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0-주후(창2:8-17)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2014-03-30조회 303추천 23
본문: 창세기 2장 8절-17절 (요약/2014.03.30.주일)
제목: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1. 성도의 세상 생활
1)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①사후 세계, 부활의 세계를 믿는 도
②내세 부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
③세상 축복은 표적이며 씨와 양식
④세상 성공만 목표하면 신앙은 실패
2)성도의 세상 생활
①세상은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
②세상의 모든 것은 실물교재, 이용물
③성도의 세상 생활은 영원의 연습이며 훈련
2. 동방의 에덴동산(본문)
1)처소
①동방: 동쪽, 해 뜨는 곳, 하나님 향한(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 닮아가는)
②에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곳, 환경(넓은 범위의)
③동산: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형편(직접 부딪히는)
2)명령
①다스리고: 현실의 주인/ 하나님께 피동으로 현실을 지배
②지키고: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파수
③임의로 먹고: 허락하신 실과, 허락하신 세상
④선악과는 먹지 말고: 절대 엄금할 것,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엄금
3. 성도의 현실
1)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 모든 존재의 근본
2)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우리 구원 (하나님 같은 사람 만드시려는)
3)역사는: (목적 위한 역사, 목적 위한 하나님의 모든 역사)
①예정-절대 예정
②창조-예정대로의 창조
③보존-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보존
④관리 섭리-하나님이 직접 관리하시며 운영의 섭리
4)현실은:
①목적을 위한-하나님의 목적 우리 구원을 위한
②예정대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예정대로 주권 섭리의 결과물
5)할일은:
①현실의 근본, 목적, 역사를 기억
②현실의 주인이 되어
③현실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생활
4.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1)현실
①자기가 처해진 환경(넓은 범위)-에덴
②자기가 직접 부딪히는 형편-동산
③하나님 만나는 장소-동방
2)현실의 주인
①현실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
②현실을 다스리는 것
③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으로 상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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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20140330 주후
창세기 2:8-17
오전에 크게 4가지 말씀을 드렸고 또 오후에 한번 더 복습을 하겠습니다. 늘 우리가 생각을 하고 말씀드리는 것이지만은, 신앙 생활은 아는 것이 첫째로 중요합니다. 모르면 신앙 생활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첫째 대지에서 성도의 세상 생활이라는 대지를 가지고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공부했던 말씀입니다. 여기서 기독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후 세계, 내세를 믿는 것이 기독교다. 기독교라는 도는, 부활의 도입니다. 부활을 소망하고 믿고, 부활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것이 기독교다 하는 것을 작은 첫째로 말씀 드렸고,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 생활이란 것은, 신앙이란 것은 내세, 부활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이지, 이 세상을 보고 믿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 두 번째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두 번째는 그러므로 신앙이란 것은 부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이다. 내세를 소망하고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겁니다. 세 번째, 그러므로 예수 믿어 받는 세상 축복은 표적이거나 혹은 씨와 양식, 한말로 말하면 자본으로 주신 겁니다. 그 자본은 영원한 부활의 세계를 마련하는, 투자하는 자본으로 주신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면 하나 조심할 것이 이 세상은 그러면 가치가 없는 것인가, 필요가 없는 것인가.
세상이란 것은, 사람이 세상 떠날 때 두고 갈 모든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의 몸도 세상, 마음도 세상, 몸과 마음에 들어있는 선천 후천의 모든 지식과 또 재능과 재주와 성격과 또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자기가 날때부터 가졌거나 마련한 환경의 모든 좋은 그런 것들 전부다가 자기 세상입니다. 돈도 세상, 학벌도 세상, 인물도 세상, 문벌도 세상, 인맥도 세상, 좋은 성격도 세상, 실력도 세상, 다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가 노력한 것 같으나 들어가보면 전부 하나님이 주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주신 목적은 그 세상을 통해서 천국을 알아라고 주신 것이며 또 하나는 천국을 준비하라고 자본으로 주신 것인데, 그러면 이 세상것은 가치가 적은 것인가, 필요가 없는 것인가?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은 중요한데, 몸도 중요하고 마음도 중요하고 건강도 중요하고 생명도 중요하고 학벌도 대단히 중요하고 물질도 중요하며, 가정도 가족도 모든 세상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필요한 것입니다. 어디에 필요하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이것은 영원한 천국에 씨앗이고 양식이니까, 다시 말하면 부활 세계를 건설하는 자본이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자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고 농사를 짓고 싶은데, 밭도 있고 다 있는데 무엇이 없으면 농사가 안됩니까? 농사를 지어야겠는데 밭도 있고 농기구고 있고 사람도 있고 다 갖추어가졌는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없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씨앗이 없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넓은 밭이 있어도 씨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습니다. 양식이 없으면 자기가 살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세상은 전부 영원한 천국 농사에 필요한 씨앗이고 그 씨를 심고 가꾸는데 필요한 양식입니다. 한말로 말하면 영원한 부활세계 건설에 필요한 자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없으면 천국은 건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티즈를 타고 서울에 가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도 피곤하고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런데 벤츠나 BMW같은 이런 차를 타고 가면 시간도 절약되고 몸도 덜 피곤하고 빠르기도 빠르고, 그러면 서울에 자주 왕래하는 사람은, 일이 많은 사람은 자동차를 사면, 마티즈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좋은 차가 필요하겠습니까? 좋은 차가 필요한데, 그 좋은 차가 왜 필요합니까? 일을 해야 되니까 거기 필요한 겁니다. 그러면 마티즈도 차인데, 그것보다는 더 좋은 큰 차 좋은 차가 있으면 일을 더 많이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한 사람을 데리고 일하면 그 한 사람이 일당백의 실력 가진 사람이면 달리 말 할 수 있으나 꼭 같은 사람이면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 일을 더 많이 할 것이고, 두 사람보다는 열 사람이면 일을 더 많이 할 것이고, 열 사람보다는 백 명이면 일을 더 많이 할 겁니다.
요셉이 집에 있을때는 열 한번째 아들, 열 한번째 아들로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고 편애하는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니까 요셉은 좋은데 형들에게는 시기심을 유발시켰고, 아버지는 원인 제공을 하고, 요셉은 다행히 신앙이 있으니까 그걸 잘 감당해서 다행이지만은 잘못 감당하면 요셉은 편애하는 아버지 사랑을 받아서 성질도 버리고 못된 사람이 될건데, 신앙으로 다 그걸 유익되게 감당했으니까 다행인데, 그런 요셉이 집안에만 계속 있었으면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었을건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요셉을 어디로 보냅니까? 애굽에 보냈습니다. 애굽에 보내니까 집안만 보다가 종으로 팔려갔으니까 귀한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런 아들로 살다가 종으로 팔려갔으니까 종도 몸소 체험해보고 또 억울하게 누명도 받아보고, 감옥에도 일부러는 못가도 본의 아니게 감옥에도 한번 가보고, 감옥에 가보니까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그런 감옥이니까 그 감옥에서 보니까, 워낙 사람이 신실하니까 사람을 사귀는데 보디발도 사겼지만은 왕의 죄수들이니까 전부 장관급들, 국회의원급들, 정치 거물급들을 감옥에서 다 사겼다 그말이지요. 인맥을 다 쌓아놨습니다. 그러고나서 나오고 총리가 떡 되니까 요셉이 총리노릇할 때 감옥에서 싸우는 그 인맥들이 전부 요셉의 정치에 유용하게 활용이 되는 겁니다. 안봐도 그거는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요셉이 집안에만 있을때 하고 두루두루 거쳐서 고생은 되지만 거쳐서 감옥가서 하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게 전부 그럼 요셉의 집에 있을때도 세상, 종으로 팔려간 걸어가본 그 고생의 경험 체험도 세상, 보디발의 집에서 겪은 생활도 세상, 경험 체험으로 몸소 겪은 전부 그게 자기 실력으로 쌓여지니까 세상이고 감옥 생활에서 쌓은 인맥도 전부 세상인데, 그 모든 세상을 총리도 세상이고, 근데 요셉이 그 가진 모든 자기의 경험 체험에 쌓아놓은 자기 경륜, 연륜, 실력을 가지고 총리 노릇할 때 그 총리 자리까지도 전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역사에 써먹으니까 얼마나 요긴하게 써먹었습니까? 요셉이 아버지 집에서 사랑받는 아들로 있으면 사랑은 받았겠지만은, 등 따시고 배부르게 좋았겠지만은 형들은 시기심에, 그래서 아주 나쁜 그런 형들로 계속 됐을 것이고, 불화는 점점 심화되었을 것이고, 나중에는 엉망진창이 되었을껀데. 그 넓은 걸 자꾸 보고 세상을 많이 가지니까 그 세상을 믿음으로 잘 이용해 먹으니까 전부 귀한 그런, 써먹는 세상 이용물이 되어졌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가지는 세상이란 것은 전부 표적이거나 아니면 씨와 양식인데, 이 세상은 필요없는 게 아니고, 가치 없는 것이 아니고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인데, 그 가치에 용도가 어디 있느냐? 천국, 죽음 너머 부활세계를 마련하고 준비하는 거기에 쓰여지는 가치고, 자본의 가치고, 심는 가치지, 만약에 부활세계를 잊어버리고 세상 가지고 있는 그 자체만 두고 가치로 삼는다면 그거는 사도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거는 전부 배설물인데, 그 배설물이 영양가는 없는 배설물 같으면 다 먹으면 먹는대로 몸에 영양은 없고 모조리 찌꺼기로만 다 나온다면 오히려 몸을 해롭게 하고 피곤하게만 만들지 유익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4번째,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성공만 소망하고 목표하고 달려간다면 그의 신앙은 실패고, 신앙 실패는 인생 실패고, 인생 실패는 영원한 실패고 그의 전부다 실패되고 마는 겁니다.
