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0-주전(마27:57-28:15)
부활2014-04-21조회 291추천 23
본문: 마태복음 27장 57절-28장 15절(요약/2014.04.20.주일)
제목: 부활
1. 당시의 상황
1)부활 주일
- 부활과 주일
- 주일의 구별
2)당시의 상황
- 안식일 전날 십자가에
- 유대인들의 수직
- 예수님의 부활, 안식 후 첫날 새벽
- 마리아들의 목견
- 유대인들의 계략
2. 도성인신
1)도성인신(道成人身)
- 말씀이 사람의 몸을 이루심
-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
- 대속 역사의 실질적인 시작, 무한의 희생
2)도성인신의 이유
- 사람이라야 사람을 대속
-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택자 전부를 대속
- 신인양성일위라야 가능(사람이라야, 택자 전부를, 지공지성 법)
3. 죽으심의 대속
1)세 가지 범죄
①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②자기가 주장된 자주장의
③하나님을 배반한 불목, 원수
2)죽으심의 대속
- 대형의 사죄
- 대행의 칭의
- 대화친의 영생
4. 부활의 공로
1)부활의 공로
- 부활로 주신 영생의 소망
- 부활이 없었다면 실제가 없는 것
- 부활로 주신 공로는
①부활(육체, 심신, 모든 소유)의 실제
②능력의 실제
③승리의 실제
2)사활의 비중
- 부활이 없으면 죽으심은 무용
- 죽으심은 기초, 부활은 건설(?)
- 죽으심이 반, 부활이 반
- 죽으심과 부활은 같은 희생
5. 부활과 주일
1)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2)주일은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날
3)생명과 능력과 승리의 실제를 받는 날
결론: 지금은 부활의 때
1)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2)부활의 차이는 무한의 차이
3)지금은 우리의 모든 것을 부활시키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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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본문: 마태복음27:57-28:15
오늘 주일은 모두다 알고 계시는대로 대게 모든 교회들이 부활 주일로 지키고 있는 줄 압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것은 성경에 기록되있는 틀림 없는 사실이고 또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신 그 날이 정확하게 몇 년, 몇 월, 몇 일인지는 알기 어렵고 다만 성경에 본문에 기록해 놓으신 대로 주님의 부활하신 그 요일을 말한다면 안식후 첫날 오늘로 말하면 제 8일되는 주일이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로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말하든지 안하든지 그렇게 지키고 있는 겁니다. 주일의 의미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 그리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주일에 다가 우리도 그리 용어를 씁니다. 부활 주일이고 맥추 감사 주일이고 추수 감사 주일이고 그런 여러 가지 주일에 다가 이런 저런 절기 이름을 붙여서 주일을 말을 하고 그런 의미로 지키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서 잘 알고 있는 대로 주일은 주일 그대로 지키는 것이 성경이고 주일에 다가 다른 무엇을 붙이는 것은 엄밀하게 따져 말하면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죄라 말하기 어렵고 우리가 편리상 또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대게 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그면을 생각해서 부활절 주일이고 맥추 감사주일이고 추수감사 주일이고 성탄 주일이고 이리 이름을 붙여서 말은 하지만 정확하게 따져서 구별한다면 주일은 주일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이고 주일의 내면적인 의미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라 그렇게 구별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본문에 오늘 봉독한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죽으신 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날은 안식일 하루 전날 예비일이라 그리 기록됐는데 안식일 하루 전날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안식일은 오늘로 말하면 어제 토요일 세상사람이 말하는대로 토요일이 그 당시로 말하면 안식일입니다. 그러면 안식일 하루 전날이니까 금요일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하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세인들 그들에게 붙잡혀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구주로 오셨고 주님의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구원하는 살아있는 생명의 복음으로 전했고 당시 은사 교권의 위치에 있는 그런 지도자, 사람들을 이끌고 지도하고 가르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잘 믿는다는 바리세인들, 그들이 믿는 모습과 믿는 형편과 그들을 가르치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그런 사람들의 교훈은 율법적인데 말은 있고 생명은 없는 행함은 없는 말하자면은 죽은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특별히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여 하고 많은 외식을 말씀을 하시고 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서기관들 바리세인들 대제사장들을 그들을 하나님께서 모세의 자리에 세워놓으셨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따라가지 않되 그들의 말은 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 것이 문젠데 그러기 때문에 그 속에 생명역사가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말은 듣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따라가지 말아라 그리 말씀하셨는데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말만 있고 생명은 없는 실제 없는 죽은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그것을 주님이 대단히 책망을 하시면서 많이 잘못됐다고 꾸짖으시니까 그래서 생명 있는 복음을 따라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따라가니 교권을 잡고 그 교권을 바탕으로 자기 모든 세상 지휘 권세 모든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하고 있는 그들이 주님 때문에 자기들의 지휘나 권세나 모든 기반이 흔들리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시기해서 그래서 이단 괴수라 그래가지고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게 된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그 위에 27장 위에 보면 성소 휘장이 성전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에 있는 성소 휘장이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았는데 위로부터 아래까지 주님이 죽으실 때 둘로 찢어져 갈라졌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죄가 다 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 죽으심으로. 그리고 땅이 진동해서 지진이 크게 일어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고 무덤속에 있던 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있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그들이 예루살렘 그 거리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 그리되어있습니다. 이게 주님이 죽으실 때 되어 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나서 죽으시니까 몸은 말하자면 혼이 떠나서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나서 죽으셨습니다. 사람이 죽었으니까 시체가 됐지요 그 시체를 아리마데 사람 부잔데 예수님 제자 중 한 사람인데 요셉이라는 그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우리 선생님 시체를 내 주십시오 당당하게 가서 말하니까 내주라 그래서 그 요셉이 예수님 시체를 가져가서 깨끗이 씻겨서 정한 세마포에 싸가지고 사람을 장사한 적이 없는 무덤 그당시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습니다. 굴을 파서 굴 속에 넣어 놨는데 거기다 예수님 세마포 옷으로 싼 시체를 넣어 놓고 돌로 그 무덤 입구를 아주 막아 놓았습니다. 그 사실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두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이튿날이 되니까 이튿날은 이제 무슨 날입니까? 예수님이 죽으신 날이 예비일 안식일을 예비하는 예비일 안식일 하루 전이고 그 다음날은 안식이이죠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날이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계명을 따라 쉬고 안식일을 지키고 그 다음날 안식후 첫날 새벽에 날이 밝기 전 일찍이 이제 막달라 마리아하고 다른 마리아 두사람이 무덤에 있는 주님이 어떻게됐는가 보려고 지금 이들이 무덤을 찾아가지만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꺼라는 이런 것은 듣기는 들었으나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그립고 선생님이 그립고 보고 싶고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막연히 그냥 찾아가는 겁니다. 