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주전(요14:15-24)
주님을 사랑하는 자2014-06-23조회 342추천 23
본문: 요한복음 14장 15절-24절
제목: 주님을 사랑하는 자
1. 최고의 법, 사랑
1)마22:37-40
①율법사의 질문: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②예수님의 대답: 마음 목숨 뜻 다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라
③강령되는 계명: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④한말로 말하면: 성경과 선지자의 가르침은 사랑, 하나님과 인간 사랑
2)위의 말씀에서 알아야 할 것
①의문: 하나님 사랑에 ‘다’ 하면 남은 것이 없는데 이웃 사랑은 무엇으로?
②의미: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은 하나라는 말씀
③정리: 하나님 사랑에 인간사랑이 들었고, 하나님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필연
④인간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 원인, 원동, 근본이 되어야 참 사랑
3)최고의 법은 사랑
①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
②주력은: 우리가 주력할 전부는 사랑, 하나님 사랑, 인간 사랑
③사랑은: 바로 구원,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온전하면 구원 완성
2.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
1)사랑이란 표현의 의미
①사랑은 인격과 인격의 가장 친밀한, 밀접한 관계
②사랑은 기본적으로 주는 것, 상대방을 위해 물질, 마음, 애정…
2)주님을 사랑하는 방법
①하나님은 완전자, 받으실 수 없는 분
②약자의 강자 사랑은 강자의 사랑을 받는 것
③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
3)주님 사랑을 받음으로 사랑하는 방법은
①계명을 지키는 것
②사람을 사랑하는 것
4)주님 사랑하는 방법을 정리하면
①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
②주님을 사랑함으로 계명 지키는 것(동기 목적 중심, 현실에서)
③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면 상대의 모든 것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필연, 자녀 사랑의 예
사람을 사랑하되 가까운 사람이 아닌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사랑은 불신자 이방인들도 하는 것)
3. 주님을 사랑한 결과
1)성령이 함께하심
①성령은 보혜사(保惠師)
②성령이 함께하시면 안전, 만족, 전지
2)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
①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고
②하나님의 관심이 전부 그에게
3)삼위일체 하나님이 동거동행
①완전자와 동거동행 하니 그도 완전
②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4)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를 통해 나타내심
①내 말, 내 일은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 일
②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주님의 형상, 주님의 모형
4.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행복, 감사
- 사람일지라도 아무나 사랑할 수 있는가?
- 아무나 사랑하면 그 사랑을 받아 주는가?
-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니! 놀라운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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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 작성 중
신약성경 요한복음 14장 15절
여기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 좀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한말로 말하면 예수님을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도 우리 구주 되신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는 거기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같이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이게 오늘 말씀의 제목이 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지난 주일에는 주님 제자 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주님 제자 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의 최고의 성공입니다. 오늘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믿는 사람의 최고의 성공입니다. 제자 된다는 말은 우리의 소망이고 목표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 면을 말씀하신 겁니다. 한번 더 해보시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성경 한 군데 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찬송가 제일 앞장 십계명 밑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22장 35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많은 가르침을 하셨는데 어느날 율법사라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의 법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와서 주님을 시험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 많은 율법이 기록 됬는데 그 많은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 어느 말씀이 크고 가장 중요한 말씀이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라고 뜻을 다하여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두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두 계명이 온 율법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전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와서 가르치고 행한 전부는 바로 이 두 가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게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강령이다 말은 중심이라 말이고 벼리줄이라 말입니다. 한말로 말하면 이 대답은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가르침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의 모든 가르침과 생활의 전부는 한말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사랑이라 그말 입니다.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하나님 사랑 인간사랑. 그래서 여기 본문에 말씀하신 것은 성경 전부는 한말로 말하면 사랑하라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말 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되 얼마나 사랑하며 어떻게 사랑해야 됩니까, 네가 가진 것 네 마음을 남김없이 다하고 네 목숨까지 다하고 네 뜻을 전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도 그리 사랑하라 그리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짼데 그 사랑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했습니다. 남은게 있겠습니까 다라는 말은 전부 다라는 뜻이죠. 내 가진 마음을 하나님 사랑에 다 드렸고 네 힘을 뜻을 성품을 하나님 사랑에 다 드렸습니다. 두번째는 누구를 사랑하라고요 이웃을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데 사람 사랑함에 남은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 사랑에 다 드렸으니까 사람을 사랑할 마음이 없고 힘이 없고 뜻이 없고 목숨이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됩니까? 하나님 사랑에 다 드렸는데 이웃을 무엇으로 어떻게 사랑합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정상이고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의미는 하나님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저절로 되는것이라 그말이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 사랑과 인간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사랑은 반드시 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거짓이다 잘못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과 인간사랑은 하나지 뗄수 없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리하면 하나님 사랑에 인간사랑이 들어있고 하나님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필연이다 그말입니다. 인간사랑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로 그 원동이 그 원인이 하나님 사랑이 되야 참 인간사랑이 되어집니다.
