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9-주후(눅16:22-31)
세상은 내세 준비의 기회2014-02-09조회 486추천 38
본문: 눅16:22-31
제목: 세상은 내세 준비의 기회
요점:
1. 세상 생활, 현실 생활
- 기독교는 염세주의 고행 주의가 아니니
- 일부러 고난 가난을 자취할 것은 아니나
- 세상을 살되 늘 인생의 끝, 세상을 끝날을 생각하며 살 것
2. 세상은
- 끝이 있는 세상
- 영원의 종자인 세상, 심판의 근거가 되는 세상
-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
3. 내세는
-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
- 음부는 지옥의 대기소
- 천국은
하나님 계시는 곳
하나님 뜻대로 된 사람 행위 일 요소만 가는 곳
타를 위해 산 사람, 행위 일 요소만 모인 곳
모든 성도가 한 몸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곳
- 지옥은
하나님 없는 곳
하나님 은혜가 없는 곳
자기 위해 산 사람, 행위, 일, 요소만 모인 곳
자기 위한 것은 하나도 할 수 없으니 고통뿐인 곳
4. 내세 준비는 세상에서만
- 부자의 두 가지 간청했으나 불허
- 내세 준비는 세상에서만 하는 것
- 세상에서 내세를 봤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
- 세상은 내세 준비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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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작성 중
20140209 주후
누가복음 16:22-31
오전에 우리가 생각해봤던 말씀은 어렵지 않은 내용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러나 문제는 그 아는 사실을 얼마만큼 우리들이 실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감하여 느끼고 우리 생활에 이것을 반영을 하고 이걸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아는 것은 누구나 알아도 아는 그것을 얼마만큼 자기 생활에 적용해서 느끼느냐 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 각각 다를 것이고, 그 아는 것을 느끼고 생활에 적용하는, 반영하고 적용하는 그 생활을, 그것을 가리켜 성령의 권능이라 그러고, 영감의 능력이라 그리 말할 수 있고 그게 바로 믿음의 차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차이라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안다 하는게 그걸로 전부를 삼지 말고, 아는 그 모든 사실을 자꾸 생각을 하고 명상을 하고, 파고 들어가서 말씀이 이러하고 또 사실이 이러한데, 그러면 이러한 사실을 앞에 두고 있는 나의 현재 생활은 과연 이 말씀에 부합된 생활을 하고 있느냐 아니면 알고 있다하나 아는 지식과 내 생활은 전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냐. 그 아는 생활을 써먹지 않으면, 적용하지 않으면 그거는 죽은 지식이 되고 말고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이 말씀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이 아니고, 우리들이 이 말씀에 붙들려 살아야 되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우리 사람보다 위에 있는 말씀이 이 말씀이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자주 생각해보고 명상해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오전에 말씀드린 첫째가 세상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은 무엇을 하는 세상인가? 세상은 어떤 곳인가 그 말입니다. 첫째 생각해본 것이, 세상은 끝이 있는 세상이다. 인생은 끝이 있다 이거는 누구나 다 아는데, 세상이 끝이 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쉽게 인정하지를 아니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한편으로 보면, 언제까지 계속 되리라 그리 단정짓지는 못하지만은 그들이 아는 세상의 근본은 수억년, 수십억년 된 것으로 아니까, 말이 수억년 수십억년이지 앞으로 언제까지든 이 세상은 유지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느 순간 또 이것이 갑자기 끝날 수 있을지도 있겠다는 그리 보는 사람도 있지만은, 단언하고 이 세상은 끝이 있다고 뭔가를 근거해서 그렇게 확정짓는 사람은 세상 안 믿는 사람으로써는 없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그리 말씀해놨기 때문에 성경을 근거해서 세상은 끝이 있다고 단언을 하는 겁니다. 이걸 우리가 늘 염두해두고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세상은 끝이 있고, 세상이 끝나기 전이라도 우리 인생은 끝이 있다 하는 것을 늘 기억을 해야 됩니다.
기독교는 종말론주의도 아니고 염세주의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현실주의라 그러면 좀 말이 구별되어야 되겠지만은, 기독교는 미래를, 내세를 소망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내세 소망에 현실주의라 그러면 좀 말이 될런지요. 그래서 신앙이란 것은, 미래라는 것은 소망인데 그 미래를 바라보며 그 미래를 준비하는 현실로 사는 것이 신앙이고, 믿는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이것이 떨어지면 안된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라는 곳은 내세의 종자가 되는 것이라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들이 사는 그날 그날에, 현실 현실에 모든 생활은 우리 앞날 미래하고 끊을래야 끊어질 수 없는, 떨어질 수가 없는 그런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것도 오일밤 예배때 그렇게 비유를 하지요. 예를 들자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길을 가는데 자동차 바퀴가 지름이 1미터 정도로 잡고, 승용차 바퀴 1미터 안되지요 아마? 좀 크게 1미터 잡아보십시다. 원지름이 1미터인데, 그 1미터되는 자동차바퀴가 한바퀴 뺑 돌면 몇미터 갑니까? 지름이 1미터니까 둘레는 좀 더 되겠지요 그러면. 한바퀴 뺑 돌면 한 2미터 된다 치고. 그러면 자동차바퀴 한바퀴 돌면 2미터 갑니다. 그런데 서울까지 천리길이면 400키로. 400키로면 몇미터입니까? 1키로는 천미터입니다. 그러면 10키로면 만미터, 백키로면 십만미터, 4백키로면 40만미터. 그러면 여기서 서울까지 가는데 자동차바퀴가 한바퀴 한번 도는데 2미터라 그러면 몇 번 돌아야 됩니까? 20만번 돌아야 서울까지 간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동차를 타고 간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자동차 바퀴가 20만바퀴를 돌아야 간다 그뜻입니다. 2미터 바퀴, 한바퀴 두바퀴 계속 굴러서 가는 것이지 떼놓고 갈 수는 없는 것이고, 걸어간다면 한번에 1미터를 걷는다치면, 그러면 40만보를 걸어야 서울에 도착을 한다 그말입니다. 쉬어가든 뛰어가든 좀 빠르고 늦게 가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서울 가려면, 걸음으로 걸어가면 40만 걸음을 걸어가야 서울에 도착을 한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한걸음 한걸음, 1미터 1미터 걷는 것 하고 서울 도착하고는 이거는 끊어질 수 없는,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걸음 걸음 걷는 것이 곧 뭐라는 말입니까? 서울을 향하여 가는 걸음이라 그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신앙생활인것은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생활은 막바로 이것이 영원무궁세계하고 직결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영원무궁세계를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것인데, 문제는 서울 가는 것은 이게 물리적인 계산법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를 하지만은, 무궁세계라 그러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3차원 너머, 4차원을 넘어서 5차원 6차원- 무한차원의 그런 세계로 들어가니까 물리적인 계산으로 응용이 잘 안되지만은, 그러나 조금 개념을 좀 넓게 깊이 생각을 해서, 우리들의 오늘 하루 사는 하루하루 생활이 이게 막바로 그날의 준비가 되어지는 것이고 대비가 되어지는 것이라. 학생들의 하루하루에 학교에서 한시간 한시간 배우는 수업 시간, 집에서 교과서나 책을 가지고 공부하는 한시간 시간 계속 그 공부하는 그 자체가 막바로 자기 진학하는 그 진학시험하고 직결되어있는 그런 생활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걸 계산하는 학생은 그만큼 공부하면 시험이 그만큼 수월하게 될 것이고, 그게 안되면 그만큼 어려워지는 요걸 연결시키는 사람들은 한시간 한시간을 막바로 승패로 그래 연결시켜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끝이 있고 인생은 끝이 있는데, 그러면 끝이라는 것을 생각하되 우리 현실생활을 같이 연결시켜서, 그래서 기독자들의 모든 생활은 이 세상 생활인데 세상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그말이지요. 어떻게 하느냐 그말은 다시말하면 이 세상에 모든 생활하되, 공부도 하고 직장에도 다니고, 글도 쓰고 외우기도 하고, 돈도 벌고 장사도 하고, 쉬기도 하고, 여러 가지 온갖 것을 세상에서 다 하는데 그 모든 생활을 다 하면서 늘 염두에 둘 것은, 야고보서 5장에 보니까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면 거기까지 말씀은 무슨 뜻인가 하면, 인간이 사람이 땅 위에서 여러 가지 자기 계산을 대고 계획을 세운다 그말입니다. 그 계획을 세우는데 거기까지만 가지고 있으면 그 계획 세우는 게 헛되다 그뜻입니다.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머릿속에 계산하기를, 염두해두기를, 어린 소녀가 집에서 뭘 팔러 갑니까? 닭을 키워서 달걀을 한판을, 30개 한판을 머리 이고 가면서, 시장에 가면서 꿈을 꾸지요. 이 달걀을 팔아서 병아리를 사오고, 병아리를 사가지고 와서 많이 키우면 닭이 되고, 그 닭이 또 병아리 낳고 또 부화를 시키면 더 많은 닭이 되고 그래가지고 자꾸 키워서 나중에 부자가 되겠다 그런 꿈을, 계획을 머릿속에 품고 이고 가다가 돌부리에 탁 넘어져서 계란이 다 깨지니까 그만 모든 꿈이 다 깨져버렸습니다. 사람이 머릿속에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내가 나이 몇 살까지, 초등학교때는 잘 모를것이고, 중학교 1학년되면 좀 빠른 학생들은 자기 앞날 계산을 댄다 그러지요. 서영준 목사님은 중학교 1학년때부터 서울에서 거창까지 혼자 집회를 다녔다 그러지요. 자기 키보다 더 큰, 그때는 짐보따리가 컸습니다. 짐보따리 매고, 서울에서 거창까지 집회를 한번도 안 빠지고, 중학교 1학년때부터 그리 다녔다 그말은, 중학교 1학년이 집회 그리 참석하는 것은 신앙 없으면 못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하는데, 중학교 1학년, 2-3학년되면 제법 계획을 세웁니다. 그럼 내가 중학교 과정을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를 어떤 고등학교를 가서, 대학은 어느 대학에 무슨 과를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공부를 좀 더 해가지고, 그 다음에는 그 공부를 통해서 전공을 살려서 몇 살에 결혼하고, 어떤 사람하고 결혼하고, 아이는 몇이 낳고, 그 아이는 어떻게 길러나가고, 계획을 전부다 머릿속에 세워놓고 한다 그말이지요. 그게 뭐냐면은,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뭐한다고요? 000씨 뭐한다고요? 방금 성경 본문. 우리 000씨는 그런 계획이 없는가? 있겠지요 뭐, 다. 거기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문을 좀 남겨보리라고 하는 자들아. 모든 사람이 다 거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하는게 틀린 것이 아니고 나쁜 게 아닙니다. 하는 자들아, 거기서 알아야 될 것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생명만 말하는게 아닙니다. 생명속에, 그 생명의 작용으로 인간이 계획한 모든 게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생명만 알지못하는 것이 아니고 그 생명에 작용으로 그가 계획해놓은, ‘아무 도시에 가서 1년을 유하며’, 아무 도시에 가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고, 1년을 유하리라 그래도 한달 있다가 변동될지, 10년 있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장사하리라’ 그랬는데 장사를 못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이익을 남겨 보리라’ 그랬는데 이익은 커녕 밑천 톨톨 까먹을지도 모르는 것이고, 아무것도 모른다 그말입니다.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사람의 모든 생명과 그 생명의 모든 작용은 인간의 능력 범위 안에 있는게 아니다 그말입니다, 모든 계획은. 그래서 경영은 사람에게 있으되, 얼마든지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 나가지만은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매였지 인간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계획을 세우지만은 그 모든 것이 시작부터 과정 전부 마지막 결과까지, 생명까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할 일이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야고보서 5장, 방금 제가 기도할때 읽은 성경인데, 뭐라 그랬습니까?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이것도 마음대로 안된다, 아무 도시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거기서 1년 유한다 그래도 1년 아니고 그 다음날 돌아오게 될지, 한달 있게 될지, 십년 동안 뿌리박게 될지 모른다. 장사하게 될지, 시작도 못하게 될지, 이문은 커녕 밑천 톨톨 까먹을지 그것도 모른다. ‘하는 자들아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 모든 것이 너희들 뜻대로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쩌라 말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러므로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하나님의 뜻이면 계획도 세우고, 도시에도 가고, 1년도 유하고, 장사도 하고, 이익도 남기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그리 되어야 되지, 주의 뜻은 뒤로 두고, 하나님의 뜻이 어딨는지는 생각지 아니하고 순전히 자기 뜻만 가지고, 자기 계획만 가지고, 자기 계획과 자기 세계만 가지고 계산만 가지고 그리하다보면 전부다가 결국 헛된 결과를 맺고 만다 그말입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할 것이거늘, 너희가 도리어 허탄한 자랑을, 결과 없는, 열매 없는 그런 자랑을 자랑하니 그 모든 것 전부다 머리가 좋으니까, 실력 있으니까, 자본이 많으니까, 배경이 있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뭔가 자기 계획을 세우고 하면은, 밀고 나가면 되리라고 그리 하지만은 그 모든 계획 속에 하나님의 뜻을 빼놓고 하는 것은 다 허탄한 자랑이니 이러한 자랑은 다 자기중심이라, 악한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되는지 하나님 중심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그게 바로 죄다 그리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되, 기독자는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을 부인하는게 아닙니다. 