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3-주후(히12:1-2)
우리의 경주2013-06-23조회 427추천 36
본문: 히브리서 12장 1절-2절
제목: 우리의 경주
요점:
1. 수많은 증인들
1)세상에 왔다 간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엇? (증인)
2)증인이란? (보여) 주는 사람, (알려) 주는 사람
3)허다한 증인들이 알려 주는 사실들
①사람은 (죽는다).
②땅위의 모든 수고는 다 (헛되다).
③죽을 때는 다 (후회)하고 (두려워)한다.
④(믿음)으로 산 사람은 후회도, 두려워도 않는다.
⑤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라.
2. 벗어 버릴 2가지
1)세상을 살고 간 모든 사람들의 생애는? (욕심)에 눌리고 (죄)에 매여
2)믿음으로 승리한 선진들의 비결은? 무거운 (욕심)과 (죄)를 벗어 버린 것
3)우리가 벗어 버릴 2가지는? 무거운 (욕심)과 얽매이는 (죄)
4)벗어버릴 욕심은? (사욕)
5)죄는?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것, 말씀을 (어긴) 것
3. 우리의 경주
1)우리는? (경주)하는 사람들
2)경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3)인내란? (참고) 견디고 (계속)하는 것
4)경주란? (달음질), 쉬지 않고 달리는 것
5)우리의 경주는? 자기의 (신앙생활). (말씀)대로 사는 생활, (빛) 생활
6)경주의 방향은? (온전)을 향한 경주, (주님)을 향한 경주
4. 우리의 소망
1)우리가 바라보는 소망은? (예수님) 같이 되는 것
2)예수님은?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분
3)믿음은? (순종), 주라는 말은? (책임)지시는 분
4)순종하면? (온전)을 책임지시는 주님
5)예수님의 승리는?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심
6)우리의 승리는? (믿음, 순종)과 (십자가)의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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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623 주후
히브리서 12:1-2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역사세계에 세상에 왔다간 모든 사람은 전부다 우리의 증인들이다. 증인이라 말은 뭔가를 보여주고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왔다간 모든 사람들은 본인이 의도하든지 안하든지 또 사람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로 모든 사람은 전부 후세대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알려주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안 믿는 사람들도 짐작은 하고 또 지혜있는 사람들은 보고 자기대로 알고 그리하나 알아도 내나 그 세계 안이기 때문에 별 수 없지만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앞에 살고 간 모든 인류가 우리의 증인들이며 그들이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알려주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어리석고 미련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보여주는데도 보지 아니하고, 알려주는데도 알지 않으면 그 책임은 자기가 다 져야 되고 뒤에 가서 핑계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보여줘도 모른다 그러고 보지 않겠다 그러고 아무리 깨우쳐줘도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백성이 보고 알고 듣고 깨달아서 고침을 받을까 내가 염려한다. 이 백성은 그 동안에 너무도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져버렸고 강팍을 부렸기 때문에 이제는 기회를 다 걷어버릴 것이고 그러므로 주신 기회를 수도 없이 많은 기회를 다 던져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이 백성을 내가 멸해버려야 되겠는데, 아주 징계해서 멸망시켜야 되겠는데 혹시라도 이들이 가로늦게라도 보고 듣고 깨달아서 고침을 받을까 두렵다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여주실 때 보지 아니하고 알려주실 때 알지 아니하고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던져버리고 차버리면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고침 받고 싶어도 고침 받을 수가 없는 그런 때가 오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회를 놓지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몸에 병이 있는지 좀 몸이 조금 이상하면 얼른 병원에 가보고 또 살펴보고 그리하면 일찍 알면 어지간한 병 고칠 수 있는데 그만 힘들어서 싫어서 또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몸에 병이 커가는데도 병원에 가서 알아보지 않고 기회 지나고 나면 그때가서 알아봐야 이미 때가 다 늦어서 기회를 다 놓쳐버리고 마는 겁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은 간증자들 주신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기횝니다. 보여주니까 얼마든지 봐라. 알려주니까 봐라. 얼마든지 보고 알고, 보고 알고 난 다음에는 사람이란 것이 보면은 알게 되고 알고 나면 사람은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알면서도 안하면 참 멸망받을 짐승밖에 되지 못하는데 우리가 남 말 할 것 없이 다 비슷비슷한 그런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우리 자신을 단속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신앙의 성공은 어렵습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데 오전에는 그중에서 알기 쉬운 다섯가지만 생각해봤는데 이걸 들을 때 생각해봐야 됩니다. 우리 앞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그 말이 맞느냐. 우리 앞에 먼저 살고 간 모든 인류는 다 우리의 증인들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있고 알려주고 있는 증인들이다. 이 말이 맞느냐?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은 많이 있는 중에서 오전에 다섯 가지를 생각해봤는데 첫째는 모든 사람은 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그들이 죽음으로 말을 합니다. 안 죽으려고 건강도 챙겨봤고, 하루 세 끼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봤고, 건강검진도 잘 받아봤고, 치료도 해봤고 수술도 해봤고 보약도 먹어봤고, 불로초도 먹어보고 온갖 좋은 것을 다 먹어봤지만은 마지막에는 다 안 죽은 사람이 없는 것 보니까. 왕도 죽고 부자도 죽고 또 실력 있는 사람도 죽고 젊고 건강한 사람도 때 되니까 죽고, 뿐만 아니고 노인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은이도 죽고 아이도 죽고. 다 죽는데 보니까 사람은 한번은 다 죽는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 수천억에 수천억에 사람들이 다 죽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주므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 사람은 다 죽는구나.’ 이걸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죽음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그다음 그 죽음으로써 이 세상 이성의 세계가 다 끝이 나고 죽음 맞이하는 그 순간 이 세상에 어떤 것과 자기와의 모든 관계는 완전히 끊어져버리기 때문에, 끝나버리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미국 가도 미국과 서로 연결이 되고 통하면 한국에 있는 재물이나 자기 지위나 가족이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이 되니까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끝이 아닌데, 만약에 예를 들어서 한국 사람이 미국 갔는데 그 사람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그런 것으로 끝나는 것이 되어진다면 그 사람은 한국에 있는 자기 재산이 있든지 명예가 있든지 가족이 있든지 뭐가 있든지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 되니까 새로 시작을 해야 됩니다. 하나에 이거는 예지만은 죽음이란 것은 이 세상과 자기와 모든 것을 끝내는 그 순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떤 부귀영화를 마련해놓고 누리고 자기 재물 마련하고 부동산 마련하고 권세 마련하고 또 2세 낳아두고 아무리 좋은 거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거 또 놓고 가기 아까운 거, 어떤 것을 세상에 마련하고 준비하고 누렸다 할지라도 일단 죽으면 자기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되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솔로몬이 그렇게 살아보니까 인생의 모든 생활이 전부 다 헛되다. 땅위에 인생이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다. 헛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 헛된 것뿐입니다.
그래서 좀 멀리 보는 그런 선견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고 권력을 탐하지 아니하고 명예를 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재물보다는 권력, 권력보다는 재물보다는 또 명예 이런게 있는데 보다 더 나은 것이지만은 도토리 키재기 한다는 말처럼 다 거기서 거기지 죽음이라는 그 선 아래서 모든 게 다 그런 것이지 그 선 넘어가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전부다 헛된 것이다. 이걸 역사세계 육천년에 전인류가 살고 가므로 다 보여주는 겁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살다가므로 재벌도 살다가 그 많은 재물을 다 두고 가니까-
그래서 세상에 왔다가 한평생을 가난하게 살고 외롭게 살고 종으로 살고 어렵게 살고 살기 싫은 세상을 살고 징그러운 세상을 살고 떠나고 싶은 세상을 살고 죽고 싶은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그 사람은 세상 떠날 때 고통이 별로 없을 겁니다. 눈물이 별로 없을거고. ‘아이고 그만 살기 싫은 세상, 떠나기 싫은 세상, 정 떨어지는 세상.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하고 오히려 홀가분하게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 없고. 그런데 세상에서 재물 모은다고 평생을 다 받쳐 수백억을 모아놓고 또 결혼해서 아내와 자식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사랑스런 처자식을 남겨놓고 또 친구들 있고 좋은 직장 있고 또 지위 있고 명예 있고 앞날에 창창한 이 세상에 자기와 연관된 그런 것들이 많은 사람일수록 세상을 떠나면 고통이 크고 눈물이 더 크고 많은 겁니다. 왜 세상을 떠나면 고통이 많습니까? 세상에 마련해 둔 것이 많을수록 왜 눈물이 많으며 고통이 왜 많습니까? 떠나면 두 번 다시 그들을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고 관계를 가질 수가 없이 끝이 되니까. 그래서 더 고통스럽고 눈물이 더 많은 겁니다.
그래서 인생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모든 건 다 헛된 수고가 될 수 밖에 없다. 이걸 수많은 인류의 인생의 생애가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렇기 때문에 세상을 떠날 때 죽는 사람들이 전부다 보면은 후회를 하고 두려워하므로 세상을 떠나서 눈을 감게 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전부 세상만 보고 땅만 보고 사는데 이 세상만 바라보고 욕심내고 주력하고 사는데 이 사람들은 죽음 너머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하늘나라 바라보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고 살았는고로 그들은 죽을 때 후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보고 있으니까 알려줬으니까 ‘너희들은 믿음으로 살아라. 그게 인생의 가치고 지혜라는 것을 수많은 증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고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오전에 첫 번째로 생각해봤습니다.
자 쉬운건데 한 번 더 해보십시다. 증인들이 알려주는 거 첫째 뭘 보여줍니까? 사람은 죽는다. 말씀을 들을 때 생각해서 말에 논리의 어떠함과 그 말에 들어있는 그런 걸 다 떠나서 그 말이 옳은 말이냐 그른 말이냐 그걸 따져봐야 됩니다. 이치가 맞는 말. 그래서 가장 힘 있는 말은 실질적인 말. 참 말입니다. 옳은 말. 알맹이 진짜 없는. 그래서 오늘 주일학교 가르친 제목이 ‘진실’인데 ‘진실을 만들자’ 진실 만들자 그 말은 농사를 지었으면, 가을에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 지었는데 보니까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가 안 맺었으면 그 농사는 헛일입니다. 과수 나무를 심어서 나무도 키도 크고 잎사귀도 무성하고 꽃도 많이 피었는데 보니까 과수나무니까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나무 키커봐야 또 열매 잎사귀 무성해봐야 아무 쓸모가 없는 겁니다. 열매를 맺어야 그 나무는 진실한 겁니다.
학생의 진실은 뭡니까? 학생의 진실은? 6학년 동안 학교를 다녔으면, 초등학교 6년을 다녔으면 초등학교 6년 다닌 학생이 학생으로서의 진실은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다 자기 머릿속에 넣어놔야 그게 진실입니다. 예수 믿는 학생들이 6년 동안 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안 들어있으면 그 예수 믿은 학생은 거짓부리입니다. 진실이 아닙니다. 중학교 3년을 다녔으면 그 3년 과정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야 그게 진실입니다. 실제라 그 말입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들었으면 들은 그 말씀이 그 머릿속에 들어있어야 그게 진실입니다. 한시간 내도록 예배 보고 앉았는데 ‘오늘 예배시간에 본문이 뭐지? 오늘 말씀 제목이 뭐지? 줄거리가 뭐지?’ 모르면 그 시간 예배는 외식입니다. 다는 몰라도 핵심 줄거리는 알고 있어야 그게 그 예배의 진실입니다. 진실이라 말은 실제 속에 있는 걸 가리켜 그래서 사람이 진실하다 그 말은 오늘 주일학교때 보니까 진실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요? 진실한 사람은 참 사람입니다. 참 사람. 참 사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사람다운 사람.
