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주후(눅2:14)
구주탄생2013-12-23조회 399추천 28
본문: 눅2:14
제목: 구주 탄생
요점:
1. 천사들의 찬송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천국의 영광 기쁨, 세상의 평화는 예수님 오심으로 된 것
- 천사들의 찬송은 이것을 찬송한 것
2. 예수님 오시기 전 세상은
- 암흑의 세상, 빛이 없는 세상
- 고난 절망 가난으로만 가득 찬 세상
- 과연 그러한가? 외부 모습은 전혀 아닌데
- 사람은 만물의 영장, 물질 일 몸 마음 영으로 사는 사람
- 5가지 중에 어느 하나라도 고난 절망 가난을 당하면 평안할 수 없는 것이 사람
- 예수님 오시기 전 구약 시대의 구원은 예표, 그림자
- 짐승의 피를 드리는 제사로
- 극히 제한된 소수만이 구원
3. 예수님 오신 후 세상은
- 본문의 천사들의 찬송
- 하늘의 영광 기쁨, 땅에는 사람들에게 평화
- 예수님 오심으로 세상에 빛이 있게 되어
- 고난에서 평강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가난에서 부요로
-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인한 희생의 역사로 되어진 구원
- 이 일은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고
-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의 구원이 된 것
4. 천국의 성격
- 천사들의 찬송은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의 역사를 찬송
-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천국의 영광이며 기쁨
- 자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은 용납지 않는 곳이 천국
- 자기만 생각하고 산 것도 알아주지 않는 곳이 천국
- 이것이 천국의 성격
5. 성탄을 맞이하며9
-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여
-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 자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거나
- 자기만 위해 사는 생활은 하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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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31222 주후
누가복음 2:14-14
성경은 역사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 역사를 그대로 고스란히 다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다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신 말씀이고,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아는 것은 인정을 하고 모르는 것은 또 의문을 가지고 그리합니다. 그래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어떤 면에서 보면 도무지 물에 넣어도 붓지 않을 터무니없는 그런 내용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지만은, 그러나 성경 전체를 두고 볼 때 사람들이 완전히 부정을 하지 못하는 그 이유가 역사적인 그런 사실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허무맹랑한 그런 것으로 생각지를 못합니다. 물론 세상에 많은 소설들도 역사적인 사실 근거해서 소설을 써내니까 그리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은, 그래도 예수님이 오신 이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러기 때문에 완전히 부인을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택함 입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를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오전에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은, 참고로 여기 1절에,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이런 사람들은 세상 역사에 그대로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는 사람입니다. 로마 나라에, 로마가 좀 별 것 아닌 그런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가 이때쯤 돼서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날 그 당시, 그 전후해서 아주 세계적인 그런 강대국이 되었고 카이사르라는 그 사람이 아주 실력이 있어서 그 사람이 로마를 거의 다 통일하고, 거의 세계를 굉장히 많이 점령을 한 그런 사람이고, 그 사람이 죽고 양아들된 이 사람이 가이사 아구스도인데, 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아마 조카인가 그런데, 안토니우슨가 이름이 그런데 원래 자기 위에, 말하자면 선왕의 그 이름을 따라서 가이사 아구스도로 성경적인 이름으로 말하면 그런데, 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로마에 합법적으로 법적인 첫 번째 황제고, 실질적인 로마를 황제 나라로 만든 사람은 그 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그 사람이 실질적으로는 로마를 그리 만들었고, 그런데 그리 된 상황에서 그래도 아직까지 나라가 적립이 안된 상태인데,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 나라를 완전히 대제국으로 확실하기 자리잡게 만든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좀 그렇지만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사람은 이성계라는 사람인데, 그 나라 기틀을 완전히 잡은 사람은 그 아들 이방원이라고, 세 번째 왕인 태종 임금 그 사람이 조선의 기틀을 완전히 다 잡은 사람입니다 실질적으로. 그것처럼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를 완전히 안정시키고 아주 대제국, 오랜 세월 번성할 수 있는 그런 기틀을 다 닦아놓은 사람이라 그리 볼 수 있고 아주 존경받던 그런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이 말하자면은 태어나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 나실 그 당시, 이제 바깥에는, 예수님이 나셨고, 나실 그때 밖에서는 목자들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그 목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다윗의 동네가 어디지요? 다윗의 동네가 어딥니까? 옛적 임금 다윗성에 낮은 마구 있더니, 우리 찬송에는 없지요 그거? 26장 찬송에 나오지요. 벧레헴에 나셨네. 다윗의 동네가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그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런데 그 구주가 나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강보가 뭐라 그랬던가요? 000? 강보가 뭐가 그랬지요? 여기 00이는 어디갔습니까? 000이 어디 갔습니까? 거기 있습니까? 강보가 뭐라 그랬지요, 강보? 000? 강보가 뭐라 그랬습니까, 강보? 저는 어릴때 강보를 보자기인줄 알았습니다, 보자기. 그런데 강보라는 말은, 아기를 싸서 안는 포대기, 아기 포대기를 강보라 그리 말합니다.
그 포대기에 싸여서, 구유는 뭡니까? 말구유니까 말 먹이통.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그랬습니다. 그리고나서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천군은 하늘의 군대입니다. 군대니까 숫자가 많겠지요. 그리고 허다하다 그랬으니까, 허다하다 말은 ‘다’자가 ‘많을 다(多’)자입니다. 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서, 이런걸 우리가 읽고 들으면 하나의 동화처럼, 소설처럼 그리 느껴지지요. 그런데 이걸 자꾸 생각을 해서, 그래서 그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그게 맛있다 그래도, 먹어보기 전에는 자기는 그 맛을 알 수가 없는 것이고, 큰 물건이 있는데, 아무리 크다고 말을 들어봐도 가보기 전에는 큰 줄을 모르는 것이고, 또 넓은 것도 가서 보기 전에는 그게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겁니다. 자기가 직접 가보고 먹어보고 해보는 거기서 그 실상을 알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 구원의 세계가 그러합니다. 구원의 세계는 여기 지금,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다가 천사가 나타나서 구주메시야 오신 것을 알렸고, 그때만 해도 그런가? 그럴 수 있습니다. 천사 나타난거는 놀랄 일이고, 또 그런데 메시야 오는 것은 대대로 고대하던 메시야니까, 이거는 목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때 허다한 천군이 나타나서, 나타났으니까 그게 아주 그 광경이 놀랐을 것이고 기이할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고 막 정신이 없었겠지요. 갑자기 막 수많은 군대가 나타나서 그 노래 소리가 어떠했겠습니까? 아주 수많은 큰 물결, 아주 막 물결이 큰 폭포가 쏟아지면, 우리나라는 그만한 폭포가 잘 없는데, 큰 폭포가 막 물이 높이 한 10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쏟아져내려가면 그 물소리가 아주 웅장하게 그렇게 들리는데, 이 천군천사의 찬송소리가 많은 물소리도 같았을 것이고, 천사의 노래니까 그 노래가 참 어떠했을지, 그 분위기를 한번 우리가 조금 위험성이 있으니까 조심해야 하지만은, 한번쯤 생각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했을까. 허다한 천군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송을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지극히 높은 곳이면 어딥니까? 지극히 높다 그말은, 더 이상이 없는 가장 높은 곳을 말합니다. 가장 높은 곳이니까, 이거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가치적인, 평가적인 개념으로 가장 높은 하늘나라.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또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기뻐하심을 입은 그랬으니까, 기뻐하심이라 그랬으니까 누가 기쁜겁니까? 기뻐하심이라 그랬으니까 그 기뻐하심은 누굽니까? 하나님을 기뻐하심을 입은 그 사람들이 땅에 있으니까, 하늘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땅에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평화가 왔다 그리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천군천사들의 찬송이, 내용이 보면은, 지극히 높은 곳 하늘나라 천국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졌고, 하늘의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기쁨이 된 그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왔다. 왜 그랬습니까? 무엇이 하늘의 영광이 하나님께 영광되게 하고,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게 한 겁니까? 무엇이, 무슨 역사로 이런 일이 있게 된 겁니까? 하늘의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고,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된 것은 무엇이 이런 결과, 이런 역사를 만들어 낸 겁니까? 이거는 국어 문제로 어렵지 않은 문제 같은데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자 우리 청년들 눈뜨시고,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랬는데, 요 일이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게 기쁨, 하늘의 영광 기쁨, 땅의 평화. 요 일, 요 결과가, 요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 역사가 뭐냐 그말입니다. 어렵게 생각지 마시고 간단하게, 000 선생님 뭡니까? 