공부를 하지 말아라, 반지식 주의가 아니지요. 직장 생활 다 져버려라, 아닙니다. 결혼하지 말아라, 금욕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서 다 하는 겁니다. 에덴동산에 허락하신 실과는 임의로 먹고, 먹는 겁니다. 선악과만 먹지 말라 그랬지 다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생활을 다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생활하되, 말하자면은 공부하는 학생이 그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 공부하는 그 자세, 꼭 같이 한 학교에 몇 백명이 학교를 다녀도 그 학생이 그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해나가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 다른데, 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가면은 칠판에 뭐라고 적혀있습니까? D-200, 또 그다음날 D-199, 198 그래 적어놓지요, 고등학교. 뭐하는 날입니까? 시험치는 날 200일 남았다, 또 180일 남았다, 150일 남았다, 그거는 그날 그날 공부하는 그 자세를 다잡는 겁니다. 이날 150일 후가 되어서 눈물 흘리지 말고, 지금부터 열심히 하라 그뜻입니다. 그것도 내나 같은 말입니다. 마지막 시험치는 그 날을 염두해두고 오늘을 다잡고 피곤해도 이겨내고, 잠이 와도 이겨내고, 놀고 싶어도 참고 공부에 열중을 하고 집중을 해라, 그런 의미로 자꾸 그래 적어놓고 챙겨나가는 것처럼 이 말씀도 그말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이 부자와 나사로가 세상을 살았는데, 부자는 부자로 부자대로 살았고, 나사로는 거지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사람은 이래 살았고 한사람은 저래 살았고. 이런 모양, 저런 모양, 이런 형편, 저런 형편으로 다 각각 세상을 살았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한가? 안 그렇습니까? 잘 먹어도 한 세상, 못 먹어도 한 세상,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안 믿는 사람들이 인생을 그냥 그만 무사안일로 편하게 사는 그런 태평주의로, 무사 태평주의로 그리 사는것이 아니고 우리는 뭔가 속에 근거, 뼈다귀를 가지고 뭔가를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이란 곳은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니까 높은 사람으로 지위를 누리면서 떵떵거리며 살면 그리 살아도 한 세상, 이 세상을 다른 사람에게 참, 원치 아니하게 본의 아니게 멸시천대 받아도 한 세상, 이래도 저래도 한 세상, 다 지나가는 세상입니다. 하룻밤 자고나면 다 끝나는 그런 세상입니다. 홍포 입은 부자처럼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연락하며 살아도 그게 천년 만년 가지 않았고, 길어봐야 7-80년 아니겠습니까? 그래 살았는데 살고나니까 죽었고, 이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서 헌데를 앓으며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고 개들이 와서 핥아먹는 이런 비참한 지경에 살았는데 그것도 천년 만년 가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니까 그 비참도 끝이 나더라 그말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다 끝나는 그런 세상, 이러니까 세상을 살되 일부러 우리가 염세주의처럼, 고행주의처럼 그리 살 필요는 없습니다, 기독자가. 일부러 있는 돈 안쓰고, 일부러 고생되는 것을 찾아가면서, 일부러 공부할 수 있는데 안하고, 쓸 수 있는 것 안 쓰고 누리라고 주신 것도 안 누리고 그렇게 고행주의로 밑바닥 생활을 찾아가며 하는 것은 기독자의 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일면 자기를 연습시키기 위해서, 훈련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또 주를 위해서 쓰는 것은 그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셔서 이 세상만 본다면 얼마든지 좋은 집, 큰 집, 좋은 자동차, 편안한 생활 할 수 있지만은, 그런데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 다른데 있으니까 그 모든 걸 달리 투자해서 그렇게는 살고, 그렇게 어렵게는 살아갈 수 있지만은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그리 살 필요는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부러 고행주의로 바닥생활을 찾아서 그리 할 필요는 없지만은,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 생활이 전부인냥, 그게 가치있고 영광인냥 그것을 찾아가지고 기를 쓰고 어쨌든 높은 곳을 찾아가고, 부한 것을 마련하고, 귀족이 되어야 되고, 좀 엘리트가 되어야 되고, 좀 부유해야 되고, 높은 그런 세계에서 좀 살아봐야 되겠고, 그런 것을 찾아가지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할 것도 아니다 그말입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은. 안 믿는 사람들이야 그게 전부니까, 이 세상이 전부니까 그리 사는게 마땅하지만은, 진리를 알고 빛을 받은 사람이 세상 사는 모습은 그리 살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이래 살든, 저래 살든 세상 사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을 자기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 지도따라, 그분 통치 따라서 살고, 그분이 마련해주신 주님 대속의 공로 의지해서 영원한 천국 바라보고, 그 천국을 자기 천국 삼아서 마련하는 거기 맞춰가지고 모든 생활해서, 그런 생활 해나가는데 요셉처럼 총리로 만들어주면 총리도 되는 것이고, 그런 생활하는데 다윗처럼 왕을 세우면 왕도 되는 것이고, 그리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다니엘처럼 또 적국의 총리로 세우면 그리 총리도 되는 것이고, 그리 살아갔는데 아브라함처럼 재산지키는 수지꾼이 318명이 되도록 큰 부자를 만들어주시면 그리 부자도 되는 것이고, 욥처럼 그런 부자도 되는 것이고, 그리 살았는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나사로처럼 이렇게도 되는 것이고 일반 서민처럼 그리 사는 것도 되는 것이고, 결과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겉모습은 그분에게 다 맡겨놓고 나 할 일은 오로지 주님 한분 모시고 천국 건설하는 이것만이 나 할 일이지, 이거는 두고, 뒤로 두고, 이거는 버려두고 이거는 발 아래 밟아놓고 어쨌든 올라가야 된다, 많아야 된다, 높아야 된다, 커야 된다, 귀해야 된다, 인정받아 봐야 된다, 평안해야 된다, 물려줘야 된다, 이래가지고 세상 것을 마련해서 거기에 자기 전심 전력 쏟고, 마음을 쏟고, 욕망을 거기두고 노력하는 것은 기독자의 생활은 아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은, 인생은 이래도 저래도 끝이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해두고 살아야 되겠다 그말입니다.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인생은 끝이 있고, 세상은 끝이 있으니까 이게 전부가 아니고 이게 최종이 아니고, 이것이 최고가 아닌 겁니다. 이거 말고, 이거는 하나의 과정이니까. 이것은 최종과 궁극을 위해서 주신 이용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늘 궁극을 생각하며, 최종을 염두해두고 그것을 위해서 오늘을, 현실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기독자들의 세상 생활이다 이걸 염두해두고 살자 그말이고, 이걸 가리켜서 야고보서 5장에는, 주의 뜻이면 우리가 이것 저것을 하리라, 주의 뜻이면 공부도 하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돈도 버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결혼도 하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자녀도 낳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사업도 하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이것도 저것도 하리라 그리 할 것이지, 주의 뜻은 빼놓고 아무 도시에 가서 내가 내 계획을 가지고, 내 계산을 가지고, 내 계산범위를 가지고 이것저것을 하리라고 하는 것은 허탄한 자랑이고, 그 자랑은 결국 자기가 하나님된 거기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악이다 그말입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보지요? 계획대로 되는가. 되는 것 같은데 그 되는 것이 다행스럽게 주의 뜻에 맞아서 되는 것이면, 만약에 사람이 자기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을 세워가지고 돈을 벌든지, 공부 하든지 그래가지고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계획대로 되었으면 그게 뭡니까? 자기 계획한대로 결과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게 뭐지요? 주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 계획을 세울때 주의 뜻을 생각지 아니하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결과는 그리 이루어졌으니까 그거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는데 자기는 뭐 된겁니까? 자기는 거기서 이용물만 된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서 자기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다행스럽게 맞아서, 일치가 되어서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이루어져서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 이루어졌는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없이 자기만 그리가지고 계획 세워서 이루어졌다면, 그게 하나님 편에서는 뜻대로 되었지만은, 자기는 거기 이용물만 되었지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은 아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그리 계획을 세워도 그리 되는 것이고, 자기는 달리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의 뜻이면 그리 가게 되어있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뭔가 자기 모르는 앞날을 찾아갈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내가 계획을 세우지 아니하고 주변 상황을 지켜보는게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두고, 생각하고,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말씀에서 바로 답이 나오는 것이면,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면 그대로 가면 되는 것이고, 말씀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면 말씀을 가지고 찾아보고, 내 신앙과 자타의 구원과 모든 주변 환경, 현실 객관의 모든 역사를 살펴가지고 그래가지고 찾아보면은 어느정도 알 수 있고, 그래서 최대한 자기를 자기 욕망, 자기 계획, 자기 꿈을 배제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뜻만 두고 그래 찾아나가는데,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려고 계산 했습니까? 요셉이 총리되려고 생각 했습니까? 요셉의 생애에, 하나님이 꿈으로 보여주셨지만은 그러나 그게 막연한 것이었고, 그런 꿈이 있었지만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셉이 이거는 총리 되는 것이다,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계획을 세우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형들 통해서 애굽에 팔아 먹었습니다. 팔았는데, 팔렸지만은 종으로 팔렸으니까 더 비참하게 되었지, 꿈과는 더 멀어졌지, 계획 세우지 않았는데, 거기서 믿음 지키고 하나님 뜻에 충실하니까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 보냈습니다. 요셉이 잘못해서 감옥 갔습니까?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 갔습니다. 감옥 갔는데 거기서 충실했는데, 또 하나님께서 또 바꿔서 두 관원장 보냈고, 그리고나서 뒤에 가서 보니까 그게 총리되는 그런 과정들이었다 그말이지요. 자기가 계획 세우지 않았습니다. 믿는 성도의 가는 길이 다 이러한 겁니다. 그러니까 오전 말씀하고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끝이 있는 세상, 인생은 다 끝이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다. 두 번째는 이 세상이라는 곳은, 세상이라는 장소는, 이 세상에 내 주변에 있는 모든 환경은 전부다, 이 세상 모든 생활은 그 속에 둘러싸여서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 언행심사 하나하나는 전부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게 전부 영원한 종자가 되어지며, 영원의 종자가 되어지며, 농사 짓는 것이 되어지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보상과 보응의 근거가 되어지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이 세상 생활이라 하는 것도 두 번째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말하자면은 어제는 오늘의 종자였고, 오늘은 어제의 결과고, 오늘은 내일의 종자고. 그래서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내일의 결과가 달라지고, 과거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현재 내 모습이 그대로 되어진 것처럼,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가 자기 현실 생활에서 뭔가 좀 불편한 것, 원치 않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원인을 찾아봐야 됩니다. 그거야 사람 생각에, 과거에 그래 살았으니까 오늘 이리 됐다고 하지만은, 전혀 상관없이 길을 가다가, 길을 갔는데 갑자기 어디서 돌맹이 날아와서 이마를 딱 맞아서 이마가 터져서 피가 나고 다쳤다, 이것도 과거 생활하고 연관이 있는 것인가? 나의 과거 생활하고 상관이 없는 것인데, 일면 보기에는 그런 것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도 자기 생활하고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리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곰곰이 찾아봐서 다 연결시켜 볼 수가 있어서, 그래서 두 번째는 이 세상은 영원의 종자다, 영원의 흔적이다. 세상 생활은 막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보상과 보응의 심판의 근거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 모든 세상 생활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내가 산 모습을 그대로 가져가서 하나님께서 딱 그대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거봐라, 이랬으니까 이래 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으냐.
