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3-주전(출13:21-22)
말씀의 인도2014-07-13조회 312추천 24
본문: 출애굽기 13장 21절-22절(요약/2014.07.13.주일)
제목: 말씀의 인도
1. 이스라엘의 노정
-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과정
-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거울이며 모형, 그림자
-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노정으로, 지계(地界)로 인도
- 오늘 우리는 장소가 아닌 성화의 과정으로, 현실(現實)로 인도
- 하나님의 형상 이루기까지 현실 과정으로 인도
2. 하나님의 인도
1)구름기둥 불기둥 인도
- 하나님이 인도하시되 보이기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면 하나님 따라가는 것
2)하나님은
- 하나님은 무형의 완전자
-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으니
- 이방인은 산 근처도 불가, 일반 백성은 산발치, 아론은 중턱, 모세는 대면
3)오늘은
- 구름기둥 불기둥은 진리와 영감
- 오늘 우리는 진리와 영감으로 인도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말씀으로
- 말씀 속에 양심을 통한 영감으로 인도
3. 말씀의 인도
1)말씀은
-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며 진리, 영감은 말씀을 통해
- 말씀은 성도의 신앙 법칙이며 걸어갈 길
2)말씀의 인도
- 구름기둥 불기둥은 그들 앞에, 따라만 가면 되도록
- 말씀은 성경에, 읽으면 되고 들으면 되도록
- 말씀이 적용되는 현실에 말씀대로 순종하도록 인도
4. 말씀 인도 따라가면-책임, 보호
1)이스라엘은
①의식주 책임, 의식주 염려
②한서의 위험에서 보호
③맹수와 대적에게서 안보
④가나안 길로 인도, 따라만 가면 가나안 입성
⑤실력을 연단, 광야 40년 통하여
2)오늘 우리는
①의식주 책임, 의식주 염려
②세상의 고락으로 인한 타락에서 보호
③세상의 수많은 악령의 미혹과 위협에서 안보
④천국의 성화의 길로 인도, 말씀대로만 살면 성화 구원 완성
⑤실력을 연단, 구원에 필요한 실력을 연단, 세상 현실을 통하여
5. 말씀 인도 따라가면-어려움과 기적
1)어려움, 그러나 능력의 기적의 길
- 출애굽 하자마자 홍해바다
- 며칠 후 마라의 쓴 물
- 또 얼마 후 물이 없어 고난, 배고픔, 영양 결핍,
-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 사막의 길, 전갈, 뱀 등 위험천만
- 고비 고비, 과정 과정마다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로 무사통과
- 따라가면 갈수록 믿음은 더해지고 연단 받아 실력은 더해지는 결과
2)오늘도 말씀 따라가면
- 육이 죽고 영이 사는 생활, 세상 재미 낙은 없어지고 천국의 사람으로
- 배고픔도 목마름도, 여러 종류 형태의 어려움도 봉착
- 세상 임금인 악령과 그 신민들의 수많은 미혹과 위협
- 말씀 인도 따라만 가면 모든 것 승리, 믿음은 더해지고 성화의 실력은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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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지난 주일이 아마 맥추감사 연보하는 주일이었는데, 깜빡하고 우리는 한 주 늦어졌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지마는 말씀을 좀 준비하다가 그것하고 연관된 그런 말씀이 생각이 나서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삼 대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 삼 대 절기고, 그 가운데 오순절은 말하자면 맥추절 그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맥추감사 오순절 절기는 칠칠절이라 그리 말하고 애굽에서 나온 지 오십일 만에 다섯 오자 열흘 순자 오십일만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그것을 기념하는 감사하고 기념하는 그 절기가 오순절 절기입니다. 오늘은 그 오순절 절기와 관련된 말씀이라 그리 봐도 되겠고 중심내용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런 내용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430년 종살이하던 데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구출받아서 나와가지고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출발의 그런 과정입니다.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처음에 도착한 곳이 20절에 보면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숙곳이라는 곳이 있는데 애굽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숙곳이라는 장소였고, 거기 있다가 거기서 다시 출발해서 가나안으로 가게 되는 출발의 과정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에서 출발해서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크게 생각해보면, 살펴보면, 홍해바다라는 곳이 있었고 홍해바다를 건넜고 광야로 들어가서 광야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40년을 광야에서 지나는 동안에 만ㅇ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광야를 거쳐서 40년만에 요단강을 거쳐서 가나안 땅에 입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까지의 그 노정 여정은 오늘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 출발에서 천국에 가기까지의 그런 과정을 하나 모형으로 그림자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라 그리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홍해바다를 건넌 것과 광야 생활과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그 모든 과정들은 오늘 세상에서 우리가 구출받아 예수믿는 신앙생활을 출발하고 때가 되면 믿음이 생겨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사는 세레를 받고, 또 광야 생활이 되는 교회생활을 거쳐서 마지막 죽음의 과정을 통과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그런 과정을 이스라엘의 신앙 노정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간 그 인도의 과정은 오늘 우리들의 거울이고 그것이 오늘 우리의 모형이고 그림자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차이가 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실 때 애굽이라는 나라, 거기서 출발해서 홍해바다를 거쳐서 광야라는 그 사막길을 광야 사막길을 통과해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갔고,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형인데 그림잔데 오늘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정 - 노정이란 길을 가는 여정이란 뜻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이라는 나라, 그 경계가 있는 그 나라에서 나와가지고 홍해라는 바다를 건너서 홍해바다를 건너서 광야 사막 길을 40년 동안 돌면서 걸어서 다니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들어 간겁니다. 그들의 모든 노정은 말하자면 경계 경계 경계를 넘어서 가나안 땅이라는 거기 들어갔고 애굽이라는 나라의 경게를 국경을 넘어서 홍해 바다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지로 건너서 광야에 넓은 광야 길을 하루 이틀 계속 걸어서 40년 동안 여러 곳을 거쳐서 마지막 요단강을 건너가서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간겁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국경을 넘었고 바다를 넘었고 땅의 경계 지계들을 통과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이것이 그림자고 모형이고 그러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가는가? 믿는 사람들은 예를 들자면 한국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면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대한민국에서 전도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평생 죽는 날 까지 대한민국 땅에서 요즘은 교통이 편리해서 많이 왕래하지마는 지금부터 백여년 전만 해도 시골에 태어나면 그 산골짝에서 60년 70년 평생 거기서 나서 거기서 밭갈고 논갈고 살다가 결혼하고 자녀낳고 거기서 죽는 그런 사람들이 허다하게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태어난 그 장소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말입니다. 경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왕래가 편리하고 교통이 편리하고 세계화 시대가 되니까 한국 사람이 여러 나라를 다니지마는, 한국 살다가 이민도 가고 다른 지방으로 이사도 가고 그리 하지마는 그러나 그것이 이스라엘이 걸어간 그런 노정같은 노정은 아닌 것이고 말하자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정은 어떤 노정인가 하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의 목적은 가나안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은 가나안 땅이고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기에 거리가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야 되고 바다 건너야 되고 광야를 거쳐야 되고 강을 건너서 가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오늘 날 예수 믿어서 가는 목적지가 어디냐? 우리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이영근 선생님 우리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손성균 선생님. 정은규 학생 어딥니까? 천국이지요 선생님보다 낫네 은규학생이. 선생님들은 모르고 있고. 자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서 어디 가느냐? 천국에 들어가는게 우리 목적입니다. 그러면 천국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될까? 또 천국 간다는 말은 무슨 말이며 천국에 가려면 어느 경로를 통해서 어느 길을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가야 될까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노정 가나안 까지 가기에 노정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천국까지 가기에 그 이치를 우리가 공부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가나안에 갔고 우리는 세상에서 천국에 가는데 천국 간다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택함받은 사람은 누구나 잘 믿든 못 믿든 천국 갑니다. 기본구원 얻고. 믿는 사람들이 땅 위에서 천국 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성화구원을 이루어 간다 그 말입니다. 믿는 사람의 가나안 들어가는 입성은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천국은 이미 우리는 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천국은 가 있습니다. 이미 다만 시기가 아직 되지 않아서 표가 나지 않을 뿐이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천국에 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천국 들어간다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그 말은 성화구원을 이루어간다 그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이라는 국경을 넘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많은 노정이 있었는데 우리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가기까지 천국에 간다 말은 무슨 말이라 그랬습니까? 