그러니까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이 말은 잘하는데, 그럴듯한데 이게 맞는 말이냐 틀린 말이냐 거기 가치를 두고 그걸 따져봐야 됩니다.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수많은 증인이 보여준다 그랬습니다. 맞는 말이면 과연 그러하다. 그러면 그 말은 진리입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만 바라보고 산 인생의 모든 수고는 전부다 헛되다.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를 건설해서 종된 나라에 자유를 얻고 독립을 시켜놓고 가난한 나라를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힘 있는 나라 만들어놔도 그 사람이 이 세상만 보고 살았다면 그것도 헛수고다.
에디슨이 발명한 발명품이 굉장히 많아서 지금도 우리가 그 발명품들을 다 누리고 있는데 그 에디슨이란 사람의 생애가 헛된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 누리고 있는 것 같으나 그래서 그 이름을 모두 다 존경하는 것 같으나 본인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본인의 인생과 본인의 영원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거는. 다 헛된 수곱니다. 이 땅 위에서 믿음 떠난 모든 사람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산 것만 헛되지 아니합니다. 이걸 역사세계 모든 사람이 보여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헛된 일 했으니까 마지막 죽을 때는 후회하고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후회도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복이다 지혜다 이걸 가르쳐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역사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고 갔는데 왜 헛된 수고를 하고 간 사람들은 왜 그렇게 헛된 수고를 하고 갔는가? 몇 가지에 붙들렸습니까? 두 가지에 붙들렸습니다. 하나는 무거운 자기 욕심에. 하나는 죄에 붙들려서. 사람의 모든 생활은 욕심이 들어서 사람을 이 세상을 살게 만듭니다. 욕심이란 것은 결코 무조건 나쁜 게 아닙니다. 욕심이 있어야 공부도 하고 욕심이 있어야 가정주부가 반찬을 만들 때 반찬 만들기 까다롭고 힘드니까 그냥 대충 대충 만들고 먹으면 되지 한 끼 건너뛰며 넘어가면 되지 그래가지고 음식을 만들면 만들어도 정성이 안 들어가서 가족들이 먹을 때 맛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가정주부가 가족들을 사랑하고 건강을 챙기고 맛있게 먹이고 싶은 욕망이 욕심이 있어가지고 그래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면 같은 음식이라도 정성이 들어가니까 맛이 있는 겁니다.
공부를 마지못해서 부모님이 하라고 닦달하니까, 선생님이 조아대니까 마지못해서 책상머리 앉아있는 그 학생은 앉아있어도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가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 공부는 내가 하고 내 앞길은 내가 책임져야 된다고 깨닫고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공부에 욕심 있는 그 학생은 하라 말 안해도 알아서 합니다. 그러면 그 학생은 공부가 되는 겁니다.
‘세상 사는 것이 별 거 있나 그냥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고 만수산에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그래가지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하고 세상을 돈 생기면 술 먹고 돈 생기면 노름 하고 돈 생기면 영화 보고 가족은 던져놓고 제 멋대로 제 편한대로만 사는 그런 재물 모으는 욕심, 집을 좀 사고 싶은 욕심, 돈을 저축하고 싶은 욕심, 가정을 보살펴서 남부럽게 살아보고 싶은 그런 욕심, 이런 욕심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도 아무렇게나 저대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인간 중에서 아주 몹쓸 인간입니다. 악인입니다. 가장 나쁜 인간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보면은 가장 악한 사람이 가장 세상 기준에서 좋은 사람이 욕심이 가장 많은 사람이고 가장 몹쓸 악인이 또 욕심이 가장 많은 사람일 수 있고. 반대로 가장 몹쓸 악인이 욕심이 없는 사람일수도 있고 가장 좋은 사람이 욕심이 가장 많은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없는 사람일수도 있고. 그래서 욕심이란 것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그 말이지요. 이 세상만 보고 산다면 욕심을 가질 수록 좋은 것이고 그 욕심의 종류와 그 욕심의 방향을 구별해서 가지는 그게 문제지 나쁜 게 없는데. 문제는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니까 문젭니다. 그래서 전 인류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종류 욕심이든지 뭔가 욕심을 가지고 그 욕심에서 나와서 욕심이 힘도 내고 욕심이 의지도 가지게 하고 욕심이 들어서 인내도 만들고 욕심이 들어서 연구도 하게하고 욕심이 들어서 열정도 가지게 하고 욕심이 들어서 부지런하게도 만들고 욕심이 들어가지고 악착같이 하게하고. 그래가지고 모든 사람이 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러기 때문에 들어가보면 사람의 평생은 전부 어떤 한 두 몇 가지 욕심에 붙들려가지고 그 욕심이 끌고가는대로 다 끌려 다니는게 인간 일생의 생애다 그 말이지요.
논리적으로 실질적으로 어떻습니까? 말이 맞는 말입니까? 공중에 붕 뜬 말입니까? 말을 만들어내는 말입니까? 생각을 해보시지요. 이걸 단순히 우리 신앙이 아니더라도 안 믿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래서 저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자본주의라든지 공산주의라든지 이런 경제 이론의 그 근본으로 파고 들어가면 전부 인간을 연구한 인문학에서 나와가지고 ‘인간의 심리가 인간의 본성이 이러하니까 이런 것이 필요하다 저런 게 필요하다’ 그래가지고 모든 사상이 나오고 주의가 나오고 그래가지고 세상이 다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욕심이 없으면 그 욕심은 더 들어가면 그게 전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거든요? 이기주의라는 것이 욕심이지요. 아마 자본주의 이론의 근본은 인간 이기주의 거기서 출발된 것으로 그리 들은 것 같은데. 그게 말하자면 자기 욕심입니다. 공산주의란 것은 보기에는 이타주의적인 그런 면이 있는데 그거 전부 거짓말이거든요? 인간의 본성이 다 악인데. 그들이 성경 몰라도 인간의 본성은 자기 중심인데, 자기를 위하는 이기주의인데, 그 이기주의가 공산주의를 만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겁니다. 이거는 논리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겁니다. 하나에 사람 속이는 것이고 기만하는 거지 안되는 일입니다. 본성적으로.
이기주의적인 그게 사람이고 그 이기적인 그 욕심이 사람을 평생을 살게 하는데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이 사는 것은 욕심에 힘 그 욕심의 힘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살아가는 힘이 어느 정도냐 거기 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하나 열심히 하는 사람을 잡고 왜 그리 열심히 합니까? 물어보면 그 속에 밑에 들어가면 그 열심히 하는 그 종류와 연관된 욕심이 반드시 있습니다. 욕심이 없는 열심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겁니다. 어떤 종류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합니다. 그것도 가족 사랑의 일종의 욕심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들어가보면 어떤 사람이 어느 시대에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살아가는 건 전부 욕심에 붙들려서 욕심에 끌려서 인간 일생은 다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욕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이 되게 만드는 겁니다. 짐을 져야 되니까 당연히 져야 되는 줄 알고 지니까 그래 지는 것이지 그게 전부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고. 그 욕심이 지나치면 그 짐이 자기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는 겁니다.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지만은, 부모가 자기 자녀는 전부 다 천잰 줄 알고 다 영잰 줄 알고 그래 생각을 해서 ‘우리 아이는 반에서 적어도 1등은 몰라도 2,3등은 할 건데 내가 보니까 너는 2등은 할 것 같다. 그런데 네 성적이 10등 밖에 안되니까 노력을 하자.’ 그런데 객관적으로 그 아이를 살펴보면 그 아이의 성적은 10등이 한계입니다. 그런데 부모 욕심이 2등으로 딱 정해놓고 그리 되면 그 아이는 그 공부가 죽을만큼 고통스런 짐이 되는 겁니다. 부모의 욕심이 자식을 힘껏 눌러서 못살게 만드는 겁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직장도 그렇습니다. 자기 실력이 나는 한달에 이백만원짜리 실력인데 그 이백만원짜리 실력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 그 이백만원짜리 실력이면 거기 맞도록 집도 구하고 거기 맞도록 또 모든 생활 용품이나 경제 생활을 거기 맞춰서 그래 살아야 되는데, 실력은 이백만원짜린데 살기는 오백만원짜리로 살고싶으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생활의 모든 게 무거운 짐이 돼서 눌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외상이면은 소도 잡아 먹고 공짜배기면 양잿물도 둘러마시고 하는 그게 전부 그런 욕심에서 나오는 그런 작용 중에 하나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전부 욕심이 들어서 사람을 살게 하고 힘 있게 하고 열심내게 하고 성공하게 만들고 다 그래 하는 겁니다.
박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혁명 일으켜서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를 세계에서 유명한 그런 잘 사는 나라로 만들도록 바탕을 닦아놨습니다. 그 사람이 나라 사랑 있지만은, 그 나라 사랑도 있겠지만은 한편으로는 거기서 자기, 그것도 하나 나라 사랑 민족 사랑이라는 욕심이지요. 우리 민족 한 번 잘 살게 만들어보자. 그것도 명예욕도 있는 것이고 잡고 보니 권세욕도 있는 것이고. 그런 욕심이 들어서 그렇게 힘 있게 만들었지 욕심 없는 그런 일은 없는 겁니다. 욕심이 돈도 벌게 하고 욕심이 과학을 발전도 시키고 편리하게도 만들고 온갖 것을 다 만들어 내는 겁니다.
90점 시험 맞으면 제법 잘하는 건데 90점 받아가지고 만족 못하니까 ‘아 95점 받으면 좋겠다’ 점수 욕심 그러면 열심히 하는 거지요. 95점 받고 나니까 ‘100점 받으면 좋겠다’ 또 열심히 하는 겁니다. 건설적인 욕심이고 다 좋은 욕심인데 어쨌든 욕심은 욕심이고 그런 욕심이 들어서 모든 사람을 평생을 전부 살게 만드는 것이고.
그런데 그 욕심을 넣어주는 원수가 누구냐? 그놈이 바로 악령이라서, 귀신 마귀라서 인간으로 하여금 수많은 종류의 욕심을 집어넣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욕심에 붙들리고 끌려서 그 욕심에 붙들려서 그 사람의 시간과 정력과 모든 것을 솔빡 도적 맞게 만드는게 악령의 수법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 가리켜 이번 집회도 8월 집회때도 공부할 것이고 많이 배웠는데 그런 세상을 가리켜 뭐라 한다고요 이름을? 하나님의 아들의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천국을 소망하고 그 천국을 준비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는 나를 만들어가는 요게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이고 이게 믿는 사람이 욕심내고 달려갈 길인데 여기는 눈을 딱 감게 만들어버리고 전부 다른 곳으로 눈을 다 돌려서 ‘여기 돈도 있다, 권력도 있다, 좋은 직장도 있다, 명예도 있다, 아름다운 미인 미남도 있다, 가정도 있다, 향락도 있다’ 좋은 거 다 보여줘가지고 그쪽으로 우리의 욕심을 털어서 그리 만드니까 좋은 가정 만들겠다는데 욕 할 사람 있습니까? 1등 하겠다는데 욕 하는 사람 있습니까? 좋은 직장 구해보겠다는데 욕 하는 사람 있습니까? 다 좋아하지요. 잘한다 잘한다 다 칭찬하지요. 올림픽 금메달 따겠다는데 반대할 사람 있습니까? 나라를 잘 사는 나라 만들어보겠다는데 반대하는 사람 있습니까? 다 좋아하지요. 전인류가 다 좋아합니다. 역사가 다 좋아하고 찬성합니다.