세상에는 사랑이 많은데 사랑의 종류는 우리는 크게 배워서 크게 말하면 두종류가 있어서 또 시간이 지나서 공부해 볼 필요가 있는지요 사랑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사랑 하나는 인간사랑 그리 말하는데 두종류란 말은 사랑의 종류란 뜻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저절로 된다는 요 말씀의 각도와 달리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나님 없이 인간이 사랑하는 사랑은 틀려서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 사랑은 크게 말하면 세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혈육적인 사랑이 있고 또 하나는 이성적인 사랑이 있고 정욕적인 사랑 세번째는 동료적인 사랑이 있다 그리 말합니다. 이 세 사랑은 인간사랑이고 이 세사랑 인간사랑은 다 죽고 죽이는 사랑이고 속고 속이는 사랑들입니다. 다 가짜 사랑이고 하나님 사랑만이 참 사랑이고 진정한 사랑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때도 부부가 사랑하는 그 사랑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도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그 사랑도 형제끼리 사랑도 이웃 사랑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원인은 뿌리는 근본은 하나님 사랑에서 나와야 된다는 것을 꼭 기억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간사랑은 다 속고 속이며 죽고 죽이는 거짓사랑 가짜 사랑이 되게 되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을 최고의 법으로 말씀합니다. 성경 전부는 한말로 말하면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은 최고의 법이고 율법사가 물어보기를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크고 작고가 아니고 전부다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는 한말로 말하면 사랑이고 그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그 속에 들어있고 인간을 사랑하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고 그러므로 믿는 우리의 주력할 일은 한말로 말하면 사랑이고 나누면 하난데 알기 쉽게 나누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힘쓸 전부다 사랑은 바로 우리가 노력하고 주력하는 구원이 바로 사랑이고 하나님과 이웃사랑을 온전히 이루면 그 사람은 구원이 완성되어진 사람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성경은 사랑을 말하고 있고 최고의 법이 사랑이고 믿는 사람이 가장 힘쓰고 주력할 일이 사랑인데,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먼저 사랑이란 이 용어 사랑이라는 이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인격과 인격의 관계에서 인격은 사람이 중심이고 그 사람의 원형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라는 표현 사랑이라는 용어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사랑 좋은 말이 아닌가요, 전부 사랑을 외치고 있는데 좋은말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뜻이 멉니까, 젊은 청춘 남녀들이 여기 더러 많을건데 사랑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랑은 무엇이 사랑인가요, 사랑의 뜻 사랑이라는 표현은 무엇인가, 사랑이란 인격과 인격, 사람과 사람사이에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가 사랑이라는 표현이고 사랑이라는 관계입니다. 어디든지 사랑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면 그보다 더 친밀할 수는 없고 더 가까울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고 이게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사랑이란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자기 가진 것을 그를 위해서 주는겁니다. 물질을 주고 보살펴주고 아껴주고 위해주고 자기마음을 주고 정을 주고 이래 주는 것이 사랑이라 상대방을 잘 되도록 복되도록 성공되도록 위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의 기본이라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기억하고 그러면 주님을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데 주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하나님은 완전자라 그럽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완전이란 말은 흠과 점이 없다는 뜻입니다. 각이 세개면 이름이 머라고 그럽니까, 도형에서 각이 세개면 이름이 머라그럽니까, 삼각형이라 삼각이라 그럽니다. 각이 네개면요, 각이 여덟개이면요, 각이 서른두개면요 각이 많을수록 점점 어디에 가깝습니까, 각이 많을수록 동그란 원에 가깝습니다. 동그란 원이 되면 각이 몇 개입니까, 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표현하자면 각이 하나도 없으면 원이라는 것은 일종의 완전의 표시로 볼수 있습니다. 유한한 세개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원은 각이 없습니다. 또 원이 되면 뭐가 없습니까, 벌어진 틈이 없죠, 원이 되면은 꽉 찼습니다. 양쪽이 붙었습니다. 선이 딱 붙어서 틈이 없는게 원입니다. 완전자라는 말은 요렇게 각이 없고 너무 많아졌다는 그뜻도 될수 있습니다. 틈이 없는게 완전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 입니다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분은 모자라는게 없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모르는게 없습니다. 전지전능입니다. 완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뭐야 사랑이란 친밀하면서 상대방에게 내 가진 것을 어떤 형태로든 주는겁니다. 보살펴주고 위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잘되게 해주는게 사랑인데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려면 내가 가진 먼가를 주님에게 드려서 주님이 받아서 보다 더 낫아지고 좋아져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겠는데 주님은 완전자라서 내것을 주님이 받으실수가 없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가진 먼가를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서 줄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경우의 사랑을 약자의 강자사랑이라 그리 표현하는데 약자의 강자사랑은 어떻게 하는게 사랑이냐 강자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을 받는 것이 사랑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갓난아기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 젓먹이 갓난아기가 어머니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갓난아기는 어머니 위해서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갓난아기가 어머니에게 줄수 있는거 어머니 위하는거 어머니 좋게하는거 어머니 기쁘게 하는 것은 자기가 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기쁘게 할수 있습니까, 갓난아기는 갓난아기는 어머니를 좋게 기쁘게 만족하게 편안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랑을 다 받으면 됩니다. 어머니가 젖주면 젖먹고 어머니가 엎으면 엎히고 어머니가 안아주면 안기고 또 어머니가 토닥거리면 기쁘게 잘자고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해서 먹을거주고 입을거 주고 재워주고 보살펴주고 보호해 주는 그 사랑을 갓난아기가 다 받으면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랑이 되어지는 것이 되는 겁니다.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갓난아기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요, 어머니의 사랑을 다 받아드리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다 받아드리면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님은 완전자고 창조주고 우리는 불완전하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내가 먼가를 드려서 주님에게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주의 날 사랑하신 사랑을 내가 다 받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사랑을 받으려면 주님 사랑을 받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되는것인가 두가지 입니다. 주님 사랑 받는방법은 하나는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장 21절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말씀을 하셨고 15절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이라 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는것이고 내가 주님 사랑 받는방법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첫째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겁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을 사랑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걸 다시 한번 정리해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첫째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방법은 주의 사랑을 받는거 두번째 주의 사랑을 받으므로 주님 사랑하는 첫번째는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계명을 지키되 주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을 지켜야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되 계명을 지키되 예수 잘 믿고 말씀순종해서 하나님 복을 받기위해서 계명지키는 것도 좋은 것이나 주님을 사랑함은 아닙니다. 