예수님이 오신, 예수님의 탄생이 그렇다 그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그 일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그 일로 인하여, 그 일 때문에, 그 일이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고 또 기쁨이 되어졌고, 땅에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오게 되어졌다 그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이런 역사가 되어졌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찬송은 예수님이 나신 것을 찬송했는데, 예수님이 나신 그 찬송의 내용을 보니까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가 나심으로, 구주가 나심으로 하늘에는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이루어졌다. 구주메시야가 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을 건데, 예수님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그 뒤에, 안에 있는 과정을 좀 더 생각해보고.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였는가? 이것도 한번 생각해보셔야 됩니다. 미국에 가야 될 일이 있으면 가봐야 됩니다. 캐나다도 갈 일 있으면 가봐야 되고, 중국에도 죄 짓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갈 기회가 있으면 가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유럽에도 마찬가지겠고. 그런데 안가보고도, 그 나라를 알아야 될 때 안가보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은, 신문 보면 알고 텔레비 보면 알고, 그런걸 바탕으로 해서 생각해보면 짐작해볼 수가 있는 겁니다. 미국 사는 사람들은 눈이 세 개일까? 미국 사는 사람들은 풀을 뜯어먹고 살까? 미국 사람들은 날개가 달렸을까? 미국 사람들은 발에 발통이 달렸을까? 그러지는 않겠지요. 언뜻 언뜻 신문보고 텔레비 보니까 미국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와 꼭 같은, 색깔은 좀 다를지라도, 음식이 조금은 차이가 날지라도 그들도 하루 두세번 밥 먹을 것이고, 그들도 걸어다닐 것이고, 그들도 자동차 타고 다닐 것이고, 그 나라도 법이 있겠고 문화가 있겠고, 예술이 있겠고 가족이 있겠고,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렇겠다. 그런데 이런 일은 차이는 있겠다. 안가봐도 우리가 알잖습니까? 저는 미국에 안 가봤습니다. 안가봐도 미국 사람들은 백인인 줄 알고, 거기는 흑인이 많은 줄 알고, 거기는 세계 모든 인종들이 많이 모여 있는 줄을, 저는 안가봐도 압니다. 들어서, 소식 듣고 봐서. 안가봐도 그 나라 법이 있는 줄 알고 그 나라를 짐작은 대략 한다 그말이지요. 가서 필요한 사람들은 가봐야 될 것이고. 천국은 우리가 가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는 우리들이 가히 다 짐작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미국 나라가 가서 필요한 사람은 가도록 노력해야 되고 가서 봐야 될 것이고, 갈 수 없고 갈 형편이 안되는데 그 나라를 알아야 되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공부해서 미국에 대해서 연구해서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천국은 우리가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살아생전에. 그러나 가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해 주셨으니까, 우리 심령을 통해 밝혀주시니까 안가봐도 천국을 아는 방법은 연구해보면 됩니다. 성경 읽어보면 되고 기도해보면 되고, 명상해보면 되고 생각해보면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이 어떤 세상이였는가? 이것도 좀 깊이 생각해봐야 되는데, 성경은 말하기를, 여러군데 보면은 그렇습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은 한말로 말하면 암흑 세상. 암흑이라 그말은 무슨 뜻입니까? 암흑이라 말은, 캄캄하게 어둡다는 세상이고,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빛이 없다는 뜻입니다. 빛이 없다 그말은, 무슨 빛이 없다는 겁니까? 빛의 역할은, 빛은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게 빛입니다. 참 공과 내용도 그렇고, 그런거 하나하나가,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게 빛입니다, 그런 말씀 들을때 전율이 느껴지지요.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 것이 빛입니다. 아닌가요? 과학적으로도 맞고 이치적으로도 맞고,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모든 불빛도 그렇고 형광등 빛도 그렇고 태양빛도 그렇고, 빛은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게 빛입니다. 바로 보이면 바로 알게 됩니다. 바로 알면 정평정가하게 되고 정평정가하면 자기 모든 사리판단, 취사선택, 언행심사, 자기 모든 생활이 반듯하게 바로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없으면 모든 것을 바로 볼 수가 없게 됩니다. 바로 보지 못하면 캄캄하게 어둡습니다. 그러면 모든게 다 틀어집니다. 눈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 눈이 어두우면 그의 모든 생활 다 어둡습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은 암흑 세상이였다, 캄캄하게 어두웠습니다. 암흑 세상이라 그말은, 뭐가 없다는 말입니까? 빛이 없다 말은 누가 없다는 말이지요? 세상에 하나님이 안 계시고, 하나님이 안계신다 그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가 없다는 뜻이고, 진리가, 옳은 진리와 영감 역사가 없는 세상이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그 세상 속에 사는, 주님 오시기전 세상에 모든 세상 사람, 그 세상에는 빛이 없으므로, 빛이 없으니까 옳은 것이 없고, 옳은 것이 없으니 그들의 모든 생활 전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과정할 것 없이 전부는 다 마지막에 전부 껍데기는 사는 것 같은데, 그들 생활 내면을 들여다보면 고난과 절망과 가난 뿐이였다.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 생활은 전부 이러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소수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구원 받은 민족은 유대인이지요. 세상에서 유대인들만 구원이 있었고, 그 유대인들 중에서도 실제 구원을 건설구원적으로 이루어간 사람은 아주 극소수고 몇사람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구원받은 방법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짐승의 피를 잡아서 받쳐 제사 드리는 이걸로 구원 받았고, 그 구원, 그 짐승 잡아드린 제사는 그림자적이였고 모형적이였고, 예표적이였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그 당시 예수님 오시기전, 지금부터 약 2천년 이전이겠습니다. 2천 몇 년 이전 세상인데, 세상 역사가, 000선생님? 역사가 얼마전부터 기록이 되어있는가요? 기록된 역사가 얼마나, 2천년 전 역사가 기록이 많이 되어있는가요? 많이 있어요? 세계사적으로도. 우리 나라 역사는 반만년 역사라 그리 말하는데, 우리 나라 역사가 2천년전이면 무슨 시대입니까? 대한민국 건국이 100년, 48년, 100년 됐습니까? 또, 아직 100년도 안됐겠네요. 조선시대 500년, 고려시대 500년, 약 천년. 삼국시대가 얼마나 될런지 모르겠네요. 신라 천년이라 그러고. 2천년 좀 넘겠네요 그러면. 그 이전도 그러면 기록이 있긴 있는데, 그런데 어쨌든 그 이전에도 기록을 봐서도 그렇고, 노아시대때는 지금부터 약 4천년 전인데, 그때 세상도 바벨탑 쌓고 하는 이런거 보고 또 그당시 뭐, 피라미드 같은거 이런거보고, 이래보면은 문화나 과학이 굉장히 많이 발달이 되어있는 그런 시대라 그리 말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 당시 예수님 오시기전,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그 세상 생활의 모습과, 예수님 오신 오늘 신약시대 바로 우리들 시대 사는 사람의 모습이 과학이나 그에 따른 문화생활이나 경제 생활의 모습은 좀 다를지라도 기본적인 사람의 모든 생활은 대동소위할건데, 그러면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을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 꼭 같진 않을지라도 정확하게는 몰라도, 예수님 오시기전 그때 세상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로 본다면, 오늘 시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러면 예수님 오시기전 구약시대 모든 사람들의 생활, 빛이 없는 암흑의 시대, 하나님의 역사가 군데군데 있어도 전체적으로. 타락후, 하나님께 저주받은 이 세상, 인간의 모든 생활. 예수님 오시고 난 이후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불신자들 불택자들 그들이 세상 생활과 비슷하다 그리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생활을 말하기를, 성경 그대로 아닐지라도, 성경을 가지고 공과를 목사님께서 만들어 설명하시기를, 예수님이 오기전,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의 모든 생활은 전부다가 첫째는 고난이다, 안팎이 다 고난입니다. 고난이고, 전부다가 절망이고 전부다가 가난이다. 이것으로만 가득차서,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에 들어가보면 온갖 종류의, 고난이란 것은 고통 슬픔 아픔 괴로움, 몸이 아픈 것 마음이 아픈 것, 물질 때문에 일 때문에 이런 거 아픈, 고통 괴로움 이런게 전부 고난속에 다 들어가겠는데, 예수님 오시기전 혹은 예수님 없는 세상은 전부 이런 고난으로만 가득찬 세상생활이다, 또는 절망으로 가득찼고 가난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 고난이란 것은 고통이라 그말이고 괴로움, 아픔 고통인데. 지금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보고 과연 그들속에 그들의 모든 생활이 고난 뿐이냐, 절망 뿐이냐 가난이냐. 이런 걸 한번 생각해볼때, 외부적인 모습만 보면은 얼른 이해가 되지를 아니하지 않습니까? 이런걸 우리가 볼때, 생각해보고 그 생각속에서 의문도 나와야 되고 답을 좀 찾아봐야 됩니다. 그래서 설교하려고 준비해볼때 막연하게 그냥 읽는 것처럼, 내용을 읽는 것처럼,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은 모든 사람은 암흑세상이였고, 고난만 가득 찼고 절망만 가득찼고 가난으로만 가득 찼습니다. 그리 말할 때 과연 그러하냐? 그러면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은 오늘로 말하면 예수님 믿기 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인데, 우리 나라 대재벌 그룹 삼성 그룹의 이건희씨가 고난뿐일까? 절망뿐일까? 가난할까?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이건희씨만큼 못해도, 많은 재벌들이 있고, 재벌만큼 못되도 부자들이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 세상에는 웃는 사람 즐거워하는 사람, 평화롭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생활을 어째서 고난이라 하느냐? 고난뿐이라 하느냐. 절망밖에 없다 하느냐, 가난밖에 없다 하느냐 과연 그러하냐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고난이라 그럴때, 고통 즐거움이라 그럴때 이거를 해결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 안믿는 사람들도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그들도 소망이 있고 그들도 부요가 있고 다 있는데 왜 그리 말하느냐?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래서 안믿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성경 가지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안 믿는 사람들 하나님 없고 예수님 없는 사람들의 그 세계를 들여다볼때, 그들속에 이건희씨가 과연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이니까 그 마음속에 근심 걱정이 과연 없을까? 돈이 많아서 돈이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돈이 없어서 가난하다 궁핍하다 괴롭다 그 괴로움은 없을지 모를지라도, 그도 하다보면은 일이 꼬여서 괴로울 수 있을 것이고, 많은 돈이 있지만은 그 돈이 그 돈으로 인해서, 그 돈이 나한테서 멀어질까 빼앗겨질까 이런 걱정은 안할지 모르겠지만은, 그 돈이 돌아가는 그 때문에 그 돈 때문에 이건희씨가 당하는 그런 고난도 아마 우리가 그 내면을 모르기는 몰라도 짐작해볼때, 많이 있지 않을까? 