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8-주전
산상보훈2014-06-08조회 609추천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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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지난 주일날 오전 오후에 이 말씀을 생각해봤고 한 주간 새벽기도 밤 예배 때도 계속 이 말씀을 살펴봤고 오늘 두 주째 이 말씀을 한 번 더 공부하려 합니다. 복습을 하고 또 좀 더 보충해서 이 말씀이 가르쳐주시는 뜻을 우리가 좀 살펴 깨닫고 이 말씀을 우리의 거울로 삼고 혹은 잣대로 삼아서 이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이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고 8가지 복을 말씀하셨는데 나는 과연 여덟까지 복을 다 받고 있는가 받았는가 아니면 한 가지만 받고 나머지 7가지 복은 받지 못하고 있는가 반은 받고 있는가 각자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이 말씀을 거울로 삼고 저울로 삼아서 이 말씀에 각자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고 얹어보고 나를 아는, 그래서 여덟가지 복을 사모하고 다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의 지식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주시는 그런 내용들이 아니고 또 우리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렇게 수양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도 아니고, 이 말씀대로의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주신 우리의 법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서 말씀대로의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데 주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기 때문에 이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이 말씀에 자기자신을 비추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말씀은 거울입니다. 거울이 뭐하는 것인가요? 김영웅 거울이 뭐하는 겁니까? 거울의 용도가 뭔가요? 자기 자신의 얼굴을 자기 모습을 비추어보고 아는 것이 거울입니다. 또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말씀은 저울입니다. 또 김동민. 저울이 뭐하는겁니까? 무게를 다는거지요. 무게를 왜 답니까? 이게 알맞게 됬는지 무거운지 가벼운지 적당한지를 알기 위해서 그래서 저울이 필요한겁니다. 우리 자신을 이 말씀에 얹어보는겁니다. 내가 너무 가볍나 지나쳤는가 모자란가 이걸 살펴보는 겁니다. 또 말씀은 잣대라 그렇게 말하는데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말씀은 우리 자신을 알 수 잇는 그런 표준이 되는게 말씀이기 때문에 나 자신과 이 말씀을 대조해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팔복의 말씀 가지고 한 번 더 대조해보십시다.
예수게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이 말씀을 근거해서 산상보훈이라 산에서 가르쳐주신 보배로운 말씀, 또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산상보훈. 그런데 여덟가지 복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라서 팔복이라고도 합니다. 한 번 더 해보시겠습니다. 팔복. 황금율이라 그렇게도 말합니다. 기억하십시다.
산상보훈, 팔복, 또는 황금율이라고도 한다고 상식으로 기억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여덟가지 복에 대해 팔복이라 말씀하셨는데 복이라는 것은 좋은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은혜를 복이라 그리 말하고 사람이 할 수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능력 그 이상의 힘으로 도와주시는 그런 은헤를 복이라 그리 말합니다. 하나님이 지극히 큰 능력으로 친히 우리를 잘 되도록 도와주시는 이런 모든 역사를 복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농사를 짓는데 비가 제때 안오면 농사가 제대로 안됩니다. 이른비와 늦은비를 알맞게 내려주시면 농사가 잘 됩니다. 나라가 복을 받으면 그리 됩니다. 장사하는데 물건을 사고 팔아야 되는데 그것도 날씨 탓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이 좀 굳어진다던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우환이 자꾸 생겨지면 장사도 잘 되지를 아니합니다. 그럴 때 그 모든 것을 평안하게 만들어주시면 복이되어지는 겁니다. 가정이라던지, 건강이라던지,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이라던지, 사람들의 마음이라던지, 또 직장생활인던지, 사업이든지, 학교 생활이던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던지 이런 여러 가지 모든 면에 평안하게 잘 되고 점점 좋아지는 이런 걸 가리켜 복이라 그렇게 말하고 그런 복은 사람이 하고 싶다고 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는 그런게 복입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 말에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뒷골에 여우가 돌봐도 돌봐야 되는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되는게 아니라 그렇게 말합니다. 나라의 대통령이 되면 야당 시절에는 나라가 잘 안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많이 가지는게 사람의 심리라서 그리 됩니다. 그래야 나라가 시끄러워야 사고가 자꾸 나야 다음 선거 때 야당이 정권잡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겉으로는 슬퍼하나 속으로는 웃는것이 대게 야당되는 사람들의 심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권을 잡고 여당이 되고 대통령이 되면 그 나라에 농사도 잘되고 무역도 잘되고 또 과학도 발전되고 사고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게 정권을 잡은 쪽에서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요? 뜻하지 않게 대 사고가 나버리지요 불이 나서 사람이 죽지요 열차 사고가 나지요 다른 나라와의 문제가 생기지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을 사람의 마음대로 못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평안하게 다 되는것이 복이라 그리 말합니다.