계명을 어기면 죄가 되니깐 두려워서 계명지키는 것도 좋은것이지마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두번째는 다시 말하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첫번째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계명을 지키되 그 동기나 목적이나 원동이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하니까 주님에게 점점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사랑은 그리움이고 사랑은 사모고 사랑은 생각이고 사랑은 친근이고 사랑은 희생이고 이런게 사랑의 작용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니까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그리워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내가 주님을 위할수 없지만은 그래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방법으로 먼가 주를 위해서 해 드릴수 있는 것이 없을까를 생각하며 주를 위해서 자기를 바쳐드려 희생하는 요 동기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의 계명을 지키는게 주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주를 사랑하는 것이고 세번째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을 사랑하는 겁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여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세번째 말씀하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근심이 되서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메 내 마음도 아실것이고 내 중심도 아시고 내 모든 것을 아시는데 내가 주를 진정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어린양 먹이고 중간양 먹이고 장성한 양을 먹이고 양을 먹이라 주님의 양이 무엇입니까, 몇마리입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양은 대관령 목장에 가면 있습니까, 아니면 저 스위스에 가면 있습니까, 미국의 넓은 들판에 가야 있습니까, 주님 양은 몇마리나 됩니까, 주님양이 무엇입니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주님의 양은 주님이 피로 구속하신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구속하신 우리 주변에 있는 믿는 형제들 사람이 바로 주님의 양이니까 그들을 먹이는 것은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겁니다.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들이 다른 사람 되어지도록 도와주는 그런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의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나와 관련된 내 범위에 주어진 여러 형태 여러 종류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보는바 형제를 사람을 사랑치 않은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성경은 사랑을 최고의 법으로 말씀합니다. 율법중에 무엇이 가장 큽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까지 다하고 내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사랑 인간을 사랑해라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고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되 그 사랑의 뿌리가 주남을 생각하고 주님을 염두해두고 주를 사람함으로 사람을 사랑해야 그게 참된 사랑이 되어지는 것이다. 주님 사랑함이 없이 인간끼리만 사랑하면 그 사람은 생명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 사랑은 마지막에 가면 죽음이 되어지게 되고 말라버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속고 속이게 되는 것이 되어져 버리고 마는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이 뿌리가 되고 근본이 되고 원동이 되어가지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게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끼리의 모든 사랑 이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관계의 가장 친밀한 것인데 이 사랑의 원동 뿌리 뿌리란 것은 모든 것이 줄기의 근본 또 둥치의 근본 가지의 근본 꽃의 근본 잎사귀의 근본 열매의 근본은 다 뿌리입니다. 뿌리에서 뿌리가 있어서 뿌리에서 싹이나서 둥치도 되고 가지도 되고 잎사귀도 맺히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다 그리하는 겁니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는 죽은겁니다. 이게 자식의 자녀의 뿌리는 부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불효하는 것은 자기 뿌리를 끊는 것입니다. 함이 창세기 9장에 함이 아버지 노아의 부끄러운 일을 드러냈습니다. 가리지 아니하고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뿌리를 밖으로 드러내는 겁니다. 뿌리는 땅속에 뭍혀야 됩니다. 흙속에 뭍혀야 되는데 그 뿌리를 드러내 버리면 햇빛에 말라서 뿌리가 마르면 아무리 큰 둥치가지도 다 죽고 맙니다. 말라죽고 맙니다 부모의 수치는 자식들은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해야됩니다 내가 욕을 먹고 내가 짐을 대신 지고 내가 방패막이가 되도 부모님에게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이 부모의 기본입니다. 부모는 자기의 뿌리입니다. 모든 사랑의 뿌리는 주님사랑이 되야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내가 사랑 부부가 서로 사랑 하는것도 하나님 사랑이 원인이 되야됩니다. 남편이 아내사랑하는 그 사랑도 하나님 사랑에서 나와야 그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되어집니다. 아내가 남편 사랑하는것도 하나님 사랑에서 나와야 진정한 사랑이 되어집니다. 좀 밖에 나와서 이야기하면 부부사랑의 거기서 나온 것이 자녀사랑이 되야됩니다. 아들이 나면 어머니가 사랑하고 딸이 나면 아버지가 사랑합니다. 그것도 속에 들어가보면 묘한 원죄성이 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좋아하고 딸은 아버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데 어떻게든 가족이니깐 아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원동은 어디서 나와야 됩니까, 아내가 아들이나 딸이나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무엇이 원인이 되야됩니까, 남편사랑이 원인이 되야됩니다. 남편이 아들 딸을 사랑하는 원인은 아내사랑이 원인이 되야됩니다. 남편사랑없이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틀린사랑입니다. 대단히 위험천만한 사랑입니다. 아내사랑없이 자녀사랑하는 그 사랑도 위험천만한 사랑이라서 이런 사랑의 뿌리를 모르니까 가정의 여려가지 어려움이 자녀 양육과 교육 때문에 많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요 근본을 알면 자녀양육 자녀교육 때문에 가정이 파탄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부부사랑은 아내의 남편사랑 남편의 아내사람 원인은 하나님에게서 나와야 됩니다. 인간은 조속변이라 그럽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10년이면 인간은 굉장히 변합니다. 사람의 신용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직을 믿지말아라 사람의 신용을 믿지마라 사람을 믿지마라 왜 사람을 믿을 수 없는가 사람이란 것은 환경에 절대적으로 영향 받는 것이 사람입니다. 환경을 벗어날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리 정직한 사람도 신용있는 사람도 환경이 그 사람을 몰아붙이면 가진 정직과 신용이 어지간하면 다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경에 피동되지 아니하고 영향받지 아니하고 자기 인격을 지키고 자기라는 사람의 가져야 될 기본적인 것을 지킨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인물이고 그런데 신앙생활의 기본은 환경은 이기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며 아주 본질입니다. 환경의 산물이 되고 환경에 피동 되면 신앙생활은 판판히 지고 마는 것입니다 부부사랑의 원동은 아내가 남편사랑하는 그 사랑의 원인이 뭐냐 우리 남편은 얼굴이 잘생겨서 인물이 좋아서 미남이라서 박력있고 힘이 있어서 우리 남편이 직장이 좋고 돈을 잘 벌어서 그래서 나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인물도 좋고 박력도 좋고 실력도 있고 돈도 많고 직장도 좋고 그래서 우리 남편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은 인물이라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늙어서 흉해지게 마련이고 돈이라는 것은 세월속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힘은 나이들면 빠지게 되는 것이고 직장도 나이 들고 시간지나면 없어질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 때문에 사랑하면 그 사랑은 언제 변할지 모릅니다. 남편의 아내 사랑은 우리 아내는 미인이라서 애교가 넘쳐서 마음이 좋아서 어떻게 되서 그 사랑도 전부다 변합니다. 미인도 변하고 애교도 변하고 그 어질고 좋은 마음도 얼마든지 변할수 있는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부사랑의 원인이 하나님으로 인해 사랑하면 그분은 불변자입니다. 변하지를 않습니다. 결혼해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데 처음에는 몰랐고 시간지나가면 좋은것도 있겠지마는 나이가 들면 인물도 못나고 힘도 빠져나가고 병도 들고 돈도 다 없어지고 이러니깐 귀찮으니깐 요즘시대가 그래 힘들면 혼자살기 힘들면 남편데리고 살기 힘들면 요즘은 고만 이핑계 저핑계대서 갈라 섰버립니다.도망처버립니다. 그러면 그것이 남편이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자세도 그렇고 생활도 그러니까 남편을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 남편 아내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변질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데 그 아내가 병이들고 박색이 되어져버리고 아주 못쓸 아내가 되어져 버리니까 남편이 짐이 되니까 아내를 버리고 그만 이혼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남편의 아내 사랑도 각자 사랑입니다. 거짓 사랑입니다. 성경은 결혼할 때 서약은 기쁠때나 슬플때나 즐거울때나 괴로울때나 병들거나 어떨때에도 죽기 전에는 남편을 사랑하겠느뇨 아내를 사랑하겠느뇨 서약을 여러증인 사람들 앞에서 하고도 다 잊어버리고 형편되면 다 변질이 되어져버립니다. 