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주후(출9:13-16)
종됨을 알고 자유하기를 원하자2013-06-09조회 523추천 68
본문: 출9:13-16
제목: 종됨을 알고 자유하기를 원하자
요점:
1. 오전 요약 문답 복습
2. 종과 자유
- 이스라엘의 430년 종 노릇, 그들의 마음과 태도들
-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것, 종은 자유가 없는 것
- 종됨의 비참, 가련함
3. 자유의 범위
- 지식이 없으면 자유도 모르는 것
- 종되어도 종된 줄 모르면 자유 역시 모르는 것
- 독재 정권하에서 모르는 사람은 그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
- 지식 있고 아는 사람일수록 독재를 느끼고 자유를 갈망
- 종됨을 아는 것이 가장 우선, 종 됨을 모르면 자유도 없는 것
4. 기독자의 참 자유
-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기독자의 자유는 죄에서, 불의에서, 불목에서 자유하는 것
- 이 자유를 주시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 죽으심을 대신하신 것
5. 자유하려면
- 죄, 불의, 불목을 알지 못하면 종됨은 당연히 모르는 것
- 알아도 그대로 살지 못하면 역시 종된 것
- 종됨을 알고 자유를 원하면 십자가는 필연
- 세상 자유도 쟁취하려면 피를 흘려야 하듯이
- 신앙 자유는 쟁취하려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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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20130609 주후
출애굽기 9:13-16
오전에 말씀을 간단하게 문답의 내용 가지고 한번 복습을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몇 년 동안 종노릇 했습니까? 430년 종노릇을 했습니다. 종이 무엇인가. 종은 몇 가지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종이라 말은 한말로 말하면 자유가 없는 자고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자유가 없는 자가 종입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자유 없는 종살이였습니다. 그들은 자유가 없었습니다. 종살이였습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종류를 한번 생각해보니까 이거는 꼭 그들만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종 되었다 그러면 종 된 사람의 모습은 세 종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종 되어 있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이겁니다. 자기가 종이 되어있지만은 자기가 종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애굽 사람처럼 애굽화된, 애굽 사람화된 사람입니다.
세상으로 말하면 좋은 면이 있습니다. 아주 말하자면은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생존력이 뛰어난 그런 사람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세상 민족과 민족끼리의, 침략자와 침략 당한, 그 민족 입장에서 볼 때 이 사람들은 넓은 범위로 다 그리 될 수 밖에 없지만은 민족적인 그런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사람들은 다 매국노들이고 반역자들입니다. 두 번째는 종 되어 있는 줄 알지만은 팔자다 하고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애굽에 들어온지가 430년이고 우리 조상 요셉의 믿음으로 (그들이 믿음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실력으로 인해서 잠깐 대우를 받았지만 세월 속에 우리는 이 애굽 나라 사람이 아니고 이 애굽 본토 이 민족들의 들어온 우거하는 나그네이기 때문에 종이 될 수 밖에 없는거다 그래서 차마 애굽화되지는 않고 그들과 동화되지는 않아도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팔자다 하고 운명이다 하고 체념을 하고 그대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자식들 중에서 잘난 자식이 나서 “왜 우리가 종살이를 해야됩니까 들고 일어납시다” 그러면 “야 이놈아 모 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그냥 쿡 쳐박혀 오래 사는 게 좋은 거다“ 그러면서 눌러가지고 못 일어나게 그래 만들고 체념을 하고 그래 사는 사람들이 아마 대다수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중에서 모세 같은 사람은 속에서 불이 나서 민족을 구원하고 싶은데 힘이 없으니까 아마 모세도 속에 새카맣게 타들어 갔을 겁니다. 그래도 체념을 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실력으로 안되니깐 그리 살 수 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크게 세종류에 종된 사람들 모습을 생각해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가장 자유를 원한 사람은 아마도 모세가 아니였을까 그래서 인도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리 생각해봤습니다. 근데 이런 이스라엘의 그 모든 애굽과의 관계는 그림자적인것이고 그때 그들은 그것이 그들 현실이였고 지금도 이스라엘에게는 그 모든 사실은 역사입니다 얼마나 자세히 기록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은 역사고. 그러나 그 역사가 오늘 신령한 신약시대 우리들에게는 그게 그때는 그림자였고 오늘 우리를 가르치기 위하고 기르기 위한 한 과정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거쳐 오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실상은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그때 이스라엘은 오늘로 말하면 우리 믿는 성도들이고 또 그때의 이스라엘이 살고 있었던 애굽이라는 나라는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 넓고 넓은 세상이고 그때 애굽 나라 왕이 됐던 바로는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을 미혹을 하고 온세상을 주장하는 마귀가 그때 바로고 그때 바로의 신하들과 백성들 신민들은 오늘로 말하면 이 세상의 불신자들 불신 사람과 불신의 모든 세력들 그들이 그때 애굽 신민들과 같은 겁니다.
이런 말도 지금은 우리가 자유롭게 하지만은 앞으로 시대가 변하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종교는 종교로서의 특성이 있는 것이고 종교는 그 종교에서 믿는 그런 경전이 우리는 성경이지요 이게 있는 것이고 그 자기 믿는 그 교리와 신조를 따라 양심을 지켜나가는 그게 종교고 그 종교와 그 종교에서 믿는 그런 경전과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그 신앙의 양심 자유를 허락하는 게 자유 세계고 종교의 자윤데 지금 종교 자유가 있다하지만은 앞으로 전도 못하게 하는 것은 종교 탄압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종교 탄압입니다. 이거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런 종교 탄압을 정책적으로 해도 이 세상은 진리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옳은 걸 따라가지 아니합니다.
세상은 뭘 따라갑니까? 이 세상은 무엇을 따라갑니까? 다수를 따라갑니다. 다수를 따라가므로 많은 사람이 기독교 경전이 너무 배타적이고 그 교리신조가 너무 심하고 그대로 지키는 게 양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 입장과 국가적인 이런 면을 생각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제재를 가해야된다고 말이 나오면 법을 만들어서 제재를 가하면 합법이 되니까 그때는 일방적으로 탄압을 당해도 뭐라고 말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또 이제 똑똑한 사람들은 그 헌법 위헌횝니까? 위헌 여부를 올려서 또 하겠지요. 어쨌든 세상은 다 그런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옛날 이스라엘 백성 시대 때 그때 애굽은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그때 바로는 오늘 세상을 붙들고 있는 마귀고 그 때 바로의 신하와 백성들은 오늘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불신의 세력들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와가지고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처음으로 건너간 홍해바다는 뭐라 그랬습니까? 학생들 홍해 바다는 뭐라고요? 오전에 문답 안했습니까? 홍해바다는 중생 혹은 세례. 또 광야는 교회 생활입니다. 광야 생활은 교회 생활. 요단강은 죽음을 의미하고 가나안은 천국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세상같은 말하자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바다를 건너서 광야 생활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마귀에게 붙들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고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 대속의 공로로 이 세상에서 나와서 중생이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서 세례 받고 중생 되고 세례 받고 교회 생활을 거쳐서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넘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이런 과정을 그림자적으로 구약 이스라엘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신 겁니다. 그래서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 생활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무엇인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 생활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무슨 생활입니까? 구약 이스라엘의 애굽생활은 오늘로 말하면 우리들이 믿기 전 세상 생활입니다. 예수 믿기 전 세상 생활이 출애굽 전 그들의 애굽 생활입니다.
이런 거는 성경이고 변하지 않는 도리기 때문에 이런 거는 외워놔야 됩니다. 출애굽 전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오늘 우리 예수 믿기 전 세상 생활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전 애굽생활은 그들은 어떤 생활이었는가? 종살이 였습니다. 종노릇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출애굽 전 이스라엘의 애굽생활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생활이 아니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바로를 위한 것이었고 애굽 바로의 신하들과 애굽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고 애굽 나라 건설을 위한 거기에 동원된 종노릇하고 종살이 하는 것이 애굽에 사는 이스라엘의 모든 생활입니다.
예수 믿기 전, 믿는 사람들의 믿기 전 세상 생활, 믿기 전에 예수 믿기 전 믿는 사람들의 믿기 전 모든 생활은 전부다 본인이 알던지 모르든지 전부다 종노릇하는 생활입니다. 종살이입니다. 종노릇 종살이. 아마 거의 대개는 모르고 삽니다. 지금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는 출애굽은 뭐냐. 그거는 종된 것에서 해방 받는 자유 생활의 출발이지요. 430년 종노릇에서 해방 받는 자유 생활의 출발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신앙 출발입니다. 역시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서 자유 생활에 출발하는 것이 믿기 시작하는 신앙 생활의 출발입니다. 그런데 종된 데서 자유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이게 오늘 말씀에 가장 중요한 거였는데 오전예배 때. 첫째는 뭘 알아야 됩니까? 종된 사실을 알아야 되고 알고 자유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이게 첫째 조건입니다. 종된 사실 알고 종의 비참함을 알고 거기서 자유를 원하는 이 사람이 되어야 종노릇에서 해방 받아 자유를 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자기를 종으로 삼고 있는 주인 아닌 가짜 주인, 내가 종 되어 있고 나를 붙들어 매어 속박하고 있는 내 대적 원수 그놈이 무엇인가 나를 붙들고 있는 적을 두 번째 알아야 되고, 세 번째는 이 둘이 되어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자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네 번째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러면 다섯 번째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자유하려면 이런 모든 걸 알고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첫째는 간절히 매달려 기도해야되고 그리고 하나님은 심부름꾼이나 비서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종된 데서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을 오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후에 한번 더 생각해보면 종이 무엇인가? 종이란 이스라엘이 430년을 애굽에서 종노릇 종살이 했는데 종이 무엇이냐. 종이라는 것은, 종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종의 반대말은 주인입니다 주인. 그러면 종은 주인이 아니란 말이고 주인에게 붙들려 매였다는 말이고, 구속되어 있다는 말이고, 그러기 때문에 종이라는 것은 자유가 없다는 말이고, 자유라 말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를 못한다 그 뜻입니다.