그래가지고 그래서 좋은 역사에 모든 사람이 세상이 좋아하고 찬성하고 박수치고 환영하는 그런 욕심일수록 더 그리 빠지게 되고 더 가치있다 착각을 하게 되고 그리 더 마음이 기울어지니까 그러다보니까 이쪽에 있는 믿는 사람의 본업 이거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평생을 살고 다 잘 살아서 홍포 입은 부자처럼 가족도 좋아하고 이웃도 좋아하고 사회도 좋아하고 국가도 민족도 박수 치고 이름 내고 다 좋아하고 다 좋아하는데 마지막에 가보니까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 ‘너 무엇 때문에 그렇게 평생을 열심히 살았느냐? 누구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어느 민족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나하고는 상관이 없구만. 너는 그러면 세상에 살든 이 세상 것 다 불 탔으니까 그거 가는 나하고 상관없는 지옥에 가야 되겠네.’
노벨상을 받아도 육천년 전인류가 전부 환영하고 다 좋아해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면 다 헛된 수고입니다. 그쪽으로 마귀가 안 믿는 사람 전부다고, 믿는 사람의 눈과 귀를 마음을 다 돌려 그리 빠지게 하고 하나님은 보지 못하게 하고 천국은 보지 못하게 하는 이것이 인간들의 모든 생앱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인류는 욕심에 붙들려서 살게 되고 그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도 버리고 믿는 사람이면 말씀도 다 져버리고 그래서 욕심에 눌리고 죄에 붙들려서 평생을 허비하고, 제법 잘 믿는 사람들은 끌려갔다가 한참 가다보니까 정신 차리고 ‘어 이거 길이 아닌데’ 돌아왔다가. 또 믿음 생활 좀 하다가 또 마귀가 또 좋은 것 또 보여주면 돈 보여주니까 돈에 끌려갔다가 한참 가다 보니까 ‘어? 돈은 우리 것이 아닌데.’ 돌아왔다가. ‘돈이 싫으냐 그러면 가정을 주지’ 좋은 가정을 주니까 또 가정 따라 한참 따라갔다가 ‘어? 가정도 전부 아닌데’ 또 돌아왔다가 ‘그러면 자식을 주지’ 자식 나니까 정신없이 빠져 또 그리가다가 또 한참 가다가 ‘자식이 전부 아닌데’ 그래가지고 돈 따라 갔다가 아내 따라 갔다가 남편 따라 갔다가 가정 따라 갔다가 자식 따라 갔다가 나이 많으면 손자 손녀 따라 갔다가 그래가지고 갔다 갔다 갔다 하는데 보니까 세월이 다 가 버립니다. 그래 계산 하고 나면은 천국 준비, 주님 맞이한 것은 참 극소수고 수많은 세월은 전부다 마귀한테 속아서 엉뚱한 욕심에 다 끌려서 세월도 정력도-.
한번 계산해보면 인생 계산해보면 나옵니다. 하루 24시간. 지금 이 자리에서 고요하게 지나간 한 주간을 계산해보시지요? 내 마음이, 지난 일주일동안에 내 마음이 어디로 많이 기울어졌나? 내가 무엇을 많이 생각했나? 내 몸뚱이가 어디 가있었나? 내 머릿속에 무엇이 많이 들어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답입니다. 자기 마음이 가 있는 만큼, 생각이 기울어진 만큼, 자기 시간이 투자된 만큼, 몸이 거기 간만큼이 바로 자기가 주력한 그겁니다. 만약에 일주일동안에 내 마음은 전부 주님 생각했고 천국 생각 했고 말씀 생각했으면 그만큼 구원 이루어졌습니다. 일주일 동안에 가만히 돌아보니까 성경은 일주일 동안 한 장도 못 읽었고, 주님 생각은 한 번도 못했고, 기도는 한 십 분 했고, 천국 생각은 한 번인가 두 번 했고 나머지는 전부 공부에, 직장에, 사람 만나는데, 가정생활에, 어쩔 수 없이 했든지 어쨌든 그리 다 기울어졌다면 그 사람의 일주일 구원은 그만큼 참 너무도 극소수로. 그런데 문제는 일주일만 그래 사는 것이 아니고 한 달을 돌아보면 한 달도 그렇습니다. 한 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나간 일 년을 돌아보면 일 년이 그렇습니다. 일 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까지 수십 년을 돌아보면 수십 년 십 수 년 세월이 전부다 그런식으로 살아온 것이 오늘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입니다. 그것이 내 생활인 것 같은데, 정상적인 내가 사는 생활, 그것을 두고 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게 있지요. 가장 큰 죄는 무슨 죄라고요?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낙망하는 죄다.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은. 내가 낙망을 하면 남에게 피해를 끼칩니까? 내가 낙심하는데. 내가 낙심되서 힘 떨어지는데 그게 남을 괴롭게 합니까? 못 살게 굽니까?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낙망하는 것은 죄로 여기지를 별로 아니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낙망하는 죄가 가장 큰 죕니다. 죄 중에서. 또 죄가 가장 큰 죄는 어떤 죄냐? 죄는 도둑질하는 죄보다, 사람을 미워하는 그 죄보다, 부러워하는 죄보다, 우상 섬기는 죄보다, 또 거짓말 하는 죄 보다 가장 큰 죄가 무슨 죄겠습니까? 십계명 중에 제일 큰 죄가 무슨 죄겠습니까? 순서대롭니다. 일계명 어기는 죄. 주인을 바꾸지 않은 죄. 주인을 바꾸지 않은게 무슨 그게 대다숩니까. 아무도 모르는데.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거는 전부다 죕니다 그거는. 그런데 그거는 죄인 줄 모르거든요 사람들이.
그러니까 욕심에 붙들려서 사람이 다 사는데 이런 것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니까 참 문제입니다. 욕심에 붙들려 평생을 다 그래서 내가 주인을 바꾸지 아니하고 그리 살 때에 그것을 모든 사람이 전부 사람이 주인 되고 자기가 주인되는 세상이 말세가 될수록 점점 더해집니다. 거기서 더 타락하면 이제는 물질이 주인되는 그런 세상이 됩니다. 666이 됩니다. 그러면 인본이고 세상인데 그게 말세 중에 말센데. 세상은 점점 그리 되어져 갑니다. 그런데 모든 세상이 다 그리 되고 그것을 격려하고 북돋우고 그것을 세우고 찬성하고 그리 만들기를 원하고 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할 리가 없는 겁니다.
인본주의를 반대하는 세상은 없습니다. 어느 세상이든지 어느 단체든지. 사람을 좋게 하겠다는데, 사람을 위하겠다는데, 사람을 생각하겠다는데 왜 반대하냐? 너는 인간이 아니냐 사람이 아니냐 너는 그럼 동물이냐? 왜 사람을 위하겠다는데 너 위하고 나 위하고 서로 좋게 하겠다는데 왜 반대냐? 그것 반대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거 반대할 단체가 있으며 종교가 있으며 그런 정치나 교육이 있겠습니까? 문화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거죠. 누구만 반대하는 겁니까? 하나님만 반대하는 겁니다. 하나님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만 반대하니까 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거기 따라가지 않아야 되니까 대립이 되니까 이게 참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별의 별 종류의 욕심을 가지고 살 때 그 욕심을 가지고 겉으로 전심전력해서 노력하면 다 찬성하고 좋아하고 박수치고 협조하고 도와주고 다 그러지 잘못했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믿는 사람들까지도 전부다 그리 따라가는데 문제는 그리 하다 보니까 믿는 사람의 시간을 그리 다 뺏기고 마음을 다 뺏기고 노력을 다 뺏기니까 신앙생활 할 시간이 없습니다. 천국 준비하고 하나님 아버지 닮아갈 그 시간이 없습니다. 그게 이제 속임수지요. 다 줘놓고 마지막에 알맹이는 속 빼먹는 그것이 마귀의 수법입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믿는 사람의 그러기 때문에 이게 본질인데, 신앙의 본질인데, 믿는 사람이 신앙이 요걸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해도 그래서 마지막에는 무슨 말해도 마지막에는 가봐야됩니다. 끝이 나봐야 알고 그날이 닥쳐봐야 그때사 비로소 아는데 그때가 되면은 이미 때는 늦었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래도 시대마다 종들을 세워가지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우리야 뭐 그 정도까지는 안되지만은) 외쳐되는 겁니다. 노아시대때 노아를 세워가지고 그 시대 사는 사람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120년을 외쳤으니까- 그만큼 외쳐댔지만은 그들이 말을 들었습니까? 시대마다 선지자들이 그만큼 외쳐댔지만은 말을 들었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을때 그들이 들었습니까? 안들었지요?
백목사님께서 서부교회 계실 때 그렇게 외쳐대도 그밑에서 듣기는 들어도 지금 돌아보면 참 강팍했다. 안 들었다. 몰랐습니다. 그렇게 그런 줄 몰랐지요.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전인류는 전부다 어디 끌려가느냐? 욕심에 끌려갑니다. 별의 별 종류의 욕심에. 그 욕심이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소욕이냐 인간 사욕이냐 거기서 갈리는 겁니다. 사욕이면 그 욕심은 어떤 종류든 무조건 버려야 되고 그 욕심 그것을 욕심으로 할 것이 아니고 성령의 소욕에 붙들려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선물로 선용을 해서 이용을 하면 얼마든지 되는데 욕심으로 하면 전부다 죄가 되고 음녀가 되고 우상이 되어진다 거기 다 따라 가버립니다.
그래서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임금 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은 음행하지 못하고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그거 좋아만하고 돈을 취하고 싶은데 실력 없으니까 못 취하고.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 욕이나 하고 흉이나 보고. 저도 돈 있으면 그 짓 할 사람이. 권세 잡은 사람들 저는 권세 잡지 못하니까 권세 잡은 사람들 욕이나 하고 반대나 하고. 저도 권세 잡으면 그보다 더 할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 전부 음행의 포두주에 취한 사람들입니다. 아예 못났으니까 그만 ‘저거는 저 포도주는 쉴꺼야’ 하고 돌아서버리든지 아예 세상은 믿는 사람이니까 ‘이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하고 탁 털어버리면 그만 욕심날 것 없는데. 욕심은 나는데 취하지 못하니까 외식자가 되고 이중자가 되고 죽을 맛이 되는 거지요. 발람 처럼. 재물 주고 권세 주고 명예 주겠다니까 욕심은 나는데 하나님이 가지 말라 그러니까 못 가겠고 죽을 맛이지요. 그래서 ‘그러면 너 알아서 해라’ 자유성을 주니까 그 자유성 가지고 같잖습니까? 가다가 죽었지요. 당나귀가 막아도, 말 못하는 짐승이 막아도 깨닫지 못하다 결국 여호수아의 칼에 죽었습니까? 칼에 죽고 말았지요. 술사 발람이라 그랬습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이 들어가 보면 이렇게 발람처럼 사는 사람이 다 그리 살진 못해도 그리 살 때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신앙은 진실이란 말이 이런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의 생활을 실제 돌아봐야 됩니다. 나는 그렇지 아니하냐. 제가 그렇게 살고 있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걸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앞으로 살지 말자고. 그래 살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그게 다 망하는 길이니까. 욕심에 붙들려 평생을 살면은 마지막에 전부 허비하고 마는 겁니다. 전 인류가 다 그리 따라갑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믿음으로 산 사람들, 믿음의 사람 신앙의 사람들은 시대 시대마다 욕심을 다 버리니까 죄를 다 끊어버리니까 욕심이 없으니까 가볍습니다.
