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6-주후(히12:1-2)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2013-06-17조회 317추천 38
본문: 히12:1-2
제목: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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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30616 주후
히브리서 12:1-2
이러므로 하는 말씀은 잘 아는 대로 연결 접속사라 그래 말하지요. 11장에 모든 내용을 12장으로 이어가는 말씀입니다. 11장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12장으로 이어가면서 제일 머리 첫 번째 이러므로 그 말은 11장에 모든 내용이 있으므로 이러하므로 그 뜻입니다. 11장에 기록된 내용을 크게 말하면 둘로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선진들이 산 생애,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말씀을 기록해 놨습니다.
11장에 기록한 말씀은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의 생애, 믿음으로 살아가므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더 나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세상만 보지 아니하고 죽음 넘어 부활을 소망하고 더 나은 무궁세계, 더 나은 부활의 날을 소망하고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세상 사는 동안에 온갖 어려움을 다 겪은 십자가를 지고 간, 억울한 소리도 많이 듣고 또 욕도 얻어 먹고 매도 맞고 감옥에도 갇히고 거기 보면은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불에 지지기도 하고 가죽을 벗기기도 하고 참 사람이 요즘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그런 온갖 악행을 많은 사람이 믿음 지키기 위해서 많이 당했습니다.
이런 모든 어려움 당한 그 믿음의 선진들, 더 나은 부활을 바라보고 그렇게 산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있으므로 요게 하나고. 또 하나는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살았어도 우리가 아니면 그것이 미완성으로 끝이 나고 완성에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러하므로 그 뜻입니다. 이러므로 그 말은 11장에 기록된 내용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조상들, 믿음의 선진들이 온갖 어려움을 다 겪어도 그 나은 부활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산 이 생활이 있으므로 하나.
또 하나는 그러나 그렇게 악형을 다 당하고 믿음으로 살았을지라도 우리가 아니면 그들의 그 모든 생애가 미완성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러므로. 그 다음 두 번째는 이러므로 이 두 가지가 있으므로 우리에게. 우리라는 말은 여전히 또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첫째 뭘 말했습니까? 우리라는 말은? 오전에 문답에 적어놨습니다. 우리라 우리에게 할 때 우리는 몇 가지 두 가지를 말했는데 첫째 무엇이었던가요? 우리라고 말씀하신 요 우리 속에 담아두신 의미는- 그 우리가 바로 누구냐? 여기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 우리에게.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이러므로 동천교회 교인들에게- 이러므로 오늘 예배 드리고 있는 여기 있는 우리들에게 그 뜻입니다. 우리에게.
그 우리는 첫째는 믿는 사람인데 살아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살아서 살아갈 날이 남아있는 사람들- 먼저 간 구름 같은 간증자들- 이 세상 인생살이를 끝내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 그들을 따라서 우리도 갈 그들의 걸어간 살아간 그 생애를 마찬가지로 걸어갈 우리들. 그런데 걸어간 사람들은 이미 길을 다 갔고 살 날을 다 마쳤고 하나님이 주신 세월을 다 보냈고 기회를 다 썼기 때문에 다시는 변경도, 변동도 또 후회도 소용없고 완전히 다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그러나 아직 우리는 가는 도중이기 때문에, 노중에 있기 때문에, 길을 가는 중에 있으므로 보면서 ‘아 우리 앞서 걸어간 저 사람들 간증자들 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이 잘못됐구나’ 얼른 깨닫고 바로 잡아라 그 뜻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잘못 알고 있었구나 오판했구나 바로 알아라 그 뜻입니다. 착각을 했구나 얼른 바로 깨달아 알아라. 내가 생각하는 생각이 틀렸구나 바로 잡아라. 그래서 주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말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안믿는 사람들도 지혜있는 사람은 먼저 간 사람들 보고 자기 인생길을 돌아보고 방향을 잡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래 봐야 여전히 죄 저주 사망 아래 있는 것이니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지만은 믿는 사람은 다르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그 말은 믿는 우리들인데 우리들 중에서 여기 있는 우리 전부 살아있는 우리들이니까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우리에게 그 뜻입니다.
살아있는 우리들 아직까지 길을 가고 있는 도중에 있는 우리에게 요게 하나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담았습니까? 첫째는 살아갈 날이 남아있는 믿는 우리들에게. 두 번째는요? 우리에게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는? 그냥 설교해도 모르고, 문답지를 줘도 모르고, 입안에 떠먹여줘도 모르고 그러면 어찌되겠습니까? 노래를 불러도 아무 반응 없고, 춤을 춰도 반응 없고 죽은 사람이 되어서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그 뜻은 자 다시 돌아가십시다. 이러므로 거기 담긴 뜻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뭡니까? 11장에 두 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이 있으므로 온갖 악형을 당해도 더 나은 부활을 소망하므로 믿음으로 살아가 끝을 마친 이런 믿음의 조상들이 있으므로.
또 하나는요? 그리해도 그들로만 완성되지 못하므로 우리가 있어야 완성이 되므로 그게 이러므로 라는 뜻의 의밉니다. 이러므로. 그러므로 그래서 두 번째 우리라는 말은 앞에 두 가지와 연결이 되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 말은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 믿는 사람으로써 아직까지 세상 살아갈 세월이 남아있는 우리에게. 또 하나는 믿음으로 살아 온갖 고문 고형 악형을 다 당해도 그래서 믿음으로 살았지만은 그들로서만 완성되지 못하므로 그들의 완성을 이루어갈 그들의 완성인 우리들이기 때문에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11장에 있는 성도들은 탑대고 우리는 뭐라는 뜻입니까? 탑 꼭대기라 그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있어야 구약시대 모든 성도들의 믿음 생애가 완성이 되어진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완성이 되어진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굉장히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라 말은 하나는 이 말씀을 주신 우리 대상- 우리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우리에게 거울로, 길로 주셨다 그런 의미가 있고, 하나는 이걸 가지고 살아갈 우리가 얼마나 귀한 의미 있는 가치 있는 존재냐 그걸 담아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해가 되셨습니까? 이해를 하고 좀 넘어가야 됩니다. 자꾸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구름같이 둘러쌌다 그 말은 많다는 뜻이지요. 그냥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구름이 수많은 물방울로 되어있으니까 구름같이 둘러싼 수도없이 많이 둘러싼 허다한 무수하게 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어서 아는 것을 알리는 사람, 증거하는 사람을 증인이라 그럽니다. 모르는 것은 증거할 수 없지요.
자기가 봄으로 들으므로 아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을 증인이라 그러는데,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이 어디 있는가- 한 말로 말하면 육천년 역사세계에 이 세상에 왔다가 살고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 전부다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세워주시는 증인입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우리에게 무얼 알리는가? 그들이 말을 해서가 아니고 그들의 말도 있고 모든 것이 있지만은 말을 해서가 아니고 그들의 무엇이 알려줍니까? 육천년 역사에 우리보다 먼저 세상에 왔다가 살고 세상을 떠나간 수억억억억억억만명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줍니까? 무엇으로 알려줍니까? 우리에게 알려주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으로 말을 합니까? 아벨의 피는 지금도 말하고 일하느니라. 그럼 가인은 말하지 않습니까? 아벨도 말하고 가인도 말합니다. 그들의 무엇이 알려준다고요? 무엇이 알려준다고요?
(좀 일으켜 세울까요 학생들? 000. 꼭 집어요 옆에서. 00이도 꼭 집고. 여름이 돼서 덥기도 덥겠지만은 젊은 사람들이.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데. 관심을 안 쓸라 그래도 아예 자버리니까. 말씀을 안 들으면 죽어요 학생들이. 말씀을 들어야 살지)
오전에 요약지를 줘서 다 적었습니다 학생들이. 적어서 알건데. 구름같은 간증자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방법이 몇 가지였습니까? 몇 가지요? 두 가지랍니다. 첫째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생애입니다. 그들의 생애. 생애가 뭡니까? 살아간 그들의 일생의 평생 산 생애. 생활 생애. 또 하나는요? 이루어진 결과. 이 두 가지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가- 종류를 따져보면 세상을 살고 간 사람의 종류를 여러 각도로 나눌 수 있는데 나눠보면 크게 나누면 넓게 나누면, 하나는 예수 믿고 간 사람 또 하나는요? 안 믿고 간사람.
그러면 예수 믿었던 안 믿었던 두고 또 다른 각도로 한번 살펴 보십시다. 이 세상에 왔다간 사람을 나눠보면 크게 하나는 이 세상에 왔다가 잘 살고 간 사람 또 하나는요? 잘 못 살고 간 사람. 두 종류가 있겠습니다. 잘 살고 가다니 무슨 말인가? 자기대로는 잘 살았다 그 말이죠. 그 사람의 실력이 어떠함을 떠나서, 또 그 사람의 다른 걸 떠나서 잘 살았다 그 말은, 자기대로는 세상에 와서 열심히 살았다 그 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 벌고, 열심히 일하고 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해서 우등상도 받아보고 반장도 되보고 회장도 되보고 그리 되보고 칭찬도 받아보고 또 결혼해서 결혼하고 나니까 아내도 사랑하고 남편도 사랑하고 자녀도 뜨겁게 사랑해서 가정을 아주 잘 보살펴서 모든 사람이 ‘ 아 참. 저 집의 가장은 참 알뜰하다. 가정을 참 잘 보살핀다. 가정적으로 존경할 만하다. 저 아내 저 가정 주부는 참 가정을 잘 보살핀다. 참 잘 산다.‘ 그래서 가정 가진 사람들이 다 마음속에 존경하고 부러워할만큼 그렇게 살고 회사에 가면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회사에 사장도, 상사도 또 밑에 사람도 다 동급에 있는 사람들은 속에 시기 날 만큼 그렇게 열정적으로 부지런히 세상을 살아서 남보다 더 빨리 출세하고 자리도 잡고. 그러다 보니까 경제적으로 기반을 잘 닦아서 젊은 나이에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또 저축도 해놓고 부동산도 사놓고 노후대비도 다 해놔놓고 알뜰하게 잘 사는.
