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7-주후(출23:14-17)
삼대 절기2013-07-08조회 562추천 49
본문: 출23:14-17
제목: 삼대 절기
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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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707 주후
출애굽기 23:14-17
오전에 말씀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삼대 절기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오전에 첫 번째 생각해 본 말씀이, 모든 교회들이 다 지킨다 그리 표현하는데, 맥추 감사, 추수 감사. 감사 절기를 이렇게 일년에 부활절, 성탄 빼고 두 번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절기는 추수감사절이라 그리 말하지요. 그거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건국하고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럴 겁니다. 우리나라에 추수 감사도 거기서 근거됐다는 그런 말들이 많이 있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맥추 감사는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봄 농사, 보리 농사 주로, 그 보리 농사 하나님이 지켜주신 거기 대해서, 보리 추수하고나서 감사하고, 추수 감사절은 1년 농사 전체, 그래서 가을 농사 다 끝내고, 벼 농사 지은 분들은 쌀가마니가따가 또 몇 대, 또 많은 분들은 몇 가마니 강단 앞에 갖다놓고, 고구마 농사 지은 분들은 고구마 갖다놓고, 배추 농사 지은 분들은 배추 갖다놓고, 그래가지고 각자 자기 농사 지은 그 농산물들을 옛날에는 강단 앞에 이래 갖다놓고 추수감사절에 그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희들 어릴 때, 제가 있던 시골 교회도 그리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도 알기를, 그렇게 배웠는지, 뭐 그리 배웠으니 그리 알았겠지요. 맥추 감사절은 봄 농사에 대한 감사고, 추수 감사는 1년 농사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농사 대신에, 고기 잡는 어부들은 고기 잡이 1년 무사히 지켜주신 거기 대한 감사, 또 직장 생활 다니는 분들은 직장 생활 1년 동안 잘 지켜주신 거기 대한 감사, 또 사업 하는 분들은 사업 1년 동안에 무사히 잘 지켜주신 거기 대한 감사, 이런 각자 자기 생활에 연관된 거기에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시고 보살펴주신 그 면에 대한 감사를 맥추 감사, 추수 감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았고, 또 제가 반사할 때도 학생들에게 그렇게 또 가르쳤던 기억도 있습니다. 근데 새로 배우고 나니까, 새로 배우고 바로 알고 나니까 그거는 오해였다, 잘못된 것이고, 맥추 감사, 추수 감사는 1년에 두 번 드리는데, 표시를 1년에 그 시기에, 봄 농사 끝나는 여름에 한번, 또 일년 농사 끝나는 늦가을쯤 한번, 그리하는 것이지, 그래서 그 감사하는 표시를 그때하는 것이지 그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무엇에 대한 감사냐?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맥추감사는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보리 농사에 대한 감사입니까? 아니면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맥추감사는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삼대 절기에 대한 감사입니다. 삼대 절기 은혜에 대한 감사. 추수감사는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역시 삼대 절기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삼대 절기 은혜에 대한 감사.
그러면 맥추감사도, 추수감사도, 삼대 절기 은혜에 대한 감사고, 맥추감사 ‘보리 맥’자를 쓰는 이유는, 그때에 그때 농사를 봄 농사 지어가지고 추수해서 감사 표시할 곡물이 그때 있으니까 옛날 농사 지은 그때, 그때에 그 시기에 맞춰서 감사표시를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 물질로 하라 그 말이고, 또 가을에는 1년 농사 지은 그 곡물이 그때 넉넉하니까 삼대 절기 은혜를 그 시기에 하라는 그런 말씀이지, 봄 농사, 가을 농사에 대한 감사가 아니다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왜 이걸 자꾸 강조를 해야 되느냐? 우리가 이것을 왜 알아야 되느냐 하면은,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고 깊다고 말을 합니다. 부모님의 은혜가 무엇이 그리 큰가. 부모님이 나에게 용돈을 주셔서, 그래서 부모님의 은혜는 너무도 큽니다. 부모님께서 한달에 나에게 만원씩 용돈을 꼬박꼬박 주시니까,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저에게 용돈을 꼬박꼬박 그렇게 챙겨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참 부모님 은혜는 큽니다. 또 어머님께서 끼니때마다 밥을 해주셔서 그래서 그 은혜가 참 너무도 큽니다.” 하고 그렇게 감사를 합니다. 그러면 그 은혜를 받는,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니까 성숙한 자녀가 “아버지 어머니 너무도 은혜가 큽니다. 어버이 은혜가 큽니다.” “그래 크지, 어버이 은혜가 무슨 은혜가 그리 크더냐?” “오늘까지 저에게 항상 필요한 용돈을 주셔서 그래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매월 꼬박꼬박 용돈 주신 그 은혜가 하늘보다 크고, 바다보다 크다. 말이 맞습니까? 말이 맞습니까? 아니면, “하루 세끼 꼬박꼬박 어머니께서 밥을 챙겨주셔서 그래서 그 은혜가 하늘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고 깊습니다. 그 은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면, 은혜를 감사한다는 그거는 좋은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매월 용돈 주는 그 은혜가 그렇게 크더냐?” “그럼요. 용돈 없으면 빵도 못 사먹겠고, 놀지도 못하고 불편한데, 용돈을 주시니까 얼마나 큽니까. 밥을 해주시니까 얼마나 큽니까”. 죽을 병이 든 사람을 어떤 사람이 자기 전부를 다 투자해서 그 사람을 살려놨더니, 고침 받은 그 사람이 다 낫고 난 다음에, 과일 봉지 하나 사들고 와가지고 인사하면서, “참 은혜 감사합니다. 감기가 걸렸는데, 감기를 치료해주시다니요. 감기약을 사주셔서 제가 감기를 나았습니다.” 하고 그렇게 사은을 하면, 그 사은이 올바른 사은입니까? 별로 해당이 없는 겁니까? 그 사람이 베푼 그 은혜는, 이 사람의 재산 수십억을 다 투자해서 죽을 그 사람을, 죽을 병을, 목숨을 살려줬는데, 목숨 살림 받은 그 은혜 빚진 그 사람이 찾아와서 사은을 하기를, “감기약을 사주셔서 제 감가기 나았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면, 그 인사가 맞느냐 그 말이지요. 사은을 하는 거는 좋기는 좋은데, 그 사은의 근본, 그 사은의 깊이나 넓이나 중량이 너무도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농사 지은 그 농사, 하나님이 보살펴 주신 것 맞습니다. 봄 농사도, 일년 농사도, 직장 생활도, 가정 생활도, 사업도, 학업도, 전부 하나님이 은혜로 보살펴 주신 것 맞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 감격해서 맥추감사, 추수감사 드려도 어릴 때는 괜찮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신 그 맥추, 추수 감사 은혜의 뿌리는 너무너무 넓고, 깊고, 높고, 광대한 것인데, 그거는 깨닫지 못하고, 아주 작은 한 풀뿌리같은 것 하나 붙들고 거기 대한 감사를 하고 있으니까 이것도 한편으로 보면 악령의 미혹이 될 수가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잘못 알면, 감사도 잘못될 수밖에 없고, 잘못된 감사는 그 감사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고, 000 선생님. 뭐가 손햅니까? 잘못된 감사하면, 감사하는게 잘못되는게 아니고 무엇이 손햅니까? 올바른 감사할 그것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이만하면 됐다하게 만들고, 거기 모든 것 다 기울여서, 바로 해야 될, 원래 그 취지, 원래 나아가야 될 그 방향을 다 막아버리고, 잊어버리게 하고, 못하게 하니까 그게 더 큰 손해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늘 우리가 자주 배운대로, 소선은, 작은 선은 대선에 적이다 그러지요? 소선은 대선의 적이다. 작은 선은 큰 선의 적이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눈 앞에 있는 걸 보고 나는 옳은 것이라고 하는데, 내가 하는 그 옳은 것이 더 큰 옳은 것을 막는 것이면 자기는 죽어도 그 옳은 일 하지만은, 그 옳은 일이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얼마든지. 그러기 때문에 시야가 좁고, 눈이 어두우면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성령의 사람들은 죽도록 충성하고도 마지막 돌아볼 때, 하나님은 너무도 크신 분이고, 광대하신 분이고,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한데, 하나님의 그 말씀을 전하는 제가 너무도 부족하고 모자라서 하나님의 말씀 그 능력을 너무도 많이 막았습니다. 그리 되기 때문에 아무리 충성을 해도 성령의 사람들은 교만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마지막에 돌아가보면 자기 부족이 이치적으로, 논리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맥추감사, 추수감사의 잘못된 그 오해를 우리가 끊고, 진실을 바로 알아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그다음 오전에 크게 두 번째 생각해본것은, 삼대 절기를 지킴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약을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는, 삼대 절기를 지키는데, 삼대 절기 지키는 삼대 절기 그 은혜에 대해서 물질로 표시를 하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6장 말씀에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삼대 절기 은혜를 감사하는 표시를 하되, 그 표시할 때 주의할 것은 각자 자기 받은 복을 따라서 힘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두가지입니다. 