돈 욕심을 가지면 돈에 욕심 내면 오만 문제가 다 생깁니다. 사람을 욕심 내도 별의 별 문제가 다 생깁니다. 뭐든지 욕심 나는 것이 있으면 그 욕심은 사람을 끌고 가는 사람은 그 욕심에 대해서 철이 되고 욕심은 자석이 돼서 그리 끌려가버립니다. 그러면 심령도 죽어버리고 양심도 죽어버립니다. 어두워져버립니다. 근데 그래서 종이 됩니다. 그런데 욕심을 다 털어버리면 청춘 남녀가 연애해서 들어붙어서 남자는 처녀한테 빠져 못 살겠고 처녀는 남자한테 빠져 못 살겠고 그러면 둘이 이제 사랑에 눈이 멀어 그것도 욕심인데, 욕심이 있으면 거기서는 별의 별 위험천만한 일이 다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을 딱 뜨고 별 사람이 없네 하고 욕심을 딱 떨고나서 끊어버리고 딱 보면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거. 별 거 없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공연히 거기 붙들려서 눈이 어두워가지고 오만 종질을 다하게 되는 겁니다. 이
것이 돈이든지 직장도 그렇지요 학교도 그렇지요. 반드시 인류대학을 가야되며 대학을 나와야 되는겁니까? 돈은 꼭 많아야 되는 겁니까? 인식 차이지요. 다 거기서 거긴데. 마귀가 들어서 우리한테 욕심을 집어넣어서 욕심이 믿는 사람을 어둡게 만들어가지고 다 그리 빠지게 만드는데,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다시 보니까 욕심이 별 거 없거든요? 다 거기서 거깁니다. 그러니까 공연히 속았구만. 털어버리니까 욕심이 없으면 자유가 생깁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데 욕심은 죄를 낳고 그 죄는 믿는 사람을 종을 만들어버립니다. 욕심을 끊어버리면 죄를 이길 수 있고 죄를 이기면 믿는 사람은 한없는 자유가 생깁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무거운 욕심과 죄를 다 벗어버리고 끊어버렸기 때문에 이 세상을 밟고 믿음으로 살고 승리한 사람들이 되어졌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보고 우리도 무거운 욕심을 다 벗어버리고 죄를 다 벗어버리자. 그리고 난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난 다음 할 일은 우리는 우리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달려갈 길.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믿는 사람이 택함을 받고 중생 되어서 믿는 사람이 가야될 길. 믿는 사람이 달려갈. 경주란 말은 달음질이란 말이지요. 달려가는 것. 경주라고 표현한 것은 지난 삼일밤 예배땝니까? 집사님 설교에서 전쟁도 죽고 사는 전쟁도, 피터지는 전쟁도 하다보면 휴전도 있고 잠시 멈출때도 있고 쉴 때도 있고 밥 먹을 시간도 있고 그런데. 다 있는데 경주할때는 그런게 없습니다. 달리기할때는 이거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없고 무조건 달려가야 됩니다. 그래야 승패가 승리하게 되지요. 이런 성격을 표현해서 경주라 말씀하신 겁니다. 말하자면 달리기라 그말입니다. 쉬지 않고 중단하지 않고 마지막 끝날때까지 골인지점까지 무조건 달려가야 되는게 경줍니다.
우리 신앙의 성격을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달려가자. 그런데 그 달음질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경주하는 사람이고 이 경주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라는 말은 참을 수 있을 때 참고, 견딜 수 있을 때 견디고, 계속할 수 있을 때 계속하는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그거는. 참을 수 없을 때 참아야 되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되고, 계속하기 어려운 때 계속해야 그게 인냅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것은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다보면, 경주하다 보면, 수많은 어려움이 있고 참기 어렵고 힘들고 견디기 어렵고 계속하기 어려울 그런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참고 견디고 계속해야 그걸 가리켜서 인내라. 신앙의 걸음은 이러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길이라. 그럼 우리 앞에 당한 경주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인가? 우리라는 말은 우리 앞에 당한 경주라 말은 경주는 다 각각 자기 경주를 자기가 하는 겁니다.
이 경주는 자기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자기가 이루어가야 될 자기 구원. 자기가 힘 쓸 자기 신앙. 남편이 힘쓸 것, 아내가 힘쓸 것, 부모가 힘쓸 것, 자녀가 힘쓸 것, 자기가 힘 쓸 그 신앙이 자기 경준데, 이걸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라는 것은 공적이다 그 말이지요. 서로 같다는 의밉니다. 하나가 아니고 다 같다는 뜻이니까. 성격은 달려가기는 각자 달려가나 그 달려가는 신앙의 성격은 전부다 같은 것이라. 신앙생활이라 그말이지요. 믿는 사람의 자기 신앙. 자기 현실에서 자기 위치에서 힘쓸 신앙생활. 자기가 자기 말씀 지키는 믿음 생활. 자기 현실에서 빛 생활. 이것이 믿는 사람의 경줍니다. 말하자면은 학생들이면 나는 학생이니까 열심히 공부하자. 나는 아들 딸 자녀니까 열심히 효도하자. 또 친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며 덕을 끼치자 빛이 되자. 나는 직장생활하는 사람이니 직장에서 믿음의 덕을 끼치자. 나는 가정주부니까 가정주부로서 내 할 일 하자. 자기 주어진 그 직분 위치 거기서 말씀대로 사는 그 생활을 열심히 하는 걸 가리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라. 다 각각 그리 모든 믿는 사람이 다 그리 살아야 되는 걸 우리라 그랬고 그게 달리기 경줍니다. 그래 경주하는 그 경주의 걸림돌이 뭐냐. 무거운 것을 벗어버려야 되고 죄를 끊어버려야. 짐을 지고 달릴 수 없고 달리기 어렵고, 매여 있으면 아무리 달려가고 싶어도 못 달려가니까 그래서 마귀라는 놈이 믿는 사람이 경주를 경주하지 못하게 무거운 짐을 욕심으로 지워놓고 죄를 짓게 만들어가지고 얽어매서 믿는 사람이 경주하지 못하게 하고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게 만드는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얽매이는 죄를 짓게 만드는게 마귀 수법입니다. 이걸 벗어버려야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성령의 소욕이 아닌 사욕을 다 떨쳐버려야 자기 경주를 경주할 수 있고 죄를 끊어버려야 믿는 사람이 자기 경주를 경주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종류 욕심이든지 욕심을 가지고 죄가 있으면 그 놈에게 눌려가지고.
생산적인 일을 하자 그런 말이 있지요. 이거는 비생산적이다. 그 생각이 납니다. 현대자동차 그러면 노조가 유명하지요. 현대자동차 노조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노사가 분교 생겨가지고 노사가 서로 싸우면 이거는 만고에 손해되는 일입니다. 회사도 손해, 노조도 손해 다 손핸데 그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뭐 다 이게 정답이라고는 모르겠지만은 삼성그룹에는 거의 노조가 없지요 아마? 거기는 대모하기전에 알아서 다 챙겨줘라. 그래서 아예 대모할 사람 없도록 만들어버려라. 그래서 삼성은 이름만 노조지 아예 노조가 없습니다 거기는. 그러니까 세계적인 기업이 되지요. 문제가 안생기고. 시대가 변하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은.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노사분교 대모하는 것 때문에 그거 자동차 만들어 팔 그 귀한 시간에 수천억대를 서로 손해보는 겁니다. 비생산적인 그런 짓을 왜하는지.
사람이 믿는 사람이 욕심이 들어있으면 어떤 종류든 욕심이 있으면 죄를 지으면 그때부터 그 욕심에 붙들리고 죄를 끊어버리고 떨어버리기 위해서 그의 모든 생활은 거기 눌려서- 그래서 깨끗하게 살다가 죄 하나 지으면 그 죄 때문에 거기 들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시간과 모든. 그러니까 죄를 짓고 나면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것을 그만큼 못하니까 수없이 손해를 보는 겁니다. 달려가지를 못합니다. 거기 눌려가지고. 이걸 다 끊어버리고 벗어버리자. 안 믿는 사람들은 아예 거기 강제적으로 종이 되니까 못 합니다. 믿는 사람은 대속이 있으니까 이 대속을 힘입어서 벗어버리면 되는데 아무리 벗어버리면 벗어날 수 있지만은 그래도 죄를 짓고 나면 그 죄 그 영양이 우리 생각에, 마음에, 생활에 들어가가지고 우리를 눌려서 믿음으로 달려가는 그런 생활을 그만큼 못하게 만든다 그 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 없는 사람들은 세상으로 달려가도 우리는 천국으로 달려가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해야 되는데 이놈의 욕심과 죄가 들어서 이걸 막으니까 모든 무거운 욕심을 다 벗어버리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끊어버리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그러면 그 경주는 어디를 향한 것인가? 온전을 향한 것이고, 주님을 향한 것이고. 온전 향하고 주님 향한 경주를 경주하자. 그 주님이 어떤 분인데? 주님은 믿음의 주고 온전케 하시는 분이다. 믿음이 무엇인데? 순종이다. 순종하면 우리를 다 책임지시는 분이 주님이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에, 주님에게 순종하고 순종하므로 모든 책임을 주님이 다 지실 것이고 우리를 온전케 만들어 주실 것이니까 이걸 목표하고 자기 앞에 당한 현실을 힘껏 달려가자.
근데 그 길에는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주님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 위해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라 그 말은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인 것, 마지막 끝날 부활의 그날 그것을 생각하면서 십자가를 참았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최종 승리했다. 이것처럼 믿는 사람들도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믿음으로 순종으로 계속 달려나가는 요 인내를 가지고 나가면 이것이 믿는 사람의 신앙의 길이고 우리가 달려갈 경주다. 오후에는 이 말씀을 생각을 하고. 오전말씀에 무겁고 얽매이는 죄 이걸 다 벗어버리고, 오후에는 우리 앞에 당한 우리 경주. 우리가 힘 쓸 것. 이걸 달려가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제목: 우리의 경주
요점:
1. 수많은 증인들
1)세상에 왔다 간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엇? (증인)
2)증인이란? (보여) 주는 사람, (알려) 주는 사람
3)허다한 증인들이 알려 주는 사실들
①사람은 (죽는다).
②땅위의 모든 수고는 다 (헛되다).
③죽을 때는 다 (후회)하고 (두려워)한다.
④(믿음)으로 산 사람은 후회도, 두려워도 않는다.
⑤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라.
