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3-주후(단6:10)
기도2014-04-13조회 356추천 45
본문: 다니엘 6장 10절(요약/201404.13.주일)
제목: 기도
1. 다니엘의 기도
1)기도의 배경
- 현재 처한 형편의 원인을 아는 데서
- 조상들의 범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에 기인됨을 알았기 때문에
2)다니엘의 기도
- 회개가 중심, 조상들의 죄에 대해
- 자신들은 그 죄를 범하지 않기를
- 긍휼을 베풀어 해방, 자유 주시기를
3)기도의 계속
- 총리라는 바쁘고 중대한 일이 많은 중에서
- 하루 세 번 기도는 빼지 않고 계속해 왔고
- 기도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으나 여전히 기도를 계속했으니
- 하나님과의 약속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2. 기도의 의미
1)기본적으로 빈다, 간구한다는 의미
2)구체적으로 기도는
①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자존자로, 창조주로, 주권자로, 아버지로 믿는 것
②하나님을 부르는 것, 찾는 것, 가까이하는 것
③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고 대우하는 것
④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맡기는 것
⑤하나님께 감사, 자복, 의논, 간구하는 것
⑥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
⑦하나님과 교제하고 닮아 가는 것
3. 기도의 효력
①씨를 뿌리는 것, 뿌리지 않으면 싹도 추수도 없으니
②군불 때는 것, 불을 때지 않으면 방은 따뜻해지지 않으니
③봄을 부르는 것, 꽁꽁 언 대지를 녹이고 생명을 소생시키듯이
④회개 악취 제거, 자기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 향기
⑤심령 밝아지는 것, 자기를 깊고 넓게 만드는 것
4. 기도의 방법
1)방법
①입으로 ②마음으로
③행동으로 ④자신으로
2)순서
①감사 ②자복
③의논 ④간구
3)자세: 마음을 모아서 간절히
4)제목: 원한적인 제목으로
5)시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간단하게
5. 기도의 주의
①주관적인 기도
②중언부언 기도
③사람에게 보이는 기도
④낙망하지 말 것
⑤인내하며 계속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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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20140413 주후
다니엘 6:10-10
다니엘의 이때 위치가 나라의 총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사장이 되면 편안할 것 같고, 놀고 돈 버는것처럼 그리 오해를 하고, 또 직급이 올라가면 사무실 앉아서 서류만 살피고 도장만 찍고 월급은 많이 받아가고 그리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나라에 높은 사람이 되면 역시 그냥 밑에 사람 시키고 자기는 편안하게 쉬는 것처럼 그렇게 오해를 하지만은, 회사가 있으면 그 회사에 운영에 사원이 100명이면 그 100명 전부의 역할보다 사장 한사람의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고, 나라는 좀 다르다 그래도 나라가 약한 나라, 아직 미개한 그런 나라는 나라의 대통령 한사람 잘못 뽑으면 나라가 망하기도 하고 또 한사람 잘 뽑으면 망했던 나라가 아주 부국도 되고 그리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올라갈수록, 높아갈수록 일이 더 많아지고 힘드는 그런 위치가 되어집니다.
다니엘은 계속 밟아 올라가서 지금 기도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는 이 사건을 맞이했을때는 총리가 되어졌고, 그 총리 중에서도 120도가 있는데, 그 120도의 도지사들, 방백들이 있겠고, 그 위에 총리 세 사람을 세우고, 그 총리위에 단일 총리를 다니엘로 세우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은 머리에 있고, 바로 밑에 실무를 보는 그 실무 총책임자가 나라 전체에 다니엘이기 때문에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권한이 많으니까 책임도 많고 아마 밤잠을 자지 못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다니엘의 그 국사에 대해서 정적들이 흠을 잡으려고 찾아볼때, 능히 아무 흠, 아무 허물을 찾지 못하였더라. 빈틈없이 국사를 감당을 했습니다. 얼마나 바빴을까, 마음과 힘과 정신 모든 걸 다 기울일만큼 굉장히 바빴을 것이고, 그래도 사람의 노력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또 국사뿐 아니고 안봐도 모든 위로 왕에게 옆으로 모든 사람에게, 아랫 사람들 자기가 일 시키는 그런 면에 있어서 빈틈없는 그런 인인관계가 되어있었고, 개인적인 그런 사생활, 가정생활, 또 경제생활 모든 면에도 빈틈없는 그런 흠이 없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와중에서 하루 세 번씩 시간을 얼마만큼 했는지 모르겠지만은,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신앙에 전체를 두고 보면, 우리가 지난 오일밤예배땝니까? 야곱의 신앙의 그 근본을 생각해봤고 에서의 신앙의 근본을 생각해봤는데, 다니엘의 신앙도 그 아브람의 그 직접적인 그런 믿음의 계통에 서있지는 않아도 그 신앙의 성향은 여전히 같은 성향의 다니엘입니다. 말하자면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 삼은 그런 다니엘의 신앙이였고, 그래서 다니엘의 국사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 개인생활이든지, 모든 생활의 뿌리는, 원동은 전부 하나님 한분으로 전부 삼는 거기서 뻗어나온 것이고, 거기서 뻗어나왔기 때문에 다니엘의 모든 생활은 쉽게 흔들림이 없었을 것이고, 참 특별한 그런 은혜도 받았겠지만은 빈틈없는 그런 충성을 진실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 볼 수 있겠고, 그러나 맡은 일이 그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리 인도하셨으니까 나라 총리로서 그 일을 충성되게 감당을 하고 있지만은, 다니엘속에 전부는 하나님 한분이 전부였고,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인한 그 모든 생활,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이것이 모든 생활의 뿌리고 원동이고 전부였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일이 아무리 크고 사람들보기에 중차대하고 어떤 면에서 화려하고 권력있고 그래할지라도 다니엘은 총리라는 그 권력을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맡았기 때문에 중요하게 그래 감당을 했지, 그 총리직에 대해서 결코 연연하거나 가치를 두거나 탐하거나 하지를 않았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다니엘의 모든 생활의 뿌리는 전부 하나님과 자기 관계 거기서 나온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이 상황보면은,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배추달 집사님인가? 그분이 주일날 주일 때문에 공산군들에게 끌려갔는데, 주일날 무슨 짐을 지고 가자 하는 걸, ‘내일 제가 져다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주일이기 때문에 못합니다.’ 그러니까 끌고가서 ‘오늘 주일 못하면 (그러면 다른 거 하나 시키면서, 그보다 좀 더 가벼운 거) 이것만 하나 해놓고 가라’ 그러니까 ‘그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빗자루 주면서 빗자루로 ‘마당만 한번 쓸고 가라’ 그럴때 그 집사님이, 주일날 빗자루 마당 쓰는 거 하면 됩니까 안됩니까? 빗자루 마당 쓰는 거 하면 되지요. 할 수 있습니다. 방도 쓸 수 있고. 그런데 평소 안하던 집안 대청소는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빗자루 마당 쓰는 거 할 수 있지만은, 그 사람들이 시키기를, ‘당신들이 나를 이것 시키는 것은, 주일날 내가 마당도 쓸고 하지만은 지금 시키는 것은 짐 지고 가려하다가, 또 돼지 몰고 가려하다가 안하니까 이걸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일과 연계시켜서 나로 하여금 빗자루로 마당쓰는게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 목적입니까?) 주일을 어기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거는 내가 할 수 없습니다.’ 참 잘 구별했지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인데도. 평소에 그렇게 구별하지 않으면 비상 그런 유사시에 참 나오기 어렵지요. 그러니까 결국 나가서 사형을, 총살되서 순교하고 그리 됐다 그러지요.
