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0-주전(창2:8-17)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2014-03-30조회 436추천 30
본문: 창세기 2장 8절-17절 (요약/2014.03.30.주일)
제목: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1. 성도의 세상 생활
1)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①사후 세계, 부활의 세계를 믿는 도
②내세 부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
③세상 축복은 표적이며 씨와 양식
④세상 성공만 목표하면 신앙은 실패
2)성도의 세상 생활
①세상은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
②세상의 모든 것은 실물교재, 이용물
③성도의 세상 생활은 영원의 연습이며 훈련
2. 동방의 에덴동산(본문)
1)처소
①동방: 동쪽, 해 뜨는 곳, 하나님 향한(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 닮아가는)
②에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곳, 환경(넓은 범위의)
③동산: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형편(직접 부딪히는)
2)명령
①다스리고: 현실의 주인/ 하나님께 피동으로 현실을 지배
②지키고: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파수
③임의로 먹고: 허락하신 실과, 허락하신 세상
④선악과는 먹지 말고: 절대 엄금할 것,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엄금
3. 성도의 현실
1)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 모든 존재의 근본
2)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우리 구원 (하나님 같은 사람 만드시려는)
3)역사는: (목적 위한 역사, 목적 위한 하나님의 모든 역사)
①예정-절대 예정
②창조-예정대로의 창조
③보존-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보존
④관리 섭리-하나님이 직접 관리하시며 운영의 섭리
4)현실은:
①목적을 위한-하나님의 목적 우리 구원을 위한
②예정대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예정대로 주권 섭리의 결과물
5)할일은:
①현실의 근본, 목적, 역사를 기억
②현실의 주인이 되어
③현실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생활
4.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1)현실
①자기가 처해진 환경(넓은 범위)-에덴
②자기가 직접 부딪히는 형편-동산
③하나님 만나는 장소-동방
2)현실의 주인
①현실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
②현실을 다스리는 것
③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으로 상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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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지난 주일에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고, 우리 기독자들의 생활은 부활 소망의 생활이 우리 생활인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알고나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아주 상속에 속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교 신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죽음 너머 사후 세계 부활세계를 소망하고 믿고 바라보는 것이 기독교고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이 땅에서 살록 있지마는 우리의 목ㅎ표는 우리 소망은 죽음 너머에 있고, 죽음 너머에 있는 하늘나라 천국 영주처가 우리가 돌아갈 본향이며, 우리들이 가서 살 영원한 우리의 진짜 우리의 나라가 바로 그 나라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잊지 않고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사후 세계 부활세계, 내세를 믿는 것이 기독교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마땅히 내세 부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향이란 말은 향해서 나아간다는 그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서 잘 살거나 또 세상에서 사람들이 인정하고 모두 다 존경하는 그런 도덕적인 인격자 사람의 존경을 받고 사람들이 모두 다 좋아하는 그런 인격자가 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앙은 나라로 말하면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것이 신앙이고
그래서 그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신앙이고 우리 자세로 말하면 하나님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하나님과 같은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나라가 어떤 나라인 것을 정확하게는 몰라도 성경에 기록한 대로는 적어도 알아야 됩니다. 그 나라는 무한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나라다. 그 나라는 가장 고차원의 나라며 그 나라는 변동없는 불변의 영원의 세계라는 이런 상식 정도는 우리가 알고, 우리들이 바라보는 그 하늘나라 천국과 현재 세상에 있는 모든 천하 60억 70억의 인구와 역사세계의 6천년 역사에 왔다간 모든 인생들이 모두 다 소망하고 건설하고 이루고자 했던 세상의 소이 말하는 이상향이라고 불리는 세상의 좋은 지상 낙원들, 그런 건설되어 있는 것이 있으면 그런 것들과 과거에 건설 되었다가 없어진 것이 있으면 그런 나라나 지역이나 그런 환경이나 그런 세계를 우리들은 참고로 한 번씩 들리는 대로 보여지는 대로 찾아서 그런 것들과 그런 곳들과 우리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영주처 하늘나라를 비교해 보고, 그래서 과연 우리 믿는 사람이 깨닫고 나면 평생을 바쳐 믿고 준비하고 소망하는 것이 하늘나라 천국인데 내가 가서 영원히 살 그래서 내 전부를 다 바쳐 준비하는 그 나라가 과연 그리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 하는가를 우리는 늘 비교해보고 평가로 따져봐야 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대학을 간다면 실력 없는 학생들은 가고 싶어도 실력이 안되니까 갈 수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실력있는 학생들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야 되는 곳을 선택을 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그 학교가 과연 내가 바라는 학교가 맞는지를 세밀하게 조사하고 따져봅니다. 그래서 대학교 갈 학생들이 많고 입시경쟁이 치열해도 학교마다 실력있는 학생들은 돈을 줘 가면서 모시고 가려고 노력을 하니까 아무리 오라고 그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고 내가 목적하는 바와 다르면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겁니다. 이사를 가더라도, 내가 가서 살 그 지역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고 가는 것이 순리고, 내가 가서 살 집이 어떤 집인지 살펴 보고 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돈은 많고 그래서 땅은 좀 사놓고 싶은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땅을 사면은 산을 사고 논밭을 사는데 그 사람들은 그냥 드물게 그런 사람들이 있답니다. 말만 듣고 계약을 해 버립니다. 가 보지도 않고. 그래 가지고 속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땅을 나서 보니까 맹지더라. 맹지란 말은 길이 없는 땅이라 그 뜻인데 그거는 죽은 땅이라서 가치가 아주 없는 땅인데 사버립니다. 가 보지도 안하고. 돈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겠습니다. 자기가 들어가서 살 집이면 가 봐야 됩니다. 가서 집의 방향도 보고 구조도 보고 여러 가지를 살펴 보는 것이 당연한겁니다. 동네도 살펴보고. 우리들이 가서 살 하늘나라는 가 볼 수는 없는 나랍니다. 그러나 일단 가면은 영원히 살아야 되는 영주처기 때문에 가 볼 수는 없으나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해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까 말씀을 통해서 어느정도 알고, 과연 내 평생을 바치고 내 전부를 다 바쳐서 소망을 하고 준비해서 갈만한 나라인지를 따져보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그래서 가치를 깨닫고 나면 신앙이란 것은 그 나라를 바라보고 거기 다 투자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잘 믿어서 맏는 이 세상 복이라는 것은 세 가지다 그랬습니다. 두개를 더 붙여서 예수를 잘 믿어서 세상에서 복을 받으면 그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이다. 눈에 보이는 복을 받아봄으로 믿음으로 살아서 보이는 복을 받음으로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이 과연 실제 있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사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이것을 보이는 것을 받아 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표적으로 주신 것이고, 믿음이 있음에도 계속 세상 복을 주시는 것은 그거는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심는 씨로 주신 것이고, 거기 필요한 자기 먹을 양식으로 주시는 그게 전부라. 그래서 표적이거나 씨와 양식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 가진 세상의 전부고 받는 축복의 전부라는 것을, 이거는 변동없는 진리니까 확실히 붙들어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해서 처음 부터 예수 믿는 목적이 목표가 죽음 너머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죽음 이편에 살아 생전 잘 살고 잘 입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그래 사는 것을 목표하고 예수를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은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이고 목표가 틀린겁니다.
