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1일 수밤 (사 1:18-1:20)
2026년 10월 21일 수밤 (사 1:18)
찬송: 148장
본문: 이사야 1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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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본문을 이어가는 것은 은혜되는 부분이라서 회개에 대한 성구는 많이 있으나 하나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회개에 대한 말씀 뿐 아니고 성경 자체가, 성경을 공부하는 예배시간의 말씀 자체가 믿는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고 믿는 사람들을 대하여 하는 말씀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지요. 불택자가 있고 미중생자가 있습니다. 불택자는 아니니까 제외해놓고 택자 중에서 중생자 미중생자가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아야 신앙생활을 출발하게 됩니다.,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받으면 교회로 나오게 되고 오게 됩니다. 영이 살아서 중생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되고 말씀을 들으면 들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중생되었다 하더라도 믿음이 안 생겨지면 이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마침 젖먹이에게 어려운 것을 강요하면 못알아듣는 것처럼 중생되어서 사는 사람도 있고 믿음이 너무 어리면 말씀을 들으면 알지도 못하고 안 들립니다. 믿음이 어리니까 그런 필요성을 느낀겁니다. 모든 것은 다 필요에 의해서 된 거지요. 자기 주도학습이 되면 공부가 됩니다.
공부의 필요성은 어른들의 말하자면 지도에 의해서 주관하에서 마지못해서 공부하는 그런 학생들은 그때도 공부를 하긴 하지만 자신의 공부는 안되는 것이고, 효력도 많이 떨어집니다. 스스로 공부를 하는 것을 가질 때 제대로 공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주도학습이 되도록 만들고 그런 게 중요한 것처럼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는 중생됐다고 하면 맞습니다. 드물게 가만히 들어온 자, 믿는 사람의 신앙을 흐리게 만들려고 드물게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있습니다. 조금 밝은 사람 보면 표가 납니다. 하나님을 부르려고 하면 중생된 사람인데 중생이 되어도 믿음이 아직까지 너무 어리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부인을 안하고 성경은 부정은 안하는데 다 사실 정도로 믿는 그것이 어리기 때문에 말씀을 들어야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먼저 믿는 사람, 부모님, 목사, 구역장 집사님 가족들 신앙 있는 말씀에 귀가 열린 분들이 둘이 있습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믿기는 믿는데 믿음이 잘 안 생긴 그런 자녀들 그런 형제들 그런 가족을 둔 잘 믿는 말씀의 귀가 열리는 분들이 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 안 생긴 그를 위해서 기도할 일입니다. 많은 기도가 들어가야 합니다.
양떼들은 목자의 기도를 먹고 삽니다. 목자들의 눈물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애절한 기도를 먹고 자라나고 조금씩이라도 자라나게 되는 겁니다. 이 책임은 굉장히 큽니다. 궁극적으로 예정이 있고 주권이 있기 때문에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나 간절하게 믿음을 주시라고 기도를 하고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부친의 신앙 십자가 지고 간 거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해서 믿음이 많이 생긴다고 하지요. 사무엘의 두 아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사사들입니다. 그런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뇌물 받아먹고 판결을 굳게하고 탈선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아들들이 사사를 노릇을 못하게 되어서 왕을 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아들 자녀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무겁게 물었습니다. 그 집안이 어떻게 되는 걸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믿는 분이 책임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겁니다. 믿음 어린 자녀들은 그 부모님들은 스스로 자녀를 위해서 얼마만큼 울었는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자식들 위해서 흘린 눈물 내놔봐라, 눈물 흘린 게 없으면 책임을 무겁게 받아야합니다.