그다음 세 번째는, 이 세상은 뭡니까? 세상은 뭐하는 곳이라고요?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입니다.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두 번째하고 좀 중복되겠지만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이다. 이 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사로가 그랬던 것처럼, 마련되는 것은 피동인데, 하나님께서 내게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마련하는 것이라고 능동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든, 원치않든 세상은 천국 아니면 지옥이 마련되는데, 내가 주체가 되어가지고, 내가 능동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게 되어진다 하는 겁니다. 크게 두 번째는, 본문에서 내세를 볼 수 있습니다. 사후세계.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내세를 보니까 부자는 음부에 갔고, 나사로는 낙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낙원이 어디냐?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 음부는 어디라고요? 지옥의 대기소. 그래서 천국 들어가기전 임시로 거처하는, 그래서 낙원은 무궁세계지만은 일단 무궁세계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시작되기전, 임시거처하는 그런 낙원, 대기소, 천국의 대기소, 그러면 천국은 주님 재림하시고 나면 영계와 우주가 다 통일된 그 나라가 천국이고, 그 천국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고, 시작되지 않았고, 역사 이래로, 창조 이후로 세상을 떠나간 모든 성도들 중에서 천국 갈 성도들과 그 모든 기능들은 전부 낙원에서 대기하고 있고, 반대로 지옥 갈 모든 사람과 기능들은 전부 음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천국은 어떤 곳이냐? 천국은 첫째, 하나님이 계신 곳. 천국에는 하나님이 계셔서 그분이 왕이 된 곳, 그분이 실질적으로 이제 왕이 되어서 당신이 다스리는 그 나라. 진리가 법이 되고 하나님이 왕이 된 그 나라. 두 번째는 그 나라는, 어떤 사람만 가느냐? 그 나라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 모든 행위,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모든 일, 그런 요소들만 들어가는 나라가 천국이라. 그러면 천국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든지, 하나님과 상관없는 언행심사, 일, 그런 요소들은 그 나라는 들어갈 수 없는 나라가 천국, 하나님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사람과 그 뜻대로 움직여진 모든 행위, 그 일 그런 요소들만 가는 나라가 천국이고, 그래서 그 나라는 모든, 하나 더 그러면 하나님의 그 뜻대로 되어진 그 뜻이란게 뭔가. 그것이 말하자면은, 세상을 살되 자기 위해 살지 아니하고 위로는 하나님을, 옆으로 아래로는 다른 사람, 타를 위해서 살아간, 타를 위해 산 사람, 타를 위해 산 모든 심사, 그런 일, 그런 요소들만 가 있는 곳이 천국이다. 자기를 전부로 삼아 자기 위해 산, 자기만 생각을 하고 자기만 위하고 자기 좋게 한 이런 홍포 입은 부자 같은 이런 사람과 행위요소는 갈 수 없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산 그런 사람, 그런 요소만 가는 곳이 천국이라. 그러면 오늘 세상에 살되, 늘 밤낮으로 나, 나, 나 좋게 나 편하게, 나 기쁘게, 나 영광스럽게, 나를 위해서, 자기만 생각을 하고 자기 위해 산 그 모든 요소는, 그런 순간 순간은 이게 천국에 맞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부부라면, 남편은 자기보다 아내를 먼저 생각을 하고, 아내는 자기보다 남편을 먼저 생각을 하고, 우리 여기 처녀들, 이래 예수 잘 믿는 사람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편은 아내만 생각을 하고, 아내는 남편 먼저 생각을 하고, 남편이 자기 권위, 자기 입장, 자기 위신, 자기 몸, 자기 편한 것, 이걸 챙기고 아내를 덜덜 볶아재끼고 자식을 볶아재끼면 그것 참 문제입니다. 그런 남편들, 그런 아버지들의 그 요소는 전부 어디 간다고요? 그거 지옥갑니다 전부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그때의 그 생각, 그 행위, 그 요소는 전부 지옥에 가는 것이고, 천국 못갑니다. 믿는 사람이 순간 순간을 살 때 나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 요소, 그 움직임, 그 생각, 그 마음, 그것이 바로 천국에 맞는 그런 요소들이고 그런 기능들이다, 그런 사람이다 그말이지요. 그리 되어지고, 그래가지고 천국에서 영원히 하는 일은, 주님 한 분 모시고, 모두가 다 자기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살았으니까 그래서 성경에 딱 그대로 몸에 지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사람의 입이 밥을 먹으면, 입이 밥을 먹으면 입맛이 있다 그러지만은 입맛이 없어도 밥을 먹어야 되고, 손이 맛있는 음식을, 눈이 보고 손이 가져다 입에 넣습니다. 그러면 입이 그 맛있는 음식을 이를 가져서 씹어서 먹으면 이빨은 힘들고 대고, 입도 대고 손도 대고 그런데 그래 먹으면 그것이 전부다 눈과 손과 이와 입에 수고로 그 수고를 가지고 이게 전부다 귀에도 가고, 눈에도 가고, 머리에도 가고, 팔다리에도 가고, 오만데 다 뻗어나가는 것처럼, 발이 걸어가므로 그 발이 온 몸 다른 지체 전부다를 좋게 하는 것처럼, 발이 움직여서 운동을 하면 온 몸이 다 건강해지는 것처럼, 심장이 박동을 하면 그 심장에서 피가 막 이게 곳곳으로 다 보내가지고 그렇게 온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지체 지체 요소 요소 하나하나 전부다가 다 각각 저 하나만 위해 살지 아니하고 전몸 전체를 위해서 각 지체가 움직여 사는 것처럼, 그래서 그 몸이 활동을 하므로 여러 가지 세상에서 필요한 그런 일을 하는 것처럼,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전부 자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타를 위해 사는 그런 사람, 그런 요소들만 모였기 때문에 그 모든 요소가 다 한몸을 이루어가지고 전부다 각각 그 자기 역할을 다 자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체를 위해서 하는 그런 역사를 하므로 그 전체가 다 하나 되어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 나라가 천국이다. 그래서 이것도 세상 말에 그랬다 그러지요. 미국에 유명한 대통령, 젊어서 암살 당한 대통령 이름이 뭐지요? 케네디 대통령이 그랬다던가요? ‘여러분들이 국가가 나를 위해서 뭔가 해주기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을 하라’ 그런 유명한 말 했다 그러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개체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개체를 위하는 이것이 사람의 몸이라는 겁니다. 천국이란 곳이 그런 곳입니다. 말하자면은 한 사람 한사람이 전체 천국의 한몸을 이루고, 주님 몸을 이루고, 그러면 그 몸 전체는 그 한사람 한사람을 영원히 위하게 되는, 영원히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이 나라가 천국인데, 이런 천국의 속성, 그 나라 맞는 그런 인식과 사상과 생각과 기능과 이런 것들을 이 세상에서 연습을 해놔야 그게 천국 가서 맞는 것이지, 자동차 부속이나 기계 부속을, 좀 부속이니까 안 맞지만은, 맞추려면 그것을, 동그랗게 생긴 것은 네모잡이로 된 것을 깍아가지고, 선반에 돌려서 깍아가지고 거기 동그랗게 만들어서 맞도록 만들어야 그걸 끼어맞추는 것이지, 맞지 않는게 안되는 것처럼, 이거는 기계니까 생명없는 그렇지만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천국에 성격의, 성질의, 본질 본성에 맞는 자기라는 사람의 모든 요소가 되어져야 천국에 맞게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은 전부다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해서 살아서 지옥에 맞도록 그래 살았고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 기능 하나하나 요소는 전부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 사람이 천국에 가면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안 맞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부자가 나사로와 아브라함을 보니까 어떻다고요?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그다음 뭡니까? 저가 음부에서, 눈을 들어,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그다음 뭡니까? 성경 보시지요? 000샘 한번 읽어보지요? 23절,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그다음 뭡니까? 멀리, 멀다는 말은 무슨 말이지요? 거리가 한참 떨어졌다 그말입니다. 이곳은 멀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는 지금 어떤 곳이라고요? 음부와 낙원이니까 무엇을 초월했다고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으니까, 공간을 초월했는데 멀다는 말이 해당이 됩니까? 공간을 초월했는데. 미국과 한국은 먼 나라입니다. 멀다는 말은 공간의 제한을 받을때 해당되는 말인데, 공간을 초월한 세계에 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부자는 낙원하고는 거리가 너무 너무 먼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도무지 안 맞는 사람. 낙원하고는 천리 만리 떨어진 음부에 맞는 그 사람으로 만들어져있으니까 그 음부에 가서 낙원을 보니까 아득하게 먼 겁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왜? 평생을 그리 살았으니까. 음부에 맞도록만 살았으니까 그래 평생을 자기를 만들어 나갔으니까 그래 만들어진 그 사람이 낙원에 보내봐야 튕겨나가는 겁니다. 못 견디는 겁니다.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들어가봐야 거기 못 견디고 나올 수 밖에, 쫓겨날 수 밖에 없고, 제 스스로 못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국이란 곳은, 이 세상에서 살 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고 모시고 늘 생각을 하고 두려워하고 그분의 뜻을 찾아서 그분 뜻대로 자기 아닌 하나님과 타를 늘 염두에 두고 밤낮 생각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우리는 아직까지 그만큼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말씀들을때, 백목사님 설교록에 그런 내용도 나옵니다. 진리를 깨닫고 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오로지 주님 위해서, 주님 원하시는 형제 구원 위해서 사는 사람, 하나도 빠짐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 있다. 그렇게까지 그럴까 싶은데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홍포 입은 부자처럼, 물 한방울도 빠짐없이 요렇게까지 자기 위해 산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는 낙원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안 맞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시대가 지나갔지만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똘똘 뭉쳐가지고 사상과 인식과 정신과 마음과 행동 생활까지 그렇게 공산주의화 되어서 그래 산 그 사람, 평생을 그래 산 사람은 자본주의 세상에 내놓아도 그 사람은 못 삽니다. 아무데 가도. 통제받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생활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탈북자들이 이남에 와서 살면은 적응기간이 적어도 몇 년 걸린다 그러지요, 한참. 처음에 와서는 그냥 어쩔 줄을 모르는 겁니다. 그런 환경에 그래 젖어 살다보면 사람이 완전히 그런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갖다놓으면 못 사는 겁니다. 평생을 방탕한 생활하고 자유 분방한 생활하고 돌아다니는 그런 생활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닌 그런 사람을 직장에 집어넣든지, 통제하는 그런데 딱 집어넣으면 그 사람은 거기 못 삽니다. 죽고 말지. ‘차라리 죽고 말지, 못 살겠다.’