반대로 주인은 자기가 주인이니까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유가 있고 자기 원대로 할 수 있는 그게 주인입니다. 종은 자유가 없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못하니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종되면 참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근데 거기도그다음단계 들어가면 좀 묘한 것이 있습니다. 종은 비참합니다 가련합니다. 종은 주인만을 위해서, 그 주인이 누구든지 그 종이 누구에게 종 되었던지 무엇에게 종이 되었던지 종은 자기를 붙들어 매고 있는 주인을 위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종입니다. 저를 위한 생활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종이 주인을 잘 만나면 굉장히 좋은 겁니다. 종은 무조건 나쁜 거 아닙니다. 자유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굉장히 좋은 거지요. 진리의 종은 좋은 겁니다. 영감의 종도 좋은 겁니다. 의의 종, 선의 종, 대속의 사랑의 종, 진실의 종, 옳은 것에 종된 것은 좋은 겁니다. 이런 좋은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죄의 종, 마귀의 종, 사망의 종, 자기 욕심의 종, 습성의 종, 세상 돈의 종, 이런 것에 종된 것은 가련합니다.
어쨌든 종이란 것은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는 것은 자기 생활을 못하는 겁니다. 자기를 위해서 자기 미래나 현재나 자기 명예나 영광이나 존귀나 자기 자신의 무엇을 위한 생활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것이 종이고 자기를 종 삼고 있는 그 주인이 도둑놈이면 그 도둑놈을 위해서 평생을 다 받쳐야 되는게 종의 가련한 신세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잡아먹고 36년 동안 종으로 부릴 때 한국 조선 사람 한국 사람들은 36년 생활에 종되어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공부도 전부 일본을 위해서 합니다. 뼈 빠지게 농사 지으면 일본 사람들이 전부 다 가져가버립니다. 솥뚜껑이고 냄비뚜껑이고 쇠라는 쇠는 일본놈들이 전쟁하기 위해서 다 약탈해 가버립니다. 젊은, 나아가지고 모든 것 다 받쳐 길러놓으면 일본놈들이 저거 군인 총알받이 하려고 모조리 다 끌고가버립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그들이 우리나라 종이 되어있고 힘없는 조선이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종되어있으니까 원수놈을 위해서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게 종의 신세입니다.
내가 강도의 종이 되어있으면 그는 강도를 위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종이란 것은 자기를 붙들고 있는 그 주인을 위해서 살 수 밖에 없는게 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온 천하에서 택함 받은 선민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시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의 종이라. 아브라함의 종이 애굽나라 종 되었었고 그때도 로마 식민지 종이 되있는데 그들의 자부심은 우리가 비록 껍데기로는 남의 나라 식민지에 있어도 우리 자부심은 우리의 선민 사상은 우리는 온 세상에 가장 탁월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종이 아니다 그들 선민 사상입니다. 아주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그들도 모르게, 한마디로 주님이 탁 꺾어 말씀하시기를 너것들이 자유하는 사람이냐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그들은 전부 죄의 종입니다. 외식의 종이였습니다. 돈의 종이였고 그 시대 전부 껍데기의 종이 되어 있는데 그조차도 그들은 몰랐습니다. 종이 되면 어쨌든 그 종된 주인을 살 수 밖에 없는 게 종의 신세입니다. 가장 비참하고 가련한 것이 종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종은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세상글 굳이 역사의 세상글 안봐도 노예제도 이런 것 생각 안해도 그런 걸 근거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종은 불쌍하다 가련하다 종살이는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인류역사에 자유를 부르짖고 자유를 찾아서 싸운 흘린 피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요. 전부 자기 원하는대로 자기 속에 있는 자유성 가지고 그대로 살고 싶어서 모두들 피를 흘리고 싸우고 전쟁을 하고 그랬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자유국가가 안됐고 만약에 공산화가 되었으면 일당독재 공산당 독재취하에서 자유 없는 그런 생활을 북한처럼 했겠지요.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자유를 주셨으니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종과 자유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라는 것은 그 범위를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자유의 범위. 자유면 다 자유냐. 그 자유도 범위가 있어서 지식에 따라서 자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니까 종노릇 하고 있는데 종노릇하는 그 자기는 종노릇 하는 줄 모릅니다.
애굽에 살면서 애굽 사람과 붙어서 패장이 되어서 애굽 사람들 시키는대로 하고 애굽 사람들이 던져주는 요즘은 돈 몇 푼이겠고 그때로 말하면 고기 몇 점이나 고기 국물이나 이런 떡 부스러기 몇 개 던져주고 너거 동족 탄압해서 어쨌든 부려서 일을 시켜라 하니까 그리 한 그거는 민족을 배반하고 애굽에 붙어 동족 팔아 먹고 패장 노릇한 그 사람들은 자유 아닌가요? 그 종노릇 하는 것도 자윱니다. 그거도 자유의 범위 중에 하납니다. 내가 종노릇 하거나 말거나 그래서 민족들이 말하면 내가 종노릇 하거나 말거나 네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종노릇 하겠다는데. 자윱니다 그것도.
독재라는 것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이 세상 독재는 유한한 것이고 그게 치우쳤고 인간 자기 중심이라서 전체가 되지 못하니까 문제가 생기지만은 그러나 독재도 잘하고 그 독재가 멀리보고 전체보고 한시적인 그런 독재 필요한 독재는 대단히 좋은 면도 없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그럽니다. 기독교는 독재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잘 구별해야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 군사정권 시절, 소위 말하는 이승만 자유당 시절 끝나고 제 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 시절 아주 엉망진창 나라 다 말아먹은 그 시절 끝나고 제 3공화국이 박대통령 시절이지요 5.16 혁명으로. 그때부터 오랜 세월을 박대통령은 독재를 했습니다. 독재라는 말은 자유를 제한한다 그뜻입니다. 독재했습니다. 그때에 박대통령이 독재정치하고 나라 경제를 살리는데 그때 한 삼천만명 좀 넘었을까요 좀 그랬을까요. 그때 삼천만명 민족중에서 국민중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다 환호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근데 그중에서 그래서 독재라 말하는데 독재라는 그 실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도 그 시절을 살았지만은 나이도 어렸고 많이 배우지를 못하니까 독재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습니다. 이사 마음대로 갈 수 있고 공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 마음대로 벌 수 있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거 없어 못 먹지 다 먹을 수 있고 다 입을 수 있고 공부 마음껏 할 수 있고 예수 마음대로 믿을 수 있고 다 할 수 있는데 무슨 독재냐 자윱니다.
그런데 그 때 공부를 많이 한 지식층은 내 입을 가지고 내가 말하겠다는데 왜 입을 막냐? 나라 정책 이게 틀렸다. 왜 이런 자유가 없냐? 왜 신문 방송을 가따가 정부에서 이렇게 다 사사건건 간섭을 하냐 이거는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것 아니냐. 일반 서민들은 모르거든요? 모르면 자윱니다. 근데 배워서 아는 사람들은 자유라는 것은 이것도 있어야 자유지 왜 이거는 막느냐? 나라의 정권자가 잘못하면 잘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왜 말 한다고 감옥에 집어넣어가지고 두드려 패느냐 자유 없으니 독재 아니냐. 많이 배워서 많이 아는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은 자윤데 그들은 그게 자유가 없었습니다 독재였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그런 겁니다.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은 자윤데 어떤 사람은 그 자유가 자유가 아니고 종노릇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박대통령 시절, 전대통령 시절, 박대통령 정치가 17년 정치가 끝나고 80년대가 되니까 80년대 되어서 그때 그게 제가 세상을 잘 몰라서. 이름하여 5월의 봄입니까? 5월의 봄? 그런 말들이 많았습니다. 드디어 군부독재 박대통령 유신독재가 끝나고 이 나라에 봄이 오는가 싶었는데 그만 전대통령의 군홧발이 모조리 짓밟아 버리니까 이를 뽀독뽀독 갈고 있지요.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도 대다수 국민들은 독재인지 뭔지 몰랐고, 도둑놈들 많은 세상에 도둑놈들 다 잡아가버리니까 참 살기 좋다- 흉악한 살인 강도가 너무 많은데 모조리 다 잡아가버리니까 부작용 폐단 없는 거 없지만은 살기 좋다- 많은 사람은 피부로 느꼈고 그러나 그중에 또 잘난 사람들은, 대통령 하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 너무 독재가 심하다 그래가지고 모두 숨막혀서 못살겠다 그런 신화 그런 소설 그런 영화 그런게 많이 나와 있지요. 그들은 아니까 그런겁니다.