또 하는 그 사업, 일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많이 있지 않을까? 아무리 돈이 많고 억만금이 있고 일이 잘 돌아가서 재벌이 점점 되어갈지라도 몸이 아프고 몸이 병이 들었는데, 몸이 늙어져가는데 거기 대한 고통, 거기 대한 괴로움은 이거는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이거는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 몸이 평안할지라도 마음의 괴로움은 또 있을 것이다. 마음까지는 그리 될지라도 그 속에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영의 세계까지 들어가면 사람이 영물이라 특수지음받은 존재라, 영이 죽어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으로 지음받은 그 존재가 영의 작용이 없으니 영의 작용 없는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가있는데, 영이 살아서 하나님을 찾아야될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을 찾질 못하니까 그 허무함이, 그 허전함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가져보니까,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마지막에 자기 세월이 늙어감에 따라, 늙어가는데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면을 두고, 죽음이 앞에 있는데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그면을 두고 그런 사람들은 아마 일반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그런 괴로운 고통이 또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물질로 살고 일로 살고, 몸으로 살고 마음으로 살고, 영으로 사는 것인데, 이 다섯가지가 별별 종류의 고난과 절망과 가난을 당할 때, 그 하나하나가 이런 것들을 어떤 종류, 여러 가지 종류 여러 형태의 고통 슬픔 고난 괴로움, 이런 것을 마음이 겪고 몸이 겪고, 일 때문에 겪고 물질 때문에 겪을때, 이런 고통이 있을때, 죽어가는 사람도, 몸이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도 깜빡깜빡 죽음의 고통이 면해질때가 있습니다. 암이 들어서 굉장히 아파도 그 아픈 고통이 깜빡 잠시 멈출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한숨 돌릴만하다가 또 아픔이 또 오고 이리되는데, 마찬가지로 인생이란 것이 세상을 사는데 나서부터 죽는날 까지 고통으로 연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마치 말하자면은, 아무리 아파도 마취제를 놓으면은, 마취제가 아니고 그 진통제를 놓으면은 아픈 고통이 일시 없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고난, 그 고난으로 꽉 차있는데 그 고난을 세상에 여러 가지 형태 종류의 진통제를 통해서 그 고난을 면한 것 같으나, 정신을 차리고 진통제 약효가 떨어지고 나면 또 다시 고통이 오고 괴로움이 오는 그게 사람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진통제만 평생 먹어서 고통을 면하다가 약효 떨어지면 또 먹고 약효 떨어지면 또 먹어서 그 진통제 속에는 사람을 고통은 면하게 해주지만은 신경을 다 죽여버리니까 그만큼 수명이 단축되어지고, 자기몸의 몸과 정신 마음이 다 마음을 황폐화시키는 이런 것이 그런 진통제 신경안정제 이런 것들인데 이걸 먹어서 고통을 일시로 면하지만은 그 약효가 떨어지고나면 또다시 고통이 오고 괴롭고 그러니 또 약을 먹고, 마치 술 먹는 사람이 괴로우니까 술 마시고 술 깨고 나니까 또 괴로우니 또 술 마시고, 그래가지고 몸과 마음을 다 망치는 것처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든 생활이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인생의 궁극을 파고들어가보면 괴로워서 견딜수 없으니까, 백 목사님도 그랬다지요. 이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았고, 돈을 젊은 사람이 너무 일찍 많이 벌어보니까, 그런데 머리는 총명하고 멀리까지 계산해보니까, 돈이 많은들 뭣하나,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낙을 누려본들 뭐하나, 그러니까 젊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벌어보고 나서 세상을 돌아보고 인생을 생각해보니까, 술 안 먹고는 못 견뎌서, 괴로워가지고, 그래서 몇 날 몇 일 술을 퍼마셔가지고 몸을 못 가눠서 사람을 사서 집에 들어간 그 생활을 한참 동안 했다 그러지요. 맨날 몇일 울기도 하고.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나면 예수 없는 인생, 하나님 없는 인생은 깊이 들어가보면 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 돈이라는 진통제, 공부라는 진통제, 부부의 재미라는 결혼이라는 진통제, 자녀 낳는 그 재미의 진통제, 출세라는 진통제, 온갖 종류의 진통제를 통해서 인생 궁극의 고난을 일시적으로 다 해소를 하는 겁니다. 이 말씀이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우리 000선생님 어떻습니까? 설명이 이해가 됩니까? 논리적으로 말이 맞는 것 같습니까? 000씨 어떻습니까?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인생의 근본을 좀 파고들어가서, 궁극을 파고들어가서 생각해보면, 해결할 수 없는 그런게 굉장히 많은데, 그런데 사람들이 눈 앞에 보여지는 그런것의 마음과 정신과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붓고, 그런 것을 하나 둘 마련하고 이룩하고, 또 쌓여지고 또 만들어지는, 누리는 그런 재미에, 그런 재미로 하루 하루 일년 이태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거기서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 인생의 궁극과 늙은 다음에 늙음과 죽음을, 그래서 사람이 정상적으로 생각가지고 사는 사람이 60, 70이 돼서 죽음을 목전에 둔 그때 정신 자세로 평생을 살아라 그러면 예수 안믿는 사람들은 못 살 겁니다, 세상을. 괴로워서 못 살 것이고, 그만 살지 못할겁니다. 너무 허무해서, 살 수 있는 힘이 없어 못 살 겁니다. 그래서, 그것도 하나님의 역사인데, 온갖 종류 세상 그런 것에 빠져서 그리 살고 있지만은, 그 속에 들여다보면, 그러니까 세상 사는 사람들의 그들의 성공한 사람들, 경제면으로 권세면으로, 세상 명예적으로 어떤 면으로 성공한 그런 사람들의 그 생활을 우리가 밖에서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그 내면을 좀 짐작해볼 수가 있다 그말이지요. 참 허무한 가치없는 그런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인데. 이런 고난, 그런데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없는 겁니다. 길이 없는 겁니다. 법이 없고. 인생의 궁극의 그 고난, 거기서 고통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으니까 절망입니다. 캄캄한 절망.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없으니까 절망이고, 또 자기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할 수 있는게 없다 말은 가진 것이 없다 그말이지요. 가지기는 가져도, 자식이 있어도 그 자식이 부모와 이질이 되어지고 부모 뜻대로 안되면 그게 참 자식이 아니라 원수라는 말 처럼, 돈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 돈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 있는 것이 더 고통이고 더 괴롭습니다. 몸의 기능이 아무리 있어도 그 기능을 쓰지 못하면 더 고통입니다. 차라리 모르면, 못하면 그만 그러려니 체념할건데.
이런 것이 말하자면은 고난과 절망과 가난인데, 이런것을 이 세상에서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고 그 원인도 모르는 것이고,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이 모든 것을 인간이, 인생이 왜 무한한 영원한 고난 속에 빠지게 되어졌는가? 왜 절망속에 빠지게 되었는가? 왜 무한한 가난 속에 빠지게 되어졌는가를 원인을 찾아서, 주님 대속으로 원인을 알게 되어졌고, 그 해결의 길이 바로 주님 대속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인간의 모든 고난과 절망과 가난의 그 모든 원인이 다 밝혀졌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려졌으니까 그게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리되는 것인데, 그런데 그래서 이 역사를 두고 이런 인간에게 있는 멸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그 사랑과 희생의 이 역사를 두고 멸망속에 빠져있는, 깊은 영원한 멸망 속에 빠져있는 인생의 영원한 멸망을, 멸망에서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는데, 그 사람되어 오신 그 희생의 역사가 말할 수 없는 무한의 희생의 역사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해서 인간의 멸망을, 인간을 멸망에서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신 도성인신의 그 큰 희생의 그 역사 이걸 두고 천사들이 찬송을 한 겁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중에 평화가 되어졌다. 요래 찬송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렵지만은, 우리가 잘 몰라도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 예수님이 없다 말은 대속이 없다 말이고, 대속이 없다 말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없다 말이고 천국이 없다는 말이고, 진리와 영감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한말로 말하면 그들에게 빛이 없다는 말인데, 빛이 없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택함 받지 못한 그 사람들의 현재 사는 그 모습과, 그 모습 이면에 있는 그들 속에, 깊은 속에 있는 무한의 고난과 절망, 가난을 생각해보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다. 속에 말기 암이 걸렸는데, 말기암 걸린 그 환자가, 가족들이 그 환자를 보고 한달 남았으니까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얼마든지 드시도록 하십시오, 최대한 잘 해드리십시오. 환자도 그걸 알고 가족들이 안다면, 그럴때 그 환자가, 한번씩 그런 소식이 신문에 들리지 않습니까? 그 환자가, 두 사람이 결혼 약속을 했는데, 약속하고 나서, 그만 너무 사랑했는데 신부가 병이 들었다 말이지요. 그런데 이 남편 될 사람이 신부를 너무 사랑해서 병이 들어 한달 밖에 못사니까 내일 당장 결혼식 하자, 그래가지고 결혼식 하는데 그 하는 그 결혼식은, 기쁨에 소망이 넘치는 그런 좋은 결혼식이 아니고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그런 결혼식이 되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한달 있으면 죽어야 되는데, 그래서 임시로, 그 죽을 사람이기 때문에 위로하는 그런 결혼식이니까, 한달 있으면 죽을 사람이니까 위로해서 맛있는 것 차려주고 여행 시켜주고 좋은 것 다 사주고 구경 다 시켜줘도 아무리 좋은 음식을 주고 좋은 거 보여주고 친절하게 잘 해줄지라도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과연 기쁨이 되겠는가, 소망이 되겠는가? 그 모든 것 전부다 내가 한달후에 죽을 거니까 해준다, 그게 전부다 눈물이고 괴로움이고 아픔이고 고통이고 그리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본인이 모른다면, 아는 사람들은 그럴 것이고, 또 본인은 알고 가족들이 모른다면, 본인이 알고 그리한다면 본인은 겉으론 웃어도 속에는 참 이별의 그 슬픔이 한이 없을 것이고, 이것처럼 안 믿는 사람들 예수 없는 사람들, 예수님 오기전 세상의 모든 모습들이 다 말하자면 예를 들자면 그보다 더한 것인데, 그 고통을 그 고난을, 그 절망을 우리는 좀 헤아려서 생각해 볼 줄을 알아야 되겠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사람된 큰 희생의 역사로 우리 모든 원인된, 그 모든 멸망의 원인되는 죄와 배신과 자행의 그 값을 당신이 대신 치르심으로 인해서 거기서 구원을 받아서, 영원한 고난이 영원한 평강으로, 영원한 절망이 영원한 소망으로, 영원한 가난이 영원한 부요로 우리에게 오게 되어졌으니까 이 구원의 감사가 기쁨이 어떠하겠는가? 이걸 우리는 다 몰라서 찬송을 해도 힘이 없고, 속속들이 나오는 기쁨이 없지만은, 우리도 한번씩 말씀을 생각하고 성령의 은혜로 이게 좀 밝혀지게 될 때는, 날 구원하신 예수를 찬송을 열 번을 불러도 목이 안 아프고 하루종일 불러도 또 부르고 싶고, 속에서 기쁨이 넘치는 그런 것이 되어지는 겁니다.