많은 사람이 그래 믿는 사람도 있고 어떤 경우는 예수를 잘 믿어서 복을 첨에는 천국을 바라보고 믿었는데 천국 바라보고 잘 믿으니까 하나님이 더욱 힘을 내라고 세상에 복을 주시니까 가난하던 사람이 경제가 넉넉하고 이런말 하면 많은 분들이 속으로 의아심을 가지거나 더 심하면 웃거나 그렇습니다. 나는 믿어도 복은 커녕 항상 그대로더라. 십년 믿어도 달셋방 벗어나지 못하고 경제에 허덕이는 것은 변함이 없더라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마는 백의 99.9정도는 잘 못믿어서 그런겁니다. 찾아보면 그리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성경에 나사로도 있으니까 그런데 거의 대부분 보면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여기 가난한 분들이 많으실건데 대단히 죄송하지마는 가난하게 사는 분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원인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과거에 나환자촌 나환자를 좀 심하게 표현하면 문둥이라 그럽니다. 문둥이. 지금은 나환자 약이 좋아서 별로 없고 양성 가진 사람이 거의 없는데 옛날에 저 어릴 때만 해도 문둥이라 하면 귀신 상대하듯이 그래 상대하고 문둥이는 사람을 잡아 먹는다 그래서 문촌이라 해서 문둥이만 사는 촌이 따로 있었고, 거기는 겁이 나서 낮에도 사람들 발길이 못가는 데가 문둥이가 사는 곳입니다. 살이 썩어서 고름이 나고 일그러지고 쳐다만 봐도 그냥 겁이 나서 못볼 만큼 얼굴 손발이 다 일그러져 있습니다. 많이 봤습니다. 어릴 때. 근데 거기 백목사님은 그 나환자들 문둥이들과 함께 지내고 같이 밥도 먹고 부흥회를 많이 하고 상대를 많이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처럼 그렇게 하셨는데 거기 전문으로 하지는 않으셨지마는. 그런데 그분이 나환자들을 많이 접촉을 하면서 느낀 바가 뭐냐? 이분들은 거의 대부분 다는 아닙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마는 거의 대개는 이분들은 문둥이가 안되면 안되겠구나. 나환자가 안되면 안되는 요소들을 거의 대부분 하나씩 다 가지고 있더라는 것이 간증입니다. 상대해본 결과에. 사람이 가난하게 되는 것은 가난한 이유가 있는겁니다. 병이 드는 것은 병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고나는 것은 사고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가 불화가 생기면 붏화 생기는 원인이 반드시 있는데 한쪽에만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양쪽에 다 있습니다. 이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펴봐야 됩니다. 나는 잘못 없다 완전잡니까? 하나님입니까? 완전자 아닙니다. 나한테도 원인을 찾아봐야 됩니다. 어느정도 사실인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마는 어떤 선생님 결혼했는데 그분은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이 목소리가 올라가고 큰소리를 치면은 일단 아내가 무릎을 꿇고 본답니다. 무릎을 꿇고 화풀어 놓고 그다음에 대화하니까 싸울일이 별로 없다 그러지요 대단히 지혜로운 일입니다. 사람이 내가 아무리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아도 그거는 자기 주관이고 자기 생각입니다. 들어가보면 자기가 모르는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사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으면 거의 대게는 경제복을 받거나 그 사람의 인격복을 받거나 자녀복을 받거나 가정의 화목의 복을 받거나 복을 받는 것이 성경입니다. 거의 대게 다 그러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예수 믿을 때는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믿었고 믿으니까 세상에서 복을 받았고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니까 세상에서 복 받는 걸 보고 베드로처럼 천국이 있음을 깨닫고 천국의 전부다 바치는 거기로 한단계 더 올라가야 되는데 거의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이 세상복을 받고나면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립니다. 그 세상복을 자기 전부로 삼아서 거기서 중단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1단계는 성공했으나 2단계에서는 실패가 되고 마는 겁니다. 이게 신앙 실팹니다. 성공이 아닙니다. 성경에 롯이 그랬고, 사울왕이 그랬고. 그런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되겠습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돕니다. 내세를 지향하는 돕니다. 신앙은 그러기 때문에 내세를 향해서 나아가는게 신앙이고 이 세상 축복은 표적이거나 씨와 양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세상 성공만 목표하고 신앙생활하면 신앙은 실패가 되는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의 세상생활이 뭐냐? 예수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무엇인가?
모두가 다 아는 상식으로 이 세상은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이며 흔적입니다. 세상은 지나가는 과정. 나그네 세상입니다. 과정입니다. 흔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지나갑니다. 워낙 젊은 사람들에게는 세월이 더디게 가니까 어린 아이들은 나도 빨리 커서 어른이 되면 좋겠다. 어른이 되고 나면 그 때 부터는 세월이 너무 빨리가서 좀 더디갔으면 좋겠다. 세월이 지나가는 흐름은 속도는 꼭 같은데 자기 자신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는 겁니다. 어쨌든 이 세상 인생은 지나가는 과정이며 이 모든 것은 영원한 흔적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성도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성도의 모든 것은 실물 교제고 이용물입니다. 죽음 너머 사후 세계 내세 부활 세계를 마련하고 준비하는 연습하는 거기 필요해서 하나님이 주신 교재들입니다. 군대가면 군인들이 훈련 받는데 훈련 받는 것은 전쟁터에서 유사시에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한 훈련, 적군을 물리치기 위한 훈련을 받는데 그 훈련에는 장애물도 필요하고, 총도 필요하고, 대포도 필요하고, 산도 필요하고, 나무도 필요하고, 많은 훈련에 필요한 도구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은 도구들이고 교재들입니다. 그거는 자기것이 아닙니다. 군대가서 쓰는 모든 것들은 도구들 교재들이고 학교가서 학생들이 학교에 가면 학교 운동장도 있고, 교실도, 책걸상도, 교과서도, 필기도구도, 칠판도 있고 많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다 학습 도구들 실물 교재들이고 내가 지식을 습득하는데 유용한 이용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세상에 모든 것은 하늘도, 땅도, 바다도, 그 속에 있는 자연의 모든 것들도 인공의 모든 것들도 내가 마련하고 있는 모든것, 내 학교 모든 생활들 지식들 가정들 직장들 사업들 그 모든 전부다는 영원한 영 주처 천국을 연습하고 준비하고 마련하고 필요한 교재들이고 이용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도의 세상생활은 그러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연습이며 훈련받는것이 성도의 세상 생활입니다. 학생들 적고 있나요? 요약지 기록하고 있습니까 휴대폰 만지는 사람이 보이는 것같은데. 예배시간에. 예배시간에 휴대폰 만지는 것은 신앙에 따라 다르지만 죕니다. 범성죄. 도둑질 하는것 만큼 큰 죄입니다. 하면 안됩니다.
성도의 세상생활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 상식으로 세상은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입니다. 두번째 성도에게 세상에 있는 모든것들은 실물 교재며 이용물이다. 세번째 성도의 세상생활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연습하는 훈련하는 생활이다. 요래 기억하십시다. 여기까지 기억하면서 성도의 세상 생활 이라는 큰 대지에서 두 가지 중간 가지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성도의 세상 생활이라는 두 가지 기억하고 거기서 첫번째
4가지 두번째 3가지를 기억하시면서 큰 두 번째로 넘어갑니다.
본문에 보니까 성경 보시겠습니다. 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은 사람을 상대하시는 하나님이라 그 뜻입니다. 하나님인데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하는 하나님을 여호와 님이라 그럽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어디에요? 어디의 어디에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다음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다. 거기가 어딥니까? 하나님이 창설하신 동방의 에덴 동산 하나님이 사람을 지어서 그냥 알아서 살아라고 방임해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꼭 찍어서 여기 살아라 어디 삽니까? 첫째 동방. 두번째 에덴. 세번째 동산입니다. 세 가지로 기억하십시다.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첫째 동방입니다. 동방이란 쉽게 말하면 동쪽이라 그 뜻입니다. 동쪽입니다. 동쪽은 뭐하는 곳입니까? 대표적으로 동쪽은 해가 뜨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을 향하여 동방이란 뜻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런 의미로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을 향하는 동방. 에덴이라 말은 넓은 우리의 형편입니다. 넓은 고 현재 자기 처해진 형편. 학생이라면 학생이 에덴입니다. 회사다니면 회사생활이 에덴입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주부가 에덴입니다. 사장님이면 사장이 에덴입니다. 직장인 이라면 직장이 에덴입니다. 예를 들면.
그 다음 동산에 바로 자기가 부딪히는 자기 직접 당면한 자기 현실입니다. 현재 자기 몸이 가 있는 거기가 바로 동산입니다. 직접 부딪히는 현실. 여기 살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목적하신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사람이란 것을 목적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 세계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때 부터 사람을 상대했고, 그분의 이름을 여호와라 이름했습니다. 사람을 상대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목적이 그 뜻이 있어 지었는데 지어놓고 이 땅에 살게 하실 때 첫번째 동방에 살아라.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거기 살아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모실 수 있는 동방의 두번째 에덴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넓은 현실이 있습니다. 환경. 거기 있고 에덴에 세 번째는 바로 자기 몸이 현재 있는 거기가 동산입니다. 거기 살게 하신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놓고 거기 사는 사람에게 명령을 네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는 고 가운데거는 넘어갑니다. 중간에 보니까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했는데 거게 보니까 그 동산에는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나무도 있고 생명 나무도 있고 선악과도 있고. 또 사람에게 주신 동방의 에덴동산 거기서부터 강이 흘러 나왔습니다. 강이란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말씀하는데 그 은혜는 모든 생물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강이 바로 딴곳에 있지 아니하고 동방의 에덴동산 거기서 발행해서 동서남북 온 세계 남방으로 뻗쳐 내려가는 거기가 에덴동산인 것을 말씀을 하고,
그 다음 15절에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시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는데 그 동산은 굉장히 좋은 곳입니다. 사람을 거기 두시고 15절에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첫째 다스리며 하나님이 주신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두번째는 지키고 세번째는 각종나무의 실과를 임으로 먹되 네번째는 선악과는 절대 먹지말아라 네가지를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주신 성도의 처소. 하나님이 이 세상에 두신 성도에게 주신 성도의 처소는 동방의 에덴 동산 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곳,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 있는 곳,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리 하나님을 향해 갈수 있는 넓은 처소 자기의 환경, 전체, 형편, 그리고 직접 부딫이는 그 순간순간의 현실, 요개 동방의 에덴이고 우리 믿는 사람의 현실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할일은 네가지 입니다. 하나는 내가 있는 현실 동산을 다스리는 것이고, 두번째는 지키는 것이고, 세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죄되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먹고 마시고 입고 누리는 것이고 네번째는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는 절대 먹지 않는 하나님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네가지 명령입니다. 그러면
한 단계 돌아가서 성도의 현실, 하나님이 아담 하와에게 주신 동방의 에덴동산같은 오늘 우리의 현실. 청년들이 꼬박꼬박 좁니다. 저나이때는 신앙이 살아서 펄펄 날아야되는데 주일 대예배 시간에 꼬박 졸면 어떻게 할건가?