믿는 사람이 천국간다 말은 무슨 의미라 했습니까? 무엇입니까? 성화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간다 그 뜻입니다. 그 천국 가는 노정이 어떠하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말하면 어떠 했습니까?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서 광야생활을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믿는 사람은 어떻게 가야 됩니까? 부산에서 출발해서 고향에서 출발해서 부산에 와서 서울을 거쳐서 미국 가서 러시아를 거쳐서 중국을 통해서 태평양을 건너서 우주선을 타고 천국 갑니까? 믿는 사람이 천국 가는 것은 어떻게 가는 겁니까? 천국 가는 것은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화구원은 어떻게 이루어가는 것인가? 말하자면 성화의 과정과정, 성화라는 말은 우리 자신 사람이 변화되는 걸 성화라 합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성화 사람의 변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거룩하게 바꾸어지는 것 변화되는 것을 가리켜 성화라 그리 말합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어떻게 변화되어져 가는가? 세월 속에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변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루 살고 이틀 살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요즘은 조기교육 이니까 1학년에 입학하면 가나다라마바사 12345678압니다. 그래도 조금 어려운 단어의 뜻은 모르는데 선생님께서 '어머니'써놓고 무슨자입니까? 아버지 선생님 요래 가르치니까 배워서 압니다. 하나 둘 단어를 배워서 알고 산수를 배워서 알고 역사도 알고 자연도 알고 배워서 압니다. 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니까 좀 더 어려운걸 배워서 좀 더 어려운 것도 압니다. 그래가지고 하나 둘 배우니까 머리 속에 지식이 들어있고 동시에 사람의 도리도 배워서 어릴 땐 어머니가 밥을 떠먹여 줬지마는 이제는 초등학생이니까 스스로 떠먹고 어릴 때는 옷을 입혀 줬지마는 이제는 알아서 옷을 입고 어른들 만나면 인사도 하고 형제간에 싸우면 안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생님 공경하고 잘 순종하고 몰랐는데 배우니까 알고 배워가지고 잘 안하니까 꾸지람도 하고 가르치고 그러면 안된다 요래하는 것이다 신발을 휘휘 집어 던지니까 인격이 삐뚤어지니까 안된다. 가르쳐주니까 알고 한 번 하고 두 번 하니까 나중에는 자라갈 수록 집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반듯하게 놓고 들어가는 거다. 방문을 열 때는 조용하게 열고 닫는거다. 지금 무슨 설명을 드리는 지를 전체 맥락을 잡고 들으셔야 됩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살짝 열고 어른들이 계시는 방에 들어갈 때는 노크를 하고 들어가는거다. 또 방에 앉을 대는 아주 찬찬하게 조심스럽게 앉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는 편식하지 말고 반찬을 골고루 먹으며 어른들 먼저 수저뜨게 하고 먹는거다. 그래가지고 하나 둘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니까 몰랐다가 알았고 알았지마는 안해보니까 익숙하지 않았는데 자꾸 가르치고 꾸지람하고 그러니까 그 속에서 점점 사람이 예의 바른 사람으로 도덕적인 사람으로 사람이 바구어져 갑니다. 이를 가리켜 사람이 변화가 됬다 하는 겁니다. 저 학생이 예절바른 사람이 되었구나. 사람이 바꾸어졌구나 변화되어졌구나 그런걸 가리켜 변화되었다고 하는겁니다. 그 학생이 아무것도 몰랐는데 망나니였는데 개구장이였는데 어떻게 몇년 지나니까 예의 바른 사람으로 변화가 되엇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꾸 가르쳤습니다. 또요 자꾸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배우고 연습하고 숙달하니까 사람이 변화가 되었다 그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천국 가는 것은 자기가 변화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 우리 구원이고 이게 천국 가는겁니다.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지고 나도 하나님같은 생각 그런 가치관 그런 뜻 그런 소원 그런 욕망 그런 정신 그런 사랑 그런 진실 하나님같은 그런 분으로 그런 깨끗한 사람으로 점점 자기 자신이 바꾸어져 가는겁니다. 이게 천국에 가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바꾸어져가는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바꾸어져가는가?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어디로 갔습니까? 이스라엘은 어딜 향해서 갔습니까? 가나안을 향해 갔습니다. 무엇을 거쳤습니까? 홍해 바다. 광야를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께 택함 받고 중생 되고 예수를 믿어서 그 다음 세례를 받고 세례 받는다 말은 믿음의 실제가 되어졌다 말입니다. 세레를 받고 광야생활은 교회생활이고 교회생활은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말씀듣는 생활입니다. 말씀을 공부하는 생활입니다. 들으니까 알겠고 읽으니까 알겠고 몰랐던 것을 자꾸 읽고 듣고 배우니까 알겟습니다. 지식이 생겼습니다. 몰랐는데 듣고 배워서 알았습니다. 알지마는 자꾸 안됩니다. 아는대로 살아야 되느데 어른 보면 인사를 해야 되는데 인사를 잘 못합니다. 인사하면 까딱하고 맙니다. 요즘 애들은 배꼽인사 해야지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을 한번 가르치고 또 가르치니까 인사해야지 하면 허리 숙이고 인사를 할 줄 알게 됩니다. 어떻게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자꾸 첫째는 가르치고 두번째는요? 연습을 자꾸 시켜서. 신앙생활은 이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배우는거 공부하는 거 하나는 연습하는거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이것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생활은 어디서 하느냐? 현실에서 한다 말입니다. 자기 있는 그 현실에서.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예수믿는 사람으로 나서 평생을 통해서 세계일주를 열 번도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세계일주는 커녕 고향마을 밖에 나가지 못하고 평생 수십년을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경계 지계를 지역을 넘어서서 과정을 거치는 것은 구약시대고 오늘날 우리의 과정은 그런 경계를 넘고 산넘고 물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과정은 현실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현실이란 것은 지난주일에 말씀드렸던가요/ 언제 어디가 현실입니까? 자기의 몸이 있는 그 곳이 현실입니다. 내 몸이 1년 365일 병원에 있었으면 365일동안 거기가 현실입니다. 내 몸이 60년 현실동안 한국에 살았으면 그 한국이 자기 평생의 현실입니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그 환경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여름이 되었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여름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한국에 계시는 이 지역은 여름이 더우니까 피서도 가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누가 불러 왔습니까?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부산에 사는데 내가 여름을 찾아 갔습니까 여름이 찾아 왔습니까 나는 가만히 있는데 여름이 나한테 찾아 왔습니다. 좀 있으면 여름은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여름은 갑니다. 가을이 옵니다. 좋은 가을 가지 말라고 붙들어도 갑니다. 그 다음은 겨울이 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환경이 변합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계절도 바뀌고 여러 환경이 변합니다. 나는 내 일만 하는데 내 주변의 사람이 변합니다. 사건들이 자꾸 생기고 변합니다. 등따시고 배부르게 가만히 살면 좋겠는데 아이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버렸습니다. 내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현실은 내가 만들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생기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내게 필요한 현실을 천태 만상의 현실들을 내가 만나게 하시는데 그게 바로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는 것이고 광야를 건너게 하는 것이고 요단강 건너는 것이고 가나안 들어가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 그런 현실들 속에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이것이 만들어져가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논리적으로 제가 좀 권위가 있으면 이해 되시는 분 손 한 번 들어보라 하겠는데 그래는 못하겠는데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시는지. 이스라엘 그들은 국경을 넘었고 바다를 건넜고 광야를 건넜고 요단강 건넌 그래 갔습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은 천국이라는 장소는 영겐데 우리는 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천국 간다는 말은 거기 들어가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게 우리가 천국 가는겁니다.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천국 가는 겁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 바다를 건너니까 애굽에 있을 때 보다 가나안이 좀 더 가까워 졌습니다. 광야를 많이 지나니까 가나안 땅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광야를 지나니까 가나안이 눈 앞에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1년을 살면 1년 산 만큼 가나안이 가가워져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가까워 졌는데 어떤 사람은 1년을 살아도 내나 그자리에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왔으니까 좀 더 가까워져야 되는데 세상에서 에수를 믿으니까 천국에 가까워져야 되는데 예수 믿어도 내나 그자립니다. 10년을 믿었습니다. 10년을 길을 간 겁니다. 가나안을 향해서. 갔으니까 그만큼 가까워져야 되는데 10년을 예수 믿었는데 내나 그자립니다. 천국에 조금도 가까워지지를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조금도 가나안이 가까워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뱅뱅 돕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화는 조금도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형상은 조금도 닮아가지 못했다 그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 얼만든지 많고 꽉 찼습니다. 구약의 그들의 노정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구원의 도리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 모든 인도는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서 애굽에서 인도해서 가나안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자 성경 보시겠습니다.