우리는 어때야 되는가? 모르고 종노릇 해야 됩니까 알아야 됩니까? 우리는 모르고 종노릇하지 않아야 되고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런 판도 그 너머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또 있으니까 거기까지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유의 범위라는 것은 자기 지식의 범위 따라서 자유도 느낌적으로 그리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뭘 말씀 드리는고 하니 오늘 지금 자유를 말씀드리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문제는 자유하고 있느냐? 믿는 사람이 자유해야 될 그 자유, 이 세상 자유는 있어봐야 그 자유는 좋은 자유도 아니고- 내가 도둑질 하거나 말거나 내 자유 아닙니까? 그거는 막아야 되겠지요. 그거는 막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나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 성전환 해야 되겠습니다. 나라 법에 맞습니까? 그것 막으면 앞으로 법에 걸립니다. 하거나 말거나 남자가 여자 되거나 말거나 여자가 남자 되거나 말거나 네 자유다. 할 짓입니까 그게? 자유로 그냥 둬야 할 짓입니까?
아이를 베가지고 낳기 싫다고 낙태하거나 말거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낙태 허락 안하지요-) 하거나 말거나 자유다 던져 놔야 되겠습니까? 좋은 자윱니까? 초등학생들이 남학생 여학생 짝짓고 둘이 손잡고 돌아다니고 못된 짓 하거나 말거나 그들의 자유다. 좋은 자윱니까? 담배를 피거나 말거나 자유지. 좋은 자윱니까? 자유도 좋은 것이 있고 제한이란 것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 자유는 이 자유나 저 자유나 이래 막으나 저래 막으나 다 거기서 거기고 다 살펴 들어가보면 내나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고 비슷비슷한 거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자유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되겠는데 참 자유자로 살고 있는가-
갈라디아서 5장 성경 한 번 찾아보실까요 잠도 깨고.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면, 5장 1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는 자유자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가 어떤 자유라야 되느냐. 그 자유가 초등학생들이 나 어른들 흉내내서 담배 피고 싶으니까 자유를 주십시오. 막아야 되겠지요? 나 남학생 사귀고 여학생 사귀고 싶으니까 자유를 주십시오. 막아야 되겠지요? 나 한잔 하고 싶으니까 자유를 주십시오. 막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강물에서 한강, 부산으로 말하면 영도대교- 영도다리에서 좀 뛰어내리고 싶은데요. 막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자유들이 있는데 자기를 해롭게 하는 자유, 자기를 망치는 자유, 손해되는 그런 자유는 자유가 아닌 거지요.
믿는 사람으로 사는 자유, 자유로 사는 자유, 믿는 사람의 자유는 어떤 것이 자유냐. 믿는 사람의 자유는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그 말은 죄에서 자유를 주셨다 그말입니다. 죄에 붙들려 죄가 시키는 대로 죄를 짓는 그 죄를 안 짓고는 견딜 수 없는, 죄가 뭔지 알지도 못하고 죄에 붙들려 사는 거기서 자유해서 죄를 알고 죄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게 우리 자윱니다.
또,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주장대로 사는 거기서 벗어나서 의롭게 사는 자유를 주신 게 우리의 자윱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게 우리의 자윱니다. 하늘나라 소망으로 사는 게 우리 자윱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자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섬기고 싶은 그 자유, 하늘나라를 알고 천국 구원 준비하고 싶은 그 자유, 진리를 연구하고 깨닫고 싶은 그 자유, 옳은 말씀대로 실행을 하고 싶은 그 자유,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말씀대로 살고 싶은 자유, 이 세상을 발아래 밟고 이기고 싶은 그 자유, 이런 자유가 믿는 사람들의 자윱니다. 이게 참 자윱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의 종의 모습은 무엇인가. 믿는 사람들이 종노릇하는 것은 내가 종된 거기서 자유하려면 첫째가 종된 것을 알아야 된다 그랬는데, 내가 종된 그 사실을 아는 것.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게 종 되는 것인데, 죄 지으면 종된건데 그러면 죄에서 자유하려면 죄가 뭔지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 죄냐. 죄는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게 죈데, 어떤 것이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냐.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해서 아침 먹고 학교 가고 출근하고 또 장사하러 가고 자기 근무처로 가고 하루종일 살고 사람 만나고 일처리 하고 이런 저런 자기 생활하고 저녁에 돌아와서 씻고 저녁 먹고 좀 있다가 잠드는 그 하루 잠자는 시간 포함해서 24시간 그 중에서 내가 하루 24시간 사는 중에서 내 생활에 죄 짓는 생활은 없느냐.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죄 짓는 생활은 없느냐. 뚜렷하게 드러나는 계명 어기는 생활은 없느냐.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도 내가 양심 어기는 그런 생활은 없느냐. 하나님에게 욕 된 생활하는 그런 생활은 없느냐. 나와 다른 사람 신앙에 손해 끼치는 그런 생활은 없느냐. 죄가 뭔지를 알아야 자기가 종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아는 사람들이 보니까 종노릇한다 그래서 갑갑해서 못 살겠다 그러는데 모르니까 그거는 모르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니까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겁니다. 마음껏 자유롭게 평생을 다 살고 자손대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지금 북한 같은 나라도 외부에서 그래도 그 나라 국민들의 대다수는 아무런 불편없이 그냥 사는 겁니다 그대로. 의례히 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다. 이사는 함부로 못 가는 것이다. 그게 그들의 생활 인식에 박혀 있으면, 노예로 나서 노예로 살면, 종놈 기질, 종으로 살면 종으로 사는 게 정상입니다.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게 정상입니다. 그게 당연한거지 그게 왜 이상하냐? 그래 사는게 정상 아닌가? 주인이 기어 그러면 기어가는게 종된 사람들의 인식이고 그게 정상이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 기어가느냐? 주인이 기라는데? 주인이 기란다고 기냐? 주인이 기어라면 기어야지 그러면 어떡해? 너는 사람인데? 나는 종이잖아 종은 원래 그런거 아닌가?
자손 대대로 수십년 수백년 동안 그래 내려오면 그래 사는게 그들의 인식입니다. 그리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공부를 해서 말을 듣고 자세하게 들어서 사람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 너는 날 때부터 종이였느냐? 우리 아버지도 종이였고 어머니도 종이였는데- 그런데 너하고 저기 너를 부르는 사람하고 눈이 저 사람은 눈이 세 개냐? 너는 한 개밖에 없느냐? 너는 코가 없느냐? 너는 머리가 없느냐? 저 사람들은 밥을 안 먹고 금덩어리를 먹는다더냐? 그래가지고 하나씩 가르쳐서 그 속에 지식을 넣어줘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이성이 있는 것이고 감정이 있는 것이고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고 비판이 있는 것이고 자유성이 있는 것이고 너도 네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종노릇 하느냐 그래가지고 지식이 하나씩 들어가서 말하자면 깨고 나면 그때부터는 종노릇하면 죽어나는 겁니다. 못하는 겁니다 그러고나서는.
종노릇해도 그때부터는 죽지 못해 하지 억지로 하지 그때부터는 이제 종이 종이 아닌 겁니다. 그러면 종으로 부릴 사람은 종으로 못 부리지요 힘이 들어서.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세상에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되는지를 알고나면 자기가 종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 백성이다.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다. 이 세상은 천국 준비하는데 필요한 장소고 인생은 그 하나의 과정이다. 세상에 모든 것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영원한 천국 구원을 위해서 준비하라고 주신 이용물이고 도구다. 이거는 전부다 두고 갈 것들이다. 죽을 때 가져갈 것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 내 모든 것 다 쏟고 나면 마지막 숨 끊어지는 그 날에 날 구속하신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주님 날 위해서 모든 것 다 받쳐 죽으셨는데 나는 주님 주신 대속 다 던져버리고 생각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서 내 마음 좋은대로 내 기분대로 취미대로 감정대로 내 욕심대로 내 뜻대로 내 습성대로 또 이 세상만 바라보고 그렇게 살고 있으니 이게 믿는 사람이 할 짓이냐- 내 하늘나라 구원 준비는 어떻게 하느냐- 마지막 심판은 어떻게 하느냐-
말씀을 가지고 하나 둘 따져가지고 알고나면은 그때부터는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지 못하고 자유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가정에 가족들 먹여 살려야되니까 붙들려서 가족들에 메여서 할 수 없이 직장에 매여서 사업에 매여서 그걸 하기는 해야 됩니다. 성경을 봐도 직장도 가져야 되고 업도 가져야 되고 돈도 벌어야 되고 책임 의무도 해야 되고 하기는 해야 되는데 여기 매여있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주일 자유도 없고 예배 자유도 없고 성경 읽고 싶어도 시간이 나야지요. 산기도 한 번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납니까. 심방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납니까. 한번 인생을 돌아보고 명상 해보고 싶어도 바빠가지고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그러면 하루종일 뼈빠지게 해도 감당하기 어렵잖습니까? 윗사람 눈치봐야 되지요. 밑에는 치고 올라오지요. 동료들과 경쟁을 하지요. 잘못하면 권고사직 받아야되지요. 피가 마르는 직장생활을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 생활 하는 그 속에서 믿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알고나면 이런 생활 이걸 안 할 수는 없고 이걸 하다 보니까 완전히 참 하늘나라 사람이 아니고 세상 사람 다 됐으니까 문제는 문제다. 그래가지고도 눌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욕심 하나 꺾지 못하면 내가 믿는 사람이 욕심 하나 꺾지 못해서, 습성 하나 꺾지 못해서, 취미 하나 꺾지 못해서 그래가지고 종된 그것에게 눌려서 종노릇 하고나면 마음에 가책을 받아서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은 종이 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종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고 내가 이래 살아서는 안되는 건데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자유, 진리를 향한 자유, 옳은 생활하는 자유, 주님 대속을 입고 사는 자유, 이 대속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이 자유, 이런 자유로 살아야 되는데 왜 나에게는 이런 자유가 없는 것인가 탄식도 되고 그래서 하다 보면 이면 저면 다 생각하니까 던져버릴 수도 없고 박차고 나올 수도 없고 하기는 해야 되겠고 눌리기는 눌리고 그래가지고 하루하루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으로 그래도 그 중에서라도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바로 믿으려고 애를 쓰는 한쪽에 눌리고 애를 쓰고 그래가지고 사는 사람이 진리를 그래도 깨달아 아는 믿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입니다. 거기서 자유 하는 사람은 참 보통 아니지요.
