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주일오후(마24:15-51)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2013-10-20조회 370추천 30
본문: 마24:15-51
제목: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요점:
1. 신앙에 치우침을 주의
- 우리 공회 신앙들은 교리적 지식이 깊고 많으나
- 여러 형태로 치우친 신앙들이 많으니 살펴 주의해야
- 장점만 보고 그리로만 나가면 기형적인 신앙이 되기 쉬움
- 자기 단점을 살펴 고치고 장점을 길러 나가야 할 것
- 신앙은 논리적 체계적이라야 하는 것
2. 하나님의 소원
- 소원이란 그가 바라고 원하는 전부
- 엘리사의 소원은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
- 솔로몬의 소원은 하나님의 백성 다스릴 지혜
-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목적
- 하나님의 목적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
-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 구원, 영광의 찬미
-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인간 구원
3. 하나님의 진노
-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한 아말렉
-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을 거역한 사울의 비참
-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발람의 결과
- 인간 구원 방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기억할 것
- 장로 장립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덕 생활
- 보이지 않는 죄가 자기에게는 큰 손해이지만
- 보이는 죄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큰 죄
- 다른 사람 신앙을 손해케 하는 일을 극히 조심할 것
4.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람
-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
-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 사람
- 따라서 우리의 생활은 주변 모든 사람에게 여러 형태로 영향을 끼치고
- 그 영향은 신앙의 유익을 주거나 해를 끼치는 것
5. 본문에서
- 주인은 하나님
- 주인의 집은 교회고 세상
- 그 집의 종은 우리 성도들
- 두 종류의 종, 한 사람 속에도 두 종류의 종
- 주인이 집 사람들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 내 생활은 주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면 양식을 나눠주게 되고
- 악한 종이 되면 동무를 때리게 되는 것
결론
- 장성할수록 어린 신앙에 손해보이지 않도록 노력할 것
- 연극이라도 해서 신앙에 손해는 보이지 않도록 노력할 것
- 부모가 부모 되면 자기 위한 생애는 없고 자녀 위해 살듯이
- 신앙이 장성할수록 어린 신앙 위해 사는 것이 정상
-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 주는 우리가 됩시다!
-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목적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 이것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 창조 주권 섭리,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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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1020 주후
마태복음 24:45-51
저는 찬송가에 대해 잘 모르는데 오늘 김선생님이 164장 그 작사잡니까 김선생님? 작사자 찬송시 지은 그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듣고 아주 크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알고 하는 것 하고 모르고 하는 것 하고는 차이가 많은데 그런 말을 들어볼때 6천년 인간역사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로 하나님이라는 분이 살아계시고 존재해계시고 그분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형태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을 알리고 믿게 만드시고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믿는 그 믿음으로 산 그런 종들이 역사에 참 많았습니다. 그 가사를 지은 그분도 참 그 중에 한분이라. 자기 두 자녀를 모두 다 잃고 그 잃은 그 바다를 지나가면서 이 시를 지었다 그랬는데 바다를 지나갈 때 그 시를 지을때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을 참 믿는 믿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그런 시지요. 그런 가사고. 주기철 목사님 그 전기를 읽어보면 마지막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이제 검속이 되고 순교하기전 마지막에 나와서 평양 산정교회에서 설교하실 때 다섯가지를 두고 설교한 그런게 기록이 남아 있답니다. 그 설교할 때 아마 온 교인이 눈물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은혜가 충만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우리 총공회 진영에 우리들, 우리의 장점이라 그러면 말씀의 깊이를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교리 교훈을 바로 배워서 많이 알고 그래도 대부분 정확하게 안다는 겁니다.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까 우리는 귀는 많이 높았고 또 말을 잘하니까 입은 높은데 실제 우리들의 열정이라든지 우리의 충성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열심히 충성하는 분들은 참충성을 하고 아주 대단합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진영외에서도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참 이제 그 찬송 지은 그분은 잘 알겠지만은 그런데 그때는 지금만큼 성경깨달음의 이런 논리체계가 교리가 깨달아지지 않아서 우리들만큼 그렇게 체계적으로 몰랐을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그 하나를 믿고 그분의 그 구원세계를 전체적으로 믿고 그렇게까지 믿음으로 산 그런걸 볼때 우리는 참 다른 진영 그런 교인들의 그 열심 열정 이건 우리가 보고 배우고 따라가야될 그런 부분이라 생각이 되고 그래서 우리 총공회 교인들은 대개 보면은 이런 교리 교훈 지식적인면은 깊고 또 체계적이고 많이 앎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그런 신앙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게 제가 여기서 참 많이 말씀을 드린건데 저 역시 그중에 한 사람일겁니다. 그래서 자꾸 애를 쓰는데 어쨌든 성경으로 볼때 치우친 신앙은 고장난 신앙입니다. 올바른 신앙이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바로 알아서 좋은 장점은 그대로 계속 붙들고 길러 나가고 그 장점 아닌 단점은 찾아가지고 자꾸 보완을 하고 또 바로 잡아 고쳐나가는 그런 우리들이 되야되지 내 장점만 꼭 붙들고 그것만 자꾸 키우고 거기만 힘을 쓰다보면 결국은 기형적인 신앙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보면 그 성격이나 체질이 기도를 잘 할 수 있는 체질입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도 힘을 쓰지만은 성경이라든지 또 심방 전도라든지 활동에 힘을 쓰도록 해야 되는 것이고 또 활동성이 왕성한 그런 분들은 조용히 앉아서 명상하고 기도하는 그런면에 힘을 쓰고 또 큰 것을 잘하는 분들은 사소하고 자잔한 세밀한 그런것을 노력을 해야되고 또 사소한 그런 꼼꼼한 것만 잘하는 사람은 또 큰 것도 살펴봐야되고 그래가지고 어쨌든 이면 저면 다 빠짐없이 구비한 그런 우리가 되야 우리라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지 누구나 다 사람은 아이들이 음식먹을때 편식을 하듯이 자기 잘하는 것 좋아하는 그 면에만 힘을 쓰기 쉬운데 그러다보면 결국 기형적인 신앙이 되고 마는 겁니다. 신앙은 체계적이라야 되고 순서적이라야 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신앙이 되야 그게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겁니다. 좀 돌아보고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164장 같은 이런 그 작사자의 그런 내용들을 이건 우리 000선생님이 잘 하실것 같은데 좀 공부를 하셔가지고 한번씩 찬송시간에 그런걸 좀 가르쳐주시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찬송가를 할때마다 그 가사를 지으신 그분의 그 신앙과 그 생애를 그 과정을 생각하면 참 은혜가 더 배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것도 우리가 갖추어야 될 것 중에 하나가 아닌가. 우리는 그런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또 말을 안하니까. 오늘같은 그런게 좀 찬송가를 두고 그런 좀 좋은 그런 지식전달 이게 좀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오전에 하나님의 소원을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소원이 뭐냐? 소원은 그가 바라는 전부다가 소원입니다. 가장 간절하고 가장 애절하고 마음에 진정 원하고 원하는 그런 것이 소원이 되어집니다. 옛날 배고팠던 시절에는 ‘배부르게 좀 먹어봤으면 원이 없겠다’ 실컷 배껏 먹는 그게 소원입니다. 내 집을 한번 가져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또 뭘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 사람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그걸 소원이라 그리 말합니다. 소원이 참 말 그대로 소원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게 되겠지요. 하나밖에 없는 그 전부. 욕심이 많은 사람은 소원이 많겠지만은 사람의 소원은 하나. 내 소원이 무엇이냐. 엘리야를 따라간 엘리사의 소원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의 영감의 갑절을 구하나이다’ 그럴때 엘리야가 ‘참 어려운 것을 구했다’ 그리 말했고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솔로몬의 소원이 그거였습니다. ‘네가 부도 구하고 아니하고 오래 살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에게 맡긴 이 백성 다스릴 지혜를 구하니 그 지혜와 함께 부도 영광도 함께 주겠다’ 소원이 바르니까 다른것도 따라왔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하나님의 소원은 다른말로 오전에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곧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거는 유일무이한 오직 하나밖에 없는 둘이 없는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소원이고 뜻입니다. 하나님이 진정 바라는 것. 그러면 하나님이라는 분은 완전잡니다. 완전이라 말은 모든 면에 구비해서 흠과 점이 없는 분입니다. 전지고 전능이고 자존이고 무한이고 영원불변이고 부족함이 없는. 갖고 싶은 것 다 가질 수 있고 하고싶은 것 다 할 수 있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다 갖추신 그 분이 완전잔데 그 완전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소원이 있는가. 하나님이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이 바로 인간구원이다. 하나님의 목적의 목적이 뭐였습니까?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목적의 목적이 뭐라고 그랬던가요? 이것도 제가 그 깨달음의 받은 은혜가 커서 종종 말씀을 드린건데 하나님의 목적의 목적이 뭘까?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인데 그 구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의 목적이 뭘까? 그게 뭡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영광의 찬미라 그리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그 출발이 발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발원되어졌기 때문에 이 구원은 어떤 경우에도 변동이 없어서 이걸 가리켜서 하나님을 향한 지식 13가지 4번째에서 영원자존하나님 의지가 자존 의지가 정하신 목적입니다. 자존이라 말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않는 순전히 홀로의 전체를 다 가지고 모든 존재 전체의 주권을 다가진 그분이 당신 홀로의 독단의 단독의 그것으로 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존재 무엇에 간섭도 영향도 받지 않는게 자존입니다. 