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9-주후(신8:1-4)
말씀으로 살 것이라2014-01-19조회 412추천 26
본문: 신8:1-4
제목: 말씀으로 살 것이라
요점:
1. 신명기(申命記)
1)기록한 사람
- 모세 오경의 마지막 성경
- 혹자는 모세의 사후 기록을 근거하여 모세가 아니라 하거나
- 모세의 사후 기록은 다른 사람이 기록하여 붙였다고 하나
-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
2)기록된 내용
- 광야 생활에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
-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
3)이름의 의미
- 신명기(申命記)는 명령을 다시 기록했다는 의미
- 이미 선포하신 말씀을 다시 깨우쳐 알리시고 기록한 말씀
2. 본문
1절: 계명을 지키면?
①살고: 계명은 살리는 생명의 말씀
②번성하고: 계명은 번성케 하는 말씀
③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계명은 천국을 얻게 하는 말씀
2절: 40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
①낮추시며
②시험하사
③마음이 어떠한지
④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
- 광야 40년은 세상 평생의 기간
- 때로는 낮추시고, 때로는 높이시고 여러 가지로 시험하셔서
-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지, 믿는지 안 믿는지
의지하고 바라보는지 아닌지, 순종하는지 아니하는지를 알리려
목적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자 만드시려
3절: 만나를 주신 이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만나는 먹어도 결국은 죽는 육의 양식
- 육의 양식 만나를 주신 것은 의식주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계명을 순종하고 살라 하시는 것
- 즉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려 하시는 것
3. 떡으로 사는 생활
①떡이란? 식생활, 의식주, 밥의 힘, 의식주의 힘
②떡으로 사는 것은?의식주의 힘으로, 의식주를 목표로, 육신의 힘으로, 육신 세상을 목표로 사는 생활
4. 말씀으로 사는 생활
①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양식
②말씀으로 사는 생활은?
말씀의 가르침 받아, 말씀의 인도 따라 천국을 목표로 사는 생활
5. 성도의 생활은: 말씀으로 사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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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30119 주후
신명기 8:1-4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은 여러각도로 말할 수 있지만은 또 하나 말해본다면, 하나님의,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은 규칙을 지키는 생활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규칙이라 그말은 법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원칙, 규칙 그것을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그 정해놓으신 법칙을 벗어나서 제 하고 싶은대로 한 것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생각에 어떠하든지, 자기 형편이 어떠하든지, 자기 마음과 기분과 성격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하고 그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법칙을 받아들여서 그 법칙대로 자기 생활과 언행과 모든 것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누구의 마음입니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로 그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아래 꿇게 하시고 그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해서’, 예수님은 천상천하 모든 사람을 다 당신의 사람으로 얻으셨는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 그 비결이 종이 된 것이였습니다. 그 마음을, 종되는 마음을 가져서 종이 되어서 낮아졌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시고, 그게 모든 사람을 얻은 비결이었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비결이었습니다. 이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아니합니다. 오늘도 사람을 얻는 방법은 그것이고 신앙생활은, 구원은 사람을 얻는 것이 구원이고, 이 방법은 종이 되는 것인데, 종이라는 말은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종이란 말은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자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유가 뭔가요? 자유가 무엇입니까? 자유는 무엇이 자유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게 자유고,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무슨 말이지요? 제가 제일 처음에 말씀드린게 뭐였습니까? 신앙생활은 뭐라고요? 규칙을 지키는게 신앙생활입니다. 규칙을 지키려면 뭐가 없는 겁니까? 규칙을 지키려면 뭐가 없는 겁니까? 자유가 없는 겁니다. 그 자기 타락한 인간의 자유를 부인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신앙생활은 그것을 연습하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성격대로, 자기 기분대로, 자기 편한대로, 자기 좋은대로 하는 그게, 그것을 다 뽑아내고, 내가 내 생각이 어떠하든지, 내 형편이 어떠하든지, 내 기분이 어떠하든지, 내 성격이 어떠하든지, 이런걸 다 무시하고 막론하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시키는대로 거기 맞추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을 연습하는게 신앙생활이고 그게 완성이 되면 신앙의 완성이다 그리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자리 앉는 것, 나 앉고 싶은대로 앉는 것은 뭔가요 그게? 학생들, 자기 앉고 싶은대로 앉으면 그게 무엇인가요? 자유지요. 그 자유가 무엇인가요? 그게 신앙의 적입니다. 그걸 뽑아버려야 되는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그것 뽑지 못하면 결코 신앙생활은 못합니다. 자기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 신앙생활은 까마득 합니다. 자기 하기 싫은 거 안하면 신앙생활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우리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라가서 주와 같이 되는 겁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첫째 뭡니까? 연보 많이해라? 주일 잘 지켜라? 성경 많이 읽어라? 심방 전도 많이 해라? 주님을 따라가려거든 제일 처음에 뭐부터 하라 그랬습니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라’ 아무리 연보 많이 해도 이거 안하면 소용 없습니다. 아무리 주일 지켜도 자기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외워도 자기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 따라가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그 자기가 뭐냐? 하나님의 말씀은 규칙입니다. 원칙입니다. 길이고, 구원의 도리입니다. ‘이렇게 해라’ 정해놓으신 법입니다. 그 법대로 하라는 건데, 그 법을 어기는 것. 어기고, 자기 원하는대로 하는게 자기입니다. 그걸 뽑아버려라 그말입니다. 이거는 우리 일상생활에 굉장히 모든 면에 적용이 되어집니다.
요즘은 개성시대고 자유시대입니다. 그래서 인권을, 인권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미명하에서 온갖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게 타락한 지금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 인간의 타락한 원죄성 그 자유를 길러주는 것인데, 그게 전부 신앙과는 적이 되고, 그래서 말세가 되고 사람들이 살기 좋은 그런 자유가 많은 그런 세상이 되어져 갈수록 신앙생활은 점점, 한편으로는 좋은데 한편으로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 그런 아주 모순적인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장소도, 예배 드리는 장소도 아무데서나 드리는 것이 아니고 주일예배는, 예배는 반드시 예배당에 가서, 물론 가정예배 무슨 예배 있지만은 그거는 거기서 하지만은, 정해놓은 예배는 그 시간에, 그 장소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이 말이 나오니까 오늘 또 연결이 안될 수가 없네요. 오늘 찬송 인도하시는 선생님이 5분을 넘어섰거든요. 이거는 규칙을 어기는 겁니다. 이런거는 하나씩 고쳐나가야 됩니다. 하다보면 1분, 2분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으면 미리 생각해서 시간 딱 지켜야 됩니다. 이거는 시간이란 것은 모든 사람과의 약속입니다. 약속, 지키는게 지키라고 있는 거지요. 자리 앉는 것, 시간 지키는 것, 정해놓은 장소 이 모든 건 다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에 하나의 규칙이고 법입니다. 연습을 해나가야 되는 겁니다. 학생들도 자리 앉을때 내 편한대로 앉지 마시고 좀 말씀을 듣는데 유익하도록 그렇게 앉는게 복이 됩니다. 보면 그렇습니다. 교회도 보면 어떤 사람은 교회를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자기 마음대로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다녀봐야 흉내만 내는 거지 구원은 안됩니다. 구원이란 것은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 법에 따라서 자기를 맞춰나가는게 신앙생활이고 그게 우리의 구원입니다. 굉장히 이것이 아주 상식 같지만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특별한 모든 역사는 지극히 상식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지, 원칙을 벗어나고 상식을 벗어나서 되는 성공은, 건설은 아무것도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원칙과 상식 그 위에 모든 크고 위대한 일들은 다 건설이 되어진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꼭 기억을 하십시다.
우리 학생들 기록 문답지를 오전에 기록했을껀데, 앞으로는 오전만 하지 말고, 오전에 기록하고 오후에도 좀 들고있다가 같이 기록하십시다. 아니면, 될 수 있으면 조금 신앙이 장성한 학생들한테는 필기장을 주십시오, 요약지 주지 마시고. 요약지 다음주부터 복사를 좀 많이 줄일 겁니다, 반으로 줄이고. 학생들 될 수 있으면 필기장을 가지고 필기를 하십시오. 그래서 문답지도 지금 문답내용을 많이 줄였습니다. 보니까 답만 적으면 아무 별 그게 없으니까 답 적는 사람은 주일 학생이나 아주 어린 사람이 답을 적고, 조금 교회 오래 다닌 학생들은 거기다가 해당되는 설교말씀 들으면서 중요한 것을 자꾸 적는 그런 연습을 하고, 좀 더 장성한 사람들은 필기장 가지고 필기를 하도록 그래하시면 좋겠습니다.
오전에 제가 좀 준비가 부족해서 말씀드린 것 중에 여러 가지 실수한 그런게 있었는데, 말하자면, 몇가지 있는데, 이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한 성경인데, 기록시기가 주전 1500년쯤이랍니다. 주전 1500년이니까 지금부터 몇 년입니까, 000샘? 주전 1500년이면 지금부터 몇 년 전인가요? 3500년전쯤이지요. 그러면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한다면,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는 기록할 그 당시 몇 년전입니까? 인류역사를 지금까지를 6천년으로 본다면, 주전 1500년 지금부터 3500년전에 신명기를 모세가 기록을 하지 않았나 그리 본답니다. 그러면 그 모세가 신명기도 기록했고 창세기도 기록했는데, 시점은 다르겠지만은. 모세 시대에 창세기를 기록했다면,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그 당시, 천지창조와 기록할 그 당시 사이가 몇 년입니까? 모세는 몇 년전의 일을 기록한 겁니까? 수학계산이 금방 안나옵니까? 몇 년전쯤에요? 2500년전쯤, 제가 오전에 3500년전이라 그랬는데 이거는 잘못됐고, 2500년전의 일을 모세가 기록한 겁니다. 그러면 사람이 2500년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지금은 역사 기록이, 그래도 문자가 나오고 글자가 나와서 안다 하지만은 그때는 그런 것도 제대로 없었을때일건데, 그것이 지금과 다르게 모든게 다 그렇고, 그러고 노아 홍수때 모조리 다 홍수로 멸망되고 없어졌는데, 그 노아 홍수로 인해서 세상이 다 단절된 그런 상황에서 모세가 2500년전에 있었던 천지창조의 그 상황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말이지요. 기록한 것은 순전히 영감으로만, 하나님이 알려주시니까 아는 것이지 사람으로서는 절대 모르는 겁니다. 그러기떄문에 모세가 자기 죽은 다음 일, 모세가 죽은 후에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또 이스라엘이 30일을 모세를 위해서 슬퍼 애곡하였더라. 여호수아를 모세처럼 순종하였더라. 이런 것은 모세가 모르는 일입니다. 묘지가 어떻게 됐는지, 30일 애곡했는지, 한 두달했는지, 그들이 여호수아를 순종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세가 죽은 다음 일이니까 모르는데 어떻게 모세가 기록을 했겠는가? 그래서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래서 이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앞부분은 기록했다가 모세 죽은 후의 기록은 다른 사람이 기록해서 갖다붙였거나 그래 되었겠다고 그리 생각을 하나,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시공을 초월한 그 역사를 모르는 소리입니다. 모세가 2500년전의 일을 생생하게 틀림없이 기록했듯이, 자기 죽음 너머의 일도 모세는 영감으로 얼마든지 알 수 있고 기록할 수 있다 그리 보는게 맞겠습니다. 신명기 기록에 대해서 하나 상식으로 기억하십시다.