받은 복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분량만큼 그다음에는 힘껏 하라 그랬으니까, 분량만큼 하라 그 말은, 적게 받았는데 많이 하려는 허영을 버려라, 또 많이 받았는데 적게 하려는 그런 인색도 버려라 그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대 절기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감사의 표시를 하나님 앞에 드리되, 그 드리는 것을 인색함으로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자기가 생각해서 받은 은혜에 양을 따라서, 자기 할 수 있는 힘껏 하라 요걸 첫 번째로 말씀하셨고, 또 하나는 이 삼대 절기를 지킬 때, 지키는 그 생활을 할 때는, 삼대 절기 은혜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혜 생활하는데 방해하는 모든 대적을 모두 물리치고 네 지경을 넓혀주겠다. 네 지경을 넓혀주고 대적을 다 물리쳐주겠다 그랬으니까, 지경을 넓히겠다 그 말은, 자기 활동의 경계를 넓혀주겠다 그 말이니까 이거는 우리의 실력을 길러주겠다 그 말이 되겠고, 대적을 물리쳐주겠다 그 말은 삼대 절기 은혜 생활할 때 방해하는 모든 세상 모든 세력을 다 막아주겠다고 또 계약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삼대 절기를 지킨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매년 세 번씩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지킬찌니라. 그러면 삼대 절기를 지킨다 그 말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을 지키는데, 지킨다 말은, 오전에 무슨 뜻이라 했던가요? 지킨다는 말은, 기념하는 것이고, 기념한다는 말은, 생각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생각하는 것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서 그 삼대 절기에 유래도 알고, 또 원인도 알고, 목적도 알고, 성격도 알고, 그것을 아는 것을, 그 삼대 절기에 합당한, 그 절기가 있게 된 그 합당한 그 사람이 되어져라 그 말이 되겠지요.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고, 생활하고, 거기 맞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삼대 절기를 바로 지키는 그런 생활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요 삼대 절기를 생각을 하고, 그래서 이걸 알아가지고 삼대 절기 생활을 바로 하면, 삼대 절기로 인해서 그 은혜가 우리에게 점점 커지고 많아져서 지경이 점점 넓어지게 되고, 실력이 점점 늘어나게 되고, 그 생활의 모든 대적은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주시겠다는 계약입니다. 그러면 크게 세 번째. 오늘 말씀의 중심으로, 삼대 절기는 무엇이냐? 첫째가 유월절인데, 유월절은 구원의 은혜다고 했습니다.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유월절. 구원의 은혜. 자, 유월절 구원의 은혜라. 그러면, 이스라엘로 말하면, 430년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므로 애굽나라와 애굽 왕과 애굽 백성들에게 붙들려서 그들이 시키는대로, 그들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시간과 정력과 자기 자신을 다 투자를 하는 겁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습니다. 남북이 갈라졌는데, 무슨 남북 회의를 하나 해도, 회를 하나 해도 그 회의하는데 장소 선정하는데도 신경전이 벌어지고, “우리는 장관급 보내니까, 너희들도 장관급 보내라.” “아니. 너희 보내는거 보니까 차관밖에 안되네. 우리도 차관 보내겠다.” 요런것 때문에 싸웁니다 남북간에. 그거 중요한 겁니까? 어떤 면에서 중요하지만은, 또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것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남북한에서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김정은에게 붙들려서 김정은과 북한과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 김정은씨를 위해서, 북한의 모든 공산당과 인민들을 위해서, 북한이란 나라 건설을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시간과 노력과 우리 자신들을 다 투자한다 그러면, 이게 먼지만큼도 가능한 일입니까? 그리 됐다 그러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리되면은 이남이 이북의 완전히 종이 되는 거지요. 그게 가능합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리 안하려 그러겠지요.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 잡아먹었을때, 우리는 일본나라에 침략을 받아서, 일본 군인들, 일본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그들을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간과 노력과 모든 재물을, 자신들을 많이 수탈을 당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일본 사람들 두고는 이를 뽀독뽀독 가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 이스라엘이 애굽나라에, 애굽과, 애굽나라와 애굽나라 왕과 백성들에게 붙들려서 빠져나오지 못하니까 힘이 없으니까 그들에게 붙들려서 그들을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그 나라를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간과 노력과 자기 자신들을 다 투자를 하는 겁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심지어 자녀 낳는 것도 그들 생애는 전부 그리 되어 있습니다. 자기 나라 건설이나 자기 자신들의 앞날의 소망이나 계획이나 행복은 꿈도 꾸지 못하고, 오로지 원수에게 붙들려서, 원수를 위해서 내 모든 것 투자하게 되는, 그러다가 원수들에게 하나씩 둘씩 다 죽어서 민족이 다 없어지는 요런 상황에 처해진 것이 그 당시 출애굽 전에 이스라엘이었고, 이것이 오늘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붙들려서, 세상에 왕이 되어있는 마귀에게 붙들려서, 죄에게 붙들려서, 그래서 세상을 위해서, 세상을 건설하는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의 시간과 정력과 자체를 다 드리는 이것이 믿음 떠난 생활이고 중생되지 못한 그런 사람들의 생활이다 그말이죠. 그게 믿기 전, 우리들의 종되었던 그런 생활입니다. 그런데 육체 이스라엘은 민족이 다르고, 또 종족이 다르니까, 눈앞에 보이니까, 그래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굽나라 거기에 살 때 쉽게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나라에 재앙을 열 번이나 내렸던가? 바로가 보내지 않으려던 것도 있었고, 그 반대쪽에 이스라엘이 떠나기 싫어하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번 쳐서 바로 마음을 꺾고, 동시에 이스라엘 마음을 좀 애굽에서 좀 떼내고, 또 두 번째 재앙 내려서 또 바로 마음을 또 꺾고 이스라엘을 좀 더 떼어내고. 그래가지고 열가지 재앙을 내리는 중에서 바로는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스라엘은 애굽나라 더 남아있으면 맞아 죽을거니까 안 떠날 수 없도록 그래 만들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나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역삽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리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나와서 하늘나라 향해서, 주님 대속의 공로를 근거해서, 진리와 영감의 인도를 받아서, 믿음 생활에서 구원 이루어가는 이 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믿는 사람의 생활은 세상에 붙들려서, 그들 시키는대로, 그들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된 믿는 성도의 시간과 노력과 자기 자신을 다 투자해서 원수를 위한 생활만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주님이 피흘려 건져내신 것이 대신 죽으심으로, 살려내신 것이 양의 피로 구출한 것과 같다 그 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삼대 절기 은혜에서 유월절 은혜는 그 은혜를 감사하고 유월절 지키는 것은 어떤 것이냐? 유월절 지키는 것은, 유월절에 합당한 그 유월절의 원인을 알고, 목적을 알고, 그 내막을 알고, 유월절 절기에 합당한 그런 인식과 정신을 가지고 그런 생활하므로 유월절과 맞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유월절을 바로 지키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유월절에 대한 내막을, 유월절의 원인과 목적과 성격을 첫째 알고, 그다음 거기 맞는 정신과 인식과 정신사상을 가지고 그런 행동 생활을 해서 유월절과 같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유월절을 바로 지키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월절 지키지 않는 것은 뭐냐? 하나 좀 생각해보십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나와가지고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도중에 우상도 섬기고, 또 이런 저런 원망도 하고, 많은 죄도 짓고 그랬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실때가 어떤 때였겠습니까? 그들이 지은 죄 중에서, 유월절의 은혜와 연결시켜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 가장 진노하셨던 태도나 말이 무슨 말이었겠습니까? 무슨 태도였겠습니까? 유월절 은혜와 연관시켜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원망도 했고, 우상도 섬겼고, 또 음행죄도 지었고, 여러 가지 죄를 많이 지어서 가다가 죽기도 많이 죽고, 징계도 받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노를 많이 쌓았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노를 쌓은 것 중에서, 가장 하나님을 노엽게 한 행동과 말이 무슨 말이었겠습니까?