그래서 자유라는 것은 신앙의 자유, 교회 자유, 양심 자유, 신앙의 자유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뭐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합니까? 이 세상에서 민족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됩니다 세상에서도. 자유를 쟁취하려면 그래서 우리나라도 자유를 부르짖으며 죽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의 여러면을 다 생각을 하지만은 장점이 많이 있는 거지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자유가 있습니다.
신앙 자유, 교회 자유, 양심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가는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는 자유는 없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는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아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그 자유를 주신 겁니다. 그 자유를 내가 지키고, 그 자유를 유지하고, 자유하는 생활을 하려면 십자가 지지 않고는 자유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찾아왔던 부자청년이 영생을 얻으러 왔다가, 구주 메시야를 찾아 왔다가, 주님 말씀 한 마디에 영생을 포기하고 구주를 배반하고 도망을 쳐버렸는데 그게 재물 따라 갔으나 재물이 끌고 간 것이 아니고 어떤 말로 표현 말하면 재물이 끌고 갔고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재물을 따라간 겁니다. 그거는 자기의 자유의사가 재물을 따라간 것이고 자기에게 주신 자기 자유성 가지고 자기가 재물을 취해갔는데 믿는 사람의 바른 생활 입장에서 볼 때는 그 사람은 재물의 종이 되었고 더 깊이 들어가보면 재물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자기 재물 욕심에 종이 되어서 그리 따라 간 겁니다. 그게 바로 종살이 한 겁니다. 그게 종입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고 그 말씀에 지혜와 능력에 놀랐는데 놀란 것을 유지 못하고 왜 버리고 주님을 배척을 했느냐? 그들 속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주관, 먼저 들어와 있는 기존 지식 그 기존 지식 주관 인간들에게 있는 세상으로 말미암은 그 지식에 눌러서 거기에 종이 되어가지고 구주 메시야를 배척하고 말았다 그말입니다. 이게 다 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후에 지금 강조하는 것은 종이라는 것은 종이 종된 사실을 모르면 그 사람은 자손 대대로 종노릇 밖에 못합니다. 종된 사람이 자유 얻는 첫째 조건은 종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믿는 사람으로 자유하려면, 믿는 사람답게 살아보려면 신앙생활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진리의 자유, 옳은 생활의 자유, 하나님을 향한 자유, 천국 구원의 자유, 영생복락을 위한 자유- 이 자유를 가지려면 내가 지금 어디 붙들려 종되어있는가 자기가 종된 그 사실을 알아야 이 자유를 쟁취할 수 있고 얻을 수 있고 그 다음 그 자유 얻는 실제 생활에서는 십자가를 져야 되지 그 사실 모르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종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물며 종된 사실을 알지도 못하면 지식적으로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면 종된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거는 까마득한 겁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젭니다. 모르면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세상 사는 생활은 어떻게 살아 믿는 생활인가? 이걸 아는 것이 자유하는 생활의 가장 첫째 조건이 되겠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천국 백성이, 하룻밤 나그네 세상 모든 것이 다 풀 같고 풀의 꽃 같은 세상 모든 것, 마지막 세상 떠날 때 다 두고 갈 것, 세월 속에 늙어지고 쇠해지고 마지막에 약해져서 죽어지는데,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그날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니까 그날그날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기에 만족을 하고 종된 생활하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리 살면 1년이고 10년이고 평생 그리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알고나면 믿는 사람이 괴롭습니다. 고통스럽니다.
생각해보면 다 아시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종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달아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나는 자유 생활 하고 있는가? 나는 종으로 살고 있지 아니한가? 이걸 알아야 출발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걸 느껴야.
좀 더 올라가서 기본적으로는 자유생활 하지만은 자기 생활에 들어가면 어떤 사람은 욕심에 붙들려서, 욕심도 오만 욕심이 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에 붙들려서, 취미에 붙들려서, 자기 악습에 붙들려서, 자기 성질 하나에 붙들려서, 오만 것들에게 붙들려서 양심에 자기 양심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게 되고 양심이 하라는 걸 하지 못하게 되고 말씀에 어긋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양심을 그만 밟아 뭉개고 그 욕심대로 습성대로 취미대로 거기 끌려가고 딸려가고 종처럼 끌려가는 이런 생활 할 때 믿는 사람은 심히 괴롭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유롭습니까? 마음의 평안이 많이 있습니까? 이런 것이 없고, 드러나게 하나님 말씀에 어긋남이 없고 내가 아는 대로 말씀에 어긋남이 없고 양심에 가책되는 것이 없는 생활을 어느 일정기간 해나갈 때 그 입에서는 찬송이 절로 나옵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기쁨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맑고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 그런 사람이 되고 구름이 끼지 않고 맑으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서 거기 하나님의 지혜도 능력도 사랑도 진실도 거룩도 그런 역사가 그를 통해서 나오게 되고 그러다가 또 다시 그만 또 넘어지고 나면 또 구름이 끼고 탁해져서 어두워지고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이 되고- 이 생활 반복되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그대로 말씀에 어긋남이 없이 양심에 가책됨이 없는 그런 생활을 계속 해나가는 그것이 1호 명령, 금령을 지켜서 그 생활로 계속하므로 그게 믿음이 자라가는 겨자씨 믿음의 생활이고 그래가지고 자라나가면 겨자씨는 씨 중에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돼서 사람인데 사람의 지능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빛이 되고 하나님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 되는 그것이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번 더 결론을 말하면 종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종된 줄 알고 자유하기를 원해야 됩니다. 알아야 자유를 원하지요. 가치를 알아야 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소원이라는 것은 지식에서 나오는 겁니다. 알아야 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종된 줄 알고 자유해야 될 줄 알아야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고 나면 내가 무엇에 붙들려 종이 되었는가. 나를 붙든 종 삼고 있는 원수를 알아야 됩니다. 나는 요놈에게 붙들렸구나 나는 이것에게 붙들렸구나.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평생을 나를 붙들고 모질게 붙들고 도무지 놓아주지 않는 그놈을 알고 그놈이 원수라는 것을 알고 평생 거기서 벗어나기를 소원하고 노력하는 요게 되어야 됩니다. 알아도 세 번째 사람의 힘으로는 자유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쉬지 않고 기도하고 늘 깨어 기도하고 자기 있는 힘 다해서 벗으려 기도하고 요래 되어질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해서 자유 얻었듯이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 이미 얻은 자유를 가지고 또다시 종노릇하는데 거기서 요 다섯가지를 가질 때 또 현실생활에 종노릇에서 벗어나 자유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다.
