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3-주후(창16:7-14)
사람의 가치와 가치의 변동2013-10-14조회 464추천 32
본문: 창세기 16:7-14
제목: 사람의 가치와 가치의 변동
요점:
1. 존재의 가치
- 장사하는 사람이 물가와 시세를 모르면 장사는 실패
- 물가는 물건의 가치라는 말
- 모든 존재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고
- 가치 만큼 대우받고 대우하게 되는 것
- 모든 존재의 가치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
2. 가치의 변동
- 가치는 시세 따라 변동되는 것
- 시세라는 말은 환경과 형편이라는 말
- 전쟁이 나면 식료품 값이 크게 오르게 되듯이
- 금이라도 흔하면 싸게 되고, 물이라도 귀하면 비싸게 되는 것이 가치의 변동성
3. 사람의 가치
- 가치라는 말은 쓰임새, 쓸모 있다는 말
- 많은 사람에게 필요있고 요긴하게 쓰이며
- 많은 사람에게 도움되고 유익되는 사람이 사람의 가치
- 사람의 가치를 알고 자기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4. 사람의 참 가치
- 이스마엘의 가치는 세상, 외모
- 이삭의 가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 사람의 참 가치, 영원히 변동 없는 가치는 하나님
- 지혜도 지식도 능력도 권위도 영광도 근원은 전부 하나님
- 하나님으로 가치 삼은 사람은 하나님의 지능과 권위가 함께하고
- 하나님으로 가치 삼은 사람이 하나님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무능자
-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같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만 가치 삼은 사람들
- 하나님으로 가치 삼으려면 첫째 조건이 죄를 짓지 않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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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본문: 창세기 16:7-14
제목: 사람의 가치와 가치의 변동
오전에 장사하는 것을 비유로 사람의 가치와 그 변동에 대해서 좀 생각해봤습니다. 상식적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물가를 모르고 시세변동을 모르면 장사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을 겁니다. 어떤 종류의 장사든지 마찬가지일겁니다. 종목에 상관없이 업종에 상관없이 장사를 하는 사람은 물건을 사야 되고 팔아야 되고 물건을 사고 파는게 주업인데 그 물건의 가치를 모르면 살때도 비싸게 살 수 밖에 없을 수 있고 또 팔때는 헐하게 팔 수 있고 그리되면 자본금이라는게 한정이 있는 것인데 얼마 안가서 밑천이 다 드러나고 적자가 되고 그만 사업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장사를 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물가를 알아야 되고 또 물가를 안다할지라도 그 물가가 언제는 어떻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 시세변동을 알아야되지 그걸 모르면 또 장사는 잘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물가라는 말은 물건의 가치라 그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모든 물건 범위를 넓혀서 모든 존재는 만드실 때 만드신 그 이유가 있고 또 용도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존재는 어떤 것이든 그만큼의 가치를 다 가지고 있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는 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어느 한 존재도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가치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비싸고 좀 저렴한 그런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존재는 다 어느 하나도 가치가 없는 존재는 없고 다 가치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 만들어두셨고 그 존재가치는 하나님이 그만큼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모래알 하나도 그만큼의 가치는 있는 것이고 주먹만한 돌멩이 하나도 그만큼의 가치는 있는 겁니다. 사람이 볼때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게 보잘 것 없지 아니하고 그 물질의 그것에 용처를 만나지 못해서 그러하지 언제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는 겁니다. 심지어 쓰레기는 버려지는게 쓰레기지만은 그 쓰레기들도 잘 활용하면 다 쓸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쓰레기도 알고나면 못쓸것은 아마 없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기본적으로 존재를 만들어놓으시고 그 모든 존재에게 가치를 부여해 뒀는데 거기다가 인간이 이제 그 하나님이 만드신 그 모든 존재를 기본적으로 있는 가치를 인간이 발견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가공을 하고 제조하고 또 재가공을 하고 그래가지고 사람이 쓰기에 편리하고 유용하게 그렇게 만들므로 가치를 좀더 부여하는 그런 것은 있습니다. 그래서 돌멩이란 것은 원래 돌멩이의 가치가 있는데 저 산은 돌산인데 그 돌산이 돌로서의 가치가 있는데 그 돌을 사람이 장비를 들여서 캐다가 다듬어가지고 건축자재로 요긴하게 쓰니까 원래 돌멩이보다 가치가 훨씬 더 올라가는 그런게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지요. 나무는 나무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를 사람이 베다가 가공을 해다가 이것도 또 목재로 요긴하게 쓰니까 원래 가치보다 더 올라가는 그런 또 가치가 되게 됩니다. 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만드실 때 그 만드신 원래 존재의 그만큼의 가치를 부여해두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건데 그것을 인간이 가져다가 이렇게 저렇게 제조하고 가공하고 여러 형태로 만들어서 쓰면서 거기다 가치를 더 붙여서 그래놨는데 인간이 부여해놓고 붙여놓은 가치들은 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때가 변하면 그 가치가 전부다 변동이 되어진다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정해놓은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정해놓은 가치는 다 인간의 어떠함에 따라 세상의 변동에 따라서 그런 가치가 다 변해진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다 가치가 정해져있고 또 그 존재의 가치만큼 그 존재는 대접을 받고 대우를 받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가치가 시세따라서 말하자면은 시세라는 말은 형편이고 환경이다 그말이지요. 환경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존재가치는 변하게 되어진다. 원래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가치는 변하지 않는건데 그 존재를 인간이 쓰면서 인간 임의로 그 존재를 가치를 바꾸어나가는 그런 것이다 그리 또 말할 수 있습니다. 쌀은 사람의 주식입니다. 안 먹으면 안되는게 쌀인데 그 쌀이 워낙 많으니까 쌀은 그렇게 비싸지 않은데 만약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는 그런 때가 되면 쌀값이 굉장히 폭등을 하게 되어있고 또 전쟁이 나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그런 형편이 되고 지금 우리나라는 원래 농업국가였다가 지금 공업국으로 이제는 더 변해서 아주 반도체 초정밀적인 그런 것으로 자꾸 바꾸어져 나가는데 만약 전쟁이 나서 그런게 다 파괴되고 나면 당장 급한 것은 사람이 휴대폰 없어도 불편하지만은 살 수 있고 자동차 없어도 불편하지만은 살 수 있고 인터넷 없어도 불편하지만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으면 사람은 못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나서 그런 문제가 생겨지면 당장 폭등되는 것은 휴대폰 값이 올라가는게 아니고 자동차 값이 올라가는게 아니고 그런거는 값이 오히려 뚝뚝 떨어져버리고 쌀값이 아주 폭등을 하게 되는 겁니다. 쌀 없으면 사람이 못 살고 전쟁이 터지면 쌀을 못 구하니까 양식. 그래서 요즘은 또 그것도 식어졌겠지요. 얼마전에 서울에서 누군가 실수로 그랬습니까 아니면 북한에서 비행기 한 대가 실수로 넘어왔는데 전쟁났다 그래갔고 반공 싸이렌 울리고 그래가지고 이거는 실제 상황이라고 한 몇 번 방송하고 나니까 그만 수퍼마켓에 라면이고 쌀이고 식료품이고 모조리 다 동이 났다 그러지요 그 당시 한번 난리가 한번 난적이 있었습니다. 그거는 사람들이 전쟁이 나면 자동차를 사는게 아니고 가전제품 사는 것이 아니고 전쟁이 나면 당장 먹을 게 문제니까 그걸 먼저 구하는 것은 그거는 뭐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평소에는 그렇지 않아도 구하기 어려운 그런때가 환경이 형편이 변해지면 값이 올라간다 그말입니다. 그러다가도 그게 또 많아지고 구하는 것이 쉽게 되면 값이 떨어집니다. 솔로몬 시대에 은을 평지에 돌같이 흔하게 만들었다. 아마 보나마나 솔로몬 시대에 은값이 많이 떨어졌을 겁니다. 안봐도 그거는 나오는 거지요. 아무리 비싼거라도 그게 흔하고 많아지면 값은 떨어지게 되있고 아무리 평범한 것이라도 그걸 구하기 어렵게되면 값이 올라가는 겁니다. 사람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게 뭡니까? 우리 사람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면서 없으면 안되는 것이 물 아니겠습니까 물. 물은 안 먹으면 죽거든요 못사는데. 그런데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 그 물이 가장 참 하나님께서 적당하게 그렇게 적절하게 만들어놓으셨지요. 만약에 물 구하는게 그만큼 어려우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아무리 금이 좋지만은 물을 금처럼 그렇게 귀하게 만들어놓으면 사람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물은 아주 뭐 흔하디 흔한게 물입니다. 물쓰듯 쓰는게 물이니까. 그러니까 물값은 아주 싸고 우리 나라는 또 세계적으로도 우리 나라 물값은 아주 싸다 그러지요. 그런데 이 물이 저 중동 아프리카 저런데 가보면 물 없는 사막지역에 가면 물값이 기름값보다 경우에 따라 금값보다 더 비쌀수도 있다 그말입니다. 그런걸 가리켜 시세라 그리 말하지요. 모든 가치라는 것은 모든 존재의 가치라는 것은 그게 고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시세 따라서 변동이 되어진다 그러면 우리가 두가지를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만 그런게 아니고 이것이 인생살이도 그런거니까. 장사하는 사람은 물가 모든 물건의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고물상에 가면 말그대로 고물상은 만물상입니다. 그 고물 만물상은 집집마다 다 버려놓은 거 못쓰는 폐기물을 다 수집해다가 잔뜩 쌓아놨지요. 그래가지고 이제 고물로 말그대로 파는건데 그런데 그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고물은 고물인데 그 고물들을 멋모르고 버린 그런것들이 있는데 눈이 밝은 사람 아는 사람들은 보고 책이라든지 그림이라든지 도자기라든지 또 시계라든지 이런것들이 아주 오래된 옛날 엽전이라든지 이런것이 예를 들어 몇백년전에 것이 그런게 있는데 사람 보기에는 쓸모없는 고철이니까 고물상에 갖다버렸는데 이걸 아는 사람은 세상에 이거는 요거 하나가 돈이 몇천만원짜린데 몇억짜린데 그런것도 있을수가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물건의 가치를 모르면 사람이 그 물건에 대한 정평정가를 하지 못하게 되고 정가를 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물건은 바로 자기가 사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자주 예를 들어서 다 아시지만은 아주 희귀한 값비싼 단박문 어서가 집안 가보로 전해져내려오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이 무식한 아들이 그 어서를 볼 줄 모르니까 시골에서 겨울에 방도 춥고 이러니까 그 어서를 떼다가 어서가 뭔지 아십니까 학생들? 어학서적을 말하겠지요. 병 고치는 치료법. 말하자면 동의보감 같은 거 이런거 말입니다. 