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주후(요14:21-24)
사랑의 의미와 역할2014-06-23조회 332추천 26
본문: 요14:21-24
제목: 사랑의 의미와 역할
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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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0622-주후(요14:21-24)
작성중 2014-06-23 15:00:12, 조회 : 2, 추천 : 0
20140622 주후
요한복음 14:21-24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될 많은 법에 조문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지킬 말씀들이 많이 있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크고 우선되는 계명 그 율법 그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람이란 것은 중요성을 따라서 중요한 것을 앞세우고 우선 순위에 두고 거기 좀 더 힘을 쓰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를 담았다 볼 수 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 중에서 어떤 계명이 크고 먼저 우선적으로 지켜야될 계명이 되겠습니까 하고 율법사가 물을때, 예수님 대답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고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강령이라 말은 중심이라 말이고 핵심이라는 말이고 요지라 그 뜻입니다. 전체에 가장 중요한 줄거리가 강령이고, 그 강령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말하는 신구약 성경의 율법에 모든 중심 가장 큰 전체 줄거리 그게 뭐냐? 그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전체의 중심이고 줄거리고 강령이다. 그러면 성경 전체는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 하겠습니다.
성경에 많은 말씀들이 있고 많은 하나님의 계명들이 있습니다. 십계명 1계명 2계명 3계명 4계명 5계명 또 6계명부터 10계명 까지 많은 계명들, 그 외에 성경에 기록된 조문 조문들, 많은 말씀들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있는데 그 모든 말씀 전부를 다 한말로 말하면 그 모든 것은 방향이 어디로 가느냐? 사랑으로 향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모든 것은 사랑을 향해서 가고 있고 사랑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이 나와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 제자 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봤습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내게 오는 자가 내 제자가 되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주님 한분으로 전부 삼고 그 안에 두고 자기 십자가를 두고 주님을 따라가야 주와 같은 주님 제자가 되어진다, 주님을 닮아 주와 같은 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목표고 목적이고 우리의 성공입니다. 그럼 오늘 말씀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두고 말씀을 하는데,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일까?
자 생각 한번 해보십시다. 사랑이 무엇인가요?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 표현은 어느 나라 어느 단체 어느 종교할 것 없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온 세상은 전부 사랑을 말하고 있고 사랑을 부르짖고 강조를 하고 있는데, 사랑이 무엇일까? 우리 같이 해보실까요? ‘사랑’, ‘사랑’.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 무엇이 사랑인가요? 사랑은 일단 사랑이란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의미로 말하면, 사랑은 하나의 감정에 그런 작용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좋아하는 것이고 또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고 이런 것인데, 인격과 인격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이 관계가 사랑이다 그래 말했습니다.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가장 가까운,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을때 쓰는 표현이 사랑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면 거기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최고의 관계까지 들어갔다 그리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란 것은 어떤 것이 사랑인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은 좋아하는 것, 서로 좋아하는 것,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좋아하는 것도 달리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좋아하니까 보고 싶고 생각나고 또 생각하고 혹은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괜히 심장이 뛰고 흥분이 되고 설레기도 하고 이런 심신의 작용의 역사 이런 것들이 사랑이 아닌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은 사랑하니까 아껴주고 보호하고 보살펴주고 또 잘 되도록 살펴주는 이런 모든 것들이 사랑이다 그래 말할 수 있겠는데,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이란 것은 그거는 이 세상 사람들은 모든 존재와 그 모든 존재들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궁극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궁극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그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판단은 전부다 오판이고 착각이고 결국 무지에서 나오는 그런 것들입니다. 궁극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궁극이라 말은 가장 근본이고 가장 마지막 끝이다 그말인데, 모든 존재에 궁극이라는 그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이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 근본도, 존재에 마지막도, 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도, 모든 것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연구하고 생각을 하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의 내리고 그리하지만은, 그러나 그 모든 건 전부다 우물 안에 개구리고 일종에 꽁꼬리 철학이고 짐작이고 추측 추론이고 그런 것이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을 모르고 끝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알고있는 사랑이란 것은 인간 사랑이고, 인간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끊어진,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 사랑이 인간사랑이고 인간 사랑은 가장 숭고한 사랑이 부모의 자녀 사랑인데 혈육사랑이고, 동물적인 그런 사랑은 정욕사랑이니까 좀 좋게 완곡하게 표현하면 이성적인 사랑이고, 그리고 동료사랑이고, 이 세가지 속에 모든 사랑은 다 들었는데 이 세가지 사랑은 전부다 그게 하나의 감정의 그런 작용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 그러면 감정 작용으로 사람이 마음이 감정이 작용해서 흥분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설레고 얼굴이 붉어지고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고, 혈육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그런 것은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인간 수준 인간의 판단 넘어까지 갈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가장 하나님의 사랑과 가깝다 그러면 인간 사랑중에서도 부모의 자녀 사랑 모성애 그게 가장 가까운 것인데, 그거는 사랑의 그 성격은 하나님 사랑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지능이 모자라서, 실력이 모자라서 그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완성할 수 없는 그런 불완전의 미완성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랑이 다 인간사랑이고 혈육의 사랑이다 그래 볼 수 있고,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이 사랑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일단 상대방을 좋아하면서 위하는 것이고 잘되게 해주는 그것이 사랑인데, 성경에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다,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래 말씀했는데, 소망이란 것은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이고 목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한이고 완전자니까 하나님을 향해 가는 우리 소망은 무한이고 영원성을 가진 것이고 그래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이게, 실제는 가까우면서도 더 멀어지는, 더 많이 남아있는, 세상 것은 이리 되면은 사람이 지쳐서 못 견디는데 하나님의 천국에 속한 이런 것들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천국을 더 많이 차지하고 주님을 더 많이 닮는 것을 자기 스스로 알고 느끼니까 주님화 성화되어지는 것이 많아지는데 많아질수록 주님은 자꾸 더 멀어지고 알 것 배울 것 닮을 것은 더 많아지니까 이게 무한이고 하나님과 천국의 속성이다, 완전이다, 소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망은 영원한 것이고 이 소망을 이루는 그런 터가 되어진다 그럴까요. 이 소망을 이루는 그런 하나에 실제적인 방편이 된다 그럴까요. 그게 믿음이겠고, 사랑이란 것은 이 소망을 이루어가는 그런 과정에 있어서 소망을 이루어갈 수 있는 원동이라 그럴까요 이게, 사랑이란 것은. 그래서 사랑은 굉장히 강합니다. 여인은 약하나 그다음 뭡니까? 여인은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어머니는 왜 강합니까? 