그 중에는 잘 산 사람 더 잘 산 사람 더 더 잘 산사람 더 더 더 잘 산 사람. 돈도 많고 명예도 있고 권력도 있고 덕도 있고 존경도 받고 건강도 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 면으로 다 뛰어나게 남다르게 잘 그래 산 사람. 그 안에 청언에 들어가면 많은 청어리가 있겠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말해서 모든 인생을 통들어서 이 세상을 살고 간 과정을 말한다면 한 종류는 어떤 사람이라고요? 세상을 잘 살고 간 사람.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친 사람. 실력있는 사람, 남 부럽지 않게 산 사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산 사람, 안 믿는 사람 다 포함해서입니다. 그래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산 사람이 유명한 사람 종류가 많이 있겠지요-
우리 나라로 말하면, 우리 나라에서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누굽니까? 하니까 인터넷에 쳐보니까 두 사람이 주로 많이 뜨데요. 누가 뜨겠습니까? 한 사람은 한글 만든 세종대왕 또 한 사람은 나라 지킨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이 주로 많이 뜹디다.
근데 그렇게 세종대왕처럼, 이순신장군처럼 그렇게 나라를 그렇게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나라를 지키고 자기 받쳐 지킨 성훈이 되어서 오천만 민족 수백년 동안 존경 받는 그런 인물들. 그런 사람들은 잘 살고 간 그런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으로 나가면 또 그런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겠습니다.
어쨌든 세상에 잘 살고 간 그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나 이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뭐라고요?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중에 대표적인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생애가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아 저렇게 사니까 모두 존경받고 그리되는구나. 저리 사니까 살 때는 어렵지만은 존경받는구나.’ 그런데 믿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세종대왕이 저렇게 존경받고 그리 되었는데, 생각해야 될 것이 설교를 하려 하다 보니까 아닌 것을 억지로 맞춰서 합리화를 시키는 그런 면이 있지 않는가.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는 어쨌든 그 설교 논리에 맞춰가지고 세상 모든 인생사나 도리를 끼워 맞춰서 합리화를 시키지 않는가 그리 생각되기 쉬운데 합리화인지 사실인지를 따져서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됩니다. 합리화 시킨 것이면 반론을 제기해야 됩니다.
세종대왕이 그렇게 잘 살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래 존경받는 사람도 마지막에 끝에 가니까 죽을 때는 그도 별 수 없이 그냥 죽었겠고 이순신 장군도 그래 죽었겠고. 죽었는데 죽음이야 다 그렇다 치고 그러면 믿는 사람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존경 받지만은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그들이 그렇게 추앙받는 그런 사람들인데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 지금 어디가 있을까? 나라를 그렇게 한글도 만들고 발전시키고 그래논 세종대왕이 죽어서 지금은 어디가 있을까? 어디가 있습니까 지금?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지금? 그 당시 임진왜란 그 당시에 우리나라도 복음이 전파가 직접 간적으로 되있었거든요? 일본에는 그때 벌써 천주교라도 믿는 사람 있었고.
그랬는데 그 분들이 택잔지 불택잔지 모르겠지만은 믿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 보니까 불택자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은 홍포 입은 부자같이 물 한 방울의 자유도 없는 음부에 가 있겠고 마지막에는 지옥에 가겠고. 이래 말하면 나라가 전체 들썩들썩 할 수 있겠지요. 막 들끓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세종대왕이 지옥 가다니. 이순신 장군이 지옥 가다니. 그런 기독교는 안 믿겠다.’ ‘믿지 마라 그러면 너는.’ 그런 기독교 안 믿으면 그건 못 믿는 거지요. 성경이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살아도 마지막은 죽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안 믿으면 지옥 가는구나. 이게 증거로 보여주는 겁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존경 받아도 안 믿으면 지옥 가는구나.
또 가정을 알뜰하게 잘 살펴서 칠십 년, 팔십 년을 살았는데 칠팔십 년을 살면서 아주 야무지게 자기 할 책임과 의무를 다 감당을 하고 똑똑하게 살고 야물게 살아서 알뜰하게 가정도 이루고 그래 살았는데 마지막에 세상 떠날 때 보니까 그도 별 수 없이 이 세상 다 떠나는데.
지난 주간에 어제 우리 교회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번 장례식 때 입관 예배 때도, 출상 예배 때도, 하관 예배 때도 제가 중점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그 말이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까 구름같은 간증자들 중에 한 분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정하신바라서 죄지은 인생에게 정하신 것이라서 아무나 항거나 피하지 못합니다. 다 가야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고 죽음에는 순서가 없는 겁니다. 뭐도 순서가 있다 그러는데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먼저 왔다고 반드시 먼저 가는 것 아닙니다. 늦게 왔다고 꼭 늦게 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가야 됩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살고 간 그분이 세상을 살고 갔는데 작년 집회를 참석하셨고 또 심방갈 때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아멘하고 화답했으니까 택자가 분명하고 낙원에 가 계실 겁니다. 그런데 82년을 살면서 예수 믿은 것은 작년 집회 참석하셨고 그랬으니까 건설구원은 안타깝지만은 별로 많이 없겠습니다. 그 분이 지금 낙원에서 살아있는 여기 말씀한 우리에게- 이러므로 우리에게- 우리 속에 있는 그 분의 자녀들 가족들 또 우리 모든 교인들에게 말하자면 지금 말하면 휴대폰이 있어서 낙원에서 지상으로 통화가 된다면, 또 그 분이 전할 방법이 있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을까? 살아생전에 부지런히 자식들 공부시켜라, 부지런히 돈 모아라, 알뜰하게 살아가지고 출세해라, 이 세상에서 어쨌든 이름을 날려라. 그런 것을 하고 싶을까.
음부에 간 홍포 입은 부자가 음부에 가서 물 한 방울의 자유도 없는 고통 중에서 그 고통 중에 있으면서 아브람에게 부르짖은 소원은 우리 형제 몇이 있었다고요? 홍포 입은 부자에게 남아있는 형제가 몇 입니까? 재미가 없어요 이러면. 남아있는 형제가 몇 입니까? 다섯입니다. 내 형제 다섯이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살아있으니까 여기 12장에 누굽니까? 살아있으니 누굽니까 여기? 우립니다 우리. 살아있으니 우리에게 우립니다. 내 형제 다섯이 살아있으니까 나사로를 그들에게 보내서 그들이 나사로를 아니까 그들에게 부자가 되라 하십시오 그랬습니까? 가정을 알뜰하게 살피라 그러십쇼 그랬습니까? 오래 살도록 부지런히 장수하라 그랬습니까? 세상에서 이름 날리라 그랬습니까? 권력을 취하라 그랬습니까?
그들에게 보내어 뭐하라 그랬습니까? 그들은 나처럼 이런 곳에 오지 않도록 해주옵소서. 말하자면은 그들은 믿음으로 살지 믿음 떠나 살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렇게 그 부자는 간곡하게 아브라함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안되는 일이니까, 안되는 일이니까 이루지는 못했지만은 그의 소원은 그랬습니다.
먼저 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먼저 간 우리 신앙의 선진들, 우리 조상들이, 본인들이 잘 믿었든 못 믿었든 낙원에 가서 보니까 세상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그때는 보입니다. 보이니까 알게 됩니다. ‘아 인생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인생이 인생이 전부가 아니였구나. 인생만이 전부가 아니고 사람만이 전부가 아니라. 인생에게 주인이 있었구나. 사람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였구나. 사람의 주인이 하나님이였구나.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살아계셨구나.’ 세상에서는 몰랐습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천국 가십시다.’ ‘당신이나 믿으십시오. 나는 천국보다 돈이 더 좋습니다.’ ‘자네나 잘 믿게. 나는 천국보다 내 가정이 더 좋네.’ 그렇게 모두 비웃고 조롱하고 강퍅하게 큰소리치던 그 모든 사람들이 세상 떠나서 돌아올 길을 가서 보니까 그때 가서 보니까 하나님 살아계심이 보였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그때 가서 봤습니다. 다 보고 나서 알고 나니까 인생이란 것이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사는게 아니었구나. 그때 가서 돌이켜봐도 이미 돌아갈 수 없으니까 본인들은 못하니 할 수 없이 나는 안되지만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해주옵소서.
홍포 입은 부자가 아브람에게 소원했던 그 전하고 싶었던 그 전달의 그 말을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세상 떠난 우리 조상들에게서 들어야됩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낙원에 있으면 나에게 저 말 할거다. 우리 할머니, 아버지가 낙원에 있으면 바로 저 말이 나에게 할 말이다. 나와 관련된 내 주변 사람이 나보다 먼저 갔는데 그 분이 지금 낙원에서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 말이다 알아야 됩니다. 무엇을 전하고 싶을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아라. 인생에게 한번 정해진 죽음이 있고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알아라. 모릅니까? 우리가 하나님 살아계심을 모릅니까? 인생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 모릅니까? 세 살 먹는 아이도 압니다. 다 압니다. 죽음 너머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주일학생도 압니다. 알지만은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니까 이걸 염두해두고 살지를 못합니다.
