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1-주후(엡5:22-6:4)
가정교회2013-07-21조회 608추천 40
본문: 에베소서 5장 22절-6장 4절 (요약 문답/2013.07.21.주일)
제목: 가정교회
1. 본문
1)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유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
2)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어떻게? (자기 몸) 같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3)부부 제도의 목적은?
말씀으로 (깨끗)하게,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4)자녀들아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5)아비들아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2. 교회-정의
1)하나님의 목적은? 온전한 (교회) 건설
2)교회는? (천국)의 모형, 교회는 지상의 (천국)
3)따라서 참된 행복과 평안, 영원한 생명은 (교회) 안에만
4)교회는? (하나님) (진리) (성도)의 삼합
5)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 교회
3. 교회-종류
1)교회는 (개인)교회, (가정)교회,
(사회)교회, (세계)교회, (역사)교회
2)개인교회가 넓어지면 (가정)교회
3)개인교회와 가정교회가 모이면 (사회)교회
4)세계의 모든 교회들은 (세계)교회
5)역사의 모든 교회들은 (역사)교회
6)교회의 원래 모습은 (단일)교회
3. 가정교회-중요성
1)본문은 (가정교회)에 대한 말씀
2)개인교회가 성장하면 (가정)교회
3)가정교회의 출발은 (남편)과 (아내)
4)가정교회가 바로 되려면 (부부)가 하나 되어야
5)가정교회가 바로 되면 (기도의 응락)이 이루어지고 (벧전3:7)
(자녀)들이 (깨끗하게) 되어 짐(고전7:14)
4. 가정교회-노력
1)(말)만 가지고는 전도도 빛도 안 되고
2)(앞선) 신앙의 사람이
①(범죄)할까 두려워하고
②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③(하나님)과 (심판)과 (천국)의 영광 문제를 두려워하고
④자신을 (온전한 사람) 만들기 위한 (성화)의 노력과
⑤범사를 하나님으로 해결하려는 (기도)의 노력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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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721 주후
에베소서 5:22-6:4
요약문답지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 주일학생들, 중간반 학생들이 좀 더 예배를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시간을 들여서 일부러 좀 만드는 겁니다 예배준비도 하지만은. 근데 지금까지 아마 한 한달 좀 더 됐을건데, 한 5-6주 정도 했을건데, 김연순 집사님 구역에는 관리가 제대로 되고, 또 문숙희 선생님 반 학생들 그쪽에 관리하는 학생들은 관리가 되고 있고, 다른 구역은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을 안 하는 것도 문제고, 이런걸 해도 학생들은 관리 안하면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교육도 관리고, 양육이란 것은 더 세밀하고 치밀한 관리가 필요한 일입니다. 구역별로 좀 챙겨보시라 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리한건데 구역별로 좀 제대로 안 챙겨지는 것 같습니다. 챙길만한 그런 선생님들이 충분히 있는데도 보니까 제대로 안되는데 좀 챙겨보심 좋겠고 안되면 또 달리 해야 되겠고.
우리 학생들이, 우리 교회 학생들은 다는 아니고 보면, 공부에 집중을 하고 열심히 잘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개 우리 교회, 백목사님 계시던 서부교회 별명이 지게꾼 교횐데, 그말은 한쪽으로 말하면 가난한 교회라 그뜻이고, 또 한쪽으로 말하면 무슨 뜻입니까? 대단히, 전체적으로 겉만 보고 하는 말이지만은 무식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도 그 속에 들어가보면 거기 교수도 있고, 박사도 있고, 의사도 있고, 많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대체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들은 다 무식한 그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또 성경이 그러하고 복음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식한 것이 좋으냐? 무식은 부끄러운 일이고 수치스러운 일이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가난해서, 또 사정이 있어 못 배운 것은 옛날 다 그랬으니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때 ‘공부를 잘하라‘ 늘 하는 말이지만 잘해야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심히는 해야 됩니다. 학생들 나이에 공부 안하면 반드시 다른 짓을 하게 되있습니다. 학생들은 그때는 공부할 나인데, 공부가 저거 업이고, 저거 생활의 거의 전분데, 그 나이때 공부를 안하면 엉뚱한 짓을 하는데, 그 엉뚱한 짓은 100에 99.9는 다 죄짓는 일입니다. 자기 앞날 다 망치는 그런 일을 하게 되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들이 챙겨서 강제로라도 ’잘하라는 말 안한다. 그러나 노력은 해라‘ 게으르면 아무짝에도 못씁니다. 공부를 안하면 학교 성적이나 진로가 문제가 아니고 사람을 다 베려버립니다. 이것이 예배시간에도 그대로 연결이 되어서 예배 볼때도 보면은 좀 제대로 하는 그런 사람은 예배도 잘 보는데, 공부도 안하고 아주 게으르고 농땡이 치는 그런 학생들 보면은 예배도 안봅니다. 벌써 생활이나 사람 됨됨이가 삐뚤어져있다 그말이지요. 큰 문제가 됩니다.
교회는 뭐 하는 곳이냐? 교회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교횝니다. 예배를 왜 드려야 됩니까? 교회를 왜 다니며 예배를 왜 드립니까? 교회 다니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학생들, 예배 보는 목적, 교회 다니는 목적이 뭐지요? 여섯 글자, 여섯 글자 두 줄이지요. 수도없이 많이 했습니다. 뭡니까? '진리를 배워서, 참사람 되려고' 그게 교회의 목적이고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진리를 배우려면 예배시간에 마음을 기울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필기도 하고, 들어보고 질문도 하고, 우리 중간반 학생들이 살아있을 때는, 질문도 더러 하고 물어보고 모임도 있고 하더니, 오늘 주일 오전 예배 마치고, 장년반 오전 예배 마치고 남반에 복습하는 것 보니까 한 서너명 나가던가요? 다 마치고 나가는데 서너명이 나가던가요? 중간반이 다 죽어있는지, 관리가 안되는지, 오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런걸 만들어놓으면 자꾸 챙겨서 내 아이부터 챙기고, 내 구역부터 챙기고, 내 반을 챙겨서 사람을 만들려고 자꾸 애를 쓰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우리 동천교회는 전부다 막노동꾼만 나와야 됩니까? 우리 동천교회는 노가다꾼만 나오고, 장사꾼만 나오고, 무식한 사람만 나와야 되는 겁니까? 여기서는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 세상에 잘난 사람이 나오면 안되는 겁니까? 그리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그 생각 자체가 죕니다 그거는. 왜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지 모르고 어떤 은혜를 주실지 모르는데 왜 그걸 다 막아버리냐 그말이지요. 노력안하고 되는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 힘 안쓰고 되는 일이 있습니까?
늘 말씀드리지만은 학습세례문답에 ‘삼가 모든 지능이’ 어디서 나온다고요 학생들? 모든 지능이 어디서 생겨진다고요? 수고를 어떻게 하는데서요? ‘수고를 달게 하는데서’, ‘수고’가 뭡니까? 다른말로 말하면 ‘노력’ 아닙니까? 열심히 노력하고 힘을 쓰고 애를 쓰고, 수고를 달게 하는데서 지능이 생겨집니다. 자기 지능이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좀 학생들이 그리 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이, 주변 선생님들이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자꾸 챙겨봐야 됩니다. 챙겨보고 검사도 하고 잘하면 상도 주고 못하면 섭섭해서 좀 서운한 얼굴도 좀 하고. ‘너 다른 거 잘하는데 오늘 예배시간에 보니까 아버지가, 어머니가 밥맛이 없다. 밤에 잠이 안온다.’ 또 예배 잘드리고 잘하면은 가서 빵도 좀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영화 구경도 시켜주고, 잘하면 말이지요. 그리하면은 학생들이, 가치를 거기두면, 부모님들의 가치가 거기 가있으면 자녀들의 가치는 그쪽으로 따라가게 되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안되는 거지요.
세상말에 삼위일체라는 말을 안믿는 사람들은 ‘여럿이 모여서 하나를 만들자, 여러 가지, 여럿이 힘을 써서 하나를 세우자’ 그럴 때 응용을 하는데, 교회가 목사 혼자 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 교역자가 목사가 사도바울처럼, 백목사님처럼 그렇게 능력 있으면 수천명이 다 그만 그 아래 복종을 하고 다 해결이 됩니다. 근데 지금 시대에 그런 분이 없으니까 또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신 범위가 아니니까 그러면 여기서 부족한 교역자를 교역자로 있으면, 두고 있으면 같이 힘을 써야 됩니다. 혼자 맡겨두지 마시고. 학생들 챙기는 것도 좀 같이 힘을 쓰도록. 그래서 공부할 때는 공부를 해야 되고, 예배 볼 때는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예배 드리는 게 뭡니까? 찬송할 때는 찬송하고, 기도할 때는 기도하고, 말씀 드는 시간에는 듣는게 예의 아닙니까? 그게 자세고 기본적인 예읩니다. 하나님 앞에 예의고, 서로간에 예의. 앉아서 엉뚱한 생각 하고, 졸고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좀 관심을 가지고 같이 좀 챙겨보고. 이런 말들을 자꾸 할 필요가 없는건데, 자꾸 안되니까 자꾸 하는데, 이런 말은 다 전부 공연한 말이지요. 시간 낭비였단 말이고. 좀 생각 좀 하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을 보고, 학생들은 문답지를 한번 살펴보고, 또 머릿속에 담아보십시다. 지금 해당이 안되도 언젠가 다 해당될 말씀들이고 다 연결된 말씀들입니다. 본문에, 오전 말씀 잠깐 복습하면 본문을 먼저 생각해봤습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어떻게 하라고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 왜 복종을 해야 됩니까? 아내가, 남편이 자기의 머리니까. 복종하면 얼마만큼 복종해야 됩니까? 하나님에게 하듯이 복종을 해야 된다. 남편들은, 남자들은 우리 아내가, 우리 아내 될 사람이 그리 하는가 보자. 일단 담아놔도 됩니다 머릿속에. 아내된 자들은, 아내된 사람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복종하기를 하나님에게 복종하듯이 해야 된다. 그리 나는 배웠다.‘ 그래놓고 그러면, 아내가 또 묻겠지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얼마나 사랑하라고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 같이 자기 목숨을 하나님이 사람되기까지 낮아지고 자기 목숨을 받쳐주시기까지 사랑하셨으니까, 그러면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된 자여, 남편에게 하나님에게 복종하듯이 복종하라.’ 웃으면서 그리 말하겠지요? 남편이 그러면 아내는 웃으면서 ‘네 복종해야지요. 그러면 남편된 당신은 나를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목숨받쳐 사랑하신것처럼 나를 목숨받쳐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리하셔야지요.’ ‘그리하자.’ 서로 그리하면 온전한 교회가 되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다음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뭐하라고요? 000. 부모를 주 안에서 어떻게 하라고요?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순종 안하면 틀렸다. 틀린 것은 죕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러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러면 자녀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고, 순종하면 공부도 잘되고, 직장생활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돈벌이도 잘되고, 가정도 잘되고, 다 잘되고 오래 살고, 순종 안하면 틀려 먹었으니까 공부도 안되고, 장사도 안되고, 돈벌이도 안되고, 가정도 안되고, 일찍 죽고. 성경입니다. 그리 된다. 그러니까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순종을 해야 되겠다.