어머니의 강함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의 힘에서 나오는 겁니다. 강하다 말은, 힘있다 그말이죠. 그 강함은 사랑에서 나오는 겁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것은 무엇인가? 사랑은 완전 소망을 향한 필수조건인데, 완전 소망을 향해 가는 과정을 힘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원동력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부부가 함께 살다가 처음에 결혼에 첫사랑때는 서로 죽고 못 살아서 아침에 봤는데 저녁에 또 보고 싶고 어제 봤는데 또 보고 싶고 자고 나면 또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자꾸 그렇게 됩니다. 사랑의 힘이 그렇습니다. 불완전하고 또 그런 사랑이라도 그렇습니다. 사랑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점점 지나가니까 불완전한 사랑이고 타락한 사랑이기 때문에 이게 점점 식어집니다. 식어지니까, 사랑이 식어지니까 두 사람의 관계가 식어지고 두 사람이 붙는 그, 자석의 음극과 양극이 서로 붙으면 탁 드러붙는데, 같은 것끼리는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밀어내지는 않아도 딱 드러붙던 그 두 사람이 세월이 지나서 점점 봐도 아무런 감정도 없고 맛도 없고 재미도 없고 밋밋하고 그만그만하고 그게 점점 세월이 지나갈수록 점점 그리 되어지고 좀 더 지나가면은 부부 사이에 권태가 나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경우는 남편이 아니라 웬수고, 아내가 아니라 원수가 되고 하는 이런 관계, 이런 것이 왜 그리 되어지느냐? 사랑이 식어져서, 사랑이 변해서 그렇게 되어지는건데, 그 사랑은 다 불완전한 사랑이고 타락한 인간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사랑이 살아 있고 사랑이 뜨거우면 그 사랑의 관계에 있는 서로 상대방은 그 두 사람이 밀접하게 여러 가지 면으로 가까울 수 밖에 없고 친밀할 수 밖에 없고 드러붙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랑의 힘이고 사랑의 작용이라는 겁니다. 인간 관계 사랑도 그러하고 이게 모든 인간 관계에도 다 그러합니다. 이러하고,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 사랑 관계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이란 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이란 것은 주님에게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고 주님과 밀접해지고 주님과 드러붙게 만드는, 더욱 더 친밀하게 만드는 그 힘, 그 작용 그 원동이 바로 사랑의 힘이고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완전 소망을 향한 필수 조건이고 원동력이 바로 이 사랑이다. 소망이 영원하니까 그 소망을 이루는 방편이 되어지는 믿음도 영원해야 되겠고, 이것이 영원하니까 사랑도 영원해야 되지, 사랑이 영원하지 않으면 사랑이 식어버리면 관계라는 것은 식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란 것이, 이 사랑의 발단이 어디냐? 발원이 어디서 나온 것이냐? 사랑이란 것은 인간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인간 사랑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데 어떤 것은 돈에게서 발단된 사랑도 있고, 아름다움에서 발단된 사랑도 있고, 자기 주관에서 발원된 그런 사랑도 있고, 하다보니까 어찌 어찌 하다보니까 발원된 그런 사랑도 있고, 또 동류적인 그런 면에서 발단된 그런 사랑도 있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사랑의 발단 발로 사랑의 발원이란 것은 인간 사랑은 여러 가지에서 발단될 수 있습니다. 원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찌 어찌 하다보니까 사랑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자꾸 같이 지내다보니까 사랑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상대방 가진 장점이 내 마음에 들어서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주관 어떤 면 때문에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그러니까 제눈에 안경이라고 다른 사람 눈에는 별 것 아닌데도 그 사람 눈에는 그렇게 좋게 귀하게 아름답게 보이는 그런 것 때문에 사랑이 될 수도 있다 그말입니다. 인간 사랑이란 것은 발단이 인간을 비롯한 여러 가지에서 발단이 되어지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발원은 어디냐? 하나님의 사랑의 발단은 하나님이 사랑의 발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사랑이고 그 분이 사랑 덩어리고 그분이 사랑 자체니까 그분에게서 사랑이 나와서 그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달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 주님을 사랑하므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발원되어서 나온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은 하나님이 완전하기 때문에 이 사랑은 완전하고, 하나님이 불변자시기 때문에 이 사랑은 불변하고, 이 말씀을 하니까 모두들 눈이 가물가물 하시는데, 이런 말씀을 알아들어야 진리를 아는 겁니다. 이것도 그렇게 값이 없는 싸구려 설교는 아닐 것 같은데,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좀 분해해서 들어가보는 건데, 제법 깊이가 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쉽게 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랑은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되겠고, 그래서 이 사랑 가지고 사랑하니까 이 사랑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고 이 사랑은 끝이 없는 것이고 영원토록 계속되어지는 겁니다. 사랑이란 것은,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고 그 상대방을 좋게 하는 것이고 복되게 하는 것인데, 좋다는 것은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지 마지막 끝이 비참하면 좋을 것이 없는 것인데, 인간 세계에 인간 사랑은 전부다 그 끝이 다 비참하고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자녀 사랑의 그 성격은 하나님 사랑과 같은 성격이라, 모형이라 그럴지라도 인간이 유한하고 완전하지 못하고 수명이 유한하기 때문에 그 끝을 보장할 수 없는고로 본의아니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고, 살린다는 것이 죽이게도 만들고 여러 가지 그런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는 다 불완전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 가진 사랑도 이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그 사랑을 내가 받아가져 그 사랑으로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영원하고 완전하고 무한하고 불변하기 때문에 그 사랑 가지고 사랑한 내 사랑의 모든 작용 역사도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무한하게 된다 그말입니다. 이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은 다 궁극에서 하나님을 아는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랑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신 최고의 법입니다. 이 사랑이 성경이 말씀하신 최고의 법이다.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이 독생자 보내서 사랑하신 그 대속의 사랑, 그 사랑이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성격입니다 말하자면.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 그럴때, 주님을 사랑하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은 완전자라서, 흠과 점이 없는 분이라서 피조물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은 상대방을 주는 것이고 위하는 것이고 잘되게 하는 것인데,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하여 뭔가 주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그러나 주님이 이 방법을 내놓기를, 약자가 강자를 사랑하는 것은 강자의 사랑을 받는 것이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논리적으로 사실이 그러합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떤 것이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인가? 주님을 날 사랑하시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니까 나를 잘되게 복되게 행복하게 좋게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역사 여러 가지 운동 작용을 소원을 가지고 하고 계시는 겁니다. 도성인신도 그 사랑이고 십자가의 생애와 고난과 죽으심도 그 사랑의 역사고 부활하심도 그 사랑의 역사고,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 위해서 기도하고 계심도 그 사랑의 역사 작용이고,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고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가르치고 하는 것도 사랑이고, 성령과 진리를 보내셔서 우리를 말씀을 들려주시고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는 그런 것도 사랑의 역사 작용이고, 우리가 잘했을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시하는 것도 사랑이고 우리가 잘못하여 죄를 범했을때 가시와 담으로 막으시는 것도 사랑이고, 이 전부는 사랑인데 그 사랑은 전부다 무엇이냐? 그 사랑은 우리를 복되게, 영광되게, 존귀하게, 하나님 원하시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가시기 위한 그런 사랑의 작용들이고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사랑을 받는 것은 그 하나님의 나를 향한 소원, 뜻, 나의 성공, 나의 존귀, 나의 영광, 나의 행복, 영원한 나의 구원 이것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서 역사하시는 그 모든 뜨거운 그런 역사들을 내가 다 받아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행복한 사람, 존귀한 사람, 영광스러운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인데, 이런 내면적인 것을 드러내서 한말로 표현하면 이런 주님의 사랑을 받는 방법이 무엇이냐? 그 방법이 첫째가 무엇입니까?