또, 신명기에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그 과정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그들이 지킬 계명, 또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불순종했는가 이런 것을 기록했는데 그 기록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마지막 자기가 이스라엘을 인도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 가나안땅을 목전에 두고 모세가 ‘너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 마지막 유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씀들입니다, 설교. 그래서 이거는 고별설교다 그리 말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고별설교다 그리하는 말도 있다는데,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과거 있었던 일을 한번 더 그들에게 깨우쳐 알리고 기록한 것이 ‘신명기’. 그래서 그냥 벌로 지나가면 그 ‘신’자를 ‘하나님 신’자로 알아서 하나님의 명령 기록한 성경 그리 알기 쉬운데, ‘신’자가 무슨 ‘신’자라고요? ‘다시 신’자입니다, ‘다시 신’자.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기록한 성경, 이게 신명기입니다. 과거에 말씀하신 것을 한번 더 깨우쳐 기록한 그 성경이 신명기다 이렇게 기억을 하십시다. 그래서 신명기라는 성경의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기록한 말씀, 이게 신명기 이런 의미라 상식으로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죽을때, 그때 모세가 있었던 그 산이 아바림산, 혹은 느보산, 또 비스가산 이름이 다 그 주변 주변 그렇겠습니다. 모압 평지에 있는, 가나안 땅이 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 있는 그 느보산이라는 그 산 거기에서 비스가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리 되있습니다. 호르산에서는 아론이 죽었고, 시내산은 십계명 받은 것이고 그랬는데,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갈 때 정탐을 보낼때 그 기간이 저는 얼른 몇 달, 두달 그리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기록보니까 정탐보낼때 그 기간이 1년이 좀 넘은 때입니다. 출애굽 제2년 2월 얼마, 그게 지나고나서 보니까 그러니까 1년이 좀 넘은 동안에 광야를 많이 다니다가, 빨리 가면 갈 수 있는 길인데 그리 다니다가 1년 좀 지나서 가나안 근처에 도착해서 정탐을 보내가지고 한 그런 일이 되어졌습니다. 이런 것들 상식으로 좀 기억하시면 되겠고, 오전에 말씀에서 1절에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계명인데, 이 계명을 지키면, 그리하면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러면 아무리 말씀이 있어도 이 말씀을 읽지 않으면, 듣지 않으면 소용 없고, 읽고 듣고 알아도 행하지 않으면 그 다음 나오는 효력은 없는 겁니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첫째 어떻게 된다고요? 그리하면 첫째요? 같이 해보십시다. ‘살고, 살고’. 그리하면 산다. 산다는 말은 생명이 있다 그말이지요. 산다는 말은, 움직인다 활동한다 그말이 되겠습니다. 살았다, 살았다는 말은 활동한다,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싱싱하다, 살았구만, 죽었구만. 예배 시간에 예배 드리는 모습 보니까 죽었구만, 꼬박 꼬박 졸고 있으면 죽었구만, 신앙이. 또 눈이 똘망똘망하게 잘 듣고 있으면 팽팽하게 살았구만. 그리 말하지 않습니까? 숨이 딱 끊어지지 않아도 다 죽어가는데, 죽었네 그러고, 또 팔팔하게 살아있으면 이제 살아났네 그리 말합니다. 병이 들어서 꼴막꼴막하고 있다가 그 사람이 병을 이기고 깨치고 아주 건강하게 나오면 죽었는줄 알았는데 살았네? 살았다 그러지요. 원래 죽었습니까, 그 사람이? 안 죽었었는데 살았다 말은, 싱싱하다, 활동한다, 생생하다, 청청하다 그런 말이 되겠지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첫째 어떻게 된다고요? 산다. 죽은 사람이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이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그러면 살아있는 사람인데, 믿는 사람이 이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 말은 싱싱하게, 청청하게, 쌩쌩하게, 왕성하게 되어진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그리 살면은 그 살아있으면 거기서 모든 것이 다 지혜도 살아있고, 총명도 살아있고, 능력도 살아있고, 대통령이 5년 임기 다 되가면 그걸 무슨 현상이라 그럽니까? 권력누수현상인데 그걸 뭐라던가요? 마지막에 무슨 말 쓰는 말 있잖습니까, 왜. 000샘 그걸 뭐라 그럽니까? 예? 아 그거 영어입니까? 그냥 쉽게 말하면 권력누수현상 맞지요? 권력누수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레임덕 인가 하는 그 현상이 생기는데 그거는 살아있어도 그 권력은 죽은 권력. 그래서 그 다음 대통령이 될 확률이 아주 높으면 그 권력을 향해서 사람들은 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는 죽은 권력, 하나는 살아있는 권력. 회사도 보면은 죽어가는 회사, 산 회사 다르지요. 가정도 보면 죽은 가정, 산 가정 다릅니다. 개인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면 너희가 살겠다. 산다는 말은, 싱싱하게 왕성하게, 말하자면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써의 정상적인 모습이 나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서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어쩌면 나타납니까? 말씀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지능이 그를 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를 통해서 나오는 겁니다. 산다는 것 기억하십시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말씀을,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살아야 됩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면 살게 됩니다.
살고, 두 번째는 번성하고, 점점 많아진다는 겁니다. 많아진다, 커진다. 부피로 커지고 숫자적으로 많아지고 점점 넓어지고, 점점 쓸모가 있어지고, 가치가 있어지고, 유명해지고, 사람은 한사람 내나 그 사람인데, 그 사람이 말씀으로 사니까, 명령을 지켜 행하니까, 명령을 지켜 행한다 그말은 앞에 초두에 말씀드린 것 하고 응용을 해보면, 명령 지켜 행한다 그 말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안할 것은 하지 않고, 할 것은 하고, 자기를 꺽고 부인하고 자기 속에 온갖 욕심, 감정, 습성, 이런 죄악의 모든 요소들을 자꾸 뽑아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기를 빗고 깍고 다듬고 꺽고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그 생활을 자꾸 해나가니까 그 사람이 점점 쓸모있는 사람, 가치있는 사람,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언행에서 나오는데, 그 언행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언행심사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하는 말, 그 사람의 행동, 그 사람의 사리판단, 취사선택, 비판 평가 판단 처리 이런 걸 보면 그 사람의 가치가 나오는 겁니다. 어려운 일 맡겨도 하고, 더 어려운 것 맡겨도 하고, 열 사람이 못 하는 걸 맡겨도 이 사람은 하고, 주변 사람 백 명이 맡기는 걸 아무도 못하는데 이 사람은 하고, 천명이 아무도 모르는데 이 사람은 알고 해결하고, 그 주변 사람 만명이 다 물어봐도 모르고 못하는데 이 사람은 만명이 못하는 것을 이 사람은 알고 해결하고, 수십만명한테 물어봐도 모르고 처리못하는데 그 사람은 척척 알고 처리를 하고 그러면 그 사람은 지능이 탁월하고 그 사람의 가치는 올라가고,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을 찾을 것이고, 그 사람의 이름은 점점 퍼져나갈 것이고, 또 하나 응용을 해볼까요? 이게 좀 안 맞는 말인데, 어제 신문에 나왔던데. 세 살짜리가, 네 살때던가요? 네 살때 무슨 대학입디까? 네 살 때, 네 살 아이가, 저는 학교를 많이 안가서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수학에 미분 적분 그런게 있다 그러데요? 네 살짜리가 도쿄대학에 다니는, 도쿄대하면 동경대겠지요? 서울대보다 더 센데겠지요. 거기 다니는 학생 두명하고 네 살 짜리 아이하고 수학의 적분 푸는 시합을 했는데 네 살짜리가 먼저 풀어내더랍니다. 그래서 2천년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신동이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이였는데, 몇십년 지나고나서 보니까 평범한 사람이 되어있더라고. 그때 그러고나니까 온 세상 신문에 다나고 난리가 났었답니다. 실력, 그거는 타고난 그런건데, 그러니까 이름이 자꾸 퍼져나가지요. 근데 그것 참, 한 4-50년 지나고난 다음에, 대학 시험도, 대학도 합격하고, 대학 교수 시험에도 몇 번 낙방하고 겨우 됐다니까 이거 참 생각할 바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큐가 세계에서 제일 좋답니다, 그 사람. 210 이랍니다. 그런데 그리되니까 이름이 자꾸 퍼져나가는 거지요. 사람의 가치라는게 그런겁니다. 번성이란 말의 뜻은 예를 들면 그런게 번성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실력이, 그 사람의 활동이, 가치가, 그 사람 개인도, 가정도, 그 사람의 관련된 모든 게 점점 퍼져나가고, 많아지고, 커지고, 또 넓어지고, 풍성해지고, 가치 쓸모가 점점 있어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진다 그말입니다. 그게 번성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요? 어떻게 하면 그리 된다고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그래서 신명기 28장에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내가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이 거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안되니까,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산이라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가 없는데’, 사람이 뭐라 한다고요? ‘제가 올라가지 아니하고 산만 높다 하는구나’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는, 반드시 그대로 되어지는 말씀인데,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주시겠다는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사도바울도 그대로 이루었고 백목사님 같은 분도 그대로 이루었는데 왜 우리는 안되는 겁니까? 우리는 왜 안됩니까? 그러니까 해보고 안되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성경은 말그대로 다 믿을 것이 아니라 좀 가감이 있는 것이라. 그렇다는 말이지 실상은 그런 것은 아니라’ 그말이, 왜 그런 성경에 대한 가감과 에누리가 왜 나옵니까, 000샘? 죽었네 보니까. 내일 저녁에 연경회 할 사람이 그래 꼬박꼬박 졸아 어쩝니까? 너무 준비를 많이 해서 밤을 샜는가? 옆에 있는 00샘한테 조는게 전염됐네. 찬송할 때 000선생님 팽팽했는데. 옮겨갔네. 잠이란 거는 전염이 된답니다. 왜 그런 말이 나오지요? 성경을 가감하는 그 말, 그런 생각, 인식이 사람들에게 왜 나옵니까? 000샘 왜 나오지요? 조금전에 응용한 그 세상말 인용한데서 답이 나왔습니다. 000샘 왜 나옵니까? 자 한번 해볼까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산이라,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가 없는데, 사람이 어떻게 하고요? 제가 올라가지 아니하고 말은 하기를 산만 높다 하는구나’ 꼭 같겠지요? 하나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면, 살고 번성하고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이 말씀이 성경인데, 왜 사람이 이 말씀대로 안되는 겁니까? 안되니까 하는 말이, 성경은 다 믿을 게 아니다. 좀 그렇다는 말이지, 안되는 것도 있다는 그 말이 왜 나온다고요? 왜 그말이 나온다고요? 자기가 해보지 않고, 말씀대로 다 살지 아니하고 말씀은, 말씀만 안된다고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에는 거짓이 없고 가감이 없습니다. 인간이 거짓되고, 인간이 가감을 하는 거지요. 지켜 행하면 첫째는, 니가 살 것이다. 지능이 팽팽하게 되어질 것이다. 너의 권위가 새파랗게 살아있을 것이다. 믿음의 가정에서, 믿음의 가장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권위가 새파랗게 살아있어야 되는데, 왜 권위가 없느냐? 왜 권위가 죽었느냐? 말씀대로 살지를 아니하니까.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왜 어머니의 권위, 어머니의 그 사랑 이런게 살아있지 못하느냐.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니까. 공부하는 학생이 왜 학교에서 자기 지식이 살아있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고 그리 되어지느냐?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니까. 안해서 그런것이지 하면 된다는 겁니다. 왜 우리가 번성하게 되지를 못하느냐? 그리 다 살지를 못하니까. 그다음 세 번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내가 들어가서 얻을 것이라.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자기 천국 삼는 것은,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는 겁니다. 이게 1절 말씀입니다, 1절 말씀.