천사들은, 천사들은 하나님이 그대로 보여주셨으니까 그 천사들의 찬송이 어떠했겠는가. 예수님이 오심을 보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다. 영원히 고난과 절망 가난 속에 빠진 모든 인생들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이 사람되심으로, 낮아짐으로, 고난받아 십자가에 고난 받아 죽으심으로, 그 대속 역사로 인해서 영원한 멸망에 빠진 인간이 구원을 받아서 평강과 소망과 부요를 구원을 받게 되어졌으니 그 구원 받은 사람들, 그 존재들이 알고나면 구주 메시야 주님에게 돌릴 감사 찬송이, 이 모든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에게 돌릴 그 감사 찬송 영광이 어떠할 것인가. 그래서 고스란히 보고 아니까 그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 찬송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보면은, 같은 사람들이 살아도 어떤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이, 자기를 자기 물질을 드려서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드려서, 자기보다 어린, 모르는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노력을 드리고 몸을 받쳐 드리고, 그리 희생을 하고 그 희생을 하려고 작정하는 걸 볼때에, 그 희생을 볼때 그 희생으로 인해서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구원의 길로 돌아서고 점점 신앙이 자라가고 구원이 되어지는 그런 모습을 볼때 옆에서 보는 사람이 참 하나님 감사하다, 그 찬송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게 천사들의 찬송이고, 누가복음 2장 14절에 찬송의 이유고 원인이고 배경이고 근거고 그리 되어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찬송을 보고, 전체 그 배경을 살펴볼때, 천국은 어떤 나라냐? 하늘나라 천국이란 곳은, 그 나라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심 같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래서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거기에 영광 돌리고 그것이 하늘나라 기쁨이고, 그런 존재들 그런 일들만 모인 나라가 천국이다. 자기 자신을, 타락후 천하 모든 인간은 안 그런 사람이 없고 안 그런 가정이 없고, 안 그런 나라가 없고 안 그런 민족이 없고, 안 그런 세상 단체가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 나라에 필요해서 국책사업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되는데 그러면, 어느 지역을 후보로 둔다 그러면 그 지역에서 막 들고 일어납니다. 밀양에 송전탑 세운다고 밀양 사람들이 대모하고 난리가 나지요. 또 어디 뭐한다 그러면 대모하고 난리가 납니다. 그리 지나가기는 지나와야 되겠는데, 그곳에 세우기는 세워야 되겠는데 그러면 그 지방 사람들은, 우리 다 죽습니다, 우리 손해됩니다 그래서 죽어도 못하게 합니다. 온 대한민국 5천만명이 다 전기 때문에 불편을 겪어도 우리 마을에는 안됩니다, 그게 지역 이기주의라는 건데 그 지방 사람들만 그러냐? 그 지방 사람들 욕하면, 그러면 너거집 앞에 세워봐라, 너희 동네 갖다놔봐라. 범일동 갖다놓으면 범일동 주민들은 안 그렇겠습니까? 저 서울 갖다 놓으면 서울 사람들은 안 그러겠습니까? 그게 전부 지역적으로 이기주의, 자기 지방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 지방에서 더 깊이 들어가면 자기 집안이 우선입니다. 자기 집안에도 자기 가족이 우선입니다. 세계로 들어가보면 세계에도 다른 나라 다 망해도 우리 나라는 망하면 안된다. 다른 나라 다 굶어죽거나 말거나 그래까지는 안하지요.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까 막 도와주지요.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먹을 것이 딱 없어지고 한정이 되어지면 그때는, 세계에서 다른 나라 제일 많이 돕는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뭐니 뭐니해도 미국나라가 천교도 나라니까 제일 많이 돕고 있는데, 제가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 나라도 알레스카입니까? 미국나라 땅이? 안에 석유가 무진장 들어있다그러지요. 그런데 그거는 손도 안되고 놔놓는다고 그러지요. 앞으로 몇 십년후, 온 세상에 석유가 다 떨어질 때, 이거는 우리 나라 사람들 파 먹어야 된다. 그래서 알레스카를 사가지고 땅을 거기 놓고, 거기는 밑에 석유가 많이 들어있는데, 이게 뭐 사실인지 어느 정도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래 들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그거는 아예 손도 안되고 있답니다. 세계 있는 걸 다 파먹고 마지막에 떨어지면 그걸로 자기 나라 써야 되니까. 안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어느나라 할 것 없이.
그래서 국제전으로 나가면 자기나라 우선, 한 나라안에 들어가면 우리 지방이 우선, 그 지방안에 들어가면 우리 집안이 우선, 그 집안에 들어가면 우리 가족이 우선, 그 가족안에 들어가면요? 내가 우선. 그 가운데서도 내가 우선 아닌 관계 하나가 있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 부모는 죽어도 자식은 살리는. 그래서 특히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이라. 그래도 그것도 들어가보면 내 자식이니까, 자기 중심. 그래서 타락한 이 세상은 전부 자기가 우선이고 자기와 관련된 주변이 가장 최우선이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 주변을 전부다 이용해 먹는 겁니다. 한말로 말하면, 나를 위해서 타를 희생시키는게 세상이고, 그게 지옥입니다. 그거 아니면, 타를 희생시키지는 않아도 나는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지, 그게 세상입니다. 그래서 신사적이고 도덕적이고 잘 살면, 남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나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나는 나를 위해서, 나와 내 가족, 나와 관련된 이것 위해서 나를 쓰고, 내가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시키는 것은 깊이 들어가보면 없는 것이 세상이고, 이런 가운데서 천국이란 것은 너가 평생을 너를 위해 살았느냐? 너의 재물과 너의 시간과, 재주 기능과, 너의 모든 가진 것을 너 자신 위해서, 너 자식 위해서 너 가족 위해서, 너거 집안 위해서 그렇게 살았느냐? 나는 우리 사회 위해서 살았습니다. 너 사회니까 그래 살았겠지. 우리 민족위해서 나는 애국자입니다. 니 나라니까 그랬겠지. 니가 남의 나라 그래했느냐? 나는 온 인류를 위해서 그랬습니다. 니가 사람이니까 너도 그랬겠지. 이게 세상이고 이게 지옥인데, 하늘나라는 그런 것을 용납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나라는 사람을, 나를, 나 아닌 타를 위해서, 이게 좀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은 하나님과 인간은 존재의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이 개미를 위해서 사람이 희생한다. 있을 수 있습니까? 애완견을 잡아 먹었다 그러면 들고 일어나서 난리가 나겠지요, 동물 애호가들이. 그런데 배가 고파보지요? 정말 먹을 것이 떨어져서 눈앞에 사랑하는 애완견 밖에 없습니다. 안 잡아먹고 견딜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게 사람입니다. 누구나 다 별 수 없는 마찬가지.
그런데 사람이 자기 아끼는 동물 위해서 자기 희생할 사람이, 그럴 필요도 없고 이거는 인간관계니까 없는데, 하나님이 인간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사랑해서 당신 전부를 다 희생한 이것이 성탄입니다. 그래서 영광 돌린 겁니다. 천국이란 곳은 타를 위하여 나를 희생시키는 그게 천국의 성격이고 건설이고 그 나라 영광이고 하나님에게, 천국에 있는 모든 것에게 기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무한한 영광이 되는 겁니다. 이걸 알고, 이걸 연습해서 요런 성품과 요런 인격과, 요런 속성과 요런 지능을 길러나가는 것이 천국 건설하는 것이고 이 천국 건설이 우리의 구원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헛벗어라도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고 손해끼치는 이런 일은 결단코 꿈에서조차 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데, 과연 그래 합니까? 내 이름에 먹칠이 되면, 내 명예에 누가 되면, 내 자존심을 건드리면, 내 자식을 건드리면, 우리 집안을 욕하면 사생결단하고 달려드는 사람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여기에 있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비유가 좀 안 맞지만은, 내 밥그릇 건드리면 그냥 안 있지요? 이거는 강아지들도 그렇습니다. 제 밥그릇 건드리면 그냥 사생결단하고 달려드는데, 사람은 그들보다는 나아야 되는데 사람이 자기 직장에서 자기 밥그릇 건드리면 그냥 있습니까? 노사대모 전부다 그런 차원 아닌가요? 좀 높은 차원에서 예를 들자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대모하는 게 전부다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류만 그런게 아니고, 좀 넓게 좀 생각해보면 우리들 속에 그런 요소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걸 뽑아내서, 속속들이 뽑아내서 섞임없이 순전히 나라는 존재는 타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눈이란 것은 온 몸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귀라는 것은 온 몸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럴때 온몸은 눈과 귀를 위해서 있도록 요래 되는게 천국의 성격인데, 요게 천국인데 요것을 실제로 이루신 그 역사가 바로, 실제 역사가 바로 그동안의 예표로 약속으로, 그림자적으로 내려오던 그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 도성인신하신 주님이 사람되어오신 그 역사기 때문에 그래서 천사들이 그 일을 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이런 큰 찬송을 하게 된 겁니다.
오늘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깨달은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기쁨이 되어지는 것은, 누군가가, 나 자신부터 자기 아닌 타를 위해서 어린 사람 위해서 자기를 받쳐 희생을 할때,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자기 뭔가를 희생해서 드릴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고 주변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고 평화는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화평을 하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사람과 사람끼리 화목하는데 꼭 들어가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끼리 화목하는데 들어가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소금이지요, 소금.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내가 낮아지지 않고, 내가 녹아지지 않고, 내가 죽어지지 않고, 희생되지 않고 손해보지 않으면, 인간 관계는 화평이란 것은 진정한 화평은 이룰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주님 대속을. 그래서 십자가로 화목하게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천사들의 찬송, 누가복음 2장 14절 이 찬송 이 말씀을 생각해보고, 왜 허다한 천군 천사가 하나님께 영광 돌렸고, 영광이며 기쁨이 되어지는가, 평화가 되어졌는가. 그 역사가 뭐냐? 그게 하나님을 사랑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랑이 역사한 하나님의 무한한 대속의 희생이. 그 희생으로 영원한 멸망의 인간이 다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그 희생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되는 이것처럼. 오늘도 이 천국 성격에 이런 사랑과 희생의 작용이 있는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는 화평이 이루어지는 이게 되어지는 겁니다. 이런 우리가 되도록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말로만 그치지 말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내 속에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얼마만큼 많이 강하게 들어있는가? 형제를 사랑하여 내가 희생한 것은 무엇이며 얼마만큼 되어지는가 돌아보고, 우리는 남은 때는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이런 우리가 되고, 헛벗으로라도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는 이런 지옥의 일들은 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제목: 구주 탄생
요점:
1. 천사들의 찬송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천국의 영광 기쁨, 세상의 평화는 예수님 오심으로 된 것
- 천사들의 찬송은 이것을 찬송한 것
2. 예수님 오시기 전 세상은
- 암흑의 세상, 빛이 없는 세상
- 고난 절망 가난으로만 가득 찬 세상
- 과연 그러한가? 외부 모습은 전혀 아닌데
- 사람은 만물의 영장, 물질 일 몸 마음 영으로 사는 사람
- 5가지 중에 어느 하나라도 고난 절망 가난을 당하면 평안할 수 없는 것이 사람
- 예수님 오시기 전 구약 시대의 구원은 예표, 그림자
- 짐승의 피를 드리는 제사로
- 극히 제한된 소수만이 구원
3. 예수님 오신 후 세상은
- 본문의 천사들의 찬송
- 하늘의 영광 기쁨, 땅에는 사람들에게 평화
- 예수님 오심으로 세상에 빛이 있게 되어
- 고난에서 평강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가난에서 부요로
-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인한 희생의 역사로 되어진 구원
- 이 일은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고
-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의 구원이 된 것
4. 천국의 성격
- 천사들의 찬송은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의 역사를 찬송
-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천국의 영광이며 기쁨
- 자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것은 용납지 않는 곳이 천국
- 자기만 생각하고 산 것도 알아주지 않는 곳이 천국
- 이것이 천국의 성격
5. 성탄을 맞이하며9
-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여
-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 자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거나
- 자기만 위해 사는 생활은 하지 않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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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31222 주후
누가복음 2:14-14
성경은 역사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 역사를 그대로 고스란히 다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다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신 말씀이고,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이 아는 것은 인정을 하고 모르는 것은 또 의문을 가지고 그리합니다. 그래도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어떤 면에서 보면 도무지 물에 넣어도 붓지 않을 터무니없는 그런 내용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지만은, 그러나 성경 전체를 두고 볼 때 사람들이 완전히 부정을 하지 못하는 그 이유가 역사적인 그런 사실들이 많이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전혀 허무맹랑한 그런 것으로 생각지를 못합니다. 물론 세상에 많은 소설들도 역사적인 사실 근거해서 소설을 써내니까 그리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은, 그래도 예수님이 오신 이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러기 때문에 완전히 부인을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택함 입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를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겁니다.
