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9-주일오후(요4:20-26)
하나님 섬기는 예배생활2013-09-29조회 513추천 33
본문: 요4:20-26
제목: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
요점:
1. 하나님을 향한 지식
-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
- 다 알 수 없으나 알려 주신 대로는 알아야
- 본체적, 활동, 역사적으로 8가지를 말했지만 하나님은 무한
- 하나님의 세밀, 다정 다감, 자비, 긍휼, 두려움, 복수, 잔인, 정확, 진실 거룩 등
- 만물을 보아 하나님의 신성을 알아야
- 하나님 알기 위해서 쉬지 않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연구해야 할 것
2. 하나님을 아는 신앙
- 신앙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는 것
- 하나님 바로 섬기려면 바로 아는 것이 전제
- 하나님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것
- 하나님을 바로 알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며
-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며
-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
-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
3.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
- 하나님 섬기는 가장 중요한 생활은 예배 생활
- 예배는 보이는 예배와 보이지 않는 예배
- 보이는 예배는 말씀, 찬송, 기도로 드리는 예배
- 보이는 예배는 형식이지만
- 사람은 육을 가졌으므로 하나님이 명하셨고
- 비록 형식일지라도 하나님 섬기는 예배이므로
-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
- 날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은 주일날
- 보이지 않는 예배는 성도의 모든 생활
- 성도의 모든 생활은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 눅9장에 인간 최고의 사은인 부친 장례도, 최고의 책임인 가족 작별도
- 하나님 섬기는 예배로 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말씀
- 예배 아닌 생활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것이 성도의 생활
4.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 하나님은 영이시니
- 영이라는 말씀은 무형의 완전자라는 의미
- 가장 높으시고 가장 크시고 가장 두렵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시니
- 하나님 섬기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마땅
- 신령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 진정은 사람이 자기의 최고 최귀를 드리는 것
- 하나님이 함께하시기까지 자기를 다 들이는 것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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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929 주후
요한복음 4:20-26
유대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거쳐가는 도중에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대화한 내용입니다. 우연히 그리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늘 배워 아는대로 하나님의 영원전 예정 속에 작정되었던 그 일이 때가 되니까 요 시점에서 이루어지게 돼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유대에서 갈릴리를 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가게 하시고 중간에 목이 말라서 우물가에 앉아 계시게 하시고 이 여인을 만나게 하시고 이런 대화가 있게 하셔서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주시는 성경이 되어진 겁니다.
이 여인이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이 있다 하더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방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옳다 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옳다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의 주장이 서로가 다 옳다고 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사마리아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러면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그랬으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올바른 예배는 장소가 상관이 없다 그 말입니다. 장소를 초월하는 예배다. 또 때도 초월한다 그리 볼 수 있겠지요. 장소에 매이지 아니한다 이 말씀을 근거해서 성도의 모든 생활은 예배다 그리 말 할 수 있고 또 다른 곳에도 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이 말씀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알지만은 껍데기로 알고 대략적으로 알고 정확하게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예를 들면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하고 밖에 있는 사람이 다를 것이고 또 기독교 안에서도 장로교로 믿는 교파하고 감리교로 믿는 교파가 서로 다를 것이고 감리교는 이 세상주의니까 지상 낙원 주장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면에 강한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이 세상을 바꾸고 구원하는 것이 천국주의다 그리 하는 사람들이고 장로교는 천국 준비를 믿는 사람들이니까 서로 다를 겁니다. 또 사람의 그 인론을 바로 알아서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있다는 이 교리를 알아서 그래서 구원론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알고 기능구원 교리를 아는 사람들이 믿는 것 하고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믿는 것은 믿는 방식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 섬기는 것 하고 유대인들이 하나님 섬기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해도 잘 모르고 하고 있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유대인들은 알고 예배한다 그 말입니다. 왜 그러냐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예수님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유대인이지요. 그래서 그리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께 그런 모든 것을 다 초월해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전에 몇가지를 생각해봤는데 그 첫째가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라. 백목사님께서 만드신 그 교리 내용의 제목을 따서 붙여본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라 그말은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가 알아가고 배워가고 올라가는 그 면을 강조해서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여덟가지만 말했지만은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여덟가지 외에 한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대략적으로 생각해보면 첫째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자존이라 말의 뜻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이고 원인이 없다는 뜻이고 동시에 모든 만존재의 원인자라 그 뜻입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나왔고 그래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다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이런 거 하나를 가지고 볼 때 이런 하나님께 대한 본체적이고 역사적인 면을 오전에 여덟가지로 말씀을 드린건데 거기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 대해 자꾸 나오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존잔데, 스스로 계신분인데 이 땅에 스스로 있는 존재가 있는가? 진화론자들은 모든게 다 스스로 생겼다, 존재 자체도 스스로 생겼고 그 존재가 그 모양이 된 것고 그런 형태가 된 것도 그런 성정을 가지게 된 것도 저절로 되어졌다고 말을 하는데 제가 그 사람들의 주장하는 깊은 내면을 공부를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은 일반 상식으로 볼때 진화론에 대해서 사람이 뭐든 뭔가가 존재가 아메바가 진화가 돼서 뭐가 되고 원숭이 되고 원숭이가 변해서 진화되서 사람이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기간이 수십억년이 걸린다 그리 말을 하는데 하나님 없는 그들은 그렇게 주장할 수 밖에 없겠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이 열어주지 않으면 그래 밖에는 아마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도 과학적이고 조직적이고 이치적이고 사람뿐아니고 모든 존재가 다 그리되어졌는데 저절로 그리 되어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를 생각해볼때 참 그거는 터무니 없는 말이겠다 믿음을 가지고 보니까 그러겠지만은 그리 생각이 됩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을 모르는 없는 사람들의 그럴 수 밖에 없는 참 허무맹랑하고 어리석은 그래서 어찌 보면은 세상에 소설도 그런 소설이 없고 거짓말도 그런 거짓말이 없지만은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다 그것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존재가 하나 생겨지면 우리가 길을 가다가 산속에나 산이나 또 바다에서나 또 방송이나 신문지상을 통해서 못보던 그런 어떤게 하나 생겼으면 이거는 어디서 생겼을까 어떻게 생겨졌을까를 생각하는 동시에 하나님은 자존자시라 이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 그런 면을 또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자다 모든 존재는 그분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은 전지전능자다. 아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인데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지혜고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힘이다. 그러니까 그분이 모르는 것이 없으니까 그분을 속일 수가 없겠구나.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실 것이고 아무리 숨겨도 그분은 다 알고 드러내실 것이고 그러니 하나님이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니까 이 세상에서 억울하다 싶은 일이 아마 믿는 성도에게 억울하다 분하다 그래서 속이 상한다 이거는 믿는 사람이 가질 마음이 아니겠습니다. 그분이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시는데 그렇다면 그분이 마지막에 다 내 억울함을 다 벗겨주실 것이고 그만큼 그대로 갚아주실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그래되어있지요. 하나님의 무능함이 인간의 어떤 유능보다도 더 탁월한.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아는 사람들은 인간의 꾀를 가지고 인간의 지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뭘 자꾸 하려고 애를 쓰지 아니합니다. 