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0608-주후(마5:6-10)
산상보훈2014-06-16조회 469추천 36
(설교원문)
20140608 주후
마태복음 5:6-10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세상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많이 있어도 그 좋은 것을 자기 것을 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그런 의미로 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이치도 그러하고 또 신앙도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에게 영육간에 한없는 복을 너무도 많이 가득가득 쌓아두고 예를 들자면 하늘에서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얼마든지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고 기다리고 계시지만은 우리들이 그 복을 받을만한 행동이나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주고 싶어도 주실 수가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평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유없는 그런 근거없는 복을 주실수가 없는 분입니다. 얼마든지 복을 주고 싶고 주시기를 원하고 주실 수 있는 분인데 우리들이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런 일을 하지를 아니하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못하고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시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다 복의 말씀들이고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을 가르쳐주는 말씀들인데 이런 말씀을 우리가 아무리 읽어도 들어도 또 알아도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복은 우리에게 오지를 아니합니다. 팔복에 대한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여덞가지 복 영육간에 좋은 복들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두셔도 우리가 이 복들 하나하나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못하면 이 복은 받는 사람은 받아도 우리 자신들은 이 복과는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겁니다.
오전에 말씀드리기를 자기를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또 스승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자기를 만드는 것은 누굽니까? 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누굽니까? 자기를 만드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복되게도 만들고 자기가 자기를 복 없게도 만드는 겁니다. 우리 저 000 저 문 좀 딱 닫아버려요. 000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되요?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것이 자기가 자기를 복되게도 만들고 복이 없게도 만든다는 사실 이걸 우리가 살펴서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원망할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원망할 것이 없고 남을 원망할 것이 없고 시대를 환경을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그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를 모르니까 원망도 하고 불만 불평도 하고 하늘을 향해서 욕도 하고 또 사람을 두고 시비곡직도 하고 온갖 옛사람의 그런 생활을 많이 하지만은 우리 믿는 사람들 그중에도 이 복음을 받은 우리들은 그럴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배경은 하나님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뭐가 있습니까? 000?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뭐가 있습니까? 000, 뭐가 있습니까? 말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배경입니다, 든든한 배경입니다. 그분은 자존자시며 창조주시며 전지전능자시며 완전자입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입니다. 그분이 주권자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배경이신데 그분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있다고요? 뭐가 있습니까? 그분과 우리 사이에 예수님의 대속이 있습니다. 중보가 있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내것을 삼을 수 있도록 모든 근거도 있고 약속도 되어있고 실제가 다 되어있는데 문제는 우리들이 그것을 믿지 아니하고 받아가지지 않으니까 문제입니다. 억만장자 아버지가 재산이 굉장히 많은데 그 아들이 길거리 나가서 노숙을 하고 다닙니다. 아버지가 속이 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야 이놈아, 이 아버지 재산이 억만장자니까 수천억이 넘고 수조원이 넘는다. 이거 전부다 니껀데, 쓰면 되는데 왜 안쓰냐?’ 그말이지요. 안 믿으니까 ‘아버지 것이지 나하고 상관이 있습니까? 내것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다 준다 그래도 아들이 안 받아들이고 안쓰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싫어서 안쓰겠다는데. 못 믿겠다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지고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 되는 겁니다. 꼭 이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전부다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들이 갖다 쓰면 되는데,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천국에 제자된 서기관마다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어쓰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국에 제자된 서기관마다. 믿음만 가지고 그냥 가져다 쓰면 되는데 왜 안쓰냐 그말이지요. 복이 우리 앞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 주신 복을.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에서 귀하게 아름답게 가정에서 학교에서 친구 사이에서 직장에서 이웃간에도 교회에서 얼마든지 귀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존귀한 사람 영광스러운 사람이 될 수가 있는데 우리가 그리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누구한테 있느냐? 하나님은 억장이 무너져 속이 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왜 그리 못하느냐? 원인이 누구한테 있느냐? 원인이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한테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후 말씀 들어가기전에 이것 하나 꼭 기억하십시다. 자기를 만드는 것은, 나를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를 귀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천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복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복없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지, 다른 것에 다른 사람에게 다른 존재에게 있지를 아니하다는 것을 꼭 기억을 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한번 더 여덟가지 복을 살펴 나는 과연 이런 복을 받고 있는가를 돌아보십시다.
여덟가지 복에 대해서 대개는 마음에 대해서 마음과 관련된 마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령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심령은 마음입니다. 애통하는 것은 무엇에 작용입니까? 애통은 뭘로 하는 겁니까?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마음에 없는 눈물은 연기지, 연극이지 진짜 눈물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애통이 진정한 애통입니다. 온유는 무슨 작용입니까? 마음에 믿음 없는 온유는 온유가 아닙니다. 그것도 허세지, 온유 아닙니다. 또 의에 주리고 목 마른 것도 음식은 물질에 음식은 고깃덩어리가 주리고 목이 말라서 반응하지만은 의에 주리고 목 마른 것은 마음의 작용이지 몸의 작용이 아닙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도, 긍휼도 마음의 작용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것도 마음입니다. 화평케 하는 모든 것은 몸도 하지만은 마음에서부터 나와야 진정한 화평이 되어집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것도 몸과 마음이 같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부 마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먼저 돌아봐야 됩니다. 마음의 중요성을 생각해봐야 됩니다.
첫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간단하게 또 한번 더 복습하고 넘어가십시다. 심령이 뭐냐? 심령은 영에게 속한 마음, 영에게 붙들린 마음이 심령이다. 가난은 무엇이냐? 가난이라 말은 없다는 말이고 적다는 말이고 작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가난이라 말은 없다는 말인데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이 없으면 가난합니까? 돈이 없으면 가난합니까? 무엇이 없으면 가난합니까? 자기것이 없으면 가난합니다, 자기것이 없으면. 내 것이 없으면, 내것이 없다 말은 모든 것에 대한 주인의 권리가 내게 없다 그말입니다. 내 마음에 권리가 나한테 없으니까 마음이, 심령이니까 당연한 것이고 가난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가난하게 되느냐? 그 이유는, 천국이 저희 것이 되어있기 때문에 가난한데 심령이 심령이 되어있으니까 가난하기를 무엇에 대해서 가난하냐? 천국에 대해서 가난하다. 이거는 신비한 거라서 자꾸 좀 말해야 되는데, 가졌는데 왜 가난할까? 가졌는데 왜 가난할까? 천국을 가졌는데 왜 가난하고 더 가지고 싶을까? 세상에 모든 것은 어느정도까지는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을 수 있습니다. 올라가도 더 올라가고 싶을 수 있고, 그러나 모든 물질은 다 어떤 겁니까? 모든 물질은 다 어떠합니까? 자, 세상에 모든 물질에 속한 것은 어느정도선까지는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을 수 있고 더 올라가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물질과 육체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어떠합니까? 유한합니다. 한계가 있으니까 가다가다보면 뭐가 있습니까? 끝이 있습니다. 거기까지 올라가보면 그다음부터는 더 갈때가 없어서 그래서 가지고 싶지를 않습니다. 다 가져보고 맛보고 누려보면 거기서 거기고,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속한 하나님은 천국에 왕입니다. 진리는 천국에 법입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또 진실도 천국에 쓰여지는 것들입니다. 참사람은 천국에 백성입니다. 이런것들은 아무리 가져도,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더 가질 것이 더 많아진다는게 이해가 되십니까? 찬송을 한 장 할까요? 