라 그리 말합니다. 생사관을 말씀하신 겁니다. 세 번째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환란이 있고 궁핍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말씀하시기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환란과 궁핍 두 가지를 말씀을 하고 하나만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말씀하셨지마는 환란을 당하나 실상은 네가 평안한자라 그 뜻이고, 궁핍한 자지마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그런 말씀으로 고락관 말하자면 환란이니까 고생이니까 고가 되겠고 고의 반대는 낙입니다. 그래서 고난과 즐거움의 고락관을 말씀하신 것이고, 또 네가 궁핍하나 부요하다 빈하고 부한 빈부관을 말씀하신 것이고, 또 그 다음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유대인은 예수님이 나신 족속으로 하나님의 선민들 구원받은 족속을 유대인이라 말하는데 서머나 교회 안에서 그들 다 유대인인데 우리는 자칭 유대인 하나님이 인정한 유대인이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는 그들의 훼방이 있었습니다. 그런 훼방을 받았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민족이나 백성은 하나님이 선택을 하는 것이고 정하시는 것이지 자기들 스스로 정하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거는 교회관을 말씀하신건데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가 참 교회지 사람들이 인정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여 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몇 가지를 말씀했습니까? 첫째 처음이요 나중이요 시간관이고 두 번째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생사관을 말씀하신 겁니다. 세 번째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고락관과 빈부관이고 네 가지 그 다음 다섯번째 자칭 유대인 교회관 다섯가지 관을 본문에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지난 주일에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영을 통해서 한다는 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사람은 제일 밖에 몸이 있고 몸 안에 마음이 있고 마음 안에 영이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사람에게 당신을 나타 내실 때는 반드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그 말씀은 성령의 감화로 우리 중생된 영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영이 있어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인간의 범죄함으로 영이 죽어 있어 모든 사람이 다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중생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특히 21세기 물질 만능 주의가 되어지고 물질이 온 세상을 다 장악한 이런 시대에는 기독교가 물질을 넘어서는 영의 존재와 세계를 깨닫지 못하면 기독자는 세상에서 삼켜질 수 밖에 없는 것을 우리가 생각을 해봐서 영에대한 말씀을 생각해봤고
지난주에 우리는 기독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종교이고 세상 표현으로 우리 찬양대 학생들 다 엎드려 잔다. 문숙희 선생님 예배시간에 찬양대 대장님이 지도를 잘 하셔야 되겠습니다. 필기를 좀 하면 괜찮을건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교주고 하나님을 만나야 은혜도 받고 복도 받고 구원도 되어지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의 유족한 사람이 사십 몇일이요? 사십 몇일을 밥을 굶어 가면서 대통령을 만나려고 했지마는 대통령이 결국 만나주지를 않으니까 못만났습니다. 한 나라 대통령을 만나기를 쉽지를 않은 거지요.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것이고. 하나님은 만나기가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싶다 하여 알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셔야 우리가 알 수 있는 건데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내시는가? 알게 쉽게 말하면 말씀을 통해서 나타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 진리 진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데 그 진리를 사람이 귀가 있어 듣고 눈이 있어 읽어봐도 그 사람 속에 영이 죽어 있으면 아무리 읽어도 들어도 깨닫지 못하니 진리르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결코 만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영이 살아 있어야 하나님이 당신을 알리시는 진리를 읽고 듣고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영이 살아 있어 중생된 사람은 누구나 다 말씀을 읽고 들으면 알 수가 있는것인가? 그러지 아니하고 원론적으로 기본적으로는 그러하나 건설적으로는 아무리 영이 살아 있어도 그 사람 속에 영이 마음에 가장 일선에 접선할 수 있는 사람의 신앙 양심이 있어서 양심을 바로 써야 양심이 있고 양심을 써야 하나님을 찾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주 오전에 강조하여 말씀해 드렸고 지난 주 오전에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양심이 가장 중요한데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양심. 양심이 아주 중요한데 양심은 사람의 전신의 빛이고 눈과 같은 존재가 양심이라. 양심은 힘이 있어서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과 그 사람의 평생의 생애와 그 사람의 목숨까지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는게 양심입니다.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사람의 목숨까지도 끌어갈 수 있는 힘있는 존재가 사람의 양심인데 그런데 문제는 그 양심이 굉장히 밝고 중요한 사람의 인적 요소인데 그 양심이 말하기를 첫째 양심은 마음의 요소인데 두 번째 양심은, 우리가 공부할 때 첫째 양심은 마음의 인적 요소이다 두 번째는 지식의 지배 인도를 받는 것이 양심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양심이 밝고 깨끗한 양심이 되어 있어도 그 사람 속에 지식이 잘 못 들어가면 양심이란 것은 지식의 인도만을 따라가는 것이 양심이기 때문에 지식이 삐뚤어진 지식을 가지면 양심도 삐뚤어진 양심이 될 수 밖에 없는겁니다. 지식의 지배를 받아 가지고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옳고 바른 것을 찾아가는게 양심인고로 잘 못된 지식을 받아들여서 공부를 하되 공부는 해야지요. 하는데 밥을 굶어도 공부는 해야 된다. 할 수 있습니다. 옷은 떨어진 옷을 입어도 공부는 해야 된다. 그것도 할 수 있습니다. 반딧불을 켜놓고 반사되는 빛을 가지고도 공부는 해야 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둑질을 해가면서도 공부는 해야 된다. 그거는 좀 생각해봐야 되겠다. 이리 되야 되는데 만약에 공부가 너무 중요해서 도둑질을 해서라도 공부는 해야 된다. 책 도둑질은 도둑질이 아니다 요래 배워 놓고 요래 지식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책을 훔쳐도 뭘 안느낍니까? 양심의 가책을 못 느껴서 담대하게 책을 훔칩니다. 그러고 나서 잡혀서 왜 도둑질을 했느냐 물으면 도둑질이라뇨?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훔친 것은 괜찮지 않습니까? 누가 그렇게 가르쳐 주던? 저는 그렇게 배워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책을 훔치고도 양심의 가책을 못느껴서 담대하게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 되는겁니다.미국 사람 기독교 믿는 미 제국주의 국민들은 원수니까 많이 죽일 수록 그 사람은 죽고 난 다음에 좋은데 가서 미인들 70명 하고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 가르친답니다. 