2. 벗어 버릴 2가지
1)세상을 살고 간 모든 사람들의 생애는? (욕심)에 눌리고 (죄)에 매여
2)믿음으로 승리한 선진들의 비결은? 무거운 (욕심)과 (죄)를 벗어 버린 것
3)우리가 벗어 버릴 2가지는? 무거운 (욕심)과 얽매이는 (죄)
4)벗어버릴 욕심은? (사욕)
5)죄는?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것, 말씀을 (어긴) 것
3. 우리의 경주
1)우리는? (경주)하는 사람들
2)경주는? (인내)가 필요하다
3)인내란? (참고) 견디고 (계속)하는 것
4)경주란? (달음질), 쉬지 않고 달리는 것
5)우리의 경주는? 자기의 (신앙생활). (말씀)대로 사는 생활, (빛) 생활
6)경주의 방향은? (온전)을 향한 경주, (주님)을 향한 경주
4. 우리의 소망
1)우리가 바라보는 소망은? (예수님) 같이 되는 것
2)예수님은?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분
3)믿음은? (순종), 주라는 말은? (책임)지시는 분
4)순종하면? (온전)을 책임지시는 주님
5)예수님의 승리는?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심
6)우리의 승리는? (믿음, 순종)과 (십자가)의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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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문)
20130623 주후
히브리서 12:1-2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역사세계에 세상에 왔다간 모든 사람은 전부다 우리의 증인들이다. 증인이라 말은 뭔가를 보여주고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왔다간 모든 사람들은 본인이 의도하든지 안하든지 또 사람들이 알든지 모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역사로 모든 사람은 전부 후세대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알려주고 있다 그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안 믿는 사람들도 짐작은 하고 또 지혜있는 사람들은 보고 자기대로 알고 그리하나 알아도 내나 그 세계 안이기 때문에 별 수 없지만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앞에 살고 간 모든 인류가 우리의 증인들이며 그들이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알려주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라는 것을 깨닫고 우리는 어리석고 미련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보여주는데도 보지 아니하고, 알려주는데도 알지 않으면 그 책임은 자기가 다 져야 되고 뒤에 가서 핑계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보여줘도 모른다 그러고 보지 않겠다 그러고 아무리 깨우쳐줘도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백성이 보고 알고 듣고 깨달아서 고침을 받을까 내가 염려한다. 이 백성은 그 동안에 너무도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져버렸고 강팍을 부렸기 때문에 이제는 기회를 다 걷어버릴 것이고 그러므로 주신 기회를 수도 없이 많은 기회를 다 던져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이 백성을 내가 멸해버려야 되겠는데, 아주 징계해서 멸망시켜야 되겠는데 혹시라도 이들이 가로늦게라도 보고 듣고 깨달아서 고침을 받을까 두렵다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여주실 때 보지 아니하고 알려주실 때 알지 아니하고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를 던져버리고 차버리면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는, 고침 받고 싶어도 고침 받을 수가 없는 그런 때가 오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회를 놓지는 어리석은 우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몸에 병이 있는지 좀 몸이 조금 이상하면 얼른 병원에 가보고 또 살펴보고 그리하면 일찍 알면 어지간한 병 고칠 수 있는데 그만 힘들어서 싫어서 또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몸에 병이 커가는데도 병원에 가서 알아보지 않고 기회 지나고 나면 그때가서 알아봐야 이미 때가 다 늦어서 기회를 다 놓쳐버리고 마는 겁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은 간증자들 주신 것은 우리에게 주시는 기횝니다. 보여주니까 얼마든지 봐라. 알려주니까 봐라. 얼마든지 보고 알고, 보고 알고 난 다음에는 사람이란 것이 보면은 알게 되고 알고 나면 사람은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알면서도 안하면 참 멸망받을 짐승밖에 되지 못하는데 우리가 남 말 할 것 없이 다 비슷비슷한 그런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우리 자신을 단속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신앙의 성공은 어렵습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데 오전에는 그중에서 알기 쉬운 다섯가지만 생각해봤는데 이걸 들을 때 생각해봐야 됩니다. 우리 앞에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그 말이 맞느냐. 우리 앞에 먼저 살고 간 모든 인류는 다 우리의 증인들이다.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주고 있고 알려주고 있는 증인들이다. 이 말이 맞느냐?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것은 많이 있는 중에서 오전에 다섯 가지를 생각해봤는데 첫째는 모든 사람은 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그들이 죽음으로 말을 합니다. 안 죽으려고 건강도 챙겨봤고, 하루 세 끼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봤고, 건강검진도 잘 받아봤고, 치료도 해봤고 수술도 해봤고 보약도 먹어봤고, 불로초도 먹어보고 온갖 좋은 것을 다 먹어봤지만은 마지막에는 다 안 죽은 사람이 없는 것 보니까. 왕도 죽고 부자도 죽고 또 실력 있는 사람도 죽고 젊고 건강한 사람도 때 되니까 죽고, 뿐만 아니고 노인만 죽는 것이 아니고 젊은이도 죽고 아이도 죽고. 다 죽는데 보니까 사람은 한번은 다 죽는다는 사실을 인류 역사 수천억에 수천억에 사람들이 다 죽음으로 우리에게 알려주므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 사람은 다 죽는구나.’ 이걸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죽음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그다음 그 죽음으로써 이 세상 이성의 세계가 다 끝이 나고 죽음 맞이하는 그 순간 이 세상에 어떤 것과 자기와의 모든 관계는 완전히 끊어져버리기 때문에, 끝나버리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미국 가도 미국과 서로 연결이 되고 통하면 한국에 있는 재물이나 자기 지위나 가족이나 모든 것들이 서로 연결이 되니까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끝이 아닌데, 만약에 예를 들어서 한국 사람이 미국 갔는데 그 사람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그런 것으로 끝나는 것이 되어진다면 그 사람은 한국에 있는 자기 재산이 있든지 명예가 있든지 가족이 있든지 뭐가 있든지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 되니까 새로 시작을 해야 됩니다. 하나에 이거는 예지만은 죽음이란 것은 이 세상과 자기와 모든 것을 끝내는 그 순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떤 부귀영화를 마련해놓고 누리고 자기 재물 마련하고 부동산 마련하고 권세 마련하고 또 2세 낳아두고 아무리 좋은 거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거 또 놓고 가기 아까운 거, 어떤 것을 세상에 마련하고 준비하고 누렸다 할지라도 일단 죽으면 자기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되어지기 때문에 그래서 솔로몬이 그렇게 살아보니까 인생의 모든 생활이 전부 다 헛되다. 땅위에 인생이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다. 헛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다 헛된 것뿐입니다.
그래서 좀 멀리 보는 그런 선견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재물을 탐하지 아니하고 권력을 탐하지 아니하고 명예를 탐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재물보다는 권력, 권력보다는 재물보다는 또 명예 이런게 있는데 보다 더 나은 것이지만은 도토리 키재기 한다는 말처럼 다 거기서 거기지 죽음이라는 그 선 아래서 모든 게 다 그런 것이지 그 선 넘어가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전부다 헛된 것이다. 이걸 역사세계 육천년에 전인류가 살고 가므로 다 보여주는 겁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살다가므로 재벌도 살다가 그 많은 재물을 다 두고 가니까-
그래서 세상에 왔다가 한평생을 가난하게 살고 외롭게 살고 종으로 살고 어렵게 살고 살기 싫은 세상을 살고 징그러운 세상을 살고 떠나고 싶은 세상을 살고 죽고 싶은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그 사람은 세상 떠날 때 고통이 별로 없을 겁니다. 눈물이 별로 없을거고. ‘아이고 그만 살기 싫은 세상, 떠나기 싫은 세상, 정 떨어지는 세상. 세상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하고 오히려 홀가분하게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 없고. 그런데 세상에서 재물 모은다고 평생을 다 받쳐 수백억을 모아놓고 또 결혼해서 아내와 자식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사랑스런 처자식을 남겨놓고 또 친구들 있고 좋은 직장 있고 또 지위 있고 명예 있고 앞날에 창창한 이 세상에 자기와 연관된 그런 것들이 많은 사람일수록 세상을 떠나면 고통이 크고 눈물이 더 크고 많은 겁니다. 왜 세상을 떠나면 고통이 많습니까? 세상에 마련해 둔 것이 많을수록 왜 눈물이 많으며 고통이 왜 많습니까? 떠나면 두 번 다시 그들을 보지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하고 관계를 가질 수가 없이 끝이 되니까. 그래서 더 고통스럽고 눈물이 더 많은 겁니다.
그래서 인생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 모든 건 다 헛된 수고가 될 수 밖에 없다. 이걸 수많은 인류의 인생의 생애가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렇기 때문에 세상을 떠날 때 죽는 사람들이 전부다 보면은 후회를 하고 두려워하므로 세상을 떠나서 눈을 감게 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전부 세상만 보고 땅만 보고 사는데 이 세상만 바라보고 욕심내고 주력하고 사는데 이 사람들은 죽음 너머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하늘나라 바라보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죽음을 준비하고 살았는고로 그들은 죽을 때 후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실들을 보고 있으니까 알려줬으니까 ‘너희들은 믿음으로 살아라. 그게 인생의 가치고 지혜라는 것을 수많은 증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고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오전에 첫 번째로 생각해봤습니다.
자 쉬운건데 한 번 더 해보십시다. 증인들이 알려주는 거 첫째 뭘 보여줍니까? 사람은 죽는다. 말씀을 들을 때 생각해서 말에 논리의 어떠함과 그 말에 들어있는 그런 걸 다 떠나서 그 말이 옳은 말이냐 그른 말이냐 그걸 따져봐야 됩니다. 이치가 맞는 말. 그래서 가장 힘 있는 말은 실질적인 말. 참 말입니다. 옳은 말. 알맹이 진짜 없는. 그래서 오늘 주일학교 가르친 제목이 ‘진실’인데 ‘진실을 만들자’ 진실 만들자 그 말은 농사를 지었으면, 가을에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 지었는데 보니까 잎사귀는 무성한데 열매가 안 맺었으면 그 농사는 헛일입니다. 과수 나무를 심어서 나무도 키도 크고 잎사귀도 무성하고 꽃도 많이 피었는데 보니까 과수나무니까 열매를 맺어야 되는데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나무 키커봐야 또 열매 잎사귀 무성해봐야 아무 쓸모가 없는 겁니다. 열매를 맺어야 그 나무는 진실한 겁니다.
학생의 진실은 뭡니까? 학생의 진실은? 6학년 동안 학교를 다녔으면, 초등학교 6년을 다녔으면 초등학교 6년 다닌 학생이 학생으로서의 진실은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다 자기 머릿속에 넣어놔야 그게 진실입니다. 예수 믿는 학생들이 6년 동안 학교를 다녔는데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안 들어있으면 그 예수 믿은 학생은 거짓부리입니다. 진실이 아닙니다. 중학교 3년을 다녔으면 그 3년 과정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야 그게 진실입니다. 실제라 그 말입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들었으면 들은 그 말씀이 그 머릿속에 들어있어야 그게 진실입니다. 한시간 내도록 예배 보고 앉았는데 ‘오늘 예배시간에 본문이 뭐지? 오늘 말씀 제목이 뭐지? 줄거리가 뭐지?’ 모르면 그 시간 예배는 외식입니다. 다는 몰라도 핵심 줄거리는 알고 있어야 그게 그 예배의 진실입니다. 진실이라 말은 실제 속에 있는 걸 가리켜 그래서 사람이 진실하다 그 말은 오늘 주일학교때 보니까 진실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요? 진실한 사람은 참 사람입니다. 참 사람. 참 사람이 진실한 사람입니다. 사람다운 사람.