오전에는 엠프 때문에 예배가 뒤숭숭했는데, 오후에는 엠프가 정상으로 돌아가면 정신 차려서 말씀을 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엠프 또 나가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천국에 속한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어떠하다고요? 가지면 가질수록 뭐가 많아진다고요? 가질 것이 많아지는게 천국의 비밀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어떠하다고요? 뭐가 많다고요? 알 것이 많아집니다. 신비하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우주라는 것은 무한은 아닌데 우주란 것도 알면 알수록 넓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넓나 싶은데 그런데 우주도 유한이니까 어느정도까지 알고나면은, 어제 신문에 보니까 미국에서 앞으로 과학에 이제 미국에 그 역할 하나 해놓은 것이 화성에다가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그런 목표를 정해놓고 노력을 한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신문 보셨습니까? 화성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하는 예상기간이 얼마나 걸린다고요? 000 선생님 봤어요? 000 선생님 봤어요? 얼마나 걸린다고, 혹시 보신 분 안 계십니까? 어제 신문에 나왔던데. 사람이 화성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그 기간이 천년이 걸린답니다, 천년 앞으로. 예상 천년. 그래도 가능할지. 뭘 보내가지고 거기다 일단 가서 기구 싣고 가서 온도가 영하 60도가 내려가니까 프레온 가스를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어서 열을 가해서 오존층을 만들어 열을 가해서 밑에 얼음을 녹이고, 그러면 물이 녹으면 산소가 생기니까 그 기간이 얼마 걸리고, 또 에너지 어떻게 하고 뭐하고 그래가지고 사람이 산소통 메고 거닐 수 있을만큼 만드는데 기간이 약 천년쯤 지나면 그리되지 않겠는가 하고 현대과학이 그렇게 예상을 한다는데 그것도 꽁꼬리 철학일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계획이고 예상이지 앞으로 천년까지 우주가 갈지 안갈지 모르겠고 천년뒤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어쨌든 우주라는 것도 워낙 넓어서 알면 알수록 알 것이 많아진다, 그러나 우주는 무한이고 유한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까지 알고나면은 그때부터는 ‘아 이게 우주구나’ 하고 다 찹니다. 그런데 영계는 무한이기 때문에 억만년이 지나가도 알 것은 자꾸 더 많아지고 억억만년 지나가면 알것이 더 많아지는게 영계고 하나님이고 구원의 모든 세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가질수록 더 가난해지는 것이 천국이다 그말이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이게 천국입니다. 불행입니까, 행복입니까? 사람이 물질에 대한 것은 욕심이 많을수록 고통스럽습니다. 괴롭습니다. 유한한 것이니까 내가 가지면 남이 못 가집니다. 그래서 물질은 가지려고 전쟁을 해야되고 싸워야 되고 아귀다툼이 되어집니다. 타락 후에 속한 죄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신령에 속한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데 가질 것은 더 많아지고 자기라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도바울이 사도요한이 점점 온전한 사람 구비한 사람 지식적으로 능력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구비하고 구비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이 자꾸 더 되어져가는데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니까 자꾸 더 죄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고칠 것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눈이 더 밝아지고. 그러니 자기는 점점 더 죄인되니까 더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들은 더 존경하고 더 좋아하고 하나님은 점점 더 기뻐하시고, 만고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있겠습니까? 이게 우리가 가는 길인데 왜 우리가 이 길을 가지 못하는가? 가지 못하는 이유가 뭣때문입니까? 왜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어두워지는가? 왜 이 비밀을 깨달아 알고도 이 길을 가지 못하는가? 왜 가지 못합니까? 이것보다 더 가치있고 귀한 것이 인간 세상에 있습니까? 기독교는 평가적인 도입니다. 가치를 따져보고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이것 버리고 그걸 따라가라는게 기독교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어느면을 따져봐도 이것보다 더 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존귀하고 가치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가다가 넘어져도 이 길 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 이해 못해서 비웃고 조롱해도 이 길을 가는 것이고, 가면서 가야 되는데 길 가지 못하니까 하나님 앞에 징계도 맞고 매도 맞고 아프지만은 그래도 아무리 찾아봐도 그래도 이것이 가장 좋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겁니다. 다른 곁길로 가지를 못 합니다. 이해가 되요, 000 샘? 이해가 되요? 이해가 잘 안되지요 아직까지.
그러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갈급하고 갈급하고 심령이 가난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심령이 가난하십니까? 내 심령은 가난한가? 내 심령은 돈에 대해서는 가난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한데, 천국에 대해서는 전혀 부족함을 못 느끼는가? 가난을 못 느끼는가? 우리 심령이 어둡고 천국에 사람이 되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두 번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은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애통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마음인데, 너무 괴로워서 너무 너무 괴로운 고통스러운 마음을 애통이라 그럽니다. 너무 슬퍼서, 너무 괴로워서 그래서 마음이 찢어질만큼 아픈 그 마음 상태를 가리켜 애통이라 그리 말합니다. 그게 좋은 겁니까? 물질적으로 물리적으로 인간관계적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런데 그게 좋은 것인가 복인가 그말입니다. 그런 것은 복이라 하지 않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뭐가 있다고요? 애통하는 자는 뭐가 있다고요? 복이 있나니. 집안에 사람이 사고 나서 죽었는데 애통하는데 복이 있습니까? 무슨 복이 있습니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 애통의 원인이 뭐냐? 애통의 원인이, 이유가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찾아서 죄를 찾으니까 그다음 뭐가 나옵니까? 죄가 발견되면 그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죄를 찾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요? 죄를 지었으니까 매를 맞아야지요. 죄를 발견하고 나니까 하나님의 매가 진노가 생각이 납니다. 징계가 두렵습니다. 심판이 두렵습니다. 벗은 자로 드러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니 이런 진리를 모르고 이런 생활 해보지 않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고 자꾸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설교하면은 쉬운 설교 알아듣기 좋은 설교 재밌는 설교를 찾아보면,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서 꽉 찼습니다. 그거 몇 개 인용해서 써먹으면 교인들 듣기 쉽고 잠도 안오고 재밌고 다 은혜 받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백날 들어봐야 말해봐야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방언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방언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막 하는 그게 방언이라 그러는데 제가 그리 대답합니다. 그렇게 혀 꼬부라진 소리하면은 그게 무슨 유익이 있는건데? 그렇게 해서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데? 그렇게 방언하면은 자기한테 남는게 뭐가 있냐 그말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에 구원에 무슨 상관이 있으며 무슨 유익이 있느냐 그말입니다. 사람들이 전부, 조용기 목사님 순복음교회 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 그런 방언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대로. 그런데 순복음교회가 나와가지고 그런 혀 꼬부라진 소리하고 만들어내니까 그때부터 성경 방언이 그런 방언으로 유행이 됐는데 전부다 가짜입니다, 연극이고. 거의 대개는 다 가짜입니다. 마찬가지로 설교도 그렇습니다. 듣는 그 시간에 듣기 좋은 말, 알기 쉬운 말, 재미있는 말, 도덕적인 교훈, 윤리적인 교훈, 세상 소식 그거 암만해봐야 그것이 우리 신앙 생활에 무슨 상관 있느냐. 내가 신앙생활 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 그말입니다. 아무 가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씀은 들어가지고 기억을 하고 생각을 하고 연구하고 써먹어보면 통하는데 맛을 아는데 안 듣지요. 기억 안하지요. 생각 안하지요. 듣지 않고 기억 안하고 생각 안하니까 머릿속에 안남지요. 모르지요. 실행 안하지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고 구원과는 아득하게 거리가 멀고. 아무리 오래 믿어도 구원의 실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러니까 하늘의 복을 전하면 캄캄합니다. 무슨 말이지? 못 알아듣습니다. 아는 사람들도, 설교자의 능력이고 영능 차이지만은 아는 사람도 어두워져있으면 이 말씀이 안 들립니다. 잠이나 오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애통이 왜 복이 있냐 그말입니다. 애통하는데 무슨 복이냐 그말입니다.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그게 무슨 복입니까? 그 애통이 어떤 애통이냐에 따라 다르다 그말입니다. 애통이 하나님 앞에 자기가 잘못 산 자기 과거의 죄를 발견하니까 죄송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겁도 나고 하나님의 징계가 겁도 나고 벗은 자로 드러날 것이 생각하니까 그것도 겁도 나고, 돌아갈 수 없는 세월 아깝기도 하고 원통도 하고, 이런 걸 생각하니까 마음이 굉장히 슬프고 괴롭습니다. 그런 애통하는 마음 안 가져 보셨습니까? 저는 많이 가져봤는데요? 그런 애통하는 마음을 많이 가져 봅니다. 그러면 그런 애통을 가지고 나면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고 나면 그때는 기분이 나쁩니다. 욕 먹는데 기분 좋을 리가 있습니까? 굉장이 기분 나쁩니다. 그런데 욕을 얻어먹고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괜찮아져버립니다. 차라리 욕 얻어 먹는게 낫다. 그런데 욕을 할때는 화를 내고 있는대로 퍼부어서 욕을 하고 나면 그때는 시원합니다, 후련합니다. 