아랍쪽에 그런 사람들은 그래 배워서 미 제국주의하고 싸우는 것은 거룩한 전쟁성전이다. 그들 많이 죽이면 죽일 수록 선이고 의고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배워 놓으니까 그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이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자폭을 하는겁니다. 그래 가지고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만세 부르고 기뻐하고 그들 말로 천국갔다 그러고 성공했다 그럽니다. 수천명을 죽어도 그 사람들은 영광이라 그러고 좋은 일이라 그러지 털끝 만큼도 양심의 가책을 안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지식의 통치받고 지배받고 인도 따라가는 양심의 한계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을 쓰는 것 보다 먼저 중요하고 바로 구별해야 될 것은 내 속에 내 양심을 끌고 가는 양심이란 것은 사람의 전 생애를 끌고 갈 수 있고 목숨까지도 생명도 바치는 것이 양심인데 그 양심을 끌고 가는 것이 지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식은 가장 중요한 것이고 요한계시록 11장입니까 음행의 포도주 잔이 잇습니다. 그 금잔 속에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세상에 가득찬 지식이라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오늘 5가지 관을 본문에 말씀하셨다 그랬는데 관이라 말은 볼 관자입니다. 어떻게 보느냐 본다는 말은 어떻게 보느냐 그 말은 눈으로 보는게 아닙니다. 오늘 주일학교 때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그 듣는 것을 들을 청이라고 주일학교 때 가르치는 걸 들었는데 한 번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마는 그보다는 듣는다 그 말은 시키는대로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않을까 넓은 범위로는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듣는다는 말은 왜 말을 안들어 그런 의미라 말이지요.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말씀을 귀로 듣는 것 보다는 듣고 순종하는 걸 듣는다 말합니다. 말 안듣는 것은 듣고 순종 안하는 것이고 그럼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면 상관이 없는 것이고. 사람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 볼 관자인데 관이라는 말은 다섯가지 관을 말했습니다. 시간관 두 번째 생사관 고락관 빈부관 교회관 다섯가지인데 관이라는 말은 볼 관자인데 본다는 말은 눈으로 보는 것도 보지마는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인식하느냐 어떻게 판단하느냐 그런 뜻입니다. 볼 관자. 시간이란 뭐냐 생사란 무엇이냐 인생에 있어서 고와 낙이란 어떤 의미이며 무엇이 고며 무엇이 낙이냐 인간에게 빈부라는 것은 무엇이며 교회라는 것은 무엇이 교회냐 어떤 시각으로 각도로 보느냐 이게 전부다 관입니다. 볼 관자. 그래서 자기가 본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판단하는 것이고 그리 인식을 한다는 것이니까 그 모든 것의 가장 바탕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겁니까? 볼 관자가 있어서 그리 생각한다 인식한다 판단한다 그런 의미인데 그러기 때문에 본다는 그 말 속에는 그 밑바탕에는 무엇이 깔려있는 겁니까? 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지식. 지식이 깔려있는겁니다. 그 사람의 지식에 따라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고 지식이 없는 사람은 지식이 얕은 사람은 생각의 범위도 얕아집니다. 지식의 범위가 넓은 사람은 생각의 범위도 넓어지고 깊어지고 많아지게 됩니다. 소위말하는 지성인이라 말할 때 외부적으로 말하면 많이 배운 사람들 지식을 많이 습득한 사람들을 지성인이라 그리 말하는데 그 사람들은 머리 속에 든 것이 많으니까 뭔 가를 하나 보면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보이는 저 이면에 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다 보니까 범위가 넓어지니까 쉽게 단정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미개인들 야만인들은 모든게 단순해서 즉흥적이고 쉽게 모든게 판단이 되어지고 문화인들 지성인들은 아는것이 많고 속에 들은것이 많으니까 무슨 말을 들어도 쉽게 속에 있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쉽게 화를 내면 자칫하면 미개인이구나 야만인이구나 쉽게 화를 내거나 대응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심사 숙고 하는데 속에 든 것이 없으면 그리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세계 믿음 안에서 이 세상 지식을 배우는게 좋은데 문제는 열 명 중에서 믿음과 세상 지식을 같이 가져가면 열 명이 가면 아홉 명은 믿음을 다 저버려 버리고 세상지식을 가지기 때문에 열 명 중에 한 명이 믿음과 지식을 같이 가지니까 드물고 천 명 중에 한 명 있기가 드물어서 우리가 배우는 백목사님께서는 살아생전 반지식론자라 할만큼 세상지식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교훈을 많이 하셨으나 반지식론주의자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써먹고 하나님 지식이 주인이 되고 주격이 되고 세상 지식을 종으로 가지면 좋으나 인간 지식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그 밑에 종이 되게 되면 그 인간 지식은 없는 것이 낫지. 주인이 종을 부리지 못하고 종이 주인을 부리면 그 종은 그런 종이 열 명이면 그의 상전이 열명입니다. 그런 종이 백 명이면 자기 위에 주인이 백명입니다. 그런 종은 많은 수록 좋습니까 없는게 좋습니까? 없어야 좋지 않겠습니까? 글너데 이런 사실은 우리도 배워서 아는 것이고 오늘날 이 세상은 하나도 모르는 것이고 수많은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지식을 아는 사람이 심히 희귀합니다. 우리도 안배웠으면 몰랐겠지요. 얼마나 바로 배우는 것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지식을 잠깐 한 번 생각해봅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안다는 것입니다. 알 지자 알 식자입니다. 한문 글자이고 우리말로 말하면 아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 접해보고 알고 아는 것. 알되 이미 나와 있는 과거와 현재까지의 만 사물에 대해서 아는 것을 가리켜서 지식이라 그리 말하고 그 지식의 종류는 이 세상에서 존재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벌어진 사건만큼이나 많은 것이 인간의 지식입니다. 존재 숫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별중에서도 화성 수성 목성 금성 전부 별마다 이름이 다 붙어 있고 하나하나가 다 지식입니다. 땅에는 땅의 존재도 수없이 많고 나무 종류도 수 없이 많은데 그 하나하나가 다 지식입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곤충 박사도 있지요? 앞으로 더 세밀해지면 파리 박사 모기 박사 지렁이 박사도 나올지 모릅니다. 옛날에는 의학박사라 그러면 사람 몸에 대한 것의 박사인데 요즘은 안과 박사 귀박사 목박사 손박사 뼈박사 종류가 점점 세밀해져 가지요 많아지니까 그리 되는게 전부다 지식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 잇는 많은 생물의 숫자만큼이나 지식의 숫자는 많습니다. 이 지식은 사람에 따라 아는 것은 천차 만별로 굉장히 많은 차이가 나고 많이 아는 사람을 가리켜서 넓을 박자를 써서 박사라 그럽니다. 많이 안다. 그런데 박사 그래봐야 이야기 해보면 그 쪽으로는 아는데 조금 방향을 틀어서 물어보면 하나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의학박사에게 의학 박사는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돈도 엄청 벌어서 의학 박사들이 농사 짓는 채소 기르는 걸 물어보면 무식한 사람이 많을겁니다. 박사가 그렇게 무식합니까? 나는 의학박사지 농사 박사가 아니라서 모릅니다. 농촌 쪽에도 농촌 박사에게 물어보면 또 모르겠지요. 지식의 종류에 따라서 그리 되는겁니다. 굉장히 많습니다. 온 세상에 가득찬 세상 지식을 머리 속에 다 집어 넣으려면 인간의 머리속에 컴퓨터가 몇 개나 들었다던가요? 