그 자존의지 그 자존사랑 이것으로 되어진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래서 그 목적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우리를 위한 것이면 우리가 변하면 목적도 변합니다.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면 우리가 변하면 목적도 변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 생각으로 자기 기준으로 자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자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결국 자기중심이고 그리되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도 말하자면 표현하자면 그 성격적으로 말하면 하나님도 자기중심입니다. 인간도 자기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자기중심 천사의 타락한 자기중심 그런데 피조물은 그 어떤 것도 자기중심이 되면 뭐라 그럽니까? 피조물이 자기중심이 됐을때 그것을 교리적 용어로 뭐라그러지요? 악이라 그리 말하고 원죄라 그리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중심이 되면 뭐라그럽니까? 그럴때는 선이라 그럽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과 피조물이 자기중심이라는 그 성격은 꼭 같은데 왜 판단의 정의가 완전히 정반대가 되어집니까? 하나님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는게 악이 되고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중심이라야 그게 선이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피조물은 존재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하나님은 자존자니까 완전자니까 그래서 완전자중심이 되어야 모든 불완전이 완전에 속하고 모든 불완전 존재가 전부다 완전화 되어지고 사는게 되어지는데 완전하신 그 하나님이 완전중심에서 벗어나면 불완전중심이 되니까 이게 모든 피조물을 멸망시키는게 되어지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중심만이 선이고 피조물은 어떤 피조물도 다 불완전하니까 불완전한 존재가 자기중심이 되면 그게 바로 완전가 대립이 되니 그게 전부 악이다. 사망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그 소원의 발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어진 겁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에서부터 출발되어졌기 때문에 이거는 변함이 없고 변동이 없고 선이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소원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아무리 능력있고 실력있고 아무리 탁월한 하나님이 자존자고 전지전능의 완전이고 사랑에 자비에 긍휼이 무한하시고 어떤 능력있는 그런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그분이 혼자 계시면 뭐가 없다고요? 사람이 혼자 있는 곳에는 뭐가 없습니까? 이런 답은 쉽게 나와야 되는데요? 혼자만 있는 곳에는 무엇이 없습니까? 영광이 없는 겁니다. 영광이. 그래서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 알고나면 돈을 많이 모으고나면 그때부터는 돈이 아무리 있어도 돈만 가지면 조금 넓게 생각해보면 외로우니까 그 돈 가지고 주변에 베풀면 그 베품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영광이 돌아오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가지고 영광도 사고 권세 잡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권세를 잡을때는 지금이야 우리나라같은 민주화가 되니까 쉽게 못하지요. 옛날에야 뭐 칼 가지고 주먹 가지고 힘 있으면 정권잡는데 잡고나면 그때부터는 사람이 자기를 영광스럽게 해야되니까 정말 타락한 그런 폭군이 아니면 나라 정권을 잡고나면 그 나라를 안정시키고 잘 다스리기 위해서 노력하지 나라 말아먹으려고 작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게 있지만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잡아먹었을때도 그거는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은 저거들 위해서입니다. 일본나라 저거 위해서 하지만은 그 과정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쨌든 안정시키고 요즘은 보니까 그런 말이 한번씩 나오데요. 결국은 우리나라에서 빼앗아 가기 위해서 하지만은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조사해가지고 이 나라에 많이 나는게 뭐냐? 다 살펴가지고 뒤떨어진거 이런거는 자꾸 개발시켜서 좋은 것을 갖다 놓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그 말이 전혀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닙니다. 동기 목적은 저것들 때문에 하는 거니까 우리를 쥐어짜기 위한 나쁜 의도지만은 그 과정 방편은 그런 면이 없지않으니까 저것들 빼먹기위한 그거는 싹 감추고 그런 과정만 내놓으니까 저것딴에는 할 말이 많이 있겠지요. 그런면은 우리가 양면 다 알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정권 잡은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이승만 대통령 백목사님께서 가장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칭찬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들어보셨습니까? 박정희대통령이 첫째 그래서 박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살린 사람,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의 국부 그래 말합니다. 전대통령은 우리나라를 공산정권에서 지켜준 사람 다른 사람들은 별로 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체를 다 여러 가지면을 다 생각을 해서 그리 판단하는 겁니다. 단순히 백목사님같은 그런 선견을 가지고 영안 가진 그런 분들이 말씀하실 때는 쉽게 그렇게 거부할 그런게 아닙니다. 어지간한 사람 인생을 보통 사람들이 보는 그런거 열배 스무배 더 깊이 넓게 그리 보고 하기 때문에 쉽게 그렇게 부정할 그런 일이 아닙니다. ‘뭔가 있는가보다, 내가 모르는 뭔가 있겠다’ 그래 생각을 하고 파고들어가보면 자꾸 그런것이 나온다 그말이죠.
좀 옆으로 많이 갔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소원은 누구를 위한 소원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누구 위한 소원입니까? 하나님 당신을 위한 소원입니다. 자기 중심이네. 그렇습니다. 하나님 당신 자신을 위한 소원입니다. 왜 하나님 자신 위한 소원이 그렇게 찬양을 받고 찬미를 받아야 됩니까? 하나님은 완전자니까. 유일무이하게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나님이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당신을 위한 그 소원인데 당신을 위한 그 소원이 밖으로 나오면 나타나는 것마다 전부 빛으로 나타납니다. 생명으로 나오고 사랑으로 나오고 구원으로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당신을 위해서 지음 받은 피조물이 완전하신 하나님인데 당신위해서 하는 그 모든 것에게 피동이 되어서 거기에 순응하고 순종만 하면 전부 빛이고 사랑이고 생명이고 영광이고 평강이고 온갖 좋은 것은 그 속에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를 만들기 위해서. 영광이란 것은 알아주는 감사하는 그런 대상이 많을수록 영광은 더 큰 겁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영광은 없다는거는 다 아시지요? 이 세상에서는 어떤 영광이 외부로 드러나도 그 영광 이면에는 그 영광을 반대하는 그런 대상이 없는 영광은 세상에 참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만이 참된 영광인데 그 영광 그래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이 영광의 찬미는 이거는 많을수록 더 좋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혼의 제도를 만드신 목적은 첫째는 하나되기 위해서 하나된 둘을 통해서 많이 번식시키기 위해서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 그다음 많아진 그들을 다시 하나 만들기 위해서 이해가 되십니까? 요 그림이 말하자면 제가 말씀드린 이것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됩니다. 아 결혼제도는 부부를 원래 하난데 둘로 떼놨다가 다시 하나님께서 찾아서 짝을 찾아 하나로 만드시고 그 하나 만드신 부부를 통해서 많은 자녀를 낳아서 그 많은 사람들이 김씨 이씨 무슨 씨 무슨씨 다 놓고 그래가지고 많아진 그 모든 자손들 전부다가 또 다시 하나가 되는데 그 하나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리 모여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이게 하나님의 목적인데 그러기 때문에 세상말에 많을수록 좋다 네글자로 뭐라합니까? 한문으로 뭐라그러던가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그러죠. 많을수록 좋다. 영광이란 것은 그런겁니다.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원은 당신의 영광인데 그 영광을 위한 영광의 찬미가 인간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전체가 성경전체 흐름은 인간 구원을 향해서 다 가고 있고 그걸 위한 모든 원동도 과정도 전부 인간구원이 돼서 나와 있는게 성경입니다. 인간구원을 빼놓고 그다음은 성경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 목적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인간구원을 위해서 있는게 성경이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알맹이는 무엇입니까?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중심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어렵습니까? 대속이죠 대속. 그 대속을 다른말로 말하면 뭐라 그럽니까? 구원이고 또 다른말로 말하면? 사랑이다. 그래서 성경은 한말로 정리하면 성경은 사랑이다 구원이다 그리 말하고 그 구원의 대상이 누굽니까? 사람입니다. 우리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초점은 전부 우리 믿는 성도들 구속받은 성도들 하나님의 택자들 향해서 다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구원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성경에 많은 곳에 어쨌든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사랑해라 나에게 할 일을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다닐때 나이 많은 사람 그 이름이 얼른 기억이 안나는데 나이가 많은 그 사람이 다윗을 큰 부잔에 봉양을 했지요. 그러고나서 발란이 다 진압되고 다시 다윗이 환궁할 때 큰 은혜 베푼 그 사람을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를 남은때 책임지고 봉양을 하겠다’ 그러니까 ‘이 나이게 어찌 따라가겠습니까. 차라리 누구 보낼거니까 그쪽 해주십시오’ 그래가지고 다른 사람 자기 대리로 보냈지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베푼 것이 바로 그 본 그사람에게 베푼게 되는 겁니다. 부모가 나이 많아서 세상 떠나면 은혜 받은 사람이 있어서 ‘어르신 제가 어르신께 받은 은혜가 큽니다. 어떻게 갚겠습니까. 이렇게 가시면 한입니다’ ‘그런가 그러면 내 누구한테 이 후계자 누가 있으니까 아들딸 누가 있으니까 여유가 되거든 그리 해주게’ 그러면 그 사람이 자기 은사가 부탁한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 대리니까 그리하게 된다 그말이 되겠지요. 그래서 주님이 부탁하신 것은 ‘나를 사랑하면 내가 피흘려 구속한 내 양떼를 사랑해라. 그들을 먹여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또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킬 것이고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 내 계명이다.’ 빛 가운데서 거한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 사람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다. 어둠은 어딥니까? 