그래놓고 2절에 말씀하시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럭하라’ 40년 광야에, 이스라엘 광야 생활 40년은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 우리에게는 세상 생활입니다. 한 평생 세상 생활이 우리들, 구약 시대 광야 생활입니다. 우리의 세상 생활입니다. 이걸 기억하라. 그러면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고, 40년 동안. 그 광야를 어떻게 인도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고, 오늘 우리는 믿는 사람을, 나를 세상에 보내시고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여러 과정 거쳐서, 여기 40년 더 된 분 많이 계시지요? 나를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자기 인생 생애를 믿는 사람이면 기억하라.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는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 40년, 그런데 그 광야 40년을 인도하신 것은, 어떨때는 올렸고 어떨때는 내렸고, 어떨때는 굶겼고 어떨때는 배가 불러 먹기 싫도록 먹였고, 어떨때는 힘이 들어 죽도록 만들었고 어떨때는 수월하게 했고. 온갖 여러 가지 형태로 이스라엘을 광야 40년에 인도하셨는데 그리 하신 것은, 인간이란 것은 전부 욕심이 있고 자기 주관이 있고, 또 그 속에 왕이 되고자 하는 그런 요소가 다 있어서, 욕심이 있어서 인간은,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제가 하나님이 되려 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 마음대로. 그리 하고 싶은게 인간인데, 인간이 마음대로 되던가요? 계획을 딱 세워놨는데, 그만 무슨 일이 하나 딱 생기니까 계획이 다 틀어져버렸습니다. 사람 마음대로 되는게 있습니까? 뭐든지. 사람 마음대로 하게 둔다면, 자기 마음대로 모든 걸 다 하겠지요. 그런데 이 세상일은 인간 마음대로 안되는 겁니다. 거기서 알 것은, 세상 모든 일이 사람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이 모든 걸 주권하시는 것이라. 인생이란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 안하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 이 인간 자기 위치를 바로 알게 하시는 것이 ‘너를 낮추시며’ 그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자기, 말하자면 세상 아이들말로 주제를 바로 알게 하는 겁니다. 너 주제를 바로 알아라. 너는 인간이라, 피조물이라. 코에 호흡이 있어서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존재라. 이런 자기 자신인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광야 40년을 주셨고, 오늘 우리에게 평생의 세상 생애를 주셨고, 그 세상 생애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고 계신다 그말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시며’, 시험이라 말은, 시험은 뭐하는 겁니까? 시험한다 그말은 그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한다 그말이지요. 학생들 시험치면, 시험 치잖습니까? 필기 시험, 실기 시험, 무슨 시험, 면접 시험, 시험이라 말은 과정을 거쳐가게 한다 그말입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과정을 거치게 하시며,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과정을 거치게 하시며, 그래가지고 그들 마음을 하나님이 알려 하셨는데, 그들 마음을 하나님이 알려 하셨다.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시험안해보면 모르십니까? 하나님은 전지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시험을 안해보시면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압니까, 모릅니까? 하나님이 모르십니까? 다 아는 전지자입니다. 그런데 왜 시험해서 알려하신다 그럽니까? 이 말씀은, 그리 시험해서 그들에게 알리겠다 그말입니다. 그들 자신에게,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은 믿는다는 것은 입으로만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 의지한다 하지만은 그 믿고 의지하는 것은 입으로 지식으로만 믿고 의지하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믿는다 하지만은 좋을때만 믿는 것이고. 수월할때만 믿는 것이고, 너한테 맞을때만 믿는 것이고. 네 좋을때는 믿고 의지하고 감사하고 하지만은 나쁜 거 한번 줘보자. 너와 반대되는 것 한번 줘보자. 힘드는 것 줘보자. 줘보니까 탕탕 다 차버립니다. 그러니까 ‘봐라, 이게 네 모습이다’. 어떤 학생이 고등학교 1학년때, “어느 대학 목표인가?” “서울대입니다. 연고대 아니면 안갑니다.” 실제 성적 물어보니까 부산에 있는 대학도 겨우 갈만한 실력인데 큰소리 칩니다, 1학년때. “서울대입니다.” 2학년때는 “연고대입니다. 연고대 아니면 안갑니다.” 큰소리 빵빵 칩니다. 3학년때까지 그럽니다. 거의 한 두달 남겨놓을때까지. 그러다가 막상 시험쳐보니까 연고대는 커녕, 부산에 있는 중류대학도 겨우 가데요, 보니까. 시험치기 전에는 큰소리 치는 겁니다. 자기를 오판하고 그런 줄 알고 착각하고. 그래서 시험은 필요한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그 사람들에게, ‘감사? 어려움을 줘도 감사하는가? 돈을 다 빼앗겨도 감사하는가? 억울하게 욕을 마구 얻어먹어도 감사하는가?’ 온갖 것을 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어떻게 아는지, 믿는지,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지, 우리 믿는 사람을 세상에 두신 목적이 바로 그겁니다. 이 세상에 두시고 온갖 우여곡절을 다 우리에게 만나게 하신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내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아는지, 얼마만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리시기 위해서 온갖 시험을 다 하시고 이 세상에서 여러 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그말입니다. 그래가지고 최종에는 우리들로 하여금 주신 분량만큼, 하나님을 내게 주신 분량만큼, 알아야 될 만큼 알고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이것이 세상에 두시고 한평생 온갖 여러 형태의 환경으로 우리를 통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고 목적이다 그말입니다.
본문에 나와있습니다.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기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이게 오늘 말씀에 마지막 결론을 말씀드리기 위한, 말하자면 중심 말씀인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빈들판입니다. 이들이 지나간 광야는 어떤 곳인가요? 000? 이스라엘이 지나간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무슨 땅입니까? 또 000학생 어떤 땅일까요? 이스라엘이 지난 광야는, 자 같이 해봅시다. ‘사막, 사막.’ ‘사’자가 무슨 ‘사’자일까요? ‘모래 사’자입니다. 모래 땅입니다, 모래 땅. 모래로만 가득 찬 땅이라서 모래에 농사가 됩니까? 모래에는 영양분이 하나도 없어서 농사가 안되는 땅입니다. 또 그곳 사막에는 물이 없습니다. 요즘 중동지방에는 먼데서 물을 땡겨서 만드는데, 그곳에는 사막에는 물이 없습니다, 모래땅. 모래산, 모래뻘, 모래밖에 없는 그곳이라서 사람이 지나가면 수없이 죽고 그리하는 곳인데, 농사지을 수 없는 그래서 식물이 없는, 먹을 것이 없는 그곳 광야를 40년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다 굶어죽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을 것 없는 그 광야로 통과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하늘에서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꼬박꼬박 40년동안 내려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먹게 하셨는데 그 이유가 뭐냐? 그것은 사람이란 것은 가장 근본적인, 가장 근본적인 사람의 그 생애 조건이, 첫째 조건이 먹는 거지요. 입는 것은 하다 못해 나뭇잎파리 걸쳐도 되는 것이고, 짐승 잡아서 가죽털해도 되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사람은 못 삽니다. 물이 있든 어쨌든 먹을게 있어야 사는데, 식생활 이게 사람의 생애 가장 필수적인 그런 조건입니다. 광야 사막에서 먹을 것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먹을 만나를 매일같이 40년간을 그들에게 내려주셨는데 그 내려주신 것은 무엇이냐? 그런데 그, 그들에게 주신 그 만나가 그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늘에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늘에서 주신 것이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걸 가리켜 뭐라 그럽니까? 사람이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하신걸 가리켜서 이적이다, 기적이다, 표적이다 그리 말 하지요. 만나를 주신 것은 기적입니다. 이거는 이적 역사고, 기적 역사고, 하나님의 역사지, 인간역사가 아니고 땅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들이 40년동안 그 수백만명이 먹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나를 주셨는데, 그 주신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늘에서 내려 주신 것인데, 그들이 먹는 것은, 그것은 신령한 양식입니까, 육신의 양식입니까? 만나를 그들이 먹었는데 그 먹은 만나는 신령한 양식입니까, 육신의 양식입니까? 고깃덩어리, 육신이 먹는 양식입니다.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그들이 만나를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40년을 먹었지만은 그 만나 먹은 사람들 전부다 죽었습니다. 먹고도 죽을 육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고 주신 그 이유가 뭐냐? 만나를 주신 그 이유가 뭐냐? 그 목적이 무엇이냐? 먹어도 죽는, 육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먹이신 목적은 사람의 모든 생사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의 모든 것, 그 의식주를 힘으로 삼아가지고, 의식주를 힘으로 삼아가지고 이루어가는 세상의 모든 전부다는 사람에게 매여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매여 있으므로, 그러므로 사람이 사는 것은 그 의식주가 목적이 아니고, 가치가 아니고,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 사람이란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육의 양식인 만나도 그들에게 먹여주셨다 그말입니다.