불충이 될까 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대로 힘써서 마음도 쓰고 머리도 쓰고 연구도 하고 노력을 하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다 갚고 보응을 하실 것인데 내가 안 당할 억울함을 당했으면 그것도 하나님이 아실 것이고 나의 실수로 부족으로 잘못으로 했다면 이거는 고쳐서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될 거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억울한 말을 들었으면 그 말을 나도 억울한데 내가 당하는 이 억울함을 하나님이 다 보실 것이고 들으실 것이고 아실 것이다. 또 한번 설교록에 있는 내용을 또 인용을 하면 백목사님께서 계명에 계실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으면 자꾸 믿는 사람들이 망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더랍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모두 다 믿는 것이 믿는 것 같지 아니하고 그 표현으로 말하면 예수를 모두 더럽게 믿어서 망한다 그말이지요. 믿어도 바로 믿으면 안 망할건데. 그러니까 소문이 나기를 예수 믿으면 망한다 망한다 그 소리가 자꾸 나니까 백목사님이 예수 믿고 예수 믿는데 완전히 빠져서 그러니까 ‘좋은 사람 하나 베릿다. 저 집도 또 망하겠구나’ 그런 소문이 자꾸 들리는데 그런 말이 들릴때 백목사님 마음속에 굉장히 어떠하다구요? 기쁘더랍니다. 기쁘면서 말하기를 자꾸 말해라 예수 믿으면 망한다고 자꾸 말을 해라 그래야 누가 들으신다고요? 하나님이 들으시고 ‘망해? 망해? 망하는가봐라’ 보여주실 것이니까 자꾸 말해라. 그게 참 믿음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게 성경인데 망한다 그러니까 틀린 말이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목사님이 잘 믿어서 복을 그 지방에서 가장 그 거창 지역 전체에서 부자될 만큼 그런 큰 부자가 되고 나니까 이제 말이 바뀌기를 ‘예수를 믿어도 잘못 믿으면 망하고 잘 믿으면 크게 부자되고 성공한다’ 소문이 그래 바뀌더라 그러지요. 하나님은 전지잡니다. 구석구석 모르는 것이 없다 그말이지요. 사람은 어느 구석에 처박히면 모르고 어느 구석에 숨으면 모르고 감추면 모르지만은 하나님은 그런데 시간과 공간을 다 초월하신 분이니까 모르시는 것이 없으니 사람이 억울할 일이 있겠습니까? 억울하다고 누명하다고 속이 상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분이 다 알고 계시는데. 그러니까 말씀하고 연결시켜보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주와 복음 위해서 억울하게 욕을 얻어 먹으면 어떻게 하라고요? 너희들이 억울하게 욕을 먹으면 어떻게 하라구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상이 크니라. 그런데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이 이거는 성경이고 그거는 교과서고 현실은 그렇지 않지 않느냐 그래가지고 성경은 하나의 교과서 참고서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현실에 당해서는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 댈 것이 아니고 너는 손바닥으로 맞았으면 너는 주먹으로 때려라 네가 주먹으로 맞았으면 너는 발로 차야 된다 한 대 맞았으면 열 대를 때려야 된다.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요런 자세를 가지고 요렇게 생활하면서 믿으니까 그 말씀이 직접 해당이 되지 않는 겁니다. 억울하게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하늘의 상이 큰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말씀 그대롭니다. 하나님은 아지 못하심이 없는 분이니까. 그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다. 선교사 이야기 아시지요? 아주 바다에 풍랑 만날 때 사모님은 상이 새파랗게 죽어가고 목사님은 뱃머리에 배 그걸 잡고 그 풍랑 이는데 쿨쿨 주무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모세가 그랬잖습니까? 이 백성이 고기 먹고 싶다니까 한달동안 코에서 고기 냄새가 넘쳐 진절머리 나도록 먹여 주겠다 그러니까 모세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 모든 고기를 다 잡은들 가능하겠습니까? 할때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팔이 짧아졌느냐 내가 네가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저희들도 성경에 나오는 그런 사실을 열가지 재앙 그 중에서 메뚜기 같은 이런 재앙을 그때 잘 몰랐지만은 긴가민가 했습니다. 모를때. 그런데 요즘 들어보면은 메뚜기떼가 한번 지나가면 지금도 한 나라에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린다 그러지요 싹 쓸어버린다 그러지요. 메뚜기떼가 지나가면. 그러니까 그런 우리 현상세계에서 눈에 보이는 그런 것으로 우리가 직접 귀로 안듣고 눈으로 안봐도 성경에 기록되있으면 틀림없다 그리 보면 됩니다. 지금 악어 입에서 불이 안나오는데 성경에 보면 악어 그 입에서 불이 나온다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안봐도 옛날 악어는 입에서 불을 내뿜었겠구나 그래 볼 수 있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되있으니까. 그때 세상과 지금 세상이 다르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모든 역사는 엉터립니다. 인류 역사는 다 엉터리 아니지만은 인간 역사는 인간기록인데 그게 기록인데 그 기록이 그 당시로 말하면 우리 나라도 그랬다 그러지요. 사관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 그들은 목을 내놓고 왕의 말을 다 기록을 하고 왕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이런 것도 다 기록을 한답니다. 기록해놓으면 그다음에 그 왕은 차마 기록해놔도 뒤처리 못하다가 왕이 죽고 나면 그 아들이 왕이 되면 ‘감히 우리 아버님의 수치를 기록해?’ 사관들 쫓아내버리고 목을 쳐버리고 역사를 바꿔버리지요 뭐. 그런 일이 허다하게 있는데 그거는 안 믿는 역사가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역사라는 것은 하나 참고지 사실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다 그말이죠. 다 참고할 만한 것이지. 그러니까 세상에 과학도 가장 그래도 정확한 것이 현상세계 물리고 과학인데 그 과학도 좁은 범위에서 맞는 것이지 넓은 범위로 보면 현재 틀림 없는 과학이 더 넓은 세계로 들어가면 그게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이치나 인간의 아는 지식이나 역사 기록은 다 틀려도 그래서 신문이고 방송이고 요즘은 모두 좀 사람들이 알아서 알지요. 옛날 한 3-40년 전만해도 신문이다 그러면 신문에 나왔다 그러면 모두 다 교과서처럼 그대로 사실대로 다 믿었습니다. 방송에 나왔다 그러면 어지간한 사람은 다 믿었고. 요즘 보면은 꼭 같은 사건인데 신문의 그 성향에 따라서 정반대로 주장을 하지요. 한 사건을 두고 한 신문은 그 사건에 단점만 파헤치고 한 신문은 장점만 파헤치니까 어느놈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있습니까. 양쪽 말 다 들어봐야되겠지요. 그러니까 그런 모든 것도 참고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확무오합니다. 여기 기록된 사실은 사실 그대로 믿어야 되겠고 믿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은 아지 못하심이 없는 분이다 전지자다 전능자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든 걸 다 아시니까 나의 내 마음도 알겠고 내 생각도 알겠고 내 억울한 것도 알겠고 내 부족하지만은 힘쓰는 것도 알겠고 동시에 나의 숨겨놓은 이 비밀도 알겠고. 나는 모르는 그 사람도 알겠고. 그러니까 참 어떻게 살아야 될까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지요. 어떤 경우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생각하면 어떨때는 보면은 어깨가 축 쳐지고 힘이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자신감도 없고 못 하겠고 어떨때는 담대가 생겨지고 하나님을 아는 그로 인해서 성도의 희로애락이 이렇게 저렇게 좌우되는 그게 믿음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자다. 영원불변하시다. 하나님은 변하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그분과 한분 맺은 약속. 내 주의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러니까 믿을수가 있는 겁니다. 인간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참 믿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게? 도끼에 찍힌다는 말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철저하게 믿었는데 믿은 사람에게 속았다 그말이지요.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을 믿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입니다.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판단도 변하고 그 사람이 안 변하면 환경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주변이 변해서 변하게 만들고 그러니 사람은 안 변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런데 하나님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분이니까 알파와 오메가니까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니까 그분은 참 믿을만하다. 신뢰할만하다. 의뢰할만하다. 그분은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걸 다 합해서 한말로 그분은 완전자다 하나님은 흠과 점이 없는 그분 자체도 자존이니까 완전이고 지혜가 전지니까 완전이고 전능이니까 완전이고 영원불변이니까 완전이고 무한이니까 완전이고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그분 자체 그분의 역사 그분의 성정 성품 어느 하나도 그분은 완전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사랑이신 동시에 그분의 모든 역사는 완전이지 완전하지 않은 역사가 없다. 하나님이 만든 사람 속에 있는 뭡니까 그 속에 있는 그 빼내버리는거. 내장 중에서 이거는 필요없다 그래가 한때 수술 많이 했지 않습니까. 그게 뭐지요? 맹장입니까? 이거는 창조주의 실수다 그 말이 참람된 말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그 맹장이 안봐도 없으면 안될 그런 역할을 틀림없이 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의사가 아니라도 그런 겁니다. 그거는 안봐도 뻔히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완전자니까 그분의 하시는 일은 흠이 없고 점이 없고 실수가 없는 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우리는 불완전하고 몰라도 우리들의 모든 행위는 완전 행위가 되어진다는 겁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그다음 그분은 창조주다. 그리고 모든 걸 지으신 것을 주권하시는 주권자다.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대주재자시다. 또 하나님은 사랑이다. 사람을 때려도 사랑 살려도 사랑 죽여도 사랑 노를 발해도 사랑 또 심판해도 사랑 지옥을 만들어도 사랑 마귀를 만든 것도 사랑 지옥에 수많은 사람은 던져버리는 것도 사랑 전부 그분은 사랑밖에 없는 분이고 동시에 그분은 진노다. 사랑만 알면 안되니까 하나님은 진노다. 소멸하시는 불이시다. 무서운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걸 다 마지막에 심판하시는 심판주시며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 자체와 그분의 본체와 그분의 역사적인 면을 두고 생각해본 것인데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보면 찬송가 13장을 하나 더 한 것은 그 찬송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때 모든 자연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 더 하고 싶었는데 몇 장을 하고 싶었겠습니까 제가?