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0526-주일오후(눅17:5-10)
믿음이 자라는 방편2013-05-27조회 639추천 74
20130526 주후
누가복음 17:05-10
기독교는 믿음의 도라 그럽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육의 모든 복을 믿음으로만 받아서 내 것을 삼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모든 성공은 믿음으로만 성공하고 믿음이 없으면 기독자로서의 성공은 없다 그 말입니다 믿음만 하면 능치 못함이 없고 믿음이면 전부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믿음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고 외형적으로는 우리 사람의 요소로 되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전에 말씀을 드린대로 믿음이란 그 요소가 몇가지라 그랬습니까 요소가 첫째는 지식이고 지식이라 말은 아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인정이고 내 마음에 그대로 받아드리는 인정 세 번째는 실행하는 겁니다 그대로 행하여 살고 상대를 하는 이 세가지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믿음이 아주 좋은 사도들이 물론 이때는 아직까지 신앙이 어렸을 때지만은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믿음이 앞선 그런 사도들인데 이 사도들이 주님에게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그리 청원을 했습니다
엘리야를 따라서 여러 단계를 거쳐서 죽음까지 통과한 죽음에 지경까지 넘어선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구한 것은 원수의 생명 멸하는 것이나 부귀영화를 구하지 아니하고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구했듯이 좀 다르지만은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실 때 이 백성은 많고 이 나라는 크고 나는 심히 미약하니까 이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럴 때 그 구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해졌기 때문에 지혜도 주시고 부귀영화도 같이 주셨습니다
엘리사가 영감의 갑절을 구했을때 영감의 갑절도 받았고 또 그거 있으면 전부 다 있으니까 다른 것도 다 같이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사도들은 주님에게 믿음을 구했습니다 믿음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겠다 믿음이 가장 값지고 보배롭고 귀한 것이다 깨닫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주옵소서 간청을 했습니다
오전에 말씀드린 걸 좀 단계적으로 한번 복습 해보면 첫째 믿음이 무엇이냐 믿음의 정체 실체를 한번 나름대로 좀 좁은 범위지만은 해부를 한번 해본겁니다 믿음이란 그 요소를 말하면 세가지다 믿음이란 것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이나 물건이나 어떤 존재 내가 믿어야 될 대상 혹은 믿어야될 일 어떤 사건 그런 것에 대해서 첫째는 내가 아는 겁니다 존재를 알고 그 상황을 알고 아는 겁니다 알아야 믿음이란 그 역사가 믿음이란 그 모든 작용이 실제 이루어지는 첫단계가 아는 것이다 모르면 믿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주 말씀을 드린대로 신앙이란 것은 아는데서 되는 것이지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르면 믿음이 아니고 모르면 신앙의 가장 생명적이 되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생명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있는데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모르면 참된 신앙이 될 수 없다는 이 면을 두고 신앙의 가장 중요한 그런 부분을 연결시켜본다면 무엇입니까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 자의성이니까 모르고는 자유성은 자의성이라는 것은 모르는 자유의지는 없는 겁니다 알아야 자기 자유의지가 나서는 것이지 모르는 자유성은 없지요 모르고는 자유의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신앙이란 것은 믿음이란 것은 아는 것이 첫째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구원 주신 모든 구원세계에 대해서 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 하나씩 알아야 되는 것이다 아는 것이 믿음의 첫단곕니다
두 번째는 아는 그것을 내 자의사가 내 이성과 지성 비판이 그것을 그러하다고 인정해서 받아들이는 겁니다 내가 그것이 인정이 되어져야 됩니다 이거는 흙이다 아 흙이구나 이거는 돌이다 돌이 아닌데 나무 같은데요 그러면 믿음이 안되는 겁니다 이거는 나무다 나무가 이렇게 단단할 수 있습니까 나무처럼 생겼지만은 돌이 아닌가요 그래도 나무다 그럴 때 돌 같은데 하고 자기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거는 자기에게 나무로 그렇게 인정이 되지 않고 나무로 활용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거는 콩이다 콩처럼 생긴 팥도 있다던데 팥이 아닌가요 콩처럼 생기고 이거는 콩이다 팥이 아니고 그럴 때 그 사람이 콩처럼 생긴 팥도 있다던데 하고 콩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콩으로 쓸 수 있는 그 용도의 그 사람이 그걸 콩으로 쓰지는 않을 겁니다 팥죽을 끓일진 몰라도
모든게 다 그렇습니다 물질이든 일이든 어떤 일이 꼬여서 돈을 빌려 줬는데 돈을 받으려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럴 때 그래가지고 돈이 받아지겠습니까 하고 의심을 하면 그 돈은 그 방법은 쓰지 않습니다 들어볼 때 과연 그러면 그 흉악한 사기꾼한테도 돈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인정이 되면은 그 방법을 써보겠지요 첫째는 아는 겁니다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상황이 어떠냐 그가 누구냐 무엇이냐 첫째는 아는 것. 뭐가 아는 거라고 이은이? 아는게 무엇이라고요? 믿음의 첫 번째 요소.
두 번째는 아는 그대로 자기 자의사가 자기 이성 지성 비판이 받아들여서 내 것을 삼는 겁니다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이 아는 것과 인정이 정말 바로 되었으면 세 번째 그대로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요게 믿음이다 이걸 첫 번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오전에 구별 안했지만은 두 번째는 믿음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작용이 따라가야 믿음이다 아는 지식과 인정이 바로 되어졌으면 자기 심신에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거기 대한 믿음이 필요할 때 거기 대한 그 내 그것을 상대하는 상대나 처리하는 것이나 받아들이는 것이나 물리치는 것이나 해결하는 것이나 어쨌든 내가 상대하는 사람 사건 물질 모든 상황 거기서 믿음이 필요할 때 알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되었으면 필연적으로 그대로 처리하고 따라가는 요 작용이 활동작용이 요게 말하자면 행함인데 요것이 필연적으로 따라가야 비로소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믿음은 필연적인 작용이 있다 그 말입니다
여름이 되어서 상추쌈을 좀 먹고 싶다 그런데 시장에 나가서 사먹는 것도 좋지만은 우리집 마당에 혹은 베란다에 옥상에다가 조그마하게 화단을 만들어가지고 거기다 상추씨를 뿌리면 상추가 나서 우리 집에서 뜯어 먹으면 되겠다 땅에다가 상추씨를 뿌리면 요게 싹이 나고 상추가 커서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먹을 수 있게 되는 걸 확실히 아는 사람은 그 일이 필요하면은 상추씨를 뿌리게 되겠지요 땅에다가 씨 뿌린다고 상추가 날까? 안 믿어지는 사람은 필요없는 사람은 아니고 안 믿어지는 인정이 안 되는 사람은 그게 그래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땅에다가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난다 요걸 알면 필연적으로 필요한 사람은 뿌려서 가꾸게 되겠지요
여름철에 화분에다가 물을 되게 뙤약볕에 한 삼일 안주면 식물이 화초가 말라 죽는다 요걸 아는 사람은 귀찮아도 더워도 물을 하루 이틀만에 꼬박꼬박 주게 됩니다 요 화초를 아끼고 가꿀 사람 같으면
그런데 이게 설마 뭐 일주일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하루 이틀 삼일정도 안 줘도 괜찮다고 생각되면 삼일 안 줄 수 있을 것이고 삼일 안주면 그 여름 뙤약볕에 식물이 다 타서 죽어버린다고 아는 사람은 적어도 삼일에 한 번 씩은 물을 주게 될 겁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간다고 인정이 되는 사람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부 안하는 학생은 하기 싫던지 아니면 나는 머리가 나빠서 공부해도 안되더라 그리 되던지 둘 중에 하나겠지요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으면 배고픔이 면해진다고 알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든 빵을 먹든 식물을 음식을 먹게 되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배가 고픕니다 밥 먹어라 밥 먹는다고 배고픈게 면해지는가요? 밥 먹으면 된다 밥을 먹어보면 배고픔이 면해지는 거지요
길을 가다가 산에 집회장소 가다가 뱀을 봤는데 독사다 물리면 독이 있다 위험하다 그러면 아는 사람은 조그만한 어린 아이들은 건드려 볼 수 있을 겁니다 철이 없으면
그런데 요게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모험심이 있던지 장난끼가 아니면 위험하다 싶으면 피하든지 물리치든지 그러겠지요
독사를 장난감 삼아 데리고 놀지는 않을 겁니다 위험한 줄 아니까
그러면 배 고플 때 밥 먹으면 배가 부른 줄 아는 사람은 밥을 먹게 되고 필요한 데 땅에 씨앗을 뿌리면 땅이 식물을 내줄 줄 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씨앗을 뿌리게 되고 날이 추울 때 옷을 따뜻하게 입으면 될 줄 아는 사람은 옷을 따뜻이 입게 되고 또 독사가 위험한 줄 아는 사람은 독사를 장난감 삼아 데리고 놀지는 않을 것이고 피할 것이고. 살인 진드기가 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이런 도심에는 잘 없겠지만은 오늘 저녁 산기도 갈 때도 산기도를 가야되는데 살인진드기가 있다 그러니까 이왕이면 좀 얇은 긴소매를 입고 좀 조심을 하는게 좋겠다 뭐든지 지나친거는 아니함만 못하지만은 그래도 필요한 조심은 하는게 좋겠지요
그런 모든 것들이 알고 인정하는데에 따른 필연적인 작용이다 활동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반드시 작용이 따라간다 활동이 따라간다 그 활동 작용 마음도 있고 몸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 겁니다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사건에 따라서 존재에 따라서 내가 대처하는 생각이나 마음이나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없다고 하는 그 사실을 믿으면 정말 알고 믿으면 알았으니까 인정하면 마음속으로 아무리 미운 사람이 보여도 속에서 ‘저 인간‘ 하고 미움이 나오다가도 아차 미움은 살인이지 미워하면 안되지 하고 얼른 미워하는 그 마음을 빼내는 것이 믿음입니다