또 ‘아비들아’, 그말은 부모들입니다. ‘부모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마라’ 그말은 자기 감정, 자기 주관, 자기 기분에 맞춰서 자녀를 상대하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그런 일 많지요. 어머니가 화나면 홧김에 아이들 뺨도 때리고, 아버지도 화나면 홧김에 몽둥이 들고. 자녀, 아동 교육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000 선생. 아동 교육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부모님이 자녀를 상대할 때 감정을 실어서 상대하면 백해무익이라 그러지요. 그건 감정풀이지 교육이 아닙니다. 사랑의 매라는 것은 거기에 감정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들어가도. ‘아비들아’ 자녀 기를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라.' 주의 교양이 뭡니까? 교양이라 말은 가르치고 기른다 말인데, 주의 교양이라 말은 주의 가르침,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자녀를 가르치려면, 자녀를 훈계하려면, 교육하려면 바른 걸 가르쳐라. 그 바른 것의 기준이 뭐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바른 것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사람에게도 만물에게도 하나님에게도 가까운 사람에게도 먼 사람에게도 오늘도 내일도 다 맞는 말씀이니까 우리는 몰라도 말씀은 옳으니까 그 말씀 가지고 가르치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이 되는 겁니다. 그걸로 가르치고, 그다음에 자기가 먼저 그 말씀대로 살고 자녀를 인도하라 그말입니다. 아버지는 엉뚱한 길로 가면서 자식들만 초달한다고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먼저 말씀을 가지고 살고, 그다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옳게 가르치면 이거는 진리기 때문에 안되는 수가 없습니다.
솥에다가 물을 붓고 불을 떼면 100도가 넘어가면 물이 안 끓는 수가 있습니까? 정상적이면. 가스렌지 위에다가 냄비에 물 얹어서 불을 떼면은 물이 안 끓는 수가 있습니까? 그런 수는 없습니다. 정상이면. 이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치는 안되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니까 요대로 하면 안되는 수가 없는 겁니다. 부모님들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면 자녀들이 안되는 수가 없습니다. 안되는 것은 뭔가 과정이나 방편이 틀려서 그렇지 바로 하면 안되는 수가 없는 겁니다. 요게 본문의, 가정교회 본문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교회를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뭔가?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 이것도 좀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명상을. 사람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넓은가 모릅니다. 가봐도 다 모릅니다.
백목사님께서 예전에 한창 성지순례 바람이 불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봐도, 가도 거기가 뭔지 가는 사람들 오히려 잘 모릅니다. 그런데 안가도 앉아가지고 성경보고 생각해보고 기도하면 갔다온 사람보다 더 잘 안다 그런 말씀을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주를 다 돌아다녀봐야 우주가 넓은 줄을 알겠습니까? 안 다녀봐도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벌써 학자들이 연구한 것이 있고, 실제 우리가 보는 것이 있고 그런게 있으니까 그걸 가면은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이걸 왜 자꾸 말하느냐 하면은 우주가 넓다는 걸 제가 자주 말을 하는데 왜 이걸 말하겠습니까? 우주가 넓다는 것을 자꾸 말하는 것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 광대하신 것을 만드신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으니 그 목적이 얼마나 크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 자꾸 말하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배경을 알아야 실제 그, 실제 그것도 그 주체되는 것도 그만큼 알게 되는 겁니다. 가치가 있는 겁니다.
금이, 금이 비싼 것은 그 금이 아무리 금이라도 금이라는 것이 용도가 쓸 곳이 없으면 금은 돌덩이나 금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돌맹이가, 평지에 돌맹이가 다 흔해도 돌이 귀할때는 돌이 금보다 더 비쌀때가 있습니다. 쌀이 귀해도 쌀이 너무 흔하면 쌀값이 떨어지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그런것도 사람의 인분 같은 것도 그것이 흔하고 지저분하다고 던져버려도 인분이 귀할때는 그게 금보다 더 비싼 경우도 만들려면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 자체만 보고는 모른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그것과 관련된 환경, 배경을 다 생각해봐야 그 주체를 알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구원이 어떠한 구원인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는 것은 필연이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가 무엇이냐? 나를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셨는데 낳아주셨고 밥 먹여줬고 용돈 주고 공부 시켜줬고 그거야 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 다 하는데 너거 아버지 어머니는 너를 사랑해서 너 앞날 생각을 해가지고 또 너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어떤 과거에 큰 고생을 했으며, 수백리 길을 너를 업고 눈 길을 걸어서 너 병 고치고 그런 과거가 있었다. 또 너 하나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안다녀 본 곳이 없다. 너 앞날에 공부 시켜보겠다고 뼈 빠지게 벌어가지고 얼마 얼마 다 모아놨다. 준비 다 해놨다. 그 아버지가 한 그런 일 배경을 보고는 그 사랑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노력보면 자식 사랑의 정도를 알 수가 있겠지요. 한 일 보면은. 그가 하는 일이 어떠냐, 배경이 어떠냐에 따라서 그 일 하는 그 중심 주체에 가치가 어떠냐 결정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목적이 뭐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우주를 다 지었는데 우주가 얼마나 크냐? 이걸 좀 명상을 해서 우리를 높여봐야 됩니다. 저는 알았겠습니까? 저도 몰랐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우주라는 말도 하늘 천 따 지 검은 현 거기 천자문 그거 좀 할 때 그때 뭐 우주가 나오니까 아 그런갑다 그랬지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알았습니까? 몰랐지요. 그런데 그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넓은 것을 설교록 읽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크냐? 우주공간에 보니까 태양도 있고, 달도 있고, 별들이 있는데, 해와 달과 별들, 일월성신이라 그러죠? 있는데 그것이 별 하나 크기가 지구에 몇 천배 몇 만배 큰 것도 꽉 찼고, 그런 거 숫자가 천억도 넘고, 은하계 하나 있는 한 은하계 하나에 별 하나, 별 무리만 해도 수천억이 된다 그러고, 그런 은하계가 뭐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러죠. 그러니까 도대체 지구에 몇 천배 몇 만배보다 더 큰 그런 별들이 수천억개로 우주 공간에 떠 있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러면 우주라는 놈의 크기가 도대체 얼마나 크냐? 무한이지요 뭐 무한. 인간의 범위에서는. 무한이지요.
그런데 성경을 두고 보면 우주 물질계는 무한은 아니거든요? 유한이지. 그러면 우주가 유한하면 영계는 도대체 얼마나 크냐? 그래서 영계는 신령한 세계라 그래 말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무한에 가까운 그 우주와 우리 구원에 주신 우리들에게 맡겨주시는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맡겨주신다는 통치의 그 범위가 논리적으로 따져도, 양적으로 분배를 해도 되고도 남겠다 그말이지요. 우주만 해도. 거기다 영계까지 합치면 이거는 참 영원한 세계 영계라 하는 것이 참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리 되는데 그런데 그 모든 우주의 광대한 그런 일월성신이, 물질계 모든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을 비롯해서 동물 식물 모든 생물들이, 또 모든 바다의 미지의 세계 신비스러운 그런 그 모든 바다속에 수많은 존재들의 그 모든 활동 작용 움직임들이 우리는 모르는데 전문가들이 볼 때는 너무나도 조직적으로 질서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맞춰서 기가 막히게 돌아간다 그말이지요 우리는 몰라서 그렇지. 그래서 학자들이 곤충 하나 연구하면 그 연구하는 사람들이 글을 하나씩 쓰는 걸 보면은 감탄을 합니다. 경탄스럽다. 벌 한 마리 연구해도 감탄하고 개미 한 마리를 연구해도 개미 전문가들이 개미를 연구하면 경탄을 합니다. 참 신비하다. 풀 하나를 연구해도, 꽃 하나를 연구해도 사람들이 감탄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저절로 생겨졌다, 무식하면 그리 되지요. 하나님을 모르면.
그래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어떤 분인 것을 그런걸 생각하므로 도대체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말씀으로 만드신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상상을 못하는거지요. 그래서 그 분을 아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이 알려주는 영감으로만 알아갈수가 있는 겁니다. 이런걸 알아 들어가는 걸 가리켜서 신앙이라 그럽니다. 이런 세계를 파고 들어가서 알아들어가는 걸 가리켜서 신앙이라 그러는 겁니다. 신앙이란 것은 이 세상, 세상은 암만 있어봐야 이거는 불 탈 세상이고 없어질 세상, 물질계 세상입니다. 나 죽고 나면 없습니다, 그만입니다. 상관이 없는 겁니다. 구원과 연관된 것이지. 영원한 세계 하나님과 연관된 거.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광대한 물질계 우주와 영계를 무엇 때문에 만드셨는가? 이래 막 굉장한 배경을 설명 하고 그런데 그 주체가, 주인공이 뭐냐? 주인공이 뭐라고요? 오전에 말씀드렸지요. 이 너무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광대하고 광활한 우주와 영계, 수많은 존재 그 모든 조직들 그 모든 거는 전부다 조연들입니다, 조연들. 엑스트라들이고 그 속의 주인공이 무엇이라고요? 주인공은 교회라는 겁니다, 교회. 온전한 교회. 이걸 안믿는 사람들이 인정을 하겠습니까? 믿어지겠습니까? 우리도 못 믿는데. 우리도 인정을 못 하는데. 그래서 믿음을 달라는 것은 이런걸 알게해달라고, 느끼게 해달라고, 믿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그런 기도를 자꾸 하는 겁니다.
이런 역사하신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믿어지게 해달라고,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달라고 그래서 자꾸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을 위해서 영원까지 예정을 해놨고 예정위에 창조가 있고 창조 속에 모든 게 다 있는데 그 모든 것의 목적, 그 모든 것의 주인되는 주인공 목적은 온전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 교회가 무엇이 교회냐?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을 모시고 진리를 모신 구속받은 성도가 하나님과 진리 모시고 사는 그 성도가 바로 교회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아니다. 이거는 성경 보고 알고 생각해보면 아는데 이런 상식을, 이런 기본적인 것을 아는 사람들이 너무도 없고, 이걸 알아서 여기 가치두고 이걸 제대로 가르치는 교회들이 너무도, 요즘은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동안에 별로 없었다 그말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그래서 건물에 치장을 하고 건물에 돈을 쏟을 필요가 업어서 백목사님 계시던 서부교회는 그 생명 넘치는, 역사에 길이 남을 그 교횐데, 당시 교회로 말하면, 그런데 그 교회 예배당은 창고처럼, 주변에서 전국에서 모여서 서부교회 근처 와가지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서부교회가 어딥니까?’ 버스 기사들은 다 아는데. 부산 시내 버스 기사들은 서부교회가 그 노선 가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멀리서 온 사람들은 바로 앞에 두고 ‘서부교회가 어딥니까?’. 간판이 제대로 붙어 있습니까? 건물이 교회 같습니까? 그래놓으니까. 거기서 모인 돈 전부 주일학교 운영하는 거기, 중간반에 거기 다 쏟아붓고 말씀 전파에 다 쏟아붓지, 예배당 건물에는 꼭 필요한 것만 갖춰놨으니까,
건물은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는 사람이 교횝니다. 제가 교회고, 여러분들 한분 한분이 바로 교횝니다. 우리는, 내가 교회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니라.‘ 우리는 하나님 모신 집이기 때문에, 성전이고 교회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생각을, 눈을, 귀를, 입을, 우리 심신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거룩하게. 사람도, 우리는 안 그렇습니까? 어디가서 냄새 나는 곳에 가면 코를 막고 구역질이 나서 잠시도 못 있지 않습니까? 아이구. 지저분한 거 보면 눈 감아 버리고 얼른 나와버리지요? 추한거보면은. 못볼거 보면은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내 속에 들어오셨는데 내 속에 온갖 종류의 죄가, 시기가, 질투가, 미움이, 이런 쟁투가, 이런 지저분한 것들이 내 속에 들어있으면 주님이 계시겠습니까? 그만 얼른 나가셔버리지요.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우리는 교회니까.