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찬송이 또 어디있습니까?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산에 부는 바람 흐르는 시냇물 지저귀는 새소리 전부다가 하나님이 어떠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세밀한 것을 보면은 하나님의 세밀함, 요렇게 정밀하구나 여호와의 도는 정밀하니, 정미하니 그랬습니까. 세밀하구나 하나님은 요렇게 세밀하신 하나님이시구나. 아주 자세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자세하고 세밀하고 정확하신 하나님이구나. 아름다운 꽃을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시구나.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다시 유가 없도다. 하나님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과 볼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꽃보다 더 아름다운 분이구나. 영광스러운 뭔가를 보면은 하나님은 이렇게 영화로우신 분이시구나. 다정다감하신 분이구나. 하나님은 사랑이 넘치고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나님은 모든 거 참 거룩하신 분이구나 동시에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구나. 바늘 가지고 그런 이야기들 그런 소식들 그런 드라마들 그런거는 한번씩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늘 가지고 아니면 날카로운 대나무 침을 가지고 저는 아이들 그 꼬지라는 음식 있지요 꼬지. 꼬지 꼽는 거 보면은 대나무를 이만하게 날카롭게 저는 그거 볼때마다 겁 납니다. 이거 큰일나는데 싶어서. 옛날에 무기 없을때는 죽창을 가지고 사람 다 찔러 죽였거든요 죽창. 근데 꼬지의 끝이 바늘처럼 날카로운데 그놈 막 돌아다닐때는 겁납니다 그거. 그걸로 푹 찌르면 죽거든요 잘못하면 사람? 흉기될 수 있습니다 그거. 그런걸 가지고 그보다 더 바늘처럼 이런걸 가지고 사람 손톱 밑을 한번 꽉 찔러보면 00이 어떻겠어요? 그런거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바늘로 아주 날카로운 대나무 바늘 같은 걸로 손톱 밑 발톱 밑을 꾹 찌르면 막 그냥 피가 나오면서 전신에 막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프겠습니까? 그런걸 볼때 인간의 잔인함이 참 독하다 무섭다 싶은데 그 모질고 독한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니 하나님의 모질고 독한 것은 인간하고 비교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늘로 손톱 밑을 꽉 찔러서 피가 철철 나게 만드는 그보다 더 독하고 모진 분이 하나님이다 그말이지요. 우리에게 그러니까 지옥을 만들었지요. 지옥이 그보다 못하겠습니까? 그보다 덜 잔인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무서운 것을 보면 그 두려운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니 그보다 비교 못 할 만큼 하나님은 무섭다 두렵다 그러니 참 우리가 조심을 해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큰 것을 보면은 그 큰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그래서 오전에 좀 생각해봤는데 가고 가고 가도 끝이 없을만큼 큰 그 큰 지역을 보고 나라를 보고 뭔가를 돌아볼때 도대체 저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일까. 아주 높은 그런 빌딩이라든지 건물이든지 높은 그런 권세자를 볼때 저게 저만큼 높으면 하나님의 높으심은 얼마나 높을까? 또 영광스런 그런 걸 볼때 하나님은 얼마나 영화로우신 분일까?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가서 주의 날에 내가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같은 큰 음성을 듣고 보니까 그 발은 빛난 주석같고 그 옷은 눈처럼 희고 또 광채가 나고 그래가지고 너무 그분이 영화로우니까 사도요한이 그 앞에서 눈이 부셔서 보지 못하고 죽은 자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모세가 사십일동안 시내산에서 하나님 대면하고 내려오니까 얼굴에 광채가 나서 백성들이 쳐다보지를 못해서 수건으로 얼굴을 덮을만큼. 하나님 대면한 인간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얼마나 영화로운 분이실까? 이런것들 우리가 우리 눈에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지으신 그 하나님의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꽃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고 또 작은 곤충이 하나님의 세밀함을 나타내고 있고 맹수가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나타내고 있고 오만것들이 전부 하나님을 다 나타내고 있는 이런 걸 볼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생각하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무엇이냐? 신앙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게 신앙이므로 기본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해볼때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아는 거기서부터 비로소 신앙은 시작되는 것이지 하나님을 모르는 신앙은 막연한 신앙이고 미신의 신앙이고 무지의 신앙이지 참 신앙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알데로 알 자가 누가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다 몰라도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만큼은 성경이 말씀해주신대로 내가 받은 분량만큼은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배우고 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겠다 그래서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거기서 나와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아는 바로 섬기는 거기서 발원되어서 주일도 지키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5계명도 지키고 모든 신앙생활하는 그게 신앙이지 그런 것 없이 하는 껍데기 신앙생활은 그거는 하나에 그냥 참 모습이고 그 형상이지 형태지 참 신앙은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거기서부터 발원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는 것 대우해드리는게 신앙이다. 하나님을 대우해 드린다 그말은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그래서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 신앙의 모든 위대한 종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와 같이 순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다시 없느니라 누굽니까? 욥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고넬료도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 섬기는 예배도 있고 인간구원도 있고 모든 생활에 다 있는 그것이 신앙이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고 믿고 믿으니까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 이런 생활들이 전부 신앙인데 그 모든 것에 근본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알므로 섬기는 생활이 그게 전부 말하자면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고 또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그런 생활이 되어지는 것이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제 모든 것 중에서 하나님을 알아 섬기는 그 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생활이 뭐냐 말하자면은 예배 생활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생활은 예배 생활이다. 예배 생활은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고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은 두 종류가 있어서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세례성찬이라는 세례를 받고 성찬식 하는 것은 하나 세례는 어떤 사람은 세례를 안 받으면 천국 못간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받는데 성경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람이 주는 세례는 하나 형식입니다. 그 세례를 안 받아도 천국 가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고 성찬의 떡을 안 먹어도 주님 대속 역사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풀라 하셨고 물을 찍어서 예수님 그래 하셨고 또 몸소 떡과 잔을 드시면서 나눠주시면서 이걸 하라하신 것은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육을 가진 사람이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시니까 그 영이신 하나님을 육의 사람이 상대를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섬기는 것이 말하자면은 보이는 예배라는 것은 하나의 형식입니다. 이거는 외부적이고 외향적이고 형식이지만은 그러나 그 형식 조차도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세상에서 갖추는 형식 중에서는 가장 귀하고 중요한 그런 형식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부잣집에 어느 대궐에 그렇게 부자로 높은데로 사는 것보다 주의 전에 문지기로 사는 것이 낫다는 것처럼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존귀한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아무것도 아닌 한 주일학생을 더 귀하게 여기고 그리 상대하는 그게 신앙입니다. 성경이고 바른 자세고 그런데 요래 설교하고 요래 말을 하면 그것만 전부로 알아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부자도 필요없고 고관대작도 필요없고 세상 높은 사람은 니가 장관이면 장관이지 어떤 어제 신문에 보니까 관상쟁이가 (제가 그 기사 보고 웃었는데) 관상쟁이가 그래 말하더만요. 기자가 자기 출세를 위해서 더러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까 물으니까 국회의원 나부랭이들이 찾아옵디다 더러. 그말 듣고 참 하나의 관상쟁인데 국회의원을 나부랭이라 할 정도니까 자기딴에는 굉장히 잘난 사람이지요. 세상에서 어떤 존귀한 그런 사람이라도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 한 보잘 것 없는 주일학생 하나가 그 고관대작보다 더 귀한겁니다. 우주보다 더 귀한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의 가치를 알아주는게 또 성경이다 그말입니다. 권세는 위로부터 주지 않음이 없으니까 모든 사람은 권세에게 복종을 하라는게 성경입니다. 대통령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만큼도 안 여기는 그런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 아닙니다 그거. 성경을 몰라서 그렇지. 나라 대통령이면 대통령으로 인정을 하고 장관이면 장관 대우를 하고 또 국회의원은 거기 맞는 대우를 하고 부자는 부자 대우를 하고 그러나 그거는 그거지 그것이 신앙은 아니다. 속에 들어와서 가치를 따져보면 억만금을 가진 삼성그룹에 이건희 회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일지라도 그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이면 그 사람의 생명은 우리 교회 주일학생보다 못합니다. 