기도라는 것은 소원과 실제 생활과 같이 가야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인한 소원에서 기도는 믿음으로 살게 해달라고 하고 자신의 생활은 언행심사는 사리 판단은 비판과 평가는 결정과 처리는 믿음과 동떨어진 것이면 외식자구나, 말 뿐인 기도구나, 판단해버립니다. 그 기도는 헛기도는 안되지만 응답대기가 어려운 기도입니다. 소원과 기도와 언행심사 생활 사리파단 비판과 평과 취사선택 결정처리가 기도와 같은 방향으로 가야 진정한 기도가 되는 겁니다. 그 사실을 믿음 없는 자녀들 믿음 어린 식구들이 보고 있는 겁니다. 실제 살아가려고 보니까 돈이 먼저네, 생활이 먼저네, 세상 성공이 먼저네, 저도 그럴 수 있습니다. 잘 살펴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먼저 믿는 우리의 책임으로 막중합니다. 나이가 좀 연세가 많든 적든 위 아래로 옆으로 해당이 되어집니다. 먼저 믿어서, 믿음이 있고 말씀 듣는 귀가 열린 사람들 믿음 없는 간절한 기도 믿음으로 사는 생활 같이 가야합니다.
회개라는 것은 회개를 네 글자로 말하면 뭐라고 했습니까. 고치는 것, 바꾸는 것, 여덟글자로 말하면 돌아가서 고치는 것,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소리가 나든지 안 굴러가든지 문제가 생기면 고장이 나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하지요. 고쳐야하지요. 고장이 나면 고치는 겁니다. 사람 몸에 감기가 걸렸으면 고치는 겁니다. 고치는 거다, 잘못된 것이 있다, 살아오면서 잘못 살았다, 잘못 산 것이 있다. 자기 말과 행동과 마음의 많은 요소들과 사리 판단과 비판 평가와 취사 선택과 결정처리와, 우리 일상생활에 쓰이는 말들입니다. 언행심사 사리판단 비판평가 결정처리, 취사선택 다 쓰이는 말들입니다. 잘못된 것을 고쳐야하는 것을 한 글자로 말하면 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회개라는 것은 죄를 고치는 겁니다. 삐뚤어진 것 죄를 고치는 게 회개입니다. 고치려면 돈이 들고 수고가 들고 시간이 드는 겁니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는데 고치는 수가 있습니까, 내가 안 들어야 그럴 수 있습니까. 비용이 드는 거지요. 감기에 걸렸습니다. 어떻게 해야하지요. 고쳐야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쉬거나 고통을 당해야합니다. 왜 그래야하지요. 고장이 났으니까, 그래서 자동차는 미리 정비해서 고장 안 나는 게 제일 좋고 감기는 안 걸리는 게 가장 좋습니다. 죄는 안 짓는 게 가장 좋습니다. 죄를 지었으면 고쳐야합니다. 회개를 해야합니다.
고치면 저절로 됩니까. 자동차도 고치려면 돈이 드는데, 감기도 고치려면 비용이 드는데, 죄를 고치려면 마따히 비용이 드는 겁니다. 거기에 가르킨 비용을 가르켜 뭐라고 하느냐, 같이 해보십시다. 소극적 십자가, 왜 소극적 십자가라고 할까, 고난이 들어갑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죄를 안 짓기 위해서 하는 고난을 십자가라고 합니다. 내 죄를 고치는 고난이 있기 때문에 고쳐봐야 손익계산 따지면 수익이 남는 게 아닙니다. 예를 그렇게 들었죠. 자본금 1억원을 가지고 한 달 장사 했는데 따져보니까 천만원 손해를 봤습니다. 장사를 했는데, 다음달 또 장사했는데 손해를 봤습니다. 그대로 다 까먹는 겁니다. 그래서 더 연구하고 해서 그 다음달에 500만원 벌었습니다. 얼마지요, 8500만원이니까 남은 겁니까 손해입니까, 1000만원 벌었습니다. 얼마지요, 남은 겁니까 손해인겁니다. 회개라는 것은 손해를 메꾸는 게 회개입니다. 원이치로 시켜나가는 게 회개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소극적 십자가라고 말하는 겁니다.