구름 같은 간증자들, 이 세상을 왔다가 먼저 살았는데 세상에서 잘 살았습니다. 세종대왕도 잘 살았는데 그도 마지막에는 죽는구나. ‘아 인생은 죽는 것이로구나. 왕도 죽는구나. 장군도 죽는구나. 죽고 나니까 무덤에 묻히고 그러고 나니까 살아생전 이름은 있고 존경받고 그래봐야 본인에게는 그게 무슨 이 세상에서 존경하는 그 존경이 죽어 땅 속에 뭍혀 있는 흙이 된 그 사람에게 존경이 갈 것인가? 천국과 연결된 것이면 모를지라도. 저리 되는 저것이 인생이로구나’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알뜰살뜰 부지런히 살았지만은 마지막에 예수 믿는 생활하지 않았으니까 불쌍하구나. 믿은 것이 없으니까 안타깝구나. 구름 같은 간증자들의 보여주는 간증입니다. 그래서 잘 살아도 죽는구나. 잘나도 죽는구나. 장군도 죽는구나. 왕도 죽는구나. 죽고 나면은 모든게 다 끝이나 세상에서 해놓은것이 다 허무하게 그렇게 되어지겠구나.
못 사는 사람 있습니다. 아주 형편 없이 못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도 역시 저렇게 죽는구나. 그러니까 죽고 나니까 그래 말하는 사람이 있지요.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이 조금도 변동 없고 영향 없이 돌아간다는 그 사실이 분해서 못 견디겠다. 죽고 싶다가 죽을라 그라다가 내가 죽고나서도 세상은 조금도 영향 받지 아니하고 그대로 굴러가고 돌아갈 거니까 억울해서 못 죽겠다. 죽는 것보다 억울해서라도 그래서라도 안 죽는게 낫겠습니다. 잘나도 죽고 못나도 죽는데 마지막 죽는 모습 보니까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다 거기서 거기로구나.
창세기 5장에 보면 에녹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태어나서 나서 몇 살에 결혼해서 자녀 낳고 몇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 그게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 속에 므두셀라같이 969년을 살았지만은 그도 역시 나가지고 몇 살에 결혼해서 얼마까지 자녀 낳고 살다가 몇 살이 되어 죽었다. 인생의 모든 마지막 결론은 다 그리 되어진다는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 에녹이라는 사람은 그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과 동행을 했다. 다른 사람은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 구름 같은 간증자들입니다.
그래 우리 앞에서 다 살다가 그리 간 겁니다. 그리 간 사람들을 보고 뒤에 따라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될 것인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자연계시를 포함해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이 성경은, 신구약 66권 이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뭡니까? 성경을 왜 주셨습니까? 성경은 특별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뭘까? 간단합니다 쉽습니다. 왜 주셨습니까? 성경을 주신 목적은 자 쉽게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읽어라고. 성경 읽어라고 주신 겁니다. 성경 보라고. 아닙니까?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 특별계시를 우리에게 장식으로 쓰라고 주신 것 아닙니다. 이 성경을 읽어보라고 주신 겁니다. 창세기도 출애굽기도 레위기도 요한계시록도 성경을 너희들에게 줬으니까 읽어봐라. 읽어서 뭐합니까? 읽어보고 내용을 알아라. 읽어서 내용을 알아라고 성경을 주신 겁니다. 우리에게 양심을 왜 주셨습니까? 그 양심이 마음에 자기 몸에 전신에 빛이 되어서 그 양심을 맑고 밝고 치우침 없는 깨끗한 그런 양심 신앙양심을 만들어서 말씀에 지배받는 양심을 만들어서, 그 양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에 영의 감화감동을 받으라고 그래서 양심을 만들어 넣어주신 겁니다.
마찬가지로 자연계시를 왜 주셨는가?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 그랬습니다. 길을 가다가 뭘 봐도. 이 말씀을 가지고 영락공원에 가서 보니까 생각나는게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그 영락공원에 평수가 아마 수만평은 넘겠지요. 굉장히 넓습니다. 그 산 그 큰 산 전부다가 묘지니까. 또 거기말고 납골당에 가면 또 그 얼마나 많겠습니까. 수만명 수십만명이 될런지. 적어도 수만명은 넘겠지요. 수만명이 넘는데 그 넓은 산 전부다가 묘진데, 묘지고 납골당이 전부인데 전부 살았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중국에 등소평이란 사람이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젊은 사람들이 대모하니까 탱크로 가지고 밀어붙이면서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은 한 말이 그랬다하지요. “십억 인구 중에서 백만 명은 적은 숫자다.” 백만명 죽어도 괜찮으니까 밀어 붙여라 그 뜻입니다. 지금 중국 사람들이 등소평 욕 합니까 존경 합니까?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일껄요? 독재자인데도. 그렇게 했는데도. 십억 인구 중에서 백만 명은 적은 숫자다 그래 말했다더니. 참 우리 나라 인구는 오천만 명인데, 오천만 명 인구 중에서 죽어도 죽어도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넓은 공동묘지, 그 많은 납골당이 꽉 차고 차고 차서 또 다른 데 짓고 또 얼마 안가 또 차겠지요. 전부 다 그 사람들이 전부다 이 세상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고 우리에게 증인들인데 저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이 세상 살고간 사람들의 종류는 별의 별 종류가 많을 것이고 저 많은 무덤들이 전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얼마나 많은 슬픔을 남은 사람들에게 줬을까? 비통을 줬을까?
구름 같은 간증자들입니다. 증인들입니다. 어쨌든 세상에 와서 인생이 났으면 잘 살아도 마지막 결론은 가는 거고 잘 못살아도 가는 겁니다. 똑똑해도 가는 거고 어리석어도 가는 겁니다. 잘나도 못나도 마지막 결과는 가는 겁니다. 그걸 보면서 ‘아 인생이란 것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고 가는 것이로구나. 마지막 죽음이란 것이 있는게 인생이고 그곳을 향해서 가는 것이 인생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아라 그 말입니다. 그것을 알아라.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그래 살아가지고 죽고 난 다음에 이름 남으니까 위대한 그런 위인들 보면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들처럼 살려고 안 믿는 사람들은 그래 노력하는게 당연하겠지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인생의 근본을 알고 성경을 아는 우리들이 볼 때는 나 가지고 마지막에 모든 사람들이 다 갔는데 간 사람들의 그 마지막 과정이 어떠했는데 그 모든 살아간 과정이 어떠했던지간에 마지막 결론은 죽었고 죽으면 그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었기 때문에 어떻게 큰 성공과 결실을 맺었을지라도 마지막 결론은 그들 전부다 지옥에 갔겠구나 참 허무하겠다 불쌍하다 결론이 그리 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믿기는 믿었는데 평생을 믿음의 조상 선진들처럼 자기 생활 전부 다 받쳐서 아브라함처럼, 사도바울처럼, 다윗처럼 그렇게 모든 거 하나하나 전부다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믿음으로 산 그런 조상들도 마지막 떠났는데 그들이 세상을 살고 떠날 때 마음이 어떠했을까- 다윗이 죽을 때 솔로몬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나도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나도 가는데, 남은 너는 살아 남아 있을거니까 (여기 우리니까) 너는 세상을 살아갈 때 내가 하나님 아버지 모시고 살았듯이 너도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계명을 지켜 살면 너의 앞날이 형통할 것이고, 네가 하나님을 떠나버리면 너는 비참하게 되어질 것이다.” 유언을 그렇게 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믿음으로 사니까 믿음으로 살아서 마지막 세상 떠날 때 보니까 그들의 생애는 과거를 돌아볼 때 참 하나님 아버지 은혜에 감사하다 내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말씀을 몰랐다면, 내 산 생애가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고 이 세상 욕심 내고 내 욕심 내 주장 내 취미 내 고집 나 좋아하는대로 평생을 살아왔다면 이래 살아도 저래 살아도 오늘 마지막은 맞이했을건데 내 과거 생애를 돌아보니까 사도바울처럼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으니까 참 그 말 할 때 그 유언할 때 사도바울이 얼마나 참 마음속에 감사가 넘쳤을까- 얼마나 기쁨이 넘쳤을까- 얼마나 소망이 넘쳤을까.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왔는데 걸어온 그 과정 과정 돌아보니까 마치 석류 한 쪽에 가득찬 알알이 박혀있는 석류 한 쪽처럼. 순간순간 하루하루 시간시간 분초 사건사건 말 한마디 한마디 눈동자 돌리는 것 하나하나까지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 구석구석 하나하나까지 전부 세밀하게 세마포 옷의 베를 짜듯이 그렇게 세밀하게 아무렇게나 살지 아니하고 구별하고 따져보고 자기를 부인하고 꺾고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인간구원을 생각해서 옳고 그른 걸 따져가지고 바르게만 바르게만 그래 산다고 수많은 세월 수많은 눈물, 수많은 고난 역경 온갖 억울한 누명 다 당하고 살았는데 그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다 지나고나서 끝에 가서 마지막에 그 생활을 다 돌아보니까 “참 다행이다” 얼마나 감사했을지 얼마나 기뻤을지 얼마나 소망이 넘쳤을지 우리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살아보면 어느정도 냄새는 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세계에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 산 분들은 참 부럽고 믿기는 믿었는데 믿는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성경은 들고 다녔고, 예수는 믿었는데 마지막에 인생살이 다 살고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 다 가야 됩니다. 마지막 가야되는데. 그날에 가서 끝에 가서 되돌아갈 수 없는 마지막 낭떨어지 그 지점. 이제는 한 발짝 내 딛으면 떨어져서 회복 못하는데 그 마지막 돌아가지 못할 거기 딱 서서 내가 걸어온 생활을 돌아볼 때. 거기서면 대개 다 보인답니다. 죽음 직전에 딱 가면 사람이 믿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다 보인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죽음 직전에 가면은 지옥에 고통이 보이니까 그렇게 두려워한답니다 죽음을. 살아생전 안 보이던 것이 죽음의 문턱에 딱 서면 그게 느껴지고 보인답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이 보이겠지요. 그러면서도 하나님 심판이 생각날거니까. 아는 사람일수록 더하겠지요. 돌아보니까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다 와서 과거를 돌아보니까 내가 수십년 세월을 살았는데 말씀으로 산 것이 얼마나 되냐 말씀 때문에 내가 내 고집을 꺾고 손해 본 것이 무엇이 있나 희생 당한 것이 무엇이 있나 참은 것이 무엇이 있나 어려운 중에서 계명 지킨것이 무엇이 있나 이걸 돌아보니까 너무도 허무한 것이 많으니까 기가 찰 겁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저는 그렇습니다.