여기 사람이 사는 것은, 이 사람은 여기 본문에 그대로 말하면 하나님 백성들이고, 오늘로 말하면 택한 백성들,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 주셨고, 오늘 우리에게는 떡을 주신다 그말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그래서 만나는 오늘로 말하면, 말씀 해석으로 말하면 떡이고, 그 떡은 말하자면은 사람의 먹고 사는 식생활이고, 그 식생활을 좀 범위를 넓히면 의식주가 되어지겠고, 그러면 사람이 일반적으로 세상에 사는 그 모든 것은 전부 떡으로 삽니다. 사람이 다 떡으로만 사는데, 떡으로 산다 그말은, 먹는걸 가지고 힘을 삼아서, 범위 넓히면 의식주 가지고 힘을 삼아서, 그래서 먹고 먹는 그 힘을 가지고 떡을 먹은, 빵을 먹은, 밥 먹은, 고기 먹은, 이 세상에서 육신이 먹는 그 육의 양식을 먹어서 그 힘을 가지고 생각도 하고, 그 힘 가지고 연구도 하고, 그 힘 가지고 머리도 쓰고, 그 힘 가지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건설도 하고, 그 힘 가지고 전쟁도 하고, 그 힘 가지고 사람이 사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 사람이 먹은 떡, 육의 힘, 그 힘 가지고 다 살고, 그래서 사람이 사는 거는 크게 말하면 두가지로 산다 그러데요. 사람이 무슨 힘, 무슨 힘으로 산다 그럽니까? 사람이 사는 것 첫째는, 밥 힘으로 살고, 밥 힘. 또 하나는요? 잠 힘으로 살고. 그래서 사람이 밥 안 먹고 잠 안 자면 못산다는 겁니다. 밥 힘으로 살고, 잠 힘으로 살고 그래 산다 그러는데. 육의 양식을 먹으니까, 육의 양식 가지고, 이 양식을 힘을 삼아서, 안 먹으면 생각이 나옵니까? 안 먹으면 연구가 나옵니까? 안 먹으면 힘이 납니까? 떡, 육의 양식. 이 떡을 가지고, 떡 먹는, 떡의 힘을 가지고, 떡을 힘을 삼아서 여기서 지혜도, 지식도, 연구도, 노력도 모든게 다 여기서 나오니까 이 힘으로 살고, 이 힘을 가지고 만드는 것은 그 의식주, 떡이 중심된 의식주를 좀 더 넓히고, 좀 더 보기 좋게 하고, 많게 하고, 편리하게 하고, 그걸 넘어서면 내나 그 수준 안에서 의식주를 가지고 편안하게 되어진 그 몸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고, 화려하게 만들고, 그리고 남으면 자손들도 또 그리 살게 만들고, 이게 전부 6천년 인간세계에 천하 모든 인간들이 사는 그런 생활의 모습인데, 사람이 사는 것은 그리 사는게 아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요?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들,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다, 의식주, 먹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먹는 육신의 양식 떡, 그 떡을 먹어서 생겨진 그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것을, 그 떡의 힘이 만드는 그걸 목표로 삼아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람들의 사는 생활이 아니라. 그러면 뭘로 삽니까?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고, 그 떡은 먹어야 고깃덩어리 유지가 되니까 고깃덩어리 세상이니까 고깃덩어리의 떡을 먹되, 그걸 가지고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 말씀이 무슨 양식이 되는 겁니까? 말씀을 먹는 것은 듣는 것이고 읽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고 연구하는 것인데, 말씀을 읽고 듣고 찾아서 말씀 속에 들어가면 그 말씀 속에 인간의 가치, 인간의 길, 인간의 소망, 인간의 목적, 인간의 구원 궁극과 과정과 결과가 전부 말씀 속에 다 들어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을 먹고, 말씀의 힘을 가지고, 말씀이 가르치는데로 배우고, 말씀이 정해주는 목적지를 향해서, 말씀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서 말씀으로 걸어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살과 피가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인데, 그 주님의 살과 피가 어디에 들어있습니까? 주님의 살과 피가 어디 들어있습니까? 이게 말씀 속에 들어있다 그말이죠, 말씀 속에. 어려운 말씀이 아닌데 붕 떠있는 거 같아요, 지금도 보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만나를 주셨고, 오늘 믿는 성도들에게는 의식주를 다 책임을 져주신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그 형편에서, 처지에서 마땅히 할 일은 하는 겁니다. 그 할 일 하는 것은, 자 공부하는 학생이 왜 공부합니까? 보자, 우리 000선생님 학교를 왜 다니지요? 왜 공부하는 겁니까? 또 우리 000 학생 왜 학교 다닙니까? 직장 다니는 분들은 직장을 왜 다닙니까? 000선생님 직장을 왜 다니지요? 또 장사는 왜 합니까? 000선생님 장사는 왜 합니까? 우리 000씨는 왜 장사합니까? 000선생님, 왜 일하지요? 돈 벌려고요? 그러면 돈 벌려고 하면은 그게 뭡니까? 떡 만드는 겁니다 그거는. 그러면 떡으로 사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은 의식주 위해서 사는 게 아닙니다. 왜 합니까? 하나님이 그거 하라 하셨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직장을 주셔서, 직장 생활 하라 하니까, 성경에 어디 있는데? 믿는 사람이 가정을 가졌으면 가정을 책임지라. 무슨 일이든지 맡겨주신 거기서 있는 충성 다해라, 그래서 하는 겁니다. 말씀순종으로 직장생활하고, 말씀순종으로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공부는 학교가 어디든 상관이 없고, 직장이 좋고, 직업의 귀천이 상관이 없는 겁니다. 내 실력에, 내 역량에, 내 형편에 주신 신앙생활하는데 가장 좋게 주신 그 일을 하는것이 말씀을 순종하는 겁니다. 그리하면 하나님 필요에 따라서 한달에 백만원 줄수도 있고, 2백만원 줄 수도 있고, 50만원 줄 수도 있고, 주시면 주는대로 그걸 가지고 먹고 사는 겁니다. 그게 의식주를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는 겁니다. 굶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의식주 책임지고, 우리 하는 것은 말씀으로 사는 겁니다. 말씀으로 살면 의식주는 책임지겠다는게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먹고 사는 것 걱정하고,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직장 다니고, 그것 대비해서 공부하는 것은 껍데기 외부로는 그리 말하지만은 실질적으로는 아닌 겁니다.
말씀 순종,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 위해서 그 모든 걸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을 다 져주는데,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왜 의식주를 책임을 져 주십니까? 그게 사람 사는 생활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게 아닌것을 알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인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믿는 사람의 의식주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씀으로 사는 겁니다. 그러면 그 말씀 속에 우리의 필요한 모든 전부다는 다 들었습니다. 말씀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게 다 들었고, 들어있지 않는 것은 영감으로 아는데, 그 영감도 말씀속에 들어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말씀의 결론을 따지자면, 요러한데,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6천년 인간 역사에 수많은 사람이 왔다갔는데 그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누린 낙, 재미, 즐거움, 가치, 소망, 욕망, 건설해놓은 건설, 평생을 다 받친 그 방향, 그 다 따져봤는데 마지막에 다 촐촐 추려서 손바닥에 올려놓고나면 별 것 없는데,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생이 말씀을 떠나가지고 이 세상에서 어떤 기쁨, 어떤 낙을 가지고 인생 속에 있는 허전함을 채워보고 달래보려고해도 결단코 안된다는 겁니다. 젊을때는 모릅니다. 사람이 죽음 너머에 일을 살아생전 80이되서 그때 알았다면은, 80 되었을때 그 상황이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마음대로 못하겠지만은 죽음 너머의 그 상황을 홍포입은 부자처럼 80 되기전 죽기 한달전에 알았다면 그 한달 생활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늙었을때, 80되었을때 그 상황을 60이 되었을때 알았다면 그의 생활이 또 달라질 겁니다. 사람은 앞일을 모르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추측, 추론으로 대략 그렇게 사는 것이지 알고나면 그리 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러니까 그날그날 젊은 사람들은 젊은 혈기에, 눈에 보이는 그런 단순한 그런 재미에, 맛에, 취미에, 그런 즐거움에 빠져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그래 사는데 그 사는 생활을 좀 지나고나서 돌아보면 참, 인생 참 별것 아니다. 그래서 어느 높은 자리, 부귀영화를 다 누린 세상에 가장 최고의 위치에서 평생 산 그런 사람들의 마지막 노년에 한마디를 들어본다면, 그 사람이 생각이 있다면, 인생을 안다면 하는 말 ‘인생 참 별 것 없더라’. ‘인생 참 별 것 아니더라’ ‘한평생이 너무도 허무하더라’ 그리 말 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그런데 그리 말하는 사람이 인생 마지막에 공통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그런 걸 생각하며 사느냐 그말이지요.
그래서 말씀을 좀 가지고 인생에 이런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니까 참 한편으로는 허전하고, 울적하고, 허무하고, 맛이 없고, 힘도 빠지고, 결국은 들어가길 어디로 들어가느냐? 그래서 말씀에 들어가서, 말씀 속에서 인간의 궁극과 마지막 최종과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잡아야 비로소 거기서 인간이 힘도 나고 욕망도 나고 모든게 생겨지는 것이지, 이걸 깨닫지 못한 인생은 철없는 인생이고 그냥 그만 무조건 가는 것이고, 목 잘린 닭이 펄펄 뛰듯이 그리 뛰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힘없이 그렇게 되는대로 그냥 어찌할 수 없으니까 사는 것이고, 참 비참하게, 불쌍하게, 가련하게 그래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말씀을 떠나면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되는 것 같은데 안 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생애입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다 된다면 전부다 하나님이 될 건데, 온 세상 왕이 전부다 왕이 될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버려 두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두셔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온갖 과정을 다 거치게 하심은 ‘너는 인생이라, 창조주가 아니라, 주권자가 아니라 너는 피조물이라’ 이걸 알게 하시는 겁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그 속에서 우리를 연단시켜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하시고, 그분이 주신 구원을 깨달아서 그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 말씀으로 살아가지고 영광의 구원을 이 땅 위에서 잘 이루게 하시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나님의 목적이라.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우리는 ‘나는 떡으로만 살진 않았는지’ 한번 돌아보십시다. 나는 떡만 보고 살지 않았나. 먹을 거 보고 살지 않았나, 의식주 보고 살지 않았나. 이 세상만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서 오늘까지 달려오지 않았나? 늦기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깨닫고, 빨리 돌이키는만큼 기회는 많고, 후회는 적고, 그냥 되는대로 살면 마지막 다가갈수록 위험천만하고 그만큼 후회는 많아지게 될 것이고 결과는 가련하게 될 것이고, 뻔한 겁니다. 결과는, 답은 나와있는거니까. 떡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은혜라야 되지, 하나님이 은혜주지 않으시면 알기도 어렵고 느끼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지막까지 과정 과정 전부다가 다 하나님의 은혜라야 되기 때문에 은혜를 구하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떡으로만 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해주옵소서.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그 말씀 속에 모든게 다 들어있으니 말씀으로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십시다.
제목: 말씀으로 살 것이라
요점:
1. 신명기(申命記)
1)기록한 사람
- 모세 오경의 마지막 성경
- 혹자는 모세의 사후 기록을 근거하여 모세가 아니라 하거나
- 모세의 사후 기록은 다른 사람이 기록하여 붙였다고 하나
-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
2)기록된 내용
- 광야 생활에 하나님의 인도와 역사
-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명
3)이름의 의미
- 신명기(申命記)는 명령을 다시 기록했다는 의미
- 이미 선포하신 말씀을 다시 깨우쳐 알리시고 기록한 말씀
2. 본문
1절: 계명을 지키면?