이런 걸 자꾸 말씀드리는 이유는, 상식인데, 기본인데, 이게 원칙인데, 이것이 가장 기본인데 원래 기본이란 것은, 불교라는 것은 원래부터 염세주의가 불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속세를 떠나서 산 속에 들어가는게 불교고 산 속에서, 아니면 갇힌 속에서 면백을 하고 참선을 하고 자기 성찰을 하면서 자기를 모조리 다 비워내는, 금욕주의 이런거 그게 불교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 불교는 진화적인 그런 종교고 세상에 속한 종교니까 세상이 변함에 따라서 불교는 자꾸 변해지는 것이니까 나무랄 것은 없습니다. 거기 속한 거니까. 그런데 기독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래부터 기독교라는 것은 내세를 믿는 도고, 기독교 신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내세를 지향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천국을 믿는 겁니다. 전도할 때 뭐라 그럽니까? 예수 믿고 복 받고 잘 삽시다, 그래 전도합니까?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읍시다 그래 전도합니다. 그게 가장 기본입니다. 천국 가는, 천국을 믿는 것이 신앙의 기본 자세인데, 세상이 변하고 잘사는 세상이 되고, 세상이 지상낙원처럼 천국처럼 그렇게 좋아지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우리나라가 복 받은 것은 선대신앙가들의 신앙으로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압니다. 미국 나라가 세계 강대국이 되고 짧은 역사에 저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그 뿌리 청교도들의 신앙 충성과 그 신앙이 그 밑에 뿌리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미국 나라가 발전이 돼서 잘 사는 나라가 되고 세상 지상 낙원이 되니까 하나님께서 미국 나라를 자꾸 쳐서 미국 나라에도 그 안전하다는 나라에서 테러가 나고 뭐 죽고 난리가 나지요. 총기사고 툭 하면 일어나고. 우리나라도 믿음의 조상들의 흘린 피로 세계에서 잘 사는 그런 강대국, 부자 나라가 되어가는데, 그런데 거기서 신앙을 교회들이 잊어버리면 이 세상이 점점 시간 속에서 쇄락해갈 수 밖에 없는 그거는 필연이고 세계 역사고 교회 역사고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신앙이란 것은 이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마련하는게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복을 받던지 아니면 믿음 생활 하면서 자기 머릿속에 신앙 생활 속에 천국의 구원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으면 아직까지 믿음 생활 출발을 안 한 겁니다. 기본 회개하지 아니한 겁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지를 않은 겁니다. 깊이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예수를 왜 믿느냐? 그냥 교회 다닙니다. 아직 신앙이 없는 겁니다. 주변 환경 때문에 교회를 다니고 믿습니다. 아직까지 신앙은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천국의 구원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란 것은 그 천국 준비에 자본으로만 쓰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만 목표하고 성공한다면 신앙은 실패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예수 잘 믿어서 복을 받아도, 많이 받아도, 그게 전부라면 그 사람은 그 받은 복이 자기에게 끝에 가서 보면 불행이지 유익될 것이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어서 부자가 되고, 부자된 것을 주와 복음 형제 구원 위해서 다 투자해서 다시 거지로 돌아가서 예수 믿어서 아무것도 없는 십자가 빈털터리 되는 것이 최종 성공이다. 반드시 그리되는 것만은 아니지만은 그런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의 세상 생활, 기억 하십시다.
그다음, 성도의 세상 생활은 그러면 어떤 생활인가, 3가지로, 첫째, 이 세상은 지나가는 과정이다. 영원의 흔적이다.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00씨 맞아요? 세상은 과정이지요. 00씨는 몇 년 지나왔습니까? 20년? 20년 지나왔지요? 20년 지나온 과정. 남은 때가. 언제보니까 어느 책에 보니까 나이가 20살이면, 24살이던가? 인생을 80으로 두고 하루 24시간 계산하면, 나이 24살은 7시 12분이라 그러데요? 인간 80년을 24시간으로 계산하면 24살의 나이는 7시 12분이다. 그러니까 20대는 급할 것 없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런 말 하는 것을 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어쨌든 스무살을 살았으면 20년 지나왔습니다. 과정입니다. 돌아가지 못합니다. 흔적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30년을 살면, 30년 지나왔습니다. 돌아가지 못하고, 그런데 끝나는게 아니고 그 흔적이 이 세상에서도 남아있고 영원한 천국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흔적이 남아있는 거 아십니까? 내가 20년을 살았다, 20대 청년들, 20년 살았다, 20년 자기가 살아온 흔적이 자기 몸에 들어있고 마음에 베어있고 얼굴에 베어있고 손에 베어있고 인격에 베어있고 자기 심신의 기능의 실력에 고스란히 베어있습니다. 흔적으로 남아있는 겁니다.
참 사람이 마음대로 하기 어렵고 자기를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그중에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서 나온다. 마음을 붙들지 않으면 성벽이 무너지고 성읍이 없는 것과 같이 되어진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붙들어 단속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인생 성공 한 사람이고, 자기 마음을 붙들 수 있으면 신앙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붙드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마음이 바로 자기가 자기를 단속하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뻔히 알면서도, 뻔히 알면서도 지나가는 과정이며 돌아가지 못하며 흔적으로 남는 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 현실에 부딪힐때 그 생활을 자기를 단속하고 바로 살아야되는줄 알지만은 바로 살지 못하는게 대부분의 인생이고 믿는 사람들이 아닌가.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그런걸 많이 느껴서 너무도 참 실감을 많이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붙들고 절제하고 단속하는 그런 분들은 참 부럽습니다. 참, 그런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그러니까 마음 먹은 것은 뭐든지 이룰 수 있는 그 사람이면 방향만 바로 잡으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 실력있는 사람이 되겠지요. 그런 자기를 꺽고 단속할 수 있는 그런 자기를 만드는 것도 우리 신앙 속에 들어있어서 이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달음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싸우기를 누구와 더불어 싸운다고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하면, 함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목사들이 설교하고 교인들에게 큰소리 치는데, 그 설교 말씀가지고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교인들에게만 적용시키면 그 사람은 크게 속는 일입니다. 그래서 종종 말씀드리지만은, 목회의 목적이 뭐냐? 교역자들이 목사들이 목회 목적이 교회를 부흥시키는게 목적이다, 방향이 틀렸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리 부흥시켜도 실패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도 좋겠지만은 그것뿐이면 실패입니다. 모든 생활에,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모든 생활에 목적은 자기를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온전한 사람 만드는, 그 자기 만드는 가장 출발이 자기와 싸워서 자기를 이기는 겁니다. 이게 신앙이지요. 세상은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입니다.
두 번째, 세상은 영원한 천국 건설에 필요한 실물 교재고 이용물들입니다. 어떤 것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주신 것들입니다. 내가 가진, 나 자체로부터 내 가진 모든 것, 내 주변의 전부는 영원한 부활 세계, 내세 천국에 필요한 그런 것을 마련하는 실물 교재 이용물들이고, 성도가 세상에 사는 기간은 천국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연습의 기간이며 훈련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든 생활은 전부 연습이고 연단이고 연승이고 훈련이고, 연습을 하는만큼 이루어지는 것이고, 연단을 받는 만큼 강해지는 것이고, 훈련을 바로 받는 만큼 그 사람은 실력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걸 아니까 사람들이 특전사, 해병대 출신들을 대우를 하고, 대우하니까 요즘 청년들은 전부 해병대 갈려고 줄을 서서 해병대 경쟁률이 쎄다 그러지요. 서로 가려 그러니까. 그 힘드는데 왜 가려 그럽니까? 그래도 그런 해병대를 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고생되는 줄 아는데 고생길을 찾아가는 사람은 생각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앞을 두고 나를 만들어야 되겠다, 나를 연단시키고 실력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있는 사람이니까 쓸모가 있는 사람입니다. 어려움을 다 피해버리고, 좋은 길만 찾아가고 수월한 길만 찾아가는 그 사람은 패배자 되기가 쉽습니다. 고행주의가 아니니까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지만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데 이왕 군대 갈 거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신앙의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 위험성만 없다면. 그런데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은, 위험성이 있으니까 그런 면이 염려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반드시 그의 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런면은 있다는 겁니다. 성도의 세상 생활 3가지 기억하십시다. 세상은 지나가는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실물교재며 이용물이고, 성도의 세상 생활은 그러기 때문에 연습하고 연단받고 훈련하는 생활이 성도의 세상 생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교과서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 현실이라는 모든 연습 장소, 훈련 장소에서 내게 부딪히는 사람과 사건과 내 가진 재능과 부딪히는 그 창설해놓으신 그 동산에 현실에서 만나지는 모든 것을 실물교재로 이용을 해서 거기서 자기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그 목표를 향해서 부지런히 연습하고 연단받고 훈련하는 이것이 성도의 세상 생활입니다.
본문에서 동방의 에덴동산을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동방이 무슨 뜻인가? 동방. 동방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어디라고요? 동방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동쪽이란 뜻입니다. 동쪽. 동방은 동쪽. 우리나라를 동방 예의지국이라 그럴때 동방은 한자가 다르고, 성경에 말씀하신 동방,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말씀하신 이 동방은 방향할 때 그 ‘방 자’ 그 방 자입니다. 동쪽이라는 뜻입니다. 동쪽이 뭔데? 동쪽은 해가 뜨는 곳입니다. 성경에 해는 뭘 말합니까?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계신 곳, 동방의 에덴, 하필 동방의 에덴에 하나님이 계신 곳 그 쪽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그곳에, 동방의 에덴에, 에덴이라는 장소에, 동쪽을 향한, 동방의 에덴에, 에덴이라는 장소에, 넓게 말하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부산이라는 지방에 범일동이라는 동네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처소로 말하면 자기 사는 그 환경, 신분으로 말하면 현재 자기가 주어진 위치, 연령으로 말하면 그 나잇대,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아내, 남편, 또 학생, 직업인, 사업가, 부모, 자녀, 친구, 교인, 선생님, 학생 이런 모든 자기 위치 이게 어디라고요? 이게 에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동방의 에덴에.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이치입니다. 이게 자기 현실인데, 이 현실은 변할 때도 있고 오래가는 현실이지요. 넓은 범위 자기 현실입니다. 동방의 에덴에 거기다가 동산을 창설했습니다. 창설이라 말은, 하나님이 지어놓으신 창조해놓으신 것을 가지고 새롭게 자꾸 만드는 걸 창설이라 그래 말합니다. 회사를 창설했다. 새롭게 만들어가는 걸 창설이라 그래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 우리 각자에게 주신 내가 있는 곳, 현재 자기에게 처해진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는 세상에 보내셔서 아담 하와를 사람을 만들어놓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각자의 태어난 그 연도에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보내신 나라가 한국이고, 보내신 지방이 자기 고향이고, 보내신 자기 부모가 자기 부모님이고 환경이 그런 환경이고 거기서 점점 자라고 나니까 자기 신분이 되어졌고, 에덴입니다. 에덴이고 동산은 계속해서 자기가 만나는, 부딪히는 매일 매일 매순간 자기에게 부딪히는 그 순간 순간에 직접 부딪히는 그 현실을 동산이라 그리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항상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을 향하는 곳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바로 에덴동산 동방입니다. 거기가 우리 성도가 있는 처소고 자기 현실이다. 거기서 우리 할 일을 4가지로 명령했으니, 하나는 현실을 다스려라, 두 번째는 그 현실을 지켜라, 지키라는 말은 파수하라는 뜻이고, 파수하라는 것은 거기에 들어와서는 안될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혹은 나가서는 안될 것이 나가지 못하게, 지키는 것은 주로 침범하지 못하게 지키는 것이지요. 38선 있는 전방에 있는 그 군인들이 지키는 것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몰래 내려오지 못하게, 적군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걸 지키는 겁니다. 지키는 것, 파수하는 것. 지켜라, 현실을 지켜라. 에덴동산을 지켜라. 너 있는 그 장소 거기를 지켜라. 뭘 지키라는 말인가? 하나님이 거기에, 현실에, 자기 있는 거기에 허락지 않는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내 현실에 무엇이 들어올 것인가. 자기 마음에, 자기 생각에, 자기 욕심에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한, 가져서는 안될 욕심, 시기, 질투, 죄 되는 그런 마음, 그런 허영과 허욕 그런것들이 자기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라. 그리고 허락하신 것은 임의로 먹어라. 하나님이 주신 것은, 죄 되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취하고 가지고 누리고 그러나 선악과는 금하신 것이니 절대 먹지 말아라. 4가지 명령하셨는데 오늘 중점으로 말씀드린 것은 4가지 중에서 몇 번째 입니까? 오늘 주로 말씀드린 것은 4가지 중에서 첫째만 말씀을 드린 겁니다. 현실을 다스려라.
