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주일오전(마24:45-51)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2013-10-20조회 552추천 61
본문: 마24:45-51
제목: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요점:
1. 하나님의 소원
1)마28:18-20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2)행1:8 내 (증인)이 되리라
3)요15:12 내 계명은 …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
4)요21:15-17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5)요일3:16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
6)단12:3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7)하나님의 소원은? (인간 구원)
2. 하나님의 진노
1)출17:14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2)민31:8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3)요일2:9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
4)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
5)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인간 구원을 (방해)하는 것
3. 사람을 만드실 때
1)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
2)사람은 (다른 사람) 속에 살고 있고
3)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4)(유익)을 주거나 (해)를 끼치게 되니
5)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4. 본문에서
1)본문에 나오는 두 종류의 종은?
①(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②(악한) 종
2)주인이 올 때 복 있는 종은?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종
3)이 종에게 주인이 맡긴 것은? (주인의 모든 소유)
4)주인이 더디 오리라 한 종은? (악한 종)
5)이 종이 한 일은?
①동무들을 때리며
②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
6)이 종이 받은 벌은?
①(엄히 때리고)
②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③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5. 본문에서 가르치는 도리
1)본문에 나오는 주인은? (하나님)
2)두 종류의 종은? (믿는 사람들)
3)주인의 집 사람들, 동무들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
4)때를 따라 양식 나눠 주는 것은? (신앙의 유익)을 주는 것
5)동무를 때리는 것은? 신앙을 (손해)되게 하는 것
6)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은? (세상)에 빠져 사는 것
7)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의 (신앙)에 (유익)을 주는 것
8)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일은? 사람의 (신앙)을 (손해)케 하는 것
결론.
1)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살고 있습니다.
2)우리의 모든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3)유익을 주거나 해를 끼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4)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5)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의 신앙에 유익을 주는 일입니다.
6)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일은 사람의 신앙을 손해케 하는 일입니다.
7)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됩시다!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주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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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에는 창세기 16장 말씀으로 사람의 가치를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어디 있는가, 다시 말하면 사람은 어떤 사람이 쓸모 있는 사람인가 참 사람다운 사람인가 그 말이고, 그 말씀은 이 세상을 기준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을 기준해서 영원까지를 다 연결시켜서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재물의 많음에 있지 아니하고, 또 사람의 가치는 인물 잘남에 있지 아니하고, 물론 재물은 좋은 겁니다. 돈은 사람의 땀과 피를 팔아서 바꾸는게 돈이라 그러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돈은 굉장히 귀한 것이고 소중한 것입니다. 백목사님 말씀중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돈을 무시하면, 돈에게 복수를 당한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들어 보셨습니까? 사람이 돈을 얕보고 돈을 무시하면 돈에게 복수를 당한다. 참 듣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래서 물질이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물질이 귀해도 그 물질이 사람보다 더 귀할 수 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사람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났냐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다 통계고 좋은 말들이고 옳은 말들입니다. 물질이 귀하지만 물질보다 더 귀한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가치는 물질에 풍성함에 있지 아니하다 그리 말씀했습니다. 또 사람의 외모가 아주 중요하고 좋은 겁니다.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 생기면 보기 흉한 것 보다 잘난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외모가 사람의 가치의 전부는 아니겠고, 또 사람이 그 외모보다는 지능의 가치를 두는데, 지능은 머릿속에 든 것이 많다 그말입니다. 어젠가, 제가 어떤 사람을 하나 만났는데, 그 사람은 머리가 좋고 공부를 그래도 좀 어느 정도 해서 머릿속에 든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늘 염려가 돼서, 그 아내되는 사람에게, 이 사람은 머릿속에 든 것이 많아서 늘 구름잡는 소리를 많이 하니까 안에서 좀 잘 챙겨줬으면 좋겠습니다 하니까 그 부인이 말하기를, 예 맞니다. 이 사람속에 든 90%는 전부 쓰레기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말을 하길래 제가 공감을 했습니다. 과연 그 참 결혼 참 잘 했구나. 장가를 잘 갔구나 싶은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머릿속에 든 것이 많으면 아는것이 많단 말이고, 아는 것이 많으면,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는것은 힘이라 그러지요. 아는 것이 많으면 사람이 자신감이 생기고 뭐든지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사람의 가칩니다. 또 그 사람의 몸에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서 온갖것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뭐든지 시키면 못하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 능력있는 사람, 그게 대충대충이 아니고 하면은 야무지고 다부지게 확실하게 잘하는 그런 사람을 실력있는 사람이라 그리 말하고, 그 사람은 대단히 쓸모가 많은 사람이고, 쓸모가 많으면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한달에 월급을 17억 받는 사람, 한달에 17억을 받으면 그 사람이 그냥 받겠습니까? 그만한 의술을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겠습니까? 공산주의는 잘났든 못났든 유식하든 무식하든 같이 갈라먹자 그러니까 공산주의의 결과는 망합니다. 뒤에 다 드러난 이야기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 직장이나 어떤 사회 들어가보면 우습도 안하더랍니다. 그냥 손님들 식당에 밥먹으로 들어가면, 저 동독에 옛날, 동독이 통일되기 전에 서독은 자본주의고 동독은 공산주의였잖습니까? 그런데 그 동독에 어떤 사람들이 식당에 밥먹으러가면, 음식을 준비하면 보통 얼마나 기다릴 것 같습니까? 자기 먹을 만한 거 있으면 주문하면 없다 한답니다. 있는데도 없다그런답니다. 없다하는 이유는 요리하기 귀찮으니까. 주문하면 보통 2시간은 보통이랍니다. 식사주문하고 2시간은 기다려야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안그러면 못먹는답니다. 손님한테 친절해봐야 월급 더 나오는 거 아니고, 음식 맛잇게 해 봐야 돈 더주는 거 아니고, 또 수입 많아봐야 자기 주머니에 오는 거 아니고, 전부 공산주의니까, 위로 다 가고 배급제니까, 뼈빠지게 해 봐야 자기한테 돌아오는 게 없다 그말이죠. 그러니까 그 사회가 망해서 공산주의가 지금 다 없어지고 말았죠. 그러니까 사람이 실력마련 안하는 거죠. 쓸모가 많은 사람은 아는 것이 많고 실력이 있으면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그러면 가치있는 사람이 됩니다. 17억을 받을 정도 되면, 얼마나 많이 머리에, 참 머리가 터지도록 공부를 많이 했겠습니까? 얼마나 코피를 많이 쏟았겠습니까? 그래서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 또 법대 졸업한 분들, 뭔가 남보다 뛰어난 그런 분들은, 그런 사람들은 남보다 돈을 많이 받는게 정당합니다. 그게 공의고 공평입니다. 남 공부할 때 농땡이 치고, 놀러 돌아다니고 남 일할 때 자고, 남 머리쓰고 연구할 때 오락이나 하고 게임이나 하고 연애나 걸고 돌아다니고, 또 술이나 퍼마시고, 그런 사람들은 굶는게 당연하지요. 안했으니까. 노력을 안했으니까. 남 일할 때 놀았으니까.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가 그냥 나온게 아니지요. 그게 공평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아라, 그게 성경입니다. 사람이 게으르면 어디까지 게을러지느냐? 사람이 게을러지면, 성경에 그리 나옵니다. 숟가락을 가지고 밥을 뜨고, 입에 넣어야 되는데, 사람이 게을러 지면 밥을 떠서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 하느니라. 사람이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면, 그렇게까지 됩니다. 그래서 말씀하기를, 게으른 자여, 무엇한테, 누구한테 배우라고요? 잠언에. 개미한테 가서 배우라. 게으른 사람은 뭐 보다 못하다 말입니까? 개미보다 못하다 말입니다. 사람이 게으르면 곤충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할 수 있는걸 하면 되는 겁니다. 가치 있는 사람은 온갖것이 다 쓸모가 있는 겁니다. 그게 사람의 가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가치는 가장 낮은 가치는 외모, 그보다 더 나은 가치는 그 사람의 지능의 실력, 그보다 더 나은 가치는 그 사람의 인격, 사람 됨됨이, 아무리 실력 있으서 그 실력 가지고 도둑질이나 하고 남 못할 일 시키면 그거 없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의 다음 실력은 그 사람의 인격, 성품 사람 됨됨이. 그보다 더 가장 가치있는 사람의 실력은 하나님을 아는 신앙입니다. 이걸 지난 주일에 공부를 했는데,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기독교라는 곳은, 이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마음에 좋게 기분 좋게 그래 만들어 주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살다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기독교고, 이게 신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란 것은 늘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게 신앙이다. 그래서 모든 설교는 방향이 그리 나가야 됩니다.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기쁘게 좋게 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말씀하신 것. 우리는 늘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찾는 우리가 되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도 역시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우리 학생들은 요약지 보십시다. 첫째, 1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요약지 1번에 뭐라고 되 있지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사람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소원이란 것은 우리 박재병씨 소원이 뭔가요? 이제 이번 지난주간에 제대한 청년입니다. 우리교회 모두 군에 갔다가 청년들이 한사람 두사람 돌아와서 든든합니다. 