오전에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은, 참고로 여기 1절에,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이런 사람들은 세상 역사에 그대로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는 사람입니다. 로마 나라에, 로마가 좀 별 것 아닌 그런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가 이때쯤 돼서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날 그 당시, 그 전후해서 아주 세계적인 그런 강대국이 되었고 카이사르라는 그 사람이 아주 실력이 있어서 그 사람이 로마를 거의 다 통일하고, 거의 세계를 굉장히 많이 점령을 한 그런 사람이고, 그 사람이 죽고 양아들된 이 사람이 가이사 아구스도인데, 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아마 조카인가 그런데, 안토니우슨가 이름이 그런데 원래 자기 위에, 말하자면 선왕의 그 이름을 따라서 가이사 아구스도로 성경적인 이름으로 말하면 그런데, 이름을 바꾼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로마에 합법적으로 법적인 첫 번째 황제고, 실질적인 로마를 황제 나라로 만든 사람은 그 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그 사람이 실질적으로는 로마를 그리 만들었고, 그런데 그리 된 상황에서 그래도 아직까지 나라가 적립이 안된 상태인데,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 나라를 완전히 대제국으로 확실하기 자리잡게 만든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좀 그렇지만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운 사람은 이성계라는 사람인데, 그 나라 기틀을 완전히 잡은 사람은 그 아들 이방원이라고, 세 번째 왕인 태종 임금 그 사람이 조선의 기틀을 완전히 다 잡은 사람입니다 실질적으로. 그것처럼 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를 완전히 안정시키고 아주 대제국, 오랜 세월 번성할 수 있는 그런 기틀을 다 닦아놓은 사람이라 그리 볼 수 있고 아주 존경받던 그런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예수님이 말하자면은 태어나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 나실 그 당시, 이제 바깥에는, 예수님이 나셨고, 나실 그때 밖에서는 목자들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그 목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다윗의 동네가 어디지요? 다윗의 동네가 어딥니까? 옛적 임금 다윗성에 낮은 마구 있더니, 우리 찬송에는 없지요 그거? 26장 찬송에 나오지요. 벧레헴에 나셨네. 다윗의 동네가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그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런데 그 구주가 나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강보가 뭐라 그랬던가요? 000? 강보가 뭐가 그랬지요? 여기 00이는 어디갔습니까? 000이 어디 갔습니까? 거기 있습니까? 강보가 뭐라 그랬지요, 강보? 000? 강보가 뭐라 그랬습니까, 강보? 저는 어릴때 강보를 보자기인줄 알았습니다, 보자기. 그런데 강보라는 말은, 아기를 싸서 안는 포대기, 아기 포대기를 강보라 그리 말합니다.
그 포대기에 싸여서, 구유는 뭡니까? 말구유니까 말 먹이통.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그랬습니다. 그리고나서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천군은 하늘의 군대입니다. 군대니까 숫자가 많겠지요. 그리고 허다하다 그랬으니까, 허다하다 말은 ‘다’자가 ‘많을 다(多’)자입니다. 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서, 이런걸 우리가 읽고 들으면 하나의 동화처럼, 소설처럼 그리 느껴지지요. 그런데 이걸 자꾸 생각을 해서, 그래서 그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서 그게 맛있다 그래도, 먹어보기 전에는 자기는 그 맛을 알 수가 없는 것이고, 큰 물건이 있는데, 아무리 크다고 말을 들어봐도 가보기 전에는 큰 줄을 모르는 것이고, 또 넓은 것도 가서 보기 전에는 그게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겁니다. 자기가 직접 가보고 먹어보고 해보는 거기서 그 실상을 알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 구원의 세계가 그러합니다. 구원의 세계는 여기 지금,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다가 천사가 나타나서 구주메시야 오신 것을 알렸고, 그때만 해도 그런가? 그럴 수 있습니다. 천사 나타난거는 놀랄 일이고, 또 그런데 메시야 오는 것은 대대로 고대하던 메시야니까, 이거는 목자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때 허다한 천군이 나타나서, 나타났으니까 그게 아주 그 광경이 놀랐을 것이고 기이할 것이고, 두려웠을 것이고 막 정신이 없었겠지요. 갑자기 막 수많은 군대가 나타나서 그 노래 소리가 어떠했겠습니까? 아주 수많은 큰 물결, 아주 막 물결이 큰 폭포가 쏟아지면, 우리나라는 그만한 폭포가 잘 없는데, 큰 폭포가 막 물이 높이 한 10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면서 쏟아져내려가면 그 물소리가 아주 웅장하게 그렇게 들리는데, 이 천군천사의 찬송소리가 많은 물소리도 같았을 것이고, 천사의 노래니까 그 노래가 참 어떠했을지, 그 분위기를 한번 우리가 조금 위험성이 있으니까 조심해야 하지만은, 한번쯤 생각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떠했을까. 허다한 천군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송을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지극히 높은 곳이면 어딥니까? 지극히 높다 그말은, 더 이상이 없는 가장 높은 곳을 말합니다. 가장 높은 곳이니까, 이거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가치적인, 평가적인 개념으로 가장 높은 하늘나라.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또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기뻐하심을 입은 그랬으니까, 기뻐하심이라 그랬으니까 누가 기쁜겁니까? 기뻐하심이라 그랬으니까 그 기뻐하심은 누굽니까? 하나님을 기뻐하심을 입은 그 사람들이 땅에 있으니까, 하늘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땅에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평화가 왔다 그리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천군천사들의 찬송이, 내용이 보면은, 지극히 높은 곳 하늘나라 천국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졌고, 하늘의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기쁨이 된 그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왔다. 왜 그랬습니까? 무엇이 하늘의 영광이 하나님께 영광되게 하고,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게 한 겁니까? 무엇이, 무슨 역사로 이런 일이 있게 된 겁니까? 하늘의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고,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된 것은 무엇이 이런 결과, 이런 역사를 만들어 낸 겁니까? 이거는 국어 문제로 어렵지 않은 문제 같은데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자 우리 청년들 눈뜨시고,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랬는데, 요 일이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게 기쁨, 하늘의 영광 기쁨, 땅의 평화. 요 일, 요 결과가, 요 결과를 만들어낸 과정 역사가 뭐냐 그말입니다. 어렵게 생각지 마시고 간단하게, 000 선생님 뭡니까? 예수님이 오신, 예수님의 탄생이 그렇다 그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그 일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그 일로 인하여, 그 일 때문에, 그 일이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고 또 기쁨이 되어졌고, 땅에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오게 되어졌다 그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이런 역사가 되어졌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의 찬송은 예수님이 나신 것을 찬송했는데, 예수님이 나신 그 찬송의 내용을 보니까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가 나심으로, 구주가 나심으로 하늘에는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고,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가 이루어졌다. 구주메시야가 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없을 건데, 예수님 메시야가 오심으로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 그말이지요. 그러면 그 뒤에, 안에 있는 과정을 좀 더 생각해보고.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이였는가? 이것도 한번 생각해보셔야 됩니다. 미국에 가야 될 일이 있으면 가봐야 됩니다. 캐나다도 갈 일 있으면 가봐야 되고, 중국에도 죄 짓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갈 기회가 있으면 가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유럽에도 마찬가지겠고. 그런데 안가보고도, 그 나라를 알아야 될 때 안가보고도 알 수 있는 방법은, 신문 보면 알고 텔레비 보면 알고, 그런걸 바탕으로 해서 생각해보면 짐작해볼 수가 있는 겁니다. 미국 사는 사람들은 눈이 세 개일까? 미국 사는 사람들은 풀을 뜯어먹고 살까? 미국 사람들은 날개가 달렸을까? 미국 사람들은 발에 발통이 달렸을까? 그러지는 않겠지요. 언뜻 언뜻 신문보고 텔레비 보니까 미국에 사는 사람들도 우리와 꼭 같은, 색깔은 좀 다를지라도, 음식이 조금은 차이가 날지라도 그들도 하루 두세번 밥 먹을 것이고, 그들도 걸어다닐 것이고, 그들도 자동차 타고 다닐 것이고, 그 나라도 법이 있겠고 문화가 있겠고, 예술이 있겠고 가족이 있겠고,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렇겠다. 그런데 이런 일은 차이는 있겠다. 안가봐도 우리가 알잖습니까? 저는 미국에 안 가봤습니다. 안가봐도 미국 사람들은 백인인 줄 알고, 거기는 흑인이 많은 줄 알고, 거기는 세계 모든 인종들이 많이 모여 있는 줄을, 저는 안가봐도 압니다. 들어서, 소식 듣고 봐서. 안가봐도 그 나라 법이 있는 줄 알고 그 나라를 짐작은 대략 한다 그말이지요. 가서 필요한 사람들은 가봐야 될 것이고. 천국은 우리가 가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세계는 우리들이 가히 다 짐작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미국 나라가 가서 필요한 사람은 가도록 노력해야 되고 가서 봐야 될 것이고, 갈 수 없고 갈 형편이 안되는데 그 나라를 알아야 되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공부해서 미국에 대해서 연구해서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천국은 우리가 갈 수 없습니다, 지금 살아생전에. 그러나 가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해 주셨으니까, 우리 심령을 통해 밝혀주시니까 안가봐도 천국을 아는 방법은 연구해보면 됩니다. 성경 읽어보면 되고 기도해보면 되고, 명상해보면 되고 생각해보면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이 어떤 세상이였는가? 이것도 좀 깊이 생각해봐야 되는데, 성경은 말하기를, 여러군데 보면은 그렇습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은 한말로 말하면 암흑 세상. 암흑이라 그말은 무슨 뜻입니까? 암흑이라 말은, 캄캄하게 어둡다는 세상이고, 무엇이 없다는 말입니까? 빛이 없다는 뜻입니다. 빛이 없다 그말은, 무슨 빛이 없다는 겁니까? 