요즘 우리 학생들 컴퓨터의 성능이 얼마나 탁월한지 아시지요? 그 속에 들어가보면 온 세상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머리 속에 그 컴퓨터가 몇 대나 들어 있다구요? 다 같이 해보실까요 천억 천억 개가 들었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이지요. 컴퓨터가 천억개가 들었답니다. 컴퓨터 한개만 들어도 도서관이 될껀데 천억이 들었으니까 인간의 두뇌가 얼마나 탁월합니까 그래도 온 세상에 가득찬 세상의 지식을 집어 넣기가 어렵다 인간의 두뇌를 평생의 10%밖에 못쓴다던가요 이것이 지식입니다.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만 사물에 대해서 아는 것을 지식이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지식은 제일 처음에 온 세상에 가득차 있는 지식들은 어떻게 생겨졌으며 어디서 나오게 되어졌을까? 온 세상에 가득찬 지식은 어디서 생겨졌으며 어떻게 나오게 되어졌을까? 그것은 성경 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을 없는 가운데서 지으신 조물주께서 그 조물주가 세상을 만드실 때 만드신 그 세상 속에 앞으로 이 세상을 주인으로 운영하고 살아가야 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발견하고 찾아 낼 수 있도록 지식을 다 내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물찾기 하면 요 경내에 보물찾기 받을 수 있는 종이를 다 숨겨 놨으니까 찾으면 된다 그것처럼 이 세상 속에는 조물주 하나님께서 내어 놓으신 지식으로 무한하다 할 만큼 가득찬 지식이 들어 있어서 따지고 보면 지식이란 말은 원리란 말이고 이치란 뜻인데 온 세상은 이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찾아보고 발견해보면 전부다 지식입니다. 그런데 그 지식이 사람들이 찾아내기 전에 발견하기 전에 발명하기 전에 그 지식은 이 세상에 있기는 있는데 몰랐던 지식입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으니까 지식으로 모르는 겁니다. 지금도 21세기까지 지식의 그 양이 수도 없이 많은데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하고 찾아 내지 못한 지식이 얼마든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식들이 일반적인 것도 있는데 인간이 문명의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가 불을 발견한 것이라 그러지요 불. 요즘 불은 자유 자재로 만들어 쓰잖습니까? 처음에 불이 나왔을 때는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몰랐을 겁니다. 요즘 불을 보고 이상하다는 사람은 그 사람이 이상하지요. 비행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상상도 못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일반입니다. 전화기가 처음에 발명 되었을 때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게 아주 기적처럼 그리 되어졌는데 특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 알려지고 니니까 일반화가 되어진 겁니다. 모든 지식은 이렇게 되어 가지고 발전되고 발달되고 많이지게 된 것이 오늘날 이 세상에 가득찬 지식입니다. 그래서 발견된 그 지식위에 또 다른 지식이 보태지고 보태지고 합해지고 거기서 이런저런 원리가 이치가 또 나오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이 또 발견되고 그래서 이 세상에 지식이 가득차게 되어졌다. 그래서 지식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보면 조물주께서 이 세상의 인간들이 때가 되면 찾아낼 수 있도록 다 집어 넣어 놨고 지식으로 세상을 만들어놨고 안믿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진화론적으로 말을 해도 이 세상에 인간이 있기 전에는 있어도 아무 의미도 없고 소용도 없는 것이고 인간이 있고 난 다음부터 지식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지식은 틀린 것이고 성경 지식이 맞으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지식을 다 넣어놨다 그래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지식이 하는 일은 뭐냐?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고, 맞습니까? 아는 것은 사람에게 생각을 하게 하고 연구를 하게 하고 따져보게 하고 비판 평가를 하게 하고 판단을 하게 하고 사람의 모든 생각이라든지 따지는 것이라든지 비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들의 근거가 전부다 지식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생각을 못하고 평가를 못합니다. 오백원이 큽니까 오만원이 큽니까? 뭐가 커요? 오만원이 큽니까? 어떻게 알아요? 아니까 아는 거지요. 그런데 영윤이 한테 물어볼까요? 오백원이 크니 오만원이 크니 물어보면 압니까 모릅니까 오백원짜리 반짝반짝 동전주고 오만원짜리 종이 주면 어느거 할래 하면 아이들이 어느거 합니까 오백원 하겠지요 왜 그들은 그런 걸 가르켜서 모른다 그럽니다. 가치를 모르는 거지요 오만원은 오백원의 백밴데 백배 가치를 어린 아기들은 모릅니다. 지식이 없으니까 오백원이 뭔지 오만원이 뭔지 모르니까 그리 되는겁니다. 모르면 가치관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느것이 좋은가. 자동차를 주고 벤츠 자동차와 그보다 큰 트럭이나 주고 어느거 할래 그러면 벤츠는 2억짜리하고 트럭 커다란거 주면 트럭 2천만원 주면 좋은거 사는데 10배나 되도 벤츠란 자동차의 가치와 용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기대한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금을 모르는 사람에게 금을 주면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몇 번 제가 써먹었는데 어느 나그네가 산골에 오두막 집이 있는데 잠시 쉬러 들어가서 보니까 그 집에 벽지며 문을 종이로 발랐는데 단박문이라 그럽니다 단박문이란 동의보감처럼 한 번만 쓰면 병을 나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처방전이라 그말입니다. 그런걸 가지고 문종이로 쓰고 벽지로 다 발라놨다 그럽니다. 많은 돈을 주고 다 뜯어서 가져갔다던가요. 모르는 사람은 일억원짜리 수표를 줘도 찢어 버립니다. 아는 사람은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은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고 그게 지식입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지식에 따라 생겨지는 겁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가치관도 모릅니다. 없습니다. 지식의 범위가 좁은 사람은 가치관의 범위도 좁아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지식이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고 연구하게 하고 따져보게 하고 가치를 평가하게 하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 전부 지식에서 다 되어지는 겁니다. 지식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그 지식의 종류를 따져보면 크게 둘이 있어서 하나는 조물주 하나님이 온 세상에 집어 넣어 놓으니까 사람들이 비로소 찾아내고 발견해 낸 인간지식이 있고 또 성경으로 말하면 뱀에게 미혹 받아서 인류시조 아담에게 들어갔던 인간지식 뱀의 지식 마귀지식이 있고 그 지식 있기 전에 에덴동산 세상에 있던 하나님의 지식이 있고 크게 두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아우르는 지식이 있겠고 인간 지식은 둘로 나눠져서 물질의 이치를 논해 놓은 물리가 있고 하나는 인간에 대해서 논해 놓은 인문 지식 둘이 있다. 그런데 물리는 물리 자체의 지식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이치기 때문에 정확하나 사람들이 써먹기를 잘 못 써먹어서 용도가 틀려서 인간들이 써먹는 물리 지식을 가리켜 반거짓말이라 그리 말하고 사람들이 전부 인간은 어떠하다 근본과 내세와 인간의 모습과 인간의 세상 살이를 논해 놓은 생사화복 흥망성쇄를 논해 놓은 인문지식은 전부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이 전부를 아울러서 진리 말씀이다. 이 말씀은 참 말이다 그렇게 말을 하는겁니다. 그래서 지식의 종류는 둘이 있다 기억하시고.