따라해 보십시다. 복은 잘 되게 하는 것. 모든 면으로 두루두루 잘 되도록 살펴주시는 걸 복이라 그리 말하는데 여기 본문에 기록된 팔복은 영의 복도 있고 육의 복도 있고 다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덟가지 복을 보면 주로 마음을 중심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마음이 청결한자... 거의 대게는 마음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외부 행동은 거의 대게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음 먹기에 따라서 사람의 행동과 생활은 굉장한 차이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큰 성을 얻는 것 보다 더 귀하고 중요하며 마음을 제어하지 않으면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며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서 나온다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여덟가지 복은 전부 다 마음과 관련된 말씀임을 기억하고 우리 마음을 살펴보십시다. 몸의 말과 행동은 마음에서 다 나오게 되는 것이므로 마음을 잘 못 다스리고 마음이 잘 못 되면 외부 행동과 생활은 다 잘 못 될 수 밖에 없는겁니다. 같이 해 보시겠습니다. 마음의 중요성.
공부하다가 시험을 쳤는데 성적이 뚝 떨어져버렸습니다. 평소에 9점 100점 맞던 학생이 60점이 되어 버렸습니다. 돌아보니까 지난 몇 달 동안 게을을 버렸습니다.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다시 열심히 공부를 해야 되겠다고 작정을 합니다. 마음이 다져지고 나면 그 때 부터는 생활이 달라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풀어놓고 제 멋대로 돌아다니게 그냥 두면 생활과 행동은 다 엉망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우리 마음을 바짝 단속하고 본문에서도 마음과 연관된 8가지로 생각해보시겠습니다.
첫째복입니다. 심령은 마음을 말하는데 영에게 속한 마음 영에게 붙들린 마음을 말합니다. 심령. 영에게 속한 마음, 붙들린 마음이 가난하다. 없다는 말이고 상대적으로 적거나 작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주인된 그런 것이 없고 적다는 그런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 영에게 붙들린 마음이 가난하니까 자기가 주인된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이고 주님이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고 보니까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못하게 되고 그러니까 자기 마음을 자기가 마음대로 못하니까 주님이 그 마음을 붙들고 움직이게 되고, 주님이 내 마음을 주장하니까 그 마음은 어디로 가게 되느냐? 안들리지요?
(엠프고장으로 인한 중단)
엠프를 얼마전에 바꿨는데 아마 적응이 안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되다가 안되다 그러고 있지요. 큰 교회는 엠프를 따로 놓고 엠프실이 따로 있어서 기사가 조절하는데 장소도 없지 엠프도 강단 밑에 있으니까 소리가 많이 안좋으면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오일밤 예배 때 까지 괜찮았고 어제도 확인 다 했는데...