회개라는 것은 잘못된 죄를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고통 고난이 따라간다, 그런데 그것은 소극적이다. 병든 걸 치료하는 겁니다. 병이 든 몸을 치료하면 건강 회복된 것이지 더 건강해진 건 아닙니다. 고장난 자동차를 수리하면 원상복구가 된 겁니다. 고장난 자동차를 수리난 거하고 안 나는 거하고 뭐가 더 좋지요, 고장 안 난 자동차가 좋습니까 수리하는 게 좋습니까. 병이 들었던 사람하고 안 든 사람하고 뭐가 더 좋습니까. 죄를 지어서 회개하는 사람하고 뭐가 더 낫습니까. 그 사람이란 정신을 차리는 거기 때문에, 옛날 우리나라 말 중에 나쁜 말이 있습니다. 명태하고 여자는 맞아야한다. 여성들의 그런 게 있었겠지만 남자도 맞아야 사람이 되는 게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때린 게 정신차리고 사람 되기 때문에 타락을 예정해놓으시고 죄를 짓게 만드신 겁니다. 그 속에는 무한하신 사랑이 있는 거지요.
오늘 새벽에 말씀 드린 것, 회개라는 것은 죄를 고치는 겁니다. 잘못된 죄를 고치는 겁니다. 교리적으로 용어 해석적으로 기억해야합니다. 죄는 어떻게 생겼나요. 이진유, 죄는 어떻게 생겼나요, 김공인 죄는 어떻게 생겼나요 찰떡처럼 호빵처럼 붕어빵 도토리처럼 어떻게 생겼지요. 죄는 형체가 없습니다. 죄는 무엇이 죄입니까. 죄는 인격가진 존재가 인격가진 존재가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했을 때 그렇게 됩니다. 어긋난 것이 그렇습니다. 죄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서 인격가진 존재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서 인격 가진 존재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계급이 높은 존재가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천사입니다. 세 번째는 악령입니다. 세 존재 중에서 사람이 가장 앞에 있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천사와 악령은 동급의 것입니다. 천사는, 천사 영물입니다. 이 세 존재는 뭘 가졌다고요, 인격을 가졌습니다. 격위가 어려운 말로 격위라고 합니다. 인격의 위다, 격위라는 말은 지정의, 외워놔야합니다. 아는 거, 정는 거 의 뜻.
여기서 나오는 게 희로애락입니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가진 느낀 이런 것을 인격 가진 존재라고 합니다. 짐승도 그런 게 있으나 사람과 다릅니다. 그래서 짐승은 죄를 짓는다고 그러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존재는 천사와 악령과 사람만 짓는데 천사가 죄를 지어 타락한 악령이 되었고 그 이상 천사는 죄짓지 않습니다. 그 타락한 천사 악령은 죄에서 나와서 죄로 생겨진 것이라서 유발시키는 것이 악령입니다. 악령에게 감염되고 움직이는 걸 가르켜서 죄라고 합니다. 악령에 감령돼서 거기따라 움직이는 것은 죄라고 합니다. 행위의 산물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는 어디서 생겼냐, 악령에서 나온 겁니다. 에덴 동산의 악령이 꼬아서 하와를 미혹했고 그랬습니다. 악령의 미혹입니다. 죄를 짓기는 뭐가 짓느냐, 사람이 짓는데,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 끌고가는 그게 바로 악령입니다.