빛의 역할은, 빛은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게 빛입니다. 참 공과 내용도 그렇고, 그런거 하나하나가,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게 빛입니다, 그런 말씀 들을때 전율이 느껴지지요.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 것이 빛입니다. 아닌가요? 과학적으로도 맞고 이치적으로도 맞고,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모든 불빛도 그렇고 형광등 빛도 그렇고 태양빛도 그렇고, 빛은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게 빛입니다. 바로 보이면 바로 알게 됩니다. 바로 알면 정평정가하게 되고 정평정가하면 자기 모든 사리판단, 취사선택, 언행심사, 자기 모든 생활이 반듯하게 바로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빛이 없으면 모든 것을 바로 볼 수가 없게 됩니다. 바로 보지 못하면 캄캄하게 어둡습니다. 그러면 모든게 다 틀어집니다. 눈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냐? 눈이 어두우면 그의 모든 생활 다 어둡습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은 암흑 세상이였다, 캄캄하게 어두웠습니다. 암흑 세상이라 그말은, 뭐가 없다는 말입니까? 빛이 없다 말은 누가 없다는 말이지요? 세상에 하나님이 안 계시고, 하나님이 안계신다 그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가 없다는 뜻이고, 진리가, 옳은 진리와 영감 역사가 없는 세상이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그 세상 속에 사는, 주님 오시기전 세상에 모든 세상 사람, 그 세상에는 빛이 없으므로, 빛이 없으니까 옳은 것이 없고, 옳은 것이 없으니 그들의 모든 생활 전부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과정할 것 없이 전부는 다 마지막에 전부 껍데기는 사는 것 같은데, 그들 생활 내면을 들여다보면 고난과 절망과 가난 뿐이였다.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 생활은 전부 이러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소수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전 구원 받은 민족은 유대인이지요. 세상에서 유대인들만 구원이 있었고, 그 유대인들 중에서도 실제 구원을 건설구원적으로 이루어간 사람은 아주 극소수고 몇사람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구원받은 방법이,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서 짐승의 피를 잡아서 받쳐 제사 드리는 이걸로 구원 받았고, 그 구원, 그 짐승 잡아드린 제사는 그림자적이였고 모형적이였고, 예표적이였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우리가 생각해볼 것이, 그 당시 예수님 오시기전, 지금부터 약 2천년 이전이겠습니다. 2천 몇 년 이전 세상인데, 세상 역사가, 000선생님? 역사가 얼마전부터 기록이 되어있는가요? 기록된 역사가 얼마나, 2천년 전 역사가 기록이 많이 되어있는가요? 많이 있어요? 세계사적으로도. 우리 나라 역사는 반만년 역사라 그리 말하는데, 우리 나라 역사가 2천년전이면 무슨 시대입니까? 대한민국 건국이 100년, 48년, 100년 됐습니까? 또, 아직 100년도 안됐겠네요. 조선시대 500년, 고려시대 500년, 약 천년. 삼국시대가 얼마나 될런지 모르겠네요. 신라 천년이라 그러고. 2천년 좀 넘겠네요 그러면. 그 이전도 그러면 기록이 있긴 있는데, 그런데 어쨌든 그 이전에도 기록을 봐서도 그렇고, 노아시대때는 지금부터 약 4천년 전인데, 그때 세상도 바벨탑 쌓고 하는 이런거 보고 또 그당시 뭐, 피라미드 같은거 이런거보고, 이래보면은 문화나 과학이 굉장히 많이 발달이 되어있는 그런 시대라 그리 말할 수 있는데, 그러면 그 당시 예수님 오시기전,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그 세상 생활의 모습과, 예수님 오신 오늘 신약시대 바로 우리들 시대 사는 사람의 모습이 과학이나 그에 따른 문화생활이나 경제 생활의 모습은 좀 다를지라도 기본적인 사람의 모든 생활은 대동소위할건데, 그러면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을 우리가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 꼭 같진 않을지라도 정확하게는 몰라도, 예수님 오시기전 그때 세상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로 본다면, 오늘 시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러면 예수님 오시기전 구약시대 모든 사람들의 생활, 빛이 없는 암흑의 시대, 하나님의 역사가 군데군데 있어도 전체적으로. 타락후, 하나님께 저주받은 이 세상, 인간의 모든 생활. 예수님 오시고 난 이후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는 불신자들 불택자들 그들이 세상 생활과 비슷하다 그리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생활을 말하기를, 성경 그대로 아닐지라도, 성경을 가지고 공과를 목사님께서 만들어 설명하시기를, 예수님이 오기전,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의 모든 생활은 전부다가 첫째는 고난이다, 안팎이 다 고난입니다. 고난이고, 전부다가 절망이고 전부다가 가난이다. 이것으로만 가득차서,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에 들어가보면 온갖 종류의, 고난이란 것은 고통 슬픔 아픔 괴로움, 몸이 아픈 것 마음이 아픈 것, 물질 때문에 일 때문에 이런 거 아픈, 고통 괴로움 이런게 전부 고난속에 다 들어가겠는데, 예수님 오시기전 혹은 예수님 없는 세상은 전부 이런 고난으로만 가득찬 세상생활이다, 또는 절망으로 가득찼고 가난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 고난이란 것은 고통이라 그말이고 괴로움, 아픔 고통인데. 지금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보고 과연 그들속에 그들의 모든 생활이 고난 뿐이냐, 절망 뿐이냐 가난이냐. 이런 걸 한번 생각해볼때, 외부적인 모습만 보면은 얼른 이해가 되지를 아니하지 않습니까? 이런걸 우리가 볼때, 생각해보고 그 생각속에서 의문도 나와야 되고 답을 좀 찾아봐야 됩니다. 그래서 설교하려고 준비해볼때 막연하게 그냥 읽는 것처럼, 내용을 읽는 것처럼,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은 모든 사람은 암흑세상이였고, 고난만 가득 찼고 절망만 가득찼고 가난으로만 가득 찼습니다. 그리 말할 때 과연 그러하냐? 그러면 예수님 오시기전 세상은 오늘로 말하면 예수님 믿기 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인데, 우리 나라 대재벌 그룹 삼성 그룹의 이건희씨가 고난뿐일까? 절망뿐일까? 가난할까?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이건희씨만큼 못해도, 많은 재벌들이 있고, 재벌만큼 못되도 부자들이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 세상에는 웃는 사람 즐거워하는 사람, 평화롭게 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의 생활을 어째서 고난이라 하느냐? 고난뿐이라 하느냐. 절망밖에 없다 하느냐, 가난밖에 없다 하느냐 과연 그러하냐 그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고난이라 그럴때, 고통 즐거움이라 그럴때 이거를 해결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예수 안믿는 사람들도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그들도 소망이 있고 그들도 부요가 있고 다 있는데 왜 그리 말하느냐? 그런데 과연 그럴까? 그래서 안믿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성경 가지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안 믿는 사람들 하나님 없고 예수님 없는 사람들의 그 세계를 들여다볼때, 그들속에 이건희씨가 과연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이니까 그 마음속에 근심 걱정이 과연 없을까? 돈이 많아서 돈이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돈이 없어서 가난하다 궁핍하다 괴롭다 그 괴로움은 없을지 모를지라도, 그도 하다보면은 일이 꼬여서 괴로울 수 있을 것이고, 많은 돈이 있지만은 그 돈이 그 돈으로 인해서, 그 돈이 나한테서 멀어질까 빼앗겨질까 이런 걱정은 안할지 모르겠지만은, 그 돈이 돌아가는 그 때문에 그 돈 때문에 이건희씨가 당하는 그런 고난도 아마 우리가 그 내면을 모르기는 몰라도 짐작해볼때, 많이 있지 않을까? 또 하는 그 사업, 일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많이 있지 않을까? 아무리 돈이 많고 억만금이 있고 일이 잘 돌아가서 재벌이 점점 되어갈지라도 몸이 아프고 몸이 병이 들었는데, 몸이 늙어져가는데 거기 대한 고통, 거기 대한 괴로움은 이거는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 이거는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 몸이 평안할지라도 마음의 괴로움은 또 있을 것이다. 마음까지는 그리 될지라도 그 속에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영의 세계까지 들어가면 사람이 영물이라 특수지음받은 존재라, 영이 죽어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사람으로 지음받은 그 존재가 영의 작용이 없으니 영의 작용 없는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가있는데, 영이 살아서 하나님을 찾아야될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을 찾질 못하니까 그 허무함이, 그 허전함이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가져보니까,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마지막에 자기 세월이 늙어감에 따라, 늙어가는데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면을 두고, 죽음이 앞에 있는데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그면을 두고 그런 사람들은 아마 일반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그런 괴로운 고통이 또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고 모든 사람이,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물질로 살고 일로 살고, 몸으로 살고 마음으로 살고, 영으로 사는 것인데, 이 다섯가지가 별별 종류의 고난과 절망과 가난을 당할 때, 그 하나하나가 이런 것들을 어떤 종류, 여러 가지 종류 여러 형태의 고통 슬픔 고난 괴로움, 이런 것을 마음이 겪고 몸이 겪고, 일 때문에 겪고 물질 때문에 겪을때, 이런 고통이 있을때, 죽어가는 사람도, 몸이 아파서 죽어가는 사람도 깜빡깜빡 죽음의 고통이 면해질때가 있습니다. 암이 들어서 굉장히 아파도 그 아픈 고통이 깜빡 잠시 멈출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는 한숨 돌릴만하다가 또 아픔이 또 오고 이리되는데, 마찬가지로 인생이란 것이 세상을 사는데 나서부터 죽는날 까지 고통으로 연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마치 말하자면은, 아무리 아파도 마취제를 놓으면은, 마취제가 아니고 그 진통제를 놓으면은 아픈 고통이 일시 없어지는 것처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온갖 종류의 고난, 그 고난으로 꽉 차있는데 그 고난을 세상에 여러 가지 형태 종류의 진통제를 통해서 그 고난을 면한 것 같으나, 정신을 차리고 진통제 약효가 떨어지고 나면 또 다시 고통이 오고 괴로움이 오는 그게 사람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진통제만 평생 먹어서 고통을 면하다가 약효 떨어지면 또 먹고 약효 떨어지면 또 먹어서 그 진통제 속에는 사람을 고통은 면하게 해주지만은 신경을 다 죽여버리니까 그만큼 수명이 단축되어지고, 자기몸의 몸과 정신 마음이 다 마음을 황폐화시키는 이런 것이 그런 진통제 신경안정제 이런 것들인데 이걸 먹어서 고통을 일시로 면하지만은 그 약효가 떨어지고나면 또다시 고통이 오고 괴롭고 그러니 또 약을 먹고, 마치 술 먹는 사람이 괴로우니까 술 마시고 술 깨고 나니까 또 괴로우니 또 술 마시고, 그래가지고 몸과 마음을 다 망치는 것처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든 생활이 그런 겁니다.