그것처럼 평소에 기도를 예를 들어 빠트려도, 한번씩 바빠서 빠질 수 있어도, 어인이 찍혔기 때문에 역항으로 더 목숨 걸고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의 신앙 성향으로 볼때.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때 다니엘의 하루 세 번 기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빼지 않았다고 그리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단정 지을수는 없지만은. 그러면 총리라는 그 바쁜 위치에서 일이 굉장히 많을 것인데, 그 중에서 하루 세 번 하나님 앞에 정해놓은 그 시간에 기도하는 것은 결코 빼지를 않았다. 그것이 기도 자체도 중요하지만은 그게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하나님과의 약속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게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사람이 약속을 하면, 물론 사람이 다 같지만은, 친구하고 약속을 선약을 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뒤에 생긴 약속이라도 있으면 친구 약속을 양해를 구하든 손해배상을 하든 못 지킬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게 사람입니다. 물론 선약을 했으면 먼저 지키는게 도리지만은, 그보다 더 비중있는 그런분하고 약속을 한다면 친구약속은 손해배상을 하고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고 충분히, 그리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먼저 잡아놓은 그 약속이 무거운 것이면 뒤에 약속은 변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니까 그 자기가 상대방과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한 그 대상을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고 변치 못할 수도 있고 그리 될 수 있을 겁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그 약속이기 때문에 아무리 중대한 일이 있어도 이 약속은 변할 수 없었던 것이 다니엘의 신앙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다니엘에게는 전부였고 첫째였다, 중심이였다. 이게 몇 계명입니까? 십계명 중에서 이게 바로 제1계명입니다. 1계명을 다니엘 속에 꼭 붙들고 있으니까 다니엘은 그 생활을 계속 했기 때문에 사자굴이 앞에 있고 목숨이 달린 문제라도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고 감사하면서 계속 할 수 있었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이런 기도를 처음 시작을 하게 된 배경, 또 계속 이어온 그 배경을 우리가 성경 전체를 두고 자세히 기록 안되있어도 유추해서 생각해보건데, 자기 조상들의 죄하고 연관되어 있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조상들이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 그 원인이 무엇이냐? 그 원인이 어디 있는 겁니까? 이스라엘이 남쪽 유다 베냐민 두 지파, 다니엘이 속한 그 지파 나라가 이스라엘이 바벨론 나라 다 잃고 포로 되어온 그 원인이 어디 있는 겁니까? 무기가 없었습니까? 아니면 국방을 안해서입니까? 나라에 비리가 만연해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매국노가 많아서 그렇습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왜 이스라엘이 망한 겁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말하자면은 하나님께 매였는데 그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노엽게 한,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여기 원인 있는 것을 다니엘이 알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망했고, 후손된 우리가 포로되어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지은 그 죄를 우리가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노를 푸는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그런 행동을, 그런 생활을 안해야 된다는 이것이 다니엘에게 뼈저리게 깨달아졌고 느껴졌기 때문에, 다니엘을 말하자면은 조상들이 하나님이 앞에 쌓아놓은 그 진노를 푸는 그 기도를 한 것이고, 또 자기들은 그런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한 것이고,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주시라는 그래서 다시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래서 자유롭게 하나님 섬길 수 있는 그런 자유를 달라는 그런 기도를 했다고 거의 확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과거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원인을 해결하는 그 다니엘의 방법이, 생활면도 하지만은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기도로 하나님의 노를 푸는 생활, 그래서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기도하면서 우리 부모들의 죄, 조상들의 죄, 선조들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사해주옵소서. 자손된 우리는 다시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도록 저희들을 붙들어주옵소서. 긍휼을 베푸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노가 풀리고, 우리 하나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그런 상황이면 그래 기도를 하겠지요. 이런 기도를 했을 것이고, 이 기도가 내면적으로는 하나님과 다니엘의 관계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외부적으로도 이것이 자기 민족이, 국가가, 자기들의 앞날이 달린 문제기 때문에 가장 중대한 일이고 그래서 총리자리를 내놓으면 내놔도, 자기 생명을 내놔도 기도를 끊을 수 없는 이런 중대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했다 그리 볼 수가 있을 겁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하루 세 번씩 기도하게 된 그 기도 제목, 배경, 이런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말씀을, 설교하는 목적은, 설교를 논리정연하게 아주 잘해서 그 듣는 그 순간에 마음을 감당시키는게 목적이 아니고, 설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구원도리를 기도중에, 또 배워서 깨달아가지고 아는대로 전하는 겁니다. 그럼 전하는 목적은, 전하는 사람도, 듣는 모두도 다 이 말씀대로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전하는 겁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여러 가지 행정적인 그런 제도가 있을 수 있고, 또 방편이 있을 수 있지만은 성경으로 말하면 교회라는 것은 그 교인이 천명이든 만명이든 백만명이든 삼백만명이든 교회는 누구에게 매인 겁니까? 교역자 한 사람에게 다 매인 겁니다. 그게 성경입니다. 모세 한 사람에게 이스라엘 전부다 다 매였습니다. 그러니까 설교하는 사람이, 교역자가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맺고 바로 전하면, 교인들이 은혜받고 변화되는 그게 원칙이고 원론이고 원래 모습이고 가장 좋은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말 저말 하는 것이고, 당부도 하고 자꾸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설교를 하는 것은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들도 어쨌든 이 말씀대로 행하자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전하는 겁니다. 이대로 살자고.
그러면 오늘 말씀에 내용은 쉽게 한마디로 말하면, 기도하자는 겁니다. 기도하자. 그런데 그 기도하자는 데 있어서 그냥 기도하자 그러면, 속이 비어가지고 잘 안 느껴지니까, 왜 기도를 해야되는지를 여러 가지를 가지고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우리가 은혜를 받고 행한다면 이전보다 좀더 기도하는, 기도시간으로 양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면 오늘 말씀은 바로 되어지는 것이고, 내나 해봐야 기도 안하고 그대로 같으면 오늘 말씀은 그냥 허공에 뜬 그런 소리가 되고 마는 겁니다. 기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면 기도하는데 있어서 그 알맹이를 하나씩 채워가자면,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기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의미를 말하면 빈다는 뜻이라 그랬습니다. 빈다, 구한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기도라는 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교에도 있고 미신에도 있고, 다른 종교에도 세상에도 기도라는 말은 많이 쓰는데, 그러나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고 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기도라는 단어는, 표현은 제일 많이 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라 그러면 일단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인데, 기도라는 것은 첫째 그 의미가 하나씩 짚어보십시다.
기도는 뭐하는 거라고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어 드리는 겁니다. 믿는 겁니다. 대접하는 것하고 비슷한건데, 하나님을 믿는 것, 인정하는 겁니다. 이분이 우리 아버지다, 우리 어머니다, 자녀에게 ‘이분이 너희 아버지냐?’ ‘네,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면 아버지는 자녀를 책임을 지는 것이고, 보호를 하는 것이고, 양육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사고를 치면은, 미성년자가 사고치면 경찰이나 이런데 끌려가면 뭐라 그럽니까? 미성년자가 사고치고, 끌려가면 뭐라 그럽니까? ‘부모님을 모시고 와라.’ 왜 부모님 모시고 옵니까? 사고는 아이가 쳤는데. 철없이 어린 아이가 사고 쳤는데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진다고요? 부모님이기 때문에. 그래서 ‘부모님이 맞느냐?’ ‘맞습니다.’ 신분확인하고 맞으면 비로소 책임추궁을 하게 되고, 그리 하는 겁니다. ‘이분이 너희 아버지냐?’ 이웃집 아저씨를 아버지라 그럴 수는 없지요. ‘아버집니다’ 그말은, 그 말속에는, 묻는 사람도 본인도 아버지도, 그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그게 그 내면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 관계 속에.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내가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인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내가 부르고 기도하는 우리 하나님 그 분은 내 아버지고, 그 하나님은 모든 걸 다 아시고 알 수 있는 전지전능자며, 그 하나님은 이 세상에 모든 걸 만드시고 주권하시는 분이라서 그분이 내가 기도하면 당신이 알아서 좋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내가 기도하면 그분은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분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이게 전제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그냥해도 논리로 따지고 들어가면 이 모든게 바탕에 깔린 상태로 기도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기도를 안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것을 정말 참 많이 믿는 사람이고, 믿는다는 이름을 가졌으되 기도를 안하고 있다면, 이런 바탕에 깔린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과 자기 관계에 대해서 모르거나 안 믿거나, 잘 모르거나 안 믿거나 이런 경우지, 참 이걸 알고 믿는다면 기도를 안할 수가 없는 겁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그말은 자존자로, 창조주로, 주권자로 인정한다는 표시입니다. 믿어드린다는 표시고, 이게 기도라는 겁니다.
그다음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불러서 찾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다음 뭡니까? 이사야 1장 18절 말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 앞에 가는 겁니다. 그게 기도라 그말이지요. 구해라, 찾아라, 두드려다, 하나님을 찾으라 그말입니다.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이거는 자세인데, 하나님 앞에 구하는 우리의 성의입니다. 성의표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자기를 도와줄 사람에게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짝다리를 짚고, 팔을 뒷팔 걸어가지로 비스듬하게 서서 ‘나 좀 도와주소’ 도와주겠습니까? ‘야 이놈아 도움을 청하는 자세가 그게 뭐냐. 좀 공손해야지.’ 허리 좀 숙이고, 아주 깊이 좀 숙여서 공손하게 좀 도와주십시오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높으면 높을수록 더할겁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 기도할 때 일반적으로 무릎을 꿇는데, 무릎 꿇고 기도하다 다리 아프면 양반질 안합니까? 양반질도 하다가, 양반질 하고 다리 아프면요? 다리 쭉 뻗고도 기도 안합니까? 저는 그래 한번씩 하는데요. 앉아서 기도하다가, 무릎 꿇고 하다가 기도시간이 길어지고 다리가 아프면 양반질 하고 하다가, 다리가 졸아가지고 막 쥐가 나고 아프면 어쩌겠습니까? 쭉 뻗어서도 기도해야지요. 엎드려서도 기도하고, 누워서도 기도하고, 그래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본적인 자세로, 무릎을 딱 꿇는 것은, 하나님앞에 공손하게 자기를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눈을 감는 것은 다른 것을 안 보겠다는 표시고, 주님만 보겠다는 표시고, 고개 숙이는 것도 공손이고, 손을 모으는 것도 그렇고. 하나님을 부르고 찾는 자기의 태도라 그말이지요.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불러서 찾는 것입니다. 가까이 하는 겁니다. 기도는 그런 겁니다.