저는 죽을까싶어 겁납니다. 왜?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살았다 잘 살았다 싶은 그런게 너무 허무해서, 죄송한 것이 너무 많아 가지고. 이런 거 다 정리하고 가야되겠는데 말처럼 참 쉽지 않습니다. 몸에 익어있고 마음에 익어있고 살아오면서 꽉 껴있으니까.
이런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의 생애가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보면 다 그리 될 건데 그런 걸 보면서 우리가 직접 연관되지 않아도, 또 직접 연관되면 더 그렇겠습니다. 보면서 내가 살아갈 내 인생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인생이란 것이 이러하니까 인생을 살아갈 내 생활은 어떻게 되어야 되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과거는 어떠했으며, 현재 모습은 어떠하며, 이러니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는가. 이걸 바로 잡는 것이 구름 같은 간증자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겁니다.
이리 알고 그래서 이런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세상을 보면서 자연계시로 보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성경 특별계시를 많이 읽고 연구해서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들,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때가 가까움이라. 자연계시 수많은 모든 것들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리 되어 있으니까 그들은 이미 끝났으니까 돌아갈 수 없는데, 살아갈 날이 남아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래되어있으니 우리는 이제는 두 가지는 벗어버리자. 하나는 모든 무거운 것. 무거운 것이 무엇입니까? 왜 무겁습니까? 무거운 이유는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기 때문에 무겁습니다. 아무리 힘 있는 사람이라도 그 힘에 부치는 것을 지면 무거운 것이고 어린 아이라도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짐을 지면 기쁘게 가볍게 가뿐하게 지고 가는 겁니다. 인생이, 짐이란 것은 눌리는 것인데- 마음이 눌리는 것, 생각이 눌리는 것, 정신이 눌리는 것, 생활이 눌리는 것, 부담스럽고 짐 되고 고통스러운 게 전부 다 눌리는 건데 그 눌리는 모든 것들이 왜 생기느냐 어디서 나오느냐? 오전에 말씀을 드렸지만은, 사람과 사람을 상대할 때, 어떤 자기 맡은 일을 감당할 때 거기서 자기 속에 어떤 종류의 욕심이던지 욕심이 들어있고 그게 나오면 모든 것은 다 짐이 되고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잘 해야 되겠다는 그 마음이, 잘 해야 되겠다는 마음까지는 좋지만은 그게 넘어가서 잘 해야 되겠다는 그 마음이 잘 하므로 실수하면 어쩔까?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그런데 ‘실수하면 어쩌지?’ 거기 눌리면 더 큰 실수가 나오지요. 그러면 눌리는 겁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실수 안하도록 노력하고 조심을 하지만은 실수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안해야 되겠지만은. 그런데 그것이 자기 범위를 벗어나는 짐이 되면 그 속에 들어가보면 욕심이라는 겁니다. 내가 실수하면 안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을건데. 욕 먹을 건데. 안 먹는게 좋지만은 넘어가면 안된다 그 뜻입니다.
예를 들자면 고거 하나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부 잘하면-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기 자녀들의 실력을 다 알지 못하고 전부다 일등 할 줄 알고 우리 자녀가 일등 못해도 삼등은 할건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들 딸들에게 그걸 내색을 하면 그때부터 10등 하는 아이가 3등 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짐이고 눌려서 짐이고 죽을 만큼 고통입니다. 부모님이 들어서 자식들을 잔뜩 짐을 지워서 질 수 없는 짐을 지어놓는 겁니다. 왜 그리 짐을 지우는 겁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머리가 나쁘니까 너도 그렇겠지 뭐. 10등이면 얼마나 잘한 것이냐 더 잘하면 좋겠지만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해라. 그런데 뭐는 하지 말아라? 게으름은 부리지 말아라. 농땡이치고 노라리해서 게으른 것이 몸에 베면 공부뿐이 아니고 너 평생에 고난이 고통이니까 게으르지 말고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면 된다. 그러면 30명 중에 30등 해도 괜찮다. 잘하면 좋겠지만은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느냐. 열심히 해라 놀지는 말고. 또 놀때는 놀지만은 지나치지 말고. 그래놓으면 즐겁게 공부할 건데 부모 욕심이 들어서 자식들을 잔뜩 짐을 지워놓고 고통을 주는 겁니다. 그것도 전부다 짐입니다. 예를 들자면.
무거운 짐은 전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모든 짐은 전부 자기 사욕에서 나옵니다. 욕심에서. 욕심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짐입니다. 죄는 얽매이는 성격이 있습니다. 지을수록 더 자꾸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게 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이 산 그 생애를 보고 그렇게 살아도 우리들이 아니면 완성이 안되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우리가 보면서 인생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될지를 답을 찾아가지고 힘쓸 것은 현실에 힘쓸 것은 무거운 것은 다 벗어버리라.
하나님이 주신 욕심 아닌 것은 다 벗어버리고 방향을 바꾸고 근본을 바꾸고 죄를 다 끊어버리고 벗어버리고 그 다음 힘쓸 것은 인내로써 인내로 경주해라. 내게 주신 현실. 내 현실 거기서 내게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뜻을 찾아서 믿음으로 사는 게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겁니다. 내 범위 벗어나라 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고등학교 수학을 풀어라 예를 들면 그러지 않습니다. 오늘 믿은 사람에게 짐사처럼 되라 장로처럼 되라 그러지 않습니다. 주일학교 중간반 학생들에게 장로님처럼 되라 그러지 않습니다. 너 중간반 학생이냐? 내 나이에서 너의 신앙 정도에서 네가 지킬 믿음이 있다. 가정에서 지킬 믿음, 학교에서 지킬 믿음, 네가 해야 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네 나이에서 지킬 말씀이 있으니까 그 말씀을 지켜라. 그 말씀을 지키는데도 너로써는 어려우니까.
2리터짜리 물병, 물 2리터 페트병 하나, 2리터쯤 되죠 1.8 2리텁니다. 그거 들면 00이 무거워요 가벼워요? 콜라병 하나? 00이가 들면 무거울까 가벼울까? 별로 안 무겁겠지? 무거울까? 그러면 우리 저 00이 형님이 들면 무거울까 가벼울까? 페트병 하나? 무거워요 가벼워요? 안 무겁죠? 달랑 들지요? 그런데 그것을 00이가 들면 어떨까? 한 짐이 되겠지요 무겁겠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이 있어서 그래서 그 어린 아이는, 중간반 학생은 중간반 학생, 주일 학생은 주일학생, 그 나잇대에, 그 깨달음 그때, 거기 맞는 말씀이 있는데 그거라도 지킬라 그러면 어렵다 그 말입니다. 그것도 지키려면 인내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인내로써 각자 자기 앞에 주어진 그 말씀을 지키며, 경주하며, 그리고 소망은 믿음의 주. 믿음으로 구주가 되시고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 소망으로 삼고 그 예수님의 승리하신 십자가를 우리 방편으로 삼아서 이리 힘써 나아가자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전체적인 것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보자. 그리고 그 증인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들의 남을 때를 어떻게 어디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잡자 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드린 겁니다. 무엇이 가치인가. 무엇이 허무한 것인가. 우리 먼저 살아간 그들의 생활을 보고 살아갈 우리들의 걸음을 바로 걸어가자 하는 겁니다.
제목: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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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30616 주후
히브리서 12:1-2
이러므로 하는 말씀은 잘 아는 대로 연결 접속사라 그래 말하지요. 11장에 모든 내용을 12장으로 이어가는 말씀입니다. 11장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12장으로 이어가면서 제일 머리 첫 번째 이러므로 그 말은 11장에 모든 내용이 있으므로 이러하므로 그 뜻입니다. 11장에 기록된 내용을 크게 말하면 둘로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의 선진들이 산 생애,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말씀을 기록해 놨습니다.