자 한번 더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은 어떤 마음이라 그랬습니까? 영에게 소속한 마음, 영에게 붙들린 마음을 심령이라 그리 말합니다. 가난하다는 말은 없다던지 혹은 적거나 작은것을 가리켜 가난하다 그렇게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자기의 마음에 대해서 주권이 자기에게 없고 하나님이 그 마음을 붙들고 있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내 마음을 붙들고 마음대로 하면 내 마음은 가난한 마음이 되는데 어떻게 가난한 마음이 되느냐? 어디에 대해서 가난한 마음이 되느냐? 물질에 대해서 가난하거나 혹은 사람에 대해서 외롭거나 지식에 대해서 가난하거나 이런것이 아니고 천국에 대해서 가난한 마음이 되어집니다. 마음이 심령이 되면 그 마음이 천국에 대해서 가난한 그런 마음이 되어지는데, 천국에 대해서 가난하다 그 말은 하나님에 대해서 가난하다. 진리에 대해서 가난하다. 참 사람에 대해서 가난하다. 혹은 사랑에 대해서 가난하고 진실에 대해서 가난하고 의에 대해서 가난하다.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주로 물질에 가난을 느끼고 지식에 가난을 느끼고 권세에 가난을 느끼고 명예에 대해서 가난을 느끼고 그리하나 심령이 되어져서 그 마음이 하나님께 붙들린 그 사람의 마음 심령이 되면 그 사람의 마음은 천국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이 되는데 이유가 뭐냐? 왜 천국에 대해서 가난하냐? 그 사람은 천국이 저희 것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문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천국을 가져서 천국의 사람이 되어졌는데 왜 천국에 대해서 가난할까? 이미 천국을 가졌는데. 오늘 주일학교때 보니까 가르치시기를 공부를 일등한 학생하고 꼴찌한 학생하고 누가 더 공부에 가난할까? 꼴찌하는 학생은 아예 공부에 관심이 없고 일등하는 학생은 더 공부에 관심이 많다고 비유를 하고 또 돈이 많은 부자하고 돈이 없는 다리 밑의 거지하고 누가 더 돈에 대해서 욕심이 많을까 그럴 때 돈많은 부자가 욕심이 더 많다고 그리 비유 했는데 그 면도 일면 맞기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말씀하신 것은 그 대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돈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가지고 나면 아무리 많이 가난해도 가지고 나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돈이란 것은. 어느정도까지 돈을 가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돈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어집니다. 1000억 정도 되고 나면 그 때 부터는 돈에 대해서 개념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사업을 더 키운다던지 사업에 관련된 그런 사원들의 생계문제 라던지 그런 문제, 사업확장 때문에 하지 돈에 대한 욕심은 그리 많지를 않습니다. 돈에 대한 개념은 별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욕심이 없어집니다. 공부도 할 만큼 하고 올라가고 나면 그 때 부터는 욕심이 별로 없어집니다. 왜그런가요? 공부를 할만큼 하고 나면 욕심이 없어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1등이 되고나면 그 이상 없으니까.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권력 욕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면 한 번 하고 나면 두 번 하고 싶은 것은 있을 수 있어도 권력의 욕심은 끝이 있으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천국의 속한 것은 그러지 않습니다. 천국의 사람이 되어졌는데, 천국을 발견하고 천국에 속한 사람이 되고 나면 왜 천국에 대해서 심령이 가난하냐? 묘하게도 천국에 속한 것은 가지면 가질 수록 가질 것이 더 많아지는 것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나면 알면 알 수록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게 점점 더 많아집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처음 예수님 믿을 때는 하나도 몰랐다가 1년 예수믿고 나니까 10가지를 알았습니다. 모르는게 천 가지가 됩니다. 한 십년 잘 믿어서 천 가지를 알았습니다. 열 가지 알 때는 천 가지 모르는 줄 알았는데, 천가지 알고 나니까 만가지를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되어집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만 가지를 모르게 됩니다. 만 가지를 알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백만가지 모르는게 또 생깁니다. 백만 가지를 알고 나니까 모르는게 천만가지가 생깁니다. 그게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천국에 속한 그런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하게 될수록 천국의 사람이 되어질 수록 심령이 점점 가난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사람은 천국에 속한 옳은 것 좋은 것 복된 것 영광스러운 것 영원한 것 완전한 것 아무리 가져도 자꾸 가지고 싶고 가져도 가져도 가질 것이 더 많아지니까 그 사람이 점점 온전한 사람이 되고 구비한 사람이 되고 모든 면에 하나님 닮은 구비한 사람이 되어져 가는데도 가난하니까 만족이 없고 가면 갈 수록 점 점 더 갈급해지니까 세월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점점 더 온전한 사람 구비한 사람이 되어져가니까 이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 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앰프도 이래서 오늘 좀 그런데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은 슬프고 아프다는 뜻인데 애통은 마음의 작용입니다. 한말로 말하면 너무너무 아픈 마음을 가리켜 애통한다 그럼니다. 심히 고통스러운 마음의 상태 그것을 애통하는 마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애통하는 마음이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마음이 애통한 그런 것은 불행이지 복이 아닙니다.