그래서, 교회는 이런 것이 교회고 그러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영원한, 진정한 행복, 인간의 참 행복, 시간을 두고 멀리 좀 계산해서 속속들이 파고들어가서 막힘 없고 섞임 없고 그래가지고 참 인간의 행복, 시간을 초월하고 모든 관계를 초월하고 대상을 다 넘어서서 진정한 인간의 행복이 어디가야 있을까? 무엇을 가져야 있을까? 참 인생의 만족이 어디있을까? 참된 기쁨이 어디있을까? 참된 사랑이 어디가면 있을까? 그거는 하나님 계신 곳 말고는 없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셔야 거기 비로소 생명도, 영광도, 존귀도, 기쁨도 다 있는 것이지 하나님 없는 곳에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어서 그래서 교회 안에만 생명도, 평강도, 행복도 다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여기까지 오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후에는 그다음에 나가서 교회는 종류가 있는데 첫째 교회는 무슨 교횝니까? 개인교회, 두 번째는요? 가정교회, 세 번째는요? 사회교회, 네 번째는요? 세계교회, 다섯 번째는요? 역사교회 요래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교회 종류는 다섯 종류입니다. 개인교회가 있고, 개인 개인이 교횝니다. 개인 개인이 하나님과 진리를 모셨으면 거기가 바로 그 사람이 교회고 그 교회가 혼자 있으면 개인교횐데, 하나님께서 혼자보다는 좀 더 혼자 살고 혼자 지내고 혼자 모든 것 하는 것보다 좀더 실력있고 구비한, 폭넓은, 원만한 그런 우리를 만드시기 위해서 일차 첫 출발의 단계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그러면서도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관계로 부부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우리를 보다 좀 더 넓은 사람으로 출발을 시켜주신 겁니다. 그래서 부부는 유별하다, 부부라는 것은 세상에 가득찬 모든 인간관계보다 특별한 것이 부부라는 관계다. 이 부부라는 관계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났는데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하나가 되는데 이것이 하나되는 것은 하나니까 가장 가깝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운데 이게 하나되기까지는 많은 그런 과정들, 어려움들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부부가 하나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늘어나는 실력은 굉장히 많은 것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익히고 갖출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부 제도를 만들어서 좀더 원만하고 구비한 실력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게 하시고 그리고 난다음에 자녀가 나면 더 넓어지고, 또 둘 낳으면 더 넓어지고 그래서 점점 더 넓은, 폭넓은 그런 우리를 만들어가시기 위해서 일차 출발로 가정교회를 만드셨으니, 개인교회가 좀더 넓어지고 성장하면 무슨 교회가 됩니까? 가정교회가 되는 것이고, 가정교회가 가정만 모이면 이제는 부부가 하나가 되고, 그다음 자녀들도 다 하나되서 재미있는, 남부럽지 않은 그런 다른 사람이 부러울 수 있는 그런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는데 그 가정이 다른 사람들 가정과 만나봤을 때 이게 또 하나되지 아니하고 이질되어서 자기 가정 중심으로 따글따글 뭉쳐버리면 그거는 가정까지는 되어졌는데 거기 한정이 되어버리면 사회교회로 들어오지 못하니까 좁아져서 그것도 전부가 아니니까 사회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개인교회가 이제는 넓어져서 가정교회가 되었느냐, 가정교회가 원만하게 되어졌느냐 그러면 그 가정은 사회교회로 좀더 넓은 테두리로, 넓은 세계로 들어가봐라. 거기 가서 맞춰도 다른 교회들과 다 맞아서 잘 융화가 되고 하나가 되고 단일이 되어지면 그거는 거기까지가 이제 전부입니다. 그리고난다음에 사회교회가 더 넓으면 세계교회가 있는데, 더 넓은 세계고, 사회교회까지 바로 되고 그러고나면 이제 공회라는 교회가 더 넓은 그것도 사회교회로 넓은 범위라 말할 수 있고 그러면 이런 교회들이 다 세계에 흩어져있는데 흩어져있는 세계 모든 교회들이 본질과 본성이 같고 말하자면은 소망하는 소망 방향이, 목적하는 방향이 같고, 가는 법칙이 같고 가치관이 같고 깨달음이 같고 길이 같으면 있는 지역은 달라도, 이름은 달라도, 결국 다 모여놓으면 하나로 다 합쳐지게 되는 것이니, 그래서 개인교회가 있고 가정교회가 있고 사회교회가 있고 세계교회가 있고 역사 모든 교회가 있는데 이 모든 교회들의 원래 모습은 어떤 교회라고요? 하나인 단일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그러면, 가정교회에 대해서 오늘 좀 생각해봐야 되겠는데 가정교회, 본문의 말씀은 가정교회를 말씀하신 겁니다, 가정교회. 개인교회가 성장하면 가정교회가 됩니다, 가정교회. 가정교회의 출발은 남편과 아낸데, 자 그러면 눈을 뜨고 마음을 가다듬고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가정이 무엇인가? 우리 같이 한번 따라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가정이 무엇인가?’ 자, 가정이 무엇입니까? 가정이 무엇입니까? 가정이라는 글자가 ‘집가’ 자에 ‘정’자가 무슨 ‘정’자 입니까? 저도 못 찾아봤는데 ‘뜰정’ 자 아닌가요? 제가 혹시, 000 선생님? 맞습니까? ‘뜰정’자 맞지요? ‘집가’자에 ‘뜰’ 마당 뜰, 그런 ‘정’자. 그러면 가정교회가 뭡니까? 가정이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가정. 오늘 지난주부터 오늘까지의 말씀은 지금 가정교회, 가정을 말하는 겁니다. 가정교회를.
그러면, 가정이란 곳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길 가정은 어떤 곳으로 알고 있습니까? 가정이란 곳, 세상에 그런 노래가 있지요? 이게 예배시간에 이거 좀 인용하는 거니까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하여도 내가 쉴 곳은 내 집 뿐이다’ 그런 말이 있지요, 그런 노래가 있지요. 가정이란 곳은 말하자면은 안식처, 보금자리 그런 곳 아닙니까? 가정이란 곳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가장 편안하게, 안정되게 쉴 수 있는 보금자리입니다. 안식처입니다. 쉴 수 있는 거기가 가정입니다. 안정된 곳. 거기가 가정이지요. 아닙니까? 생각해보자 그말이지요. 맞습니까? 가정이란 곳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학교를 가도, 회사를 가도, 직장 가도, 친구집에 가도, 어디를 가도 마지막에 돌아갈 곳은 자기 가족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가정입니다.
가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가정이 불안하면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은 항상 불안하고 떠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이란 곳은 안 믿는 세계에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이걸 생각하면, 바로 생각한다면 가장 중요하게 관심을 가지고 힘 쓸 것 중에 하나가 그 나라에 가정들이 바로 되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그래서 모두 일자리 만드는 것이 가정이 요즘은 또 시대가 그런 시대니까 경제하고 연결이 되니까 경제가 잘못되면 가정이 다 엉망이 되어버리니까 근데 또 이것도 뒤바껴져서 가정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경젠데 사람들의 인식이 틀리고 시대가 틀리고 흐름이 그래되니까 경제가 가정보다 더 위에 올라가가지고 그래되니까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생겨지는데 그럴 순 없는 겁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가정이 우선이고 앞서야 되지, 가정은 가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치 가정이란 곳은 고향과 같은 곳, 마지막에는 힘들면 가야되고 쉬어야 되고 편안하게 가서 안식해야 되고 보금자리 되어야 되는 그곳이 가정이라는 겁니다. 가정이란 곳은 역할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만약에 그런 곳이 되어있지 않으면, 자녀들이 밖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그런 청소년들의 뒤를 살펴보면 가정이 그리 되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편해야 되고 좀 쉴수가 있어야 되고 안정이 되야되고 좋아야 되는데 거기가 그리 되어있지 못하면 자꾸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가정을 두고 밖으로 자꾸 돌때는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아내들이 살펴 봐야 됩니다, 시급하게 살펴봐야 됩니다. 자녀들이 그럴때는 자녀를 살펴봐야 되고, 남자들이 가정을 두고 처자식이 있는 가정을 두고 직장 때문에, 사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은 그러나 그러지 않아야 되는데 자꾸 밖으로 돌고 그러고 가정에 자리를 붙이지 못하고 재미를 붙이지 못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얼마지나지 않아서. 시급하게 살펴봐야 됩니다. 가정은 남자들이 말하면, 말하자면 힘들고 괴롭고 어렵고 슬프고 고달프면 마지막에 와서 쉴 수 있는 곳이 되야 됩니다. 가정이란 곳은.
아내도 마찬가집니다. 아내는 말이, 아내는 글자 그대로 집 안에서 집을 관리하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냅니다, 글자가 아내. 아내라는 말이 아-내지만은 그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어원을 타고 들어가보면 안에 있는 사람이라 그래서 말이 아내가 된 걸 겁니다. 보나마나 그거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집안에서 살펴봐야 되는데, 잘 있어야 되는데 그 아내가 자꾸 밖으로 돌면 그것도 더 큰 문제가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가정은 부부가 중심이고 그 부부 사이에 도덕적으로 세상적으로 그렇습니다. 문제가 생겨서 냉전이 되어 있으면 자식들이 보면, 자녀들이 보면 눈치가 딱 보면 ‘아버지 어머니 싸웠다’ 그러면 집안이 안 편하지요? 밖으로 도는 겁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그러니까 가정이란 곳은 이런 곳입니다. 자녀에게나 남편에게나 아내에게나 온 가족들에게 가정이란 곳은 안식처, 보금자리, 고향같은 곳, 쉴 곳이 되어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가장 크게 역할하는 사람이 바로 아냅니다. 어머니. 아내가 그 역할을 가장 크게 하고 많이 하고 중요하게 역할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가정이기 때문에 그 가정이 바로 되어져야 되겠는데, 그 가정에 중심이 부부니까, 자녀로 말하면 부모님이니까 그 부모님이 가정에서 자녀들을 따뜻하게 편안하게 또 부부 서로가 편안하게 그리되려고 하면, 그리되야 되는데 그리되려고 하면 두사람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리되려고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부모님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답이 안나오면. 하나가 되어야 되겠지요, 하나가.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의견이나 주장이나 뜻이나 가치관이나 하는 일이나 생각이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야 됩니다. 하나가 되야 되는데, 두사람이 남남이 만났는데, 각자 인격첸데, 자기 자의사가 있는데, 지정의가 뚜렷한데 이 두사람이 하나 되는게 쉽게 되겠습니까? 대단히 어렵지요. 이 어려운 것을 두 사람이 하나되는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냐?