동방의 에덴 동산인데 그 동산은 우리의 현실인데 성도의 현실은 어떤 현실인가를 근본을 파고 들어가봐야되겠고 그게 어떤 역사가 있는지를 한번 찾아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성도의 현실은 근본이 어디냐?. 근본이 무엇이냐 근본, 나무가 있습니다. 봄이 되니깐 봄에 제일 먼저 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꽃이 무슨 꽃인가요? 봄의 ?? 것이 매화죠 매화, 매실나무 꽃, 매화 매화가 핍니다. 봄이 되니까 꽃 몽우리가 생기더니 매화 활짜 펴서 아주 보기 좋습니다. 좀 있으니깐 또 목련도 피고 벗꽃도 활짝핍니다 벗꽃이 활짝피어서, 벗꽃 구경 많이 다니겠지요? 화려하게 활짝 피어 있습니다. 벗꽃은 가지 제일 끝에 꽃이 핍니다. 꽃이 지고 나면 잎사귀가 나지요 벗꽃을 달고 있는 아주 작은 아주 잇쑤시게만한 그런 가지들이 있습니다. 잔가지라 그럽니다. 그 가지를 많이 손가락처럼 달고 있는 또 잔가지 보다 조금 더 굵은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지 밑으로 내려오면 더 굵은 가지가 있습니다.거기서 내려오면 대목가지가 있습니다.나무 굵은 사람들의 팔뚝만한 가지들이 또 있습니다. 그 가지 밑으로 내려오면 뭐가 있습니까? 나무 둥치가 있고 , 그둥치가 끝입니까? 그 둥치 밑에 내려가면 나무의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는 직근이라 그래서 나무를 잡아주는 아주 나무 큰 가지만한 뿌리가 콱 땅으로 박아서 그 직근이 땅에 박혀서 나무를 튼튼히 잡아주고 그 뿌리에는 세근이라 해서 잔뿌리들이 많이 나 있습니다. 뿌리도 보면 굵은 뿌리, 중간 뿌리, 가는 뿌리가 있어서 끝에 보면 나무에 잔가지가 새파랗게 많이 나 있는 것 처럼 나무 뿌리도 내려가 보면은 굵은 뿌리, 중간 부리, 잔 뿌리, 끝에 보면 세근 같은 뿌리들이 많이 뻗어 있고, 전부 나무에서 온도나 습도나 영양분을 빨아 당겨서 더 굵은 뿌리고 주고 대복가지로 잔가지고 잔가지로 잎사귀로 끝으로 뻩어 나가는 이것이 나무의 모습입니다. 제일 위에 있는 꽃이란 것은 어디까지 뻗어 있느냐?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만 보는데, 그 꽃이 피기 까지는 꽃을 달고 있는 잔 가지가 살아야 되고, 역사해야 되고, 그 잔가지를 붙들기 위해서는 중간 가지가 단단히 서 있어야 되고, 그 중간 가지가 잔 가지와 꽃과 잎사귀 열매를 붙들기 위해서는 중간 가지가 단단히 있어야 되고, 그 중간 가지는 대목가지에 붙어 있어야 되고, 그 대목가지는 한쪽 팔뚝만한 대목 가지에 많은 가지들이 붙어 있으니까 나무 둥치에 단단하게 붙어 있어야 되고 둥치에서 올라오는 영양분을 먹어야 되고, 그 둥치는 수 많은 가지들 잎사귀들 꽃들 열매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둥치는 뿌리에서 부터 올라오는 영양분들을 먹어야 되고, 그 뿌리 밑으로 나가면 세근이라는 수많은 뿌리들이 영양분을 부지런히 빨아 땡겨서 그 나무를 먹여 살리는 이런 과정들, 이런 모습이 있는 것 처럼. 그러기 때문에 나무 뿌리에 있는 세근들 가는 뿌리를 다 잘라 버리면 둥치가 아무리 튼튼해도 그 나무는 죽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무 둥치가 아무리 집채만큼 굵고 사람 몇 아름 만큼 굵어도 뿌리를 잘라 버리면 죽고, 뿌리가 썩어버리면 나무는 죽습니다. 죽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얼마 안가서 말라버리고 마는겁니다. 근본이라는 겁니다. 근본의 근자가 뿌리 근자입니다. 현실에 근본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성도의 현실에 근본을 찾아 들어가면 어디가 나오느냐? 성도의 현실의 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이 성도의 현실의 근본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내가 당면한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이 예배 드리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우리 현실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보면 자존하신 하나님이 밑에 버티고 계신다는 겁니다.
내가 당면한 좋은 현실, 기쁘고 감사가 절로 나오고 찬송이 넘쳐나는 그런 좋은 현실이 내 앞에 닥쳤습니다. 세상 안믿는 사람들 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농사는 풍년이고 먹을 것 많고 달은 밝고 날은 좋고 밥맛도 좋고 참 좋으니까 더도말고 덜도 말고 지금과 같아라. 그런 현실을 만났습니다. 마음 속에는 감사가 넘치고 입에서는 찬송이 나오고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웃음 꽃이 절로 피고 다 좋아합니다. 그 현실 뿌리로 내려가보면 자존하신 하나님이 그 현실의 근본에 버티고 앉아 계십니다. 세상에 두번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현실을 만났습니다. 꿈에 볼까 겁난다. 지긋지긋하다. 어서 빨리 떠나버리고 싶고 떨쳐버리고 싶은. 몸이 아프던지, 경제가 쫄딱 망하던지, 사람이 속을 썩여서든지 어쨌든지 괴롭고 괴로운 현실을 만나서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도망가고 싶은 현실을 만났습니다. 그 현실도 파고 들어가보면 잦존하신 하나님이 버티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믿는 사람이고, 이걸 안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니고 이걸 모르는 신앙은 무식한 신앙이고, 그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현실과 하나님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나무 뿌리와 꽃봉오리가 연결되어 있듯이 끊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기 근본으로 버티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그 현실을 주시는 목적이 뭐냐?