그 사랑의 원동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부부를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식을 사랑하면 부모를 사랑하면 그 사랑은 어떤 환경이 몰아쳐도 그 사랑은 변할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힘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줄수 없고 어떻게 줄수 없어도 그래도 내 마음은 할수 있는 노력은 사랑함으로 변하지 않는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그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원동되고 뿌리되는 거기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있는 남편만나고 신앙있는 아내 만나면 그게 최고의 보물입니다. 그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는데 그런데 이런 사실을 처녀 총각들은 99.9%는 모르고 결혼할때는 전부 눈에 콩깍지가 껴서 처녀들은 하나같이 백마탄 왕자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고 총각들은 하나같이 전부 백설공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착각이 심하고 여러가지 부작용이 많이 생기고 그래가지고 결혼하니까 대게는 전부 속아서 결혼합니다. 다 속아서 결혼하고 뒤에가서 보니까 내가 속았다 그러는데 네가 속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너도 상대방을 속였고 네 눈이 그러니까 네 욕심이 그러니까 네값을 네가 받는것이다, 옛날부터 한동네 안에서 아는 사람끼리 결혼하는게 그리 어렵다. 멀 얼마나 해야 한동네 혼사한다. 그쨋든 신앙있는 사람과 결혼하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는 최고의 보물을 가진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여인과 결혼하는 남자는 최고의 보물을 가진것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를 만났다면 자녀는 최고의 보물을 최고의 부모를 만난거죠. 그 부모가 다리가 하나 없던지 팔이 하나 없던지 눈이 하나 없던지 얼굴이 못났던지 돈을 못 벌든 어쨌든 하나님을 사랑할줄 아는 부모를 만났다면 그 자녀는 최고의 부모를 만난겁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을 사랑하는 이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되 주로 인한 사랑인 동시에 사랑은 사람의 대상을 가리지를 아니합니다. 너희가 잔치를 베풀어서 사람을 초대하려거든 어떤 사람을 초대하느냐 길거리에 나가서 거지들, 몸 한쪽이 잘못된 그런 장애인들, 또 너하고 거리가 먼사람들 그런사람을 불러다가 너가 대접을 해라. 그래야 그 사람들이 너를 다시 대접해서 너 대접한 것을 갚지 못하니깐 상급이 쌓인다. 너가 대접을 하되 돈 있는사람 잘란사람을 대접하면 너는 100원까지 대접을 했는데 상대방이 1000원짜리 대접하면 네가 대접하는 것이 오히려 빚이 되는것이니까 그거는 유익이 없다, 그리 말씀을 하고 네가 사람을 사랑하려면 너와 가까운 사람 너와 모든 것이 맞는 사람 너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마라, 그런 사람 사랑하는 사람은 믿는사람 아니고 예수 안믿는 사람도 다 그리한다, 도둑놈들도 사기꾼들도 살인강도들도 자 기까운 사람은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습니까.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도 자기 좋아하는 사람은 다 사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나와 맞는 사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것이 아니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사랑해라 이것은 완곡한 표현은 아닙니다.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막바로 성경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어쩌라 그랬습니까, 네원수가 주리거든 꼬시다 나하고 벌어지더니 저주받았네, 그거는 안믿는 사람보다 더 악한사람입니다. 내 원수가 밥을 굶고 앉았거든 너 먹을거 갔다가 너가 굶어도 갔다 먹여라 내 원수가 목이 말라하거든 물을 떠다 갔다 먹여주라. 상대방이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고 말이 있잖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성경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외식입니다. 하나님 사랑한다 하면서 사람사랑을 이걸 구별하고 가리는것도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외식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고 모든 만물도 사랑하고 이것이 참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시 복습합니다. 마태복음 22장은 성경 전체는 한 말로 말하면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 중 어느 계명이 큽니까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해라 전부 다들 사랑하라 하나님은 완전자인데 어떻게 사랑합니까, 그분의 사랑을 받아라, 그분 사랑을 받는 것이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분 사랑을 어떻게 받습니까, 두가지다 그의 계명을 지키고 사람을 사랑해라,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주의 계명을 지키되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주님 사랑하는 그 동기 목적으로 그 중심으로 계명 지키고 사람을 사랑하되 주를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라, 그리고 사람 사랑의 사랑을 차별하지 말아라,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해라, 이게 성경이 말씀하신 사랑이고 이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그 결과는 어찌되느냐, 본문을 정리해보면 네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첫째 성령이 그와 함께 하신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니까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두번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습니다.
세번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와 동거동행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를 통해서 나타내신다고 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 생각이 나기를 사랑이라는 것은 참 좋은것인데 그런데 사랑을 하되 아무나 사랑할 수 있는가 철없는 청소년들이 얼굴에 페인트칠을 해서 아주 얼굴에 몸살을 해서 매끔하게 생긴 미남이 나오니깐 철없는 여중생 여고생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사랑한다고 난리를 칩니다. 텔렌트 나오니깐 근데 그 사랑은 짝사랑이지 혼자 사랑이지 상대방에게 가는 사랑이 아닙니다. 니가 왜 나를 사랑해 한때 요즘도 그런가 모르겠습니다. 전화하면 고객님 사랑합니다. 그말 들을 때 좋은 취지겠지마는 왜 당신이 왜 나를 사랑해 사랑이 먼줄이나 알고 그 처녀가 상대방이 처녀나 새댁이나 그럴건데 남자가 전화받는데 고객님 사랑합니다 직업이니까 표현할수 있겠지요. 당신이 왜 나를 사랑해, 당신의 사랑을 내가 왜 받어 아무나 사랑할수 있습니까, 아주 잘생긴 미인을 두고 총각들이 사랑하면 그 상대방 미인이 자존심이 있으면 당신이 왜 나를 사랑해 끔찍하게 징그럽게 나는 그 사랑 못받어 아무나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한다고 받아줍니까,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좀 잘라고 실력있고 고차원의 사람들은 함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짝사랑도 짝사랑이지 마지막 가면 파멸입니다. 그리 될 수 없습니다. 인간사랑도 잘난 사람 함부로 사랑 못 하는데 또 사랑한다고 사랑 받을수도 없는데 받아주지도 않는데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실 내가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이 사실을 영감으로 깨달아봐야 합니다. 내가 만유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니, 주님을 내가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내가 사랑할 수 있다니 그럴 때 내 사랑이 쪽사랑 짝사랑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을 주님이 내 사랑을 받아주시다니 이 사실은 인간 최고의 영광이고 행복이고 놀라운 사실입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이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상대방 대상 되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그토록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랑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주님을 사랑치 않는 못된 우리들이 아닌지 아주 어리석은 우리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이것이 인간 기독자 최고의 행복이며 최고의 영광이며 영광이란 표현보다 최고의 행복이고 만족이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는 것이고 내가 주를 사랑할 수 있다는 이 사실 내가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이 이 사랑을 받아주신다는 이 사실, 이 사실에 감격해서 평생을 주를 향해 사랑 바치는 것이 깨달은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생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주를 사랑함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보고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제목: 주님을 사랑하는 자
1. 최고의 법, 사랑
1)마22:37-40
①율법사의 질문: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②예수님의 대답: 마음 목숨 뜻 다하여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라
③강령되는 계명: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④한말로 말하면: 성경과 선지자의 가르침은 사랑, 하나님과 인간 사랑
2)위의 말씀에서 알아야 할 것
①의문: 하나님 사랑에 ‘다’ 하면 남은 것이 없는데 이웃 사랑은 무엇으로?