성경은 그래 판단하고 우리는 그래 압니다. 억만금을 가져도 그거 전부다 두고 갈 것들이고 백원짜리 하나도 가져가지 못할 사람이고 무덤에 오만 보물 보화를 다 넣어봐야 죽은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죽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고 그러니 믿고 가면 그래도 택자고 귀한 사람이 되겠으나 믿지 않고 간다면 별 볼일 없는 그 사람의 죽은 시체나 누구 시체나 다 비슷하지 그게 다를 게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늘 양면을 다 생각해야 되고 모든 것은 다 같이 봐야 됩니다. 지금 뭐 설명하다 이래 나옵니까? 왜 이런 설명이 겹가지가 많이 나왔습니까? 제가 지금 뭐 설명을 했지요? 예배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보이는 예배다. 보이는 예배도 그래 귀하다 그말입니다. 보이는 예배는 형식입니다 하나에. 형식이고 외형이지만은 하나님이 그 형식도 갖추라 그랬고 예배를 드리라 그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면 천하 모든 생활 중에서 예배가 가장 중요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래 맞춰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은 주일이고 시간 중에 가장 귀한 시간은 예배 시간이다. 그 예배는 하나는 말씀, 기도, 찬송이 들어간 요게 보이는 예배고 그 예배를 때와 장소 맞춰서 한다면 주일예배 밤예배 새벽예배 이거는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주일예배 밤예배 새벽예배는 이거는 어떤 것 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새벽예배는 계명이 아니다 그래 말하지만은 주님이 새벽예배를 보셨다면 우리는 계명처럼 보는 겁니다. 그래 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이게 가장 귀한데 내가 아직까지 믿음이 부족하고 깨달음이 부족하고 형편이 안되서 나는 주일예배도 겨우 지킵니다. 그러면 마음 속에 하나님 앞에 죄송해서 어쩔 줄을 몰라야 됩니다. 하나님이여 예배를 바로 드려야 되는데 나는 밤예배를 바로 못드립니다. 이 죄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고개 들 수 없는 죄인이 되가지고 용서를 구하고 노력을 해야 하나님께서 그 심정을 보시고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새벽예배를 못봅니다. 어째야 되겠습니까? 그 심정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그말이지요 은혜를 주시고. 그러니까 이 보이는 예배는 형식이지만은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입니다. 예배고. 그다음 보이지 않는 예배는 성도의 모든 생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랴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 신령한 예배라. 우리 모든 생활 전부다가 예배 생활이 되야 된다. 얼마만큼 예배 생활이 되어야 되느냐. 누가복음 9장 얼마전에 공부한대로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만은 나로 먼저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그 부친 장사가 하나님 섬기는 무슨 생활입니까?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을 위한 것이고 예배 생활때문이고 예배를 위한 것이면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예배를 두고 부친 장사 그러면 그거는 죽은 자들이 하는 거다. 천하에 은혜 받은게 크고 부모 은혜 크고 스승 은혜 크고 나라 은혜 크고 다 크지만은 가장 큰 은혜 가장 우선순위로 들 우리 믿는 성도의 은혜는 무슨 은혭니까? 성도의 가장 큰 은혜는 대속의 은혜다. 이 대속의 은혜를 빼두고 이걸 접어두고 부모 은혜를 찾아가는 것은 죽은 자들이 하는 것이지 대속으로 중생된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은의 생활도 사람의 가장 중요한 사은 생활도 우리는 예배 생활이 되야 되고 가족을 책임지고 마지막 작별하고 따르겠나이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합당치 아니하다. 세상으로 가려면 몰라도 천국엔 맞지 아니하다. 가족을 책임지는 것도 예배 생활이라야 되지 예배 생활 아닌 가족 책임은 믿는 성도 천국을 바라보는 성도가 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모든 생활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쉬는 것도 자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자녀 기르는 것 전부다가 하나님 섬기는 예배로 하는 것이지 예배 생활 아닌 생활은 성도의 생활이 아니다 이게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고 예배 생활입니다. 그러면 예배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보이는 예배는 어떻게 드리며 보이지 않는 예배 모든 생활은 어떻게 드리는 겁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이라 그말은 성경에 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한글로 같은 영이라도 한자도 같은 신령 ‘령’자 하나님 ‘영’자를 써도 그 영이라는 것을 자체로는 틀립니다. 하나님은 영이라 그럴때 그 영은 사람의 영이나 천사의 영 같은 그런 영이 아닙니다. 그런 영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말은 하나님은 무형이다 그말입니다. 형체가 없는 분이다. 몸도 형체가 있고 마음은 형체가 없어도 알 수 있는데 사람의 영은 무형이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급수는 아니지만은 하나님은 무형이다. 그 말씀을 다시 좀 범위를 넓혀보면 하나님은 완전자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말은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니까 가장 크신 분이니 가장 두려우신 분이니 가장 존귀하신 분이고 영화로우신 분이니 두려우신 분이니 그분을 섬길때는 그 분앞에 예배 드릴 때는 그분 섬길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령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걸 말하고 진정이라 말은 사람의 자기로서의 전부를 최고를 최귀를 가장 전부를 다 드리는 그게 진정입니다. 자기 할 수 있는 전부를 다 드리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진수라 그러지요. 인간의 자기 진수를 드려서 가장 고급의, 최고의, 최귀의 그것을 다 받쳐 자기 전부를 남김없이 다 드려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신령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게 신앙입니다. 하나님 섬기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은 뭡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예배 생활입니다. 그 생활에 가장 첫째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냐? 바로 알아야 바로 섬기지 하나님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그분은 어떤 분인지를 모르고 섬기는 것은 그거는 사람을 상대해도 서로 상대할 때 초면에는 몰라도 점점 사겨 들어가고 상대해 들어가고 가까울수록 그 상대방은 서로 아는데서 친밀해지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모르고 친밀한 것은 참된 친밀함이 아닙니다. 모르고 사귀는 사귐은 진정한 사귐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사귈때 내 그 사람에 대한 그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내가 인정하지 못하면 내 깊은 속을 보이지를 아니합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자기 깊은 속에 심정을 다 말을 하고 털어놓을 만한 대상이 있습디까? 부부라면 한 몸이니까 그리 할 수 있겠지만은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 품에 아내에게도 네 혀를 조심을 해라’ 반대로 말하면 네 남편에게도 조심하라 그말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내 속의 깊은 말을 다 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하고 나면 이상하게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한분만 믿고 의지하고 그분만 붙들고 나가야되는데 그분을 두고 인간을 사람을 좀 의지하고 믿는다싶으면 하나님께서 이상하게 요상하게 틀어서 멀어지게 만드는게 하나님의 역삽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아끼면 정말 귀한 사람이고 아까운 사람이다 아끼면 그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면 안되고 더 높이면 안된다는 겁니다. 조심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그래서 사람은 서로 아는만큼 친밀해질 수 있고 알고 사귀고 친밀한 것이 진정한 친밀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가 섬길때는 알고 섬기는게 참 섬김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있는 분인지 지혜지식 있는 분인지 그분의 사랑이 어떤지 두려움은 어떤지 얼마나 세밀한지 정확한지 잔인한지 자비한지 이런걸 전혀 모르고 대충 대충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그렇게 하나님 섬기는 그런 신앙은 무지의 신앙이고 미신의 신앙이지 참 신앙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것은 신앙은 하나님 섬기는게 신앙인데 그 신앙생활에 첫째 순서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첫째 순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뭐부터 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뭐해야 됩니까? 어디로 가야 됩니까? 산에 가야 됩니까 학교 가야 됩니까 도서관에 가야 됩니까 인터넷을 찾아봐야 됩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어디 가야 됩니까? 성경 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자꾸 읽어야 됩니다. 읽어야 되고 써봐야 되고 생각해봐야 되고 연구해봐야 되고 공부를 해봐야 되고 또 기도를 해야 됩니다. 자꾸 기도해야 되고 성경 읽고 기도해야 되고 자연만물 보고 생각해야 되고 연구해야 되고 그리고 죄를 지으면 아무리 성경 읽어도 성경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않고 죄를 짓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그러니까 찬송가 113장에 보니까 어떤 것보다도 내 속에 죄 마음이 정결한 그 속에서 뭐가 나온다고요? 맘 정결한 그 속에서 신령한 것이 비치니까 마음이 심령이 죄를 안지어서 깨끗할 그때에 하나님도 보여지고 알려지고 하나님의 뜻도 알려지지 죄를 지어서 심령이 어두우면은 콱 막혀서 구름이 끼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모르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아는데로 하나님을 아는만큼 믿고 두려워도 하고 사모도 하고 사랑도 하고 바라도 보고 의지도 하고 소망도 가지고 감사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조심도 하고 두려워 떨기도 하고 온갖 그런 희로애락의 역사가 나오는 것이 이게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보니까 원망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시험 받아 고난 받아 죽을 지경인데도 또 감사하고 기쁘고 찬송하고 소망 중에 또 기뻐하고 충성하고 진실하고 온갖 작용 역사가 나오는 것이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그 생활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 섬기는 진정한 신앙 생활 예배 생활이 되어진다. 여기에는 자기 전부를 다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말씀하신 겁니다.