어두움은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빛 가운데서 산다 그말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예수 믿는다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형제를 미워하는 그 사람이면 안 믿는 사람이라 그뜻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소원하시는 일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믿음의 조상들 하나님이 기뻐하신 의인들은 하나같이 전부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은 없습니다. 하나같이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그런 면이 있다 그말이죠. 그러기 때문에 나그네를 대접하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백목사님도 당신이 세상에서 돈 벌어서 안 믿을때, 안 믿을때도 그랬답니다. 그 위에 윗대부터 그래서 동네 시골에 옛날 시골에는 나그네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꼭 밥 한그릇이라도 대접을 하고 보내지 지나가는 나그네 그냥 보내는 법이 없답니다. 백목사님도 그랬답니다. 모르는 사람 있으면 꼭 불러다 대접을 하고 그랬지요. 롯이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소돔 고모라 성에서 구원 받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다.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게 누구였습니까? 그게 천사였습니다. 모르고 했지요. 그런데 천사였다 그말이지요. 사람을 아끼는 것.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 구원한다 그말은 사람을 어떻게 만든다는 겁니까?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고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 만든다 그말은 밑에서부터 올라가면 도덕적인 사람, 인간관계에서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흠점이 없는 그런 사람. 인간관계에서 아주 좀 흠이 없는 그런 도덕적인 흠없는 사람을 만들고 거기서 더 올라가서 신앙양심적인 흠 없는 사람을 만들고 더 올라가서 진리적인 그런 사람을 만들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형상을 닮은 이런 사람 만드는 이것을 위해서 마음을 쓰고 애를 쓰고 물질을 쓰고 기도하고 노력하는 그 면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그 사람을 가장 기뻐하신다 모든 성경이 전부다 그리 다 기울어집니다. 이걸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 그말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 우리는 어떻게 사는지 하나님이라는 분을 참 믿으면 그래서 참 어찌보면은 우리가 받을 심판이 클지 모릅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찾고 많이 거둔다 그리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는 받은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 많은 것은 교훈 진리 지식 이거는 참 6천년 역사에 가장 풍성하게 가장 많이 정확하게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들이 실제 사는 것을 보면 참 너무도 허무하게 사는게 많으니까 그 면을 두고 참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건설구원의 교리를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 주남선 목사님 같은 이런 분들은 그분들이 사신 생애를 보면은 우리가 참 따라가기 어려운 그런 걸음을 걸어갔습니다. 어떻게 저래 사나 싶을만큼. 그런데 그분들은 성경 깨달음 지식으로 말하면 삼분도 몰랐고 삼분설도 잘 몰랐을 것이고 삼분설 모르니까 구원론도 잘 몰랐겠고, 삼분설을 모르면 구원론이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론이 바로 되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교리적인 깨달음적인 그런면에 많은 면에 잘못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다 순교를 하셨다 그말이지요. 참 하나님 그런데 그 보면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지옥가는게 겁이나서 그래서 그 모진 고문 고형 온갖 고초를 다 이기고 참 바른 길을 걸어간 것이 다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밀하게 앎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받을 심판이 참 크다 좀 많이 생각해봐야 됩니다.
그래서 첫째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 구원입니다. 사람을 살려서 최종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에게 끌어붙이는 이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 이걸 기억을 하고 반대로 두 번째는 하나님의 가장 진노가 뭐냐? 가장 진노가 아말렉으로 대표되는 아말렉 하나님의 구원 운동역사를 방해한 민족들, 천하에서 도말하여 기억함이 없게 만들어버리겠다 아말렉입니다. 그 아말렉을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그랬는데 짐승 몇 마리 왕 남겨놨다가 사울이 비참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 또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브올의 아들 발람 이런걸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간구원에 방해끼치는 것을 미워하는지 이걸 우리가 깨닫고 적어도 우리들이 알기에는 사람 구원에 방해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일반 평신도로 가장 잘 믿으면 직분을 뭘로 세웁니까? 평신도로 가장 잘 믿는 분을 장로님으로 세웁니다. 장로님으로 세울때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많습니다. 믿은지 얼마가 되어야 되고 가정이 어떻게 되야 되고 신앙이 어떻게 되야되고 우리공회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장로님 될 분들이 많이 있어도 너무 어렵게 지금 기준을 정해놔서 생각도 안할만큼 지금 그래 되있지요. 그런데 장로님 되는 그런 많은 조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첫째 세우는 조건이 뭔지 아십니까? 장로님이라는 그 장로님에 장립에 조건에 첫째 조건 가장 중요한 조건, 신앙도 중요하고 가정도 중요하고 다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건덕이라 그럽니다 건덕. 덕을 세우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운다 그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해를 끼치지 않는, 다른 사람 신앙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공부 못해도 상관없고 가난해도 상관없고 뭐가 좀 부족해도 상관이 없는데 신앙은 좋아야 되고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그면이 부족하면 모든 면이 다 구비해도 장로님은 장로는 안 세웁니다. 백목사님께 세우신 장로의 세움에 그 조건이 성경적입니다. 그 덕을 세운다는 게 뭐냐? 다른 사람의 구원을 손해끼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떨어뜨리지 않고 신앙의 유익을 주는 그면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장로라 그러면 그 속이 다 썩어서 없어져야 됩니다. 자기주관, 자기 성질, 자기 고집 이런 것이 있어서 막 화를 낸다던지 성질 낸다던지 급하게 이런게 있으면 장로님으로서는 안되는 겁니다. 아무리 구비해도 장로님 안됩니다. 완전히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볼때 참 덕을 끼칠 수 있는 이것이 되야 된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사람이 속으로 다른 사람이 모르는 그런 죄를 많이 짓습니다. 많이 짓는데 속으로 짓는 그런 죄가 자기한테는 손햅니다. 그래서 천하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모든 죄보다 자기한테 있는 자기가 알고 있는 죄 하나가 비중이 더 크다, 해가 더 크다.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의 죄 전부보다 자기가 모르는 죄가 자기에게 해독이 더 크다, 자기가 모르는 죄 전부보다 무슨 죄 해독이 더 큽니까? 자기중심 해독이 더 크다. 그것도 참 진리지요. 그런데 사람이 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너희 중에서 죄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쳐라’ 여기 죄 없는 분 계십니까?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몰라서 그렇습니다. 착각이고 오판입니다.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사도바울만큼 깨끗합니까? 사도바울만큼 깨끗하다면 사도바울만큼 성경 깨달음이라든지 그런 결과가 나와야 됩니다. 아니면 말 못하겠지요. 사도바울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다. 나는 죄없다 하는 그 사람은 심령이 어두워서 그렇고 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죄가 뭔지 몰라서. 다른 사람이 보면 죄투성인데 본인만 모르니까 어두워서 그렇지요. 그러니 문젭니다. 밝은 심령. 그래서 내 어두운 눈 밝히시면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옴은 정결한 마음을 주옵소서. 마음 정결한 그 속에서 뭐가 비친다고요? 신령한 것이 비친다. 죄 없는 거기서. 그래서 사람이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지을수 있는데 그 죄는 어떤 죄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죄가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아는 죄. 자기 혼자만 아는 그 죄는 다른 사람 외부로 드러나는 그 죄보다 큰 죄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게 있느냐하면은 그 죄가 자기한테는 그 죄가 해독인데 다른 사람이 모르고 혼자 몰래 짓는 그 죄는 자기한테는 큰 해독입니다. 그런데 그 죄가 다른 사람이 모르면 다른 사람 구원을 손해끼치는 드러나게 손해끼치는 그 면에 있어서는 해독끼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좀 장성해서 어느정도 교회서나 직분이라든지 연조가 올라가면 깨닫고나면 가장 조심하는 것이 자기 주변사람들에게 신앙의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하는 생활이 내 행동 내 모든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의 힘을 떨어뜨리는 그 면을 가장 조심하는 중에 하납니다. 그게 하나님이 가장 노여워하시는 것중에 하나니까. 그러기 때문에 백목사님께서 가장 겁낸 사람이 누구라고요? 백목사님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분인데 가장 두려워한 대상이 누구라 그랬습니까? 안 믿는 남편을 둔 믿는 아내. 믿는 아내에 안 믿는 남편 그 사람을 백목사님이 가장 겁을 냈습니다. 심방가서 혹시나 당신의 말한마디 실수해서 행동하나 잘못해서 오해를 해서 그 사람이 그 아내는 남편 구원 위해서 불철주야로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데 그 말한마디 행동하나 잘못해서 남편이 오해하던지 그래가지고 더 멀어지게 되면 그 심판이 어떻게 될까. 그게 전부 인간구원하고 연관된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구원입니다. 사람을 구원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 믿는 사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을 닮기를 소원하고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 닮아가는 사람, 소망을 천국에 두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마음과 힘과 정신과 노력과 물질과 이런걸 쏟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여기 반대되는 인간구원에 손해되는 그말, 저도 그렇습니다. 보면은 다른 사람을 손해케하는 그런 말 그런 행동 그런 일 할때는 저는 속에서 불이 나서 못 견딥니다. 그만큼 성화됐다는 말이 아니고 그게 사상이 하나고 인식이 하나고 신앙의 가치관이 하나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다 참는데 사람이 다 죄인이니까 무슨 죄를 지어도 다 이해하겠는데 나도 죄인이니까 이해하겠는데 다른 사람의 신앙을 손해보게 하고 힘을 떨어뜨리는 그 면에 있어서는 저는 못 참습니다. 속에서 불이 올라와버립니다. 그냥 그만 미워서 죽을 지경으로 혼자 있을때 그냥 막 욕도 하고 그럽니다 저는. 다른 사람 신앙의 손해끼치는 그면두고는 견디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는 일이다 그말입니다. 이걸 우리가 기억을 하고 이 말씀이 과연 옳으냐 틀리냐 판단해서 우리는 가장 힘쓸 것은 인간 구원이고 가장 조심할 것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손해케하는 힘을 떨어뜨리는 그면을 가장 조심을 해야 되겠다.