소원이 무엇일까? 소원이란 것은 자기 가장 바라고 바라고 원하는 그게 소원입니다. 가장 하고 싶은 것, 같고 싶은 것, 뭔가 이루고 싶은 것 사람이 자기가 가장 바라고 원하는 그게 소원입니다. 마음 속에, 가장 바라는 것, 가장 기다리는 것, 가장 원하는 것, 그게 소원이지요. 하나님이 가장 소원을 이루면 평생 소원,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일생의 소원 그 소원이 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전지전능잔데, 하나님이 영계와 우주를 다 지으신 주인인데, 당신이 없는 것이 없는 분인데 무엇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소원이 있을가? 의문을 가져보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일까? 무엇을 그토록 하나님은 가지고 싶을까? 이루고 싶을까? 하나님이 바라는 게 무엇일까? 하나님은 완전잔데, 전지전능잔데, 부족한게 없는 분인데 그분이 무슨 소원이 있을까? 성경 한번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은 28장에 보면, 한번 찾아볼까요? 마태복음 28장 끝에 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무엇을 삼아요? 제자를 삼아, 내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중의 하납니다. 무엇인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게 하라. 그래서 뭐하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의 모든 세계를 알게 되니, 사람을 구원하라 그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찾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무엇이 되라고요? 주님의 증인이 되라 증인이라 말은 본것을 알려주는 걸 증인이라 그럽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봤으니까 주님 본 그 사실, 구주 메시야를 봤으니까 메시야를 본 사실 그분이 걸어가신 그 모든 예수님의 생애 십자가의 대속의 모든 사실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가지 이르러 그 사실을 알려라. 이게 주님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열 두 제자는 주님의 제잡니다. 제자는 주님을 선생님을 따라가서 배워서 선생님처럼 되는게 제잡니다. 열두 제자가 선생님 예수님 제자된 것처럼, 너희들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서 너희들처럼 예수님처럼 되게 하라. 구원입니다. 이게 무슨소리? 구원입니다. 또 증인이 되라. 주님을 알리는 겁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함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 계명은,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내리는 명령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이게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에게 주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 네 어린 양을 먹이고 네 양을 먹이라. 이게 주님의 소원입니다. 나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나한테 할 것이 아니고, 내가 피흘려 구속한 내 양떼들에게 너의 사랑을 쏟아부어라 그게바로 주님 사랑이다. 그래 말씀하십니다. 요한1서 3장 16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그걸 보고 우리도 주의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래 말씀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그래 말씀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 이외에도 많이 있는데 종합하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구원입니다. 같이 해보실까요?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구원. 사람을 죄에서 건져 죄를 멀리하고 죄 안짓는 사람 만들고, 사람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끌어붙여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런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영원한 소원입니다.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자존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거 인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이고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을 구원한다 그말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말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도덕적으로 도덕이라 말은 인간관곕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모든 사람이 볼 때 그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다. 사람다운 사람이다. 도덕적으로 또 신앙양심적으로 또 하나님 말씀 진리적으로 하나님 닮은 그 사람 이런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인간구원이고, 이것을 위해서 마음 쓰고 이것을 위해서 애를 쓰고 이걸 위해서 애를 태우고,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이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아가서에 보면 그런 말씀 있죠. 네 몸의 모든 것과 구슬 한 꿰미로, 시적인 비유 표현인데, 목의 구슬꿰미라 그 말은 그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사람을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끌어붙이는 그 동기 목적에서 나오는 그 한마디 한마디 말,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께로 끌어붙이겠다는, 사람을 살려 참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 보겠다는 고 동기와 목적 그 중심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님 마음은 다 빼앗겨 버린다.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이게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반하는 성도의 모습은 인간 구원위해서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사람.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노력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신앙을 돕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 마음은 다 빼앗기고 그 사람 볼때마다 하나님은 이뻐서, 좋아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영육의 복을 소복소복 다 담아주시고 부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리고 크게 두 번째, 두 번째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노니까, 소원과는 반댑니다.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거, 가장 섭섭해하시고, 걱정하시고 진노하시는게 무엇이냐? 성경 찾아보시겠습니다. 출애굽기 17장, 출애굽기 17장 14절에 보니까, 13절부터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수와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대,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와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고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누구를 도말한다구요? 아말렉이 무엇입니까? 아말렉이 한 민족의 이름입니다. 아말렉이라는 족속이 있습니다. 나라 족속들. 그 민족이, 모세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인도 따라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는데 광야를 지나가니까 심히 피곤합니다. 그 피곤한 틈을 타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쳐서 이스라엘을 약탈하려고 쳤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말렉에게 진노했습니다. 다른곳에서 보면 ‘내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울 것이다’ 그래놓고 이스라엘이 나라 기틀을 마련하고 사울이 왕이 되고 난 다음, 나라의 기틀이 마련되고 사울이 왕이 되고 나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사무엘을 보내서 ‘내가 아말렉을 기억한다. 너는 지금 군사를 모아서 아말렉을 쳐서 남자 여자 노인 유아 젖먹이 짐승까지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죽여서 없애 버려라. 진멸시켜라. 모조리 진멸시켜서 다 죽여버려라.’ 아말렉입니다. 아이고 여자고 남자고 노인이고 짐승한마리까지 싹 죽여서 없애버려라. 그래서 사울이 군사 이끌고 아말렉에 갔는데 아말렉을 다 물리 쳤는데 물리치고 나서 보니까 좋은 짐승들 소가 너무 좋은게 많습니다. 소가 너무 좋아서 몇 마리를 남겨놓고, 그 아각 왕을 보니까 왕이 자기하고 딱 맞는 비슷한 사람이니까 왕을 죽이기 아까우니까 왕을 남겨놓고, 그래가지고 하나님 앞에 승리했다고 제사지내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다시 보내가지고 ‘내가 사울을 세워서 왕을 삼은것을 후회를 한다. 내가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보냈는데 짐승살려놓고 왕을 살려뒀으니까 후회한다.’ 그래가지고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 거역하고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다가 사울이 마지막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진논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말렉을 왜 그토록 진노하셨습니까? 인간구원에 방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인간구원에 방해를 하는 겁니다. 사람의 구원하는데 해 끼치는 것. 사람이 살다보면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짓습니다.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음행죄도 짓고 사기도 치고 본의아니게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짓습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죄를 짓는 중에서 가장 진노하시는 죄는 사람을 구원하는데 손해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고 진노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인간구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민수기 31장에 보면 22장부터 나오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이끌고 계속 진행해 나가는데, 모압 족속의 왕 발락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이 야금야금 쳐들어오니까 자기 힘으로 감당이 안되니까 발람이라는 사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그럴 때 발람이 발락이 보낸 재물이 탐이나서 부귀영화가 탐이 나가지고 저주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가서 합류했다가 몰래 이스라엘을 죄짓게 만드는 그런 술수를 몰래 가르쳐 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많이 죽고 하나님이 진노한 일이 있었는데 그 뒤에 발람을 모세가 쳐들어가서 그 발람을 칼로 죽였고 대대로 ‘싻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 영원토록 수치스런 그런 발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1서 2장에 보면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면서 빛이라 말은 예수믿는 사람이라 그말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이라 그러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는자다 그랬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인데, 복음을 받은 사람인데, 구속받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고, 다른 사람을 손해케 하는 그런 사람은 그 사람은 믿는 사람이지만 안믿는 하나님 없는 그런 사람과 같다 그래 말씀 하셨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다, 살인하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없다 그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방해하는 그 일을 가장 진노하신다. 요 크게 두가지 기억하십시다.