그다음 세 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는 거다.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겁니다.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것. 이것도 참,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지만은 중요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대우합니까? 교권이 땅바닥에 떨어져서 놀려먹고, 선생님과 같이 멱살 잡고, 어떤 경우는 선생님이 뺨을 때리니까 학생도 선생님 뺨을 때렸다 그러지요. 참 말세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고.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는데, 그런거는 변해봐야 좋을 것이 없는데. 그놈에 인권이 들어서. 인권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름하여 듣기 좋은 그 인권이 들어가지고 다 그래만드니까 온갖 폐단이 다 생겨지게 되는 거지요. 스승을 스승으로 압니까? 부모를 부모로 압니까? 부부가 서로 부부로 압니까? 말세가 됐으니까. 그런데 그걸 참, 성경적으로 그래서 한번씩 그런 생각 해봅니다. 참 보면은, 예수만 바로 믿으면, 바로 못 믿어서 탈이지, 신앙생활만 바로 하고, 말씀만 바로 깨닫고, 예수만 바로 믿으면 바로 천국이 거기 있는데. 그러기 때문에 사람중에 가장 귀한 사람은, 돈 많은 사람 머리 좋은 사람, 도덕적으로 흠과 점이 없는 사람, 실력있는 사람, 별별 좋은 사람 많아도 가장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 잘 믿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목사니까 당연히 그렇겠지요. 목사 아니라도, 제가 목사 아니라도 성경 가지고 말씀을 깨닫고 가만히 살펴보면은 예수 잘 믿는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예수 믿는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는데, 예수 믿는다는 옷은 있고, 무늬는 있는데 속은 전부 예수 안믿는 사람으로 사니까 문제가 생겨지지, 참 예수 믿는 바른 사람들은 참 귀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세 번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는 겁니다. 대우해드리는 것. 말하자면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그분을 창조주로, 이 세상의 주권자로, 나의 모든 생사와 화복과 흥망성쇠, 존비귀천을 그분이 다 쥐고 있다는 것을 믿어드리고 인정해드리는 것이 기도다 그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나라가 바뀔때쯤 되면은, 아마 내년쯤만 되면은, 다음 대권후보가 누구냐 그래가지고, 그쪽으로 줄을 설걸요? 아마 모두 많이? 어느쪽으로, 누구한테 붙어야 내 출세길이 보장이 되겠는가? 누구한테 붙어야 내가 얻어먹을 떡고물이 떨어지겠는가. 그래가지고 모두 붙지 않습니까? 사대주의, 사람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이 그래 만들어놨습니다. 하나님이 내 생사를, 흥망성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들어붙지, 세상의 다른 것에게 들어붙지 않습니다. 모르니까 모두 자기 주변 사람에게, 상관에게, 물질에게, 직장에 다 목을 매고 있지, 참 아는 사람은 그래하지 않습니다. 믿어봐야 아는 겁니다. 먹어봐야 맛을 알고, 믿어봐야 아는데, 안 믿으면 모르는 거지요.
네 번째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바라보는 것이고 자기 전부를 다 맡기는 것이 기도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다 맡기고 그게 기도고, 다섯 번째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또, 자기 모든 잘못을 자복하는게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의논하는게 기도고 하나님 앞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기도고, 여섯 번째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게 기도입니다. 기도를 자꾸 하면, 바른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쉽게 떠나지를 못하는 겁니다. 붙들고 놓지 않는것, 떠나지 못하게 붙드는 것이 기도다. 그리고 일곱 번째 기도는 뭐라고요?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래가지고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기도라. 그래서 기도라는 제도를 내신 목적이, 궁극적인 최종 목적이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을 사겨서 하나님을 닮으라고 내놓으신 겁니다.
그다음 크게 세 번째, 기도의 효력이 어떠하냐. 기도의 효력은 첫째는 무엇과 같다고 그랬습니까? 이걸 좀 동감이 되십니까?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이거는 생각해볼때, 기도는 해놔야, 해야만이 효력이 있다 그말입니다. 한 거하고 안 한 것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그말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랴. 아니뗀 굴뚝에 연기나는 법이 있습니까? 아니뗀 굴뚝에 연기나는 법은 없는 겁니다.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싹이 날 수는 없습니다. 물을, 통에 물을 담아 놓으면 거기서 모기 유충이 많이 생깁니다. 근데 아마 안봐도 물을 담아 놓고 뚜껑을 딱 덮어 놓으면 모기 유충이 생기겠습니까, 안 생기겠습니까? 거기는 유충이 생길수가 없습니다. 뚜껑을 열어놓으니까 모기들이 와서 거기다 알을 서니까 그래서 모기 유충이 생기는 거지요. 아무 이유없이 생기는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화론이란 것은 그거는 그 사람들대로 논리가 있겠지만은 제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엉터리고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놨습니다. 씨를 뿌려야만 싹이 나는 겁니다. 반드시. 마찬가지로 기도는 하면 할수록 시간 속에 그 효력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 안하면 기도의 효력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농사를 조금씩 텃밭 농사 지어보니까 이런것도 생각이 납니다. 안 뿌렸는데 뭐 아무것도 없지요 뭐. 뿌리니까 싹이 나지요.
두 번째는, 요즘은 군불이라는 말 잘 안쓰겠지만은, 말하자면 난방하는 거지요. 군불 떼는 것과 같다, 이치가. 불을 떼면 시간 속에 서서히 방은 점점 따뜻해오지만은 불을 안 떼면 방은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우리 기도 제목은 많습니다. 부모님은 자녀 위해서, 제가 한번씩 거동이 불편하시고 병원에 입원하신 연세 많은 어른들한테 심방을 하면 꼭 그 부탁 합니다. ‘몸이 불편하시니까 다른 것 못하시지요. 누워서 기도는 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자녀위해서, 자손들 위해서, 교회 위해서, 가정 위해서, 또 천국 구원위해서 부지런히 기도하십시오.’ 그래 기도하면 표가 안 나는 것 같으나 기도는 결코, 단 한번의 기도도 헛되이 없어지는 수가 없는 겁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좋은 겁니다. 많이 하는 것이. 기도는 군불 떼는 것과 같다. 해놓으면 결과는 반드시,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는게 기도입니다.
또 기도는, 봄을 부르는 것이다. 다른 걸로 표현하자면 기도는 기름칠 하는 것하고 같습니다. 기름은, 성경에 기름은 뭘로 표현합니까? 성경에 기름은 뭘로 해석합니까? 기름은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지요. 성령의 역사. 성령의 역사라 말은, 성령의 역사는 감화고 감동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기도를 하면은 성령이 역사해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감화시킵니다. 사도바울은 논리가 정연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실질적인 그런 복음 운동을 하신 분이고, 사도요한은 그리 했지만은, 그분은 사도요한은 기도의 사람인데, 그래서 순교하지 않았지만은 순교한 것과 같은 그런 사도요한인데, 전설에 의하면 마지막에, 전설이라 말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꾸며낸 이야기라 말이 아니고, 전설이라 말은 전해내려오는 말이라 그뜻입니다. 전해내려오는 그 말에 의하면 사도요한은 마지막에 90이 넘어서 걷지를 못해서 매다가 놨는데, 한마디 했다 그러지요.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온 청중들이 은혜받고 그만 울고 불고 눈물 바다가 됐다 그러는데, 그게 전부 기도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기도의 능력. 그게 기도의 효력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봄을 부른다. 봄은,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다 녹이는게 봄이고, 모든 생물을 살리는게 봄입니다. 말하자면은. 예를 들자면, 기도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 중에서 알고 보면, 물론 때가 있으니까. 젊을 때는 몸이 많이 움직입니다. 활동 많이 하고 움직이지만은, 점점 믿어갈수록, 세월이 갈수록 몸으로 하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기도의 양이 자꾸 점점 많아지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백목사님께서 순교하시기 오래전부터는, 한 10여년전부터는 하루 세가지만 하신다 그랬지요. 설교하는 것, 성경 연구하는 것, 기도하는 것. 그래서 그분은 매일 새벽기도 마치고 나면 저 양산동 가서 하루종일 기도하고 저녁에 내려오시고, 어떨때는 그다음날 새벽에 내려오시고. 그때는 참 벌로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그래하는게, 저거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연세 80된 노인이 새벽기도 마치면, 차타고 한시간 거리 가서 30분 가까이 걸어올라가서 천막 쳐놓고 하루종일 그 산에 있다가 저녁에 내려오고, 아니면 그 다음날 새벽에 와서 또 와서 새벽기도 보고. 그거는 초인적인 그런 능력이지,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아마 저부터 그래 한달만 하라 그래도 병이 날 것 같고, 1년 하면 아마 안 죽겠나 싶은 사람이. 1년은 하도 못할 것이고. 그래 기도를 많이 하고 그리 가신 겁니다. 기도하면은, 기도는 하면 할수록 바른 기도는 자기 주변에 모든 사람을 다 녹이는 그런 능력이 따라오는게 기도입니다. 봄을 부르는 것이 기도다.