그래서 인생의 궁극을 파고들어가보면 괴로워서 견딜수 없으니까, 백 목사님도 그랬다지요. 이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았고, 돈을 젊은 사람이 너무 일찍 많이 벌어보니까, 그런데 머리는 총명하고 멀리까지 계산해보니까, 돈이 많은들 뭣하나,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낙을 누려본들 뭐하나, 그러니까 젊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벌어보고 나서 세상을 돌아보고 인생을 생각해보니까, 술 안 먹고는 못 견뎌서, 괴로워가지고, 그래서 몇 날 몇 일 술을 퍼마셔가지고 몸을 못 가눠서 사람을 사서 집에 들어간 그 생활을 한참 동안 했다 그러지요. 맨날 몇일 울기도 하고.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나면 예수 없는 인생, 하나님 없는 인생은 깊이 들어가보면 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다 돈이라는 진통제, 공부라는 진통제, 부부의 재미라는 결혼이라는 진통제, 자녀 낳는 그 재미의 진통제, 출세라는 진통제, 온갖 종류의 진통제를 통해서 인생 궁극의 고난을 일시적으로 다 해소를 하는 겁니다. 이 말씀이 논리적으로 맞습니까? 우리 000선생님 어떻습니까? 설명이 이해가 됩니까? 논리적으로 말이 맞는 것 같습니까? 000씨 어떻습니까?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인생의 근본을 좀 파고들어가서, 궁극을 파고들어가서 생각해보면, 해결할 수 없는 그런게 굉장히 많은데, 그런데 사람들이 눈 앞에 보여지는 그런것의 마음과 정신과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붓고, 그런 것을 하나 둘 마련하고 이룩하고, 또 쌓여지고 또 만들어지는, 누리는 그런 재미에, 그런 재미로 하루 하루 일년 이태를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데, 거기서 정신을 좀 차리고 나서 인생의 궁극과 늙은 다음에 늙음과 죽음을, 그래서 사람이 정상적으로 생각가지고 사는 사람이 60, 70이 돼서 죽음을 목전에 둔 그때 정신 자세로 평생을 살아라 그러면 예수 안믿는 사람들은 못 살 겁니다, 세상을. 괴로워서 못 살 것이고, 그만 살지 못할겁니다. 너무 허무해서, 살 수 있는 힘이 없어 못 살 겁니다. 그래서, 그것도 하나님의 역사인데, 온갖 종류 세상 그런 것에 빠져서 그리 살고 있지만은, 그 속에 들여다보면, 그러니까 세상 사는 사람들의 그들의 성공한 사람들, 경제면으로 권세면으로, 세상 명예적으로 어떤 면으로 성공한 그런 사람들의 그 생활을 우리가 밖에서 들여다보면서 그들의 그 내면을 좀 짐작해볼 수가 있다 그말이지요. 참 허무한 가치없는 그런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인데. 이런 고난, 그런데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없는 겁니다. 길이 없는 겁니다. 법이 없고. 인생의 궁극의 그 고난, 거기서 고통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없으니까 절망입니다. 캄캄한 절망. 도무지 해결의 실마리가 없으니까 절망이고, 또 자기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할 수 있는게 없다 말은 가진 것이 없다 그말이지요. 가지기는 가져도, 자식이 있어도 그 자식이 부모와 이질이 되어지고 부모 뜻대로 안되면 그게 참 자식이 아니라 원수라는 말 처럼, 돈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그 돈을 내 마음대로 쓰지 못하면 있는 것이 더 고통이고 더 괴롭습니다. 몸의 기능이 아무리 있어도 그 기능을 쓰지 못하면 더 고통입니다. 차라리 모르면, 못하면 그만 그러려니 체념할건데.
이런 것이 말하자면은 고난과 절망과 가난인데, 이런것을 이 세상에서 예수 밖에 있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고 그 원인도 모르는 것이고,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이 모든 것을 인간이, 인생이 왜 무한한 영원한 고난 속에 빠지게 되어졌는가? 왜 절망속에 빠지게 되었는가? 왜 무한한 가난 속에 빠지게 되어졌는가를 원인을 찾아서, 주님 대속으로 원인을 알게 되어졌고, 그 해결의 길이 바로 주님 대속에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인간의 모든 고난과 절망과 가난의 그 모든 원인이 다 밝혀졌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려졌으니까 그게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그리되는 것인데, 그런데 그래서 이 역사를 두고 이런 인간에게 있는 멸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그 사랑과 희생의 이 역사를 두고 멸망속에 빠져있는, 깊은 영원한 멸망 속에 빠져있는 인생의 영원한 멸망을, 멸망에서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는데, 그 사람되어 오신 그 희생의 역사가 말할 수 없는 무한의 희생의 역사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해서 인간의 멸망을, 인간을 멸망에서 건져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신 도성인신의 그 큰 희생의 그 역사 이걸 두고 천사들이 찬송을 한 겁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중에 평화가 되어졌다. 요래 찬송을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렵지만은, 우리가 잘 몰라도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 예수님이 없다 말은 대속이 없다 말이고, 대속이 없다 말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없다 말이고 천국이 없다는 말이고, 진리와 영감 역사가 없다는 말입니다. 한말로 말하면 그들에게 빛이 없다는 말인데, 빛이 없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택함 받지 못한 그 사람들의 현재 사는 그 모습과, 그 모습 이면에 있는 그들 속에, 깊은 속에 있는 무한의 고난과 절망, 가난을 생각해보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다. 속에 말기 암이 걸렸는데, 말기암 걸린 그 환자가, 가족들이 그 환자를 보고 한달 남았으니까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얼마든지 드시도록 하십시오, 최대한 잘 해드리십시오. 환자도 그걸 알고 가족들이 안다면, 그럴때 그 환자가, 한번씩 그런 소식이 신문에 들리지 않습니까? 그 환자가, 두 사람이 결혼 약속을 했는데, 약속하고 나서, 그만 너무 사랑했는데 신부가 병이 들었다 말이지요. 그런데 이 남편 될 사람이 신부를 너무 사랑해서 병이 들어 한달 밖에 못사니까 내일 당장 결혼식 하자, 그래가지고 결혼식 하는데 그 하는 그 결혼식은, 기쁨에 소망이 넘치는 그런 좋은 결혼식이 아니고 눈물이 바다를 이루는 그런 결혼식이 되지 않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한달 있으면 죽어야 되는데, 그래서 임시로, 그 죽을 사람이기 때문에 위로하는 그런 결혼식이니까, 한달 있으면 죽을 사람이니까 위로해서 맛있는 것 차려주고 여행 시켜주고 좋은 것 다 사주고 구경 다 시켜줘도 아무리 좋은 음식을 주고 좋은 거 보여주고 친절하게 잘 해줄지라도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 과연 기쁨이 되겠는가, 소망이 되겠는가? 그 모든 것 전부다 내가 한달후에 죽을 거니까 해준다, 그게 전부다 눈물이고 괴로움이고 아픔이고 고통이고 그리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본인이 모른다면, 아는 사람들은 그럴 것이고, 또 본인은 알고 가족들이 모른다면, 본인이 알고 그리한다면 본인은 겉으론 웃어도 속에는 참 이별의 그 슬픔이 한이 없을 것이고, 이것처럼 안 믿는 사람들 예수 없는 사람들, 예수님 오기전 세상의 모든 모습들이 다 말하자면 예를 들자면 그보다 더한 것인데, 그 고통을 그 고난을, 그 절망을 우리는 좀 헤아려서 생각해 볼 줄을 알아야 되겠다, 그런데 그런 세상에,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오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사람된 큰 희생의 역사로 우리 모든 원인된, 그 모든 멸망의 원인되는 죄와 배신과 자행의 그 값을 당신이 대신 치르심으로 인해서 거기서 구원을 받아서, 영원한 고난이 영원한 평강으로, 영원한 절망이 영원한 소망으로, 영원한 가난이 영원한 부요로 우리에게 오게 되어졌으니까 이 구원의 감사가 기쁨이 어떠하겠는가? 이걸 우리는 다 몰라서 찬송을 해도 힘이 없고, 속속들이 나오는 기쁨이 없지만은, 우리도 한번씩 말씀을 생각하고 성령의 은혜로 이게 좀 밝혀지게 될 때는, 날 구원하신 예수를 찬송을 열 번을 불러도 목이 안 아프고 하루종일 불러도 또 부르고 싶고, 속에서 기쁨이 넘치는 그런 것이 되어지는 겁니다.