이런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아드려서 주님이 원하시는 행복을 가지고 존귀한 사람이 되고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방법 첫째가 무엇이라고요? 그게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계명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하나님 말씀은 전부다 진리고, 그 진리는 모든 존재를 만들고 운영해왔고 하고 있고, 영원히 해 갈 그런 진리기 때문에 그 진리에 맞아야, 합당하게 되어져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계명 진리 말씀을 떠나서는 우리에게 행복이란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언제 누가 그 설교를 하던가요? 우리에게 죄가 오는 것은, 죄가 오고, 우리에게 오는 그런 행복 성공 죄 되는 것이 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의 설교를 언제 했습니까 누가? 주일학교에 했습니까? 아니면 지난주 오후예배였습니까? 지난주 오후예배였던가요? 누가 그 설교를 하는거 제가 들은 거 같은데, 주일학교 시간에. 어쨌든 하나님이 주시는 그런 모든 것을 내가 다 받아가지는 건데, 그 받아가지는 것은 반드시 계명, 계명은 말씀이고 그 말씀 안에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다 들어있기 때문에 그 계명을 내가 벗어나지 아니하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는 것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소원이, 이것도 같은 의미인데 한편으로는 같은 의미인데, 하나님의 소원이, 목적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그 사람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사람인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두 사람이 사랑한다면 이게 꼭 비단 남녀관계 아니더라도, 사제지간도 그렇고, 또 친구관도 그렇고, 내가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게 사랑이라 꼭 부정적인 그런 지저분한걸 말하는게 아니고 친밀하게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도 사랑하게 되어있는 것이 그게 정상입니다. 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 친구의 부모님도 동생도 형제도 내가 좋아하는 겁니다. 필수적으로. 그 친구의 모든 물건도 내가 아끼고 소중히 취급하는 그게 정상적이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사람의 주인인데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논리적으로 안 맞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한말로 말하면 그 사랑은 그분의 사랑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게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또 만족시키는 것이고 또 그분을 안심시키는 것이고, 그분을 좋게 하는 것이고, 그분의 소원과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런 것인데, 그 사랑을 받는 방법이 바로 첫째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계명 지키는 것이 속에 들었는데 바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 말은, 달리 말하면 사람을 아끼는 것이고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성경에 사람을 아끼는 대표적인 인물을 누구로 말합니까, 주로? 성경에 사람을 아낀 대표적인 인물,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런가, 말할 때 누구를 말하던가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말합니다, 요셉. 마리아 남편 요셉은 사람을 굉장히 아꼈습니다. 또, 야곱의 아들 요셉도 사람을 아꼈습니다. 그러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에게 누명 덮어 씌우고 감옥 보낼때 그 사람을 아껴서 상하지 않도록 자기가 그 짐을 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마리아 남편 요셉도 그런 소식이 들릴때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생각할 때, 사람을 아낀 겁니다. 사람을 아끼면 하나님이 굉장히 기뻐하시고 크게 복을 주십니다. 사람을 아끼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우리는 아끼기 때문에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면 안되고 사람에게 말이라든지 처신이라든지 상대할 때 그 사람이 상처나지 않도록,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그의 생각이 상하지 않도록, 그의 인품이 상하지 않도록, 사람을 상대할 때 참 조심을 해야 합니다. 말 하나, 또 내 행동거취 하나, 대하는 그런 관계 하나하나가 오늘 아침에 대인관을 주일학교때 가르쳤는데 전부 하나하나 굉장히 조심스럽게, 뭐든지 귀중하고 소중한 물건은 옷을 새옷을 사면은 다림질을 해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하지요. 바느질 하나 해도 조심스럽게 하고, 상할까 싶어서. 비싼 물건은 소중히 다룹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아끼게 되는 것이고 아끼면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소중하면은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상대하는 것은 조심을 하는 겁니다. 그 상대방에 대해서 조심조심 하는 이게, 이것이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여기까지 하고 우리가 성경에 말씀하신 최고의 법, 신앙생활에 가장 궁극의 목표며 목적인 이 사랑, 이 사랑에 주님과 나의 사랑의 관계를 생각하며 우리는 이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우리 자신을 자꾸 만들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이,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 한말로 말하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한말로 말하면 무엇이라고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주의 사랑을 받는 겁니다. 주의 사랑을 받는 방법은 몇 가지입니까? 하나는 계명 지키는 것, 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런데 거기서 하나 더 들어가서 계명을 지키되 주의 사랑을 받고 받음으로 사랑하는 그 계명 지키는 것은, 계명을 지키되 그 계명 지키는 동기가, 동기란 말은 이유라는 말입니다. 원인이라 말입니다. ‘왜’ 라는 뜻입니다, 왜. 왜 내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느냐. 왜 계명 지키느냐. 그게 바로 주님을 사랑하므로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이게 참 주를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지키는 계명이 참 바른 계명 지킴이 되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람을 사랑하는 참사랑이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의 사랑을 받는 것이고, 그 사랑을 받는 것은 계명 지키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 다시 돌아가서 계명 지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함을 인해서 계명 지키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까 결국 그 관계에 근본은 나하고 주님과의 관계다 그말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 이 사랑의 관계가 밀접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궁극의 관계는 하나님과 나와의 신인교제 신인관계의 이 사랑이고, 이 사랑의 표시가, 이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계명지키므로 나타나는 것이고 인간사랑 형제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인간 사랑이 목적이 아니고, 계명 지킴이 목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함이 목적이고 이게 최종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란, 주님을 사랑하는 목적되는 그 사랑이 무엇인가? 그 사랑이란 것이 바로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주님과 나와의 영원한 신인관계에 이 관계를 영원토록 계속되게 하는 것이고 영원히 계속되게 하는 것이고, 영원히 계속되되 그 영원한 관계 계속이 이게 마지못해서 의무감으로 불가분하게 되어지는 그런 관계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마지못해서 두 사람이 붙어 있으면 힘이 듭니다. 부담이 들고, 싫은 사람 둘이 붙어 있으면 괴롭습니다. 고만고만한 관계 둘이 붙어있으면 있어도 재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사랑하는 사람끼리 붙어있으면 재미는 조금 있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전부 다 해서 서로 사랑할만큼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함께 있을수록 이거는 좋은 것이고 복된 것이고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되는 것인데 주님과 나와의 관계의 이 사랑이 영원토록 주님과 관계를 가지고 영원히 계속되는데 그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하나님에게서 발원된 이 뜨거운 사랑의 관계로 관계가 되어서 영원히 이 관계가 계속 되어지는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면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이 사랑이 변하기도 하고 식어지기도 하니까 이 사랑을 살아생전 세상에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그런 뜨거운 사랑으로 만들어가지고 영원토록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사람으로 천국에서 영생하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이 소망을 이루어가는 이 관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내면이고 속에 알맹이다 그리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이 사랑을 우리가 연습해가는 것이고 이 사랑을 숙달시켜 가는 것이고, 이 사랑의 사람으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주님을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그런 생활속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함이란 것은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속에 마음의 중심이고 마음의 동기고 자기 스스로 돌아보면 아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주일을 지키며, 무엇 때문에 말씀 순종을 하며, 왜 신앙생활을 하느냐? 자문자답을 통해서 내가 주님이라는 하나님이라는 그 구주를, 그분을 내가 늘 생각을 하고 그분을 잘 몰라도 아는대로 성경을 통해서 배워 아는대로 그분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친밀하길 원하고 닮기를 원하고 사모하고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그러므로 자꾸 이런걸 자기 속에서 일으키면서 이게 점점 자기에게 숙달되어지고 연습되어지고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그 방법이 뭐냐, 그게 주님 사랑을 계속 받는 것이고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이 받으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지니까, 받는 것은 계명 지키는 것이니까 내가 주를 사랑함이라는 그 사랑함의 이 동기, 근본, 원동을 인해서 계명 지키는 생활을 계속 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 생활을 계속할 때 내가 주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란 것은 점점 뜨거워지게 되고 온전해지게 되고 구비해지게 되고 숙달이 되게 되고,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점점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명을 지켜도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원동 사랑의 근본이 없이 계명지키는 것은 마지막에 가보면 율법주의자 되기가 쉽습니다. 구약 종교말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켰는데도 그들이 외식자가 된 것은 영감이 없었다 그말인데, 그 영감이란 다시 말하면 그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을 아끼지 않았고 구주 메시야를 시기질투해서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다 그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진리가 남아있습니다. 진리는 율법이고 하나님 법 진리입니다. 그 진리가 남아있는데 그 진리를 써먹되 지키되 사랑이 없는 진리를 지키니까 그 진리는 남을 정죄하는 칼이 되었고 그 칼이 나중에는 자기들의 목을 치는 그런 칼로 돌아온 것이 사랑없는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외식하는 유대인들의 계명 지키는 생활이였습니다. 오늘도 그리 됩니다.