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마음이 심히 고통스럽다던지 또 물질을 손해 봐서 많이 고통스럽다던지 어려움을 당해서 고통스러운 것은 복이 아니고 불행입니다. 말씀하시기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심히 고통스럽고 슬픈 그 사람은 복이 있다. 왜 마음이 아픈 너무 큰 고통당하는 사람, 왜 복이 있는가? 그 사람이 마음이 아픈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과거에 잘 못 살아온 자기 과거에 죄를 찾고 나니까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고 하나님의 벌이 두렵습니다. 그러니까 두려우니까 마음이 슬프고 고통스럽게 되는 겁니다. 과거에 지은 죄도 큰데 현재 또다시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런 죄를 지으면 안되는데 하고 한 쪽에서는 마음에서 그런 말 하는데 또 한 쪽에서는 죄를 계속 짓고 있습니다. 죄를 짓고 싶어 짓는 사람은 없는데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짓고 연약해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까 심히 고통스럽게 되는 겁니다. 둘 사이에 끼어서 나는 곤고한 자로라 하는 그 애통과 고통과 같은겁니다. 자기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짓고 있는 죄, 그리고 자기의 연약성을 발견하고 나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고 심판이 두렵고 벌이 두렵고 죽은다음 천국에 가서 벗은자로 드러날 것이 심히 두려워서 그래서 마음이 괴롭고 슬프고 아픈겁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손해 끼친 것,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것, 신앙의 유익을 끼치지 못한 그런 것을 생각하니까 마음이 심히 괴롭고 고통스럽고 아픕니다. 그게 애통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한 번 얻어먹고 나니까 밤에 잠이 안옵니다. 애통 아닙니다. 복이 없는 마음입니다. 내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나니까 교회에서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해서 잠을 못 잡니다. 그런 마음이 있는 만큼 불행입니다. 복이 아닙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손해 끼친것을 생각하니까 밤에 잠을 못잡니다. 내가 본의 아니게 이런 저런 말을 해서 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일 처리를 잘못해서 신앙의 손해를 끼쳤다. 내 유익을 취하고 그 사람에게 손해를 끼쳤다. 마음의 상처를 줬다. 이런걸 생각하니까 잠이 안옵니다. 그 사람이 복있는 마음입니다. 자기의 죄와 연약성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죄와 신앙에 유익끼치지 못한 것을 생각함으로 마음이 심히 괴로운 그 마음 그 아픔 그 애통은 복있는 애통이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위로를 주신다 그 말입니다. 어떤 위로를 주시는가?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잘못된 걸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니까 큰 복을 주신 그런 위롭니다. 또 신령한 면으로는 회개하고 나면 이런 자기 죄를 깨달아서 하나님 앞에 애통하고 자기 연약성을 깨달아 애통하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손해 끼치고 유익주지 못함에 대해서 아픈 마음 가지고 잠을 자지 못하고 애통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화 감동을 통해서 마음을 열어주시고 짙리를 깨닫게 하시고 여러 가지 위로가 있는겁니다. 이것을 가리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다 같이 해보십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런 애통이 있습니까? 이 말씀이 바로 우리의 거울입니다. 이 말씀이 표준인데 이 말씀에 나 자신을 얹어 봐야됩니다. 대봐야 됩니다. 나는 과연 이런 애통이 있는가?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애통을 가져봤는가? 반대로 복 없는 애통만 가졌는가?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이란 것은 자기가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이 만들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우리 자신을 강제로 만들지 못합니다. 기독교는 자유의 돕니다. 자유의 도라는 말은 자기에게 모든 책임이 다 있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우리의 자유 의지를 꺾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맡겨 두시고 다만 권면하고 가르치고 설득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참아 세월을 기다리는 것 밖에 못합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 나를 결단코 만들지 못합니다. 나를 만드는 것은 내가 만들어가야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내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고 남은 나를 복되게도 못합니다. 내가 나를 복되게 하는 겁니다. 자기를 만드는 것도 자기, 자기를 복되게 하는 것도 자기,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도 전부 자기에게 매였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것도 애통하는 것도 내가 해야 됩니다. 이 말씀을 표준 삼아서 이 말씀에 나를 비춰보고 나를 얹어놓고 나는 과연 천국에 속한 사람에 대해서 천국에 속한 것에 대해서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세상에 대해서는 가난한데 천국에 대해서는 부요한 자로 살고 있는가? 나는 애통하는 그런 마음이 과연 있는가? 아니면 내 마음은 강팍한 마음이 되어 있는가? 한 번 돌아봐야 되겠습니다.