①살고: 계명은 살리는 생명의 말씀
②번성하고: 계명은 번성케 하는 말씀
③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계명은 천국을 얻게 하는 말씀
2절: 40년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
①낮추시며
②시험하사
③마음이 어떠한지
④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
- 광야 40년은 세상 평생의 기간
- 때로는 낮추시고, 때로는 높이시고 여러 가지로 시험하셔서
-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어떤지, 믿는지 안 믿는지
의지하고 바라보는지 아닌지, 순종하는지 아니하는지를 알리려
목적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자 만드시려
3절: 만나를 주신 이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만나는 먹어도 결국은 죽는 육의 양식
- 육의 양식 만나를 주신 것은 의식주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 계명을 순종하고 살라 하시는 것
- 즉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려 하시는 것
3. 떡으로 사는 생활
①떡이란? 식생활, 의식주, 밥의 힘, 의식주의 힘
②떡으로 사는 것은?의식주의 힘으로, 의식주를 목표로, 육신의 힘으로, 육신 세상을 목표로 사는 생활
4. 말씀으로 사는 생활
①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양식
②말씀으로 사는 생활은?
말씀의 가르침 받아, 말씀의 인도 따라 천국을 목표로 사는 생활
5. 성도의 생활은: 말씀으로 사는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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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30119 주후
신명기 8:1-4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이고, 하나님 섬기는 생활은 여러각도로 말할 수 있지만은 또 하나 말해본다면, 하나님의,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은 규칙을 지키는 생활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규칙이라 그말은 법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원칙, 규칙 그것을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그 정해놓으신 법칙을 벗어나서 제 하고 싶은대로 한 것이 인간의 타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생각에 어떠하든지, 자기 형편이 어떠하든지, 자기 마음과 기분과 성격이 어떠하든지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하고 그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법칙을 받아들여서 그 법칙대로 자기 생활과 언행과 모든 것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합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니까,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누구의 마음입니까?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로 그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아래 꿇게 하시고 그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해서’, 예수님은 천상천하 모든 사람을 다 당신의 사람으로 얻으셨는데 그 비결이 무엇인가? 그 비결이 종이 된 것이였습니다. 그 마음을, 종되는 마음을 가져서 종이 되어서 낮아졌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시고, 그게 모든 사람을 얻은 비결이었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비결이었습니다. 이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아니합니다. 오늘도 사람을 얻는 방법은 그것이고 신앙생활은, 구원은 사람을 얻는 것이 구원이고, 이 방법은 종이 되는 것인데, 종이라는 말은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종이란 말은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자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자유가 뭔가요? 자유가 무엇입니까? 자유는 무엇이 자유입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게 자유고, 그 말은 다시 말하면 무슨 말이지요? 제가 제일 처음에 말씀드린게 뭐였습니까? 신앙생활은 뭐라고요? 규칙을 지키는게 신앙생활입니다. 규칙을 지키려면 뭐가 없는 겁니까? 규칙을 지키려면 뭐가 없는 겁니까? 자유가 없는 겁니다. 그 자기 타락한 인간의 자유를 부인하는 것이 신앙생활이고, 신앙생활은 그것을 연습하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 성격대로, 자기 기분대로, 자기 편한대로, 자기 좋은대로 하는 그게, 그것을 다 뽑아내고, 내가 내 생각이 어떠하든지, 내 형편이 어떠하든지, 내 기분이 어떠하든지, 내 성격이 어떠하든지, 이런걸 다 무시하고 막론하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 시키는대로 거기 맞추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을 연습하는게 신앙생활이고 그게 완성이 되면 신앙의 완성이다 그리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자리 앉는 것, 나 앉고 싶은대로 앉는 것은 뭔가요 그게? 학생들, 자기 앉고 싶은대로 앉으면 그게 무엇인가요? 자유지요. 그 자유가 무엇인가요? 그게 신앙의 적입니다. 그걸 뽑아버려야 되는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그것 뽑지 못하면 결코 신앙생활은 못합니다. 자기 먹고 싶은 것 다 먹으면 신앙생활은 까마득 합니다. 자기 하기 싫은 거 안하면 신앙생활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우리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따라가서 주와 같이 되는 겁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첫째 뭡니까? 연보 많이해라? 주일 잘 지켜라? 성경 많이 읽어라? 심방 전도 많이 해라? 주님을 따라가려거든 제일 처음에 뭐부터 하라 그랬습니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라’ 아무리 연보 많이 해도 이거 안하면 소용 없습니다. 아무리 주일 지켜도 자기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 따라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외워도 자기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 따라가지 못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그 자기가 뭐냐? 하나님의 말씀은 규칙입니다. 원칙입니다. 길이고, 구원의 도리입니다. ‘이렇게 해라’ 정해놓으신 법입니다. 그 법대로 하라는 건데, 그 법을 어기는 것. 어기고, 자기 원하는대로 하는게 자기입니다. 그걸 뽑아버려라 그말입니다. 이거는 우리 일상생활에 굉장히 모든 면에 적용이 되어집니다.
요즘은 개성시대고 자유시대입니다. 그래서 인권을, 인권이라는 아름다운 이름, 미명하에서 온갖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게 타락한 지금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 인간의 타락한 원죄성 그 자유를 길러주는 것인데, 그게 전부 신앙과는 적이 되고, 그래서 말세가 되고 사람들이 살기 좋은 그런 자유가 많은 그런 세상이 되어져 갈수록 신앙생활은 점점, 한편으로는 좋은데 한편으로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 그런 아주 모순적인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장소도, 예배 드리는 장소도 아무데서나 드리는 것이 아니고 주일예배는, 예배는 반드시 예배당에 가서, 물론 가정예배 무슨 예배 있지만은 그거는 거기서 하지만은, 정해놓은 예배는 그 시간에, 그 장소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이 말이 나오니까 오늘 또 연결이 안될 수가 없네요. 오늘 찬송 인도하시는 선생님이 5분을 넘어섰거든요. 이거는 규칙을 어기는 겁니다. 이런거는 하나씩 고쳐나가야 됩니다. 하다보면 1분, 2분 늦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할 수 있으면 미리 생각해서 시간 딱 지켜야 됩니다. 이거는 시간이란 것은 모든 사람과의 약속입니다. 약속, 지키는게 지키라고 있는 거지요. 자리 앉는 것, 시간 지키는 것, 정해놓은 장소 이 모든 건 다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에 하나의 규칙이고 법입니다. 연습을 해나가야 되는 겁니다. 학생들도 자리 앉을때 내 편한대로 앉지 마시고 좀 말씀을 듣는데 유익하도록 그렇게 앉는게 복이 됩니다. 보면 그렇습니다. 교회도 보면 어떤 사람은 교회를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자기 마음대로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다녀봐야 흉내만 내는 거지 구원은 안됩니다. 구원이란 것은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그 법에 따라서 자기를 맞춰나가는게 신앙생활이고 그게 우리의 구원입니다. 굉장히 이것이 아주 상식 같지만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특별한 모든 역사는 지극히 상식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지, 원칙을 벗어나고 상식을 벗어나서 되는 성공은, 건설은 아무것도 세상에 없습니다. 모든 원칙과 상식 그 위에 모든 크고 위대한 일들은 다 건설이 되어진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꼭 기억을 하십시다.
우리 학생들 기록 문답지를 오전에 기록했을껀데, 앞으로는 오전만 하지 말고, 오전에 기록하고 오후에도 좀 들고있다가 같이 기록하십시다. 아니면, 될 수 있으면 조금 신앙이 장성한 학생들한테는 필기장을 주십시오, 요약지 주지 마시고. 요약지 다음주부터 복사를 좀 많이 줄일 겁니다, 반으로 줄이고. 학생들 될 수 있으면 필기장을 가지고 필기를 하십시오. 그래서 문답지도 지금 문답내용을 많이 줄였습니다. 보니까 답만 적으면 아무 별 그게 없으니까 답 적는 사람은 주일 학생이나 아주 어린 사람이 답을 적고, 조금 교회 오래 다닌 학생들은 거기다가 해당되는 설교말씀 들으면서 중요한 것을 자꾸 적는 그런 연습을 하고, 좀 더 장성한 사람들은 필기장 가지고 필기를 하도록 그래하시면 좋겠습니다.
오전에 제가 좀 준비가 부족해서 말씀드린 것 중에 여러 가지 실수한 그런게 있었는데, 말하자면, 몇가지 있는데, 이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한 성경인데, 기록시기가 주전 1500년쯤이랍니다. 주전 1500년이니까 지금부터 몇 년입니까, 000샘? 주전 1500년이면 지금부터 몇 년 전인가요? 3500년전쯤이지요. 그러면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한다면,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는 기록할 그 당시 몇 년전입니까? 인류역사를 지금까지를 6천년으로 본다면, 주전 1500년 지금부터 3500년전에 신명기를 모세가 기록을 하지 않았나 그리 본답니다. 그러면 그 모세가 신명기도 기록했고 창세기도 기록했는데, 시점은 다르겠지만은. 모세 시대에 창세기를 기록했다면,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할 그 당시, 천지창조와 기록할 그 당시 사이가 몇 년입니까? 모세는 몇 년전의 일을 기록한 겁니까? 수학계산이 금방 안나옵니까? 몇 년전쯤에요? 2500년전쯤, 제가 오전에 3500년전이라 그랬는데 이거는 잘못됐고, 2500년전의 일을 모세가 기록한 겁니다. 그러면 사람이 2500년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지금은 역사 기록이, 그래도 문자가 나오고 글자가 나와서 안다 하지만은 그때는 그런 것도 제대로 없었을때일건데, 그것이 지금과 다르게 모든게 다 그렇고, 그러고 노아 홍수때 모조리 다 홍수로 멸망되고 없어졌는데, 그 노아 홍수로 인해서 세상이 다 단절된 그런 상황에서 모세가 2500년전에 있었던 천지창조의 그 상황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말이지요. 기록한 것은 순전히 영감으로만, 하나님이 알려주시니까 아는 것이지 사람으로서는 절대 모르는 겁니다. 그러기떄문에 모세가 자기 죽은 다음 일, 모세가 죽은 후에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또 이스라엘이 30일을 모세를 위해서 슬퍼 애곡하였더라. 여호수아를 모세처럼 순종하였더라. 이런 것은 모세가 모르는 일입니다. 묘지가 어떻게 됐는지, 30일 애곡했는지, 한 두달했는지, 그들이 여호수아를 순종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세가 죽은 다음 일이니까 모르는데 어떻게 모세가 기록을 했겠는가? 그래서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래서 이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앞부분은 기록했다가 모세 죽은 후의 기록은 다른 사람이 기록해서 갖다붙였거나 그래 되었겠다고 그리 생각을 하나,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시공을 초월한 그 역사를 모르는 소리입니다. 모세가 2500년전의 일을 생생하게 틀림없이 기록했듯이, 자기 죽음 너머의 일도 모세는 영감으로 얼마든지 알 수 있고 기록할 수 있다 그리 보는게 맞겠습니다. 신명기 기록에 대해서 하나 상식으로 기억하십시다.