11장에 기록한 말씀은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의 생애, 믿음으로 살아가므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더 나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세상만 보지 아니하고 죽음 넘어 부활을 소망하고 더 나은 무궁세계, 더 나은 부활의 날을 소망하고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세상 사는 동안에 온갖 어려움을 다 겪은 십자가를 지고 간, 억울한 소리도 많이 듣고 또 욕도 얻어 먹고 매도 맞고 감옥에도 갇히고 거기 보면은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불에 지지기도 하고 가죽을 벗기기도 하고 참 사람이 요즘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그런 온갖 악행을 많은 사람이 믿음 지키기 위해서 많이 당했습니다.
이런 모든 어려움 당한 그 믿음의 선진들, 더 나은 부활을 바라보고 그렇게 산 이런 믿음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있으므로 요게 하나고. 또 하나는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살았어도 우리가 아니면 그것이 미완성으로 끝이 나고 완성에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러하므로 그 뜻입니다. 이러므로 그 말은 11장에 기록된 내용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믿음의 조상들, 믿음의 선진들이 온갖 어려움을 다 겪어도 그 나은 부활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산 이 생활이 있으므로 하나.
또 하나는 그러나 그렇게 악형을 다 당하고 믿음으로 살았을지라도 우리가 아니면 그들의 그 모든 생애가 미완성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러므로. 그 다음 두 번째는 이러므로 이 두 가지가 있으므로 우리에게. 우리라는 말은 여전히 또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첫째 뭘 말했습니까? 우리라는 말은? 오전에 문답에 적어놨습니다. 우리라 우리에게 할 때 우리는 몇 가지 두 가지를 말했는데 첫째 무엇이었던가요? 우리라고 말씀하신 요 우리 속에 담아두신 의미는- 그 우리가 바로 누구냐? 여기 있는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 우리에게.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이러므로 동천교회 교인들에게- 이러므로 오늘 예배 드리고 있는 여기 있는 우리들에게 그 뜻입니다. 우리에게.
그 우리는 첫째는 믿는 사람인데 살아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살아서 살아갈 날이 남아있는 사람들- 먼저 간 구름 같은 간증자들- 이 세상 인생살이를 끝내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 그들을 따라서 우리도 갈 그들의 걸어간 살아간 그 생애를 마찬가지로 걸어갈 우리들. 그런데 걸어간 사람들은 이미 길을 다 갔고 살 날을 다 마쳤고 하나님이 주신 세월을 다 보냈고 기회를 다 썼기 때문에 다시는 변경도, 변동도 또 후회도 소용없고 완전히 다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그러나 아직 우리는 가는 도중이기 때문에, 노중에 있기 때문에, 길을 가는 중에 있으므로 보면서 ‘아 우리 앞서 걸어간 저 사람들 간증자들 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이 잘못됐구나’ 얼른 깨닫고 바로 잡아라 그 뜻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잘못 알고 있었구나 오판했구나 바로 알아라 그 뜻입니다. 착각을 했구나 얼른 바로 깨달아 알아라. 내가 생각하는 생각이 틀렸구나 바로 잡아라. 그래서 주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말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안믿는 사람들도 지혜있는 사람은 먼저 간 사람들 보고 자기 인생길을 돌아보고 방향을 잡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그래 봐야 여전히 죄 저주 사망 아래 있는 것이니까 그래봐야 거기서 거기지만은 믿는 사람은 다르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그 말은 믿는 우리들인데 우리들 중에서 여기 있는 우리 전부 살아있는 우리들이니까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우리에게 그 뜻입니다.
살아있는 우리들 아직까지 길을 가고 있는 도중에 있는 우리에게 요게 하나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담았습니까? 첫째는 살아갈 날이 남아있는 믿는 우리들에게. 두 번째는요? 우리에게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는? 그냥 설교해도 모르고, 문답지를 줘도 모르고, 입안에 떠먹여줘도 모르고 그러면 어찌되겠습니까? 노래를 불러도 아무 반응 없고, 춤을 춰도 반응 없고 죽은 사람이 되어서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그 뜻은 자 다시 돌아가십시다. 이러므로 거기 담긴 뜻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뭡니까? 11장에 두 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이 있으므로 온갖 악형을 당해도 더 나은 부활을 소망하므로 믿음으로 살아가 끝을 마친 이런 믿음의 조상들이 있으므로.
또 하나는요? 그리해도 그들로만 완성되지 못하므로 우리가 있어야 완성이 되므로 그게 이러므로 라는 뜻의 의밉니다. 이러므로. 그러므로 그래서 두 번째 우리라는 말은 앞에 두 가지와 연결이 되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그 말은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 믿는 사람으로써 아직까지 세상 살아갈 세월이 남아있는 우리에게. 또 하나는 믿음으로 살아 온갖 고문 고형 악형을 다 당해도 그래서 믿음으로 살았지만은 그들로서만 완성되지 못하므로 그들의 완성을 이루어갈 그들의 완성인 우리들이기 때문에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11장에 있는 성도들은 탑대고 우리는 뭐라는 뜻입니까? 탑 꼭대기라 그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있어야 구약시대 모든 성도들의 믿음 생애가 완성이 되어진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완성이 되어진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굉장히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라 말은 하나는 이 말씀을 주신 우리 대상- 우리들이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우리에게 거울로, 길로 주셨다 그런 의미가 있고, 하나는 이걸 가지고 살아갈 우리가 얼마나 귀한 의미 있는 가치 있는 존재냐 그걸 담아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신 겁니다.
이해가 되셨습니까? 이해를 하고 좀 넘어가야 됩니다. 자꾸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 구름같이 둘러쌌다 그 말은 많다는 뜻이지요. 그냥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구름이 수많은 물방울로 되어있으니까 구름같이 둘러싼 수도없이 많이 둘러싼 허다한 무수하게 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어서 아는 것을 알리는 사람, 증거하는 사람을 증인이라 그럽니다. 모르는 것은 증거할 수 없지요.
자기가 봄으로 들으므로 아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을 증인이라 그러는데,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이 어디 있는가- 한 말로 말하면 육천년 역사세계에 이 세상에 왔다가 살고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사람 전부다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세워주시는 증인입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가? 우리에게 무얼 알리는가? 그들이 말을 해서가 아니고 그들의 말도 있고 모든 것이 있지만은 말을 해서가 아니고 그들의 무엇이 알려줍니까? 육천년 역사에 우리보다 먼저 세상에 왔다가 살고 세상을 떠나간 수억억억억억억만명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줍니까? 무엇으로 알려줍니까? 우리에게 알려주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으로 말을 합니까? 아벨의 피는 지금도 말하고 일하느니라. 그럼 가인은 말하지 않습니까? 아벨도 말하고 가인도 말합니다. 그들의 무엇이 알려준다고요? 무엇이 알려준다고요?
(좀 일으켜 세울까요 학생들? 000. 꼭 집어요 옆에서. 00이도 꼭 집고. 여름이 돼서 덥기도 덥겠지만은 젊은 사람들이.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데. 관심을 안 쓸라 그래도 아예 자버리니까. 말씀을 안 들으면 죽어요 학생들이. 말씀을 들어야 살지)
오전에 요약지를 줘서 다 적었습니다 학생들이. 적어서 알건데. 구름같은 간증자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방법이 몇 가지였습니까? 몇 가지요? 두 가지랍니다. 첫째는 무엇입니까? 그들의 생애입니다. 그들의 생애. 생애가 뭡니까? 살아간 그들의 일생의 평생 산 생애. 생활 생애. 또 하나는요? 이루어진 결과. 이 두 가지로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가- 종류를 따져보면 세상을 살고 간 사람의 종류를 여러 각도로 나눌 수 있는데 나눠보면 크게 나누면 넓게 나누면, 하나는 예수 믿고 간 사람 또 하나는요? 안 믿고 간사람.
그러면 예수 믿었던 안 믿었던 두고 또 다른 각도로 한번 살펴 보십시다. 이 세상에 왔다간 사람을 나눠보면 크게 하나는 이 세상에 왔다가 잘 살고 간 사람 또 하나는요? 잘 못 살고 간 사람. 두 종류가 있겠습니다. 잘 살고 가다니 무슨 말인가? 자기대로는 잘 살았다 그 말이죠. 그 사람의 실력이 어떠함을 떠나서, 또 그 사람의 다른 걸 떠나서 잘 살았다 그 말은, 자기대로는 세상에 와서 열심히 살았다 그 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 벌고, 열심히 일하고 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해서 우등상도 받아보고 반장도 되보고 회장도 되보고 그리 되보고 칭찬도 받아보고 또 결혼해서 결혼하고 나니까 아내도 사랑하고 남편도 사랑하고 자녀도 뜨겁게 사랑해서 가정을 아주 잘 보살펴서 모든 사람이 ‘ 아 참. 저 집의 가장은 참 알뜰하다. 가정을 참 잘 보살핀다. 가정적으로 존경할 만하다. 저 아내 저 가정 주부는 참 가정을 잘 보살핀다. 참 잘 산다.‘ 그래서 가정 가진 사람들이 다 마음속에 존경하고 부러워할만큼 그렇게 살고 회사에 가면은 맡은 일을 열심히 해서 회사에 사장도, 상사도 또 밑에 사람도 다 동급에 있는 사람들은 속에 시기 날 만큼 그렇게 열정적으로 부지런히 세상을 살아서 남보다 더 빨리 출세하고 자리도 잡고. 그러다 보니까 경제적으로 기반을 잘 닦아서 젊은 나이에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또 저축도 해놓고 부동산도 사놓고 노후대비도 다 해놔놓고 알뜰하게 잘 사는.