참고로 말씀드리건데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때는 혼자 살 수 없게 만들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다른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속에서 주고받고 그게 사회라는 겁니다 사회. 개인 생활이 있고 사회라는건데 사회라는 말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하는 걸 사회라 그럽니다. 그래서 가정도 사회고 직장도 사회고 직장도 사회고 사회도 사회고 사횐데 그 사회라는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 속에서 내가 사니까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외부로 드러나든지 안 드러나든지 나의 모든 생활은 내 주변을 사는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는데 그 영향이 크게 말하면 두종류라서 하나는 신앙의 유익을 주던지 아니면 신앙의 해를 끼치든지 둘중에 하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것은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줄 알고 우리들은 조심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장성한 신앙이 어린 신앙과 같이 지내면 장성한 그 신앙은 녹아납니다. 함께 지낼때 밥을 함께 먹는다,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밥 먹는 모습 보면은 사람이 덕스럽지 못한 분 많지요. 잠을 함께 잔다,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개 보면은 교역자가 교역자들끼리 모이면 모든 허물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합니다. 그래서 집사 집사끼리 만나지 마라. 우리 교회도 그런게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비슷한 신앙끼리 모여서 피곤하니까 커피도 한잔할 수 있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자칫 잘못하다보면 교회에 큰 손해 끼치기 쉽습니다. 시간나면 그냥 피곤하면 차 한잔 마시고 혼자 성경 읽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이게 좋지 여러 사람 앉아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서로 신앙에 손해 끼치는 일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참 어렵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사는 생활은 가깝게는 가족들부터,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모든 생활이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의 해를 끼치지 않는가 이걸 늘 생각하며 사는 우리가 되야 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 속에 사는 것이고 그러다보니까 내 모든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기 되어 있고 그 끼치는 영향은 신앙의 유익을 주거나 아니면 신앙에 해를 끼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겠고 그러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어느면이든지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걸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서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주인의 집은 교회고 넓게 말하면 세상입니다. 그 집에서 종은 누구냐? 종은 하나님의 구속받은 우리 성도들이 종입니다. 우리가 종인데 우리들 중에서 두종류가 있고 한 사람도 두종류의 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도 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으로 살다가 악한 종이 될 때도 있고 악한 종으로 살다가 다시 충성된 종이 될 때도 있고. 한결같이 계속되면 좋은데 어렵습니다. 우리 노력을 어쨌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 내 주변에 사는 주변 사람들이 전부 주인의 집 사람들입니다. 히브리 12장 3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1절입니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그 증인들이 누구라고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이 누구지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바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그들 보고 그들이 바로 내 증인들이고 내가 그들에게 증인이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에 무엇입니까?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바로 내 주변을 말하는 겁니다. 그 주변이 점점 자기 활동 범위에 따라서, 역량에 따라 점점 커지고 넓어지고 많아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모든 언행심사는 단 하나도 그냥 없어지는 것이 없고 어떤 형태로든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영향이 내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면, 충성은 자기 심신을 다 바쳐서 심신의 힘을 다 들여서 주인을 받들고 주인의 뜻을 받드는 그게 충성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이 지혜고 하나님의 뜻이 지혭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자기 마음과 몸의 힘을 전부다 드려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걸 가지고 충성되고 지혜있는 요 중심 자세를 가지고 주인의 집 사람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에 유익을 주고 신앙의 힘을 줄 자가 누구냐 그말입니다.
안믿는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압니다 들어서. 사람은 혼자 사는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 속에 살고 있고 모든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관계도 가지고 온갖 형태로 관계를 맺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 사는 속에 나의 모든 사리판단, 취사선택, 언행심사, 희로애락, 내 모든 생활은 전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는데 그럴때 내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양식을 줘서 복된 사람이 되게 될 것이고 내가 동무들을 때리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악한 종이 되면 주변 사람들을 때리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을 하고 늘 깨어사는 우리가 되야 되겠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외부적으로 말하면 외부로 드러나는 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막바로 영향을 미치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드러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도 행동도 모든 생활도 다 조심을 해서 분명히 드러나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없는데 내가 신앙생활이 바로 되지 못하고 주님과 멀어지고 죄를 짓고 드러나게 죄 짓지 않아도 어두워지게 되면 거기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도 힘을 주지 못하는 그런 것이 되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 그게 주님과 자신의 관계. 자기 신앙생활을 바로 아는 것이 가장 어렵고 이것만 바로 되면 그래서 주님 모시고 살게 되면 거기서 하나님 원하시는 모든 것이 다 나오게 되어진다 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 나눠주는 이런 우리가 되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정도 장성한 신앙이면 예배시간에 지각을 하면 안됩니다. 알게 모르게 다 영향 미칩니다. 예배시간에 안 졸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또 예배시간 자세라든지 이런것도 살펴봐야 됩니다. 평소 생활에도 외부로 드러나는것 이런 것을 열심히 해야 됩니다. 하다못해 껍데기로라도 해야 됩니다. 연극으로라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보는데 새벽기도를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한번씩 새벽기도를 빠지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목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저도 한번씩 새벽기도 빠지고 싶고 잠들고 싶을때가 더러더러 있습니다. 더구나 늘 깨어살지 못할때는 더합니다. 그럴때는 나와봐야 설교 힘도 없고 자신도 없고 오히려 수치만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연극이라도 해야 된다. 그래도 나가야 된다. 그래야 교인들의 힘을 안 떨어뜨리고 조금이라도 유익을 주게 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그래 하는데 그럴때 연극도 있고 연기처럼 그런것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떨어뜨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유익을 주기 위해서 그래 노력을 하는 겁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진겁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부는 서로에게, 형제는 서로에게 또 믿음에 앞선 사람들은 뒤선 사람들에게 다 이런면을 생각하면서 이것이 전부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구원 위해서 힘쓰는 것이니까 이면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말씀하기를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띄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나이가 많아지고 신앙 연조가 높아지고 활동 범위가 넓어지니까 베드로를 아는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집니다.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나중에는 남이 너에게 띠를 띄운다. 자기는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기도하는 모습이라도 해야 됩니다. 눈이 침침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성경 보는 흉내라도 내야 됩니다. 기도하면 피곤해서 엎드리고 싶은데도 엎드리지도 못합니다. 그래하다 결국 ‘남이 네게 띠 띄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그래서 마지막 결국, 그래서 부모가 참부모가 되면 부모 자기 인생은 없는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보면은 젊어서 얼른 아이 키워놓고 혹은 아이 낳지 않고 하나둘 낳아놓고 저것들 던져놓고 나는 내 인생 살란다. 인생관이 온 세상 전부가 다 인생관이 틀렸습니다. 가치관이 틀렸고. 부모라는 것은 자녀가 있는 그 순간 그 자녀 위해서 자기 다 받치는 그게 정상적인 부모의 생활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던져놓고 ‘나는 내 인생 살란다 너는 너대로 살아라’ 부모의 위치는 아닙니다. 부모가 부모가 되면 자식을 위해서 곤충도 물고기도 가시고기? 물고기도 그런 거 수도없이 많습니다. 제 새끼 번식위해서 저는 다 희생으로 받치는 겁니다. 사람이 그거만 못해 되겠습니까? 부모가 부모되면은 자식위해서 자기 인생 포기하다시피 그래하고 그리 사는것처럼 믿는 사람이 믿어서 신앙이 장성하면 자기 생활은 없는 겁니다. 자기는 완전히 죽어지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어린 신앙들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서 그리 사는게 믿는 사람 생활, 그 속에는 하나님이 중심이지요. 그게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일이니까 주님이 그래 사셨습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입니다.
본문에 말씀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의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 양식 나눠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때 그 종의 이렇게 하는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을 것이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겠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은 이 사람의 것이다 그말이지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각자 자기 범위에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에 유익을, 믿음에 양식을, 믿음에 힘을 주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목적이고 뜻입니다. 인간 구원입니다. 여기에 당신의 전부를 다 받쳤고 이걸 위해서 영계도 우주도 다 지었고 주권 섭리하고 계시고 이걸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셨고 피흘려 죽으셨고 피조물로 영원히 부활하신 대속역사를 이루신 겁니다. 인간구원 여기에 전부 다 받쳤는데 이것이 우리의 평생의 소원이 되어야 됩니다.