그 지식의 결과를 살펴보면 인간 지식의 결과는 그 근본도 그러하고 방향도 그러하고 결과도 그러하고 인간의 범위를 결코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인간 지식의 결과는 인간 범위를 벗어나지를 - 이거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젊은 사람도 그렇고. 저도 배워서 전하는 건데 이런거는 세상에서 제대로 듣지를 못합니다. 대학 강의가 표현이라든지 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자를 많이 쓸건데 숲속에 들어가면 나무는 봐도 숲은 못본다는 것 처럼 불교지식 유교지식 어려운 문자도 많고 이치도 많고 굉장히 많은데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속에 파묻혀서 보는 것이지 그 자체가 어떻다는 것은 모릅니다. 그 지식을 말하는 그 사람들 까지도 그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나와야 알지 안에 들어가면 모를 뿐더러 거기 빠져 죽고 그 속에 속한 사람이 되고 마는겁니다. 이 세상 어느 단체에 가도 이런 말씀은 듣기 어렵습니다. 인간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 지식의 범위 근본이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뿌리가 더 들어가면 뱀에게서 나온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인간범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논리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컴퓨를 만들어내고 로봇트를 만들어서 어디까지 과학을 발명을 시켜도 전부다 인간의 머리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따라서 이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종교 철학 사상 어려운 것부터 깊은 것이 굉장이 많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타고 들어가고 들어가면 마지막까지 아무리 들어가봐야 종교라면 사람들이 인간 이상의 형이상학의 일은 없다 말하는데 아무리 들어가봐야 인간 머리속에서 나온것이기 때문에 불교가 깊어도 인간 머리 이상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유교가 깊어도 인간이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인간이 추측과 추론과 상상속에서 연구 명상속에서 나온것이지 그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지식의 한계고 범위고 결과입니다. 여기도 좀 공부하신분들이 계실건데 생각해보시면 알겁니다. 아마 따저보면
그런데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지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밖에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범위 인터넷 방송매체 많으니깐 알려지지만 다 끊어놓고 북한 같은 나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완전 고립을 시켜 놓으니깐 한국 미국이 어떤 나란지 모른다. 그사람들은 우물안에 개구리다. 밖의 세계를 안접하면 모릅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는 모릅니다. 이 세상테투리 안에서는 세상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알수 없고 인간의 범위안에서는 인간 넘어를 모르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을 벗어나야 인간을 알게 되고 인간밖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도 없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주님같은 자가 되려거든 인간이 넘어서 하나님 같은 자가 되려거든 첫째 어떻게 해라고요? 자기를 부인하라 세상을 부인하라 자기와 세상을 부인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지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초월하고 이세상을 초월한 것이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인간지식은 모든 것이 다 유한하고 지업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내지식으로 받아 드려서 하나님의 지식을 내지식에 주격되는 지식으로 받아야 그 지식의 인도를 따르고 지배받는 내 양심이 참 신앙양심이 되서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수가 있는 것이지 지식이 틀려 먹으면 양심이 틀려먹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마귀를 향해 찾아가면서도 담되하게 찾아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틀리면 모든것이 틀린것입니다. 동쪽으로가야만 사는 길인데 서쪽으로 가면 파멸의 길인데 서쪽을 향해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입쁘게 화장을 하고 자동차 멋진것을 타고 아주 아름답게 꾸며서 서쪽으로 향해 달려 가면 모르는 사람은 보고 아 아름답다 이쁘고 옷도 아름답고 차도 좋고 기술도 좋으네 빨리도 가네 다 부러워서 따라가는데 아는사람이 보면 뭐라 합니다니까 저거 큰일 났내 파멸의 길인데, 아름답게 가도 파멸 빨리가면 더 파멸 보기 좋게 가도 결과는 파멸 다 파멸입니다. 그사람의 지식이 틀리면 그사람의 인생과 영원이 절단 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바로 가지면 더디게 가도 가긴 바로 갑니다. 굴러가도 가고 기어가도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빨리가느냐 보기좋게 가느냐 아름답게 가느냐 뭘 가져가느냐 이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이런것은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그건 참고 사항이고 선택이빈다. 필수는 그런것을 가지기 전에 어떤 지식을 가지고 방향을 인생의 방향을 정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게 틀리면 모든것이 틀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 성경지식을 내지식으로 받아드리고 이 성경지식가지고도 성경 깨달음도 종류가 수없이 많으니깐 옳고 바른 깨달음을 가져서 이에 바른깨다름을 가지고 가야 인생이 행복해지고 영원까지 바로 되는 것이지 이게 틀려지면 그의 일생과 영원이 전부다 두번다시 회복할수 없는 슬피 우며 이를 가는 불로 소금치듯 하는 그런 후회가 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서머나교회의 5대관을 해야되는데 오전에 서론만 하다가 시간이 갔는데 지식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지식이 무엇인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지식의 정의 과거 현제 이미 나와있는 만 사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지식이다.
지식의 근본은 조물주가 인간세계에 넣어놓은 것을 인간들이 발견해낸 것이 지식인데 마귀에게 미혹받아 발견된 지식은 인간의 지식이고 하나님께 받아 가진것이 하나님의 지식이다. 지식의 역할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 연구 따저 비판 평가 가치를 바로알게 하는 것이 지식의 역할이고
지식의 종류는 인간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이 있고 지식의 결과는 인간지식은 끝이 유한하고 일시적이고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다
기억하면 우리는 듣고 보고 배우고 접하면서 바른 지식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알고 보면 어렵지 아니하고 알고보면 그속의 이치 논리가 들었으니깐 고요하게 깊이 생각해봅시다. 어떤 지식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 잘못 알고 있으면 얼른 돌아서 서 바로 가저야 됩니다. 아는 것이 틀리면 전부타 틀리게 되어집니다.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
제목: 지식의 중요성(서머나교회 5대관에서)
1. 서머나교회
1)서머나교회
- 7교회 중 2번째 교회
- 책망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
- 주님과 모든 것이 같은 교회
2)찾아가신 주님
- 처음이요 나중이요(시간관)
-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생사관)
- 내가 네 환난과(평안과)(고락관)
-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빈부관)
-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교회관)
- 5대관을 말씀
2. 지식의 중요성
1)지난 말씀 복습
- 전전주는 영에 대한 말씀으로
- 지난주는 양심에 대한 말씀으로
- 양심은 지식의 지배, 인도를 받으므로 지식 선택이 더 중요
2)지식의 중요성
- 지식의 정의: 과거 현재를 아는 것(모든 만사물에 대하여)
- 지식의 근본: 조물주가 세상에 넣어 놓은 지식을 인간이 발견(발명)
- 지식의 역할: 모든 생각, 비판, 평가, 판단의 기준, 양심을 지배
- 지식의 종류: 인간 지식(물리, 인문), 하나님 지식
- 지식의 결과: 인간 지식은 유한, 하나님 지식은 무한, 영원
- 지식에 따라: 지식에 따라 ‘관(觀)’이 생겨지니
‘관(觀)’이란 어떻게 보느냐 하는 말이니