지금은 흔하지만은 옛날엔 귀할땐데 그런걸 갔다가 집안의 가보로 내려와서 그거대로만 치료법을 알고 그대로만 하면 그만 왠만한 병은 다 고치는 그런 가본데 이걸 오랜 세월 전해내려오니까 그만 제대로 관리가 안되고 전달이 안되서 무식한 아들이 겨울에 방이 추우니까 어서를 떼다가 방문에 문풍지 종이로 다 발라놨다 말이지요. 그래 몰랐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어째 지나가다가 그 집에 들렸는데 보고 깜짝 놀라서 그걸 그 종이 값의 몇배를 주고 사가지만은 그게 몇배만 되겠습니까? 문종이값의 몇백배 몇천배도 더 되는 그런 비싼건데 모르니까 그냥 휴지로도 쓰고 걸레로도 쓰고 오만케 다 쓰는데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는만큼 귀하게 쓸 수가 있는거지요. 사람이 모든 물건의 가치를 아는만큼 그 물건을 바로 정평정가 할 수 있고 바로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 기억할것은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가치가 있는거니까 우리는 가치를 아는 우리가 되야 되겠다. 모든 존재는 가치가 있으니 그 존재만큼의 가치를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되겠고 그다음 두 번째는 모든 존재 가치는 고정되어있지 아니하고 시세 따라서 변동이 되어진다는 것도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형편 따라서 환경 따라서 또 경우에는 장소 따라서 다 환경이니까 형편과 환경 따라서 모든 가치는 변동이 되어진다. 그러니까 어제 비쌌던것이 오늘은 아주 헐해질수 있고 이거 참 별로 위험한 그런 것인데 여기 계신분은 안하리라 생각을 하고 또 주의도 하고 그걸 알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주식이지요 주식. 주식 같은 이런것은 주식시세라는 것이 있고 그래서 그 시세를 읽을 줄 아는 사람같으면은 돈을 많이 벌 겁니다. 그런데 그게 사람 생각대로 그 시세가 그대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래 합니까? 올라갈 줄 알았는데 툭 떨어져버리고 또 내릴 줄 알았는데 올라가버리고 그러니까 그거 읽지 못하니까 주식 하는 사람치고 안 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허가낸 도박이라 그러고 그거는 돈이 없는 자본이 적은 소자본의 사람은 반드시 망할 수 밖에 없도록 구조가 그래 되어있답니다. 그러니까 아주 돈이 굉장히 많은 대자본가들만 그 주식을 하는거지 돈 없는 사람들이 주식 사고 팔다가는 어지간한 밑천가지고는 반드시 망한답니다. 안 망하는 사람이 아예 하나도 없다 보면 될만큼 그렇게 되어지는 그것은 시세를 읽을 수 없으니까 어떻게 변동될지 모르고 또 인위적으로 장난을 치고 있으니까 모른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모든 가치는 시세따라 변동이 되어진다. 고정되어있지 아니하다. 이걸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두 가지를 기억을 하면서 그런데 사람이란 것은 모든 물건들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고 사람도 가치가 있지요. 원래 사람이란 것은 그 사람 자체 기본적인 그 가치가 있는데 거기다가 자기가 자기를 얼마만큼 가치있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가치는 정해질 겁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태어나면 사람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 갓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사람입니다. 그게 뭐 젖이나 빨딱빨딱 먹고 먹고 싸고 자고 울고 그게 전부지요 그 아이가. 그렇지만은 그거는 사람이니까 이게 점점 자라가지고 어떻게 쓸모있는 귀한 그런 가치가 될지 모르니까 소망을 가지고 또 사람이니까 아주 귀하게 그렇게 양육을 해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점점 자라갈수록 어릴때는 부모님들의 양육에 따라 어느 정도 장성하고나면 자기 노력과 의지에 따라서 자기라는 사람의 가치는 마련이 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가치있게 만들고 가치있게 써야되겠고 꼭 같은 물건을 줘도 어떤 사람은 그 물건을 아주 가치있게 효력있게 그래 쓰는 사람이 있고 같은 물건을 줘도 그걸 못쓰는 사람이 있다 그래 말하지요. 우리 사람도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치있게 그렇게 만들면 빗고 깍고 다듬어서 가치있는 사람을 만들면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자기 자신을 그냥 그만 던져두고 버려두면 가치없는 사람이 되는데 가치라는 말은 쓸모가 있다 그말이지요. 쓸모있는 사람. 쓸모있다 그말은 필요한 사람. 어디를 데려다놔도 무엇을 해도 그 사람은 할 줄 알고 쓸모있는 필요있는 도움되는 유익된 그런 사람. 지식이 필요하면 그래서 지식이란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수많은 존재가 있고 그 수많은 존재들을 사람이 사용을 하면서 활용하면서 살아가는데 그 수많은 존재들과 그 존재들의 활용법을 모르면 있어도 뭔지 모르겠고 또 알아도 활용할 줄 모르면 못쓰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배우는게 전부 사람이 공부하는 모든 지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든 공부는 간단하게 말해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를 무엇인지를 그것을 아는 것, 그다음 그것에 활용법을 아는 것. 이거 배우는 것이 모든 공부가 아닐까 그래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그런것도 사람이 자꾸 배워서 또 알아가지고 많이 배워서 아는만큼 사람은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뭡니까? 아는 것이 힘이고 알려 그러면 배워야되겠지요 공부해야되겠지요. 그러니까 자기를 가치있게 만드는 사람은 쓸데없는 일, 노는 것은 만고의 쓸데없는 일입니다. 휴대폰 가지고 게임하고 음악 듣는 것은 천하에 쓸모없는 것이고 오히려 그거는 백해무익입니다. 또 영화도 보러 다니고 연애걸고 놀러다니는 것은 천하에 못쓸 짓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어린 청소년들 청년 학생들이 인간의 인식에 사고방식 가치관이 바로 박혀있는 그런 사람은 자기를 만들어나가되 쓸모있는 자기로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뭘 하나를 해도 글씨 쓰는 연습해서 글을 좀 잘 써보자. 한자를 좀 열심히 배워서 한자를 익혀보면 이게 쓸모있을랑가. 영어 공부를 많이 해두면 영어가 쓸모있을란가. 중국어를 많이 해두면 그게 또 쓸모있을란가. 아니면 또 컴퓨터의 활용법을 배우면 그게 또 쓸모있을란가. 오만것을 다 알아가지고 지금 시대는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이고 내 희망이 무엇인데 내가 앞으로 그걸 할려면 어떤 것을 배워야되겠다. 그래가지고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때 보면은 그 회사에 필요한 사람 그 회사에서 써먹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뽑아야되는데 그런 실력을 마련하면 다 뽑혀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청소년들 청년들이 시대가 변하고 정부에서 복지정책을 뭐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은 또 좁은 범위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잘못해놓으니까 전부 공짜로 먹여주는 이게 습성이 되놓으니까 일을 하려니까 대고 머리 쓰려니까 머리 아프고 이러니까 그만 놀고 먹는 그 연구만 하고 그래가지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지 참 문제는 문젭니다. 사람은 그런 공짜가 다 있고 그래도 자기 자신을 쓸모있는 사람 가치있는 사람 만드는 것은 그런것에 눈을 들이지 아니하고 자기 실력을 자꾸 길러 나가는 겁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다. 쓸모있는 사람을 만들어가야 되겠다 하는 겁니다. 자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나 자신을 가치있게 만듭시다. 어떤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요? 어떤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요? 가치있는 사람은 대접을 받고 대우를 받습니다. 돈이란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따라가고 영광이란 것 존귀라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따라갑니다. 이거 좀 오해할까 싶어 표현을 안쓰려 그랬는데 사람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 정해지는 거지요 실력. 실력 없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미꿈하게 잘 생겨도 머릿속에 들어있는게 없으면 쓸모가 없고 가치가 없는 겁니다. 글 좀 읽어보시지요. 한글 줘도 못 읽으면 어디 쓰겠습니까? 한글 못 읽으면 그러면 기술은 있겠네. 그러면 이거 한번 만들어 볼랍니까? 모릅니다. 그것도 모릅니까 그러면 청소나 한번 해볼랍니까? 청소도 안해봐서 못하겠습니다. 이래 쓸면 되는데. 힘들어 못하겠습니다. 그런 인간을 어디 쓰겠으며 누가 데려다 쓰겠습니까. 아이고 제발 좀 저리 좀 가 주십시오. 오지 말아 주십시오. 귀찮아 죽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끼치고 해만 끼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서 되겠습니까. 한가지 실력보다 두가지 실력. 두가지보다는 열가지 실력. 열가지보다는 수십가지 실력. 그러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거 생각하면 우리 교회 학생들 청년들은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은 한편으로 탄식이 됩니다. 요즘 바깥 세상에 나가보면 소위 스펙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 뭐 어쨌든 자기 실력 마련하는거지요 그게 전부다. 그거 마련한다고 모두 잠을 안자고 밥 먹는 시간 아껴가면서 그렇게 모두 애를 쓰고 노력합니다. 취직하려고. 자기를 쓸모있는 사람 만들려고. 그러니까 벌써 초등학생도 똑똑한 아이들은 그리하고 중학생이 되면 벌써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합니다. 눈에 불을 켜고 지식을 습득하려고 배우려고 알려고 애를 씁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벌써 이거는 뭐 잠 안자고 설치고 인생을 걸고 설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많은 학생들은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지요. 그러니 예수 믿는 거 하나 때문에 귀하지 그거 아니면 참 세상에 나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는가. 참 큰 문제입니다. 그런 세상 실력들이 예수를 안 믿고 가지니까 그게 우상이다 가치없다 그래 말하지 예수 믿는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실력 가지면 그만큼 더 귀하고 가치있고 쓸모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데 참 귀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많이 가지면 하나님을 얕보고 시프게보고 천국을 무시하고 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면 세상을 또 너무 무시해서 그런지 힘들어 그런지 그걸 다 안해버리고 이러니까 다 이리저리 치우쳐서 무익한 자가 된다는 말씀이 그대로 맞아떨어집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 쓸모있는 사람. 백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교인이 사천명입니다. 그중에 장년반이 숫자가 삼천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한번씩 탄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 일을 시켜야 되는데 사람이 없다 그럽니다. 일을 시키고 싶은데 사람이 없어 못 시킨다. 참 조그만한 교횐데 그 뭐 서부교회에 비하면 우리교회는 백분지 일은 될런지. 그런 교횐데 우리 교회도 제가 한번씩 생각해보면 뭘 시키고 싶어도 부탁을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습니다. 시간이 있는 사람은 물어보면 못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빠서 못하고. 