그 중에는 잘 산 사람 더 잘 산 사람 더 더 잘 산사람 더 더 더 잘 산 사람. 돈도 많고 명예도 있고 권력도 있고 덕도 있고 존경도 받고 건강도 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 면으로 다 뛰어나게 남다르게 잘 그래 산 사람. 그 안에 청언에 들어가면 많은 청어리가 있겠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 말해서 모든 인생을 통들어서 이 세상을 살고 간 과정을 말한다면 한 종류는 어떤 사람이라고요? 세상을 잘 살고 간 사람.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친 사람. 실력있는 사람, 남 부럽지 않게 산 사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산 사람, 안 믿는 사람 다 포함해서입니다. 그래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산 사람이 유명한 사람 종류가 많이 있겠지요-
우리 나라로 말하면, 우리 나라에서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존경 받는 인물이 누굽니까? 하니까 인터넷에 쳐보니까 두 사람이 주로 많이 뜨데요. 누가 뜨겠습니까? 한 사람은 한글 만든 세종대왕 또 한 사람은 나라 지킨 이순신 장군. 두 사람이 주로 많이 뜹디다.
근데 그렇게 세종대왕처럼, 이순신장군처럼 그렇게 나라를 그렇게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나라를 지키고 자기 받쳐 지킨 성훈이 되어서 오천만 민족 수백년 동안 존경 받는 그런 인물들. 그런 사람들은 잘 살고 간 그런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으로 나가면 또 그런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겠습니다.
어쨌든 세상에 잘 살고 간 그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나 이런 사람들이 우리에게 뭐라고요?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중에 대표적인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생애가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아 저렇게 사니까 모두 존경받고 그리되는구나. 저리 사니까 살 때는 어렵지만은 존경받는구나.’ 그런데 믿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세종대왕이 저렇게 존경받고 그리 되었는데, 생각해야 될 것이 설교를 하려 하다 보니까 아닌 것을 억지로 맞춰서 합리화를 시키는 그런 면이 있지 않는가.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는 어쨌든 그 설교 논리에 맞춰가지고 세상 모든 인생사나 도리를 끼워 맞춰서 합리화를 시키지 않는가 그리 생각되기 쉬운데 합리화인지 사실인지를 따져서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됩니다. 합리화 시킨 것이면 반론을 제기해야 됩니다.
세종대왕이 그렇게 잘 살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래 존경받는 사람도 마지막에 끝에 가니까 죽을 때는 그도 별 수 없이 그냥 죽었겠고 이순신 장군도 그래 죽었겠고. 죽었는데 죽음이야 다 그렇다 치고 그러면 믿는 사람 우리 입장에서 볼 때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존경 받지만은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그들이 그렇게 추앙받는 그런 사람들인데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나서 지금 어디가 있을까? 나라를 그렇게 한글도 만들고 발전시키고 그래논 세종대왕이 죽어서 지금은 어디가 있을까? 어디가 있습니까 지금? 나라를 구한 구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지금? 그 당시 임진왜란 그 당시에 우리나라도 복음이 전파가 직접 간적으로 되있었거든요? 일본에는 그때 벌써 천주교라도 믿는 사람 있었고.
그랬는데 그 분들이 택잔지 불택잔지 모르겠지만은 믿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 보니까 불택자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은 홍포 입은 부자같이 물 한 방울의 자유도 없는 음부에 가 있겠고 마지막에는 지옥에 가겠고. 이래 말하면 나라가 전체 들썩들썩 할 수 있겠지요. 막 들끓을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세종대왕이 지옥 가다니. 이순신 장군이 지옥 가다니. 그런 기독교는 안 믿겠다.’ ‘믿지 마라 그러면 너는.’ 그런 기독교 안 믿으면 그건 못 믿는 거지요. 성경이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살아도 마지막은 죽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안 믿으면 지옥 가는구나. 이게 증거로 보여주는 겁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존경 받아도 안 믿으면 지옥 가는구나.
또 가정을 알뜰하게 잘 살펴서 칠십 년, 팔십 년을 살았는데 칠팔십 년을 살면서 아주 야무지게 자기 할 책임과 의무를 다 감당을 하고 똑똑하게 살고 야물게 살아서 알뜰하게 가정도 이루고 그래 살았는데 마지막에 세상 떠날 때 보니까 그도 별 수 없이 이 세상 다 떠나는데.
지난 주간에 어제 우리 교회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번 장례식 때 입관 예배 때도, 출상 예배 때도, 하관 예배 때도 제가 중점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은 그 말이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까 구름같은 간증자들 중에 한 분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정하신바라서 죄지은 인생에게 정하신 것이라서 아무나 항거나 피하지 못합니다. 다 가야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고 죽음에는 순서가 없는 겁니다. 뭐도 순서가 있다 그러는데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먼저 왔다고 반드시 먼저 가는 것 아닙니다. 늦게 왔다고 꼭 늦게 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이유를 불문하고 가야 됩니다.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살고 간 그분이 세상을 살고 갔는데 작년 집회를 참석하셨고 또 심방갈 때 반갑게 맞이해주셨고 아멘하고 화답했으니까 택자가 분명하고 낙원에 가 계실 겁니다. 그런데 82년을 살면서 예수 믿은 것은 작년 집회 참석하셨고 그랬으니까 건설구원은 안타깝지만은 별로 많이 없겠습니다. 그 분이 지금 낙원에서 살아있는 여기 말씀한 우리에게- 이러므로 우리에게- 우리 속에 있는 그 분의 자녀들 가족들 또 우리 모든 교인들에게 말하자면 지금 말하면 휴대폰이 있어서 낙원에서 지상으로 통화가 된다면, 또 그 분이 전할 방법이 있다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을까? 살아생전에 부지런히 자식들 공부시켜라, 부지런히 돈 모아라, 알뜰하게 살아가지고 출세해라, 이 세상에서 어쨌든 이름을 날려라. 그런 것을 하고 싶을까.
음부에 간 홍포 입은 부자가 음부에 가서 물 한 방울의 자유도 없는 고통 중에서 그 고통 중에 있으면서 아브람에게 부르짖은 소원은 우리 형제 몇이 있었다고요? 홍포 입은 부자에게 남아있는 형제가 몇 입니까? 재미가 없어요 이러면. 남아있는 형제가 몇 입니까? 다섯입니다. 내 형제 다섯이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살아있으니까 여기 12장에 누굽니까? 살아있으니 누굽니까 여기? 우립니다 우리. 살아있으니 우리에게 우립니다. 내 형제 다섯이 살아있으니까 나사로를 그들에게 보내서 그들이 나사로를 아니까 그들에게 부자가 되라 하십시오 그랬습니까? 가정을 알뜰하게 살피라 그러십쇼 그랬습니까? 오래 살도록 부지런히 장수하라 그랬습니까? 세상에서 이름 날리라 그랬습니까? 권력을 취하라 그랬습니까?
그들에게 보내어 뭐하라 그랬습니까? 그들은 나처럼 이런 곳에 오지 않도록 해주옵소서. 말하자면은 그들은 믿음으로 살지 믿음 떠나 살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렇게 그 부자는 간곡하게 아브라함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안되는 일이니까, 안되는 일이니까 이루지는 못했지만은 그의 소원은 그랬습니다.
먼저 가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먼저 간 우리 신앙의 선진들, 우리 조상들이, 본인들이 잘 믿었든 못 믿었든 낙원에 가서 보니까 세상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그때는 보입니다. 보이니까 알게 됩니다. ‘아 인생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인생이 인생이 전부가 아니였구나. 인생만이 전부가 아니고 사람만이 전부가 아니라. 인생에게 주인이 있었구나. 사람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였구나. 사람의 주인이 하나님이였구나.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살아계셨구나.’ 세상에서는 몰랐습니다. ‘예수 믿으십시오. 천국 가십시다.’ ‘당신이나 믿으십시오. 나는 천국보다 돈이 더 좋습니다.’ ‘자네나 잘 믿게. 나는 천국보다 내 가정이 더 좋네.’ 그렇게 모두 비웃고 조롱하고 강퍅하게 큰소리치던 그 모든 사람들이 세상 떠나서 돌아올 길을 가서 보니까 그때 가서 보니까 하나님 살아계심이 보였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그때 가서 봤습니다. 다 보고 나서 알고 나니까 인생이란 것이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렇게 사는게 아니었구나. 그때 가서 돌이켜봐도 이미 돌아갈 수 없으니까 본인들은 못하니 할 수 없이 나는 안되지만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해주옵소서.
홍포 입은 부자가 아브람에게 소원했던 그 전하고 싶었던 그 전달의 그 말을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세상 떠난 우리 조상들에게서 들어야됩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낙원에 있으면 나에게 저 말 할거다. 우리 할머니, 아버지가 낙원에 있으면 바로 저 말이 나에게 할 말이다. 나와 관련된 내 주변 사람이 나보다 먼저 갔는데 그 분이 지금 낙원에서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 말이다 알아야 됩니다. 무엇을 전하고 싶을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아라. 인생에게 한번 정해진 죽음이 있고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알아라. 모릅니까? 우리가 하나님 살아계심을 모릅니까? 인생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 모릅니까? 세 살 먹는 아이도 압니다. 다 압니다. 죽음 너머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믿는 주일학생도 압니다. 알지만은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믿지 못하니까 이걸 염두해두고 살지를 못합니다.