평소에는 믿음 믿음 해도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잔데 영생이 없는데 미운 인간이 나타나니까 아 저 미워서 죽겠네 하고 미운 마음을 딱 가져버렸으면 그 사람은 그 순간 믿음을 지키지 않은 사람입니다 알아도 행해도 그 미워하는 그 미움의 도수가 영생보다 더 커서 마치 부자 청년이 주님에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계명들을 지켜라 다 지켰나이다 한가지가 부족하다 무엇입니까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 주고 나를 쫓으라 하니까 소유가 아까워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는데 영생을 얻으러 왔던 그 부자 청년이 영생도 버리고 영생 주시는 주님도 버리고 돈 때문에 따라서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계명을 다 지켰으니까 신앙이 어느 정도입니까. 믿음의 정도가. 굉장히 잘 믿는 사람입니다 아주 잘 믿는 사람인데 그래도 뭔가 좀 부족한가 싶어서 영생 얻으러 왔다가 그래 말씀하시니까 그렇게 열심히 믿던 청년이 알고 보니까 그 믿음은 자기도 모르는 가짜는 아닌데 알고 보니까 자기 속에 계명 지킨 그 전부보다 하나님보다 영생보다 더 큰 도둑놈이 자기 속에 들어 있었는데 그 부자 청년은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가 가진 재물을 따라서 가버렸습니다 그 부자 청년이 그래했는데 우리는 그리 안한다고 보장을 하십니까 우리에게 그런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믿음이란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그 믿음은 결국 자기 가진 그 재물 그것을 능가하지 못한 그런 믿음이었기 때문에 결국 거기에 삼켜지고 말았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믿음은 영생 다른거는 다 좋았는데 마지막 끝에 가서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 주고 그거는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거지 우리 모두 다는 아니라 그랬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그랬는데 그 사람은 영생을 얻으러 왔지만은 주님이 말씀하신 영생 얻는 방법을 말씀하셨지만은 그에게는 그것이 지식으로는 알겠는데 인정은 되어지지만은 그러나 그 인정이 자기 소유를 다 팔고 가난한 자들 주고 주님 따라갈 만큼의 인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 주고 주님 따라가는 그 작용은 그 부자 청년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지요 그러면 그 부자청년의 믿음은 믿음이 아닌겁니다 마지막 끝에 가서. 믿음이란 것은 그게 되야 믿음입니다
당신은 성격을 좀 고치십시오 그 못된 속아지 좀 자존심 상하는 말 귀에 거슬리는 말 내 속 썩이는 말 들으면 그만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하고 속에서 확 일어나서 순간적으로 불뚝 성질내는 그것 좀 고쳐야 됩니다 그럴 때 그거 안 고치면 영생이 없습니다 그럴 때 그런 현실이 와서 누군가 자기 속을 긁어서 속에서 막 치밀어 올라오는 그것을 꺾어서 누를 수 있어야 그래도 이거 나오면 안되는데 싶어서 누르려는 작용이 있으면 그래도 믿음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끝에 가서 누르지 못하고 또 튀어나왔으면 그 순간 믿음은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 눌러서 꺾은 작용은 없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첫째 믿음이란 요소적으로 세분하면 지식과 인정과 행함이고 두 번째 믿음은 필연적인 작용이 있게 된다 지행(知行)의 필연적인 작용 이것이 되어져야 믿음이 되는 것이다 작용이 없고 자기가 알고 인정하는데 따른 역사가 활동이 작용이 없는 지식과 인정은 그거는 믿음이 아닙니다 작용이 따라가야 활동이 따라가야 믿음이다 그말이지요
말하자면은 원동이 있으면 피동이 있고 그리되듯이 지식과 인정이 있을 때 거기 따라가는 내 심신의 움직임 작용이 들어가야 비로소 믿음이 되어지는 것이다 필연적인 작용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필연적인 작용. 믿음의 필연적인 작용.
요게 있어야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야고보서 2장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그 말은 아무리 지식적으로 배가 고플 때 먹으면 배부른줄 알면 뭐하느냐 먹지 않으면 배는 불러지지 않는다 추우면 옷을 입으면 될 줄 알지만은 추운데 옷을 입지 않고 떨고 있으면서 춥다 춥다 그러고 옷 입으면 되는데 옷이 있는데 입지 아니하고 옷 입으면 되는데 암만 그러면 뭐하느냐 입어야 추위가 면해진다
비로소 작용이 역사가 작용이 움직임이 활동이 할거는 하고 끊을 거는 끊고 맺을 것은 맺고 갈 곳은 가고 볼 거는 보고 금할 거는 금하고 생각할거는 하고 하지 말건 하지 말고 이런 내 심신의 작용역사가 있어야 그것이 믿음이지 아는 하나님 말씀 아는 대로 거기 따라가지 내 심신의 활동 작용이 거기 따라 같이 동행하지 않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그 믿음에는 아무런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한 효력을 보지 못한다 그 뜻입니다
첫째는 믿음의 정체 두 번째는 믿음의 필연적인 작용 세 번째는 그러면 요 두 가지를 알고 우리 자신의 믿음을 한번 돌아보자 그 말입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첫째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정말 믿느냐 하나님을 과연 믿느냐 그분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역사하시는 분인 것을 정말 믿느냐 믿는다면 하나님은 그분이 자존자라 그분이 스스로 계신 분이고 그분이 모든 존재 원인자라 근본이라 그분에게서 모든 존재가 다 나왔고 그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가장 크고 높고 두려우신 분이라 그렇다면 하나님을 내가 참으로 얼마만큼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이 얼마만큼 큰가 그분 이전도 없고 이후도 없고 그분 밖에도 없고 그분 위에도 없고 아래도 없고 아무것도 그분이 전부고 하나님이 계심으로 인해서 모든 존재도 모든 작용도 다 있게 되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의 근원 생명의 근원 하나님은 소망의 근원 성공의 근원 하나님은 모든 전부의 사람들이 소망하는 전부의 근원이 하나님. 그분에게서 모든 게 다 나오고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을 내가 알기 위해서 내가 얼마만큼 노력해봤는가 얼마만큼 기도해봤는가 하나님의 구원세계를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 자체로 말하면 우리를 가르치고 연습시키고 연단시켜 수많은 현실 과정 과정 장소와 환경을 만들어서 우리를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가르치고 연습시켜서 우리를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영원한 천국 우주와 영계가 통일된 그 나라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이런 대리 통치자를 만드신 이게 우리의 구원인데 이 구원의 실체를 한번 생각해봤는가 저도 지금 설교 하면서 속으로는 저 자신에 대해서 웃고 있습니다 너는 어떠냐 생각은 많이 해봤습니다 지금도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생각도 해보고 비교도 해보고 연구도 해보고 과연 그러하다 하고 감탄도 하고 감사도 하고 놀라기도 하지만은 그러나 막상 현실에 들어가보면 이런 모든 것이 내 속에 있는 욕심을 악성을 악습을 내 나쁜 생활을 게으른 생활을 힘든 고달픔을 능가할 만큼 이 믿음이 강하지를 못하니까 알지만은 그 아는 대로 전심전력을 다 기울이지 못하는 겁니다
기독교에서 기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많이 있는 중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진실. 진실이 무엇인가 진실은 말씀을 주셨으니 이 말씀에다가 나를 대조해서 따져보는 게 진실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그분이 살아계셔서 모든 걸 다 보고 계신다 내 모든 마음 깊은 속까지 그분이 낱낱이 다 현미경보다 더한 불꽃같은 눈초리로 내 심정 심장 폐부를 전부 꿰뚫어서 천하 인간 아무도 모르는 내 속의 깊은 중심 욕심 이런거 하나까지 하나님이 전부다 보고 다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해야된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안되는 것이 없고 그분이 복을 걷어가시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고 믿으면 그분 앞에 벌벌 떨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고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나는 얼마만큼 정말 하나님의 복을 바라보고 소망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있는가
아기를 데린 아기 엄마들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우리 아이가 믿음으로 자랄 것인데 아이 자녀 신앙은 모계로 이어진다 그러는데 내가 정말 하나님이 우리 아이에게 믿음 주시고 복을 주시기 위해서 얼마만큼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면서 눈물로 기도를 얼마만큼 했는가
하나님이 섭섭해 하실까 싶어서 내 마음이나 생각이나 신앙생활에 대해서 얼마나 조심했으며 얼마나 노력했으며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리 했는가
내가 하나님 같으면 현재 내 모습에 이런 저런 복을 주시겠는가 진실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살펴봐야 됩니다 그게 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진실하면 어디가서 큰소리 못 칩니다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진실은 자기를 아는 게 진실입니다 겸손이면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로 아는 게 진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늘 대보고 그분 앞에 늘 두려워하고 조심하고 그분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서 그분의 마음을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마음으로 늘 조리는 이런 생활 할 수 밖에 없는 그게 진실입니다 얼마만큼 그리 하셨습니까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만큼 연구해봤는가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기 학업에 들인 그 노력에 십분지 일만큼 하나님을 연구해봤는가 연구해보셨습니까 공부 좀 하는 분들은? 내가 학업에 내 시간과 열정을 드리는 그 십분지 일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해보고 찾아 들어가보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실 겁니다 그 만큼 마음을 들여서 기도해보셨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보셨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직장 생활에 충실하는 내가 직장에서 맡은 그 직장 열심히 해야지요 충실해야지요 그러나 그 직장생활하는 그것에 십분지 일만큼이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 해보셨습니까? 하나님 알기 위해서 고민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무릎 끓고 기도를 정말 깊은 속에서 해보셨습니까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나님과 나 사이 거리끼는게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회개하는 그런 노력을 해보셨습니까