그러니까 모두 자기를 실력있게 쓸모있게 필요하게 그렇게 만들어두면 가치라는게 올라가고 가치가 있는 사람은 대접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있는데 실력 마련 안하니 가치없고 쓸모없으니 가치없고 그러니 멸시천대조롱이나 받고 그리 되는것이 믿는 사람들중에 대단히 많다 그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 말하자면은 쓸모있는 사람, 가정에서도 그 아들 없으면 안되겠다 그 사람 없으면 안되는 사람. 다니는 직장에서도 없으면 안되는 사람. 친구들 관계에서도 없으면 안되는 사람. 교회에서도 없으면 안되는 사람. 참 쓸모있는 어디든지 귀한 쓸모있는. 글을 쓰는데도 읽는데도 사람을 만나는데도 일을 해결하는데도 경제관계도 인인관계도 복잡한 법적문제도 또 무슨 사고처리에도 그런 참 실력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귀하지요. 그런게 많이 가질수록 사람은 가치가 있는 것이고 가치있으면 그 사람은 대접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귀하신 몸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을 자기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으로 먼저 이 세상에서도 쓸모있는 사람 뭔가 할 줄 아는 사람, 할 줄 안다는 말은 오만게 다 있지 않습니까. 할 줄 아는 것. 그러니까 학생들은 부지런히 한눈 팔지말고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해야 됩니다. 공부 안하는게 죄다 이 말을 제가 여기서 수도없이 많이 했는데 우리 학생들이 많이 그러니까 그런겁니다. 공부를 학생들은 공부 안하는 거는 죕니다. 게을리 하는 거는 죄고. 공부 잘하는게 바로 신앙이다 그리해도 안 틀릴만큼 우리 학생들이 대부분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한눈 팔지말고 부지런히 영어단어도 외우고 한자도 공부하고 또 다른 쓸데없는거는 몰라도 책도 좀 필요한 건 많이 읽고 신문도 좀 많이 보고 그래가지고 실력있는 사람 쓸모있는 사람 그래서 가치있는 사람이 되야되겠다. 자기 자신을 가치있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가야 되겠고 그다음 하나 기억할 것은 가치있는 사람 만들되 그런 걸 만드는 동시에 그 가치가 변동되는 것도 같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나라는 사람을 이런 사람을 만들면 이 가치있는 사람이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 되어질 것인가? 이 가치가 언제까지 유지가 될 것인가? 시대가 변하면 다 변하지 않을 것인가? 오전에 말씀드렸지만은 우리 000집사님 자개 놓는 실력은 제가 아는대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급입니다. 아주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고. 그러니까 그런 솜씨를 가졌으니까 그때는 안봐도 돈을 많이 벌었을거라 그말이죠. 그 기술이 쓸모있을때 그때는 아주 귀하신 몸이 됐을것이고 아마 돈도 많이 받았을 것이고 많이 벌었을 겁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서 그걸 안쓰니까 지금은 자개 기술은 하나의 우리나라 전통의 보존차원에서는 필요할런지 몰라도 활용하지 않으니까 그 기술이 그만큼 지금은 가치가 떨어진다 그말이지요. 시대가 변하면 뭐든지 다 그런겁니다. 옛날에 있었던 그런 직업들 기술들 없어진 기술이 수도없이 많고 새로운 기술이 자꾸 생겨지지요. 그게 전부 사람의 세상적인 가치 변동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나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을 만들되 하나 더 기억할 것은 내가 지금 나를 가치있고 쓸모있는 사람을 만드는데 이런 나를 만들면 이 가치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것인가 이걸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나가야되겠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의 마지막 최종이란 것은 언젠가? 다시 말하면 인간 가치의 변동에 최종 마지막이 언젠가? 그거는 죽음이란 것이 있으니까 내가 죽어도 이 가치가 변하지 않는 가치, 내가 죽었을때도 내가 마련하고 만든 나 자신의 가치가 변하지 않아야 되겠고 또 부활이 돼서 주님 앞에 부활해도 심판 앞에 가도 영원한 나라에 가서도 내가 세상에서 마련하고 만든 나 자신의 가치가 변동되지 않고 유지되는 거기에 가치를 두고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야 되겠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나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데도 세상적인 그런것도 다 쓸모가 있으니까 그러면 세상에서 쓰여지는 가치를 믿는 사람도 만들면서 세상에서 쓰여지는 그 가치를 믿는 사람은 그 가치를 전부 활용을 해서 더욱 자신을 영원한 가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할 노력이다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래가지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많이 배워서 많이 배워 광문다학을 해서 많이 배워서 머릿속에 온갖 종류의 지식을 다 넣어놨습니다. 온갖 종류의 지식을 어학도 넣어두고 과학도 넣어두고 역사도 넣어두고 또 예능도 체능도 익혀두고 넣어두고 오만 종류 지식을 다 머릿속에 자연도 넣어넣고 인문학도 넣어놓고 오만걸 다 넣어놨습니다. 넣어놨는데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아주 실력있고 쓸모있어 가치있는 사람이 되어졌는데 그 가치를 마련하는게 귀한데 그것이 만약에 그것만으로 끝나서 내가 죽고 난다음에 머릿속에 든 거, 몸에 익혀놓은 이 가치가 쓸모없는 가치가 된다면 그때 어찌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가치마련은 이 세상에서는 대접받고 대우받고 귀하게 쓰였지만은 죽음으로서 그 사람의 가치는 끝나는 겁니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도 변하고 가치라는 것은 환경따라 형편따라 변해진다는 것을 늘 기억을 하고 우리는 가치를 마련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현재 내가 마련하는 내 실력이 이게 앞으로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니까 그게 어떻게 변동될지 모르니까 그게 참 어려운 문젭니다. 옛날에는 기술 하나만 익혀놓으면 그 기술이 그래도 세상 변화가 그렇게 막 급하게 변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1-20년, 2-30년 자기 평생에는 먹고 살 만큼 그리 되니까 기술 하나만 익혀놔도 된다 그리 됐는데 지금은 익혀놓은 그 기술이 언제 어떻게 어느 세월에 갑자기 변해서 쓸모없는 기술이 될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수많은 종류를 사람들이 다 젊은 사람들이 마련하려고 무진 노력을 하고 거기 시간과 노력과 자본을 굉장히 많이 투자를 하지요. 다 귀하고 가치있는 일인데 그런데 그리 하면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이렇게 마련하는 내 가치가, 나 자신의 머릿속에 내 몸에 익혀둔 이 실력 이 가치가 이것이 내가 늙어져도 이대로 쓰여질 것인가. 마지막 최종적으로 죽음이라는 과정을 만나도 이 가치가 유지될 것인가 죽음으로 끝날 것인가를 우리는 생각 안할 수가 없는 거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에 성경적인 교훈으로 논리적으로 이론으로만 할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의 믿음이란 것은 죽음과 그 너머 무궁세계까지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그 날을 바라보며 사는 우리들이니까 그때를 연관시켜 생각하면서 그때가 되어도 변동되지 아니하고 가치가 줄어지거나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자신으로 가치를 만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인생의 죽음 너머까지 마련할 가치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하나님께서 하갈에서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이 이스마엘하고 연결됩니다. 많은 자손이 나게 하겠다 그런데 하나 생각할 것이 이스마엘에게도 많은 자손이 번성한다 하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 많은 자손을 약속을 하셨는데 어떤 차입니까? 아브라함에게도 내가 너로 해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면 복의 근원이 되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 그런 약속이 있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있습니다. 이스마엘도 있습니다. 같은 자손의 번성인데 어떤 차이 있겠습니까? 이스마엘에게 하나님이 주신 자손 번성의 약속은 이거는 세상적입니다. 이스마엘은 말하자면은, 이삭은 사라의 몸에서 난 원가지고 이스마엘은 첩의 하갈의 몸에서 난 곁가지다, 이게 신앙입니다. 육체적인거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신앙적으로.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셨는데 말하자면 에서에게 준 복과 같습니다. 에서가 많은 복을 받았지만은 에서가 받은 축복은 전부다 세상복이고 육체적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세상적으로 남자답고 용맹하고 실력있고 또 아주 잘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야곱과 에서가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빼앗고 도망을 쳤고 다시 만났을때 야곱이 에서에게 많은 선물을 주니까 에서가 말하기를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까 네꺼는 너한테 둬라. 그 말 속에 나타나지 않아도 에서의 마지막 결과보고 신앙성향을 보면 야곱아 너 하나님 하나님 그렇게 좀 좁게 어찌보면 비겁하게 못나게 곱딱스럽게 그렇게 하나님 노래 부르고 하나님 축복을 다 빼앗아 가서 네가 다 가져가고 그랬지만은 나도 보니까 이렇게 부자가 됐다. 말하자면은 나는 하나님이 없어도 이런 부자가 됐다 되더라. 꼭 하나님이 아니라도 되더라 그말이죠. 그게 에서라는 사람의 신앙성향입니다. 그게 에서의 세상복이면서 불행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마엘이 받은 복이 그런겁니다. 자손이 많은데 이스마엘의 많은 자손은 전부 세상 육적인 자손이고 함의 자손들이 다 잘난 사람들입니다. 함의 자손들이 다 잘나고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들인데 그게 전부 저주거든요. 이스마엘이 받은 복이 자손 같은 자손인데 세상적이고 들나귀같이 된다는 것이 백목사님 해석을 보면은 요즘으로 말하면 아주 미꿈하게 잘생긴 외모라는 말입니다. 키도 크고 또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또 아주 머리도 좋고 씩씩하고 용감하고 활달하고 활동적이고 이런 아주 잘난 외모를 가진 이게 들나귀처럼 생겼고 또 모든 사람을 친다 그랬으니까 전투력이 있어서 용맹하고 싸우면 이기고 이런 사람이 이스마엘이고 그 자손이고 하나님께 받은 복인데 그 복이 전부다 세상복입니다. 그러면 이스마엘은 하갈은 요래 복을 받았고 그의 가치관은 거기 있고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가진 가치관은 전부 외모고 세상적입니다. 이게 그의 가치고 반대로 이삭이라는 사람은 그는 성경 창세기 26장에 보면 그 사람은 욕심도 없고 그래서 그냥 구별없는 그런 사람은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섭리를 믿으므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니까 하나님 뜻대로 되리라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 맡겨두는 그런 넓은 신앙을 이삭은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을 손해보고 자기 명예라든지 위신이라든지 권위 이런걸 손해볼지라도 이삭은 하나님을 안빼앗기려는 그 신앙. 하나님을 손해보지 않으려는 신앙 또 하나님의 뜻을 놓지않으려는 그 신앙 이게 이삭의 가치고 이삭의 신앙입니다. 