이 세상 평생, 7-80년 평생을 전부 자기가 왕이었고, 자기 위해 살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고, 하나님은 눈꼽만큼 생각 없고, 다른 사람 생각지 아니한 그 사람이, 천국에는 하나님과 타를 위한 그런 사람만 모인 곳인데 거기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거기 넣어놔도 못산다 그말이죠.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들어가도 이 사람은 제가 스스로 지옥으로 기어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지옥은 따지고 보면은, 하나님이 값을 갚아서 보응해서 지옥 보내는건데, 한꺼풀 더 들어가보면 지옥은 전부 스스로 다 기어들어가는 겁니다. 그리 갈 수 밖에 없으니까. 지옥간 존재들을 천국 집어넣으면 그들은 천국이 지옥입니다. 지옥이 지옥이 아니고. 천국 간 사람들은 그 나라는 이런 나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들이 천국 마련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천국은 자기에게 없는 겁니다. 안 보여도 잘 몰라도, 어쨌든 부족해도 하나님을 늘 기억을 하고 그분의 뜻을 생각을 하고 그분 뜻을 찾아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는 요런 요소들, 이런 사람들만 모여가지고 한몸을 이루어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게 천국이고, 반대로 지옥에는 하나님이 없는 곳이라 그랬는데, 하나님이 없어서 없는 곳이 아니고, 그분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지만은, 땅 위에서 하나님 없이 산 그런 존재들, 그런 것들만 모였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이 계셔도 자기에게 실제 은혜적으로, 적용적으로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는 세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하나님 은혜도 하나도 없는. 그리고 전부 모조리 자기 위해서만 산, 그래 산 사람과 요소들, 그런 행동, 그런 일들만 모인 곳이 지옥이니까, 하나가 모여도 자기, 열만 모여도 자기, 그러니까 전부다 자기만 위해서 살았으니까 그 지옥에 가서도, 음부 가서도 전부 자기도 자기 위해야 되겠고, 다른 것, 다른 사람들도 모든 일들 전부다 끌어붙여서 자기를 위해야 되겠는데, 문제는 거기는 전부 그런 인간들, 그런 요소들만 모였으니까 다 각각 자기에게로 끌어당겨야 되겠고, 자기 위하도록 만들어야 되겠는데 그리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연습은 그리 되어있는데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죽을 지경이지요. 마음도 몸도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그게 날이 가면 갈수록 더해지니까 이 지옥의 고통은 이런 고통입니다.
그래서 오전에 잠깐 말씀드린, 사람이 세상에서 모든 고통은 다, 물론 물리적으로 몸이 아프면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인간의 모든 고통은 어려움을 가리켜 시험이라 그러는데, 성경입니다. ‘네가 하나님에게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아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번뇌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조금만 인식을 바꾸고, 생활모습방편 바꾸면 참 세상을 편안하게, 수월하게, 모두 다, 자기도 귀하게 되고, 모두 아름답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래 되지 아니하고 욕심이 하나 들어가면 눈이 어두워지고, 그때부터는 번뇌도 많고 고민도 많고, 고통도 많아지게 되는 겁니다. 이게 어떤, 한 두사람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다 공통적으로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교역자가 교회를 두고, 교인을 좀 많이 전도해서 교회를 부흥을 시켜야 되는데. 연보가 많이 나와야 되는데. 교인들이 교역자 말을 잘 듣고 순종을 잘 해야 되는데. 거기 마음을 두고 그렇게 만들려고 애를 쓰면 안되면 안될수록 고통입니다. 그거는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알고보면 그목사 교역자의 욕심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그래서 종종 한번씩 말씀드렸지만은, 교역자가, 목회자가 목회하는 일의 첫째 목적이 뭐냐? 그거는 교회 부흥은 목적이 아닙니다. 만약에 목사가 교회 부흥을, 경제나 사람이나 많이 전도하는 것 좋지만은, 부흥을 첫째 목표로 두고 목회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거는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는 것이고, 목자는 목회하는 그 생활에서, 가정주부는 가정생활에서, 직장인은 직장생활에서, 그 생활에서 목적이 뭐냐? 자기를 참 사람, 하나님 원하시는 사람 만들어가는 그 조건에 가장 좋은 조건이 성경 읽으면 좋아하고, 기도하면 좋아하고, 온전한 사람되면 교인들이 더 좋아하고 부흥이 되니까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도 하나의 직업이지, 이것이 천국가는 그런 출세길도 아니고, 목사 그 자체가 성공도 아닌 것이고, 목회자가 목회를 잘못하면 그만큼 심판도 크다 그랬습니다. 모든게 다 마찬가지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
그래서 욕심을 가지면,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에 대해서 돈 욕심을 가지면 그때부터 눈이 어두워지고, 의사가 돈 욕심 가지면 그때부터 그 사람 의술은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고, 모든게 다 그렇습니다. 권력가가 권력에 욕심을 부리면 그 권력에 반드시 문제가 생겨지는 겁니다. 욕심에 방향이 달라 그러하지. 공부하는 사람도 지식에 욕심을 가지면 그 지식에도 문제가 생겨지는 겁니다. 명예욕도 마찬가지고, 다 버리고. 안 믿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릅니다. 그들은 단순히, 그래서 불교는 자기를 다 비우라 그럽니다. 무아를 만들어라. 자기 있는데 자기를 없어버리는 그게 불교의 최고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 부인한다기 보다는 그들은 없이 만드는 것. 우리는 없는게 아닙니다. 자기를, 옛자기를 부인하고 참자기를 만들어나가는 우리들입니다. 거기에 잘못된 욕심, 옛사람 욕심 그놈이 들어서 온갖 문제를 다 일으키고 고통을 만든다 그말이지요. 이거는 평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평안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욕심입니다. 안일욕, 평안욕. 하나님이 고난 주시면 고난도 받아야지. 어렵지만은. 하나님이 가난주시면 가난해야지. 하나님이 병을 주시면 아파야지. 일부러 찾아가는 건 아니지만은, 나로써 안되는 것이면 그만 다 맡겨놓고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그것만 하면은 그만 편안하게 되는 겁니다. 거기 잘못하면, 그게 또 강조되면, 잘못하면 또 무사안일주의가 되어서 게으르기 쉬운데, 이걸 고치고 양면을 다 보면서, 그래서 지옥은 이런 곳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 자기만 생각한 그런 사람, 그런 행위, 그런 일, 그런 요소만 모인 곳, 그래가지고 자기 위해서 영원히 살고 싶은데, 자기 도울 존재 하나도 없는, 자기 위해 주는 존재 하나도 없는, 그러기 때문에 영원한 고통이 계속되는 거기가 바로 지옥이다 . 그래서 이 세상이란 곳은 어떤 곳이냐. 내세를 준비하는 세상이고, 내세 준비는 이 세상에서만 할 수 있다 하는 겁니다. 이 부자가 물한방울도 세상에서 준비하지 않으니까 없었고, 살아생전에 잘못 깨닫고, 인생을 잘못 살고, 형제들까지 잘못 인도하니까 죽고 난 다음에 나사로 보내서 부탁했지만은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 부자가 세상에서 이 사후세계를 봤다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보지를 못했고, 보지 않았고, 보여주셨지만은 보지 않았고, 그러기 때문에 결과는 요래 되어진겁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다 약하고 어둡지만은 이 말씀 한번 더 생각하면서 오늘에 좀 멀리보고, 오늘의 내세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모릅니다. 사람은 모르지만은 성경에 이래 되어있으니까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바로 알아서 이 세상을 내세를 준비하는 기회로 삼는 그런 우리가 될지언정, 사후세계를 깨닫지 아니하고, 보지를 아니하고 이 세상만 염두에 두고 사는 그런 참 어리석은 홍포 입은 부자같은, 실패하는 우리가 되지 아니할 수 있도록 자꾸 자기를 다지고 채찍질하고,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내세를 준비하며 사는가? 내 생활은 나사로 같은 생활인가? 홍포 입은 부자 같은 생활은 아닌가? 늘 염두해두고 하루하루를 좀 깨어 사는 그런 우리가 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깊이 좀 생각해보십시다. 내용자체는 전혀 어려운 말씀이 아니지만은 실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은 무엇하는 세상인가? 끝이 있는 세상입니다. 영원에 종자가 되어지며, 하나님의 심판에 근거되는 세상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입니다. 사후세계는 낙원이 있고, 음부가 있습니다.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고, 음부는 지옥의 대기소입니다. 천국은 영원무궁세계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된 나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그런 사람, 그런 요소만 모여가지고 모두 한몸이 되어서 영원토록 하나님 영광위해 사는 그 나라가 천국이고, 지옥은 반대입니다. 하나님 안계시는곳, 하나님의 은혜없는 곳, 자기만 전부 삼아 사는 곳, 그런데 그게 되지 않으니까 영원히 고통으로 계속 되는 나라. 그곳이 바로 고통스러운 곳이 지옥이니까 오늘의 우리는 내세를 생각을 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세상으로 사십시다.
