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9-주전(출9:13-16)
자유를 원하고 자유하는 사람 되자2013-06-09조회 392추천 40
본문: 출9:13-16
제목: 자유를 원하고 자유하는 사람 되자
요점:
1. 종된 이스라엘
1)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 노릇
2)종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 종은 (자유) 없는 자, 속박된 자
3)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의 생활은? (자유) 없는 (종) 노릇
4)종된 이스라엘 백성의 3종류 모습
①종된 사실을 (모르는) 사람
②종된 줄 알지만 (체념)하고 사는 사람
③종된 줄 알고 (자유)를 원하여 발버둥치는 사람
5)이스라엘 백성 중 가장 자유를 원한 사람은? (모세)
2. 이스라엘은 그림자, 우리는 실상
1)이스라엘은? 오늘 믿는 (성도)들
2)애굽은? (세상), 바로는? (마귀)
3)애굽의 신민들은? 세상 (불신 사람)과 세력들
4)홍해는? (세례), 광야는? (교회) 생활
5)요단강은? (죽음), 가나안은? (천국)
3. 출애굽과 자유, 자유 생활의 출발
1)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우리의 믿기 전 (세상) 생활
2)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종)되었던 생활
3)우리의 믿기 전 세상 생활은? (종)되었던 생활
4)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자유)하는 생활의 출발
5)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우리의 (신앙 출발), 자유하는 생활의 출발
4. 종된 데서 자유하려면?
1)종된 줄을 (알고), 자유를 진정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자기를 붙들고 있는 (적)을 알아야 한다.
3)(사람의 힘)으로 절대 자유 못한다.
4)(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한다.
5)(기도)하고 힘을 (다)해야 도우심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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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용)
20130609 주전
출애굽기 9:13-16
잠깐 그동안에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말씀에 흐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몇 주 전부터 겨자씨 믿음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겨자씨 믿음은 믿음이 작은 것을 느끼고 믿음이 적고 부족함을 느꼈던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간청을 할 때 예수님께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가지면 사람이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거기서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을 말씀하신 것은 살아있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겁니다. 믿음은 믿음인데, 믿음이 다 같은 믿음이 아니고 믿음이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 믿음인데, 믿음은 다 같은 믿음이 아니고 살아있는 믿음도 있고 죽은 믿음도 있는 것을 말씀 했습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이걸 가리켜서 살아있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이라 말씀을 하고, 믿음을 가지되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런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우리 스스로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왜 믿음이 살아있지 못하고 죽게 되느냐. 그 죽게 된 이유는 공과에, 주일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공과에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가장 첫 번째 원하시는 1호 명령과 첫 번째 금하시는 1호 금령을 금하지 않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믿음이 죽어진다고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왜 하나님의 명령을,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며 하라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느냐 그것은 오랜 세월 속에 우리 속에 살아오면서 우리 속에 만들어진 자기 주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는 세상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자기가 있고 그 자기를 좀 어려운 말로 주관이라 그리 말씀을 했습니다. 그 주관이 들어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죽게 만들어버리는 그걸 말씀했습니다.
오늘은 그 주관이 얼마만큼 강하냐? 그 주관이 다시 말하면 바로 그게 무엇이냐 하는 것을 이 말씀으로 연결해서 생각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시기 위해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셔서 모세를 통해서 열 가지 재앙을 지금 내리는 중인데, 여기 일곱 번째 아마 일곱 번째 일겁니다. 우박 재앙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바로에게 하시는 말씀을 여기 봉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서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하나님께서 애굽에 보내서 그 요셉의 신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애굽에 들어가게 되고, 그 애굽에서 요셉의 신앙으로 인한, 요셉의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애굽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어버이처럼 그렇게 받들어 모셔 대우하는 이런 관계로 출발했다가, 요셉도 죽고 요셉을 아는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이 다 죽고 난 다음, 세월이 지나가니까 요셉도 잊어버리고 요셉이 애굽 나라에 베풀었던 은혜도 다 잊어버린 새 왕과 새 신하들과 백성들이 나왔으니까 환경이 다 바뀌어졌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 오래 사는 동안에, 그들의 인식이라든지 생활 모습이 많이 변해져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세월 속에서 점점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인이 되어버리고, 이스라엘은 나그네로 들어갔지만은 그 나라의 어버이처럼 은인처럼 대우를 받았는데, 세월 속에 이게 변해가지고 애굽 사람은 주인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이 된 그 상태로 처음부터 내려온 게 이제 전체 기간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종노릇을 한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노릇을 했습니다.
종이 뭔가? 종이라는 말은, 성경에 보면 베드로후서 2장인가 보면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주님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은 그 말씀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하시니까 유대인들이 듣고 반문하기를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애굽에서 종 됐던 사실은 잊어 먹었는가보지요.
남의 종 되었던 사실을, 종된 적이 없거늘 어찌 자유하리라 하느냐. 말하자면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그때도 식민지니까 종인데, 근데 그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 자유하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자유를 말씀하시니까 우리는 자유하는 사람이다 종이 아니다 그리 말을 했습니다. 근데 실제는 그들은 종이 되어있습니다. 종이 뭐냐? 종이라는 것은 진자는 종이고, 이긴 자의 종이고, 종이라는 말은 자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종이라는 말과 자유라는 말은 반대말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종입니다. 종은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유하는 사람은 종이 아닙니다.
자유가 없고, 어딘가 누군가에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나라에나, 어떤 세력에나, 자기 자신보다 더 강한 어떤 대상에게 붙들려 매여서 자기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이게 종된 겁니다. 자유가 없는 겁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가기 싫어도 가야 되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되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기가 원하는 자기 자유의사대로 하지 못하는 그게 바로 종입니다. 자유 없는 것.
진 자는 싸움에서, 전쟁에서 지면은 이긴 자의 종이 되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애굽나라에서 430년 동안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말하자면은 종노릇이니까 무엇이 없는 겁니까? 자유가 없는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430년 내려오면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종노릇을 하는 동안에, 종 된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 사는 그들의 생활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크게 세 종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보면은 종이란 것은 이스라엘만 애굽에서 종된 것이 아니고 그 뒤에 보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나라도 과거에 종 노예 제도가 있었고, 또 유럽에도 그런 거는 다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추앙받는 대통령이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사람이지요. 그 링컨이 가장 유명하게 된 것 중에 하나가 노예를 해방시켰다는 겁니다. 종 제도를 없애버렸다 그래도 그 뒤 오래토록 그 종 제도가 알게 모르게 법적으로만 없었지 실제론 오래토록 유지되다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그리 많이 되지를 않았다 그럽니다.
어느 나라든, 우리나라도 종 하는 이런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종노릇을 하는데 오래토록 종으로 살다보니까 종으로 사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심리상태와 생활 태도, 종된 그들의 태도를 세 종류로 생각해보면, 첫째는 그들이 분명히 그들은 종입니다. 애굽나라에 구속되고 속박된 자유 없는 종입니다. 근데 그들은 그 중에서 어떤 사람,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종 된 사실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상 대대로 수 백 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이것이 우리 생활이고 이것이 우리의 본모습이고 그래서 종된 것도 모르고 오히려 애굽사람에게 붙어서 그들의 성경에 보면 폐장이라 나오는데, 그 폐장은 말하자면은 노가다 현장에 십장이라 그러던가요. 여기서 써도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작은 현장에 책임자. 그런 사람을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을 세워가지고 그들을 이용하는, 부리는, 그들의 앞잡이 되는 이런 사람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많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인데, 그리고 애굽나라에 종노릇하고 있는데, 종으로 살고 있는데 종 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애굽사람과 하나되고 애굽화 되어가지고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서 오히려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탄압하고 부려먹는 이런 류의 사람도 거기 있었고, 그와 비슷하게 그런 것이 당연시하고 그리 되지 못함을 오히려 한탄하고 그리 되는 걸 출세로 여기고 그리되고자 노력했던, 말하자면, 한 말로 말하면 본인들이 종 된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잊고 있던 이런 종류가 한 사람 있습니다.