오늘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율법에 철저하게 계명 지키는 생활할지라도 그 속에 인격존재 원형이신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염두에 두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날 사랑하신만큼 나도 주를 사랑하므로 이 계명을 지킨다. 이 관계, 이걸 늘 염두에 두고 계명 지키는 생활을 해야 그 계명 지킴이 힘들어도 이길수 있고 지루하지 않도 변질되지도 아니하지, 이 사랑의 관계라는 것을 빼놓고 계명지키는 생활만 하고 충성만 하면 마지막에 에베소 같은 그런 교회가 되어지고 껍데기 외식하는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좀 어렵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랑, 이게 논리적인 그런 이치도 알아야 되겠고 지금 말씀드리고 강조하는 것은 이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되는 그런 논리적인 이치안에서 주님과 나와의 신인교제의 이 면을 지금 강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주님을 참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 또 강조하고 논리이치가 없으면 그것도 신비주의 되기 쉽기 때문에 문제가 되어지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을, 목적은 주를 사랑하는 내가 되는 것,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 이게 내면 알맹이고 이렇게 되어져가는 표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알맹이 표시가 외부로 나타나는 표시판이 두가지니, 하나는 계명지키는 것이고 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게 표시판인 동시에 이 두가지 생활을 할때 그 속에 알맹이 되어지는 주를 사랑함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가지고 이 두가지 생활을 계속하면 이 두가지 생활이 표시판인 동시에 주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자기로 만들어가는 그런 방법이 또 되어진다 그말입니다.
이것이 본문에 말씀하신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그러면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면 어떤 복을 받게 되는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보혜사라 말은 ‘보호할 보’자 ‘은혜 혜’자 ‘스승 사’자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러니까 성령이 보호하시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안심할 수 있겠고 그분이 은혜 베푸시니까 만족하겠고 부족함이 없겠고 그분이 가르치니까 모르는 것이 없겠고,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까 우리를 보호하고 은혜 베푸시고 가르치니까 가장 참 안전하고 만족하고 지능이 탁월한 그런 사람이 되어지겠고, 두 번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게되는데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이랬으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사랑을 받는다는 말은 관심을 받는다는 말이고 사모를 받는다는 말이고 그리움을 받는다는 말이고 복되게 해줌을 받는다는 그 말이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가 다 받을 수 있는 이런 사랑의 대상, 얼마나 복이 되는지. 세 번째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동거동행 하겠다. 완전자와 동거동행이니까 우리 모든 생활이 다 완전이 되어지겠고 주님을 모시고 함께 있으니까 언제나 천국 생활이 되어지겠고,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까 이런 것이 되어지겠고, 네 번째는,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모든걸 나타내니까 하나님의 뜻도 생각도 마음도 소원도 욕망도 하나님의 목적도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을 통해서 다 나타나게 되는 거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은 전부 주님을 대리하는, 주님을 모형하는, 바로 구원의 완성이 되어진다 하는 말씀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를 사랑하는 이 말씀들을 생각하면서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한번 더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이 사랑에 대해서 인간관계끼리도, 인간끼리도 좀 실력있고 잘난 그런 사람들은 사랑을 함부로 할 수도 없습니다. 해봐야 받지도 아니할뿐더러 내가 그를 사랑하는 줄 알면 그가 내 사랑을 불쾌하게 여기고, 오히려 징그럽게 여기는 그런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뭣 때문에 나를 사랑하느냐? 왜 나를 당신 마음 속에 넣어두느냐?’ 넣어뒀다는걸 내가 강제로 그 마음에 있는 걸 빼내지는 못해도 굉장히 불쾌하다. 왜 나를 당신 마음속에 마음대로 넣어서 당신이 나를 사모하며 그리워하며 나를 왜 사랑하느냐? 나는 당신이 싫다. 이런 짝사랑, 이런 짝사랑 쪽사랑은 마지막이 비참하게 파탄되어지는 그런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세상에서도 그런게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우리가 그분이 어떤 분인데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를 두고 깨달은 성도들은 너무도 감사하고 감격해서 아마 많이 운다 그러는데, 우리는 이거를 얼마나 깨닫고 얼마만큼 좋아서 감격해서 물어봤는지, 주님을 내가 사랑할 수 있다니. 내가 주님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그분이 물리치지 아니하고 받아주시다니, 이런 일이 있을수가 있겠는가.
잘난 사람을, 아마 처녀들이 세상에 잘난 사람, 인물 잘나고 학벌 좋고 실력있고 뭐 많고 다 잘난 그런 사람을 두고 있다면 ‘아 저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하고 목메는 그런 대상이 많을 것이고, 또 총각들도 그런 처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건데. 그럴 수 있을 것인데 그래봐야 다 별 것 없는 그런 사람, 다 거기서 거긴데, 세월이 지나가면, 사람 외모도 그렇습디다 보니까, 외모도 젊은 시절에 참 미모도 있고 아름답고 모든면에 다 남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여인인데 세월이 점점 지나고 중년이 되고 또 노년이 점점 되어져가니까 이상하게 흉하게 그렇게 변질되는 그런 여인들도 있고, 남자도 마찬가지고, 젊었을때는 보니까 뭐 인물도 별로 그만그만하고 모든게 그만그만한데, 늙어져갈수록 점점 남편의 마음을 다 빼앗는 그렇게 늙어져가는 그런 아내들도 있다 그말이지요. 사람이란 것은 불변한 것이 아닙니다. 변합니다. 마음도 생각도 가치관도 외모도 다 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만 보고 우리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취사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멀리봐야 되고 길게 봐야 되고 전체를 보면서,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으로 우리가 모든 것 사랑하고 말씀대로만 해 나가면 잘되도 만족, 잘못되도 만족 여기는 후회가 없는 것인데, 말씀을 떠나 사는 것은 지금 아무리 잘되봐야 늘 불안합니다. 화약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처럼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그리 되어지는 겁니다. 이러니까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에 우리가 감격하고 감사하고 놀라고 여기 전 가치를 두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런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주를 사랑하므로 주의 사랑을 다 받고 주의 사랑을 받으므로 주를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므로 주의 계명을 지키고 주를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여 아끼고, 그러므로 점점 주를 사랑함이 뜨거워지고 사랑의 사람이 되어지는 이 말씀을 생각하고 실제 이렇게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랑은 최고의 법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참 사랑이고 하나님 사랑에서 나온 인간 사랑이 참 사랑입니다. 사랑하므로 사랑을 받고, 사랑하므로 계명 지키고,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여 아끼고, 그러므로 더욱 사랑이 뜨거워지고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지는 이 생활이 우리 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
제목: 사랑의 의미와 역할
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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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0622-주후(요14:21-24)
작성중 2014-06-23 15:00:12, 조회 : 2, 추천 : 0
20140622 주후
요한복음 14:21-24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율법은 하나님의 법이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될 많은 법에 조문들이 그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지킬 말씀들이 많이 있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크고 우선되는 계명 그 율법 그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람이란 것은 중요성을 따라서 중요한 것을 앞세우고 우선 순위에 두고 거기 좀 더 힘을 쓰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를 담았다 볼 수 있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명 중에서 어떤 계명이 크고 먼저 우선적으로 지켜야될 계명이 되겠습니까 하고 율법사가 물을때, 예수님 대답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고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강령이라 말은 중심이라 말이고 핵심이라는 말이고 요지라 그 뜻입니다. 전체에 가장 중요한 줄거리가 강령이고, 그 강령을 빼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말하는 신구약 성경의 율법에 모든 중심 가장 큰 전체 줄거리 그게 뭐냐? 그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전체의 중심이고 줄거리고 강령이다. 그러면 성경 전체는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 하겠습니다.