세 번째 복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같이 해 보시겠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말하면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말입니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따뜻하다는 말은 이거 큰일났네요. 정집사님 휴대 마이크를 해주십시오. 앞에 있습니다. 옆에 있고 뒤에 있습니다. 무선 마이크도 같이 안되거든요. 전체를 껐다 켜볼까요?
우리 교회 개척하고 제가 오늘 횟수를 세 보니까 만 16년이 됐는데 주일 오전예배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그런데 사람사는 세상에 교회는 하나님의 교횐데 사람사는 곳이고 이 모든게 다 사람이 만든 것들이라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평소에 늘 예배 위해서도 기도를 해야 됩니다. 이런 것이 전부 궁극적으로는 제가 기도 못한 탓이고 제가 잘못된 탓으로 속으로 회개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 하나님의 예정속에 든 것이고 절대 예정 주권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할 수 있지마는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오늘 주일 오전 대 예배 때 16년만에 처음으로 이런 앰프 문제가 생기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고 절대주권 섭리고 이런 모든 섭리는 뭔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평소 예배를 위해서 기도를 얼마나 하시는지 예배시간에 마음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저는 예배 준비에 얼마만큼 마음을 기울였는지 한 번 돌아보는 그런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같이해보시겠습니다. 온유한자는 복이 있나니 온유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말하면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말입니다. 따뜻할 온자 부드러울 유자 그런데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은 푸근하다는 그런말도 되고 푸근한 것은 좀 넉넉하다는 그런 말도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넉넉하고 푸근하고 온유한 것은 넉넉한 것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는데 가진 것이 뭐든지 많으면 가진 것이 많으면 넉넉한 것이고 넉넉하게 되면 사람은 여유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오일밤 예배 때 잠깐 말씀을 드렸는데 아이들이 어릴 적에 너무 가난한 집에서 살아가지고 가난하게 살아서 인색하게 그렇게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그 아이들은 커서도 아주 모든 면에 굉장히 인색하고 빡빡한 그런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대게 보면은 부잣집에서 아무렇게 버릇없이 자란 그런 아이들 말고. 부잣집에서 넉넉하게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자라고 나면 성품이 온유하고 너그러운 그런 성품을 대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 있습니다. 그런데 어릴 적에 가난에 찌들어서 겨우겨우 먹고 살고 인색한 빠듯한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게 되면 자라고 나서 어른이 되어서도 그것이 그 사람의 인성과 성품에 베어 있어서 모든 면에 경계심을 가지고 인색하고 그리 되기가 쉽습니다. 반드시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걸 초월한 그런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면면히 살펴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요소가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온유란 넉넉함에서 나오는 너그러움을 가리켜 온유라 그리 말하는데 본문의 말씀에서 온유는 세상적인 걸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를 말합니다. 믿음. 믿음에서 나온다 그 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전지 전능잡니다. 아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줍니다. 주권잡니다. 그러니까 그 하나님이 아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그 하나님이 모든 우주 영계를 다 지으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다 주권하시는 하나님이 그 분이 우리 아버집니다. 그 분이 삼위일체 하나님인데 그 분이 사람 되셔서 날 위해서 피흘려 죽으셨고 사랑하시기를 전부 다 바쳐서 사랑하신 그 분이 하나님입니다. 이분이 우리 믿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모든 구원의 세계를 알고 믿으면, 그러면 내가 세상 모든 현실을 상대할 때, 오늘 이 16년만에 주일오전 대예배때 앰프가 문제가 생겨서 예배를 제대로 못드리는 이것도 들어가보면 하나님의 예정속에 든 것이고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겁니다. 왜 이리 만드신 것인가?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고통스럽게 이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가 살아가면서 생활 속에서 내가 지금 이렇게 행동을 하고 내 생활이 이러니 요 다음 순서에 무슨 일이 생기겠구나 하고 예측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습니다. 그런 과거가 많기 때문에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진노꺼리를 만들고 있으니까 요 다음에 어딜 가면 내가 거기서 수치를 당하겠구나 매를 맞겠구나 그것을 예상을 합니다. 