기억하고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 한번 돌아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좀 깊이 좀 생각해보고 우리들은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는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나님을 알므로 인한 내 생활은 어떠한 것인가. 외부적인 신앙생활은 다 필연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참 믿으면 거기서 나오는 수많은 작용들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날카로운 바늘이나 칼을 보면 조심을 합니다. 독사를 보면 피합니다. 뜨거운 것을 보면 저절로 피하게 되고 뜨거운 물을 마실때는 조심스럽게 마십니다. 아는 필연의 결괍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우리 생활이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로 성경 말씀대로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
제목: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
요점:
1. 하나님을 향한 지식
-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
- 다 알 수 없으나 알려 주신 대로는 알아야
- 본체적, 활동, 역사적으로 8가지를 말했지만 하나님은 무한
- 하나님의 세밀, 다정 다감, 자비, 긍휼, 두려움, 복수, 잔인, 정확, 진실 거룩 등
- 만물을 보아 하나님의 신성을 알아야
- 하나님 알기 위해서 쉬지 않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연구해야 할 것
2. 하나님을 아는 신앙
- 신앙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는 것
- 하나님 바로 섬기려면 바로 아는 것이 전제
- 하나님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것
- 하나님을 바로 알아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며
-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며
-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
-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것
3.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
- 하나님 섬기는 가장 중요한 생활은 예배 생활
- 예배는 보이는 예배와 보이지 않는 예배
- 보이는 예배는 말씀, 찬송, 기도로 드리는 예배
- 보이는 예배는 형식이지만
- 사람은 육을 가졌으므로 하나님이 명하셨고
- 비록 형식일지라도 하나님 섬기는 예배이므로
-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
- 날 중에 가장 중요한 날은 주일날
- 보이지 않는 예배는 성도의 모든 생활
- 성도의 모든 생활은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 눅9장에 인간 최고의 사은인 부친 장례도, 최고의 책임인 가족 작별도
- 하나님 섬기는 예배로 하는 것이 되어야 함을 말씀
- 예배 아닌 생활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것이 성도의 생활
4.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 하나님은 영이시니
- 영이라는 말씀은 무형의 완전자라는 의미
- 가장 높으시고 가장 크시고 가장 두렵고 영화로우신 하나님이시니
- 하나님 섬기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마땅
- 신령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 진정은 사람이 자기의 최고 최귀를 드리는 것
- 하나님이 함께하시기까지 자기를 다 들이는 것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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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929 주후
요한복음 4:20-26
유대에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시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거쳐가는 도중에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대화한 내용입니다. 우연히 그리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늘 배워 아는대로 하나님의 영원전 예정 속에 작정되었던 그 일이 때가 되니까 요 시점에서 이루어지게 돼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유대에서 갈릴리를 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가게 하시고 중간에 목이 말라서 우물가에 앉아 계시게 하시고 이 여인을 만나게 하시고 이런 대화가 있게 하셔서 오늘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주시는 성경이 되어진 겁니다.
이 여인이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이 있다 하더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지방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이 옳다 하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옳다고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 서로의 주장이 서로가 다 옳다고 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사마리아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그러면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그랬으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는 올바른 예배는 장소가 상관이 없다 그 말입니다. 장소를 초월하는 예배다. 또 때도 초월한다 그리 볼 수 있겠지요. 장소에 매이지 아니한다 이 말씀을 근거해서 성도의 모든 생활은 예배다 그리 말 할 수 있고 또 다른 곳에도 있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이 말씀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알지만은 껍데기로 알고 대략적으로 알고 정확하게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예를 들면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하고 밖에 있는 사람이 다를 것이고 또 기독교 안에서도 장로교로 믿는 교파하고 감리교로 믿는 교파가 서로 다를 것이고 감리교는 이 세상주의니까 지상 낙원 주장하는 그런 사람들 그런 면에 강한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이 세상을 바꾸고 구원하는 것이 천국주의다 그리 하는 사람들이고 장로교는 천국 준비를 믿는 사람들이니까 서로 다를 겁니다. 또 사람의 그 인론을 바로 알아서 사람은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있다는 이 교리를 알아서 그래서 구원론 기본구원 건설구원을 알고 기능구원 교리를 아는 사람들이 믿는 것 하고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믿는 것은 믿는 방식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 섬기는 것 하고 유대인들이 하나님 섬기는 것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해도 잘 모르고 하고 있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유대인들은 알고 예배한다 그 말입니다. 왜 그러냐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예수님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유대인이지요. 그래서 그리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아버지께 그런 모든 것을 다 초월해서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오전에 몇가지를 생각해봤는데 그 첫째가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라. 백목사님께서 만드신 그 교리 내용의 제목을 따서 붙여본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라 그말은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가 알아가고 배워가고 올라가는 그 면을 강조해서 하나님을 향한 지식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여덟가지만 말했지만은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여덟가지 외에 한 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대략적으로 생각해보면 첫째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자존이라 말의 뜻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이고 원인이 없다는 뜻이고 동시에 모든 만존재의 원인자라 그 뜻입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나왔고 그래서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다 그리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이런 거 하나를 가지고 볼 때 이런 하나님께 대한 본체적이고 역사적인 면을 오전에 여덟가지로 말씀을 드린건데 거기서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께 대해 자꾸 나오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자존잔데, 스스로 계신분인데 이 땅에 스스로 있는 존재가 있는가? 진화론자들은 모든게 다 스스로 생겼다, 존재 자체도 스스로 생겼고 그 존재가 그 모양이 된 것고 그런 형태가 된 것도 그런 성정을 가지게 된 것도 저절로 되어졌다고 말을 하는데 제가 그 사람들의 주장하는 깊은 내면을 공부를 안해서 잘 모르겠지만은 일반 상식으로 볼때 진화론에 대해서 사람이 뭐든 뭔가가 존재가 아메바가 진화가 돼서 뭐가 되고 원숭이 되고 원숭이가 변해서 진화되서 사람이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기간이 수십억년이 걸린다 그리 말을 하는데 하나님 없는 그들은 그렇게 주장할 수 밖에 없겠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이 열어주지 않으면 그래 밖에는 아마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도 과학적이고 조직적이고 이치적이고 사람뿐아니고 모든 존재가 다 그리되어졌는데 저절로 그리 되어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를 생각해볼때 참 그거는 터무니 없는 말이겠다 믿음을 가지고 보니까 그러겠지만은 그리 생각이 됩니다. 진화론은 하나님을 모르는 없는 사람들의 그럴 수 밖에 없는 참 허무맹랑하고 어리석은 그래서 어찌 보면은 세상에 소설도 그런 소설이 없고 거짓말도 그런 거짓말이 없지만은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다 그것을 믿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존재가 하나 생겨지면 우리가 길을 가다가 산속에나 산이나 또 바다에서나 또 방송이나 신문지상을 통해서 못보던 그런 어떤게 하나 생겼으면 이거는 어디서 생겼을까 어떻게 생겨졌을까를 생각하는 동시에 하나님은 자존자시라 이것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라 그런 면을 또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자다 모든 존재는 그분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은 전지전능자다. 아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인데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지혜고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힘이다. 그러니까 그분이 모르는 것이 없으니까 그분을 속일 수가 없겠구나.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실 것이고 아무리 숨겨도 그분은 다 알고 드러내실 것이고 그러니 하나님이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니까 이 세상에서 억울하다 싶은 일이 아마 믿는 성도에게 억울하다 분하다 그래서 속이 상한다 이거는 믿는 사람이 가질 마음이 아니겠습니다. 그분이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시는데 그렇다면 그분이 마지막에 다 내 억울함을 다 벗겨주실 것이고 그만큼 그대로 갚아주실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그래되어있지요. 하나님의 무능함이 인간의 어떤 유능보다도 더 탁월한.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아는 사람들은 인간의 꾀를 가지고 인간의 지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뭘 자꾸 하려고 애를 쓰지 아니합니다. 불충이 될까 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대로 힘써서 마음도 쓰고 머리도 쓰고 연구도 하고 노력을 하지만은 그러나-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다 갚고 보응을 하실 것인데 내가 안 당할 억울함을 당했으면 그것도 하나님이 아실 것이고 나의 실수로 부족으로 잘못으로 했다면 이거는 고쳐서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될 거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억울한 말을 들었으면 그 말을 나도 억울한데 내가 당하는 이 억울함을 하나님이 다 보실 것이고 들으실 것이고 아실 것이다. 또 한번 설교록에 있는 내용을 또 인용을 하면 백목사님께서 계명에 계실 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으면 자꾸 믿는 사람들이 망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더랍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모두 다 믿는 것이 믿는 것 같지 아니하고 그 표현으로 말하면 예수를 모두 더럽게 믿어서 망한다 그말이지요. 믿어도 바로 믿으면 안 망할건데. 그러니까 소문이 나기를 예수 믿으면 망한다 망한다 그 소리가 자꾸 나니까 백목사님이 예수 믿고 예수 믿는데 완전히 빠져서 그러니까 ‘좋은 사람 하나 베릿다. 저 집도 또 망하겠구나’ 그런 소문이 자꾸 들리는데 그런 말이 들릴때 백목사님 마음속에 굉장히 어떠하다구요? 기쁘더랍니다. 기쁘면서 말하기를 자꾸 말해라 예수 믿으면 망한다고 자꾸 말을 해라 그래야 누가 들으신다고요? 하나님이 들으시고 ‘망해? 망해? 망하는가봐라’ 보여주실 것이니까 자꾸 말해라. 그게 참 믿음입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게 성경인데 망한다 그러니까 틀린 말이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목사님이 잘 믿어서 복을 그 지방에서 가장 그 거창 지역 전체에서 부자될 만큼 그런 큰 부자가 되고 나니까 이제 말이 바뀌기를 ‘예수를 믿어도 잘못 믿으면 망하고 잘 믿으면 크게 부자되고 성공한다’ 소문이 그래 바뀌더라 그러지요. 하나님은 전지잡니다. 구석구석 모르는 것이 없다 그말이지요. 사람은 어느 구석에 처박히면 모르고 어느 구석에 숨으면 모르고 감추면 모르지만은 하나님은 그런데 시간과 공간을 다 초월하신 분이니까 모르시는 것이 없으니 사람이 억울할 일이 있겠습니까? 억울하다고 누명하다고 속이 상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분이 다 알고 계시는데. 그러니까 말씀하고 연결시켜보면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주와 복음 위해서 억울하게 욕을 얻어 먹으면 어떻게 하라고요? 너희들이 억울하게 욕을 먹으면 어떻게 하라구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상이 크니라. 그런데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이 이거는 성경이고 그거는 교과서고 현실은 그렇지 않지 않느냐 그래가지고 성경은 하나의 교과서 참고서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현실에 당해서는 오른 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 댈 것이 아니고 너는 손바닥으로 맞았으면 너는 주먹으로 때려라 네가 주먹으로 맞았으면 너는 발로 차야 된다 한 대 맞았으면 열 대를 때려야 된다.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요런 자세를 가지고 요렇게 생활하면서 믿으니까 그 말씀이 직접 해당이 되지 않는 겁니다. 억울하게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하늘의 상이 큰 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말씀 그대롭니다. 하나님은 아지 못하심이 없는 분이니까. 그분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다. 선교사 이야기 아시지요? 아주 바다에 풍랑 만날 때 사모님은 상이 새파랗게 죽어가고 목사님은 뱃머리에 배 그걸 잡고 그 풍랑 이는데 쿨쿨 주무시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데 모세가 그랬잖습니까? 이 백성이 고기 먹고 싶다니까 한달동안 코에서 고기 냄새가 넘쳐 진절머리 나도록 먹여 주겠다 그러니까 모세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 모든 고기를 다 잡은들 가능하겠습니까? 할때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팔이 짧아졌느냐 내가 네가 하는 것을 볼 것이다.