그런데 좀 지나고나면 영 꾀꼬롬하고 불쾌하고 괴롭습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첫째는 자기 자신, 자기 죄, 그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 징계, 심판, 벗은 자로 드러날 것, 이런 것 생각하니까 두렵고 죄송하고 그러니 마음이 괴롭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게 많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만은 내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말로 행동으로 일 사리판단의 잘못됨으로 일처리로 내 잘못된 생활로, 또 은사위치에 있는 그런 분들은 보이지 않는 면 하나님 앞에 바로 된 생활 하지 못해서 그래가지고 남에게 직접적으로 손해를 끼치고 줘야될 유익을 주지 못하니까 마음이 괴롭고 밥맛이 없고 잠이 안오고 그리 될 때 그게 애통하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을 가질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면 복을 주지 않겠습니까? 위로를 하신다 그말입니다. 마음에 위로하는 것은 마음이 그런 애통의 마음을 가지고 나면 가진 마음이 한편으로는 아픈데, 그 아픔이 지옥에 속한 범죄에 속한 그런 아픔이 아니고 천국에 속한 아픔이기 때문에 그 아픔은 굉장히 상쾌한 그런 것이 있는 애통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애통이고 그 위로 속에는 그런 마음을 밝게 맑게 명랑하게 상쾌하게 만들어주면서 진리를 깨닫게해주면서 영감이 함께하여 주님이 함께하시는 걸 보여주면서 그러면서 육의 복도 주시고, 이런 영육의 복을 주심으로 위로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것이 애통하는 자의 위로, 받는 복입니다. 이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세 번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말하면 000 무슨 뜻이라고요? 온유? 옳지. 따뜻하고 부드럽다. 글자 그대로 말하면 따뜻하고 부드럽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어디서 나온다고요? 따뜻하고 부드러움은 어디서 나온다고요? 믿음은 원래 해석이고, 거기까지 가기 전에, 넉넉함에서 나오지요. 넉넉하다는 말은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넉넉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본문에 말씀하신 온유는 우리의 넉넉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내가 부한데 처할 줄도 알고 가난에 처할줄도 알고 지족하는 마음을 배웠다. 많이 가져도 그 많음으로 인해서 손해보지 아니하고 적어도 부족함을 못 느끼고 주시는 대로 만족이, 백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은 물질에 대해서 부족함을 느껴본적이 없다고. 그러니까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쓰는 겁니다. 많이 주시면 많이 주실 이유가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잘 쓰고, 안 주시면 주실 필요가 없고 안 주신 이유가 있으니까 주시지 않는 그대로 쓰면 되고, 그러니까 사람의 모든 고통 받는 원인이 뭐라고요? 사람이 고통 받는 모든 원인은 자기 욕심입니다, 욕심.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대로만 가지고 있으면 만족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나한테 만원짜리 주신다고 하는데 나는 욕심이 많아서 ‘하나님은 나한테 만원짜리 주시겠습니까? 나는 백만원짜리 가져야 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하고 싸웁니다. 내 욕심은 백만원짜리를 가져야되겠고, 하나님은 너는 백만원짜리 가지면 고장나니까 만원짜리 가져야 되겠고. 그러면 내가 하나님하고 싸우는데 그때부터 만원짜리 넘어서서 만원짜리 이상을 가지려고 하는 모든 것은 전부다 사욕입니다. 그 사욕은 전부 하나님과 대적이 됩니다. 그때부터 하는 그 생활은 전부다 죄고, 욕심이고 죄가 된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만원짜리 주시면, ‘아이고 만원짜리 주십니까.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십만원짜리 주시면 또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주시면 주시는 대로 거기서 만족해서 자기를 거기에 맞춰서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러면 온유란 것은 넉넉함에서 나온다는 것인데 넉넉함은 많다는 뜻인데 그러면 예수 믿는 가난뱅이, 성경에 제일 가난한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이 뭡니까? 나사로는 가난뱅이 거지였습니다. 나사로가 온유 했겠습니까? 아주 인색했겠습니까? 나사로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나사로는 아주 온유해서 그래서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서 낙원에서 편안하게 위로 받는 것 보니까 그 나사로는 세상에서 온유하게 살았습니다. 없는데도 아무 것도 없는 거지인데도 어떻게 온유한가?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세상 모든 걸 다 가져도 하나님이 나한테는 이 형편, 이 처지, 이 상황이 나에게는 영원을 두고 온 인류역사에 가장 내게는 좋은 환경 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형편 현실을 만들어주셨구나. 이것이 영원을 두고 나에게 가장 복된 형편이구나.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구나. 그래가지고 그 현실을 상대하니까 거기서 근심도 걱정도 조급함도 욕심도 없으니까 거기서 넉넉함이 나온다 그말이지요. 왕이 거지한테 찾아가서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주기를 원합니까?’ 하니까 ‘나는 이 나라 왕이니까 뭐든지 부귀 영화 원하는 것 다 줄 수 있으니까 뭐 주면 되겠습니까?’ 하니까 뭐 달라 했다고요? ‘임금님이 햇빛을 막고 있으니까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그림자가 져서 날이 춥네요.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그게 소원입니다.’ 그 사람 안믿는 사람이라도 철학이 있으니까 왕보다 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현자라 그러지요.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 줄 압니다. 세상뿐이면 이모양 저 모양으로 사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배경삼고 천국 바라보니까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지 않습니다. 있는 것을 우리가 다 덮고 가리고 자기와 세상 이런것 때문에 다 가려서 안보이고 일부러 안보고 그래서 그렇지 실상이 있는 것을 찾아보면은,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란 것은 뭘 많이 하라고요? 생각을 하고 명상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말씀가지고 자꾸 들어가서 명상을 하면은 그 속에서 자꾸 나오는 거니까. 온유는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다. 믿음이란 것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과 구원의 세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믿으면 그 사람은 모든 세상 현실 상대를 넉넉함으로 온유하게 상대할 수 있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전부 자기의 이용물로, 밥으로 삼아서 천국의 영원한 기업을 얻는데 자본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네 번째,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가 뭐냐?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을 의라 그럽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의입니다. 그러면 의의 반대는 불의입니다. 의의 반대는 불의.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것인데 구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그러면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의인데 불의는 무엇입니까? 의의 반대니까 불의는 뭡니까? 피조물의 뜻, 피조물의 뜻대로 하고 피조물의 뜻을 이루는 것, 그 중심은 자기, 자기 뜻대로 자기 뜻을 위해서 하는 것이 불의고 대적입니다. 이 전투라는 것은 우리 모든 생활에 전부다 해당이 되어지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의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의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 의입니다. 순간 순간에 보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사리판단하는 것, 모든 자기 생활에서 그 순간 순간에 자기 심신에 움직임 작용을 하나님의 뜻대로 죄 안 짓고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것을 의라 그러고 이게 단편적인 의고, 이게 개별적인 그런 의라 그리 말할 수가 있겠고, 이런 것들이 모여가지고 하나님의 하나씩 하나씩 온전한 의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니 그 종류는 수도없이 많은 겁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친척이 있습니다. 자기 친척이 있고 이웃이 있는데 그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저 분을 좀 전도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품고, 그러면 전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의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두고 그 사람 위해서 그 가정 위해서 기도를 꼬박꼬박 합니다. 의를 행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겁니다. 그리고 틈나면 기회를 봐 조심스럽게 심방도 한번씩 갑니다. 의를 행하는 겁니다. 선물도 사다 줍니다. 의를 행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1년 만에, 1년동안 기도하고 조심하고 덕을 쌓고 또 심방하고 권면하고 그래가지고 1년만에 그 사람을 교회로 전도를 해 왔습니다. 이건 뭡니까? 이게 의인데, 이 의는 어떤 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겁니까? 하나님 뜻을 이룬 겁니까? 이건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겁니다. 이 뜻을 이루기까지 얼마 걸렸다고요? 1년이 걸린 겁니다. 1년동안 뭐 했다고요? 1년 동안에 뭐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겁니다. 1년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가지고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선물 사주고 조심해 덕을 쌓고 전부 의를 행한 겁니다. 그렇게 1년동안 다 의를 행해서 쌓아놓으니까 1년만에 그 사람이 교회로 전도되서 구원 받았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겁니다. 이게 말하자면은 하나 완성된 의, 이렇게 만드는 것이 의를 이루는 것이고, 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 하나하나 행하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이라 그렇게 구별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주리고 목 마르다. 주리고 목 마르다 말은, 배 고프다는 말이고 갈증이 난다 그 말이고 이거는 고깃덩어리 아니고 심령이니까 마음에 갈급한 겁니다. 마음이 주리고 급하고 갈급하고 된 그게 바로 이런 것들 두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되는데 내가 오늘 하루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되겠는데 하나님의 뜻을, 오늘 하루에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되겠는데 그래서 거기 대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어떻게 행하는 것이, 어떤 일을 어떻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일까? 