죄를 짓게 만드는 악령이라는 놈은 어떻게 생겼냐, 이 놈은 영물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도 시공을 초월하는데 영은 더 고급의 존재입니다. 영과 동급의 존재가 악령입니다. 시공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자는 아닌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 이것은 안하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회개해야할 죄를 짓는 것은 그런 건데 악령은 우리를 어디든지 따라다닙니다. 해가 뜨면 뭐가 생기지요, 해가 떠있으면 어디를 가던지 나같은 놈이 있습니다. 피터팬 그림자를 떼어내나요. 악령이라는 것은 어디든지 따라다닙니다. 예배당에도 따라옵니다. 성경에도 따라가고 40일 금식하고 나니까 누가 왔지요.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40일 금식하고 나니까 사탄이 왔습니다. 예수님에게 배고프지,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어라. 한 끼 굶어보셨나요. 하나님 아버지 아들 아니냐, 그 다음에 나에게 절 한 번 하면 전부 다 너 줄게. 세 가지로 미혹했지요. 악령은 사람이 가는 곳이면 못 가는 곳이 없습니다. 지구 끝까지로 따라갑니다. 천국까지 따라갑니다. 죄짓게 만들려고, 이런 악령이 우리 주변에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내가 죄를 짓는 건데 악령이 나를 붙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 놈을 가르켜서 나 아닌 나, 거짓 나, 나를 죽인 나, 옛사람 나, 그렇게 찍어놨습니다. 나를 죽인 나다, 나 아닌 나다, 그렇게 비유를 듭니다. 남편이 아침에 출근하다가 갔습니다. 파란 모자를 쓰고 갔는데 남편이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빼앗아 쓰고 집에 들어옵니다. 밥도 차려주고 오만 거 다 해줍니다. 남자가 남편입니까 원수입니까. 그런데 같은 옷 입었다고 지팡이 짚었다고 모자 썼다고 오만 거 다 해주면 인간이냐 그게, 우리가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옛사람이 그런 겁니다.
그 놈을 건드리면 펄펄 뜁니다. 그 자존심은 내 자존심이 아니라 옛사람 원수 그놈인데 그놈을 건드린다고 펄펄 뛰는 게 사람입니다. 내 위신을 깎아세워, 펄펄 뛰는 그것이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죄 중에서 가장 끊기 어려운 게 악성 악습, 내 몸에 익어진 습성인데 나냐, 악습이니까 내가 아닌 겁니다. 이걸 뽑아 낼려면 발버둥을 치는 겁니다. 담배 그걸 뭐라고 합니까, 니코틴인가 뭔가 박혀버리면 끊어버리려고 하면 발버둥을 칩니다. 금단현상이 나옵니다. 술도 그렇습니다. 몸인데 몸이 아닌데 뽑아내야하는데 고통스럽습니다. 그놈이 바로 악령이고 그렇게 만든 건데, 악령이 집계하는 겁니다. 내가 아닌 겁니다. 나를 죽인 나고 나 아닌 나지, 이걸 지식적으로 알아서 살아가다가 끊지못할 습성이 나올 때 악령이 날 끌고가는데 그렇게 표를 해도 끊기가 어렵습니다. 정체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성경은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 주셨다고요, 믿는 사람에게 주셨기 때문에 말씀이 들려집니다. 들어야될 필요성이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예배당에 오는 분들은 택자는 택자고 중생은 중생인데 믿음이 너무 어려서 말씀이 안 들립니다. 그런 자녀들 형제들 가족들 있는 부모 가족 우리 앞선 목자 이런 분들은 그들 위해서 애절하게 기도할 책임이 있다. 기도해야합니다. 기도하는 그대로 믿음으로 산 책임이 있다. 두 번째, 죄라는 것은 고치는 것이고 병과 같은 것이라서 이걸 고치려고 하면 필연적으로 자본이 들어간다 노력이 들어간다, 수고와 비용이 들어간다. 소극적인 십자가다. 회개한다고 해서 상금이 있는 게 아니고 바로 잡는 거니까 비용은 필연적으로 있어야하는 거니까, 그 원수가 있으니 그놈이 뭐냐 악령인데 그 악령은 얼마나 변장을 잘 하는지 이놈은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다 따라갑니다. 안하는 짓이 없고 못하는 짓이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무엇에서나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죄를 짓는 것은 원수 악령이 나를 붙들고 하고 있는, 붙들려서 하는 악령의 것이 되고 졸병이 되고 악령의 도구가 되는 악용 당하는 것이 믿는 사람의 생활이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