그렇게 보고, 인식, 판단, 생각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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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오늘 봉독한 교회 이름이 무엇입니까? 서머나 교회입니다. 신약교회 요한계시록 2장 3장에 보면 신약 시대 모든 교회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교회를 일곱 개 적어놨는데 그 중에 두 번째 교회가 서머나 교횝니다. 신약시대 7교회 중 2번째 교회가 서머나 교횝니다. 일곱 교회를 차례차레 적어 놓으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구원의 도리의 중요성의 순서에 따라 기록해 두셨다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번째 에베소 교회의 처음사랑에 대한 말씀이 중요하고 그 다음 서머나 교회는 우리에게 두 번째로 아주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하나님께서 교회마다 그 교회에 잘 못된 점들을 지적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지적이 없는 잘 못된 책망이 없는 교회가 두 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 서머나 교회고, 그 다음 하나는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하나님의 책망이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고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서머나 교회의 모든 면이 주님과 다르지 않고 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다르면 주님과 다르니까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으나 주님과 모든 생각이나 또 목표나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주님과 같으니까 동일하니까 주님의 책망이 있을 수가 없고 칭찬만 있는 그런 교회라 주님과 모든 것이 같은 교회였습니다.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주님이 서머나 교회에 찾아가신 모습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다른 말로 말하면 알파와 오메가라 시작과 끝이라는 말입니다. 시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처음이고 나중이니까 시작과 끝이니까 그 가운데 모든 시간은 다 들어 있습니다. 시간관을 말씀하신 것이고, 두 번째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죽었다가 살아났다. 죽을 사자 살 생자 사생이고 일반적으로 생사라 그리 말합니다. 생사관을 말씀하신 겁니다. 세 번째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환란이 있고 궁핍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말씀하시기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환란과 궁핍 두 가지를 말씀을 하고 하나만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말씀하셨지마는 환란을 당하나 실상은 네가 평안한자라 그 뜻이고, 궁핍한 자지마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 그런 말씀으로 고락관 말하자면 환란이니까 고생이니까 고가 되겠고 고의 반대는 낙입니다. 그래서 고난과 즐거움의 고락관을 말씀하신 것이고, 또 네가 궁핍하나 부요하다 빈하고 부한 빈부관을 말씀하신 것이고, 또 그 다음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유대인은 예수님이 나신 족속으로 하나님의 선민들 구원받은 족속을 유대인이라 말하는데 서머나 교회 안에서 그들 다 유대인인데 우리는 자칭 유대인 하나님이 인정한 유대인이 아니고 자기들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는 그들의 훼방이 있었습니다. 그런 훼방을 받았다. 하나님의 구원받은 민족이나 백성은 하나님이 선택을 하는 것이고 정하시는 것이지 자기들 스스로 정하는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거는 교회관을 말씀하신건데 교회라는 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교회가 참 교회지 사람들이 인정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여 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몇 가지를 말씀했습니까? 첫째 처음이요 나중이요 시간관이고 두 번째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생사관을 말씀하신 겁니다. 세 번째 내가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고락관과 빈부관이고 네 가지 그 다음 다섯번째 자칭 유대인 교회관 다섯가지 관을 본문에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지난 주일에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영을 통해서 한다는 것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사람은 제일 밖에 몸이 있고 몸 안에 마음이 있고 마음 안에 영이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 사람에게 당신을 나타 내실 때는 반드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그 말씀은 성령의 감화로 우리 중생된 영을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영이 있어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인간의 범죄함으로 영이 죽어 있어 모든 사람이 다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중생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찾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특히 21세기 물질 만능 주의가 되어지고 물질이 온 세상을 다 장악한 이런 시대에는 기독교가 물질을 넘어서는 영의 존재와 세계를 깨닫지 못하면 기독자는 세상에서 삼켜질 수 밖에 없는 것을 우리가 생각을 해봐서 영에대한 말씀을 생각해봤고
지난주에 우리는 기독교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종교이고 세상 표현으로 우리 찬양대 학생들 다 엎드려 잔다. 문숙희 선생님 예배시간에 찬양대 대장님이 지도를 잘 하셔야 되겠습니다. 필기를 좀 하면 괜찮을건데. 기독교는 하나님이 교주고 하나님을 만나야 은혜도 받고 복도 받고 구원도 되어지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의 유족한 사람이 사십 몇일이요? 사십 몇일을 밥을 굶어 가면서 대통령을 만나려고 했지마는 대통령이 결국 만나주지를 않으니까 못만났습니다. 한 나라 대통령을 만나기를 쉽지를 않은 거지요.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상황도 아닐 것이고. 하나님은 만나기가 더 어렵지 않겠습니까?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싶다 하여 알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셔야 우리가 알 수 있는 건데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내시는가? 알게 쉽게 말하면 말씀을 통해서 나타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 진리 진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데 그 진리를 사람이 귀가 있어 듣고 눈이 있어 읽어봐도 그 사람 속에 영이 죽어 있으면 아무리 읽어도 들어도 깨닫지 못하니 진리르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을 결코 만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영이 살아 있어야 하나님이 당신을 알리시는 진리를 읽고 듣고 깨달아 알 수가 있는 것이고 영이 살아 있어 중생된 사람은 누구나 다 말씀을 읽고 들으면 알 수가 있는것인가? 그러지 아니하고 원론적으로 기본적으로는 그러하나 건설적으로는 아무리 영이 살아 있어도 그 사람 속에 영이 마음에 가장 일선에 접선할 수 있는 사람의 신앙 양심이 있어서 양심을 바로 써야 양심이 있고 양심을 써야 하나님을 찾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주 오전에 강조하여 말씀해 드렸고 지난 주 오전에는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양심이 가장 중요한데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양심. 양심이 아주 중요한데 양심은 사람의 전신의 빛이고 눈과 같은 존재가 양심이라. 양심은 힘이 있어서 그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과 그 사람의 평생의 생애와 그 사람의 목숨까지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는게 양심입니다.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사람의 목숨까지도 끌어갈 수 있는 힘있는 존재가 사람의 양심인데 그런데 문제는 그 양심이 굉장히 밝고 중요한 사람의 인적 요소인데 그 양심이 말하기를 첫째 양심은 마음의 요소인데 두 번째 양심은, 우리가 공부할 때 첫째 양심은 마음의 인적 요소이다 두 번째는 지식의 지배 인도를 받는 것이 양심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양심이 밝고 깨끗한 양심이 되어 있어도 그 사람 속에 지식이 잘 못 들어가면 양심이란 것은 지식의 인도만을 따라가는 것이 양심이기 때문에 지식이 삐뚤어진 지식을 가지면 양심도 삐뚤어진 양심이 될 수 밖에 없는겁니다. 지식의 지배를 받아 가지고 자기가 아는 범위 내에서 가장 옳고 바른 것을 찾아가는게 양심인고로 잘 못된 지식을 받아들여서 공부를 하되 공부는 해야지요. 하는데 밥을 굶어도 공부는 해야 된다. 할 수 있습니다. 옷은 떨어진 옷을 입어도 공부는 해야 된다. 그것도 할 수 있습니다. 반딧불을 켜놓고 반사되는 빛을 가지고도 공부는 해야 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도둑질을 해가면서도 공부는 해야 된다. 그거는 좀 생각해봐야 되겠다. 이리 되야 되는데 만약에 공부가 너무 중요해서 도둑질을 해서라도 공부는 해야 된다. 책 도둑질은 도둑질이 아니다 요래 배워 놓고 요래 지식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책을 훔쳐도 뭘 안느낍니까? 양심의 가책을 못 느껴서 담대하게 책을 훔칩니다. 그러고 나서 잡혀서 왜 도둑질을 했느냐 물으면 도둑질이라뇨? 공부하기 위해서 책을 훔친 것은 괜찮지 않습니까? 누가 그렇게 가르쳐 주던? 저는 그렇게 배워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책을 훔치고도 양심의 가책을 못느껴서 담대하게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 되는겁니다.미국 사람 기독교 믿는 미 제국주의 국민들은 원수니까 많이 죽일 수록 그 사람은 죽고 난 다음에 좋은데 가서 미인들 70명 하고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 가르친답니다. 아랍쪽에 그런 사람들은 그래 배워서 미 제국주의하고 싸우는 것은 거룩한 전쟁성전이다. 그들 많이 죽이면 죽일 수록 선이고 의고 이 세상을 좋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배워 놓으니까 그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이 폭탄을 몸에 두르고 자폭을 하는겁니다. 그래 가지고 수 많은 사람을 죽이고도 만세 부르고 기뻐하고 그들 말로 천국갔다 그러고 성공했다 그럽니다. 수천명을 죽어도 그 사람들은 영광이라 그러고 좋은 일이라 그러지 털끝 만큼도 양심의 가책을 안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지식의 통치받고 지배받고 인도 따라가는 양심의 한계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양심을 쓰는 것 보다 먼저 중요하고 바로 구별해야 될 것은 내 속에 내 양심을 끌고 가는 양심이란 것은 사람의 전 생애를 끌고 갈 수 있고 목숨까지도 생명도 바치는 것이 양심인데 그 양심을 끌고 가는 것이 지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지식은 가장 중요한 것이고 요한계시록 11장입니까 음행의 포도주 잔이 잇습니다. 그 금잔 속에 온갖 것들이 다 들어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세상에 가득찬 지식이라 그렇게 말하는 겁니다.