그러니까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이 말은 잘하는데, 그럴듯한데 이게 맞는 말이냐 틀린 말이냐 거기 가치를 두고 그걸 따져봐야 됩니다.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수많은 증인이 보여준다 그랬습니다. 맞는 말이면 과연 그러하다. 그러면 그 말은 진리입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만 바라보고 산 인생의 모든 수고는 전부다 헛되다.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를 건설해서 종된 나라에 자유를 얻고 독립을 시켜놓고 가난한 나라를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힘 있는 나라 만들어놔도 그 사람이 이 세상만 보고 살았다면 그것도 헛수고다.
에디슨이 발명한 발명품이 굉장히 많아서 지금도 우리가 그 발명품들을 다 누리고 있는데 그 에디슨이란 사람의 생애가 헛된가? 이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다 누리고 있는 것 같으나 그래서 그 이름을 모두 다 존경하는 것 같으나 본인과는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본인의 인생과 본인의 영원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거는. 다 헛된 수곱니다. 이 땅 위에서 믿음 떠난 모든 사람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산 것만 헛되지 아니합니다. 이걸 역사세계 모든 사람이 보여줍니다. 그러기 때문에 헛된 일 했으니까 마지막 죽을 때는 후회하고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 사람들은 후회도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복이다 지혜다 이걸 가르쳐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역사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고 갔는데 왜 헛된 수고를 하고 간 사람들은 왜 그렇게 헛된 수고를 하고 갔는가? 몇 가지에 붙들렸습니까? 두 가지에 붙들렸습니다. 하나는 무거운 자기 욕심에. 하나는 죄에 붙들려서. 사람의 모든 생활은 욕심이 들어서 사람을 이 세상을 살게 만듭니다. 욕심이란 것은 결코 무조건 나쁜 게 아닙니다. 욕심이 있어야 공부도 하고 욕심이 있어야 가정주부가 반찬을 만들 때 반찬 만들기 까다롭고 힘드니까 그냥 대충 대충 만들고 먹으면 되지 한 끼 건너뛰며 넘어가면 되지 그래가지고 음식을 만들면 만들어도 정성이 안 들어가서 가족들이 먹을 때 맛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가정주부가 가족들을 사랑하고 건강을 챙기고 맛있게 먹이고 싶은 욕망이 욕심이 있어가지고 그래 마음을 가지고 음식을 만들면 같은 음식이라도 정성이 들어가니까 맛이 있는 겁니다.
공부를 마지못해서 부모님이 하라고 닦달하니까, 선생님이 조아대니까 마지못해서 책상머리 앉아있는 그 학생은 앉아있어도 공부가 머릿속에 들어가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내 공부는 내가 하고 내 앞길은 내가 책임져야 된다고 깨닫고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공부에 욕심 있는 그 학생은 하라 말 안해도 알아서 합니다. 그러면 그 학생은 공부가 되는 겁니다.
‘세상 사는 것이 별 거 있나 그냥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고 만수산에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그래가지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하고 세상을 돈 생기면 술 먹고 돈 생기면 노름 하고 돈 생기면 영화 보고 가족은 던져놓고 제 멋대로 제 편한대로만 사는 그런 재물 모으는 욕심, 집을 좀 사고 싶은 욕심, 돈을 저축하고 싶은 욕심, 가정을 보살펴서 남부럽게 살아보고 싶은 그런 욕심, 이런 욕심이 없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도 아무렇게나 저대로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인간 중에서 아주 몹쓸 인간입니다. 악인입니다. 가장 나쁜 인간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보면은 가장 악한 사람이 가장 세상 기준에서 좋은 사람이 욕심이 가장 많은 사람이고 가장 몹쓸 악인이 또 욕심이 가장 많은 사람일 수 있고. 반대로 가장 몹쓸 악인이 욕심이 없는 사람일수도 있고 가장 좋은 사람이 욕심이 가장 많은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없는 사람일수도 있고. 그래서 욕심이란 것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다 그 말이지요. 이 세상만 보고 산다면 욕심을 가질 수록 좋은 것이고 그 욕심의 종류와 그 욕심의 방향을 구별해서 가지는 그게 문제지 나쁜 게 없는데. 문제는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니까 문젭니다. 그래서 전 인류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종류 욕심이든지 뭔가 욕심을 가지고 그 욕심에서 나와서 욕심이 힘도 내고 욕심이 의지도 가지게 하고 욕심이 들어서 인내도 만들고 욕심이 들어서 연구도 하게하고 욕심이 들어서 열정도 가지게 하고 욕심이 들어서 부지런하게도 만들고 욕심이 들어가지고 악착같이 하게하고. 그래가지고 모든 사람이 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러기 때문에 들어가보면 사람의 평생은 전부 어떤 한 두 몇 가지 욕심에 붙들려가지고 그 욕심이 끌고가는대로 다 끌려 다니는게 인간 일생의 생애다 그 말이지요.
논리적으로 실질적으로 어떻습니까? 말이 맞는 말입니까? 공중에 붕 뜬 말입니까? 말을 만들어내는 말입니까? 생각을 해보시지요. 이걸 단순히 우리 신앙이 아니더라도 안 믿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그래서 저는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자본주의라든지 공산주의라든지 이런 경제 이론의 그 근본으로 파고 들어가면 전부 인간을 연구한 인문학에서 나와가지고 ‘인간의 심리가 인간의 본성이 이러하니까 이런 것이 필요하다 저런 게 필요하다’ 그래가지고 모든 사상이 나오고 주의가 나오고 그래가지고 세상이 다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욕심이 없으면 그 욕심은 더 들어가면 그게 전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거든요? 이기주의라는 것이 욕심이지요. 아마 자본주의 이론의 근본은 인간 이기주의 거기서 출발된 것으로 그리 들은 것 같은데. 그게 말하자면 자기 욕심입니다. 공산주의란 것은 보기에는 이타주의적인 그런 면이 있는데 그거 전부 거짓말이거든요? 인간의 본성이 다 악인데. 그들이 성경 몰라도 인간의 본성은 자기 중심인데, 자기를 위하는 이기주의인데, 그 이기주의가 공산주의를 만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겁니다. 이거는 논리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겁니다. 하나에 사람 속이는 것이고 기만하는 거지 안되는 일입니다. 본성적으로.
이기주의적인 그게 사람이고 그 이기적인 그 욕심이 사람을 평생을 살게 하는데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사람이 사는 것은 욕심에 힘 그 욕심의 힘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살아가는 힘이 어느 정도냐 거기 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하나 열심히 하는 사람을 잡고 왜 그리 열심히 합니까? 물어보면 그 속에 밑에 들어가면 그 열심히 하는 그 종류와 연관된 욕심이 반드시 있습니다. 욕심이 없는 열심은 이 세상에는 없는 겁니다. 어떤 종류든.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열심히 합니다. 그것도 가족 사랑의 일종의 욕심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들어가보면 어떤 사람이 어느 시대에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살아가는 건 전부 욕심에 붙들려서 욕심에 끌려서 인간 일생은 다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욕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이 되게 만드는 겁니다. 짐을 져야 되니까 당연히 져야 되는 줄 알고 지니까 그래 지는 것이지 그게 전부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고. 그 욕심이 지나치면 그 짐이 자기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는 겁니다.
지난주에도 말씀 드렸지만은, 부모가 자기 자녀는 전부 다 천잰 줄 알고 다 영잰 줄 알고 그래 생각을 해서 ‘우리 아이는 반에서 적어도 1등은 몰라도 2,3등은 할 건데 내가 보니까 너는 2등은 할 것 같다. 그런데 네 성적이 10등 밖에 안되니까 노력을 하자.’ 그런데 객관적으로 그 아이를 살펴보면 그 아이의 성적은 10등이 한계입니다. 그런데 부모 욕심이 2등으로 딱 정해놓고 그리 되면 그 아이는 그 공부가 죽을만큼 고통스런 짐이 되는 겁니다. 부모의 욕심이 자식을 힘껏 눌러서 못살게 만드는 겁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직장도 그렇습니다. 자기 실력이 나는 한달에 이백만원짜리 실력인데 그 이백만원짜리 실력이 마음에 차지 않아서. 그 이백만원짜리 실력이면 거기 맞도록 집도 구하고 거기 맞도록 또 모든 생활 용품이나 경제 생활을 거기 맞춰서 그래 살아야 되는데, 실력은 이백만원짜린데 살기는 오백만원짜리로 살고싶으면 그때부터 그 사람은 생활의 모든 게 무거운 짐이 돼서 눌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외상이면은 소도 잡아 먹고 공짜배기면 양잿물도 둘러마시고 하는 그게 전부 그런 욕심에서 나오는 그런 작용 중에 하나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전부 욕심이 들어서 사람을 살게 하고 힘 있게 하고 열심내게 하고 성공하게 만들고 다 그래 하는 겁니다.
박대통령이 우리나라를 혁명 일으켜서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를 세계에서 유명한 그런 잘 사는 나라로 만들도록 바탕을 닦아놨습니다. 그 사람이 나라 사랑 있지만은, 그 나라 사랑도 있겠지만은 한편으로는 거기서 자기, 그것도 하나 나라 사랑 민족 사랑이라는 욕심이지요. 우리 민족 한 번 잘 살게 만들어보자. 그것도 명예욕도 있는 것이고 잡고 보니 권세욕도 있는 것이고. 그런 욕심이 들어서 그렇게 힘 있게 만들었지 욕심 없는 그런 일은 없는 겁니다. 욕심이 돈도 벌게 하고 욕심이 과학을 발전도 시키고 편리하게도 만들고 온갖 것을 다 만들어 내는 겁니다.
90점 시험 맞으면 제법 잘하는 건데 90점 받아가지고 만족 못하니까 ‘아 95점 받으면 좋겠다’ 점수 욕심 그러면 열심히 하는 거지요. 95점 받고 나니까 ‘100점 받으면 좋겠다’ 또 열심히 하는 겁니다. 건설적인 욕심이고 다 좋은 욕심인데 어쨌든 욕심은 욕심이고 그런 욕심이 들어서 모든 사람을 평생을 전부 살게 만드는 것이고.
그런데 그 욕심을 넣어주는 원수가 누구냐? 그놈이 바로 악령이라서, 귀신 마귀라서 인간으로 하여금 수많은 종류의 욕심을 집어넣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 욕심에 붙들리고 끌려서 그 욕심에 붙들려서 그 사람의 시간과 정력과 모든 것을 솔빡 도적 맞게 만드는게 악령의 수법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 가리켜 이번 집회도 8월 집회때도 공부할 것이고 많이 배웠는데 그런 세상을 가리켜 뭐라 한다고요 이름을? 하나님의 아들의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천국을 소망하고 그 천국을 준비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닮는 나를 만들어가는 요게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이고 이게 믿는 사람이 욕심내고 달려갈 길인데 여기는 눈을 딱 감게 만들어버리고 전부 다른 곳으로 눈을 다 돌려서 ‘여기 돈도 있다, 권력도 있다, 좋은 직장도 있다, 명예도 있다, 아름다운 미인 미남도 있다, 가정도 있다, 향락도 있다’ 좋은 거 다 보여줘가지고 그쪽으로 우리의 욕심을 털어서 그리 만드니까 좋은 가정 만들겠다는데 욕 할 사람 있습니까? 1등 하겠다는데 욕 하는 사람 있습니까? 좋은 직장 구해보겠다는데 욕 하는 사람 있습니까? 다 좋아하지요. 잘한다 잘한다 다 칭찬하지요. 올림픽 금메달 따겠다는데 반대할 사람 있습니까? 나라를 잘 사는 나라 만들어보겠다는데 반대하는 사람 있습니까? 다 좋아하지요. 전인류가 다 좋아합니다. 역사가 다 좋아하고 찬성합니다.