제목: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요점:
1. 신앙에 치우침을 주의
- 우리 공회 신앙들은 교리적 지식이 깊고 많으나
- 여러 형태로 치우친 신앙들이 많으니 살펴 주의해야
- 장점만 보고 그리로만 나가면 기형적인 신앙이 되기 쉬움
- 자기 단점을 살펴 고치고 장점을 길러 나가야 할 것
- 신앙은 논리적 체계적이라야 하는 것
2. 하나님의 소원
- 소원이란 그가 바라고 원하는 전부
- 엘리사의 소원은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
- 솔로몬의 소원은 하나님의 백성 다스릴 지혜
-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목적
- 하나님의 목적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
-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 구원, 영광의 찬미
- 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인간 구원
3. 하나님의 진노
-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한 아말렉
-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말씀을 거역한 사울의 비참
-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발람의 결과
- 인간 구원 방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기억할 것
- 장로 장립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덕 생활
- 보이지 않는 죄가 자기에게는 큰 손해이지만
- 보이는 죄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큰 죄
- 다른 사람 신앙을 손해케 하는 일을 극히 조심할 것
4.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람
-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
-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 사람
- 따라서 우리의 생활은 주변 모든 사람에게 여러 형태로 영향을 끼치고
- 그 영향은 신앙의 유익을 주거나 해를 끼치는 것
5. 본문에서
- 주인은 하나님
- 주인의 집은 교회고 세상
- 그 집의 종은 우리 성도들
- 두 종류의 종, 한 사람 속에도 두 종류의 종
- 주인이 집 사람들은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
- 내 생활은 주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면 양식을 나눠주게 되고
- 악한 종이 되면 동무를 때리게 되는 것
결론
- 장성할수록 어린 신앙에 손해보이지 않도록 노력할 것
- 연극이라도 해서 신앙에 손해는 보이지 않도록 노력할 것
- 부모가 부모 되면 자기 위한 생애는 없고 자녀 위해 살듯이
- 신앙이 장성할수록 어린 신앙 위해 사는 것이 정상
-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 주는 우리가 됩시다!
-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목적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 이것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 창조 주권 섭리, 대속의 피를 흘리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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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1020 주후
마태복음 24:45-51
저는 찬송가에 대해 잘 모르는데 오늘 김선생님이 164장 그 작사잡니까 김선생님? 작사자 찬송시 지은 그분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듣고 아주 크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알고 하는 것 하고 모르고 하는 것 하고는 차이가 많은데 그런 말을 들어볼때 6천년 인간역사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로 하나님이라는 분이 살아계시고 존재해계시고 그분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형태로 역사를 해서 하나님을 알리고 믿게 만드시고 그래서 하나님을 알고 믿는 그 믿음으로 산 그런 종들이 역사에 참 많았습니다. 그 가사를 지은 그분도 참 그 중에 한분이라. 자기 두 자녀를 모두 다 잃고 그 잃은 그 바다를 지나가면서 이 시를 지었다 그랬는데 바다를 지나갈 때 그 시를 지을때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을 참 믿는 믿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그런 시지요. 그런 가사고. 주기철 목사님 그 전기를 읽어보면 마지막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이제 검속이 되고 순교하기전 마지막에 나와서 평양 산정교회에서 설교하실 때 다섯가지를 두고 설교한 그런게 기록이 남아 있답니다. 그 설교할 때 아마 온 교인이 눈물바다가 되지 않았을까. 은혜가 충만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는 우리 총공회 진영에 우리들, 우리의 장점이라 그러면 말씀의 깊이를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교리 교훈을 바로 배워서 많이 알고 그래도 대부분 정확하게 안다는 겁니다. 대단히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까 우리는 귀는 많이 높았고 또 말을 잘하니까 입은 높은데 실제 우리들의 열정이라든지 우리의 충성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열심히 충성하는 분들은 참충성을 하고 아주 대단합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 진영외에서도 잘 모름에도 불구하고 참 이제 그 찬송 지은 그분은 잘 알겠지만은 그런데 그때는 지금만큼 성경깨달음의 이런 논리체계가 교리가 깨달아지지 않아서 우리들만큼 그렇게 체계적으로 몰랐을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그 하나를 믿고 그분의 그 구원세계를 전체적으로 믿고 그렇게까지 믿음으로 산 그런걸 볼때 우리는 참 다른 진영 그런 교인들의 그 열심 열정 이건 우리가 보고 배우고 따라가야될 그런 부분이라 생각이 되고 그래서 우리 총공회 교인들은 대개 보면은 이런 교리 교훈 지식적인면은 깊고 또 체계적이고 많이 앎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그런 신앙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게 제가 여기서 참 많이 말씀을 드린건데 저 역시 그중에 한 사람일겁니다. 그래서 자꾸 애를 쓰는데 어쨌든 성경으로 볼때 치우친 신앙은 고장난 신앙입니다. 올바른 신앙이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바로 알아서 좋은 장점은 그대로 계속 붙들고 길러 나가고 그 장점 아닌 단점은 찾아가지고 자꾸 보완을 하고 또 바로 잡아 고쳐나가는 그런 우리들이 되야되지 내 장점만 꼭 붙들고 그것만 자꾸 키우고 거기만 힘을 쓰다보면 결국은 기형적인 신앙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보면 그 성격이나 체질이 기도를 잘 할 수 있는 체질입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도 힘을 쓰지만은 성경이라든지 또 심방 전도라든지 활동에 힘을 쓰도록 해야 되는 것이고 또 활동성이 왕성한 그런 분들은 조용히 앉아서 명상하고 기도하는 그런면에 힘을 쓰고 또 큰 것을 잘하는 분들은 사소하고 자잔한 세밀한 그런것을 노력을 해야되고 또 사소한 그런 꼼꼼한 것만 잘하는 사람은 또 큰 것도 살펴봐야되고 그래가지고 어쨌든 이면 저면 다 빠짐없이 구비한 그런 우리가 되야 우리라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지 누구나 다 사람은 아이들이 음식먹을때 편식을 하듯이 자기 잘하는 것 좋아하는 그 면에만 힘을 쓰기 쉬운데 그러다보면 결국 기형적인 신앙이 되고 마는 겁니다. 신앙은 체계적이라야 되고 순서적이라야 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신앙이 되야 그게 올바른 신앙이 되는 겁니다. 좀 돌아보고 힘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164장 같은 이런 그 작사자의 그런 내용들을 이건 우리 000선생님이 잘 하실것 같은데 좀 공부를 하셔가지고 한번씩 찬송시간에 그런걸 좀 가르쳐주시면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찬송가를 할때마다 그 가사를 지으신 그분의 그 신앙과 그 생애를 그 과정을 생각하면 참 은혜가 더 배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것도 우리가 갖추어야 될 것 중에 하나가 아닌가. 우리는 그런걸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또 말을 안하니까. 오늘같은 그런게 좀 찬송가를 두고 그런 좀 좋은 그런 지식전달 이게 좀 있었으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을 가져봅니다.
오전에 하나님의 소원을 생각해봤습니다. 첫째 소원이 뭐냐? 소원은 그가 바라는 전부다가 소원입니다. 가장 간절하고 가장 애절하고 마음에 진정 원하고 원하는 그런 것이 소원이 되어집니다. 옛날 배고팠던 시절에는 ‘배부르게 좀 먹어봤으면 원이 없겠다’ 실컷 배껏 먹는 그게 소원입니다. 내 집을 한번 가져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또 뭘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그 사람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고 원하는 그걸 소원이라 그리 말합니다. 소원이 참 말 그대로 소원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게 되겠지요. 하나밖에 없는 그 전부. 욕심이 많은 사람은 소원이 많겠지만은 사람의 소원은 하나. 내 소원이 무엇이냐. 엘리야를 따라간 엘리사의 소원은 무엇이었습니까? ‘당신의 영감의 갑절을 구하나이다’ 그럴때 엘리야가 ‘참 어려운 것을 구했다’ 그리 말했고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솔로몬의 소원이 그거였습니다. ‘네가 부도 구하고 아니하고 오래 살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에게 맡긴 이 백성 다스릴 지혜를 구하니 그 지혜와 함께 부도 영광도 함께 주겠다’ 소원이 바르니까 다른것도 따라왔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하나님의 소원은 다른말로 오전에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곧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거는 유일무이한 오직 하나밖에 없는 둘이 없는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의 소원이고 뜻입니다. 하나님이 진정 바라는 것. 그러면 하나님이라는 분은 완전잡니다. 완전이라 말은 모든 면에 구비해서 흠과 점이 없는 분입니다. 전지고 전능이고 자존이고 무한이고 영원불변이고 부족함이 없는. 갖고 싶은 것 다 가질 수 있고 하고싶은 것 다 할 수 있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다 갖추신 그 분이 완전잔데 그 완전하신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소원이 있는가. 하나님이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이 바로 인간구원이다. 하나님의 목적의 목적이 뭐였습니까?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하나님의 목적의 목적이 뭐라고 그랬던가요? 이것도 제가 그 깨달음의 받은 은혜가 커서 종종 말씀을 드린건데 하나님의 목적의 목적이 뭘까?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인데 그 구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의 목적이 뭘까? 그게 뭡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영광의 찬미라 그리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은 그 출발이 발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발원되어졌기 때문에 이 구원은 어떤 경우에도 변동이 없어서 이걸 가리켜서 하나님을 향한 지식 13가지 4번째에서 영원자존하나님 의지가 자존 의지가 정하신 목적입니다. 자존이라 말은 그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영향이나 간섭을 받지 않는 순전히 홀로의 전체를 다 가지고 모든 존재 전체의 주권을 다가진 그분이 당신 홀로의 독단의 단독의 그것으로 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존재 무엇에 간섭도 영향도 받지 않는게 자존입니다. 