이걸 자꾸 생각을 하고 연구하고 그것을 원하는 이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그러니까 자기 모든 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자기 원하는, 자기 속에 있는 별에별 종류의 흉측하고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추한 그런 소원과 욕심과 감정과 온갖 마음의 작용, 그런 것들을 만족시키며 몸에 익어진 그 습성들 그것을 만족시키는 그게 자기 뜻이고 피조물 뜻인데, 그런 것들하고 싸워서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 찾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뜻대로 행할까, 뜻을 이루어드릴까 이걸 늘 생각하면서 연구하면서 그래가지고 주리고 목마른 그 사람은 그 의를 충만히 이룰 수 있으니까, 배 부르다 말은 만족했다 말이고,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배 부를 것이라 그랬으니까 배 부르다 말은 만족하다, 먹을만큼 먹었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만큼 다 이루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이런 갈급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 생각해보면, 배부르다 말은 또 하나 생각해보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말씀으로 다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뜻대로 행하고 뜻을 이루는 그 사람의 것이 세상에 모든 것이 전부다 그의 것이고 그가 주인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의인의 자손은 걸식하는 법이 없는 것도 다 여기 해당이 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잣대로 삼아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내 마음은 나는 의에 주리고 목 마르냐, 아니면 불의에 주리고 목 마르냐. 불의에 주리고 목 마른 줄을, 그럴 리가 있겠나 싶은데 자기 감정대로 하는게 불의에 주리고 목 마른 겁니다. 그렇게 못해서 애가 타는 것. 자기 뜻, 자기 소원대로 하고 싶은데 그것 못해서 애가 타는 것, 올라가고 싶은데 못 올라가니까, 대우 받고 싶은데 대우를 못 받으니까, 가지고 싶은데 가지지 못하니까, 누리고 싶은데 못 누리니까 애가 타는게 전부 불의에 주리고 목마른 그런 마음이다 그말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의에 주리고 목 마른 복 있는 사람이냐 아니면 불의에 주리고 목 마른 그런 불행한 사람이냐 한번 또 돌아보십시다.
다섯 번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 긍휼은 다른 말로 말하면 자비라고도 하고 사랑이라고도 하고 구원이라고도 합니다. 말하자면은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긍휼입니다. 내가 사람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말하자면은 내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서 구원하기 위해서 애를 쓰면 하나님은 나를 긍휼히 여겨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를 쓴다, 이게 마음에서부터 나와야 되는 겁니다. 너희가 남의 죄를 사해주지 않으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죄를 사해주지 않을 것이다, 이게 성경입니다. 긍휼 없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고, 긍휼이 모든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도 참 많은 말씀이 있는데,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는,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대속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아끼는 그런 것이 있는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그런 자비심 이런 것이 있는 가를 우리가 자신을 좀 돌아봐야 됩니다.
여섯 번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청결이라 말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맑다는 말은, 찌꺼기가 없다는 말이고, 깨끗한 것은 원래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본질 본성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 가지고 그 마음 속에 사사로운 것이 없는 그게 맑고 깨끗한 것이고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고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이고, 하나님에게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마음이 깨끗해지는 방법은, 청결해지는 방법은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 마음속에 품으면 됩니다. 예수님 대속을 마음 속에 품고 이 대속을 이루어주시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셔서 희생하셨는지, 어떤 사랑과 희생이 들어갔는지를 생각을 하고 이 대속을 품고 이 대속 입은 자로 살려고 자꾸 노력하다보면 마음이 청결해지게 되어집니다.
일곱 번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화평이라 말은, 화목과 평안함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만물 사이를 화목시키는 겁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화목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 화목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화목하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화목은 하나님과 나 자신의 화목은 그 표시가 내가 다른 사람과 화목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의 화목이 하나님과 화목 없는 인간 화목은 이거는 다 인본이고 그러니까 하나님과 화목하면 인간 화목은 필연적으로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 없는데 인간 화목은 있어도 소용 없고, 인간 화목이 없으면 하나님 화목은 바로 되지 못한 겁니다. 또 평안이란 것은 모든 것이 다 안정되게 질서 정연하게 되어있을때 평안함은 있게 되어지는 것이고, 화목과 평안은 뗄 수 없는 하나입니다. 화목하면 평안이 있게 되고, 또 평안과 화목은 같이 나가는 것이라 그리 볼 수 있습니다. 화목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이고, 화목은 하나님의 자녀 권세를 얻게 하는 것이고, 화목은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게 하는 것이 화목이다 그래 말할 수 있고,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그말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대우를 받는다 그말입니다. 예수님 같은 대접을 받는다 그말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이거는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은 자라 그랬으니까 완성형이 되어있으니까 이거는 의를 행하는 것보다 의를 행한 그 사람이 되어지는 그 사람에 가치두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바로 의를 행한 그 사람, 의인의 나라가 천국이고, 천국은 의의 나라라 그런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 시간이 없고, 모두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간략하게만 설명드리고 넘어갔는데 이거 다음주까지 계속 갈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봐야 되고, 이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이 복을 받는 우리가 돼서 표가 나기까지 복을 받아야 됩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팔복을 받은 사람은 표가 나지 않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두 번째는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세 번째는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네 번째는요?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다. 이걸 읽으면서 외우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냐? 다섯 번째는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냐? 여섯 번째는 마음이 청결한, 나는 마음 속에 다른 마음이 없느냐? 사사로운 마음이 없느냐? 일곱 번째, 화평케, 나는 화평케 하고 있느냐? 하나님과 내가 화평하며, 하나님과 내가 화평하면 사람과 화평해야 되는데 이게 되어있느냐, 자기를 돌아봐야 됩니다. 또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았느냐? 그래가지고 되지 못한 만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간구하고 여덟가지 복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깊이있는 말씀이라서 자꾸 좀 생각해봐야 되는데, 듣기만 하고 실행해보지 않으면 맛이 없습니다. 과일의 껍데기는 먹어봐야 맛이 없습니다. 과일 속을 뽀개놓고 먹어보면 맛을 알게 되고, 맛을 알면 자꾸 찾게 됩니다. 이게 심령이 가난한 것이고 갈급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생각해보십시다.
20140608 주후
마태복음 5:6-10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세상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많이 있어도 그 좋은 것을 자기 것을 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그런 의미로 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상 이치도 그러하고 또 신앙도 역시 그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에게 영육간에 한없는 복을 너무도 많이 가득가득 쌓아두고 예를 들자면 하늘에서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얼마든지 우리에게 부어주시기를 원하고 기다리고 계시지만은 우리들이 그 복을 받을만한 행동이나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주고 싶어도 주실 수가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공평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유없는 그런 근거없는 복을 주실수가 없는 분입니다. 얼마든지 복을 주고 싶고 주시기를 원하고 주실 수 있는 분인데 우리들이 그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고 그런 일을 하지를 아니하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못하고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시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다 복의 말씀들이고 우리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을 가르쳐주는 말씀들인데 이런 말씀을 우리가 아무리 읽어도 들어도 또 알아도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복은 우리에게 오지를 아니합니다. 팔복에 대한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여덞가지 복 영육간에 좋은 복들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두셔도 우리가 이 복들 하나하나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못하면 이 복은 받는 사람은 받아도 우리 자신들은 이 복과는 상관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겁니다.