저희들도 성경에 나오는 그런 사실을 열가지 재앙 그 중에서 메뚜기 같은 이런 재앙을 그때 잘 몰랐지만은 긴가민가 했습니다. 모를때. 그런데 요즘 들어보면은 메뚜기떼가 한번 지나가면 지금도 한 나라에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린다 그러지요 싹 쓸어버린다 그러지요. 메뚜기떼가 지나가면. 그러니까 그런 우리 현상세계에서 눈에 보이는 그런 것으로 우리가 직접 귀로 안듣고 눈으로 안봐도 성경에 기록되있으면 틀림없다 그리 보면 됩니다. 지금 악어 입에서 불이 안나오는데 성경에 보면 악어 그 입에서 불이 나온다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안봐도 옛날 악어는 입에서 불을 내뿜었겠구나 그래 볼 수 있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되있으니까. 그때 세상과 지금 세상이 다르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모든 역사는 엉터립니다. 인류 역사는 다 엉터리 아니지만은 인간 역사는 인간기록인데 그게 기록인데 그 기록이 그 당시로 말하면 우리 나라도 그랬다 그러지요. 사관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 그들은 목을 내놓고 왕의 말을 다 기록을 하고 왕이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이런 것도 다 기록을 한답니다. 기록해놓으면 그다음에 그 왕은 차마 기록해놔도 뒤처리 못하다가 왕이 죽고 나면 그 아들이 왕이 되면 ‘감히 우리 아버님의 수치를 기록해?’ 사관들 쫓아내버리고 목을 쳐버리고 역사를 바꿔버리지요 뭐. 그런 일이 허다하게 있는데 그거는 안 믿는 역사가들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역사라는 것은 하나 참고지 사실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다 그말이죠. 다 참고할 만한 것이지. 그러니까 세상에 과학도 가장 그래도 정확한 것이 현상세계 물리고 과학인데 그 과학도 좁은 범위에서 맞는 것이지 넓은 범위로 보면 현재 틀림 없는 과학이 더 넓은 세계로 들어가면 그게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이치나 인간의 아는 지식이나 역사 기록은 다 틀려도 그래서 신문이고 방송이고 요즘은 모두 좀 사람들이 알아서 알지요. 옛날 한 3-40년 전만해도 신문이다 그러면 신문에 나왔다 그러면 모두 다 교과서처럼 그대로 사실대로 다 믿었습니다. 방송에 나왔다 그러면 어지간한 사람은 다 믿었고. 요즘 보면은 꼭 같은 사건인데 신문의 그 성향에 따라서 정반대로 주장을 하지요. 한 사건을 두고 한 신문은 그 사건에 단점만 파헤치고 한 신문은 장점만 파헤치니까 어느놈 말이 맞는지 알 수가 있습니까. 양쪽 말 다 들어봐야되겠지요. 그러니까 그런 모든 것도 참고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확무오합니다. 여기 기록된 사실은 사실 그대로 믿어야 되겠고 믿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은 아지 못하심이 없는 분이다 전지자다 전능자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든 걸 다 아시니까 나의 내 마음도 알겠고 내 생각도 알겠고 내 억울한 것도 알겠고 내 부족하지만은 힘쓰는 것도 알겠고 동시에 나의 숨겨놓은 이 비밀도 알겠고. 나는 모르는 그 사람도 알겠고. 그러니까 참 어떻게 살아야 될까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지요. 어떤 경우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생각하면 어떨때는 보면은 어깨가 축 쳐지고 힘이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자신감도 없고 못 하겠고 어떨때는 담대가 생겨지고 하나님을 아는 그로 인해서 성도의 희로애락이 이렇게 저렇게 좌우되는 그게 믿음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자다. 영원불변하시다. 하나님은 변하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그분과 한분 맺은 약속. 내 주의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러니까 믿을수가 있는 겁니다. 인간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참 믿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게? 도끼에 찍힌다는 말입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철저하게 믿었는데 믿은 사람에게 속았다 그말이지요.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을 믿는 것은 참 어리석은 짓입니다.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생각도 변하고 가치관도 변하고 판단도 변하고 그 사람이 안 변하면 환경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고 주변이 변해서 변하게 만들고 그러니 사람은 안 변할 수가 없는 것이고 그런데 하나님은 어저께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분이니까 알파와 오메가니까 처음과 나중이고 시작과 끝이니까 그분은 참 믿을만하다. 신뢰할만하다. 의뢰할만하다. 그분은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걸 다 합해서 한말로 그분은 완전자다 하나님은 흠과 점이 없는 그분 자체도 자존이니까 완전이고 지혜가 전지니까 완전이고 전능이니까 완전이고 영원불변이니까 완전이고 무한이니까 완전이고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그분 자체 그분의 역사 그분의 성정 성품 어느 하나도 그분은 완전하지 않은 것이 없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사랑이신 동시에 그분의 모든 역사는 완전이지 완전하지 않은 역사가 없다. 하나님이 만든 사람 속에 있는 뭡니까 그 속에 있는 그 빼내버리는거. 내장 중에서 이거는 필요없다 그래가 한때 수술 많이 했지 않습니까. 그게 뭐지요? 맹장입니까? 이거는 창조주의 실수다 그 말이 참람된 말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그 맹장이 안봐도 없으면 안될 그런 역할을 틀림없이 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의사가 아니라도 그런 겁니다. 그거는 안봐도 뻔히 아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완전자니까 그분의 하시는 일은 흠이 없고 점이 없고 실수가 없는 분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우리는 불완전하고 몰라도 우리들의 모든 행위는 완전 행위가 되어진다는 겁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그다음 그분은 창조주다. 그리고 모든 걸 지으신 것을 주권하시는 주권자다. 그 모든 것의 주인이신 대주재자시다. 또 하나님은 사랑이다. 사람을 때려도 사랑 살려도 사랑 죽여도 사랑 노를 발해도 사랑 또 심판해도 사랑 지옥을 만들어도 사랑 마귀를 만든 것도 사랑 지옥에 수많은 사람은 던져버리는 것도 사랑 전부 그분은 사랑밖에 없는 분이고 동시에 그분은 진노다. 사랑만 알면 안되니까 하나님은 진노다. 소멸하시는 불이시다. 무서운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걸 다 마지막에 심판하시는 심판주시며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 자체와 그분의 본체와 그분의 역사적인 면을 두고 생각해본 것인데 거기서 더 깊이 들어가보면 찬송가 13장을 하나 더 한 것은 그 찬송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볼때 모든 자연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 더 하고 싶었는데 몇 장을 하고 싶었겠습니까 제가?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찬송이 또 어디있습니까?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산에 부는 바람 흐르는 시냇물 지저귀는 새소리 전부다가 하나님이 어떠한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세밀한 것을 보면은 하나님의 세밀함, 요렇게 정밀하구나 여호와의 도는 정밀하니, 정미하니 그랬습니까. 세밀하구나 하나님은 요렇게 세밀하신 하나님이시구나. 아주 자세한 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자세하고 세밀하고 정확하신 하나님이구나. 아름다운 꽃을 보면 하나님은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시구나.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다시 유가 없도다. 하나님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그의 영과 볼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꽃보다 더 아름다운 분이구나. 영광스러운 뭔가를 보면은 하나님은 이렇게 영화로우신 분이시구나. 다정다감하신 분이구나. 하나님은 사랑이 넘치고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시로구나. 하나님은 모든 거 참 거룩하신 분이구나 동시에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구나. 바늘 가지고 그런 이야기들 그런 소식들 그런 드라마들 그런거는 한번씩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늘 가지고 아니면 날카로운 대나무 침을 가지고 저는 아이들 그 꼬지라는 음식 있지요 꼬지. 꼬지 꼽는 거 보면은 대나무를 이만하게 날카롭게 저는 그거 볼때마다 겁 납니다. 이거 큰일나는데 싶어서. 옛날에 무기 없을때는 죽창을 가지고 사람 다 찔러 죽였거든요 죽창. 근데 꼬지의 끝이 바늘처럼 날카로운데 그놈 막 돌아다닐때는 겁납니다 그거. 그걸로 푹 찌르면 죽거든요 잘못하면 사람? 흉기될 수 있습니다 그거. 그런걸 가지고 그보다 더 바늘처럼 이런걸 가지고 사람 손톱 밑을 한번 꽉 찔러보면 00이 어떻겠어요? 그런거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바늘로 아주 날카로운 대나무 바늘 같은 걸로 손톱 밑 발톱 밑을 꾹 찌르면 막 그냥 피가 나오면서 전신에 막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프겠습니까? 그런걸 볼때 인간의 잔인함이 참 독하다 무섭다 싶은데 그 모질고 독한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니 하나님의 모질고 독한 것은 인간하고 비교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바늘로 손톱 밑을 꽉 찔러서 피가 철철 나게 만드는 그보다 더 독하고 모진 분이 하나님이다 그말이지요. 우리에게 그러니까 지옥을 만들었지요. 지옥이 그보다 못하겠습니까? 그보다 덜 잔인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무서운 것을 보면 그 두려운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니 그보다 비교 못 할 만큼 하나님은 무섭다 두렵다 그러니 참 우리가 조심을 해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큰 것을 보면은 그 큰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그래서 오전에 좀 생각해봤는데 가고 가고 가도 끝이 없을만큼 큰 그 큰 지역을 보고 나라를 보고 뭔가를 돌아볼때 도대체 저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일까. 아주 높은 그런 빌딩이라든지 건물이든지 높은 그런 권세자를 볼때 저게 저만큼 높으면 하나님의 높으심은 얼마나 높을까? 