그 자존의지 그 자존사랑 이것으로 되어진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고 그래서 그 목적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 우리를 위한 것이면 우리가 변하면 목적도 변합니다.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면 우리가 변하면 목적도 변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 생각으로 자기 기준으로 자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자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결국 자기중심이고 그리되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역시 하나님도 말하자면 표현하자면 그 성격적으로 말하면 하나님도 자기중심입니다. 인간도 자기중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의 자기중심 천사의 타락한 자기중심 그런데 피조물은 그 어떤 것도 자기중심이 되면 뭐라 그럽니까? 피조물이 자기중심이 됐을때 그것을 교리적 용어로 뭐라그러지요? 악이라 그리 말하고 원죄라 그리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중심이 되면 뭐라그럽니까? 그럴때는 선이라 그럽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하나님과 피조물이 자기중심이라는 그 성격은 꼭 같은데 왜 판단의 정의가 완전히 정반대가 되어집니까? 하나님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는게 악이 되고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중심이라야 그게 선이 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피조물은 존재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하나님은 자존자니까 완전자니까 그래서 완전자중심이 되어야 모든 불완전이 완전에 속하고 모든 불완전 존재가 전부다 완전화 되어지고 사는게 되어지는데 완전하신 그 하나님이 완전중심에서 벗어나면 불완전중심이 되니까 이게 모든 피조물을 멸망시키는게 되어지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중심만이 선이고 피조물은 어떤 피조물도 다 불완전하니까 불완전한 존재가 자기중심이 되면 그게 바로 완전가 대립이 되니 그게 전부 악이다. 사망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그 소원의 발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출발되어진 겁니다. 다시 말하면 완전에서부터 출발되어졌기 때문에 이거는 변함이 없고 변동이 없고 선이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소원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아무리 능력있고 실력있고 아무리 탁월한 하나님이 자존자고 전지전능의 완전이고 사랑에 자비에 긍휼이 무한하시고 어떤 능력있는 그런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그분이 혼자 계시면 뭐가 없다고요? 사람이 혼자 있는 곳에는 뭐가 없습니까? 이런 답은 쉽게 나와야 되는데요? 혼자만 있는 곳에는 무엇이 없습니까? 영광이 없는 겁니다. 영광이. 그래서 돈을 모으는 사람들이 알고나면 돈을 많이 모으고나면 그때부터는 돈이 아무리 있어도 돈만 가지면 조금 넓게 생각해보면 외로우니까 그 돈 가지고 주변에 베풀면 그 베품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영광이 돌아오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가지고 영광도 사고 권세 잡은 사람도 그렇습니다. 권세를 잡을때는 지금이야 우리나라같은 민주화가 되니까 쉽게 못하지요. 옛날에야 뭐 칼 가지고 주먹 가지고 힘 있으면 정권잡는데 잡고나면 그때부터는 사람이 자기를 영광스럽게 해야되니까 정말 타락한 그런 폭군이 아니면 나라 정권을 잡고나면 그 나라를 안정시키고 잘 다스리기 위해서 노력하지 나라 말아먹으려고 작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게 있지만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를 잡아먹었을때도 그거는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은 저거들 위해서입니다. 일본나라 저거 위해서 하지만은 그 과정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어쨌든 안정시키고 요즘은 보니까 그런 말이 한번씩 나오데요. 결국은 우리나라에서 빼앗아 가기 위해서 하지만은 우리나라를 침략해서 조사해가지고 이 나라에 많이 나는게 뭐냐? 다 살펴가지고 뒤떨어진거 이런거는 자꾸 개발시켜서 좋은 것을 갖다 놓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그 말이 전혀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닙니다. 동기 목적은 저것들 때문에 하는 거니까 우리를 쥐어짜기 위한 나쁜 의도지만은 그 과정 방편은 그런 면이 없지않으니까 저것들 빼먹기위한 그거는 싹 감추고 그런 과정만 내놓으니까 저것딴에는 할 말이 많이 있겠지요. 그런면은 우리가 양면 다 알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우리나라 정권 잡은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이승만 대통령 백목사님께서 가장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칭찬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들어보셨습니까? 박정희대통령이 첫째 그래서 박대통령은 우리나라를 살린 사람,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의 국부 그래 말합니다. 전대통령은 우리나라를 공산정권에서 지켜준 사람 다른 사람들은 별로 치지 않습니다. 그것이 전체를 다 여러 가지면을 다 생각을 해서 그리 판단하는 겁니다. 단순히 백목사님같은 그런 선견을 가지고 영안 가진 그런 분들이 말씀하실 때는 쉽게 그렇게 거부할 그런게 아닙니다. 어지간한 사람 인생을 보통 사람들이 보는 그런거 열배 스무배 더 깊이 넓게 그리 보고 하기 때문에 쉽게 그렇게 부정할 그런 일이 아닙니다. ‘뭔가 있는가보다, 내가 모르는 뭔가 있겠다’ 그래 생각을 하고 파고들어가보면 자꾸 그런것이 나온다 그말이죠.
좀 옆으로 많이 갔는데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소원은 누구를 위한 소원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누구 위한 소원입니까? 하나님 당신을 위한 소원입니다. 자기 중심이네. 그렇습니다. 하나님 당신 자신을 위한 소원입니다. 왜 하나님 자신 위한 소원이 그렇게 찬양을 받고 찬미를 받아야 됩니까? 하나님은 완전자니까. 유일무이하게 오로지 하나님만이 하나님이고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당신을 위한 그 소원인데 당신을 위한 그 소원이 밖으로 나오면 나타나는 것마다 전부 빛으로 나타납니다. 생명으로 나오고 사랑으로 나오고 구원으로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당신을 위해서 지음 받은 피조물이 완전하신 하나님인데 당신위해서 하는 그 모든 것에게 피동이 되어서 거기에 순응하고 순종만 하면 전부 빛이고 사랑이고 생명이고 영광이고 평강이고 온갖 좋은 것은 그 속에 다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를 만들기 위해서. 영광이란 것은 알아주는 감사하는 그런 대상이 많을수록 영광은 더 큰 겁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영광은 없다는거는 다 아시지요? 이 세상에서는 어떤 영광이 외부로 드러나도 그 영광 이면에는 그 영광을 반대하는 그런 대상이 없는 영광은 세상에 참 없습니다. 주님의 영광만이 참된 영광인데 그 영광 그래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이 영광의 찬미는 이거는 많을수록 더 좋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혼의 제도를 만드신 목적은 첫째는 하나되기 위해서 하나된 둘을 통해서 많이 번식시키기 위해서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 그다음 많아진 그들을 다시 하나 만들기 위해서 이해가 되십니까? 요 그림이 말하자면 제가 말씀드린 이것이 머릿속에 그려져야 됩니다. 아 결혼제도는 부부를 원래 하난데 둘로 떼놨다가 다시 하나님께서 찾아서 짝을 찾아 하나로 만드시고 그 하나 만드신 부부를 통해서 많은 자녀를 낳아서 그 많은 사람들이 김씨 이씨 무슨 씨 무슨씨 다 놓고 그래가지고 많아진 그 모든 자손들 전부다가 또 다시 하나가 되는데 그 하나는 하나님을 중심한 그리 모여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이게 하나님의 목적인데 그러기 때문에 세상말에 많을수록 좋다 네글자로 뭐라합니까? 한문으로 뭐라그러던가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 그러죠. 많을수록 좋다. 영광이란 것은 그런겁니다. 많을수록 좋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소원은 당신의 영광인데 그 영광을 위한 영광의 찬미가 인간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보면 전체가 성경전체 흐름은 인간 구원을 향해서 다 가고 있고 그걸 위한 모든 원동도 과정도 전부 인간구원이 돼서 나와 있는게 성경입니다. 인간구원을 빼놓고 그다음은 성경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 목적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인간구원을 위해서 있는게 성경이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알맹이는 무엇입니까?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중심은 무엇인가요? 이것도 어렵습니까? 대속이죠 대속. 그 대속을 다른말로 말하면 뭐라 그럽니까? 구원이고 또 다른말로 말하면? 사랑이다. 그래서 성경은 한말로 정리하면 성경은 사랑이다 구원이다 그리 말하고 그 구원의 대상이 누굽니까? 사람입니다. 우리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초점은 전부 우리 믿는 성도들 구속받은 성도들 하나님의 택자들 향해서 다 이루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구원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성경에 많은 곳에 어쨌든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사랑해라 나에게 할 일을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다닐때 나이 많은 사람 그 이름이 얼른 기억이 안나는데 나이가 많은 그 사람이 다윗을 큰 부잔에 봉양을 했지요. 그러고나서 발란이 다 진압되고 다시 다윗이 환궁할 때 큰 은혜 베푼 그 사람을 ‘나와 함께 가자. 내가 너를 남은때 책임지고 봉양을 하겠다’ 그러니까 ‘이 나이게 어찌 따라가겠습니까. 차라리 누구 보낼거니까 그쪽 해주십시오’ 그래가지고 다른 사람 자기 대리로 보냈지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베푼 것이 바로 그 본 그사람에게 베푼게 되는 겁니다. 부모가 나이 많아서 세상 떠나면 은혜 받은 사람이 있어서 ‘어르신 제가 어르신께 받은 은혜가 큽니다. 어떻게 갚겠습니까. 이렇게 가시면 한입니다’ ‘그런가 그러면 내 누구한테 이 후계자 누가 있으니까 아들딸 누가 있으니까 여유가 되거든 그리 해주게’ 그러면 그 사람이 자기 은사가 부탁한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 대리니까 그리하게 된다 그말이 되겠지요. 그래서 주님이 부탁하신 것은 ‘나를 사랑하면 내가 피흘려 구속한 내 양떼를 사랑해라. 그들을 먹여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또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킬 것이고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 내 계명이다.’ 빛 가운데서 거한다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 사람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다. 어둠은 어딥니까? 