무덤에 가니까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하늘로 와서 돌을 굴려 내고 그 무덤에 앉아 있는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이 눈같이 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파수하는 자들이 다 보고 있었는데 그 전에 예수님을 굴에 장사 했을 그때에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서 말하기를 총독각하 우리들이 들었기를 지금 죽은 예수라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 이 사람이 살아생전에 말하기를 죽은 후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날것이라고 말하고 미혹을 하고 다녔는데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겠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그 제자들이 저들이 굴에 넣어 났는데 제자들이 그 시체를 몰래 가져가서 음폐해서 숨겨 놓고 예수님이 삼일만에 살아 났다고 소문을 퍼트리면 그 유혹이 살아 생전 때 보다 더 크게 많은 사람이 이단에 빠질거니까 그냥 둘수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너희들에게 군사들이 있으니까 가서 너희들 힘껏 무덤을 지켜라 그래서 그들이 군사들을 데려가서 돌로 막은 그 굴입구를 군사들이 창을 들고 칼을 들고 아주 굳게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식일 첫 날 새벽에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두 사람이 가서 보니까 지진이 나고 천사가 하늘로 내려와서 돌을 굴려내고 그 모습을 봤는데 그 수직하던 사람들도 같이 군사들도 같이 보니까 아주 죽은 사람 같이 그렇게 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그 사실을 보고 같이 두려워 떨고 있는데 천사가 말하기를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아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였던 예수를 너희가 찾는줄을 내가 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평소 그의 말씀하신데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워있던 곳을 봐라 그들이 두사람이 들어가 봤을 때 때문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빨리 가서 갈리리로 가서 예수님의 제자에게 살아나셨다고 전하고 갈릴리로 가서 배울것이라 그렇게 말하라 하고 그 말을 듣고 마리아하고 막달라 마리아 두사람이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서 빨리 달려서 제자들에게 가는 도중에 주님을 만나서 평안하게 하고 만나고 다시 내가 갈릴리로 가서 내 형제 제자들을 보겠다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뒤에도 보면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부활되었을 그 당시를 4복음에 아주 소상하게 기록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한 40일 정도 그때는 계속 주일을 지키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보이시고 전할 말씀을 하시고 그리고 난 다음에 승천하신 것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요래된 상황에서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병들 중에 몇 사람이 군병들이 놀라가지고 혼비백산해서 자기들 대장들에게 가서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그 유대인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그 사실들을 전했습니다. 전하니깐 대제사장들은 그들이 이미 안다 그 말이지요. 주님이 예수님이 어떤분인걸 그들이 죽어서 예수님이 죽으실 그 당시에 되어진 그 상황을 보고 알았고 또 살아났다 그러니까 이제는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그렇지마는 만약에 그때 예수님이 살아나신 그 사실을 그들이 인정을 하고 그 사실을 전했다가는 유대인들이 너것들이 우리 구주 메시야를 나사렛 괴단 이수 이단 괴수라고 미혹해서 우리를 미혹해서 죽게 해 놓고 이제 와서 그러느냐하고 너것 때문에 우리 구주가 죽었다하고 그 위치에 있던 사람을 다 돌로 처 죽일거니깐 그 군중들의 분노가 그들이 감당을 못할것이기 때문에 파숫꾼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너희들은 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마라 그러면 큰 문제가 생기니깐 가서 예수의 그 제자들이 너희들이 깜빡 조는동안에 와서 몰래 시체를 도적질해갔다고 그렇게 소문을 퍼뜨리라 만약에 너희들이 존 것이 문제가 되다면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들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그렇게 해줄꺼니깐 그래 말하라 그러니깐 파숫꾼들이 돈을 많이 받고 그래서 그들 시키는 대로 소문을 퍼자서 그당시 예수님은 살아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해가서 헛소문을 퍼뜨린것이라 그렇게 말들이 같이 돌게 되어졌던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살아나신 것은 변한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 되어졌던 대략적인 예수님의 부활 당시 되어졌던 대략적인 성경에 기록된 상황입니다. 모습이고..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오늘 간단하게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부활전에 먼저 부활이란 말은 죽었다는 의미고 죽은가운데 다시 살아난걸 부활이라 그래 말씀하시고 죽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무슨 뜻입이까? 부활은 죽음이 전제가 되있고 죽음이란 무엇이 전제되어 있습니까? 죽음이란 것은 살아있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있는 거지요. 주님이 이 세상에 살아계셨는데 예수님은 원래 우리가 아는데로 자존하시 하나님 하나님이신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인데 하나님의 사람되어 오셨는데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셨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걸 가르켜서 한문글자로 도성인신이라 그리 말합니다.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도성인신 그 도자가 길도 자인데 말씀도자라 그럽니다. 도리할 때 그 도자 말씀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제 이위 성자 하나님의 이름이 말씀인데 말씀이라는 이위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이루어서 입고오셨다는 이걸 한문글자로 교리적인용어로 도성인신이라 그리 말씀을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그러면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신데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이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참하나님 참사람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땅에 세상에 오신 분을 가르켜서 예수라, 예수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역사가 거대하고 깊이가 깊고 그 시작이 영원전부터 하나님 자존하신 그 이후부터 출발이 되어지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역사에 실질적인 출발의 첫 걸음이 어디냐 이게 바로 도성인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출발의 첫걸음이 바로 도성인신입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 가견적인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첫 출발이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 말할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역사는 사람들이 아는대로 가장 큰 희생은 십자가에 고난받고 죽으신 죽으심을 가장 큰 희생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압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고난 받은 것도 우리가 알수 있는 고난이고 다는 몰라도 눈에 보이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이 고난 받았고 마음이 고난 받았기 때문에 동변상련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우리 사람이 영이라는 것은 안 믿는 사람은 모르고 믿는 사람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사람이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은 누구나 다 압니다. 어느정도인지 이번에 배 사고가 나서 약 삼백명이 넘는 사람이 지금 실종 상태 죽거나 실종 상태 되 있는데 그들의 가족들의 그 슬픔과 고통 아픔이라는 것은 우리가 참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심히 고통스러울겁니다. 우리기 그들만큼은 헤아리지 못해도 우리들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내가 만약에 그런 우리가 그런 상황을 당한다면 내 마음은 얼마나 아프게는가 마음의 고통은 헤아릴 수 있고 몸이 고통당할 때 몸의 고통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그 마음의 고통과 몸의 고통은 사람들이 짐작을 하기 때문에 참 고통스러웠겠다 하고 알아서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 역사에서 사람들이 깨달아 알고 느끼는 가장 큰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그렇게 알고 그것을 가장 큰 희생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더 깊이 생각해보면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도 대단히 크지만은 그러나 외부적인 마음과 몸의 고난은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보다 훨씬더 고통스러운 그런모습으로 죽는 사람이 역사에 많이 있습니다. 우주적인 고난이라는 것은 그걸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공지성법과 관련된 당신이 책임진 이 잔을 내가 마시지 않고는 안되거든 주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한 그 당신이 책임진 그 고난의 쓴 잔을 하나님의 지공지성법 모든 택자의 구원 전부가 주님 당신에게 메였다는 그것하고 연결된 그것이 우주적인 고난인 것이지 그 고난 외부적인 자체를 두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동시에 주님의 그 희생이라는 것은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도 대단히 큰 희생이지만은 그의 못지않는 그보다 오히려 더 큰 희생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되신 도성인신의 이 희생입니다. 무한한 희생입니다. 이것이 대속역사의 첫 출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겁니다. 우리가 흔히 비유하기를 설교시간에 듣고 또 설교하고 비유하기를 사람이 구더기가 된다면 있을수가 있는 일인가, 옛날이야기 우화에 보면은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나귀된 사람도 있고 사람이 소가 된다면 얼마나 그 수치며 비참한 것이며 천해진 것이 되겠습니까? 근데 구더기가 된다면 더 할 것이고 그러나 사람이 구더기 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은 사람 차원에서 사람 기준에서 생각하니깐 느끼기 어렵지만은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은 사람이 구더기 된 것 보다 무한한 더 낮아진 것이고 더 천해진 것이고 더 비참해진 것이고 그리 되어진 것인데 우리가 알기가 어렵습니다.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한한 희생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주님의 희생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던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이 땅에 오시게 된 이유는 크게 말하면 첫째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이유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사람은 사람이라야 사람의 대신 할 수 있는 고로 대신하는 대속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으로 낮아지신 겁니다. 사람이라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공법에 맞기 때문에 그래서 된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은 일위가 되신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택자 전부의 죄를 다 대속할 수 있고 과거 현제 미래 전부를 다 대속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신인양성일위가 되셔서 이땅에 오신 큰 두가지 이유입니다. 한말로 정리하면 신인양성일위 이분이 되어져야 말하자면은 택자 전부의 죄를 다.