또 영광스런 그런 걸 볼때 하나님은 얼마나 영화로우신 분일까?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가서 주의 날에 내가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같은 큰 음성을 듣고 보니까 그 발은 빛난 주석같고 그 옷은 눈처럼 희고 또 광채가 나고 그래가지고 너무 그분이 영화로우니까 사도요한이 그 앞에서 눈이 부셔서 보지 못하고 죽은 자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모세가 사십일동안 시내산에서 하나님 대면하고 내려오니까 얼굴에 광채가 나서 백성들이 쳐다보지를 못해서 수건으로 얼굴을 덮을만큼. 하나님 대면한 인간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도대체 얼마나 영화로운 분이실까? 이런것들 우리가 우리 눈에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면은 하나님의 지으신 그 하나님의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꽃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고 또 작은 곤충이 하나님의 세밀함을 나타내고 있고 맹수가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나타내고 있고 오만것들이 전부 하나님을 다 나타내고 있는 이런 걸 볼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생각하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무엇이냐? 신앙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게 신앙이므로 기본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해볼때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아는 거기서부터 비로소 신앙은 시작되는 것이지 하나님을 모르는 신앙은 막연한 신앙이고 미신의 신앙이고 무지의 신앙이지 참 신앙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기를 하나님을 알데로 알 자가 누가 있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다 몰라도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만큼은 성경이 말씀해주신대로 내가 받은 분량만큼은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배우고 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겠다 그래서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기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거기서 나와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아는 바로 섬기는 거기서 발원되어서 주일도 지키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5계명도 지키고 모든 신앙생활하는 그게 신앙이지 그런 것 없이 하는 껍데기 신앙생활은 그거는 하나에 그냥 참 모습이고 그 형상이지 형태지 참 신앙은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거기서부터 발원되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알아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는 것 대우해드리는게 신앙이다. 하나님을 대우해 드린다 그말은 하나님을 바로 알아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그래서 성경에 보면 믿음의 사람들 신앙의 모든 위대한 종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그와 같이 순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다시 없느니라 누굽니까? 욥이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고넬료도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하나님 섬기는 예배도 있고 인간구원도 있고 모든 생활에 다 있는 그것이 신앙이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고 믿고 믿으니까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 이런 생활들이 전부 신앙인데 그 모든 것에 근본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알므로 섬기는 생활이 그게 전부 말하자면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고 또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그런 생활이 되어지는 것이다 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제 모든 것 중에서 하나님을 알아 섬기는 그 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생활이 뭐냐 말하자면은 예배 생활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생활은 예배 생활이다. 예배 생활은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고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은 두 종류가 있어서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세례성찬이라는 세례를 받고 성찬식 하는 것은 하나 세례는 어떤 사람은 세례를 안 받으면 천국 못간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받는데 성경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람이 주는 세례는 하나 형식입니다. 그 세례를 안 받아도 천국 가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고 성찬의 떡을 안 먹어도 주님 대속 역사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풀라 하셨고 물을 찍어서 예수님 그래 하셨고 또 몸소 떡과 잔을 드시면서 나눠주시면서 이걸 하라하신 것은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육을 가진 사람이니까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영이시니까 그 영이신 하나님을 육의 사람이 상대를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섬기는 것이 말하자면은 보이는 예배라는 것은 하나의 형식입니다. 이거는 외부적이고 외향적이고 형식이지만은 그러나 그 형식 조차도 하나님을 섬기는 형식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세상에서 갖추는 형식 중에서는 가장 귀하고 중요한 그런 형식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느 부잣집에 어느 대궐에 그렇게 부자로 높은데로 사는 것보다 주의 전에 문지기로 사는 것이 낫다는 것처럼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 아무리 존귀한 사람보다도 하나님의 아무것도 아닌 한 주일학생을 더 귀하게 여기고 그리 상대하는 그게 신앙입니다. 성경이고 바른 자세고 그런데 요래 설교하고 요래 말을 하면 그것만 전부로 알아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부자도 필요없고 고관대작도 필요없고 세상 높은 사람은 니가 장관이면 장관이지 어떤 어제 신문에 보니까 관상쟁이가 (제가 그 기사 보고 웃었는데) 관상쟁이가 그래 말하더만요. 기자가 자기 출세를 위해서 더러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까 물으니까 국회의원 나부랭이들이 찾아옵디다 더러. 그말 듣고 참 하나의 관상쟁인데 국회의원을 나부랭이라 할 정도니까 자기딴에는 굉장히 잘난 사람이지요. 세상에서 어떤 존귀한 그런 사람이라도 우리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 한 보잘 것 없는 주일학생 하나가 그 고관대작보다 더 귀한겁니다. 우주보다 더 귀한 생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의 가치를 알아주는게 또 성경이다 그말입니다. 권세는 위로부터 주지 않음이 없으니까 모든 사람은 권세에게 복종을 하라는게 성경입니다. 대통령 알기를 우습게 알고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만큼도 안 여기는 그런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 아닙니다 그거. 성경을 몰라서 그렇지. 나라 대통령이면 대통령으로 인정을 하고 장관이면 장관 대우를 하고 또 국회의원은 거기 맞는 대우를 하고 부자는 부자 대우를 하고 그러나 그거는 그거지 그것이 신앙은 아니다. 속에 들어와서 가치를 따져보면 억만금을 가진 삼성그룹에 이건희 회장이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일지라도 그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이면 그 사람의 생명은 우리 교회 주일학생보다 못합니다. 성경은 그래 판단하고 우리는 그래 압니다. 억만금을 가져도 그거 전부다 두고 갈 것들이고 백원짜리 하나도 가져가지 못할 사람이고 무덤에 오만 보물 보화를 다 넣어봐야 죽은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고 죽었다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고 그러니 믿고 가면 그래도 택자고 귀한 사람이 되겠으나 믿지 않고 간다면 별 볼일 없는 그 사람의 죽은 시체나 누구 시체나 다 비슷하지 그게 다를 게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늘 양면을 다 생각해야 되고 모든 것은 다 같이 봐야 됩니다. 지금 뭐 설명하다 이래 나옵니까? 왜 이런 설명이 겹가지가 많이 나왔습니까? 제가 지금 뭐 설명을 했지요? 예배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보이는 예배다. 보이는 예배도 그래 귀하다 그말입니다. 보이는 예배는 형식입니다 하나에. 형식이고 외형이지만은 하나님이 그 형식도 갖추라 그랬고 예배를 드리라 그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면 천하 모든 생활 중에서 예배가 가장 중요하고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래 맞춰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날 중에 가장 귀한 날은 주일이고 시간 중에 가장 귀한 시간은 예배 시간이다. 그 예배는 하나는 말씀, 기도, 찬송이 들어간 요게 보이는 예배고 그 예배를 때와 장소 맞춰서 한다면 주일예배 밤예배 새벽예배 이거는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주일예배 밤예배 새벽예배는 이거는 어떤 것 하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새벽예배는 계명이 아니다 그래 말하지만은 주님이 새벽예배를 보셨다면 우리는 계명처럼 보는 겁니다. 그래 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이게 가장 귀한데 내가 아직까지 믿음이 부족하고 깨달음이 부족하고 형편이 안되서 나는 주일예배도 겨우 지킵니다. 그러면 마음 속에 하나님 앞에 죄송해서 어쩔 줄을 몰라야 됩니다. 하나님이여 예배를 바로 드려야 되는데 나는 밤예배를 바로 못드립니다. 이 죄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고개 들 수 없는 죄인이 되가지고 용서를 구하고 노력을 해야 하나님께서 그 심정을 보시고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새벽예배를 못봅니다. 