오늘 5가지 관을 본문에 말씀하셨다 그랬는데 관이라 말은 볼 관자입니다. 어떻게 보느냐 본다는 말은 어떻게 보느냐 그 말은 눈으로 보는게 아닙니다. 오늘 주일학교 때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그 듣는 것을 들을 청이라고 주일학교 때 가르치는 걸 들었는데 한 번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도 있을 수 있지마는 그보다는 듣는다 그 말은 시키는대로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지 않을까 넓은 범위로는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듣는다는 말은 왜 말을 안들어 그런 의미라 말이지요.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 말씀을 귀로 듣는 것 보다는 듣고 순종하는 걸 듣는다 말합니다. 말 안듣는 것은 듣고 순종 안하는 것이고 그럼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면 상관이 없는 것이고. 사람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 볼 관자인데 관이라는 말은 다섯가지 관을 말했습니다. 시간관 두 번째 생사관 고락관 빈부관 교회관 다섯가지인데 관이라는 말은 볼 관자인데 본다는 말은 눈으로 보는 것도 보지마는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떻게 인식하느냐 어떻게 판단하느냐 그런 뜻입니다. 볼 관자. 시간이란 뭐냐 생사란 무엇이냐 인생에 있어서 고와 낙이란 어떤 의미이며 무엇이 고며 무엇이 낙이냐 인간에게 빈부라는 것은 무엇이며 교회라는 것은 무엇이 교회냐 어떤 시각으로 각도로 보느냐 이게 전부다 관입니다. 볼 관자. 그래서 자기가 본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고 판단하는 것이고 그리 인식을 한다는 것이니까 그 모든 것의 가장 바탕에는 무엇이 깔려 있는겁니까? 볼 관자가 있어서 그리 생각한다 인식한다 판단한다 그런 의미인데 그러기 때문에 본다는 그 말 속에는 그 밑바탕에는 무엇이 깔려있는 겁니까? 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지식. 지식이 깔려있는겁니다. 그 사람의 지식에 따라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고 지식이 없는 사람은 지식이 얕은 사람은 생각의 범위도 얕아집니다. 지식의 범위가 넓은 사람은 생각의 범위도 넓어지고 깊어지고 많아지게 됩니다. 소위말하는 지성인이라 말할 때 외부적으로 말하면 많이 배운 사람들 지식을 많이 습득한 사람들을 지성인이라 그리 말하는데 그 사람들은 머리 속에 든 것이 많으니까 뭔 가를 하나 보면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보이는 저 이면에 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다 보니까 범위가 넓어지니까 쉽게 단정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미개인들 야만인들은 모든게 단순해서 즉흥적이고 쉽게 모든게 판단이 되어지고 문화인들 지성인들은 아는것이 많고 속에 들은것이 많으니까 무슨 말을 들어도 쉽게 속에 있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쉽게 화를 내면 자칫하면 미개인이구나 야만인이구나 쉽게 화를 내거나 대응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심사 숙고 하는데 속에 든 것이 없으면 그리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세계 믿음 안에서 이 세상 지식을 배우는게 좋은데 문제는 열 명 중에서 믿음과 세상 지식을 같이 가져가면 열 명이 가면 아홉 명은 믿음을 다 저버려 버리고 세상지식을 가지기 때문에 열 명 중에 한 명이 믿음과 지식을 같이 가지니까 드물고 천 명 중에 한 명 있기가 드물어서 우리가 배우는 백목사님께서는 살아생전 반지식론자라 할만큼 세상지식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교훈을 많이 하셨으나 반지식론주의자가 아닙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써먹고 하나님 지식이 주인이 되고 주격이 되고 세상 지식을 종으로 가지면 좋으나 인간 지식이 주인이 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그 밑에 종이 되게 되면 그 인간 지식은 없는 것이 낫지. 주인이 종을 부리지 못하고 종이 주인을 부리면 그 종은 그런 종이 열 명이면 그의 상전이 열명입니다. 그런 종이 백 명이면 자기 위에 주인이 백명입니다. 그런 종은 많은 수록 좋습니까 없는게 좋습니까? 없어야 좋지 않겠습니까? 글너데 이런 사실은 우리도 배워서 아는 것이고 오늘날 이 세상은 하나도 모르는 것이고 수많은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지식을 아는 사람이 심히 희귀합니다. 우리도 안배웠으면 몰랐겠지요. 얼마나 바로 배우는 것이 중요한지 모릅니다.