사람이라는 자격이 되고 대속이 자격이 되고 택자들의 죄 전부다 감당할 수 있고 지공지성법에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부득이하게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도성인신 역사를 하신겁니다. 이것이 대속역사의 첫걸음입니다. 지금 이게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오늘 설교 말씀의 제목이 무엇인가요? 같이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부활 그러면 부활이라는 말씀인데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구원과 지금 연관시켜서 말씀드리기 위해서 그 방향과 나아가는 말하자면 실질적인 첫단계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실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됐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 값이 없고 당신은 사망이 당신을 헤할수 없는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래서 예수님을 둘째아담이라 그러죠 오신겁니다. 마리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오신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셔가지고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이땅에 오셨는데 오셔가지고 사신생애가 몇 년몇개월 살았다가 일반적으로 알려집니까? 예수님이 사신 생애 일반적으로 몇 년 몇 개월입니까? 33년 4개월을 사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3년 4개월을 이 세상에 오셔서 사셨는데 하신 그 모든 역사는 대속역사를 하셨습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대속 역사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구속하신 역사를 하셨다 그말입니다. 그 대속역사는 크게말하면 이게 세가지 역사인데 그 세가지 역사중에 하나가 말하자면은 세가지 역사를 할 수밖에 없던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세가지 죄가 있습니다. 세가지 범죄 죄가 있는데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죕니다. 죄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한번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법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근데 그 영원한 사망의 죄값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대신 형벌, 영원한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역사를 주님이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고 자기가 자기 왕이 되가지고 자주장으로 산 이 죄가 있으니 이걸 불의라 그리 말하는데 요 불의의 죄값을 주님이 대신 형벌받아 죽으신 죽으심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떨어진 요 죄가 있는데, 요 우리의 죄 이 세가지 죄를 예수님이 요 세가지 죄값을 대신 짊어지고 세가지 죄로 인한 영원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신 죽으심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 요약 문답지 보니까 내용이 잘못된게 있는거 같은데 그래서 사람의 죄는 세가지 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죄, 두 번째는 자기주장으로 산 죄, 세 번째는 하나님을 배반한 죄 불목의 죄 이 세가지 죄가 영원한 사망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 죽으심은 첫째는 이 세가지 죄를 형벌받아 죽으신 그 죽으심이 예수님의 죽으신 그 대속입니다 이걸 가르켜서 대형의 사죄라 그리말합니다
대형의 사죄 요 세가지 죄 때문에 형벌받아 죽으신 이 죽으심이 예수님의 죽으심이고 사람이 되어오셔서 대속역사를 하시고 그다음에 죽으신 그 죽으심이 바로 요 세가지 죄 때문에 죽으신 겁니다. 두 번째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못한 모든 것을 대신 행하신 그 대행의 죽으심이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이것을 대행의 칭의라 그리 말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들을 하나님과 화친시켜서 하나님의 아들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죽으신 죽으심이 예수님의 대화친의 죽으신 죽으심 죽기까지 화친 요개 대화친의 영생입니다. 요래하고 보니까 요약지가 틀린게 아니라 맞네요. 그래서 요 세가지를 가르켜서 죽으심의 대속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죽으심의 대속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속 자 첫째는 그 위에 예수님의 그 대속 역사의 출발의 첫걸음은 도성인신입니다. 도성인신의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이유와 그 이유 두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라야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두 번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택자의 전부의 과거 현재 미래 전부를 대신할 수 있게 때문에 그래서 도성인신 신인양성일위로 도성인신하신 것이고 그래가지고 사람이되어 이땅에 오셔가지고 사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신 그 생애와 그 죽으심의 역사는 세가지 역사인데 첫째는 세가지 죄를 형벌을 대신하신 대형의 죽으심 그로주신 사죄 두 번째는 대행의 죽으심 칭의 세 번째는 대화친의 죽으심 화친의 영생 생명 요 세가지 죽으심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이고 죽으심의 대속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가 예수님의 죽으신 대속인데 그러면 부활하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일단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던 하나님이 죽으심으로 사람의 몸을 벗었습니다. 사람이 할수 있는거 다 했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벗어서 이제는 하나님과 사람이 떨어져서 하나님이신 주님이 입고 있던 사람 육신을 죽음으로 다 벗었으니까 이제는 신인양성일위가 예를 들면은 떨어져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계시고 죽으심으로 육신이 할수 있는거 다했으니까 벗어놓고 그래 끝나면 하나님으로서는 다 되는건데 고래까지만 해두고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면 사람에게 있던 죄는 없어졌고 형벌받았으니깐 죄는 없어졌고 의인은 되어졌고 그다음 하나님과 화친했으니깐 생명까지는 가졌는데 요게 실질적으로 말하자면은 영원한 천국에서 천국에 모든 것을 자기것을 만드는 현재 목숨만 화친의 생명까지 받았기 때문에 목숨만 붙어있지 그 목숨이 붙어있던 그 목숨이 살아갈수 있는 영생할수 있는 그런 실질적인 기능은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깐 주님이 죽으심으로 끝내면 죄는 없어졌고 의인은 되어졌고 생명은 붙어있으나 그러나 영원한 하늘나라 영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능은 하나도 없는 상태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을 면했고 의인도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도 됬고 다 되어졌지만은 그냥 그대로 말하자면은