하나더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은 어떻게 만드셨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는 그 사람이 자기 혼자 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습니다. 보통 이목구비 수족 오장육부라 그럽니다. 그 외에도 많은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다 모여서 한 사람이 됩니다. 눈이 아무리 귀해도 소중해도 눈만 빼 놓으면 그 눈은 사람이 아닙니다. 눈은 눈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그 눈이 그 사람의 몸에 붙어 있을 때, 그러면서 눈으로 보는 역할을 바로 할 때 눈의 가치가 있는 겁니다. 다리가 다리 따로 떼 놓으면 그 다리 쓸모 없습니다. 그 사람 몸에 붙어서 그 다리가 걸어가는 역할을 할 때 다리는 필요 한 겁니다. 지체가 그래 되듯이, 사람이란 것은 혼자 살 수 없는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안믿는 사람들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더불어 사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 말합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세상말 하는게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살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러면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사람은 자기가 알든 모르든 원하든 원치않든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 날때부터 그래 있습니다. 아담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아담 혼자 있을 때,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뭐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요? 사람의 독처, 독처가 무슨 뜻입니까?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까 내가 그를 위해서 돋는 배필을 만들 것이다. 그래서 하와를 만드셨고, 그담에 둘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나게 하시고, 사람이란 것은 혼자 사는게 아니고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살도록 하셨고,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가정에 가면 부부가 있습니다. 부부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형제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관계의 여러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또 우리집과 옆집이 있습니다. 이웃이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사회가 있습니다. 그 사회가 넓어지면, 모든 사회를 다 모아서 인류라 그러는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람이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사람끼리 그렇게 사는 겁니다. 이게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이란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이런걸 가르켜서 인간관계라, 사람과의 관계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게 되기 때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든지 혼자 살아도 그러하고, 또 혼자 살수도 없고, 여러 사람들 속에 섞이면서 모든 사람과 가깝게 멀게 친하게 좀 성글게 관계를 맺어가면서 모든 사람은 살고 있는데, 그리 사는 그 사람들의 모든 생활은 그리 살면서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보는게 말하는거 움직이는 모든 생활은 자기가 알게 모르게 원하든 원치않든 자기의 모든 행동과 생활은 다른 사람들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혼자 살 수 없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 속에 섞여서 모든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원하든 원치않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치고 잇습니다.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어쨌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사람이란 것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사는 것이, 나 혼자 사는데, 나 혼자 생각하고 마음먹고 결심하고 후회하고 그리하는데 그 마음에 모든 생활이 외부로 나오게 되어 있고, 외부로 나타나는 그런 생활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데 이게 사람인데, 그 영향 미치는 것을 크게 말하면 둘이라서,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거나 둘중에 하납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생활은 전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것이 모든 사람이고, 피차에 다 그렇게 되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 수 없다구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삽니까? 다른 사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가깝게 친하게 멀게 성글게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래 사는 속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영향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든지 아니면 해를 끼치든지 둘 중에 하납니다. 나의 말은 내가 하는 말은 단순히 나 혼잣말이 아닙니다. 내 생활은 나 혼자만의 생활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유익을 주든 해를 끼치든 둘 중에 하나고, 내 모든 생활은 나의 생활이니까 다른 사람과 상관이 없다지만, 상관없는 생활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어떤 형태든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으로 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들이다 하는 것을 여기서 기억을 해야 합니다. 자 여기까지 하고, 본문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은 24장 45절 본문에 보니까, 여기보니까 본문에, 두 종류의 종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로 52절가지 성경 펴시고, 두 종류의 종이 나옵니다. 한 종은 어떤 종이 나옵니까?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하나 있고, 또 한종은요? 악한종이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있고 악한 종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종류의 종 중에서 한 종, 주인이 올 때 복 있는 종은 어떤 종입니까? 주인이 올 때 복있는 종은 어떤 종입니까?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인데 그 종이 뭘 했습니까? 그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주는 종입니다. 이 종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고 복있는 종입니다. 이 종에게 주인이 뭘 맡겼습니까? 47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뭘 맡긴다고요?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두 종이 있습니다. 한 종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고 한 종은 악한 종입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복있는 종인데 어떤일을 했는가? 그 종이 한 일은 그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줬고, 이 종에게 주인이 모든 소유를 다 맡긴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한 종이 있습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한 종. 자기 주관적입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한 종은 어떤 종입니까? 악한 종입니다. 이 악한 종이 뭘 했습니까? 두가지 했습니다. 하나는요? 동무들을 때리고 또 하나는요?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을 했습니다. 이 종이 받는 벌이 무엇입니까?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요게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신 본문에 나오는 주인이 누구냐 주인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주인은 하나님이고, 두종류의 종,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과 악한 종이 있는데 이 종은 누구겠습니까? 이 종은 우리 믿는 사람들, 믿는 성도들 다 종이라 그럽니다. 여기 있는 전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다 여기 나오는 종입니다. 그런데 그 종의 종류가 몇가지라고요? 우리는 다 종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집에 종된 우리들인데 우리들 중에 몇종류가 있다고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종입니까?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하나는요? 악한 종. 이 속에, 우리들 속에 이 두 종류가 있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우리들 중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악한 종이 될 수도 있는데,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어떤 종이냐? 그 종은 주인의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종이고, 악한 종은 동무를 때리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그 종은 악한 종입니다. 그러면 우리들 중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서,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그런 때도 있고 그런 사람들도 있고, 어떤 경우는 우리들이 종인데, 악한 종이 되어서 동무를 때리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그런 때도 있고 그런 우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여기 동무라는 것은 친구를 말하는 것인데, 주인의 집 사람이란 누구냐? 자 생각해 보십시다. 여기 말씀하신 그 집 사람들, 주인의 집 사람들이 누구겠습니까? 생각을 해 봐야 이해가 되겠지요. 주인의 집 사람들이 누굽니까? 자 처음부터 다시 해 보십시다. 주인은 누굽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종이 몇종류 있습니까? 