또 한 종류는 종 된 사실을 생각 있는 사람, 지각 있는 사람은 보면 압니다. 분명히 민족이 다릅니다.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요셉을 통해서 자기들이 약 사백 몇 십 년 전에 애굽나라에 들어왔고, 거기서 은인처럼 대우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압니다. 그래서 종으로 살 우리가 아니라. 우리는 여기서 자유하고 나가야 된다는 그 사실. 자기들이 종 된 사실을 알고 자유를 원하고 있었지만은 그러나 도무지 어찌할 수 없으니까 체념한 사람들. 종 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은 팔자다, 이것도 팔자다 말하자면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체념을 하고 거기 고만 하루하루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런 사람의 종류가 한 사람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에 보면 더러더러 그런 사람들이 나오지요. 우리나라도 보면은, 종노릇 하기가 너무 대니까 종은 사람으로 꼭 같은 이목구비 수족을 외모를 가진 사람인데, 종은 개 돼지만도 취급을 받지 못하니까 사람이 견딜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밟혀서 살기 위해서, 먹기 위해서, 생명 부지하기 위해서 그냥 살아가는데, 그중에 좀 용기가 있고 힘이 있고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도무지 견디지를 못하니까 반란을 일으켜가지고 한번 세상을 뒤엎어 보려하다가 실패하고 죽은 그런 사람들이 동서양에 굉장히 제법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까지 못가고, 종인 줄 알지만은 자기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까 포기하고 체념을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팔자다 하고 의례히 이게 우리 팔자다. 이리 났으니까 이리 살아야 된다 하고 그렇게 사는, 체념하고 사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한 종류 있었고, 또 세 번째는 그 중에도 앞에 말씀 드린 것처럼 세상에서 꼭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났는데 왜 우리는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아야 되냐. 아무리 종이라도 보니까 양반인데 하고 행세하는 그 사람들 중에는 종 된 자기보다 지식도 인격도 못한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 저거는 보니까 나보다 지식도 모자라고 인격도 모자라고 사람 같지도 않은 저게 양반이라고 나를 저렇게 밟고 괄시하니 하고 속에 불이 나서 울분이 나서 견디지 못해서 한번 종 된 그 자리에서 벗어나보고자 발악을 하는 힘을 다해서 한번 필사적으로 노력해보는 그런 류의 사람들도 많지는 않아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누굽니까? 애굽나라에서? 종 된 것을 깨닫고 그 종 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봤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자기 동족을 치는 애굽 사람을 때려죽였던 모세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왕궁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살았지만은 그는 자기가 히브리 유대인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잊지를 않았고 그러기 때문에 자기 동족을 위한, 고통 받는 그 동족을 생각한 마음이 늘 속에 가득차서 언제 이 민족을 한번 데리고 나가야되는 사명감이 그 속에 있었지만은 그래서 사십세 젊은 혈기에 자기 힘으로 한번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 애굽 사람을 때려죽인 거지요. 우리 동족을 치다니 하고 죽인 겁니다. 혈기가 왕성했고. 그런데 자기 힘으로 뭐가 됩니까? 들켜서 도망을 쳐서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피난 간 그런 생활이 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역사는 오늘 우리들의 그림자고 우리는 그들의 실상입니다. 좀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모형이고 우리는 좀 맞지 않을 수 있는데, 원형이고 이리 되어지는 겁니다. 그들의 모든 생활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리 하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때 있었던 그 모든 사람들과, 그 형식과 관계 이런 걸 우리에게 적용시켜보면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로 말하면 우리 믿는 성도들,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 믿는 성도들을 가리켜 성도들이 우리 실상이고 또, 그 때에 애굽나라는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이 살고 있는 우리의 모든 세상이 그때로 말하면 애굽 나라입니다. 그때의 애굽은 오늘 우리의 세상을 그림자 한 것이고, 그 애굽의 실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세상 우리들의 환경이라 그 뜻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을 붙들고 잡고 종 삼고 죽어도 놓지 않았던 강팍했던 애굽나라가 완전히 망하기까지 놓아주지 않고 붙들고 있던 그 왕 바로는 오늘로 말하면 우리를 붙들고 놓지 않는 마귀가 그때의 바로입니다. 그때의 바로는 오늘 우리를 붙들고, 믿는 사람을 믿기 전에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마귀가 바로 그때 바롭니다.
그리고 바로의 신하와 백성들, 그 신민들은 오늘로 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불신, 세상의 불신 사람과 모든 세력들. 믿지 않는 모든 사람과 믿지 않는 모든 세력들. 그들이 다 그때로 말하면 애굽나라의 신하와 백성들 그들입니다.
그들이 거기서 나와가지고,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홍해 바다를 건너서 그 다음 광야 생활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그때 그들이 건너간 홍해 바다는 오늘로 말하면 믿는 사람의 중생, 세례 이걸 나타내고 있고, 그들이 사십년 동안 살았던 광야 생활은 오늘 믿는 사람의 교회 생활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가나안으로 건너간 요단강은 무엇을 말합니까? 죽음을 말하고, 그들이 들어간 가나안은 우리들이 들어갈 천국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생각해 볼 것,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나타내는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살았는데, 이스라엘이 살았던 애굽 생활은 오늘 믿는 사람들이 믿기 전에 살았던 세상 생활, 믿기 전 세상 생활을 그림자로 표현해 주신 겁니다. 말하자면은 우리 믿는 사람이 중생이 되기 전, 신앙 출발 예수 믿기 전 우리의 생활은, 우리 모든 생활 모습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전 430년 애굽에서 살던 바로 그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애굽에 살던 그 생활은 어떤 생활이었느냐? 그 생활은 전부 종 된 생활이었습니다. 종된 생활.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믿기 전 우리의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역시 종 되었던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무엇을 말하느냐? 종 되었던데서 자유하는 생활의 출발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종 되었던 애굽에서 자유 생활하는 자유 생활의 출발이었고, 그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오늘 우리에게 말하면 우리 신앙의 출발을 상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이제 하나 우리가 좀 오늘 공부할 것은, 그러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이제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그 자유를 얻게 된 그 배경에는 오랜 세월 속에 애굽의 종으로 사니까 종의 신분이 자기들의 본모습이고 종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그들의 원래 생활인 줄로 알고 종 된 그 사실 원래는 자유하는 사람들인데 현재 종노릇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 사람들 그들 말고, 종 된 줄 알고 있지만은 체념하고 있는 그 사람들 말고, 그들 중에서 종 된 줄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 자유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고 힘껏 노력하지만은 그러나 힘이 없어 어찌할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통스러워 부르짖는 그 많은 사람들 그들의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그들을 구출해 내시게 되는 겁니다.
세상이 알면, 들으면 오해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그런 말이 되는데, 한번 그런 말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독립운동을 위해서 노력한 독립투사들 그들의 후손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그 나라를 점령하는, 점령한 그 사람들은 분명히 대적이고 원수들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되찾기 위한 그 본민족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애국이고 애민족이고 존경할 그런 일입니다.