제목: 세상은 내세 준비의 기회
요점:
1. 세상 생활, 현실 생활
- 기독교는 염세주의 고행 주의가 아니니
- 일부러 고난 가난을 자취할 것은 아니나
- 세상을 살되 늘 인생의 끝, 세상을 끝날을 생각하며 살 것
2. 세상은
- 끝이 있는 세상
- 영원의 종자인 세상, 심판의 근거가 되는 세상
-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
3. 내세는
-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
- 음부는 지옥의 대기소
- 천국은
하나님 계시는 곳
하나님 뜻대로 된 사람 행위 일 요소만 가는 곳
타를 위해 산 사람, 행위 일 요소만 모인 곳
모든 성도가 한 몸 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곳
- 지옥은
하나님 없는 곳
하나님 은혜가 없는 곳
자기 위해 산 사람, 행위, 일, 요소만 모인 곳
자기 위한 것은 하나도 할 수 없으니 고통뿐인 곳
4. 내세 준비는 세상에서만
- 부자의 두 가지 간청했으나 불허
- 내세 준비는 세상에서만 하는 것
- 세상에서 내세를 봤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것
- 세상은 내세 준비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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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설교)----작성 중
20140209 주후
누가복음 16:22-31
오전에 우리가 생각해봤던 말씀은 어렵지 않은 내용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그러나 문제는 그 아는 사실을 얼마만큼 우리들이 실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실감하여 느끼고 우리 생활에 이것을 반영을 하고 이걸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아는 것은 누구나 알아도 아는 그것을 얼마만큼 자기 생활에 적용해서 느끼느냐 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 각각 다를 것이고, 그 아는 것을 느끼고 생활에 적용하는, 반영하고 적용하는 그 생활을, 그것을 가리켜 성령의 권능이라 그러고, 영감의 능력이라 그리 말할 수 있고 그게 바로 믿음의 차이고, 하나님의 은혜의 차이라 그리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안다 하는게 그걸로 전부를 삼지 말고, 아는 그 모든 사실을 자꾸 생각을 하고 명상을 하고, 파고 들어가서 말씀이 이러하고 또 사실이 이러한데, 그러면 이러한 사실을 앞에 두고 있는 나의 현재 생활은 과연 이 말씀에 부합된 생활을 하고 있느냐 아니면 알고 있다하나 아는 지식과 내 생활은 전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냐. 그 아는 생활을 써먹지 않으면, 적용하지 않으면 그거는 죽은 지식이 되고 말고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이 말씀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이 아니고, 우리들이 이 말씀에 붙들려 살아야 되는, 그래서 하나님 말씀은 우리 사람보다 위에 있는 말씀이 이 말씀이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자주 생각해보고 명상해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오전에 말씀드린 첫째가 세상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무엇인가. 세상은 무엇을 하는 세상인가? 세상은 어떤 곳인가 그 말입니다. 첫째 생각해본 것이, 세상은 끝이 있는 세상이다. 인생은 끝이 있다 이거는 누구나 다 아는데, 세상이 끝이 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쉽게 인정하지를 아니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한편으로 보면, 언제까지 계속 되리라 그리 단정짓지는 못하지만은 그들이 아는 세상의 근본은 수억년, 수십억년 된 것으로 아니까, 말이 수억년 수십억년이지 앞으로 언제까지든 이 세상은 유지가 되지 않겠는가 그리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느 순간 또 이것이 갑자기 끝날 수 있을지도 있겠다는 그리 보는 사람도 있지만은, 단언하고 이 세상은 끝이 있다고 뭔가를 근거해서 그렇게 확정짓는 사람은 세상 안 믿는 사람으로써는 없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그리 말씀해놨기 때문에 성경을 근거해서 세상은 끝이 있다고 단언을 하는 겁니다. 이걸 우리가 늘 염두해두고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세상은 끝이 있고, 세상이 끝나기 전이라도 우리 인생은 끝이 있다 하는 것을 늘 기억을 해야 됩니다.
기독교는 종말론주의도 아니고 염세주의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현실주의라 그러면 좀 말이 구별되어야 되겠지만은, 기독교는 미래를, 내세를 소망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내세 소망에 현실주의라 그러면 좀 말이 될런지요. 그래서 신앙이란 것은, 미래라는 것은 소망인데 그 미래를 바라보며 그 미래를 준비하는 현실로 사는 것이 신앙이고, 믿는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이것이 떨어지면 안된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이라는 곳은 내세의 종자가 되는 것이라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들이 사는 그날 그날에, 현실 현실에 모든 생활은 우리 앞날 미래하고 끊을래야 끊어질 수 없는, 떨어질 수가 없는 그런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것도 오일밤 예배때 그렇게 비유를 하지요. 예를 들자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길을 가는데 자동차 바퀴가 지름이 1미터 정도로 잡고, 승용차 바퀴 1미터 안되지요 아마? 좀 크게 1미터 잡아보십시다. 원지름이 1미터인데, 그 1미터되는 자동차바퀴가 한바퀴 뺑 돌면 몇미터 갑니까? 지름이 1미터니까 둘레는 좀 더 되겠지요 그러면. 한바퀴 뺑 돌면 한 2미터 된다 치고. 그러면 자동차바퀴 한바퀴 돌면 2미터 갑니다. 그런데 서울까지 천리길이면 400키로. 400키로면 몇미터입니까? 1키로는 천미터입니다. 그러면 10키로면 만미터, 백키로면 십만미터, 4백키로면 40만미터. 그러면 여기서 서울까지 가는데 자동차바퀴가 한바퀴 한번 도는데 2미터라 그러면 몇 번 돌아야 됩니까? 20만번 돌아야 서울까지 간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동차를 타고 간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자동차 바퀴가 20만바퀴를 돌아야 간다 그뜻입니다. 2미터 바퀴, 한바퀴 두바퀴 계속 굴러서 가는 것이지 떼놓고 갈 수는 없는 것이고, 걸어간다면 한번에 1미터를 걷는다치면, 그러면 40만보를 걸어야 서울에 도착을 한다 그말입니다. 쉬어가든 뛰어가든 좀 빠르고 늦게 가는 차이는 있을지라도 서울 가려면, 걸음으로 걸어가면 40만 걸음을 걸어가야 서울에 도착을 한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 한걸음 한걸음, 1미터 1미터 걷는 것 하고 서울 도착하고는 이거는 끊어질 수 없는,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걸음 걸음 걷는 것이 곧 뭐라는 말입니까? 서울을 향하여 가는 걸음이라 그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신앙생활인것은 바로 그러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생활은 막바로 이것이 영원무궁세계하고 직결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영원무궁세계를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것인데, 문제는 서울 가는 것은 이게 물리적인 계산법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를 하지만은, 무궁세계라 그러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3차원 너머, 4차원을 넘어서 5차원 6차원- 무한차원의 그런 세계로 들어가니까 물리적인 계산으로 응용이 잘 안되지만은, 그러나 조금 개념을 좀 넓게 깊이 생각을 해서, 우리들의 오늘 하루 사는 하루하루 생활이 이게 막바로 그날의 준비가 되어지는 것이고 대비가 되어지는 것이라. 학생들의 하루하루에 학교에서 한시간 한시간 배우는 수업 시간, 집에서 교과서나 책을 가지고 공부하는 한시간 시간 계속 그 공부하는 그 자체가 막바로 자기 진학하는 그 진학시험하고 직결되어있는 그런 생활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걸 계산하는 학생은 그만큼 공부하면 시험이 그만큼 수월하게 될 것이고, 그게 안되면 그만큼 어려워지는 요걸 연결시키는 사람들은 한시간 한시간을 막바로 승패로 그래 연결시켜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끝이 있고 인생은 끝이 있는데, 그러면 끝이라는 것을 생각하되 우리 현실생활을 같이 연결시켜서, 그래서 기독자들의 모든 생활은 이 세상 생활인데 세상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그말이지요. 어떻게 하느냐 그말은 다시말하면 이 세상에 모든 생활하되, 공부도 하고 직장에도 다니고, 글도 쓰고 외우기도 하고, 돈도 벌고 장사도 하고, 쉬기도 하고, 여러 가지 온갖 것을 세상에서 다 하는데 그 모든 생활을 다 하면서 늘 염두에 둘 것은, 야고보서 5장에 보니까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면 거기까지 말씀은 무슨 뜻인가 하면, 인간이 사람이 땅 위에서 여러 가지 자기 계산을 대고 계획을 세운다 그말입니다. 그 계획을 세우는데 거기까지만 가지고 있으면 그 계획 세우는 게 헛되다 그뜻입니다.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이 머릿속에 계산하기를, 염두해두기를, 어린 소녀가 집에서 뭘 팔러 갑니까? 닭을 키워서 달걀을 한판을, 30개 한판을 머리 이고 가면서, 시장에 가면서 꿈을 꾸지요. 이 달걀을 팔아서 병아리를 사오고, 병아리를 사가지고 와서 많이 키우면 닭이 되고, 그 닭이 또 병아리 낳고 또 부화를 시키면 더 많은 닭이 되고 그래가지고 자꾸 키워서 나중에 부자가 되겠다 그런 꿈을, 계획을 머릿속에 품고 이고 가다가 돌부리에 탁 넘어져서 계란이 다 깨지니까 그만 모든 꿈이 다 깨져버렸습니다. 사람이 머릿속에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내가 나이 몇 살까지, 초등학교때는 잘 모를것이고, 중학교 1학년되면 좀 빠른 학생들은 자기 앞날 계산을 댄다 그러지요. 서영준 목사님은 중학교 1학년때부터 서울에서 거창까지 혼자 집회를 다녔다 그러지요. 자기 키보다 더 큰, 그때는 짐보따리가 컸습니다. 짐보따리 매고, 서울에서 거창까지 집회를 한번도 안 빠지고, 중학교 1학년때부터 그리 다녔다 그말은, 중학교 1학년이 집회 그리 참석하는 것은 신앙 없으면 못하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하는데, 중학교 1학년, 2-3학년되면 제법 계획을 세웁니다. 그럼 내가 중학교 과정을 열심히 해서 고등학교를 어떤 고등학교를 가서, 대학은 어느 대학에 무슨 과를 가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공부를 좀 더 해가지고, 그 다음에는 그 공부를 통해서 전공을 살려서 몇 살에 결혼하고, 어떤 사람하고 결혼하고, 아이는 몇이 낳고, 그 아이는 어떻게 길러나가고, 계획을 전부다 머릿속에 세워놓고 한다 그말이지요. 그게 뭐냐면은,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뭐한다고요? 000씨 뭐한다고요? 방금 성경 본문. 우리 000씨는 그런 계획이 없는가? 있겠지요 뭐, 다. 거기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문을 좀 남겨보리라고 하는 자들아. 모든 사람이 다 거기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 하는게 틀린 것이 아니고 나쁜 게 아닙니다. 하는 자들아, 거기서 알아야 될 것은,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생명만 말하는게 아닙니다. 생명속에, 그 생명의 작용으로 인간이 계획한 모든 게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 생명만 알지못하는 것이 아니고 그 생명에 작용으로 그가 계획해놓은, ‘아무 도시에 가서 1년을 유하며’, 아무 도시에 가는 것도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고, 1년을 유하리라 그래도 한달 있다가 변동될지, 10년 있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장사하리라’ 그랬는데 장사를 못하게 될지 모르는 것이고, ‘이익을 남겨 보리라’ 그랬는데 이익은 커녕 밑천 톨톨 까먹을지도 모르는 것이고, 아무것도 모른다 그말입니다.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사람의 모든 생명과 그 생명의 모든 작용은 인간의 능력 범위 안에 있는게 아니다 그말입니다, 모든 계획은. 그래서 경영은 사람에게 있으되, 얼마든지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 나가지만은 일의 결과는 하나님께 매였지 인간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계획을 세우지만은 그 모든 것이 시작부터 과정 전부 마지막 결과까지, 생명까지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할 일이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야고보서 5장, 방금 제가 기도할때 읽은 성경인데, 뭐라 그랬습니까? ‘들으라 너희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오늘이나 내일이나 이것도 마음대로 안된다, 아무 도시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거기서 1년 유한다 그래도 1년 아니고 그 다음날 돌아오게 될지, 한달 있게 될지, 십년 동안 뿌리박게 될지 모른다. 장사하게 될지, 시작도 못하게 될지, 이문은 커녕 밑천 톨톨 까먹을지 그것도 모른다. ‘하는 자들아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 모든 것이 너희들 뜻대로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쩌라 말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이러므로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하나님의 뜻이면 계획도 세우고, 도시에도 가고, 1년도 유하고, 장사도 하고, 이익도 남기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그리 되어야 되지, 주의 뜻은 뒤로 두고, 하나님의 뜻이 어딨는지는 생각지 아니하고 순전히 자기 뜻만 가지고, 자기 계획만 가지고, 자기 계획과 자기 세계만 가지고 계산만 가지고 그리하다보면 전부다가 결국 헛된 결과를 맺고 만다 그말입니다. 주의 뜻이면 우리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할 것이거늘, 너희가 도리어 허탄한 자랑을, 결과 없는, 열매 없는 그런 자랑을 자랑하니 그 모든 것 전부다 머리가 좋으니까, 실력 있으니까, 자본이 많으니까, 배경이 있으니까, 힘이 있으니까, 뭔가 자기 계획을 세우고 하면은, 밀고 나가면 되리라고 그리 하지만은 그 모든 계획 속에 하나님의 뜻을 빼놓고 하는 것은 다 허탄한 자랑이니 이러한 자랑은 다 자기중심이라, 악한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되는지 하나님 중심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그게 바로 죄다 그리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되, 기독자는 염세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을 부인하는게 아닙니다. 