어두움은 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빛 가운데서 산다 그말은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예수 믿는다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면 형제를 미워하는 그 사람이면 안 믿는 사람이라 그뜻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소원하시는 일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믿음의 조상들 하나님이 기뻐하신 의인들은 하나같이 전부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람을 아끼지 않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은 없습니다. 하나같이 사람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그런 면이 있다 그말이죠. 그러기 때문에 나그네를 대접하고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백목사님도 당신이 세상에서 돈 벌어서 안 믿을때, 안 믿을때도 그랬답니다. 그 위에 윗대부터 그래서 동네 시골에 옛날 시골에는 나그네가 그리 많지는 않은데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꼭 밥 한그릇이라도 대접을 하고 보내지 지나가는 나그네 그냥 보내는 법이 없답니다. 백목사님도 그랬답니다. 모르는 사람 있으면 꼭 불러다 대접을 하고 그랬지요. 롯이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소돔 고모라 성에서 구원 받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다.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게 누구였습니까? 그게 천사였습니다. 모르고 했지요. 그런데 천사였다 그말이지요. 사람을 아끼는 것.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다. 사람 구원한다 그말은 사람을 어떻게 만든다는 겁니까?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고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 만든다 그말은 밑에서부터 올라가면 도덕적인 사람, 인간관계에서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흠점이 없는 그런 사람. 인간관계에서 아주 좀 흠이 없는 그런 도덕적인 흠없는 사람을 만들고 거기서 더 올라가서 신앙양심적인 흠 없는 사람을 만들고 더 올라가서 진리적인 그런 사람을 만들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 형상을 닮은 이런 사람 만드는 이것을 위해서 마음을 쓰고 애를 쓰고 물질을 쓰고 기도하고 노력하는 그 면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그 사람을 가장 기뻐하신다 모든 성경이 전부다 그리 다 기울어집니다. 이걸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 그말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치리라’ 우리는 어떻게 사는지 하나님이라는 분을 참 믿으면 그래서 참 어찌보면은 우리가 받을 심판이 클지 모릅니다. 많이 준 자에게는 많이 찾고 많이 거둔다 그리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는 받은게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 많은 것은 교훈 진리 지식 이거는 참 6천년 역사에 가장 풍성하게 가장 많이 정확하게 받은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들이 실제 사는 것을 보면 참 너무도 허무하게 사는게 많으니까 그 면을 두고 참 근심 걱정이 많습니다. 건설구원의 교리를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 같은 분들 주남선 목사님 같은 이런 분들은 그분들이 사신 생애를 보면은 우리가 참 따라가기 어려운 그런 걸음을 걸어갔습니다. 어떻게 저래 사나 싶을만큼. 그런데 그분들은 성경 깨달음 지식으로 말하면 삼분도 몰랐고 삼분설도 잘 몰랐을 것이고 삼분설 모르니까 구원론도 잘 몰랐겠고, 삼분설을 모르면 구원론이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구원론이 바로 되지 못하면 신앙생활에 교리적인 깨달음적인 그런면에 많은 면에 잘못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다 순교를 하셨다 그말이지요. 참 하나님 그런데 그 보면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지옥가는게 겁이나서 그래서 그 모진 고문 고형 온갖 고초를 다 이기고 참 바른 길을 걸어간 것이 다 그런 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밀하게 앎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받을 심판이 참 크다 좀 많이 생각해봐야 됩니다.
그래서 첫째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 구원입니다. 사람을 살려서 최종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에게 끌어붙이는 이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다. 이걸 기억을 하고 반대로 두 번째는 하나님의 가장 진노가 뭐냐? 가장 진노가 아말렉으로 대표되는 아말렉 하나님의 구원 운동역사를 방해한 민족들, 천하에서 도말하여 기억함이 없게 만들어버리겠다 아말렉입니다. 그 아말렉을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그랬는데 짐승 몇 마리 왕 남겨놨다가 사울이 비참하게 되었다는 그 사실, 또 이스라엘을 범죄케 한 브올의 아들 발람 이런걸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간구원에 방해끼치는 것을 미워하는지 이걸 우리가 깨닫고 적어도 우리들이 알기에는 사람 구원에 방해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일반 평신도로 가장 잘 믿으면 직분을 뭘로 세웁니까? 평신도로 가장 잘 믿는 분을 장로님으로 세웁니다. 장로님으로 세울때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많습니다. 믿은지 얼마가 되어야 되고 가정이 어떻게 되야 되고 신앙이 어떻게 되야되고 우리공회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장로님 될 분들이 많이 있어도 너무 어렵게 지금 기준을 정해놔서 생각도 안할만큼 지금 그래 되있지요. 그런데 장로님 되는 그런 많은 조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첫째 세우는 조건이 뭔지 아십니까? 장로님이라는 그 장로님에 장립에 조건에 첫째 조건 가장 중요한 조건, 신앙도 중요하고 가정도 중요하고 다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건덕이라 그럽니다 건덕. 덕을 세우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운다 그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해를 끼치지 않는, 다른 사람 신앙에 유익을 줄 수 있는. 공부 못해도 상관없고 가난해도 상관없고 뭐가 좀 부족해도 상관이 없는데 신앙은 좋아야 되고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그면이 부족하면 모든 면이 다 구비해도 장로님은 장로는 안 세웁니다. 백목사님께 세우신 장로의 세움에 그 조건이 성경적입니다. 그 덕을 세운다는 게 뭐냐? 다른 사람의 구원을 손해끼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떨어뜨리지 않고 신앙의 유익을 주는 그면을 말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장로라 그러면 그 속이 다 썩어서 없어져야 됩니다. 자기주관, 자기 성질, 자기 고집 이런 것이 있어서 막 화를 낸다던지 성질 낸다던지 급하게 이런게 있으면 장로님으로서는 안되는 겁니다. 아무리 구비해도 장로님 안됩니다. 완전히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볼때 참 덕을 끼칠 수 있는 이것이 되야 된다.
그래서 사람이 어떤 사람이 속으로 다른 사람이 모르는 그런 죄를 많이 짓습니다. 많이 짓는데 속으로 짓는 그런 죄가 자기한테는 손햅니다. 그래서 천하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모든 죄보다 자기한테 있는 자기가 알고 있는 죄 하나가 비중이 더 크다, 해가 더 크다. 자기가 알고 있는 자기의 죄 전부보다 자기가 모르는 죄가 자기에게 해독이 더 크다, 자기가 모르는 죄 전부보다 무슨 죄 해독이 더 큽니까? 자기중심 해독이 더 크다. 그것도 참 진리지요. 그런데 사람이 죄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너희 중에서 죄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쳐라’ 여기 죄 없는 분 계십니까?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은 몰라서 그렇습니다. 착각이고 오판입니다. 어두워서 그렇습니다. 사도바울만큼 깨끗합니까? 사도바울만큼 깨끗하다면 사도바울만큼 성경 깨달음이라든지 그런 결과가 나와야 됩니다. 아니면 말 못하겠지요. 사도바울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다. 나는 죄없다 하는 그 사람은 심령이 어두워서 그렇고 죄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죄가 뭔지 몰라서. 다른 사람이 보면 죄투성인데 본인만 모르니까 어두워서 그렇지요. 그러니 문젭니다. 밝은 심령. 그래서 내 어두운 눈 밝히시면 참 기쁘고 고마우나 그보다 더 원하옴은 정결한 마음을 주옵소서. 마음 정결한 그 속에서 뭐가 비친다고요? 신령한 것이 비친다. 죄 없는 거기서. 그래서 사람이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지을수 있는데 그 죄는 어떤 죄는 다른 사람이 모르는 죄가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아는 죄. 자기 혼자만 아는 그 죄는 다른 사람 외부로 드러나는 그 죄보다 큰 죄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게 있느냐하면은 그 죄가 자기한테는 그 죄가 해독인데 다른 사람이 모르고 혼자 몰래 짓는 그 죄는 자기한테는 큰 해독입니다. 그런데 그 죄가 다른 사람이 모르면 다른 사람 구원을 손해끼치는 드러나게 손해끼치는 그 면에 있어서는 해독끼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좀 장성해서 어느정도 교회서나 직분이라든지 연조가 올라가면 깨닫고나면 가장 조심하는 것이 자기 주변사람들에게 신앙의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하는 생활이 내 행동 내 모든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의 힘을 떨어뜨리는 그 면을 가장 조심하는 중에 하납니다. 그게 하나님이 가장 노여워하시는 것중에 하나니까. 그러기 때문에 백목사님께서 가장 겁낸 사람이 누구라고요? 백목사님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분인데 가장 두려워한 대상이 누구라 그랬습니까? 안 믿는 남편을 둔 믿는 아내. 믿는 아내에 안 믿는 남편 그 사람을 백목사님이 가장 겁을 냈습니다. 심방가서 혹시나 당신의 말한마디 실수해서 행동하나 잘못해서 오해를 해서 그 사람이 그 아내는 남편 구원 위해서 불철주야로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데 그 말한마디 행동하나 잘못해서 남편이 오해하던지 그래가지고 더 멀어지게 되면 그 심판이 어떻게 될까. 그게 전부 인간구원하고 연관된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구원입니다. 사람을 구원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 믿는 사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하나님을 닮기를 소원하고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 닮아가는 사람, 소망을 천국에 두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마음과 힘과 정신과 노력과 물질과 이런걸 쏟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여기 반대되는 인간구원에 손해되는 그말, 저도 그렇습니다. 보면은 다른 사람을 손해케하는 그런 말 그런 행동 그런 일 할때는 저는 속에서 불이 나서 못 견딥니다. 그만큼 성화됐다는 말이 아니고 그게 사상이 하나고 인식이 하나고 신앙의 가치관이 하나기 때문에 그런겁니다. 다 참는데 사람이 다 죄인이니까 무슨 죄를 지어도 다 이해하겠는데 나도 죄인이니까 이해하겠는데 다른 사람의 신앙을 손해보게 하고 힘을 떨어뜨리는 그 면에 있어서는 저는 못 참습니다. 속에서 불이 올라와버립니다. 그냥 그만 미워서 죽을 지경으로 혼자 있을때 그냥 막 욕도 하고 그럽니다 저는. 다른 사람 신앙의 손해끼치는 그면두고는 견디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는 일이다 그말입니다. 이걸 우리가 기억을 하고 이 말씀이 과연 옳으냐 틀리냐 판단해서 우리는 가장 힘쓸 것은 인간 구원이고 가장 조심할 것은 다른 사람의 신앙을 손해케하는 힘을 떨어뜨리는 그면을 가장 조심을 해야 되겠다.