본문에 21절입니다. 본문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놓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해야 됩니다. 누가 인도합니까? 이스라엘 백성 앞에 누가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앞에 행하사 계약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하나님이 그들 앞에 행합니다. 그들 앞에서 그들의 길을 인도해서 인도자가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눈에는 하나님이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그들 눈에 하나님은 안보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완전자라 안보이는 분입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들 앞에서 인도하시는데 그들 눈에는 뭐가 보입니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보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직접 그들을 인도하시는데 하나님은 완전자라 그들 눈에 안보이고 그들 눈에 구름기둥만 보이고 불기둥만 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불기둥 속에서 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것이 구름기둥이고 불기둥이다. 그들이 보이는 구름기둥 불기둥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들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면 바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되어진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 이스라엘은 그들을 직접 인도하셨는데 그들 눈에는 구름기둥으로 보였고 불기둥으로 보였는데 오늘 우리를 예수 믿게 만드시고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세례를 받게 하시고 예배 시간시간 마다 틈 날때 마다 성경을 읽게 하시고 말씀을 듣게 하시고 생각을 하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알게 하시고 그 구원 도리는 무슨 도리냐 제가 질문드려 보겠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구원 도리는 무엇을 하는 구원 도리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구원 도리 가나안에 들어가는 구원도리 천국가는 구원도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닮아 성화되는 그 구원 도리를 배워가지고 배운 것을 아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안되니까 또 해보고 넘어지면 또 하고 또 하는 현실속의 반복을 통해서 하나 완성되면 또 시켜서 또 하게 하고 배운것을 숙달 시켜가지고 점점 자기라는 사람을 말씀대로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이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이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인데 요렇게 우리들을 가나안에 들어가시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자가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고 게시는데 구약시대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내 보였는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구름은 무엇이 구름입니까? 구름은 무엇인가요? 구름의 알갱이들은 물방울이라 그러지요. 불은 불이고. 성경에 물은 반드시 그런건 아닌데 성경의 물은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서 물은 진리를 물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물이라 그래서 지금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진리가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시는 구름기둥이고 진리는 무인격의 이치고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이치라는 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께서 이성이라는 마음의 요소를 넣어 주시므로 사람들이 들으면 읽으면 이치를 듣고 읽으면 사람들은 알게 인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짐승들은 이성이 있어도 사람같은 이성이 없어서 이성 없는 짐승이라 합니다. 짐승들에게는 밥을 하는 이치를 가르쳐줘도 소, 돼지는 그것을 못알아 듣습니다. 뜨거운것을 설명해줘도 못알아 듣습니다. 갔다 대야 알지. 그들 속에는 그런 이성이 없으니까. 그런데 사람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치를 깨달아 알수 있는 이성이라는 속성을 넣어 주셔서 사람속에는 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치를 들으면 사람은 알게 됩니다. 아는것을 인지 인식한다 합니다. 인지한다는 것은 내가 안다는 것, 내가 아는 것은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나 아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들으면 알고 보면 아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보는 것 듣는것 이고 보고 듣는 것의 종착은 아는 것이고 종착이라 보다 목적을 아는 것이고 아는 것의 목적은 써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데 그 구름기둥은 진리다 그 진리는 참된 이치다 참된 이치는 바로 성경으로, 말씀으로 나타나는데 이 말씀은 우리들이 알수 있도록 나타났다 그 말은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눈으로 보면 되고 귀로 들으면 됩니다. 사람이 알수 있도록 나타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셨으나 눈에 보이지를 않았는데 그래서 몰랐는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나시니깐 그들이 보고 하나님의 인도로구나 알고 따라 갔던것 처럼 오늘 믿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인 진리를 통해서 우리는 인도하시니 그 진리는 참된 이치고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우리들이 들으면 알고 생각하면 알고 읽으면 알수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진리로 영감으로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이고 불기둥은 성령을 말하는데 성령은 하나님인데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나 영감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므로 영감이므로 감자는 느낄 감자이므로 사람에게 감정이란 것을 넣어 주셔서 성령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느낌이 있도록 그렇게 역사하시니 진리를 통하고 신앙양심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시니 알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진리와 영감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시는 것 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해서 예수믿게 만들어서 신앙생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 닮아가고 성화되어져가는 나를 변화시키는 성화구원을 이루어가게 하시는데 그 인도자가 누군가 구약에는 구름기둥 불기둥이었고 오늘날 인도자는 진리고 영감이다. 진리와 영감은 우리눈에 보이는 것이고 들리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진리와 영감이고 하나님의 영감 인도는 구름잡는 것 처럼 꿈꾸는 것 처럼 막연하게 이종교의 사람들이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추측 추론으로 자기들의 생각으로 만들어내고 막연하게 부르짖는 그와같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진리와 영감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니 이성을 통해서 감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나타나시고 역사하신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핑계 대지를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몰랐습니다. 왜 몰랐는가 하나님은 완전자니까 안보여서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안들려서 몰랐습니다.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내가 나를 진리로 나타냈고 영감으로 나타났으니 그 진리는 참된 이치고 네 속에는 이성이란 것이 있어서 이치란 것은 들으면 너는 알았을 것이다. 네가 밥하는 이치를 몰랐느냐 수학을 몰랐느냐 자연의 이치를 몰랐느냐 이 이치를 알듯이 중생된 사람에게는 진리 이치를 깨닫는 이성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가 들으면 읽으면 생각하면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 역사를 하셨다 그 말입니다. 요 진리를 우리에게 인도하시고 영감으로 역사 인도하시는데
영감은 잠시 두고 그러기 때문에 한 말로 말하면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그 말씀은 이치고 이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데 그 말씀으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구름기둥 불기둥은 갔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홍해바다 앞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이 홍해를 건너갑니다. 가로질러. 그래서 모세가 지팡이로 치로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서 갔습니다. 광야로 들어가니까 또 따라갔습니다. 가는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데 말씀은 발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이치지마는 형체도 없습니다. 무인격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은 어떻게 인도하는 것인가? 말씀은 이친데 그 이치는 변함이 없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 이치가 법으로 있고 빛으로 있고 교훈으로 있고 길로 있는데 저울로 있고 잣대로 있고 거울로 있는데 그 이치가 있는 그 이치를 우리들이 따라가는 것은 어떻게 따라가는 것인가? 그 이치가 적용 되어지는 내가 사는 현실이 있으니 이치는 그대로고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내가 사는 현실이 자꾸 변합니다. 어릴 때 버스를 타고 시골 길을 가면 옛날 시골길 지금도 도로가면 있지요. 가로수가 있습니다. 바깥 풍경이 있는데 버스가 있는데 나는 버스에 앉아서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 길은 자꾸 가지요. 자꾸 가는겁니다. 휙휙 지나갑니다. 나는 가만히 있고 버스가 가니까 사실은 길이 가는 것이 아니고 버스가 가는 것인데 나는 가만히 있는데 버스는 가고 길을 지나가는 겁니다. 그것처럼 나는 사는데 말씀은 가만히 있습니다.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가만히 있는데 그 진리가 적용되어지는 내 현실은 자꾸 지나갑니다. 그래서 고요한 때가 있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천국 향할 때 어려움이 없으니까 기도 많이 하고 성경 읽고 열심히 신앙생활에 충성하는 생활을 열심히 잘 합니다. 고요한 때 그리 고요하게 에배참석 잘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덜컥 집안에 사고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은 고요한 때 현실하고 사고났을 때 현실하고는 다릅니다.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고요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평한 한 때를 주셨으니까 고요한 가운데서 부지런히 성경읽고 기도하고 예배 참석하고 맡은 일 열심히 충성하면 된다. 그런데 사고 났으니까 그 사고난 그 현실은 어떻게 합니까 사고났느냐 원망하지 말고 마음 자세를 원망하지 않아야 겠구나. 사고 났느냐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까 뜻을 찾아보고. 감사하고. 무엇을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어 이런 사고 현실을 주셨는가 찾아보고 거기 맞춰 말씀으로 맞춰서 그 사고난 현실을 말씀에 맞는 말씀을 찾아 그대로 현실을 통과하는 겁니다. 사고난 그 현실을 감사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죄짓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뜻을 찾아 맞춰서 내가 이런 면에 게을러서 이런 사고를 주셨구나. 이런 면에 죄가 있어 이런 사고를 주셨구나. 이런 면을 깨우치기 위해서 주셨구나. 그런 걸 통해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대로 통과하면 그게 가나안을 향해서 몇 발자국 몇 미터 몇 리 길을 간 것이 되겠습니다. 그만큼 자기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되어진 것이 되겠습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 현실 현실을 말씀으로 현실로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현실의 모든 바꾸어지는 현실을 말씀대로 따라가면 말씀 따라 가는 것이고 구름기둥을 따라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는 것이라 말입니다.