②의미: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은 하나라는 말씀
③정리: 하나님 사랑에 인간사랑이 들었고, 하나님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필연
④인간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 원인, 원동, 근본이 되어야 참 사랑
3)최고의 법은 사랑
①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
②주력은: 우리가 주력할 전부는 사랑, 하나님 사랑, 인간 사랑
③사랑은: 바로 구원, 하나님과 이웃 사랑에 온전하면 구원 완성
2.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
1)사랑이란 표현의 의미
①사랑은 인격과 인격의 가장 친밀한, 밀접한 관계
②사랑은 기본적으로 주는 것, 상대방을 위해 물질, 마음, 애정…
2)주님을 사랑하는 방법
①하나님은 완전자, 받으실 수 없는 분
②약자의 강자 사랑은 강자의 사랑을 받는 것
③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
3)주님 사랑을 받음으로 사랑하는 방법은
①계명을 지키는 것
②사람을 사랑하는 것
4)주님 사랑하는 방법을 정리하면
①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
②주님을 사랑함으로 계명 지키는 것(동기 목적 중심, 현실에서)
③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랑하면 상대의 모든 것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필연, 자녀 사랑의 예
사람을 사랑하되 가까운 사람이 아닌 원수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 사랑은 불신자 이방인들도 하는 것)
3. 주님을 사랑한 결과
1)성령이 함께하심
①성령은 보혜사(保惠師)
②성령이 함께하시면 안전, 만족, 전지
2)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
①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받고
②하나님의 관심이 전부 그에게
3)삼위일체 하나님이 동거동행
①완전자와 동거동행 하니 그도 완전
②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
4)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를 통해 나타내심
①내 말, 내 일은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 일
②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주님의 형상, 주님의 모형
4.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행복, 감사
- 사람일지라도 아무나 사랑할 수 있는가?
- 아무나 사랑하면 그 사랑을 받아 주는가?
-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니! 놀라운 사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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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 작성 중
신약성경 요한복음 14장 15절
여기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 좀 어렵습니다. 어려운데 한말로 말하면 예수님을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도 우리 구주 되신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는 거기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같이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이게 오늘 말씀의 제목이 되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지난 주일에는 주님 제자 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생각해 봤습니다. 오늘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주님 제자 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의 최고의 성공입니다. 오늘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믿는 사람의 최고의 성공입니다. 제자 된다는 말은 우리의 소망이고 목표고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주님과 우리의 관계 면을 말씀하신 겁니다. 한번 더 해보시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
성경 한 군데 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찬송가 제일 앞장 십계명 밑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22장 35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많은 가르침을 하셨는데 어느날 율법사라 그러면 성경을 하나님의 법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와서 주님을 시험해서 물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 많은 율법이 기록 됬는데 그 많은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 어느 말씀이 크고 가장 중요한 말씀이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라고 뜻을 다하여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두 계명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이 두 계명이 온 율법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전부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와서 가르치고 행한 전부는 바로 이 두 가지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게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강령이다 말은 중심이라 말이고 벼리줄이라 말입니다. 한말로 말하면 이 대답은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가르침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의 모든 가르침과 생활의 전부는 한말로 말하면 하나님과 인간사랑이라 그말 입니다.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하나님 사랑 인간사랑. 그래서 여기 본문에 말씀하신 것은 성경 전부는 한말로 말하면 사랑하라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말 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되 얼마나 사랑하며 어떻게 사랑해야 됩니까, 네가 가진 것 네 마음을 남김없이 다하고 네 목숨까지 다하고 네 뜻을 전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도 그리 사랑하라 그리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짼데 그 사랑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했습니다. 남은게 있겠습니까 다라는 말은 전부 다라는 뜻이죠. 내 가진 마음을 하나님 사랑에 다 드렸고 네 힘을 뜻을 성품을 하나님 사랑에 다 드렸습니다. 두번째는 누구를 사랑하라고요 이웃을 사람을 사랑해야 되는데 사람 사랑함에 남은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 사랑에 다 드렸으니까 사람을 사랑할 마음이 없고 힘이 없고 뜻이 없고 목숨이 없습니다. 어떻게 사랑해야 됩니까? 하나님 사랑에 다 드렸는데 이웃을 무엇으로 어떻게 사랑합니까?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을 가져보는 것이 정상이고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의미는 하나님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저절로 되는것이라 그말이고 다시 말하면 하나님 사랑과 인간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사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사랑은 반드시 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거짓이다 잘못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사랑과 인간사랑은 하나지 뗄수 없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리하면 하나님 사랑에 인간사랑이 들어있고 하나님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필연이다 그말입니다. 인간사랑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로 그 원동이 그 원인이 하나님 사랑이 되야 참 인간사랑이 되어집니다.