현실의 목적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 같은자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우리의 구원입니다. 나를 하나님 같은 온전한 사람 거룩한 사람 깨끗한 사람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목적이 현실의 목적입니다. 내게 어떤 종류의 현실을 주시든지 주시는 목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적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어떠한가? 역사는 좀 일부러 갈라서 현실을 주시는 목적, 현실의 근본은 하나님, 현실의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 그 현실은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라는 것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내 현실 속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이 계시고 그 위에서 올라온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이 있고 그 목적 위에 올라와 보면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라는 단계가 있고 그 예정 위에 올라가 보니까 예정대로의 필요한 모든 존재를 지으신 창조라는 것이 그 속에 위에 올라와 있고 그 위로 올라와 보니까 창조된 것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보존해 두시는 보존이 있고 그 위에 보니까 관리하고 섭리하시는 관리 섭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역사라는 겁니다. 역사.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면 현실은 줄여서 어떤 것인가? 첫째.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두번째. 예정대로의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예정대로 주권 섭리하신 그 섭리의 역사의 결과가 바로 내 앞에 다치는 우리 각자의 현실입니다. 겨우내 땅속에 묻혀 있던 나무 뿌리가 봄이 되니까 땅 속에 따뜻한 온도 습도 영양분을 다 빨아 먹고 부지런히 빨아서 올려서 고 위에 뿌리로 올려 보내고 뿌리는 둥치로, 둥치는 부지런히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들로 보내고, 가지는 중간 가지로, 중간 가지는 잔가지로 또 보내니까 그 잔가지가 밑에서 올라온 모든 것을 끝에서 꽃 봉오리가 맺더니 꽃이 활짝 피고. 꽃이 피니까 벌들이 날아와서 할일하고 나니까 열매가 맺어지고. 그 모든 것이 전부 밑에서 부터 올라와 되는 것 처럼. 자존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하나님이 정하신 그 목적은 우리들을 날이 가면 갈 수록 날이 갈 수록 주님 앞에 갈 수록 점점 지금 보다 도덕적으로, 지식적으로, 능력적으로 온전한 우리를 만드시려는 그 목적, 그 목적을 위해서 전지의 지혜로 절대 예정하신 예정의 순서를 따라 지으신 모든 창조물들 하나하나를 직접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바 하듯이 우리들의 머리털 희고 껌어지는 것 처럼 그렇게 관리하시고 섭리하셔서 때를 따라서 내 앞에 현실을 주시는데 때로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현실도 만들어 주시고 때로는 내가 견딜 수 없는 현실도 만들어 주시는데 그 모든 현실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 보니까 이런 과정들이 있다. 그러므로 내게 당면한 현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예정대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주권 섭리하시는 결과물을 바로 내 앞에 보여지는 것이다. 나무에 활짝 핀 꽃은 뿌리가 부지런히 땅 속에 영양분을 빨아 먹어서 올려보낸 결과물인 것 처럼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바로 목적을 위해 역사하셔서 내 앞에 필요에 따라서 주신 역사의 결과물이다 이걸 믿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기독교 신앙에 많은 신앙이 있는데 직접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 생활에 가장 큰 믿음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현실 관이란 것은 평생을 두고 기억하고 써 먹어야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섯번째,
다섯번째 기억하십니까 학생들? 적어 놨으니까 알지마는 기억을 해야 됩니다. 현실의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는 그 현실이라는 내 앞에 펼쳐진 환경, 내게 부딪히는 직접 부딪히는 그 환경과 연결된 동산이라는 고 환경 현실과 에덴이라는 그 현실 그 이면에 있는 동방이란 이것을 기억을 해서 현실의 근본과 목적과 역사를 기억을 하고. 머리속에 담아 놓고 기억을 하십시다. 현실의 근본이 누구라고요? 자존하신 하나님입니다.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목적 나를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 만드시기 위해서 학교에 가니까 시험을 칩니다. 시험을 외쳐 머리 아프게 점수 낮으면 챙피 당하는데 안치면 안되는가. 시험을 쳐야 너의 실력을 알아서 지금보다 더 실력있는 너를 만들기 위해서 시험을 치는 것이다. 요즘 학교에 도덕시간 있습니까? 도덕시간에 보니까, 있어요? 바른 생활은? 있을 것 같은데. 도덕시간 바른 생활 시간에 보니까 인사하는 연습을 합니다. 어른들 한테 존댓말 쓰는 연습부터 합니다. 아 귀찮게 그것을 왜해? 아무렇게나 살면 되지. 너를 지금보다 좀 더 온전한 사람 반듯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게 주시는 현실은 예를 들자면 이거 아닌 현실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현실을 만날 지라도 성도가 깨닫고 나면 원망은 없는 것이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째 기억하십시다. 현실의 근본과 목적. 그 목적을 위해 역사하시는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두번째는 하나님이 창세기 2장에 말씀하신 대로 현실의 주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현실의 주인이 되어서 세 번째는 그 현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으로 우리는 현실에 주인으로 사는 우리가 되야 되겠습니다. 같이한 번 해보실까요?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현실이 뭐냐? 현실은 현재 자기가 처해진 바로 환경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학생이라는 신분의 현실, 가정주부라는 신분의 현실, 교사라는 신분의 현실, 가장이라는 신분의 현실, 직장이라는 신분의 현실, 어머니라는 신분의 현실 자기 처한 입장 고게 현실의 좀 넓은 범위의 현실의 하나고 직접 부딪히는 현실은 그런 자기 처해진 그 형편 입장에서 자기가 순간순간 걸어가는 두 발 걸음이 발이 땅을 딪고 걸어가듯이 믿는 사람이 자기 신분에서 현실을 살아가면 매일매일 순간순간 부딪히는 사건들 사람들 환경들이 만나지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의 동산이고 직접 부딪히는 우리의 현실이고, 그 현실은 근본이 뭐냐 그 현실은 하나님을 바로 만나는 장소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장소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환경들 바로 동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현실에 대해서 주인으로 사는 우리가 되야 됩니다. 현실의 주인. 현실의 주인이라 말은 첫째 현실에게 피동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현실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욕을 합니다.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욕을 해? 같이 욕을 해버립니다. 원동에 피동 이건 범죄하는 겁니다. 피동하는 것은 현실에 피동되는 겁니다. 길을 지나가니까 안믿는 사람이 담배 연기를 휘익 내뿜습니다. 참 나쁜 짓이지요. 자기 중심의 사람들. 안믿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욕을 합니다. 그 욕하는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어떨런지. 입을 좀 쥐어 박으면 좋겠는데 너것들은 길거리에서 담배연기 마음 껏 내뿜고 술 그냥 제가 좀 심하게 표현 못하겠습니다마는 한자 빼고 먹고 횡설수설하고 노상방뇨하고 비틀비틀 거리면서 꼴불견 하는 짓 전부 안믿는 사람들 아니냐 예수 믿는 사람도 술 먹던데? 예수 믿는 사람도 담배 피던데? 그 사람들은 바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정상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정상으로 바로 믿는 사람은 술 안먹습니다. 담배 안핍니다. 그런데 담배 연기를 막 뿜고 다닙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짜증을 내고 인상을 찌푸리고 간다면 그것도 현실에 피동될 수 있습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은 설교니까 그렇겠지마는. 현실에 피동이라 그 말은 내가 당면한 그 상황, 사람에게 대해서 사람이 내게 하는 말에 대해서 들리는 소문에 대해서 부딪히는 환경에 대해서 어려우니까 어려워서 원망 불평 짜증 낙망 낙심 힘드니까 한숨 탄식 괴로우니까 낙심 절망 기쁘니까 좋아서 세상 다 차지한 것 처럼 어쩔 줄 모르는 이런 모든 것들이 전부 현실에 피동이 되는 건데 우리는 현실의 주인이라 그 말은 주인이니까 내가 주인이니까 할 일은 첫째 현실에 피동되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에 영향받지 않는 것입니다. 왜라는 의문은 가지되, 왜 욕을 하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되지? 의문은 가져야 됩니다. 자기를 돌아봐야 되니까. 그러나 거기 피동되면 안됩니다.
두번째는 현실을 내가 주인이 되서 다스리는 겁니다. 지배를 하는 겁니다. 내가 능동으로 그 현실을 끌고 가는겁니다. 오른 뺨을 때리니까 왜 뺨을 때려 하는 것이 아니고 오른 뺨을 때리는 거 보니까 아마 화가 났는 가보다 분풀이 할 곳이 필요한가보다 나한테 잘못한 게 있는가보다 그러면 좀더 분풀이 할 수 있도록 왼뺨도 돌려 대주고 속옷을 가지고 가면 추운가보다 그러면 겉옷까지 내줘버리고 현실을 내가 주인이 되서 거기 피동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주인이 되서 그 현실을 지배하는 겁니다. 사람 현실이든지, 사건 현실이든지, 물질 현실이든지, 좋던 나쁘던 내가 그 현실을 지배하는 겁니다. 그게 주인 노릇입니다. 첫째 피동되지 않는거. 내가 지배하는거 다스리는 겁니다. 내가 주인이고 왕이고 내가 능동입니다. 피동되면은 종이 되는 겁니다. 영향 받는 겁니다. 아담하와는 현실에 피동됬기 때문에 뱀에게 넘어갔고 선악과 따먹고 말았습니다. 현실에 피동되면 안됩니다. 그러면 현실에 주인노릇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원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그 현실을 상대 하는겁니다.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내 능동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현실을 상대하는 겁니다. 참아라 그러면 참고, 견뎌라면 참고, 꾸중하라면 꾸중하고, 화를 내라그러면 화를 내고, 손해 봐라 하면 손해보고, 손해보지 말라 그러면 손해보지 말고. 싸우라 그러면 싸우고. 말씀대로 현실을 사람상대도 사건처리도 물질 상대도 말씀으로 상대하는 것이 현실을 주인으로 다스리는 생활이 되는겁니다.
오늘 크게 말해서 네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성도의 세상생활. 현실 생활입니다. 두번째 동방의 에덴동산. 본문에서 세번째. 성도의 현실. 네 번째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하나하나 중간가지 잔가지를 생각하면서 우리 현실 생활을 한 번 더 돌아보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깊이 따져봐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기독자들의 평생을 두고 변치 않는 말씀이며 평생을 두고 써먹어야 되는 불변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깊이 좀 생각해 보십시다.