그리 따라가면 시간이 없어서 제목만 간단히 말씀 드리면 그리 따라가면 이스라엘이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가면 참 묘한 이치가 있는데 이게 상식이면서 묘합니다. 구름 기둥 불 기둥 인도따라 먹을 것을 싸오기는 싸와도 먹을 것은 식료품인데 얼마나 많이 싸오겠습니까 그러니까 몇 일 지나고 나니까 발효되지 못한 반죽을 가져 왔는데 몇 일 지나고 나니까 애굽나라에서 가져온 것들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없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먹을 것을 장만해야 되는데 농사지을 수도 없고 사막은 광야는 사막이라 농사도 못짓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거할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길인데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니까 그리 들어갑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가는것이 아니고 그리 가는데 그 인도 따라가는데 의식주에 대해서 조금도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욕심이 많아가지고 의식주를 걱정을 하고 욕심을 내서 문제가 생겼지 40년 살아가는데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갈 때 하나님이 다 책임을 졌습니다. 의식주를 다 책임졌고 또 광야에는 사막에는 한서의 차이가 극심해서 더울 때는 40도가 넘어가고 추울 때는 영하 40도로 내려가니까 온도차이가 여름에 참고하십시요 보니까 에어컨 켜는 실내하고 바깥 온도하고 10도 이상 차이가 나면 냉방병 걸리기 쉽답니다. 그래서 5도에서 7도정도로 차이를 암만 더워도 바깥 온도가 35도면 실내 온도는 27~8도 이정도로 맞추지 바깥온도 35도인데 실내온도 23도로 낮춰놓고 거기 오래 있으면 병걸린다 그 말입니다. 10도 차이 넘어가면 냉방병에 걸리기 쉽답니다. 그런데 광야에는 밤에는 40도 밤에는 영하 40도 몇 도입니까 80도 차이가 나니까 사람이 죽습니다 .못살고. 그런데 그 한서의 차이를 구름기둥 불기둥이 알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알맞게 조절을 다 해줍니다. 그 위험에서 이거는 말하자면 의식주 말씀따라 살아가는 믿는 사람의 의식주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성경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의식주를 걱정하는 것은 믿는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거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이런 것들 있어야 될 줄 아시느니라 구하지 마라 했습니다. 의식주 염려 없습니다. 너무 좋아서 탈이고 너무 괴로워서 죽는데 말씀 따라가면 이것이 다 조절이 됩니다. 괴로움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따라 말씀만 따라가면 다 조절이 되어집니다. 또 세번째는 광야 사막은 맹수가 없을 것 같은데 거기도 그런 맹수가 있는갑습니다. 전갈도 있고 독사도 있고 온갖 한 번 물리면 죽어버리는 독충이 많이 있는데 그런 모든 독충과 병과 모든 대적에게서 구름기둥 불기둥이 다 지켜 줬습니다. 또 구름기둥 불기둥 인도 따라가니까 이스라엘은 길을 찾는다고 헤멜 염려가 없습니다. 요즘 네비게이션이라고 자동차에 달아, 저도 길을 잘 몰라서 첫 길 가는데는 어려움이 많은데 그것 딱 달아 놓으면 그냥 따라만 가면 신경쓸게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길도 처음 보는 길도 그것만 따라가면 다 인도합니다. 요래 가십시요 돌아가십시요 바로 가십시요 오른쪽으로 가십 시요 얼마 남았습니다. 도착 했습니다. 가보면 와 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은 요즘 말로 말하면 네비게이션이라 그리 말할까요. 그 인도만 따라 가니까 길을 헤멜 일이 없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구름기둥 불기둥만 따라가니까 가나안에 갔습니다. 말씀의 인도만 따라가니까 어디 갑니까? 천국에 들어갑니다. 길을 헤멜 일이 없습니다. 말씀만 따라가면. 이 세상은 길이 천도 만도 억만도 넘는데 수도없이 많은 길, 길이 너무 많아가지고 혼돈이 되어지는데 말씀의 인도만 따라가면 길을 헤멜 일이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갑니다. 가나안에 입성을 합니다. 또 말씀의 인도만 따라가면 그게 어려움 같은데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통해서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을 비록 다 실패해도 실력있는 사람들은 거기서 광야 40년을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믿음과 실력을 다 마련을 했습니다. 어려운 길로 인도하고 도무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길로 구름기둥 불기둥 인도해서 그리 갔는데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살았고 못견뎠는데 다 지나고 보니 홍해바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 쓴 물이 나서 먹으면 죽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 물이 없어 목 말라 죽겠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위에서 물이 나와서 해결, 양식이 없어 주려 죽겠는데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셔서 해결, 영양 결핍인데 메추라기 보내주셔서 해결, 온갖 대적이 다 많은데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니까 해결, 또 농사 짓지 아니하고 길쌈하지 안했는데 입은 옷을 40년 입었는데, 요즘은 옷이 좋아서 10년 20년 거뜬히 한 40년도 입을 겁니다. 신발도 오래 신을 것이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신발을 아무리 튼튼히 만들어도 40년을 걸었으니까 계속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 닳았을 건데 성경에 보니까 발이 신발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40년 동안 신발 안바꿔 신었는데도 신발이 안떨어졌습니다. 이게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간 그 과정의 모습입니다. 말씀의 인도 따라가면 말씀대로 살면 사람이 도무지 못 살 것 같습니다. 괴로워서 못살겠다 힘들어 못살겠다 너무 피곤해서 못살겠다 까다로워서 못살겠다 이래서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 나사를 너무 쪼으면 터져버린다 하는데 사람이 살 수 없는 길로 인도해서 따라가는데 가는데 사람이 살 수 없는 길이고 갈 수 없는 길인데 가는 곳 마다 전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해결이 되어진,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사는 걸음 믿는 사람이 말씀으로 사는 걸음 전부 기적의 걸음이라고 말을 하는겁니다. 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으로 승리하고 통과하는 그 걸음 이게 말씀따라 가는 길이라 오늘 오전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면 이런 모습 이런 과정들이 있고 이것이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이고 우리 구원을 이루어가는 길이라 이스라엘의 노정에서 배울 이치를 기억하십시다. 그들은 지계를 통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우리는 현실을 말씀으로 통과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것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지 천국가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천국은 이미 내 것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나안 노정, 우리의 신앙 노정은 성화구원입니다. 그 과정과정입니다. 그 인도는 구름기둥 불기둥 진리와 영감 인도고 그 진리와 영감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걸로 인도하시는 게 진리와 영감입니다. 고 인도의 모습은 말씀이고 현실 적용입니다. 요 인도 따라가면 온갖 좋은 것이 다 있고 기적과 능력 하나님의 은혜가 기다리고 있는 이런 길로 가는 것이 말씀인도 따라 가는 길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고요하게 깊이깊이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의 인도는 말씀인도다. 말씀인도 따라가면 말씀으로만 살아가면 모든것은 다 은혜고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가는 길이다. 좀 생각해 보십시다.