그러면 크게 3번째로 넘어가서, 성도의 현실은, 이 현실은 우리가 사는 곳입니다. 현실은 내가 있는 곳이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현실은 끊어질 수가 없고 없을 수가 없는 것이고 현실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잠을 자든지 병석에 누워있든지, 그래서 사람이 안 아플 수가 없고, 나이가 많으면 죽는 모습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은, 그래서 살아생전 건강할 때 미리 기도할 제목이, 요즘 주변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좀 지켜봤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장례식을 많이 치러서, 치른다기보다 장례식을 많이 좀 접해서 느끼는 바가 많은데,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참 마지막 세상 떠나는 그 모습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탄식이다’. 평생을 예수 믿고 또 어떤 경우는 복음을 전하고, 저 같은 경우는 목사로 설교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강단해서 천사같이 그래가지고 설교를 하고 외치더니 마지막에 세상 떠나는 모습이 교인들이 볼때, 많은 사람 볼때 덕스럽지 못하고 참 가련하고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다면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겠으며 복음에 유익이 되겠는가. 그래서 죽을때도 좀 유익을 주고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고 다른 사람 구원에 덕을 끼치고 그래 죽어야 되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겁니까?
늙으면 자기 몸 하나 간수 못하는데, 몸에서 뻔히 냄새가 나는 줄 알지만은,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목욕도 못하는데, 옷도 제대로 못 갈아 입는데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옛날에는 저도 젊을때는, 지금도 아직 젊지만은, 몰랐습니다. 노인들이 좀 자기를 살펴서 냄새가 나면 씻기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하면 되는데 왜 그럴까? 참 철없는 생각이지요. 노인이 되가보면 아는 겁니다. 누가 내 몸에 냄새 나는 줄 모를까? 그런데 사람 코라는 것은 얼마 3초? 10초? 냄새가 나는데 딱 들어가서 몇 초만 있으면 코가 적응을 딱 해버려서 냄새가 안 납니다. 그러니까 자기 코에는 냄새가 안 나는데, 적응을 해버리니까, 다른 사람은 딱 들어가보면 악취가 난다 그말이지요. 자기는 모르는데, 항상 그리 사니까. 그렇지만은 알아도 손을 못 씁니다. 몸이 말을 들어야지요, 몸에 힘이 있어야지요 안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래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모든 것까지 다 계산하고 미리 기도해서 참 마지막을 덕스럽지 못한 그런 모습이 되지 않도록 기도를 해야 되겠다. 왜 이 말씀이 나왔지요? 방향이 너무 딴데로 나간 것 같은데. 무슨 말씀 하다가 이것 했습니까? 000? 좀 크게? 성도의 현실? 현실? 또? 생활? 살아있는 동안? 장례식이 왜 그리 갔을까요? 죽으면 현실이 없다는 것, 맞지요. 죽으면 현실이 없는 것 맞습니다. 이제 그 맥을 찾아야지요. 살아있어야 현실이 있는 것이고 현실을 말하려 그랬죠. 그러니까 현실이란 것은, 살아있는 사람은 현실이 있고 죽으면 그는 현실이 없는 거지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성도의 모든 생활은 전부 현실생활이다. 그런 말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현실에서 현실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성도의 생활인데, 그런데 쉬지 않고 내게 부딪혀오는 천태 만상에, 형형색색의 많은 현실들, 그 현실이 뿌리로 파고 들어가면 어디서부터 현실이 올라오는 것인가? 나타나는 것인가? 내게 당면한 온갖 종류 현실, 현실이라 말은 내게 부딪히는 그런 모든 형편들, 처지들, 그런 모든 것들이 어디서부터 올라오는가 그말이지요.
나무에서 피는 아름다운 이쁜 꽃이 있으면 그 꽃만 볼 것이 아니고, 저 아름다운 꽃이 피기까지 그 꽃을 피게 만드는 뿌리는, 근본은 나무 뿌리고, 그 나무 뿌리의 색은 아주 많은 자잔한 그런 수많은 뿌리들이 다 영양분을 빨아당겨서 굵은 뿌리로, 더 굵은 뿌리로, 둥지로 보내가지고 이게 뻗어올라가서 저 가지 끝에 나무가 높은 곳은 수십미터 되는데,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뿌리가 영양분을 빨아당겨 영양분을 올려가지고 저 높은 꼭대기, 나뭇가지 끝까지 뿌리에서 빨아올린 영양분이 뻗어가니까 거기서 꽃이 피고 잎사귀 새파랗게 되고 열매도 되고 그리 되는 것이지 밑에 뿌리를 다 잘라 버리면 안 보여도 나무 위에 열매는 다 말라죽고 마는 겁니다. 우리 교육관에, 제가 나무 이름 모르는 나무가 하나 있는데, 나무가 좀 좋은 나무 같은데, 노오랗게 말라 죽었습니다. 왜 죽었는지 원인은 모르겠고. 안봐도 잎사귀 다 마른 것 보니까 나무가 죽었고, 잎사귀 다 말라버렸으니까 둥지는 죽었겠고, 안봐도 밑에 뿌리가 썩었는가보다. 이유가 있겠지요, 뭔가. 왜 죽었는지는 모릅니다. 어쨌든 겉을, 껍데기 보니까 죽은 거지요. 잎사귀 모양 보니까 죽었구나. 뿌리가 끊어졌구나, 죽었구나. 우리 현실에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내려가있느냐? 현실에 뿌리는 누구라고요? 자존하신 하나님. 이걸 우리가 연결시켜 봐야 됩니다. 이걸 가지고 생각을 많이 해봐야 됩니다. 내 앞에 닥치는 모든 현실은 어떤 현실이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그 현실의 근본 뿌리는 하나님이다. 그분에게서부터 올라온 것이고 나타나서 내 앞에 온 겁니다. 그분과 끊어진 현실은 없는 겁니다. 내 앞에 당면한 어떤 사람이 왔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미워서 꼴도 보기 싫은 그 사람이 내 앞에 자꾸 보입니다. 안보이면 좋겠는데, 그만 딱 꼴보기 싫은 사람이 내앞에 자꾸 얼렁거립니다. 내가 피해도 또 보이게 됩니다. 현실입니다. 내 눈에 보이고 내게 부딪히니까. 그 꼴보기 싫은 사람이 어디서 나왔는가? 그 사람 뿌리 파고 들어가보면 하나님이 그 꼴보기 싫은 사람을 내게 자꾸 나타나게 만들어놓고 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래 하시는 겁니다. 이걸 믿으면 기독교 신앙이고, 이걸 부인하면 기독교 신앙은 아닙니다. 이게 일원론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뿌리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왜 그런 현실을 만드시느냐? 현실의 목적이 뭐냐. 성도의 현실의 목적은, 목적이 뭐라고요? 목적이 목적입니다. 목적이 목적이다. 현실을 주시는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이 뭔가? 내 구원입니다. 내 구원이 뭔가? 나를 그 현실을 통해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실력있는, 온전한, 좀 더 깊은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시기 위해서 내 현실을 내게 부딪혀 오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목적입니다. 현실의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목적을 위한 역사가 있는데 그러면 그 목적을 위해서 어떤 역사 하고 계시는가? 목적을 위한 첫째 역사는, 예정입니다. 절대 예정이다. 그러므로 성도앞에 닥치는, 성도뿐이 아니고 이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모르는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머릿속에 들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님의 계산에 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뭔가 일을 해나가다가 계획을 세우고 예산하고 머릿속에 다 담아놓고 하는데 돌발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어? 이거는 내 계산에 없는 건데?’ 그러면 당황합니다. 자기 머릿속에 계산의 범위를 벗어나면 감동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닥쳐도 많이 계산하고 계산해서 전부 자기 머릿속에 다 들어있으면 다른 사람은 걱정 해도 그 사람은 걱정을 안 합니다. 다 계산 한 겁니다. 머릿속에 들어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되고, 저 사람이 지금 저렇게 하다가 그 다음 순간에는 저리 가고 그다음에는 저리 갔다가 이렇게 돌아올 것이고 이렇게 처리 될 겁니다. 내 머릿속에 다 계산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일 전부를 다 손아귀에 딱 쥐고 있는 사람이니까 걱정할 게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전부 하나님의 머릿속에, 계산 속에, 예산 속에 다 들어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산에 들어있지 않은 세상 역사는 머릿털 하나 검어지고 희어지는 것도 없다는 것이 성경이고, 이걸 달리 표현하면 개미 한 마리 수염이 흔들리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계산 속에 들어있다. 이게 절대 예정입니다. 000 선생님 믿어져요? 이해가 됩니까? 이것이, 이런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그러기 때문에 이런걸 파고들어가서 믿어야 되니까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면 믿어지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라야 믿어지지, 하나님 은혜가 아니면 안 믿어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나님 은혜를 하나님께 주셔서 믿어지게 해놓고, 그다음에 믿어지는 그 믿음을 종자로 줘놓고 그다음에는 종자를 줬으니까 그 다음에 그 믿음을 길러가는 것은 너의 몫이다. 부지런히 길러가야 됩니다. 믿음이 길러져서 온 세상 천하가 다 믿지 못해도 자기에게는 믿어지는 믿음이 되도록 그래야 됩니다.