그런데 그 한쪽의 문제는 신앙으로 연결시키고 전체로 보면은 그들 마음 속에는 자기를 점령하고 있는 그 원수 그 나라가 망해야 자기들이 독립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나라가 망하기를 안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하는 그런 일들이 그 마음 속에 없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그 마음은 애국이고 애족이고 참 좋은건데, 존경받을 일인데, 그러기위해서 자기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는 침략한 그 원수가 망해야 되기를 바라고, 망하기를 바라고 망할 수 있도록 자꾸 테러하고 일을 일으키는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의 전체 공의의 역사를 두고 보면은 이것이 자기 나라만 생각하면은 훌륭한 일이고 애민족이고 애국인데 하나님의 세상 전체를 섭리하시고 사람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공의로 보면은 그게 자기 중심이 되고 그 속에 자기라는 사람이 남이 망하기를 바라고 망하기를 원해서 망하도록 하는 그 역사가 계속되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가 없는 겁니다.
그거는 그런데, 여기 애굽나라에 종된 사람들 중에 세 번째 속한, 말하자면 모세 같은, 모세만큼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 그들은 그 나라에서 세상으로 말하면 독립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나오기 위해서 독립하기 위해서 자유 얻기 위해서 소원하고 간절하고 많은 노력을 했던 그들입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거기서 이들이 그런 마음이 있었어도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또 한편으로 만약에 모세와 그 나라에서 애굽에서 자유를 원하는 그 이스라엘 사람들, 간절히 노력하고 원하던 그 마음속에 그들의 마음속에 바로와 애굽나라가 망하기를 그들이 쫄딱 망하고 멸망하기를 원하고 노력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해서 재앙을 내려서 애굽 나라가 망해갈 때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 박수를 치고 통쾌하게 여기고 손뼉을 치고 좋아했다면 그들은 거기서 자유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그걸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모세는 찾아갈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라 그러는데 안보내면 당신들이 하나님 앞에 화를 받는다 경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화 받지 말고 우리를 보내라 하나님의 경고다 말하는데 안 받으니까, 하나님의 경고를 안 들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애굽 나라를, 바로를 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과 모세의 그들의 마음자세는 그들도 안 상하고 하나님의 진노 받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을 곱게 보내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은 바로와 애굽 신민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까 부득이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를 때릴 수 밖에 없고 그들이 망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관계 이런 이면을 생각하시고 그래서 이런 간절한 자유를 원하는 종들의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부르짖음과 노력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게 되어졌다. 그러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기 전 우리생활, 신앙 출발하기 전 우리들의 생활은 이 세상에서 종된 자로 살았던 우리들인데 그러나 종으로 살았지만은 우리는 믿기 전에는 종 되었던 그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도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원래 불택자들은 그런 생활인데 택자들 중에서 중생되지 않은 사람들 아직 때가 이르지만은 그들 역시 이 세상의 종이 되어있는데 종이 되었지만은 그들은 종된 사실을 모릅니다. 종 되어있는 사실을 모릅니다. 중생되어서 신앙 출발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면 믿음의 종자가 그 속에 들어가고 주일을 지키면서 혹은 성경 읽으면서 죽었던 영이 중생이 되어서 빛이 들어오고 나면 그때부터 그 속에 생명의 종자가 있고 생명의 빛의 역사가 있으니까 그때부터는 그 속에 자기가 종된 그 사실을 표현은 종이라 이렇게 하지 않고 못할지라도 뭔가 자기가 세상에서 하는 그 생활이 지금 바르고 정상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은 종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자유를 원하는 그런 마음이 있게 됩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야 되겠는데, 교회를 가야 되겠는데,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 천국 가야 되겠는데 그런 마음이 그 속에 있는 겁니다. 그게 있으면 자유할 수 있는 그런 바탕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믿기 전 우리는, 지금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종노릇 하고 있지만은 종된 그 사실을 아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들은 천국도 모릅니다. 그들은 인생의 근본도 모르고 마지막 죽음과 죽음 너머 결과를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옳은 진리 참 진리를 알지 못하고 주님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의 효력도 그들은 알지를 못합니다.
다만 그들의 소망과 목적과 포부와 모든 욕망과 전노력은 전부 이 세상입니다. 죽음 아래 있는 것,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하는 것, 이 세상 안에 있는 거기에 모든 가치와 소망과 욕망과 전노력이 그리로 다 기울어져서 불철주야 그것만 바라보고 어릴때도 청년때도 젊을때도 장년때도 노년때도 그래만 살다가 마지막에 죽는데 그 이면에 그것이 왜 그리 되어지느냐. 그것이 말하자면은 지금 북한은 좀 덜할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정보가 다 빠르고 퍼져있으니까. 그래도 많은 사람들,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북한 밖의 세계를 모르고 그 안에서 살면서 자기들 지도자 그 수령님이 어버이고, 그가 우리의 뭐고 그래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아마 세상이 밝아졌다 그래도 제법 그들은 거기 있을 겁니다. 그래서 거기 붙어야 살고 충성해야 살고 그게 자기들 사는 길이고 그게 생활이고 하는 그거. 그래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자기들이 종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말이지요. 그게 전부인 줄 아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은 아득하게 모르고 있고, 중생 되어서 신앙 출발해서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신앙 출발하고 있는데 그 믿음 생활 하고 있으면서도 현재 내가 사는 이 생활 모습이 이게 믿는 사람으로써의 자유 하는 생활이냐. 크게 말하면 교회 자유 그 다음 양심 자유, 신앙 자유 이런 것인데, 주일을 지키려할 때 주일을 지키는 자유가 있느냐? 성경 읽고 싶을 때 성경 읽을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있느냐?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는 그런 자유가 있느냐? 심방 전도 하는 자유가 있느냐? 좀 더 올라가면 집회 자유가 있느냐? 예배 자유가 있느냐? 옳은 말씀대로 거짓말하지 않고 남 속이지 않고 할 때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있느냐? 자기를 돌아보고 거기서 그럴 때 현재 내 가정생활은, 나의 사업하는 생활은, 내 직장생활은, 내 학교생활은, 내 모든 생활은 믿는 사람으로서 하기는 해야 되고 이렇게 살기는 살아야 되는데 이 생활에 내가 믿는 사람으로써 하나님을 향하는 자유, 하나님을 찾는 자유, 교회 생활의 자유, 예배 생활의 자유, 신앙 생활의 자유, 말씀을 어기지 않을 수 있는 양심 생활의 자유, 이런 자유가 있어서 원하는대로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아니면 그런 자유를 원하지만은 어떤 사람은 사람에 붙들려서, 어떤 사람은 직장에 붙들려서, 어떤 경우는 학교에 붙들려서, 어떤 경우는 사업에 붙들려서, 가정에 붙들려서, 또 자기 취미나 습성에 붙들려서 그래가지고 자유하지 못하고 종 되어 사는 그런 믿는 사람들이 오늘날 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자유를 해야 되는데, 해방 받아 자유를 해야 되는데, 여기서 자유하는 첫째 조건이 뭐냐?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믿는 사람의 본모습으로 자유하는 생활하는 그 자유생활의 첫째 조건은 자기가 종된 그 사실을 알고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내가 종된 그 사실을 알고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되는 이것이 자유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자기를, 나를, 자신을 붙들어 매여 있는 대적이 뭐냐 적이 뭐냐 원수가 뭐냐 이것을 두 번째는 알아야 됩니다. 이걸 알아야 되지 자기를 붙들고 있는 적이 무엇인지 모르면 자유하지 못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믿는 사람으로써 죄 짓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짓고 싶지 않은 죄를 짓게 되니까 자유가 없는 겁니다. 종입니다. 죄를 짓고 나면 양심의 가책이 됩니다. 힘이 빠집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자유하지 못하고 또 죄를 짓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록에 보니까 그런 말씀이 나옵디다. 어떤 사람이 오래토록 믿은 사람인데,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교회 안에 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랍니다. 훌륭한 사람인데, 존경받는 사람인데 아무도 모르는데 목사님만 아셨는데 이분이 한번씩 끊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은 담배를 끊지 못했답니다. 담배를 끊지 못해가지고 담배를 피면 아무도 몰래 집에서 떠나서 믿는 사람들 없는데서 저 남의 동네에 가서 숨어가지고 담배 곰방대에 넣어가지고 한 모금 딱 빨고 온답니다 겁이 나니까. 한모금 딱 빨고 집에 몰래 돌아오는데 그것을 그렇게 못 끊어서 오래토록 고생을 했답니다. 사회적으로 신분도 높은 사람이고 그런 의지도 있겠지요. 가정에서도 존경받고 교회에서도 존경받고 장로될 만한 그런 사람인데 그분이 담배 한 모금 그것도 매일도 못하고 어쩌다 한번 생각이 나면 고 가서 한번 뻐끔 피우고 오는데 그걸 끊지 못해가지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거기 종이 되어서 종노릇을 하더라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그게 그 사람은 거기 종입니다. 끊지 못해서. 끊어야 되는데, 하지 말아야 되는데, 하지 말아야 되는데 하게 만드는 고놈이 뭐냐 그게 바로 종이라는 겁니다.