제목: 종됨을 알고 자유하기를 원하자
요점:
1. 오전 요약 문답 복습
2. 종과 자유
- 이스라엘의 430년 종 노릇, 그들의 마음과 태도들
-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것, 종은 자유가 없는 것
- 종됨의 비참, 가련함
3. 자유의 범위
- 지식이 없으면 자유도 모르는 것
- 종되어도 종된 줄 모르면 자유 역시 모르는 것
- 독재 정권하에서 모르는 사람은 그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
- 지식 있고 아는 사람일수록 독재를 느끼고 자유를 갈망
- 종됨을 아는 것이 가장 우선, 종 됨을 모르면 자유도 없는 것
4. 기독자의 참 자유
-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기독자의 자유는 죄에서, 불의에서, 불목에서 자유하는 것
- 이 자유를 주시기 위해 주님이 십자가 죽으심을 대신하신 것
5. 자유하려면
- 죄, 불의, 불목을 알지 못하면 종됨은 당연히 모르는 것
- 알아도 그대로 살지 못하면 역시 종된 것
- 종됨을 알고 자유를 원하면 십자가는 필연
- 세상 자유도 쟁취하려면 피를 흘려야 하듯이
- 신앙 자유는 쟁취하려면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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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내용)
20130609 주후
출애굽기 9:13-16
오전에 말씀을 간단하게 문답의 내용 가지고 한번 복습을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몇 년 동안 종노릇 했습니까? 430년 종노릇을 했습니다. 종이 무엇인가. 종은 몇 가지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종이라 말은 한말로 말하면 자유가 없는 자고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자유가 없는 자가 종입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자유 없는 종살이였습니다. 그들은 자유가 없었습니다. 종살이였습니다.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종류를 한번 생각해보니까 이거는 꼭 그들만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종 되었다 그러면 종 된 사람의 모습은 세 종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종 되어 있는 그 사실을 모르는 겁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이겁니다. 자기가 종이 되어있지만은 자기가 종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애굽 사람처럼 애굽화된, 애굽 사람화된 사람입니다.
세상으로 말하면 좋은 면이 있습니다. 아주 말하자면은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생존력이 뛰어난 그런 사람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세상 민족과 민족끼리의, 침략자와 침략 당한, 그 민족 입장에서 볼 때 이 사람들은 넓은 범위로 다 그리 될 수 밖에 없지만은 민족적인 그런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사람들은 다 매국노들이고 반역자들입니다. 두 번째는 종 되어 있는 줄 알지만은 팔자다 하고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애굽에 들어온지가 430년이고 우리 조상 요셉의 믿음으로 (그들이 믿음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실력으로 인해서 잠깐 대우를 받았지만 세월 속에 우리는 이 애굽 나라 사람이 아니고 이 애굽 본토 이 민족들의 들어온 우거하는 나그네이기 때문에 종이 될 수 밖에 없는거다 그래서 차마 애굽화되지는 않고 그들과 동화되지는 않아도 그러나 어쩔 수 없는 팔자다 하고 운명이다 하고 체념을 하고 그대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자식들 중에서 잘난 자식이 나서 “왜 우리가 종살이를 해야됩니까 들고 일어납시다” 그러면 “야 이놈아 모 난 돌이 정을 맞는 법이다 그냥 쿡 쳐박혀 오래 사는 게 좋은 거다“ 그러면서 눌러가지고 못 일어나게 그래 만들고 체념을 하고 그래 사는 사람들이 아마 대다수였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중에서 모세 같은 사람은 속에서 불이 나서 민족을 구원하고 싶은데 힘이 없으니까 아마 모세도 속에 새카맣게 타들어 갔을 겁니다. 그래도 체념을 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실력으로 안되니깐 그리 살 수 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크게 세종류에 종된 사람들 모습을 생각해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가장 자유를 원한 사람은 아마도 모세가 아니였을까 그래서 인도자가 되었고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리 생각해봤습니다. 근데 이런 이스라엘의 그 모든 애굽과의 관계는 그림자적인것이고 그때 그들은 그것이 그들 현실이였고 지금도 이스라엘에게는 그 모든 사실은 역사입니다 얼마나 자세히 기록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은 역사고. 그러나 그 역사가 오늘 신령한 신약시대 우리들에게는 그게 그때는 그림자였고 오늘 우리를 가르치기 위하고 기르기 위한 한 과정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거쳐 오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실상은 우리들이다 그러므로 그때 이스라엘은 오늘로 말하면 우리 믿는 성도들이고 또 그때의 이스라엘이 살고 있었던 애굽이라는 나라는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 넓고 넓은 세상이고 그때 애굽 나라 왕이 됐던 바로는 오늘 우리 믿는 사람을 미혹을 하고 온세상을 주장하는 마귀가 그때 바로고 그때 바로의 신하들과 백성들 신민들은 오늘로 말하면 이 세상의 불신자들 불신 사람과 불신의 모든 세력들 그들이 그때 애굽 신민들과 같은 겁니다.
이런 말도 지금은 우리가 자유롭게 하지만은 앞으로 시대가 변하면 어찌 될지 모릅니다. 종교는 종교로서의 특성이 있는 것이고 종교는 그 종교에서 믿는 그런 경전이 우리는 성경이지요 이게 있는 것이고 그 자기 믿는 그 교리와 신조를 따라 양심을 지켜나가는 그게 종교고 그 종교와 그 종교에서 믿는 그런 경전과 그대로 믿을 수 있는 그 신앙의 양심 자유를 허락하는 게 자유 세계고 종교의 자윤데 지금 종교 자유가 있다하지만은 앞으로 전도 못하게 하는 것은 종교 탄압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종교 탄압입니다. 이거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이런 종교 탄압을 정책적으로 해도 이 세상은 진리를 따라가지 아니하고 옳은 걸 따라가지 아니합니다.
세상은 뭘 따라갑니까? 이 세상은 무엇을 따라갑니까? 다수를 따라갑니다. 다수를 따라가므로 많은 사람이 기독교 경전이 너무 배타적이고 그 교리신조가 너무 심하고 그대로 지키는 게 양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 입장과 국가적인 이런 면을 생각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제재를 가해야된다고 말이 나오면 법을 만들어서 제재를 가하면 합법이 되니까 그때는 일방적으로 탄압을 당해도 뭐라고 말을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 또 이제 똑똑한 사람들은 그 헌법 위헌횝니까? 위헌 여부를 올려서 또 하겠지요. 어쨌든 세상은 다 그런겁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옛날 이스라엘 백성 시대 때 그때 애굽은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그때 바로는 오늘 세상을 붙들고 있는 마귀고 그 때 바로의 신하와 백성들은 오늘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불신의 세력들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나와가지고 모세의 인도를 따라서 처음으로 건너간 홍해바다는 뭐라 그랬습니까? 학생들 홍해 바다는 뭐라고요? 오전에 문답 안했습니까? 홍해바다는 중생 혹은 세례. 또 광야는 교회 생활입니다. 광야 생활은 교회 생활. 요단강은 죽음을 의미하고 가나안은 천국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세상같은 말하자면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바다를 건너서 광야 생활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은 오늘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마귀에게 붙들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고 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 대속의 공로로 이 세상에서 나와서 중생이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이 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서 세례 받고 중생 되고 세례 받고 교회 생활을 거쳐서 그리고 마지막 죽음을 넘어서 천국에 들어가는 이런 과정을 그림자적으로 구약 이스라엘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도를 하신 겁니다. 그래서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 생활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무엇인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 생활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무슨 생활입니까? 구약 이스라엘의 애굽생활은 오늘로 말하면 우리들이 믿기 전 세상 생활입니다. 예수 믿기 전 세상 생활이 출애굽 전 그들의 애굽 생활입니다.
이런 거는 성경이고 변하지 않는 도리기 때문에 이런 거는 외워놔야 됩니다. 출애굽 전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오늘 우리 예수 믿기 전 세상 생활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전 애굽생활은 그들은 어떤 생활이었는가? 종살이 였습니다. 종노릇 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출애굽 전 이스라엘의 애굽생활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생활이 아니었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바로를 위한 것이었고 애굽 바로의 신하들과 애굽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고 애굽 나라 건설을 위한 거기에 동원된 종노릇하고 종살이 하는 것이 애굽에 사는 이스라엘의 모든 생활입니다.
예수 믿기 전, 믿는 사람들의 믿기 전 세상 생활, 믿기 전에 예수 믿기 전 믿는 사람들의 믿기 전 모든 생활은 전부다 본인이 알던지 모르든지 전부다 종노릇하는 생활입니다. 종살이입니다. 종노릇 종살이. 아마 거의 대개는 모르고 삽니다. 지금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는 출애굽은 뭐냐. 그거는 종된 것에서 해방 받는 자유 생활의 출발이지요. 430년 종노릇에서 해방 받는 자유 생활의 출발입니다. 그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신앙 출발입니다. 역시 종노릇한데서 해방되어서 자유 생활에 출발하는 것이 믿기 시작하는 신앙 생활의 출발입니다. 그런데 종된 데서 자유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이게 오늘 말씀에 가장 중요한 거였는데 오전예배 때. 첫째는 뭘 알아야 됩니까? 종된 사실을 알아야 되고 알고 자유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이게 첫째 조건입니다. 종된 사실 알고 종의 비참함을 알고 거기서 자유를 원하는 이 사람이 되어야 종노릇에서 해방 받아 자유를 할 수 있고 두 번째는 자기를 종으로 삼고 있는 주인 아닌 가짜 주인, 내가 종 되어 있고 나를 붙들어 매어 속박하고 있는 내 대적 원수 그놈이 무엇인가 나를 붙들고 있는 적을 두 번째 알아야 되고, 세 번째는 이 둘이 되어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자유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네 번째는 반드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고, 그러면 다섯 번째 이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자유하려면 이런 모든 걸 알고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첫째는 간절히 매달려 기도해야되고 그리고 하나님은 심부름꾼이나 비서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종된 데서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을 오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오후에 한번 더 생각해보면 종이 무엇인가? 종이란 이스라엘이 430년을 애굽에서 종노릇 종살이 했는데 종이 무엇이냐. 종이라는 것은, 종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종의 반대말은 주인입니다 주인. 그러면 종은 주인이 아니란 말이고 주인에게 붙들려 매였다는 말이고, 구속되어 있다는 말이고, 그러기 때문에 종이라는 것은 자유가 없다는 말이고, 자유라 말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지를 못한다 그 뜻입니다.