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 말이 하나님을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말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들이 나와서 홍해바다 앞에 두고도 그 말하고, 반석에서 물이, 먹을 물이 없을 때 목마를때도 그래하고, 쓴물때도 그래하고, 어려움 만나면 그들이 항상 하는 말이 원망하면서 덧붙인 것이 장관을 하나 세워놓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래가지고 사십얼마만인가 가나안 앞에 왔을때 열두 두령을 보내가지고 가나안 정탐을 하고, 사십일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와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들어가서 얻자 했을 때, 나머지 여호수아 갈렙 빼고 열 사람은 그 땅은 인민을 삼키는 땅이라 너무너무 강해서 우리 들어가면 다 죽는다고 악평을 하고 그러니까 모든 이스라엘이 대성통곡하면서 우리가 장관, 모세가 말리니까 그를 돌로 치려고 하고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차라리 돌아가자. 그 말 여러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고 억장 무너지는 말이 애굽으로 돌아가자. 왜 그랬습니까? 애굽에서, 애굽나라 위해서, 그 왕과 신민들 위해서 자기 전부 다 받쳐 죽을, 그러다 멸망할 그것을 양의 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렇게 힘들여서 구출해냈는데, 다시 그리로 기어 들어가겠다 그러니 이거는 근본을 완전히 파괴시키는거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하나님으로서는. 말하자면 인간 표현하자면 억장이 무너지는 소립니다. 이거는 뭐, 근본을 다 깨뜨리겠다는, 판을 뒤엎겠다는 그런 말이니까 이거는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는 생활하다가 죄도 지을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별에 별 그런 일을 다 할 수가 있겠지만은, 구원 받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세상에 폭 빠져있으면, 그리고 스스로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래서 성경에 여러곳에 하나님께, 이걸 이번 집회도 말씀이지만은 많이 말씀했습니다. 간음하는 여인들이여, 너희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된 것인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음행이라 그랬습니다. 본남편 놔두고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는 고범, 성도, 예수 믿는 구속 받은 성도를 가리켜서 여인으로 표하고, 그 여인이 자기 본남편 두고 남의 남자하고 눈 맞아서 놀아나는 간부에게 빠져버리는 그때 그 본남편의 질투는 살인사건이 나는 그런 일입니다. 견딜 수 없는 것. 성도가 주님이 당신의 전부 다 바쳐서 이 세상에서 건졌고, 그래서 세상에서 건져서 죄, 마귀, 사망, 악령에서 건져가지고 하늘나라 향하도록 그렇게 해놨는데, 이걸 잊어버리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때, 하나님의 진노는 가장 크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되면은, 믿는 사람의 인간 일생은 전부다 허비되고 마는 것이고, 이 세상 세월이 허비되면 세상뿐이 아니고 영원한 구원이 다 절단이 나고 마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의 은혜는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간과 노력과 자기 자신, 천국 준비할 그것을 악령 마귀에게 속아서 세상으로 몽땅 허비해서 일생 영원을 전부 허비할 거기서 구출해낸 것이 유월절의 은혜다 그 말입니다. 물론, 영원한 지옥에서 건진 것도 당연한 것이고. 요 유월절 은혜를 좀 깊이 깊이 생각을 하고 이 은혜를 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요걸 생각을 하고, 우리가 유월절에 맞는 이런 인식과 사상 가지고 요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는 주님 피로 이 세상에서 건짐 받은 사람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 받은 것처럼, 이 세상 종되었던데서 거기서 건짐 받은 나다, 그러므로 나의 방향은, 내가 나아갈 목적지는 가나안 천국이지 세상이 아니다. 요걸 기억하고, 여기서 날 건지기 위해서 주님이 대신 죽으신 이걸 생각하면서 그래서 우리 소망을 하늘로 삼고, 그리 달려나아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유월절 은혜를 알고 지키는 생활이다 그리 말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오순절 인도의 은혭니다. 이거는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가나안 향해서 가는 길인 겁니다. 오순절은 인도의 은혜다. 나왔을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했고, 또 50일만에 십계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을 알려주신, 말하자면은 길을 보여주시고 길을 인도하신 것이 오순절의 은혜다 그리 말 할 수 있겠지요. 아무리 이 세상에서, 길이라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어떤 어려운 난제 있을 때 그 어려운 난제를 풀어가는 답이다 그래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 해결의 길. 답. 말하자면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 그중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을 보여주시는 그게 오순절 은혜다. 믿는 사람이 걸어갈 길을 보여주신 것이 오순절의 은혜다 그말입니다. 몸이 걸어갈 때도 길 없으면 못 가는 것이고, 아무리 길 있어도 길을 모르면 못 가는 것이고, 잘못된 길을 가면 그 가는 길 전부가 허사가 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에 와서,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한번만 주신 인생살이를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없이 바로 사는 길이 되어질까를, 그것을 우리에게 열어보여 주신 것이 그게 성경 말씀을 주신 것이고 그 성경 속에서 진리를 찾고, 이치를 찾고, 그 이치 속에서 영감을 만나서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우리들의 모든 생활이 실수하지 아니하고, 틀리지 아니하고, 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하신 그 은혜가 오순절 인도의 은혜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오순절을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오순절을 지키는 것은, 인도를 받는 겁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하는대로 따라가는 것이고, 십계명을 주셨으니까 그 십계명을 법칙으로 삼아서 그 법칙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오순절의 은혜에 합당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고,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모든 개인 생활이나 개인의 앞날의 목표나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나 자녀 교육이나 양육이나 또 세상 어떤 생활이나 경제나 인인관계나 모든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활을 다른 것에서 답을 찾지 말고, 자기 욕심이나 자기 감정이나 세상 분위기나 환경, 유행이나 어떤 사람의 말이나 그런 것을 따라갈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이 자기 개인이나 가정이나 대외관계나 모든 생활할 때 성경에서 답을 찾아서 성경이 인도하는 그대로 여기 맞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순절 절기를 바로 지키는 것이고, 그리되어질때 믿는 사람은 오순절 은혜가 점점 더 더해진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오늘날 오순절의 은혜가 점점 더해지는 것은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유월절 은혜에 맞는 사람으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유월절에 맞는 사람으로 사는 것인데, 그거는 말하자면은 이 세상에서 건짐 받은 사람으로 사는 겁니다. 소망을 하늘에 두고, 하늘나라를 향해서 걸어가는 겁니다. 모든 생활 목표를 방향을. 하늘나라 천국 향해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내 나라가 아니고, 세상은 우리의 여러 각도로 말할 수 있지만은, 우리를 삼키는 대적이고, 이 세상은 우리의 밥이지, 이 세상은 내가 돌아갈 고향이나 영주처가 아닌,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천국건설이 우리 할 일이고 그 나라가 우리나라란 것을 기억하고. 구속받은 성도가 세상에서 건짐 받은 것을 기억하고 건짐 받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유월절 은혜를 알고 지키는 것이 되겠고, 오순절 절기를 지키는 것은 성경에서 모든 길을 찾고, 답을 찾아 성경으로 모든 생활을 살아가는 이것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는 것인데, 그러면 유월절 절기를 바로 지킬 때, 그에게 유월절 은혜가 더해질 것이고, 오순절 절기를 지킬 때 오순절의 은혜가 점점 그에게 더해질 것인데, 그러면 유월절 은혜가 더해지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기가 유월절 은혜의 사람으로 살 때 자기에게 더욱 더, 이 세상이 무엇이며, 천국이 우리 목적이라는 것과 구원 받은 그 사실을 더 또렷하게, 정확하게, 실감나게 그렇게 알고 더 확실하게 믿어지고, 더 구속받은 사람으로 사는 그게 힘있게 되어지는 그것이 유월절 은혜를 받는 커지는 그런 것이 되어지겠고, 오순절 은혜를 점점 더 받으면 그 사람은 성경을 점점 아는 것이, 깨닫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고, 성경에 대해서 밝아지고, 더 세밀해지고 정확해지는 그런 사람이 된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오순절 은혜는 우리에게 길을 주신 것이다, 인생의 길을 주신 것이고, 법을 주신 것이고, 답을 주신 것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 만났을때, 답을 찾지 못하면 답답하고, 길이 막혀있으면 심히 안타깝고 답답한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주셔서 거기서 길을 주셨고, 그 속에 이치를 주셔서 또 길고 답을 주셨고, 그 속에 우리가 노력하면 알 수 있는 성령의 감화를 주셔서 정확한 그런 길을 주셨으니까 요걸 찾고 요리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되겠다.