두종류 있습니다. 그 종이 누굽니까? 여기있는 우리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는 다 종입니다. 종 중에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뭐 했습니까? 복있는 종인데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줬고, 악한 종은요? 동무를 때리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신 악한 종입니다. 그러면 주인의 집 사람들이 바로 동무들인데, 이 동무들, 주인의 집 사람들이 누굽니까? 이 사람들이 바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믿는 사람들입니다. 내 주위에 내가 속에 그 속에 살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다 그 말은 하루 세끼 밥을 아침때가 되었으니까 아침을 갖다 주고, 점심때가 되었으니 점심을 갖다주고, 저녁 때 됬으니 배고프겠다 저녁을 갖다주고 이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갖다준다 그 말은 양식은 먹고 힘을 얻는 겁니다. 요 양식은 육의 양식을 말함이 아니고, 신령한 믿음의 양식 신앙의 양식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서 내 주변에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이라면 남편은 아내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형제는 서로에게 자녀도 부모에게 집사님은 구역 식구들에게 구역 식구들은 서로에게 반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그 자기 주변에 자기를 아는 자기 주변에 사는 관계맺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는 겁니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점점 흠이 없는 사람을 만들어 가도록 그들이 양심적으로 신앙 양심으로 신앙 양심적인 사람이 되도록, 그들이 점점 진리적이 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말로 가르쳐 주고 위해서 기도해 주고 내 행동으로 본을 보여주는 걸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라 그리 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지나간 오일밤 예배 때 찬송할 때 우리 교회 신앙의 가장 앞에 있는 분 중 두분이 찬송하는 데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시간에 좀 심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아 선생님이 오니까 졸고 있네?’ 주일학생들이 보니까 중간반 학생들이 보니까 ‘선생님도 졸고 있네? 예배 시간에? 예배 시간이 가장 귀한 시간이라 그러던데 꾸벅꾸벅 조네? 한번두번도 아니고 예배 시간마다 졸고 있네. 예배 시간에 졸아도 되는구나’ 그것이 바로 동무를 때린겁니다. 뚜드려 팬겁니다 그게.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 중에 하납니다. 그래서 아기를 가진 아기 어머니가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거 먹고 나니까 아이가 설사를 하더라. 안먹습니다 아기 엄마는. 바로된 애기 엄마는 못먹습니다. 내가 맛있는 내 입에 땅기는 음식을 먹으니까 이거 먹고 나니까 아이 몸에 두드러기가 나더라. 그러고 나니까 안먹습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참지요. 그게 엄마라는 겁니다. 어머니라는 것이고. 피곤해서 잠이와 죽을 지경인데 내가, 어쩌다 깜빡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번두번도 아니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시간마다 졸고 있으면 나를 아는 학생들이 나보다 만약에 혹 어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어떤 마음을 가지겠나. 그래서 피곤해 죽을 지경이 되도, 바늘로 가지고 자기를 찝어도, 졸지 못하는 그게 때를 따라 양식 나눠주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나를 보거나 말거나, 학생들이 보거나 말거나 듣거나 말거나 꾸벅꾸벅 졸고 앉았으면, 하나님께서 그 졸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가? 거기서 수많은 복을 다 까먹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게 있습니다. 목회를 해 보면, 교인들 많이 상대하는데 참 귀한 분들이 많습니다. 좋은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좋은 분들의 장점만 보면 참 부럽다. 나도 저거 닮고 싶다 배우고 싶다 그런데, 그 좋고 충성된 그 장점을 또 다른 면을 보면 그 단점 가지고 앞의 좋은 점을 거의 다 까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충성하고 좋은 그 장점과 단점 두 개 놓고 보니까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고 다 까먹고,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경우는 오랜 세월을 충성하다가 뒤에 가서 다 오랜세월 까먹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충성하고 까먹고 충성하고 까먹고 이런걸 가르켜서 신앙이 치우친 신앙이라 그래 말합니다. 신앙은 치우치면 고장이 난겁니다. 체계적이라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음을 가졌느냐? 믿음에 덕도 가져라. 덕을 가졌느냐? 지식적이라야 한다. 지식을 가졌느냐? 절제를 가져라. 인내도 더해라. 경건을 가져라. 형제우애를 가져라 사랑을 공급해라. 다 체계적이 되야 그게 바른 신앙이다. 성경은 그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집, 몸된 교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종된 우리들은 사람이란 것은, 혼자 살 수 없는 겁니다. 내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는 살고 있고, 그 사람들과 나는 어떤 형태로든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연관성 가졌는데 멀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는데 친할수도 있고 성글수도 있는데 그 모든 관계 속에서 내가 사는 모든 생활은 눈에 보이든 안보이든 상관없이, 나의 모든 언행심사는 내주변 수많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크게 말하면 둘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거나 힘을 주거나 아니면 나의 모든 생활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신앙을 폭폭 떨어트리거나 둘중에 하나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주고 유익을 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소복소복 쌓아 주시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떨어뜨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는 진노하신다는게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다른말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그게바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모든 걸 다 예정했고 하늘도 땅도 바다도 우주도 영계도 전부 이 목적 위해서 소원위해서 다 지었습니다. 그거 위해서 운영합니다. 그게 무엇이냐? 인간 구원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하고 가깝게 만들고 하나님 닮는 참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가는 이것이 목적이고 여기에 도움을 주고 유익을 주고 힘을 쓰는 그 성도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셔서 그 종의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복이 있으리로다. 주인이 그 소유 전부를 다 그에게 맡기겟다.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고 있으냐 힘을 떨어뜨리느냐. 동무를 때린다 말은 그 사람의 신앙에 해를 끼치는 걸 말합니다. 매로 때리는 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술 친구라 말은, 그냥 술도 술이지만 세상으로 더불어 어울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간곳 없고 인간이 전부고, 천국은 뒤로하고 세상이 전부로 사는 그것이 바로 술친구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겁니다. 신앙이 좀 떨어져도 괜찮다 돈을 벌어야지. 예배시간 더러 빠져도 괜찮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게 전부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가장 노여워하시는 일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고 우리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주고 유익을 끼쳐줄지언정, 다른 사람의 힘을 떨어뜨리는 이런 악한 종이 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고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제목: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요점:
1. 하나님의 소원
1)마28:18-20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2)행1:8 내 (증인)이 되리라
3)요15:12 내 계명은 …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는 것
4)요21:15-17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5)요일3:16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
6)단12:3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7)하나님의 소원은? (인간 구원)
2. 하나님의 진노
1)출17:14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2)민31:8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3)요일2:9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
4)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
5)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인간 구원을 (방해)하는 것
3. 사람을 만드실 때
1)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
2)사람은 (다른 사람) 속에 살고 있고
3)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며
4)(유익)을 주거나 (해)를 끼치게 되니
5)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
4. 본문에서
1)본문에 나오는 두 종류의 종은?
①(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②(악한) 종
2)주인이 올 때 복 있는 종은?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주는 종
3)이 종에게 주인이 맡긴 것은? (주인의 모든 소유)
4)주인이 더디 오리라 한 종은? (악한 종)
5)이 종이 한 일은?