지식을 잠깐 한 번 생각해봅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안다는 것입니다. 알 지자 알 식자입니다. 한문 글자이고 우리말로 말하면 아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 접해보고 알고 아는 것. 알되 이미 나와 있는 과거와 현재까지의 만 사물에 대해서 아는 것을 가리켜서 지식이라 그리 말하고 그 지식의 종류는 이 세상에서 존재의 숫자만큼이나 많고 벌어진 사건만큼이나 많은 것이 인간의 지식입니다. 존재 숫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과 땅과 바다와 별중에서도 화성 수성 목성 금성 전부 별마다 이름이 다 붙어 있고 하나하나가 다 지식입니다. 땅에는 땅의 존재도 수없이 많고 나무 종류도 수 없이 많은데 그 하나하나가 다 지식입니다. 모르기는 몰라도 곤충 박사도 있지요? 앞으로 더 세밀해지면 파리 박사 모기 박사 지렁이 박사도 나올지 모릅니다. 옛날에는 의학박사라 그러면 사람 몸에 대한 것의 박사인데 요즘은 안과 박사 귀박사 목박사 손박사 뼈박사 종류가 점점 세밀해져 가지요 많아지니까 그리 되는게 전부다 지식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 잇는 많은 생물의 숫자만큼이나 지식의 숫자는 많습니다. 이 지식은 사람에 따라 아는 것은 천차 만별로 굉장히 많은 차이가 나고 많이 아는 사람을 가리켜서 넓을 박자를 써서 박사라 그럽니다. 많이 안다. 그런데 박사 그래봐야 이야기 해보면 그 쪽으로는 아는데 조금 방향을 틀어서 물어보면 하나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의학박사에게 의학 박사는 공부를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돈도 엄청 벌어서 의학 박사들이 농사 짓는 채소 기르는 걸 물어보면 무식한 사람이 많을겁니다. 박사가 그렇게 무식합니까? 나는 의학박사지 농사 박사가 아니라서 모릅니다. 농촌 쪽에도 농촌 박사에게 물어보면 또 모르겠지요. 지식의 종류에 따라서 그리 되는겁니다. 굉장히 많습니다. 온 세상에 가득찬 세상 지식을 머리 속에 다 집어 넣으려면 인간의 머리속에 컴퓨터가 몇 개나 들었다던가요? 요즘 우리 학생들 컴퓨터의 성능이 얼마나 탁월한지 아시지요? 그 속에 들어가보면 온 세상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머리 속에 그 컴퓨터가 몇 대나 들어 있다구요? 다 같이 해보실까요 천억 천억 개가 들었답니다. 어마어마한 숫자이지요. 컴퓨터가 천억개가 들었답니다. 컴퓨터 한개만 들어도 도서관이 될껀데 천억이 들었으니까 인간의 두뇌가 얼마나 탁월합니까 그래도 온 세상에 가득찬 세상의 지식을 집어 넣기가 어렵다 인간의 두뇌를 평생의 10%밖에 못쓴다던가요 이것이 지식입니다.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만 사물에 대해서 아는 것을 지식이라 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그 지식은 제일 처음에 온 세상에 가득차 있는 지식들은 어떻게 생겨졌으며 어디서 나오게 되어졌을까? 온 세상에 가득찬 지식은 어디서 생겨졌으며 어떻게 나오게 되어졌을까? 그것은 성경 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을 없는 가운데서 지으신 조물주께서 그 조물주가 세상을 만드실 때 만드신 그 세상 속에 앞으로 이 세상을 주인으로 운영하고 살아가야 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발견하고 찾아 낼 수 있도록 지식을 다 내어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물찾기 하면 요 경내에 보물찾기 받을 수 있는 종이를 다 숨겨 놨으니까 찾으면 된다 그것처럼 이 세상 속에는 조물주 하나님께서 내어 놓으신 지식으로 무한하다 할 만큼 가득찬 지식이 들어 있어서 따지고 보면 지식이란 말은 원리란 말이고 이치란 뜻인데 온 세상은 이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찾아보고 발견해보면 전부다 지식입니다. 그런데 그 지식이 사람들이 찾아내기 전에 발견하기 전에 발명하기 전에 그 지식은 이 세상에 있기는 있는데 몰랐던 지식입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지 않으니까 지식으로 모르는 겁니다. 지금도 21세기까지 지식의 그 양이 수도 없이 많은데 아직까지도 발견하지 못하고 찾아 내지 못한 지식이 얼마든지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식들이 일반적인 것도 있는데 인간이 문명의 획기적인 발명품 중 하나가 불을 발견한 것이라 그러지요 불. 요즘 불은 자유 자재로 만들어 쓰잖습니까? 처음에 불이 나왔을 때는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몰랐을 겁니다. 요즘 불을 보고 이상하다는 사람은 그 사람이 이상하지요. 비행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상상도 못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일반입니다. 전화기가 처음에 발명 되었을 때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게 아주 기적처럼 그리 되어졌는데 특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다 알려지고 니니까 일반화가 되어진 겁니다. 모든 지식은 이렇게 되어 가지고 발전되고 발달되고 많이지게 된 것이 오늘날 이 세상에 가득찬 지식입니다. 그래서 발견된 그 지식위에 또 다른 지식이 보태지고 보태지고 합해지고 거기서 이런저런 원리가 이치가 또 나오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이 또 발견되고 그래서 이 세상에 지식이 가득차게 되어졌다. 그래서 지식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보면 조물주께서 이 세상의 인간들이 때가 되면 찾아낼 수 있도록 다 집어 넣어 놨고 지식으로 세상을 만들어놨고 안믿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진화론적으로 말을 해도 이 세상에 인간이 있기 전에는 있어도 아무 의미도 없고 소용도 없는 것이고 인간이 있고 난 다음부터 지식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지식은 틀린 것이고 성경 지식이 맞으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지식을 다 넣어놨다 그래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지식이 하는 일은 뭐냐? 지식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들고, 맞습니까? 아는 것은 사람에게 생각을 하게 하고 연구를 하게 하고 따져보게 하고 비판 평가를 하게 하고 판단을 하게 하고 사람의 모든 생각이라든지 따지는 것이라든지 비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들의 근거가 전부다 지식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생각을 못하고 평가를 못합니다. 오백원이 큽니까 오만원이 큽니까? 뭐가 커요? 오만원이 큽니까? 어떻게 알아요? 아니까 아는 거지요. 그런데 영윤이 한테 물어볼까요? 오백원이 크니 오만원이 크니 물어보면 압니까 모릅니까 오백원짜리 반짝반짝 동전주고 오만원짜리 종이 주면 어느거 할래 하면 아이들이 어느거 합니까 오백원 하겠지요 왜 그들은 그런 걸 가르켜서 모른다 그럽니다. 가치를 모르는 거지요 오만원은 오백원의 백밴데 백배 가치를 어린 아기들은 모릅니다. 지식이 없으니까 오백원이 뭔지 오만원이 뭔지 모르니까 그리 되는겁니다. 모르면 가치관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느것이 좋은가. 자동차를 주고 벤츠 자동차와 그보다 큰 트럭이나 주고 어느거 할래 그러면 벤츠는 2억짜리하고 트럭 커다란거 주면 트럭 2천만원 주면 좋은거 사는데 10배나 되도 벤츠란 자동차의 가치와 용도를 모르는 사람은 거기대한 가치를 모르는 겁니다. 금을 모르는 사람에게 금을 주면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몇 번 제가 써먹었는데 어느 나그네가 산골에 오두막 집이 있는데 잠시 쉬러 들어가서 보니까 그 집에 벽지며 문을 종이로 발랐는데 단박문이라 그럽니다 단박문이란 동의보감처럼 한 번만 쓰면 병을 나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처방전이라 그말입니다. 그런걸 가지고 문종이로 쓰고 벽지로 다 발라놨다 그럽니다. 많은 돈을 주고 다 뜯어서 가져갔다던가요. 모르는 사람은 일억원짜리 수표를 줘도 찢어 버립니다. 아는 사람은 그게 뭔지 아는 사람은 소중히 간직하는 것이고 그게 지식입니다. 가치관이라는 것은 지식에 따라 생겨지는 겁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은 가치관도 모릅니다. 없습니다. 지식의 범위가 좁은 사람은 가치관의 범위도 좁아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지식이라는 것은 중요한 겁니다. 지식이란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고 연구하게 하고 따져보게 하고 가치를 평가하게 하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 전부 지식에서 다 되어지는 겁니다. 지식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그 지식의 종류를 따져보면 크게 둘이 있어서 하나는 조물주 하나님이 온 세상에 집어 넣어 놓으니까 사람들이 비로소 찾아내고 발견해 낸 인간지식이 있고 또 성경으로 말하면 뱀에게 미혹 받아서 인류시조 아담에게 들어갔던 인간지식 뱀의 지식 마귀지식이 있고 그 지식 있기 전에 에덴동산 세상에 있던 하나님의 지식이 있고 크게 두 지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아우르는 지식이 있겠고 인간 지식은 둘로 나눠져서 물질의 이치를 논해 놓은 물리가 있고 하나는 인간에 대해서 논해 놓은 인문 지식 둘이 있다. 그런데 물리는 물리 자체의 지식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이치기 때문에 정확하나 사람들이 써먹기를 잘 못 써먹어서 용도가 틀려서 인간들이 써먹는 물리 지식을 가리켜 반거짓말이라 그리 말하고 사람들이 전부 인간은 어떠하다 근본과 내세와 인간의 모습과 인간의 세상 살이를 논해 놓은 생사화복 흥망성쇄를 논해 놓은 인문지식은 전부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이 전부를 아울러서 진리 말씀이다. 이 말씀은 참 말이다 그렇게 말을 하는겁니다. 그래서 지식의 종류는 둘이 있다 기억하시고.