천사들은, 천사들은 하나님이 그대로 보여주셨으니까 그 천사들의 찬송이 어떠했겠는가. 예수님이 오심을 보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다. 영원히 고난과 절망 가난 속에 빠진 모든 인생들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이 사람되심으로, 낮아짐으로, 고난받아 십자가에 고난 받아 죽으심으로, 그 대속 역사로 인해서 영원한 멸망에 빠진 인간이 구원을 받아서 평강과 소망과 부요를 구원을 받게 되어졌으니 그 구원 받은 사람들, 그 존재들이 알고나면 구주 메시야 주님에게 돌릴 감사 찬송이, 이 모든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에게 돌릴 그 감사 찬송 영광이 어떠할 것인가. 그래서 고스란히 보고 아니까 그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 찬송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오늘도 보면은, 같은 사람들이 살아도 어떤 사람이, 어떤 한 사람이, 자기를 자기 물질을 드려서 자기 시간과 노력을 드려서, 자기보다 어린, 모르는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물질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노력을 드리고 몸을 받쳐 드리고, 그리 희생을 하고 그 희생을 하려고 작정하는 걸 볼때에, 그 희생을 볼때 그 희생으로 인해서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구원의 길로 돌아서고 점점 신앙이 자라가고 구원이 되어지는 그런 모습을 볼때 옆에서 보는 사람이 참 하나님 감사하다, 그 찬송이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게 천사들의 찬송이고, 누가복음 2장 14절에 찬송의 이유고 원인이고 배경이고 근거고 그리 되어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찬송을 보고, 전체 그 배경을 살펴볼때, 천국은 어떤 나라냐? 하늘나라 천국이란 곳은, 그 나라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심 같이,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래서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거기에 영광 돌리고 그것이 하늘나라 기쁨이고, 그런 존재들 그런 일들만 모인 나라가 천국이다. 자기 자신을, 타락후 천하 모든 인간은 안 그런 사람이 없고 안 그런 가정이 없고, 안 그런 나라가 없고 안 그런 민족이 없고, 안 그런 세상 단체가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 나라에 필요해서 국책사업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지어야 되는데 그러면, 어느 지역을 후보로 둔다 그러면 그 지역에서 막 들고 일어납니다. 밀양에 송전탑 세운다고 밀양 사람들이 대모하고 난리가 나지요. 또 어디 뭐한다 그러면 대모하고 난리가 납니다. 그리 지나가기는 지나와야 되겠는데, 그곳에 세우기는 세워야 되겠는데 그러면 그 지방 사람들은, 우리 다 죽습니다, 우리 손해됩니다 그래서 죽어도 못하게 합니다. 온 대한민국 5천만명이 다 전기 때문에 불편을 겪어도 우리 마을에는 안됩니다, 그게 지역 이기주의라는 건데 그 지방 사람들만 그러냐? 그 지방 사람들 욕하면, 그러면 너거집 앞에 세워봐라, 너희 동네 갖다놔봐라. 범일동 갖다놓으면 범일동 주민들은 안 그렇겠습니까? 저 서울 갖다 놓으면 서울 사람들은 안 그러겠습니까? 그게 전부 지역적으로 이기주의, 자기 지방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 지방에서 더 깊이 들어가면 자기 집안이 우선입니다. 자기 집안에도 자기 가족이 우선입니다. 세계로 들어가보면 세계에도 다른 나라 다 망해도 우리 나라는 망하면 안된다. 다른 나라 다 굶어죽거나 말거나 그래까지는 안하지요. 지금은 여유가 있으니까 막 도와주지요.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먹을 것이 딱 없어지고 한정이 되어지면 그때는, 세계에서 다른 나라 제일 많이 돕는 나라가 어느 나라입니까? 뭐니 뭐니해도 미국나라가 천교도 나라니까 제일 많이 돕고 있는데, 제가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 나라도 알레스카입니까? 미국나라 땅이? 안에 석유가 무진장 들어있다그러지요. 그런데 그거는 손도 안되고 놔놓는다고 그러지요. 앞으로 몇 십년후, 온 세상에 석유가 다 떨어질 때, 이거는 우리 나라 사람들 파 먹어야 된다. 그래서 알레스카를 사가지고 땅을 거기 놓고, 거기는 밑에 석유가 많이 들어있는데, 이게 뭐 사실인지 어느 정도 진실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래 들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그거는 아예 손도 안되고 있답니다. 세계 있는 걸 다 파먹고 마지막에 떨어지면 그걸로 자기 나라 써야 되니까. 안 그런 나라가 있습니까? 어느나라 할 것 없이.
그래서 국제전으로 나가면 자기나라 우선, 한 나라안에 들어가면 우리 지방이 우선, 그 지방안에 들어가면 우리 집안이 우선, 그 집안에 들어가면 우리 가족이 우선, 그 가족안에 들어가면요? 내가 우선. 그 가운데서도 내가 우선 아닌 관계 하나가 있습니다. 부모의 자식 사랑. 부모는 죽어도 자식은 살리는. 그래서 특히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이라. 그래도 그것도 들어가보면 내 자식이니까, 자기 중심. 그래서 타락한 이 세상은 전부 자기가 우선이고 자기와 관련된 주변이 가장 최우선이고 그것을 위해서 자기 주변을 전부다 이용해 먹는 겁니다. 한말로 말하면, 나를 위해서 타를 희생시키는게 세상이고, 그게 지옥입니다. 그거 아니면, 타를 희생시키지는 않아도 나는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이지, 그게 세상입니다. 그래서 신사적이고 도덕적이고 잘 살면, 남을 희생시키지 않아도 나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나는 나를 위해서, 나와 내 가족, 나와 관련된 이것 위해서 나를 쓰고, 내가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시키는 것은 깊이 들어가보면 없는 것이 세상이고, 이런 가운데서 천국이란 것은 너가 평생을 너를 위해 살았느냐? 너의 재물과 너의 시간과, 재주 기능과, 너의 모든 가진 것을 너 자신 위해서, 너 자식 위해서 너 가족 위해서, 너거 집안 위해서 그렇게 살았느냐? 나는 우리 사회 위해서 살았습니다. 너 사회니까 그래 살았겠지. 우리 민족위해서 나는 애국자입니다. 니 나라니까 그랬겠지. 니가 남의 나라 그래했느냐? 나는 온 인류를 위해서 그랬습니다. 니가 사람이니까 너도 그랬겠지. 이게 세상이고 이게 지옥인데, 하늘나라는 그런 것을 용납지 않습니다. 하늘나라는 나라는 사람을, 나를, 나 아닌 타를 위해서, 이게 좀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은 하나님과 인간은 존재의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이 개미를 위해서 사람이 희생한다. 있을 수 있습니까? 애완견을 잡아 먹었다 그러면 들고 일어나서 난리가 나겠지요, 동물 애호가들이. 그런데 배가 고파보지요? 정말 먹을 것이 떨어져서 눈앞에 사랑하는 애완견 밖에 없습니다. 안 잡아먹고 견딜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게 사람입니다. 누구나 다 별 수 없는 마찬가지.
그런데 사람이 자기 아끼는 동물 위해서 자기 희생할 사람이, 그럴 필요도 없고 이거는 인간관계니까 없는데, 하나님이 인간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사랑해서 당신 전부를 다 희생한 이것이 성탄입니다. 그래서 영광 돌린 겁니다. 천국이란 곳은 타를 위하여 나를 희생시키는 그게 천국의 성격이고 건설이고 그 나라 영광이고 하나님에게, 천국에 있는 모든 것에게 기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무한한 영광이 되는 겁니다. 이걸 알고, 이걸 연습해서 요런 성품과 요런 인격과, 요런 속성과 요런 지능을 길러나가는 것이 천국 건설하는 것이고 이 천국 건설이 우리의 구원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헛벗어라도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고 손해끼치는 이런 일은 결단코 꿈에서조차 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되는데, 과연 그래 합니까? 내 이름에 먹칠이 되면, 내 명예에 누가 되면, 내 자존심을 건드리면, 내 자식을 건드리면, 우리 집안을 욕하면 사생결단하고 달려드는 사람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닙니까? 여기에 있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비유가 좀 안 맞지만은, 내 밥그릇 건드리면 그냥 안 있지요? 이거는 강아지들도 그렇습니다. 제 밥그릇 건드리면 그냥 사생결단하고 달려드는데, 사람은 그들보다는 나아야 되는데 사람이 자기 직장에서 자기 밥그릇 건드리면 그냥 있습니까? 노사대모 전부다 그런 차원 아닌가요? 좀 높은 차원에서 예를 들자면.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대모하는 게 전부다 그런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류만 그런게 아니고, 좀 넓게 좀 생각해보면 우리들 속에 그런 요소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런 걸 뽑아내서, 속속들이 뽑아내서 섞임없이 순전히 나라는 존재는 타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눈이란 것은 온 몸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귀라는 것은 온 몸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그럴때 온몸은 눈과 귀를 위해서 있도록 요래 되는게 천국의 성격인데, 요게 천국인데 요것을 실제로 이루신 그 역사가 바로, 실제 역사가 바로 그동안의 예표로 약속으로, 그림자적으로 내려오던 그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 도성인신하신 주님이 사람되어오신 그 역사기 때문에 그래서 천사들이 그 일을 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이런 큰 찬송을 하게 된 겁니다.
오늘도 이 땅에 사는 사람들, 깨달은 사람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기쁨이 되어지는 것은, 누군가가, 나 자신부터 자기 아닌 타를 위해서 어린 사람 위해서 자기를 받쳐 희생을 할때,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자기 뭔가를 희생해서 드릴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고 주변사람들에게 은혜가 되고 평화는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정한 화평을 하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사람과 사람끼리 화목하는데 꼭 들어가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끼리 화목하는데 들어가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소금이지요, 소금.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내가 낮아지지 않고, 내가 녹아지지 않고, 내가 죽어지지 않고, 희생되지 않고 손해보지 않으면, 인간 관계는 화평이란 것은 진정한 화평은 이룰 수가 없는 겁니다. 그게 십자가입니다. 주님 대속을. 그래서 십자가로 화목하게 이루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성탄을 맞이하면서, 천사들의 찬송, 누가복음 2장 14절 이 찬송 이 말씀을 생각해보고, 왜 허다한 천군 천사가 하나님께 영광 돌렸고, 영광이며 기쁨이 되어지는가, 평화가 되어졌는가. 그 역사가 뭐냐? 그게 하나님을 사랑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랑이 역사한 하나님의 무한한 대속의 희생이. 그 희생으로 영원한 멸망의 인간이 다 구원을 받게 되었으니. 그 희생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되는 이것처럼. 오늘도 이 천국 성격에 이런 사랑과 희생의 작용이 있는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는 화평이 이루어지는 이게 되어지는 겁니다. 이런 우리가 되도록 자꾸 노력해야 됩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말로만 그치지 말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내 속에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 사랑이 얼마만큼 많이 강하게 들어있는가? 형제를 사랑하여 내가 희생한 것은 무엇이며 얼마만큼 되어지는가 돌아보고, 우리는 남은 때는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할 줄 아는 이런 우리가 되고, 헛벗으로라도 나를 위해서 내 가족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는 이런 지옥의 일들은 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