이런게 있는 만큼이 진실의 첫도입니다 기독교는 말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이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실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실상이 없는 복음은 다 허상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중요하고 설교의 은혜와 능력이 뭐냐? 설교의 능력은 참 이것도 많이 말씀 드린 건데 백목사님의 설교를 오늘로 올해로 25년이 넘었는데 89년이니까 25년이지요 25년짼데 아직까지도 그분 설교를 재독을 하고 자꾸 하라고 권면합니다 왜 그런가 그분의 설교는 당신이 그 말씀을 가지고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졌고 백목사님을 변화시킨 변화된 당신이 변화시킨 그 말씀을 실제 변화된 사람이 변화된 그 말씀을 전하니까 그 전하는 설교는 단순히 말이 아닙니다
말을 하면 논리라던지 고저청탁을 넣어서 수사라던지 이런걸 가지고 하면 백목사님보다 웅변도 논리도 더 정연하게 할 수 있는 분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래도 그 설교 그런 말은 잘하고 감동은 되는 것 같은데 실제 변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설교하는 그 사람이 변화되지 않은 상태로 말을 전하니까 듣기는 듣고 은혜는 되는데 사람이 변화가 안됩니다 백목사님 설교는 당신이 변화가 되가지고 전하니까 들을 때 까끌까끌하고 재미없는 것 같으나 듣고 나면 그 사람이 변화가 되버립니다 설교하는 사람이 변화가 되니까 변화된 사람이 전하니까 듣는 사람이 변화가 되버립니다 설교의 능력이고 은혜라는 것은 그런게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실제가 되지 않는 신앙 실제가 되지 않는 말씀은 이거는 참 심판거리만 마련하지 그러기 때문에 말이 그래서 지난 집회도 그 말씀 많이 했습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모든 세대 나라 전체가 온 세월이 오래 지나감으로 사천년 세월이 지나가니까 종교 말년이 되어지니까 말은 전부다 꾸미고 잘하고 또 겉모습 도덕 윤리 인간관계 하나님의 외부적인 율법제도로 빈틈없이 다 행하기는 행하는데 보니까 아무리 들어봐야 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화가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아와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을 보여주옵소서 그럴 때 주님 말씀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무슨 표적만 있다고요? 선지자 요나의 표적이 뭡니까? 선지자 요나의 표적.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주님이 삼일만에 죽고 삼일만에 살아나신 예수님 사활의 대속의 역사가 아니고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겁니다
주님 십자가 대속 말하자면은 피와 성령과 진리 어렵지만은 이 역사가 아니면 이것이 없는사람 이걸 가지지 못한 사람 이것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자기 변하는 결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주님이 그때 거기서 결론으로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오늘 우리 자신의 믿음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하나님에 대해서 믿는 내 믿음 하나님의 크심과 그분의 두려우심과 그분의 권위와 영광과 존귀함과 그분을 나는 얼마만큼 아는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인정을 하고 있는가 내 주관으로 알지 말고 인간들이 말하는 걸로 하지 말고 땅에서 올라온 그 지식가지고 하나님을 알지 말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그대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과연 이 하나님을 정말 자존자로 절대 예정자로 주권자로 절대 섭리자로 완전자로 전지전능자로 무한자로 영원불변자로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이런 하나님인 것을 내가 정말 믿고 있는가 참으로 나는 믿고 있는가 믿고 두려워하는가 믿고 바라보는가 1시간 3분???믿고도 의심을 구하고 있는가 믿고 의지하는가 믿고 조심을 하는가
하나님이 주신 구원에 대해서 욕망을 두고 이 구원에 내 욕망과 노력은 얼마만큼 기울어져있는가
보화밭을 발견한 사람이 보화가 숨겨진 밭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보화가 숨겨진 그 밭을 샀느니라 그게 진실입니다 가다가 넘어지고 가다 또 죄를 지을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 진실하면은 기독교 신앙 이 구원 외에는 바라볼 것이 없다
믿는 사람이 깨닫고 나니까 하늘의 영생복락 우리 구원 이보다 더 큰 거 더 가치있고 귀한 것은 없다 이걸 깨달아서 여기 자기 전부를 다 받쳐야 되겠는데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리 되지 못하니 탄식이다 그래서 평생을 두고 이걸 위해서 노력을 하되 연약해서 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 때문에 못하니까 마음속에는 늘 짐이 되가지고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늘 죄인입니다
이 구원이 전부고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이 구원 향해서 가야되는데 돈에 메여서 직장에 메여서 사업에 메여서 가정에 메여서 자식들에 메여서 여기저기 메여가지고 이렇게 이 구원 향해 전심전력 다하지 못하니까 하나님 앞에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죄인입니다 그 눌리는 마음으로 평생을 사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깨달은 성도들은 지금도 다 그리 삽니다 충성을 하고도 그래 삽니다
주님 대속의 사랑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이 벌레만도 못한 나 같은 인간을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이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내가 죽을 영원한 죽음을 그분이 죽으셨다니 왠말인가 왠은혠가 어떤 사랑인가 도무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 사실을 얼마만큼 생각해보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얼마만큼 울어봤으며 기가 막혀 봤으며 얼마만큼 1시5분?도무지 의문을 가져봤으며 여기 감동되어서 얼마만큼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사는 생활을 얼마나 해봤으며 이것이 그것을 생각해본만큼 연구해본만큼 깨달아보고 느껴본만큼 그래서 그 사은의 생활을 억만분 일이라도 노력해본만큼이 진실입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나는 어떤가 죄하나 지으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 영원한 사망인데 내가 지은 죄는 수도없이 많으니 그 죗값을 다 어찌할까 심신의 기능이 다 죽어버리면 천국에서 영원토록 무능한 자가 되어지니 어찌할까
이걸 생각을 하고 지은 죄에 대해서 아픈 마음을 가지고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죄스러워서 어쩔줄 모르는 이런 고통을 얼마만큼 가져 보셨습니까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돌아보십시다 이게 신앙입니다 진실입니다 세 번째는 이걸 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와서 그래서 이 믿음을 가지고 소원해서 본문에서는 이 사도들이 이런 여러 가지를 다 알지는 못했겠지만 어쨌든 주님 따라다니면서 배워보니까 믿음이라야 되겠다 믿어지는 믿음이라야 되겠고 믿어지는 그 믿음 따라서 내가 그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독사를 보니까 물릴까 싶어서 피할 수 밖에 없는. 살인진드기 나온다니까 그게 좀 찝찝해서 조심할 수 밖에 없는. 모기에 물리면 전염병 옮고 따끔따끔하고 간지러우니까 모기장을 치고 잘 수 밖에 없는 모기약을 뿌릴 수 밖에 없는. 요런 행동이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그 믿음. 그 믿음이 참 믿음이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주님에게 간청할 때 주님의 대답은 믿음을 더 많이 가지고 싶으냐 더 크고 강한 믿음을 가지고 싶으냐 그러면 겨자씨 믿음을 가져라
겨자씨 믿음 오전에 몇가지라 그랬습니까? 겨자씨 믿음 첫째는 가장 작은 거 아주 작은 거 적은 거 보잘 것 없는 거 주일학생도 상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날이 가까운 노년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 믿는 사람도 상관 없습니다 무식해도 상관없고 가난해도 상관없고 몸이 불편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 자기가 알고 있는 가지고 있는 그 믿음 내가 가진 그 믿음. 1학년이면 1학년 믿음 유치원생이면 유치원생 믿음 이제 막 믿었으면 그 믿음 가진 그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는 사람은 그 믿음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 그게 겨자씨 믿음의 첫째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두 번째는 그런데 그 믿음이 살아있어야 된다 그 말은 작용을 해야 된다 생명이 있어야 된다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인데 다시 말하면 쉽게 말하면 그 작은 믿음이라도 괜찮은데 그 믿음이 움직여야 된다 활동을 해야된다
세 번째 그러면 필연적으로 자라게 된다 겨자씨를 말한 것은 작은 것 움직이는 것 자라가는 것인데 작은 것은 있는 것이니까 됐고 자라가는 것은 필연이고 저절로니까 되는데 문제는 두 번째가 되는 생명 있는 믿음인데 그 생명은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작용이란 무엇이냐 움직임이다 활동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평생 살아가는 것은 자기 환경에 살아가지 않습니까 가정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사업생활 사회생활 인인관계 사건처리 물질 관계 이런 모든 날이면 날마다 그 생활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 생활 속은 그 모든 생활은 전부 내가 사는 내 주위를 나를 둘러싼 내 활동 작용을 둘러싼 환경입니다 그 환경.