술을 끊어야 되는데 끊지 못하니 술의 종입니다. 종은 자유가 없는 겁니다. 자기 자유가 없습니다. 자기를 붙들고 있는 그것이 시키는대로 하는게 종입니다. 종은 주인이 가라면 가야되고, 오라면 와야 되고, 죽는 시늉이라도 하라 그러면 해야 됩니다. 굶어라면 굶어야 됩니다. 그게 종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대로 못 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죄에서 자유를 해야 됩니다. 죄를 안 짓고 싶으면 끊을 수 있어야 자유가 되는 겁니다. 먹지 말아야 될 것은 안 먹을 수 있어야 자유입니다. 하지 말아야 될 것은 안 할 수 있어야 자유입니다. 가지 말아야 될 곳은 내가 마음 먹으면 안 갈 수가 있어야 그게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가지 말아야 되는데, 안 가야 될 줄 알면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 합리화를 시켜서 꾸역꾸역 끌려서 자기 습성에, 친구에게, 사람에게 끌려서 가게 되는 게 바로 종노릇입니다. 노름하는 사람들이 노름 하다가 집안 다 말아먹고 가정 파탄이 나고 손가락을 잘라도 마지막에 토막손 가지고 노름을 한다고 그러지요. 노름의 종입니다. 술 먹는 사람이 술에 종되고 나면 못 끊지요. 종입니다. 담배 피는 사람이 담배에 중독되고 나면은 못 끊습니다. 종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게임에 빠져들면 게임에 중독이 된 것이 바로 게임에 시키는대로 종입니다. 부모님이 하지마라 하면 해롭다 그렇게 말해도 부모님과 등이 지고 집에서 가출하고 그래도 그놈을 끊지 못하는 그것이 종노릇입니다. 자기 앞날 미래 다 망치고 신세 망치고 자기 천물 되고 다 그리되는 갈 길이 뻔한대도 그걸 끊지 못하니 그게 전부 종입니다. 종노릇하는 겁니다.
거기서 자유하려면 첫째는 자기가 종된, 내가 지금 이놈의 종이 되었구나 그래도 돈의 종도 종인데 돈의 종이면 좀 덜하겠습니다. 세상은 다 그런거니까. 직장의 종은 종이라 하기 곤란하지만은 강하니까 내가 약하니까 그래 된 사람도 있지만은 좀 덜 하겠습니다. 사업도. 그런데 보면은 술의 종, 담배의 종, 휴대폰의 종, 게임의 종, 향락의 종, 이런 종들은 참으로 가치없는 무가치한 것들입니다.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면 신앙은 커녕 이 세상에서도 그 사람은 뭘 하기가 어렵고 항상 남 밑에 천물이 되어집니다.
더 올라가면, 신앙으로 더 올라가면 여러 가지 이제 고차원적인 그런 게 나오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복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는, 하나님과 연결된 산 믿음이 될 수 있는 이런 옳은 일. 죄를 물리쳐 이기고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고 깨어 살고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이렇게 사는 이게 믿는 사람의 자유 생활인데 이래 하지 못하게 하는 내 속의 나를 붙들고 있는 원수가 누구냐? 요걸 알아야 종된 걸 알고 자유를 원하고 그다음에 두 번째는 요걸 알아야 거기서 벗어날 수가 있는 조건이 두 가지 성립이 되고 세 번째는 종 된 줄 알고 자유를 아무리 갈망을 하고 대적을 알아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거기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종된 줄 알아도 그들 힘으로 애굽에서 바로를, 그 바로의 강한 군대 세력을 이스라엘로서는 절대 못 이기는 겁니다. 안 되는 겁니다. 사람이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말할 것도 없고.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거는 하면 안되는 거다 여기서 벗어나야 된다고 아무리 알고 갈망 하고 그 대적을 알아서 요놈이 원수다고 알고 발버둥을 쳐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못합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요것도 알아야 됩니다 세 번째. 이게 세 번째 조건입니다. 자유하는 세 번째 조건. 사람 힘으로 안되는 겁니다. 네 번째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순서적으로 한번 더 반복하면, 복습하면, 첫 번째는 종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믿는 사람은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종된 걸 알고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종이 되고 나면 자유는 없는 겁니다. 자유가 없으면 자기 생활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전부 애굽에 종되니까 이스라엘 생활은 없는 겁니다. 알아야 됩니다. 두 번째는 적을 알아야 됩니다. 세 번째는 사람의 힘으로 못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됩니다. 다섯 번째 마지막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첫째는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옵소서 종이 되어서 자유하지 못하는 이런 천한 생활 하고 있으니까 도와주옵소서 기도해야 되고. 두 번째는 자기 있는 힘을 다해야 됩니다. 기도하면서 자기 할 수 있는 힘은 다 해야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서 어떤 종된 것에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기도하고 있는 힘을 다하는 요것이 마지막 결론으로 자유하는 방법.
그래서 오늘 오전 말씀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출애굽하여 자유 얻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믿는 사람은 자유하는 사람이니까 자유를 원하고 자유하는 사람이 되자. 같이 한 번 해보실까요. 자유를 원하고 자유하는 사람이 되자. 스스로 한번 돌아보십시다. 나는 자유하는 사람인가 나는 물질에 자유가 있는가 나는 향락에 자유가 있는가
우리 학생들은 나는 게임에 자유가 있는가 나는 휴대폰에 자유를 하고 있는가 아주 안 좋게 나는 술에 담배에 이거는 많지 않겠지만은 하고 있는가 또 고급으로 올라가면 어떤 사람은 더 고급에 자유된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자윤데, 좋은 종인데 공부에 종 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그것도 또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이러니까 나는 어디에 붙들려 자유하지 못하고 종이 되어있는가. 우리가 종될 것은 하나님에게 종되고 영감에 종되고 진리에 종되고 대속의 사랑에 종이 되고 옳은 것에는 종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어떤 것에게도 종되지 않아야 됩니다. 자유하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하고 힘을 다해서 노력하십시다.
제목: 자유를 원하고 자유하는 사람 되자
요점:
1. 종된 이스라엘
1)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 노릇
2)종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 종은 (자유) 없는 자, 속박된 자
3)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의 생활은? (자유) 없는 (종) 노릇
4)종된 이스라엘 백성의 3종류 모습
①종된 사실을 (모르는) 사람
②종된 줄 알지만 (체념)하고 사는 사람
③종된 줄 알고 (자유)를 원하여 발버둥치는 사람
5)이스라엘 백성 중 가장 자유를 원한 사람은? (모세)
2. 이스라엘은 그림자, 우리는 실상
1)이스라엘은? 오늘 믿는 (성도)들
2)애굽은? (세상), 바로는? (마귀)
3)애굽의 신민들은? 세상 (불신 사람)과 세력들
4)홍해는? (세례), 광야는? (교회) 생활
5)요단강은? (죽음), 가나안은? (천국)
3. 출애굽과 자유, 자유 생활의 출발
1)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우리의 믿기 전 (세상) 생활
2)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종)되었던 생활
3)우리의 믿기 전 세상 생활은? (종)되었던 생활
4)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자유)하는 생활의 출발
5)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우리의 (신앙 출발), 자유하는 생활의 출발
4. 종된 데서 자유하려면?