비유가 좀 안 맞지만은 형제가 여럿이 있습니다. 형제가 여럿이고 장남이 있고 둘째 있고 셋째 있고 여러 형제가 있는데 여러 형제들이 의견이 갈립니다. 그래서 마찰이 생겼습니다. 하나로 만드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뭡니까? 여러 형제가 있는데 의견이 다 각각 갈렸는데 어떤 경우 되면은 하나되기가 수월합니까? 집안에 어른이 있으면 아버지나 어머니 구심점이라 그러지요. 그래서 집안에서 연세 많은 어른들이 팔십이 되고 구십이 되도 그 아버님 어머님 어른들이 살아계시는 거 하고 안 계시는 거 하고는 집안에 하늘과 땅 차입니다. 옛날에 보면은 왕도 그렇습니다. 그 왕이 늙어서 아무것도 못해도 그 왕이 살아있을 때 하고 젊은 아들 왕이 왕이 되어서 힘껏 나라 다스리고 한다 그래도 그 아버지가 있는 거 하고 없는 거 하고는 천지차입니다. 집안에 어른이 있는 것 하고 살아있는 것 하고 없는 것 하고는 하늘과 땅 차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른들 혹 심방가서 뵈면 그래 말합니다. ‘어른이 계시는 것과 안 계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엄청난 그런 역할이 있습니다. 어쨌든 오래 사셔야 됩니다’. 진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거는 인간 세계 정도 안에서 그렇습니다. 불효자들은 그런게 해당이 없지요. 사람이라면 어른이 있으면 형제간들이 마음대로 못합니다. 어느정도까지 고집도 꺽고 양보도 하고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한계가 있고 인간 도덕 차원입니다. 윤리 차원이고. 신앙세계로 가정교회에 하나되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하나되는 것은 그 구심점을, 중심을 어디로 잡아야 됩니까? 남편이 주장하면 아내는 ‘나도 사람인데, 내 생각도 있는데, 나도 기분이 있는데, 당신 기분 나쁘면은 내 기분은, 당신 기분 좋게 하려면 나는 기분이 나쁜데’ 그러니까 아내 맞추면 남편은, 부모 맞추면 자식은 안 맞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정에 어른을 사람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께로 맞추면 하나님은 완전잡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니까 진리를 주셨으니 그 진리 말씀을 가지고 남편도 ‘내 고집대로 안하겠다. 하나님을 중심하자. 진리가 있으니까 그리가자. 옳은 길로 가자. 영원을 두고 변함없는. 나도 그 진리 맞춰서 양보할거니까 당신도 양보해라’. 그럴때 아내가 말 안들으면 강제는 못합니다. 어린 아내니까. 그러면 남편이 기도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그리할 때 자식이 말 안들으면 매를 댈 만한 계기가 되면 매를 대지만은 신앙을 두고는, 신앙교육을 두고는 매를 때려서 유익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신앙은 자유성이 가장 중요하니까. 신앙을 두고는 사정을 하는게 오히려 낫습니다. 어릴때는 다른 걸로는 두드려패도 새벽기도 안나온다고 매 때리는 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성경 안 읽고 기도 안한다고 매를 때리면 유익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하려면 아버지 어머니가 사도바울같은 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 안됐으면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사정을 해야 됩니다. 그대신에 공부를 안하면 매를 때릴 수 있습니다. 제 할 일 안하면 매를 때릴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제 책임과 의무적으로. 그러나 신앙 가지고 매 때리는 것은 유익이 별로 없습니다. 남편 아내 사이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중심해서 진리 법칙으로 하나가 되야 됩니다. 그리 하나되는데는 자라가면 알아가면 여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게 옳지 않느냐’. 옳은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이고 성령 훼방하는 사람은 뭡니까? 성령 훼방하는 사람은 뭡니까? 마귀지요 뭐 귀신이고. 그러면 귀신하고는 대화가 안되는 거니까 기도하고 미뤄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에 합시다.’ 큰 소리 내면 감정 섞으면 더 멀어지니까 좋을 거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약문답에 다섯 번째 힘쓸 일이 뭐냐? 이 가정이, 네 번째 이 가정이 하나가 되야 기도의 응락이 이루어지고 자녀들이 깨끗하게 되는데, 하나가 되어야 되는데 여기에서 힘쓸 일이 뭐냐? 이러기 때문에 힘쓸 일은 앞선 신앙의 사람이 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말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부부가 서로에게 신앙 관련된 말은 안할수록 좋습니다 오히려. 적게 할수록. ‘성경 좀 읽어라’. 필요 없습니다 그말이. ‘새벽기도 좀 나가자’ 말이 별로 필요 없습니다. 하기는 해야 됩니다 어느 정도 선까지. 그러나 많이 해봐야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앞선 신앙의 사람이 말은 하기는 하되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입니까? ‘말만 가지고는 전도되지 않는다. 말보다는 그 아내의, 남편의 행동을 본다’. 어떤 행동을 보는가?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죄 지을까 싶어 벌벌 떠는 겁니다.
신앙 없는 가족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이는데 신앙 있는 가족의 눈에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죄를 지으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 얼마나 그 죗값이 두려운지를 알아서 벌벌 떠는 겁니다. 그게 본능적으로 되는 겁니다. 그리 하려고 처음에는 연극도 하지만은 연극이 아니고 진정 신앙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죄를 지으면 어떻게 사람이 천해지고 멸시받고 하나님 앞에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되고 징계 받는 그리 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또 실감해서 가족들 보는, 자기보다 안 믿는 사람, 믿음 어린 사람 앞에서 죄 지을까 싶어서 벌벌 떠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받을까 싶어서 떠는 겁니다. 그래서 말도 화가 나지만은 말도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이 태산같이 있지만은 말 못하지요. 매를 때리고 싶어 손이 막 떨리지만은 못하지요. 감정풀이 하고 싶지만은 못하지요. 자녀가 보니까 아버지 어머니 보니까 막 화가 나서 그런데 보니까, 딱 보니까 ‘아버지가 참는구나, 어머니가 참는구나. 왜 참는가 보니까 더 이상 나가면 하나님 앞에 배운대로 하나님 걱정하실까 싶어서, 노할까 싶어서 참으시는구나’. 그런게 자녀들 눈에 수없이 말하지만은 말 없는 가운데서 그게 다 보인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신앙 있는 부모님을 모신 자녀들의 행복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신앙있는 남편 둔 아내의 복도 참 큰 복입니다. 신앙있는 아내 둔 남편의 복도 참 큰 복입니다. 이 복의 가치를 사람들이 모르지요 세상에서는. 그래서 죄 지을까싶어 벌벌 떨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받을까 싶어서 벌벌 떨고, 어린 신앙, 안 믿는 사람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이는데 이 신앙의 사람은 살아보고 하나님을 만나봤으니까 하나님이 보입니다.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서운하심이, 걱정하심이, 때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심이 확연하게 보여지니까 조심을 하는 겁니다. 그런걸 어린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이 보면은 처음에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안다 그말이지요. 하나님이 역사해서 알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를 늘 생각을 하고 소망을 하고 자기를 깨끗하게 귀하게 만들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 앞에 알게 모르게 눈물로 기도하고. 공과에 나오는 다섯가집니다.
이런걸 하면 안믿는 가족들이, 어린 신앙들이 점점 보고 변화가 되고 따라오게 되고 하나가 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가정이 믿음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 된 가정이 돼서 그런 가정이 되면 그 가정은 세상적으로 말하면 참 보금자리가 됩니다. 안식처가 됩니다. 고향 같은 곳이 됩니다. 그래서 밖에서 아무리 좋아도 얼른 집에 가고 싶고 어려운 거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못해도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다 털어놓을 수 있고 아무도 못 믿어도 아버지 어머니는 믿을 수 있고 아내가 남편을 믿을 수 있고 남편은 아내를 믿을 수 있는, 부모도 자녀를 믿을 수 있는 요래가지고 되면 얼른 생각해봐도 천국 아닙니까? 그 범위안에서. 이것이 점점 커지고 깊이 들어가면 영원한 천국에 모형이 되는 거지요. 진리의 세계 안에서. 이게 가정교회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는 우리들의 모든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된 가정, 부부가, 부모가 또 부모 자녀가, 가족들이 하나가 되어서 그 가정이 온전한 가정교회가 되고 그 온전한 가정교회가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가정교회가 되면 사회교회에 나올때 또 다른 가정들하고 맞춰서 역시 또 하나로 같이 온전한 사회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가정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많은 사람이 구원이 되겠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래 넓혀가는게.
우리는 우리 가정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가정 만들어서 우리 교회가 그리 되고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는데는 수많은 희생 십자가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가치관을 바꾸고 방향만 바꾸면 기쁨이란 것은 무엇이 기쁨이냐 쾌락이 무엇이냐 거기 따라서 어떤 사람은 돈 몇푼에 죽고 사는데, 어떤 사람은 돈 억만금 있어도 기쁘지 않습니다. 육의 사람은 금은보화를 보고 기뻐하지만은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은 한 진리를 깨닫는데 기뻐 못 견딘다. 이응도 목사님이 그래 말씀하셨다 그러지요.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서 기쁨의, 쾌락의 방향도 완전히 다른 겁니다. 우리는 무엇이 기쁜지? 이걸 생각을 하고 우리 가정을 좀 온전한 가정교회를 만들어 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자꾸 좀 읽어보고 생각해보고 우리들의 위치와 책임 의무 역할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고있는지, 해왔는지, 할것인지 좀 생각해 실제로 이런 가정교회를 좀 만들어보십시다.
제목: 가정교회
1. 본문
1)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유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
2)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라
어떻게? (자기 몸) 같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3)부부 제도의 목적은?