내가 살아가는 내 모든 나를 둘러싼 환경 그 환경을 순간 순간 통과할 때 마다 그 환경 순간 순간 그때 그때마다 내가 아는 대로 하나님 말씀을 버리지 말고 어기지 말고 그 말씀대로 통과해라 그 말씀대로 힘써서 순종을 해라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하다 그러면 부딪칠때도 있고 마찰될때도 있고 손해볼때도 있고 피곤할 때도 있고 잠을 못 잘 때도 있고 물질 손해 볼 때도 있고 아까운 것을 버려야 될 때도 있고 참아야 될 때도 있고 먹기 싫은 것 먹어야 될 때도 있고 먹고 싶은 것 못 먹을 때도 있고 말조심 할 때도 있고 마음속에서 옳은 걸 참아야 될 때도 있고 별의별 그런 작용이 있는데 그때그때마다 모르는거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대로 그 현실에 부딪힐 때 생각날 때 그때마다 아는대로 하나님 말씀을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말고 말씀 그대로 현실 현실을 주어진 그 통과 통과를 계속 통과해나가면 그게 바로 겨자씨 믿음이니까 그리만 해 나가면 시간 속에 자꾸 그 믿음이 자라게 된다는 겁니다 그걸 가리켜 겨자씨 믿음이라 말씀하신 겁니다
알기는 아는데 현실만 부딪히면 넘어져버리면 겨자씨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그거는 다 다르니까 아무리 어려도 상관없다 작아도 상관없다 어쨌든 작용이 있으면 된다 무슨 작용이라 말입니까 흙 속에 묻힌 겨자씨가 흙 속에 있으니까 겨자씨를 잡아 먹으려는 흙에 모든 작용들을 수분도 빨아먹고 온도도 빨아먹고 또 그 속에 여러 가지 영양분도 다 빨아먹으니까 빨아먹는 게 생명 있는 겨자씨의 작용입니다 빨아먹기만 하면 자라는건 저절로 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이 주신 땅 속 같은 흙 속 같은 내 세상 현실 오늘 주일 학교 때 세상의 소금을 공부했는데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에 빛이다 그 세상이 뭡니까 소금 작용을 하면 소금 역할하면 두 가지 작용합니다 맛을 내고 썩지 않게 만든다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들고 세상을 맛있게 한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온 세상을, 온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요? 내게 주어진 세상 온세상 지구 전부를 우리나라만 해도 안되는데 부산 지방도 못하는데 한 동네도 못하는데 우리 집안도 못 다스리는데요
내가 세상에 소금이라니 내가 녹아져서 썩는 걸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와 직접 부딪히는 내 세상이 있습니다 나와 관련된 가정이 있으면 부부가 있으면 부부가 우리 가정에 가족들이 내가 다니는 회사 사무실에 몇 사람이 그게 내 세상입니다 나는 거기 소금이니까 내가 소금으로 녹아지므로 가정에 가족들을 변화시키고 학교 반 친구 몇 사람 변화시키고 주일 학생 변화시키고 사무실 회사 사무실 몇 사람 변화시키고 그게 자기 세상입니다 그거 변화시키는 사람은 온 세상 변화시키는 것하고 다 연결이 되어져있기 때문에 다 결국은 다 하나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작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주신 분이 작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문제는 아는 것을 안하는게 문제입니다 아는 것을 행하지 않으니까 아는데 참지 못하고 아는데 게으르고 아는데 끊지 못하고 아는데 또 튀어나오고 아는데 또 가야되고 그러니까 자꾸 넘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은 아닌 겁니다
작아도 상관없다 자라는 건 저절로 된다 문제 우리 할 일은 작용이다 활동이다 역사다 무슨 작용입니까 하나님 말씀 아는 대로 그 현실과 연결된 그 말씀 아는 대로만 해라 그러면 그 믿음은 자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이고 그거 아닌 믿음은 평생을 믿어도 자라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내게 주시는 그 현실에서 아는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그 사람은 믿음이 결코 자라가지를 아니합니다 자라지 않는 믿음은 항상 그 자리 머물고 있습니다 늙은이 신앙 젊은이 신앙
우리는 믿음의 가치를 깨닫고 믿음을 구해야 되겠는데 하나님 앞에 믿음을 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겨자씨 믿음을 가져라 그게 믿음 자라는 방법이다 겨자씨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에게 준 너의 환경이 있다 너의 처소가 있다 네가 가는 장소가 있고 만나는 사람이 있고 너에게 부딪히는 일이 있다 그럴 때에 네 양심을 생각해보면 그때 그 사람에게 그 순간에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그때를 처리하고 상대하고 통과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 양심을 통해서 이미 받은 말씀으로 너에게 알아질 것이다 그때 그대로 하면 그게 작용이고 그게 바로 그 씨앗이 땅 속에 모든 영양분을 먹는 것이니까 그러면 자라게 된다
그래가지고 순간순간 계속해서 자라는 것이 신앙이 자라는 한 방법이고 두 번째는 무익한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밭 갈고 양치는 자기 구원입니다 밭 가는 거는. 자기를 갈아서 참사람을 만들고 양치는 것은 다른 사람 구원입니다 자기 구원 다른 사람 구원 위해서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충성도 하고 신앙생활 다 하는데 하고 난 다음에 어떤 한 사건이나 어느 한 시점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만큼 했으니까 하고 돌아볼 때 이만큼 했으니까 이제는 좀 앉아서 편안하게 저절로 될 것인가 좀 쉬워질 것인가 하고 앉아서 먹겠느냐 하지 말아라 죽도록 자기 구원과 다른 사람 구원 위해서 일차적으로 충성하고
두 번째는 또 다시 주님 이제 이거 하나 끝났으니까 여기가지 왔으니까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고 여기서 또 다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또 다시 주님 뜻을 또 찾고 세 번째는 그 찾은 뜻까지 다 하고 난 다음에 세 번째 단계에는 또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고 그래도 나는 종이기 때문에 무익한 종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하는 그 자세가 되어져야 비로소 믿음이 자라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본문에 믿음 자라는 방편이 몇 가집니까 저 혼자 지금 열을 내서 하고 있습니까 본문에서 믿음 자라는 방편 몇 가지 말씀했습니까 000 몇 가지요? 믿음 자라는 방편 크게 몇 가지? 00 몇 가지? 000 몇 가지? 그래서 제가 중간반에 남학생들에게 재미가 없습니다 이럴 때 보면은. 들으면 아는데. 여학생 00이 몇 가지? 00이도 몰라? 000 몇 가지? 000 몇가지? 두 가지랍니다 두 가지. 첫째는 뭡니까 믿음 자라는 방법 첫째는? 겨자씨 믿음. 두 번째는요? 무익한 종 되는 것. 그렇게 목이 터져라고 설명을 해도 생각을 안하면 안들리는 겁니다 들어도 생각안하면 안들리는 것이고 또 그냥 들어버리면 어려운 설교가 아닙니다 이 말씀이 어렵다 그러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들어보면 다 아는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산이다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못 오를리 없지만은 사람이 뭐라그런다고요? 사람이 제가 올라가지 않고 산만 높다 한다 들어보지 아니하고 생각지 아니하고 어렵다 그럽니다 들어보면 알고 생각해보면은 아는데. 왜 아는 사람은 아는데 모르는 사람은 왜 모릅니까? 아는 사람은 들으니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안 들으니까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자리에서 다 듣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몰랐습니다 그만큼 말해도 몰랐느냐 심판은 네 책임이다 기도 못한 책임도 있지만은 듣지 않은 책임, 생각지 않은 책임이 작지 않을 겁니다 오늘 오후에 말하자면 믿음 자라는 방편이 두 가지입니다. 앞에까지 말하면, 전체를 말씀드리면 첫째 믿음이 무엇인가 두 번째 믿음의 필연적인 작용, 필연적인 작용이 들어가야 믿음이다, 세 번째 우리들의 믿음을 진실하게 한번 돌아보자, 그리고 본문에서 첫째 믿음 자라는 방편 첫째는 겨자씨 믿음, 작용의 믿읍입니다. 두 번째는 무익한 종의 믿음 요거는 자세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활동 작용 충성이 되겠고, 무익한 종의 믿음은 우리의 중심 태도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 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느냐 거기 따라서 믿음이 자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겸손해야만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진실해 보십시다.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대조해 보고 내가 과연 이대로 살고 있는가를 따져 보고 따져 보고 또 대조해 보고 생각해 보고 자꾸 비교해 보고 분석해 보십시다. 그래 가지고 이 말씀대로 자기를 맞춰서 나가야 됩니다.