또, 장막절 은혜는 안보입니다. 하나님의 안보. 광야 40년 생활을 의식주를 안보하시고, 모든 위험에서 전부 하나님의 보호로 안보해주신 것처럼, 오늘 광야같은 이 세상을 믿는 사람이 살아갈 때, 이 세상은 악령의 세상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나 모든 전부는 악령의 것이기 때문에 이 속에서 믿는 사람이 천국의 구원을 향해서 걸어가는 이 신앙의 걸음이 사람의 힘으로 도무지 걸어갈 수 없는 생활인데,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로 믿는 사람의 영육의 의식주를 다 챙겨주시고,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우리 믿는 사람이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살펴주시는, 안보해주시는 그 하나 하나의 안보. 우리 모든, 우리 자신의, 나 자신의 육도 신앙도 가정도 모든 일도 전부다를 안보해주시는 이 안보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것이 장막절 은혜다. 그러면 요 안보의 은혜, 장막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안보만이 참된 안보인줄을 깨닫고, 그 은혜만, 그 안보만 받으려고 노력하는 그 노력이 있을 때 그 안보는 더욱 더 튼튼해지고 든든해지는 이런 장막절 은혜가 더해진다 그리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삼대 절기를 생각을 하고 삼대 절기의 은혜를 깨달아서, 첫째는 유월절의 은혜. 구원의 은혜. 만약에 유월절 은혜가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어찌되어졌을까. 유월절의 은혜가 없어서 내가 세상에서 구원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안 믿는 세상 사람들처럼 그리 살고 있을 겁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아주 재밌게, 즐겁게, 잘 살겁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얻고 싶은 것 다 얻고, 마음껏 살 수 있는데, 그리 사는 거는 좋은데 마지막 살고 세월과 자기 한평생 다 보내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때 가서가 문젠데, 다 그리 속고 다 그리 갈 수 밖에 없는데, 거기서 건져내서 우리를 건져내서 이 세상에서 건져가지고 하늘나라를 향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으니, 구원해주셨으니 이 은혜가 어떠한가. 또 건져내줘도 어떻게 해야 하늘나라 천국에 가는 길이 되어지는지 알수가 없는데, 성경을 딱 주셔가지고 성경 속에서 하나님도 알고, 천국도 알고, 대속도 알고, 진리 이치를 깨달아서 가정은 어떻게 이루며, 부부 사이를 어떻게 하며, 부족하지만은 자녀 양육 교육은 어떻게 하며,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하며, 마음은 어떻게 가지며, 어떻게 해야 복을 받으며, 다른 사람 어떻게 사랑하며, 죄가 무엇이며, 이런 수많은 이치들을 알아가지고 이 세상을 그래도 후회가 적도록 그리 살아갈 수 있는 성경을 주셨으니까 바로 우리에게 길을 주신 것이고, 답을 주신 것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빛을 주신 것이고, 더 말하면 우리의 소경된 눈을 띄워준 것이 성경을 주신 것이다. 글을 모르면 까막눈입니다. 눈이 있어도 읽을 줄 모르면 소경이라 그럽니다. 까막눈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우리는 전부 캄캄한 소경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두운 세상에 빠져서 소경같이 헤맬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셨으므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신 것이고, 빛을 주신 것이고, 길을 주신 것이고, 답을 주셨으니 힘만 쓰고 노력만 하면 어떤 어려운 것이라도 우리는 알 수 있고, 찾을 수 있고, 옳고 바른 구원의 길, 생명 길, 빛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 은혜를 주셨으니 이것이 오순절의 은혜다.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가. 성경 주신 은혜. 자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성경 주신 은혜. 잠시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만약에 성경이 없다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성경을 안 주셔서 우리에게 성경이 없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집니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을 안 주셨다면? 옛날에 천주교 시절에는 성경을 보고 싶어도 못 봤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천년 세월, 처음에는 괜찮았지만은 어두워졌었습니다. 말라기 선지를 끝으로 세례 요한까지 사백년 동안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내지 않았다고요? 선지자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안 보낸게 무슨 상관입니까? 선지자가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것이고, 그 말씀을 들어야 길을 아는데, 선지자가 없어서 길이 없으니까 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사백년 동안 이스라엘은 암흑 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죽이고 난 다음에 또 오랜 세월 암흑 속에 살아서 결국 그 육체 이스라엘은 그만 하나님께 안타깝게도 버림 받고 그 복음이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오게 되어졌습니다. 만약에 오늘 우리에게 성경이 없다면. 지금 연경회 공부를 매일 하고 있는데, 저한테 연경회 공부하기 전에 매일 기도할 기도문처럼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러는데, 제가 그걸 어떤 문구를 적어야 요게 딱 맞을까? 몇 달이 지나도 숙제를 풀지 못해서, 그걸 만들지를 못해서 아직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짐이 되어있습니다. 그 연경회 공부시간에 가장 알맞은 그 간단한 기도를 어떤 내용으로 할까? 그래서 어쨌든 이 예언의 말씀을, 어떻게 하는 자가요?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성경 쓰는 사람도 복이 있습니다. 성경 공부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 눈이 복이 있고, 그 손이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경회 하는 학생들, 제 마음속으로, 그저께 목요일, 아마 목요일이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올 학생들은 다 와서 두시간 공부하고 갔는데, 제 마음 속에 얼마나 기특한지. 한 명 한 명 차 태워주면서 제가 마음 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참 고맙다 기특하다. 걔들한테 말은 안했어도 얼마나 기특한지. 참 복입니다. 그것이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서 복, 그 시간에 성경 공부하니까 복, 또 그 시간에 인내심, 의지력 기르니까 복, 교회에서 하는 일에 협조하니까 복, 전부다 복입니다. 거기 빠지면 놀면 놀아서 불행, 시간 허비해서 불행, 사람 버려서 불행, 공부 못해서 불행, 교회 하는데 협조 못해서 불행, 전부 다 불행이지요. 복 있는 사람은 어쨌든 복 있는 길 가는게 복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만약에 안 주셨다면, 우리에게 성경 안 주셨다면, 우리는 어두운 소경같은 우리들이 될 것이고, 길이 없는 사람, 아무리 몇 억짜리 되는 자동차가 있어도 길 없으면 그 자동차 못 씁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 받아도 구름 기둥, 불 기둥 없으면, 십계명 없으면 그들은 가나안 향해서 못 갑니다. 구원 받은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 필수요소가, 요소라 말이 좀 어떨지 모르겠는데, 바로 성경입니다. 십계명. 구름기둥, 불기둥. 이것이 없으면 천국 못 갑니다. 믿는 사람에게 성경이 없으면, 건설 구원은 없는 겁니다. 이루지 못합니다. 성경 주신 은혜.
그리고 장막절은 안보하신 은혜. 이 성경 가지고 인도를 따라 가는 길에도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광야에는 거기 온갖 종류의 전갈이니 뱀이니 이런 것들이 우글거려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건조하고, 어둡고, 침침한 곳. 하룻밤 사이에 산이 하룻밤 사이에 골짜기 되고, 골짝이 그 다음날 산이 되고. 그렇게 바람 불면 그리 되어지는 그런. 미국 같은 나라 미국 넓으니까 그 나라에서 태풍 하나 불면은 상상을 초월하지요. 한 도시를 전부 확 쓸어버리지 않습니까? 그 선진국. 과학이 최초로, 최첨단으로 발달된 그 나라에 그냥 회오리 바람 한 번 불어버리면 그만 확 쓸어버리지요. 사막의 바람은 그런 겁니다. 그런 바람 부는 그런 곳. 사람이 살 수 없는 그곳에서 40년을 이스라엘이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 믿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 광야와 같다, 사막과 같다 그럽니다. 광야 같은 세상, 이 사막같은 세상.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없이는 한순간도 세상을 믿음으로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 한마디를 의롭게 했다면, 그 한마디 의의 말은, 하나님의 은혜고, 능력이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마디도, 작은 일 하나도 선한 일은 행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악령이 주장하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그래서 영도 보호하셔서, 영에 의식주를 주셔서, 말씀을 주시고 성령의 감화를 주시는. 또, 영의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곳 다 주시고, 또 육도 다 보살펴주시고. 우리 나 자신의 개인이나 자기 앞날이나 가정이나 자녀나 직업이나 사업이나 이 모든 것 전부를 다 하나님이 은혜로 믿음 안에서 보살펴 주시는 이 안보의 은혜. 그래서 하나님의 안보가 참된 안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안보에서 떠나지 않기를 소원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그 보호를 떠나지 않는 이것이 장막절을 지키는 것이고, 그 장막절 지킬 때 하나님의 안보는 더욱 더 튼튼해지고 확실해지게 되는 겁니다.
요 은혜를 깨닫고, 여기 합당한 요걸 알고, 하나님 앞에 이런 큰 은혜를 받았으니까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표시하는 그 감사하는 표시로 봄에는 옛날에는 보리 농사 추수한 것으로, 가을에는 1년 농사 추수한 것으로 그렇게 표시를 했으니 오늘 우리도 요 삼대 절기 은혜를 그 깊은 내막을 깨닫고, 이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그 감사 연보를 정성껏 할 때, 요걸 알고 하나님 앞에 연보해야 이게 헛되지 아니하지, 이것 모르고 연보하는 거는 하나마나 헛일입니다. 모르면 차라리 흉내만 내고 말고, 안하는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요걸 알고,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연보하라 그러겠습니까? 예배당에서 연보가 모자라서 그래서 연보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겠습니까? 맥추감사, 추수감사 연보해봐야 그거 얼마나 된다고. 요 내면을 알자 그 말입니다. 그 유월절, 삼대 절기,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거기 합당한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다. 이걸 알고 나면, 표시나는 감사는 일 년에 두 번이지만은, 우리 평생의 생애를, 그래서 내 소유와 몸과 생명 전부를 다 받쳐서 드리는 것이 진정한 참된 사은의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은의 도라 그리 말을 하는 겁니다.
삼대 절기에 대해서 조금 한번 더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유월절은 구원의 은혜. 어디서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 오순절은 인도의 은혜. 어떻게 인도하는가. 성경 주신 은혭니다. 장막절은 하나님의 안보의 은혜. 우리 믿음을 안보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 신앙을 지켜주시는, 이게 가장 큰 것이고 육도 당연히 따라가는 것이고. 이런 은혜들을 한번 깊이 생각해보십시다.