예를 들자면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아이가 태어났는데 태어났습니다. 뱃속에 열달 있다가 태어났으니까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이목구비 수족 오장육부 다 있습니다. 다 있고 사람의 모습 갖추고 사람이 있고 생명도 있고 아버지 아들도 되어있고 다 되어 있는데 고대로만 두고 자라가지 안는다면 그 핏덩이 아이를 어디 쓰겠습니까? 그 핏덩이가 멀 할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못하지요. 고론 상태가 말하자면 주님 대속 죽으심 대속까지 되어지는 사망입니다. 혹 들으시면서 교리적으로 아시는 분들은 의문점을 찾아주십시오. 제가 잘못할수 있으니깐. 고 상태인데 거기서 주님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뱃속에서 잉태된 태어난 아기가 막 태어난 그대로, 말하자면은 상황 생명도 가졌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다 되어있고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살았으나 산자라 할 수 없는 그대로 되어있습니다. 말하자면은 꼭 같다고 볼수 없지만은 주님의 대속을 입은 우리 성도의 모습이 그 모습입니다. 그대로 계속 가는겁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그러기 때문에 그 상태로 둘수가 없는 고로 하나님이 부활하셨는데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이 다시 사람의 몸을 입어야됩니다. 부활하신 몸이기 때문에 부활전에 몸과는 다른 신령한 몸이지만은 여전히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의 몸을 입고 신인양성일위로 그대로 부활해야 됩니다. 부활을 하심으로 이제는 우리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을 향해서 영생하는 소망을 주셔서 이제는 그 핏덩이가 주님의 부활을 힘입어서 하나님이 주신 이 땅에 사는 기간 동안에 제 생의 기간 동안에 살아가면서 영생하는 영원히 천국에서 있을수 있는 모든 기능을 완벽하게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이 바로 부활의 주님의 공로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죽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않는 기업을 이어나가시겠다고 말씀을 하신겁니다. 이게 부활의 공로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의 공로를 정리해보면 첫째는 우리 부활의 실제입니다. 우리 부활의 실제란 말은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영육이 다 부활하는 겁니다. 부활하게 됬고 그러나 부활은 기본적인 부활 우리의 육신의 부활은 우리 노력이 없어도 부활되도록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활의 입어야 하는 그 모든 심신의 기능과 영원한 천국에 영원토록 쓰여질 모든 자기 모든 소유나 기관들은 이것은 주님 부활을 의지하고 근거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들이 다 부활시켜 나가야되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그것을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입니다. 말하자면은 전체를 묶어서 부활의 실제를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이고, 두 번째는 이 실제를 이루어 갈 수 있는 능력의 실제를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이고,세 번째는 이 부활의 생애를 이루어 가는데는 많은 전투와 투쟁이 있는데 이 전투와 투쟁을 승리할 수 있는 실제를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이다 그래서 부활을 주셨고 능력을 주셨고 승리를 주셨는데 이 세가지를 실제로 우리가 가질수 있도록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의 공로다 그리 정리할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주님의 죽으심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말하자면은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죽으심은 완성했지만은 대속 역사는 미완성이고 미완성된 대속역사는 전체를 두고보면은 아무소용이 없는 무효한 죽으심이 되는 것이 마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죽으심은 대속전체의 기초고 부활은 건설이라 그리 말할수 있고 죽으심이 반이고 부활이 반이라 그렇게 비중을 따질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가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겠지마는 할렐루야 우리예수 부활 승천하셔서 기뻐하나 부활은 우리는 기쁘지만은 주님에게는 한없는 죽으심과 같은 희생이라는 것을 우리가 같이 한번 더 생각해봐야 되는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키는 매주 마다 지키는 주일이라는 이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바로 주일이고 이 주일은 첫째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두 번째 주일은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날입니다. 우리의 모든날들이 부활의 날인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부활을 하는날이 주일이고 부활의 전부를 다 이루어 갈 수 있는 전체전인 부활과 능력과 승리를 받는 그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말하자면 생명과 능력과 실제를 받는 날이 주일이라 그말입니다. 부활로 주신 주일인데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신 날인데 그날이 바로 우리들이 부활해야할 날이고 그 부활의 실제를 받는날이 주일이란 말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우리가 부활해야된다는 그 부활은 다른말로 말하면 성화입니다. 성화 건설구원 이걸 받는 날이 주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기독교는 부활소망의 도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소망의 도고 우리가 배워 아는대로 부활의 차이는 무한의 차이가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부활한 사람과 부활한 사람의 차이는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죽으심의 대속으로 부활을 다 우리가부활했다더라도 부활의 공로를 힘입어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자기 모든 생애를 부활시켜가지 않으면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심신이 부활해도 그 심신은 갓난아이처럼 핏덩이처럼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대로 두면 말하자면 육신이니깐 굶어죽던지 병들어죽던지 추워죽던지 그럴 수밖에 없는 자립은 할 수 없는 핏덩이같은 그런 상태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이 땅에 사는동안에 자기생애의 모든 것을 부활시키지 못한 부활의 기능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거기서 자라가는 것은 얼마만큼 자기생애를 부활을 시켜갔느냐 주님의 부활의 공로를 힘입어서 자기생애를 얼마만큼 부활시켰느냐 살렸느냐가 얼마만큼 핏덩이가 먹으면서 자라면서 배우면서 기능을 익혀가면서 그 일을 자기를 만들어가느냐가 그 모습의 차이가 되는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의 전부는 부활시키는 날이라 부활시키는 기회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는 겁니다.
오늘은 부활,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그 부활, 부활 주님으로 보시는 주일인데 요 주일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그 부활의 의미 부활로 주신 공로 부활과 주일 또 부활의 공로로 우리들이 이루어갈 것이 무엇인가를 좀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후에 계속하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교리로써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좀 생각해서 혹 잘못된 것 있으면 의문된 것 있으면 말씀 좀 해주시고 생각 좀 해보시는게 좋겠습니다. 주님의 도성인신, 도성인신의 이유 두가지, 죽으심의 대속 세가지, 부활의 깊은 의미 부활로 주신 주일의 의미 우리들이 할 일 여러 가지 생각해 봅시다.
제목: 부활
1. 당시의 상황
1)부활 주일
- 부활과 주일
- 주일의 구별
2)당시의 상황
- 안식일 전날 십자가에
- 유대인들의 수직
- 예수님의 부활, 안식 후 첫날 새벽
- 마리아들의 목견
- 유대인들의 계략
2. 도성인신
1)도성인신(道成人身)
- 말씀이 사람의 몸을 이루심
-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심
- 대속 역사의 실질적인 시작, 무한의 희생
2)도성인신의 이유
- 사람이라야 사람을 대속
-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택자 전부를 대속
- 신인양성일위라야 가능(사람이라야, 택자 전부를, 지공지성 법)
3. 죽으심의 대속
1)세 가지 범죄
①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②자기가 주장된 자주장의
③하나님을 배반한 불목, 원수
2)죽으심의 대속
- 대형의 사죄
- 대행의 칭의
- 대화친의 영생
4. 부활의 공로
1)부활의 공로
- 부활로 주신 영생의 소망
- 부활이 없었다면 실제가 없는 것
- 부활로 주신 공로는
①부활(육체, 심신, 모든 소유)의 실제
②능력의 실제
③승리의 실제
2)사활의 비중
- 부활이 없으면 죽으심은 무용
- 죽으심은 기초, 부활은 건설(?)