참고로 말씀드리건데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때는 혼자 살 수 없게 만들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누구든지 그렇습니다. 누구나 다 다른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속에서 주고받고 그게 사회라는 겁니다 사회. 개인 생활이 있고 사회라는건데 사회라는 말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하는 걸 사회라 그럽니다. 그래서 가정도 사회고 직장도 사회고 직장도 사회고 사회도 사회고 사횐데 그 사회라는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데 그러다 보니까 그 속에서 내가 사니까 내가 알든지 모르든지 외부로 드러나든지 안 드러나든지 나의 모든 생활은 내 주변을 사는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어있는데 그 영향이 크게 말하면 두종류라서 하나는 신앙의 유익을 주던지 아니면 신앙의 해를 끼치든지 둘중에 하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것은 없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줄 알고 우리들은 조심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장성한 신앙이 어린 신앙과 같이 지내면 장성한 그 신앙은 녹아납니다. 함께 지낼때 밥을 함께 먹는다,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밥 먹는 모습 보면은 사람이 덕스럽지 못한 분 많지요. 잠을 함께 잔다,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개 보면은 교역자가 교역자들끼리 모이면 모든 허물이 다 나옵니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합니다. 그래서 집사 집사끼리 만나지 마라. 우리 교회도 그런게 있습니다. 조심하셔야 됩니다. 비슷한 신앙끼리 모여서 피곤하니까 커피도 한잔할 수 있고 이런 저런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자칫 잘못하다보면 교회에 큰 손해 끼치기 쉽습니다. 시간나면 그냥 피곤하면 차 한잔 마시고 혼자 성경 읽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이게 좋지 여러 사람 앉아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서로 신앙에 손해 끼치는 일이 허다하게 많습니다. 참 어렵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내가 사는 생활은 가깝게는 가족들부터,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모든 생활이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의 해를 끼치지 않는가 이걸 늘 생각하며 사는 우리가 되야 됩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 속에 사는 것이고 그러다보니까 내 모든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기 되어 있고 그 끼치는 영향은 신앙의 유익을 주거나 아니면 신앙에 해를 끼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겠고 그러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어느면이든지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들이다 이걸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서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주인의 집은 교회고 넓게 말하면 세상입니다. 그 집에서 종은 누구냐? 종은 하나님의 구속받은 우리 성도들이 종입니다. 우리가 종인데 우리들 중에서 두종류가 있고 한 사람도 두종류의 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도 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으로 살다가 악한 종이 될 때도 있고 악한 종으로 살다가 다시 충성된 종이 될 때도 있고. 한결같이 계속되면 좋은데 어렵습니다. 우리 노력을 어쨌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서 주변 사람들 내 주변에 사는 주변 사람들이 전부 주인의 집 사람들입니다. 히브리 12장 3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1절입니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그 증인들이 누구라고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이 누구지요?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바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그들 보고 그들이 바로 내 증인들이고 내가 그들에게 증인이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에 무엇입니까?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바로 내 주변을 말하는 겁니다. 그 주변이 점점 자기 활동 범위에 따라서, 역량에 따라 점점 커지고 넓어지고 많아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모든 언행심사는 단 하나도 그냥 없어지는 것이 없고 어떤 형태로든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영향이 내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면, 충성은 자기 심신을 다 바쳐서 심신의 힘을 다 들여서 주인을 받들고 주인의 뜻을 받드는 그게 충성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하나님이 지혜고 하나님의 뜻이 지혭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자기 마음과 몸의 힘을 전부다 드려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그걸 가지고 충성되고 지혜있는 요 중심 자세를 가지고 주인의 집 사람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에 유익을 주고 신앙의 힘을 줄 자가 누구냐 그말입니다.
안믿는 사람은 모릅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압니다 들어서. 사람은 혼자 사는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 속에 살고 있고 모든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관계도 가지고 온갖 형태로 관계를 맺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 사는 속에 나의 모든 사리판단, 취사선택, 언행심사, 희로애락, 내 모든 생활은 전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는데 그럴때 내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양식을 줘서 복된 사람이 되게 될 것이고 내가 동무들을 때리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악한 종이 되면 주변 사람들을 때리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을 하고 늘 깨어사는 우리가 되야 되겠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외부적으로 말하면 외부로 드러나는 내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막바로 영향을 미치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드러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말도 행동도 모든 생활도 다 조심을 해서 분명히 드러나게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없는데 내가 신앙생활이 바로 되지 못하고 주님과 멀어지고 죄를 짓고 드러나게 죄 짓지 않아도 어두워지게 되면 거기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상하게도 힘을 주지 못하는 그런 것이 되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 그게 주님과 자신의 관계. 자기 신앙생활을 바로 아는 것이 가장 어렵고 이것만 바로 되면 그래서 주님 모시고 살게 되면 거기서 하나님 원하시는 모든 것이 다 나오게 되어진다 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 나눠주는 이런 우리가 되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느정도 장성한 신앙이면 예배시간에 지각을 하면 안됩니다. 알게 모르게 다 영향 미칩니다. 예배시간에 안 졸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또 예배시간 자세라든지 이런것도 살펴봐야 됩니다. 평소 생활에도 외부로 드러나는것 이런 것을 열심히 해야 됩니다. 하다못해 껍데기로라도 해야 됩니다. 연극으로라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보는데 새벽기도를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한번씩 새벽기도를 빠지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목사는 사람이 아닙니까? 저도 한번씩 새벽기도 빠지고 싶고 잠들고 싶을때가 더러더러 있습니다. 더구나 늘 깨어살지 못할때는 더합니다. 그럴때는 나와봐야 설교 힘도 없고 자신도 없고 오히려 수치만 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올수가 없는 겁니다. 연극이라도 해야 된다. 그래도 나가야 된다. 그래야 교인들의 힘을 안 떨어뜨리고 조금이라도 유익을 주게 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그래 하는데 그럴때 연극도 있고 연기처럼 그런것도 없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떨어뜨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유익을 주기 위해서 그래 노력을 하는 겁니다. 누구나 다 마찬가진겁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부부는 서로에게, 형제는 서로에게 또 믿음에 앞선 사람들은 뒤선 사람들에게 다 이런면을 생각하면서 이것이 전부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인간구원 위해서 힘쓰는 것이니까 이면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말씀하기를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띄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나이가 많아지고 신앙 연조가 높아지고 활동 범위가 넓어지니까 베드로를 아는 사람이 존경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집니다.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나중에는 남이 너에게 띠를 띄운다. 자기는 피곤해 죽을 지경인데 기도하는 모습이라도 해야 됩니다. 눈이 침침해서 피곤해 죽겠는데 성경 보는 흉내라도 내야 됩니다. 기도하면 피곤해서 엎드리고 싶은데도 엎드리지도 못합니다. 그래하다 결국 ‘남이 네게 띠 띄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그래서 마지막 결국, 그래서 부모가 참부모가 되면 부모 자기 인생은 없는 겁니다. 요즘 사람들은 보면은 젊어서 얼른 아이 키워놓고 혹은 아이 낳지 않고 하나둘 낳아놓고 저것들 던져놓고 나는 내 인생 살란다. 인생관이 온 세상 전부가 다 인생관이 틀렸습니다. 가치관이 틀렸고. 부모라는 것은 자녀가 있는 그 순간 그 자녀 위해서 자기 다 받치는 그게 정상적인 부모의 생활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던져놓고 ‘나는 내 인생 살란다 너는 너대로 살아라’ 부모의 위치는 아닙니다. 부모가 부모가 되면 자식을 위해서 곤충도 물고기도 가시고기? 물고기도 그런 거 수도없이 많습니다. 제 새끼 번식위해서 저는 다 희생으로 받치는 겁니다. 사람이 그거만 못해 되겠습니까? 부모가 부모되면은 자식위해서 자기 인생 포기하다시피 그래하고 그리 사는것처럼 믿는 사람이 믿어서 신앙이 장성하면 자기 생활은 없는 겁니다. 자기는 완전히 죽어지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어린 신앙들 다른 사람 구원을 위해서 그리 사는게 믿는 사람 생활, 그 속에는 하나님이 중심이지요. 그게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일이니까 주님이 그래 사셨습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입니다.
본문에 말씀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의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 양식 나눠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때 그 종의 이렇게 하는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을 것이다.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겠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은 이 사람의 것이다 그말이지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각자 자기 범위에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에 유익을, 믿음에 양식을, 믿음에 힘을 주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하나님의 목적이고 뜻입니다. 인간 구원입니다. 여기에 당신의 전부를 다 받쳤고 이걸 위해서 영계도 우주도 다 지었고 주권 섭리하고 계시고 이걸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 되셨고 피흘려 죽으셨고 피조물로 영원히 부활하신 대속역사를 이루신 겁니다. 인간구원 여기에 전부 다 받쳤는데 이것이 우리의 평생의 소원이 되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