1)종된 줄을 (알고), 자유를 진정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자기를 붙들고 있는 (적)을 알아야 한다.
3)(사람의 힘)으로 절대 자유 못한다.
4)(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한다.
5)(기도)하고 힘을 (다)해야 도우심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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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용)
20130609 주전
출애굽기 9:13-16
잠깐 그동안에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말씀에 흐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몇 주 전부터 겨자씨 믿음을 우리가 공부했습니다. 겨자씨 믿음은 믿음이 작은 것을 느끼고 믿음이 적고 부족함을 느꼈던 예수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고 간청을 할 때 예수님께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가지면 사람이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거기서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을 말씀하신 것은 살아있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겁니다. 믿음은 믿음인데, 믿음이 다 같은 믿음이 아니고 믿음이란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것이 믿음인데, 믿음은 다 같은 믿음이 아니고 살아있는 믿음도 있고 죽은 믿음도 있는 것을 말씀 했습니다. 살아있다는 말은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모든 역사가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는 이걸 가리켜서 살아있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이라 말씀을 하고, 믿음을 가지되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이런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믿음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우리 스스로 살펴봐야 되겠습니다. 왜 믿음이 살아있지 못하고 죽게 되느냐. 그 죽게 된 이유는 공과에, 주일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공과에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가장 첫 번째 원하시는 1호 명령과 첫 번째 금하시는 1호 금령을 금하지 않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믿음이 죽어진다고 우리가 배웠습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왜 하나님의 명령을, 하지 말라는 것을 하며 하라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느냐 그것은 오랜 세월 속에 우리 속에 살아오면서 우리 속에 만들어진 자기 주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는 세상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자기가 있고 그 자기를 좀 어려운 말로 주관이라 그리 말씀을 했습니다. 그 주관이 들어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지 못하게 하고 죽게 만들어버리는 그걸 말씀했습니다.
오늘은 그 주관이 얼마만큼 강하냐? 그 주관이 다시 말하면 바로 그게 무엇이냐 하는 것을 이 말씀으로 연결해서 생각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시기 위해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셔서 모세를 통해서 열 가지 재앙을 지금 내리는 중인데, 여기 일곱 번째 아마 일곱 번째 일겁니다. 우박 재앙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서 바로에게 하시는 말씀을 여기 봉독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서 그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요셉을 하나님께서 애굽에 보내서 그 요셉의 신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애굽에 들어가게 되고, 그 애굽에서 요셉의 신앙으로 인한, 요셉의 믿음으로 인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애굽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어버이처럼 그렇게 받들어 모셔 대우하는 이런 관계로 출발했다가, 요셉도 죽고 요셉을 아는 그 시대 모든 사람들이 다 죽고 난 다음, 세월이 지나가니까 요셉도 잊어버리고 요셉이 애굽 나라에 베풀었던 은혜도 다 잊어버린 새 왕과 새 신하들과 백성들이 나왔으니까 환경이 다 바뀌어졌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 오래 사는 동안에, 그들의 인식이라든지 생활 모습이 많이 변해져버렸습니다.
그래가지고 세월 속에서 점점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인이 되어버리고, 이스라엘은 나그네로 들어갔지만은 그 나라의 어버이처럼 은인처럼 대우를 받았는데, 세월 속에 이게 변해가지고 애굽 사람은 주인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이 된 그 상태로 처음부터 내려온 게 이제 전체 기간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종노릇을 한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노릇을 했습니다.
종이 뭔가? 종이라는 말은, 성경에 보면 베드로후서 2장인가 보면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면서, 주님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사람은 그 말씀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하시니까 유대인들이 듣고 반문하기를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애굽에서 종 됐던 사실은 잊어 먹었는가보지요.
남의 종 되었던 사실을, 종된 적이 없거늘 어찌 자유하리라 하느냐. 말하자면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그때도 식민지니까 종인데, 근데 그들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 자유하리라 하느냐. 예수님께서 자유를 말씀하시니까 우리는 자유하는 사람이다 종이 아니다 그리 말을 했습니다. 근데 실제는 그들은 종이 되어있습니다. 종이 뭐냐? 종이라는 것은 진자는 종이고, 이긴 자의 종이고, 종이라는 말은 자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종이라는 말과 자유라는 말은 반대말입니다. 자유가 없으면 종입니다. 종은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유하는 사람은 종이 아닙니다.
자유가 없고, 어딘가 누군가에 어떤 사람에게나, 어떤 나라에나, 어떤 세력에나, 자기 자신보다 더 강한 어떤 대상에게 붙들려 매여서 자기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이게 종된 겁니다. 자유가 없는 겁니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고, 가기 싫어도 가야 되고, 하기 싫어도 해야 되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자기가 원하는 자기 자유의사대로 하지 못하는 그게 바로 종입니다. 자유 없는 것.
진 자는 싸움에서, 전쟁에서 지면은 이긴 자의 종이 되게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애굽나라에서 430년 동안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말하자면은 종노릇이니까 무엇이 없는 겁니까? 자유가 없는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430년 내려오면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이 종노릇을 하는 동안에, 종 된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 사는 그들의 생활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크게 세 종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대개 보면은 종이란 것은 이스라엘만 애굽에서 종된 것이 아니고 그 뒤에 보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나라도 과거에 종 노예 제도가 있었고, 또 유럽에도 그런 거는 다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추앙받는 대통령이 아브라함 링컨이라는 사람이지요. 그 링컨이 가장 유명하게 된 것 중에 하나가 노예를 해방시켰다는 겁니다. 종 제도를 없애버렸다 그래도 그 뒤 오래토록 그 종 제도가 알게 모르게 법적으로만 없었지 실제론 오래토록 유지되다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그리 많이 되지를 않았다 그럽니다.
어느 나라든, 우리나라도 종 하는 이런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430년 동안 종노릇을 하는데 오래토록 종으로 살다보니까 종으로 사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심리상태와 생활 태도, 종된 그들의 태도를 세 종류로 생각해보면, 첫째는 그들이 분명히 그들은 종입니다. 애굽나라에 구속되고 속박된 자유 없는 종입니다. 근데 그들은 그 중에서 어떤 사람,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종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종 된 사실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상 대대로 수 백 년 동안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이것이 우리 생활이고 이것이 우리의 본모습이고 그래서 종된 것도 모르고 오히려 애굽사람에게 붙어서 그들의 성경에 보면 폐장이라 나오는데, 그 폐장은 말하자면은 노가다 현장에 십장이라 그러던가요. 여기서 써도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작은 현장에 책임자. 그런 사람을 애굽 사람들이 히브리 사람을 세워가지고 그들을 이용하는, 부리는, 그들의 앞잡이 되는 이런 사람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많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인데, 그리고 애굽나라에 종노릇하고 있는데, 종으로 살고 있는데 종 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애굽사람과 하나되고 애굽화 되어가지고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서 오히려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탄압하고 부려먹는 이런 류의 사람도 거기 있었고, 그와 비슷하게 그런 것이 당연시하고 그리 되지 못함을 오히려 한탄하고 그리 되는 걸 출세로 여기고 그리되고자 노력했던, 말하자면, 한 말로 말하면 본인들이 종 된 그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잊고 있던 이런 종류가 한 사람 있습니다.