세상에는 사랑이 많은데 사랑의 종류는 우리는 크게 배워서 크게 말하면 두종류가 있어서 또 시간이 지나서 공부해 볼 필요가 있는지요 사랑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사랑 하나는 인간사랑 그리 말하는데 두종류란 말은 사랑의 종류란 뜻입니다. 하나님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저절로 된다는 요 말씀의 각도와 달리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하고 하나님 없이 인간이 사랑하는 사랑은 틀려서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 사랑은 크게 말하면 세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혈육적인 사랑이 있고 또 하나는 이성적인 사랑이 있고 정욕적인 사랑 세번째는 동료적인 사랑이 있다 그리 말합니다. 이 세 사랑은 인간사랑이고 이 세사랑 인간사랑은 다 죽고 죽이는 사랑이고 속고 속이는 사랑들입니다. 다 가짜 사랑이고 하나님 사랑만이 참 사랑이고 진정한 사랑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사랑할때도 부부가 사랑하는 그 사랑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도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그 사랑도 형제끼리 사랑도 이웃 사랑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원인은 뿌리는 근본은 하나님 사랑에서 나와야 된다는 것을 꼭 기억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간사랑은 다 속고 속이며 죽고 죽이는 거짓사랑 가짜 사랑이 되게 되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을 최고의 법으로 말씀합니다. 성경 전부는 한말로 말하면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랑은 최고의 법이고 율법사가 물어보기를 율법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크고 작고가 아니고 전부다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는 한말로 말하면 사랑이고 그 사랑의 대상은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인간사랑은 그 속에 들어있고 인간을 사랑하되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하는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고 그러므로 믿는 우리의 주력할 일은 한말로 말하면 사랑이고 나누면 하난데 알기 쉽게 나누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믿는 사람이 힘쓸 전부다 사랑은 바로 우리가 노력하고 주력하는 구원이 바로 사랑이고 하나님과 이웃사랑을 온전히 이루면 그 사람은 구원이 완성되어진 사람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성경은 사랑을 말하고 있고 최고의 법이 사랑이고 믿는 사람이 가장 힘쓰고 주력할 일이 사랑인데,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먼저 사랑이란 이 용어 사랑이라는 이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사랑이란 인격과 인격의 관계에서 인격은 사람이 중심이고 그 사람의 원형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이라는 표현 사랑이라는 용어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사랑 좋은 말이 아닌가요, 전부 사랑을 외치고 있는데 좋은말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뜻이 멉니까, 젊은 청춘 남녀들이 여기 더러 많을건데 사랑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랑은 무엇이 사랑인가요, 사랑의 뜻 사랑이라는 표현은 무엇인가, 사랑이란 인격과 인격, 사람과 사람사이에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관계가 사랑이라는 표현이고 사랑이라는 관계입니다. 어디든지 사랑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면 그보다 더 친밀할 수는 없고 더 가까울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고 이게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사랑이란 것은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자기 가진 것을 그를 위해서 주는겁니다. 물질을 주고 보살펴주고 아껴주고 위해주고 자기마음을 주고 정을 주고 이래 주는 것이 사랑이라 상대방을 잘 되도록 복되도록 성공되도록 위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의 기본이라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기억하고 그러면 주님을 우리가 사랑해야 되는데 주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될까, 하나님은 완전자라 그럽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완전이란 말은 흠과 점이 없다는 뜻입니다. 각이 세개면 이름이 머라고 그럽니까, 도형에서 각이 세개면 이름이 머라그럽니까, 삼각형이라 삼각이라 그럽니다. 각이 네개면요, 각이 여덟개이면요, 각이 서른두개면요 각이 많을수록 점점 어디에 가깝습니까, 각이 많을수록 동그란 원에 가깝습니다. 동그란 원이 되면 각이 몇 개입니까, 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표현하자면 각이 하나도 없으면 원이라는 것은 일종의 완전의 표시로 볼수 있습니다. 유한한 세개에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겁니다. 원은 각이 없습니다. 또 원이 되면 뭐가 없습니까, 벌어진 틈이 없죠, 원이 되면은 꽉 찼습니다. 양쪽이 붙었습니다. 선이 딱 붙어서 틈이 없는게 원입니다. 완전자라는 말은 요렇게 각이 없고 너무 많아졌다는 그뜻도 될수 있습니다. 틈이 없는게 완전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 입니다 완전자시기 때문에 그분은 모자라는게 없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모르는게 없습니다. 전지전능입니다. 완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뭐야 사랑이란 친밀하면서 상대방에게 내 가진 것을 어떤 형태로든 주는겁니다. 보살펴주고 위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주고 잘되게 해주는게 사랑인데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려면 내가 가진 먼가를 주님에게 드려서 주님이 받아서 보다 더 낫아지고 좋아져야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겠는데 주님은 완전자라서 내것을 주님이 받으실수가 없는 분이 주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가진 먼가를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서 줄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런경우의 사랑을 약자의 강자사랑이라 그리 표현하는데 약자의 강자사랑은 어떻게 하는게 사랑이냐 강자가 나를 사랑하는 사랑을 받는 것이 사랑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갓난아기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 젓먹이 갓난아기가 어머니를 사랑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갓난아기는 어머니 위해서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갓난아기가 어머니에게 줄수 있는거 어머니 위하는거 어머니 좋게하는거 어머니 기쁘게 하는 것은 자기가 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기쁘게 할수 있습니까, 갓난아기는 갓난아기는 어머니를 좋게 기쁘게 만족하게 편안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머니가 사랑하는 사랑을 다 받으면 됩니다. 어머니가 젖주면 젖먹고 어머니가 엎으면 엎히고 어머니가 안아주면 안기고 또 어머니가 토닥거리면 기쁘게 잘자고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해서 먹을거주고 입을거 주고 재워주고 보살펴주고 보호해 주는 그 사랑을 갓난아기가 다 받으면 어머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랑이 되어지는 것이 되는 겁니다.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갓난아기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이라고요, 어머니의 사랑을 다 받아드리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이 날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다 받아드리면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주님은 완전자고 창조주고 우리는 불완전하고 우리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내가 먼가를 드려서 주님에게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주의 날 사랑하신 사랑을 내가 다 받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사랑을 받으려면 주님 사랑을 받는 방법은 어떻게 하면 되는것인가 두가지 입니다. 주님 사랑 받는방법은 하나는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요한복음 14장 21절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 말씀을 하셨고 15절에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이라 했습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는것이고 내가 주님 사랑 받는방법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첫째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두번째는 사람을 사랑하는 겁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을 사랑하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걸 다시 한번 정리해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첫째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방법은 주의 사랑을 받는거 두번째 주의 사랑을 받으므로 주님 사랑하는 첫번째는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계명을 지키되 주님을 사랑함으로 계명을 지켜야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되 계명을 지키되 예수 잘 믿고 말씀순종해서 하나님 복을 받기위해서 계명지키는 것도 좋은 것이나 주님을 사랑함은 아닙니다. 