성경에 많은 말씀들이 있고 많은 하나님의 계명들이 있습니다. 십계명 1계명 2계명 3계명 4계명 5계명 또 6계명부터 10계명 까지 많은 계명들, 그 외에 성경에 기록된 조문 조문들, 많은 말씀들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있는데 그 모든 말씀 전부를 다 한말로 말하면 그 모든 것은 방향이 어디로 가느냐? 사랑으로 향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모든 것은 사랑을 향해서 가고 있고 사랑을 위해서 그 모든 것이 나와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 제자 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봤습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내게 오는 자가 내 제자가 되려고 하면, 모든 것을 다 주님 한분으로 전부 삼고 그 안에 두고 자기 십자가를 두고 주님을 따라가야 주와 같은 주님 제자가 되어진다, 주님을 닮아 주와 같은 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고 목표고 목적이고 우리의 성공입니다. 그럼 오늘 말씀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두고 말씀을 하는데,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 무엇일까?
자 생각 한번 해보십시다. 사랑이 무엇인가요?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 사랑이라는 단어는, 이 표현은 어느 나라 어느 단체 어느 종교할 것 없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온 세상은 전부 사랑을 말하고 있고 사랑을 부르짖고 강조를 하고 있는데, 사랑이 무엇일까? 우리 같이 해보실까요? ‘사랑’, ‘사랑’.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 무엇이 사랑인가요? 사랑은 일단 사랑이란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의미로 말하면, 사랑은 하나의 감정에 그런 작용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좋아하는 것이고 또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고 이런 것인데, 인격과 인격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친밀하고 밀접한 이 관계가 사랑이다 그래 말했습니다.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가장 가까운,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을때 쓰는 표현이 사랑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면 거기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최고의 관계까지 들어갔다 그리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란 것은 어떤 것이 사랑인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은 좋아하는 것, 서로 좋아하는 것,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좋아하는 것도 달리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좋아하니까 보고 싶고 생각나고 또 생각하고 혹은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괜히 심장이 뛰고 흥분이 되고 설레기도 하고 이런 심신의 작용의 역사 이런 것들이 사랑이 아닌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그런 사랑은 사랑하니까 아껴주고 보호하고 보살펴주고 또 잘 되도록 살펴주는 이런 모든 것들이 사랑이다 그래 말할 수 있겠는데,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사랑이란 것은 그거는 이 세상 사람들은 모든 존재와 그 모든 존재들의 움직임과 그 움직임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궁극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궁극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그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모든 판단은 전부다 오판이고 착각이고 결국 무지에서 나오는 그런 것들입니다. 궁극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궁극이라 말은 가장 근본이고 가장 마지막 끝이다 그말인데, 모든 존재에 궁극이라는 그 말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고 이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존재에 근본도, 존재에 마지막도, 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도, 모든 것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연구하고 생각을 하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의 내리고 그리하지만은, 그러나 그 모든 건 전부다 우물 안에 개구리고 일종에 꽁꼬리 철학이고 짐작이고 추측 추론이고 그런 것이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본을 모르고 끝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은 사랑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알고있는 사랑이란 것은 인간 사랑이고, 인간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끊어진,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 사랑이 인간사랑이고 인간 사랑은 가장 숭고한 사랑이 부모의 자녀 사랑인데 혈육사랑이고, 동물적인 그런 사랑은 정욕사랑이니까 좀 좋게 완곡하게 표현하면 이성적인 사랑이고, 그리고 동료사랑이고, 이 세가지 속에 모든 사랑은 다 들었는데 이 세가지 사랑은 전부다 그게 하나의 감정의 그런 작용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 그러면 감정 작용으로 사람이 마음이 감정이 작용해서 흥분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설레고 얼굴이 붉어지고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고, 혈육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그런 것은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인간 수준 인간의 판단 넘어까지 갈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가장 하나님의 사랑과 가깝다 그러면 인간 사랑중에서도 부모의 자녀 사랑 모성애 그게 가장 가까운 것인데, 그거는 사랑의 그 성격은 하나님 사랑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지능이 모자라서, 실력이 모자라서 그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완성할 수 없는 그런 불완전의 미완성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사랑이 다 인간사랑이고 혈육의 사랑이다 그래 볼 수 있고,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이 사랑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일단 상대방을 좋아하면서 위하는 것이고 잘되게 해주는 그것이 사랑인데, 성경에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다,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래 말씀했는데, 소망이란 것은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이고 목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소망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한이고 완전자니까 하나님을 향해 가는 우리 소망은 무한이고 영원성을 가진 것이고 그래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이게, 실제는 가까우면서도 더 멀어지는, 더 많이 남아있는, 세상 것은 이리 되면은 사람이 지쳐서 못 견디는데 하나님의 천국에 속한 이런 것들은 가까이 가면 갈수록 천국을 더 많이 차지하고 주님을 더 많이 닮는 것을 자기 스스로 알고 느끼니까 주님화 성화되어지는 것이 많아지는데 많아질수록 주님은 자꾸 더 멀어지고 알 것 배울 것 닮을 것은 더 많아지니까 이게 무한이고 하나님과 천국의 속성이다, 완전이다, 소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소망은 영원한 것이고 이 소망을 이루는 그런 터가 되어진다 그럴까요. 이 소망을 이루는 그런 하나에 실제적인 방편이 된다 그럴까요. 그게 믿음이겠고, 사랑이란 것은 이 소망을 이루어가는 그런 과정에 있어서 소망을 이루어갈 수 있는 원동이라 그럴까요 이게, 사랑이란 것은. 그래서 사랑은 굉장히 강합니다. 여인은 약하나 그다음 뭡니까? 여인은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어머니는 왜 강합니까? 어머니의 강함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사랑의 힘에서 나오는 겁니다. 강하다 말은, 힘있다 그말이죠. 그 강함은 사랑에서 나오는 겁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것은 무엇인가? 사랑은 완전 소망을 향한 필수조건인데, 완전 소망을 향해 가는 과정을 힘있게 만들어주는 그런 원동력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부부가 함께 살다가 처음에 결혼에 첫사랑때는 서로 죽고 못 살아서 아침에 봤는데 저녁에 또 보고 싶고 어제 봤는데 또 보고 싶고 자고 나면 또 보고 싶고 만나고 싶고 함께 있고 싶고 자꾸 그렇게 됩니다. 사랑의 힘이 그렇습니다. 불완전하고 또 그런 사랑이라도 그렇습니다. 사랑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점점 지나가니까 불완전한 사랑이고 타락한 사랑이기 때문에 이게 점점 식어집니다. 