또 한 종류는 종 된 사실을 생각 있는 사람, 지각 있는 사람은 보면 압니다. 분명히 민족이 다릅니다.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요셉을 통해서 자기들이 약 사백 몇 십 년 전에 애굽나라에 들어왔고, 거기서 은인처럼 대우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압니다. 그래서 종으로 살 우리가 아니라. 우리는 여기서 자유하고 나가야 된다는 그 사실. 자기들이 종 된 사실을 알고 자유를 원하고 있었지만은 그러나 도무지 어찌할 수 없으니까 체념한 사람들. 종 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은 팔자다, 이것도 팔자다 말하자면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체념을 하고 거기 고만 하루하루 그럭저럭 살아가는 그런 사람의 종류가 한 사람 있었을 것입니다.
역사에 보면 더러더러 그런 사람들이 나오지요. 우리나라도 보면은, 종노릇 하기가 너무 대니까 종은 사람으로 꼭 같은 이목구비 수족을 외모를 가진 사람인데, 종은 개 돼지만도 취급을 받지 못하니까 사람이 견딜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보통 사람들은 밟혀서 살기 위해서, 먹기 위해서, 생명 부지하기 위해서 그냥 살아가는데, 그중에 좀 용기가 있고 힘이 있고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들은 도무지 견디지를 못하니까 반란을 일으켜가지고 한번 세상을 뒤엎어 보려하다가 실패하고 죽은 그런 사람들이 동서양에 굉장히 제법 제법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까지 못가고, 종인 줄 알지만은 자기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까 포기하고 체념을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팔자다 하고 의례히 이게 우리 팔자다. 이리 났으니까 이리 살아야 된다 하고 그렇게 사는, 체념하고 사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한 종류 있었고, 또 세 번째는 그 중에도 앞에 말씀 드린 것처럼 세상에서 꼭 같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났는데 왜 우리는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아야 되냐. 아무리 종이라도 보니까 양반인데 하고 행세하는 그 사람들 중에는 종 된 자기보다 지식도 인격도 못한 것들이 많이 있으니까 저거는 보니까 나보다 지식도 모자라고 인격도 모자라고 사람 같지도 않은 저게 양반이라고 나를 저렇게 밟고 괄시하니 하고 속에 불이 나서 울분이 나서 견디지 못해서 한번 종 된 그 자리에서 벗어나보고자 발악을 하는 힘을 다해서 한번 필사적으로 노력해보는 그런 류의 사람들도 많지는 않아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누굽니까? 애굽나라에서? 종 된 것을 깨닫고 그 종 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봤던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자기 동족을 치는 애굽 사람을 때려죽였던 모세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왕궁에서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살았지만은 그는 자기가 히브리 유대인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잊지를 않았고 그러기 때문에 자기 동족을 위한, 고통 받는 그 동족을 생각한 마음이 늘 속에 가득차서 언제 이 민족을 한번 데리고 나가야되는 사명감이 그 속에 있었지만은 그래서 사십세 젊은 혈기에 자기 힘으로 한번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 애굽 사람을 때려죽인 거지요. 우리 동족을 치다니 하고 죽인 겁니다. 혈기가 왕성했고. 그런데 자기 힘으로 뭐가 됩니까? 들켜서 도망을 쳐서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 피난 간 그런 생활이 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성경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역사는 오늘 우리들의 그림자고 우리는 그들의 실상입니다. 좀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들은 모형이고 우리는 좀 맞지 않을 수 있는데, 원형이고 이리 되어지는 겁니다. 그들의 모든 생활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리 하셨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때 있었던 그 모든 사람들과, 그 형식과 관계 이런 걸 우리에게 적용시켜보면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로 말하면 우리 믿는 성도들,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 믿는 성도들을 가리켜 성도들이 우리 실상이고 또, 그 때에 애굽나라는 오늘 우리 믿는 성도들이 살고 있는 우리의 모든 세상이 그때로 말하면 애굽 나라입니다. 그때의 애굽은 오늘 우리의 세상을 그림자 한 것이고, 그 애굽의 실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세상 우리들의 환경이라 그 뜻입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을 붙들고 잡고 종 삼고 죽어도 놓지 않았던 강팍했던 애굽나라가 완전히 망하기까지 놓아주지 않고 붙들고 있던 그 왕 바로는 오늘로 말하면 우리를 붙들고 놓지 않는 마귀가 그때의 바로입니다. 그때의 바로는 오늘 우리를 붙들고, 믿는 사람을 믿기 전에 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마귀가 바로 그때 바롭니다.
그리고 바로의 신하와 백성들, 그 신민들은 오늘로 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불신, 세상의 불신 사람과 모든 세력들. 믿지 않는 모든 사람과 믿지 않는 모든 세력들. 그들이 다 그때로 말하면 애굽나라의 신하와 백성들 그들입니다.
그들이 거기서 나와가지고,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홍해 바다를 건너서 그 다음 광야 생활 거쳐서,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그때 그들이 건너간 홍해 바다는 오늘로 말하면 믿는 사람의 중생, 세례 이걸 나타내고 있고, 그들이 사십년 동안 살았던 광야 생활은 오늘 믿는 사람의 교회 생활을 상징을 하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가나안으로 건너간 요단강은 무엇을 말합니까? 죽음을 말하고, 그들이 들어간 가나안은 우리들이 들어갈 천국을 나타내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생각해 볼 것, 이스라엘의 애굽 생활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나타내는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살았는데, 이스라엘이 살았던 애굽 생활은 오늘 믿는 사람들이 믿기 전에 살았던 세상 생활, 믿기 전 세상 생활을 그림자로 표현해 주신 겁니다. 말하자면은 우리 믿는 사람이 중생이 되기 전, 신앙 출발 예수 믿기 전 우리의 생활은, 우리 모든 생활 모습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전 430년 애굽에서 살던 바로 그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애굽에 살던 그 생활은 어떤 생활이었느냐? 그 생활은 전부 종 된 생활이었습니다. 종된 생활.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았던 믿기 전 우리의 생활은 어떤 생활이냐? 역시 종 되었던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무엇을 말하느냐? 종 되었던데서 자유하는 생활의 출발입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종 되었던 애굽에서 자유 생활하는 자유 생활의 출발이었고, 그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오늘 우리에게 말하면 우리 신앙의 출발을 상징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이제 하나 우리가 좀 오늘 공부할 것은, 그러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이제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그 자유를 얻게 된 그 배경에는 오랜 세월 속에 애굽의 종으로 사니까 종의 신분이 자기들의 본모습이고 종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그들의 원래 생활인 줄로 알고 종 된 그 사실 원래는 자유하는 사람들인데 현재 종노릇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그 사람들 그들 말고, 종 된 줄 알고 있지만은 체념하고 있는 그 사람들 말고, 그들 중에서 종 된 줄을 깨닫고 거기서 벗어나 자유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고 힘껏 노력하지만은 그러나 힘이 없어 어찌할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고통스러워 부르짖는 그 많은 사람들 그들의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그들을 구출해 내시게 되는 겁니다.
세상이 알면, 들으면 오해하고 또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그런 말이 되는데, 한번 그런 말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독립운동을 위해서 노력한 독립투사들 그들의 후손들이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닙니다. 그 이유가 뭐냐. 그 이유는 그 나라를 점령하는, 점령한 그 사람들은 분명히 대적이고 원수들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되찾기 위한 그 본민족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애국이고 애민족이고 존경할 그런 일입니다.