계명을 어기면 죄가 되니깐 두려워서 계명지키는 것도 좋은것이지마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두번째는 다시 말하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첫번째는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계명을 지키되 그 동기나 목적이나 원동이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하니까 주님에게 점점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사랑은 그리움이고 사랑은 사모고 사랑은 생각이고 사랑은 친근이고 사랑은 희생이고 이런게 사랑의 작용입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니까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을 그리워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내가 주님을 위할수 없지만은 그래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 방법으로 먼가 주를 위해서 해 드릴수 있는 것이 없을까를 생각하며 주를 위해서 자기를 바쳐드려 희생하는 요 동기 목적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의 계명을 지키는게 주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주를 사랑하는 것이고 세번째는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을 사랑하는 겁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여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치라 세번째 말씀하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근심이 되서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메 내 마음도 아실것이고 내 중심도 아시고 내 모든 것을 아시는데 내가 주를 진정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어린양 먹이고 중간양 먹이고 장성한 양을 먹이고 양을 먹이라 주님의 양이 무엇입니까, 몇마리입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양은 대관령 목장에 가면 있습니까, 아니면 저 스위스에 가면 있습니까, 미국의 넓은 들판에 가야 있습니까, 주님 양은 몇마리나 됩니까, 주님양이 무엇입니까,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주님의 양은 주님이 피로 구속하신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구속하신 우리 주변에 있는 믿는 형제들 사람이 바로 주님의 양이니까 그들을 먹이는 것은 그들에게 힘을 주는 겁니다. 그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들이 다른 사람 되어지도록 도와주는 그런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의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나와 관련된 내 범위에 주어진 여러 형태 여러 종류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보는바 형제를 사람을 사랑치 않은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성경은 사랑을 최고의 법으로 말씀합니다. 율법중에 무엇이 가장 큽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까지 다하고 내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웃사랑 인간을 사랑해라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전부고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되 그 사랑의 뿌리가 주남을 생각하고 주님을 염두해두고 주를 사람함으로 사람을 사랑해야 그게 참된 사랑이 되어지는 것이다. 주님 사랑함이 없이 인간끼리만 사랑하면 그 사람은 생명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 사랑은 마지막에 가면 죽음이 되어지게 되고 말라버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속고 속이게 되는 것이 되어져 버리고 마는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이 뿌리가 되고 근본이 되고 원동이 되어가지고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게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끼리의 모든 사랑 이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관계의 가장 친밀한 것인데 이 사랑의 원동 뿌리 뿌리란 것은 모든 것이 줄기의 근본 또 둥치의 근본 가지의 근본 꽃의 근본 잎사귀의 근본 열매의 근본은 다 뿌리입니다. 뿌리에서 뿌리가 있어서 뿌리에서 싹이나서 둥치도 되고 가지도 되고 잎사귀도 맺히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다 그리하는 겁니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는 죽은겁니다. 이게 자식의 자녀의 뿌리는 부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불효하는 것은 자기 뿌리를 끊는 것입니다. 함이 창세기 9장에 함이 아버지 노아의 부끄러운 일을 드러냈습니다. 가리지 아니하고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뿌리를 밖으로 드러내는 겁니다. 뿌리는 땅속에 뭍혀야 됩니다. 흙속에 뭍혀야 되는데 그 뿌리를 드러내 버리면 햇빛에 말라서 뿌리가 마르면 아무리 큰 둥치가지도 다 죽고 맙니다. 말라죽고 맙니다 부모의 수치는 자식들은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해야됩니다 내가 욕을 먹고 내가 짐을 대신 지고 내가 방패막이가 되도 부모님에게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하는 것이 부모의 기본입니다. 부모는 자기의 뿌리입니다. 모든 사랑의 뿌리는 주님사랑이 되야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내가 사랑 부부가 서로 사랑 하는것도 하나님 사랑이 원인이 되야됩니다. 남편이 아내사랑하는 그 사랑도 하나님 사랑에서 나와야 그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되어집니다. 아내가 남편 사랑하는것도 하나님 사랑에서 나와야 진정한 사랑이 되어집니다. 좀 밖에 나와서 이야기하면 부부사랑의 거기서 나온 것이 자녀사랑이 되야됩니다. 아들이 나면 어머니가 사랑하고 딸이 나면 아버지가 사랑합니다. 그것도 속에 들어가보면 묘한 원죄성이 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좋아하고 딸은 아버지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데 어떻게든 가족이니깐 아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원동은 어디서 나와야 됩니까, 아내가 아들이나 딸이나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무엇이 원인이 되야됩니까, 남편사랑이 원인이 되야됩니다. 남편이 아들 딸을 사랑하는 원인은 아내사랑이 원인이 되야됩니다. 남편사랑없이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틀린사랑입니다. 대단히 위험천만한 사랑입니다. 아내사랑없이 자녀사랑하는 그 사랑도 위험천만한 사랑이라서 이런 사랑의 뿌리를 모르니까 가정의 여려가지 어려움이 자녀 양육과 교육 때문에 많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요 근본을 알면 자녀양육 자녀교육 때문에 가정이 파탄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부부사랑은 아내의 남편사랑 남편의 아내사람 원인은 하나님에게서 나와야 됩니다. 인간은 조속변이라 그럽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고 10년이면 인간은 굉장히 변합니다. 사람의 신용이라는 것은 사람의 정직을 믿지말아라 사람의 신용을 믿지마라 사람을 믿지마라 왜 사람을 믿을 수 없는가 사람이란 것은 환경에 절대적으로 영향 받는 것이 사람입니다. 환경을 벗어날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아무리 정직한 사람도 신용있는 사람도 환경이 그 사람을 몰아붙이면 가진 정직과 신용이 어지간하면 다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환경에 피동되지 아니하고 영향받지 아니하고 자기 인격을 지키고 자기라는 사람의 가져야 될 기본적인 것을 지킨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인물이고 그런데 신앙생활의 기본은 환경은 이기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며 아주 본질입니다. 환경의 산물이 되고 환경에 피동 되면 신앙생활은 판판히 지고 마는 것입니다 부부사랑의 원동은 아내가 남편사랑하는 그 사랑의 원인이 뭐냐 우리 남편은 얼굴이 잘생겨서 인물이 좋아서 미남이라서 박력있고 힘이 있어서 우리 남편이 직장이 좋고 돈을 잘 벌어서 그래서 나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인물도 좋고 박력도 좋고 실력도 있고 돈도 많고 직장도 좋고 그래서 우리 남편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은 인물이라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 늙어서 흉해지게 마련이고 돈이라는 것은 세월속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힘은 나이들면 빠지게 되는 것이고 직장도 나이 들고 시간지나면 없어질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 때문에 사랑하면 그 사랑은 언제 변할지 모릅니다. 남편의 아내 사랑은 우리 아내는 미인이라서 애교가 넘쳐서 마음이 좋아서 어떻게 되서 그 사랑도 전부다 변합니다. 미인도 변하고 애교도 변하고 그 어질고 좋은 마음도 얼마든지 변할수 있는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부사랑의 원인이 하나님으로 인해 사랑하면 그분은 불변자입니다. 변하지를 않습니다. 결혼해서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데 처음에는 몰랐고 시간지나가면 좋은것도 있겠지마는 나이가 들면 인물도 못나고 힘도 빠져나가고 병도 들고 돈도 다 없어지고 이러니깐 귀찮으니깐 요즘시대가 그래 힘들면 혼자살기 힘들면 남편데리고 살기 힘들면 요즘은 고만 이핑계 저핑계대서 갈라 섰버립니다.도망처버립니다. 그러면 그것이 남편이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자세도 그렇고 생활도 그러니까 남편을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 남편 아내 사랑은 하나님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 변질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데 그 아내가 병이들고 박색이 되어져버리고 아주 못쓸 아내가 되어져 버리니까 남편이 짐이 되니까 아내를 버리고 그만 이혼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남편의 아내 사랑도 각자 사랑입니다. 거짓 사랑입니다. 성경은 결혼할 때 서약은 기쁠때나 슬플때나 즐거울때나 괴로울때나 병들거나 어떨때에도 죽기 전에는 남편을 사랑하겠느뇨 아내를 사랑하겠느뇨 서약을 여러증인 사람들 앞에서 하고도 다 잊어버리고 형편되면 다 변질이 되어져버립니다. 