누가복음 17:05-10
기독교는 믿음의 도라 그럽니다. 기독교는 믿음의 도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육의 모든 복을 믿음으로만 받아서 내 것을 삼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의 모든 성공은 믿음으로만 성공하고 믿음이 없으면 기독자로서의 성공은 없다 그 말입니다 믿음만 하면 능치 못함이 없고 믿음이면 전부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믿음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고 외형적으로는 우리 사람의 요소로 되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전에 말씀을 드린대로 믿음이란 그 요소가 몇가지라 그랬습니까 요소가 첫째는 지식이고 지식이라 말은 아는 것이라 그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인정이고 내 마음에 그대로 받아드리는 인정 세 번째는 실행하는 겁니다 그대로 행하여 살고 상대를 하는 이 세가지가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믿음이 아주 좋은 사도들이 물론 이때는 아직까지 신앙이 어렸을 때지만은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믿음이 앞선 그런 사도들인데 이 사도들이 주님에게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그리 청원을 했습니다
엘리야를 따라서 여러 단계를 거쳐서 죽음까지 통과한 죽음에 지경까지 넘어선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구한 것은 원수의 생명 멸하는 것이나 부귀영화를 구하지 아니하고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구했듯이 좀 다르지만은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실 때 이 백성은 많고 이 나라는 크고 나는 심히 미약하니까 이 백성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럴 때 그 구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합해졌기 때문에 지혜도 주시고 부귀영화도 같이 주셨습니다
엘리사가 영감의 갑절을 구했을때 영감의 갑절도 받았고 또 그거 있으면 전부 다 있으니까 다른 것도 다 같이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사도들은 주님에게 믿음을 구했습니다 믿음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겠다 믿음이 가장 값지고 보배롭고 귀한 것이다 깨닫고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주옵소서 간청을 했습니다
오전에 말씀드린 걸 좀 단계적으로 한번 복습 해보면 첫째 믿음이 무엇이냐 믿음의 정체 실체를 한번 나름대로 좀 좁은 범위지만은 해부를 한번 해본겁니다 믿음이란 그 요소를 말하면 세가지다 믿음이란 것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이나 물건이나 어떤 존재 내가 믿어야 될 대상 혹은 믿어야될 일 어떤 사건 그런 것에 대해서 첫째는 내가 아는 겁니다 존재를 알고 그 상황을 알고 아는 겁니다 알아야 믿음이란 그 역사가 믿음이란 그 모든 작용이 실제 이루어지는 첫단계가 아는 것이다 모르면 믿음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주 말씀을 드린대로 신앙이란 것은 아는데서 되는 것이지 모르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 그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르면 믿음이 아니고 모르면 신앙의 가장 생명적이 되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생명성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 있는데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모르면 참된 신앙이 될 수 없다는 이 면을 두고 신앙의 가장 중요한 그런 부분을 연결시켜본다면 무엇입니까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 자의성이니까 모르고는 자유성은 자의성이라는 것은 모르는 자유의지는 없는 겁니다 알아야 자기 자유의지가 나서는 것이지 모르는 자유성은 없지요 모르고는 자유의사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첫째 신앙이란 것은 믿음이란 것은 아는 것이 첫째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구원 주신 모든 구원세계에 대해서 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많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 하나씩 알아야 되는 것이다 아는 것이 믿음의 첫단곕니다
두 번째는 아는 그것을 내 자의사가 내 이성과 지성 비판이 그것을 그러하다고 인정해서 받아들이는 겁니다 내가 그것이 인정이 되어져야 됩니다 이거는 흙이다 아 흙이구나 이거는 돌이다 돌이 아닌데 나무 같은데요 그러면 믿음이 안되는 겁니다 이거는 나무다 나무가 이렇게 단단할 수 있습니까 나무처럼 생겼지만은 돌이 아닌가요 그래도 나무다 그럴 때 돌 같은데 하고 자기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거는 자기에게 나무로 그렇게 인정이 되지 않고 나무로 활용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거는 콩이다 콩처럼 생긴 팥도 있다던데 팥이 아닌가요 콩처럼 생기고 이거는 콩이다 팥이 아니고 그럴 때 그 사람이 콩처럼 생긴 팥도 있다던데 하고 콩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콩으로 쓸 수 있는 그 용도의 그 사람이 그걸 콩으로 쓰지는 않을 겁니다 팥죽을 끓일진 몰라도
모든게 다 그렇습니다 물질이든 일이든 어떤 일이 꼬여서 돈을 빌려 줬는데 돈을 받으려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돈을 받을 수 있다 그럴 때 그래가지고 돈이 받아지겠습니까 하고 의심을 하면 그 돈은 그 방법은 쓰지 않습니다 들어볼 때 과연 그러면 그 흉악한 사기꾼한테도 돈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인정이 되면은 그 방법을 써보겠지요 첫째는 아는 겁니다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상황이 어떠냐 그가 누구냐 무엇이냐 첫째는 아는 것. 뭐가 아는 거라고 이은이? 아는게 무엇이라고요? 믿음의 첫 번째 요소.
두 번째는 아는 그대로 자기 자의사가 자기 이성 지성 비판이 받아들여서 내 것을 삼는 겁니다 그러하다 그리고 그것이 아는 것과 인정이 정말 바로 되었으면 세 번째 그대로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요게 믿음이다 이걸 첫 번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는 오전에 구별 안했지만은 두 번째는 믿음이란 것은 필연적으로 작용이 따라가야 믿음이다 아는 지식과 인정이 바로 되어졌으면 자기 심신에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거기 대한 믿음이 필요할 때 거기 대한 그 내 그것을 상대하는 상대나 처리하는 것이나 받아들이는 것이나 물리치는 것이나 해결하는 것이나 어쨌든 내가 상대하는 사람 사건 물질 모든 상황 거기서 믿음이 필요할 때 알고 인정하는 것이 바로 되었으면 필연적으로 그대로 처리하고 따라가는 요 작용이 활동작용이 요게 말하자면 행함인데 요것이 필연적으로 따라가야 비로소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믿음은 필연적인 작용이 있다 그 말입니다
여름이 되어서 상추쌈을 좀 먹고 싶다 그런데 시장에 나가서 사먹는 것도 좋지만은 우리집 마당에 혹은 베란다에 옥상에다가 조그마하게 화단을 만들어가지고 거기다 상추씨를 뿌리면 상추가 나서 우리 집에서 뜯어 먹으면 되겠다 땅에다가 상추씨를 뿌리면 요게 싹이 나고 상추가 커서 먹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먹을 수 있게 되는 걸 확실히 아는 사람은 그 일이 필요하면은 상추씨를 뿌리게 되겠지요 땅에다가 씨 뿌린다고 상추가 날까? 안 믿어지는 사람은 필요없는 사람은 아니고 안 믿어지는 인정이 안 되는 사람은 그게 그래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땅에다가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난다 요걸 알면 필연적으로 필요한 사람은 뿌려서 가꾸게 되겠지요
여름철에 화분에다가 물을 되게 뙤약볕에 한 삼일 안주면 식물이 화초가 말라 죽는다 요걸 아는 사람은 귀찮아도 더워도 물을 하루 이틀만에 꼬박꼬박 주게 됩니다 요 화초를 아끼고 가꿀 사람 같으면
그런데 이게 설마 뭐 일주일 정도야 괜찮겠지 하고 하루 이틀 삼일정도 안 줘도 괜찮다고 생각되면 삼일 안 줄 수 있을 것이고 삼일 안주면 그 여름 뙤약볕에 식물이 다 타서 죽어버린다고 아는 사람은 적어도 삼일에 한 번 씩은 물을 주게 될 겁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올라간다고 인정이 되는 사람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공부 안하는 학생은 하기 싫던지 아니면 나는 머리가 나빠서 공부해도 안되더라 그리 되던지 둘 중에 하나겠지요
배가 고플 때 밥을 먹으면 배고픔이 면해진다고 알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든 빵을 먹든 식물을 음식을 먹게 되는 겁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배가 고픕니다 밥 먹어라 밥 먹는다고 배고픈게 면해지는가요? 밥 먹으면 된다 밥을 먹어보면 배고픔이 면해지는 거지요
길을 가다가 산에 집회장소 가다가 뱀을 봤는데 독사다 물리면 독이 있다 위험하다 그러면 아는 사람은 조그만한 어린 아이들은 건드려 볼 수 있을 겁니다 철이 없으면
그런데 요게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모험심이 있던지 장난끼가 아니면 위험하다 싶으면 피하든지 물리치든지 그러겠지요
독사를 장난감 삼아 데리고 놀지는 않을 겁니다 위험한 줄 아니까
그러면 배 고플 때 밥 먹으면 배가 부른 줄 아는 사람은 밥을 먹게 되고 필요한 데 땅에 씨앗을 뿌리면 땅이 식물을 내줄 줄 아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씨앗을 뿌리게 되고 날이 추울 때 옷을 따뜻하게 입으면 될 줄 아는 사람은 옷을 따뜻이 입게 되고 또 독사가 위험한 줄 아는 사람은 독사를 장난감 삼아 데리고 놀지는 않을 것이고 피할 것이고. 살인 진드기가 있다 그러니까 아무래도 이런 도심에는 잘 없겠지만은 오늘 저녁 산기도 갈 때도 산기도를 가야되는데 살인진드기가 있다 그러니까 이왕이면 좀 얇은 긴소매를 입고 좀 조심을 하는게 좋겠다 뭐든지 지나친거는 아니함만 못하지만은 그래도 필요한 조심은 하는게 좋겠지요
그런 모든 것들이 알고 인정하는데에 따른 필연적인 작용이다 활동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에는 반드시 작용이 따라간다 활동이 따라간다 그 활동 작용 마음도 있고 몸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 겁니다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사건에 따라서 존재에 따라서 내가 대처하는 생각이나 마음이나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없다고 하는 그 사실을 믿으면 정말 알고 믿으면 알았으니까 인정하면 마음속으로 아무리 미운 사람이 보여도 속에서 ‘저 인간‘ 하고 미움이 나오다가도 아차 미움은 살인이지 미워하면 안되지 하고 얼른 미워하는 그 마음을 빼내는 것이 믿음입니다
평소에는 믿음 믿음 해도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잔데 영생이 없는데 미운 인간이 나타나니까 아 저 미워서 죽겠네 하고 미운 마음을 딱 가져버렸으면 그 사람은 그 순간 믿음을 지키지 않은 사람입니다 알아도 행해도 그 미워하는 그 미움의 도수가 영생보다 더 커서 마치 부자 청년이 주님에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계명들을 지켜라 다 지켰나이다 한가지가 부족하다 무엇입니까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 주고 나를 쫓으라 하니까 소유가 아까워서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는데 영생을 얻으러 왔던 그 부자 청년이 영생도 버리고 영생 주시는 주님도 버리고 돈 때문에 따라서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계명을 다 지켰으니까 신앙이 어느 정도입니까. 믿음의 정도가. 굉장히 잘 믿는 사람입니다 아주 잘 믿는 사람인데 그래도 뭔가 좀 부족한가 싶어서 영생 얻으러 왔다가 그래 말씀하시니까 그렇게 열심히 믿던 청년이 알고 보니까 그 믿음은 자기도 모르는 가짜는 아닌데 알고 보니까 자기 속에 계명 지킨 그 전부보다 하나님보다 영생보다 더 큰 도둑놈이 자기 속에 들어 있었는데 그 부자 청년은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버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가 가진 재물을 따라서 가버렸습니다 그 부자 청년이 그래했는데 우리는 그리 안한다고 보장을 하십니까 우리에게 그런게 얼마나 많겠습니까?