목적을 위한 역사 첫째는 절대 예정입니다. 두 번째는 예정대로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나를 하나님 형상 만들려고 하니까 필요한 존재가 많이 있습니다. 우주도 필요하고, 해도 필요하고, 달도 필요하고, 별도 필요하고, 지구도 필요하고,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는 것 보니까 지구 밖에 있는 저 우주 공간에 있는 돌아다니는 그런 돌맹이들이 어떻게, 그런데 그거 진짜 맞습니까? 안봤는데. 하긴 과학자들이 그 정도는 물질계니까 맞겠지요. 운석이라는 것이 진주에 몇 개 떨어졌다고요? 떨어진 그것도 보니까, ‘아 그거보고 우리에게 우리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게 하는 것 보니까, 우주에는 지구 말고 다른 별들도 필요하고, 유성이라는 것도 필요하고, 운석도 필요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전부다 만들어놓으신 겁니다. 어디에 필요한지는 또 봐야 알겠지만은. 창조물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마귀도 하나님이 만들었고, 죄도 하나님이 있게 하신 것이고, 내 원수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고,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해야 되지 원수를 미워하면 성도의 자세는 아닙니다. 그 원수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내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에 원수가 되게 하셨으니까, 참 어렵지요. 신앙이란 것은 쉬운 걸음이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창조입니다. 예정대로 창조.
세 번째는 보존입니다. 지어놓으신 모든 것을 필요해서 다 하나님께서 그게 다 그대로 있도록 보존시켜 주시는 겁니다. 저절로 보존되는 것 같으나 그 하나도 하나님이 직접 보존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 또한 성경입니다. 부모가 있으니까 자녀가 나고 또 자녀 나고 하나님 손대지 않고 저절로 번식이 되는 것 같은데, 성경에 보니까 땅은 씨를 가진 열매를 맺는 과목을 내라. 그랬으니까 하나님이 지을때부터 땅에게 명령해서, 땅은 나무를 내되, 과목을 내되 그 과목이 씨를 가진 열매가 맺도록 그런 과목을 매라. 그렇게 창조해놨으니까, 땅이 사과 나무를 매면은 그 사과가 맺을때 그 사과 속에 씨가 들어있습니다. 그 씨앗을 심으면 또 사과 납니다. 이렇게 번식되니까 하나님이 손 안대도 저절로 번식이 됩니다. 모든 생물들이 다 하나님이 내신 번식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저절로 번식이 됩니다. 이거는 외부 모습이고, 그렇게 번식되는 것, 지극히 작은 생물 하나, 세균 한 마리 까지 번식되는 것은 전부 하나님이 직접 역사해서 번식이 되지, 던져놨는데 저절로 되도록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 절대 주권 섭리입니다. 보존이고, 하나님이 다 보존하시는 것이고.
보존해두신 모든 걸 가지고 네 번째는 그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하고 섭리하시는 것이 절대 주권 섭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하나님의 역사고, 그러기 때문에 크게 네 번째, 이런걸 살펴보니까 내 현실은 어떤 현실이냐? 크게 두가지로 정리해보니까 현실은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결과물입니다. 어떤 결과물이냐? 목적을 위한 예정대로의 하나님의 섭리하신 섭리, 주권 섭리하신 섭리의 결과물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으신 순서대로 보존하고 관리하고 섭리하신 그 섭리의 결과가 내 앞에 나타난 현실이고 각자 자기앞에 부딪히는 자기의 현실입니다. 땅에서 뿌리가, 땅 속에 있는 영양분을 다 수분을 다 빨아먹고 올린 결과물이 나무 잎사귀고 꽃이고 열매인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위한 예정대로의 주권 섭리 역사의 결과물이 내 앞에 펼쳐지는 바로 내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에서 할 일은, 이 모든 사실을 아는 겁니다. 현실의 근본을 알고, 목적을 알고, 역사를 알고, 기억을 하고 어떤 형편 처지를 만나든지, 좋으면 좋아도, 나쁘면 나빠도, 슬퍼도 괴로워도, 힘이 들어도 고달파도, 내가 살고 있는 내게 부딪히는 환경 현실에서 기억할 것은 이 현실의 근본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다, 그분이 목적을 위해서 이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걸 위해서 예정하신 것이고 예정의 순서를 따라 지으신 존재가, 하나님의 주권 섭리가 뻗어내려와서 바로 내 앞에 닥쳐서 내게 부딪힌 것이다. 내가 들은 이 말은 뿌리가, 근본이 하나님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로 내게 들려주신 예정 속에 있는 말이다. 내게 보이는 것도 그러하다. 내가 괴로운 괴로움도 그러하다. 근심 걱정도 그러하다. 도무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어려운 이런 일들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그런 현실이 내게 부딪혀, 나와 상관이 없으면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인데, 나와 관련이 없을 수 없는,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어렵고 실타래처럼 얽힌 이런 현실이 내게 부딪힌 것도 근본은 하나님이고 목적은 구원이고 역사는 예정과 예정대로의 되어진 하나님의 모든 주권 섭리 역사가 결과물로 내 앞에 닥친 거니까 뭔가 뜻이 있는 것이다. 기억을 하고, 두 번째 기억할 것은, 그 어떤 현실 현실에 대해서 주인이 되는 겁니다. 현실의 주인이 되어서 그 현실을 세 번째는,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주인이 돼서 끌고 가는 것이지 내가 끌려가면은 현실의 종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크게 네 번째,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는 말씀에서 현실이란 것이 뭐냐, 현실은 자기가 처해진 환경, 다시 돌아갑니다. 넓은 환경 에덴이고, 현실은 직접 자기에게 부딪히는 동산이고 하나님이 창설해서 내 눈에 귀에 몸에 생활에 부딪히게 만드는 그게 바로 현실이고, 그런데 그 속에는 동방이고 하나님 계시는 곳이고, 그게 현실이다. 그럼 거기서 우리가 현실의 주인으로 살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의 주인 노릇은 첫째로 현실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이다, 영향 받지 않는 것이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백목사님 설교에 그런 말씀이 나온다 그랬지요. 나는 여러분들은 내 구원 위해서 이용합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이용해 먹으십시오. 예를 들어서 그분이 가셨지만은, 사도바울과 우리가 만났습니다. 제가 사도바울을 만났습니다. 그 현실의 주인은 누가 되야 됩니까? 내가 사도바울을 만났습니다. 현실입니다. 주인이 누가 되어야 됩니까? 내가 되어야 됩니다. 사도바울에게 끌려가면 현실에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그 현실에 주인이 돼서 그 사도바울에게 내가 배울 것이 뭔가? 얻을 것이 뭔가? 거기서 내가 주인이 돼서 배울 것은 배우고 얻을 것은 얻고, 따라갈 거는 따라가고, 내가 자의로 능동으로 따라가고, 내가 존경하고 내가 배우는 것이지, 나는 없고 일방적으로 자의사는 없고, 바울이니까 따라가고 바울이니까 존경하면 그 사람 현실에 종된 사람이고 그 사람 실패입니다. 그 순간만 보면은 유익같으나 멀리 보면 실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자유의사가 없는, 자의사가 없는 신앙은 참신앙이 아닙니다. 자의사가 없는 신앙은 참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고. 내가 알고, 내가 아는거라야 됩니다. 내가 이해를 하는 것이고. 백목사님을 만나도 그분 만난 그 현실에서 존경을 하고 배울 것 밖에 없고 그럴지라도 내가 보고 판단해서 배워야되지, 그런데 그 자기라는 것이 주인이 바로 되어야 되겠지요. 그러므로 주인 노릇하는 것은, 첫째 현실에 피동되지 않는 겁니다. 백목사님이니까 따라간다, 피동입니다. 사도바울이니까 따라간다, 피동입니다. 거기 피동될 분은 한분, 주님이 계신다면은 따라가야 되지요. 그건 현실 피동이 아니니까. 주님이니까. 진리에는 피동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진리 외에는 어떤 경우도 현실에, 어떤 사람, 어떤 형편, 사건, 상황에도, 물질에도 우리는 피동될 수 없습니다. 피동되면 현실에 종이 되는 겁니다. 내가 주인이 되야 됩니다. 내가 보고, 듣고, 비교해보고, 평가해보고 내가 판단해서 따라가야 됩니다. 그게 현실에 주인입니다. 피동되지 말고, 그다음 현실을 그게 바로 다스리는 겁니다. 그런데 조심할 것은, 거기서 자기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능동되고 주인되야 되지, 하나님 빼놓고 말씀 잊어버리고 세상과 자기 주관이나 자기 욕심, 다른 것이 자기를 다스리는 주인이 돼서 하면은 그거는 전부 자기 중심 악이 되고 마는 거지요.