제목: 삼대 절기
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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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707 주후
출애굽기 23:14-17
오전에 말씀을 한 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삼대 절기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 오전에 첫 번째 생각해 본 말씀이, 모든 교회들이 다 지킨다 그리 표현하는데, 맥추 감사, 추수 감사. 감사 절기를 이렇게 일년에 부활절, 성탄 빼고 두 번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절기는 추수감사절이라 그리 말하지요. 그거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건국하고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아마 그럴 겁니다. 우리나라에 추수 감사도 거기서 근거됐다는 그런 말들이 많이 있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맥추 감사는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봄 농사, 보리 농사 주로, 그 보리 농사 하나님이 지켜주신 거기 대해서, 보리 추수하고나서 감사하고, 추수 감사절은 1년 농사 전체, 그래서 가을 농사 다 끝내고, 벼 농사 지은 분들은 쌀가마니가따가 또 몇 대, 또 많은 분들은 몇 가마니 강단 앞에 갖다놓고, 고구마 농사 지은 분들은 고구마 갖다놓고, 배추 농사 지은 분들은 배추 갖다놓고, 그래가지고 각자 자기 농사 지은 그 농산물들을 옛날에는 강단 앞에 이래 갖다놓고 추수감사절에 그렇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희들 어릴 때, 제가 있던 시골 교회도 그리 예배를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도 알기를, 그렇게 배웠는지, 뭐 그리 배웠으니 그리 알았겠지요. 맥추 감사절은 봄 농사에 대한 감사고, 추수 감사는 1년 농사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농사 대신에, 고기 잡는 어부들은 고기 잡이 1년 무사히 지켜주신 거기 대한 감사, 또 직장 생활 다니는 분들은 직장 생활 1년 동안 잘 지켜주신 거기 대한 감사, 또 사업 하는 분들은 사업 1년 동안에 무사히 잘 지켜주신 거기 대한 감사, 이런 각자 자기 생활에 연관된 거기에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어주시고 보살펴주신 그 면에 대한 감사를 맥추 감사, 추수 감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았고, 또 제가 반사할 때도 학생들에게 그렇게 또 가르쳤던 기억도 있습니다. 근데 새로 배우고 나니까, 새로 배우고 바로 알고 나니까 그거는 오해였다, 잘못된 것이고, 맥추 감사, 추수 감사는 1년에 두 번 드리는데, 표시를 1년에 그 시기에, 봄 농사 끝나는 여름에 한번, 또 일년 농사 끝나는 늦가을쯤 한번, 그리하는 것이지, 그래서 그 감사하는 표시를 그때하는 것이지 그것에 대한 감사가 아니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무엇에 대한 감사냐?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맥추감사는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보리 농사에 대한 감사입니까? 아니면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맥추감사는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삼대 절기에 대한 감사입니다. 삼대 절기 은혜에 대한 감사. 추수감사는 무엇에 대한 감사입니까? 역시 삼대 절기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삼대 절기 은혜에 대한 감사.
그러면 맥추감사도, 추수감사도, 삼대 절기 은혜에 대한 감사고, 맥추감사 ‘보리 맥’자를 쓰는 이유는, 그때에 그때 농사를 봄 농사 지어가지고 추수해서 감사 표시할 곡물이 그때 있으니까 옛날 농사 지은 그때, 그때에 그 시기에 맞춰서 감사표시를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 물질로 하라 그 말이고, 또 가을에는 1년 농사 지은 그 곡물이 그때 넉넉하니까 삼대 절기 은혜를 그 시기에 하라는 그런 말씀이지, 봄 농사, 가을 농사에 대한 감사가 아니다 하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왜 이걸 자꾸 강조를 해야 되느냐? 우리가 이것을 왜 알아야 되느냐 하면은,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고 깊다고 말을 합니다. 부모님의 은혜가 무엇이 그리 큰가. 부모님이 나에게 용돈을 주셔서, 그래서 부모님의 은혜는 너무도 큽니다. 부모님께서 한달에 나에게 만원씩 용돈을 꼬박꼬박 주시니까, 그래서 부모님께 효도하면서 “아버지 어머니 저에게 용돈을 꼬박꼬박 그렇게 챙겨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참 부모님 은혜는 큽니다. 또 어머님께서 끼니때마다 밥을 해주셔서 그래서 그 은혜가 참 너무도 큽니다.” 하고 그렇게 감사를 합니다. 그러면 그 은혜를 받는, 5월 8일 어버이날이 되니까 성숙한 자녀가 “아버지 어머니 너무도 은혜가 큽니다. 어버이 은혜가 큽니다.” “그래 크지, 어버이 은혜가 무슨 은혜가 그리 크더냐?” “오늘까지 저에게 항상 필요한 용돈을 주셔서 그래서 너무 감사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매월 꼬박꼬박 용돈 주신 그 은혜가 하늘보다 크고, 바다보다 크다. 말이 맞습니까? 말이 맞습니까? 아니면, “하루 세끼 꼬박꼬박 어머니께서 밥을 챙겨주셔서 그래서 그 은혜가 하늘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고 깊습니다. 그 은혜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면, 은혜를 감사한다는 그거는 좋은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매월 용돈 주는 그 은혜가 그렇게 크더냐?” “그럼요. 용돈 없으면 빵도 못 사먹겠고, 놀지도 못하고 불편한데, 용돈을 주시니까 얼마나 큽니까. 밥을 해주시니까 얼마나 큽니까”. 죽을 병이 든 사람을 어떤 사람이 자기 전부를 다 투자해서 그 사람을 살려놨더니, 고침 받은 그 사람이 다 낫고 난 다음에, 과일 봉지 하나 사들고 와가지고 인사하면서, “참 은혜 감사합니다. 감기가 걸렸는데, 감기를 치료해주시다니요. 감기약을 사주셔서 제가 감기를 나았습니다.” 하고 그렇게 사은을 하면, 그 사은이 올바른 사은입니까? 별로 해당이 없는 겁니까? 그 사람이 베푼 그 은혜는, 이 사람의 재산 수십억을 다 투자해서 죽을 그 사람을, 죽을 병을, 목숨을 살려줬는데, 목숨 살림 받은 그 은혜 빚진 그 사람이 찾아와서 사은을 하기를, “감기약을 사주셔서 제 감가기 나았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면, 그 인사가 맞느냐 그 말이지요. 사은을 하는 거는 좋기는 좋은데, 그 사은의 근본, 그 사은의 깊이나 넓이나 중량이 너무도 터무니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농사 지은 그 농사, 하나님이 보살펴 주신 것 맞습니다. 봄 농사도, 일년 농사도, 직장 생활도, 가정 생활도, 사업도, 학업도, 전부 하나님이 은혜로 보살펴 주신 것 맞습니다. 그래서 그 은혜 감격해서 맥추감사, 추수감사 드려도 어릴 때는 괜찮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신 그 맥추, 추수 감사 은혜의 뿌리는 너무너무 넓고, 깊고, 높고, 광대한 것인데, 그거는 깨닫지 못하고, 아주 작은 한 풀뿌리같은 것 하나 붙들고 거기 대한 감사를 하고 있으니까 이것도 한편으로 보면 악령의 미혹이 될 수가 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잘못 알면, 감사도 잘못될 수밖에 없고, 잘못된 감사는 그 감사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니고, 000 선생님. 뭐가 손햅니까? 잘못된 감사하면, 감사하는게 잘못되는게 아니고 무엇이 손햅니까? 올바른 감사할 그것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이만하면 됐다하게 만들고, 거기 모든 것 다 기울여서, 바로 해야 될, 원래 그 취지, 원래 나아가야 될 그 방향을 다 막아버리고, 잊어버리게 하고, 못하게 하니까 그게 더 큰 손해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늘 우리가 자주 배운대로, 소선은, 작은 선은 대선에 적이다 그러지요? 소선은 대선의 적이다. 작은 선은 큰 선의 적이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눈 앞에 있는 걸 보고 나는 옳은 것이라고 하는데, 내가 하는 그 옳은 것이 더 큰 옳은 것을 막는 것이면 자기는 죽어도 그 옳은 일 하지만은, 그 옳은 일이 하나님의 대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얼마든지. 그러기 때문에 시야가 좁고, 눈이 어두우면 본의 아니게 하나님의 일을 가로막는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성령의 사람들은 죽도록 충성하고도 마지막 돌아볼 때, 하나님은 너무도 크신 분이고, 광대하신 분이고,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한데, 하나님의 그 말씀을 전하는 제가 너무도 부족하고 모자라서 하나님의 말씀 그 능력을 너무도 많이 막았습니다. 그리 되기 때문에 아무리 충성을 해도 성령의 사람들은 교만할 수가 없는 겁니다. 마지막에 돌아가보면 자기 부족이 이치적으로, 논리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맥추감사, 추수감사의 잘못된 그 오해를 우리가 끊고, 진실을 바로 알아야 되겠다 그 말입니다.