제목: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1. 성도의 세상 생활
1)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①사후 세계, 부활의 세계를 믿는 도
②내세 부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
③세상 축복은 표적이며 씨와 양식
④세상 성공만 목표하면 신앙은 실패
2)성도의 세상 생활
①세상은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
②세상의 모든 것은 실물교재, 이용물
③성도의 세상 생활은 영원의 연습이며 훈련
2. 동방의 에덴동산(본문)
1)처소
①동방: 동쪽, 해 뜨는 곳, 하나님 향한(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 닮아가는)
②에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곳, 환경(넓은 범위의)
③동산: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는 형편(직접 부딪히는)
2)명령
①다스리고: 현실의 주인/ 하나님께 피동으로 현실을 지배
②지키고: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것은 들어오지 못하게 파수
③임의로 먹고: 허락하신 실과, 허락하신 세상
④선악과는 먹지 말고: 절대 엄금할 것,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엄금
3. 성도의 현실
1)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 모든 존재의 근본
2)목적은: 하나님의 형상, 우리 구원 (하나님 같은 사람 만드시려는)
3)역사는: (목적 위한 역사, 목적 위한 하나님의 모든 역사)
①예정-절대 예정
②창조-예정대로의 창조
③보존-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보존
④관리 섭리-하나님이 직접 관리하시며 운영의 섭리
4)현실은:
①목적을 위한-하나님의 목적 우리 구원을 위한
②예정대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예정대로 주권 섭리의 결과물
5)할일은:
①현실의 근본, 목적, 역사를 기억
②현실의 주인이 되어
③현실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생활
4.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1)현실
①자기가 처해진 환경(넓은 범위)-에덴
②자기가 직접 부딪히는 형편-동산
③하나님 만나는 장소-동방
2)현실의 주인
①현실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
②현실을 다스리는 것
③하나님을 모시고, 말씀으로 상대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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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지난 주일에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고, 우리 기독자들의 생활은 부활 소망의 생활이 우리 생활인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알고나면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아주 상속에 속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교 신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죽음 너머 사후 세계 부활세계를 소망하고 믿고 바라보는 것이 기독교고 그게 신앙 생활입니다.
이 땅에서 살록 있지마는 우리의 목ㅎ표는 우리 소망은 죽음 너머에 있고, 죽음 너머에 있는 하늘나라 천국 영주처가 우리가 돌아갈 본향이며, 우리들이 가서 살 영원한 우리의 진짜 우리의 나라가 바로 그 나라라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잊지 않고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사후 세계 부활세계, 내세를 믿는 것이 기독교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마땅히 내세 부활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지향이란 말은 향해서 나아간다는 그 뜻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신앙생활이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서 잘 살거나 또 세상에서 사람들이 인정하고 모두 다 존경하는 그런 도덕적인 인격자 사람의 존경을 받고 사람들이 모두 다 좋아하는 그런 인격자가 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겁니다. 신앙은 나라로 말하면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는 것이 신앙이고
그래서 그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신앙이고 우리 자세로 말하면 하나님을 우리의 목표로 삼고 하나님과 같은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나라가 어떤 나라인 것을 정확하게는 몰라도 성경에 기록한 대로는 적어도 알아야 됩니다. 그 나라는 무한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나라다. 그 나라는 가장 고차원의 나라며 그 나라는 변동없는 불변의 영원의 세계라는 이런 상식 정도는 우리가 알고, 우리들이 바라보는 그 하늘나라 천국과 현재 세상에 있는 모든 천하 60억 70억의 인구와 역사세계의 6천년 역사에 왔다간 모든 인생들이 모두 다 소망하고 건설하고 이루고자 했던 세상의 소이 말하는 이상향이라고 불리는 세상의 좋은 지상 낙원들, 그런 건설되어 있는 것이 있으면 그런 것들과 과거에 건설 되었다가 없어진 것이 있으면 그런 나라나 지역이나 그런 환경이나 그런 세계를 우리들은 참고로 한 번씩 들리는 대로 보여지는 대로 찾아서 그런 것들과 그런 곳들과 우리들이 바라보는 우리의 영주처 하늘나라를 비교해 보고, 그래서 과연 우리 믿는 사람이 깨닫고 나면 평생을 바쳐 믿고 준비하고 소망하는 것이 하늘나라 천국인데 내가 가서 영원히 살 그래서 내 전부를 다 바쳐 준비하는 그 나라가 과연 그리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 하는가를 우리는 늘 비교해보고 평가로 따져봐야 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대학을 간다면 실력 없는 학생들은 가고 싶어도 실력이 안되니까 갈 수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러나 실력있는 학생들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야 되는 곳을 선택을 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그 학교가 과연 내가 바라는 학교가 맞는지를 세밀하게 조사하고 따져봅니다. 그래서 대학교 갈 학생들이 많고 입시경쟁이 치열해도 학교마다 실력있는 학생들은 돈을 줘 가면서 모시고 가려고 노력을 하니까 아무리 오라고 그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고 내가 목적하는 바와 다르면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겁니다. 이사를 가더라도, 내가 가서 살 그 지역이 어떤 곳인지를 알아보고 가는 것이 순리고, 내가 가서 살 집이 어떤 집인지 살펴 보고 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돈은 많고 그래서 땅은 좀 사놓고 싶은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땅을 사면은 산을 사고 논밭을 사는데 그 사람들은 그냥 드물게 그런 사람들이 있답니다. 말만 듣고 계약을 해 버립니다. 가 보지도 않고. 그래 가지고 속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땅을 나서 보니까 맹지더라. 맹지란 말은 길이 없는 땅이라 그 뜻인데 그거는 죽은 땅이라서 가치가 아주 없는 땅인데 사버립니다. 가 보지도 안하고. 돈이 많으니까 그럴 수 있겠습니다. 자기가 들어가서 살 집이면 가 봐야 됩니다. 가서 집의 방향도 보고 구조도 보고 여러 가지를 살펴 보는 것이 당연한겁니다. 동네도 살펴보고. 우리들이 가서 살 하늘나라는 가 볼 수는 없는 나랍니다. 그러나 일단 가면은 영원히 살아야 되는 영주처기 때문에 가 볼 수는 없으나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해서 그 나라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까 말씀을 통해서 어느정도 알고, 과연 내 평생을 바치고 내 전부를 다 바쳐서 소망을 하고 준비해서 갈만한 나라인지를 따져보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그래서 가치를 깨닫고 나면 신앙이란 것은 그 나라를 바라보고 거기 다 투자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잘 믿어서 맏는 이 세상 복이라는 것은 세 가지다 그랬습니다. 두개를 더 붙여서 예수를 잘 믿어서 세상에서 복을 받으면 그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이다. 눈에 보이는 복을 받아봄으로 믿음으로 살아서 보이는 복을 받음으로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주시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천국이 과연 실제 있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사실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이것을 보이는 것을 받아 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고 표적으로 주신 것이고, 믿음이 있음에도 계속 세상 복을 주시는 것은 그거는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심는 씨로 주신 것이고, 거기 필요한 자기 먹을 양식으로 주시는 그게 전부라. 그래서 표적이거나 씨와 양식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 가진 세상의 전부고 받는 축복의 전부라는 것을, 이거는 변동없는 진리니까 확실히 붙들어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해서 처음 부터 예수 믿는 목적이 목표가 죽음 너머를 바라보지 아니하고 죽음 이편에 살아 생전 잘 살고 잘 입고 편안하게 행복하게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면서 그래 사는 것을 목표하고 예수를 믿고 있다면 그 사람은 방향을 잘 못 잡은 것이고 목표가 틀린겁니다.