현실에 주인으로 살자. 제목의 말씀. 깊이 좀 생각해보십시다. 지난주는 부활 소망의 생활, 이걸 말씀 드렸는데, 현실에 우리는 주인으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우리 주인으로 우리를 두셨지,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그 땅에서 온갖 종류에 보기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고, 생명 나무도 나게 하시고 선악과도 두시고, 그러고 난다음에 그 사람 이끌어 하신 것이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 하셨지, 그 동산에게 피동되고 종노릇 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에덴동산은 아담하와가 주인입니다, 통치자입니다. 이 세상은, 내 세상은 내가 주인입니다. 나를 빼놓고 어떤 사람, 어떤 사건, 환경 거기 내가 휘둘리고 피동되는 것은 자기 위치를 저버리는 겁니다. 하나님 대리자의 노릇이 아닙니다. 이것이 현실을 다스리는 주인되는 그 연습 그게 바로 우주 영계를 통치하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바로 그 연습을 우리가 세상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현실관을 바로 기억을 하고 현실의 주인으로 사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말씀의 이치를 조목조목 기억을 하고, 먼저 알아야 됩니다. 기억하고, 그다음에 자꾸 좀 생각해봐야 됩니다. 생각하는 것은 따지는 것이고, 따지는 것이고, 자꾸 따지는 것, 파고 들어가는 것, 분석해보는 것, 비교해보는 것, 이게 전부다 생각입니다. 생각 속에서 믿음이 자꾸 자라고 실감도 자라게 되는 겁니다. 현실의 주인으로 살아야 되겠다. 좀 폭 넓게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
제목: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1. 성도의 세상 생활
1)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①사후 세계, 부활의 세계를 믿는 도
②내세 부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
③세상 축복은 표적이며 씨와 양식
④세상 성공만 목표하면 신앙은 실패
2)성도의 세상 생활
①세상은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
②세상의 모든 것은 실물교재, 이용물
③성도의 세상 생활은 영원의 연습이며 훈련
2. 동방의 에덴동산(본문)
1)처소
①동방: 동쪽, 해 뜨는 곳, 하나님 향한(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 닮아가는)
②에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곳, 환경(넓은 범위의)
③동산: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형편(직접 부딪히는)
2)명령
①다스리고: 현실의 주인/ 하나님께 피동으로 현실을 지배
②지키고: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파수
③임의로 먹고: 허락하신 실과, 허락하신 세상
④선악과는 먹지 말고: 절대 엄금할 것,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엄금
3. 성도의 현실
1)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 모든 존재의 근본
2)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우리 구원 (하나님 같은 사람 만드시려는)
3)역사는: (목적 위한 역사, 목적 위한 하나님의 모든 역사)
①예정-절대 예정
②창조-예정대로의 창조
③보존-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보존
④관리 섭리-하나님이 직접 관리하시며 운영의 섭리
4)현실은:
①목적을 위한-하나님의 목적 우리 구원을 위한
②예정대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예정대로 주권 섭리의 결과물
5)할일은:
①현실의 근본, 목적, 역사를 기억
②현실의 주인이 되어
③현실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생활
4.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1)현실
①자기가 처해진 환경(넓은 범위)-에덴
②자기가 직접 부딪히는 형편-동산
③하나님 만나는 장소-동방
2)현실의 주인
①현실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
②현실을 다스리는 것
③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으로 상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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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
20140330 주후
창세기 2:8-17
오전에 크게 4가지 말씀을 드렸고 또 오후에 한번 더 복습을 하겠습니다. 늘 우리가 생각을 하고 말씀드리는 것이지만은, 신앙 생활은 아는 것이 첫째로 중요합니다. 모르면 신앙 생활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첫째 대지에서 성도의 세상 생활이라는 대지를 가지고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가 공부했던 말씀입니다. 여기서 기독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후 세계, 내세를 믿는 것이 기독교다. 기독교라는 도는, 부활의 도입니다. 부활을 소망하고 믿고, 부활을 바라보며 준비하는 것이 기독교다 하는 것을 작은 첫째로 말씀 드렸고,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 생활이란 것은, 신앙이란 것은 내세, 부활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이지, 이 세상을 보고 믿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걸 두 번째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두 번째는 그러므로 신앙이란 것은 부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이다. 내세를 소망하고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라는 겁니다. 세 번째, 그러므로 예수 믿어 받는 세상 축복은 표적이거나 혹은 씨와 양식, 한말로 말하면 자본으로 주신 겁니다. 그 자본은 영원한 부활의 세계를 마련하는, 투자하는 자본으로 주신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면 하나 조심할 것이 이 세상은 그러면 가치가 없는 것인가, 필요가 없는 것인가.
세상이란 것은, 사람이 세상 떠날 때 두고 갈 모든 것이 세상입니다. 우리의 몸도 세상, 마음도 세상, 몸과 마음에 들어있는 선천 후천의 모든 지식과 또 재능과 재주와 성격과 또 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자기가 날때부터 가졌거나 마련한 환경의 모든 좋은 그런 것들 전부다가 자기 세상입니다. 돈도 세상, 학벌도 세상, 인물도 세상, 문벌도 세상, 인맥도 세상, 좋은 성격도 세상, 실력도 세상, 다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자기가 노력한 것 같으나 들어가보면 전부 하나님이 주지 않으신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이 주신 목적은 그 세상을 통해서 천국을 알아라고 주신 것이며 또 하나는 천국을 준비하라고 자본으로 주신 것인데, 그러면 이 세상것은 가치가 적은 것인가, 필요가 없는 것인가?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은 중요한데, 몸도 중요하고 마음도 중요하고 건강도 중요하고 생명도 중요하고 학벌도 대단히 중요하고 물질도 중요하며, 가정도 가족도 모든 세상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필요한 것입니다. 어디에 필요하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이것은 영원한 천국에 씨앗이고 양식이니까, 다시 말하면 부활 세계를 건설하는 자본이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자본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고 농사를 짓고 싶은데, 밭도 있고 다 있는데 무엇이 없으면 농사가 안됩니까? 농사를 지어야겠는데 밭도 있고 농기구고 있고 사람도 있고 다 갖추어가졌는데 가장 중요한 하나가 없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씨앗이 없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까? 아무리 넓은 밭이 있어도 씨가 없으면 농사를 못 짓습니다. 양식이 없으면 자기가 살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세상은 전부 영원한 천국 농사에 필요한 씨앗이고 그 씨를 심고 가꾸는데 필요한 양식입니다. 한말로 말하면 영원한 부활세계 건설에 필요한 자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없으면 천국은 건설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티즈를 타고 서울에 가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몸도 피곤하고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런데 벤츠나 BMW같은 이런 차를 타고 가면 시간도 절약되고 몸도 덜 피곤하고 빠르기도 빠르고, 그러면 서울에 자주 왕래하는 사람은, 일이 많은 사람은 자동차를 사면, 마티즈가 있어야 되겠습니까? 좋은 차가 필요하겠습니까? 좋은 차가 필요한데, 그 좋은 차가 왜 필요합니까? 일을 해야 되니까 거기 필요한 겁니다. 그러면 마티즈도 차인데, 그것보다는 더 좋은 큰 차 좋은 차가 있으면 일을 더 많이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한 사람을 데리고 일하면 그 한 사람이 일당백의 실력 가진 사람이면 달리 말 할 수 있으나 꼭 같은 사람이면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 일을 더 많이 할 것이고, 두 사람보다는 열 사람이면 일을 더 많이 할 것이고, 열 사람보다는 백 명이면 일을 더 많이 할 겁니다.
요셉이 집에 있을때는 열 한번째 아들, 열 한번째 아들로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고 편애하는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니까 요셉은 좋은데 형들에게는 시기심을 유발시켰고, 아버지는 원인 제공을 하고, 요셉은 다행히 신앙이 있으니까 그걸 잘 감당해서 다행이지만은 잘못 감당하면 요셉은 편애하는 아버지 사랑을 받아서 성질도 버리고 못된 사람이 될건데, 신앙으로 다 그걸 유익되게 감당했으니까 다행인데, 그런 요셉이 집안에만 계속 있었으면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었을건데,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요셉을 어디로 보냅니까? 애굽에 보냈습니다. 애굽에 보내니까 집안만 보다가 종으로 팔려갔으니까 귀한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런 아들로 살다가 종으로 팔려갔으니까 종도 몸소 체험해보고 또 억울하게 누명도 받아보고, 감옥에도 일부러는 못가도 본의 아니게 감옥에도 한번 가보고, 감옥에 가보니까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그런 감옥이니까 그 감옥에서 보니까, 워낙 사람이 신실하니까 사람을 사귀는데 보디발도 사겼지만은 왕의 죄수들이니까 전부 장관급들, 국회의원급들, 정치 거물급들을 감옥에서 다 사겼다 그말이지요. 인맥을 다 쌓아놨습니다. 그러고나서 나오고 총리가 떡 되니까 요셉이 총리노릇할 때 감옥에서 싸우는 그 인맥들이 전부 요셉의 정치에 유용하게 활용이 되는 겁니다. 안봐도 그거는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요셉이 집안에만 있을때 하고 두루두루 거쳐서 고생은 되지만 거쳐서 감옥가서 하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게 전부 그럼 요셉의 집에 있을때도 세상, 종으로 팔려간 걸어가본 그 고생의 경험 체험도 세상, 보디발의 집에서 겪은 생활도 세상, 경험 체험으로 몸소 겪은 전부 그게 자기 실력으로 쌓여지니까 세상이고 감옥 생활에서 쌓은 인맥도 전부 세상인데, 그 모든 세상을 총리도 세상이고, 근데 요셉이 그 가진 모든 자기의 경험 체험에 쌓아놓은 자기 경륜, 연륜, 실력을 가지고 총리 노릇할 때 그 총리 자리까지도 전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역사에 써먹으니까 얼마나 요긴하게 써먹었습니까? 요셉이 아버지 집에서 사랑받는 아들로 있으면 사랑은 받았겠지만은, 등 따시고 배부르게 좋았겠지만은 형들은 시기심에, 그래서 아주 나쁜 그런 형들로 계속 됐을 것이고, 불화는 점점 심화되었을 것이고, 나중에는 엉망진창이 되었을껀데. 그 넓은 걸 자꾸 보고 세상을 많이 가지니까 그 세상을 믿음으로 잘 이용해 먹으니까 전부 귀한 그런, 써먹는 세상 이용물이 되어졌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가지는 세상이란 것은 전부 표적이거나 아니면 씨와 양식인데, 이 세상은 필요없는 게 아니고, 가치 없는 것이 아니고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하고 가치가 있는 것인데, 그 가치에 용도가 어디 있느냐? 천국, 죽음 너머 부활세계를 마련하고 준비하는 거기에 쓰여지는 가치고, 자본의 가치고, 심는 가치지, 만약에 부활세계를 잊어버리고 세상 가지고 있는 그 자체만 두고 가치로 삼는다면 그거는 사도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거는 전부 배설물인데, 그 배설물이 영양가는 없는 배설물 같으면 다 먹으면 먹는대로 몸에 영양은 없고 모조리 찌꺼기로만 다 나온다면 오히려 몸을 해롭게 하고 피곤하게만 만들지 유익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4번째,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성공만 소망하고 목표하고 달려간다면 그의 신앙은 실패고, 신앙 실패는 인생 실패고, 인생 실패는 영원한 실패고 그의 전부다 실패되고 마는 겁니다.