또, 신명기에 기록된 내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그 과정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그들이 지킬 계명, 또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불순종했는가 이런 것을 기록했는데 그 기록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마지막 자기가 이스라엘을 인도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 가나안땅을 목전에 두고 모세가 ‘너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듣고 마지막 유언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씀들입니다, 설교. 그래서 이거는 고별설교다 그리 말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고별설교다 그리하는 말도 있다는데,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과거 있었던 일을 한번 더 그들에게 깨우쳐 알리고 기록한 것이 ‘신명기’. 그래서 그냥 벌로 지나가면 그 ‘신’자를 ‘하나님 신’자로 알아서 하나님의 명령 기록한 성경 그리 알기 쉬운데, ‘신’자가 무슨 ‘신’자라고요? ‘다시 신’자입니다, ‘다시 신’자.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기록한 성경, 이게 신명기입니다. 과거에 말씀하신 것을 한번 더 깨우쳐 기록한 그 성경이 신명기다 이렇게 기억을 하십시다. 그래서 신명기라는 성경의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기록한 말씀, 이게 신명기 이런 의미라 상식으로 기억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죽을때, 그때 모세가 있었던 그 산이 아바림산, 혹은 느보산, 또 비스가산 이름이 다 그 주변 주변 그렇겠습니다. 모압 평지에 있는, 가나안 땅이 다 보이는 모압 평지에 있는 그 느보산이라는 그 산 거기에서 비스가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리 되있습니다. 호르산에서는 아론이 죽었고, 시내산은 십계명 받은 것이고 그랬는데,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갈 때 정탐을 보낼때 그 기간이 저는 얼른 몇 달, 두달 그리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기록보니까 정탐보낼때 그 기간이 1년이 좀 넘은 때입니다. 출애굽 제2년 2월 얼마, 그게 지나고나서 보니까 그러니까 1년이 좀 넘은 동안에 광야를 많이 다니다가, 빨리 가면 갈 수 있는 길인데 그리 다니다가 1년 좀 지나서 가나안 근처에 도착해서 정탐을 보내가지고 한 그런 일이 되어졌습니다. 이런 것들 상식으로 좀 기억하시면 되겠고, 오전에 말씀에서 1절에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계명인데, 이 계명을 지키면, 그리하면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러면 아무리 말씀이 있어도 이 말씀을 읽지 않으면, 듣지 않으면 소용 없고, 읽고 듣고 알아도 행하지 않으면 그 다음 나오는 효력은 없는 겁니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첫째 어떻게 된다고요? 그리하면 첫째요? 같이 해보십시다. ‘살고, 살고’. 그리하면 산다. 산다는 말은 생명이 있다 그말이지요. 산다는 말은, 움직인다 활동한다 그말이 되겠습니다. 살았다, 살았다는 말은 활동한다,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싱싱하다, 살았구만, 죽었구만. 예배 시간에 예배 드리는 모습 보니까 죽었구만, 꼬박 꼬박 졸고 있으면 죽었구만, 신앙이. 또 눈이 똘망똘망하게 잘 듣고 있으면 팽팽하게 살았구만. 그리 말하지 않습니까? 숨이 딱 끊어지지 않아도 다 죽어가는데, 죽었네 그러고, 또 팔팔하게 살아있으면 이제 살아났네 그리 말합니다. 병이 들어서 꼴막꼴막하고 있다가 그 사람이 병을 이기고 깨치고 아주 건강하게 나오면 죽었는줄 알았는데 살았네? 살았다 그러지요. 원래 죽었습니까, 그 사람이? 안 죽었었는데 살았다 말은, 싱싱하다, 활동한다, 생생하다, 청청하다 그런 말이 되겠지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첫째 어떻게 된다고요? 산다. 죽은 사람이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이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그러면 살아있는 사람인데, 믿는 사람이 이 말씀을 지켜 행하면, 그 말은 싱싱하게, 청청하게, 쌩쌩하게, 왕성하게 되어진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그리 살면은 그 살아있으면 거기서 모든 것이 다 지혜도 살아있고, 총명도 살아있고, 능력도 살아있고, 대통령이 5년 임기 다 되가면 그걸 무슨 현상이라 그럽니까? 권력누수현상인데 그걸 뭐라던가요? 마지막에 무슨 말 쓰는 말 있잖습니까, 왜. 000샘 그걸 뭐라 그럽니까? 예? 아 그거 영어입니까? 그냥 쉽게 말하면 권력누수현상 맞지요? 권력누수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레임덕 인가 하는 그 현상이 생기는데 그거는 살아있어도 그 권력은 죽은 권력. 그래서 그 다음 대통령이 될 확률이 아주 높으면 그 권력을 향해서 사람들은 가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는 죽은 권력, 하나는 살아있는 권력. 회사도 보면은 죽어가는 회사, 산 회사 다르지요. 가정도 보면 죽은 가정, 산 가정 다릅니다. 개인도 그렇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면 너희가 살겠다. 산다는 말은, 싱싱하게 왕성하게, 말하자면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써의 정상적인 모습이 나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데서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어쩌면 나타납니까? 말씀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의 지능이 그를 통해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를 통해서 나오는 겁니다. 산다는 것 기억하십시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말씀을,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살아야 됩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면 살게 됩니다.
살고, 두 번째는 번성하고, 점점 많아진다는 겁니다. 많아진다, 커진다. 부피로 커지고 숫자적으로 많아지고 점점 넓어지고, 점점 쓸모가 있어지고, 가치가 있어지고, 유명해지고, 사람은 한사람 내나 그 사람인데, 그 사람이 말씀으로 사니까, 명령을 지켜 행하니까, 명령을 지켜 행한다 그말은 앞에 초두에 말씀드린 것 하고 응용을 해보면, 명령 지켜 행한다 그 말은,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안할 것은 하지 않고, 할 것은 하고, 자기를 꺽고 부인하고 자기 속에 온갖 욕심, 감정, 습성, 이런 죄악의 모든 요소들을 자꾸 뽑아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기를 빗고 깍고 다듬고 꺽고 부인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그 생활을 자꾸 해나가니까 그 사람이 점점 쓸모있는 사람, 가치있는 사람,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언행에서 나오는데, 그 언행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언행심사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하는 말, 그 사람의 행동, 그 사람의 사리판단, 취사선택, 비판 평가 판단 처리 이런 걸 보면 그 사람의 가치가 나오는 겁니다. 어려운 일 맡겨도 하고, 더 어려운 것 맡겨도 하고, 열 사람이 못 하는 걸 맡겨도 이 사람은 하고, 주변 사람 백 명이 맡기는 걸 아무도 못하는데 이 사람은 하고, 천명이 아무도 모르는데 이 사람은 알고 해결하고, 그 주변 사람 만명이 다 물어봐도 모르고 못하는데 이 사람은 만명이 못하는 것을 이 사람은 알고 해결하고, 수십만명한테 물어봐도 모르고 처리못하는데 그 사람은 척척 알고 처리를 하고 그러면 그 사람은 지능이 탁월하고 그 사람의 가치는 올라가고, 많은 사람이 그 사람을 찾을 것이고, 그 사람의 이름은 점점 퍼져나갈 것이고, 또 하나 응용을 해볼까요? 이게 좀 안 맞는 말인데, 어제 신문에 나왔던데. 세 살짜리가, 네 살때던가요? 네 살때 무슨 대학입디까? 네 살 때, 네 살 아이가, 저는 학교를 많이 안가서 모르겠는데, 고등학교 수학에 미분 적분 그런게 있다 그러데요? 네 살짜리가 도쿄대학에 다니는, 도쿄대하면 동경대겠지요? 서울대보다 더 센데겠지요. 거기 다니는 학생 두명하고 네 살 짜리 아이하고 수학의 적분 푸는 시합을 했는데 네 살짜리가 먼저 풀어내더랍니다. 그래서 2천년만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신동이다, 그게 우리나라 사람이였는데, 몇십년 지나고나서 보니까 평범한 사람이 되어있더라고. 그때 그러고나니까 온 세상 신문에 다나고 난리가 났었답니다. 실력, 그거는 타고난 그런건데, 그러니까 이름이 자꾸 퍼져나가지요. 근데 그것 참, 한 4-50년 지나고난 다음에, 대학 시험도, 대학도 합격하고, 대학 교수 시험에도 몇 번 낙방하고 겨우 됐다니까 이거 참 생각할 바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큐가 세계에서 제일 좋답니다, 그 사람. 210 이랍니다. 그런데 그리되니까 이름이 자꾸 퍼져나가는 거지요. 사람의 가치라는게 그런겁니다. 번성이란 말의 뜻은 예를 들면 그런게 번성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실력이, 그 사람의 활동이, 가치가, 그 사람 개인도, 가정도, 그 사람의 관련된 모든 게 점점 퍼져나가고, 많아지고, 커지고, 또 넓어지고, 풍성해지고, 가치 쓸모가 점점 있어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진다 그말입니다. 그게 번성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요? 어떻게 하면 그리 된다고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그래서 신명기 28장에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내가 너를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이 거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안되니까,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산이라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가 없는데’, 사람이 뭐라 한다고요? ‘제가 올라가지 아니하고 산만 높다 하는구나’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는, 반드시 그대로 되어지는 말씀인데,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해주시겠다는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사도바울도 그대로 이루었고 백목사님 같은 분도 그대로 이루었는데 왜 우리는 안되는 겁니까? 우리는 왜 안됩니까? 그러니까 해보고 안되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이 ‘성경은 말그대로 다 믿을 것이 아니라 좀 가감이 있는 것이라. 그렇다는 말이지 실상은 그런 것은 아니라’ 그말이, 왜 그런 성경에 대한 가감과 에누리가 왜 나옵니까, 000샘? 죽었네 보니까. 내일 저녁에 연경회 할 사람이 그래 꼬박꼬박 졸아 어쩝니까? 너무 준비를 많이 해서 밤을 샜는가? 옆에 있는 00샘한테 조는게 전염됐네. 찬송할 때 000선생님 팽팽했는데. 옮겨갔네. 잠이란 거는 전염이 된답니다. 왜 그런 말이 나오지요? 성경을 가감하는 그 말, 그런 생각, 인식이 사람들에게 왜 나옵니까? 000샘 왜 나오지요? 조금전에 응용한 그 세상말 인용한데서 답이 나왔습니다. 000샘 왜 나옵니까? 자 한번 해볼까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산이라,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가 없는데, 사람이 어떻게 하고요? 제가 올라가지 아니하고 말은 하기를 산만 높다 하는구나’ 꼭 같겠지요? 하나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순종하면, 살고 번성하고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게 하겠다. 이 말씀이 성경인데, 왜 사람이 이 말씀대로 안되는 겁니까? 안되니까 하는 말이, 성경은 다 믿을 게 아니다. 좀 그렇다는 말이지, 안되는 것도 있다는 그 말이 왜 나온다고요? 왜 그말이 나온다고요? 자기가 해보지 않고, 말씀대로 다 살지 아니하고 말씀은, 말씀만 안된다고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씀에는 거짓이 없고 가감이 없습니다. 인간이 거짓되고, 인간이 가감을 하는 거지요. 지켜 행하면 첫째는, 니가 살 것이다. 지능이 팽팽하게 되어질 것이다. 너의 권위가 새파랗게 살아있을 것이다. 믿음의 가정에서, 믿음의 가장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권위가 새파랗게 살아있어야 되는데, 왜 권위가 없느냐? 왜 권위가 죽었느냐? 말씀대로 살지를 아니하니까.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왜 어머니의 권위, 어머니의 그 사랑 이런게 살아있지 못하느냐.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니까. 공부하는 학생이 왜 학교에서 자기 지식이 살아있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고 그리 되어지느냐?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니까. 안해서 그런것이지 하면 된다는 겁니다. 왜 우리가 번성하게 되지를 못하느냐? 그리 다 살지를 못하니까. 그다음 세 번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내가 들어가서 얻을 것이라.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천국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자기 천국 삼는 것은,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는 겁니다. 이게 1절 말씀입니다, 1절 말씀.