믿음이란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그 믿음은 결국 자기 가진 그 재물 그것을 능가하지 못한 그런 믿음이었기 때문에 결국 거기에 삼켜지고 말았다 그말이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믿음은 영생 다른거는 다 좋았는데 마지막 끝에 가서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 주고 그거는 그 사람에게 해당되는 거지 우리 모두 다는 아니라 그랬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그랬는데 그 사람은 영생을 얻으러 왔지만은 주님이 말씀하신 영생 얻는 방법을 말씀하셨지만은 그에게는 그것이 지식으로는 알겠는데 인정은 되어지지만은 그러나 그 인정이 자기 소유를 다 팔고 가난한 자들 주고 주님 따라갈 만큼의 인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 주고 주님 따라가는 그 작용은 그 부자 청년에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없었지요 그러면 그 부자청년의 믿음은 믿음이 아닌겁니다 마지막 끝에 가서. 믿음이란 것은 그게 되야 믿음입니다
당신은 성격을 좀 고치십시오 그 못된 속아지 좀 자존심 상하는 말 귀에 거슬리는 말 내 속 썩이는 말 들으면 그만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 하고 속에서 확 일어나서 순간적으로 불뚝 성질내는 그것 좀 고쳐야 됩니다 그럴 때 그거 안 고치면 영생이 없습니다 그럴 때 그런 현실이 와서 누군가 자기 속을 긁어서 속에서 막 치밀어 올라오는 그것을 꺾어서 누를 수 있어야 그래도 이거 나오면 안되는데 싶어서 누르려는 작용이 있으면 그래도 믿음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끝에 가서 누르지 못하고 또 튀어나왔으면 그 순간 믿음은 지키지 못했으니까 그 눌러서 꺾은 작용은 없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첫째 믿음이란 요소적으로 세분하면 지식과 인정과 행함이고 두 번째 믿음은 필연적인 작용이 있게 된다 지행(知行)의 필연적인 작용 이것이 되어져야 믿음이 되는 것이다 작용이 없고 자기가 알고 인정하는데 따른 역사가 활동이 작용이 없는 지식과 인정은 그거는 믿음이 아닙니다 작용이 따라가야 활동이 따라가야 믿음이다 그말이지요
말하자면은 원동이 있으면 피동이 있고 그리되듯이 지식과 인정이 있을 때 거기 따라가는 내 심신의 움직임 작용이 들어가야 비로소 믿음이 되어지는 것이다 필연적인 작용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필연적인 작용. 믿음의 필연적인 작용.
요게 있어야 믿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야고보서 2장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그 말은 아무리 지식적으로 배가 고플 때 먹으면 배부른줄 알면 뭐하느냐 먹지 않으면 배는 불러지지 않는다 추우면 옷을 입으면 될 줄 알지만은 추운데 옷을 입지 않고 떨고 있으면서 춥다 춥다 그러고 옷 입으면 되는데 옷이 있는데 입지 아니하고 옷 입으면 되는데 암만 그러면 뭐하느냐 입어야 추위가 면해진다
비로소 작용이 역사가 작용이 움직임이 활동이 할거는 하고 끊을 거는 끊고 맺을 것은 맺고 갈 곳은 가고 볼 거는 보고 금할 거는 금하고 생각할거는 하고 하지 말건 하지 말고 이런 내 심신의 작용역사가 있어야 그것이 믿음이지 아는 하나님 말씀 아는 대로 거기 따라가지 내 심신의 활동 작용이 거기 따라 같이 동행하지 않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그 믿음에는 아무런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한 효력을 보지 못한다 그 뜻입니다
첫째는 믿음의 정체 두 번째는 믿음의 필연적인 작용 세 번째는 그러면 요 두 가지를 알고 우리 자신의 믿음을 한번 돌아보자 그 말입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 첫째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정말 믿느냐 하나님을 과연 믿느냐 그분이 살아계시고 그분이 역사하시는 분인 것을 정말 믿느냐 믿는다면 하나님은 그분이 자존자라 그분이 스스로 계신 분이고 그분이 모든 존재 원인자라 근본이라 그분에게서 모든 존재가 다 나왔고 그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가장 크고 높고 두려우신 분이라 그렇다면 하나님을 내가 참으로 얼마만큼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이 얼마만큼 큰가 그분 이전도 없고 이후도 없고 그분 밖에도 없고 그분 위에도 없고 아래도 없고 아무것도 그분이 전부고 하나님이 계심으로 인해서 모든 존재도 모든 작용도 다 있게 되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복의 근원 생명의 근원 하나님은 소망의 근원 성공의 근원 하나님은 모든 전부의 사람들이 소망하는 전부의 근원이 하나님. 그분에게서 모든 게 다 나오고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을 내가 알기 위해서 내가 얼마만큼 노력해봤는가 얼마만큼 기도해봤는가 하나님의 구원세계를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 자체로 말하면 우리를 가르치고 연습시키고 연단시켜 수많은 현실 과정 과정 장소와 환경을 만들어서 우리를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가르치고 연습시켜서 우리를 귀하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영원한 천국 우주와 영계가 통일된 그 나라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하는 이런 대리 통치자를 만드신 이게 우리의 구원인데 이 구원의 실체를 한번 생각해봤는가 저도 지금 설교 하면서 속으로는 저 자신에 대해서 웃고 있습니다 너는 어떠냐 생각은 많이 해봤습니다 지금도 생각은 합니다 그런데 생각도 해보고 비교도 해보고 연구도 해보고 과연 그러하다 하고 감탄도 하고 감사도 하고 놀라기도 하지만은 그러나 막상 현실에 들어가보면 이런 모든 것이 내 속에 있는 욕심을 악성을 악습을 내 나쁜 생활을 게으른 생활을 힘든 고달픔을 능가할 만큼 이 믿음이 강하지를 못하니까 알지만은 그 아는 대로 전심전력을 다 기울이지 못하는 겁니다
기독교에서 기독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많이 있는 중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같이 한번 해보실까요 진실. 진실이 무엇인가 진실은 말씀을 주셨으니 이 말씀에다가 나를 대조해서 따져보는 게 진실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그분이 살아계셔서 모든 걸 다 보고 계신다 내 모든 마음 깊은 속까지 그분이 낱낱이 다 현미경보다 더한 불꽃같은 눈초리로 내 심정 심장 폐부를 전부 꿰뚫어서 천하 인간 아무도 모르는 내 속의 깊은 중심 욕심 이런거 하나까지 하나님이 전부다 보고 다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해야된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안되는 것이 없고 그분이 복을 걷어가시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고 믿으면 그분 앞에 벌벌 떨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고 조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나는 얼마만큼 정말 하나님의 복을 바라보고 소망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있는가
아기를 데린 아기 엄마들이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우리 아이가 믿음으로 자랄 것인데 아이 자녀 신앙은 모계로 이어진다 그러는데 내가 정말 하나님이 우리 아이에게 믿음 주시고 복을 주시기 위해서 얼마만큼 하나님 앞에 두려워 떨면서 눈물로 기도를 얼마만큼 했는가
하나님이 섭섭해 하실까 싶어서 내 마음이나 생각이나 신앙생활에 대해서 얼마나 조심했으며 얼마나 노력했으며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리 했는가
내가 하나님 같으면 현재 내 모습에 이런 저런 복을 주시겠는가 진실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 살펴봐야 됩니다 그게 진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진실하면 어디가서 큰소리 못 칩니다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진실은 자기를 아는 게 진실입니다 겸손이면서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로 아는 게 진실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늘 대보고 그분 앞에 늘 두려워하고 조심하고 그분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서 그분의 마음을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마음으로 늘 조리는 이런 생활 할 수 밖에 없는 그게 진실입니다 얼마만큼 그리 하셨습니까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만큼 연구해봤는가 공부하는 학생들이 자기 학업에 들인 그 노력에 십분지 일만큼 하나님을 연구해봤는가 연구해보셨습니까 공부 좀 하는 분들은? 내가 학업에 내 시간과 열정을 드리는 그 십분지 일만큼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해보고 찾아 들어가보면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실 겁니다 그 만큼 마음을 들여서 기도해보셨습니까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보셨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 직장 생활에 충실하는 내가 직장에서 맡은 그 직장 열심히 해야지요 충실해야지요 그러나 그 직장생활하는 그것에 십분지 일만큼이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연구 해보셨습니까? 하나님 알기 위해서 고민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무릎 끓고 기도를 정말 깊은 속에서 해보셨습니까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하나님과 나 사이 거리끼는게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회개하는 그런 노력을 해보셨습니까