이런 걸 자꾸 말씀드리는 이유는, 상식인데, 기본인데, 이게 원칙인데, 이것이 가장 기본인데 원래 기본이란 것은, 불교라는 것은 원래부터 염세주의가 불교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는 속세를 떠나서 산 속에 들어가는게 불교고 산 속에서, 아니면 갇힌 속에서 면백을 하고 참선을 하고 자기 성찰을 하면서 자기를 모조리 다 비워내는, 금욕주의 이런거 그게 불교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 불교는 진화적인 그런 종교고 세상에 속한 종교니까 세상이 변함에 따라서 불교는 자꾸 변해지는 것이니까 나무랄 것은 없습니다. 거기 속한 거니까. 그런데 기독교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원래부터 기독교라는 것은 내세를 믿는 도고, 기독교 신앙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내세를 지향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천국을 믿는 겁니다. 전도할 때 뭐라 그럽니까? 예수 믿고 복 받고 잘 삽시다, 그래 전도합니까?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읍시다 그래 전도합니다. 그게 가장 기본입니다. 천국 가는, 천국을 믿는 것이 신앙의 기본 자세인데, 세상이 변하고 잘사는 세상이 되고, 세상이 지상낙원처럼 천국처럼 그렇게 좋아지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우리나라가 복 받은 것은 선대신앙가들의 신앙으로 복을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압니다. 미국 나라가 세계 강대국이 되고 짧은 역사에 저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그 뿌리 청교도들의 신앙 충성과 그 신앙이 그 밑에 뿌리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미국 나라가 발전이 돼서 잘 사는 나라가 되고 세상 지상 낙원이 되니까 하나님께서 미국 나라를 자꾸 쳐서 미국 나라에도 그 안전하다는 나라에서 테러가 나고 뭐 죽고 난리가 나지요. 총기사고 툭 하면 일어나고. 우리나라도 믿음의 조상들의 흘린 피로 세계에서 잘 사는 그런 강대국, 부자 나라가 되어가는데, 그런데 거기서 신앙을 교회들이 잊어버리면 이 세상이 점점 시간 속에서 쇄락해갈 수 밖에 없는 그거는 필연이고 세계 역사고 교회 역사고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신앙이란 것은 이 세상을 욕망하고, 세상을 마련하는게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복을 받던지 아니면 믿음 생활 하면서 자기 머릿속에 신앙 생활 속에 천국의 구원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으면 아직까지 믿음 생활 출발을 안 한 겁니다. 기본 회개하지 아니한 겁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지를 않은 겁니다. 깊이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예수를 왜 믿느냐? 그냥 교회 다닙니다. 아직 신앙이 없는 겁니다. 주변 환경 때문에 교회를 다니고 믿습니다. 아직까지 신앙은 뭔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늘나라를 준비하는 천국의 구원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세상이란 것은 그 천국 준비에 자본으로만 쓰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만 목표하고 성공한다면 신앙은 실패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예수 잘 믿어서 복을 받아도, 많이 받아도, 그게 전부라면 그 사람은 그 받은 복이 자기에게 끝에 가서 보면 불행이지 유익될 것이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어서 부자가 되고, 부자된 것을 주와 복음 형제 구원 위해서 다 투자해서 다시 거지로 돌아가서 예수 믿어서 아무것도 없는 십자가 빈털터리 되는 것이 최종 성공이다. 반드시 그리되는 것만은 아니지만은 그런 경우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도의 세상 생활, 기억 하십시다.
그다음, 성도의 세상 생활은 그러면 어떤 생활인가, 3가지로, 첫째, 이 세상은 지나가는 과정이다. 영원의 흔적이다.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00씨 맞아요? 세상은 과정이지요. 00씨는 몇 년 지나왔습니까? 20년? 20년 지나왔지요? 20년 지나온 과정. 남은 때가. 언제보니까 어느 책에 보니까 나이가 20살이면, 24살이던가? 인생을 80으로 두고 하루 24시간 계산하면, 나이 24살은 7시 12분이라 그러데요? 인간 80년을 24시간으로 계산하면 24살의 나이는 7시 12분이다. 그러니까 20대는 급할 것 없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런 말 하는 것을 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는데. 어쨌든 스무살을 살았으면 20년 지나왔습니다. 과정입니다. 돌아가지 못합니다. 흔적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30년을 살면, 30년 지나왔습니다. 돌아가지 못하고, 그런데 끝나는게 아니고 그 흔적이 이 세상에서도 남아있고 영원한 천국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흔적이 남아있는 거 아십니까? 내가 20년을 살았다, 20대 청년들, 20년 살았다, 20년 자기가 살아온 흔적이 자기 몸에 들어있고 마음에 베어있고 얼굴에 베어있고 손에 베어있고 인격에 베어있고 자기 심신의 기능의 실력에 고스란히 베어있습니다. 흔적으로 남아있는 겁니다.
참 사람이 마음대로 하기 어렵고 자기를 다스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그중에도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얼마나 귀하고 가치있는 것인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거기서 나온다. 마음을 붙들지 않으면 성벽이 무너지고 성읍이 없는 것과 같이 되어진다. 자기 마음을 자기가 붙들어 단속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인생 성공 한 사람이고, 자기 마음을 붙들 수 있으면 신앙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마음을 붙드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 마음이 바로 자기가 자기를 단속하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그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뻔히 알면서도, 뻔히 알면서도 지나가는 과정이며 돌아가지 못하며 흔적으로 남는 줄 알면서도 우리는 그 현실에 부딪힐때 그 생활을 자기를 단속하고 바로 살아야되는줄 알지만은 바로 살지 못하는게 대부분의 인생이고 믿는 사람들이 아닌가.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그런걸 많이 느껴서 너무도 참 실감을 많이 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붙들고 절제하고 단속하는 그런 분들은 참 부럽습니다. 참, 그런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그러니까 마음 먹은 것은 뭐든지 이룰 수 있는 그 사람이면 방향만 바로 잡으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니까, 실력있는 사람이 되겠지요. 그런 자기를 꺽고 단속할 수 있는 그런 자기를 만드는 것도 우리 신앙 속에 들어있어서 이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성령의 사람,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달음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싸우기를 누구와 더불어 싸운다고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하면, 함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라’. 목사들이 설교하고 교인들에게 큰소리 치는데, 그 설교 말씀가지고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교인들에게만 적용시키면 그 사람은 크게 속는 일입니다. 그래서 종종 말씀드리지만은, 목회의 목적이 뭐냐? 교역자들이 목사들이 목회 목적이 교회를 부흥시키는게 목적이다, 방향이 틀렸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리 부흥시켜도 실패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도 좋겠지만은 그것뿐이면 실패입니다. 모든 생활에,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모든 생활에 목적은 자기를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온전한 사람 만드는, 그 자기 만드는 가장 출발이 자기와 싸워서 자기를 이기는 겁니다. 이게 신앙이지요. 세상은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입니다.
두 번째, 세상은 영원한 천국 건설에 필요한 실물 교재고 이용물들입니다. 어떤 것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주신 것들입니다. 내가 가진, 나 자체로부터 내 가진 모든 것, 내 주변의 전부는 영원한 부활 세계, 내세 천국에 필요한 그런 것을 마련하는 실물 교재 이용물들이고, 성도가 세상에 사는 기간은 천국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연습의 기간이며 훈련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든 생활은 전부 연습이고 연단이고 연승이고 훈련이고, 연습을 하는만큼 이루어지는 것이고, 연단을 받는 만큼 강해지는 것이고, 훈련을 바로 받는 만큼 그 사람은 실력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걸 아니까 사람들이 특전사, 해병대 출신들을 대우를 하고, 대우하니까 요즘 청년들은 전부 해병대 갈려고 줄을 서서 해병대 경쟁률이 쎄다 그러지요. 서로 가려 그러니까. 그 힘드는데 왜 가려 그럽니까? 그래도 그런 해병대를 가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고생되는 줄 아는데 고생길을 찾아가는 사람은 생각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앞을 두고 나를 만들어야 되겠다, 나를 연단시키고 실력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있는 사람이니까 쓸모가 있는 사람입니다. 어려움을 다 피해버리고, 좋은 길만 찾아가고 수월한 길만 찾아가는 그 사람은 패배자 되기가 쉽습니다. 고행주의가 아니니까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지만은,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데 이왕 군대 갈 거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신앙의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 위험성만 없다면. 그런데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은, 위험성이 있으니까 그런 면이 염려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반드시 그의 다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런면은 있다는 겁니다. 성도의 세상 생활 3가지 기억하십시다. 세상은 지나가는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이고,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실물교재며 이용물이고, 성도의 세상 생활은 그러기 때문에 연습하고 연단받고 훈련하는 생활이 성도의 세상 생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교과서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 현실이라는 모든 연습 장소, 훈련 장소에서 내게 부딪히는 사람과 사건과 내 가진 재능과 부딪히는 그 창설해놓으신 그 동산에 현실에서 만나지는 모든 것을 실물교재로 이용을 해서 거기서 자기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그 목표를 향해서 부지런히 연습하고 연단받고 훈련하는 이것이 성도의 세상 생활입니다.
본문에서 동방의 에덴동산을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동방이 무슨 뜻인가? 동방. 동방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어디라고요? 동방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동쪽이란 뜻입니다. 동쪽. 동방은 동쪽. 우리나라를 동방 예의지국이라 그럴때 동방은 한자가 다르고, 성경에 말씀하신 동방,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말씀하신 이 동방은 방향할 때 그 ‘방 자’ 그 방 자입니다. 동쪽이라는 뜻입니다. 동쪽이 뭔데? 동쪽은 해가 뜨는 곳입니다. 성경에 해는 뭘 말합니까?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계신 곳, 동방의 에덴, 하필 동방의 에덴에 하나님이 계신 곳 그 쪽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그곳에, 동방의 에덴에, 에덴이라는 장소에, 동쪽을 향한, 동방의 에덴에, 에덴이라는 장소에, 넓게 말하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부산이라는 지방에 범일동이라는 동네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처소로 말하면 자기 사는 그 환경, 신분으로 말하면 현재 자기가 주어진 위치, 연령으로 말하면 그 나잇대,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아내, 남편, 또 학생, 직업인, 사업가, 부모, 자녀, 친구, 교인, 선생님, 학생 이런 모든 자기 위치 이게 어디라고요? 이게 에덴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동방의 에덴에.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이치입니다. 이게 자기 현실인데, 이 현실은 변할 때도 있고 오래가는 현실이지요. 넓은 범위 자기 현실입니다. 동방의 에덴에 거기다가 동산을 창설했습니다. 창설이라 말은, 하나님이 지어놓으신 창조해놓으신 것을 가지고 새롭게 자꾸 만드는 걸 창설이라 그래 말합니다. 회사를 창설했다. 새롭게 만들어가는 걸 창설이라 그래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우리들이 살고 있는 곳, 우리 각자에게 주신 내가 있는 곳, 현재 자기에게 처해진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는 세상에 보내셔서 아담 하와를 사람을 만들어놓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신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각자의 태어난 그 연도에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보내신 나라가 한국이고, 보내신 지방이 자기 고향이고, 보내신 자기 부모가 자기 부모님이고 환경이 그런 환경이고 거기서 점점 자라고 나니까 자기 신분이 되어졌고, 에덴입니다. 에덴이고 동산은 계속해서 자기가 만나는, 부딪히는 매일 매일 매순간 자기에게 부딪히는 그 순간 순간에 직접 부딪히는 그 현실을 동산이라 그리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항상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을 향하는 곳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바로 에덴동산 동방입니다. 거기가 우리 성도가 있는 처소고 자기 현실이다. 거기서 우리 할 일을 4가지로 명령했으니, 하나는 현실을 다스려라, 두 번째는 그 현실을 지켜라, 지키라는 말은 파수하라는 뜻이고, 파수하라는 것은 거기에 들어와서는 안될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혹은 나가서는 안될 것이 나가지 못하게, 지키는 것은 주로 침범하지 못하게 지키는 것이지요. 38선 있는 전방에 있는 그 군인들이 지키는 것은 북한에 있는 사람들이 몰래 내려오지 못하게, 적군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걸 지키는 겁니다. 지키는 것, 파수하는 것. 지켜라, 현실을 지켜라. 에덴동산을 지켜라. 너 있는 그 장소 거기를 지켜라. 뭘 지키라는 말인가? 하나님이 거기에, 현실에, 자기 있는 거기에 허락지 않는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내 현실에 무엇이 들어올 것인가. 자기 마음에, 자기 생각에, 자기 욕심에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한, 가져서는 안될 욕심, 시기, 질투, 죄 되는 그런 마음, 그런 허영과 허욕 그런것들이 자기 속에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라. 그리고 허락하신 것은 임의로 먹어라. 하나님이 주신 것은, 죄 되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취하고 가지고 누리고 그러나 선악과는 금하신 것이니 절대 먹지 말아라. 4가지 명령하셨는데 오늘 중점으로 말씀드린 것은 4가지 중에서 몇 번째 입니까? 오늘 주로 말씀드린 것은 4가지 중에서 첫째만 말씀을 드린 겁니다. 현실을 다스려라.