네 번째 기도는, 모든 악취를 제거하는 겁니다. 악취라는 말은, 자기 속에 있는 온갖 추하고 지저분한 그런 생각, 마음, 욕심, 취미, 감정, 습성, 생활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자기속에서 털어버리고 뽑아내는게 기도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의 열매는 반드시 회개로 나와야 된다 그럽니다. 기도의 열매는 반드시 회개로 나와야 바른 기도가 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요한계시록 8장에 보면은, 향이다. 악취를 제거하는 향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다음 다섯 번째 기도는, 심령이 점점 밝아지는 겁니다. 자기라는 사람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온전해지고 구비해지는 이게 기도의 효력이다. 또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시고, 그다음 크게 네 번째, 기도의 방법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기도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기도는, 입으로, 말로 하는 것, ‘해주옵소서’ 주님 찾고 ‘이렇게 해주옵소서’ 입을, 혀를 움직여서 하는 기도. 그다음에 마음으로 생각으로 명상으로 하는 기도. 그다음 세 번째는 기도한 그대로 자기가 행동을 하는 그게 기도입니다. 행동 자체가 기도다 그말이지요. ‘죄를 안 짓게 해주옵소서.’ 입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했으면 그다음에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을 하는게 기도입니다. 기도고, 그다음 네 번째 가장 깊은 기도는 자기 자신이 변화되는 그게 기도다. 그래서 입으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자기 자신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고, 기도의 순서는 이거는 반드시 그래야 되는 건 아닌데, 기도를 쉽게 하는 방법으로 찾아보면, ‘기도가 잘 안됩니다. 기도문이 안 들립니다.’ 그럴때, 가장 쉬운 방법은 첫째, 하나님 앞에 감사거리를 찾아보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감사꺼리를 찾아보고, 두 번째는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뭔가, 자복할 것을 찾아보고, 그러고나서 자기 모든 형편사정을 하나님 앞에 다 아뢰고, 그리고 도움을 청하면 기도를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순서가 되어진다 그런 것이겠고, 그다음 기도할 때 자세는 간절하게 마음을 모아서 강청의 기도, 벗된 연고때문에는, 벗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아니할지라도 하도 와서 강청하니까 강청함을 인하여 소용대로 주리라. 누가복음 11장에 강청의 기도. 이게 기도의 자세고. 기도제목은 원한적인 기도제목이 되어야 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여인의 원한적인 사무친 그 기도. 그런 기도제목을 찾아봐야 됩니다. 그런 기도일수록 효력은 더 직접적으로 즉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시간은 정해놓고, 하루 몇 번이든 정해놓고 간단하게 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 다섯 번째, 기도할 때 주의할 것은, 첫째로 주관적인 기도를 조심해야 됩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읽으면 지식이 많아지니까 이 사람이 조심할 것은 남을 정죄하는 그면을 조심해야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를 많이 알아서 아는 것이 많으면 그 아는 것을 가지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거기에 쉽게 쓰여지게 됩니다. 사람이란 것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내가 칼을 쥐고 있으면 이 칼을 가지고, 돈을 가지고 있으면 써 보고 싶은게 사람입니다. 돈이 있으니까, 돈이 많으니까, 남으니까 자동차도 한번 바꿔볼까, 집도 좀 넓혀볼까, 가구도 좀 바꿔볼까, 옷도 좀 좋은 거 사입어 볼까. 돈이 많으면 그런 마음이 들어가는게 사람입니다. 총을 쥐고 있으면, 미국 나라에 총기 사고 많이 나는게 그런 이유 중에 하나일 겁니다. 총이 있으면 ‘쏘아볼까?’ 은연중에 그런 마음이 드는게 사람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지식을 많이 알면, 이걸 발표하고 싶고 내보여지고 싶은게 사람이고, 그러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심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반대는 또 다른 면으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기도는 주님과 자기 관계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는데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은 신비주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기도는, 기도를 많이 하면 생각을 많이 해야 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은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명상을 하고 연구하게 되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다보면 자칫하면은 불건전한 신비주의. 그래서 이단들,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들이 거의 대개보면은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 산에 많이 다니는 사람들,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대개보면은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많이 빠져서 이단 되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서 이단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바로 알면은.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면, 자칫 하면은 그리 빠지기 쉽기 때문에 기도할때는 많이 하되, 반드시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되지, 주관적인 기도하면은 큰일납니다. 주관적인 기도 굉장히 위험합니다, 주의할 것. 두 번째는 중언부언 하는 기도. 아무 생각없이 뜻없이 감정없이 그냥 입으로 중얼중얼 중얼중얼 하는 그 기도, 그것도 참 조심해야 됩니다. 중언부언 하지 말라.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아무런 거기 대한 느낌도 없고 논리도 없고, 이치도 없고 따지는 것도 없고, 구별성도 없고 감정도 없고, 그냥 하는 기도 이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언부언 하는 기도도 조심해야 되고. 세 번째는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 사람이 보기에 기도 많이 한다, 잘한다 이것도 조심을 해야 됩니다. 네 번째는 기도할 때, 기도라는 것은 세월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리는 것이고 군불 떼는 것이고, 봄이 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다 시간을 두고 효력이 나타난 거라서 기도는 낙망은 금물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된다. 낙망은 금물이고, 그러기 때문에 다섯 번째 인내하면서 계속해야 된다. 이렇게 주의 할 것 다섯 가지.
그래서 오늘 말씀, 크게 말하면, 첫째는, 다니엘의 기도. 그 기도의 배경. 두 번째는, 기도의 의미. 기본적으로 구체적으로. 세 번째는 기도의 효력, 네 번째는 기도의 방법, 다섯 번째는 기도의 주읜데,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이 알맹이를 채워서 실제 각자 돌아가서 이제는 기도하는 우리가 되야 되겠습니다. 어쨌든 식사기도 당연히 할 것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전체생활에서 잠깐 기도할 것이고, 저녁에 기도할 것이고, 이런 기도하는데, 예배 전후로 기도하고 기본적인 기도하는데,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든지 언제 어쨌든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이거는 참 가장 그래서 바쁠수록 더 기도 많이 하고 어려울수록 더 기도하고, 기도를 점점 많이 늘려가야 되지, 기도하는 시간을, 처음에는 잘 안되도 우리가 어릴때는, 기도할 때는 반드시 장소를 좀 정해놓고 무릎을 딱 꿇고 고개 숙이고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그런 자세를 갖추어서 기도하는게 좋습니다. 운동할 때 제일 처음에 배우는게 뭡니까? 운동선수들이 제일 처음에 배우는 자세를 뭐라 그럽니까? 기본동작, 기본 자세. 공부할때도 가장 기초를 배우는 것처럼 기도의 가장 기본은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이고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조용한 장소를 찾아서 그래하는게 기도의 기본입니다. 처음에는 그것부터 해야됩니다. 만들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점점 그게 익어지면은 나중에는 장소 상관없이, 그러나 시간은 좀 정하는 게 좋고. 그래가지고 자꾸 기도를 늘려서 어쨌든 좋기는 예배 시간 전후에 하는 기도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배시간 전에, 한 30분 전에 와서 성경 읽다가 또 10분 기도하다가, 마치고나서 10-20분 기도하고가고 이러면 참 좋을 건데, 우리 교인들 모두 바쁘겠지만은, 시대가 변하니까 이것도 변하는건지, 옛날에 보면은 다 예배시간에 보통 반사선생님들이 바빠도 그래서 목사님께서 그말씀 하십니다. 주일학교 반사, 중간 반사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닙니다 학생들 전도하기 위해서. 그럼 막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면은 예배시간에 지각도 하고 그러거든요. 겨우 겨우 맞춰옵니다. 학생들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데, 그런데 그래서 피곤해서 꼬박꼬박 졸면 백목사님 호령이 떨어집니다. 남 구원하고, 그다음요? 제가 죽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되야 되지, 예배시간에 졸면 은혜 못받고, 예배 시간에 졸고 은혜 못받는 그 열심, 충성은 오래 안 갑니다. 오래가도 나중에 껍데기 되기 쉽고, 예배 시간에 은혜 받지 못하는 그거는 참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빼놓고 실패하면 다 실패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빼앗겨서는 안되겠다. 아무리 바빠도.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기도하고, 또 어른들 직장에 가서도 틈을 내서 기도하고, 또 집에 돌아와서 기도하고, 매일같이 얼마씩이라도 무릎을 딱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런 시간을 좀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가장 좋기는 예배 시간 전후에 좀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는 게 가장 좋겠고, 그래서 오늘은 기도란 이 말씀,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장소 정해놨지요?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 자기 방에서 거기서 하루 세 번씩 매일같이, 그 바쁜 사람이 그 높은 귀족이 꼬박꼬박 기도하고, 기도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 죽을 입장이 되어져도 기도는 놓지 않고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 생활을 계속하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아마 우리 교회는 기도를 많이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성경은 좀 읽는 것 같은데, 요즘. 기도를 많이 좀 잃어버린 그런게 되어있지 않은가 싶은데 잃어버린 기도를 다시 찾아야 되겠다 하는 소망에서 이 말씀을 생각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를 다시 찾도록 하십시다.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를 말씀드렸는데 다 말씀드리려면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많이 아시니까, 아시는대로 내용을 채워서 어쨌든 기도 하는 우리들이 되면 성공입니다. 기도를 하는, 개인도 가정적으로도 어쨌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제목: 기도
1. 다니엘의 기도
1)기도의 배경
- 현재 처한 형편의 원인을 아는 데서
- 조상들의 범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 하나님과 자신들의 관계에 기인됨을 알았기 때문에
2)다니엘의 기도
- 회개가 중심, 조상들의 죄에 대해
- 자신들은 그 죄를 범하지 않기를
- 긍휼을 베풀어 해방, 자유 주시기를
3)기도의 계속
- 총리라는 바쁘고 중대한 일이 많은 중에서
- 하루 세 번 기도는 빼지 않고 계속해 왔고
- 기도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으나 여전히 기도를 계속했으니
- 하나님과의 약속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2. 기도의 의미
1)기본적으로 빈다, 간구한다는 의미
2)구체적으로 기도는
①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자존자로, 창조주로, 주권자로, 아버지로 믿는 것
②하나님을 부르는 것, 찾는 것, 가까이하는 것
③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고 대우하는 것
④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맡기는 것
⑤하나님께 감사, 자복, 의논, 간구하는 것
⑥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
⑦하나님과 교제하고 닮아 가는 것
3. 기도의 효력
①씨를 뿌리는 것, 뿌리지 않으면 싹도 추수도 없으니
②군불 때는 것, 불을 때지 않으면 방은 따뜻해지지 않으니
③봄을 부르는 것, 꽁꽁 언 대지를 녹이고 생명을 소생시키듯이
④회개 악취 제거, 자기를 깨끗하게 만드는 것, 향기
⑤심령 밝아지는 것, 자기를 깊고 넓게 만드는 것
4. 기도의 방법
1)방법
①입으로 ②마음으로
③행동으로 ④자신으로
2)순서
①감사 ②자복
③의논 ④간구
3)자세: 마음을 모아서 간절히
4)제목: 원한적인 제목으로
5)시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 간단하게
5. 기도의 주의
①주관적인 기도
②중언부언 기도
③사람에게 보이는 기도
④낙망하지 말 것
⑤인내하며 계속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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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20140413 주후
다니엘 6:10-10
다니엘의 이때 위치가 나라의 총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사장이 되면 편안할 것 같고, 놀고 돈 버는것처럼 그리 오해를 하고, 또 직급이 올라가면 사무실 앉아서 서류만 살피고 도장만 찍고 월급은 많이 받아가고 그리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나라에 높은 사람이 되면 역시 그냥 밑에 사람 시키고 자기는 편안하게 쉬는 것처럼 그렇게 오해를 하지만은, 회사가 있으면 그 회사에 운영에 사원이 100명이면 그 100명 전부의 역할보다 사장 한사람의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가는 것이고, 나라는 좀 다르다 그래도 나라가 약한 나라, 아직 미개한 그런 나라는 나라의 대통령 한사람 잘못 뽑으면 나라가 망하기도 하고 또 한사람 잘 뽑으면 망했던 나라가 아주 부국도 되고 그리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올라갈수록, 높아갈수록 일이 더 많아지고 힘드는 그런 위치가 되어집니다.