이런게 있는 만큼이 진실의 첫도입니다 기독교는 말의 종교가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이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실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실상이 없는 복음은 다 허상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중요하고 설교의 은혜와 능력이 뭐냐? 설교의 능력은 참 이것도 많이 말씀 드린 건데 백목사님의 설교를 오늘로 올해로 25년이 넘었는데 89년이니까 25년이지요 25년짼데 아직까지도 그분 설교를 재독을 하고 자꾸 하라고 권면합니다 왜 그런가 그분의 설교는 당신이 그 말씀을 가지고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졌고 백목사님을 변화시킨 변화된 당신이 변화시킨 그 말씀을 실제 변화된 사람이 변화된 그 말씀을 전하니까 그 전하는 설교는 단순히 말이 아닙니다
말을 하면 논리라던지 고저청탁을 넣어서 수사라던지 이런걸 가지고 하면 백목사님보다 웅변도 논리도 더 정연하게 할 수 있는 분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래도 그 설교 그런 말은 잘하고 감동은 되는 것 같은데 실제 변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설교하는 그 사람이 변화되지 않은 상태로 말을 전하니까 듣기는 듣고 은혜는 되는데 사람이 변화가 안됩니다 백목사님 설교는 당신이 변화가 되가지고 전하니까 들을 때 까끌까끌하고 재미없는 것 같으나 듣고 나면 그 사람이 변화가 되버립니다 설교하는 사람이 변화가 되니까 변화된 사람이 전하니까 듣는 사람이 변화가 되버립니다 설교의 능력이고 은혜라는 것은 그런게 은혜입니다
그러니까 실제가 되지 않는 신앙 실제가 되지 않는 말씀은 이거는 참 심판거리만 마련하지 그러기 때문에 말이 그래서 지난 집회도 그 말씀 많이 했습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모든 세대 나라 전체가 온 세월이 오래 지나감으로 사천년 세월이 지나가니까 종교 말년이 되어지니까 말은 전부다 꾸미고 잘하고 또 겉모습 도덕 윤리 인간관계 하나님의 외부적인 율법제도로 빈틈없이 다 행하기는 행하는데 보니까 아무리 들어봐야 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변화가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찾아와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표적을 보여주옵소서 그럴 때 주님 말씀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무슨 표적만 있다고요? 선지자 요나의 표적이 뭡니까? 선지자 요나의 표적. 요나가 밤낮 사흘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주님이 삼일만에 죽고 삼일만에 살아나신 예수님 사활의 대속의 역사가 아니고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겁니다
주님 십자가 대속 말하자면은 피와 성령과 진리 어렵지만은 이 역사가 아니면 이것이 없는사람 이걸 가지지 못한 사람 이것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자기 변하는 결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주님이 그때 거기서 결론으로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세 번째는 오늘 우리 자신의 믿음을 한번 돌아보십시다 하나님에 대해서 믿는 내 믿음 하나님의 크심과 그분의 두려우심과 그분의 권위와 영광과 존귀함과 그분을 나는 얼마만큼 아는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인정을 하고 있는가 내 주관으로 알지 말고 인간들이 말하는 걸로 하지 말고 땅에서 올라온 그 지식가지고 하나님을 알지 말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그대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과연 이 하나님을 정말 자존자로 절대 예정자로 주권자로 절대 섭리자로 완전자로 전지전능자로 무한자로 영원불변자로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이런 하나님인 것을 내가 정말 믿고 있는가 참으로 나는 믿고 있는가 믿고 두려워하는가 믿고 바라보는가 1시간 3분???믿고도 의심을 구하고 있는가 믿고 의지하는가 믿고 조심을 하는가
하나님이 주신 구원에 대해서 욕망을 두고 이 구원에 내 욕망과 노력은 얼마만큼 기울어져있는가
보화밭을 발견한 사람이 보화가 숨겨진 밭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보화가 숨겨진 그 밭을 샀느니라 그게 진실입니다 가다가 넘어지고 가다 또 죄를 지을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 진실하면은 기독교 신앙 이 구원 외에는 바라볼 것이 없다
믿는 사람이 깨닫고 나니까 하늘의 영생복락 우리 구원 이보다 더 큰 거 더 가치있고 귀한 것은 없다 이걸 깨달아서 여기 자기 전부를 다 받쳐야 되겠는데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리 되지 못하니 탄식이다 그래서 평생을 두고 이걸 위해서 노력을 하되 연약해서 환경 때문에 다른 사람 때문에 못하니까 마음속에는 늘 짐이 되가지고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늘 죄인입니다
이 구원이 전부고 이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이 구원 향해서 가야되는데 돈에 메여서 직장에 메여서 사업에 메여서 가정에 메여서 자식들에 메여서 여기저기 메여가지고 이렇게 이 구원 향해 전심전력 다하지 못하니까 하나님 앞에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죄인입니다 그 눌리는 마음으로 평생을 사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깨달은 성도들은 지금도 다 그리 삽니다 충성을 하고도 그래 삽니다
주님 대속의 사랑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이 벌레만도 못한 나 같은 인간을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이 내 죄를 대신 짊어지고 내가 죽을 영원한 죽음을 그분이 죽으셨다니 왠말인가 왠은혠가 어떤 사랑인가 도무지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 사실을 얼마만큼 생각해보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얼마만큼 울어봤으며 기가 막혀 봤으며 얼마만큼 1시5분?도무지 의문을 가져봤으며 여기 감동되어서 얼마만큼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사는 생활을 얼마나 해봤으며 이것이 그것을 생각해본만큼 연구해본만큼 깨달아보고 느껴본만큼 그래서 그 사은의 생활을 억만분 일이라도 노력해본만큼이 진실입니다 그것이 진실입니다 나는 어떤가 죄하나 지으면 영원한 지옥의 형벌 영원한 사망인데 내가 지은 죄는 수도없이 많으니 그 죗값을 다 어찌할까 심신의 기능이 다 죽어버리면 천국에서 영원토록 무능한 자가 되어지니 어찌할까
이걸 생각을 하고 지은 죄에 대해서 아픈 마음을 가지고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죄스러워서 어쩔줄 모르는 이런 고통을 얼마만큼 가져 보셨습니까 우리 자신을 진실하게 돌아보십시다 이게 신앙입니다 진실입니다 세 번째는 이걸 좀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와서 그래서 이 믿음을 가지고 소원해서 본문에서는 이 사도들이 이런 여러 가지를 다 알지는 못했겠지만 어쨌든 주님 따라다니면서 배워보니까 믿음이라야 되겠다 믿어지는 믿음이라야 되겠고 믿어지는 그 믿음 따라서 내가 그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독사를 보니까 물릴까 싶어서 피할 수 밖에 없는. 살인진드기 나온다니까 그게 좀 찝찝해서 조심할 수 밖에 없는. 모기에 물리면 전염병 옮고 따끔따끔하고 간지러우니까 모기장을 치고 잘 수 밖에 없는 모기약을 뿌릴 수 밖에 없는. 요런 행동이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그 믿음. 그 믿음이 참 믿음이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주님에게 간청할 때 주님의 대답은 믿음을 더 많이 가지고 싶으냐 더 크고 강한 믿음을 가지고 싶으냐 그러면 겨자씨 믿음을 가져라
겨자씨 믿음 오전에 몇가지라 그랬습니까? 겨자씨 믿음 첫째는 가장 작은 거 아주 작은 거 적은 거 보잘 것 없는 거 주일학생도 상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날이 가까운 노년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제 믿는 사람도 상관 없습니다 무식해도 상관없고 가난해도 상관없고 몸이 불편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 자기가 알고 있는 가지고 있는 그 믿음 내가 가진 그 믿음. 1학년이면 1학년 믿음 유치원생이면 유치원생 믿음 이제 막 믿었으면 그 믿음 가진 그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는 사람은 그 믿음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믿음. 그게 겨자씨 믿음의 첫째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두 번째는 그런데 그 믿음이 살아있어야 된다 그 말은 작용을 해야 된다 생명이 있어야 된다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인데 다시 말하면 쉽게 말하면 그 작은 믿음이라도 괜찮은데 그 믿음이 움직여야 된다 활동을 해야된다
세 번째 그러면 필연적으로 자라게 된다 겨자씨를 말한 것은 작은 것 움직이는 것 자라가는 것인데 작은 것은 있는 것이니까 됐고 자라가는 것은 필연이고 저절로니까 되는데 문제는 두 번째가 되는 생명 있는 믿음인데 그 생명은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작용이란 무엇이냐 움직임이다 활동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평생 살아가는 것은 자기 환경에 살아가지 않습니까 가정생활 학교생활 직장생활 사업생활 사회생활 인인관계 사건처리 물질 관계 이런 모든 날이면 날마다 그 생활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 생활 속은 그 모든 생활은 전부 내가 사는 내 주위를 나를 둘러싼 내 활동 작용을 둘러싼 환경입니다 그 환경.