그 지식의 결과를 살펴보면 인간 지식의 결과는 그 근본도 그러하고 방향도 그러하고 결과도 그러하고 인간의 범위를 결코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인간 지식의 결과는 인간 범위를 벗어나지를 - 이거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젊은 사람도 그렇고. 저도 배워서 전하는 건데 이런거는 세상에서 제대로 듣지를 못합니다. 대학 강의가 표현이라든지 쓰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자를 많이 쓸건데 숲속에 들어가면 나무는 봐도 숲은 못본다는 것 처럼 불교지식 유교지식 어려운 문자도 많고 이치도 많고 굉장히 많은데 그 속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속에 파묻혀서 보는 것이지 그 자체가 어떻다는 것은 모릅니다. 그 지식을 말하는 그 사람들 까지도 그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나와야 알지 안에 들어가면 모를 뿐더러 거기 빠져 죽고 그 속에 속한 사람이 되고 마는겁니다. 이 세상 어느 단체에 가도 이런 말씀은 듣기 어렵습니다. 인간 지식이라는 것은 인간 지식의 범위 근본이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뿌리가 더 들어가면 뱀에게서 나온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인간범위를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논리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컴퓨를 만들어내고 로봇트를 만들어서 어디까지 과학을 발명을 시켜도 전부다 인간의 머리속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머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따라서 이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종교 철학 사상 어려운 것부터 깊은 것이 굉장이 많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을 타고 들어가고 들어가면 마지막까지 아무리 들어가봐야 종교라면 사람들이 인간 이상의 형이상학의 일은 없다 말하는데 아무리 들어가봐야 인간 머리속에서 나온것이기 때문에 불교가 깊어도 인간 머리 이상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유교가 깊어도 인간이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인간이 추측과 추론과 상상속에서 연구 명상속에서 나온것이지 그 넘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지식의 한계고 범위고 결과입니다. 여기도 좀 공부하신분들이 계실건데 생각해보시면 알겁니다. 아마 따저보면
그런데 하나님의 지식은 인간지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밖에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범위 인터넷 방송매체 많으니깐 알려지지만 다 끊어놓고 북한 같은 나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완전 고립을 시켜 놓으니깐 한국 미국이 어떤 나란지 모른다. 그사람들은 우물안에 개구리다. 밖의 세계를 안접하면 모릅니다. 그 안에 들어가서는 모릅니다. 이 세상테투리 안에서는 세상 범위를 벗어나는 것은 알수 없고 인간의 범위안에서는 인간 넘어를 모르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인간을 벗어나야 인간을 알게 되고 인간밖의 세계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도 없이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주님같은 자가 되려거든 인간이 넘어서 하나님 같은 자가 되려거든 첫째 어떻게 해라고요? 자기를 부인하라 세상을 부인하라 자기와 세상을 부인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지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초월하고 이세상을 초월한 것이 하나님의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인간지식은 모든 것이 다 유한하고 지업적인 것이고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고 영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을 내지식으로 받아 드려서 하나님의 지식을 내지식에 주격되는 지식으로 받아야 그 지식의 인도를 따르고 지배받는 내 양심이 참 신앙양심이 되서 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수가 있는 것이지 지식이 틀려 먹으면 양심이 틀려먹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을 향해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마귀를 향해 찾아가면서도 담되하게 찾아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틀리면 모든것이 틀린것입니다. 동쪽으로가야만 사는 길인데 서쪽으로 가면 파멸의 길인데 서쪽을 향해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입쁘게 화장을 하고 자동차 멋진것을 타고 아주 아름답게 꾸며서 서쪽으로 향해 달려 가면 모르는 사람은 보고 아 아름답다 이쁘고 옷도 아름답고 차도 좋고 기술도 좋으네 빨리도 가네 다 부러워서 따라가는데 아는사람이 보면 뭐라 합니다니까 저거 큰일 났내 파멸의 길인데, 아름답게 가도 파멸 빨리가면 더 파멸 보기 좋게 가도 결과는 파멸 다 파멸입니다. 그사람의 지식이 틀리면 그사람의 인생과 영원이 절단 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바로 가지면 더디게 가도 가긴 바로 갑니다. 굴러가도 가고 기어가도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빨리가느냐 보기좋게 가느냐 아름답게 가느냐 뭘 가져가느냐 이것은 중요치 않습니다. 이런것은 전혀 중요치 않습니다. 그건 참고 사항이고 선택이빈다. 필수는 그런것을 가지기 전에 어떤 지식을 가지고 방향을 인생의 방향을 정하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게 틀리면 모든것이 틀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 성경지식을 내지식으로 받아드리고 이 성경지식가지고도 성경 깨달음도 종류가 수없이 많으니깐 옳고 바른 깨달음을 가져서 이에 바른깨다름을 가지고 가야 인생이 행복해지고 영원까지 바로 되는 것이지 이게 틀려지면 그의 일생과 영원이 전부다 두번다시 회복할수 없는 슬피 우며 이를 가는 불로 소금치듯 하는 그런 후회가 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서머나교회의 5대관을 해야되는데 오전에 서론만 하다가 시간이 갔는데 지식에 대해서 생각해 봤습니다. 지식이 무엇인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지식의 정의 과거 현제 이미 나와있는 만 사물에 대해서 아는 것이 지식이다.
지식의 근본은 조물주가 인간세계에 넣어놓은 것을 인간들이 발견해낸 것이 지식인데 마귀에게 미혹받아 발견된 지식은 인간의 지식이고 하나님께 받아 가진것이 하나님의 지식이다. 지식의 역할은 인간으로 하여금 생각 연구 따저 비판 평가 가치를 바로알게 하는 것이 지식의 역할이고
지식의 종류는 인간지식과 하나님의 지식이 있고 지식의 결과는 인간지식은 끝이 유한하고 일시적이고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다
기억하면 우리는 듣고 보고 배우고 접하면서 바른 지식을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알고 보면 어렵지 아니하고 알고보면 그속의 이치 논리가 들었으니깐 고요하게 깊이 생각해봅시다. 어떤 지식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 잘못 알고 있으면 얼른 돌아서 서 바로 가저야 됩니다. 아는 것이 틀리면 전부타 틀리게 되어집니다.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