제목: 말씀의 인도
1. 이스라엘의 노정
- 출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과정
-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거울이며 모형, 그림자
-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노정으로, 지계(地界)로 인도
- 오늘 우리는 장소가 아닌 성화의 과정으로, 현실(現實)로 인도
- 하나님의 형상 이루기까지 현실 과정으로 인도
2. 하나님의 인도
1)구름기둥 불기둥 인도
- 하나님이 인도하시되 보이기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면 하나님 따라가는 것
2)하나님은
- 하나님은 무형의 완전자
-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으니
- 이방인은 산 근처도 불가, 일반 백성은 산발치, 아론은 중턱, 모세는 대면
3)오늘은
- 구름기둥 불기둥은 진리와 영감
- 오늘 우리는 진리와 영감으로 인도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말씀으로
- 말씀 속에 양심을 통한 영감으로 인도
3. 말씀의 인도
1)말씀은
-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며 진리, 영감은 말씀을 통해
- 말씀은 성도의 신앙 법칙이며 걸어갈 길
2)말씀의 인도
- 구름기둥 불기둥은 그들 앞에, 따라만 가면 되도록
- 말씀은 성경에, 읽으면 되고 들으면 되도록
- 말씀이 적용되는 현실에 말씀대로 순종하도록 인도
4. 말씀 인도 따라가면-책임, 보호
1)이스라엘은
①의식주 책임, 의식주 염려
②한서의 위험에서 보호
③맹수와 대적에게서 안보
④가나안 길로 인도, 따라만 가면 가나안 입성
⑤실력을 연단, 광야 40년 통하여
2)오늘 우리는
①의식주 책임, 의식주 염려
②세상의 고락으로 인한 타락에서 보호
③세상의 수많은 악령의 미혹과 위협에서 안보
④천국의 성화의 길로 인도, 말씀대로만 살면 성화 구원 완성
⑤실력을 연단, 구원에 필요한 실력을 연단, 세상 현실을 통하여
5. 말씀 인도 따라가면-어려움과 기적
1)어려움, 그러나 능력의 기적의 길
- 출애굽 하자마자 홍해바다
- 며칠 후 마라의 쓴 물
- 또 얼마 후 물이 없어 고난, 배고픔, 영양 결핍,
-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 사막의 길, 전갈, 뱀 등 위험천만
- 고비 고비, 과정 과정마다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로 무사통과
- 따라가면 갈수록 믿음은 더해지고 연단 받아 실력은 더해지는 결과
2)오늘도 말씀 따라가면
- 육이 죽고 영이 사는 생활, 세상 재미 낙은 없어지고 천국의 사람으로
- 배고픔도 목마름도, 여러 종류 형태의 어려움도 봉착
- 세상 임금인 악령과 그 신민들의 수많은 미혹과 위협
- 말씀 인도 따라만 가면 모든 것 승리, 믿음은 더해지고 성화의 실력은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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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지난 주일이 아마 맥추감사 연보하는 주일이었는데, 깜빡하고 우리는 한 주 늦어졌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지마는 말씀을 좀 준비하다가 그것하고 연관된 그런 말씀이 생각이 나서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삼 대 절기가 있는데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 삼 대 절기고, 그 가운데 오순절은 말하자면 맥추절 그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맥추감사 오순절 절기는 칠칠절이라 그리 말하고 애굽에서 나온 지 오십일 만에 다섯 오자 열흘 순자 오십일만에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그것을 기념하는 감사하고 기념하는 그 절기가 오순절 절기입니다. 오늘은 그 오순절 절기와 관련된 말씀이라 그리 봐도 되겠고 중심내용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런 내용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430년 종살이하던 데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구출받아서 나와가지고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출발의 그런 과정입니다.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처음에 도착한 곳이 20절에 보면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숙곳이라는 곳이 있는데 애굽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숙곳이라는 장소였고, 거기 있다가 거기서 다시 출발해서 가나안으로 가게 되는 출발의 과정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에서 출발해서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크게 생각해보면, 살펴보면, 홍해바다라는 곳이 있었고 홍해바다를 건넜고 광야로 들어가서 광야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40년을 광야에서 지나는 동안에 만ㅇ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광야를 거쳐서 40년만에 요단강을 거쳐서 가나안 땅에 입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가나안 까지의 그 노정 여정은 오늘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 출발에서 천국에 가기까지의 그런 과정을 하나 모형으로 그림자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라 그리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홍해바다를 건넌 것과 광야 생활과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가는 그 모든 과정들은 오늘 세상에서 우리가 구출받아 예수믿는 신앙생활을 출발하고 때가 되면 믿음이 생겨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사는 세레를 받고, 또 광야 생활이 되는 교회생활을 거쳐서 마지막 죽음의 과정을 통과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그런 과정을 이스라엘의 신앙 노정으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간 그 인도의 과정은 오늘 우리들의 거울이고 그것이 오늘 우리의 모형이고 그림자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차이가 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실 때 애굽이라는 나라, 거기서 출발해서 홍해바다를 거쳐서 광야라는 그 사막길을 광야 사막길을 통과해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갔고,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형인데 그림잔데 오늘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정 - 노정이란 길을 가는 여정이란 뜻이고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애굽이라는 나라, 그 경계가 있는 그 나라에서 나와가지고 홍해라는 바다를 건너서 홍해바다를 건너서 광야 사막 길을 40년 동안 돌면서 걸어서 다니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들어 간겁니다. 그들의 모든 노정은 말하자면 경계 경계 경계를 넘어서 가나안 땅이라는 거기 들어갔고 애굽이라는 나라의 경게를 국경을 넘어서 홍해 바다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육지로 건너서 광야에 넓은 광야 길을 하루 이틀 계속 걸어서 40년 동안 여러 곳을 거쳐서 마지막 요단강을 건너가서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간겁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국경을 넘었고 바다를 넘었고 땅의 경계 지계들을 통과하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이것이 그림자고 모형이고 그러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가는가? 믿는 사람들은 예를 들자면 한국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면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대한민국에서 전도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평생 죽는 날 까지 대한민국 땅에서 요즘은 교통이 편리해서 많이 왕래하지마는 지금부터 백여년 전만 해도 시골에 태어나면 그 산골짝에서 60년 70년 평생 거기서 나서 거기서 밭갈고 논갈고 살다가 결혼하고 자녀낳고 거기서 죽는 그런 사람들이 허다하게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자기 태어난 그 장소를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말입니다. 경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왕래가 편리하고 교통이 편리하고 세계화 시대가 되니까 한국 사람이 여러 나라를 다니지마는, 한국 살다가 이민도 가고 다른 지방으로 이사도 가고 그리 하지마는 그러나 그것이 이스라엘이 걸어간 그런 노정같은 노정은 아닌 것이고 말하자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정은 어떤 노정인가 하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의 목적은 가나안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적은 가나안 땅이고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기에 거리가 있습니다. 국경을 넘어야 되고 바다 건너야 되고 광야를 거쳐야 되고 강을 건너서 가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오늘 날 예수 믿어서 가는 목적지가 어디냐? 우리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이영근 선생님 우리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손성균 선생님. 정은규 학생 어딥니까? 천국이지요 선생님보다 낫네 은규학생이. 선생님들은 모르고 있고. 자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가나안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어서 어디 가느냐? 천국에 들어가는게 우리 목적입니다. 그러면 천국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될까? 또 천국 간다는 말은 무슨 말이며 천국에 가려면 어느 경로를 통해서 어느 길을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가야 될까 그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노정 가나안 까지 가기에 노정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천국까지 가기에 그 이치를 우리가 공부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가나안에 갔고 우리는 세상에서 천국에 가는데 천국 간다는 말은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택함받은 사람은 누구나 잘 믿든 못 믿든 천국 갑니다. 기본구원 얻고. 믿는 사람들이 땅 위에서 천국 간다는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성화구원을 이루어 간다 그 말입니다. 믿는 사람의 가나안 들어가는 입성은 천국 가는 것이 아니고 천국은 이미 우리는 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천국은 가 있습니다. 이미 다만 시기가 아직 되지 않아서 표가 나지 않을 뿐이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천국에 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천국 들어간다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그 말은 성화구원을 이루어간다 그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것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이라는 국경을 넘어서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많은 노정이 있었는데 우리 믿는 사람이 천국에 가기까지 천국에 간다 말은 무슨 말이라 그랬습니까? 