오전에 말씀드리기를 자기를 만드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고 또 스승도 아니고 하나님도 아니고 자기를 만드는 것은 누굽니까? 자기를 만드는 사람이 누굽니까? 자기를 만드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복되게도 만들고 자기가 자기를 복 없게도 만드는 겁니다. 우리 저 000 저 문 좀 딱 닫아버려요. 000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되요?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것이 자기가 자기를 복되게도 만들고 복이 없게도 만든다는 사실 이걸 우리가 살펴서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원망할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원망할 것이 없고 남을 원망할 것이 없고 시대를 환경을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몰라서 그리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를 모르니까 원망도 하고 불만 불평도 하고 하늘을 향해서 욕도 하고 또 사람을 두고 시비곡직도 하고 온갖 옛사람의 그런 생활을 많이 하지만은 우리 믿는 사람들 그중에도 이 복음을 받은 우리들은 그럴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배경은 하나님이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뭐가 있습니까? 000?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뭐가 있습니까? 000, 뭐가 있습니까? 말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배경입니다, 든든한 배경입니다. 그분은 자존자시며 창조주시며 전지전능자시며 완전자입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입니다. 그분이 주권자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배경이신데 그분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있다고요? 뭐가 있습니까? 그분과 우리 사이에 예수님의 대속이 있습니다. 중보가 있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것은 다 내것을 삼을 수 있도록 모든 근거도 있고 약속도 되어있고 실제가 다 되어있는데 문제는 우리들이 그것을 믿지 아니하고 받아가지지 않으니까 문제입니다. 억만장자 아버지가 재산이 굉장히 많은데 그 아들이 길거리 나가서 노숙을 하고 다닙니다. 아버지가 속이 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야 이놈아, 이 아버지 재산이 억만장자니까 수천억이 넘고 수조원이 넘는다. 이거 전부다 니껀데, 쓰면 되는데 왜 안쓰냐?’ 그말이지요. 안 믿으니까 ‘아버지 것이지 나하고 상관이 있습니까? 내것은 없습니다.’ 아버지가 다 준다 그래도 아들이 안 받아들이고 안쓰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가 싫어서 안쓰겠다는데. 못 믿겠다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억장이 무너지고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 되는 겁니다. 꼭 이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전부다 하나님의 것인데, 우리들이 갖다 쓰면 되는데,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천국에 제자된 서기관마다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어쓰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국에 제자된 서기관마다. 믿음만 가지고 그냥 가져다 쓰면 되는데 왜 안쓰냐 그말이지요. 복이 우리 앞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 주신 복을.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에서 귀하게 아름답게 가정에서 학교에서 친구 사이에서 직장에서 이웃간에도 교회에서 얼마든지 귀한 사람 아름다운 사람 존귀한 사람 영광스러운 사람이 될 수가 있는데 우리가 그리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원인이 누구한테 있느냐? 하나님은 억장이 무너져 속이 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왜 그리 못하느냐? 원인이 누구한테 있느냐? 원인이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한테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후 말씀 들어가기전에 이것 하나 꼭 기억하십시다. 자기를 만드는 것은, 나를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나를 귀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천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복되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나를 복없게 만드는 것도 나 자신이지, 다른 것에 다른 사람에게 다른 존재에게 있지를 아니하다는 것을 꼭 기억을 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한번 더 여덟가지 복을 살펴 나는 과연 이런 복을 받고 있는가를 돌아보십시다.
여덟가지 복에 대해서 대개는 마음에 대해서 마음과 관련된 마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심령은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심령은 마음입니다. 애통하는 것은 무엇에 작용입니까? 애통은 뭘로 하는 겁니까?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마음에 없는 눈물은 연기지, 연극이지 진짜 눈물이 아닙니다. 마음에서 쏟아져 나오는 애통이 진정한 애통입니다. 온유는 무슨 작용입니까? 마음에 믿음 없는 온유는 온유가 아닙니다. 그것도 허세지, 온유 아닙니다. 또 의에 주리고 목 마른 것도 음식은 물질에 음식은 고깃덩어리가 주리고 목이 말라서 반응하지만은 의에 주리고 목 마른 것은 마음의 작용이지 몸의 작용이 아닙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도, 긍휼도 마음의 작용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것도 마음입니다. 화평케 하는 모든 것은 몸도 하지만은 마음에서부터 나와야 진정한 화평이 되어집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것도 몸과 마음이 같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부 마음을 중심으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먼저 돌아봐야 됩니다. 마음의 중요성을 생각해봐야 됩니다.
첫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간단하게 또 한번 더 복습하고 넘어가십시다. 심령이 뭐냐? 심령은 영에게 속한 마음, 영에게 붙들린 마음이 심령이다. 가난은 무엇이냐? 가난이라 말은 없다는 말이고 적다는 말이고 작다는 말입니다.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가난이라 말은 없다는 말인데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이 없으면 가난합니까? 돈이 없으면 가난합니까? 무엇이 없으면 가난합니까? 자기것이 없으면 가난합니다, 자기것이 없으면. 내 것이 없으면, 내것이 없다 말은 모든 것에 대한 주인의 권리가 내게 없다 그말입니다. 내 마음에 권리가 나한테 없으니까 마음이, 심령이니까 당연한 것이고 가난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가난하게 되느냐? 그 이유는, 천국이 저희 것이 되어있기 때문에 가난한데 심령이 심령이 되어있으니까 가난하기를 무엇에 대해서 가난하냐? 천국에 대해서 가난하다. 이거는 신비한 거라서 자꾸 좀 말해야 되는데, 가졌는데 왜 가난할까? 가졌는데 왜 가난할까? 천국을 가졌는데 왜 가난하고 더 가지고 싶을까? 세상에 모든 것은 어느정도까지는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을 수 있습니다. 올라가도 더 올라가고 싶을 수 있고, 그러나 모든 물질은 다 어떤 겁니까? 모든 물질은 다 어떠합니까? 자, 세상에 모든 물질에 속한 것은 어느정도선까지는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을 수 있고 더 올라가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물질과 육체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어떠합니까? 유한합니다. 한계가 있으니까 가다가다보면 뭐가 있습니까? 끝이 있습니다. 거기까지 올라가보면 그다음부터는 더 갈때가 없어서 그래서 가지고 싶지를 않습니다. 다 가져보고 맛보고 누려보면 거기서 거기고, 더 이상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속한 하나님은 천국에 왕입니다. 진리는 천국에 법입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또 진실도 천국에 쓰여지는 것들입니다. 참사람은 천국에 백성입니다. 이런것들은 아무리 가져도,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더 가질 것이 더 많아진다는게 이해가 되십니까? 찬송을 한 장 할까요? 오전에는 엠프 때문에 예배가 뒤숭숭했는데, 오후에는 엠프가 정상으로 돌아가면 정신 차려서 말씀을 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엠프 또 나가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천국에 속한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어떠하다고요? 가지면 가질수록 뭐가 많아진다고요? 가질 것이 많아지는게 천국의 비밀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은 알면 알수록 어떠하다고요? 뭐가 많다고요? 알 것이 많아집니다. 신비하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우주라는 것은 무한은 아닌데 우주란 것도 알면 알수록 넓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까지 넓나 싶은데 그런데 우주도 유한이니까 어느정도까지 알고나면은, 어제 신문에 보니까 미국에서 앞으로 과학에 이제 미국에 그 역할 하나 해놓은 것이 화성에다가 화성에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그런 목표를 정해놓고 노력을 한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신문 보셨습니까? 화성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하는 예상기간이 얼마나 걸린다고요? 000 선생님 봤어요? 000 선생님 봤어요? 얼마나 걸린다고, 혹시 보신 분 안 계십니까? 어제 신문에 나왔던데. 사람이 화성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그 기간이 천년이 걸린답니다, 천년 앞으로. 