내가 살아가는 내 모든 나를 둘러싼 환경 그 환경을 순간 순간 통과할 때 마다 그 환경 순간 순간 그때 그때마다 내가 아는 대로 하나님 말씀을 버리지 말고 어기지 말고 그 말씀대로 통과해라 그 말씀대로 힘써서 순종을 해라 그 말씀대로 순종을 하다 그러면 부딪칠때도 있고 마찰될때도 있고 손해볼때도 있고 피곤할 때도 있고 잠을 못 잘 때도 있고 물질 손해 볼 때도 있고 아까운 것을 버려야 될 때도 있고 참아야 될 때도 있고 먹기 싫은 것 먹어야 될 때도 있고 먹고 싶은 것 못 먹을 때도 있고 말조심 할 때도 있고 마음속에서 옳은 걸 참아야 될 때도 있고 별의별 그런 작용이 있는데 그때그때마다 모르는거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대로 그 현실에 부딪힐 때 생각날 때 그때마다 아는대로 하나님 말씀을 버리지 말고 떠나지 말고 말씀 그대로 현실 현실을 주어진 그 통과 통과를 계속 통과해나가면 그게 바로 겨자씨 믿음이니까 그리만 해 나가면 시간 속에 자꾸 그 믿음이 자라게 된다는 겁니다 그걸 가리켜 겨자씨 믿음이라 말씀하신 겁니다
알기는 아는데 현실만 부딪히면 넘어져버리면 겨자씨 믿음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그거는 다 다르니까 아무리 어려도 상관없다 작아도 상관없다 어쨌든 작용이 있으면 된다 무슨 작용이라 말입니까 흙 속에 묻힌 겨자씨가 흙 속에 있으니까 겨자씨를 잡아 먹으려는 흙에 모든 작용들을 수분도 빨아먹고 온도도 빨아먹고 또 그 속에 여러 가지 영양분도 다 빨아먹으니까 빨아먹는 게 생명 있는 겨자씨의 작용입니다 빨아먹기만 하면 자라는건 저절로 되는 것처럼 믿는 사람이 주신 땅 속 같은 흙 속 같은 내 세상 현실 오늘 주일 학교 때 세상의 소금을 공부했는데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에 빛이다 그 세상이 뭡니까 소금 작용을 하면 소금 역할하면 두 가지 작용합니다 맛을 내고 썩지 않게 만든다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들고 세상을 맛있게 한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온 세상을, 온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요? 내게 주어진 세상 온세상 지구 전부를 우리나라만 해도 안되는데 부산 지방도 못하는데 한 동네도 못하는데 우리 집안도 못 다스리는데요
내가 세상에 소금이라니 내가 녹아져서 썩는 걸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와 직접 부딪히는 내 세상이 있습니다 나와 관련된 가정이 있으면 부부가 있으면 부부가 우리 가정에 가족들이 내가 다니는 회사 사무실에 몇 사람이 그게 내 세상입니다 나는 거기 소금이니까 내가 소금으로 녹아지므로 가정에 가족들을 변화시키고 학교 반 친구 몇 사람 변화시키고 주일 학생 변화시키고 사무실 회사 사무실 몇 사람 변화시키고 그게 자기 세상입니다 그거 변화시키는 사람은 온 세상 변화시키는 것하고 다 연결이 되어져있기 때문에 다 결국은 다 하나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작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주신 분이 작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문제는 아는 것을 안하는게 문제입니다 아는 것을 행하지 않으니까 아는데 참지 못하고 아는데 게으르고 아는데 끊지 못하고 아는데 또 튀어나오고 아는데 또 가야되고 그러니까 자꾸 넘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겨자씨 믿음은 아닌 겁니다
작아도 상관없다 자라는 건 저절로 된다 문제 우리 할 일은 작용이다 활동이다 역사다 무슨 작용입니까 하나님 말씀 아는 대로 그 현실과 연결된 그 말씀 아는 대로만 해라 그러면 그 믿음은 자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이고 그거 아닌 믿음은 평생을 믿어도 자라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내게 주시는 그 현실에서 아는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그 사람은 믿음이 결코 자라가지를 아니합니다 자라지 않는 믿음은 항상 그 자리 머물고 있습니다 늙은이 신앙 젊은이 신앙
우리는 믿음의 가치를 깨닫고 믿음을 구해야 되겠는데 하나님 앞에 믿음을 달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겨자씨 믿음을 가져라 그게 믿음 자라는 방법이다 겨자씨 믿음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에게 준 너의 환경이 있다 너의 처소가 있다 네가 가는 장소가 있고 만나는 사람이 있고 너에게 부딪히는 일이 있다 그럴 때에 네 양심을 생각해보면 그때 그 사람에게 그 순간에 그 일에 대해서 어떻게 그때를 처리하고 상대하고 통과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내 양심을 통해서 이미 받은 말씀으로 너에게 알아질 것이다 그때 그대로 하면 그게 작용이고 그게 바로 그 씨앗이 땅 속에 모든 영양분을 먹는 것이니까 그러면 자라게 된다
그래가지고 순간순간 계속해서 자라는 것이 신앙이 자라는 한 방법이고 두 번째는 무익한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밭 갈고 양치는 자기 구원입니다 밭 가는 거는. 자기를 갈아서 참사람을 만들고 양치는 것은 다른 사람 구원입니다 자기 구원 다른 사람 구원 위해서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충성도 하고 신앙생활 다 하는데 하고 난 다음에 어떤 한 사건이나 어느 한 시점 지나고 난 다음에는 이만큼 했으니까 하고 돌아볼 때 이만큼 했으니까 이제는 좀 앉아서 편안하게 저절로 될 것인가 좀 쉬워질 것인가 하고 앉아서 먹겠느냐 하지 말아라 죽도록 자기 구원과 다른 사람 구원 위해서 일차적으로 충성하고
두 번째는 또 다시 주님 이제 이거 하나 끝났으니까 여기가지 왔으니까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고 여기서 또 다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또 다시 주님 뜻을 또 찾고 세 번째는 그 찾은 뜻까지 다 하고 난 다음에 세 번째 단계에는 또 이만하면 됐다가 아니고 그래도 나는 종이기 때문에 무익한 종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하는 그 자세가 되어져야 비로소 믿음이 자라게 된다는 것을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본문에 믿음 자라는 방편이 몇 가집니까 저 혼자 지금 열을 내서 하고 있습니까 본문에서 믿음 자라는 방편 몇 가지 말씀했습니까 000 몇 가지요? 믿음 자라는 방편 크게 몇 가지? 00 몇 가지? 000 몇 가지? 그래서 제가 중간반에 남학생들에게 재미가 없습니다 이럴 때 보면은. 들으면 아는데. 여학생 00이 몇 가지? 00이도 몰라? 000 몇 가지? 000 몇가지? 두 가지랍니다 두 가지. 첫째는 뭡니까 믿음 자라는 방법 첫째는? 겨자씨 믿음. 두 번째는요? 무익한 종 되는 것. 그렇게 목이 터져라고 설명을 해도 생각을 안하면 안들리는 겁니다 들어도 생각안하면 안들리는 것이고 또 그냥 들어버리면 어려운 설교가 아닙니다 이 말씀이 어렵다 그러는데 어렵지 않습니다 들어보면 다 아는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산이다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못 오를리 없지만은 사람이 뭐라그런다고요? 사람이 제가 올라가지 않고 산만 높다 한다 들어보지 아니하고 생각지 아니하고 어렵다 그럽니다 들어보면 알고 생각해보면은 아는데. 왜 아는 사람은 아는데 모르는 사람은 왜 모릅니까? 아는 사람은 들으니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안 들으니까 모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자리에서 다 듣지 않았느냐 그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몰랐습니다 그만큼 말해도 몰랐느냐 심판은 네 책임이다 기도 못한 책임도 있지만은 듣지 않은 책임, 생각지 않은 책임이 작지 않을 겁니다 오늘 오후에 말하자면 믿음 자라는 방편이 두 가지입니다. 앞에까지 말하면, 전체를 말씀드리면 첫째 믿음이 무엇인가 두 번째 믿음의 필연적인 작용, 필연적인 작용이 들어가야 믿음이다, 세 번째 우리들의 믿음을 진실하게 한번 돌아보자, 그리고 본문에서 첫째 믿음 자라는 방편 첫째는 겨자씨 믿음, 작용의 믿읍입니다. 두 번째는 무익한 종의 믿음 요거는 자세입니다. 겨자씨 믿음은 활동 작용 충성이 되겠고, 무익한 종의 믿음은 우리의 중심 태도 자세입니다. 하나님 앞에 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느냐 거기 따라서 믿음이 자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겸손해야만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진실해 보십시다. 말씀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대조해 보고 내가 과연 이대로 살고 있는가를 따져 보고 따져 보고 또 대조해 보고 생각해 보고 자꾸 비교해 보고 분석해 보십시다. 그래 가지고 이 말씀대로 자기를 맞춰서 나가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