식어지니까, 사랑이 식어지니까 두 사람의 관계가 식어지고 두 사람이 붙는 그, 자석의 음극과 양극이 서로 붙으면 탁 드러붙는데, 같은 것끼리는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밀어내지는 않아도 딱 드러붙던 그 두 사람이 세월이 지나서 점점 봐도 아무런 감정도 없고 맛도 없고 재미도 없고 밋밋하고 그만그만하고 그게 점점 세월이 지나갈수록 점점 그리 되어지고 좀 더 지나가면은 부부 사이에 권태가 나기도 하고, 그래서 어떤 경우는 남편이 아니라 웬수고, 아내가 아니라 원수가 되고 하는 이런 관계, 이런 것이 왜 그리 되어지느냐? 사랑이 식어져서, 사랑이 변해서 그렇게 되어지는건데, 그 사랑은 다 불완전한 사랑이고 타락한 인간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사랑이 살아 있고 사랑이 뜨거우면 그 사랑의 관계에 있는 서로 상대방은 그 두 사람이 밀접하게 여러 가지 면으로 가까울 수 밖에 없고 친밀할 수 밖에 없고 드러붙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사랑의 힘이고 사랑의 작용이라는 겁니다. 인간 관계 사랑도 그러하고 이게 모든 인간 관계에도 다 그러합니다. 이러하고, 하나님의 사랑,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 사랑 관계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이란 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이란 것은 주님에게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고 주님과 밀접해지고 주님과 드러붙게 만드는, 더욱 더 친밀하게 만드는 그 힘, 그 작용 그 원동이 바로 사랑의 힘이고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완전 소망을 향한 필수 조건이고 원동력이 바로 이 사랑이다. 소망이 영원하니까 그 소망을 이루는 방편이 되어지는 믿음도 영원해야 되겠고, 이것이 영원하니까 사랑도 영원해야 되지, 사랑이 영원하지 않으면 사랑이 식어버리면 관계라는 것은 식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란 것이, 이 사랑의 발단이 어디냐? 발원이 어디서 나온 것이냐? 사랑이란 것은 인간 사랑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고, 인간 사랑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데 어떤 것은 돈에게서 발단된 사랑도 있고, 아름다움에서 발단된 사랑도 있고, 자기 주관에서 발원된 그런 사랑도 있고, 하다보니까 어찌 어찌 하다보니까 발원된 그런 사랑도 있고, 또 동류적인 그런 면에서 발단된 그런 사랑도 있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사랑의 발단 발로 사랑의 발원이란 것은 인간 사랑은 여러 가지에서 발단될 수 있습니다. 원래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찌 어찌 하다보니까 사랑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자꾸 같이 지내다보니까 사랑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상대방 가진 장점이 내 마음에 들어서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주관 어떤 면 때문에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그러니까 제눈에 안경이라고 다른 사람 눈에는 별 것 아닌데도 그 사람 눈에는 그렇게 좋게 귀하게 아름답게 보이는 그런 것 때문에 사랑이 될 수도 있다 그말입니다. 인간 사랑이란 것은 발단이 인간을 비롯한 여러 가지에서 발단이 되어지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발원은 어디냐? 하나님의 사랑의 발단은 하나님이 사랑의 발단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이 사랑이고 그 분이 사랑 덩어리고 그분이 사랑 자체니까 그분에게서 사랑이 나와서 그분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달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 주님을 사랑하므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에게서 발원되어서 나온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은 하나님이 완전하기 때문에 이 사랑은 완전하고, 하나님이 불변자시기 때문에 이 사랑은 불변하고, 이 말씀을 하니까 모두들 눈이 가물가물 하시는데, 이런 말씀을 알아들어야 진리를 아는 겁니다. 이것도 그렇게 값이 없는 싸구려 설교는 아닐 것 같은데,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좀 분해해서 들어가보는 건데, 제법 깊이가 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쉽게 들을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랑은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되겠고, 그래서 이 사랑 가지고 사랑하니까 이 사랑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이고 이 사랑은 끝이 없는 것이고 영원토록 계속되어지는 겁니다. 사랑이란 것은,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고 그 상대방을 좋게 하는 것이고 복되게 하는 것인데, 좋다는 것은 끝이 좋아야 좋은 것이지 마지막 끝이 비참하면 좋을 것이 없는 것인데, 인간 세계에 인간 사랑은 전부다 그 끝이 다 비참하고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자녀 사랑의 그 성격은 하나님 사랑과 같은 성격이라, 모형이라 그럴지라도 인간이 유한하고 완전하지 못하고 수명이 유한하기 때문에 그 끝을 보장할 수 없는고로 본의아니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속이기도 하고, 살린다는 것이 죽이게도 만들고 여러 가지 그런 부작용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는 다 불완전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우리 가진 사랑도 이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나온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그 사랑을 내가 받아가져 그 사랑으로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영원하고 완전하고 무한하고 불변하기 때문에 그 사랑 가지고 사랑한 내 사랑의 모든 작용 역사도 완전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무한하게 된다 그말입니다. 이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사랑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은 다 궁극에서 하나님을 아는 거기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랑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신 최고의 법입니다. 이 사랑이 성경이 말씀하신 최고의 법이다.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이 독생자 보내서 사랑하신 그 대속의 사랑, 그 사랑이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성격입니다 말하자면.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 그럴때, 주님을 사랑하는 그 방법이 무엇이냐?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주님은 완전자라서, 흠과 점이 없는 분이라서 피조물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데, 사랑할 수 없는데 사랑은 상대방을 주는 것이고 위하는 것이고 잘되게 하는 것인데, 우리들이 주님을 사랑하여 뭔가 주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그러나 주님이 이 방법을 내놓기를, 약자가 강자를 사랑하는 것은 강자의 사랑을 받는 것이니까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논리적으로 사실이 그러합니다. 그러면 내가 주님을 사랑하므로 주님 사랑을 받는다면 어떤 것이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인가? 주님을 날 사랑하시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니까 나를 잘되게 복되게 행복하게 좋게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역사 여러 가지 운동 작용을 소원을 가지고 하고 계시는 겁니다. 도성인신도 그 사랑이고 십자가의 생애와 고난과 죽으심도 그 사랑의 역사고 부활하심도 그 사랑의 역사고,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 위해서 기도하고 계심도 그 사랑의 역사 작용이고,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고 통해서 끊임없이 우리를 가르치고 하는 것도 사랑이고, 성령과 진리를 보내셔서 우리를 말씀을 들려주시고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는 그런 것도 사랑의 역사 작용이고, 우리가 잘했을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시하는 것도 사랑이고 우리가 잘못하여 죄를 범했을때 가시와 담으로 막으시는 것도 사랑이고, 이 전부는 사랑인데 그 사랑은 전부다 무엇이냐? 그 사랑은 우리를 복되게, 영광되게, 존귀하게, 하나님 원하시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가시기 위한 그런 사랑의 작용들이고 그러므로 우리가 그 사랑을 받는 것은 그 하나님의 나를 향한 소원, 뜻, 나의 성공, 나의 존귀, 나의 영광, 나의 행복, 영원한 나의 구원 이것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서 역사하시는 그 모든 뜨거운 그런 역사들을 내가 다 받아서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행복한 사람, 존귀한 사람, 영광스러운 사람,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인데, 이런 내면적인 것을 드러내서 한말로 표현하면 이런 주님의 사랑을 받는 방법이 무엇이냐? 그 방법이 첫째가 무엇입니까?