반대로 주인은 자기가 주인이니까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는 겁니다. 자유가 있고 자기 원대로 할 수 있는 그게 주인입니다. 종은 자유가 없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못하니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종되면 참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근데 거기도그다음단계 들어가면 좀 묘한 것이 있습니다. 종은 비참합니다 가련합니다. 종은 주인만을 위해서, 그 주인이 누구든지 그 종이 누구에게 종 되었던지 무엇에게 종이 되었던지 종은 자기를 붙들어 매고 있는 주인을 위해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종입니다. 저를 위한 생활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종이 주인을 잘 만나면 굉장히 좋은 겁니다. 종은 무조건 나쁜 거 아닙니다. 자유라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굉장히 좋은 거지요. 진리의 종은 좋은 겁니다. 영감의 종도 좋은 겁니다. 의의 종, 선의 종, 대속의 사랑의 종, 진실의 종, 옳은 것에 종된 것은 좋은 겁니다. 이런 좋은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죄의 종, 마귀의 종, 사망의 종, 자기 욕심의 종, 습성의 종, 세상 돈의 종, 이런 것에 종된 것은 가련합니다.
어쨌든 종이란 것은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는 것은 자기 생활을 못하는 겁니다. 자기를 위해서 자기 미래나 현재나 자기 명예나 영광이나 존귀나 자기 자신의 무엇을 위한 생활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것이 종이고 자기를 종 삼고 있는 그 주인이 도둑놈이면 그 도둑놈을 위해서 평생을 다 받쳐야 되는게 종의 가련한 신세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잡아먹고 36년 동안 종으로 부릴 때 한국 조선 사람 한국 사람들은 36년 생활에 종되어 사는 사람들은 그들의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공부도 전부 일본을 위해서 합니다. 뼈 빠지게 농사 지으면 일본 사람들이 전부 다 가져가버립니다. 솥뚜껑이고 냄비뚜껑이고 쇠라는 쇠는 일본놈들이 전쟁하기 위해서 다 약탈해 가버립니다. 젊은, 나아가지고 모든 것 다 받쳐 길러놓으면 일본놈들이 저거 군인 총알받이 하려고 모조리 다 끌고가버립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그들이 우리나라 종이 되어있고 힘없는 조선이 나라를 빼앗겼기 때문에 종되어있으니까 원수놈을 위해서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게 종의 신세입니다.
내가 강도의 종이 되어있으면 그는 강도를 위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종이란 것은 자기를 붙들고 있는 그 주인을 위해서 살 수 밖에 없는게 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온 천하에서 택함 받은 선민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시니까 우리가 아브라함의 종이라. 아브라함의 종이 애굽나라 종 되었었고 그때도 로마 식민지 종이 되있는데 그들의 자부심은 우리가 비록 껍데기로는 남의 나라 식민지에 있어도 우리 자부심은 우리의 선민 사상은 우리는 온 세상에 가장 탁월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종이 아니다 그들 선민 사상입니다. 아주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그들도 모르게, 한마디로 주님이 탁 꺾어 말씀하시기를 너것들이 자유하는 사람이냐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그들은 전부 죄의 종입니다. 외식의 종이였습니다. 돈의 종이였고 그 시대 전부 껍데기의 종이 되어 있는데 그조차도 그들은 몰랐습니다. 종이 되면 어쨌든 그 종된 주인을 살 수 밖에 없는 게 종의 신세입니다. 가장 비참하고 가련한 것이 종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종은 불쌍하고 가련합니다.
세상글 굳이 역사의 세상글 안봐도 노예제도 이런 것 생각 안해도 그런 걸 근거해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종은 불쌍하다 가련하다 종살이는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 인류역사에 자유를 부르짖고 자유를 찾아서 싸운 흘린 피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요. 전부 자기 원하는대로 자기 속에 있는 자유성 가지고 그대로 살고 싶어서 모두들 피를 흘리고 싸우고 전쟁을 하고 그랬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자유국가가 안됐고 만약에 공산화가 되었으면 일당독재 공산당 독재취하에서 자유 없는 그런 생활을 북한처럼 했겠지요.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자유를 주셨으니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종과 자유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라는 것은 그 범위를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자유의 범위. 자유면 다 자유냐. 그 자유도 범위가 있어서 지식에 따라서 자유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보니까 종노릇 하고 있는데 종노릇하는 그 자기는 종노릇 하는 줄 모릅니다.
애굽에 살면서 애굽 사람과 붙어서 패장이 되어서 애굽 사람들 시키는대로 하고 애굽 사람들이 던져주는 요즘은 돈 몇 푼이겠고 그때로 말하면 고기 몇 점이나 고기 국물이나 이런 떡 부스러기 몇 개 던져주고 너거 동족 탄압해서 어쨌든 부려서 일을 시켜라 하니까 그리 한 그거는 민족을 배반하고 애굽에 붙어 동족 팔아 먹고 패장 노릇한 그 사람들은 자유 아닌가요? 그 종노릇 하는 것도 자윱니다. 그거도 자유의 범위 중에 하납니다. 내가 종노릇 하거나 말거나 그래서 민족들이 말하면 내가 종노릇 하거나 말거나 네가 무슨 상관이냐 내가 종노릇 하겠다는데. 자윱니다 그것도.
독재라는 것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이 세상 독재는 유한한 것이고 그게 치우쳤고 인간 자기 중심이라서 전체가 되지 못하니까 문제가 생기지만은 그러나 독재도 잘하고 그 독재가 멀리보고 전체보고 한시적인 그런 독재 필요한 독재는 대단히 좋은 면도 없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그럽니다. 기독교는 독재주의입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잘 구별해야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 군사정권 시절, 소위 말하는 이승만 자유당 시절 끝나고 제 2공화국 윤보선 대통령 시절 아주 엉망진창 나라 다 말아먹은 그 시절 끝나고 제 3공화국이 박대통령 시절이지요 5.16 혁명으로. 그때부터 오랜 세월을 박대통령은 독재를 했습니다. 독재라는 말은 자유를 제한한다 그뜻입니다. 독재했습니다. 그때에 박대통령이 독재정치하고 나라 경제를 살리는데 그때 한 삼천만명 좀 넘었을까요 좀 그랬을까요. 그때 삼천만명 민족중에서 국민중에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다 환호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근데 그중에서 그래서 독재라 말하는데 독재라는 그 실감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도 그 시절을 살았지만은 나이도 어렸고 많이 배우지를 못하니까 독재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습니다. 이사 마음대로 갈 수 있고 공부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 마음대로 벌 수 있고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거 없어 못 먹지 다 먹을 수 있고 다 입을 수 있고 공부 마음껏 할 수 있고 예수 마음대로 믿을 수 있고 다 할 수 있는데 무슨 독재냐 자윱니다.
그런데 그 때 공부를 많이 한 지식층은 내 입을 가지고 내가 말하겠다는데 왜 입을 막냐? 나라 정책 이게 틀렸다. 왜 이런 자유가 없냐? 왜 신문 방송을 가따가 정부에서 이렇게 다 사사건건 간섭을 하냐 이거는 언론의 자유가 없는 것 아니냐. 일반 서민들은 모르거든요? 모르면 자윱니다. 근데 배워서 아는 사람들은 자유라는 것은 이것도 있어야 자유지 왜 이거는 막느냐? 나라의 정권자가 잘못하면 잘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왜 말 한다고 감옥에 집어넣어가지고 두드려 패느냐 자유 없으니 독재 아니냐. 많이 배워서 많이 아는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은 자윤데 그들은 그게 자유가 없었습니다 독재였습니다. 하나 예를 들면은 그런 겁니다.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은 자윤데 어떤 사람은 그 자유가 자유가 아니고 종노릇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박대통령 시절, 전대통령 시절, 박대통령 정치가 17년 정치가 끝나고 80년대가 되니까 80년대 되어서 그때 그게 제가 세상을 잘 몰라서. 이름하여 5월의 봄입니까? 5월의 봄? 그런 말들이 많았습니다. 드디어 군부독재 박대통령 유신독재가 끝나고 이 나라에 봄이 오는가 싶었는데 그만 전대통령의 군홧발이 모조리 짓밟아 버리니까 이를 뽀독뽀독 갈고 있지요. 그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도 대다수 국민들은 독재인지 뭔지 몰랐고, 도둑놈들 많은 세상에 도둑놈들 다 잡아가버리니까 참 살기 좋다- 흉악한 살인 강도가 너무 많은데 모조리 다 잡아가버리니까 부작용 폐단 없는 거 없지만은 살기 좋다- 많은 사람은 피부로 느꼈고 그러나 그중에 또 잘난 사람들은, 대통령 하고 싶은 사람들은 너무 너무 독재가 심하다 그래가지고 모두 숨막혀서 못살겠다 그런 신화 그런 소설 그런 영화 그런게 많이 나와 있지요. 그들은 아니까 그런겁니다.