그다음 오전에 크게 두 번째 생각해본것은, 삼대 절기를 지킴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약을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는, 삼대 절기를 지키는데, 삼대 절기 지키는 삼대 절기 그 은혜에 대해서 물질로 표시를 하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6장 말씀에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삼대 절기 은혜를 감사하는 표시를 하되, 그 표시할 때 주의할 것은 각자 자기 받은 복을 따라서 힘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두가지입니다. 받은 복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분량만큼 그다음에는 힘껏 하라 그랬으니까, 분량만큼 하라 그 말은, 적게 받았는데 많이 하려는 허영을 버려라, 또 많이 받았는데 적게 하려는 그런 인색도 버려라 그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삼대 절기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감사의 표시를 하나님 앞에 드리되, 그 드리는 것을 인색함으로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자기가 생각해서 받은 은혜에 양을 따라서, 자기 할 수 있는 힘껏 하라 요걸 첫 번째로 말씀하셨고, 또 하나는 이 삼대 절기를 지킬 때, 지키는 그 생활을 할 때는, 삼대 절기 은혜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은혜 생활하는데 방해하는 모든 대적을 모두 물리치고 네 지경을 넓혀주겠다. 네 지경을 넓혀주고 대적을 다 물리쳐주겠다 그랬으니까, 지경을 넓히겠다 그 말은, 자기 활동의 경계를 넓혀주겠다 그 말이니까 이거는 우리의 실력을 길러주겠다 그 말이 되겠고, 대적을 물리쳐주겠다 그 말은 삼대 절기 은혜 생활할 때 방해하는 모든 세상 모든 세력을 다 막아주겠다고 또 계약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삼대 절기를 지킨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매년 세 번씩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지킬찌니라. 그러면 삼대 절기를 지킨다 그 말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을 지키는데, 지킨다 말은, 오전에 무슨 뜻이라 했던가요? 지킨다는 말은, 기념하는 것이고, 기념한다는 말은, 생각하는 것이고. 그러면 그 생각하는 것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생각해서 그 삼대 절기에 유래도 알고, 또 원인도 알고, 목적도 알고, 성격도 알고, 그것을 아는 것을, 그 삼대 절기에 합당한, 그 절기가 있게 된 그 합당한 그 사람이 되어져라 그 말이 되겠지요. 거기에 맞는 행동을 하고, 생활하고, 거기 맞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삼대 절기를 바로 지키는 그런 생활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요 삼대 절기를 생각을 하고, 그래서 이걸 알아가지고 삼대 절기 생활을 바로 하면, 삼대 절기로 인해서 그 은혜가 우리에게 점점 커지고 많아져서 지경이 점점 넓어지게 되고, 실력이 점점 늘어나게 되고, 그 생활의 모든 대적은 하나님께서 다 물리쳐주시겠다는 계약입니다. 그러면 크게 세 번째. 오늘 말씀의 중심으로, 삼대 절기는 무엇이냐? 첫째가 유월절인데, 유월절은 구원의 은혜다고 했습니다.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유월절. 구원의 은혜. 자, 유월절 구원의 은혜라. 그러면, 이스라엘로 말하면, 430년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므로 애굽나라와 애굽 왕과 애굽 백성들에게 붙들려서 그들이 시키는대로, 그들을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시간과 정력과 자기 자신을 다 투자를 하는 겁니다.
남북이 갈라져 있습니다. 남북이 갈라졌는데, 무슨 남북 회의를 하나 해도, 회를 하나 해도 그 회의하는데 장소 선정하는데도 신경전이 벌어지고, “우리는 장관급 보내니까, 너희들도 장관급 보내라.” “아니. 너희 보내는거 보니까 차관밖에 안되네. 우리도 차관 보내겠다.” 요런것 때문에 싸웁니다 남북간에. 그거 중요한 겁니까? 어떤 면에서 중요하지만은, 또 어떤 면에서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것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남북한에서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김정은에게 붙들려서 김정은과 북한과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 김정은씨를 위해서, 북한의 모든 공산당과 인민들을 위해서, 북한이란 나라 건설을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시간과 노력과 우리 자신들을 다 투자한다 그러면, 이게 먼지만큼도 가능한 일입니까? 그리 됐다 그러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리되면은 이남이 이북의 완전히 종이 되는 거지요. 그게 가능합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그리 안하려 그러겠지요.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 잡아먹었을때, 우리는 일본나라에 침략을 받아서, 일본 군인들, 일본 사람들에게 붙들려서 그들을 위해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시간과 노력과 모든 재물을, 자신들을 많이 수탈을 당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일본 사람들 두고는 이를 뽀독뽀독 가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 이스라엘이 애굽나라에, 애굽과, 애굽나라와 애굽나라 왕과 백성들에게 붙들려서 빠져나오지 못하니까 힘이 없으니까 그들에게 붙들려서 그들을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그 나라를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간과 노력과 자기 자신들을 다 투자를 하는 겁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심지어 자녀 낳는 것도 그들 생애는 전부 그리 되어 있습니다. 자기 나라 건설이나 자기 자신들의 앞날의 소망이나 계획이나 행복은 꿈도 꾸지 못하고, 오로지 원수에게 붙들려서, 원수를 위해서 내 모든 것 투자하게 되는, 그러다가 원수들에게 하나씩 둘씩 다 죽어서 민족이 다 없어지는 요런 상황에 처해진 것이 그 당시 출애굽 전에 이스라엘이었고, 이것이 오늘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붙들려서, 세상에 왕이 되어있는 마귀에게 붙들려서, 죄에게 붙들려서, 그래서 세상을 위해서, 세상을 건설하는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의 시간과 정력과 자체를 다 드리는 이것이 믿음 떠난 생활이고 중생되지 못한 그런 사람들의 생활이다 그말이죠. 그게 믿기 전, 우리들의 종되었던 그런 생활입니다. 그런데 육체 이스라엘은 민족이 다르고, 또 종족이 다르니까, 눈앞에 보이니까, 그래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애굽나라 거기에 살 때 쉽게 떠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나라에 재앙을 열 번이나 내렸던가? 바로가 보내지 않으려던 것도 있었고, 그 반대쪽에 이스라엘이 떠나기 싫어하는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번 쳐서 바로 마음을 꺾고, 동시에 이스라엘 마음을 좀 애굽에서 좀 떼내고, 또 두 번째 재앙 내려서 또 바로 마음을 또 꺾고 이스라엘을 좀 더 떼어내고. 그래가지고 열가지 재앙을 내리는 중에서 바로는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스라엘은 애굽나라 더 남아있으면 맞아 죽을거니까 안 떠날 수 없도록 그래 만들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나오게 된 것이 하나님의 역삽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지 않으면 그리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나와서 하늘나라 향해서, 주님 대속의 공로를 근거해서, 진리와 영감의 인도를 받아서, 믿음 생활에서 구원 이루어가는 이 생활을 하지 아니하면, 믿는 사람의 생활은 세상에 붙들려서, 그들 시키는대로, 그들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된 믿는 성도의 시간과 노력과 자기 자신을 다 투자해서 원수를 위한 생활만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주님이 피흘려 건져내신 것이 대신 죽으심으로, 살려내신 것이 양의 피로 구출한 것과 같다 그 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삼대 절기 은혜에서 유월절 은혜는 그 은혜를 감사하고 유월절 지키는 것은 어떤 것이냐? 유월절 지키는 것은, 유월절에 합당한 그 유월절의 원인을 알고, 목적을 알고, 그 내막을 알고, 유월절 절기에 합당한 그런 인식과 정신을 가지고 그런 생활하므로 유월절과 맞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유월절을 바로 지키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유월절에 대한 내막을, 유월절의 원인과 목적과 성격을 첫째 알고, 그다음 거기 맞는 정신과 인식과 정신사상을 가지고 그런 행동 생활을 해서 유월절과 같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유월절을 바로 지키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월절 지키지 않는 것은 뭐냐? 하나 좀 생각해보십시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나와가지고 가나안을 향해 가는 도중에 우상도 섬기고, 또 이런 저런 원망도 하고, 많은 죄도 짓고 그랬는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실때가 어떤 때였겠습니까? 그들이 지은 죄 중에서, 유월절의 은혜와 연결시켜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 가장 진노하셨던 태도나 말이 무슨 말이었겠습니까? 무슨 태도였겠습니까? 유월절 은혜와 연관시켜보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원망도 했고, 우상도 섬겼고, 또 음행죄도 지었고, 여러 가지 죄를 많이 지어서 가다가 죽기도 많이 죽고, 징계도 받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의 노를 많이 쌓았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노를 쌓은 것 중에서, 가장 하나님을 노엽게 한 행동과 말이 무슨 말이었겠습니까?