이런 주님의 사랑을 내가 받아드려서 주님이 원하시는 행복을 가지고 존귀한 사람이 되고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고 성공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방법 첫째가 무엇이라고요? 그게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계명이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하나님 말씀은 전부다 진리고, 그 진리는 모든 존재를 만들고 운영해왔고 하고 있고, 영원히 해 갈 그런 진리기 때문에 그 진리에 맞아야, 합당하게 되어져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계명 진리 말씀을 떠나서는 우리에게 행복이란 것은 결코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언제 누가 그 설교를 하던가요? 우리에게 죄가 오는 것은, 죄가 오고, 우리에게 오는 그런 행복 성공 죄 되는 것이 오는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의 설교를 언제 했습니까 누가? 주일학교에 했습니까? 아니면 지난주 오후예배였습니까? 지난주 오후예배였던가요? 누가 그 설교를 하는거 제가 들은 거 같은데, 주일학교 시간에. 어쨌든 하나님이 주시는 그런 모든 것을 내가 다 받아가지는 건데, 그 받아가지는 것은 반드시 계명, 계명은 말씀이고 그 말씀 안에만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다 들어있기 때문에 그 계명을 내가 벗어나지 아니하고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는 것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소원이, 이것도 같은 의미인데 한편으로는 같은 의미인데, 하나님의 소원이, 목적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그 사람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사람인 사람도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두 사람이 사랑한다면 이게 꼭 비단 남녀관계 아니더라도, 사제지간도 그렇고, 또 친구관도 그렇고, 내가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게 사랑이라 꼭 부정적인 그런 지저분한걸 말하는게 아니고 친밀하게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도 사랑하게 되어있는 것이 그게 정상입니다. 친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그 친구의 부모님도 동생도 형제도 내가 좋아하는 겁니다. 필수적으로. 그 친구의 모든 물건도 내가 아끼고 소중히 취급하는 그게 정상적이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사람의 주인인데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논리적으로 안 맞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한말로 말하면 그 사랑은 그분의 사랑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게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또 만족시키는 것이고 또 그분을 안심시키는 것이고, 그분을 좋게 하는 것이고, 그분의 소원과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고, 그분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런 것인데, 그 사랑을 받는 방법이 바로 첫째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계명 지키는 것이 속에 들었는데 바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한다 말은, 달리 말하면 사람을 아끼는 것이고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성경에 사람을 아끼는 대표적인 인물을 누구로 말합니까, 주로? 성경에 사람을 아낀 대표적인 인물,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런가, 말할 때 누구를 말하던가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말합니다, 요셉. 마리아 남편 요셉은 사람을 굉장히 아꼈습니다. 또, 야곱의 아들 요셉도 사람을 아꼈습니다. 그러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자기에게 누명 덮어 씌우고 감옥 보낼때 그 사람을 아껴서 상하지 않도록 자기가 그 짐을 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마리아 남편 요셉도 그런 소식이 들릴때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생각할 때, 사람을 아낀 겁니다. 사람을 아끼면 하나님이 굉장히 기뻐하시고 크게 복을 주십니다. 사람을 아끼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현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우리는 아끼기 때문에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면 안되고 사람에게 말이라든지 처신이라든지 상대할 때 그 사람이 상처나지 않도록,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그의 생각이 상하지 않도록, 그의 인품이 상하지 않도록, 사람을 상대할 때 참 조심을 해야 합니다. 말 하나, 또 내 행동거취 하나, 대하는 그런 관계 하나하나가 오늘 아침에 대인관을 주일학교때 가르쳤는데 전부 하나하나 굉장히 조심스럽게, 뭐든지 귀중하고 소중한 물건은 옷을 새옷을 사면은 다림질을 해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하지요. 바느질 하나 해도 조심스럽게 하고, 상할까 싶어서. 비싼 물건은 소중히 다룹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아끼게 되는 것이고 아끼면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소중하면은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상대하는 것은 조심을 하는 겁니다. 그 상대방에 대해서 조심조심 하는 이게, 이것이 바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여기까지 하고 우리가 성경에 말씀하신 최고의 법, 신앙생활에 가장 궁극의 목표며 목적인 이 사랑, 이 사랑에 주님과 나의 사랑의 관계를 생각하며 우리는 이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우리가 되도록 우리 자신을 자꾸 만들어가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이,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 한말로 말하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한말로 말하면 무엇이라고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주의 사랑을 받는 겁니다. 주의 사랑을 받는 방법은 몇 가지입니까? 하나는 계명 지키는 것, 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런데 거기서 하나 더 들어가서 계명을 지키되 주의 사랑을 받고 받음으로 사랑하는 그 계명 지키는 것은, 계명을 지키되 그 계명 지키는 동기가, 동기란 말은 이유라는 말입니다. 원인이라 말입니다. ‘왜’ 라는 뜻입니다, 왜. 왜 내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느냐. 왜 계명 지키느냐. 그게 바로 주님을 사랑하므로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이게 참 주를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므로 지키는 계명이 참 바른 계명 지킴이 되는 것이고, 주님을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참 사람을 사랑하는 참사랑이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의 사랑을 받는 것이고, 그 사랑을 받는 것은 계명 지키는 것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 다시 돌아가서 계명 지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고 주님을 사랑함을 인해서 계명 지키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까 결국 그 관계에 근본은 나하고 주님과의 관계다 그말입니다. 주님과 나와의 사랑의 관계, 이 사랑의 관계가 밀접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결국 궁극의 관계는 하나님과 나와의 신인교제 신인관계의 이 사랑이고, 이 사랑의 표시가, 이 사랑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계명지키므로 나타나는 것이고 인간사랑 형제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지, 인간 사랑이 목적이 아니고, 계명 지킴이 목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함이 목적이고 이게 최종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란, 주님을 사랑하는 목적되는 그 사랑이 무엇인가? 그 사랑이란 것이 바로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주님과 나와의 영원한 신인관계에 이 관계를 영원토록 계속되게 하는 것이고 영원히 계속되게 하는 것이고, 영원히 계속되되 그 영원한 관계 계속이 이게 마지못해서 의무감으로 불가분하게 되어지는 그런 관계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고, 마지못해서 두 사람이 붙어 있으면 힘이 듭니다. 부담이 들고, 싫은 사람 둘이 붙어 있으면 괴롭습니다. 고만고만한 관계 둘이 붙어있으면 있어도 재미는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사랑하는 사람끼리 붙어있으면 재미는 조금 있고, 사랑하는 두 사람이 전부 다 해서 서로 사랑할만큼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함께 있을수록 이거는 좋은 것이고 복된 것이고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고 만족이 되는 것인데 주님과 나와의 관계의 이 사랑이 영원토록 주님과 관계를 가지고 영원히 계속되는데 그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하나님에게서 발원된 이 뜨거운 사랑의 관계로 관계가 되어서 영원히 이 관계가 계속 되어지는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면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변하지 않는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이 사랑이 변하기도 하고 식어지기도 하니까 이 사랑을 살아생전 세상에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그런 뜨거운 사랑으로 만들어가지고 영원토록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사람으로 천국에서 영생하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이 소망을 이루어가는 이 관계,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내면이고 속에 알맹이다 그리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이 사랑을 우리가 연습해가는 것이고 이 사랑을 숙달시켜 가는 것이고, 이 사랑의 사람으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주님을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그런 생활속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함이란 것은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속에 마음의 중심이고 마음의 동기고 자기 스스로 돌아보면 아는 겁니다. 무엇 때문에 주일을 지키며, 무엇 때문에 말씀 순종을 하며, 왜 신앙생활을 하느냐? 자문자답을 통해서 내가 주님이라는 하나님이라는 그 구주를, 그분을 내가 늘 생각을 하고 그분을 잘 몰라도 아는대로 성경을 통해서 배워 아는대로 그분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친밀하길 원하고 닮기를 원하고 사모하고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그러므로 자꾸 이런걸 자기 속에서 일으키면서 이게 점점 자기에게 숙달되어지고 연습되어지고 이런 사람이 되어지는 그 방법이 뭐냐, 그게 주님 사랑을 계속 받는 것이고 주님 사랑을 받는 것이 받으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지니까, 받는 것은 계명 지키는 것이니까 내가 주를 사랑함이라는 그 사랑함의 이 동기, 근본, 원동을 인해서 계명 지키는 생활을 계속 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 생활을 계속할 때 내가 주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란 것은 점점 뜨거워지게 되고 온전해지게 되고 구비해지게 되고 숙달이 되게 되고,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점점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계명을 지켜도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의 원동 사랑의 근본이 없이 계명지키는 것은 마지막에 가보면 율법주의자 되기가 쉽습니다. 구약 종교말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명 율법을 철두철미하게 지켰는데도 그들이 외식자가 된 것은 영감이 없었다 그말인데, 그 영감이란 다시 말하면 그들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을 아끼지 않았고 구주 메시야를 시기질투해서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들은 다 그러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진리가 남아있습니다. 진리는 율법이고 하나님 법 진리입니다. 그 진리가 남아있는데 그 진리를 써먹되 지키되 사랑이 없는 진리를 지키니까 그 진리는 남을 정죄하는 칼이 되었고 그 칼이 나중에는 자기들의 목을 치는 그런 칼로 돌아온 것이 사랑없는 이스라엘 종교 말년에 외식하는 유대인들의 계명 지키는 생활이였습니다. 오늘도 그리 됩니다.