- 죽으심이 반, 부활이 반
- 죽으심과 부활은 같은 희생
5. 부활과 주일
1)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2)주일은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날
3)생명과 능력과 승리의 실제를 받는 날
결론: 지금은 부활의 때
1)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2)부활의 차이는 무한의 차이
3)지금은 우리의 모든 것을 부활시키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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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본문: 마태복음27:57-28:15
오늘 주일은 모두다 알고 계시는대로 대게 모든 교회들이 부활 주일로 지키고 있는 줄 압니다. 예수님 부활하신 것은 성경에 기록되있는 틀림 없는 사실이고 또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하신 그 날이 정확하게 몇 년, 몇 월, 몇 일인지는 알기 어렵고 다만 성경에 본문에 기록해 놓으신 대로 주님의 부활하신 그 요일을 말한다면 안식후 첫날 오늘로 말하면 제 8일되는 주일이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로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말하든지 안하든지 그렇게 지키고 있는 겁니다. 주일의 의미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라 그리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주일에 다가 우리도 그리 용어를 씁니다. 부활 주일이고 맥추 감사 주일이고 추수 감사 주일이고 그런 여러 가지 주일에 다가 이런 저런 절기 이름을 붙여서 주일을 말을 하고 그런 의미로 지키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워서 잘 알고 있는 대로 주일은 주일 그대로 지키는 것이 성경이고 주일에 다가 다른 무엇을 붙이는 것은 엄밀하게 따져 말하면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죄라 말하기 어렵고 우리가 편리상 또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대게 그리 알고 있기 때문에 그면을 생각해서 부활절 주일이고 맥추 감사주일이고 추수감사 주일이고 성탄 주일이고 이리 이름을 붙여서 말은 하지만 정확하게 따져서 구별한다면 주일은 주일 그대로 지키는 것이 옳은 것이고 주일의 내면적인 의미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라 그렇게 구별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본문에 오늘 봉독한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이 죽으신 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날은 안식일 하루 전날 예비일이라 그리 기록됐는데 안식일 하루 전날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안식일은 오늘로 말하면 어제 토요일 세상사람이 말하는대로 토요일이 그 당시로 말하면 안식일입니다. 그러면 안식일 하루 전날이니까 금요일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하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세인들 그들에게 붙잡혀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되어 구주로 오셨고 주님의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 말씀을 바로 전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 구원하는 살아있는 생명의 복음으로 전했고 당시 은사 교권의 위치에 있는 그런 지도자, 사람들을 이끌고 지도하고 가르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잘 믿는다는 바리세인들, 그들이 믿는 모습과 믿는 형편과 그들을 가르치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그런 사람들의 교훈은 율법적인데 말은 있고 생명은 없는 행함은 없는 말하자면은 죽은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특별히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여 하고 많은 외식을 말씀을 하시고 그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서기관들 바리세인들 대제사장들을 그들을 하나님께서 모세의 자리에 세워놓으셨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따라가지 않되 그들의 말은 행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 것이 문젠데 그러기 때문에 그 속에 생명역사가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말은 듣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따라가지 말아라 그리 말씀하셨는데 그러기 때문에 그들이 전하는 복음은 말만 있고 생명은 없는 실제 없는 죽은 복음을 전하고 있었고 그것을 주님이 대단히 책망을 하시면서 많이 잘못됐다고 꾸짖으시니까 그래서 생명 있는 복음을 따라서 많은 사람이 주님을 따라가니 교권을 잡고 그 교권을 바탕으로 자기 모든 세상 지휘 권세 모든 누릴 것 다 누리고 취하고 있는 그들이 주님 때문에 자기들의 지휘나 권세나 모든 기반이 흔들리게 될 것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시기해서 그래서 이단 괴수라 그래가지고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게 된 겁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그 위에 27장 위에 보면 성소 휘장이 성전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에 있는 성소 휘장이 사람이 손을 대지 않았는데 위로부터 아래까지 주님이 죽으실 때 둘로 찢어져 갈라졌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를 가로 막고 있던 죄가 다 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 죽으심으로. 그리고 땅이 진동해서 지진이 크게 일어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고 무덤속에 있던 자던 성도들이 많이 일어나있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 그들이 예루살렘 그 거리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 그리되어있습니다. 이게 주님이 죽으실 때 되어 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나서 죽으시니까 몸은 말하자면 혼이 떠나서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나서 죽으셨습니다. 사람이 죽었으니까 시체가 됐지요 그 시체를 아리마데 사람 부잔데 예수님 제자 중 한 사람인데 요셉이라는 그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우리 선생님 시체를 내 주십시오 당당하게 가서 말하니까 내주라 그래서 그 요셉이 예수님 시체를 가져가서 깨끗이 씻겨서 정한 세마포에 싸가지고 사람을 장사한 적이 없는 무덤 그당시 무덤은 동굴로 되어 있습니다. 굴을 파서 굴 속에 넣어 놨는데 거기다 예수님 세마포 옷으로 싼 시체를 넣어 놓고 돌로 그 무덤 입구를 아주 막아 놓았습니다. 그 사실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두 사람이 그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이튿날이 되니까 이튿날은 이제 무슨 날입니까? 예수님이 죽으신 날이 예비일 안식일을 예비하는 예비일 안식일 하루 전이고 그 다음날은 안식이이죠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날이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기 때문에 계명을 따라 쉬고 안식일을 지키고 그 다음날 안식후 첫날 새벽에 날이 밝기 전 일찍이 이제 막달라 마리아하고 다른 마리아 두사람이 무덤에 있는 주님이 어떻게됐는가 보려고 지금 이들이 무덤을 찾아가지만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꺼라는 이런 것은 듣기는 들었으나 알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그립고 선생님이 그립고 보고 싶고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막연히 그냥 찾아가는 겁니다. 무덤에 가니까 큰 지진이 나고 천사가 하늘로 와서 돌을 굴려 내고 그 무덤에 앉아 있는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이 눈같이 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파수하는 자들이 다 보고 있었는데 그 전에 예수님을 굴에 장사 했을 그때에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이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서 말하기를 총독각하 우리들이 들었기를 지금 죽은 예수라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 이 사람이 살아생전에 말하기를 죽은 후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날것이라고 말하고 미혹을 하고 다녔는데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겠습니까? 그런데 만약에 그 제자들이 저들이 굴에 넣어 났는데 제자들이 그 시체를 몰래 가져가서 음폐해서 숨겨 놓고 예수님이 삼일만에 살아 났다고 소문을 퍼트리면 그 유혹이 살아 생전 때 보다 더 크게 많은 사람이 이단에 빠질거니까 그냥 둘수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너희들에게 군사들이 있으니까 가서 너희들 힘껏 무덤을 지켜라 그래서 그들이 군사들을 데려가서 돌로 막은 그 굴입구를 군사들이 창을 들고 칼을 들고 아주 굳게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식일 첫 날 새벽에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두 사람이 가서 보니까 지진이 나고 천사가 하늘로 내려와서 돌을 굴려내고 그 모습을 봤는데 그 수직하던 사람들도 같이 군사들도 같이 보니까 아주 죽은 사람 같이 그렇게 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그 사실을 보고 같이 두려워 떨고 있는데 천사가 말하기를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아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였던 예수를 너희가 찾는줄을 내가 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평소 그의 말씀하신데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워있던 곳을 봐라 그들이 두사람이 들어가 봤을 때 때문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빨리 가서 갈리리로 가서 예수님의 제자에게 살아나셨다고 전하고 갈릴리로 가서 배울것이라 그렇게 말하라 하고 그 말을 듣고 마리아하고 막달라 마리아 두사람이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서 빨리 달려서 제자들에게 가는 도중에 주님을 만나서 평안하게 하고 만나고 다시 내가 갈릴리로 가서 내 형제 제자들을 보겠다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뒤에도 보면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부활되었을 그 당시를 4복음에 아주 소상하게 기록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한 40일 정도 그때는 계속 주일을 지키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보이시고 전할 말씀을 하시고 그리고 난 다음에 승천하신 것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요래된 상황에서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병들 중에 몇 사람이 군병들이 놀라가지고 혼비백산해서 자기들 대장들에게 가서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그 유대인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그 사실들을 전했습니다. 