말씀으로 (깨끗)하게,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4)자녀들아 부모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5)아비들아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2. 교회-정의
1)하나님의 목적은? 온전한 (교회) 건설
2)교회는? (천국)의 모형, 교회는 지상의 (천국)
3)따라서 참된 행복과 평안, 영원한 생명은 (교회) 안에만
4)교회는? (하나님) (진리) (성도)의 삼합
5)교회는? 건물이 아닌 (사람)이 교회
3. 교회-종류
1)교회는 (개인)교회, (가정)교회,
(사회)교회, (세계)교회, (역사)교회
2)개인교회가 넓어지면 (가정)교회
3)개인교회와 가정교회가 모이면 (사회)교회
4)세계의 모든 교회들은 (세계)교회
5)역사의 모든 교회들은 (역사)교회
6)교회의 원래 모습은 (단일)교회
3. 가정교회-중요성
1)본문은 (가정교회)에 대한 말씀
2)개인교회가 성장하면 (가정)교회
3)가정교회의 출발은 (남편)과 (아내)
4)가정교회가 바로 되려면 (부부)가 하나 되어야
5)가정교회가 바로 되면 (기도의 응락)이 이루어지고 (벧전3:7)
(자녀)들이 (깨끗하게) 되어 짐(고전7:14)
4. 가정교회-노력
1)(말)만 가지고는 전도도 빛도 안 되고
2)(앞선) 신앙의 사람이
①(범죄)할까 두려워하고
②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③(하나님)과 (심판)과 (천국)의 영광 문제를 두려워하고
④자신을 (온전한 사람) 만들기 위한 (성화)의 노력과
⑤범사를 하나님으로 해결하려는 (기도)의 노력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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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721 주후
에베소서 5:22-6:4
요약문답지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 주일학생들, 중간반 학생들이 좀 더 예배를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서 시간을 들여서 일부러 좀 만드는 겁니다 예배준비도 하지만은. 근데 지금까지 아마 한 한달 좀 더 됐을건데, 한 5-6주 정도 했을건데, 김연순 집사님 구역에는 관리가 제대로 되고, 또 문숙희 선생님 반 학생들 그쪽에 관리하는 학생들은 관리가 되고 있고, 다른 구역은 하는지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을 안 하는 것도 문제고, 이런걸 해도 학생들은 관리 안하면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교육도 관리고, 양육이란 것은 더 세밀하고 치밀한 관리가 필요한 일입니다. 구역별로 좀 챙겨보시라 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리한건데 구역별로 좀 제대로 안 챙겨지는 것 같습니다. 챙길만한 그런 선생님들이 충분히 있는데도 보니까 제대로 안되는데 좀 챙겨보심 좋겠고 안되면 또 달리 해야 되겠고.
우리 학생들이, 우리 교회 학생들은 다는 아니고 보면, 공부에 집중을 하고 열심히 잘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대개 우리 교회, 백목사님 계시던 서부교회 별명이 지게꾼 교횐데, 그말은 한쪽으로 말하면 가난한 교회라 그뜻이고, 또 한쪽으로 말하면 무슨 뜻입니까? 대단히, 전체적으로 겉만 보고 하는 말이지만은 무식한 사람들이 많은 교회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도 그 속에 들어가보면 거기 교수도 있고, 박사도 있고, 의사도 있고, 많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대체적으로 열심히 하는 분들은 다 무식한 그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또 성경이 그러하고 복음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식한 것이 좋으냐? 무식은 부끄러운 일이고 수치스러운 일이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가난해서, 또 사정이 있어 못 배운 것은 옛날 다 그랬으니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을 가르칠 때 ‘공부를 잘하라‘ 늘 하는 말이지만 잘해야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심히는 해야 됩니다. 학생들 나이에 공부 안하면 반드시 다른 짓을 하게 되있습니다. 학생들은 그때는 공부할 나인데, 공부가 저거 업이고, 저거 생활의 거의 전분데, 그 나이때 공부를 안하면 엉뚱한 짓을 하는데, 그 엉뚱한 짓은 100에 99.9는 다 죄짓는 일입니다. 자기 앞날 다 망치는 그런 일을 하게 되있습니다. 그러면 부모님들이 챙겨서 강제로라도 ’잘하라는 말 안한다. 그러나 노력은 해라‘ 게으르면 아무짝에도 못씁니다. 공부를 안하면 학교 성적이나 진로가 문제가 아니고 사람을 다 베려버립니다. 이것이 예배시간에도 그대로 연결이 되어서 예배 볼때도 보면은 좀 제대로 하는 그런 사람은 예배도 잘 보는데, 공부도 안하고 아주 게으르고 농땡이 치는 그런 학생들 보면은 예배도 안봅니다. 벌써 생활이나 사람 됨됨이가 삐뚤어져있다 그말이지요. 큰 문제가 됩니다.
교회는 뭐 하는 곳이냐? 교회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 교횝니다. 예배를 왜 드려야 됩니까? 교회를 왜 다니며 예배를 왜 드립니까? 교회 다니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학생들, 예배 보는 목적, 교회 다니는 목적이 뭐지요? 여섯 글자, 여섯 글자 두 줄이지요. 수도없이 많이 했습니다. 뭡니까? '진리를 배워서, 참사람 되려고' 그게 교회의 목적이고 신앙생활의 목적입니다. 진리를 배우려면 예배시간에 마음을 기울여야 되지 않겠습니까? 필기도 하고, 들어보고 질문도 하고, 우리 중간반 학생들이 살아있을 때는, 질문도 더러 하고 물어보고 모임도 있고 하더니, 오늘 주일 오전 예배 마치고, 장년반 오전 예배 마치고 남반에 복습하는 것 보니까 한 서너명 나가던가요? 다 마치고 나가는데 서너명이 나가던가요? 중간반이 다 죽어있는지, 관리가 안되는지, 오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은,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런걸 만들어놓으면 자꾸 챙겨서 내 아이부터 챙기고, 내 구역부터 챙기고, 내 반을 챙겨서 사람을 만들려고 자꾸 애를 쓰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우리 동천교회는 전부다 막노동꾼만 나와야 됩니까? 우리 동천교회는 노가다꾼만 나오고, 장사꾼만 나오고, 무식한 사람만 나와야 되는 겁니까? 여기서는 판사, 검사, 의사, 변호사, 세상에 잘난 사람이 나오면 안되는 겁니까? 그리 생각하면 하나님 앞에 그 생각 자체가 죕니다 그거는. 왜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지 모르고 어떤 은혜를 주실지 모르는데 왜 그걸 다 막아버리냐 그말이지요. 노력안하고 되는 수가 있습니까 세상에? 힘 안쓰고 되는 일이 있습니까?
늘 말씀드리지만은 학습세례문답에 ‘삼가 모든 지능이’ 어디서 나온다고요 학생들? 모든 지능이 어디서 생겨진다고요? 수고를 어떻게 하는데서요? ‘수고를 달게 하는데서’, ‘수고’가 뭡니까? 다른말로 말하면 ‘노력’ 아닙니까? 열심히 노력하고 힘을 쓰고 애를 쓰고, 수고를 달게 하는데서 지능이 생겨집니다. 자기 지능이 만들어지게 되는 겁니다. 예배시간에 좀 학생들이 그리 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이, 주변 선생님들이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자꾸 챙겨봐야 됩니다. 챙겨보고 검사도 하고 잘하면 상도 주고 못하면 섭섭해서 좀 서운한 얼굴도 좀 하고. ‘너 다른 거 잘하는데 오늘 예배시간에 보니까 아버지가, 어머니가 밥맛이 없다. 밤에 잠이 안온다.’ 또 예배 잘드리고 잘하면은 가서 빵도 좀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영화 구경도 시켜주고, 잘하면 말이지요. 그리하면은 학생들이, 가치를 거기두면, 부모님들의 가치가 거기 가있으면 자녀들의 가치는 그쪽으로 따라가게 되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안되는 거지요.
세상말에 삼위일체라는 말을 안믿는 사람들은 ‘여럿이 모여서 하나를 만들자, 여러 가지, 여럿이 힘을 써서 하나를 세우자’ 그럴 때 응용을 하는데, 교회가 목사 혼자 할 수 있는 겁니까? 물론 교역자가 목사가 사도바울처럼, 백목사님처럼 그렇게 능력 있으면 수천명이 다 그만 그 아래 복종을 하고 다 해결이 됩니다. 근데 지금 시대에 그런 분이 없으니까 또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신 범위가 아니니까 그러면 여기서 부족한 교역자를 교역자로 있으면, 두고 있으면 같이 힘을 써야 됩니다. 혼자 맡겨두지 마시고. 학생들 챙기는 것도 좀 같이 힘을 쓰도록. 그래서 공부할 때는 공부를 해야 되고, 예배 볼 때는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예배 드리는 게 뭡니까? 찬송할 때는 찬송하고, 기도할 때는 기도하고, 말씀 드는 시간에는 듣는게 예의 아닙니까? 그게 자세고 기본적인 예읩니다. 하나님 앞에 예의고, 서로간에 예의. 앉아서 엉뚱한 생각 하고, 졸고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좀 관심을 가지고 같이 좀 챙겨보고. 이런 말들을 자꾸 할 필요가 없는건데, 자꾸 안되니까 자꾸 하는데, 이런 말은 다 전부 공연한 말이지요. 시간 낭비였단 말이고. 좀 생각 좀 하시면 좋겠습니다.
본문을 보고, 학생들은 문답지를 한번 살펴보고, 또 머릿속에 담아보십시다. 지금 해당이 안되도 언젠가 다 해당될 말씀들이고 다 연결된 말씀들입니다. 본문에, 오전 말씀 잠깐 복습하면 본문을 먼저 생각해봤습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어떻게 하라고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 왜 복종을 해야 됩니까? 아내가, 남편이 자기의 머리니까. 복종하면 얼마만큼 복종해야 됩니까? 하나님에게 하듯이 복종을 해야 된다. 남편들은, 남자들은 우리 아내가, 우리 아내 될 사람이 그리 하는가 보자. 일단 담아놔도 됩니다 머릿속에. 아내된 자들은, 아내된 사람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복종하기를 하나님에게 복종하듯이 해야 된다. 그리 나는 배웠다.‘ 그래놓고 그러면, 아내가 또 묻겠지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얼마나 사랑하라고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 같이 자기 목숨을 하나님이 사람되기까지 낮아지고 자기 목숨을 받쳐주시기까지 사랑하셨으니까, 그러면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된 자여, 남편에게 하나님에게 복종하듯이 복종하라.’ 웃으면서 그리 말하겠지요? 남편이 그러면 아내는 웃으면서 ‘네 복종해야지요. 그러면 남편된 당신은 나를 하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목숨받쳐 사랑하신것처럼 나를 목숨받쳐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리하셔야지요.’ ‘그리하자.’ 서로 그리하면 온전한 교회가 되고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다음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뭐하라고요? 000. 부모를 주 안에서 어떻게 하라고요?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순종 안하면 틀렸다. 틀린 것은 죕니다.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러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러면 자녀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옳고, 순종하면 공부도 잘되고, 직장생활도 잘되고, 장사도 잘되고, 돈벌이도 잘되고, 가정도 잘되고, 다 잘되고 오래 살고, 순종 안하면 틀려 먹었으니까 공부도 안되고, 장사도 안되고, 돈벌이도 안되고, 가정도 안되고, 일찍 죽고. 성경입니다. 그리 된다. 그러니까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순종을 해야 되겠다.