우리는 어때야 되는가? 모르고 종노릇 해야 됩니까 알아야 됩니까? 우리는 모르고 종노릇하지 않아야 되고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런 판도 그 너머 들어가보면 또 다른 세계가 또 있으니까 거기까지도 알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유의 범위라는 것은 자기 지식의 범위 따라서 자유도 느낌적으로 그리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뭘 말씀 드리는고 하니 오늘 지금 자유를 말씀드리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문제는 자유하고 있느냐? 믿는 사람이 자유해야 될 그 자유, 이 세상 자유는 있어봐야 그 자유는 좋은 자유도 아니고- 내가 도둑질 하거나 말거나 내 자유 아닙니까? 그거는 막아야 되겠지요. 그거는 막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나 여자가 되고 싶습니다. 성전환 해야 되겠습니다. 나라 법에 맞습니까? 그것 막으면 앞으로 법에 걸립니다. 하거나 말거나 남자가 여자 되거나 말거나 여자가 남자 되거나 말거나 네 자유다. 할 짓입니까 그게? 자유로 그냥 둬야 할 짓입니까?
아이를 베가지고 낳기 싫다고 낙태하거나 말거나 (아직까지 우리나라 낙태 허락 안하지요-) 하거나 말거나 자유다 던져 놔야 되겠습니까? 좋은 자윱니까? 초등학생들이 남학생 여학생 짝짓고 둘이 손잡고 돌아다니고 못된 짓 하거나 말거나 그들의 자유다. 좋은 자윱니까? 담배를 피거나 말거나 자유지. 좋은 자윱니까? 자유도 좋은 것이 있고 제한이란 것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 자유는 이 자유나 저 자유나 이래 막으나 저래 막으나 다 거기서 거기고 다 살펴 들어가보면 내나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고 비슷비슷한 거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자유하는 사람으로 살아야 되겠는데 참 자유자로 살고 있는가-
갈라디아서 5장 성경 한 번 찾아보실까요 잠도 깨고.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면, 5장 1절 우리 같이 한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하려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는 자유자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가 어떤 자유라야 되느냐. 그 자유가 초등학생들이 나 어른들 흉내내서 담배 피고 싶으니까 자유를 주십시오. 막아야 되겠지요? 나 남학생 사귀고 여학생 사귀고 싶으니까 자유를 주십시오. 막아야 되겠지요? 나 한잔 하고 싶으니까 자유를 주십시오. 막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강물에서 한강, 부산으로 말하면 영도대교- 영도다리에서 좀 뛰어내리고 싶은데요. 막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자유들이 있는데 자기를 해롭게 하는 자유, 자기를 망치는 자유, 손해되는 그런 자유는 자유가 아닌 거지요.
믿는 사람으로 사는 자유, 자유로 사는 자유, 믿는 사람의 자유는 어떤 것이 자유냐. 믿는 사람의 자유는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그 말은 죄에서 자유를 주셨다 그말입니다. 죄에 붙들려 죄가 시키는 대로 죄를 짓는 그 죄를 안 짓고는 견딜 수 없는, 죄가 뭔지 알지도 못하고 죄에 붙들려 사는 거기서 자유해서 죄를 알고 죄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게 우리 자윱니다.
또,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자기 마음대로 주장대로 사는 거기서 벗어나서 의롭게 사는 자유를 주신 게 우리의 자윱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게 우리의 자윱니다. 하늘나라 소망으로 사는 게 우리 자윱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은 자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섬기고 싶은 그 자유, 하늘나라를 알고 천국 구원 준비하고 싶은 그 자유, 진리를 연구하고 깨닫고 싶은 그 자유, 옳은 말씀대로 실행을 하고 싶은 그 자유,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말씀대로 살고 싶은 자유, 이 세상을 발아래 밟고 이기고 싶은 그 자유, 이런 자유가 믿는 사람들의 자윱니다. 이게 참 자윱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의 종의 모습은 무엇인가. 믿는 사람들이 종노릇하는 것은 내가 종된 거기서 자유하려면 첫째가 종된 것을 알아야 된다 그랬는데, 내가 종된 그 사실을 아는 것.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게 종 되는 것인데, 죄 지으면 종된건데 그러면 죄에서 자유하려면 죄가 뭔지 알아야 됩니다. 무엇이 죄냐. 죄는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게 죈데, 어떤 것이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냐.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해서 아침 먹고 학교 가고 출근하고 또 장사하러 가고 자기 근무처로 가고 하루종일 살고 사람 만나고 일처리 하고 이런 저런 자기 생활하고 저녁에 돌아와서 씻고 저녁 먹고 좀 있다가 잠드는 그 하루 잠자는 시간 포함해서 24시간 그 중에서 내가 하루 24시간 사는 중에서 내 생활에 죄 짓는 생활은 없느냐.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죄 짓는 생활은 없느냐. 뚜렷하게 드러나는 계명 어기는 생활은 없느냐.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도 내가 양심 어기는 그런 생활은 없느냐. 하나님에게 욕 된 생활하는 그런 생활은 없느냐. 나와 다른 사람 신앙에 손해 끼치는 그런 생활은 없느냐. 죄가 뭔지를 알아야 자기가 종인지 아닌지를 알 수가 있는 겁니다. 아는 사람들이 보니까 종노릇한다 그래서 갑갑해서 못 살겠다 그러는데 모르니까 그거는 모르는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니까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겁니다. 마음껏 자유롭게 평생을 다 살고 자손대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겁니다.
지금 북한 같은 나라도 외부에서 그래도 그 나라 국민들의 대다수는 아무런 불편없이 그냥 사는 겁니다 그대로. 의례히 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다. 이사는 함부로 못 가는 것이다. 그게 그들의 생활 인식에 박혀 있으면, 노예로 나서 노예로 살면, 종놈 기질, 종으로 살면 종으로 사는 게 정상입니다.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게 정상입니다. 그게 당연한거지 그게 왜 이상하냐? 그래 사는게 정상 아닌가? 주인이 기어 그러면 기어가는게 종된 사람들의 인식이고 그게 정상이지 이상하지 않습니다. 왜 기어가느냐? 주인이 기라는데? 주인이 기란다고 기냐? 주인이 기어라면 기어야지 그러면 어떡해? 너는 사람인데? 나는 종이잖아 종은 원래 그런거 아닌가?
자손 대대로 수십년 수백년 동안 그래 내려오면 그래 사는게 그들의 인식입니다. 그리 되는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공부를 해서 말을 듣고 자세하게 들어서 사람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 너는 날 때부터 종이였느냐? 우리 아버지도 종이였고 어머니도 종이였는데- 그런데 너하고 저기 너를 부르는 사람하고 눈이 저 사람은 눈이 세 개냐? 너는 한 개밖에 없느냐? 너는 코가 없느냐? 너는 머리가 없느냐? 저 사람들은 밥을 안 먹고 금덩어리를 먹는다더냐? 그래가지고 하나씩 가르쳐서 그 속에 지식을 넣어줘서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 이성이 있는 것이고 감정이 있는 것이고 희로애락이 있는 것이고 비판이 있는 것이고 자유성이 있는 것이고 너도 네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종노릇 하느냐 그래가지고 지식이 하나씩 들어가서 말하자면 깨고 나면 그때부터는 종노릇하면 죽어나는 겁니다. 못하는 겁니다 그러고나서는.