아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꺾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일날 무슨 문제가 생기겠구나 하는 것을 예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천국가면 다 아시겠지마는 저는 어제 밤에 예배 준비하면서 제 자신의 생활이 바르지 못해서 주일 예배 때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겠구나 하는 것을 제 마음 속에 짐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설마설마 했는데 이런 사고가 생겼는데 안믿으시겠지요 겪어보면 아실겁니다. 저는 어제 밤에 오늘 주일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겠다는 것을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걸 보지 못하고 저 자신을 그래서 오늘 문제는 저한테 다 매였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렇지마는 저는 저대로 회개하고 여러분은 여러분들대로 또 돌아보면서 회개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고 주권이고 예정 속에 든 것이고 이것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에 이런걸 만나고 낙심할 것 없고 짜증낼것 없고 여기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이래도 유익이고 저래도 유익입니다. 부해도 유익이고 가난해도 유익입니다. 내가 넘어져도 유익이고 달려가도 유익입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작은 모든 사건은 나에 대해서 손해 끼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상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자기 당면한 현실을 상대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하니까 조급함이 없고 초조함이 없고 넉넉하게 여유있게 모든 현실을 상대할 수 있고 밥으로 이용해서 먹을 수가 있는겁니다. 이게 온유입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을 자기 자본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우리 기업인 천국을 위해서 자본을 삼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까지만 간단하게 하고 지난 주 설명 못드린 그 다음부터 오늘 오전에 하려고 했는데 아마 앰프도 고장이 나고 이런 것도 저도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고 우리 교인들 모두에게도 알리시고 한 번 더 세 가지만 강조하라는 뜻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더 살펴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무엇입니까? 영에게 속한 마음, 영에게 붙들린 어렵지마는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되면 천국에 대해서 가난한 마음이 되어집니다. 천국을 가졌는데 왜 가난한가? 가지면 가질 수록 더 가질 것이 많은 것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 수록 점점 더 알것이 많아지는게 하나님이고 하나님과 자기 관계는 가까워질수록 점점더 멀게 느껴지는게 하나님과 관곕니다. 가깝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영능이 자기에게 넘치게 나옴에도 불구하고 한쪽에 더욱 더 목마른 사슴이가 물을 찾음 같이 주님을 갈급하게 찾는것이 주님과 밀접하게 교제하는 성도들의 공통 고백이고 그게 마음입니다. 이게 심령이 가난한 것입니다. 굉장히 고급 고차원에 속한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애통이란 말은 마음이 심히 고통스러운 상태를 말하는데 왜 마음이 고통스러우냐? 마음이 고통스러우면 몸도 아픕니다. 밥맛도 없고 잠도 못잡니다. 왜 그리 되어지느냐? 하나님 앞에 자기 지은 죄를 발견하고 죄를 발견하니까 죄 값은 사망인데 주님이 대속하셨으니까 진리가 있습니다. 내가 있고 벌이 있습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도 두려워서 마음이 아픕니다. 또 벗은 자로 드러날 것 생각하니까 마음이 아픕니다.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 신앙에 손해 끼친 것을 생각하니까 잠이 안 옵니다. 유익을 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까 또 역시 잠이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위로를 주십니다. 자기 마음을 돌아보면 압니다. 내가 애통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그 마음 가졌을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서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는가? 주님이 기뻐하시는가? 맑고 상쾌한 마음이 되어지는가? 애통하는 마음인데 불쾌하고 더 괴로운 마음인가? 애통하는 마음을 가졌는데 불쾌하고 어두워지면 그 마음은 복이 없는 애통입니다. 복있는 애통은 가지면 가질 수록 하나님이 그 마음을 더 밝게 만드시고 맑고 명랑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성령의 감화를 주시는 겁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인데 넉넉하고 부드러운 것입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 하나님의 목적과 예정과 창조와 주권 섭리를 믿는 믿음 우리 구원을 믿는 믿음 요 구원을 믿는 믿음에서 모든 세상 현실을 상대하니까 세상은 전부 자기의 밥입니다. 이용물입니다. 세상은 자기의 천국 건설 영원한 기업의 자본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 사람이 온유한자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세 가지 복을 기억하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산상보훈 팔복에서 오늘 세 가지만 오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봤습니다. 이 말씀을 거울로 삼아서 이 말씀으로 자기를 비춰 보십시다.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는가? 나는 과언 이런 복을 받고 있는가? 나는 복이 없는 사람인가? 깊이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