또 ‘아비들아’, 그말은 부모들입니다. ‘부모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마라’ 그말은 자기 감정, 자기 주관, 자기 기분에 맞춰서 자녀를 상대하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그런 일 많지요. 어머니가 화나면 홧김에 아이들 뺨도 때리고, 아버지도 화나면 홧김에 몽둥이 들고. 자녀, 아동 교육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000 선생. 아동 교육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부모님이 자녀를 상대할 때 감정을 실어서 상대하면 백해무익이라 그러지요. 그건 감정풀이지 교육이 아닙니다. 사랑의 매라는 것은 거기에 감정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들어가도. ‘아비들아’ 자녀 기를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라.' 주의 교양이 뭡니까? 교양이라 말은 가르치고 기른다 말인데, 주의 교양이라 말은 주의 가르침, 그게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진리입니다. 자녀를 가르치려면, 자녀를 훈계하려면, 교육하려면 바른 걸 가르쳐라. 그 바른 것의 기준이 뭐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만이 바른 것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사람에게도 만물에게도 하나님에게도 가까운 사람에게도 먼 사람에게도 오늘도 내일도 다 맞는 말씀이니까 우리는 몰라도 말씀은 옳으니까 그 말씀 가지고 가르치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이 되는 겁니다. 그걸로 가르치고, 그다음에 자기가 먼저 그 말씀대로 살고 자녀를 인도하라 그말입니다. 아버지는 엉뚱한 길로 가면서 자식들만 초달한다고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먼저 말씀을 가지고 살고, 그다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옳게 가르치면 이거는 진리기 때문에 안되는 수가 없습니다.
솥에다가 물을 붓고 불을 떼면 100도가 넘어가면 물이 안 끓는 수가 있습니까? 정상적이면. 가스렌지 위에다가 냄비에 물 얹어서 불을 떼면은 물이 안 끓는 수가 있습니까? 그런 수는 없습니다. 정상이면. 이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치는 안되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니까 요대로 하면 안되는 수가 없는 겁니다. 부모님들이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면 자녀들이 안되는 수가 없습니다. 안되는 것은 뭔가 과정이나 방편이 틀려서 그렇지 바로 하면 안되는 수가 없는 겁니다. 요게 본문의, 가정교회 본문을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교회를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뭔가?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 이것도 좀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명상을. 사람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넓은가 모릅니다. 가봐도 다 모릅니다.
백목사님께서 예전에 한창 성지순례 바람이 불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봐도, 가도 거기가 뭔지 가는 사람들 오히려 잘 모릅니다. 그런데 안가도 앉아가지고 성경보고 생각해보고 기도하면 갔다온 사람보다 더 잘 안다 그런 말씀을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주를 다 돌아다녀봐야 우주가 넓은 줄을 알겠습니까? 안 다녀봐도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벌써 학자들이 연구한 것이 있고, 실제 우리가 보는 것이 있고 그런게 있으니까 그걸 가면은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이걸 왜 자꾸 말하느냐 하면은 우주가 넓다는 걸 제가 자주 말을 하는데 왜 이걸 말하겠습니까? 우주가 넓다는 것을 자꾸 말하는 것은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 광대하신 것을 만드신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으니 그 목적이 얼마나 크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 자꾸 말하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배경을 알아야 실제 그, 실제 그것도 그 주체되는 것도 그만큼 알게 되는 겁니다. 가치가 있는 겁니다.
금이, 금이 비싼 것은 그 금이 아무리 금이라도 금이라는 것이 용도가 쓸 곳이 없으면 금은 돌덩이나 금이나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돌맹이가, 평지에 돌맹이가 다 흔해도 돌이 귀할때는 돌이 금보다 더 비쌀때가 있습니다. 쌀이 귀해도 쌀이 너무 흔하면 쌀값이 떨어지는 것이고, 아무것도 아닌 그런것도 사람의 인분 같은 것도 그것이 흔하고 지저분하다고 던져버려도 인분이 귀할때는 그게 금보다 더 비싼 경우도 만들려면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 자체만 보고는 모른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그것과 관련된 환경, 배경을 다 생각해봐야 그 주체를 알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 구원이 어떠한 구원인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는 것은 필연이고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역사가 무엇이냐? 나를 우리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셨는데 낳아주셨고 밥 먹여줬고 용돈 주고 공부 시켜줬고 그거야 다 하지 않습니까? 그래 다 하는데 너거 아버지 어머니는 너를 사랑해서 너 앞날 생각을 해가지고 또 너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어떤 과거에 큰 고생을 했으며, 수백리 길을 너를 업고 눈 길을 걸어서 너 병 고치고 그런 과거가 있었다. 또 너 하나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안다녀 본 곳이 없다. 너 앞날에 공부 시켜보겠다고 뼈 빠지게 벌어가지고 얼마 얼마 다 모아놨다. 준비 다 해놨다. 그 아버지가 한 그런 일 배경을 보고는 그 사랑도 알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노력보면 자식 사랑의 정도를 알 수가 있겠지요. 한 일 보면은. 그가 하는 일이 어떠냐, 배경이 어떠냐에 따라서 그 일 하는 그 중심 주체에 가치가 어떠냐 결정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목적이 뭐냐?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우주를 다 지었는데 우주가 얼마나 크냐? 이걸 좀 명상을 해서 우리를 높여봐야 됩니다. 저는 알았겠습니까? 저도 몰랐습니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우주라는 말도 하늘 천 따 지 검은 현 거기 천자문 그거 좀 할 때 그때 뭐 우주가 나오니까 아 그런갑다 그랬지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알았습니까? 몰랐지요. 그런데 그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넓은 것을 설교록 읽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우주라는 것이 얼마나 크냐? 우주공간에 보니까 태양도 있고, 달도 있고, 별들이 있는데, 해와 달과 별들, 일월성신이라 그러죠? 있는데 그것이 별 하나 크기가 지구에 몇 천배 몇 만배 큰 것도 꽉 찼고, 그런 거 숫자가 천억도 넘고, 은하계 하나 있는 한 은하계 하나에 별 하나, 별 무리만 해도 수천억이 된다 그러고, 그런 은하계가 뭐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러죠. 그러니까 도대체 지구에 몇 천배 몇 만배보다 더 큰 그런 별들이 수천억개로 우주 공간에 떠 있다 그러니까 도대체 그러면 우주라는 놈의 크기가 도대체 얼마나 크냐? 무한이지요 뭐 무한. 인간의 범위에서는. 무한이지요.
그런데 성경을 두고 보면 우주 물질계는 무한은 아니거든요? 유한이지. 그러면 우주가 유한하면 영계는 도대체 얼마나 크냐? 그래서 영계는 신령한 세계라 그래 말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무한에 가까운 그 우주와 우리 구원에 주신 우리들에게 맡겨주시는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맡겨주신다는 통치의 그 범위가 논리적으로 따져도, 양적으로 분배를 해도 되고도 남겠다 그말이지요. 우주만 해도. 거기다 영계까지 합치면 이거는 참 영원한 세계 영계라 하는 것이 참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리 되는데 그런데 그 모든 우주의 광대한 그런 일월성신이, 물질계 모든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을 비롯해서 동물 식물 모든 생물들이, 또 모든 바다의 미지의 세계 신비스러운 그런 그 모든 바다속에 수많은 존재들의 그 모든 활동 작용 움직임들이 우리는 모르는데 전문가들이 볼 때는 너무나도 조직적으로 질서적으로 철두철미하게 맞춰서 기가 막히게 돌아간다 그말이지요 우리는 몰라서 그렇지. 그래서 학자들이 곤충 하나 연구하면 그 연구하는 사람들이 글을 하나씩 쓰는 걸 보면은 감탄을 합니다. 경탄스럽다. 벌 한 마리 연구해도 감탄하고 개미 한 마리를 연구해도 개미 전문가들이 개미를 연구하면 경탄을 합니다. 참 신비하다. 풀 하나를 연구해도, 꽃 하나를 연구해도 사람들이 감탄을 합니다. 그런 것들이 저절로 생겨졌다, 무식하면 그리 되지요. 하나님을 모르면.
그래서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어떤 분인 것을 그런걸 생각하므로 도대체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말씀으로 만드신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상상을 못하는거지요. 그래서 그 분을 아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이 알려주는 영감으로만 알아갈수가 있는 겁니다. 이런걸 알아 들어가는 걸 가리켜서 신앙이라 그럽니다. 이런 세계를 파고 들어가서 알아들어가는 걸 가리켜서 신앙이라 그러는 겁니다. 신앙이란 것은 이 세상, 세상은 암만 있어봐야 이거는 불 탈 세상이고 없어질 세상, 물질계 세상입니다. 나 죽고 나면 없습니다, 그만입니다. 상관이 없는 겁니다. 구원과 연관된 것이지. 영원한 세계 하나님과 연관된 거.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광대한 물질계 우주와 영계를 무엇 때문에 만드셨는가? 이래 막 굉장한 배경을 설명 하고 그런데 그 주체가, 주인공이 뭐냐? 주인공이 뭐라고요? 오전에 말씀드렸지요. 이 너무 엄청나고 어마어마한 광대하고 광활한 우주와 영계, 수많은 존재 그 모든 조직들 그 모든 거는 전부다 조연들입니다, 조연들. 엑스트라들이고 그 속의 주인공이 무엇이라고요? 주인공은 교회라는 겁니다, 교회. 온전한 교회. 이걸 안믿는 사람들이 인정을 하겠습니까? 믿어지겠습니까? 우리도 못 믿는데. 우리도 인정을 못 하는데. 그래서 믿음을 달라는 것은 이런걸 알게해달라고, 느끼게 해달라고, 믿어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그런 기도를 자꾸 하는 겁니다.
이런 역사하신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믿어지게 해달라고, 이런 사실을 깨닫게 해달라고 그래서 자꾸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목적을 정하시고 목적을 위해서 영원까지 예정을 해놨고 예정위에 창조가 있고 창조 속에 모든 게 다 있는데 그 모든 것의 목적, 그 모든 것의 주인되는 주인공 목적은 온전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 교회가 무엇이 교회냐?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을 모시고 진리를 모신 구속받은 성도가 하나님과 진리 모시고 사는 그 성도가 바로 교회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당 건물이 아니다. 이거는 성경 보고 알고 생각해보면 아는데 이런 상식을, 이런 기본적인 것을 아는 사람들이 너무도 없고, 이걸 알아서 여기 가치두고 이걸 제대로 가르치는 교회들이 너무도, 요즘은 모르겠습니다만은 그동안에 별로 없었다 그말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그래서 건물에 치장을 하고 건물에 돈을 쏟을 필요가 업어서 백목사님 계시던 서부교회는 그 생명 넘치는, 역사에 길이 남을 그 교횐데, 당시 교회로 말하면, 그런데 그 교회 예배당은 창고처럼, 주변에서 전국에서 모여서 서부교회 근처 와가지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서부교회가 어딥니까?’ 버스 기사들은 다 아는데. 부산 시내 버스 기사들은 서부교회가 그 노선 가는 사람들은 다 아는데. 멀리서 온 사람들은 바로 앞에 두고 ‘서부교회가 어딥니까?’. 간판이 제대로 붙어 있습니까? 건물이 교회 같습니까? 그래놓으니까. 거기서 모인 돈 전부 주일학교 운영하는 거기, 중간반에 거기 다 쏟아붓고 말씀 전파에 다 쏟아붓지, 예배당 건물에는 꼭 필요한 것만 갖춰놨으니까,
건물은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는 사람이 교횝니다. 제가 교회고, 여러분들 한분 한분이 바로 교횝니다. 우리는, 내가 교회다 이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니라.‘ 우리는 하나님 모신 집이기 때문에, 성전이고 교회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생각을, 눈을, 귀를, 입을, 우리 심신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거룩하게. 사람도, 우리는 안 그렇습니까? 어디가서 냄새 나는 곳에 가면 코를 막고 구역질이 나서 잠시도 못 있지 않습니까? 아이구. 지저분한 거 보면 눈 감아 버리고 얼른 나와버리지요? 추한거보면은. 못볼거 보면은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내 속에 들어오셨는데 내 속에 온갖 종류의 죄가, 시기가, 질투가, 미움이, 이런 쟁투가, 이런 지저분한 것들이 내 속에 들어있으면 주님이 계시겠습니까? 그만 얼른 나가셔버리지요.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우리는 교회니까.