다니엘은 계속 밟아 올라가서 지금 기도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는 이 사건을 맞이했을때는 총리가 되어졌고, 그 총리 중에서도 120도가 있는데, 그 120도의 도지사들, 방백들이 있겠고, 그 위에 총리 세 사람을 세우고, 그 총리위에 단일 총리를 다니엘로 세우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왕은 머리에 있고, 바로 밑에 실무를 보는 그 실무 총책임자가 나라 전체에 다니엘이기 때문에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권한이 많으니까 책임도 많고 아마 밤잠을 자지 못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다니엘의 그 국사에 대해서 정적들이 흠을 잡으려고 찾아볼때, 능히 아무 흠, 아무 허물을 찾지 못하였더라. 빈틈없이 국사를 감당을 했습니다. 얼마나 바빴을까, 마음과 힘과 정신 모든 걸 다 기울일만큼 굉장히 바빴을 것이고, 그래도 사람의 노력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또 국사뿐 아니고 안봐도 모든 위로 왕에게 옆으로 모든 사람에게, 아랫 사람들 자기가 일 시키는 그런 면에 있어서 빈틈없는 그런 인인관계가 되어있었고, 개인적인 그런 사생활, 가정생활, 또 경제생활 모든 면에도 빈틈없는 그런 흠이 없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와중에서 하루 세 번씩 시간을 얼마만큼 했는지 모르겠지만은,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신앙에 전체를 두고 보면, 우리가 지난 오일밤예배땝니까? 야곱의 신앙의 그 근본을 생각해봤고 에서의 신앙의 근본을 생각해봤는데, 다니엘의 신앙도 그 아브람의 그 직접적인 그런 믿음의 계통에 서있지는 않아도 그 신앙의 성향은 여전히 같은 성향의 다니엘입니다. 말하자면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전부 삼은 그런 다니엘의 신앙이였고, 그래서 다니엘의 국사라든지 인간관계라든지 개인생활이든지, 모든 생활의 뿌리는, 원동은 전부 하나님 한분으로 전부 삼는 거기서 뻗어나온 것이고, 거기서 뻗어나왔기 때문에 다니엘의 모든 생활은 쉽게 흔들림이 없었을 것이고, 참 특별한 그런 은혜도 받았겠지만은 빈틈없는 그런 충성을 진실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 볼 수 있겠고, 그러나 맡은 일이 그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리 인도하셨으니까 나라 총리로서 그 일을 충성되게 감당을 하고 있지만은, 다니엘속에 전부는 하나님 한분이 전부였고, 그러므로 하나님으로 인한 그 모든 생활,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이것이 모든 생활의 뿌리고 원동이고 전부였기 때문에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그런 일이 아무리 크고 사람들보기에 중차대하고 어떤 면에서 화려하고 권력있고 그래할지라도 다니엘은 총리라는 그 권력을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맡았기 때문에 중요하게 그래 감당을 했지, 그 총리직에 대해서 결코 연연하거나 가치를 두거나 탐하거나 하지를 않았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볼 수가 있는 겁니다.
다니엘의 모든 생활의 뿌리는 전부 하나님과 자기 관계 거기서 나온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이 상황보면은,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이, 배추달 집사님인가? 그분이 주일날 주일 때문에 공산군들에게 끌려갔는데, 주일날 무슨 짐을 지고 가자 하는 걸, ‘내일 제가 져다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주일이기 때문에 못합니다.’ 그러니까 끌고가서 ‘오늘 주일 못하면 (그러면 다른 거 하나 시키면서, 그보다 좀 더 가벼운 거) 이것만 하나 해놓고 가라’ 그러니까 ‘그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빗자루 주면서 빗자루로 ‘마당만 한번 쓸고 가라’ 그럴때 그 집사님이, 주일날 빗자루 마당 쓰는 거 하면 됩니까 안됩니까? 빗자루 마당 쓰는 거 하면 되지요. 할 수 있습니다. 방도 쓸 수 있고. 그런데 평소 안하던 집안 대청소는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빗자루 마당 쓰는 거 할 수 있지만은, 그 사람들이 시키기를, ‘당신들이 나를 이것 시키는 것은, 주일날 내가 마당도 쓸고 하지만은 지금 시키는 것은 짐 지고 가려하다가, 또 돼지 몰고 가려하다가 안하니까 이걸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주일과 연계시켜서 나로 하여금 빗자루로 마당쓰는게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 목적입니까?) 주일을 어기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그거는 내가 할 수 없습니다.’ 참 잘 구별했지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인데도. 평소에 그렇게 구별하지 않으면 비상 그런 유사시에 참 나오기 어렵지요. 그러니까 결국 나가서 사형을, 총살되서 순교하고 그리 됐다 그러지요.