공부를 하지 말아라, 반지식 주의가 아니지요. 직장 생활 다 져버려라, 아닙니다. 결혼하지 말아라, 금욕주의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서 다 하는 겁니다. 에덴동산에 허락하신 실과는 임의로 먹고, 먹는 겁니다. 선악과만 먹지 말라 그랬지 다 먹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생활을 다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생활하되, 말하자면은 공부하는 학생이 그 공부를 어떻게 하느냐. 공부하는 그 자세, 꼭 같이 한 학교에 몇 백명이 학교를 다녀도 그 학생이 그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해나가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 다른데, 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가면은 칠판에 뭐라고 적혀있습니까? D-200, 또 그다음날 D-199, 198 그래 적어놓지요, 고등학교. 뭐하는 날입니까? 시험치는 날 200일 남았다, 또 180일 남았다, 150일 남았다, 그거는 그날 그날 공부하는 그 자세를 다잡는 겁니다. 이날 150일 후가 되어서 눈물 흘리지 말고, 지금부터 열심히 하라 그뜻입니다. 그것도 내나 같은 말입니다. 마지막 시험치는 그 날을 염두해두고 오늘을 다잡고 피곤해도 이겨내고, 잠이 와도 이겨내고, 놀고 싶어도 참고 공부에 열중을 하고 집중을 해라, 그런 의미로 자꾸 그래 적어놓고 챙겨나가는 것처럼 이 말씀도 그말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이 부자와 나사로가 세상을 살았는데, 부자는 부자로 부자대로 살았고, 나사로는 거지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한사람은 이래 살았고 한사람은 저래 살았고. 이런 모양, 저런 모양, 이런 형편, 저런 형편으로 다 각각 세상을 살았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한가? 안 그렇습니까? 잘 먹어도 한 세상, 못 먹어도 한 세상,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안 믿는 사람들이 인생을 그냥 그만 무사안일로 편하게 사는 그런 태평주의로, 무사 태평주의로 그리 사는것이 아니고 우리는 뭔가 속에 근거, 뼈다귀를 가지고 뭔가를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이 세상이란 곳은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니까 높은 사람으로 지위를 누리면서 떵떵거리며 살면 그리 살아도 한 세상, 이 세상을 다른 사람에게 참, 원치 아니하게 본의 아니게 멸시천대 받아도 한 세상, 이래도 저래도 한 세상, 다 지나가는 세상입니다. 하룻밤 자고나면 다 끝나는 그런 세상입니다. 홍포 입은 부자처럼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연락하며 살아도 그게 천년 만년 가지 않았고, 길어봐야 7-80년 아니겠습니까? 그래 살았는데 살고나니까 죽었고, 이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에 누워서 헌데를 앓으며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고 개들이 와서 핥아먹는 이런 비참한 지경에 살았는데 그것도 천년 만년 가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되니까 그 비참도 끝이 나더라 그말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다 끝나는 그런 세상, 이러니까 세상을 살되 일부러 우리가 염세주의처럼, 고행주의처럼 그리 살 필요는 없습니다, 기독자가. 일부러 있는 돈 안쓰고, 일부러 고생되는 것을 찾아가면서, 일부러 공부할 수 있는데 안하고, 쓸 수 있는 것 안 쓰고 누리라고 주신 것도 안 누리고 그렇게 고행주의로 밑바닥 생활을 찾아가며 하는 것은 기독자의 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일면 자기를 연습시키기 위해서, 훈련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또 주를 위해서 쓰는 것은 그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셔서 이 세상만 본다면 얼마든지 좋은 집, 큰 집, 좋은 자동차, 편안한 생활 할 수 있지만은, 그런데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 다른데 있으니까 그 모든 걸 달리 투자해서 그렇게는 살고, 그렇게 어렵게는 살아갈 수 있지만은 그게 아니라면 일부러 그리 살 필요는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부러 고행주의로 바닥생활을 찾아서 그리 할 필요는 없지만은,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 생활이 전부인냥, 그게 가치있고 영광인냥 그것을 찾아가지고 기를 쓰고 어쨌든 높은 곳을 찾아가고, 부한 것을 마련하고, 귀족이 되어야 되고, 좀 엘리트가 되어야 되고, 좀 부유해야 되고, 높은 그런 세계에서 좀 살아봐야 되겠고, 그런 것을 찾아가지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할 것도 아니다 그말입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은. 안 믿는 사람들이야 그게 전부니까, 이 세상이 전부니까 그리 사는게 마땅하지만은, 진리를 알고 빛을 받은 사람이 세상 사는 모습은 그리 살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이래 살든, 저래 살든 세상 사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고, 우리가 할 일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을 자기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 지도따라, 그분 통치 따라서 살고, 그분이 마련해주신 주님 대속의 공로 의지해서 영원한 천국 바라보고, 그 천국을 자기 천국 삼아서 마련하는 거기 맞춰가지고 모든 생활해서, 그런 생활 해나가는데 요셉처럼 총리로 만들어주면 총리도 되는 것이고, 그런 생활하는데 다윗처럼 왕을 세우면 왕도 되는 것이고, 그리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다니엘처럼 또 적국의 총리로 세우면 그리 총리도 되는 것이고, 그리 살아갔는데 아브라함처럼 재산지키는 수지꾼이 318명이 되도록 큰 부자를 만들어주시면 그리 부자도 되는 것이고, 욥처럼 그런 부자도 되는 것이고, 그리 살았는데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나사로처럼 이렇게도 되는 것이고 일반 서민처럼 그리 사는 것도 되는 것이고, 결과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겉모습은 그분에게 다 맡겨놓고 나 할 일은 오로지 주님 한분 모시고 천국 건설하는 이것만이 나 할 일이지, 이거는 두고, 뒤로 두고, 이거는 버려두고 이거는 발 아래 밟아놓고 어쨌든 올라가야 된다, 많아야 된다, 높아야 된다, 커야 된다, 귀해야 된다, 인정받아 봐야 된다, 평안해야 된다, 물려줘야 된다, 이래가지고 세상 것을 마련해서 거기에 자기 전심 전력 쏟고, 마음을 쏟고, 욕망을 거기두고 노력하는 것은 기독자의 생활은 아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은, 인생은 이래도 저래도 끝이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해두고 살아야 되겠다 그말입니다.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인생은 끝이 있고, 세상은 끝이 있으니까 이게 전부가 아니고 이게 최종이 아니고, 이것이 최고가 아닌 겁니다. 이거 말고, 이거는 하나의 과정이니까. 이것은 최종과 궁극을 위해서 주신 이용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늘 궁극을 생각하며, 최종을 염두해두고 그것을 위해서 오늘을, 현실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기독자들의 세상 생활이다 이걸 염두해두고 살자 그말이고, 이걸 가리켜서 야고보서 5장에는, 주의 뜻이면 우리가 이것 저것을 하리라, 주의 뜻이면 공부도 하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돈도 버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결혼도 하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자녀도 낳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사업도 하는 것이고, 주의 뜻이면 이것도 저것도 하리라 그리 할 것이지, 주의 뜻은 빼놓고 아무 도시에 가서 내가 내 계획을 가지고, 내 계산을 가지고, 내 계산범위를 가지고 이것저것을 하리라고 하는 것은 허탄한 자랑이고, 그 자랑은 결국 자기가 하나님된 거기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악이다 그말입니다. 아무리 계획을 세워보지요? 계획대로 되는가. 되는 것 같은데 그 되는 것이 다행스럽게 주의 뜻에 맞아서 되는 것이면, 만약에 사람이 자기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을 세워가지고 돈을 벌든지, 공부 하든지 그래가지고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계획대로 되었으면 그게 뭡니까? 자기 계획한대로 결과가 이루어졌습니다. 그게 뭐지요? 주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 계획을 세울때 주의 뜻을 생각지 아니하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면 결과는 그리 이루어졌으니까 그거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졌는데 자기는 뭐 된겁니까? 자기는 거기서 이용물만 된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서 자기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다행스럽게 맞아서, 일치가 되어서 자기가 세운 계획대로 이루어져서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 이루어졌는데,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없이 자기만 그리가지고 계획 세워서 이루어졌다면, 그게 하나님 편에서는 뜻대로 되었지만은, 자기는 거기 이용물만 되었지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은 아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그리 계획을 세워도 그리 되는 것이고, 자기는 달리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의 뜻이면 그리 가게 되어있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뭔가 자기 모르는 앞날을 찾아갈때는 한 걸음 물러서서, 내가 계획을 세우지 아니하고 주변 상황을 지켜보는게 좋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두고, 생각하고, 말씀으로 생각을 하고, 말씀에서 바로 답이 나오는 것이면,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면 그대로 가면 되는 것이고, 말씀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면 말씀을 가지고 찾아보고, 내 신앙과 자타의 구원과 모든 주변 환경, 현실 객관의 모든 역사를 살펴가지고 그래가지고 찾아보면은 어느정도 알 수 있고, 그래서 최대한 자기를 자기 욕망, 자기 계획, 자기 꿈을 배제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뜻만 두고 그래 찾아나가는데,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려고 계산 했습니까? 요셉이 총리되려고 생각 했습니까? 요셉의 생애에, 하나님이 꿈으로 보여주셨지만은 그러나 그게 막연한 것이었고, 그런 꿈이 있었지만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요셉이 이거는 총리 되는 것이다, 왕이 되는 것이다, 그런 계획을 세우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형들 통해서 애굽에 팔아 먹었습니다. 팔았는데, 팔렸지만은 종으로 팔렸으니까 더 비참하게 되었지, 꿈과는 더 멀어졌지, 계획 세우지 않았는데, 거기서 믿음 지키고 하나님 뜻에 충실하니까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 보냈습니다. 요셉이 잘못해서 감옥 갔습니까?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 갔습니다. 감옥 갔는데 거기서 충실했는데, 또 하나님께서 또 바꿔서 두 관원장 보냈고, 그리고나서 뒤에 가서 보니까 그게 총리되는 그런 과정들이었다 그말이지요. 자기가 계획 세우지 않았습니다. 믿는 성도의 가는 길이 다 이러한 겁니다. 그러니까 오전 말씀하고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끝이 있는 세상, 인생은 다 끝이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하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다. 두 번째는 이 세상이라는 곳은, 세상이라는 장소는, 이 세상에 내 주변에 있는 모든 환경은 전부다, 이 세상 모든 생활은 그 속에 둘러싸여서 세상을 살아가는 나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 언행심사 하나하나는 전부다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게 전부 영원한 종자가 되어지며, 영원의 종자가 되어지며, 농사 짓는 것이 되어지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 보상과 보응의 근거가 되어지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이 세상 생활이라 하는 것도 두 번째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말하자면은 어제는 오늘의 종자였고, 오늘은 어제의 결과고, 오늘은 내일의 종자고. 그래서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내일의 결과가 달라지고, 과거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현재 내 모습이 그대로 되어진 것처럼,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가 자기 현실 생활에서 뭔가 좀 불편한 것, 원치 않는 그런 상황이 닥치면 원인을 찾아봐야 됩니다. 그거야 사람 생각에, 과거에 그래 살았으니까 오늘 이리 됐다고 하지만은, 전혀 상관없이 길을 가다가, 길을 갔는데 갑자기 어디서 돌맹이 날아와서 이마를 딱 맞아서 이마가 터져서 피가 나고 다쳤다, 이것도 과거 생활하고 연관이 있는 것인가? 나의 과거 생활하고 상관이 없는 것인데, 일면 보기에는 그런 것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것도 자기 생활하고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리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곰곰이 찾아봐서 다 연결시켜 볼 수가 있어서, 그래서 두 번째는 이 세상은 영원의 종자다, 영원의 흔적이다. 세상 생활은 막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보상과 보응의 심판의 근거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 모든 세상 생활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내가 산 모습을 그대로 가져가서 하나님께서 딱 그대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거봐라, 이랬으니까 이래 되는 것이 합당하지 않으냐.