①동무들을 때리며
②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
6)이 종이 받은 벌은?
①(엄히 때리고)
②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③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5. 본문에서 가르치는 도리
1)본문에 나오는 주인은? (하나님)
2)두 종류의 종은? (믿는 사람들)
3)주인의 집 사람들, 동무들은?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
4)때를 따라 양식 나눠 주는 것은? (신앙의 유익)을 주는 것
5)동무를 때리는 것은? 신앙을 (손해)되게 하는 것
6)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것은? (세상)에 빠져 사는 것
7)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의 (신앙)에 (유익)을 주는 것
8)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일은? 사람의 (신앙)을 (손해)케 하는 것
결론.
1)우리는 많은 사람들 속에 살고 있습니다.
2)우리의 모든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3)유익을 주거나 해를 끼치거나 둘 중에 하나입니다.
4)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5)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사람의 신앙에 유익을 주는 일입니다.
6)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일은 사람의 신앙을 손해케 하는 일입니다.
7)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됩시다!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주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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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에는 창세기 16장 말씀으로 사람의 가치를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의 가치가 어디 있는가, 다시 말하면 사람은 어떤 사람이 쓸모 있는 사람인가 참 사람다운 사람인가 그 말이고, 그 말씀은 이 세상을 기준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을 기준해서 영원까지를 다 연결시켜서 하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가치는 재물의 많음에 있지 아니하고, 또 사람의 가치는 인물 잘남에 있지 아니하고, 물론 재물은 좋은 겁니다. 돈은 사람의 땀과 피를 팔아서 바꾸는게 돈이라 그러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돈은 굉장히 귀한 것이고 소중한 것입니다. 백목사님 말씀중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돈을 무시하면, 돈에게 복수를 당한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들어 보셨습니까? 사람이 돈을 얕보고 돈을 무시하면 돈에게 복수를 당한다. 참 듣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래서 물질이 대단히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물질이 귀해도 그 물질이 사람보다 더 귀할 수 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사람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났냐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다 통계고 좋은 말들이고 옳은 말들입니다. 물질이 귀하지만 물질보다 더 귀한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가치는 물질에 풍성함에 있지 아니하다 그리 말씀했습니다. 또 사람의 외모가 아주 중요하고 좋은 겁니다.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잘 생기면 보기 흉한 것 보다 잘난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외모가 사람의 가치의 전부는 아니겠고, 또 사람이 그 외모보다는 지능의 가치를 두는데, 지능은 머릿속에 든 것이 많다 그말입니다. 어젠가, 제가 어떤 사람을 하나 만났는데, 그 사람은 머리가 좋고 공부를 그래도 좀 어느 정도 해서 머릿속에 든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늘 염려가 돼서, 그 아내되는 사람에게, 이 사람은 머릿속에 든 것이 많아서 늘 구름잡는 소리를 많이 하니까 안에서 좀 잘 챙겨줬으면 좋겠습니다 하니까 그 부인이 말하기를, 예 맞니다. 이 사람속에 든 90%는 전부 쓰레기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말을 하길래 제가 공감을 했습니다. 과연 그 참 결혼 참 잘 했구나. 장가를 잘 갔구나 싶은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머릿속에 든 것이 많으면 아는것이 많단 말이고, 아는 것이 많으면,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는것은 힘이라 그러지요. 아는 것이 많으면 사람이 자신감이 생기고 뭐든지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은 사람의 가칩니다. 또 그 사람의 몸에 여러 가지 기능이 있어서 온갖것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뭐든지 시키면 못하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 능력있는 사람, 그게 대충대충이 아니고 하면은 야무지고 다부지게 확실하게 잘하는 그런 사람을 실력있는 사람이라 그리 말하고, 그 사람은 대단히 쓸모가 많은 사람이고, 쓸모가 많으면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한달에 월급을 17억 받는 사람, 한달에 17억을 받으면 그 사람이 그냥 받겠습니까? 그만한 의술을 가지기 위해서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겠습니까? 공산주의는 잘났든 못났든 유식하든 무식하든 같이 갈라먹자 그러니까 공산주의의 결과는 망합니다. 뒤에 다 드러난 이야기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 직장이나 어떤 사회 들어가보면 우습도 안하더랍니다. 그냥 손님들 식당에 밥먹으로 들어가면, 저 동독에 옛날, 동독이 통일되기 전에 서독은 자본주의고 동독은 공산주의였잖습니까? 그런데 그 동독에 어떤 사람들이 식당에 밥먹으러가면, 음식을 준비하면 보통 얼마나 기다릴 것 같습니까? 자기 먹을 만한 거 있으면 주문하면 없다 한답니다. 있는데도 없다그런답니다. 없다하는 이유는 요리하기 귀찮으니까. 주문하면 보통 2시간은 보통이랍니다. 식사주문하고 2시간은 기다려야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안그러면 못먹는답니다. 손님한테 친절해봐야 월급 더 나오는 거 아니고, 음식 맛잇게 해 봐야 돈 더주는 거 아니고, 또 수입 많아봐야 자기 주머니에 오는 거 아니고, 전부 공산주의니까, 위로 다 가고 배급제니까, 뼈빠지게 해 봐야 자기한테 돌아오는 게 없다 그말이죠. 그러니까 그 사회가 망해서 공산주의가 지금 다 없어지고 말았죠. 그러니까 사람이 실력마련 안하는 거죠. 쓸모가 많은 사람은 아는 것이 많고 실력이 있으면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그러면 가치있는 사람이 됩니다. 17억을 받을 정도 되면, 얼마나 많이 머리에, 참 머리가 터지도록 공부를 많이 했겠습니까? 얼마나 코피를 많이 쏟았겠습니까? 그래서 의대를 졸업한 사람들, 또 법대 졸업한 분들, 뭔가 남보다 뛰어난 그런 분들은, 그런 사람들은 남보다 돈을 많이 받는게 정당합니다. 그게 공의고 공평입니다. 남 공부할 때 농땡이 치고, 놀러 돌아다니고 남 일할 때 자고, 남 머리쓰고 연구할 때 오락이나 하고 게임이나 하고 연애나 걸고 돌아다니고, 또 술이나 퍼마시고, 그런 사람들은 굶는게 당연하지요. 안했으니까. 노력을 안했으니까. 남 일할 때 놀았으니까.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가 그냥 나온게 아니지요. 그게 공평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놨습니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아라, 그게 성경입니다. 사람이 게으르면 어디까지 게을러지느냐? 사람이 게을러지면, 성경에 그리 나옵니다. 숟가락을 가지고 밥을 뜨고, 입에 넣어야 되는데, 사람이 게을러 지면 밥을 떠서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 하느니라. 사람이 게을러지고 나태해지면, 그렇게까지 됩니다. 그래서 말씀하기를, 게으른 자여, 무엇한테, 누구한테 배우라고요? 잠언에. 개미한테 가서 배우라. 게으른 사람은 뭐 보다 못하다 말입니까? 개미보다 못하다 말입니다. 사람이 게으르면 곤충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할 수 있는걸 하면 되는 겁니다. 가치 있는 사람은 온갖것이 다 쓸모가 있는 겁니다. 그게 사람의 가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가치는 가장 낮은 가치는 외모, 그보다 더 나은 가치는 그 사람의 지능의 실력, 그보다 더 나은 가치는 그 사람의 인격, 사람 됨됨이, 아무리 실력 있으서 그 실력 가지고 도둑질이나 하고 남 못할 일 시키면 그거 없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의 다음 실력은 그 사람의 인격, 성품 사람 됨됨이. 그보다 더 가장 가치있는 사람의 실력은 하나님을 아는 신앙입니다. 이걸 지난 주일에 공부를 했는데,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기독교라는 곳은, 이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마음에 좋게 기분 좋게 그래 만들어 주는 곳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살다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기독교고, 이게 신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란 것은 늘 하나님을 찾는 것이고,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게 신앙이다. 그래서 모든 설교는 방향이 그리 나가야 됩니다. 사람을 좋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을 좋게 하랴 하나님을 좋게 하랴.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을 기쁘게 좋게 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말씀하신 것. 우리는 늘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찾는 우리가 되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도 역시 하나님을 찾는 겁니다. 우리 학생들은 요약지 보십시다. 첫째, 1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요약지 1번에 뭐라고 되 있지요?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뭐냐? 사람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소원이 무엇입니까? 소원이란 것은 우리 박재병씨 소원이 뭔가요? 이제 이번 지난주간에 제대한 청년입니다. 우리교회 모두 군에 갔다가 청년들이 한사람 두사람 돌아와서 든든합니다. 소원이 무엇일까? 소원이란 것은 자기 가장 바라고 바라고 원하는 그게 소원입니다. 가장 하고 싶은 것, 같고 싶은 것, 뭔가 이루고 싶은 것 사람이 자기가 가장 바라고 원하는 그게 소원입니다. 마음 속에, 가장 바라는 것, 가장 기다리는 것, 가장 원하는 것, 그게 소원이지요. 하나님이 가장 소원을 이루면 평생 소원, 내 평생 소원 이것 뿐, 일생의 소원 그 소원이 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소원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전지전능잔데, 하나님이 영계와 우주를 다 지으신 주인인데, 당신이 없는 것이 없는 분인데 무엇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소원이 있을가? 의문을 가져보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일까? 무엇을 그토록 하나님은 가지고 싶을까? 이루고 싶을까? 하나님이 바라는 게 무엇일까? 하나님은 완전잔데, 전지전능잔데, 부족한게 없는 분인데 그분이 무슨 소원이 있을까? 성경 한번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은 28장에 보면, 한번 찾아볼까요? 마태복음 28장 끝에 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무엇을 삼아요? 