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 말이 하나님을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말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들이 나와서 홍해바다 앞에 두고도 그 말하고, 반석에서 물이, 먹을 물이 없을 때 목마를때도 그래하고, 쓴물때도 그래하고, 어려움 만나면 그들이 항상 하는 말이 원망하면서 덧붙인 것이 장관을 하나 세워놓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래가지고 사십얼마만인가 가나안 앞에 왔을때 열두 두령을 보내가지고 가나안 정탐을 하고, 사십일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와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들어가서 얻자 했을 때, 나머지 여호수아 갈렙 빼고 열 사람은 그 땅은 인민을 삼키는 땅이라 너무너무 강해서 우리 들어가면 다 죽는다고 악평을 하고 그러니까 모든 이스라엘이 대성통곡하면서 우리가 장관, 모세가 말리니까 그를 돌로 치려고 하고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차라리 돌아가자. 그 말 여러번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진노하시고 억장 무너지는 말이 애굽으로 돌아가자. 왜 그랬습니까? 애굽에서, 애굽나라 위해서, 그 왕과 신민들 위해서 자기 전부 다 받쳐 죽을, 그러다 멸망할 그것을 양의 피로,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렇게 힘들여서 구출해냈는데, 다시 그리로 기어 들어가겠다 그러니 이거는 근본을 완전히 파괴시키는거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하나님으로서는. 말하자면 인간 표현하자면 억장이 무너지는 소립니다. 이거는 뭐, 근본을 다 깨뜨리겠다는, 판을 뒤엎겠다는 그런 말이니까 이거는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믿는 생활하다가 죄도 지을 수 있고, 넘어질 수도 있고, 별에 별 그런 일을 다 할 수가 있겠지만은, 구원 받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세상에 폭 빠져있으면, 그리고 스스로 세상으로 돌아가면, 그래서 성경에 여러곳에 하나님께, 이걸 이번 집회도 말씀이지만은 많이 말씀했습니다. 간음하는 여인들이여, 너희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된 것인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음행이라 그랬습니다. 본남편 놔두고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는 고범, 성도, 예수 믿는 구속 받은 성도를 가리켜서 여인으로 표하고, 그 여인이 자기 본남편 두고 남의 남자하고 눈 맞아서 놀아나는 간부에게 빠져버리는 그때 그 본남편의 질투는 살인사건이 나는 그런 일입니다. 견딜 수 없는 것. 성도가 주님이 당신의 전부 다 바쳐서 이 세상에서 건졌고, 그래서 세상에서 건져서 죄, 마귀, 사망, 악령에서 건져가지고 하늘나라 향하도록 그렇게 해놨는데, 이걸 잊어버리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때, 하나님의 진노는 가장 크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되면은, 믿는 사람의 인간 일생은 전부다 허비되고 마는 것이고, 이 세상 세월이 허비되면 세상뿐이 아니고 영원한 구원이 다 절단이 나고 마는 것이다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유월절의 은혜는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백성의,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간과 노력과 자기 자신, 천국 준비할 그것을 악령 마귀에게 속아서 세상으로 몽땅 허비해서 일생 영원을 전부 허비할 거기서 구출해낸 것이 유월절의 은혜다 그 말입니다. 물론, 영원한 지옥에서 건진 것도 당연한 것이고. 요 유월절 은혜를 좀 깊이 깊이 생각을 하고 이 은혜를 좀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요걸 생각을 하고, 우리가 유월절에 맞는 이런 인식과 사상 가지고 요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는 주님 피로 이 세상에서 건짐 받은 사람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 받은 것처럼, 이 세상 종되었던데서 거기서 건짐 받은 나다, 그러므로 나의 방향은, 내가 나아갈 목적지는 가나안 천국이지 세상이 아니다. 요걸 기억하고, 여기서 날 건지기 위해서 주님이 대신 죽으신 이걸 생각하면서 그래서 우리 소망을 하늘로 삼고, 그리 달려나아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유월절 은혜를 알고 지키는 생활이다 그리 말 할 수가 있는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오순절 인도의 은혭니다. 이거는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가나안 향해서 가는 길인 겁니다. 오순절은 인도의 은혜다. 나왔을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했고, 또 50일만에 십계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을 알려주신, 말하자면은 길을 보여주시고 길을 인도하신 것이 오순절의 은혜다 그리 말 할 수 있겠지요. 아무리 이 세상에서, 길이라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어떤 어려운 난제 있을 때 그 어려운 난제를 풀어가는 답이다 그래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 해결의 길. 답. 말하자면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되느냐. 그중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을 보여주시는 그게 오순절 은혜다. 믿는 사람이 걸어갈 길을 보여주신 것이 오순절의 은혜다 그말입니다. 몸이 걸어갈 때도 길 없으면 못 가는 것이고, 아무리 길 있어도 길을 모르면 못 가는 것이고, 잘못된 길을 가면 그 가는 길 전부가 허사가 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에 와서,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한번만 주신 인생살이를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없이 바로 사는 길이 되어질까를, 그것을 우리에게 열어보여 주신 것이 그게 성경 말씀을 주신 것이고 그 성경 속에서 진리를 찾고, 이치를 찾고, 그 이치 속에서 영감을 만나서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우리들의 모든 생활이 실수하지 아니하고, 틀리지 아니하고, 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하신 그 은혜가 오순절 인도의 은혜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오순절을 지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오순절을 지키는 것은, 인도를 받는 겁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인도하는대로 따라가는 것이고, 십계명을 주셨으니까 그 십계명을 법칙으로 삼아서 그 법칙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오순절의 은혜에 합당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고,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모든 개인 생활이나 개인의 앞날의 목표나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이나 가정을 이루는 것이나 자녀 교육이나 양육이나 또 세상 어떤 생활이나 경제나 인인관계나 모든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활을 다른 것에서 답을 찾지 말고, 자기 욕심이나 자기 감정이나 세상 분위기나 환경, 유행이나 어떤 사람의 말이나 그런 것을 따라갈 것이 아니고 믿는 사람이 자기 개인이나 가정이나 대외관계나 모든 생활할 때 성경에서 답을 찾아서 성경이 인도하는 그대로 여기 맞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순절 절기를 바로 지키는 것이고, 그리되어질때 믿는 사람은 오순절 은혜가 점점 더 더해진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오늘날 오순절의 은혜가 점점 더해지는 것은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유월절 은혜에 맞는 사람으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유월절에 맞는 사람으로 사는 것인데, 그거는 말하자면은 이 세상에서 건짐 받은 사람으로 사는 겁니다. 소망을 하늘에 두고, 하늘나라를 향해서 걸어가는 겁니다. 모든 생활 목표를 방향을. 하늘나라 천국 향해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내 나라가 아니고, 세상은 우리의 여러 각도로 말할 수 있지만은, 우리를 삼키는 대적이고, 이 세상은 우리의 밥이지, 이 세상은 내가 돌아갈 고향이나 영주처가 아닌, 우리나라는 세상에서 천국건설이 우리 할 일이고 그 나라가 우리나라란 것을 기억하고. 구속받은 성도가 세상에서 건짐 받은 것을 기억하고 건짐 받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유월절 은혜를 알고 지키는 것이 되겠고, 오순절 절기를 지키는 것은 성경에서 모든 길을 찾고, 답을 찾아 성경으로 모든 생활을 살아가는 이것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는 것인데, 그러면 유월절 절기를 바로 지킬 때, 그에게 유월절 은혜가 더해질 것이고, 오순절 절기를 지킬 때 오순절의 은혜가 점점 그에게 더해질 것인데, 그러면 유월절 은혜가 더해지는 것은 어떤 것인가. 자기가 유월절 은혜의 사람으로 살 때 자기에게 더욱 더, 이 세상이 무엇이며, 천국이 우리 목적이라는 것과 구원 받은 그 사실을 더 또렷하게, 정확하게, 실감나게 그렇게 알고 더 확실하게 믿어지고, 더 구속받은 사람으로 사는 그게 힘있게 되어지는 그것이 유월절 은혜를 받는 커지는 그런 것이 되어지겠고, 오순절 은혜를 점점 더 받으면 그 사람은 성경을 점점 아는 것이, 깨닫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고, 성경에 대해서 밝아지고, 더 세밀해지고 정확해지는 그런 사람이 된다 그리 말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오순절 은혜는 우리에게 길을 주신 것이다, 인생의 길을 주신 것이고, 법을 주신 것이고, 답을 주신 것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 만났을때, 답을 찾지 못하면 답답하고, 길이 막혀있으면 심히 안타깝고 답답한 겁니다. 그런데 성경을 주셔서 거기서 길을 주셨고, 그 속에 이치를 주셔서 또 길고 답을 주셨고, 그 속에 우리가 노력하면 알 수 있는 성령의 감화를 주셔서 정확한 그런 길을 주셨으니까 요걸 찾고 요리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되겠다.