그런데 그 한쪽의 문제는 신앙으로 연결시키고 전체로 보면은 그들 마음 속에는 자기를 점령하고 있는 그 원수 그 나라가 망해야 자기들이 독립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나라가 망하기를 안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하는 그런 일들이 그 마음 속에 없어질 수가 없는 겁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그 마음은 애국이고 애족이고 참 좋은건데, 존경받을 일인데, 그러기위해서 자기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는 침략한 그 원수가 망해야 되기를 바라고, 망하기를 바라고 망할 수 있도록 자꾸 테러하고 일을 일으키는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으니까 하나님의 전체 공의의 역사를 두고 보면은 이것이 자기 나라만 생각하면은 훌륭한 일이고 애민족이고 애국인데 하나님의 세상 전체를 섭리하시고 사람을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공의로 보면은 그게 자기 중심이 되고 그 속에 자기라는 사람이 남이 망하기를 바라고 망하기를 원해서 망하도록 하는 그 역사가 계속되니까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가 없는 겁니다.
그거는 그런데, 여기 애굽나라에 종된 사람들 중에 세 번째 속한, 말하자면 모세 같은, 모세만큼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 그들은 그 나라에서 세상으로 말하면 독립을 위해서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나오기 위해서 독립하기 위해서 자유 얻기 위해서 소원하고 간절하고 많은 노력을 했던 그들입니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말이지요.
그런데 거기서 이들이 그런 마음이 있었어도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또 한편으로 만약에 모세와 그 나라에서 애굽에서 자유를 원하는 그 이스라엘 사람들, 간절히 노력하고 원하던 그 마음속에 그들의 마음속에 바로와 애굽나라가 망하기를 그들이 쫄딱 망하고 멸망하기를 원하고 노력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해서 재앙을 내려서 애굽 나라가 망해갈 때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속에 박수를 치고 통쾌하게 여기고 손뼉을 치고 좋아했다면 그들은 거기서 자유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그걸 기뻐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모세는 찾아갈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라 그러는데 안보내면 당신들이 하나님 앞에 화를 받는다 경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 화 받지 말고 우리를 보내라 하나님의 경고다 말하는데 안 받으니까, 하나님의 경고를 안 들으니까 하나님께서 그 애굽 나라를, 바로를 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과 모세의 그들의 마음자세는 그들도 안 상하고 하나님의 진노 받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을 곱게 보내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은 바로와 애굽 신민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하니까 부득이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를 때릴 수 밖에 없고 그들이 망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관계 이런 이면을 생각하시고 그래서 이런 간절한 자유를 원하는 종들의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부르짖음과 노력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게 되어졌다. 그러면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기 전 우리생활, 신앙 출발하기 전 우리들의 생활은 이 세상에서 종된 자로 살았던 우리들인데 그러나 종으로 살았지만은 우리는 믿기 전에는 종 되었던 그 사실을 우리는 전혀 몰랐습니다.
지금도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원래 불택자들은 그런 생활인데 택자들 중에서 중생되지 않은 사람들 아직 때가 이르지만은 그들 역시 이 세상의 종이 되어있는데 종이 되었지만은 그들은 종된 사실을 모릅니다. 종 되어있는 사실을 모릅니다. 중생되어서 신앙 출발하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면 믿음의 종자가 그 속에 들어가고 주일을 지키면서 혹은 성경 읽으면서 죽었던 영이 중생이 되어서 빛이 들어오고 나면 그때부터 그 속에 생명의 종자가 있고 생명의 빛의 역사가 있으니까 그때부터는 그 속에 자기가 종된 그 사실을 표현은 종이라 이렇게 하지 않고 못할지라도 뭔가 자기가 세상에서 하는 그 생활이 지금 바르고 정상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게 됩니다.
말하자면은 종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때부터 자유를 원하는 그런 마음이 있게 됩니다. 내가 예수를 믿어야 되겠는데, 교회를 가야 되겠는데,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 천국 가야 되겠는데 그런 마음이 그 속에 있는 겁니다. 그게 있으면 자유할 수 있는 그런 바탕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믿기 전 우리는, 지금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종노릇 하고 있지만은 종된 그 사실을 아득히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의 생활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들은 천국도 모릅니다. 그들은 인생의 근본도 모르고 마지막 죽음과 죽음 너머 결과를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옳은 진리 참 진리를 알지 못하고 주님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깨닫지 못합니다. 믿음의 효력도 그들은 알지를 못합니다.
다만 그들의 소망과 목적과 포부와 모든 욕망과 전노력은 전부 이 세상입니다. 죽음 아래 있는 것, 죽을 때 가져가지 못하는 것, 이 세상 안에 있는 거기에 모든 가치와 소망과 욕망과 전노력이 그리로 다 기울어져서 불철주야 그것만 바라보고 어릴때도 청년때도 젊을때도 장년때도 노년때도 그래만 살다가 마지막에 죽는데 그 이면에 그것이 왜 그리 되어지느냐. 그것이 말하자면은 지금 북한은 좀 덜할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정보가 다 빠르고 퍼져있으니까. 그래도 많은 사람들,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북한 밖의 세계를 모르고 그 안에서 살면서 자기들 지도자 그 수령님이 어버이고, 그가 우리의 뭐고 그래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아마 세상이 밝아졌다 그래도 제법 그들은 거기 있을 겁니다. 그래서 거기 붙어야 살고 충성해야 살고 그게 자기들 사는 길이고 그게 생활이고 하는 그거. 그래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냐. 자기들이 종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말이지요. 그게 전부인 줄 아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은 아득하게 모르고 있고, 중생 되어서 신앙 출발해서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신앙 출발하고 있는데 그 믿음 생활 하고 있으면서도 현재 내가 사는 이 생활 모습이 이게 믿는 사람으로써의 자유 하는 생활이냐. 크게 말하면 교회 자유 그 다음 양심 자유, 신앙 자유 이런 것인데, 주일을 지키려할 때 주일을 지키는 자유가 있느냐? 성경 읽고 싶을 때 성경 읽을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있느냐? 기도하고 싶을 때 기도하는 그런 자유가 있느냐? 심방 전도 하는 자유가 있느냐? 좀 더 올라가면 집회 자유가 있느냐? 예배 자유가 있느냐? 옳은 말씀대로 거짓말하지 않고 남 속이지 않고 할 때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있느냐? 자기를 돌아보고 거기서 그럴 때 현재 내 가정생활은, 나의 사업하는 생활은, 내 직장생활은, 내 학교생활은, 내 모든 생활은 믿는 사람으로서 하기는 해야 되고 이렇게 살기는 살아야 되는데 이 생활에 내가 믿는 사람으로써 하나님을 향하는 자유, 하나님을 찾는 자유, 교회 생활의 자유, 예배 생활의 자유, 신앙 생활의 자유, 말씀을 어기지 않을 수 있는 양심 생활의 자유, 이런 자유가 있어서 원하는대로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아니면 그런 자유를 원하지만은 어떤 사람은 사람에 붙들려서, 어떤 사람은 직장에 붙들려서, 어떤 경우는 학교에 붙들려서, 어떤 경우는 사업에 붙들려서, 가정에 붙들려서, 또 자기 취미나 습성에 붙들려서 그래가지고 자유하지 못하고 종 되어 사는 그런 믿는 사람들이 오늘날 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자유를 해야 되는데, 해방 받아 자유를 해야 되는데, 여기서 자유하는 첫째 조건이 뭐냐?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종으로 살지 아니하고 믿는 사람의 본모습으로 자유하는 생활하는 그 자유생활의 첫째 조건은 자기가 종된 그 사실을 알고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겁니다. 내가 종된 그 사실을 알고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되는 이것이 자유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라는 겁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자기를, 나를, 자신을 붙들어 매여 있는 대적이 뭐냐 적이 뭐냐 원수가 뭐냐 이것을 두 번째는 알아야 됩니다. 이걸 알아야 되지 자기를 붙들고 있는 적이 무엇인지 모르면 자유하지 못합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다. 믿는 사람으로써 죄 짓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짓고 싶지 않은 죄를 짓게 되니까 자유가 없는 겁니다. 종입니다. 죄를 짓고 나면 양심의 가책이 됩니다. 힘이 빠집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도 자유하지 못하고 또 죄를 짓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설교록에 보니까 그런 말씀이 나옵디다. 어떤 사람이 오래토록 믿은 사람인데, 도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교회 안에 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랍니다. 훌륭한 사람인데, 존경받는 사람인데 아무도 모르는데 목사님만 아셨는데 이분이 한번씩 끊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은 담배를 끊지 못했답니다. 담배를 끊지 못해가지고 담배를 피면 아무도 몰래 집에서 떠나서 믿는 사람들 없는데서 저 남의 동네에 가서 숨어가지고 담배 곰방대에 넣어가지고 한 모금 딱 빨고 온답니다 겁이 나니까. 한모금 딱 빨고 집에 몰래 돌아오는데 그것을 그렇게 못 끊어서 오래토록 고생을 했답니다. 사회적으로 신분도 높은 사람이고 그런 의지도 있겠지요. 가정에서도 존경받고 교회에서도 존경받고 장로될 만한 그런 사람인데 그분이 담배 한 모금 그것도 매일도 못하고 어쩌다 한번 생각이 나면 고 가서 한번 뻐끔 피우고 오는데 그걸 끊지 못해가지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고 거기 종이 되어서 종노릇을 하더라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그게 그 사람은 거기 종입니다. 끊지 못해서. 끊어야 되는데, 하지 말아야 되는데, 하지 말아야 되는데 하게 만드는 고놈이 뭐냐 그게 바로 종이라는 겁니다.