예상 천년. 그래도 가능할지. 뭘 보내가지고 거기다 일단 가서 기구 싣고 가서 온도가 영하 60도가 내려가니까 프레온 가스를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어서 열을 가해서 오존층을 만들어 열을 가해서 밑에 얼음을 녹이고, 그러면 물이 녹으면 산소가 생기니까 그 기간이 얼마 걸리고, 또 에너지 어떻게 하고 뭐하고 그래가지고 사람이 산소통 메고 거닐 수 있을만큼 만드는데 기간이 약 천년쯤 지나면 그리되지 않겠는가 하고 현대과학이 그렇게 예상을 한다는데 그것도 꽁꼬리 철학일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계획이고 예상이지 앞으로 천년까지 우주가 갈지 안갈지 모르겠고 천년뒤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어쨌든 우주라는 것도 워낙 넓어서 알면 알수록 알 것이 많아진다, 그러나 우주는 무한이고 유한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까지 알고나면은 그때부터는 ‘아 이게 우주구나’ 하고 다 찹니다. 그런데 영계는 무한이기 때문에 억만년이 지나가도 알 것은 자꾸 더 많아지고 억억만년 지나가면 알것이 더 많아지는게 영계고 하나님이고 구원의 모든 세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가질수록 더 가난해지는 것이 천국이다 그말이지요. 이해가 되십니까? 이게 천국입니다. 불행입니까, 행복입니까? 사람이 물질에 대한 것은 욕심이 많을수록 고통스럽습니다. 괴롭습니다. 유한한 것이니까 내가 가지면 남이 못 가집니다. 그래서 물질은 가지려고 전쟁을 해야되고 싸워야 되고 아귀다툼이 되어집니다. 타락 후에 속한 죄 아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런데 신령에 속한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더 많아지는데 가질 것은 더 많아지고 자기라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사람이 사도바울이 사도요한이 점점 온전한 사람 구비한 사람 지식적으로 능력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격적으로 구비하고 구비한 사람, 존경받는 사람이 자꾸 더 되어져가는데 자기가 자기를 돌아보니까 자꾸 더 죄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고칠 것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눈이 더 밝아지고. 그러니 자기는 점점 더 죄인되니까 더 겸손해지고 다른 사람들은 더 존경하고 더 좋아하고 하나님은 점점 더 기뻐하시고, 만고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있겠습니까? 이게 우리가 가는 길인데 왜 우리가 이 길을 가지 못하는가? 가지 못하는 이유가 뭣때문입니까? 왜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어두워지는가? 왜 이 비밀을 깨달아 알고도 이 길을 가지 못하는가? 왜 가지 못합니까? 이것보다 더 가치있고 귀한 것이 인간 세상에 있습니까? 기독교는 평가적인 도입니다. 가치를 따져보고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이것 버리고 그걸 따라가라는게 기독교입니다. 자신 있습니다. 아무리 따져봐도 어느면을 따져봐도 이것보다 더 귀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존귀하고 가치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가다가 넘어져도 이 길 가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 이해 못해서 비웃고 조롱해도 이 길을 가는 것이고, 가면서 가야 되는데 길 가지 못하니까 하나님 앞에 징계도 맞고 매도 맞고 아프지만은 그래도 아무리 찾아봐도 그래도 이것이 가장 좋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겁니다. 다른 곁길로 가지를 못 합니다. 이해가 되요, 000 샘? 이해가 되요? 이해가 잘 안되지요 아직까지.
그러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더 갈급하고 갈급하고 심령이 가난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심령이 가난하십니까? 내 심령은 가난한가? 내 심령은 돈에 대해서는 가난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한데, 천국에 대해서는 전혀 부족함을 못 느끼는가? 가난을 못 느끼는가? 우리 심령이 어둡고 천국에 사람이 되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두 번째,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은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애통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마음인데, 너무 괴로워서 너무 너무 괴로운 고통스러운 마음을 애통이라 그럽니다. 너무 슬퍼서, 너무 괴로워서 그래서 마음이 찢어질만큼 아픈 그 마음 상태를 가리켜 애통이라 그리 말합니다. 그게 좋은 겁니까? 물질적으로 물리적으로 인간관계적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런데 그게 좋은 것인가 복인가 그말입니다. 그런 것은 복이라 하지 않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뭐가 있다고요? 애통하는 자는 뭐가 있다고요? 복이 있나니. 집안에 사람이 사고 나서 죽었는데 애통하는데 복이 있습니까? 무슨 복이 있습니까?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 애통의 원인이 뭐냐? 애통의 원인이, 이유가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찾아서 죄를 찾으니까 그다음 뭐가 나옵니까? 죄가 발견되면 그다음에 뭐가 나옵니까? 죄를 찾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요? 죄를 지었으니까 매를 맞아야지요. 죄를 발견하고 나니까 하나님의 매가 진노가 생각이 납니다. 징계가 두렵습니다. 심판이 두렵습니다. 벗은 자로 드러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니 이런 진리를 모르고 이런 생활 해보지 않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고 자꾸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설교하면은 쉬운 설교 알아듣기 좋은 설교 재밌는 설교를 찾아보면, 요즘은 인터넷 시대라서 꽉 찼습니다. 그거 몇 개 인용해서 써먹으면 교인들 듣기 쉽고 잠도 안오고 재밌고 다 은혜 받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백날 들어봐야 말해봐야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방언을 말하는데, 사람들이 방언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막 하는 그게 방언이라 그러는데 제가 그리 대답합니다. 그렇게 혀 꼬부라진 소리하면은 그게 무슨 유익이 있는건데? 그렇게 해서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데? 그렇게 방언하면은 자기한테 남는게 뭐가 있냐 그말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에 구원에 무슨 상관이 있으며 무슨 유익이 있느냐 그말입니다. 사람들이 전부, 조용기 목사님 순복음교회 오기 전까지 우리나라에 그런 방언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대로. 그런데 순복음교회가 나와가지고 그런 혀 꼬부라진 소리하고 만들어내니까 그때부터 성경 방언이 그런 방언으로 유행이 됐는데 전부다 가짜입니다, 연극이고. 거의 대개는 다 가짜입니다. 마찬가지로 설교도 그렇습니다. 듣는 그 시간에 듣기 좋은 말, 알기 쉬운 말, 재미있는 말, 도덕적인 교훈, 윤리적인 교훈, 세상 소식 그거 암만해봐야 그것이 우리 신앙 생활에 무슨 상관 있느냐. 내가 신앙생활 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 그말입니다. 아무 가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씀은 들어가지고 기억을 하고 생각을 하고 연구하고 써먹어보면 통하는데 맛을 아는데 안 듣지요. 기억 안하지요. 생각 안하지요. 듣지 않고 기억 안하고 생각 안하니까 머릿속에 안남지요. 모르지요. 실행 안하지요.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고 구원과는 아득하게 거리가 멀고. 아무리 오래 믿어도 구원의 실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러니까 하늘의 복을 전하면 캄캄합니다. 무슨 말이지? 못 알아듣습니다. 아는 사람들도, 설교자의 능력이고 영능 차이지만은 아는 사람도 어두워져있으면 이 말씀이 안 들립니다. 잠이나 오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애통이 왜 복이 있냐 그말입니다. 애통하는데 무슨 복이냐 그말입니다.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인데 그게 무슨 복입니까? 그 애통이 어떤 애통이냐에 따라 다르다 그말입니다. 애통이 하나님 앞에 자기가 잘못 산 자기 과거의 죄를 발견하니까 죄송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겁도 나고 하나님의 징계가 겁도 나고 벗은 자로 드러날 것이 생각하니까 그것도 겁도 나고, 돌아갈 수 없는 세월 아깝기도 하고 원통도 하고, 이런 걸 생각하니까 마음이 굉장히 슬프고 괴롭습니다. 그런 애통하는 마음 안 가져 보셨습니까? 저는 많이 가져봤는데요? 그런 애통하는 마음을 많이 가져 봅니다. 그러면 그런 애통을 가지고 나면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고 나면 그때는 기분이 나쁩니다. 욕 먹는데 기분 좋을 리가 있습니까? 굉장이 기분 나쁩니다. 그런데 욕을 얻어먹고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좀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괜찮아져버립니다. 차라리 욕 얻어 먹는게 낫다. 그런데 욕을 할때는 화를 내고 있는대로 퍼부어서 욕을 하고 나면 그때는 시원합니다, 후련합니다. 그런데 좀 지나고나면 영 꾀꼬롬하고 불쾌하고 괴롭습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첫째는 자기 자신, 자기 죄, 그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 징계, 심판, 벗은 자로 드러날 것, 이런 것 생각하니까 두렵고 죄송하고 그러니 마음이 괴롭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런게 많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만은 내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말로 행동으로 일 사리판단의 잘못됨으로 일처리로 내 잘못된 생활로, 또 은사위치에 있는 그런 분들은 보이지 않는 면 하나님 앞에 바로 된 생활 하지 못해서 그래가지고 남에게 직접적으로 손해를 끼치고 줘야될 유익을 주지 못하니까 마음이 괴롭고 밥맛이 없고 잠이 안오고 그리 될 때 그게 애통하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을 가질때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면 복을 주지 않겠습니까? 