믿는 사람이 천국간다 말은 무슨 의미라 했습니까? 무엇입니까? 성화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간다 그 뜻입니다. 그 천국 가는 노정이 어떠하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말하면 어떠 했습니까?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건너서 광야생활을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믿는 사람은 어떻게 가야 됩니까? 부산에서 출발해서 고향에서 출발해서 부산에 와서 서울을 거쳐서 미국 가서 러시아를 거쳐서 중국을 통해서 태평양을 건너서 우주선을 타고 천국 갑니까? 믿는 사람이 천국 가는 것은 어떻게 가는 겁니까? 천국 가는 것은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화구원은 어떻게 이루어가는 것인가? 말하자면 성화의 과정과정, 성화라는 말은 우리 자신 사람이 변화되는 걸 성화라 합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성화 사람의 변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으로 거룩하게 바꾸어지는 것 변화되는 것을 가리켜 성화라 그리 말합니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어떻게 변화되어져 가는가? 세월 속에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변화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루 살고 이틀 살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을 했습니다. 요즘은 조기교육 이니까 1학년에 입학하면 가나다라마바사 12345678압니다. 그래도 조금 어려운 단어의 뜻은 모르는데 선생님께서 '어머니'써놓고 무슨자입니까? 아버지 선생님 요래 가르치니까 배워서 압니다. 하나 둘 단어를 배워서 알고 산수를 배워서 알고 역사도 알고 자연도 알고 배워서 압니다. 초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중학교를 들어가니까 좀 더 어려운걸 배워서 좀 더 어려운 것도 압니다. 그래가지고 하나 둘 배우니까 머리 속에 지식이 들어있고 동시에 사람의 도리도 배워서 어릴 땐 어머니가 밥을 떠먹여 줬지마는 이제는 초등학생이니까 스스로 떠먹고 어릴 때는 옷을 입혀 줬지마는 이제는 알아서 옷을 입고 어른들 만나면 인사도 하고 형제간에 싸우면 안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선생님 공경하고 잘 순종하고 몰랐는데 배우니까 알고 배워가지고 잘 안하니까 꾸지람도 하고 가르치고 그러면 안된다 요래하는 것이다 신발을 휘휘 집어 던지니까 인격이 삐뚤어지니까 안된다. 가르쳐주니까 알고 한 번 하고 두 번 하니까 나중에는 자라갈 수록 집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반듯하게 놓고 들어가는 거다. 방문을 열 때는 조용하게 열고 닫는거다. 지금 무슨 설명을 드리는 지를 전체 맥락을 잡고 들으셔야 됩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살짝 열고 어른들이 계시는 방에 들어갈 때는 노크를 하고 들어가는거다. 또 방에 앉을 대는 아주 찬찬하게 조심스럽게 앉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는 편식하지 말고 반찬을 골고루 먹으며 어른들 먼저 수저뜨게 하고 먹는거다. 그래가지고 하나 둘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니까 몰랐다가 알았고 알았지마는 안해보니까 익숙하지 않았는데 자꾸 가르치고 꾸지람하고 그러니까 그 속에서 점점 사람이 예의 바른 사람으로 도덕적인 사람으로 사람이 바구어져 갑니다. 이를 가리켜 사람이 변화가 됬다 하는 겁니다. 저 학생이 예절바른 사람이 되었구나. 사람이 바꾸어졌구나 변화되어졌구나 그런걸 가리켜 변화되었다고 하는겁니다. 그 학생이 아무것도 몰랐는데 망나니였는데 개구장이였는데 어떻게 몇년 지나니까 예의 바른 사람으로 변화가 되엇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꾸 가르쳤습니다. 또요 자꾸 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배우고 연습하고 숙달하니까 사람이 변화가 되었다 그 말입니다. 믿는 사람이 천국 가는 것은 자기가 변화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 우리 구원이고 이게 천국 가는겁니다.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가지고 나도 하나님같은 생각 그런 가치관 그런 뜻 그런 소원 그런 욕망 그런 정신 그런 사랑 그런 진실 하나님같은 그런 분으로 그런 깨끗한 사람으로 점점 자기 자신이 바꾸어져 가는겁니다. 이게 천국에 가는 겁니다. 그러면 이렇게 바꾸어져가는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바꾸어져가는가?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어디로 갔습니까? 이스라엘은 어딜 향해서 갔습니까? 가나안을 향해 갔습니다. 무엇을 거쳤습니까? 홍해 바다. 광야를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께 택함 받고 중생 되고 예수를 믿어서 그 다음 세례를 받고 세례 받는다 말은 믿음의 실제가 되어졌다 말입니다. 세레를 받고 광야생활은 교회생활이고 교회생활은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말씀듣는 생활입니다. 말씀을 공부하는 생활입니다. 들으니까 알겠고 읽으니까 알겠고 몰랐던 것을 자꾸 읽고 듣고 배우니까 알겟습니다. 지식이 생겼습니다. 몰랐는데 듣고 배워서 알았습니다. 알지마는 자꾸 안됩니다. 아는대로 살아야 되느데 어른 보면 인사를 해야 되는데 인사를 잘 못합니다. 인사하면 까딱하고 맙니다. 요즘 애들은 배꼽인사 해야지 공손하게 인사하는 것을 한번 가르치고 또 가르치니까 인사해야지 하면 허리 숙이고 인사를 할 줄 알게 됩니다. 어떻게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자꾸 첫째는 가르치고 두번째는요? 연습을 자꾸 시켜서. 신앙생활은 이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배우는거 공부하는 거 하나는 연습하는거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이것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생활은 어디서 하느냐? 현실에서 한다 말입니다. 자기 있는 그 현실에서.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예수믿는 사람으로 나서 평생을 통해서 세계일주를 열 번도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세계일주는 커녕 고향마을 밖에 나가지 못하고 평생 수십년을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경계 지계를 지역을 넘어서서 과정을 거치는 것은 구약시대고 오늘날 우리의 과정은 그런 경계를 넘고 산넘고 물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과정은 현실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현실이란 것은 지난주일에 말씀드렸던가요/ 언제 어디가 현실입니까? 자기의 몸이 있는 그 곳이 현실입니다. 내 몸이 1년 365일 병원에 있었으면 365일동안 거기가 현실입니다. 내 몸이 60년 현실동안 한국에 살았으면 그 한국이 자기 평생의 현실입니다. 거기서 만들어지는 그 환경이 나는 가만히 있어도- 여름이 되었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여름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한국에 계시는 이 지역은 여름이 더우니까 피서도 가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누가 불러 왔습니까?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부산에 사는데 내가 여름을 찾아 갔습니까 여름이 찾아 왔습니까 나는 가만히 있는데 여름이 나한테 찾아 왔습니다. 좀 있으면 여름은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여름은 갑니다. 가을이 옵니다. 좋은 가을 가지 말라고 붙들어도 갑니다. 그 다음은 겨울이 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환경이 변합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계절도 바뀌고 여러 환경이 변합니다. 나는 내 일만 하는데 내 주변의 사람이 변합니다. 사건들이 자꾸 생기고 변합니다. 등따시고 배부르게 가만히 살면 좋겠는데 아이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버렸습니다. 내가 만들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현실은 내가 만들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대로 생기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내게 필요한 현실을 천태 만상의 현실들을 내가 만나게 하시는데 그게 바로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는 것이고 광야를 건너게 하는 것이고 요단강 건너는 것이고 가나안 들어가는 것과 같은 과정이라. 그런 현실들 속에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이것이 만들어져가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논리적으로 제가 좀 권위가 있으면 이해 되시는 분 손 한 번 들어보라 하겠는데 그래는 못하겠는데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시는지. 이스라엘 그들은 국경을 넘었고 바다를 건넜고 광야를 건넜고 요단강 건넌 그래 갔습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은 천국이라는 장소는 영겐데 우리는 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천국 간다는 말은 거기 들어가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게 우리가 천국 가는겁니다. 성화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천국 가는 겁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 바다를 건너니까 애굽에 있을 때 보다 가나안이 좀 더 가까워 졌습니다. 광야를 많이 지나니까 가나안 땅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광야를 지나니까 가나안이 눈 앞에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니까 가나안 땅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1년을 살면 1년 산 만큼 가나안이 가가워져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가까워 졌는데 어떤 사람은 1년을 살아도 내나 그자리에 있습니다. 애굽에서 나왔으니까 좀 더 가까워져야 되는데 세상에서 에수를 믿으니까 천국에 가까워져야 되는데 예수 믿어도 내나 그자립니다. 10년을 믿었습니다. 10년을 길을 간 겁니다. 가나안을 향해서. 갔으니까 그만큼 가까워져야 되는데 10년을 예수 믿었는데 내나 그자립니다. 천국에 조금도 가까워지지를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조금도 가나안이 가까워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뱅뱅 돕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화는 조금도 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형상은 조금도 닮아가지 못했다 그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 얼만든지 많고 꽉 찼습니다. 구약의 그들의 노정을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구원의 도리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 모든 인도는 하나님의 인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서 애굽에서 인도해서 가나안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자 성경 보시겠습니다.