또, 장막절 은혜는 안보입니다. 하나님의 안보. 광야 40년 생활을 의식주를 안보하시고, 모든 위험에서 전부 하나님의 보호로 안보해주신 것처럼, 오늘 광야같은 이 세상을 믿는 사람이 살아갈 때, 이 세상은 악령의 세상이고, 세상 모든 사람이나 모든 전부는 악령의 것이기 때문에 이 속에서 믿는 사람이 천국의 구원을 향해서 걸어가는 이 신앙의 걸음이 사람의 힘으로 도무지 걸어갈 수 없는 생활인데,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로 믿는 사람의 영육의 의식주를 다 챙겨주시고,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우리 믿는 사람이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살펴주시는, 안보해주시는 그 하나 하나의 안보. 우리 모든, 우리 자신의, 나 자신의 육도 신앙도 가정도 모든 일도 전부다를 안보해주시는 이 안보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것이 장막절 은혜다. 그러면 요 안보의 은혜, 장막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안보만이 참된 안보인줄을 깨닫고, 그 은혜만, 그 안보만 받으려고 노력하는 그 노력이 있을 때 그 안보는 더욱 더 튼튼해지고 든든해지는 이런 장막절 은혜가 더해진다 그리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삼대 절기를 생각을 하고 삼대 절기의 은혜를 깨달아서, 첫째는 유월절의 은혜. 구원의 은혜. 만약에 유월절 은혜가 없었다면 내 인생이 어찌되어졌을까. 유월절의 은혜가 없어서 내가 세상에서 구원 받지 못했다면, 우리는 안 믿는 세상 사람들처럼 그리 살고 있을 겁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면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아주 재밌게, 즐겁게, 잘 살겁니다.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얻고 싶은 것 다 얻고, 마음껏 살 수 있는데, 그리 사는 거는 좋은데 마지막 살고 세월과 자기 한평생 다 보내고 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때 가서가 문젠데, 다 그리 속고 다 그리 갈 수 밖에 없는데, 거기서 건져내서 우리를 건져내서 이 세상에서 건져가지고 하늘나라를 향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으니, 구원해주셨으니 이 은혜가 어떠한가. 또 건져내줘도 어떻게 해야 하늘나라 천국에 가는 길이 되어지는지 알수가 없는데, 성경을 딱 주셔가지고 성경 속에서 하나님도 알고, 천국도 알고, 대속도 알고, 진리 이치를 깨달아서 가정은 어떻게 이루며, 부부 사이를 어떻게 하며, 부족하지만은 자녀 양육 교육은 어떻게 하며,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하며, 마음은 어떻게 가지며, 어떻게 해야 복을 받으며, 다른 사람 어떻게 사랑하며, 죄가 무엇이며, 이런 수많은 이치들을 알아가지고 이 세상을 그래도 후회가 적도록 그리 살아갈 수 있는 성경을 주셨으니까 바로 우리에게 길을 주신 것이고, 답을 주신 것이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빛을 주신 것이고, 더 말하면 우리의 소경된 눈을 띄워준 것이 성경을 주신 것이다. 글을 모르면 까막눈입니다. 눈이 있어도 읽을 줄 모르면 소경이라 그럽니다. 까막눈입니다. 성경이 없으면 우리는 전부 캄캄한 소경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두운 세상에 빠져서 소경같이 헤맬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성경을 주셨으므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신 것이고, 빛을 주신 것이고, 길을 주신 것이고, 답을 주셨으니 힘만 쓰고 노력만 하면 어떤 어려운 것이라도 우리는 알 수 있고, 찾을 수 있고, 옳고 바른 구원의 길, 생명 길, 빛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이 은혜를 주셨으니 이것이 오순절의 은혜다. 이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가. 성경 주신 은혜. 자 같이 한번 해보십시다. 성경 주신 은혜. 잠시 한번 생각해보십시다. 만약에 성경이 없다면. 우리 믿는 사람에게 성경을 안 주셔서 우리에게 성경이 없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집니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을 안 주셨다면? 옛날에 천주교 시절에는 성경을 보고 싶어도 못 봤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천년 세월, 처음에는 괜찮았지만은 어두워졌었습니다. 말라기 선지를 끝으로 세례 요한까지 사백년 동안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내지 않았다고요? 선지자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선지자 안 보낸게 무슨 상관입니까? 선지자가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것이고, 그 말씀을 들어야 길을 아는데, 선지자가 없어서 길이 없으니까 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사백년 동안 이스라엘은 암흑 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죽이고 난 다음에 또 오랜 세월 암흑 속에 살아서 결국 그 육체 이스라엘은 그만 하나님께 안타깝게도 버림 받고 그 복음이 이방인인 우리들에게 오게 되어졌습니다. 만약에 오늘 우리에게 성경이 없다면. 지금 연경회 공부를 매일 하고 있는데, 저한테 연경회 공부하기 전에 매일 기도할 기도문처럼 하나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러는데, 제가 그걸 어떤 문구를 적어야 요게 딱 맞을까? 몇 달이 지나도 숙제를 풀지 못해서, 그걸 만들지를 못해서 아직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짐이 되어있습니다. 그 연경회 공부시간에 가장 알맞은 그 간단한 기도를 어떤 내용으로 할까? 그래서 어쨌든 이 예언의 말씀을, 어떻게 하는 자가요?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성경 쓰는 사람도 복이 있습니다. 성경 공부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 눈이 복이 있고, 그 손이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경회 하는 학생들, 제 마음속으로, 그저께 목요일, 아마 목요일이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올 학생들은 다 와서 두시간 공부하고 갔는데, 제 마음 속에 얼마나 기특한지. 한 명 한 명 차 태워주면서 제가 마음 속으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참 고맙다 기특하다. 걔들한테 말은 안했어도 얼마나 기특한지. 참 복입니다. 그것이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서 복, 그 시간에 성경 공부하니까 복, 또 그 시간에 인내심, 의지력 기르니까 복, 교회에서 하는 일에 협조하니까 복, 전부다 복입니다. 거기 빠지면 놀면 놀아서 불행, 시간 허비해서 불행, 사람 버려서 불행, 공부 못해서 불행, 교회 하는데 협조 못해서 불행, 전부 다 불행이지요. 복 있는 사람은 어쨌든 복 있는 길 가는게 복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만약에 안 주셨다면, 우리에게 성경 안 주셨다면, 우리는 어두운 소경같은 우리들이 될 것이고, 길이 없는 사람, 아무리 몇 억짜리 되는 자동차가 있어도 길 없으면 그 자동차 못 씁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 받아도 구름 기둥, 불 기둥 없으면, 십계명 없으면 그들은 가나안 향해서 못 갑니다. 구원 받은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 필수요소가, 요소라 말이 좀 어떨지 모르겠는데, 바로 성경입니다. 십계명. 구름기둥, 불기둥. 이것이 없으면 천국 못 갑니다. 믿는 사람에게 성경이 없으면, 건설 구원은 없는 겁니다. 이루지 못합니다. 성경 주신 은혜.
그리고 장막절은 안보하신 은혜. 이 성경 가지고 인도를 따라 가는 길에도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광야에는 거기 온갖 종류의 전갈이니 뱀이니 이런 것들이 우글거려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건조하고, 어둡고, 침침한 곳. 하룻밤 사이에 산이 하룻밤 사이에 골짜기 되고, 골짝이 그 다음날 산이 되고. 그렇게 바람 불면 그리 되어지는 그런. 미국 같은 나라 미국 넓으니까 그 나라에서 태풍 하나 불면은 상상을 초월하지요. 한 도시를 전부 확 쓸어버리지 않습니까? 그 선진국. 과학이 최초로, 최첨단으로 발달된 그 나라에 그냥 회오리 바람 한 번 불어버리면 그만 확 쓸어버리지요. 사막의 바람은 그런 겁니다. 그런 바람 부는 그런 곳. 사람이 살 수 없는 그곳에서 40년을 이스라엘이 아무 어려움 없이 살아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 믿는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 광야와 같다, 사막과 같다 그럽니다. 광야 같은 세상, 이 사막같은 세상.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없이는 한순간도 세상을 믿음으로 살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 한마디를 의롭게 했다면, 그 한마디 의의 말은, 하나님의 은혜고, 능력이지.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한마디도, 작은 일 하나도 선한 일은 행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악령이 주장하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하시는. 그래서 영도 보호하셔서, 영에 의식주를 주셔서, 말씀을 주시고 성령의 감화를 주시는. 또, 영의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곳 다 주시고, 또 육도 다 보살펴주시고. 우리 나 자신의 개인이나 자기 앞날이나 가정이나 자녀나 직업이나 사업이나 이 모든 것 전부를 다 하나님이 은혜로 믿음 안에서 보살펴 주시는 이 안보의 은혜. 그래서 하나님의 안보가 참된 안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안보에서 떠나지 않기를 소원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그 보호를 떠나지 않는 이것이 장막절을 지키는 것이고, 그 장막절 지킬 때 하나님의 안보는 더욱 더 튼튼해지고 확실해지게 되는 겁니다.
요 은혜를 깨닫고, 여기 합당한 요걸 알고, 하나님 앞에 이런 큰 은혜를 받았으니까 하나님 앞에 받은 은혜를 표시하는 그 감사하는 표시로 봄에는 옛날에는 보리 농사 추수한 것으로, 가을에는 1년 농사 추수한 것으로 그렇게 표시를 했으니 오늘 우리도 요 삼대 절기 은혜를 그 깊은 내막을 깨닫고, 이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그 감사 연보를 정성껏 할 때, 요걸 알고 하나님 앞에 연보해야 이게 헛되지 아니하지, 이것 모르고 연보하는 거는 하나마나 헛일입니다. 모르면 차라리 흉내만 내고 말고, 안하는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요걸 알고,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연보하라 그러겠습니까? 예배당에서 연보가 모자라서 그래서 연보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겠습니까? 맥추감사, 추수감사 연보해봐야 그거 얼마나 된다고. 요 내면을 알자 그 말입니다. 그 유월절, 삼대 절기,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거기 합당한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다. 이걸 알고 나면, 표시나는 감사는 일 년에 두 번이지만은, 우리 평생의 생애를, 그래서 내 소유와 몸과 생명 전부를 다 받쳐서 드리는 것이 진정한 참된 사은의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사은의 도라 그리 말을 하는 겁니다.
삼대 절기에 대해서 조금 한번 더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유월절은 구원의 은혜. 어디서 어떻게 구원 받았는가. 오순절은 인도의 은혜. 어떻게 인도하는가. 성경 주신 은혭니다. 장막절은 하나님의 안보의 은혜. 우리 믿음을 안보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 신앙을 지켜주시는, 이게 가장 큰 것이고 육도 당연히 따라가는 것이고. 이런 은혜들을 한번 깊이 생각해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