위로를 하신다 그말입니다. 마음에 위로하는 것은 마음이 그런 애통의 마음을 가지고 나면 가진 마음이 한편으로는 아픈데, 그 아픔이 지옥에 속한 범죄에 속한 그런 아픔이 아니고 천국에 속한 아픔이기 때문에 그 아픔은 굉장히 상쾌한 그런 것이 있는 애통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애통이고 그 위로 속에는 그런 마음을 밝게 맑게 명랑하게 상쾌하게 만들어주면서 진리를 깨닫게해주면서 영감이 함께하여 주님이 함께하시는 걸 보여주면서 그러면서 육의 복도 주시고, 이런 영육의 복을 주심으로 위로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위로가 있는 것이 애통하는 자의 위로, 받는 복입니다. 이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세 번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말하면 000 무슨 뜻이라고요? 온유? 옳지. 따뜻하고 부드럽다. 글자 그대로 말하면 따뜻하고 부드럽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어디서 나온다고요? 따뜻하고 부드러움은 어디서 나온다고요? 믿음은 원래 해석이고, 거기까지 가기 전에, 넉넉함에서 나오지요. 넉넉하다는 말은 많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넉넉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본문에 말씀하신 온유는 우리의 넉넉함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내가 부한데 처할 줄도 알고 가난에 처할줄도 알고 지족하는 마음을 배웠다. 많이 가져도 그 많음으로 인해서 손해보지 아니하고 적어도 부족함을 못 느끼고 주시는 대로 만족이, 백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은 물질에 대해서 부족함을 느껴본적이 없다고. 그러니까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쓰는 겁니다. 많이 주시면 많이 주실 이유가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잘 쓰고, 안 주시면 주실 필요가 없고 안 주신 이유가 있으니까 주시지 않는 그대로 쓰면 되고, 그러니까 사람의 모든 고통 받는 원인이 뭐라고요? 사람이 고통 받는 모든 원인은 자기 욕심입니다, 욕심.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그대로만 가지고 있으면 만족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나한테 만원짜리 주신다고 하는데 나는 욕심이 많아서 ‘하나님은 나한테 만원짜리 주시겠습니까? 나는 백만원짜리 가져야 겠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하고 싸웁니다. 내 욕심은 백만원짜리를 가져야되겠고, 하나님은 너는 백만원짜리 가지면 고장나니까 만원짜리 가져야 되겠고. 그러면 내가 하나님하고 싸우는데 그때부터 만원짜리 넘어서서 만원짜리 이상을 가지려고 하는 모든 것은 전부다 사욕입니다. 그 사욕은 전부 하나님과 대적이 됩니다. 그때부터 하는 그 생활은 전부다 죄고, 욕심이고 죄가 된다 그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대로 만원짜리 주시면, ‘아이고 만원짜리 주십니까.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십만원짜리 주시면 또 ‘감사하게 쓰겠습니다.’ 주시면 주시는 대로 거기서 만족해서 자기를 거기에 맞춰서 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그러면 온유란 것은 넉넉함에서 나온다는 것인데 넉넉함은 많다는 뜻인데 그러면 예수 믿는 가난뱅이, 성경에 제일 가난한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이 뭡니까? 나사로는 가난뱅이 거지였습니다. 나사로가 온유 했겠습니까? 아주 인색했겠습니까? 나사로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나사로는 아주 온유해서 그래서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서 낙원에서 편안하게 위로 받는 것 보니까 그 나사로는 세상에서 온유하게 살았습니다. 없는데도 아무 것도 없는 거지인데도 어떻게 온유한가?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세상 모든 걸 다 가져도 하나님이 나한테는 이 형편, 이 처지, 이 상황이 나에게는 영원을 두고 온 인류역사에 가장 내게는 좋은 환경 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형편 현실을 만들어주셨구나. 이것이 영원을 두고 나에게 가장 복된 형편이구나. 이렇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구나. 그래가지고 그 현실을 상대하니까 거기서 근심도 걱정도 조급함도 욕심도 없으니까 거기서 넉넉함이 나온다 그말이지요. 왕이 거지한테 찾아가서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주기를 원합니까?’ 하니까 ‘나는 이 나라 왕이니까 뭐든지 부귀 영화 원하는 것 다 줄 수 있으니까 뭐 주면 되겠습니까?’ 하니까 뭐 달라 했다고요? ‘임금님이 햇빛을 막고 있으니까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그림자가 져서 날이 춥네요.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그게 소원입니다.’ 그 사람 안믿는 사람이라도 철학이 있으니까 왕보다 위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현자라 그러지요.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 줄 압니다. 세상뿐이면 이모양 저 모양으로 사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배경삼고 천국 바라보니까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지 않습니다. 있는 것을 우리가 다 덮고 가리고 자기와 세상 이런것 때문에 다 가려서 안보이고 일부러 안보고 그래서 그렇지 실상이 있는 것을 찾아보면은,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란 것은 뭘 많이 하라고요? 생각을 하고 명상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말씀가지고 자꾸 들어가서 명상을 하면은 그 속에서 자꾸 나오는 거니까. 온유는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다. 믿음이란 것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진 하나님과 구원의 세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믿으면 그 사람은 모든 세상 현실 상대를 넉넉함으로 온유하게 상대할 수 있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전부 자기의 이용물로, 밥으로 삼아서 천국의 영원한 기업을 얻는데 자본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네 번째,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가 뭐냐?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을 의라 그럽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의입니다. 그러면 의의 반대는 불의입니다. 의의 반대는 불의.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린 것인데 구별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그러면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사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의인데 불의는 무엇입니까? 의의 반대니까 불의는 뭡니까? 피조물의 뜻, 피조물의 뜻대로 하고 피조물의 뜻을 이루는 것, 그 중심은 자기, 자기 뜻대로 자기 뜻을 위해서 하는 것이 불의고 대적입니다. 이 전투라는 것은 우리 모든 생활에 전부다 해당이 되어지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의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의입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 의입니다. 순간 순간에 보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사리판단하는 것, 모든 자기 생활에서 그 순간 순간에 자기 심신에 움직임 작용을 하나님의 뜻대로 죄 안 짓고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것을 의라 그러고 이게 단편적인 의고, 이게 개별적인 그런 의라 그리 말할 수가 있겠고, 이런 것들이 모여가지고 하나님의 하나씩 하나씩 온전한 의의 완성을 이루는 것이니 그 종류는 수도없이 많은 겁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을, 친척이 있습니다. 자기 친척이 있고 이웃이 있는데 그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 ‘저 분을 좀 전도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품고, 그러면 전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니까 의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두고 그 사람 위해서 그 가정 위해서 기도를 꼬박꼬박 합니다. 의를 행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겁니다. 그리고 틈나면 기회를 봐 조심스럽게 심방도 한번씩 갑니다. 의를 행하는 겁니다. 선물도 사다 줍니다. 의를 행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1년 만에, 1년동안 기도하고 조심하고 덕을 쌓고 또 심방하고 권면하고 그래가지고 1년만에 그 사람을 교회로 전도를 해 왔습니다. 이건 뭡니까? 이게 의인데, 이 의는 어떤 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겁니까? 하나님 뜻을 이룬 겁니까? 이건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겁니다. 이 뜻을 이루기까지 얼마 걸렸다고요? 1년이 걸린 겁니다. 1년동안 뭐 했다고요? 1년 동안에 뭐 했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겁니다. 1년 동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가지고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선물 사주고 조심해 덕을 쌓고 전부 의를 행한 겁니다. 그렇게 1년동안 다 의를 행해서 쌓아놓으니까 1년만에 그 사람이 교회로 전도되서 구원 받았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룬 겁니다. 