그것처럼 평소에 기도를 예를 들어 빠트려도, 한번씩 바빠서 빠질 수 있어도, 어인이 찍혔기 때문에 역항으로 더 목숨 걸고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의 신앙 성향으로 볼때.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때 다니엘의 하루 세 번 기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빼지 않았다고 그리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단정 지을수는 없지만은. 그러면 총리라는 그 바쁜 위치에서 일이 굉장히 많을 것인데, 그 중에서 하루 세 번 하나님 앞에 정해놓은 그 시간에 기도하는 것은 결코 빼지를 않았다. 그것이 기도 자체도 중요하지만은 그게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하나님과의 약속이고 하나님과의 관계고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그게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사람이 약속을 하면, 물론 사람이 다 같지만은, 친구하고 약속을 선약을 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뒤에 생긴 약속이라도 있으면 친구 약속을 양해를 구하든 손해배상을 하든 못 지킬 수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는게 사람입니다. 물론 선약을 했으면 먼저 지키는게 도리지만은, 그보다 더 비중있는 그런분하고 약속을 한다면 친구약속은 손해배상을 하고 사과를 하고 양해를 구하고 충분히, 그리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먼저 잡아놓은 그 약속이 무거운 것이면 뒤에 약속은 변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니까 그 자기가 상대방과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한 그 대상을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변할 수도 있고 변치 못할 수도 있고 그리 될 수 있을 겁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그 약속이기 때문에 아무리 중대한 일이 있어도 이 약속은 변할 수 없었던 것이 다니엘의 신앙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다니엘에게는 전부였고 첫째였다, 중심이였다. 이게 몇 계명입니까? 십계명 중에서 이게 바로 제1계명입니다. 1계명을 다니엘 속에 꼭 붙들고 있으니까 다니엘은 그 생활을 계속 했기 때문에 사자굴이 앞에 있고 목숨이 달린 문제라도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고 감사하면서 계속 할 수 있었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이런 기도를 처음 시작을 하게 된 배경, 또 계속 이어온 그 배경을 우리가 성경 전체를 두고 자세히 기록 안되있어도 유추해서 생각해보건데, 자기 조상들의 죄하고 연관되어 있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조상들이 나라를 잃어버리게 된 그 원인이 무엇이냐? 그 원인이 어디 있는 겁니까? 이스라엘이 남쪽 유다 베냐민 두 지파, 다니엘이 속한 그 지파 나라가 이스라엘이 바벨론 나라 다 잃고 포로 되어온 그 원인이 어디 있는 겁니까? 무기가 없었습니까? 아니면 국방을 안해서입니까? 나라에 비리가 만연해서 그렇습니까? 아니면 매국노가 많아서 그렇습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왜 이스라엘이 망한 겁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말하자면은 하나님께 매였는데 그 하나님을 이스라엘이 노엽게 한, 그래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여기 원인 있는 것을 다니엘이 알았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망했고, 후손된 우리가 포로되어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이 지은 그 죄를 우리가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노를 푸는 기도를 하면서 우리는 그런 행동을, 그런 생활을 안해야 된다는 이것이 다니엘에게 뼈저리게 깨달아졌고 느껴졌기 때문에, 다니엘을 말하자면은 조상들이 하나님이 앞에 쌓아놓은 그 진노를 푸는 그 기도를 한 것이고, 또 자기들은 그런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는 그런 기도를 한 것이고,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주시라는 그래서 다시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래서 자유롭게 하나님 섬길 수 있는 그런 자유를 달라는 그런 기도를 했다고 거의 확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과거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 원인을 해결하는 그 다니엘의 방법이, 생활면도 하지만은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기도로 하나님의 노를 푸는 생활, 그래서 하루 세 번씩 꼬박꼬박 기도하면서 우리 부모들의 죄, 조상들의 죄, 선조들의 죄를 용서해주옵소서, 사해주옵소서. 자손된 우리는 다시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도록 저희들을 붙들어주옵소서. 긍휼을 베푸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노가 풀리고, 우리 하나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길 수 있는 은혜를 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만일 그런 상황이면 그래 기도를 하겠지요. 이런 기도를 했을 것이고, 이 기도가 내면적으로는 하나님과 다니엘의 관계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외부적으로도 이것이 자기 민족이, 국가가, 자기들의 앞날이 달린 문제기 때문에 가장 중대한 일이고 그래서 총리자리를 내놓으면 내놔도, 자기 생명을 내놔도 기도를 끊을 수 없는 이런 중대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했다 그리 볼 수가 있을 겁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하루 세 번씩 기도하게 된 그 기도 제목, 배경, 이런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말씀을, 설교하는 목적은, 설교를 논리정연하게 아주 잘해서 그 듣는 그 순간에 마음을 감당시키는게 목적이 아니고, 설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구원도리를 기도중에, 또 배워서 깨달아가지고 아는대로 전하는 겁니다. 그럼 전하는 목적은, 전하는 사람도, 듣는 모두도 다 이 말씀대로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전하는 겁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여러 가지 행정적인 그런 제도가 있을 수 있고, 또 방편이 있을 수 있지만은 성경으로 말하면 교회라는 것은 그 교인이 천명이든 만명이든 백만명이든 삼백만명이든 교회는 누구에게 매인 겁니까? 교역자 한 사람에게 다 매인 겁니다. 그게 성경입니다. 모세 한 사람에게 이스라엘 전부다 다 매였습니다. 그러니까 설교하는 사람이, 교역자가 하나님과 관계를 바로 맺고 바로 전하면, 교인들이 은혜받고 변화되는 그게 원칙이고 원론이고 원래 모습이고 가장 좋은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말 저말 하는 것이고, 당부도 하고 자꾸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설교를 하는 것은 전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들도 어쨌든 이 말씀대로 행하자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전하는 겁니다. 이대로 살자고.
그러면 오늘 말씀에 내용은 쉽게 한마디로 말하면, 기도하자는 겁니다. 기도하자. 그런데 그 기도하자는 데 있어서 그냥 기도하자 그러면, 속이 비어가지고 잘 안 느껴지니까, 왜 기도를 해야되는지를 여러 가지를 가지고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우리가 은혜를 받고 행한다면 이전보다 좀더 기도하는, 기도시간으로 양으로 간절하게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면 오늘 말씀은 바로 되어지는 것이고, 내나 해봐야 기도 안하고 그대로 같으면 오늘 말씀은 그냥 허공에 뜬 그런 소리가 되고 마는 겁니다. 기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면 기도하는데 있어서 그 알맹이를 하나씩 채워가자면,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가? 기도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의미를 말하면 빈다는 뜻이라 그랬습니다. 빈다, 구한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기도라는 것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교에도 있고 미신에도 있고, 다른 종교에도 세상에도 기도라는 말은 많이 쓰는데, 그러나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고 하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기도라는 단어는, 표현은 제일 많이 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라 그러면 일단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는 것인데, 기도라는 것은 첫째 그 의미가 하나씩 짚어보십시다.
기도는 뭐하는 거라고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어 드리는 겁니다. 믿는 겁니다. 대접하는 것하고 비슷한건데, 하나님을 믿는 것, 인정하는 겁니다. 이분이 우리 아버지다, 우리 어머니다, 자녀에게 ‘이분이 너희 아버지냐?’ ‘네, 우리 아버지입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면 아버지는 자녀를 책임을 지는 것이고, 보호를 하는 것이고, 양육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사고를 치면은, 미성년자가 사고치면 경찰이나 이런데 끌려가면 뭐라 그럽니까? 미성년자가 사고치고, 끌려가면 뭐라 그럽니까? ‘부모님을 모시고 와라.’ 왜 부모님 모시고 옵니까? 사고는 아이가 쳤는데. 철없이 어린 아이가 사고 쳤는데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을 누가 진다고요? 부모님이기 때문에. 그래서 ‘부모님이 맞느냐?’ ‘맞습니다.’ 신분확인하고 맞으면 비로소 책임추궁을 하게 되고, 그리 하는 겁니다. ‘이분이 너희 아버지냐?’ 이웃집 아저씨를 아버지라 그럴 수는 없지요. ‘아버집니다’ 그말은, 그 말속에는, 묻는 사람도 본인도 아버지도, 그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을 책임진다는 그게 그 내면속에 들어있는 겁니다. 그 관계 속에.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내가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인데,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내가 부르고 기도하는 우리 하나님 그 분은 내 아버지고, 그 하나님은 모든 걸 다 아시고 알 수 있는 전지전능자며, 그 하나님은 이 세상에 모든 걸 만드시고 주권하시는 분이라서 그분이 내가 기도하면 당신이 알아서 좋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내가 기도하면 그분은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분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이게 전제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그냥해도 논리로 따지고 들어가면 이 모든게 바탕에 깔린 상태로 기도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기도를 안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것을 정말 참 많이 믿는 사람이고, 믿는다는 이름을 가졌으되 기도를 안하고 있다면, 이런 바탕에 깔린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과 자기 관계에 대해서 모르거나 안 믿거나, 잘 모르거나 안 믿거나 이런 경우지, 참 이걸 알고 믿는다면 기도를 안할 수가 없는 겁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그말은 자존자로, 창조주로, 주권자로 인정한다는 표시입니다. 믿어드린다는 표시고, 이게 기도라는 겁니다.
그다음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불러서 찾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사야 1장 18절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다음 뭡니까? 이사야 1장 18절 말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나님 앞에 가는 겁니다. 그게 기도라 그말이지요. 구해라, 찾아라, 두드려다, 하나님을 찾으라 그말입니다.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이거는 자세인데, 하나님 앞에 구하는 우리의 성의입니다. 성의표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자기를 도와줄 사람에게 목을 빳빳하게 세우고 짝다리를 짚고, 팔을 뒷팔 걸어가지로 비스듬하게 서서 ‘나 좀 도와주소’ 도와주겠습니까? ‘야 이놈아 도움을 청하는 자세가 그게 뭐냐. 좀 공손해야지.’ 허리 좀 숙이고, 아주 깊이 좀 숙여서 공손하게 좀 도와주십시오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높으면 높을수록 더할겁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 기도할 때 일반적으로 무릎을 꿇는데, 무릎 꿇고 기도하다 다리 아프면 양반질 안합니까? 양반질도 하다가, 양반질 하고 다리 아프면요? 다리 쭉 뻗고도 기도 안합니까? 저는 그래 한번씩 하는데요. 앉아서 기도하다가, 무릎 꿇고 하다가 기도시간이 길어지고 다리가 아프면 양반질 하고 하다가, 다리가 졸아가지고 막 쥐가 나고 아프면 어쩌겠습니까? 쭉 뻗어서도 기도해야지요. 엎드려서도 기도하고, 누워서도 기도하고, 그래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본적인 자세로, 무릎을 딱 꿇는 것은, 하나님앞에 공손하게 자기를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눈을 감는 것은 다른 것을 안 보겠다는 표시고, 주님만 보겠다는 표시고, 고개 숙이는 것도 공손이고, 손을 모으는 것도 그렇고. 하나님을 부르고 찾는 자기의 태도라 그말이지요.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불러서 찾는 것입니다. 가까이 하는 겁니다. 기도는 그런 겁니다.