그다음 세 번째는, 이 세상은 뭡니까? 세상은 뭐하는 곳이라고요?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입니다.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두 번째하고 좀 중복되겠지만은. 이 세상은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이다. 이 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사로가 그랬던 것처럼, 마련되는 것은 피동인데, 하나님께서 내게 자유성을 주셨기 때문에 마련하는 것이라고 능동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든, 원치않든 세상은 천국 아니면 지옥이 마련되는데, 내가 주체가 되어가지고, 내가 능동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게 되어진다 하는 겁니다. 크게 두 번째는, 본문에서 내세를 볼 수 있습니다. 사후세계.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내세를 보니까 부자는 음부에 갔고, 나사로는 낙원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낙원이 어디냐?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 음부는 어디라고요? 지옥의 대기소. 그래서 천국 들어가기전 임시로 거처하는, 그래서 낙원은 무궁세계지만은 일단 무궁세계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시작되기전, 임시거처하는 그런 낙원, 대기소, 천국의 대기소, 그러면 천국은 주님 재림하시고 나면 영계와 우주가 다 통일된 그 나라가 천국이고, 그 천국은 아직까지 오지 않았고, 시작되지 않았고, 역사 이래로, 창조 이후로 세상을 떠나간 모든 성도들 중에서 천국 갈 성도들과 그 모든 기능들은 전부 낙원에서 대기하고 있고, 반대로 지옥 갈 모든 사람과 기능들은 전부 음부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천국은 어떤 곳이냐? 천국은 첫째, 하나님이 계신 곳. 천국에는 하나님이 계셔서 그분이 왕이 된 곳, 그분이 실질적으로 이제 왕이 되어서 당신이 다스리는 그 나라. 진리가 법이 되고 하나님이 왕이 된 그 나라. 두 번째는 그 나라는, 어떤 사람만 가느냐? 그 나라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인 모든 행위,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모든 일, 그런 요소들만 들어가는 나라가 천국이라. 그러면 천국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든지, 하나님과 상관없는 언행심사, 일, 그런 요소들은 그 나라는 들어갈 수 없는 나라가 천국, 하나님 계시는 곳이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사람과 그 뜻대로 움직여진 모든 행위, 그 일 그런 요소들만 가는 나라가 천국이고, 그래서 그 나라는 모든, 하나 더 그러면 하나님의 그 뜻대로 되어진 그 뜻이란게 뭔가. 그것이 말하자면은, 세상을 살되 자기 위해 살지 아니하고 위로는 하나님을, 옆으로 아래로는 다른 사람, 타를 위해서 살아간, 타를 위해 산 사람, 타를 위해 산 모든 심사, 그런 일, 그런 요소들만 가 있는 곳이 천국이다. 자기를 전부로 삼아 자기 위해 산, 자기만 생각을 하고 자기만 위하고 자기 좋게 한 이런 홍포 입은 부자 같은 이런 사람과 행위요소는 갈 수 없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산 그런 사람, 그런 요소만 가는 곳이 천국이라. 그러면 오늘 세상에 살되, 늘 밤낮으로 나, 나, 나 좋게 나 편하게, 나 기쁘게, 나 영광스럽게, 나를 위해서, 자기만 생각을 하고 자기 위해 산 그 모든 요소는, 그런 순간 순간은 이게 천국에 맞는 것이 아니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부부라면, 남편은 자기보다 아내를 먼저 생각을 하고, 아내는 자기보다 남편을 먼저 생각을 하고, 우리 여기 처녀들, 이래 예수 잘 믿는 사람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남편은 아내만 생각을 하고, 아내는 남편 먼저 생각을 하고, 남편이 자기 권위, 자기 입장, 자기 위신, 자기 몸, 자기 편한 것, 이걸 챙기고 아내를 덜덜 볶아재끼고 자식을 볶아재끼면 그것 참 문제입니다. 그런 남편들, 그런 아버지들의 그 요소는 전부 어디 간다고요? 그거 지옥갑니다 전부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그때의 그 생각, 그 행위, 그 요소는 전부 지옥에 가는 것이고, 천국 못갑니다. 믿는 사람이 순간 순간을 살 때 나보다는 먼저 하나님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 요소, 그 움직임, 그 생각, 그 마음, 그것이 바로 천국에 맞는 그런 요소들이고 그런 기능들이다, 그런 사람이다 그말이지요. 그리 되어지고, 그래가지고 천국에서 영원히 하는 일은, 주님 한 분 모시고, 모두가 다 자기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살았으니까 그래서 성경에 딱 그대로 몸에 지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사람의 입이 밥을 먹으면, 입이 밥을 먹으면 입맛이 있다 그러지만은 입맛이 없어도 밥을 먹어야 되고, 손이 맛있는 음식을, 눈이 보고 손이 가져다 입에 넣습니다. 그러면 입이 그 맛있는 음식을 이를 가져서 씹어서 먹으면 이빨은 힘들고 대고, 입도 대고 손도 대고 그런데 그래 먹으면 그것이 전부다 눈과 손과 이와 입에 수고로 그 수고를 가지고 이게 전부다 귀에도 가고, 눈에도 가고, 머리에도 가고, 팔다리에도 가고, 오만데 다 뻗어나가는 것처럼, 발이 걸어가므로 그 발이 온 몸 다른 지체 전부다를 좋게 하는 것처럼, 발이 움직여서 운동을 하면 온 몸이 다 건강해지는 것처럼, 심장이 박동을 하면 그 심장에서 피가 막 이게 곳곳으로 다 보내가지고 그렇게 온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지체 지체 요소 요소 하나하나 전부다가 다 각각 저 하나만 위해 살지 아니하고 전몸 전체를 위해서 각 지체가 움직여 사는 것처럼, 그래서 그 몸이 활동을 하므로 여러 가지 세상에서 필요한 그런 일을 하는 것처럼, 천국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전부 자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타를 위해 사는 그런 사람, 그런 요소들만 모였기 때문에 그 모든 요소가 다 한몸을 이루어가지고 전부다 각각 그 자기 역할을 다 자기 위한 것이 아니고, 전체를 위해서 하는 그런 역사를 하므로 그 전체가 다 하나 되어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 나라가 천국이다. 그래서 이것도 세상 말에 그랬다 그러지요. 미국에 유명한 대통령, 젊어서 암살 당한 대통령 이름이 뭐지요? 케네디 대통령이 그랬다던가요? ‘여러분들이 국가가 나를 위해서 뭔가 해주기를 생각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을 하라’ 그런 유명한 말 했다 그러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개체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개체를 위하는 이것이 사람의 몸이라는 겁니다. 천국이란 곳이 그런 곳입니다. 말하자면은 한 사람 한사람이 전체 천국의 한몸을 이루고, 주님 몸을 이루고, 그러면 그 몸 전체는 그 한사람 한사람을 영원히 위하게 되는, 영원히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이 나라가 천국인데, 이런 천국의 속성, 그 나라 맞는 그런 인식과 사상과 생각과 기능과 이런 것들을 이 세상에서 연습을 해놔야 그게 천국 가서 맞는 것이지, 자동차 부속이나 기계 부속을, 좀 부속이니까 안 맞지만은, 맞추려면 그것을, 동그랗게 생긴 것은 네모잡이로 된 것을 깍아가지고, 선반에 돌려서 깍아가지고 거기 동그랗게 만들어서 맞도록 만들어야 그걸 끼어맞추는 것이지, 맞지 않는게 안되는 것처럼, 이거는 기계니까 생명없는 그렇지만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천국에 성격의, 성질의, 본질 본성에 맞는 자기라는 사람의 모든 요소가 되어져야 천국에 맞게 되는 것이지, 그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은 전부다 자기 중심으로, 자기 위해서 살아서 지옥에 맞도록 그래 살았고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 기능 하나하나 요소는 전부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 사람이 천국에 가면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안 맞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부자가 나사로와 아브라함을 보니까 어떻다고요?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그다음 뭡니까? 저가 음부에서, 눈을 들어,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그다음 뭡니까? 성경 보시지요? 000샘 한번 읽어보지요? 23절,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그다음 뭡니까? 멀리, 멀다는 말은 무슨 말이지요? 거리가 한참 떨어졌다 그말입니다. 이곳은 멀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는 지금 어떤 곳이라고요? 음부와 낙원이니까 무엇을 초월했다고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했으니까, 공간을 초월했는데 멀다는 말이 해당이 됩니까? 공간을 초월했는데. 미국과 한국은 먼 나라입니다. 멀다는 말은 공간의 제한을 받을때 해당되는 말인데, 공간을 초월한 세계에 멀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부자는 낙원하고는 거리가 너무 너무 먼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도무지 안 맞는 사람. 낙원하고는 천리 만리 떨어진 음부에 맞는 그 사람으로 만들어져있으니까 그 음부에 가서 낙원을 보니까 아득하게 먼 겁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왜? 평생을 그리 살았으니까. 음부에 맞도록만 살았으니까 그래 평생을 자기를 만들어 나갔으니까 그래 만들어진 그 사람이 낙원에 보내봐야 튕겨나가는 겁니다. 못 견디는 겁니다. 들어갈 수도 없을뿐더러 들어가봐야 거기 못 견디고 나올 수 밖에, 쫓겨날 수 밖에 없고, 제 스스로 못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천국이란 곳은, 이 세상에서 살 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고 모시고 늘 생각을 하고 두려워하고 그분의 뜻을 찾아서 그분 뜻대로 자기 아닌 하나님과 타를 늘 염두에 두고 밤낮 생각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사나니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 우리는 아직까지 그만큼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말씀들을때, 백목사님 설교록에 그런 내용도 나옵니다. 진리를 깨닫고 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오로지 주님 위해서, 주님 원하시는 형제 구원 위해서 사는 사람, 하나도 빠짐없이 그렇게 사는 사람 있다. 그렇게까지 그럴까 싶은데 그런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홍포 입은 부자처럼, 물 한방울도 빠짐없이 요렇게까지 자기 위해 산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는 낙원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안 맞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시대가 지나갔지만은, 공산주의 사상으로 똘똘 뭉쳐가지고 사상과 인식과 정신과 마음과 행동 생활까지 그렇게 공산주의화 되어서 그래 산 그 사람, 평생을 그래 산 사람은 자본주의 세상에 내놓아도 그 사람은 못 삽니다. 아무데 가도. 통제받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생활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탈북자들이 이남에 와서 살면은 적응기간이 적어도 몇 년 걸린다 그러지요, 한참. 처음에 와서는 그냥 어쩔 줄을 모르는 겁니다. 그런 환경에 그래 젖어 살다보면 사람이 완전히 그런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다른 세계에 갖다놓으면 못 사는 겁니다. 평생을 방탕한 생활하고 자유 분방한 생활하고 돌아다니는 그런 생활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닌 그런 사람을 직장에 집어넣든지, 통제하는 그런데 딱 집어넣으면 그 사람은 거기 못 삽니다. 죽고 말지. ‘차라리 죽고 말지, 못 살겠다.’