이게 말하자면은 하나 완성된 의, 이렇게 만드는 것이 의를 이루는 것이고, 의를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이것을 위해서 하나하나 행하는 것은 의를 행하는 것이라 그렇게 구별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주리고 목 마르다. 주리고 목 마르다 말은, 배 고프다는 말이고 갈증이 난다 그 말이고 이거는 고깃덩어리 아니고 심령이니까 마음에 갈급한 겁니다. 마음이 주리고 급하고 갈급하고 된 그게 바로 이런 것들 두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되는데 내가 오늘 하루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되겠는데 하나님의 뜻을, 오늘 하루에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려야 되겠는데 그래서 거기 대해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어떻게 행하는 것이, 어떤 일을 어떻게 만들어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일까? 이걸 자꾸 생각을 하고 연구하고 그것을 원하는 이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그러니까 자기 모든 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자기 원하는, 자기 속에 있는 별에별 종류의 흉측하고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추한 그런 소원과 욕심과 감정과 온갖 마음의 작용, 그런 것들을 만족시키며 몸에 익어진 그 습성들 그것을 만족시키는 그게 자기 뜻이고 피조물 뜻인데, 그런 것들하고 싸워서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 찾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뜻대로 행할까, 뜻을 이루어드릴까 이걸 늘 생각하면서 연구하면서 그래가지고 주리고 목마른 그 사람은 그 의를 충만히 이룰 수 있으니까, 배 부르다 말은 만족했다 말이고,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배 부를 것이라 그랬으니까 배 부르다 말은 만족하다, 먹을만큼 먹었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만큼 다 이루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이런 갈급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하나 생각해보면, 배부르다 말은 또 하나 생각해보면, 세상에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겁니다. 말씀으로 다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뜻대로 행하고 뜻을 이루는 그 사람의 것이 세상에 모든 것이 전부다 그의 것이고 그가 주인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의인의 자손은 걸식하는 법이 없는 것도 다 여기 해당이 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잣대로 삼아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내 마음은 나는 의에 주리고 목 마르냐, 아니면 불의에 주리고 목 마르냐. 불의에 주리고 목 마른 줄을, 그럴 리가 있겠나 싶은데 자기 감정대로 하는게 불의에 주리고 목 마른 겁니다. 그렇게 못해서 애가 타는 것. 자기 뜻, 자기 소원대로 하고 싶은데 그것 못해서 애가 타는 것, 올라가고 싶은데 못 올라가니까, 대우 받고 싶은데 대우를 못 받으니까, 가지고 싶은데 가지지 못하니까, 누리고 싶은데 못 누리니까 애가 타는게 전부 불의에 주리고 목마른 그런 마음이다 그말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나는 의에 주리고 목 마른 복 있는 사람이냐 아니면 불의에 주리고 목 마른 그런 불행한 사람이냐 한번 또 돌아보십시다.
다섯 번째,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라. 긍휼은 다른 말로 말하면 자비라고도 하고 사랑이라고도 하고 구원이라고도 합니다. 말하자면은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는 것이 긍휼입니다. 내가 사람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말하자면은 내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서 구원하기 위해서 애를 쓰면 하나님은 나를 긍휼히 여겨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애를 쓴다, 이게 마음에서부터 나와야 되는 겁니다. 너희가 남의 죄를 사해주지 않으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죄를 사해주지 않을 것이다, 이게 성경입니다. 긍휼 없는 자는 긍휼 없는 심판을 받을 것이고, 긍휼이 모든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도 참 많은 말씀이 있는데,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는,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대속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아끼는 그런 것이 있는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그런 자비심 이런 것이 있는 가를 우리가 자신을 좀 돌아봐야 됩니다.
여섯 번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청결이라 말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맑다는 말은, 찌꺼기가 없다는 말이고, 깨끗한 것은 원래 본질 본성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본질 본성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 가지고 그 마음 속에 사사로운 것이 없는 그게 맑고 깨끗한 것이고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고 하나님을 만난다는 말이고, 하나님에게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마음이 깨끗해지는 방법은, 청결해지는 방법은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 마음속에 품으면 됩니다. 예수님 대속을 마음 속에 품고 이 대속을 이루어주시기까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하셔서 희생하셨는지, 어떤 사랑과 희생이 들어갔는지를 생각을 하고 이 대속을 품고 이 대속 입은 자로 살려고 자꾸 노력하다보면 마음이 청결해지게 되어집니다.
일곱 번째,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화평이라 말은, 화목과 평안함을 가리켜 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만물 사이를 화목시키는 겁니다. 하나님과 자기가 화목하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 화목시키고, 사람과 사람을 화목하고.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 화목은 하나님과 나 자신의 화목은 그 표시가 내가 다른 사람과 화목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의 화목이 하나님과 화목 없는 인간 화목은 이거는 다 인본이고 그러니까 하나님과 화목하면 인간 화목은 필연적으로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과 화목 없는데 인간 화목은 있어도 소용 없고, 인간 화목이 없으면 하나님 화목은 바로 되지 못한 겁니다. 또 평안이란 것은 모든 것이 다 안정되게 질서 정연하게 되어있을때 평안함은 있게 되어지는 것이고, 화목과 평안은 뗄 수 없는 하나입니다. 화목하면 평안이 있게 되고, 또 평안과 화목은 같이 나가는 것이라 그리 볼 수 있습니다. 화목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는 것이고, 화목은 하나님의 자녀 권세를 얻게 하는 것이고, 화목은 하나님의 모든 소유를 상속받게 하는 것이 화목이다 그래 말할 수 있고,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그말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대우를 받는다 그말입니다. 예수님 같은 대접을 받는다 그말입니다.
마지막 여덟 번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이거는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은 자라 그랬으니까 완성형이 되어있으니까 이거는 의를 행하는 것보다 의를 행한 그 사람이 되어지는 그 사람에 가치두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바로 의를 행한 그 사람, 의인의 나라가 천국이고, 천국은 의의 나라라 그런 뜻으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또 시간이 없고, 모두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간략하게만 설명드리고 넘어갔는데 이거 다음주까지 계속 갈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봐야 되고, 이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이 복을 받는 우리가 돼서 표가 나기까지 복을 받아야 됩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팔복을 받은 사람은 표가 나지 않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두 번째는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세 번째는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네 번째는요?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복이 있다. 이걸 읽으면서 외우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냐? 다섯 번째는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냐? 여섯 번째는 마음이 청결한, 나는 마음 속에 다른 마음이 없느냐? 사사로운 마음이 없느냐? 일곱 번째, 화평케, 나는 화평케 하고 있느냐? 하나님과 내가 화평하며, 하나님과 내가 화평하면 사람과 화평해야 되는데 이게 되어있느냐, 자기를 돌아봐야 됩니다. 또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았느냐? 그래가지고 되지 못한 만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간구하고 여덟가지 복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깊이있는 말씀이라서 자꾸 좀 생각해봐야 되는데, 듣기만 하고 실행해보지 않으면 맛이 없습니다. 과일의 껍데기는 먹어봐야 맛이 없습니다. 과일 속을 뽀개놓고 먹어보면 맛을 알게 되고, 맛을 알면 자꾸 찾게 됩니다. 이게 심령이 가난한 것이고 갈급한 그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생각해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