많은 사람이 그래 믿는 사람도 있고 어떤 경우는 예수를 잘 믿어서 복을 첨에는 천국을 바라보고 믿었는데 천국 바라보고 잘 믿으니까 하나님이 더욱 힘을 내라고 세상에 복을 주시니까 가난하던 사람이 경제가 넉넉하고 이런말 하면 많은 분들이 속으로 의아심을 가지거나 더 심하면 웃거나 그렇습니다. 나는 믿어도 복은 커녕 항상 그대로더라. 십년 믿어도 달셋방 벗어나지 못하고 경제에 허덕이는 것은 변함이 없더라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마는 백의 99.9정도는 잘 못믿어서 그런겁니다. 찾아보면 그리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성경에 나사로도 있으니까 그런데 거의 대부분 보면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 여기 가난한 분들이 많으실건데 대단히 죄송하지마는 가난하게 사는 분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원인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백목사님은 과거에 나환자촌 나환자를 좀 심하게 표현하면 문둥이라 그럽니다. 문둥이. 지금은 나환자 약이 좋아서 별로 없고 양성 가진 사람이 거의 없는데 옛날에 저 어릴 때만 해도 문둥이라 하면 귀신 상대하듯이 그래 상대하고 문둥이는 사람을 잡아 먹는다 그래서 문촌이라 해서 문둥이만 사는 촌이 따로 있었고, 거기는 겁이 나서 낮에도 사람들 발길이 못가는 데가 문둥이가 사는 곳입니다. 살이 썩어서 고름이 나고 일그러지고 쳐다만 봐도 그냥 겁이 나서 못볼 만큼 얼굴 손발이 다 일그러져 있습니다. 많이 봤습니다. 어릴 때. 근데 거기 백목사님은 그 나환자들 문둥이들과 함께 지내고 같이 밥도 먹고 부흥회를 많이 하고 상대를 많이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처럼 그렇게 하셨는데 거기 전문으로 하지는 않으셨지마는. 그런데 그분이 나환자들을 많이 접촉을 하면서 느낀 바가 뭐냐? 이분들은 거의 대부분 다는 아닙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마는 거의 대개는 이분들은 문둥이가 안되면 안되겠구나. 나환자가 안되면 안되는 요소들을 거의 대부분 하나씩 다 가지고 있더라는 것이 간증입니다. 상대해본 결과에. 사람이 가난하게 되는 것은 가난한 이유가 있는겁니다. 병이 드는 것은 병드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고나는 것은 사고나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가 불화가 생기면 붏화 생기는 원인이 반드시 있는데 한쪽에만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양쪽에 다 있습니다. 이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살펴봐야 됩니다. 나는 잘못 없다 완전잡니까? 하나님입니까? 완전자 아닙니다. 나한테도 원인을 찾아봐야 됩니다. 어느정도 사실인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하는 지는 모르겠지마는 어떤 선생님 결혼했는데 그분은 부부싸움을 할 때 남편이 목소리가 올라가고 큰소리를 치면은 일단 아내가 무릎을 꿇고 본답니다. 무릎을 꿇고 화풀어 놓고 그다음에 대화하니까 싸울일이 별로 없다 그러지요 대단히 지혜로운 일입니다. 사람이 내가 아무리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아도 그거는 자기 주관이고 자기 생각입니다. 들어가보면 자기가 모르는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고 사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으면 거의 대게는 경제복을 받거나 그 사람의 인격복을 받거나 자녀복을 받거나 가정의 화목의 복을 받거나 복을 받는 것이 성경입니다. 거의 대게 다 그러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예수 믿을 때는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믿었고 믿으니까 세상에서 복을 받았고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니까 세상에서 복 받는 걸 보고 베드로처럼 천국이 있음을 깨닫고 천국의 전부다 바치는 거기로 한단계 더 올라가야 되는데 거의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이 세상복을 받고나면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립니다. 그 세상복을 자기 전부로 삼아서 거기서 중단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1단계는 성공했으나 2단계에서는 실패가 되고 마는 겁니다. 이게 신앙 실팹니다. 성공이 아닙니다. 성경에 롯이 그랬고, 사울왕이 그랬고. 그런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되겠습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돕니다. 내세를 지향하는 돕니다. 신앙은 그러기 때문에 내세를 향해서 나아가는게 신앙이고 이 세상 축복은 표적이거나 씨와 양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세상 성공만 목표하고 신앙생활하면 신앙은 실패가 되는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의 세상생활이 뭐냐? 예수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무엇인가?
모두가 다 아는 상식으로 이 세상은 하나의 지나가는 과정이며 흔적입니다. 세상은 지나가는 과정. 나그네 세상입니다. 과정입니다. 흔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지나갑니다. 워낙 젊은 사람들에게는 세월이 더디게 가니까 어린 아이들은 나도 빨리 커서 어른이 되면 좋겠다. 어른이 되고 나면 그 때 부터는 세월이 너무 빨리가서 좀 더디갔으면 좋겠다. 세월이 지나가는 흐름은 속도는 꼭 같은데 자기 자신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는 겁니다. 어쨌든 이 세상 인생은 지나가는 과정이며 이 모든 것은 영원한 흔적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성도에게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성도의 모든 것은 실물 교제고 이용물입니다. 죽음 너머 사후 세계 내세 부활 세계를 마련하고 준비하는 연습하는 거기 필요해서 하나님이 주신 교재들입니다. 군대가면 군인들이 훈련 받는데 훈련 받는 것은 전쟁터에서 유사시에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한 훈련, 적군을 물리치기 위한 훈련을 받는데 그 훈련에는 장애물도 필요하고, 총도 필요하고, 대포도 필요하고, 산도 필요하고, 나무도 필요하고, 많은 훈련에 필요한 도구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은 도구들이고 교재들입니다. 그거는 자기것이 아닙니다. 군대가서 쓰는 모든 것들은 도구들 교재들이고 학교가서 학생들이 학교에 가면 학교 운동장도 있고, 교실도, 책걸상도, 교과서도, 필기도구도, 칠판도 있고 많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다 학습 도구들 실물 교재들이고 내가 지식을 습득하는데 유용한 이용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세상에 모든 것은 하늘도, 땅도, 바다도, 그 속에 있는 자연의 모든 것들도 인공의 모든 것들도 내가 마련하고 있는 모든것, 내 학교 모든 생활들 지식들 가정들 직장들 사업들 그 모든 전부다는 영원한 영 주처 천국을 연습하고 준비하고 마련하고 필요한 교재들이고 이용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도의 세상생활은 그러기 때문에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연습이며 훈련받는것이 성도의 세상 생활입니다. 학생들 적고 있나요? 요약지 기록하고 있습니까 휴대폰 만지는 사람이 보이는 것같은데. 예배시간에. 예배시간에 휴대폰 만지는 것은 신앙에 따라 다르지만 죕니다. 범성죄. 도둑질 하는것 만큼 큰 죄입니다. 하면 안됩니다.
성도의 세상생활은 세가지 입니다. 첫째 상식으로 세상은 과정이며 영원의 흔적입니다. 두번째 성도에게 세상에 있는 모든것들은 실물 교재며 이용물이다. 세번째 성도의 세상생활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연습하는 훈련하는 생활이다. 요래 기억하십시다. 여기까지 기억하면서 성도의 세상 생활 이라는 큰 대지에서 두 가지 중간 가지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성도의 세상 생활이라는 두 가지 기억하고 거기서 첫번째
4가지 두번째 3가지를 기억하시면서 큰 두 번째로 넘어갑니다.
본문에 보니까 성경 보시겠습니다. 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은 사람을 상대하시는 하나님이라 그 뜻입니다. 하나님인데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하는 하나님을 여호와 님이라 그럽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어디에요? 어디의 어디에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다음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다. 거기가 어딥니까? 하나님이 창설하신 동방의 에덴 동산 하나님이 사람을 지어서 그냥 알아서 살아라고 방임해서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꼭 찍어서 여기 살아라 어디 삽니까? 첫째 동방. 두번째 에덴. 세번째 동산입니다. 세 가지로 기억하십시다.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첫째 동방입니다. 동방이란 쉽게 말하면 동쪽이라 그 뜻입니다. 동쪽입니다. 동쪽은 뭐하는 곳입니까? 대표적으로 동쪽은 해가 뜨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그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을 향하여 동방이란 뜻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런 의미로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을 향하는 동방. 에덴이라 말은 넓은 우리의 형편입니다. 넓은 고 현재 자기 처해진 형편. 학생이라면 학생이 에덴입니다. 회사다니면 회사생활이 에덴입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주부가 에덴입니다. 사장님이면 사장이 에덴입니다. 직장인 이라면 직장이 에덴입니다. 예를 들면.
그 다음 동산에 바로 자기가 부딪히는 자기 직접 당면한 자기 현실입니다. 현재 자기 몸이 가 있는 거기가 바로 동산입니다. 직접 부딪히는 현실. 여기 살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목적하신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사람이란 것을 목적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 세계 자존하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때 부터 사람을 상대했고, 그분의 이름을 여호와라 이름했습니다. 사람을 상대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하나님의 목적이 그 뜻이 있어 지었는데 지어놓고 이 땅에 살게 하실 때 첫번째 동방에 살아라.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거기 살아라.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모실 수 있는 동방의 두번째 에덴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넓은 현실이 있습니다. 환경. 거기 있고 에덴에 세 번째는 바로 자기 몸이 현재 있는 거기가 동산입니다. 거기 살게 하신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놓고 거기 사는 사람에게 명령을 네 가지를 했습니다. 첫째는 고 가운데거는 넘어갑니다. 중간에 보니까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했는데 거게 보니까 그 동산에는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나무도 있고 생명 나무도 있고 선악과도 있고. 또 사람에게 주신 동방의 에덴동산 거기서부터 강이 흘러 나왔습니다. 강이란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말씀하는데 그 은혜는 모든 생물을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강이 바로 딴곳에 있지 아니하고 동방의 에덴동산 거기서 발행해서 동서남북 온 세계 남방으로 뻗쳐 내려가는 거기가 에덴동산인 것을 말씀을 하고,
그 다음 15절에 보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시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는데 그 동산은 굉장히 좋은 곳입니다. 사람을 거기 두시고 15절에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첫째 다스리며 하나님이 주신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두번째는 지키고 세번째는 각종나무의 실과를 임으로 먹되 네번째는 선악과는 절대 먹지말아라 네가지를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도에게 주신 성도의 처소. 하나님이 이 세상에 두신 성도에게 주신 성도의 처소는 동방의 에덴 동산 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곳,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 있는 곳,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리 하나님을 향해 갈수 있는 넓은 처소 자기의 환경, 전체, 형편, 그리고 직접 부딫이는 그 순간순간의 현실, 요개 동방의 에덴이고 우리 믿는 사람의 현실입니다. 거기서 우리가 할일은 네가지 입니다. 하나는 내가 있는 현실 동산을 다스리는 것이고, 두번째는 지키는 것이고, 세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죄되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먹고 마시고 입고 누리는 것이고 네번째는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는 절대 먹지 않는 하나님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어떤 경우도 하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네가지 명령입니다. 그러면
한 단계 돌아가서 성도의 현실, 하나님이 아담 하와에게 주신 동방의 에덴동산같은 오늘 우리의 현실. 청년들이 꼬박꼬박 좁니다. 저나이때는 신앙이 살아서 펄펄 날아야되는데 주일 대예배 시간에 꼬박 졸면 어떻게 할건가?