그러면 크게 3번째로 넘어가서, 성도의 현실은, 이 현실은 우리가 사는 곳입니다. 현실은 내가 있는 곳이고, 살아있는 사람에게 현실은 끊어질 수가 없고 없을 수가 없는 것이고 현실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잠을 자든지 병석에 누워있든지, 그래서 사람이 안 아플 수가 없고, 나이가 많으면 죽는 모습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만은, 그래서 살아생전 건강할 때 미리 기도할 제목이, 요즘 주변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을 좀 지켜봤습니다. 요즘 이상하게 장례식을 많이 치러서, 치른다기보다 장례식을 많이 좀 접해서 느끼는 바가 많은데,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참 마지막 세상 떠나는 그 모습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탄식이다’. 평생을 예수 믿고 또 어떤 경우는 복음을 전하고, 저 같은 경우는 목사로 설교를 많이 했는데, 그렇게 강단해서 천사같이 그래가지고 설교를 하고 외치더니 마지막에 세상 떠나는 모습이 교인들이 볼때, 많은 사람 볼때 덕스럽지 못하고 참 가련하고 그런 모습으로 세상을 떠난다면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겠으며 복음에 유익이 되겠는가. 그래서 죽을때도 좀 유익을 주고 복음을 영광스럽게 하고 다른 사람 구원에 덕을 끼치고 그래 죽어야 되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겁니까?
늙으면 자기 몸 하나 간수 못하는데, 몸에서 뻔히 냄새가 나는 줄 알지만은,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목욕도 못하는데, 옷도 제대로 못 갈아 입는데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옛날에는 저도 젊을때는, 지금도 아직 젊지만은, 몰랐습니다. 노인들이 좀 자기를 살펴서 냄새가 나면 씻기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하면 되는데 왜 그럴까? 참 철없는 생각이지요. 노인이 되가보면 아는 겁니다. 누가 내 몸에 냄새 나는 줄 모를까? 그런데 사람 코라는 것은 얼마 3초? 10초? 냄새가 나는데 딱 들어가서 몇 초만 있으면 코가 적응을 딱 해버려서 냄새가 안 납니다. 그러니까 자기 코에는 냄새가 안 나는데, 적응을 해버리니까, 다른 사람은 딱 들어가보면 악취가 난다 그말이지요. 자기는 모르는데, 항상 그리 사니까. 그렇지만은 알아도 손을 못 씁니다. 몸이 말을 들어야지요, 몸에 힘이 있어야지요 안되는데. 어쩔 수 없이 그래 되는 겁니다.
그러니 그런 모든 것까지 다 계산하고 미리 기도해서 참 마지막을 덕스럽지 못한 그런 모습이 되지 않도록 기도를 해야 되겠다. 왜 이 말씀이 나왔지요? 방향이 너무 딴데로 나간 것 같은데. 무슨 말씀 하다가 이것 했습니까? 000? 좀 크게? 성도의 현실? 현실? 또? 생활? 살아있는 동안? 장례식이 왜 그리 갔을까요? 죽으면 현실이 없다는 것, 맞지요. 죽으면 현실이 없는 것 맞습니다. 이제 그 맥을 찾아야지요. 살아있어야 현실이 있는 것이고 현실을 말하려 그랬죠. 그러니까 현실이란 것은, 살아있는 사람은 현실이 있고 죽으면 그는 현실이 없는 거지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성도의 모든 생활은 전부 현실생활이다. 그런 말 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현실에서 현실로 계속 이어지는 것이 성도의 생활인데, 그런데 쉬지 않고 내게 부딪혀오는 천태 만상에, 형형색색의 많은 현실들, 그 현실이 뿌리로 파고 들어가면 어디서부터 현실이 올라오는 것인가? 나타나는 것인가? 내게 당면한 온갖 종류 현실, 현실이라 말은 내게 부딪히는 그런 모든 형편들, 처지들, 그런 모든 것들이 어디서부터 올라오는가 그말이지요.
나무에서 피는 아름다운 이쁜 꽃이 있으면 그 꽃만 볼 것이 아니고, 저 아름다운 꽃이 피기까지 그 꽃을 피게 만드는 뿌리는, 근본은 나무 뿌리고, 그 나무 뿌리의 색은 아주 많은 자잔한 그런 수많은 뿌리들이 다 영양분을 빨아당겨서 굵은 뿌리로, 더 굵은 뿌리로, 둥지로 보내가지고 이게 뻗어올라가서 저 가지 끝에 나무가 높은 곳은 수십미터 되는데,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뿌리가 영양분을 빨아당겨 영양분을 올려가지고 저 높은 꼭대기, 나뭇가지 끝까지 뿌리에서 빨아올린 영양분이 뻗어가니까 거기서 꽃이 피고 잎사귀 새파랗게 되고 열매도 되고 그리 되는 것이지 밑에 뿌리를 다 잘라 버리면 안 보여도 나무 위에 열매는 다 말라죽고 마는 겁니다. 우리 교육관에, 제가 나무 이름 모르는 나무가 하나 있는데, 나무가 좀 좋은 나무 같은데, 노오랗게 말라 죽었습니다. 왜 죽었는지 원인은 모르겠고. 안봐도 잎사귀 다 마른 것 보니까 나무가 죽었고, 잎사귀 다 말라버렸으니까 둥지는 죽었겠고, 안봐도 밑에 뿌리가 썩었는가보다. 이유가 있겠지요, 뭔가. 왜 죽었는지는 모릅니다. 어쨌든 겉을, 껍데기 보니까 죽은 거지요. 잎사귀 모양 보니까 죽었구나. 뿌리가 끊어졌구나, 죽었구나. 우리 현실에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내려가있느냐? 현실에 뿌리는 누구라고요? 자존하신 하나님. 이걸 우리가 연결시켜 봐야 됩니다. 이걸 가지고 생각을 많이 해봐야 됩니다. 내 앞에 닥치는 모든 현실은 어떤 현실이든지 예외가 없습니다. 그 현실의 근본 뿌리는 하나님이다. 그분에게서부터 올라온 것이고 나타나서 내 앞에 온 겁니다. 그분과 끊어진 현실은 없는 겁니다. 내 앞에 당면한 어떤 사람이 왔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미워서 꼴도 보기 싫은 그 사람이 내 앞에 자꾸 보입니다. 안보이면 좋겠는데, 그만 딱 꼴보기 싫은 사람이 내앞에 자꾸 얼렁거립니다. 내가 피해도 또 보이게 됩니다. 현실입니다. 내 눈에 보이고 내게 부딪히니까. 그 꼴보기 싫은 사람이 어디서 나왔는가? 그 사람 뿌리 파고 들어가보면 하나님이 그 꼴보기 싫은 사람을 내게 자꾸 나타나게 만들어놓고 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래 하시는 겁니다. 이걸 믿으면 기독교 신앙이고, 이걸 부인하면 기독교 신앙은 아닙니다. 이게 일원론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뿌리는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왜 그런 현실을 만드시느냐? 현실의 목적이 뭐냐. 성도의 현실의 목적은, 목적이 뭐라고요? 목적이 목적입니다. 목적이 목적이다. 현실을 주시는 목적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이 뭔가? 내 구원입니다. 내 구원이 뭔가? 나를 그 현실을 통해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실력있는, 온전한, 좀 더 깊은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시기 위해서 내 현실을 내게 부딪혀 오게 하시는 겁니다. 이게 목적입니다. 현실의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목적을 위한 역사가 있는데 그러면 그 목적을 위해서 어떤 역사 하고 계시는가? 목적을 위한 첫째 역사는, 예정입니다. 절대 예정이다. 그러므로 성도앞에 닥치는, 성도뿐이 아니고 이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은 하나님이 모르는게 없습니다. 하나님의 머릿속에 들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님의 계산에 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 뭔가 일을 해나가다가 계획을 세우고 예산하고 머릿속에 다 담아놓고 하는데 돌발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어? 이거는 내 계산에 없는 건데?’ 그러면 당황합니다. 자기 머릿속에 계산의 범위를 벗어나면 감동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닥쳐도 많이 계산하고 계산해서 전부 자기 머릿속에 다 들어있으면 다른 사람은 걱정 해도 그 사람은 걱정을 안 합니다. 다 계산 한 겁니다. 머릿속에 들어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렇게 되고, 저 사람이 지금 저렇게 하다가 그 다음 순간에는 저리 가고 그다음에는 저리 갔다가 이렇게 돌아올 것이고 이렇게 처리 될 겁니다. 내 머릿속에 다 계산이 들어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일 전부를 다 손아귀에 딱 쥐고 있는 사람이니까 걱정할 게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내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전부 하나님의 머릿속에, 계산 속에, 예산 속에 다 들어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산에 들어있지 않은 세상 역사는 머릿털 하나 검어지고 희어지는 것도 없다는 것이 성경이고, 이걸 달리 표현하면 개미 한 마리 수염이 흔들리는 것도 전부 하나님의 계산 속에 들어있다. 이게 절대 예정입니다. 000 선생님 믿어져요? 이해가 됩니까? 이것이, 이런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고 그러기 때문에 이런걸 파고들어가서 믿어야 되니까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면 믿어지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라야 믿어지지, 하나님 은혜가 아니면 안 믿어지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하나님 은혜를 하나님께 주셔서 믿어지게 해놓고, 그다음에 믿어지는 그 믿음을 종자로 줘놓고 그다음에는 종자를 줬으니까 그 다음에 그 믿음을 길러가는 것은 너의 몫이다. 부지런히 길러가야 됩니다. 믿음이 길러져서 온 세상 천하가 다 믿지 못해도 자기에게는 믿어지는 믿음이 되도록 그래야 됩니다.