전하니깐 대제사장들은 그들이 이미 안다 그 말이지요. 주님이 예수님이 어떤분인걸 그들이 죽어서 예수님이 죽으실 그 당시에 되어진 그 상황을 보고 알았고 또 살아났다 그러니까 이제는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그렇지마는 만약에 그때 예수님이 살아나신 그 사실을 그들이 인정을 하고 그 사실을 전했다가는 유대인들이 너것들이 우리 구주 메시야를 나사렛 괴단 이수 이단 괴수라고 미혹해서 우리를 미혹해서 죽게 해 놓고 이제 와서 그러느냐하고 너것 때문에 우리 구주가 죽었다하고 그 위치에 있던 사람을 다 돌로 처 죽일거니깐 그 군중들의 분노가 그들이 감당을 못할것이기 때문에 파숫꾼들에게 돈을 많이 주면서 너희들은 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마라 그러면 큰 문제가 생기니깐 가서 예수의 그 제자들이 너희들이 깜빡 조는동안에 와서 몰래 시체를 도적질해갔다고 그렇게 소문을 퍼뜨리라 만약에 너희들이 존 것이 문제가 되다면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들에게 피해가지 않도록 그렇게 해줄꺼니깐 그래 말하라 그러니깐 파숫꾼들이 돈을 많이 받고 그래서 그들 시키는 대로 소문을 퍼자서 그당시 예수님은 살아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해가서 헛소문을 퍼뜨린것이라 그렇게 말들이 같이 돌게 되어졌던겁니다. 그러나 주님이 살아나신 것은 변한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그 당시 되어졌던 대략적인 예수님의 부활 당시 되어졌던 대략적인 성경에 기록된 상황입니다. 모습이고..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오늘 간단하게 생각해보려고 하는데 부활전에 먼저 부활이란 말은 죽었다는 의미고 죽은가운데 다시 살아난걸 부활이라 그래 말씀하시고 죽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무슨 뜻입이까? 부활은 죽음이 전제가 되있고 죽음이란 무엇이 전제되어 있습니까? 죽음이란 것은 살아있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있는 거지요. 주님이 이 세상에 살아계셨는데 예수님은 원래 우리가 아는데로 자존하시 하나님 하나님이신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인데 하나님의 사람되어 오셨는데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말씀이 육신이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셨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걸 가르켜서 한문글자로 도성인신이라 그리 말합니다.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도성인신 그 도자가 길도 자인데 말씀도자라 그럽니다. 도리할 때 그 도자 말씀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제 이위 성자 하나님의 이름이 말씀인데 말씀이라는 이위성자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이루어서 입고오셨다는 이걸 한문글자로 교리적인용어로 도성인신이라 그리 말씀을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다. 그러면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신데 말씀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이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참하나님 참사람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땅에 세상에 오신 분을 가르켜서 예수라, 예수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역사가 거대하고 깊이가 깊고 그 시작이 영원전부터 하나님 자존하신 그 이후부터 출발이 되어지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역사에 실질적인 출발의 첫 걸음이 어디냐 이게 바로 도성인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출발의 첫걸음이 바로 도성인신입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알 수 있는 실질적이면서 가견적인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첫 출발이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 말할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역사는 사람들이 아는대로 가장 큰 희생은 십자가에 고난받고 죽으신 죽으심을 가장 큰 희생으로 그렇게 사람들이 압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고난 받은 것도 우리가 알수 있는 고난이고 다는 몰라도 눈에 보이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이 고난 받았고 마음이 고난 받았기 때문에 동변상련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우리 사람이 영이라는 것은 안 믿는 사람은 모르고 믿는 사람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사람이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은 누구나 다 압니다. 어느정도인지 이번에 배 사고가 나서 약 삼백명이 넘는 사람이 지금 실종 상태 죽거나 실종 상태 되 있는데 그들의 가족들의 그 슬픔과 고통 아픔이라는 것은 우리가 참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심히 고통스러울겁니다. 우리기 그들만큼은 헤아리지 못해도 우리들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내가 만약에 그런 우리가 그런 상황을 당한다면 내 마음은 얼마나 아프게는가 마음의 고통은 헤아릴 수 있고 몸이 고통당할 때 몸의 고통은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난에서 예수님이 당하신 그 마음의 고통과 몸의 고통은 사람들이 짐작을 하기 때문에 참 고통스러웠겠다 하고 알아서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 역사에서 사람들이 깨달아 알고 느끼는 가장 큰 고난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으로 그렇게 알고 그것을 가장 큰 희생으로 그리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더 깊이 생각해보면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도 대단히 크지만은 그러나 외부적인 마음과 몸의 고난은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보다 훨씬더 고통스러운 그런모습으로 죽는 사람이 역사에 많이 있습니다. 우주적인 고난이라는 것은 그걸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공지성법과 관련된 당신이 책임진 이 잔을 내가 마시지 않고는 안되거든 주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한 그 당신이 책임진 그 고난의 쓴 잔을 하나님의 지공지성법 모든 택자의 구원 전부가 주님 당신에게 메였다는 그것하고 연결된 그것이 우주적인 고난인 것이지 그 고난 외부적인 자체를 두고 말하는게 아닙니다. 동시에 주님의 그 희생이라는 것은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도 대단히 큰 희생이지만은 그의 못지않는 그보다 오히려 더 큰 희생은 바로 하나님이 사람되신 도성인신의 이 희생입니다. 무한한 희생입니다. 이것이 대속역사의 첫 출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신겁니다. 우리가 흔히 비유하기를 설교시간에 듣고 또 설교하고 비유하기를 사람이 구더기가 된다면 있을수가 있는 일인가, 옛날이야기 우화에 보면은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런 말들이 있습니다. 나귀된 사람도 있고 사람이 소가 된다면 얼마나 그 수치며 비참한 것이며 천해진 것이 되겠습니까? 근데 구더기가 된다면 더 할 것이고 그러나 사람이 구더기 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은 사람 차원에서 사람 기준에서 생각하니깐 느끼기 어렵지만은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은 사람이 구더기 된 것 보다 무한한 더 낮아진 것이고 더 천해진 것이고 더 비참해진 것이고 그리 되어진 것인데 우리가 알기가 어렵습니다.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한한 희생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게 주님의 희생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서 이 땅에 오셨던가? 하나님이 사람 되어 이 땅에 오시게 된 이유는 크게 말하면 첫째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이유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사람은 사람이라야 사람의 대신 할 수 있는 고로 대신하는 대속역사를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으로 낮아지신 겁니다. 사람이라야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공법에 맞기 때문에 그래서 된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은 일위가 되신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택자 전부의 죄를 다 대속할 수 있고 과거 현제 미래 전부를 다 대속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신인양성일위가 되셔서 이땅에 오신 큰 두가지 이유입니다. 한말로 정리하면 신인양성일위 이분이 되어져야 말하자면은 택자 전부의 죄를 다.