그래서, 교회는 이런 것이 교회고 그러기 때문에 인생의 참된, 영원한, 진정한 행복, 인간의 참 행복, 시간을 두고 멀리 좀 계산해서 속속들이 파고들어가서 막힘 없고 섞임 없고 그래가지고 참 인간의 행복, 시간을 초월하고 모든 관계를 초월하고 대상을 다 넘어서서 진정한 인간의 행복이 어디가야 있을까? 무엇을 가져야 있을까? 참 인생의 만족이 어디있을까? 참된 기쁨이 어디있을까? 참된 사랑이 어디가면 있을까? 그거는 하나님 계신 곳 말고는 없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셔야 거기 비로소 생명도, 영광도, 존귀도, 기쁨도 다 있는 것이지 하나님 없는 곳에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어서 그래서 교회 안에만 생명도, 평강도, 행복도 다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여기까지 오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후에는 그다음에 나가서 교회는 종류가 있는데 첫째 교회는 무슨 교횝니까? 개인교회, 두 번째는요? 가정교회, 세 번째는요? 사회교회, 네 번째는요? 세계교회, 다섯 번째는요? 역사교회 요래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교회 종류는 다섯 종류입니다. 개인교회가 있고, 개인 개인이 교횝니다. 개인 개인이 하나님과 진리를 모셨으면 거기가 바로 그 사람이 교회고 그 교회가 혼자 있으면 개인교횐데, 하나님께서 혼자보다는 좀 더 혼자 살고 혼자 지내고 혼자 모든 것 하는 것보다 좀더 실력있고 구비한, 폭넓은, 원만한 그런 우리를 만드시기 위해서 일차 첫 출발의 단계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그러면서도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관계로 부부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우리를 보다 좀 더 넓은 사람으로 출발을 시켜주신 겁니다. 그래서 부부는 유별하다, 부부라는 것은 세상에 가득찬 모든 인간관계보다 특별한 것이 부부라는 관계다. 이 부부라는 관계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났는데 하나가 되는 것이고, 하나가 되는데 이것이 하나되는 것은 하나니까 가장 가깝지 않습니까? 가장 가까운데 이게 하나되기까지는 많은 그런 과정들, 어려움들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부부가 하나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늘어나는 실력은 굉장히 많은 것들이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익히고 갖출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부부 제도를 만들어서 좀더 원만하고 구비한 실력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게 하시고 그리고 난다음에 자녀가 나면 더 넓어지고, 또 둘 낳으면 더 넓어지고 그래서 점점 더 넓은, 폭넓은 그런 우리를 만들어가시기 위해서 일차 출발로 가정교회를 만드셨으니, 개인교회가 좀더 넓어지고 성장하면 무슨 교회가 됩니까? 가정교회가 되는 것이고, 가정교회가 가정만 모이면 이제는 부부가 하나가 되고, 그다음 자녀들도 다 하나되서 재미있는, 남부럽지 않은 그런 다른 사람이 부러울 수 있는 그런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는데 그 가정이 다른 사람들 가정과 만나봤을 때 이게 또 하나되지 아니하고 이질되어서 자기 가정 중심으로 따글따글 뭉쳐버리면 그거는 가정까지는 되어졌는데 거기 한정이 되어버리면 사회교회로 들어오지 못하니까 좁아져서 그것도 전부가 아니니까 사회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개인교회가 이제는 넓어져서 가정교회가 되었느냐, 가정교회가 원만하게 되어졌느냐 그러면 그 가정은 사회교회로 좀더 넓은 테두리로, 넓은 세계로 들어가봐라. 거기 가서 맞춰도 다른 교회들과 다 맞아서 잘 융화가 되고 하나가 되고 단일이 되어지면 그거는 거기까지가 이제 전부입니다. 그리고난다음에 사회교회가 더 넓으면 세계교회가 있는데, 더 넓은 세계고, 사회교회까지 바로 되고 그러고나면 이제 공회라는 교회가 더 넓은 그것도 사회교회로 넓은 범위라 말할 수 있고 그러면 이런 교회들이 다 세계에 흩어져있는데 흩어져있는 세계 모든 교회들이 본질과 본성이 같고 말하자면은 소망하는 소망 방향이, 목적하는 방향이 같고, 가는 법칙이 같고 가치관이 같고 깨달음이 같고 길이 같으면 있는 지역은 달라도, 이름은 달라도, 결국 다 모여놓으면 하나로 다 합쳐지게 되는 것이니, 그래서 개인교회가 있고 가정교회가 있고 사회교회가 있고 세계교회가 있고 역사 모든 교회가 있는데 이 모든 교회들의 원래 모습은 어떤 교회라고요? 하나인 단일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여기까지만 하고
그러면, 가정교회에 대해서 오늘 좀 생각해봐야 되겠는데 가정교회, 본문의 말씀은 가정교회를 말씀하신 겁니다, 가정교회. 개인교회가 성장하면 가정교회가 됩니다, 가정교회. 가정교회의 출발은 남편과 아낸데, 자 그러면 눈을 뜨고 마음을 가다듬고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가정이 무엇인가? 우리 같이 한번 따라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가정이 무엇인가?’ 자, 가정이 무엇입니까? 가정이 무엇입니까? 가정이라는 글자가 ‘집가’ 자에 ‘정’자가 무슨 ‘정’자 입니까? 저도 못 찾아봤는데 ‘뜰정’ 자 아닌가요? 제가 혹시, 000 선생님? 맞습니까? ‘뜰정’자 맞지요? ‘집가’자에 ‘뜰’ 마당 뜰, 그런 ‘정’자. 그러면 가정교회가 뭡니까? 가정이라는 곳이 어떤 곳입니까? 가정. 오늘 지난주부터 오늘까지의 말씀은 지금 가정교회, 가정을 말하는 겁니다. 가정교회를.
그러면, 가정이란 곳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알고 있길 가정은 어떤 곳으로 알고 있습니까? 가정이란 곳, 세상에 그런 노래가 있지요? 이게 예배시간에 이거 좀 인용하는 거니까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하여도 내가 쉴 곳은 내 집 뿐이다’ 그런 말이 있지요, 그런 노래가 있지요. 가정이란 곳은 말하자면은 안식처, 보금자리 그런 곳 아닙니까? 가정이란 곳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가장 편안하게, 안정되게 쉴 수 있는 보금자리입니다. 안식처입니다. 쉴 수 있는 거기가 가정입니다. 안정된 곳. 거기가 가정이지요. 아닙니까? 생각해보자 그말이지요. 맞습니까? 가정이란 곳은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학교를 가도, 회사를 가도, 직장 가도, 친구집에 가도, 어디를 가도 마지막에 돌아갈 곳은 자기 가족이 있는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가정입니다.
가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가정이 불안하면 그 사람의 모든 생활은 항상 불안하고 떠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이란 곳은 안 믿는 세계에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이걸 생각하면, 바로 생각한다면 가장 중요하게 관심을 가지고 힘 쓸 것 중에 하나가 그 나라에 가정들이 바로 되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그래서 모두 일자리 만드는 것이 가정이 요즘은 또 시대가 그런 시대니까 경제하고 연결이 되니까 경제가 잘못되면 가정이 다 엉망이 되어버리니까 근데 또 이것도 뒤바껴져서 가정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경젠데 사람들의 인식이 틀리고 시대가 틀리고 흐름이 그래되니까 경제가 가정보다 더 위에 올라가가지고 그래되니까 가정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이 생겨지는데 그럴 순 없는 겁니다.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가정이 우선이고 앞서야 되지, 가정은 가정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치 가정이란 곳은 고향과 같은 곳, 마지막에는 힘들면 가야되고 쉬어야 되고 편안하게 가서 안식해야 되고 보금자리 되어야 되는 그곳이 가정이라는 겁니다. 가정이란 곳은 역할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만약에 그런 곳이 되어있지 않으면, 자녀들이 밖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그런 청소년들의 뒤를 살펴보면 가정이 그리 되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집에 들어가면 편해야 되고 좀 쉴수가 있어야 되고 안정이 되야되고 좋아야 되는데 거기가 그리 되어있지 못하면 자꾸 밖으로 나돌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이들도 그렇고 어른도 그렇습니다. 남자들이 가정을 두고 밖으로 자꾸 돌때는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겁니다. 아내들이 살펴 봐야 됩니다, 시급하게 살펴봐야 됩니다. 자녀들이 그럴때는 자녀를 살펴봐야 되고, 남자들이 가정을 두고 처자식이 있는 가정을 두고 직장 때문에, 사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은 그러나 그러지 않아야 되는데 자꾸 밖으로 돌고 그러고 가정에 자리를 붙이지 못하고 재미를 붙이지 못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얼마지나지 않아서. 시급하게 살펴봐야 됩니다. 가정은 남자들이 말하면, 말하자면 힘들고 괴롭고 어렵고 슬프고 고달프면 마지막에 와서 쉴 수 있는 곳이 되야 됩니다. 가정이란 곳은.