목적을 위한 역사 첫째는 절대 예정입니다. 두 번째는 예정대로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나를 하나님 형상 만들려고 하니까 필요한 존재가 많이 있습니다. 우주도 필요하고, 해도 필요하고, 달도 필요하고, 별도 필요하고, 지구도 필요하고,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는 것 보니까 지구 밖에 있는 저 우주 공간에 있는 돌아다니는 그런 돌맹이들이 어떻게, 그런데 그거 진짜 맞습니까? 안봤는데. 하긴 과학자들이 그 정도는 물질계니까 맞겠지요. 운석이라는 것이 진주에 몇 개 떨어졌다고요? 떨어진 그것도 보니까, ‘아 그거보고 우리에게 우리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게 하는 것 보니까, 우주에는 지구 말고 다른 별들도 필요하고, 유성이라는 것도 필요하고, 운석도 필요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전부다 만들어놓으신 겁니다. 어디에 필요한지는 또 봐야 알겠지만은. 창조물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아니한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러기 때문에 마귀도 하나님이 만들었고, 죄도 하나님이 있게 하신 것이고, 내 원수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고,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해야 되지 원수를 미워하면 성도의 자세는 아닙니다. 그 원수도 하나님이 만드셨고, 내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에 원수가 되게 하셨으니까, 참 어렵지요. 신앙이란 것은 쉬운 걸음이 아닙니다. 어렵습니다. 창조입니다. 예정대로 창조.
세 번째는 보존입니다. 지어놓으신 모든 것을 필요해서 다 하나님께서 그게 다 그대로 있도록 보존시켜 주시는 겁니다. 저절로 보존되는 것 같으나 그 하나도 하나님이 직접 보존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 또한 성경입니다. 부모가 있으니까 자녀가 나고 또 자녀 나고 하나님 손대지 않고 저절로 번식이 되는 것 같은데, 성경에 보니까 땅은 씨를 가진 열매를 맺는 과목을 내라. 그랬으니까 하나님이 지을때부터 땅에게 명령해서, 땅은 나무를 내되, 과목을 내되 그 과목이 씨를 가진 열매가 맺도록 그런 과목을 매라. 그렇게 창조해놨으니까, 땅이 사과 나무를 매면은 그 사과가 맺을때 그 사과 속에 씨가 들어있습니다. 그 씨앗을 심으면 또 사과 납니다. 이렇게 번식되니까 하나님이 손 안대도 저절로 번식이 됩니다. 모든 생물들이 다 하나님이 내신 번식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니까 저절로 번식이 됩니다. 이거는 외부 모습이고, 그렇게 번식되는 것, 지극히 작은 생물 하나, 세균 한 마리 까지 번식되는 것은 전부 하나님이 직접 역사해서 번식이 되지, 던져놨는데 저절로 되도록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이 절대 주권 섭리입니다. 보존이고, 하나님이 다 보존하시는 것이고.
보존해두신 모든 걸 가지고 네 번째는 그 모든 것을 직접 관리하고 섭리하시는 것이 절대 주권 섭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하나님의 역사고, 그러기 때문에 크게 네 번째, 이런걸 살펴보니까 내 현실은 어떤 현실이냐? 크게 두가지로 정리해보니까 현실은 목적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결과물입니다. 어떤 결과물이냐? 목적을 위한 예정대로의 하나님의 섭리하신 섭리, 주권 섭리하신 섭리의 결과물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으신 순서대로 보존하고 관리하고 섭리하신 그 섭리의 결과가 내 앞에 나타난 현실이고 각자 자기앞에 부딪히는 자기의 현실입니다. 땅에서 뿌리가, 땅 속에 있는 영양분을 다 수분을 다 빨아먹고 올린 결과물이 나무 잎사귀고 꽃이고 열매인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위한 예정대로의 주권 섭리 역사의 결과물이 내 앞에 펼쳐지는 바로 내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에서 할 일은, 이 모든 사실을 아는 겁니다. 현실의 근본을 알고, 목적을 알고, 역사를 알고, 기억을 하고 어떤 형편 처지를 만나든지, 좋으면 좋아도, 나쁘면 나빠도, 슬퍼도 괴로워도, 힘이 들어도 고달파도, 내가 살고 있는 내게 부딪히는 환경 현실에서 기억할 것은 이 현실의 근본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다, 그분이 목적을 위해서 이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이걸 위해서 예정하신 것이고 예정의 순서를 따라 지으신 존재가, 하나님의 주권 섭리가 뻗어내려와서 바로 내 앞에 닥쳐서 내게 부딪힌 것이다. 내가 들은 이 말은 뿌리가, 근본이 하나님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로 내게 들려주신 예정 속에 있는 말이다. 내게 보이는 것도 그러하다. 내가 괴로운 괴로움도 그러하다. 근심 걱정도 그러하다. 도무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이런 어려운 이런 일들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그런 현실이 내게 부딪혀, 나와 상관이 없으면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인데, 나와 관련이 없을 수 없는,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런 어렵고 실타래처럼 얽힌 이런 현실이 내게 부딪힌 것도 근본은 하나님이고 목적은 구원이고 역사는 예정과 예정대로의 되어진 하나님의 모든 주권 섭리 역사가 결과물로 내 앞에 닥친 거니까 뭔가 뜻이 있는 것이다. 기억을 하고, 두 번째 기억할 것은, 그 어떤 현실 현실에 대해서 주인이 되는 겁니다. 현실의 주인이 되어서 그 현실을 세 번째는,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이다. 내가 능동적으로 주인이 돼서 끌고 가는 것이지 내가 끌려가면은 현실의 종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크게 네 번째,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는 말씀에서 현실이란 것이 뭐냐, 현실은 자기가 처해진 환경, 다시 돌아갑니다. 넓은 환경 에덴이고, 현실은 직접 자기에게 부딪히는 동산이고 하나님이 창설해서 내 눈에 귀에 몸에 생활에 부딪히게 만드는 그게 바로 현실이고, 그런데 그 속에는 동방이고 하나님 계시는 곳이고, 그게 현실이다. 그럼 거기서 우리가 현실의 주인으로 살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의 주인 노릇은 첫째로 현실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이다, 영향 받지 않는 것이다. 대단히 중요합니다.
백목사님 설교에 그런 말씀이 나온다 그랬지요. 나는 여러분들은 내 구원 위해서 이용합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이용해 먹으십시오. 예를 들어서 그분이 가셨지만은, 사도바울과 우리가 만났습니다. 제가 사도바울을 만났습니다. 그 현실의 주인은 누가 되야 됩니까? 내가 사도바울을 만났습니다. 현실입니다. 주인이 누가 되어야 됩니까? 내가 되어야 됩니다. 사도바울에게 끌려가면 현실에 주인이 아닙니다. 내가 그 현실에 주인이 돼서 그 사도바울에게 내가 배울 것이 뭔가? 얻을 것이 뭔가? 거기서 내가 주인이 돼서 배울 것은 배우고 얻을 것은 얻고, 따라갈 거는 따라가고, 내가 자의로 능동으로 따라가고, 내가 존경하고 내가 배우는 것이지, 나는 없고 일방적으로 자의사는 없고, 바울이니까 따라가고 바울이니까 존경하면 그 사람 현실에 종된 사람이고 그 사람 실패입니다. 그 순간만 보면은 유익같으나 멀리 보면 실패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자유의사가 없는, 자의사가 없는 신앙은 참신앙이 아닙니다. 자의사가 없는 신앙은 참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고. 내가 알고, 내가 아는거라야 됩니다. 내가 이해를 하는 것이고. 백목사님을 만나도 그분 만난 그 현실에서 존경을 하고 배울 것 밖에 없고 그럴지라도 내가 보고 판단해서 배워야되지, 그런데 그 자기라는 것이 주인이 바로 되어야 되겠지요. 그러므로 주인 노릇하는 것은, 첫째 현실에 피동되지 않는 겁니다. 백목사님이니까 따라간다, 피동입니다. 사도바울이니까 따라간다, 피동입니다. 거기 피동될 분은 한분, 주님이 계신다면은 따라가야 되지요. 그건 현실 피동이 아니니까. 주님이니까. 진리에는 피동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진리 외에는 어떤 경우도 현실에, 어떤 사람, 어떤 형편, 사건, 상황에도, 물질에도 우리는 피동될 수 없습니다. 피동되면 현실에 종이 되는 겁니다. 내가 주인이 되야 됩니다. 내가 보고, 듣고, 비교해보고, 평가해보고 내가 판단해서 따라가야 됩니다. 그게 현실에 주인입니다. 피동되지 말고, 그다음 현실을 그게 바로 다스리는 겁니다. 그런데 조심할 것은, 거기서 자기가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능동되고 주인되야 되지, 하나님 빼놓고 말씀 잊어버리고 세상과 자기 주관이나 자기 욕심, 다른 것이 자기를 다스리는 주인이 돼서 하면은 그거는 전부 자기 중심 악이 되고 마는 거지요.
현실에 주인으로 살자. 제목의 말씀. 깊이 좀 생각해보십시다. 지난주는 부활 소망의 생활, 이걸 말씀 드렸는데, 현실에 우리는 주인으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우리 주인으로 우리를 두셨지,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그 땅에서 온갖 종류에 보기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고, 생명 나무도 나게 하시고 선악과도 두시고, 그러고 난다음에 그 사람 이끌어 하신 것이 그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 하셨지, 그 동산에게 피동되고 종노릇 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에덴동산은 아담하와가 주인입니다, 통치자입니다. 이 세상은, 내 세상은 내가 주인입니다. 나를 빼놓고 어떤 사람, 어떤 사건, 환경 거기 내가 휘둘리고 피동되는 것은 자기 위치를 저버리는 겁니다. 하나님 대리자의 노릇이 아닙니다. 이것이 현실을 다스리는 주인되는 그 연습 그게 바로 우주 영계를 통치하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는 바로 그 연습을 우리가 세상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현실관을 바로 기억을 하고 현실의 주인으로 사는 우리가 되도록 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말씀의 이치를 조목조목 기억을 하고, 먼저 알아야 됩니다. 기억하고, 그다음에 자꾸 좀 생각해봐야 됩니다. 생각하는 것은 따지는 것이고, 따지는 것이고, 자꾸 따지는 것, 파고 들어가는 것, 분석해보는 것, 비교해보는 것, 이게 전부다 생각입니다. 생각 속에서 믿음이 자꾸 자라고 실감도 자라게 되는 겁니다. 현실의 주인으로 살아야 되겠다. 좀 폭 넓게 깊이 생각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