사람이라는 자격이 되고 대속이 자격이 되고 택자들의 죄 전부다 감당할 수 있고 지공지성법에 만족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부득이하게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도성인신 역사를 하신겁니다. 이것이 대속역사의 첫걸음입니다. 지금 이게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까? 오늘 설교 말씀의 제목이 무엇인가요? 같이 한번 해보시겠습니다. 부활 그러면 부활이라는 말씀인데 예수님의 부활과 우리의 구원과 지금 연관시켜서 말씀드리기 위해서 그 방향과 나아가는 말하자면 실질적인 첫단계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실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됐기 때문에 원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 값이 없고 당신은 사망이 당신을 헤할수 없는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그래서 예수님을 둘째아담이라 그러죠 오신겁니다. 마리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오신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셔가지고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이땅에 오셨는데 오셔가지고 사신생애가 몇 년몇개월 살았다가 일반적으로 알려집니까? 예수님이 사신 생애 일반적으로 몇 년 몇 개월입니까? 33년 4개월을 사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33년 4개월을 이 세상에 오셔서 사셨는데 하신 그 모든 역사는 대속역사를 하셨습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대속 역사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를 구속하신 역사를 하셨다 그말입니다. 그 대속역사는 크게말하면 이게 세가지 역사인데 그 세가지 역사중에 하나가 말하자면은 세가지 역사를 할 수밖에 없던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지은 죄가 세가지 죄가 있습니다. 세가지 범죄 죄가 있는데 첫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죕니다. 죄값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한번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법은 영원한 사망입니다. 근데 그 영원한 사망의 죄값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고 대신 형벌, 영원한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역사를 주님이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고 자기가 자기 왕이 되가지고 자주장으로 산 이 죄가 있으니 이걸 불의라 그리 말하는데 요 불의의 죄값을 주님이 대신 형벌받아 죽으신 죽으심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떨어진 요 죄가 있는데, 요 우리의 죄 이 세가지 죄를 예수님이 요 세가지 죄값을 대신 짊어지고 세가지 죄로 인한 영원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신 죽으심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 요약 문답지 보니까 내용이 잘못된게 있는거 같은데 그래서 사람의 죄는 세가지 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죄, 두 번째는 자기주장으로 산 죄, 세 번째는 하나님을 배반한 죄 불목의 죄 이 세가지 죄가 영원한 사망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그 죽으심은 첫째는 이 세가지 죄를 형벌받아 죽으신 그 죽으심이 예수님의 죽으신 그 대속입니다 이걸 가르켜서 대형의 사죄라 그리말합니다
대형의 사죄 요 세가지 죄 때문에 형벌받아 죽으신 이 죽으심이 예수님의 죽으심이고 사람이 되어오셔서 대속역사를 하시고 그다음에 죽으신 그 죽으심이 바로 요 세가지 죄 때문에 죽으신 겁니다. 두 번째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못한 모든 것을 대신 행하신 그 대행의 죽으심이 예수님의 죽으심입니다. 이것을 대행의 칭의라 그리 말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들을 하나님과 화친시켜서 하나님의 아들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죽으신 죽으심이 예수님의 대화친의 죽으신 죽으심 죽기까지 화친 요개 대화친의 영생입니다. 요래하고 보니까 요약지가 틀린게 아니라 맞네요. 그래서 요 세가지를 가르켜서 죽으심의 대속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죽으심의 대속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속 자 첫째는 그 위에 예수님의 그 대속 역사의 출발의 첫걸음은 도성인신입니다. 도성인신의 사람이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이유와 그 이유 두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이라야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두 번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택자의 전부의 과거 현재 미래 전부를 대신할 수 있게 때문에 그래서 도성인신 신인양성일위로 도성인신하신 것이고 그래가지고 사람이되어 이땅에 오셔가지고 사시고 죽으시기까지 하신 그 생애와 그 죽으심의 역사는 세가지 역사인데 첫째는 세가지 죄를 형벌을 대신하신 대형의 죽으심 그로주신 사죄 두 번째는 대행의 죽으심 칭의 세 번째는 대화친의 죽으심 화친의 영생 생명 요 세가지 죽으심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이고 죽으심의 대속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가 예수님의 죽으신 대속인데 그러면 부활하신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일단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던 하나님이 죽으심으로 사람의 몸을 벗었습니다. 사람이 할수 있는거 다 했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벗어서 이제는 하나님과 사람이 떨어져서 하나님이신 주님이 입고 있던 사람 육신을 죽음으로 다 벗었으니까 이제는 신인양성일위가 예를 들면은 떨어져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계시고 죽으심으로 육신이 할수 있는거 다했으니까 벗어놓고 그래 끝나면 하나님으로서는 다 되는건데 고래까지만 해두고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면 사람에게 있던 죄는 없어졌고 형벌받았으니깐 죄는 없어졌고 의인은 되어졌고 그다음 하나님과 화친했으니깐 생명까지는 가졌는데 요게 실질적으로 말하자면은 영원한 천국에서 천국에 모든 것을 자기것을 만드는 현재 목숨만 화친의 생명까지 받았기 때문에 목숨만 붙어있지 그 목숨이 붙어있던 그 목숨이 살아갈수 있는 영생할수 있는 그런 실질적인 기능은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깐 주님이 죽으심으로 끝내면 죄는 없어졌고 의인은 되어졌고 생명은 붙어있으나 그러나 영원한 하늘나라 영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능은 하나도 없는 상태로 끝나버리기 때문에 영원한 지옥을 면했고 의인도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도 됬고 다 되어졌지만은 그냥 그대로 말하자면은