그다음 세 번째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는 거다.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겁니다.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것. 이것도 참,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지만은 중요합니다. 요즘 학생들이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대우합니까? 교권이 땅바닥에 떨어져서 놀려먹고, 선생님과 같이 멱살 잡고, 어떤 경우는 선생님이 뺨을 때리니까 학생도 선생님 뺨을 때렸다 그러지요. 참 말세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고.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는데, 그런거는 변해봐야 좋을 것이 없는데. 그놈에 인권이 들어서. 인권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름하여 듣기 좋은 그 인권이 들어가지고 다 그래만드니까 온갖 폐단이 다 생겨지게 되는 거지요. 스승을 스승으로 압니까? 부모를 부모로 압니까? 부부가 서로 부부로 압니까? 말세가 됐으니까. 그런데 그걸 참, 성경적으로 그래서 한번씩 그런 생각 해봅니다. 참 보면은, 예수만 바로 믿으면, 바로 못 믿어서 탈이지, 신앙생활만 바로 하고, 말씀만 바로 깨닫고, 예수만 바로 믿으면 바로 천국이 거기 있는데. 그러기 때문에 사람중에 가장 귀한 사람은, 돈 많은 사람 머리 좋은 사람, 도덕적으로 흠과 점이 없는 사람, 실력있는 사람, 별별 좋은 사람 많아도 가장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 잘 믿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입니다. 목사니까 당연히 그렇겠지요. 목사 아니라도, 제가 목사 아니라도 성경 가지고 말씀을 깨닫고 가만히 살펴보면은 예수 잘 믿는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예수 믿는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는데, 예수 믿는다는 옷은 있고, 무늬는 있는데 속은 전부 예수 안믿는 사람으로 사니까 문제가 생겨지지, 참 예수 믿는 바른 사람들은 참 귀한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세 번째,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는 겁니다. 대우해드리는 것. 말하자면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그분을 창조주로, 이 세상의 주권자로, 나의 모든 생사와 화복과 흥망성쇠, 존비귀천을 그분이 다 쥐고 있다는 것을 믿어드리고 인정해드리는 것이 기도다 그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나라가 바뀔때쯤 되면은, 아마 내년쯤만 되면은, 다음 대권후보가 누구냐 그래가지고, 그쪽으로 줄을 설걸요? 아마 모두 많이? 어느쪽으로, 누구한테 붙어야 내 출세길이 보장이 되겠는가? 누구한테 붙어야 내가 얻어먹을 떡고물이 떨어지겠는가. 그래가지고 모두 붙지 않습니까? 사대주의, 사람의 본능입니다. 하나님이 그래 만들어놨습니다. 하나님이 내 생사를, 흥망성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들어붙지, 세상의 다른 것에게 들어붙지 않습니다. 모르니까 모두 자기 주변 사람에게, 상관에게, 물질에게, 직장에 다 목을 매고 있지, 참 아는 사람은 그래하지 않습니다. 믿어봐야 아는 겁니다. 먹어봐야 맛을 알고, 믿어봐야 아는데, 안 믿으면 모르는 거지요.
네 번째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고 바라보는 것이고 자기 전부를 다 맡기는 것이 기도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다 맡기고 그게 기도고, 다섯 번째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또, 자기 모든 잘못을 자복하는게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의논하는게 기도고 하나님 앞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기도고, 여섯 번째 기도라는 것은,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게 기도입니다. 기도를 자꾸 하면, 바른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쉽게 떠나지를 못하는 겁니다. 붙들고 놓지 않는것, 떠나지 못하게 붙드는 것이 기도다. 그리고 일곱 번째 기도는 뭐라고요?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래가지고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기도라. 그래서 기도라는 제도를 내신 목적이, 궁극적인 최종 목적이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을 사겨서 하나님을 닮으라고 내놓으신 겁니다.
그다음 크게 세 번째, 기도의 효력이 어떠하냐. 기도의 효력은 첫째는 무엇과 같다고 그랬습니까? 이걸 좀 동감이 되십니까?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이거는 생각해볼때, 기도는 해놔야, 해야만이 효력이 있다 그말입니다. 한 거하고 안 한 것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그말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랴. 아니뗀 굴뚝에 연기나는 법이 있습니까? 아니뗀 굴뚝에 연기나는 법은 없는 겁니다.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싹이 날 수는 없습니다. 물을, 통에 물을 담아 놓으면 거기서 모기 유충이 많이 생깁니다. 근데 아마 안봐도 물을 담아 놓고 뚜껑을 딱 덮어 놓으면 모기 유충이 생기겠습니까, 안 생기겠습니까? 거기는 유충이 생길수가 없습니다. 뚜껑을 열어놓으니까 모기들이 와서 거기다 알을 서니까 그래서 모기 유충이 생기는 거지요. 아무 이유없이 생기는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화론이란 것은 그거는 그 사람들대로 논리가 있겠지만은 제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엉터리고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놨습니다. 씨를 뿌려야만 싹이 나는 겁니다. 반드시. 마찬가지로 기도는 하면 할수록 시간 속에 그 효력은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기도 안하면 기도의 효력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는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농사를 조금씩 텃밭 농사 지어보니까 이런것도 생각이 납니다. 안 뿌렸는데 뭐 아무것도 없지요 뭐. 뿌리니까 싹이 나지요.
두 번째는, 요즘은 군불이라는 말 잘 안쓰겠지만은, 말하자면 난방하는 거지요. 군불 떼는 것과 같다, 이치가. 불을 떼면 시간 속에 서서히 방은 점점 따뜻해오지만은 불을 안 떼면 방은 따뜻해지지 않습니다. 우리 기도 제목은 많습니다. 부모님은 자녀 위해서, 제가 한번씩 거동이 불편하시고 병원에 입원하신 연세 많은 어른들한테 심방을 하면 꼭 그 부탁 합니다. ‘몸이 불편하시니까 다른 것 못하시지요. 누워서 기도는 하실 수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자녀위해서, 자손들 위해서, 교회 위해서, 가정 위해서, 또 천국 구원위해서 부지런히 기도하십시오.’ 그래 기도하면 표가 안 나는 것 같으나 기도는 결코, 단 한번의 기도도 헛되이 없어지는 수가 없는 겁니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좋은 겁니다. 많이 하는 것이. 기도는 군불 떼는 것과 같다. 해놓으면 결과는 반드시,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는게 기도입니다.
또 기도는, 봄을 부르는 것이다. 다른 걸로 표현하자면 기도는 기름칠 하는 것하고 같습니다. 기름은, 성경에 기름은 뭘로 표현합니까? 성경에 기름은 뭘로 해석합니까? 기름은 성령의 역사를 말씀하지요. 성령의 역사. 성령의 역사라 말은, 성령의 역사는 감화고 감동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기도를 하면은 성령이 역사해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감화시킵니다. 사도바울은 논리가 정연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실질적인 그런 복음 운동을 하신 분이고, 사도요한은 그리 했지만은, 그분은 사도요한은 기도의 사람인데, 그래서 순교하지 않았지만은 순교한 것과 같은 그런 사도요한인데, 전설에 의하면 마지막에, 전설이라 말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꾸며낸 이야기라 말이 아니고, 전설이라 말은 전해내려오는 말이라 그뜻입니다. 전해내려오는 그 말에 의하면 사도요한은 마지막에 90이 넘어서 걷지를 못해서 매다가 놨는데, 한마디 했다 그러지요. ‘여러분,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온 청중들이 은혜받고 그만 울고 불고 눈물 바다가 됐다 그러는데, 그게 전부 기도의 능력이라는 겁니다. 기도의 능력. 그게 기도의 효력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봄을 부른다. 봄은, 꽁꽁 얼어붙은 대지를 다 녹이는게 봄이고, 모든 생물을 살리는게 봄입니다. 말하자면은. 예를 들자면, 기도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일 중에서 알고 보면, 물론 때가 있으니까. 젊을 때는 몸이 많이 움직입니다. 활동 많이 하고 움직이지만은, 점점 믿어갈수록, 세월이 갈수록 몸으로 하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기도의 양이 자꾸 점점 많아지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백목사님께서 순교하시기 오래전부터는, 한 10여년전부터는 하루 세가지만 하신다 그랬지요. 설교하는 것, 성경 연구하는 것, 기도하는 것. 그래서 그분은 매일 새벽기도 마치고 나면 저 양산동 가서 하루종일 기도하고 저녁에 내려오시고, 어떨때는 그다음날 새벽에 내려오시고. 그때는 참 벌로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매일같이 그래하는게, 저거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연세 80된 노인이 새벽기도 마치면, 차타고 한시간 거리 가서 30분 가까이 걸어올라가서 천막 쳐놓고 하루종일 그 산에 있다가 저녁에 내려오고, 아니면 그 다음날 새벽에 와서 또 와서 새벽기도 보고. 그거는 초인적인 그런 능력이지, 지금 여기 계신 분들 아마 저부터 그래 한달만 하라 그래도 병이 날 것 같고, 1년 하면 아마 안 죽겠나 싶은 사람이. 1년은 하도 못할 것이고. 그래 기도를 많이 하고 그리 가신 겁니다. 기도하면은, 기도는 하면 할수록 바른 기도는 자기 주변에 모든 사람을 다 녹이는 그런 능력이 따라오는게 기도입니다. 봄을 부르는 것이 기도다.