이삭이라는 사람이 가진 가치 이삭이라는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모셨고 하나님을 닮았고 하나님을 모신 이삭이였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한 이삭이였기 때문에 그게 이삭의 가치고 그러니까 이삭이라는 사람 야곱이라는 사람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빼놓고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다윗이라는 사람도 오로지 하나님이 전부였고 주님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그 사람이 다윗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은 좀 손해봐도 돈이 있어야 되겠고 사람이 있어야 되겠고 실력이 있어야 되겠고 지식이 있어야 되겠고 이 세상 외모가 있어야 되겠고 이 사람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 그 사람이 그런 가치관을 가졌으면 그런 것을 마련하게 될 것이고 거기 가치두니까 그 사람이 되니까 이스마엘의 가치는 세상이며 외모고 이삭의 가치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 말할 수 있고 그렇다면 우리들이 가치 둘 곳은 어디 둘 곳인가? 우리의 가치 사람의 참 가치 참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이 세상 재물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가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최종적인 가치, 변동되지 않는 가치는 아닌 것이고 실력있어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해도 쉽게 취업이 되고 대접받고 대우받는 그런 사람이 가치있지만은 그 가치가 마지막 최종적인 변동되지 않는 그런 가치는 아닌 것이고 모든게 다 그러합니다. 최종적으로 영원히 가도 변동되지 않는 그 가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만큼 아느냐, 그 아는 하나님을 얼마만큼 모셨느냐. 얼마만큼 그 하나님을 자기가 닮아서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되어졌느냐 여기에 따라 사람의 가치는 정해지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가치를 정해둔 것이고 그리고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얼마만큼 알고 준행했느냐에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 더 들어가보면 왜 하나님이 인생의 가치가 되어질까. 경험적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멀리갈 것 없이 이게 좀 차원이 다르겠지만은 지금하고 약 오백년전하고 천년전하고 안 믿는 사람 불택자들이라도 하나님과 그들의 거리는 원래 없는 것이지만은 불택자들 불신자들이라도 지금 불신자 불택자하고 오백여년 천년전에 불신자 불택자하고 하나님의 거리가 차이가 있습니다. 좀 논리적으로 의문이 생길수도 있겠는데 제 생각에 확정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지만은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안믿는 불택자 불신자들하고 오백여년 천년전에 안믿는 불신자 불택자들하고 하나님과의 거리가 차이가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백년전 천년전 사람들은 안믿는 사람이라도 지금 사람만큼 그렇게 무지하거나 어리석거나 미련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몰라도 신을 알고 섬기려고 애를 쓰고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어느정도까지 했고. 그런데 지금은 더 멀어지니까 세월이 지나서 더 멀어지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보면은 이거는 뭐 사업가고 정치가고 잘난 사람이고 유식한 사람이고 할 것없이 이거는 하나님 없는 인생의 하는 짓을 보면은 참 어리석고 무지하고 미련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신 그대로 사람이 비록 존귀한데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 같도다. 꼭 그대롭니다. 짐승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 하나님 없는 인생이다 그말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셨으니까 하나님 없는 사람만큼은 아닐지라도 하나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 모시고 동행하는 그 동행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기 정도에서 그래 살때하고 하나님하고 멀어질때하고 하나님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든 지식의 근본이며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능력의 근본이고 또 권위의 근본이고 영광의 근본이니까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그분과 함께 있으면 그분에게서 모든 지식이 그에게 나오고 또 지혜가 나오고 능력이 나오고 권위가 나오고 영광이 나오고 대우가 나오고 이런게 나오는데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멀어지고 끊어져 버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 인한 지능이 없어지니까 무지하고 무능하고 어리석고 또 멸시천대조롱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다윗이라는 사람이 위대하지만은 하나님과 끊어질때 다윗은 아무짝에도 못쓰는 사람 참 무지무능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모셨을때 믿음의 사람이 되지만은 만약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떠났다면 그는 참 그래서 믿는 사람은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어디다 쓰겠는가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밖에 버리워서 사람에게 밟힌다 말씀하신대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모시고 살면은 천하에 귀한 사람이 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잊어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복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모든 것 다 뒤로두고 기본적인 것만 참 하나님께서 필요한 그래서 백목사님은 늘 자랑이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그게 자랑인데 최종적으로 말하면 고려신학교를 졸업했으니까 그리 된다 할지라도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부법으로 말하면 대학 졸업한 분이 되겠죠 지금 그게 승격이 됐으니까. 그래도 당신은 정규 중고등학교는 안했었거든요. 그러니까 늘 초등학교 5학년 학벌이 전부고 그래서 성경만 보고 자연만 보고 하나님과 기도하고 직접 연결해서 모든 걸 깨달았고 배웠다 그게 평생의 자랑입니다. 그런 분일수록 다윗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습니다. 사무엘도 그랬고 그런 분일수록 하나님과 동행하면 지능이 능력이 탁월하게 나타나고 그런 분들이 하나님과 끊어져버리면 참 무능한 그런사람 무지한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겁니다.
우리는 그게 가장 귀하고 복있는 사람인데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기독교라는 것은 평가적인 도라 그래 말합니다. 평가적이라 말은 가치를 따져보고 살펴보는 걸 말합니다. 보다 더 어느 것이 귀하냐 가치있냐 쓸모있느냐 이걸 따져가지고 가장 귀하고 가치있는 그걸 찾아가는게 기독굡니다. 믿음의 대상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있을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은 만에하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보다 더 전능자 전지자 완전자 자존자 하나님 외에 또 누가 있는가 이걸 또 찾아보고 그게 만약에 있을수가 없지만은 하나님 아닌 또 다른 존재가 하나님보다 더 모든 면에 더 하나님 같은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리 가는게 기독굡니다. 없으니까. 그래서 모든 존재를 다 따져봐도 자존하시고 완전 전지 전능 영원 불변 하나님은 한분 그분뿐이니까 그분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고 영원한 천국이 인생 세계에 마지막 최종이니까 그 천국을 바라보는 것이고 기독교의 구원 주님 대속이 하나님 주신 구원역사의 전부고 이게 가장 귀한 거니까 그 대속을 우리 전부로 삼아서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좋은거니까 그 분 형상 닮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겁니다.
사람이 약하니까 가다가 죄도 짓고 넘어지기도 하고 온갖 실수 다 하고 하지만은 그래도 가치관은 바로 가지고 가치관을 바로 가질때 자기의 인생의 방향이 바로 정해지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가다가 실수하고 넘어질지라도 가다가 혼돈하지 아니하고 주저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냥 가기만 가면 되는 겁니다.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정해놨으니까. 그런데 이게 정해지지 않으면 이게 정해지지 않으면 인생의 갈길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다 가치관을 어떻게 가지느냐 거기서 다 결정이 되는 겁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한분으로 우리 가치의 전부를 삼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그걸 우리 행동의 가치로 삼아서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모시는 것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그 뜻을 준행하는 것 이걸 위해서 어떤 것을 손해볼지라도 이거는 양보하지 않아야 되겠다. 이것과 연결되는 것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모시기 위해서 그분 닮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준행하려 하다보니까 제일 첫단계가 뭐냐? 실질적인 제일 첫단계는 뭐겠습니까? 실질적인 첫 단계가 뭐겠습니까? 바로 죄를 짓지 않는 겁니다. 죄를 멀리하는 것. 그러니까 오일밤 예배때 그랬습니까? 한달 죄를 안 지으면 자기대로 죄를 한달 안 지으면 자기 주관이 압니다. 느껴보셨습니까? 한달만 죄를 안지으면 자기 속에 주관적인 평안이 있고 담대가 있고 기쁨이 있고 입에서 찬송이 저절로 나옵니다. 한달동안만 죄 안짓고 살아보십시오. 한달만 죄짓지 아니하고 그대로 살면 자기속에 주관적인 평안과 기쁨과 담대가 나옵니다. 지능도 나옵니다. 삼개월을 죄를 안 지으면 그 사람의 지능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걸 사람들이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1년만 죄를 안 지으면 주변 사람을 변화시키고 3년만 죄를 안 지으면 자기 주변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능력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다 살다가 죄짓고 살다가 죄짓고 온갖 종류로 그러니까 되다 말고 또 후퇴했다 또 올라가고 그러니까 계속 반복입니다 반복. 이걸 우리가 좀 돌이켜서 어쨌든 하나님을 가치로 두고 삼고 그분 알고 모시고 그분 닮는 이 생활 그분의 뜻을 알고 준행하는 이 생활 이것의 첫 걸음은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가장 또렷하게 알고 확실하게 알고 크게 알고 직접 부딪히는 자기 양심에 가장 먼저 와닿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하나님 모시고 사는 이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 가치의 변동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고요하게 말씀의 이치를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따져보십시다. 나는 나 자신의 가치가 얼마짜리가 될까? 나는 세상적인 가치는 나의 학교 성적의 실력은 가치는 나의 영어 실력은 나의 한자 실력은 나의 국어 실력은 나의 역사 실력은 수학 과학 실력은 얼마짜리 될까? 이런걸 못하면 내 성경 실력은 내 신앙 실력은 얼마짜리 될까? 내 진리 깨달음의 실력은? 내가 하나님 모시고 사는 실력은 얼마짜리가 될까? 세상이 없으면 천국이라도 가져야되는데 세상도 없고 천국도 없으면 참 비참한 중에서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나무가 되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젊을때는 학생들은 세상 실력도 마련하여 가치를 마련하고 그 모든 것을 신앙으로 다 바꾸어 갈 수 있도록 어쨌든 자기 자신을 가치있게 만들어서 귀하게 아름답게 만들어가십시다.