동방의 에덴 동산인데 그 동산은 우리의 현실인데 성도의 현실은 어떤 현실인가를 근본을 파고 들어가봐야되겠고 그게 어떤 역사가 있는지를 한번 찾아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성도의 현실은 근본이 어디냐?. 근본이 무엇이냐 근본, 나무가 있습니다. 봄이 되니깐 봄에 제일 먼저 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꽃이 무슨 꽃인가요? 봄의 ?? 것이 매화죠 매화, 매실나무 꽃, 매화 매화가 핍니다. 봄이 되니까 꽃 몽우리가 생기더니 매화 활짜 펴서 아주 보기 좋습니다. 좀 있으니깐 또 목련도 피고 벗꽃도 활짝핍니다 벗꽃이 활짝피어서, 벗꽃 구경 많이 다니겠지요? 화려하게 활짝 피어 있습니다. 벗꽃은 가지 제일 끝에 꽃이 핍니다. 꽃이 지고 나면 잎사귀가 나지요 벗꽃을 달고 있는 아주 작은 아주 잇쑤시게만한 그런 가지들이 있습니다. 잔가지라 그럽니다. 그 가지를 많이 손가락처럼 달고 있는 또 잔가지 보다 조금 더 굵은 가지가 있습니다. 그 가지 밑으로 내려오면 더 굵은 가지가 있습니다.거기서 내려오면 대목가지가 있습니다.나무 굵은 사람들의 팔뚝만한 가지들이 또 있습니다. 그 가지 밑으로 내려오면 뭐가 있습니까? 나무 둥치가 있고 , 그둥치가 끝입니까? 그 둥치 밑에 내려가면 나무의 뿌리가 있습니다. 뿌리는 직근이라 그래서 나무를 잡아주는 아주 나무 큰 가지만한 뿌리가 콱 땅으로 박아서 그 직근이 땅에 박혀서 나무를 튼튼히 잡아주고 그 뿌리에는 세근이라 해서 잔뿌리들이 많이 나 있습니다. 뿌리도 보면 굵은 뿌리, 중간 뿌리, 가는 뿌리가 있어서 끝에 보면 나무에 잔가지가 새파랗게 많이 나 있는 것 처럼 나무 뿌리도 내려가 보면은 굵은 뿌리, 중간 부리, 잔 뿌리, 끝에 보면 세근 같은 뿌리들이 많이 뻗어 있고, 전부 나무에서 온도나 습도나 영양분을 빨아 당겨서 더 굵은 뿌리고 주고 대복가지로 잔가지고 잔가지로 잎사귀로 끝으로 뻩어 나가는 이것이 나무의 모습입니다. 제일 위에 있는 꽃이란 것은 어디까지 뻗어 있느냐? 사람들은 아름다운 꽃만 보는데, 그 꽃이 피기 까지는 꽃을 달고 있는 잔 가지가 살아야 되고, 역사해야 되고, 그 잔가지를 붙들기 위해서는 중간 가지가 단단히 서 있어야 되고, 그 중간 가지가 잔 가지와 꽃과 잎사귀 열매를 붙들기 위해서는 중간 가지가 단단히 있어야 되고, 그 중간 가지는 대목가지에 붙어 있어야 되고, 그 대목가지는 한쪽 팔뚝만한 대목 가지에 많은 가지들이 붙어 있으니까 나무 둥치에 단단하게 붙어 있어야 되고 둥치에서 올라오는 영양분을 먹어야 되고, 그 둥치는 수 많은 가지들 잎사귀들 꽃들 열매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 둥치는 뿌리에서 부터 올라오는 영양분들을 먹어야 되고, 그 뿌리 밑으로 나가면 세근이라는 수많은 뿌리들이 영양분을 부지런히 빨아 땡겨서 그 나무를 먹여 살리는 이런 과정들, 이런 모습이 있는 것 처럼. 그러기 때문에 나무 뿌리에 있는 세근들 가는 뿌리를 다 잘라 버리면 둥치가 아무리 튼튼해도 그 나무는 죽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무 둥치가 아무리 집채만큼 굵고 사람 몇 아름 만큼 굵어도 뿌리를 잘라 버리면 죽고, 뿌리가 썩어버리면 나무는 죽습니다. 죽는데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얼마 안가서 말라버리고 마는겁니다. 근본이라는 겁니다. 근본의 근자가 뿌리 근자입니다. 현실에 근본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성도의 현실에 근본을 찾아 들어가면 어디가 나오느냐? 성도의 현실의 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이 성도의 현실의 근본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내가 당면한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이 예배 드리고 있는 바로 이 순간 우리 현실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보면 자존하신 하나님이 밑에 버티고 계신다는 겁니다.
내가 당면한 좋은 현실, 기쁘고 감사가 절로 나오고 찬송이 넘쳐나는 그런 좋은 현실이 내 앞에 닥쳤습니다. 세상 안믿는 사람들 말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농사는 풍년이고 먹을 것 많고 달은 밝고 날은 좋고 밥맛도 좋고 참 좋으니까 더도말고 덜도 말고 지금과 같아라. 그런 현실을 만났습니다. 마음 속에는 감사가 넘치고 입에서는 찬송이 나오고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웃음 꽃이 절로 피고 다 좋아합니다. 그 현실 뿌리로 내려가보면 자존하신 하나님이 그 현실의 근본에 버티고 앉아 계십니다. 세상에 두번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현실을 만났습니다. 꿈에 볼까 겁난다. 지긋지긋하다. 어서 빨리 떠나버리고 싶고 떨쳐버리고 싶은. 몸이 아프던지, 경제가 쫄딱 망하던지, 사람이 속을 썩여서든지 어쨌든지 괴롭고 괴로운 현실을 만나서 두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도망가고 싶은 현실을 만났습니다. 그 현실도 파고 들어가보면 잦존하신 하나님이 버티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믿는 사람이고, 이걸 안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니고 이걸 모르는 신앙은 무식한 신앙이고, 그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현실과 하나님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나무 뿌리와 꽃봉오리가 연결되어 있듯이 끊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기 근본으로 버티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그 현실을 주시는 목적이 뭐냐?