네 번째 기도는, 모든 악취를 제거하는 겁니다. 악취라는 말은, 자기 속에 있는 온갖 추하고 지저분한 그런 생각, 마음, 욕심, 취미, 감정, 습성, 생활 이런 모든 것들을 다 자기속에서 털어버리고 뽑아내는게 기도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의 열매는 반드시 회개로 나와야 된다 그럽니다. 기도의 열매는 반드시 회개로 나와야 바른 기도가 되어진 것이다. 그래서 기도는 요한계시록 8장에 보면은, 향이다. 악취를 제거하는 향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다음 다섯 번째 기도는, 심령이 점점 밝아지는 겁니다. 자기라는 사람이 깊어지고 넓어지고 온전해지고 구비해지는 이게 기도의 효력이다. 또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시고, 그다음 크게 네 번째, 기도의 방법은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기도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기도는, 입으로, 말로 하는 것, ‘해주옵소서’ 주님 찾고 ‘이렇게 해주옵소서’ 입을, 혀를 움직여서 하는 기도. 그다음에 마음으로 생각으로 명상으로 하는 기도. 그다음 세 번째는 기도한 그대로 자기가 행동을 하는 그게 기도입니다. 행동 자체가 기도다 그말이지요. ‘죄를 안 짓게 해주옵소서.’ 입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했으면 그다음에 죄를 안 지으려고 노력을 하는게 기도입니다. 기도고, 그다음 네 번째 가장 깊은 기도는 자기 자신이 변화되는 그게 기도다. 그래서 입으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자기 자신으로 기도를 하는 것이고, 기도의 순서는 이거는 반드시 그래야 되는 건 아닌데, 기도를 쉽게 하는 방법으로 찾아보면, ‘기도가 잘 안됩니다. 기도문이 안 들립니다.’ 그럴때, 가장 쉬운 방법은 첫째, 하나님 앞에 감사거리를 찾아보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할 감사꺼리를 찾아보고, 두 번째는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뭔가, 자복할 것을 찾아보고, 그러고나서 자기 모든 형편사정을 하나님 앞에 다 아뢰고, 그리고 도움을 청하면 기도를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순서가 되어진다 그런 것이겠고, 그다음 기도할 때 자세는 간절하게 마음을 모아서 강청의 기도, 벗된 연고때문에는, 벗됨을 인하여서는 주지 아니할지라도 하도 와서 강청하니까 강청함을 인하여 소용대로 주리라. 누가복음 11장에 강청의 기도. 이게 기도의 자세고. 기도제목은 원한적인 기도제목이 되어야 됩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여인의 원한적인 사무친 그 기도. 그런 기도제목을 찾아봐야 됩니다. 그런 기도일수록 효력은 더 직접적으로 즉각으로 나타날 수 있고. 시간은 정해놓고, 하루 몇 번이든 정해놓고 간단하게 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 다섯 번째, 기도할 때 주의할 것은, 첫째로 주관적인 기도를 조심해야 됩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읽으면 지식이 많아지니까 이 사람이 조심할 것은 남을 정죄하는 그면을 조심해야됩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를 많이 알아서 아는 것이 많으면 그 아는 것을 가지고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거기에 쉽게 쓰여지게 됩니다. 사람이란 것이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내가 칼을 쥐고 있으면 이 칼을 가지고, 돈을 가지고 있으면 써 보고 싶은게 사람입니다. 돈이 있으니까, 돈이 많으니까, 남으니까 자동차도 한번 바꿔볼까, 집도 좀 넓혀볼까, 가구도 좀 바꿔볼까, 옷도 좀 좋은 거 사입어 볼까. 돈이 많으면 그런 마음이 들어가는게 사람입니다. 총을 쥐고 있으면, 미국 나라에 총기 사고 많이 나는게 그런 이유 중에 하나일 겁니다. 총이 있으면 ‘쏘아볼까?’ 은연중에 그런 마음이 드는게 사람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교리지식을 많이 알면, 이걸 발표하고 싶고 내보여지고 싶은게 사람이고, 그러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심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반대로, 반대는 또 다른 면으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기도는 주님과 자기 관계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는데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자칫 잘못하면은 신비주의로 빠지기 쉽습니다. 기도는, 기도를 많이 하면 생각을 많이 해야 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은 깊이 들어가기 때문에, 많은 명상을 하고 연구하게 되기 때문에 깊이 들어가다보면 자칫하면은 불건전한 신비주의. 그래서 이단들,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들이 거의 대개보면은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 산에 많이 다니는 사람들,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대개보면은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많이 빠져서 이단 되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서 이단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바로 알면은. 그러나 기도를 많이 하면, 자칫 하면은 그리 빠지기 쉽기 때문에 기도할때는 많이 하되, 반드시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되지, 주관적인 기도하면은 큰일납니다. 주관적인 기도 굉장히 위험합니다, 주의할 것. 두 번째는 중언부언 하는 기도. 아무 생각없이 뜻없이 감정없이 그냥 입으로 중얼중얼 중얼중얼 하는 그 기도, 그것도 참 조심해야 됩니다. 중언부언 하지 말라.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아무런 거기 대한 느낌도 없고 논리도 없고, 이치도 없고 따지는 것도 없고, 구별성도 없고 감정도 없고, 그냥 하는 기도 이거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중언부언 하는 기도도 조심해야 되고. 세 번째는 사람에게 보이는 기도, 사람이 보기에 기도 많이 한다, 잘한다 이것도 조심을 해야 됩니다. 네 번째는 기도할 때, 기도라는 것은 세월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리는 것이고 군불 떼는 것이고, 봄이 오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다 시간을 두고 효력이 나타난 거라서 기도는 낙망은 금물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된다. 낙망은 금물이고, 그러기 때문에 다섯 번째 인내하면서 계속해야 된다. 이렇게 주의 할 것 다섯 가지.
그래서 오늘 말씀, 크게 말하면, 첫째는, 다니엘의 기도. 그 기도의 배경. 두 번째는, 기도의 의미. 기본적으로 구체적으로. 세 번째는 기도의 효력, 네 번째는 기도의 방법, 다섯 번째는 기도의 주읜데,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이 알맹이를 채워서 실제 각자 돌아가서 이제는 기도하는 우리가 되야 되겠습니다. 어쨌든 식사기도 당연히 할 것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전체생활에서 잠깐 기도할 것이고, 저녁에 기도할 것이고, 이런 기도하는데, 예배 전후로 기도하고 기본적인 기도하는데,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든지 언제 어쨌든 예수 믿는 사람이 기도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이거는 참 가장 그래서 바쁠수록 더 기도 많이 하고 어려울수록 더 기도하고, 기도를 점점 많이 늘려가야 되지, 기도하는 시간을, 처음에는 잘 안되도 우리가 어릴때는, 기도할 때는 반드시 장소를 좀 정해놓고 무릎을 딱 꿇고 고개 숙이고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그런 자세를 갖추어서 기도하는게 좋습니다. 운동할 때 제일 처음에 배우는게 뭡니까? 운동선수들이 제일 처음에 배우는 자세를 뭐라 그럽니까? 기본동작, 기본 자세. 공부할때도 가장 기초를 배우는 것처럼 기도의 가장 기본은 무릎을 꿇고 고개 숙이고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조용한 장소를 찾아서 그래하는게 기도의 기본입니다. 처음에는 그것부터 해야됩니다. 만들어가지고. 그래가지고 점점 그게 익어지면은 나중에는 장소 상관없이, 그러나 시간은 좀 정하는 게 좋고. 그래가지고 자꾸 기도를 늘려서 어쨌든 좋기는 예배 시간 전후에 하는 기도가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배시간 전에, 한 30분 전에 와서 성경 읽다가 또 10분 기도하다가, 마치고나서 10-20분 기도하고가고 이러면 참 좋을 건데, 우리 교인들 모두 바쁘겠지만은, 시대가 변하니까 이것도 변하는건지, 옛날에 보면은 다 예배시간에 보통 반사선생님들이 바빠도 그래서 목사님께서 그말씀 하십니다. 주일학교 반사, 중간 반사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닙니다 학생들 전도하기 위해서. 그럼 막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면은 예배시간에 지각도 하고 그러거든요. 겨우 겨우 맞춰옵니다. 학생들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데, 그런데 그래서 피곤해서 꼬박꼬박 졸면 백목사님 호령이 떨어집니다. 남 구원하고, 그다음요? 제가 죽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자기가 되야 되지, 예배시간에 졸면 은혜 못받고, 예배 시간에 졸고 은혜 못받는 그 열심, 충성은 오래 안 갑니다. 오래가도 나중에 껍데기 되기 쉽고, 예배 시간에 은혜 받지 못하는 그거는 참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도를 빼놓고 실패하면 다 실패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빼앗겨서는 안되겠다. 아무리 바빠도.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기도하고, 또 어른들 직장에 가서도 틈을 내서 기도하고, 또 집에 돌아와서 기도하고, 매일같이 얼마씩이라도 무릎을 딱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런 시간을 좀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가장 좋기는 예배 시간 전후에 좀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는 게 가장 좋겠고, 그래서 오늘은 기도란 이 말씀,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장소 정해놨지요?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 자기 방에서 거기서 하루 세 번씩 매일같이, 그 바쁜 사람이 그 높은 귀족이 꼬박꼬박 기도하고, 기도 때문에 사자굴에 들어가 죽을 입장이 되어져도 기도는 놓지 않고 기도를 계속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 생활을 계속하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아마 우리 교회는 기도를 많이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성경은 좀 읽는 것 같은데, 요즘. 기도를 많이 좀 잃어버린 그런게 되어있지 않은가 싶은데 잃어버린 기도를 다시 찾아야 되겠다 하는 소망에서 이 말씀을 생각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기도를 다시 찾도록 하십시다.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를 말씀드렸는데 다 말씀드리려면 한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많이 아시니까, 아시는대로 내용을 채워서 어쨌든 기도 하는 우리들이 되면 성공입니다. 기도를 하는, 개인도 가정적으로도 어쨌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