어째야 되겠습니까? 그 심정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그말이지요 은혜를 주시고. 그러니까 이 보이는 예배는 형식이지만은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입니다. 예배고. 그다음 보이지 않는 예배는 성도의 모든 생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랴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라. 신령한 예배라. 우리 모든 생활 전부다가 예배 생활이 되야 된다. 얼마만큼 예배 생활이 되어야 되느냐. 누가복음 9장 얼마전에 공부한대로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만은 나로 먼저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그 부친 장사가 하나님 섬기는 무슨 생활입니까?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을 위한 것이고 예배 생활때문이고 예배를 위한 것이면 당연히 해야지 그런데 예배를 두고 부친 장사 그러면 그거는 죽은 자들이 하는 거다. 천하에 은혜 받은게 크고 부모 은혜 크고 스승 은혜 크고 나라 은혜 크고 다 크지만은 가장 큰 은혜 가장 우선순위로 들 우리 믿는 성도의 은혜는 무슨 은혭니까? 성도의 가장 큰 은혜는 대속의 은혜다. 이 대속의 은혜를 빼두고 이걸 접어두고 부모 은혜를 찾아가는 것은 죽은 자들이 하는 것이지 대속으로 중생된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은의 생활도 사람의 가장 중요한 사은 생활도 우리는 예배 생활이 되야 되고 가족을 책임지고 마지막 작별하고 따르겠나이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합당치 아니하다. 세상으로 가려면 몰라도 천국엔 맞지 아니하다. 가족을 책임지는 것도 예배 생활이라야 되지 예배 생활 아닌 가족 책임은 믿는 성도 천국을 바라보는 성도가 할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모든 생활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쉬는 것도 자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결혼하는 것도 자녀 기르는 것 전부다가 하나님 섬기는 예배로 하는 것이지 예배 생활 아닌 생활은 성도의 생활이 아니다 이게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고 예배 생활입니다. 그러면 예배 생활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보이는 예배는 어떻게 드리며 보이지 않는 예배 모든 생활은 어떻게 드리는 겁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이라 그말은 성경에 영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한글로 같은 영이라도 한자도 같은 신령 ‘령’자 하나님 ‘영’자를 써도 그 영이라는 것을 자체로는 틀립니다. 하나님은 영이라 그럴때 그 영은 사람의 영이나 천사의 영 같은 그런 영이 아닙니다. 그런 영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라 말은 하나님은 무형이다 그말입니다. 형체가 없는 분이다. 몸도 형체가 있고 마음은 형체가 없어도 알 수 있는데 사람의 영은 무형이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급수는 아니지만은 하나님은 무형이다. 그 말씀을 다시 좀 범위를 넓혀보면 하나님은 완전자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말은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분이니까 가장 크신 분이니 가장 두려우신 분이니 가장 존귀하신 분이고 영화로우신 분이니 두려우신 분이니 그분을 섬길때는 그 분앞에 예배 드릴 때는 그분 섬길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신령이라 말은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걸 말하고 진정이라 말은 사람의 자기로서의 전부를 최고를 최귀를 가장 전부를 다 드리는 그게 진정입니다. 자기 할 수 있는 전부를 다 드리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진수라 그러지요. 인간의 자기 진수를 드려서 가장 고급의, 최고의, 최귀의 그것을 다 받쳐 자기 전부를 남김없이 다 드려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신령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에서 우리는 신앙이란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게 신앙입니다. 하나님 섬기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은 뭡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예배 생활입니다. 그 생활에 가장 첫째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겁니다. 하나님이 누구냐? 바로 알아야 바로 섬기지 하나님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그분은 어떤 분인지를 모르고 섬기는 것은 그거는 사람을 상대해도 서로 상대할 때 초면에는 몰라도 점점 사겨 들어가고 상대해 들어가고 가까울수록 그 상대방은 서로 아는데서 친밀해지게 되고 그러기 때문에 모르고 친밀한 것은 참된 친밀함이 아닙니다. 모르고 사귀는 사귐은 진정한 사귐이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사람을 사귈때 내 그 사람에 대한 그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내가 인정하지 못하면 내 깊은 속을 보이지를 아니합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자기 깊은 속에 심정을 다 말을 하고 털어놓을 만한 대상이 있습디까? 부부라면 한 몸이니까 그리 할 수 있겠지만은 성경은 말씀하기를 ‘네 품에 아내에게도 네 혀를 조심을 해라’ 반대로 말하면 네 남편에게도 조심하라 그말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내 속의 깊은 말을 다 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하고 나면 이상하게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한분만 믿고 의지하고 그분만 붙들고 나가야되는데 그분을 두고 인간을 사람을 좀 의지하고 믿는다싶으면 하나님께서 이상하게 요상하게 틀어서 멀어지게 만드는게 하나님의 역삽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아끼면 정말 귀한 사람이고 아까운 사람이다 아끼면 그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앞세우면 안되고 더 높이면 안된다는 겁니다. 조심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만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그래서 사람은 서로 아는만큼 친밀해질 수 있고 알고 사귀고 친밀한 것이 진정한 친밀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우리가 섬길때는 알고 섬기는게 참 섬김이 되는 것이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있는 분인지 지혜지식 있는 분인지 그분의 사랑이 어떤지 두려움은 어떤지 얼마나 세밀한지 정확한지 잔인한지 자비한지 이런걸 전혀 모르고 대충 대충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그렇게 하나님 섬기는 그런 신앙은 무지의 신앙이고 미신의 신앙이지 참 신앙이 될 수가 없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것은 신앙은 하나님 섬기는게 신앙인데 그 신앙생활에 첫째 순서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첫째 순서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뭐부터 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뭐해야 됩니까? 어디로 가야 됩니까? 산에 가야 됩니까 학교 가야 됩니까 도서관에 가야 됩니까 인터넷을 찾아봐야 됩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어디 가야 됩니까? 성경 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자꾸 읽어야 됩니다. 읽어야 되고 써봐야 되고 생각해봐야 되고 연구해봐야 되고 공부를 해봐야 되고 또 기도를 해야 됩니다. 자꾸 기도해야 되고 성경 읽고 기도해야 되고 자연만물 보고 생각해야 되고 연구해야 되고 그리고 죄를 지으면 아무리 성경 읽어도 성경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 어기지 않고 죄를 짓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알려주시지. 그러니까 찬송가 113장에 보니까 어떤 것보다도 내 속에 죄 마음이 정결한 그 속에서 뭐가 나온다고요? 맘 정결한 그 속에서 신령한 것이 비치니까 마음이 심령이 죄를 안지어서 깨끗할 그때에 하나님도 보여지고 알려지고 하나님의 뜻도 알려지지 죄를 지어서 심령이 어두우면은 콱 막혀서 구름이 끼어서 아무것도 안 보이고 모르게 된다 그말입니다. 그래가지고 하나님을 알고 아는데로 하나님을 아는만큼 믿고 두려워도 하고 사모도 하고 사랑도 하고 바라도 보고 의지도 하고 소망도 가지고 감사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조심도 하고 두려워 떨기도 하고 온갖 그런 희로애락의 역사가 나오는 것이 이게 하나님 섬기는 생활이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고 보니까 원망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시험 받아 고난 받아 죽을 지경인데도 또 감사하고 기쁘고 찬송하고 소망 중에 또 기뻐하고 충성하고 진실하고 온갖 작용 역사가 나오는 것이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그 생활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게 바로 하나님 섬기는 진정한 신앙 생활 예배 생활이 되어진다. 여기에는 자기 전부를 다 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말씀하신 겁니다.
기억하고 하나님 섬기는 예배 생활 한번 돌아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좀 깊이 좀 생각해보고 우리들은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는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하나님을 알므로 인한 내 생활은 어떠한 것인가. 외부적인 신앙생활은 다 필연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참 믿으면 거기서 나오는 수많은 작용들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날카로운 바늘이나 칼을 보면 조심을 합니다. 독사를 보면 피합니다. 뜨거운 것을 보면 저절로 피하게 되고 뜨거운 물을 마실때는 조심스럽게 마십니다. 아는 필연의 결괍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우리 생활이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로 성경 말씀대로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