제목: 사람의 가치와 가치의 변동
요점:
1. 존재의 가치
- 장사하는 사람이 물가와 시세를 모르면 장사는 실패
- 물가는 물건의 가치라는 말
- 모든 존재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고
- 가치 만큼 대우받고 대우하게 되는 것
- 모든 존재의 가치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
2. 가치의 변동
- 가치는 시세 따라 변동되는 것
- 시세라는 말은 환경과 형편이라는 말
- 전쟁이 나면 식료품 값이 크게 오르게 되듯이
- 금이라도 흔하면 싸게 되고, 물이라도 귀하면 비싸게 되는 것이 가치의 변동성
3. 사람의 가치
- 가치라는 말은 쓰임새, 쓸모 있다는 말
- 많은 사람에게 필요있고 요긴하게 쓰이며
- 많은 사람에게 도움되고 유익되는 사람이 사람의 가치
- 사람의 가치를 알고 자기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
4. 사람의 참 가치
- 이스마엘의 가치는 세상, 외모
- 이삭의 가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 사람의 참 가치, 영원히 변동 없는 가치는 하나님
- 지혜도 지식도 능력도 권위도 영광도 근원은 전부 하나님
- 하나님으로 가치 삼은 사람은 하나님의 지능과 권위가 함께하고
- 하나님으로 가치 삼은 사람이 하나님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무능자
-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같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만 가치 삼은 사람들
- 하나님으로 가치 삼으려면 첫째 조건이 죄를 짓지 않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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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본문: 창세기 16:7-14
제목: 사람의 가치와 가치의 변동
오전에 장사하는 것을 비유로 사람의 가치와 그 변동에 대해서 좀 생각해봤습니다. 상식적으로 장사하는 사람이 물가를 모르고 시세변동을 모르면 장사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을 겁니다. 어떤 종류의 장사든지 마찬가지일겁니다. 종목에 상관없이 업종에 상관없이 장사를 하는 사람은 물건을 사야 되고 팔아야 되고 물건을 사고 파는게 주업인데 그 물건의 가치를 모르면 살때도 비싸게 살 수 밖에 없을 수 있고 또 팔때는 헐하게 팔 수 있고 그리되면 자본금이라는게 한정이 있는 것인데 얼마 안가서 밑천이 다 드러나고 적자가 되고 그만 사업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장사를 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물가를 알아야 되고 또 물가를 안다할지라도 그 물가가 언제는 어떻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 시세변동을 알아야되지 그걸 모르면 또 장사는 잘 할 수가 없을 겁니다.
물가라는 말은 물건의 가치라 그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놓으신 모든 물건 범위를 넓혀서 모든 존재는 만드실 때 만드신 그 이유가 있고 또 용도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존재는 어떤 것이든 그만큼의 가치를 다 가지고 있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는 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어느 한 존재도 가치 없는 존재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가치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함 비싸고 좀 저렴한 그런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존재는 다 어느 하나도 가치가 없는 존재는 없고 다 가치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 만들어두셨고 그 존재가치는 하나님이 그만큼 정해놓으신 것입니다. 모래알 하나도 그만큼의 가치는 있는 것이고 주먹만한 돌멩이 하나도 그만큼의 가치는 있는 겁니다. 사람이 볼때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그게 보잘 것 없지 아니하고 그 물질의 그것에 용처를 만나지 못해서 그러하지 언제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는 겁니다. 심지어 쓰레기는 버려지는게 쓰레기지만은 그 쓰레기들도 잘 활용하면 다 쓸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쓰레기도 알고나면 못쓸것은 아마 없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기본적으로 존재를 만들어놓으시고 그 모든 존재에게 가치를 부여해 뒀는데 거기다가 인간이 이제 그 하나님이 만드신 그 모든 존재를 기본적으로 있는 가치를 인간이 발견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가공을 하고 제조하고 또 재가공을 하고 그래가지고 사람이 쓰기에 편리하고 유용하게 그렇게 만들므로 가치를 좀더 부여하는 그런 것은 있습니다. 그래서 돌멩이란 것은 원래 돌멩이의 가치가 있는데 저 산은 돌산인데 그 돌산이 돌로서의 가치가 있는데 그 돌을 사람이 장비를 들여서 캐다가 다듬어가지고 건축자재로 요긴하게 쓰니까 원래 돌멩이보다 가치가 훨씬 더 올라가는 그런게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그러하지요. 나무는 나무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를 사람이 베다가 가공을 해다가 이것도 또 목재로 요긴하게 쓰니까 원래 가치보다 더 올라가는 그런 또 가치가 되게 됩니다. 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존재는 하나님이 만드실 때 그 만드신 원래 존재의 그만큼의 가치를 부여해두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건데 그것을 인간이 가져다가 이렇게 저렇게 제조하고 가공하고 여러 형태로 만들어서 쓰면서 거기다 가치를 더 붙여서 그래놨는데 인간이 부여해놓고 붙여놓은 가치들은 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때가 변하면 그 가치가 전부다 변동이 되어진다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정해놓은 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정해놓은 가치는 다 인간의 어떠함에 따라 세상의 변동에 따라서 그런 가치가 다 변해진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다 가치가 정해져있고 또 그 존재의 가치만큼 그 존재는 대접을 받고 대우를 받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존재가치가 시세따라서 말하자면은 시세라는 말은 형편이고 환경이다 그말이지요. 환경에 따라서 형편에 따라서 존재가치는 변하게 되어진다. 원래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가치는 변하지 않는건데 그 존재를 인간이 쓰면서 인간 임의로 그 존재를 가치를 바꾸어나가는 그런 것이다 그리 또 말할 수 있습니다. 쌀은 사람의 주식입니다. 안 먹으면 안되는게 쌀인데 그 쌀이 워낙 많으니까 쌀은 그렇게 비싸지 않은데 만약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는 그런 때가 되면 쌀값이 굉장히 폭등을 하게 되어있고 또 전쟁이 나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그런 형편이 되고 지금 우리나라는 원래 농업국가였다가 지금 공업국으로 이제는 더 변해서 아주 반도체 초정밀적인 그런 것으로 자꾸 바꾸어져 나가는데 만약 전쟁이 나서 그런게 다 파괴되고 나면 당장 급한 것은 사람이 휴대폰 없어도 불편하지만은 살 수 있고 자동차 없어도 불편하지만은 살 수 있고 인터넷 없어도 불편하지만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으면 사람은 못 사는 겁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나서 그런 문제가 생겨지면 당장 폭등되는 것은 휴대폰 값이 올라가는게 아니고 자동차 값이 올라가는게 아니고 그런거는 값이 오히려 뚝뚝 떨어져버리고 쌀값이 아주 폭등을 하게 되는 겁니다. 쌀 없으면 사람이 못 살고 전쟁이 터지면 쌀을 못 구하니까 양식. 그래서 요즘은 또 그것도 식어졌겠지요. 얼마전에 서울에서 누군가 실수로 그랬습니까 아니면 북한에서 비행기 한 대가 실수로 넘어왔는데 전쟁났다 그래갔고 반공 싸이렌 울리고 그래가지고 이거는 실제 상황이라고 한 몇 번 방송하고 나니까 그만 수퍼마켓에 라면이고 쌀이고 식료품이고 모조리 다 동이 났다 그러지요 그 당시 한번 난리가 한번 난적이 있었습니다. 그거는 사람들이 전쟁이 나면 자동차를 사는게 아니고 가전제품 사는 것이 아니고 전쟁이 나면 당장 먹을 게 문제니까 그걸 먼저 구하는 것은 그거는 뭐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이 평소에는 그렇지 않아도 구하기 어려운 그런때가 환경이 형편이 변해지면 값이 올라간다 그말입니다. 그러다가도 그게 또 많아지고 구하는 것이 쉽게 되면 값이 떨어집니다. 솔로몬 시대에 은을 평지에 돌같이 흔하게 만들었다. 아마 보나마나 솔로몬 시대에 은값이 많이 떨어졌을 겁니다. 안봐도 그거는 나오는 거지요. 아무리 비싼거라도 그게 흔하고 많아지면 값은 떨어지게 되있고 아무리 평범한 것이라도 그걸 구하기 어렵게되면 값이 올라가는 겁니다. 사람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게 뭡니까? 우리 사람이 가장 흔하게 사용하면서 없으면 안되는 것이 물 아니겠습니까 물. 물은 안 먹으면 죽거든요 못사는데. 그런데 사람의 목숨과 직결된 그 물이 가장 참 하나님께서 적당하게 그렇게 적절하게 만들어놓으셨지요. 만약에 물 구하는게 그만큼 어려우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아무리 금이 좋지만은 물을 금처럼 그렇게 귀하게 만들어놓으면 사람이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물은 아주 뭐 흔하디 흔한게 물입니다. 물쓰듯 쓰는게 물이니까. 그러니까 물값은 아주 싸고 우리 나라는 또 세계적으로도 우리 나라 물값은 아주 싸다 그러지요. 그런데 이 물이 저 중동 아프리카 저런데 가보면 물 없는 사막지역에 가면 물값이 기름값보다 경우에 따라 금값보다 더 비쌀수도 있다 그말입니다. 그런걸 가리켜 시세라 그리 말하지요. 모든 가치라는 것은 모든 존재의 가치라는 것은 그게 고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시세 따라서 변동이 되어진다 그러면 우리가 두가지를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장사하는 사람만 그런게 아니고 이것이 인생살이도 그런거니까. 장사하는 사람은 물가 모든 물건의 가치를 알아야 됩니다. 고물상에 가면 말그대로 고물상은 만물상입니다. 그 고물 만물상은 집집마다 다 버려놓은 거 못쓰는 폐기물을 다 수집해다가 잔뜩 쌓아놨지요. 그래가지고 이제 고물로 말그대로 파는건데 그런데 그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고물은 고물인데 그 고물들을 멋모르고 버린 그런것들이 있는데 눈이 밝은 사람 아는 사람들은 보고 책이라든지 그림이라든지 도자기라든지 또 시계라든지 이런것들이 아주 오래된 옛날 엽전이라든지 이런것이 예를 들어 몇백년전에 것이 그런게 있는데 사람 보기에는 쓸모없는 고철이니까 고물상에 갖다버렸는데 이걸 아는 사람은 세상에 이거는 요거 하나가 돈이 몇천만원짜린데 몇억짜린데 그런것도 있을수가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물건의 가치를 모르면 사람이 그 물건에 대한 정평정가를 하지 못하게 되고 정가를 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그 사람은 그 물건은 바로 자기가 사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자주 예를 들어서 다 아시지만은 아주 희귀한 값비싼 단박문 어서가 집안 가보로 전해져내려오는데 세월이 지나니까 이 무식한 아들이 그 어서를 볼 줄 모르니까 시골에서 겨울에 방도 춥고 이러니까 그 어서를 떼다가 어서가 뭔지 아십니까 학생들? 어학서적을 말하겠지요. 병 고치는 치료법. 말하자면 동의보감 같은 거 이런거 말입니다. 지금은 흔하지만은 옛날엔 귀할땐데 그런걸 갔다가 집안의 가보로 내려와서 그거대로만 치료법을 알고 그대로만 하면 그만 왠만한 병은 다 고치는 그런 가본데 이걸 오랜 세월 전해내려오니까 그만 제대로 관리가 안되고 전달이 안되서 무식한 아들이 겨울에 방이 추우니까 어서를 떼다가 방문에 문풍지 종이로 다 발라놨다 말이지요. 