종노릇해도 그때부터는 죽지 못해 하지 억지로 하지 그때부터는 이제 종이 종이 아닌 겁니다. 그러면 종으로 부릴 사람은 종으로 못 부리지요 힘이 들어서.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세상에 사는 것이 어떤 모습이 되어야 되는지를 알고나면 자기가 종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 백성이다. 이 세상은 나그네 세상이다. 이 세상은 천국 준비하는데 필요한 장소고 인생은 그 하나의 과정이다. 세상에 모든 것은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영원한 천국 구원을 위해서 준비하라고 주신 이용물이고 도구다. 이거는 전부다 두고 갈 것들이다. 죽을 때 가져갈 것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여기에 내 모든 것 다 쏟고 나면 마지막 숨 끊어지는 그 날에 날 구속하신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에 주님 날 위해서 모든 것 다 받쳐 죽으셨는데 나는 주님 주신 대속 다 던져버리고 생각지 아니하고 이 세상에서 내 마음 좋은대로 내 기분대로 취미대로 감정대로 내 욕심대로 내 뜻대로 내 습성대로 또 이 세상만 바라보고 그렇게 살고 있으니 이게 믿는 사람이 할 짓이냐- 내 하늘나라 구원 준비는 어떻게 하느냐- 마지막 심판은 어떻게 하느냐-
말씀을 가지고 하나 둘 따져가지고 알고나면은 그때부터는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지 못하고 자유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가정에 가족들 먹여 살려야되니까 붙들려서 가족들에 메여서 할 수 없이 직장에 매여서 사업에 매여서 그걸 하기는 해야 됩니다. 성경을 봐도 직장도 가져야 되고 업도 가져야 되고 돈도 벌어야 되고 책임 의무도 해야 되고 하기는 해야 되는데 여기 매여있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주일 자유도 없고 예배 자유도 없고 성경 읽고 싶어도 시간이 나야지요. 산기도 한 번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납니까. 심방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납니까. 한번 인생을 돌아보고 명상 해보고 싶어도 바빠가지고 직장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그러면 하루종일 뼈빠지게 해도 감당하기 어렵잖습니까? 윗사람 눈치봐야 되지요. 밑에는 치고 올라오지요. 동료들과 경쟁을 하지요. 잘못하면 권고사직 받아야되지요. 피가 마르는 직장생활을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런 생활 하는 그 속에서 믿는 사람이 진리를 깨닫고 알고나면 이런 생활 이걸 안 할 수는 없고 이걸 하다 보니까 완전히 참 하늘나라 사람이 아니고 세상 사람 다 됐으니까 문제는 문제다. 그래가지고도 눌리고. 어떤 사람은 자기 욕심 하나 꺾지 못하면 내가 믿는 사람이 욕심 하나 꺾지 못해서, 습성 하나 꺾지 못해서, 취미 하나 꺾지 못해서 그래가지고 종된 그것에게 눌려서 종노릇 하고나면 마음에 가책을 받아서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은 종이 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종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고 내가 이래 살아서는 안되는 건데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자유, 진리를 향한 자유, 옳은 생활하는 자유, 주님 대속을 입고 사는 자유, 이 대속의 사랑을 전하고 싶은 이 자유, 이런 자유로 살아야 되는데 왜 나에게는 이런 자유가 없는 것인가 탄식도 되고 그래서 하다 보면 이면 저면 다 생각하니까 던져버릴 수도 없고 박차고 나올 수도 없고 하기는 해야 되겠고 눌리기는 눌리고 그래가지고 하루하루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으로 그래도 그 중에서라도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바로 믿으려고 애를 쓰는 한쪽에 눌리고 애를 쓰고 그래가지고 사는 사람이 진리를 그래도 깨달아 아는 믿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입니다. 거기서 자유 하는 사람은 참 보통 아니지요.
그래서 자유라는 것은 신앙의 자유, 교회 자유, 양심 자유, 신앙의 자유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뭐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합니까? 이 세상에서 민족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됩니다 세상에서도. 자유를 쟁취하려면 그래서 우리나라도 자유를 부르짖으며 죽은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의 여러면을 다 생각을 하지만은 장점이 많이 있는 거지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자유가 있습니다.
신앙 자유, 교회 자유, 양심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가는게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는 자유는 없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는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아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그 자유를 주신 겁니다. 그 자유를 내가 지키고, 그 자유를 유지하고, 자유하는 생활을 하려면 십자가 지지 않고는 자유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 찾아왔던 부자청년이 영생을 얻으러 왔다가, 구주 메시야를 찾아 왔다가, 주님 말씀 한 마디에 영생을 포기하고 구주를 배반하고 도망을 쳐버렸는데 그게 재물 따라 갔으나 재물이 끌고 간 것이 아니고 어떤 말로 표현 말하면 재물이 끌고 갔고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재물을 따라간 겁니다. 그거는 자기의 자유의사가 재물을 따라간 것이고 자기에게 주신 자기 자유성 가지고 자기가 재물을 취해갔는데 믿는 사람의 바른 생활 입장에서 볼 때는 그 사람은 재물의 종이 되었고 더 깊이 들어가보면 재물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자기 재물 욕심에 종이 되어서 그리 따라 간 겁니다. 그게 바로 종살이 한 겁니다. 그게 종입니다.
예수님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고 그 말씀에 지혜와 능력에 놀랐는데 놀란 것을 유지 못하고 왜 버리고 주님을 배척을 했느냐? 그들 속에 있는 예수님에 대한 주관, 먼저 들어와 있는 기존 지식 그 기존 지식 주관 인간들에게 있는 세상으로 말미암은 그 지식에 눌러서 거기에 종이 되어가지고 구주 메시야를 배척하고 말았다 그말입니다. 이게 다 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후에 지금 강조하는 것은 종이라는 것은 종이 종된 사실을 모르면 그 사람은 자손 대대로 종노릇 밖에 못합니다. 종된 사람이 자유 얻는 첫째 조건은 종된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믿는 사람으로 자유하려면, 믿는 사람답게 살아보려면 신앙생활의 자유, 양심의 자유, 진리의 자유, 옳은 생활의 자유, 하나님을 향한 자유, 천국 구원의 자유, 영생복락을 위한 자유- 이 자유를 가지려면 내가 지금 어디 붙들려 종되어있는가 자기가 종된 그 사실을 알아야 이 자유를 쟁취할 수 있고 얻을 수 있고 그 다음 그 자유 얻는 실제 생활에서는 십자가를 져야 되지 그 사실 모르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종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물며 종된 사실을 알지도 못하면 지식적으로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면 종된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거는 까마득한 겁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젭니다. 모르면 아무것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세상 사는 생활은 어떻게 살아 믿는 생활인가? 이걸 아는 것이 자유하는 생활의 가장 첫째 조건이 되겠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천국 백성이, 하룻밤 나그네 세상 모든 것이 다 풀 같고 풀의 꽃 같은 세상 모든 것, 마지막 세상 떠날 때 다 두고 갈 것, 세월 속에 늙어지고 쇠해지고 마지막에 약해져서 죽어지는데, 모든 게 다 드러나는 그날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니까 그날그날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기에 만족을 하고 종된 생활하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리 살면 1년이고 10년이고 평생 그리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알고나면 믿는 사람이 괴롭습니다. 고통스럽니다.
생각해보면 다 아시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종된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깨달아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나는 자유 생활 하고 있는가? 나는 종으로 살고 있지 아니한가? 이걸 알아야 출발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걸 느껴야.
좀 더 올라가서 기본적으로는 자유생활 하지만은 자기 생활에 들어가면 어떤 사람은 욕심에 붙들려서, 욕심도 오만 욕심이 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에 붙들려서, 취미에 붙들려서, 자기 악습에 붙들려서, 자기 성질 하나에 붙들려서, 오만 것들에게 붙들려서 양심에 자기 양심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게 되고 양심이 하라는 걸 하지 못하게 되고 말씀에 어긋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양심을 그만 밟아 뭉개고 그 욕심대로 습성대로 취미대로 거기 끌려가고 딸려가고 종처럼 끌려가는 이런 생활 할 때 믿는 사람은 심히 괴롭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유롭습니까? 마음의 평안이 많이 있습니까? 이런 것이 없고, 드러나게 하나님 말씀에 어긋남이 없고 내가 아는 대로 말씀에 어긋남이 없고 양심에 가책되는 것이 없는 생활을 어느 일정기간 해나갈 때 그 입에서는 찬송이 절로 나옵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기쁨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맑고 밝고 명랑하고 쾌활한 그런 사람이 되고 구름이 끼지 않고 맑으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서 거기 하나님의 지혜도 능력도 사랑도 진실도 거룩도 그런 역사가 그를 통해서 나오게 되고 그러다가 또 다시 그만 또 넘어지고 나면 또 구름이 끼고 탁해져서 어두워지고 이런 생활을 계속 반복이 되고- 이 생활 반복되지 아니하고 깨끗하게 그대로 말씀에 어긋남이 없이 양심에 가책됨이 없는 그런 생활을 계속 해나가는 그것이 1호 명령, 금령을 지켜서 그 생활로 계속하므로 그게 믿음이 자라가는 겨자씨 믿음의 생활이고 그래가지고 자라나가면 겨자씨는 씨 중에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돼서 사람인데 사람의 지능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이 세상에 빛이 되고 하나님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 되는 그것이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번 더 결론을 말하면 종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종된 줄 알고 자유하기를 원해야 됩니다. 알아야 자유를 원하지요. 가치를 알아야 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소원이라는 것은 지식에서 나오는 겁니다. 알아야 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종된 줄 알고 자유해야 될 줄 알아야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고 나면 내가 무엇에 붙들려 종이 되었는가. 나를 붙든 종 삼고 있는 원수를 알아야 됩니다. 나는 요놈에게 붙들렸구나 나는 이것에게 붙들렸구나. 나를 붙들고 놓지 않는 평생을 나를 붙들고 모질게 붙들고 도무지 놓아주지 않는 그놈을 알고 그놈이 원수라는 것을 알고 평생 거기서 벗어나기를 소원하고 노력하는 요게 되어야 됩니다. 알아도 세 번째 사람의 힘으로는 자유 못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쉬지 않고 기도하고 늘 깨어 기도하고 자기 있는 힘 다해서 벗으려 기도하고 요래 되어질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출애굽해서 자유 얻었듯이 믿는 사람도 세상에서 이미 얻은 자유를 가지고 또다시 종노릇하는데 거기서 요 다섯가지를 가질 때 또 현실생활에 종노릇에서 벗어나 자유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말씀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