오늘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 율법에 철저하게 계명 지키는 생활할지라도 그 속에 인격존재 원형이신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염두에 두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날 사랑하신만큼 나도 주를 사랑하므로 이 계명을 지킨다. 이 관계, 이걸 늘 염두에 두고 계명 지키는 생활을 해야 그 계명 지킴이 힘들어도 이길수 있고 지루하지 않도 변질되지도 아니하지, 이 사랑의 관계라는 것을 빼놓고 계명지키는 생활만 하고 충성만 하면 마지막에 에베소 같은 그런 교회가 되어지고 껍데기 외식하는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좀 어렵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랑, 이게 논리적인 그런 이치도 알아야 되겠고 지금 말씀드리고 강조하는 것은 이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 되는 그런 논리적인 이치안에서 주님과 나와의 신인교제의 이 면을 지금 강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주님을 참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만 또 강조하고 논리이치가 없으면 그것도 신비주의 되기 쉽기 때문에 문제가 되어지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을, 목적은 주를 사랑하는 내가 되는 것,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 이게 내면 알맹이고 이렇게 되어져가는 표시가 내가 주를 사랑하는 알맹이 표시가 외부로 나타나는 표시판이 두가지니, 하나는 계명지키는 것이고 하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게 표시판인 동시에 이 두가지 생활을 할때 그 속에 알맹이 되어지는 주를 사랑함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가지고 이 두가지 생활을 계속하면 이 두가지 생활이 표시판인 동시에 주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되는 자기로 만들어가는 그런 방법이 또 되어진다 그말입니다.
이것이 본문에 말씀하신 주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주를 사랑하는. 그러면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면 어떤 복을 받게 되는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보혜사라 말은 ‘보호할 보’자 ‘은혜 혜’자 ‘스승 사’자 우리를 보호하시고, 그러니까 성령이 보호하시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안심할 수 있겠고 그분이 은혜 베푸시니까 만족하겠고 부족함이 없겠고 그분이 가르치니까 모르는 것이 없겠고,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까 우리를 보호하고 은혜 베푸시고 가르치니까 가장 참 안전하고 만족하고 지능이 탁월한 그런 사람이 되어지겠고, 두 번째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다 받게되는데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이랬으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 사랑을 받는다는 말은 관심을 받는다는 말이고 사모를 받는다는 말이고 그리움을 받는다는 말이고 복되게 해줌을 받는다는 그 말이니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그가 다 받을 수 있는 이런 사랑의 대상, 얼마나 복이 되는지. 세 번째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동거동행 하겠다. 완전자와 동거동행이니까 우리 모든 생활이 다 완전이 되어지겠고 주님을 모시고 함께 있으니까 언제나 천국 생활이 되어지겠고,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니까 이런 것이 되어지겠고, 네 번째는,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주님이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모든걸 나타내니까 하나님의 뜻도 생각도 마음도 소원도 욕망도 하나님의 목적도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을 통해서 다 나타나게 되는 거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은 전부 주님을 대리하는, 주님을 모형하는, 바로 구원의 완성이 되어진다 하는 말씀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를 사랑하는 이 말씀들을 생각하면서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한번 더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이 사랑에 대해서 인간관계끼리도, 인간끼리도 좀 실력있고 잘난 그런 사람들은 사랑을 함부로 할 수도 없습니다. 해봐야 받지도 아니할뿐더러 내가 그를 사랑하는 줄 알면 그가 내 사랑을 불쾌하게 여기고, 오히려 징그럽게 여기는 그런 경우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뭣 때문에 나를 사랑하느냐? 왜 나를 당신 마음 속에 넣어두느냐?’ 넣어뒀다는걸 내가 강제로 그 마음에 있는 걸 빼내지는 못해도 굉장히 불쾌하다. 왜 나를 당신 마음속에 마음대로 넣어서 당신이 나를 사모하며 그리워하며 나를 왜 사랑하느냐? 나는 당신이 싫다. 이런 짝사랑, 이런 짝사랑 쪽사랑은 마지막이 비참하게 파탄되어지는 그런 것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세상에서도 그런게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우리가 그분이 어떤 분인데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를 두고 깨달은 성도들은 너무도 감사하고 감격해서 아마 많이 운다 그러는데, 우리는 이거를 얼마나 깨닫고 얼마만큼 좋아서 감격해서 물어봤는지, 주님을 내가 사랑할 수 있다니. 내가 주님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그분이 물리치지 아니하고 받아주시다니, 이런 일이 있을수가 있겠는가.
잘난 사람을, 아마 처녀들이 세상에 잘난 사람, 인물 잘나고 학벌 좋고 실력있고 뭐 많고 다 잘난 그런 사람을 두고 있다면 ‘아 저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하고 목메는 그런 대상이 많을 것이고, 또 총각들도 그런 처녀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건데. 그럴 수 있을 것인데 그래봐야 다 별 것 없는 그런 사람, 다 거기서 거긴데, 세월이 지나가면, 사람 외모도 그렇습디다 보니까, 외모도 젊은 시절에 참 미모도 있고 아름답고 모든면에 다 남자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런 여인인데 세월이 점점 지나고 중년이 되고 또 노년이 점점 되어져가니까 이상하게 흉하게 그렇게 변질되는 그런 여인들도 있고, 남자도 마찬가지고, 젊었을때는 보니까 뭐 인물도 별로 그만그만하고 모든게 그만그만한데, 늙어져갈수록 점점 남편의 마음을 다 빼앗는 그렇게 늙어져가는 그런 아내들도 있다 그말이지요. 사람이란 것은 불변한 것이 아닙니다. 변합니다. 마음도 생각도 가치관도 외모도 다 변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만 보고 우리는 모든 것을 판단하고 취사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멀리봐야 되고 길게 봐야 되고 전체를 보면서,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이 사랑으로 우리가 모든 것 사랑하고 말씀대로만 해 나가면 잘되도 만족, 잘못되도 만족 여기는 후회가 없는 것인데, 말씀을 떠나 사는 것은 지금 아무리 잘되봐야 늘 불안합니다. 화약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처럼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그리 되어지는 겁니다. 이러니까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에 우리가 감격하고 감사하고 놀라고 여기 전 가치를 두고 주님을 사랑하는 이런 우리가 되어야 겠습니다.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주를 사랑하므로 주의 사랑을 다 받고 주의 사랑을 받으므로 주를 사랑하고, 주를 사랑하므로 주의 계명을 지키고 주를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여 아끼고, 그러므로 점점 주를 사랑함이 뜨거워지고 사랑의 사람이 되어지는 이 말씀을 생각하고 실제 이렇게 되도록 노력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랑은 최고의 법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참 사랑이고 하나님 사랑에서 나온 인간 사랑이 참 사랑입니다. 사랑하므로 사랑을 받고, 사랑하므로 계명 지키고, 사랑하므로 사람을 사랑하여 아끼고, 그러므로 더욱 사랑이 뜨거워지고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지는 이 생활이 우리 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