구름 같은 간증자들, 이 세상을 왔다가 먼저 살았는데 세상에서 잘 살았습니다. 세종대왕도 잘 살았는데 그도 마지막에는 죽는구나. ‘아 인생은 죽는 것이로구나. 왕도 죽는구나. 장군도 죽는구나. 죽고 나니까 무덤에 묻히고 그러고 나니까 살아생전 이름은 있고 존경받고 그래봐야 본인에게는 그게 무슨 이 세상에서 존경하는 그 존경이 죽어 땅 속에 뭍혀 있는 흙이 된 그 사람에게 존경이 갈 것인가? 천국과 연결된 것이면 모를지라도. 저리 되는 저것이 인생이로구나’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알뜰살뜰 부지런히 살았지만은 마지막에 예수 믿는 생활하지 않았으니까 불쌍하구나. 믿은 것이 없으니까 안타깝구나. 구름 같은 간증자들의 보여주는 간증입니다. 그래서 잘 살아도 죽는구나. 잘나도 죽는구나. 장군도 죽는구나. 왕도 죽는구나. 죽고 나면은 모든게 다 끝이나 세상에서 해놓은것이 다 허무하게 그렇게 되어지겠구나.
못 사는 사람 있습니다. 아주 형편 없이 못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도 역시 저렇게 죽는구나. 그러니까 죽고 나니까 그래 말하는 사람이 있지요.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이 조금도 변동 없고 영향 없이 돌아간다는 그 사실이 분해서 못 견디겠다. 죽고 싶다가 죽을라 그라다가 내가 죽고나서도 세상은 조금도 영향 받지 아니하고 그대로 굴러가고 돌아갈 거니까 억울해서 못 죽겠다. 죽는 것보다 억울해서라도 그래서라도 안 죽는게 낫겠습니다. 잘나도 죽고 못나도 죽는데 마지막 죽는 모습 보니까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다 거기서 거기로구나.
창세기 5장에 보면 에녹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오는데 태어나서 나서 몇 살에 결혼해서 자녀 낳고 몇 살까지 살다가 죽었다. 그게 인생의 전부입니다. 그 속에 므두셀라같이 969년을 살았지만은 그도 역시 나가지고 몇 살에 결혼해서 얼마까지 자녀 낳고 살다가 몇 살이 되어 죽었다. 인생의 모든 마지막 결론은 다 그리 되어진다는겁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 에녹이라는 사람은 그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과 동행을 했다. 다른 사람은 한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게 전부 구름 같은 간증자들입니다.
그래 우리 앞에서 다 살다가 그리 간 겁니다. 그리 간 사람들을 보고 뒤에 따라가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될 것인가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자연계시를 포함해서 성경을 주신 목적은 이 성경은, 신구약 66권 이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뭡니까? 성경을 왜 주셨습니까? 성경은 특별 계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뭘까? 간단합니다 쉽습니다. 왜 주셨습니까? 성경을 주신 목적은 자 쉽게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읽어라고. 성경 읽어라고 주신 겁니다. 성경 보라고. 아닙니까?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 특별계시를 우리에게 장식으로 쓰라고 주신 것 아닙니다. 이 성경을 읽어보라고 주신 겁니다. 창세기도 출애굽기도 레위기도 요한계시록도 성경을 너희들에게 줬으니까 읽어봐라. 읽어서 뭐합니까? 읽어보고 내용을 알아라. 읽어서 내용을 알아라고 성경을 주신 겁니다. 우리에게 양심을 왜 주셨습니까? 그 양심이 마음에 자기 몸에 전신에 빛이 되어서 그 양심을 맑고 밝고 치우침 없는 깨끗한 그런 양심 신앙양심을 만들어서 말씀에 지배받는 양심을 만들어서, 그 양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에 영의 감화감동을 받으라고 그래서 양심을 만들어 넣어주신 겁니다.
마찬가지로 자연계시를 왜 주셨는가?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 그랬습니다. 길을 가다가 뭘 봐도. 이 말씀을 가지고 영락공원에 가서 보니까 생각나는게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그 영락공원에 평수가 아마 수만평은 넘겠지요. 굉장히 넓습니다. 그 산 그 큰 산 전부다가 묘지니까. 또 거기말고 납골당에 가면 또 그 얼마나 많겠습니까. 수만명 수십만명이 될런지. 적어도 수만명은 넘겠지요. 수만명이 넘는데 그 넓은 산 전부다가 묘진데, 묘지고 납골당이 전부인데 전부 살았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중국에 등소평이란 사람이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젊은 사람들이 대모하니까 탱크로 가지고 밀어붙이면서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은 한 말이 그랬다하지요. “십억 인구 중에서 백만 명은 적은 숫자다.” 백만명 죽어도 괜찮으니까 밀어 붙여라 그 뜻입니다. 지금 중국 사람들이 등소평 욕 합니까 존경 합니까?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일껄요? 독재자인데도. 그렇게 했는데도. 십억 인구 중에서 백만 명은 적은 숫자다 그래 말했다더니. 참 우리 나라 인구는 오천만 명인데, 오천만 명 인구 중에서 죽어도 죽어도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넓은 공동묘지, 그 많은 납골당이 꽉 차고 차고 차서 또 다른 데 짓고 또 얼마 안가 또 차겠지요. 전부 다 그 사람들이 전부다 이 세상 살다가 죽은 사람들이고 우리에게 증인들인데 저 수많은 사람들중에서 이 세상 살고간 사람들의 종류는 별의 별 종류가 많을 것이고 저 많은 무덤들이 전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얼마나 많은 슬픔을 남은 사람들에게 줬을까? 비통을 줬을까?
구름 같은 간증자들입니다. 증인들입니다. 어쨌든 세상에 와서 인생이 났으면 잘 살아도 마지막 결론은 가는 거고 잘 못살아도 가는 겁니다. 똑똑해도 가는 거고 어리석어도 가는 겁니다. 잘나도 못나도 마지막 결과는 가는 겁니다. 그걸 보면서 ‘아 인생이란 것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고 가는 것이로구나. 마지막 죽음이란 것이 있는게 인생이고 그곳을 향해서 가는 것이 인생이로구나. 하는 것을 알아라 그 말입니다. 그것을 알아라.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은 그래 살아가지고 죽고 난 다음에 이름 남으니까 위대한 그런 위인들 보면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들처럼 살려고 안 믿는 사람들은 그래 노력하는게 당연하겠지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 인생의 근본을 알고 성경을 아는 우리들이 볼 때는 나 가지고 마지막에 모든 사람들이 다 갔는데 간 사람들의 그 마지막 과정이 어떠했는데 그 모든 살아간 과정이 어떠했던지간에 마지막 결론은 죽었고 죽으면 그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었기 때문에 어떻게 큰 성공과 결실을 맺었을지라도 마지막 결론은 그들 전부다 지옥에 갔겠구나 참 허무하겠다 불쌍하다 결론이 그리 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믿기는 믿었는데 평생을 믿음의 조상 선진들처럼 자기 생활 전부 다 받쳐서 아브라함처럼, 사도바울처럼, 다윗처럼 그렇게 모든 거 하나하나 전부다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믿음으로 산 그런 조상들도 마지막 떠났는데 그들이 세상을 살고 떠날 때 마음이 어떠했을까- 다윗이 죽을 때 솔로몬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나도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나도 가는데, 남은 너는 살아 남아 있을거니까 (여기 우리니까) 너는 세상을 살아갈 때 내가 하나님 아버지 모시고 살았듯이 너도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계명을 지켜 살면 너의 앞날이 형통할 것이고, 네가 하나님을 떠나버리면 너는 비참하게 되어질 것이다.” 유언을 그렇게 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믿음으로 사니까 믿음으로 살아서 마지막 세상 떠날 때 보니까 그들의 생애는 과거를 돌아볼 때 참 하나님 아버지 은혜에 감사하다 내가 하나님을 몰랐다면, 말씀을 몰랐다면, 내 산 생애가 믿음으로 살지 아니하고 이 세상 욕심 내고 내 욕심 내 주장 내 취미 내 고집 나 좋아하는대로 평생을 살아왔다면 이래 살아도 저래 살아도 오늘 마지막은 맞이했을건데 내 과거 생애를 돌아보니까 사도바울처럼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으니까 참 그 말 할 때 그 유언할 때 사도바울이 얼마나 참 마음속에 감사가 넘쳤을까- 얼마나 기쁨이 넘쳤을까- 얼마나 소망이 넘쳤을까.