그래 몰랐는데 그걸 아는 사람이 어째 지나가다가 그 집에 들렸는데 보고 깜짝 놀라서 그걸 그 종이 값의 몇배를 주고 사가지만은 그게 몇배만 되겠습니까? 문종이값의 몇백배 몇천배도 더 되는 그런 비싼건데 모르니까 그냥 휴지로도 쓰고 걸레로도 쓰고 오만케 다 쓰는데 가치를 아는 사람은 아는만큼 귀하게 쓸 수가 있는거지요. 사람이 모든 물건의 가치를 아는만큼 그 물건을 바로 정평정가 할 수 있고 바로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첫째 기억할것은 모든 존재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가치가 있는거니까 우리는 가치를 아는 우리가 되야 되겠다. 모든 존재는 가치가 있으니 그 존재만큼의 가치를 알려고 노력을 해야 되겠고 그다음 두 번째는 모든 존재 가치는 고정되어있지 아니하고 시세 따라서 변동이 되어진다는 것도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되겠습니다. 형편 따라서 환경 따라서 또 경우에는 장소 따라서 다 환경이니까 형편과 환경 따라서 모든 가치는 변동이 되어진다. 그러니까 어제 비쌌던것이 오늘은 아주 헐해질수 있고 이거 참 별로 위험한 그런 것인데 여기 계신분은 안하리라 생각을 하고 또 주의도 하고 그걸 알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주식이지요 주식. 주식 같은 이런것은 주식시세라는 것이 있고 그래서 그 시세를 읽을 줄 아는 사람같으면은 돈을 많이 벌 겁니다. 그런데 그게 사람 생각대로 그 시세가 그대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래 합니까? 올라갈 줄 알았는데 툭 떨어져버리고 또 내릴 줄 알았는데 올라가버리고 그러니까 그거 읽지 못하니까 주식 하는 사람치고 안 망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허가낸 도박이라 그러고 그거는 돈이 없는 자본이 적은 소자본의 사람은 반드시 망할 수 밖에 없도록 구조가 그래 되어있답니다. 그러니까 아주 돈이 굉장히 많은 대자본가들만 그 주식을 하는거지 돈 없는 사람들이 주식 사고 팔다가는 어지간한 밑천가지고는 반드시 망한답니다. 안 망하는 사람이 아예 하나도 없다 보면 될만큼 그렇게 되어지는 그것은 시세를 읽을 수 없으니까 어떻게 변동될지 모르고 또 인위적으로 장난을 치고 있으니까 모른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모든 가치는 시세따라 변동이 되어진다. 고정되어있지 아니하다. 이걸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되겠습니다. 두 가지를 기억을 하면서 그런데 사람이란 것은 모든 물건들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고 사람도 가치가 있지요. 원래 사람이란 것은 그 사람 자체 기본적인 그 가치가 있는데 거기다가 자기가 자기를 얼마만큼 가치있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가치는 정해질 겁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태어나면 사람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제 갓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사람입니다. 그게 뭐 젖이나 빨딱빨딱 먹고 먹고 싸고 자고 울고 그게 전부지요 그 아이가. 그렇지만은 그거는 사람이니까 이게 점점 자라가지고 어떻게 쓸모있는 귀한 그런 가치가 될지 모르니까 소망을 가지고 또 사람이니까 아주 귀하게 그렇게 양육을 해 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점점 자라갈수록 어릴때는 부모님들의 양육에 따라 어느 정도 장성하고나면 자기 노력과 의지에 따라서 자기라는 사람의 가치는 마련이 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가치있게 만들고 가치있게 써야되겠고 꼭 같은 물건을 줘도 어떤 사람은 그 물건을 아주 가치있게 효력있게 그래 쓰는 사람이 있고 같은 물건을 줘도 그걸 못쓰는 사람이 있다 그래 말하지요. 우리 사람도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치있게 그렇게 만들면 빗고 깍고 다듬어서 가치있는 사람을 만들면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자기 자신을 그냥 그만 던져두고 버려두면 가치없는 사람이 되는데 가치라는 말은 쓸모가 있다 그말이지요. 쓸모있는 사람. 쓸모있다 그말은 필요한 사람. 어디를 데려다놔도 무엇을 해도 그 사람은 할 줄 알고 쓸모있는 필요있는 도움되는 유익된 그런 사람. 지식이 필요하면 그래서 지식이란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수많은 존재가 있고 그 수많은 존재들을 사람이 사용을 하면서 활용하면서 살아가는데 그 수많은 존재들과 그 존재들의 활용법을 모르면 있어도 뭔지 모르겠고 또 알아도 활용할 줄 모르면 못쓰니까 그러니까 그것을 배우는게 전부 사람이 공부하는 모든 지식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든 공부는 간단하게 말해보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를 무엇인지를 그것을 아는 것, 그다음 그것에 활용법을 아는 것. 이거 배우는 것이 모든 공부가 아닐까 그래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그런것도 사람이 자꾸 배워서 또 알아가지고 많이 배워서 아는만큼 사람은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뭡니까? 아는 것이 힘이고 알려 그러면 배워야되겠지요 공부해야되겠지요. 그러니까 자기를 가치있게 만드는 사람은 쓸데없는 일, 노는 것은 만고의 쓸데없는 일입니다. 휴대폰 가지고 게임하고 음악 듣는 것은 천하에 쓸모없는 것이고 오히려 그거는 백해무익입니다. 또 영화도 보러 다니고 연애걸고 놀러다니는 것은 천하에 못쓸 짓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어린 청소년들 청년 학생들이 인간의 인식에 사고방식 가치관이 바로 박혀있는 그런 사람은 자기를 만들어나가되 쓸모있는 자기로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뭘 하나를 해도 글씨 쓰는 연습해서 글을 좀 잘 써보자. 한자를 좀 열심히 배워서 한자를 익혀보면 이게 쓸모있을랑가. 영어 공부를 많이 해두면 영어가 쓸모있을란가. 중국어를 많이 해두면 그게 또 쓸모있을란가. 아니면 또 컴퓨터의 활용법을 배우면 그게 또 쓸모있을란가. 오만것을 다 알아가지고 지금 시대는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이고 내 희망이 무엇인데 내가 앞으로 그걸 할려면 어떤 것을 배워야되겠다. 그래가지고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때 보면은 그 회사에 필요한 사람 그 회사에서 써먹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뽑아야되는데 그런 실력을 마련하면 다 뽑혀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많은 청소년들 청년들이 시대가 변하고 정부에서 복지정책을 뭐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만은 또 좁은 범위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잘못해놓으니까 전부 공짜로 먹여주는 이게 습성이 되놓으니까 일을 하려니까 대고 머리 쓰려니까 머리 아프고 이러니까 그만 놀고 먹는 그 연구만 하고 그래가지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지 참 문제는 문젭니다. 사람은 그런 공짜가 다 있고 그래도 자기 자신을 쓸모있는 사람 가치있는 사람 만드는 것은 그런것에 눈을 들이지 아니하고 자기 실력을 자꾸 길러 나가는 겁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되겠다. 쓸모있는 사람을 만들어가야 되겠다 하는 겁니다. 자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나 자신을 가치있게 만듭시다. 어떤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요? 어떤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요? 가치있는 사람은 대접을 받고 대우를 받습니다. 돈이란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따라가고 영광이란 것 존귀라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따라갑니다. 이거 좀 오해할까 싶어 표현을 안쓰려 그랬는데 사람의 가치는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 정해지는 거지요 실력. 실력 없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 겁니다. 아무리 미꿈하게 잘 생겨도 머릿속에 들어있는게 없으면 쓸모가 없고 가치가 없는 겁니다. 글 좀 읽어보시지요. 한글 줘도 못 읽으면 어디 쓰겠습니까? 한글 못 읽으면 그러면 기술은 있겠네. 그러면 이거 한번 만들어 볼랍니까? 모릅니다. 그것도 모릅니까 그러면 청소나 한번 해볼랍니까? 청소도 안해봐서 못하겠습니다. 이래 쓸면 되는데. 힘들어 못하겠습니다. 그런 인간을 어디 쓰겠으며 누가 데려다 쓰겠습니까. 아이고 제발 좀 저리 좀 가 주십시오. 오지 말아 주십시오. 귀찮아 죽겠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끼치고 해만 끼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서 되겠습니까. 한가지 실력보다 두가지 실력. 두가지보다는 열가지 실력. 열가지보다는 수십가지 실력. 그러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거 생각하면 우리 교회 학생들 청년들은 안그런 사람도 있겠지만은 한편으로 탄식이 됩니다. 요즘 바깥 세상에 나가보면 소위 스펙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 뭐 어쨌든 자기 실력 마련하는거지요 그게 전부다. 그거 마련한다고 모두 잠을 안자고 밥 먹는 시간 아껴가면서 그렇게 모두 애를 쓰고 노력합니다. 취직하려고. 자기를 쓸모있는 사람 만들려고. 그러니까 벌써 초등학생도 똑똑한 아이들은 그리하고 중학생이 되면 벌써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합니다. 눈에 불을 켜고 지식을 습득하려고 배우려고 알려고 애를 씁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벌써 이거는 뭐 잠 안자고 설치고 인생을 걸고 설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많은 학생들은 그런데 전혀 관심이 없지요. 그러니 예수 믿는 거 하나 때문에 귀하지 그거 아니면 참 세상에 나가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사람들이 되지 않는가. 참 큰 문제입니다. 그런 세상 실력들이 예수를 안 믿고 가지니까 그게 우상이다 가치없다 그래 말하지 예수 믿는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실력 가지면 그만큼 더 귀하고 가치있고 쓸모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데 참 귀합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많이 가지면 하나님을 얕보고 시프게보고 천국을 무시하고 또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면 세상을 또 너무 무시해서 그런지 힘들어 그런지 그걸 다 안해버리고 이러니까 다 이리저리 치우쳐서 무익한 자가 된다는 말씀이 그대로 맞아떨어집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 쓸모있는 사람. 백목사님 생전에 서부교회 교인이 사천명입니다. 그중에 장년반이 숫자가 삼천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한번씩 탄식하시면서 하시는 말씀. 일을 시켜야 되는데 사람이 없다 그럽니다. 일을 시키고 싶은데 사람이 없어 못 시킨다. 참 조그만한 교횐데 그 뭐 서부교회에 비하면 우리교회는 백분지 일은 될런지. 그런 교횐데 우리 교회도 제가 한번씩 생각해보면 뭘 시키고 싶어도 부탁을 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습니다. 시간이 있는 사람은 물어보면 못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빠서 못하고. 그러니까 모두 자기를 실력있게 쓸모있게 필요하게 그렇게 만들어두면 가치라는게 올라가고 가치가 있는 사람은 대접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있는데 실력 마련 안하니 가치없고 쓸모없으니 가치없고 그러니 멸시천대조롱이나 받고 그리 되는것이 믿는 사람들중에 대단히 많다 그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 말하자면은 쓸모있는 사람, 가정에서도 그 아들 없으면 안되겠다 그 사람 없으면 안되는 사람. 