그 사랑의 원동이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부부를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식을 사랑하면 부모를 사랑하면 그 사랑은 어떤 환경이 몰아쳐도 그 사랑은 변할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힘이 없어서 가진 것이 없어서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줄수 없고 어떻게 줄수 없어도 그래도 내 마음은 할수 있는 노력은 사랑함으로 변하지 않는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그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원동되고 뿌리되는 거기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있는 남편만나고 신앙있는 아내 만나면 그게 최고의 보물입니다. 그보다 더 귀한 보물은 없는데 그런데 이런 사실을 처녀 총각들은 99.9%는 모르고 결혼할때는 전부 눈에 콩깍지가 껴서 처녀들은 하나같이 백마탄 왕자를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고 총각들은 하나같이 전부 백설공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착각이 심하고 여러가지 부작용이 많이 생기고 그래가지고 결혼하니까 대게는 전부 속아서 결혼합니다. 다 속아서 결혼하고 뒤에가서 보니까 내가 속았다 그러는데 네가 속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너도 상대방을 속였고 네 눈이 그러니까 네 욕심이 그러니까 네값을 네가 받는것이다, 옛날부터 한동네 안에서 아는 사람끼리 결혼하는게 그리 어렵다. 멀 얼마나 해야 한동네 혼사한다. 그쨋든 신앙있는 사람과 결혼하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는 최고의 보물을 가진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여인과 결혼하는 남자는 최고의 보물을 가진것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부모를 만났다면 자녀는 최고의 보물을 최고의 부모를 만난거죠. 그 부모가 다리가 하나 없던지 팔이 하나 없던지 눈이 하나 없던지 얼굴이 못났던지 돈을 못 벌든 어쨌든 하나님을 사랑할줄 아는 부모를 만났다면 그 자녀는 최고의 부모를 만난겁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랑을 사랑하는 이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되 주로 인한 사랑인 동시에 사랑은 사람의 대상을 가리지를 아니합니다. 너희가 잔치를 베풀어서 사람을 초대하려거든 어떤 사람을 초대하느냐 길거리에 나가서 거지들, 몸 한쪽이 잘못된 그런 장애인들, 또 너하고 거리가 먼사람들 그런사람을 불러다가 너가 대접을 해라. 그래야 그 사람들이 너를 다시 대접해서 너 대접한 것을 갚지 못하니깐 상급이 쌓인다. 너가 대접을 하되 돈 있는사람 잘란사람을 대접하면 너는 100원까지 대접을 했는데 상대방이 1000원짜리 대접하면 네가 대접하는 것이 오히려 빚이 되는것이니까 그거는 유익이 없다, 그리 말씀을 하고 네가 사람을 사랑하려면 너와 가까운 사람 너와 모든 것이 맞는 사람 너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마라, 그런 사람 사랑하는 사람은 믿는사람 아니고 예수 안믿는 사람도 다 그리한다, 도둑놈들도 사기꾼들도 살인강도들도 자 기까운 사람은 사랑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습니까.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안믿는 사람들도 자기 좋아하는 사람은 다 사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나와 맞는 사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것이 아니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너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사랑해라 이것은 완곡한 표현은 아닙니다.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막바로 성경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어쩌라 그랬습니까, 네원수가 주리거든 꼬시다 나하고 벌어지더니 저주받았네, 그거는 안믿는 사람보다 더 악한사람입니다. 내 원수가 밥을 굶고 앉았거든 너 먹을거 갔다가 너가 굶어도 갔다 먹여라 내 원수가 목이 말라하거든 물을 떠다 갔다 먹여주라. 상대방이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고 말이 있잖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 성경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외식입니다. 하나님 사랑한다 하면서 사람사랑을 이걸 구별하고 가리는것도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외식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고 모든 만물도 사랑하고 이것이 참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다시 복습합니다. 마태복음 22장은 성경 전체는 한 말로 말하면 사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율법 중 어느 계명이 큽니까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해라 전부 다들 사랑하라 하나님은 완전자인데 어떻게 사랑합니까, 그분의 사랑을 받아라, 그분 사랑을 받는 것이 그 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분 사랑을 어떻게 받습니까, 두가지다 그의 계명을 지키고 사람을 사랑해라, 이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주의 계명을 지키되 어떻게 지켜야 합니까, 주님 사랑하는 그 동기 목적으로 그 중심으로 계명 지키고 사람을 사랑하되 주를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하라, 그리고 사람 사랑의 사랑을 차별하지 말아라,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해라, 이게 성경이 말씀하신 사랑이고 이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그 결과는 어찌되느냐, 본문을 정리해보면 네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첫째 성령이 그와 함께 하신다 성령은 보혜사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니까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두번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습니다.
세번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그와 동거동행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은 그를 통해서 나타내신다고 했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 생각이 나기를 사랑이라는 것은 참 좋은것인데 그런데 사랑을 하되 아무나 사랑할 수 있는가 철없는 청소년들이 얼굴에 페인트칠을 해서 아주 얼굴에 몸살을 해서 매끔하게 생긴 미남이 나오니깐 철없는 여중생 여고생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사랑한다고 난리를 칩니다. 텔렌트 나오니깐 근데 그 사랑은 짝사랑이지 혼자 사랑이지 상대방에게 가는 사랑이 아닙니다. 니가 왜 나를 사랑해 한때 요즘도 그런가 모르겠습니다. 전화하면 고객님 사랑합니다. 그말 들을 때 좋은 취지겠지마는 왜 당신이 왜 나를 사랑해 사랑이 먼줄이나 알고 그 처녀가 상대방이 처녀나 새댁이나 그럴건데 남자가 전화받는데 고객님 사랑합니다 직업이니까 표현할수 있겠지요. 당신이 왜 나를 사랑해, 당신의 사랑을 내가 왜 받어 아무나 사랑할수 있습니까, 아주 잘생긴 미인을 두고 총각들이 사랑하면 그 상대방 미인이 자존심이 있으면 당신이 왜 나를 사랑해 끔찍하게 징그럽게 나는 그 사랑 못받어 아무나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한다고 받아줍니까,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좀 잘라고 실력있고 고차원의 사람들은 함부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짝사랑도 짝사랑이지 마지막 가면 파멸입니다. 그리 될 수 없습니다. 인간사랑도 잘난 사람 함부로 사랑 못 하는데 또 사랑한다고 사랑 받을수도 없는데 받아주지도 않는데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실 내가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이 사실을 영감으로 깨달아봐야 합니다. 내가 만유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니, 주님을 내가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내가 사랑할 수 있다니 그럴 때 내 사랑이 쪽사랑 짝사랑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랑을 주님이 내 사랑을 받아주시다니 이 사실은 인간 최고의 영광이고 행복이고 놀라운 사실입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이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상대방 대상 되는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그토록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사랑을 매몰차게 뿌리치고 주님을 사랑치 않는 못된 우리들이 아닌지 아주 어리석은 우리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 사랑하는 이것이 인간 기독자 최고의 행복이며 최고의 영광이며 영광이란 표현보다 최고의 행복이고 만족이고 이보다 더한 것은 없는 것이고 내가 주를 사랑할 수 있다는 이 사실 내가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이 이 사랑을 받아주신다는 이 사실, 이 사실에 감격해서 평생을 주를 향해 사랑 바치는 것이 깨달은 성도들의 생활입니다. 우리는 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생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주를 사랑함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해보고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