아내도 마찬가집니다. 아내는 말이, 아내는 글자 그대로 집 안에서 집을 관리하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냅니다, 글자가 아내. 아내라는 말이 아-내지만은 그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어원을 타고 들어가보면 안에 있는 사람이라 그래서 말이 아내가 된 걸 겁니다. 보나마나 그거는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아내는 집안에서 살펴봐야 되는데, 잘 있어야 되는데 그 아내가 자꾸 밖으로 돌면 그것도 더 큰 문제가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가정은 부부가 중심이고 그 부부 사이에 도덕적으로 세상적으로 그렇습니다. 문제가 생겨서 냉전이 되어 있으면 자식들이 보면, 자녀들이 보면 눈치가 딱 보면 ‘아버지 어머니 싸웠다’ 그러면 집안이 안 편하지요? 밖으로 도는 겁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거지요. 그러니까 가정이란 곳은 이런 곳입니다. 자녀에게나 남편에게나 아내에게나 온 가족들에게 가정이란 곳은 안식처, 보금자리, 고향같은 곳, 쉴 곳이 되어 있어야 됩니다. 거기에 가장 크게 역할하는 사람이 바로 아냅니다. 어머니. 아내가 그 역할을 가장 크게 하고 많이 하고 중요하게 역할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가정이기 때문에 그 가정이 바로 되어져야 되겠는데, 그 가정에 중심이 부부니까, 자녀로 말하면 부모님이니까 그 부모님이 가정에서 자녀들을 따뜻하게 편안하게 또 부부 서로가 편안하게 그리되려고 하면, 그리되야 되는데 그리되려고 하면 두사람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리되려고 하면 아버지 어머니가 부모님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답이 안나오면. 하나가 되어야 되겠지요, 하나가. 하나가 되어야 됩니다. 의견이나 주장이나 뜻이나 가치관이나 하는 일이나 생각이나 모든 것이 하나가 되야 됩니다. 하나가 되야 되는데, 두사람이 남남이 만났는데, 각자 인격첸데, 자기 자의사가 있는데, 지정의가 뚜렷한데 이 두사람이 하나 되는게 쉽게 되겠습니까? 대단히 어렵지요. 이 어려운 것을 두 사람이 하나되는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냐?
비유가 좀 안 맞지만은 형제가 여럿이 있습니다. 형제가 여럿이고 장남이 있고 둘째 있고 셋째 있고 여러 형제가 있는데 여러 형제들이 의견이 갈립니다. 그래서 마찰이 생겼습니다. 하나로 만드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뭡니까? 여러 형제가 있는데 의견이 다 각각 갈렸는데 어떤 경우 되면은 하나되기가 수월합니까? 집안에 어른이 있으면 아버지나 어머니 구심점이라 그러지요. 그래서 집안에서 연세 많은 어른들이 팔십이 되고 구십이 되도 그 아버님 어머님 어른들이 살아계시는 거 하고 안 계시는 거 하고는 집안에 하늘과 땅 차입니다. 옛날에 보면은 왕도 그렇습니다. 그 왕이 늙어서 아무것도 못해도 그 왕이 살아있을 때 하고 젊은 아들 왕이 왕이 되어서 힘껏 나라 다스리고 한다 그래도 그 아버지가 있는 거 하고 없는 거 하고는 천지차입니다. 집안에 어른이 있는 것 하고 살아있는 것 하고 없는 것 하고는 하늘과 땅 차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른들 혹 심방가서 뵈면 그래 말합니다. ‘어른이 계시는 것과 안 계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엄청난 그런 역할이 있습니다. 어쨌든 오래 사셔야 됩니다’. 진심에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거는 인간 세계 정도 안에서 그렇습니다. 불효자들은 그런게 해당이 없지요. 사람이라면 어른이 있으면 형제간들이 마음대로 못합니다. 어느정도까지 고집도 꺽고 양보도 하고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는 한계가 있고 인간 도덕 차원입니다. 윤리 차원이고. 신앙세계로 가정교회에 하나되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하나되는 것은 그 구심점을, 중심을 어디로 잡아야 됩니까? 남편이 주장하면 아내는 ‘나도 사람인데, 내 생각도 있는데, 나도 기분이 있는데, 당신 기분 나쁘면은 내 기분은, 당신 기분 좋게 하려면 나는 기분이 나쁜데’ 그러니까 아내 맞추면 남편은, 부모 맞추면 자식은 안 맞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정에 어른을 사람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하나님께로 맞추면 하나님은 완전잡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니까 진리를 주셨으니 그 진리 말씀을 가지고 남편도 ‘내 고집대로 안하겠다. 하나님을 중심하자. 진리가 있으니까 그리가자. 옳은 길로 가자. 영원을 두고 변함없는. 나도 그 진리 맞춰서 양보할거니까 당신도 양보해라’. 그럴때 아내가 말 안들으면 강제는 못합니다. 어린 아내니까. 그러면 남편이 기도하고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그리할 때 자식이 말 안들으면 매를 댈 만한 계기가 되면 매를 대지만은 신앙을 두고는, 신앙교육을 두고는 매를 때려서 유익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신앙은 자유성이 가장 중요하니까. 신앙을 두고는 사정을 하는게 오히려 낫습니다. 어릴때는 다른 걸로는 두드려패도 새벽기도 안나온다고 매 때리는 것은 유익이 없습니다. 성경 안 읽고 기도 안한다고 매를 때리면 유익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하려면 아버지 어머니가 사도바울같은 분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 안됐으면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사정을 해야 됩니다. 그대신에 공부를 안하면 매를 때릴 수 있습니다. 제 할 일 안하면 매를 때릴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제 책임과 의무적으로. 그러나 신앙 가지고 매 때리는 것은 유익이 별로 없습니다. 남편 아내 사이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중심해서 진리 법칙으로 하나가 되야 됩니다. 그리 하나되는데는 자라가면 알아가면 여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이게 옳지 않느냐’. 옳은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이고 성령 훼방하는 사람은 뭡니까? 성령 훼방하는 사람은 뭡니까? 마귀지요 뭐 귀신이고. 그러면 귀신하고는 대화가 안되는 거니까 기도하고 미뤄놓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에 합시다.’ 큰 소리 내면 감정 섞으면 더 멀어지니까 좋을 거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약문답에 다섯 번째 힘쓸 일이 뭐냐? 이 가정이, 네 번째 이 가정이 하나가 되야 기도의 응락이 이루어지고 자녀들이 깨끗하게 되는데, 하나가 되어야 되는데 여기에서 힘쓸 일이 뭐냐? 이러기 때문에 힘쓸 일은 앞선 신앙의 사람이 말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말은 적을수록 좋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부부가 서로에게 신앙 관련된 말은 안할수록 좋습니다 오히려. 적게 할수록. ‘성경 좀 읽어라’. 필요 없습니다 그말이. ‘새벽기도 좀 나가자’ 말이 별로 필요 없습니다. 하기는 해야 됩니다 어느 정도 선까지. 그러나 많이 해봐야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앞선 신앙의 사람이 말은 하기는 하되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입니까? ‘말만 가지고는 전도되지 않는다. 말보다는 그 아내의, 남편의 행동을 본다’. 어떤 행동을 보는가?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죄 지을까 싶어 벌벌 떠는 겁니다.
신앙 없는 가족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이는데 신앙 있는 가족의 눈에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죄를 지으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지, 얼마나 그 죗값이 두려운지를 알아서 벌벌 떠는 겁니다. 그게 본능적으로 되는 겁니다. 그리 하려고 처음에는 연극도 하지만은 연극이 아니고 진정 신앙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죄를 지으면 어떻게 사람이 천해지고 멸시받고 하나님 앞에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되고 징계 받는 그리 된다는 것을 실감하고 또 실감해서 가족들 보는, 자기보다 안 믿는 사람, 믿음 어린 사람 앞에서 죄 지을까 싶어서 벌벌 떠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받을까 싶어서 떠는 겁니다. 그래서 말도 화가 나지만은 말도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이 태산같이 있지만은 말 못하지요. 매를 때리고 싶어 손이 막 떨리지만은 못하지요. 감정풀이 하고 싶지만은 못하지요. 자녀가 보니까 아버지 어머니 보니까 막 화가 나서 그런데 보니까, 딱 보니까 ‘아버지가 참는구나, 어머니가 참는구나. 왜 참는가 보니까 더 이상 나가면 하나님 앞에 배운대로 하나님 걱정하실까 싶어서, 노할까 싶어서 참으시는구나’. 그런게 자녀들 눈에 수없이 말하지만은 말 없는 가운데서 그게 다 보인다 그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신앙 있는 부모님을 모신 자녀들의 행복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입니다. 그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신앙있는 남편 둔 아내의 복도 참 큰 복입니다. 신앙있는 아내 둔 남편의 복도 참 큰 복입니다. 이 복의 가치를 사람들이 모르지요 세상에서는. 그래서 죄 지을까싶어 벌벌 떨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받을까 싶어서 벌벌 떨고, 어린 신앙, 안 믿는 사람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이는데 이 신앙의 사람은 살아보고 하나님을 만나봤으니까 하나님이 보입니다.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서운하심이, 걱정하심이, 때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심이 확연하게 보여지니까 조심을 하는 겁니다. 그런걸 어린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이 보면은 처음에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안다 그말이지요. 하나님이 역사해서 알게 만드시는 겁니다. 그리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를 늘 생각을 하고 소망을 하고 자기를 깨끗하게 귀하게 만들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 앞에 알게 모르게 눈물로 기도하고. 공과에 나오는 다섯가집니다.
이런걸 하면 안믿는 가족들이, 어린 신앙들이 점점 보고 변화가 되고 따라오게 되고 하나가 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가정이 믿음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 된 가정이 돼서 그런 가정이 되면 그 가정은 세상적으로 말하면 참 보금자리가 됩니다. 안식처가 됩니다. 고향 같은 곳이 됩니다. 그래서 밖에서 아무리 좋아도 얼른 집에 가고 싶고 어려운 거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는 말을 못해도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다 털어놓을 수 있고 아무도 못 믿어도 아버지 어머니는 믿을 수 있고 아내가 남편을 믿을 수 있고 남편은 아내를 믿을 수 있는, 부모도 자녀를 믿을 수 있는 요래가지고 되면 얼른 생각해봐도 천국 아닙니까? 그 범위안에서. 이것이 점점 커지고 깊이 들어가면 영원한 천국에 모형이 되는 거지요. 진리의 세계 안에서. 이게 가정교회라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우리는 우리들의 모든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된 가정, 부부가, 부모가 또 부모 자녀가, 가족들이 하나가 되어서 그 가정이 온전한 가정교회가 되고 그 온전한 가정교회가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가정교회가 되면 사회교회에 나올때 또 다른 가정들하고 맞춰서 역시 또 하나로 같이 온전한 사회교회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가정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많은 사람이 구원이 되겠지요.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래 넓혀가는게.
우리는 우리 가정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가정 만들어서 우리 교회가 그리 되고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는데는 수많은 희생 십자가가 따라가지 않으면 안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가치관을 바꾸고 방향만 바꾸면 기쁨이란 것은 무엇이 기쁨이냐 쾌락이 무엇이냐 거기 따라서 어떤 사람은 돈 몇푼에 죽고 사는데, 어떤 사람은 돈 억만금 있어도 기쁘지 않습니다. 육의 사람은 금은보화를 보고 기뻐하지만은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은 한 진리를 깨닫는데 기뻐 못 견딘다. 이응도 목사님이 그래 말씀하셨다 그러지요.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따라서 기쁨의, 쾌락의 방향도 완전히 다른 겁니다. 우리는 무엇이 기쁜지? 이걸 생각을 하고 우리 가정을 좀 온전한 가정교회를 만들어 보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자꾸 좀 읽어보고 생각해보고 우리들의 위치와 책임 의무 역할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고있는지, 해왔는지, 할것인지 좀 생각해 실제로 이런 가정교회를 좀 만들어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