다니는 직장에서도 없으면 안되는 사람. 친구들 관계에서도 없으면 안되는 사람. 교회에서도 없으면 안되는 사람. 참 쓸모있는 어디든지 귀한 쓸모있는. 글을 쓰는데도 읽는데도 사람을 만나는데도 일을 해결하는데도 경제관계도 인인관계도 복잡한 법적문제도 또 무슨 사고처리에도 그런 참 실력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쓸모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귀하지요. 그런게 많이 가질수록 사람은 가치가 있는 것이고 가치있으면 그 사람은 대접을 받게 되는 겁니다. 귀하신 몸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을 자기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으로 먼저 이 세상에서도 쓸모있는 사람 뭔가 할 줄 아는 사람, 할 줄 안다는 말은 오만게 다 있지 않습니까. 할 줄 아는 것. 그러니까 학생들은 부지런히 한눈 팔지말고 머리 싸매고 공부를 해야 됩니다. 공부 안하는게 죄다 이 말을 제가 여기서 수도없이 많이 했는데 우리 학생들이 많이 그러니까 그런겁니다. 공부를 학생들은 공부 안하는 거는 죕니다. 게을리 하는 거는 죄고. 공부 잘하는게 바로 신앙이다 그리해도 안 틀릴만큼 우리 학생들이 대부분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한눈 팔지말고 부지런히 영어단어도 외우고 한자도 공부하고 또 다른 쓸데없는거는 몰라도 책도 좀 필요한 건 많이 읽고 신문도 좀 많이 보고 그래가지고 실력있는 사람 쓸모있는 사람 그래서 가치있는 사람이 되야되겠다. 자기 자신을 가치있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가야 되겠고 그다음 하나 기억할 것은 가치있는 사람 만들되 그런 걸 만드는 동시에 그 가치가 변동되는 것도 같이 생각을 해야 됩니다. 나라는 사람을 이런 사람을 만들면 이 가치있는 사람이 이것이 언제까지 계속 되어질 것인가? 이 가치가 언제까지 유지가 될 것인가? 시대가 변하면 다 변하지 않을 것인가? 오전에 말씀드렸지만은 우리 000집사님 자개 놓는 실력은 제가 아는대로 우리나라 무형문화재급입니다. 아주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고. 그러니까 그런 솜씨를 가졌으니까 그때는 안봐도 돈을 많이 벌었을거라 그말이죠. 그 기술이 쓸모있을때 그때는 아주 귀하신 몸이 됐을것이고 아마 돈도 많이 받았을 것이고 많이 벌었을 겁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서 그걸 안쓰니까 지금은 자개 기술은 하나의 우리나라 전통의 보존차원에서는 필요할런지 몰라도 활용하지 않으니까 그 기술이 그만큼 지금은 가치가 떨어진다 그말이지요. 시대가 변하면 뭐든지 다 그런겁니다. 옛날에 있었던 그런 직업들 기술들 없어진 기술이 수도없이 많고 새로운 기술이 자꾸 생겨지지요. 그게 전부 사람의 세상적인 가치 변동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나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을 만들되 하나 더 기억할 것은 내가 지금 나를 가치있고 쓸모있는 사람을 만드는데 이런 나를 만들면 이 가치가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것인가 이걸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나가야되겠다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의 마지막 최종이란 것은 언젠가? 다시 말하면 인간 가치의 변동에 최종 마지막이 언젠가? 그거는 죽음이란 것이 있으니까 내가 죽어도 이 가치가 변하지 않는 가치, 내가 죽었을때도 내가 마련하고 만든 나 자신의 가치가 변하지 않아야 되겠고 또 부활이 돼서 주님 앞에 부활해도 심판 앞에 가도 영원한 나라에 가서도 내가 세상에서 마련하고 만든 나 자신의 가치가 변동되지 않고 유지되는 거기에 가치를 두고 우리 자신을 만들어가야 되겠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나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가는데도 세상적인 그런것도 다 쓸모가 있으니까 그러면 세상에서 쓰여지는 가치를 믿는 사람도 만들면서 세상에서 쓰여지는 그 가치를 믿는 사람은 그 가치를 전부 활용을 해서 더욱 자신을 영원한 가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할 노력이다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래가지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람이 많이 배워서 많이 배워 광문다학을 해서 많이 배워서 머릿속에 온갖 종류의 지식을 다 넣어놨습니다. 온갖 종류의 지식을 어학도 넣어두고 과학도 넣어두고 역사도 넣어두고 또 예능도 체능도 익혀두고 넣어두고 오만 종류 지식을 다 머릿속에 자연도 넣어넣고 인문학도 넣어놓고 오만걸 다 넣어놨습니다. 넣어놨는데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아주 실력있고 쓸모있어 가치있는 사람이 되어졌는데 그 가치를 마련하는게 귀한데 그것이 만약에 그것만으로 끝나서 내가 죽고 난다음에 머릿속에 든 거, 몸에 익혀놓은 이 가치가 쓸모없는 가치가 된다면 그때 어찌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가치마련은 이 세상에서는 대접받고 대우받고 귀하게 쓰였지만은 죽음으로서 그 사람의 가치는 끝나는 겁니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도 변하고 가치라는 것은 환경따라 형편따라 변해진다는 것을 늘 기억을 하고 우리는 가치를 마련해야 되고 그러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현재 내가 마련하는 내 실력이 이게 앞으로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니까 그게 어떻게 변동될지 모르니까 그게 참 어려운 문젭니다. 옛날에는 기술 하나만 익혀놓으면 그 기술이 그래도 세상 변화가 그렇게 막 급하게 변하지 않으니까 적어도 1-20년, 2-30년 자기 평생에는 먹고 살 만큼 그리 되니까 기술 하나만 익혀놔도 된다 그리 됐는데 지금은 익혀놓은 그 기술이 언제 어떻게 어느 세월에 갑자기 변해서 쓸모없는 기술이 될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수많은 종류를 사람들이 다 젊은 사람들이 마련하려고 무진 노력을 하고 거기 시간과 노력과 자본을 굉장히 많이 투자를 하지요. 다 귀하고 가치있는 일인데 그런데 그리 하면서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이렇게 마련하는 내 가치가, 나 자신의 머릿속에 내 몸에 익혀둔 이 실력 이 가치가 이것이 내가 늙어져도 이대로 쓰여질 것인가. 마지막 최종적으로 죽음이라는 과정을 만나도 이 가치가 유지될 것인가 죽음으로 끝날 것인가를 우리는 생각 안할 수가 없는 거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에 성경적인 교훈으로 논리적으로 이론으로만 할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의 믿음이란 것은 죽음과 그 너머 무궁세계까지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그 날을 바라보며 사는 우리들이니까 그때를 연관시켜 생각하면서 그때가 되어도 변동되지 아니하고 가치가 줄어지거나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자신으로 가치를 만들어가야 되지 않을까.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인생의 죽음 너머까지 마련할 가치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겁니다.
여기 본문에 하나님께서 하갈에서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이 이스마엘하고 연결됩니다. 많은 자손이 나게 하겠다 그런데 하나 생각할 것이 이스마엘에게도 많은 자손이 번성한다 하셨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 많은 자손을 약속을 하셨는데 어떤 차입니까? 아브라함에게도 내가 너로 해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면 복의 근원이 되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겠다 그런 약속이 있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있습니다. 이스마엘도 있습니다. 같은 자손의 번성인데 어떤 차이 있겠습니까? 이스마엘에게 하나님이 주신 자손 번성의 약속은 이거는 세상적입니다. 이스마엘은 말하자면은, 이삭은 사라의 몸에서 난 원가지고 이스마엘은 첩의 하갈의 몸에서 난 곁가지다, 이게 신앙입니다. 육체적인거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신앙적으로.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주셨는데 말하자면 에서에게 준 복과 같습니다. 에서가 많은 복을 받았지만은 에서가 받은 축복은 전부다 세상복이고 육체적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세상적으로 남자답고 용맹하고 실력있고 또 아주 잘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야곱과 에서가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빼앗고 도망을 쳤고 다시 만났을때 야곱이 에서에게 많은 선물을 주니까 에서가 말하기를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까 네꺼는 너한테 둬라. 그 말 속에 나타나지 않아도 에서의 마지막 결과보고 신앙성향을 보면 야곱아 너 하나님 하나님 그렇게 좀 좁게 어찌보면 비겁하게 못나게 곱딱스럽게 그렇게 하나님 노래 부르고 하나님 축복을 다 빼앗아 가서 네가 다 가져가고 그랬지만은 나도 보니까 이렇게 부자가 됐다. 말하자면은 나는 하나님이 없어도 이런 부자가 됐다 되더라. 꼭 하나님이 아니라도 되더라 그말이죠. 그게 에서라는 사람의 신앙성향입니다. 그게 에서의 세상복이면서 불행입니다. 말하자면 이스마엘이 받은 복이 그런겁니다. 자손이 많은데 이스마엘의 많은 자손은 전부 세상 육적인 자손이고 함의 자손들이 다 잘난 사람들입니다. 함의 자손들이 다 잘나고 아주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들인데 그게 전부 저주거든요. 이스마엘이 받은 복이 자손 같은 자손인데 세상적이고 들나귀같이 된다는 것이 백목사님 해석을 보면은 요즘으로 말하면 아주 미꿈하게 잘생긴 외모라는 말입니다. 키도 크고 또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또 아주 머리도 좋고 씩씩하고 용감하고 활달하고 활동적이고 이런 아주 잘난 외모를 가진 이게 들나귀처럼 생겼고 또 모든 사람을 친다 그랬으니까 전투력이 있어서 용맹하고 싸우면 이기고 이런 사람이 이스마엘이고 그 자손이고 하나님께 받은 복인데 그 복이 전부다 세상복입니다. 그러면 이스마엘은 하갈은 요래 복을 받았고 그의 가치관은 거기 있고 그러므로 이스마엘의 가진 가치관은 전부 외모고 세상적입니다. 이게 그의 가치고 반대로 이삭이라는 사람은 그는 성경 창세기 26장에 보면 그 사람은 욕심도 없고 그래서 그냥 구별없는 그런 사람은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섭리를 믿으므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니까 하나님 뜻대로 되리라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 맡겨두는 그런 넓은 신앙을 이삭은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을 손해보고 자기 명예라든지 위신이라든지 권위 이런걸 손해볼지라도 이삭은 하나님을 안빼앗기려는 그 신앙. 하나님을 손해보지 않으려는 신앙 또 하나님의 뜻을 놓지않으려는 그 신앙 이게 이삭의 가치고 이삭의 신앙입니다. 이삭이라는 사람이 가진 가치 이삭이라는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은 하나님을 알았고 하나님을 모셨고 하나님을 닮았고 하나님을 모신 이삭이였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한 이삭이였기 때문에 그게 이삭의 가치고 그러니까 이삭이라는 사람 야곱이라는 사람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빼놓고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다윗이라는 사람도 오로지 하나님이 전부였고 주님 떠나면 아무것도 없는 그 사람이 다윗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은 좀 손해봐도 돈이 있어야 되겠고 사람이 있어야 되겠고 실력이 있어야 되겠고 지식이 있어야 되겠고 이 세상 외모가 있어야 되겠고 이 사람이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가진 가치관 그 사람이 그런 가치관을 가졌으면 그런 것을 마련하게 될 것이고 거기 가치두니까 그 사람이 되니까 이스마엘의 가치는 세상이며 외모고 이삭의 가치는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 말할 수 있고 그렇다면 우리들이 가치 둘 곳은 어디 둘 곳인가? 