현실의 목적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 같은자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목적 우리의 구원입니다. 나를 하나님 같은 온전한 사람 거룩한 사람 깨끗한 사람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목적이 현실의 목적입니다. 내게 어떤 종류의 현실을 주시든지 주시는 목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 목적을 위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어떠한가? 역사는 좀 일부러 갈라서 현실을 주시는 목적, 현실의 근본은 하나님, 현실의 목적은 하나님의 목적, 그 현실은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라는 것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내 현실 속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이 계시고 그 위에서 올라온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이 있고 그 목적 위에 올라와 보면 하나님의 절대 예정이라는 단계가 있고 그 예정 위에 올라가 보니까 예정대로의 필요한 모든 존재를 지으신 창조라는 것이 그 속에 위에 올라와 있고 그 위로 올라와 보니까 창조된 것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보존해 두시는 보존이 있고 그 위에 보니까 관리하고 섭리하시는 관리 섭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역사라는 겁니다. 역사. 이것이 현실입니다.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면 현실은 줄여서 어떤 것인가? 첫째.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두번째. 예정대로의 창조하신 모든 것을 예정대로 주권 섭리하신 그 섭리의 역사의 결과가 바로 내 앞에 다치는 우리 각자의 현실입니다. 겨우내 땅속에 묻혀 있던 나무 뿌리가 봄이 되니까 땅 속에 따뜻한 온도 습도 영양분을 다 빨아 먹고 부지런히 빨아서 올려서 고 위에 뿌리로 올려 보내고 뿌리는 둥치로, 둥치는 부지런히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들로 보내고, 가지는 중간 가지로, 중간 가지는 잔가지로 또 보내니까 그 잔가지가 밑에서 올라온 모든 것을 끝에서 꽃 봉오리가 맺더니 꽃이 활짝 피고. 꽃이 피니까 벌들이 날아와서 할일하고 나니까 열매가 맺어지고. 그 모든 것이 전부 밑에서 부터 올라와 되는 것 처럼. 자존하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그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시고 하나님이 정하신 그 목적은 우리들을 날이 가면 갈 수록 날이 갈 수록 주님 앞에 갈 수록 점점 지금 보다 도덕적으로, 지식적으로, 능력적으로 온전한 우리를 만드시려는 그 목적, 그 목적을 위해서 전지의 지혜로 절대 예정하신 예정의 순서를 따라 지으신 모든 창조물들 하나하나를 직접 머리털 하나까지 세신바 하듯이 우리들의 머리털 희고 껌어지는 것 처럼 그렇게 관리하시고 섭리하셔서 때를 따라서 내 앞에 현실을 주시는데 때로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현실도 만들어 주시고 때로는 내가 견딜 수 없는 현실도 만들어 주시는데 그 모든 현실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 보니까 이런 과정들이 있다. 그러므로 내게 당면한 현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예정대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주권 섭리하시는 결과물을 바로 내 앞에 보여지는 것이다. 나무에 활짝 핀 꽃은 뿌리가 부지런히 땅 속에 영양분을 빨아 먹어서 올려보낸 결과물인 것 처럼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바로 목적을 위해 역사하셔서 내 앞에 필요에 따라서 주신 역사의 결과물이다 이걸 믿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기독교 신앙에 많은 신앙이 있는데 직접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 생활에 가장 큰 믿음은 바로 이 믿음입니다. 현실 관이란 것은 평생을 두고 기억하고 써 먹어야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섯번째,
다섯번째 기억하십니까 학생들? 적어 놨으니까 알지마는 기억을 해야 됩니다. 현실의 할 일은 무엇인가? 첫째는 그 현실이라는 내 앞에 펼쳐진 환경, 내게 부딪히는 직접 부딪히는 그 환경과 연결된 동산이라는 고 환경 현실과 에덴이라는 그 현실 그 이면에 있는 동방이란 이것을 기억을 해서 현실의 근본과 목적과 역사를 기억을 하고. 머리속에 담아 놓고 기억을 하십시다. 현실의 근본이 누구라고요? 자존하신 하나님입니다.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목적 나를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 만드시기 위해서 학교에 가니까 시험을 칩니다. 시험을 외쳐 머리 아프게 점수 낮으면 챙피 당하는데 안치면 안되는가. 시험을 쳐야 너의 실력을 알아서 지금보다 더 실력있는 너를 만들기 위해서 시험을 치는 것이다. 요즘 학교에 도덕시간 있습니까? 도덕시간에 보니까, 있어요? 바른 생활은? 있을 것 같은데. 도덕시간 바른 생활 시간에 보니까 인사하는 연습을 합니다. 어른들 한테 존댓말 쓰는 연습부터 합니다. 아 귀찮게 그것을 왜해? 아무렇게나 살면 되지. 너를 지금보다 좀 더 온전한 사람 반듯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게 주시는 현실은 예를 들자면 이거 아닌 현실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현실을 만날 지라도 성도가 깨닫고 나면 원망은 없는 것이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째 기억하십시다. 현실의 근본과 목적. 그 목적을 위해 역사하시는 모든 역사를 기억하고.
두번째는 하나님이 창세기 2장에 말씀하신 대로 현실의 주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현실의 주인이 되어서 세 번째는 그 현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그래서 마지막 결론으로 우리는 현실에 주인으로 사는 우리가 되야 되겠습니다. 같이한 번 해보실까요?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현실이 뭐냐? 현실은 현재 자기가 처해진 바로 환경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학생이라는 신분의 현실, 가정주부라는 신분의 현실, 교사라는 신분의 현실, 가장이라는 신분의 현실, 직장이라는 신분의 현실, 어머니라는 신분의 현실 자기 처한 입장 고게 현실의 좀 넓은 범위의 현실의 하나고 직접 부딪히는 현실은 그런 자기 처해진 그 형편 입장에서 자기가 순간순간 걸어가는 두 발 걸음이 발이 땅을 딪고 걸어가듯이 믿는 사람이 자기 신분에서 현실을 살아가면 매일매일 순간순간 부딪히는 사건들 사람들 환경들이 만나지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의 동산이고 직접 부딪히는 우리의 현실이고, 그 현실은 근본이 뭐냐 그 현실은 하나님을 바로 만나는 장소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장소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환경들 바로 동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그 현실에 대해서 주인으로 사는 우리가 되야 됩니다. 현실의 주인. 현실의 주인이라 말은 첫째 현실에게 피동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현실에 영향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욕을 합니다. 내가 뭘 잘못 했다고 욕을 해? 같이 욕을 해버립니다. 원동에 피동 이건 범죄하는 겁니다. 피동하는 것은 현실에 피동되는 겁니다. 길을 지나가니까 안믿는 사람이 담배 연기를 휘익 내뿜습니다. 참 나쁜 짓이지요. 자기 중심의 사람들. 안믿는 사람들은 기독교를 욕을 합니다. 그 욕하는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어떨런지. 입을 좀 쥐어 박으면 좋겠는데 너것들은 길거리에서 담배연기 마음 껏 내뿜고 술 그냥 제가 좀 심하게 표현 못하겠습니다마는 한자 빼고 먹고 횡설수설하고 노상방뇨하고 비틀비틀 거리면서 꼴불견 하는 짓 전부 안믿는 사람들 아니냐 예수 믿는 사람도 술 먹던데? 예수 믿는 사람도 담배 피던데? 그 사람들은 바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정상으로 믿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정상으로 바로 믿는 사람은 술 안먹습니다. 담배 안핍니다. 그런데 담배 연기를 막 뿜고 다닙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짜증을 내고 인상을 찌푸리고 간다면 그것도 현실에 피동될 수 있습니다. 제가 방금 말씀드린 것은 설교니까 그렇겠지마는. 현실에 피동이라 그 말은 내가 당면한 그 상황, 사람에게 대해서 사람이 내게 하는 말에 대해서 들리는 소문에 대해서 부딪히는 환경에 대해서 어려우니까 어려워서 원망 불평 짜증 낙망 낙심 힘드니까 한숨 탄식 괴로우니까 낙심 절망 기쁘니까 좋아서 세상 다 차지한 것 처럼 어쩔 줄 모르는 이런 모든 것들이 전부 현실에 피동이 되는 건데 우리는 현실의 주인이라 그 말은 주인이니까 내가 주인이니까 할 일은 첫째 현실에 피동되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에 영향받지 않는 것입니다. 왜라는 의문은 가지되, 왜 욕을 하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되지? 의문은 가져야 됩니다. 자기를 돌아봐야 되니까. 그러나 거기 피동되면 안됩니다.
두번째는 현실을 내가 주인이 되서 다스리는 겁니다. 지배를 하는 겁니다. 내가 능동으로 그 현실을 끌고 가는겁니다. 오른 뺨을 때리니까 왜 뺨을 때려 하는 것이 아니고 오른 뺨을 때리는 거 보니까 아마 화가 났는 가보다 분풀이 할 곳이 필요한가보다 나한테 잘못한 게 있는가보다 그러면 좀더 분풀이 할 수 있도록 왼뺨도 돌려 대주고 속옷을 가지고 가면 추운가보다 그러면 겉옷까지 내줘버리고 현실을 내가 주인이 되서 거기 피동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주인이 되서 그 현실을 지배하는 겁니다. 사람 현실이든지, 사건 현실이든지, 물질 현실이든지, 좋던 나쁘던 내가 그 현실을 지배하는 겁니다. 그게 주인 노릇입니다. 첫째 피동되지 않는거. 내가 지배하는거 다스리는 겁니다. 내가 주인이고 왕이고 내가 능동입니다. 피동되면은 종이 되는 겁니다. 영향 받는 겁니다. 아담하와는 현실에 피동됬기 때문에 뱀에게 넘어갔고 선악과 따먹고 말았습니다. 현실에 피동되면 안됩니다. 그러면 현실에 주인노릇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원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 따라 그 현실을 상대 하는겁니다. 하나님을 주로 모시고 내 능동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현실을 상대하는 겁니다. 참아라 그러면 참고, 견뎌라면 참고, 꾸중하라면 꾸중하고, 화를 내라그러면 화를 내고, 손해 봐라 하면 손해보고, 손해보지 말라 그러면 손해보지 말고. 싸우라 그러면 싸우고. 말씀대로 현실을 사람상대도 사건처리도 물질 상대도 말씀으로 상대하는 것이 현실을 주인으로 다스리는 생활이 되는겁니다.
오늘 크게 말해서 네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성도의 세상생활. 현실 생활입니다. 두번째 동방의 에덴동산. 본문에서 세번째. 성도의 현실. 네 번째 현실의 주인으로 살자. 하나하나 중간가지 잔가지를 생각하면서 우리 현실 생활을 한 번 더 돌아보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깊이 따져봐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기독자들의 평생을 두고 변치 않는 말씀이며 평생을 두고 써먹어야 되는 불변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깊이 좀 생각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