그래가지고 그래서 좋은 역사에 모든 사람이 세상이 좋아하고 찬성하고 박수치고 환영하는 그런 욕심일수록 더 그리 빠지게 되고 더 가치있다 착각을 하게 되고 그리 더 마음이 기울어지니까 그러다보니까 이쪽에 있는 믿는 사람의 본업 이거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평생을 살고 다 잘 살아서 홍포 입은 부자처럼 가족도 좋아하고 이웃도 좋아하고 사회도 좋아하고 국가도 민족도 박수 치고 이름 내고 다 좋아하고 다 좋아하는데 마지막에 가보니까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 ‘너 무엇 때문에 그렇게 평생을 열심히 살았느냐? 누구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 ‘어느 민족을 위해서?’ ‘대한민국을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나하고는 상관이 없구만. 너는 그러면 세상에 살든 이 세상 것 다 불 탔으니까 그거 가는 나하고 상관없는 지옥에 가야 되겠네.’
노벨상을 받아도 육천년 전인류가 전부 환영하고 다 좋아해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면 다 헛된 수고입니다. 그쪽으로 마귀가 안 믿는 사람 전부다고, 믿는 사람의 눈과 귀를 마음을 다 돌려 그리 빠지게 하고 하나님은 보지 못하게 하고 천국은 보지 못하게 하는 이것이 인간들의 모든 생앱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인류는 욕심에 붙들려서 살게 되고 그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도 버리고 믿는 사람이면 말씀도 다 져버리고 그래서 욕심에 눌리고 죄에 붙들려서 평생을 허비하고, 제법 잘 믿는 사람들은 끌려갔다가 한참 가다보니까 정신 차리고 ‘어 이거 길이 아닌데’ 돌아왔다가. 또 믿음 생활 좀 하다가 또 마귀가 또 좋은 것 또 보여주면 돈 보여주니까 돈에 끌려갔다가 한참 가다 보니까 ‘어? 돈은 우리 것이 아닌데.’ 돌아왔다가. ‘돈이 싫으냐 그러면 가정을 주지’ 좋은 가정을 주니까 또 가정 따라 한참 따라갔다가 ‘어? 가정도 전부 아닌데’ 또 돌아왔다가 ‘그러면 자식을 주지’ 자식 나니까 정신없이 빠져 또 그리가다가 또 한참 가다가 ‘자식이 전부 아닌데’ 그래가지고 돈 따라 갔다가 아내 따라 갔다가 남편 따라 갔다가 가정 따라 갔다가 자식 따라 갔다가 나이 많으면 손자 손녀 따라 갔다가 그래가지고 갔다 갔다 갔다 하는데 보니까 세월이 다 가 버립니다. 그래 계산 하고 나면은 천국 준비, 주님 맞이한 것은 참 극소수고 수많은 세월은 전부다 마귀한테 속아서 엉뚱한 욕심에 다 끌려서 세월도 정력도-.
한번 계산해보면 인생 계산해보면 나옵니다. 하루 24시간. 지금 이 자리에서 고요하게 지나간 한 주간을 계산해보시지요? 내 마음이, 지난 일주일동안에 내 마음이 어디로 많이 기울어졌나? 내가 무엇을 많이 생각했나? 내 몸뚱이가 어디 가있었나? 내 머릿속에 무엇이 많이 들어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답입니다. 자기 마음이 가 있는 만큼, 생각이 기울어진 만큼, 자기 시간이 투자된 만큼, 몸이 거기 간만큼이 바로 자기가 주력한 그겁니다. 만약에 일주일동안에 내 마음은 전부 주님 생각했고 천국 생각 했고 말씀 생각했으면 그만큼 구원 이루어졌습니다. 일주일 동안에 가만히 돌아보니까 성경은 일주일 동안 한 장도 못 읽었고, 주님 생각은 한 번도 못했고, 기도는 한 십 분 했고, 천국 생각은 한 번인가 두 번 했고 나머지는 전부 공부에, 직장에, 사람 만나는데, 가정생활에, 어쩔 수 없이 했든지 어쨌든 그리 다 기울어졌다면 그 사람의 일주일 구원은 그만큼 참 너무도 극소수로. 그런데 문제는 일주일만 그래 사는 것이 아니고 한 달을 돌아보면 한 달도 그렇습니다. 한 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지나간 일 년을 돌아보면 일 년이 그렇습니다. 일 년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까지 수십 년을 돌아보면 수십 년 십 수 년 세월이 전부다 그런식으로 살아온 것이 오늘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입니다. 그것이 내 생활인 것 같은데, 정상적인 내가 사는 생활, 그것을 두고 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게 있지요. 가장 큰 죄는 무슨 죄라고요?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낙망하는 죄다.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은. 내가 낙망을 하면 남에게 피해를 끼칩니까? 내가 낙심하는데. 내가 낙심되서 힘 떨어지는데 그게 남을 괴롭게 합니까? 못 살게 굽니까?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낙망하는 것은 죄로 여기지를 별로 아니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낙망하는 죄가 가장 큰 죕니다. 죄 중에서. 또 죄가 가장 큰 죄는 어떤 죄냐? 죄는 도둑질하는 죄보다, 사람을 미워하는 그 죄보다, 부러워하는 죄보다, 우상 섬기는 죄보다, 또 거짓말 하는 죄 보다 가장 큰 죄가 무슨 죄겠습니까? 십계명 중에 제일 큰 죄가 무슨 죄겠습니까? 순서대롭니다. 일계명 어기는 죄. 주인을 바꾸지 않은 죄. 주인을 바꾸지 않은게 무슨 그게 대다숩니까. 아무도 모르는데. 그런데 문제는 주인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거는 전부다 죕니다 그거는. 그런데 그거는 죄인 줄 모르거든요 사람들이.
그러니까 욕심에 붙들려서 사람이 다 사는데 이런 것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니까 참 문제입니다. 욕심에 붙들려 평생을 다 그래서 내가 주인을 바꾸지 아니하고 그리 살 때에 그것을 모든 사람이 전부 사람이 주인 되고 자기가 주인되는 세상이 말세가 될수록 점점 더해집니다. 거기서 더 타락하면 이제는 물질이 주인되는 그런 세상이 됩니다. 666이 됩니다. 그러면 인본이고 세상인데 그게 말세 중에 말센데. 세상은 점점 그리 되어져 갑니다. 그런데 모든 세상이 다 그리 되고 그것을 격려하고 북돋우고 그것을 세우고 찬성하고 그리 만들기를 원하고 다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을 반대할 리가 없는 겁니다.
인본주의를 반대하는 세상은 없습니다. 어느 세상이든지 어느 단체든지. 사람을 좋게 하겠다는데, 사람을 위하겠다는데, 사람을 생각하겠다는데 왜 반대하냐? 너는 인간이 아니냐 사람이 아니냐 너는 그럼 동물이냐? 왜 사람을 위하겠다는데 너 위하고 나 위하고 서로 좋게 하겠다는데 왜 반대냐? 그것 반대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거 반대할 단체가 있으며 종교가 있으며 그런 정치나 교육이 있겠습니까? 문화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단 하나밖에 없는거죠. 누구만 반대하는 겁니까? 하나님만 반대하는 겁니다. 하나님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만 반대하니까 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거기 따라가지 않아야 되니까 대립이 되니까 이게 참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별의 별 종류의 욕심을 가지고 살 때 그 욕심을 가지고 겉으로 전심전력해서 노력하면 다 찬성하고 좋아하고 박수치고 협조하고 도와주고 다 그러지 잘못했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믿는 사람들까지도 전부다 그리 따라가는데 문제는 그리 하다 보니까 믿는 사람의 시간을 그리 다 뺏기고 마음을 다 뺏기고 노력을 다 뺏기니까 신앙생활 할 시간이 없습니다. 천국 준비하고 하나님 아버지 닮아갈 그 시간이 없습니다. 그게 이제 속임수지요. 다 줘놓고 마지막에 알맹이는 속 빼먹는 그것이 마귀의 수법입니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믿는 사람의 그러기 때문에 이게 본질인데, 신앙의 본질인데, 믿는 사람이 신앙이 요걸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해도 그래서 마지막에는 무슨 말해도 마지막에는 가봐야됩니다. 끝이 나봐야 알고 그날이 닥쳐봐야 그때사 비로소 아는데 그때가 되면은 이미 때는 늦었다 그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래도 시대마다 종들을 세워가지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우리야 뭐 그 정도까지는 안되지만은) 외쳐되는 겁니다. 노아시대때 노아를 세워가지고 그 시대 사는 사람이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120년을 외쳤으니까- 그만큼 외쳐댔지만은 그들이 말을 들었습니까? 시대마다 선지자들이 그만큼 외쳐댔지만은 말을 들었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을때 그들이 들었습니까? 안들었지요?
백목사님께서 서부교회 계실 때 그렇게 외쳐대도 그밑에서 듣기는 들어도 지금 돌아보면 참 강팍했다. 안 들었다. 몰랐습니다. 그렇게 그런 줄 몰랐지요. 지금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전인류는 전부다 어디 끌려가느냐? 욕심에 끌려갑니다. 별의 별 종류의 욕심에. 그 욕심이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소욕이냐 인간 사욕이냐 거기서 갈리는 겁니다. 사욕이면 그 욕심은 어떤 종류든 무조건 버려야 되고 그 욕심 그것을 욕심으로 할 것이 아니고 성령의 소욕에 붙들려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선물로 선용을 해서 이용을 하면 얼마든지 되는데 욕심으로 하면 전부다 죄가 되고 음녀가 되고 우상이 되어진다 거기 다 따라 가버립니다.
그래서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임금 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은 음행하지 못하고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그거 좋아만하고 돈을 취하고 싶은데 실력 없으니까 못 취하고.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 욕이나 하고 흉이나 보고. 저도 돈 있으면 그 짓 할 사람이. 권세 잡은 사람들 저는 권세 잡지 못하니까 권세 잡은 사람들 욕이나 하고 반대나 하고. 저도 권세 잡으면 그보다 더 할 사람이. 그런 사람들이 전부 음행의 포두주에 취한 사람들입니다. 아예 못났으니까 그만 ‘저거는 저 포도주는 쉴꺼야’ 하고 돌아서버리든지 아예 세상은 믿는 사람이니까 ‘이 세상은 내 것이 아니다’ 하고 탁 털어버리면 그만 욕심날 것 없는데. 욕심은 나는데 취하지 못하니까 외식자가 되고 이중자가 되고 죽을 맛이 되는 거지요. 발람 처럼. 재물 주고 권세 주고 명예 주겠다니까 욕심은 나는데 하나님이 가지 말라 그러니까 못 가겠고 죽을 맛이지요. 그래서 ‘그러면 너 알아서 해라’ 자유성을 주니까 그 자유성 가지고 같잖습니까? 가다가 죽었지요. 당나귀가 막아도, 말 못하는 짐승이 막아도 깨닫지 못하다 결국 여호수아의 칼에 죽었습니까? 칼에 죽고 말았지요. 술사 발람이라 그랬습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이 들어가 보면 이렇게 발람처럼 사는 사람이 다 그리 살진 못해도 그리 살 때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신앙은 진실이란 말이 이런 말씀을 가지고 나 자신의 생활을 실제 돌아봐야 됩니다. 나는 그렇지 아니하냐. 제가 그렇게 살고 있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걸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앞으로 살지 말자고. 그래 살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그게 다 망하는 길이니까. 욕심에 붙들려 평생을 살면은 마지막에 전부 허비하고 마는 겁니다. 전 인류가 다 그리 따라갑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믿음으로 산 사람들, 믿음의 사람 신앙의 사람들은 시대 시대마다 욕심을 다 버리니까 죄를 다 끊어버리니까 욕심이 없으니까 가볍습니다.