본문에 21절입니다. 본문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놓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해야 됩니다. 누가 인도합니까? 이스라엘 백성 앞에 누가 있습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앞에 행하사 계약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하나님이 그들 앞에 행합니다. 그들 앞에서 그들의 길을 인도해서 인도자가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눈에는 하나님이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그들 눈에 하나님은 안보입니다. 하나님은 무형의 완전자라 안보이는 분입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들 앞에서 인도하시는데 그들 눈에는 뭐가 보입니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보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직접 그들을 인도하시는데 하나님은 완전자라 그들 눈에 안보이고 그들 눈에 구름기둥만 보이고 불기둥만 보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름기둥 속에서 불기둥 속에서 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것이 구름기둥이고 불기둥이다. 그들이 보이는 구름기둥 불기둥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그들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면 바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이 되어진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 이스라엘은 그들을 직접 인도하셨는데 그들 눈에는 구름기둥으로 보였고 불기둥으로 보였는데 오늘 우리를 예수 믿게 만드시고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고 믿음을 주셔서 세례를 받게 하시고 예배 시간시간 마다 틈 날때 마다 성경을 읽게 하시고 말씀을 듣게 하시고 생각을 하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알게 하시고 그 구원 도리는 무슨 도리냐 제가 질문드려 보겠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구원 도리는 무엇을 하는 구원 도리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구원 도리 가나안에 들어가는 구원도리 천국가는 구원도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 닮아 성화되는 그 구원 도리를 배워가지고 배운 것을 아는 것을 한 번 해보고 안되니까 또 해보고 넘어지면 또 하고 또 하는 현실속의 반복을 통해서 하나 완성되면 또 시켜서 또 하게 하고 배운것을 숙달 시켜가지고 점점 자기라는 사람을 말씀대로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이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이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과정인데 요렇게 우리들을 가나안에 들어가시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인도자가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고 게시는데 구약시대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내 보였는데 오늘날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구름은 무엇이 구름입니까? 구름은 무엇인가요? 구름의 알갱이들은 물방울이라 그러지요. 불은 불이고. 성경에 물은 반드시 그런건 아닌데 성경의 물은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서 물은 진리를 물이라 그럽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물이라 그래서 지금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진리가 오늘날 우리를 인도하시는 구름기둥이고 진리는 무인격의 이치고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이치라는 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께서 이성이라는 마음의 요소를 넣어 주시므로 사람들이 들으면 읽으면 이치를 듣고 읽으면 사람들은 알게 인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짐승들은 이성이 있어도 사람같은 이성이 없어서 이성 없는 짐승이라 합니다. 짐승들에게는 밥을 하는 이치를 가르쳐줘도 소, 돼지는 그것을 못알아 듣습니다. 뜨거운것을 설명해줘도 못알아 듣습니다. 갔다 대야 알지. 그들 속에는 그런 이성이 없으니까. 그런데 사람 속에는 하나님께서 이치를 깨달아 알수 있는 이성이라는 속성을 넣어 주셔서 사람속에는 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치를 들으면 사람은 알게 됩니다. 아는것을 인지 인식한다 합니다. 인지한다는 것은 내가 안다는 것, 내가 아는 것은 듣는 것이나 보는 것이나 아는 것이나 같은 것입니다. 들으면 알고 보면 아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보는 것 듣는것 이고 보고 듣는 것의 종착은 아는 것이고 종착이라 보다 목적을 아는 것이고 아는 것의 목적은 써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데 그 구름기둥은 진리다 그 진리는 참된 이치다 참된 이치는 바로 성경으로, 말씀으로 나타나는데 이 말씀은 우리들이 알수 있도록 나타났다 그 말은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눈으로 보면 되고 귀로 들으면 됩니다. 사람이 알수 있도록 나타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셨으나 눈에 보이지를 않았는데 그래서 몰랐는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타나시니깐 그들이 보고 하나님의 인도로구나 알고 따라 갔던것 처럼 오늘 믿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인 진리를 통해서 우리는 인도하시니 그 진리는 참된 이치고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우리들이 들으면 알고 생각하면 알고 읽으면 알수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진리로 영감으로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이고 불기둥은 성령을 말하는데 성령은 하나님인데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나 영감이라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므로 영감이므로 감자는 느낄 감자이므로 사람에게 감정이란 것을 넣어 주셔서 성령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느낌이 있도록 그렇게 역사하시니 진리를 통하고 신앙양심을 통해서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시니 알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을 가리켜서 진리와 영감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인도하시는 것 처럼 이 세상에서 우리를 인도해서 예수믿게 만들어서 신앙생활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 닮아가고 성화되어져가는 나를 변화시키는 성화구원을 이루어가게 하시는데 그 인도자가 누군가 구약에는 구름기둥 불기둥이었고 오늘날 인도자는 진리고 영감이다. 진리와 영감은 우리눈에 보이는 것이고 들리는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들이 알 수 있는 진리와 영감이고 하나님의 영감 인도는 구름잡는 것 처럼 꿈꾸는 것 처럼 막연하게 이종교의 사람들이 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추측 추론으로 자기들의 생각으로 만들어내고 막연하게 부르짖는 그와같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진리와 영감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니 이성을 통해서 감정을 통해서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나타나시고 역사하신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핑계 대지를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인도를 몰랐습니다. 왜 몰랐는가 하나님은 완전자니까 안보여서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안들려서 몰랐습니다.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내가 나를 진리로 나타냈고 영감으로 나타났으니 그 진리는 참된 이치고 네 속에는 이성이란 것이 있어서 이치란 것은 들으면 너는 알았을 것이다. 네가 밥하는 이치를 몰랐느냐 수학을 몰랐느냐 자연의 이치를 몰랐느냐 이 이치를 알듯이 중생된 사람에게는 진리 이치를 깨닫는 이성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가 들으면 읽으면 생각하면 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 역사를 하셨다 그 말입니다. 요 진리를 우리에게 인도하시고 영감으로 역사 인도하시는데
영감은 잠시 두고 그러기 때문에 한 말로 말하면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그 말씀은 이치고 이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데 그 말씀으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구름기둥 불기둥은 갔습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홍해바다 앞에서 구름기둥 불기둥이 홍해를 건너갑니다. 가로질러. 그래서 모세가 지팡이로 치로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서 갔습니다. 광야로 들어가니까 또 따라갔습니다. 가는대로 따라만 가면 되는데 말씀은 발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이치지마는 형체도 없습니다. 무인격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우리를 인도한다는 것은 어떻게 인도하는 것인가? 말씀은 이친데 그 이치는 변함이 없고 변하지 않습니다. 그 이치가 법으로 있고 빛으로 있고 교훈으로 있고 길로 있는데 저울로 있고 잣대로 있고 거울로 있는데 그 이치가 있는 그 이치를 우리들이 따라가는 것은 어떻게 따라가는 것인가? 그 이치가 적용 되어지는 내가 사는 현실이 있으니 이치는 그대로고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데 내가 사는 현실이 자꾸 변합니다. 어릴 때 버스를 타고 시골 길을 가면 옛날 시골길 지금도 도로가면 있지요. 가로수가 있습니다. 바깥 풍경이 있는데 버스가 있는데 나는 버스에 앉아서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옆에 길은 자꾸 가지요. 자꾸 가는겁니다. 휙휙 지나갑니다. 나는 가만히 있고 버스가 가니까 사실은 길이 가는 것이 아니고 버스가 가는 것인데 나는 가만히 있는데 버스는 가고 길을 지나가는 겁니다. 그것처럼 나는 사는데 말씀은 가만히 있습니다. 천년 전이나 천년 후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가만히 있는데 그 진리가 적용되어지는 내 현실은 자꾸 지나갑니다. 그래서 고요한 때가 있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천국 향할 때 어려움이 없으니까 기도 많이 하고 성경 읽고 열심히 신앙생활에 충성하는 생활을 열심히 잘 합니다. 고요한 때 그리 고요하게 에배참석 잘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맡은 일에 충성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덜컥 집안에 사고 생겼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은 고요한 때 현실하고 사고났을 때 현실하고는 다릅니다. 대처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고요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평한 한 때를 주셨으니까 고요한 가운데서 부지런히 성경읽고 기도하고 예배 참석하고 맡은 일 열심히 충성하면 된다. 그런데 사고 났으니까 그 사고난 그 현실은 어떻게 합니까 사고났느냐 원망하지 말고 마음 자세를 원망하지 않아야 겠구나. 사고 났느냐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까 뜻을 찾아보고. 감사하고. 무엇을 하나님께서 무슨 뜻이 있어 이런 사고 현실을 주셨는가 찾아보고 거기 맞춰 말씀으로 맞춰서 그 사고난 현실을 말씀에 맞는 말씀을 찾아 그대로 현실을 통과하는 겁니다. 사고난 그 현실을 감사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죄짓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뜻을 찾아 맞춰서 내가 이런 면에 게을러서 이런 사고를 주셨구나. 이런 면에 죄가 있어 이런 사고를 주셨구나. 이런 면을 깨우치기 위해서 주셨구나. 그런 걸 통해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대로 통과하면 그게 가나안을 향해서 몇 발자국 몇 미터 몇 리 길을 간 것이 되겠습니다. 그만큼 자기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되어진 것이 되겠습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 현실 현실을 말씀으로 현실로 인도하시는 그 인도를 현실의 모든 바꾸어지는 현실을 말씀대로 따라가면 말씀 따라 가는 것이고 구름기둥을 따라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가는 것이라 말입니다.