술을 끊어야 되는데 끊지 못하니 술의 종입니다. 종은 자유가 없는 겁니다. 자기 자유가 없습니다. 자기를 붙들고 있는 그것이 시키는대로 하는게 종입니다. 종은 주인이 가라면 가야되고, 오라면 와야 되고, 죽는 시늉이라도 하라 그러면 해야 됩니다. 굶어라면 굶어야 됩니다. 그게 종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대로 못 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죄에서 자유를 해야 됩니다. 죄를 안 짓고 싶으면 끊을 수 있어야 자유가 되는 겁니다. 먹지 말아야 될 것은 안 먹을 수 있어야 자유입니다. 하지 말아야 될 것은 안 할 수 있어야 자유입니다. 가지 말아야 될 곳은 내가 마음 먹으면 안 갈 수가 있어야 그게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가지 말아야 되는데, 안 가야 될 줄 알면서 이런 핑계 저런 핑계 합리화를 시켜서 꾸역꾸역 끌려서 자기 습성에, 친구에게, 사람에게 끌려서 가게 되는 게 바로 종노릇입니다. 노름하는 사람들이 노름 하다가 집안 다 말아먹고 가정 파탄이 나고 손가락을 잘라도 마지막에 토막손 가지고 노름을 한다고 그러지요. 노름의 종입니다. 술 먹는 사람이 술에 종되고 나면 못 끊지요. 종입니다. 담배 피는 사람이 담배에 중독되고 나면은 못 끊습니다. 종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게임에 빠져들면 게임에 중독이 된 것이 바로 게임에 시키는대로 종입니다. 부모님이 하지마라 하면 해롭다 그렇게 말해도 부모님과 등이 지고 집에서 가출하고 그래도 그놈을 끊지 못하는 그것이 종노릇입니다. 자기 앞날 미래 다 망치고 신세 망치고 자기 천물 되고 다 그리되는 갈 길이 뻔한대도 그걸 끊지 못하니 그게 전부 종입니다. 종노릇하는 겁니다.
거기서 자유하려면 첫째는 자기가 종된, 내가 지금 이놈의 종이 되었구나 그래도 돈의 종도 종인데 돈의 종이면 좀 덜하겠습니다. 세상은 다 그런거니까. 직장의 종은 종이라 하기 곤란하지만은 강하니까 내가 약하니까 그래 된 사람도 있지만은 좀 덜 하겠습니다. 사업도. 그런데 보면은 술의 종, 담배의 종, 휴대폰의 종, 게임의 종, 향락의 종, 이런 종들은 참으로 가치없는 무가치한 것들입니다.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면 신앙은 커녕 이 세상에서도 그 사람은 뭘 하기가 어렵고 항상 남 밑에 천물이 되어집니다.
더 올라가면, 신앙으로 더 올라가면 여러 가지 이제 고차원적인 그런 게 나오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이 복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는, 하나님과 연결된 산 믿음이 될 수 있는 이런 옳은 일. 죄를 물리쳐 이기고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하고 깨어 살고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이렇게 사는 이게 믿는 사람의 자유 생활인데 이래 하지 못하게 하는 내 속의 나를 붙들고 있는 원수가 누구냐? 요걸 알아야 종된 걸 알고 자유를 원하고 그다음에 두 번째는 요걸 알아야 거기서 벗어날 수가 있는 조건이 두 가지 성립이 되고 세 번째는 종 된 줄 알고 자유를 아무리 갈망을 하고 대적을 알아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거기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종된 줄 알아도 그들 힘으로 애굽에서 바로를, 그 바로의 강한 군대 세력을 이스라엘로서는 절대 못 이기는 겁니다. 안 되는 겁니다. 사람이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말할 것도 없고.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거는 하면 안되는 거다 여기서 벗어나야 된다고 아무리 알고 갈망 하고 그 대적을 알아서 요놈이 원수다고 알고 발버둥을 쳐도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못합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요것도 알아야 됩니다 세 번째. 이게 세 번째 조건입니다. 자유하는 세 번째 조건. 사람 힘으로 안되는 겁니다. 네 번째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순서적으로 한번 더 반복하면, 복습하면, 첫 번째는 종된 것을 알아야 됩니다. 믿는 사람은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종된 걸 알고 자유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종이 되고 나면 자유는 없는 겁니다. 자유가 없으면 자기 생활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전부 애굽에 종되니까 이스라엘 생활은 없는 겁니다. 알아야 됩니다. 두 번째는 적을 알아야 됩니다. 세 번째는 사람의 힘으로 못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됩니다. 다섯 번째 마지막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첫째는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서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옵소서 종이 되어서 자유하지 못하는 이런 천한 생활 하고 있으니까 도와주옵소서 기도해야 되고. 두 번째는 자기 있는 힘을 다해야 됩니다. 기도하면서 자기 할 수 있는 힘은 다 해야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서 어떤 종된 것에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기도하고 있는 힘을 다하는 요것이 마지막 결론으로 자유하는 방법.
그래서 오늘 오전 말씀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출애굽하여 자유 얻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믿는 사람은 자유하는 사람이니까 자유를 원하고 자유하는 사람이 되자. 같이 한 번 해보실까요. 자유를 원하고 자유하는 사람이 되자. 스스로 한번 돌아보십시다. 나는 자유하는 사람인가 나는 물질에 자유가 있는가 나는 향락에 자유가 있는가
우리 학생들은 나는 게임에 자유가 있는가 나는 휴대폰에 자유를 하고 있는가 아주 안 좋게 나는 술에 담배에 이거는 많지 않겠지만은 하고 있는가 또 고급으로 올라가면 어떤 사람은 더 고급에 자유된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자윤데, 좋은 종인데 공부에 종 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그것도 또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이러니까 나는 어디에 붙들려 자유하지 못하고 종이 되어있는가. 우리가 종될 것은 하나님에게 종되고 영감에 종되고 진리에 종되고 대속의 사랑에 종이 되고 옳은 것에는 종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어떤 것에게도 종되지 않아야 됩니다. 자유하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하고 힘을 다해서 노력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