우리의 가치 사람의 참 가치 참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이 세상 재물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돈이 많은 사람이 가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최종적인 가치, 변동되지 않는 가치는 아닌 것이고 실력있어서 어느 회사에 취직을 해도 쉽게 취업이 되고 대접받고 대우받는 그런 사람이 가치있지만은 그 가치가 마지막 최종적인 변동되지 않는 그런 가치는 아닌 것이고 모든게 다 그러합니다. 최종적으로 영원히 가도 변동되지 않는 그 가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만큼 아느냐, 그 아는 하나님을 얼마만큼 모셨느냐. 얼마만큼 그 하나님을 자기가 닮아서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되어졌느냐 여기에 따라 사람의 가치는 정해지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가치를 정해둔 것이고 그리고 그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얼마만큼 알고 준행했느냐에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하나 더 들어가보면 왜 하나님이 인생의 가치가 되어질까. 경험적으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멀리갈 것 없이 이게 좀 차원이 다르겠지만은 지금하고 약 오백년전하고 천년전하고 안 믿는 사람 불택자들이라도 하나님과 그들의 거리는 원래 없는 것이지만은 불택자들 불신자들이라도 지금 불신자 불택자하고 오백여년 천년전에 불신자 불택자하고 하나님의 거리가 차이가 있습니다. 좀 논리적으로 의문이 생길수도 있겠는데 제 생각에 확정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지만은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안믿는 불택자 불신자들하고 오백여년 천년전에 안믿는 불신자 불택자들하고 하나님과의 거리가 차이가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백년전 천년전 사람들은 안믿는 사람이라도 지금 사람만큼 그렇게 무지하거나 어리석거나 미련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몰라도 신을 알고 섬기려고 애를 쓰고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어느정도까지 했고. 그런데 지금은 더 멀어지니까 세월이 지나서 더 멀어지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보면은 이거는 뭐 사업가고 정치가고 잘난 사람이고 유식한 사람이고 할 것없이 이거는 하나님 없는 인생의 하는 짓을 보면은 참 어리석고 무지하고 미련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신 그대로 사람이 비록 존귀한데 처하나 깨닫지 못하면 멸망할 짐승 같도다. 꼭 그대롭니다. 짐승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 하나님 없는 인생이다 그말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셨으니까 하나님 없는 사람만큼은 아닐지라도 하나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 모시고 동행하는 그 동행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자기 정도에서 그래 살때하고 하나님하고 멀어질때하고 하나님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때하고는 완전히 다른 차이가 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든 지식의 근본이며 지혜의 근본이고 모든 능력의 근본이고 또 권위의 근본이고 영광의 근본이니까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그분과 함께 있으면 그분에게서 모든 지식이 그에게 나오고 또 지혜가 나오고 능력이 나오고 권위가 나오고 영광이 나오고 대우가 나오고 이런게 나오는데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멀어지고 끊어져 버리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하나님으로 인한 지능이 없어지니까 무지하고 무능하고 어리석고 또 멸시천대조롱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다윗이라는 사람이 위대하지만은 하나님과 끊어질때 다윗은 아무짝에도 못쓰는 사람 참 무지무능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모셨을때 믿음의 사람이 되지만은 만약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떠났다면 그는 참 그래서 믿는 사람은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어디다 쓰겠는가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밖에 버리워서 사람에게 밟힌다 말씀하신대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 모시고 살면은 천하에 귀한 사람이 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잊어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가장 복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모든 것 다 뒤로두고 기본적인 것만 참 하나님께서 필요한 그래서 백목사님은 늘 자랑이 초등학교 5학년입니다. 그게 자랑인데 최종적으로 말하면 고려신학교를 졸업했으니까 그리 된다 할지라도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부법으로 말하면 대학 졸업한 분이 되겠죠 지금 그게 승격이 됐으니까. 그래도 당신은 정규 중고등학교는 안했었거든요. 그러니까 늘 초등학교 5학년 학벌이 전부고 그래서 성경만 보고 자연만 보고 하나님과 기도하고 직접 연결해서 모든 걸 깨달았고 배웠다 그게 평생의 자랑입니다. 그런 분일수록 다윗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습니다. 사무엘도 그랬고 그런 분일수록 하나님과 동행하면 지능이 능력이 탁월하게 나타나고 그런 분들이 하나님과 끊어져버리면 참 무능한 그런사람 무지한 사람이 되고야 마는 겁니다.
우리는 그게 가장 귀하고 복있는 사람인데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기독교라는 것은 평가적인 도라 그래 말합니다. 평가적이라 말은 가치를 따져보고 살펴보는 걸 말합니다. 보다 더 어느 것이 귀하냐 가치있냐 쓸모있느냐 이걸 따져가지고 가장 귀하고 가치있는 그걸 찾아가는게 기독굡니다. 믿음의 대상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있을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은 만에하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보다 더 전능자 전지자 완전자 자존자 하나님 외에 또 누가 있는가 이걸 또 찾아보고 그게 만약에 있을수가 없지만은 하나님 아닌 또 다른 존재가 하나님보다 더 모든 면에 더 하나님 같은 그런 존재가 있다면 그리 가는게 기독굡니다. 없으니까. 그래서 모든 존재를 다 따져봐도 자존하시고 완전 전지 전능 영원 불변 하나님은 한분 그분뿐이니까 그분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고 영원한 천국이 인생 세계에 마지막 최종이니까 그 천국을 바라보는 것이고 기독교의 구원 주님 대속이 하나님 주신 구원역사의 전부고 이게 가장 귀한 거니까 그 대속을 우리 전부로 삼아서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좋은거니까 그 분 형상 닮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겁니다.
사람이 약하니까 가다가 죄도 짓고 넘어지기도 하고 온갖 실수 다 하고 하지만은 그래도 가치관은 바로 가지고 가치관을 바로 가질때 자기의 인생의 방향이 바로 정해지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사람은 가다가 실수하고 넘어질지라도 가다가 혼돈하지 아니하고 주저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냥 가기만 가면 되는 겁니다. 방향을 정하고 목표를 정해놨으니까. 그런데 이게 정해지지 않으면 이게 정해지지 않으면 인생의 갈길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것이 다 가치관을 어떻게 가지느냐 거기서 다 결정이 되는 겁니다.
이러니까 하나님 한분으로 우리 가치의 전부를 삼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그걸 우리 행동의 가치로 삼아서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모시는 것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그 뜻을 준행하는 것 이걸 위해서 어떤 것을 손해볼지라도 이거는 양보하지 않아야 되겠다. 이것과 연결되는 것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모시기 위해서 그분 닮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준행하려 하다보니까 제일 첫단계가 뭐냐? 실질적인 제일 첫단계는 뭐겠습니까? 실질적인 첫 단계가 뭐겠습니까? 바로 죄를 짓지 않는 겁니다. 죄를 멀리하는 것. 그러니까 오일밤 예배때 그랬습니까? 한달 죄를 안 지으면 자기대로 죄를 한달 안 지으면 자기 주관이 압니다. 느껴보셨습니까? 한달만 죄를 안지으면 자기 속에 주관적인 평안이 있고 담대가 있고 기쁨이 있고 입에서 찬송이 저절로 나옵니다. 한달동안만 죄 안짓고 살아보십시오. 한달만 죄짓지 아니하고 그대로 살면 자기속에 주관적인 평안과 기쁨과 담대가 나옵니다. 지능도 나옵니다. 삼개월을 죄를 안 지으면 그 사람의 지능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걸 사람들이 보게 되고 알게 됩니다. 1년만 죄를 안 지으면 주변 사람을 변화시키고 3년만 죄를 안 지으면 자기 주변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능력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다 살다가 죄짓고 살다가 죄짓고 온갖 종류로 그러니까 되다 말고 또 후퇴했다 또 올라가고 그러니까 계속 반복입니다 반복. 이걸 우리가 좀 돌이켜서 어쨌든 하나님을 가치로 두고 삼고 그분 알고 모시고 그분 닮는 이 생활 그분의 뜻을 알고 준행하는 이 생활 이것의 첫 걸음은 자기 현실에서 자기가 가장 또렷하게 알고 확실하게 알고 크게 알고 직접 부딪히는 자기 양심에 가장 먼저 와닿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하나님 모시고 사는 이 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 가치의 변동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고요하게 말씀의 이치를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따져보십시다. 나는 나 자신의 가치가 얼마짜리가 될까? 나는 세상적인 가치는 나의 학교 성적의 실력은 가치는 나의 영어 실력은 나의 한자 실력은 나의 국어 실력은 나의 역사 실력은 수학 과학 실력은 얼마짜리 될까? 이런걸 못하면 내 성경 실력은 내 신앙 실력은 얼마짜리 될까? 내 진리 깨달음의 실력은? 내가 하나님 모시고 사는 실력은 얼마짜리가 될까? 세상이 없으면 천국이라도 가져야되는데 세상도 없고 천국도 없으면 참 비참한 중에서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나무가 되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젊을때는 학생들은 세상 실력도 마련하여 가치를 마련하고 그 모든 것을 신앙으로 다 바꾸어 갈 수 있도록 어쨌든 자기 자신을 가치있게 만들어서 귀하게 아름답게 만들어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