그리 따라가면 시간이 없어서 제목만 간단히 말씀 드리면 그리 따라가면 이스라엘이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가면 참 묘한 이치가 있는데 이게 상식이면서 묘합니다. 구름 기둥 불 기둥 인도따라 먹을 것을 싸오기는 싸와도 먹을 것은 식료품인데 얼마나 많이 싸오겠습니까 그러니까 몇 일 지나고 나니까 발효되지 못한 반죽을 가져 왔는데 몇 일 지나고 나니까 애굽나라에서 가져온 것들 다 떨어져버렸습니다. 없습니다. 배가 고픕니다. 먹을 것을 장만해야 되는데 농사지을 수도 없고 사막은 광야는 사막이라 농사도 못짓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고 거할 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길인데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니까 그리 들어갑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가는것이 아니고 그리 가는데 그 인도 따라가는데 의식주에 대해서 조금도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욕심이 많아가지고 의식주를 걱정을 하고 욕심을 내서 문제가 생겼지 40년 살아가는데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갈 때 하나님이 다 책임을 졌습니다. 의식주를 다 책임졌고 또 광야에는 사막에는 한서의 차이가 극심해서 더울 때는 40도가 넘어가고 추울 때는 영하 40도로 내려가니까 온도차이가 여름에 참고하십시요 보니까 에어컨 켜는 실내하고 바깥 온도하고 10도 이상 차이가 나면 냉방병 걸리기 쉽답니다. 그래서 5도에서 7도정도로 차이를 암만 더워도 바깥 온도가 35도면 실내 온도는 27~8도 이정도로 맞추지 바깥온도 35도인데 실내온도 23도로 낮춰놓고 거기 오래 있으면 병걸린다 그 말입니다. 10도 차이 넘어가면 냉방병에 걸리기 쉽답니다. 그런데 광야에는 밤에는 40도 밤에는 영하 40도 몇 도입니까 80도 차이가 나니까 사람이 죽습니다 .못살고. 그런데 그 한서의 차이를 구름기둥 불기둥이 알맞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알맞게 조절을 다 해줍니다. 그 위험에서 이거는 말하자면 의식주 말씀따라 살아가는 믿는 사람의 의식주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성경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의식주를 걱정하는 것은 믿는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거는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이런 것들 있어야 될 줄 아시느니라 구하지 마라 했습니다. 의식주 염려 없습니다. 너무 좋아서 탈이고 너무 괴로워서 죽는데 말씀 따라가면 이것이 다 조절이 됩니다. 괴로움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따라 말씀만 따라가면 다 조절이 되어집니다. 또 세번째는 광야 사막은 맹수가 없을 것 같은데 거기도 그런 맹수가 있는갑습니다. 전갈도 있고 독사도 있고 온갖 한 번 물리면 죽어버리는 독충이 많이 있는데 그런 모든 독충과 병과 모든 대적에게서 구름기둥 불기둥이 다 지켜 줬습니다. 또 구름기둥 불기둥 인도 따라가니까 이스라엘은 길을 찾는다고 헤멜 염려가 없습니다. 요즘 네비게이션이라고 자동차에 달아, 저도 길을 잘 몰라서 첫 길 가는데는 어려움이 많은데 그것 딱 달아 놓으면 그냥 따라만 가면 신경쓸게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길도 처음 보는 길도 그것만 따라가면 다 인도합니다. 요래 가십시요 돌아가십시요 바로 가십시요 오른쪽으로 가십 시요 얼마 남았습니다. 도착 했습니다. 가보면 와 있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은 요즘 말로 말하면 네비게이션이라 그리 말할까요. 그 인도만 따라 가니까 길을 헤멜 일이 없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갑니다. 구름기둥 불기둥만 따라가니까 가나안에 갔습니다. 말씀의 인도만 따라가니까 어디 갑니까? 천국에 들어갑니다. 길을 헤멜 일이 없습니다. 말씀만 따라가면. 이 세상은 길이 천도 만도 억만도 넘는데 수도없이 많은 길, 길이 너무 많아가지고 혼돈이 되어지는데 말씀의 인도만 따라가면 길을 헤멜 일이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갑니다. 가나안에 입성을 합니다. 또 말씀의 인도만 따라가면 그게 어려움 같은데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통해서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실력을 비록 다 실패해도 실력있는 사람들은 거기서 광야 40년을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믿음과 실력을 다 마련을 했습니다. 어려운 길로 인도하고 도무지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길로 구름기둥 불기둥 인도해서 그리 갔는데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갔는데 사람이 살았고 못견뎠는데 다 지나고 보니 홍해바다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 쓴 물이 나서 먹으면 죽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통과, 물이 없어 목 말라 죽겠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위에서 물이 나와서 해결, 양식이 없어 주려 죽겠는데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셔서 해결, 영양 결핍인데 메추라기 보내주셔서 해결, 온갖 대적이 다 많은데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니까 해결, 또 농사 짓지 아니하고 길쌈하지 안했는데 입은 옷을 40년 입었는데, 요즘은 옷이 좋아서 10년 20년 거뜬히 한 40년도 입을 겁니다. 신발도 오래 신을 것이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신발을 아무리 튼튼히 만들어도 40년을 걸었으니까 계속 걸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 닳았을 건데 성경에 보니까 발이 신발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40년 동안 신발 안바꿔 신었는데도 신발이 안떨어졌습니다. 이게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간 그 과정의 모습입니다. 말씀의 인도 따라가면 말씀대로 살면 사람이 도무지 못 살 것 같습니다. 괴로워서 못살겠다 힘들어 못살겠다 너무 피곤해서 못살겠다 까다로워서 못살겠다 이래서 사람이 어떻게 살겠나 나사를 너무 쪼으면 터져버린다 하는데 사람이 살 수 없는 길로 인도해서 따라가는데 가는데 사람이 살 수 없는 길이고 갈 수 없는 길인데 가는 곳 마다 전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해결이 되어진,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사는 걸음 믿는 사람이 말씀으로 사는 걸음 전부 기적의 걸음이라고 말을 하는겁니다. 기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으로 승리하고 통과하는 그 걸음 이게 말씀따라 가는 길이라 오늘 오전 여기까지 하고
그래서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면 이런 모습 이런 과정들이 있고 이것이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이고 우리 구원을 이루어가는 길이라 이스라엘의 노정에서 배울 이치를 기억하십시다. 그들은 지계를 통과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우리는 현실을 말씀으로 통과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는 것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지 천국가는게 목적이 아닙니다. 천국은 이미 내 것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가나안 노정, 우리의 신앙 노정은 성화구원입니다. 그 과정과정입니다. 그 인도는 구름기둥 불기둥 진리와 영감 인도고 그 진리와 영감은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걸로 인도하시는 게 진리와 영감입니다. 고 인도의 모습은 말씀이고 현실 적용입니다. 요 인도 따라가면 온갖 좋은 것이 다 있고 기적과 능력 하나님의 은혜가 기다리고 있는 이런 길로 가는 것이 말씀인도 따라 가는 길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고요하게 깊이깊이 생각해보십시다. 하나님의 인도는 말씀인도다. 말씀인도 따라가면 말씀으로만 살아가면 모든것은 다 은혜고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으로 가는 길이다. 좀 생각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