제자를 삼아, 내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중의 하납니다. 무엇인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게 하라. 그래서 뭐하는 겁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의 모든 세계를 알게 되니, 사람을 구원하라 그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사도행전 1장에 보면 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또 찾아 보시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무엇이 되라고요? 주님의 증인이 되라 증인이라 말은 본것을 알려주는 걸 증인이라 그럽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봤으니까 주님 본 그 사실, 구주 메시야를 봤으니까 메시야를 본 사실 그분이 걸어가신 그 모든 예수님의 생애 십자가의 대속의 모든 사실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가지 이르러 그 사실을 알려라. 이게 주님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열 두 제자는 주님의 제잡니다. 제자는 주님을 선생님을 따라가서 배워서 선생님처럼 되는게 제잡니다. 열두 제자가 선생님 예수님 제자된 것처럼, 너희들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서 너희들처럼 예수님처럼 되게 하라. 구원입니다. 이게 무슨소리? 구원입니다. 또 증인이 되라. 주님을 알리는 겁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함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내 계명은,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내리는 명령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이게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베드로에게 주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 네 어린 양을 먹이고 네 양을 먹이라. 이게 주님의 소원입니다. 나를 사랑하면 그 사랑을 나한테 할 것이 아니고, 내가 피흘려 구속한 내 양떼들에게 너의 사랑을 쏟아부어라 그게바로 주님 사랑이다. 그래 말씀하십니다. 요한1서 3장 16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주님이 우리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으니 그걸 보고 우리도 주의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래 말씀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3절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대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그래 말씀했습니다. 이 모든 말씀 이외에도 많이 있는데 종합하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구원입니다. 같이 해보실까요?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구원. 사람을 죄에서 건져 죄를 멀리하고 죄 안짓는 사람 만들고, 사람을 하나님께로 가까이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끌어붙여 하나님과 연결되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이런 사람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영원한 소원입니다.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자존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거 인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소원이고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사람을 구원한다 그말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그말입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도덕적으로 도덕이라 말은 인간관곕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모든 사람이 볼 때 그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이다. 사람다운 사람이다. 도덕적으로 또 신앙양심적으로 또 하나님 말씀 진리적으로 하나님 닮은 그 사람 이런 사람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인간구원이고, 이것을 위해서 마음 쓰고 이것을 위해서 애를 쓰고 이걸 위해서 애를 태우고, 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이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아가서에 보면 그런 말씀 있죠. 네 몸의 모든 것과 구슬 한 꿰미로, 시적인 비유 표현인데, 목의 구슬꿰미라 그 말은 그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사람을 하나님을 알리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끌어붙이는 그 동기 목적에서 나오는 그 한마디 한마디 말, 인간을 구원하겠다는 하나님께로 끌어붙이겠다는, 사람을 살려 참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 보겠다는 고 동기와 목적 그 중심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님 마음은 다 빼앗겨 버린다.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다 빼앗았다. 이게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반하는 성도의 모습은 인간 구원위해서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사람. 사람 구원하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노력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신앙을 돕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그 사람에게 하나님 마음은 다 빼앗기고 그 사람 볼때마다 하나님은 이뻐서, 좋아서 어쩔줄을 모릅니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모든 영육의 복을 소복소복 다 담아주시고 부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리고 크게 두 번째, 두 번째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노니까, 소원과는 반댑니다.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거, 가장 섭섭해하시고, 걱정하시고 진노하시는게 무엇이냐? 성경 찾아보시겠습니다. 출애굽기 17장, 출애굽기 17장 14절에 보니까, 13절부터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수와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대,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와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고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누구를 도말한다구요? 아말렉이 무엇입니까? 아말렉이 한 민족의 이름입니다. 아말렉이라는 족속이 있습니다. 나라 족속들. 그 민족이, 모세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인도 따라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는데 광야를 지나가니까 심히 피곤합니다. 그 피곤한 틈을 타서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쳐서 이스라엘을 약탈하려고 쳤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말렉에게 진노했습니다. 다른곳에서 보면 ‘내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울 것이다’ 그래놓고 이스라엘이 나라 기틀을 마련하고 사울이 왕이 되고 난 다음, 나라의 기틀이 마련되고 사울이 왕이 되고 나서 첫 번째 하신 말씀이 사무엘을 보내서 ‘내가 아말렉을 기억한다. 너는 지금 군사를 모아서 아말렉을 쳐서 남자 여자 노인 유아 젖먹이 짐승까지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죽여서 없애 버려라. 진멸시켜라. 모조리 진멸시켜서 다 죽여버려라.’ 아말렉입니다. 아이고 여자고 남자고 노인이고 짐승한마리까지 싹 죽여서 없애버려라. 그래서 사울이 군사 이끌고 아말렉에 갔는데 아말렉을 다 물리 쳤는데 물리치고 나서 보니까 좋은 짐승들 소가 너무 좋은게 많습니다. 소가 너무 좋아서 몇 마리를 남겨놓고, 그 아각 왕을 보니까 왕이 자기하고 딱 맞는 비슷한 사람이니까 왕을 죽이기 아까우니까 왕을 남겨놓고, 그래가지고 하나님 앞에 승리했다고 제사지내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다시 보내가지고 ‘내가 사울을 세워서 왕을 삼은것을 후회를 한다. 내가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보냈는데 짐승살려놓고 왕을 살려뒀으니까 후회한다.’ 그래가지고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 거역하고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다가 사울이 마지막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진논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아말렉을 왜 그토록 진노하셨습니까? 인간구원에 방해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인간구원에 방해를 하는 겁니다. 사람의 구원하는데 해 끼치는 것. 사람이 살다보면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짓습니다.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음행죄도 짓고 사기도 치고 본의아니게 온갖 종류의 죄를 다 짓습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죄를 짓는 중에서 가장 진노하시는 죄는 사람을 구원하는데 손해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고 진노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인간구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민수기 31장에 보면 22장부터 나오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이끌고 계속 진행해 나가는데, 모압 족속의 왕 발락이라는 사람이 이스라엘이 야금야금 쳐들어오니까 자기 힘으로 감당이 안되니까 발람이라는 사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그럴 때 발람이 발락이 보낸 재물이 탐이나서 부귀영화가 탐이 나가지고 저주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가서 합류했다가 몰래 이스라엘을 죄짓게 만드는 그런 술수를 몰래 가르쳐 줬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많이 죽고 하나님이 진노한 일이 있었는데 그 뒤에 발람을 모세가 쳐들어가서 그 발람을 칼로 죽였고 대대로 ‘싻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다.’ 영원토록 수치스런 그런 발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1서 2장에 보면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면서 빛이라 말은 예수믿는 사람이라 그말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이라 그러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는자다 그랬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인데, 복음을 받은 사람인데, 구속받은 사람인데 그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고, 다른 사람을 손해케 하는 그런 사람은 그 사람은 믿는 사람이지만 안믿는 하나님 없는 그런 사람과 같다 그래 말씀 하셨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다, 살인하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없다 그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은 사람을 구원하는데 방해하는 그 일을 가장 진노하신다. 요 크게 두가지 기억하십시다.