돈 욕심을 가지면 돈에 욕심 내면 오만 문제가 다 생깁니다. 사람을 욕심 내도 별의 별 문제가 다 생깁니다. 뭐든지 욕심 나는 것이 있으면 그 욕심은 사람을 끌고 가는 사람은 그 욕심에 대해서 철이 되고 욕심은 자석이 돼서 그리 끌려가버립니다. 그러면 심령도 죽어버리고 양심도 죽어버립니다. 어두워져버립니다. 근데 그래서 종이 됩니다. 그런데 욕심을 다 털어버리면 청춘 남녀가 연애해서 들어붙어서 남자는 처녀한테 빠져 못 살겠고 처녀는 남자한테 빠져 못 살겠고 그러면 둘이 이제 사랑에 눈이 멀어 그것도 욕심인데, 욕심이 있으면 거기서는 별의 별 위험천만한 일이 다 생기는 겁니다. 그런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눈을 딱 뜨고 별 사람이 없네 하고 욕심을 딱 떨고나서 끊어버리고 딱 보면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거. 별 거 없는 겁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공연히 거기 붙들려서 눈이 어두워가지고 오만 종질을 다하게 되는 겁니다. 이
것이 돈이든지 직장도 그렇지요 학교도 그렇지요. 반드시 인류대학을 가야되며 대학을 나와야 되는겁니까? 돈은 꼭 많아야 되는 겁니까? 인식 차이지요. 다 거기서 거긴데. 마귀가 들어서 우리한테 욕심을 집어넣어서 욕심이 믿는 사람을 어둡게 만들어가지고 다 그리 빠지게 만드는데,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다시 보니까 욕심이 별 거 없거든요? 다 거기서 거깁니다. 그러니까 공연히 속았구만. 털어버리니까 욕심이 없으면 자유가 생깁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데 욕심은 죄를 낳고 그 죄는 믿는 사람을 종을 만들어버립니다. 욕심을 끊어버리면 죄를 이길 수 있고 죄를 이기면 믿는 사람은 한없는 자유가 생깁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무거운 욕심과 죄를 다 벗어버리고 끊어버렸기 때문에 이 세상을 밟고 믿음으로 살고 승리한 사람들이 되어졌다 그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보고 우리도 무거운 욕심을 다 벗어버리고 죄를 다 벗어버리자. 그리고 난 다음에 할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난 다음 할 일은 우리는 우리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달려갈 길.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믿는 사람이 택함을 받고 중생 되어서 믿는 사람이 가야될 길. 믿는 사람이 달려갈. 경주란 말은 달음질이란 말이지요. 달려가는 것. 경주라고 표현한 것은 지난 삼일밤 예배땝니까? 집사님 설교에서 전쟁도 죽고 사는 전쟁도, 피터지는 전쟁도 하다보면 휴전도 있고 잠시 멈출때도 있고 쉴 때도 있고 밥 먹을 시간도 있고 그런데. 다 있는데 경주할때는 그런게 없습니다. 달리기할때는 이거는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없고 무조건 달려가야 됩니다. 그래야 승패가 승리하게 되지요. 이런 성격을 표현해서 경주라 말씀하신 겁니다. 말하자면 달리기라 그말입니다. 쉬지 않고 중단하지 않고 마지막 끝날때까지 골인지점까지 무조건 달려가야 되는게 경줍니다.
우리 신앙의 성격을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달려가자. 그런데 그 달음질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는 경주하는 사람이고 이 경주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라는 말은 참을 수 있을 때 참고, 견딜 수 있을 때 견디고, 계속할 수 있을 때 계속하는 것은 인내가 아닙니다 그거는. 참을 수 없을 때 참아야 되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되고, 계속하기 어려운 때 계속해야 그게 인냅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것은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다보면, 경주하다 보면, 수많은 어려움이 있고 참기 어렵고 힘들고 견디기 어렵고 계속하기 어려울 그런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참고 견디고 계속해야 그걸 가리켜서 인내라. 신앙의 걸음은 이러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길이라. 그럼 우리 앞에 당한 경주라는 것은 뭘 말하는 것인가? 우리라는 말은 우리 앞에 당한 경주라 말은 경주는 다 각각 자기 경주를 자기가 하는 겁니다.
이 경주는 자기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자기가 이루어가야 될 자기 구원. 자기가 힘 쓸 자기 신앙. 남편이 힘쓸 것, 아내가 힘쓸 것, 부모가 힘쓸 것, 자녀가 힘쓸 것, 자기가 힘 쓸 그 신앙이 자기 경준데, 이걸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라는 것은 공적이다 그 말이지요. 서로 같다는 의밉니다. 하나가 아니고 다 같다는 뜻이니까. 성격은 달려가기는 각자 달려가나 그 달려가는 신앙의 성격은 전부다 같은 것이라. 신앙생활이라 그말이지요. 믿는 사람의 자기 신앙. 자기 현실에서 자기 위치에서 힘쓸 신앙생활. 자기가 자기 말씀 지키는 믿음 생활. 자기 현실에서 빛 생활. 이것이 믿는 사람의 경줍니다. 말하자면은 학생들이면 나는 학생이니까 열심히 공부하자. 나는 아들 딸 자녀니까 열심히 효도하자. 또 친구끼리는 사이좋게 지내며 덕을 끼치자 빛이 되자. 나는 직장생활하는 사람이니 직장에서 믿음의 덕을 끼치자. 나는 가정주부니까 가정주부로서 내 할 일 하자. 자기 주어진 그 직분 위치 거기서 말씀대로 사는 그 생활을 열심히 하는 걸 가리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라. 다 각각 그리 모든 믿는 사람이 다 그리 살아야 되는 걸 우리라 그랬고 그게 달리기 경줍니다. 그래 경주하는 그 경주의 걸림돌이 뭐냐. 무거운 것을 벗어버려야 되고 죄를 끊어버려야. 짐을 지고 달릴 수 없고 달리기 어렵고, 매여 있으면 아무리 달려가고 싶어도 못 달려가니까 그래서 마귀라는 놈이 믿는 사람이 경주를 경주하지 못하게 무거운 짐을 욕심으로 지워놓고 죄를 짓게 만들어가지고 얽어매서 믿는 사람이 경주하지 못하게 하고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게 만드는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얽매이는 죄를 짓게 만드는게 마귀 수법입니다. 이걸 벗어버려야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성령의 소욕이 아닌 사욕을 다 떨쳐버려야 자기 경주를 경주할 수 있고 죄를 끊어버려야 믿는 사람이 자기 경주를 경주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종류 욕심이든지 욕심을 가지고 죄가 있으면 그 놈에게 눌려가지고.
생산적인 일을 하자 그런 말이 있지요. 이거는 비생산적이다. 그 생각이 납니다. 현대자동차 그러면 노조가 유명하지요. 현대자동차 노조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니까 노사가 분교 생겨가지고 노사가 서로 싸우면 이거는 만고에 손해되는 일입니다. 회사도 손해, 노조도 손해 다 손핸데 그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뭐 다 이게 정답이라고는 모르겠지만은 삼성그룹에는 거의 노조가 없지요 아마? 거기는 대모하기전에 알아서 다 챙겨줘라. 그래서 아예 대모할 사람 없도록 만들어버려라. 그래서 삼성은 이름만 노조지 아예 노조가 없습니다 거기는. 그러니까 세계적인 기업이 되지요. 문제가 안생기고. 시대가 변하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은. 그런데 현대자동차는 노사분교 대모하는 것 때문에 그거 자동차 만들어 팔 그 귀한 시간에 수천억대를 서로 손해보는 겁니다. 비생산적인 그런 짓을 왜하는지.
사람이 믿는 사람이 욕심이 들어있으면 어떤 종류든 욕심이 있으면 죄를 지으면 그때부터 그 욕심에 붙들리고 죄를 끊어버리고 떨어버리기 위해서 그의 모든 생활은 거기 눌려서- 그래서 깨끗하게 살다가 죄 하나 지으면 그 죄 때문에 거기 들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시간과 모든. 그러니까 죄를 짓고 나면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것을 그만큼 못하니까 수없이 손해를 보는 겁니다. 달려가지를 못합니다. 거기 눌려가지고. 이걸 다 끊어버리고 벗어버리자. 안 믿는 사람들은 아예 거기 강제적으로 종이 되니까 못 합니다. 믿는 사람은 대속이 있으니까 이 대속을 힘입어서 벗어버리면 되는데 아무리 벗어버리면 벗어날 수 있지만은 그래도 죄를 짓고 나면 그 죄 그 영양이 우리 생각에, 마음에, 생활에 들어가가지고 우리를 눌려서 믿음으로 달려가는 그런 생활을 그만큼 못하게 만든다 그 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 없는 사람들은 세상으로 달려가도 우리는 천국으로 달려가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해야 되는데 이놈의 욕심과 죄가 들어서 이걸 막으니까 모든 무거운 욕심을 다 벗어버리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끊어버리고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 믿는 사람의 생활입니다.
그러면 그 경주는 어디를 향한 것인가? 온전을 향한 것이고, 주님을 향한 것이고. 온전 향하고 주님 향한 경주를 경주하자. 그 주님이 어떤 분인데? 주님은 믿음의 주고 온전케 하시는 분이다. 믿음이 무엇인데? 순종이다. 순종하면 우리를 다 책임지시는 분이 주님이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에, 주님에게 순종하고 순종하므로 모든 책임을 주님이 다 지실 것이고 우리를 온전케 만들어 주실 것이니까 이걸 목표하고 자기 앞에 당한 현실을 힘껏 달려가자.
근데 그 길에는 인내가 필요한 이유는 주님도, 그 앞에 있는 즐거움 위해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라 그 말은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최종적인 것, 마지막 끝날 부활의 그날 그것을 생각하면서 십자가를 참았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최종 승리했다. 이것처럼 믿는 사람들도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믿음으로 순종으로 계속 달려나가는 요 인내를 가지고 나가면 이것이 믿는 사람의 신앙의 길이고 우리가 달려갈 경주다. 오후에는 이 말씀을 생각을 하고. 오전말씀에 무겁고 얽매이는 죄 이걸 다 벗어버리고, 오후에는 우리 앞에 당한 우리 경주. 우리가 힘 쓸 것. 이걸 달려가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