이 세상 평생, 7-80년 평생을 전부 자기가 왕이었고, 자기 위해 살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고, 하나님은 눈꼽만큼 생각 없고, 다른 사람 생각지 아니한 그 사람이, 천국에는 하나님과 타를 위한 그런 사람만 모인 곳인데 거기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거기 넣어놔도 못산다 그말이죠. 들어갈 수 없을뿐더러, 들어가도 이 사람은 제가 스스로 지옥으로 기어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지옥은 따지고 보면은, 하나님이 값을 갚아서 보응해서 지옥 보내는건데, 한꺼풀 더 들어가보면 지옥은 전부 스스로 다 기어들어가는 겁니다. 그리 갈 수 밖에 없으니까. 지옥간 존재들을 천국 집어넣으면 그들은 천국이 지옥입니다. 지옥이 지옥이 아니고. 천국 간 사람들은 그 나라는 이런 나라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들이 천국 마련하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천국은 자기에게 없는 겁니다. 안 보여도 잘 몰라도, 어쨌든 부족해도 하나님을 늘 기억을 하고 그분의 뜻을 생각을 하고 그분 뜻을 찾아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사는 요런 요소들, 이런 사람들만 모여가지고 한몸을 이루어서 영원토록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게 천국이고, 반대로 지옥에는 하나님이 없는 곳이라 그랬는데, 하나님이 없어서 없는 곳이 아니고, 그분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지만은, 땅 위에서 하나님 없이 산 그런 존재들, 그런 것들만 모였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이 계셔도 자기에게 실제 은혜적으로, 적용적으로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는 세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하나님 은혜도 하나도 없는. 그리고 전부 모조리 자기 위해서만 산, 그래 산 사람과 요소들, 그런 행동, 그런 일들만 모인 곳이 지옥이니까, 하나가 모여도 자기, 열만 모여도 자기, 그러니까 전부다 자기만 위해서 살았으니까 그 지옥에 가서도, 음부 가서도 전부 자기도 자기 위해야 되겠고, 다른 것, 다른 사람들도 모든 일들 전부다 끌어붙여서 자기를 위해야 되겠는데, 문제는 거기는 전부 그런 인간들, 그런 요소들만 모였으니까 다 각각 자기에게로 끌어당겨야 되겠고, 자기 위하도록 만들어야 되겠는데 그리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연습은 그리 되어있는데 충족시키지 못하니까 죽을 지경이지요. 마음도 몸도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그게 날이 가면 갈수록 더해지니까 이 지옥의 고통은 이런 고통입니다.
그래서 오전에 잠깐 말씀드린, 사람이 세상에서 모든 고통은 다, 물론 물리적으로 몸이 아프면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인간의 모든 고통은 어려움을 가리켜 시험이라 그러는데, 성경입니다. ‘네가 하나님에게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아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라’.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욕심이 없는 사람은 번뇌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조금만 인식을 바꾸고, 생활모습방편 바꾸면 참 세상을 편안하게, 수월하게, 모두 다, 자기도 귀하게 되고, 모두 아름답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데 그래 되지 아니하고 욕심이 하나 들어가면 눈이 어두워지고, 그때부터는 번뇌도 많고 고민도 많고, 고통도 많아지게 되는 겁니다. 이게 어떤, 한 두사람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다 공통적으로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교역자가 교회를 두고, 교인을 좀 많이 전도해서 교회를 부흥을 시켜야 되는데. 연보가 많이 나와야 되는데. 교인들이 교역자 말을 잘 듣고 순종을 잘 해야 되는데. 거기 마음을 두고 그렇게 만들려고 애를 쓰면 안되면 안될수록 고통입니다. 그거는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알고보면 그목사 교역자의 욕심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그래서 종종 한번씩 말씀드렸지만은, 교역자가, 목회자가 목회하는 일의 첫째 목적이 뭐냐? 그거는 교회 부흥은 목적이 아닙니다. 만약에 목사가 교회 부흥을, 경제나 사람이나 많이 전도하는 것 좋지만은, 부흥을 첫째 목표로 두고 목회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거는 하나의 열매로 맺어지는 것이고, 목자는 목회하는 그 생활에서, 가정주부는 가정생활에서, 직장인은 직장생활에서, 그 생활에서 목적이 뭐냐? 자기를 참 사람, 하나님 원하시는 사람 만들어가는 그 조건에 가장 좋은 조건이 성경 읽으면 좋아하고, 기도하면 좋아하고, 온전한 사람되면 교인들이 더 좋아하고 부흥이 되니까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목사도 하나의 직업이지, 이것이 천국가는 그런 출세길도 아니고, 목사 그 자체가 성공도 아닌 것이고, 목회자가 목회를 잘못하면 그만큼 심판도 크다 그랬습니다. 모든게 다 마찬가지지요. 그러니까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
그래서 욕심을 가지면,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에 대해서 돈 욕심을 가지면 그때부터 눈이 어두워지고, 의사가 돈 욕심 가지면 그때부터 그 사람 의술은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고, 모든게 다 그렇습니다. 권력가가 권력에 욕심을 부리면 그 권력에 반드시 문제가 생겨지는 겁니다. 욕심에 방향이 달라 그러하지. 공부하는 사람도 지식에 욕심을 가지면 그 지식에도 문제가 생겨지는 겁니다. 명예욕도 마찬가지고, 다 버리고. 안 믿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릅니다. 그들은 단순히, 그래서 불교는 자기를 다 비우라 그럽니다. 무아를 만들어라. 자기 있는데 자기를 없어버리는 그게 불교의 최고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 부인한다기 보다는 그들은 없이 만드는 것. 우리는 없는게 아닙니다. 자기를, 옛자기를 부인하고 참자기를 만들어나가는 우리들입니다. 거기에 잘못된 욕심, 옛사람 욕심 그놈이 들어서 온갖 문제를 다 일으키고 고통을 만든다 그말이지요. 이거는 평안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평안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욕심입니다. 안일욕, 평안욕. 하나님이 고난 주시면 고난도 받아야지. 어렵지만은. 하나님이 가난주시면 가난해야지. 하나님이 병을 주시면 아파야지. 일부러 찾아가는 건 아니지만은, 나로써 안되는 것이면 그만 다 맡겨놓고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그것만 하면은 그만 편안하게 되는 겁니다. 거기 잘못하면, 그게 또 강조되면, 잘못하면 또 무사안일주의가 되어서 게으르기 쉬운데, 이걸 고치고 양면을 다 보면서, 그래서 지옥은 이런 곳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 자기만 생각한 그런 사람, 그런 행위, 그런 일, 그런 요소만 모인 곳, 그래가지고 자기 위해서 영원히 살고 싶은데, 자기 도울 존재 하나도 없는, 자기 위해 주는 존재 하나도 없는, 그러기 때문에 영원한 고통이 계속되는 거기가 바로 지옥이다 . 그래서 이 세상이란 곳은 어떤 곳이냐. 내세를 준비하는 세상이고, 내세 준비는 이 세상에서만 할 수 있다 하는 겁니다. 이 부자가 물한방울도 세상에서 준비하지 않으니까 없었고, 살아생전에 잘못 깨닫고, 인생을 잘못 살고, 형제들까지 잘못 인도하니까 죽고 난 다음에 나사로 보내서 부탁했지만은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 부자가 세상에서 이 사후세계를 봤다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겁니다. 그런데 보지를 못했고, 보지 않았고, 보여주셨지만은 보지 않았고, 그러기 때문에 결과는 요래 되어진겁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가 다 약하고 어둡지만은 이 말씀 한번 더 생각하면서 오늘에 좀 멀리보고, 오늘의 내세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모릅니다. 사람은 모르지만은 성경에 이래 되어있으니까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고 바로 알아서 이 세상을 내세를 준비하는 기회로 삼는 그런 우리가 될지언정, 사후세계를 깨닫지 아니하고, 보지를 아니하고 이 세상만 염두에 두고 사는 그런 참 어리석은 홍포 입은 부자같은, 실패하는 우리가 되지 아니할 수 있도록 자꾸 자기를 다지고 채찍질하고, 넘어지면 또 일어서고,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내세를 준비하며 사는가? 내 생활은 나사로 같은 생활인가? 홍포 입은 부자 같은 생활은 아닌가? 늘 염두해두고 하루하루를 좀 깨어 사는 그런 우리가 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깊이 좀 생각해보십시다. 내용자체는 전혀 어려운 말씀이 아니지만은 실감하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은 무엇하는 세상인가? 끝이 있는 세상입니다. 영원에 종자가 되어지며, 하나님의 심판에 근거되는 세상입니다. 천국과 지옥이 마련되는 세상입니다. 사후세계는 낙원이 있고, 음부가 있습니다. 낙원은 천국의 대기소고, 음부는 지옥의 대기소입니다. 천국은 영원무궁세계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이 왕이 된 나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진 그런 사람, 그런 요소만 모여가지고 모두 한몸이 되어서 영원토록 하나님 영광위해 사는 그 나라가 천국이고, 지옥은 반대입니다. 하나님 안계시는곳, 하나님의 은혜없는 곳, 자기만 전부 삼아 사는 곳, 그런데 그게 되지 않으니까 영원히 고통으로 계속 되는 나라. 그곳이 바로 고통스러운 곳이 지옥이니까 오늘의 우리는 내세를 생각을 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세상으로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