하나더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은 어떻게 만드셨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는 그 사람이 자기 혼자 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여러 가지 지체가 있습니다. 보통 이목구비 수족 오장육부라 그럽니다. 그 외에도 많은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다 모여서 한 사람이 됩니다. 눈이 아무리 귀해도 소중해도 눈만 빼 놓으면 그 눈은 사람이 아닙니다. 눈은 눈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그 눈이 그 사람의 몸에 붙어 있을 때, 그러면서 눈으로 보는 역할을 바로 할 때 눈의 가치가 있는 겁니다. 다리가 다리 따로 떼 놓으면 그 다리 쓸모 없습니다. 그 사람 몸에 붙어서 그 다리가 걸어가는 역할을 할 때 다리는 필요 한 겁니다. 지체가 그래 되듯이, 사람이란 것은 혼자 살 수 없는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안믿는 사람들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더불어 사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 말합니다. 지금 말하는 것은 세상말 하는게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살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러면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사람은 자기가 알든 모르든 원하든 원치않든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다 날때부터 그래 있습니다. 아담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아담 혼자 있을 때, 하나님 말씀이 사람의 뭐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요? 사람의 독처, 독처가 무슨 뜻입니까?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니까 내가 그를 위해서 돋는 배필을 만들 것이다. 그래서 하와를 만드셨고, 그담에 둘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나게 하시고, 사람이란 것은 혼자 사는게 아니고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살도록 하셨고, 그래서 사람이란 것은 가정에 가면 부부가 있습니다. 부부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형제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관계의 여러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또 우리집과 옆집이 있습니다. 이웃이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사회가 있습니다. 그 사회가 넓어지면, 모든 사회를 다 모아서 인류라 그러는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사람이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사람끼리 그렇게 사는 겁니다. 이게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사람이란 그렇게 살도록 만들어 놨습니다. 이런걸 가르켜서 인간관계라, 사람과의 관계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게 되기 때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든지 혼자 살아도 그러하고, 또 혼자 살수도 없고, 여러 사람들 속에 섞이면서 모든 사람과 가깝게 멀게 친하게 좀 성글게 관계를 맺어가면서 모든 사람은 살고 있는데, 그리 사는 그 사람들의 모든 생활은 그리 살면서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보는게 말하는거 움직이는 모든 생활은 자기가 알게 모르게 원하든 원치않든 자기의 모든 행동과 생활은 다른 사람들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 형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는 겁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혼자 살 수 없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 속에 섞여서 모든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원하든 원치않든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치고 잇습니다.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어쨌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사람이란 것을 기억을 해야 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내가 사는 것이, 나 혼자 사는데, 나 혼자 생각하고 마음먹고 결심하고 후회하고 그리하는데 그 마음에 모든 생활이 외부로 나오게 되어 있고, 외부로 나타나는 그런 생활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는데 이게 사람인데, 그 영향 미치는 것을 크게 말하면 둘이라서,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거나 둘중에 하납니다. 모든 사람의 모든 생활은 전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것이 모든 사람이고, 피차에 다 그렇게 되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살 수 없다구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삽니까? 다른 사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가깝게 친하게 멀게 성글게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래 사는 속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 영향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든지 아니면 해를 끼치든지 둘 중에 하납니다. 나의 말은 내가 하는 말은 단순히 나 혼잣말이 아닙니다. 내 생활은 나 혼자만의 생활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그들에게 유익을 주든 해를 끼치든 둘 중에 하나고, 내 모든 생활은 나의 생활이니까 다른 사람과 상관이 없다지만, 상관없는 생활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어떤 형태든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으로 말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들이다 하는 것을 여기서 기억을 해야 합니다. 자 여기까지 하고, 본문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은 24장 45절 본문에 보니까, 여기보니까 본문에, 두 종류의 종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24장 45절로 52절가지 성경 펴시고, 두 종류의 종이 나옵니다. 한 종은 어떤 종이 나옵니까?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하나 있고, 또 한종은요? 악한종이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있고 악한 종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종류의 종 중에서 한 종, 주인이 올 때 복 있는 종은 어떤 종입니까? 주인이 올 때 복있는 종은 어떤 종입니까?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인데 그 종이 뭘 했습니까? 그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주는 종입니다. 이 종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고 복있는 종입니다. 이 종에게 주인이 뭘 맡겼습니까? 47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뭘 맡긴다고요?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두 종이 있습니다. 한 종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고 한 종은 악한 종입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복있는 종인데 어떤일을 했는가? 그 종이 한 일은 그 집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줬고, 이 종에게 주인이 모든 소유를 다 맡긴다고 말씀했습니다. 또 한 종이 있습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한 종. 자기 주관적입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한 종은 어떤 종입니까? 악한 종입니다. 이 악한 종이 뭘 했습니까? 두가지 했습니다. 하나는요? 동무들을 때리고 또 하나는요?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을 했습니다. 이 종이 받는 벌이 무엇입니까?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요게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하신 본문에 나오는 주인이 누구냐 주인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주인은 하나님이고, 두종류의 종,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과 악한 종이 있는데 이 종은 누구겠습니까? 이 종은 우리 믿는 사람들, 믿는 성도들 다 종이라 그럽니다. 여기 있는 전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우리는 다 여기 나오는 종입니다. 그런데 그 종의 종류가 몇가지라고요? 우리는 다 종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집에 종된 우리들인데 우리들 중에 몇종류가 있다고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종입니까?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하나는요? 악한 종. 이 속에, 우리들 속에 이 두 종류가 있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우리들 중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악한 종이 될 수도 있는데,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어떤 종이냐? 