예를 들자면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는데 아이가 태어났는데 태어났습니다. 뱃속에 열달 있다가 태어났으니까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이목구비 수족 오장육부 다 있습니다. 다 있고 사람의 모습 갖추고 사람이 있고 생명도 있고 아버지 아들도 되어있고 다 되어 있는데 고대로만 두고 자라가지 안는다면 그 핏덩이 아이를 어디 쓰겠습니까? 그 핏덩이가 멀 할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못하지요. 고론 상태가 말하자면 주님 대속 죽으심 대속까지 되어지는 사망입니다. 혹 들으시면서 교리적으로 아시는 분들은 의문점을 찾아주십시오. 제가 잘못할수 있으니깐. 고 상태인데 거기서 주님이 부활하지 않았으면 뱃속에서 잉태된 태어난 아기가 막 태어난 그대로, 말하자면은 상황 생명도 가졌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다 되어있고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살았으나 산자라 할 수 없는 그대로 되어있습니다. 말하자면은 꼭 같다고 볼수 없지만은 주님의 대속을 입은 우리 성도의 모습이 그 모습입니다. 그대로 계속 가는겁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그러기 때문에 그 상태로 둘수가 없는 고로 하나님이 부활하셨는데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이 다시 사람의 몸을 입어야됩니다. 부활하신 몸이기 때문에 부활전에 몸과는 다른 신령한 몸이지만은 여전히 하나님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의 몸을 입고 신인양성일위로 그대로 부활해야 됩니다. 부활을 하심으로 이제는 우리에게 주신 것이 하나님을 향해서 영생하는 소망을 주셔서 이제는 그 핏덩이가 주님의 부활을 힘입어서 하나님이 주신 이 땅에 사는 기간 동안에 제 생의 기간 동안에 살아가면서 영생하는 영원히 천국에서 있을수 있는 모든 기능을 완벽하게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이 바로 부활의 주님의 공로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 죽지 않고 쇠하지 않고 낡아지지 않는 기업을 이어나가시겠다고 말씀을 하신겁니다. 이게 부활의 공로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의 공로를 정리해보면 첫째는 우리 부활의 실제입니다. 우리 부활의 실제란 말은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영육이 다 부활하는 겁니다. 부활하게 됬고 그러나 부활은 기본적인 부활 우리의 육신의 부활은 우리 노력이 없어도 부활되도록 되어졌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부활의 입어야 하는 그 모든 심신의 기능과 영원한 천국에 영원토록 쓰여질 모든 자기 모든 소유나 기관들은 이것은 주님 부활을 의지하고 근거해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우리들이 다 부활시켜 나가야되는 것이 우리의 일이고 그것을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입니다. 말하자면은 전체를 묶어서 부활의 실제를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이고, 두 번째는 이 실제를 이루어 갈 수 있는 능력의 실제를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이고,세 번째는 이 부활의 생애를 이루어 가는데는 많은 전투와 투쟁이 있는데 이 전투와 투쟁을 승리할 수 있는 실제를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이다 그래서 부활을 주셨고 능력을 주셨고 승리를 주셨는데 이 세가지를 실제로 우리가 가질수 있도록 주신 것이 주님의 부활의 공로다 그리 정리할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주님의 죽으심은 예수님의 죽으심은 말하자면은 미완성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죽으심은 완성했지만은 대속 역사는 미완성이고 미완성된 대속역사는 전체를 두고보면은 아무소용이 없는 무효한 죽으심이 되는 것이 마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죽으심은 대속전체의 기초고 부활은 건설이라 그리 말할수 있고 죽으심이 반이고 부활이 반이라 그렇게 비중을 따질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가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겠지마는 할렐루야 우리예수 부활 승천하셔서 기뻐하나 부활은 우리는 기쁘지만은 주님에게는 한없는 죽으심과 같은 희생이라는 것을 우리가 같이 한번 더 생각해봐야 되는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키는 매주 마다 지키는 주일이라는 이날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바로 주일이고 이 주일은 첫째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입니다. 두 번째 주일은 우리에게 주신 부활의 날입니다. 우리의 모든날들이 부활의 날인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부활을 하는날이 주일이고 부활의 전부를 다 이루어 갈 수 있는 전체전인 부활과 능력과 승리를 받는 그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말하자면 생명과 능력과 실제를 받는 날이 주일이라 그말입니다. 부활로 주신 주일인데 그래서 주님이 부활하신 날인데 그날이 바로 우리들이 부활해야할 날이고 그 부활의 실제를 받는날이 주일이란 말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우리가 부활해야된다는 그 부활은 다른말로 말하면 성화입니다. 성화 건설구원 이걸 받는 날이 주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기독교는 부활소망의 도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소망의 도고 우리가 배워 아는대로 부활의 차이는 무한의 차이가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서 부활한 사람과 부활한 사람의 차이는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죽으심의 대속으로 부활을 다 우리가부활했다더라도 부활의 공로를 힘입어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자기 모든 생애를 부활시켜가지 않으면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심신이 부활해도 그 심신은 갓난아이처럼 핏덩이처럼 아무것도 할수 없는 그대로 두면 말하자면 육신이니깐 굶어죽던지 병들어죽던지 추워죽던지 그럴 수밖에 없는 자립은 할 수 없는 핏덩이같은 그런 상태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이 땅에 사는동안에 자기생애의 모든 것을 부활시키지 못한 부활의 기능 없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거기서 자라가는 것은 얼마만큼 자기생애를 부활을 시켜갔느냐 주님의 부활의 공로를 힘입어서 자기생애를 얼마만큼 부활시켰느냐 살렸느냐가 얼마만큼 핏덩이가 먹으면서 자라면서 배우면서 기능을 익혀가면서 그 일을 자기를 만들어가느냐가 그 모습의 차이가 되는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땅에 사는 모든 성도의 전부는 부활시키는 날이라 부활시키는 기회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는 겁니다.
오늘은 부활,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그 부활, 부활 주님으로 보시는 주일인데 요 주일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의 그 부활의 의미 부활로 주신 공로 부활과 주일 또 부활의 공로로 우리들이 이루어갈 것이 무엇인가를 좀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후에 계속하겠습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이 교리로써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좀 생각해서 혹 잘못된 것 있으면 의문된 것 있으면 말씀 좀 해주시고 생각 좀 해보시는게 좋겠습니다. 주님의 도성인신, 도성인신의 이유 두가지, 죽으심의 대속 세가지, 부활의 깊은 의미 부활로 주신 주일의 의미 우리들이 할 일 여러 가지 생각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