돌아갈 수 없는 길을 걸어왔는데 걸어온 그 과정 과정 돌아보니까 마치 석류 한 쪽에 가득찬 알알이 박혀있는 석류 한 쪽처럼. 순간순간 하루하루 시간시간 분초 사건사건 말 한마디 한마디 눈동자 돌리는 것 하나하나까지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 구석구석 하나하나까지 전부 세밀하게 세마포 옷의 베를 짜듯이 그렇게 세밀하게 아무렇게나 살지 아니하고 구별하고 따져보고 자기를 부인하고 꺾고 하나님을 생각을 하고 인간구원을 생각해서 옳고 그른 걸 따져가지고 바르게만 바르게만 그래 산다고 수많은 세월 수많은 눈물, 수많은 고난 역경 온갖 억울한 누명 다 당하고 살았는데 그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다 지나고나서 끝에 가서 마지막에 그 생활을 다 돌아보니까 “참 다행이다” 얼마나 감사했을지 얼마나 기뻤을지 얼마나 소망이 넘쳤을지 우리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살아보면 어느정도 냄새는 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세계에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 산 분들은 참 부럽고 믿기는 믿었는데 믿는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성경은 들고 다녔고, 예수는 믿었는데 마지막에 인생살이 다 살고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 다 가야 됩니다. 마지막 가야되는데. 그날에 가서 끝에 가서 되돌아갈 수 없는 마지막 낭떨어지 그 지점. 이제는 한 발짝 내 딛으면 떨어져서 회복 못하는데 그 마지막 돌아가지 못할 거기 딱 서서 내가 걸어온 생활을 돌아볼 때. 거기서면 대개 다 보인답니다. 죽음 직전에 딱 가면 사람이 믿는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다 보인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죽음 직전에 가면은 지옥에 고통이 보이니까 그렇게 두려워한답니다 죽음을. 살아생전 안 보이던 것이 죽음의 문턱에 딱 서면 그게 느껴지고 보인답니다.
믿는 사람은 천국이 보이겠지요. 그러면서도 하나님 심판이 생각날거니까. 아는 사람일수록 더하겠지요. 돌아보니까 돌아갈 수 없는 길을 다 와서 과거를 돌아보니까 내가 수십년 세월을 살았는데 말씀으로 산 것이 얼마나 되냐 말씀 때문에 내가 내 고집을 꺾고 손해 본 것이 무엇이 있나 희생 당한 것이 무엇이 있나 참은 것이 무엇이 있나 어려운 중에서 계명 지킨것이 무엇이 있나 이걸 돌아보니까 너무도 허무한 것이 많으니까 기가 찰 겁니다. 안 그렇겠습니까? 저는 그렇습니다.
저는 죽을까싶어 겁납니다. 왜? 아직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살았다 잘 살았다 싶은 그런게 너무 허무해서, 죄송한 것이 너무 많아 가지고. 이런 거 다 정리하고 가야되겠는데 말처럼 참 쉽지 않습니다. 몸에 익어있고 마음에 익어있고 살아오면서 꽉 껴있으니까.
이런 우리보다 먼저 간 사람들의 생애가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보면 다 그리 될 건데 그런 걸 보면서 우리가 직접 연관되지 않아도, 또 직접 연관되면 더 그렇겠습니다. 보면서 내가 살아갈 내 인생을 바로 잡아야 됩니다. 인생이란 것이 이러하니까 인생을 살아갈 내 생활은 어떻게 되어야 되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내 과거는 어떠했으며, 현재 모습은 어떠하며, 이러니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는가. 이걸 바로 잡는 것이 구름 같은 간증자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겁니다.
이리 알고 그래서 이런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세상을 보면서 자연계시로 보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성경 특별계시를 많이 읽고 연구해서 아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 듣는 자들,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 때가 가까움이라. 자연계시 수많은 모든 것들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는 그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리 되어 있으니까 그들은 이미 끝났으니까 돌아갈 수 없는데, 살아갈 날이 남아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이래되어있으니 우리는 이제는 두 가지는 벗어버리자. 하나는 모든 무거운 것. 무거운 것이 무엇입니까? 왜 무겁습니까? 무거운 이유는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지기 때문에 무겁습니다. 아무리 힘 있는 사람이라도 그 힘에 부치는 것을 지면 무거운 것이고 어린 아이라도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짐을 지면 기쁘게 가볍게 가뿐하게 지고 가는 겁니다. 인생이, 짐이란 것은 눌리는 것인데- 마음이 눌리는 것, 생각이 눌리는 것, 정신이 눌리는 것, 생활이 눌리는 것, 부담스럽고 짐 되고 고통스러운 게 전부 다 눌리는 건데 그 눌리는 모든 것들이 왜 생기느냐 어디서 나오느냐? 오전에 말씀을 드렸지만은, 사람과 사람을 상대할 때, 어떤 자기 맡은 일을 감당할 때 거기서 자기 속에 어떤 종류의 욕심이던지 욕심이 들어있고 그게 나오면 모든 것은 다 짐이 되고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잘 해야 되겠다는 그 마음이, 잘 해야 되겠다는 마음까지는 좋지만은 그게 넘어가서 잘 해야 되겠다는 그 마음이 잘 하므로 실수하면 어쩔까?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실수하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그런데 ‘실수하면 어쩌지?’ 거기 눌리면 더 큰 실수가 나오지요. 그러면 눌리는 겁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실수 안하도록 노력하고 조심을 하지만은 실수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안해야 되겠지만은. 그런데 그것이 자기 범위를 벗어나는 짐이 되면 그 속에 들어가보면 욕심이라는 겁니다. 내가 실수하면 안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을건데. 욕 먹을 건데. 안 먹는게 좋지만은 넘어가면 안된다 그 뜻입니다.
예를 들자면 고거 하나도.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부 잘하면- 그래서 부모님들이 자기 자녀들의 실력을 다 알지 못하고 전부다 일등 할 줄 알고 우리 자녀가 일등 못해도 삼등은 할건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들 딸들에게 그걸 내색을 하면 그때부터 10등 하는 아이가 3등 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짐이고 눌려서 짐이고 죽을 만큼 고통입니다. 부모님이 들어서 자식들을 잔뜩 짐을 지워서 질 수 없는 짐을 지어놓는 겁니다. 왜 그리 짐을 지우는 겁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머리가 나쁘니까 너도 그렇겠지 뭐. 10등이면 얼마나 잘한 것이냐 더 잘하면 좋겠지만은 할 수 있는데까지만 해라. 그런데 뭐는 하지 말아라? 게으름은 부리지 말아라. 농땡이치고 노라리해서 게으른 것이 몸에 베면 공부뿐이 아니고 너 평생에 고난이 고통이니까 게으르지 말고 할 수 있는데 까지만 하면 된다. 그러면 30명 중에 30등 해도 괜찮다. 잘하면 좋겠지만은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느냐. 열심히 해라 놀지는 말고. 또 놀때는 놀지만은 지나치지 말고. 그래놓으면 즐겁게 공부할 건데 부모 욕심이 들어서 자식들을 잔뜩 짐을 지워놓고 고통을 주는 겁니다. 그것도 전부다 짐입니다. 예를 들자면.
무거운 짐은 전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모든 짐은 전부 자기 사욕에서 나옵니다. 욕심에서. 욕심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다 짐입니다. 죄는 얽매이는 성격이 있습니다. 지을수록 더 자꾸 깊이 빠져 들어가는 게 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으로 산 믿음의 조상들이 산 그 생애를 보고 그렇게 살아도 우리들이 아니면 완성이 안되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우리가 보면서 인생의 과정과 결과를 보면서 무엇이 가치 있는지를 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될지를 답을 찾아가지고 힘쓸 것은 현실에 힘쓸 것은 무거운 것은 다 벗어버리라.
하나님이 주신 욕심 아닌 것은 다 벗어버리고 방향을 바꾸고 근본을 바꾸고 죄를 다 끊어버리고 벗어버리고 그 다음 힘쓸 것은 인내로써 인내로 경주해라. 내게 주신 현실. 내 현실 거기서 내게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뜻을 찾아서 믿음으로 사는 게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겁니다. 내 범위 벗어나라 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고등학교 수학을 풀어라 예를 들면 그러지 않습니다. 오늘 믿은 사람에게 짐사처럼 되라 장로처럼 되라 그러지 않습니다. 주일학교 중간반 학생들에게 장로님처럼 되라 그러지 않습니다. 너 중간반 학생이냐? 내 나이에서 너의 신앙 정도에서 네가 지킬 믿음이 있다. 가정에서 지킬 믿음, 학교에서 지킬 믿음, 네가 해야 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네 나이에서 지킬 말씀이 있으니까 그 말씀을 지켜라. 그 말씀을 지키는데도 너로써는 어려우니까.
2리터짜리 물병, 물 2리터 페트병 하나, 2리터쯤 되죠 1.8 2리텁니다. 그거 들면 00이 무거워요 가벼워요? 콜라병 하나? 00이가 들면 무거울까 가벼울까? 별로 안 무겁겠지? 무거울까? 그러면 우리 저 00이 형님이 들면 무거울까 가벼울까? 페트병 하나? 무거워요 가벼워요? 안 무겁죠? 달랑 들지요? 그런데 그것을 00이가 들면 어떨까? 한 짐이 되겠지요 무겁겠지요. 자기에게 주어진 말씀이 있어서 그래서 그 어린 아이는, 중간반 학생은 중간반 학생, 주일 학생은 주일학생, 그 나잇대에, 그 깨달음 그때, 거기 맞는 말씀이 있는데 그거라도 지킬라 그러면 어렵다 그 말입니다. 그것도 지키려면 인내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인내로써 각자 자기 앞에 주어진 그 말씀을 지키며, 경주하며, 그리고 소망은 믿음의 주. 믿음으로 구주가 되시고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우리 소망으로 삼고 그 예수님의 승리하신 십자가를 우리 방편으로 삼아서 이리 힘써 나아가자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전체적인 것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을 보자. 그리고 그 증인들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들의 남을 때를 어떻게 어디에 가치를 두고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잡자 하는 것을 오늘 말씀을 드린 겁니다. 무엇이 가치인가. 무엇이 허무한 것인가. 우리 먼저 살아간 그들의 생활을 보고 살아갈 우리들의 걸음을 바로 걸어가자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