그 종은 주인의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종이고, 악한 종은 동무를 때리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그 종은 악한 종입니다. 그러면 우리들 중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서,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그런 때도 있고 그런 사람들도 있고, 어떤 경우는 우리들이 종인데, 악한 종이 되어서 동무를 때리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그런 때도 있고 그런 우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여기 동무라는 것은 친구를 말하는 것인데, 주인의 집 사람이란 누구냐? 자 생각해 보십시다. 여기 말씀하신 그 집 사람들, 주인의 집 사람들이 누구겠습니까? 생각을 해 봐야 이해가 되겠지요. 주인의 집 사람들이 누굽니까? 자 처음부터 다시 해 보십시다. 주인은 누굽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종이 몇종류 있습니까? 두종류 있습니다. 그 종이 누굽니까? 여기있는 우리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우리는 다 종입니다. 종 중에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뭐 했습니까? 복있는 종인데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줬고, 악한 종은요? 동무를 때리고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신 악한 종입니다. 그러면 주인의 집 사람들이 바로 동무들인데, 이 동무들, 주인의 집 사람들이 누굽니까? 이 사람들이 바로,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믿는 사람들입니다. 내 주위에 내가 속에 그 속에 살고 있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다 그 말은 하루 세끼 밥을 아침때가 되었으니까 아침을 갖다 주고, 점심때가 되었으니 점심을 갖다주고, 저녁 때 됬으니 배고프겠다 저녁을 갖다주고 이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갖다준다 그 말은 양식은 먹고 힘을 얻는 겁니다. 요 양식은 육의 양식을 말함이 아니고, 신령한 믿음의 양식 신앙의 양식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서 내 주변에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정이라면 남편은 아내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형제는 서로에게 자녀도 부모에게 집사님은 구역 식구들에게 구역 식구들은 서로에게 반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그 자기 주변에 자기를 아는 자기 주변에 사는 관계맺고 있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는 겁니다. 그들이 도덕적으로 점점 흠이 없는 사람을 만들어 가도록 그들이 양심적으로 신앙 양심으로 신앙 양심적인 사람이 되도록, 그들이 점점 진리적이 되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말로 가르쳐 주고 위해서 기도해 주고 내 행동으로 본을 보여주는 걸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것이라 그리 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지나간 오일밤 예배 때 찬송할 때 우리 교회 신앙의 가장 앞에 있는 분 중 두분이 찬송하는 데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배시간에 좀 심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아 선생님이 오니까 졸고 있네?’ 주일학생들이 보니까 중간반 학생들이 보니까 ‘선생님도 졸고 있네? 예배 시간에? 예배 시간이 가장 귀한 시간이라 그러던데 꾸벅꾸벅 조네? 한번두번도 아니고 예배 시간마다 졸고 있네. 예배 시간에 졸아도 되는구나’ 그것이 바로 동무를 때린겁니다. 뚜드려 팬겁니다 그게. 하나님이 가장 진노하시는 것 중에 하납니다. 그래서 아기를 가진 아기 어머니가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거 먹고 나니까 아이가 설사를 하더라. 안먹습니다 아기 엄마는. 바로된 애기 엄마는 못먹습니다. 내가 맛있는 내 입에 땅기는 음식을 먹으니까 이거 먹고 나니까 아이 몸에 두드러기가 나더라. 그러고 나니까 안먹습니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참지요. 그게 엄마라는 겁니다. 어머니라는 것이고. 피곤해서 잠이와 죽을 지경인데 내가, 어쩌다 깜빡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번두번도 아니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시간마다 졸고 있으면 나를 아는 학생들이 나보다 만약에 혹 어린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어떤 마음을 가지겠나. 그래서 피곤해 죽을 지경이 되도, 바늘로 가지고 자기를 찝어도, 졸지 못하는 그게 때를 따라 양식 나눠주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나를 보거나 말거나, 학생들이 보거나 말거나 듣거나 말거나 꾸벅꾸벅 졸고 앉았으면, 하나님께서 그 졸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마음을 가질 것인가? 거기서 수많은 복을 다 까먹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게 있습니다. 목회를 해 보면, 교인들 많이 상대하는데 참 귀한 분들이 많습니다. 좋은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좋은 분들의 장점만 보면 참 부럽다. 나도 저거 닮고 싶다 배우고 싶다 그런데, 그 좋고 충성된 그 장점을 또 다른 면을 보면 그 단점 가지고 앞의 좋은 점을 거의 다 까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충성하고 좋은 그 장점과 단점 두 개 놓고 보니까 비슷비슷합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고 다 까먹고,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경우는 오랜 세월을 충성하다가 뒤에 가서 다 오랜세월 까먹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충성하고 까먹고 충성하고 까먹고 이런걸 가르켜서 신앙이 치우친 신앙이라 그래 말합니다. 신앙은 치우치면 고장이 난겁니다. 체계적이라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믿음을 가졌느냐? 믿음에 덕도 가져라. 덕을 가졌느냐? 지식적이라야 한다. 지식을 가졌느냐? 절제를 가져라. 인내도 더해라. 경건을 가져라. 형제우애를 가져라 사랑을 공급해라. 다 체계적이 되야 그게 바른 신앙이다. 성경은 그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하나님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집, 몸된 교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종된 우리들은 사람이란 것은, 혼자 살 수 없는 겁니다. 내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나는 살고 있고, 그 사람들과 나는 어떤 형태로든 연관성을 가지고 있고, 연관성 가졌는데 멀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는데 친할수도 있고 성글수도 있는데 그 모든 관계 속에서 내가 사는 모든 생활은 눈에 보이든 안보이든 상관없이, 나의 모든 언행심사는 내주변 수많은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크게 말하면 둘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거나 힘을 주거나 아니면 나의 모든 생활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신앙을 폭폭 떨어트리거나 둘중에 하나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주고 유익을 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소복소복 쌓아 주시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떨어뜨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는 진노하신다는게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인간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다른말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그게바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모든 걸 다 예정했고 하늘도 땅도 바다도 우주도 영계도 전부 이 목적 위해서 소원위해서 다 지었습니다. 그거 위해서 운영합니다. 그게 무엇이냐? 인간 구원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하고 가깝게 만들고 하나님 닮는 참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가는 이것이 목적이고 여기에 도움을 주고 유익을 주고 힘을 쓰는 그 성도를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셔서 그 종의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복이 있으리로다. 주인이 그 소유 전부를 다 그에게 맡기겟다.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의 유익을 주고 있으냐 힘을 떨어뜨리느냐. 동무를 때린다 말은 그 사람의 신앙에 해를 끼치는 걸 말합니다. 매로 때리는 걸 말하는게 아닙니다. 술 친구라 말은, 그냥 술도 술이지만 세상으로 더불어 어울린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간곳 없고 인간이 전부고, 천국은 뒤로하고 세상이 전부로 사는 그것이 바로 술친구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겁니다. 신앙이 좀 떨어져도 괜찮다 돈을 벌어야지. 예배시간 더러 빠져도 괜찮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그게 전부 술 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가장 노여워하시는 일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보고 우리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고 다른 사람의 신앙에 힘을 주고 유익을 끼쳐줄지언정, 다른 사람의 힘을 떨어뜨리는 이런 악한 종이 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고 노력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