그래놓고 2절에 말씀하시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럭하라’ 40년 광야에, 이스라엘 광야 생활 40년은 오늘 신령한 이스라엘 우리에게는 세상 생활입니다. 한 평생 세상 생활이 우리들, 구약 시대 광야 생활입니다. 우리의 세상 생활입니다. 이걸 기억하라. 그러면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광야로 인도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고, 40년 동안. 그 광야를 어떻게 인도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고, 오늘 우리는 믿는 사람을, 나를 세상에 보내시고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여러 과정 거쳐서, 여기 40년 더 된 분 많이 계시지요? 나를 오늘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자기 인생 생애를 믿는 사람이면 기억하라. 어떻게 하는 것인가? ‘이는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 40년, 그런데 그 광야 40년을 인도하신 것은, 어떨때는 올렸고 어떨때는 내렸고, 어떨때는 굶겼고 어떨때는 배가 불러 먹기 싫도록 먹였고, 어떨때는 힘이 들어 죽도록 만들었고 어떨때는 수월하게 했고. 온갖 여러 가지 형태로 이스라엘을 광야 40년에 인도하셨는데 그리 하신 것은, 인간이란 것은 전부 욕심이 있고 자기 주관이 있고, 또 그 속에 왕이 되고자 하는 그런 요소가 다 있어서, 욕심이 있어서 인간은,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타락의 원인은 제가 하나님이 되려 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 마음대로. 그리 하고 싶은게 인간인데, 인간이 마음대로 되던가요? 계획을 딱 세워놨는데, 그만 무슨 일이 하나 딱 생기니까 계획이 다 틀어져버렸습니다. 사람 마음대로 되는게 있습니까? 뭐든지. 사람 마음대로 하게 둔다면, 자기 마음대로 모든 걸 다 하겠지요. 그런데 이 세상일은 인간 마음대로 안되는 겁니다. 거기서 알 것은, 세상 모든 일이 사람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이 모든 걸 주권하시는 것이라. 인생이란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허락 안하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 이 인간 자기 위치를 바로 알게 하시는 것이 ‘너를 낮추시며’ 그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자기, 말하자면 세상 아이들말로 주제를 바로 알게 하는 겁니다. 너 주제를 바로 알아라. 너는 인간이라, 피조물이라. 코에 호흡이 있어서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존재라. 이런 자기 자신인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광야 40년을 주셨고, 오늘 우리에게 평생의 세상 생애를 주셨고, 그 세상 생애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고 계신다 그말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시며’, 시험이라 말은, 시험은 뭐하는 겁니까? 시험한다 그말은 그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한다 그말이지요. 학생들 시험치면, 시험 치잖습니까? 필기 시험, 실기 시험, 무슨 시험, 면접 시험, 시험이라 말은 과정을 거쳐가게 한다 그말입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과정을 거치게 하시며,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과정을 거치게 하시며, 그래가지고 그들 마음을 하나님이 알려 하셨는데, 그들 마음을 하나님이 알려 하셨다.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시험안해보면 모르십니까? 하나님은 전지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시험을 안해보시면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압니까, 모릅니까? 하나님이 모르십니까? 다 아는 전지자입니다. 그런데 왜 시험해서 알려하신다 그럽니까? 이 말씀은, 그리 시험해서 그들에게 알리겠다 그말입니다. 그들 자신에게,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은 믿는다는 것은 입으로만 믿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다, 의지한다 하지만은 그 믿고 의지하는 것은 입으로 지식으로만 믿고 의지하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믿는다 하지만은 좋을때만 믿는 것이고. 수월할때만 믿는 것이고, 너한테 맞을때만 믿는 것이고. 네 좋을때는 믿고 의지하고 감사하고 하지만은 나쁜 거 한번 줘보자. 너와 반대되는 것 한번 줘보자. 힘드는 것 줘보자. 줘보니까 탕탕 다 차버립니다. 그러니까 ‘봐라, 이게 네 모습이다’. 어떤 학생이 고등학교 1학년때, “어느 대학 목표인가?” “서울대입니다. 연고대 아니면 안갑니다.” 실제 성적 물어보니까 부산에 있는 대학도 겨우 갈만한 실력인데 큰소리 칩니다, 1학년때. “서울대입니다.” 2학년때는 “연고대입니다. 연고대 아니면 안갑니다.” 큰소리 빵빵 칩니다. 3학년때까지 그럽니다. 거의 한 두달 남겨놓을때까지. 그러다가 막상 시험쳐보니까 연고대는 커녕, 부산에 있는 중류대학도 겨우 가데요, 보니까. 시험치기 전에는 큰소리 치는 겁니다. 자기를 오판하고 그런 줄 알고 착각하고. 그래서 시험은 필요한 겁니다.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그 사람들에게, ‘감사? 어려움을 줘도 감사하는가? 돈을 다 빼앗겨도 감사하는가? 억울하게 욕을 마구 얻어먹어도 감사하는가?’ 온갖 것을 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을 어떻게 아는지, 믿는지,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지, 우리 믿는 사람을 세상에 두신 목적이 바로 그겁니다. 이 세상에 두시고 온갖 우여곡절을 다 우리에게 만나게 하신 이유는, 우리들로 하여금 내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아는지, 얼마만큼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지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리시기 위해서 온갖 시험을 다 하시고 이 세상에서 여러 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그말입니다. 그래가지고 최종에는 우리들로 하여금 주신 분량만큼, 하나님을 내게 주신 분량만큼, 알아야 될 만큼 알고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게 만드는 이것이 세상에 두시고 한평생 온갖 여러 형태의 환경으로 우리를 통과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고 목적이다 그말입니다.
본문에 나와있습니다.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기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이게 오늘 말씀에 마지막 결론을 말씀드리기 위한, 말하자면 중심 말씀인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광야에는 먹을 것이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빈들판입니다. 이들이 지나간 광야는 어떤 곳인가요? 000? 이스라엘이 지나간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무슨 땅입니까? 또 000학생 어떤 땅일까요? 이스라엘이 지난 광야는, 자 같이 해봅시다. ‘사막, 사막.’ ‘사’자가 무슨 ‘사’자일까요? ‘모래 사’자입니다. 모래 땅입니다, 모래 땅. 모래로만 가득 찬 땅이라서 모래에 농사가 됩니까? 모래에는 영양분이 하나도 없어서 농사가 안되는 땅입니다. 또 그곳 사막에는 물이 없습니다. 요즘 중동지방에는 먼데서 물을 땡겨서 만드는데, 그곳에는 사막에는 물이 없습니다, 모래땅. 모래산, 모래뻘, 모래밖에 없는 그곳이라서 사람이 지나가면 수없이 죽고 그리하는 곳인데, 농사지을 수 없는 그래서 식물이 없는, 먹을 것이 없는 그곳 광야를 40년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다 굶어죽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을 것 없는 그 광야로 통과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하늘에서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양식 만나를 일용할 양식으로 꼬박꼬박 40년동안 내려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먹게 하셨는데 그 이유가 뭐냐? 그것은 사람이란 것은 가장 근본적인, 가장 근본적인 사람의 그 생애 조건이, 첫째 조건이 먹는 거지요. 입는 것은 하다 못해 나뭇잎파리 걸쳐도 되는 것이고, 짐승 잡아서 가죽털해도 되는데 먹을 것이 없으면 사람은 못 삽니다. 물이 있든 어쨌든 먹을게 있어야 사는데, 식생활 이게 사람의 생애 가장 필수적인 그런 조건입니다. 광야 사막에서 먹을 것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먹을 만나를 매일같이 40년간을 그들에게 내려주셨는데 그 내려주신 것은 무엇이냐? 그런데 그, 그들에게 주신 그 만나가 그게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늘에서 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늘에서 주신 것이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걸 가리켜 뭐라 그럽니까? 사람이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하신걸 가리켜서 이적이다, 기적이다, 표적이다 그리 말 하지요. 만나를 주신 것은 기적입니다. 이거는 이적 역사고, 기적 역사고, 하나님의 역사지, 인간역사가 아니고 땅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들이 40년동안 그 수백만명이 먹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만나를 주셨는데, 그 주신 만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하늘에서 내려 주신 것인데, 그들이 먹는 것은, 그것은 신령한 양식입니까, 육신의 양식입니까? 만나를 그들이 먹었는데 그 먹은 만나는 신령한 양식입니까, 육신의 양식입니까? 고깃덩어리, 육신이 먹는 양식입니다.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그들이 만나를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를 40년을 먹었지만은 그 만나 먹은 사람들 전부다 죽었습니다. 먹고도 죽을 육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고 주신 그 이유가 뭐냐? 만나를 주신 그 이유가 뭐냐? 그 목적이 무엇이냐? 먹어도 죽는, 육의 양식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먹이신 목적은 사람의 모든 생사나,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의식주의 모든 것, 그 의식주를 힘으로 삼아가지고, 의식주를 힘으로 삼아가지고 이루어가는 세상의 모든 전부다는 사람에게 매여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매여 있으므로, 그러므로 사람이 사는 것은 그 의식주가 목적이 아니고, 가치가 아니고,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 사람이란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육의 양식인 만나도 그들에게 먹여주셨다 그말입니다.
여기 사람이 사는 것은, 이 사람은 여기 본문에 그대로 말하면 하나님 백성들이고, 오늘로 말하면 택한 백성들, 믿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 주셨고, 오늘 우리에게는 떡을 주신다 그말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고. 그래서 만나는 오늘로 말하면, 말씀 해석으로 말하면 떡이고, 그 떡은 말하자면은 사람의 먹고 사는 식생활이고, 그 식생활을 좀 범위를 넓히면 의식주가 되어지겠고, 그러면 사람이 일반적으로 세상에 사는 그 모든 것은 전부 떡으로 삽니다. 사람이 다 떡으로만 사는데, 떡으로 산다 그말은, 먹는걸 가지고 힘을 삼아서, 범위 넓히면 의식주 가지고 힘을 삼아서, 그래서 먹고 먹는 그 힘을 가지고 떡을 먹은, 빵을 먹은, 밥 먹은, 고기 먹은, 이 세상에서 육신이 먹는 그 육의 양식을 먹어서 그 힘을 가지고 생각도 하고, 그 힘 가지고 연구도 하고, 그 힘 가지고 머리도 쓰고, 그 힘 가지고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건설도 하고, 그 힘 가지고 전쟁도 하고, 그 힘 가지고 사람이 사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전부 사람이 먹은 떡, 육의 힘, 그 힘 가지고 다 살고, 그래서 사람이 사는 거는 크게 말하면 두가지로 산다 그러데요. 사람이 무슨 힘, 무슨 힘으로 산다 그럽니까? 사람이 사는 것 첫째는, 밥 힘으로 살고, 밥 힘. 또 하나는요? 잠 힘으로 살고. 그래서 사람이 밥 안 먹고 잠 안 자면 못산다는 겁니다. 밥 힘으로 살고, 잠 힘으로 살고 그래 산다 그러는데. 육의 양식을 먹으니까, 육의 양식 가지고, 이 양식을 힘을 삼아서, 안 먹으면 생각이 나옵니까? 안 먹으면 연구가 나옵니까? 안 먹으면 힘이 납니까? 떡, 육의 양식. 이 떡을 가지고, 떡 먹는, 떡의 힘을 가지고, 떡을 힘을 삼아서 여기서 지혜도, 지식도, 연구도, 노력도 모든게 다 여기서 나오니까 이 힘으로 살고, 이 힘을 가지고 만드는 것은 그 의식주, 떡이 중심된 의식주를 좀 더 넓히고, 좀 더 보기 좋게 하고, 많게 하고, 편리하게 하고, 그걸 넘어서면 내나 그 수준 안에서 의식주를 가지고 편안하게 되어진 그 몸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고, 화려하게 만들고, 그리고 남으면 자손들도 또 그리 살게 만들고, 이게 전부 6천년 인간세계에 천하 모든 인간들이 사는 그런 생활의 모습인데, 사람이 사는 것은 그리 사는게 아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요?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들,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다, 의식주, 먹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먹는 육신의 양식 떡, 그 떡을 먹어서 생겨진 그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것을, 그 떡의 힘이 만드는 그걸 목표로 삼아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람들의 사는 생활이 아니라. 그러면 뭘로 삽니까?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고, 그 떡은 먹어야 고깃덩어리 유지가 되니까 고깃덩어리 세상이니까 고깃덩어리의 떡을 먹되, 그걸 가지고 사람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그 말씀이 무슨 양식이 되는 겁니까? 말씀을 먹는 것은 듣는 것이고 읽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고 연구하는 것인데, 말씀을 읽고 듣고 찾아서 말씀 속에 들어가면 그 말씀 속에 인간의 가치, 인간의 길, 인간의 소망, 인간의 목적, 인간의 구원 궁극과 과정과 결과가 전부 말씀 속에 다 들어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을 먹고, 말씀의 힘을 가지고, 말씀이 가르치는데로 배우고, 말씀이 정해주는 목적지를 향해서, 말씀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서 말씀으로 걸어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주님의 살과 피가 참된 양식이고 참된 음료인데, 그 주님의 살과 피가 어디에 들어있습니까? 주님의 살과 피가 어디 들어있습니까? 이게 말씀 속에 들어있다 그말이죠, 말씀 속에. 어려운 말씀이 아닌데 붕 떠있는 거 같아요, 지금도 보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구약시대에는 만나를 주셨고, 오늘 믿는 성도들에게는 의식주를 다 책임을 져주신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그 형편에서, 처지에서 마땅히 할 일은 하는 겁니다. 그 할 일 하는 것은, 자 공부하는 학생이 왜 공부합니까? 보자, 우리 000선생님 학교를 왜 다니지요? 왜 공부하는 겁니까? 또 우리 000 학생 왜 학교 다닙니까? 직장 다니는 분들은 직장을 왜 다닙니까? 000선생님 직장을 왜 다니지요? 또 장사는 왜 합니까? 000선생님 장사는 왜 합니까? 우리 000씨는 왜 장사합니까? 000선생님, 왜 일하지요? 돈 벌려고요? 그러면 돈 벌려고 하면은 그게 뭡니까? 떡 만드는 겁니다 그거는. 그러면 떡으로 사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은 의식주 위해서 사는 게 아닙니다. 왜 합니까? 하나님이 그거 하라 하셨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직장을 주셔서, 직장 생활 하라 하니까, 성경에 어디 있는데? 믿는 사람이 가정을 가졌으면 가정을 책임지라. 무슨 일이든지 맡겨주신 거기서 있는 충성 다해라, 그래서 하는 겁니다. 말씀순종으로 직장생활하고, 말씀순종으로 공부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공부는 학교가 어디든 상관이 없고, 직장이 좋고, 직업의 귀천이 상관이 없는 겁니다. 내 실력에, 내 역량에, 내 형편에 주신 신앙생활하는데 가장 좋게 주신 그 일을 하는것이 말씀을 순종하는 겁니다. 그리하면 하나님 필요에 따라서 한달에 백만원 줄수도 있고, 2백만원 줄 수도 있고, 50만원 줄 수도 있고, 주시면 주는대로 그걸 가지고 먹고 사는 겁니다. 그게 의식주를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는 겁니다. 굶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의식주 책임지고, 우리 하는 것은 말씀으로 사는 겁니다. 말씀으로 살면 의식주는 책임지겠다는게 성경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먹고 사는 것 걱정하고, 먹고 사는 것 때문에 직장 다니고, 그것 대비해서 공부하는 것은 껍데기 외부로는 그리 말하지만은 실질적으로는 아닌 겁니다.
말씀 순종,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기 위해서 그 모든 걸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책임을 다 져주는데,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왜 의식주를 책임을 져 주십니까? 그게 사람 사는 생활이기 때문에, 사람이 사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게 아닌것을 알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인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믿는 사람의 의식주는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말씀으로 사는 겁니다. 그러면 그 말씀 속에 우리의 필요한 모든 전부다는 다 들었습니다. 말씀속에는 하나님의 모든 게 다 들었고, 들어있지 않는 것은 영감으로 아는데, 그 영감도 말씀속에 들어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말씀의 결론을 따지자면, 요러한데,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6천년 인간 역사에 수많은 사람이 왔다갔는데 그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누린 낙, 재미, 즐거움, 가치, 소망, 욕망, 건설해놓은 건설, 평생을 다 받친 그 방향, 그 다 따져봤는데 마지막에 다 촐촐 추려서 손바닥에 올려놓고나면 별 것 없는데,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생이 말씀을 떠나가지고 이 세상에서 어떤 기쁨, 어떤 낙을 가지고 인생 속에 있는 허전함을 채워보고 달래보려고해도 결단코 안된다는 겁니다. 젊을때는 모릅니다. 사람이 죽음 너머에 일을 살아생전 80이되서 그때 알았다면은, 80 되었을때 그 상황이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까 마음대로 못하겠지만은 죽음 너머의 그 상황을 홍포입은 부자처럼 80 되기전 죽기 한달전에 알았다면 그 한달 생활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늙었을때, 80되었을때 그 상황을 60이 되었을때 알았다면 그의 생활이 또 달라질 겁니다. 사람은 앞일을 모르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추측, 추론으로 대략 그렇게 사는 것이지 알고나면 그리 살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러니까 그날그날 젊은 사람들은 젊은 혈기에, 눈에 보이는 그런 단순한 그런 재미에, 맛에, 취미에, 그런 즐거움에 빠져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그래 사는데 그 사는 생활을 좀 지나고나서 돌아보면 참, 인생 참 별것 아니다. 그래서 어느 높은 자리, 부귀영화를 다 누린 세상에 가장 최고의 위치에서 평생 산 그런 사람들의 마지막 노년에 한마디를 들어본다면, 그 사람이 생각이 있다면, 인생을 안다면 하는 말 ‘인생 참 별 것 없더라’. ‘인생 참 별 것 아니더라’ ‘한평생이 너무도 허무하더라’ 그리 말 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그런데 그리 말하는 사람이 인생 마지막에 공통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그런 걸 생각하며 사느냐 그말이지요.
그래서 말씀을 좀 가지고 인생에 이런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니까 참 한편으로는 허전하고, 울적하고, 허무하고, 맛이 없고, 힘도 빠지고, 결국은 들어가길 어디로 들어가느냐? 그래서 말씀에 들어가서, 말씀 속에서 인간의 궁극과 마지막 최종과 그 속에 들어있는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잡아야 비로소 거기서 인간이 힘도 나고 욕망도 나고 모든게 생겨지는 것이지, 이걸 깨닫지 못한 인생은 철없는 인생이고 그냥 그만 무조건 가는 것이고, 목 잘린 닭이 펄펄 뛰듯이 그리 뛰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힘없이 그렇게 되는대로 그냥 어찌할 수 없으니까 사는 것이고, 참 비참하게, 불쌍하게, 가련하게 그래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말씀을 떠나면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되는 것 같은데 안 되는 것이고,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생애입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다 된다면 전부다 하나님이 될 건데, 온 세상 왕이 전부다 왕이 될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버려 두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두셔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온갖 과정을 다 거치게 하심은 ‘너는 인생이라, 창조주가 아니라, 주권자가 아니라 너는 피조물이라’ 이걸 알게 하시는 겁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그 속에서 우리를 연단시켜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하시고, 그분이 주신 구원을 깨달아서 그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분 말씀으로 살아가지고 영광의 구원을 이 땅 위에서 잘 이루게 하시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나님의 목적이라. 그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우리는 ‘나는 떡으로만 살진 않았는지’ 한번 돌아보십시다. 나는 떡만 보고 살지 않았나. 먹을 거 보고 살지 않았나, 의식주 보고 살지 않았나. 이 세상만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서 오늘까지 달려오지 않았나? 늦기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깨닫고, 빨리 돌이키는만큼 기회는 많고, 후회는 적고, 그냥 되는대로 살면 마지막 다가갈수록 위험천만하고 그만큼 후회는 많아지게 될 것이고 결과는 가련하게 될 것이고, 뻔한 겁니다. 결과는, 답은 나와있는거니까. 떡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 자신의 생활을 돌아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야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은혜라야 되지, 하나님이 은혜주지 않으시면 알기도 어렵고 느끼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지막까지 과정 과정 전부다가 다 하나님의 은혜라야 되기 때문에 은혜를 구하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떡으로만 사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해주옵소서.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그 말씀 속에 모든게 다 들어있으니 말씀으로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