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9일 금밤
2026년 10월 9일 금밤
찬송: 38장. 158장
본문: 갈라디아서 5장 13절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의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편지입니다. 오늘의 우리를 향한 구원의 도리를, 사도 바울이 형제로써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한 아버지를 두었으며 피를 물려받았으며 한 대속을 입은 사도 바울과 우리는 형제입니다. 동시에 오늘의 우리들을 향하여 형제들아 하고 말씀을 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시대를 뛰어넘어서 직접 전하는 것이기 떄문에 이 말씀을 전할 때에 나를 위해서 하는 말씀이구나, 나를 위해 무슨 말씀을 했는가 생각을 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이 우리를 향해 자유를 위하여 입었으나 라고 말씀합니다. 자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닮아가는데 필요한 요소입니다. 자유로운 것이고 보배로운 것이고 정확하게 알고 정확한 깨달음으로 이치를 가지고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고 잘못된 자유를 깨달아서, 하게 되면 사람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고 교회와 세상과 현실을 망치게 됩니다. 어떤 자유가 산 자유이며, 살리는 자유인지를 알아야합니다. 그래야 자유의 전투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자유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산 자유가 있고 죽은 자유가 있습니다. 산 자유로 활동하게 되면 만들어지는 사람이 있으니 새사람이라고 하고 죽은 자유로 생각하게 되면 그게 있으니 옛사람이라고 합니다. 자유의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활동도 두 종류입니다
새사람과 옛사람이나, 믿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사람의 몸에 병이 걸리고 그렇지만 죽은 사람에게는 죽어있는데 암이 있고 없고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옛사람의 활동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고생은 하지만 새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이래서 믿지 않는 사람은 영이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부르심을 받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사람으로 생겨졌으니 공감과 진리로 살아난 그것을 알아야하겠습니다. 그래서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시는데 그게 자유인데, 15절까지 보면 두 가지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믿는 사람에게 있는 참 자유, 다른 하나는 이 사람의 자유조차 옛사람의 자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옛사람은 자기 중심의 악령과 악성과 악습 이 세가지를 옛사람이라고 합니다. 악령과 악습 악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람입니다. 새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핏공로를 입고 중생이 되어지고 핏공로로 이어진 진리와 하나되고 영감으로 하나된 자유를 위해서 부름을 받은 이런 새사람의 자유가 있고 이런 것을 육체의 기준으로 삼아서 죽은 자유도 있습니다. 그래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졌다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새사람의 성격이란 그 마음이 새사람의 마음이고 진리와 영감과 새사람이 본능이며 모든 작용들이 피와 성령과 진리로 되어진 것입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옛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악입니다. 옛사람의 소원이 있고 성품도 있고 뜻도 있고 그러하니까 어떤 욕심을 가졌는가 악령의 욕심을 가졌고 악습의 욕심을 가졌습니다. 자기 취미 자기 뜻 자기 자존심 이것에 속한 모든 것은 옛사람에 속한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새사람이 없는 것은 것이, 옛사람 또한 안 믿는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새사람 옛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은 언제 새사람이 되어지는가, 뿌리를 살펴보면 천지만물을 참고하시기 이전에 예택을 하실 때부터 뿌리가 시작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리 속에 있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무엇인가 그걸 상대를 해야 새사람으로 살 수 있겠는데, 무엇인지도 모르면 적이 없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돈을 욕심을 내면 옛사람의 욕심일까 새사람의 욕심일까, 둘 다 일수 있습니다. 팡안한 가정은, 그것 또한 같습니다.
돈만 지식만 가정만 욕심을 내면 이것은 옜사람의 욕심입니다. 주신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주신 이것을 어떻게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새사람의 욕심으로 이루어가게 됩니다. 두 여인이 매를 갈고 있는데 한 명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으로 생각할 때에, 그러니 선택지가 없으니 하기 쉬운데, 건설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느냐가 말씀입니다. 새사람의 전체라는 것은 차기 속에 일어나는 전투인데, 어떤 중심과 자세로. 하나는 새사람이 되고 죽은자가 되어집니다. 세상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는 학생은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하는지, 원하고 원함으로 자기를 위해 꺾고 이기고 그렇게 나아갑니다. 이정도 노력은 기본이고 하나가 더해져야 학생들의 경쟁인데 우리가 이루어가는 구원이 영원토록 구원되어지게 이루어지는 걸보고 힘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기울일 수 밖에 없겠습니다. 새사람을 위해서 얼마나 많이 기울이는가, 자유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드리면서 예수님 믿는 이것은 마음을 기울이고 힘을 쓰지 않는다면 새사람으로 사는 건설은 멀어지게 되는 것이고 천국 건설도 멀어지게 되는 겁니다. 이래서 새사람으로 살지 아니하면 옛사람으로 사는건데, 옛사람으로 사는 것은 무엇을 해도 헛일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마지막에는 다 헛일입니다. 그게 홍포입은 부자였습니다. 반대로 새사람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역사가 있고 표시가 있고 복의 복으로 걸어가는 것이 새사람의 걸음입니다. 옛사람으로 살 것인가 새사람으로 살 것인가, 부르시기 때문에 자유로 되었습니다.
예배 안 드렸으면 악하게 된 사람이 더 악하게 됩니다. 세상 생활을 하는데 공부를 하는데도 새사람을 길러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환경 여건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중심과 자세가 바로 되어있는 새사람으로 살고자하는 자유의 선택이 가장 좋은 여건입니다. 자기 속에 새사람으로 살 수 있는 중심과 자세가 바로 되어있는 이것은 바로 선택하는 것인데 자기 내면의 여건이 이미 좋아졌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가져다놓아도, 밥이 될 뿐이고, 자유의 사람이 됩니다. 물을 깨끗하게 정수할 때에 더러운 물이 아니라 필터의 기능이 안 좋으면 깨끗한 물 나옵니다. 찾아오길 바랄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좋게 하는 것이 갖추어지고 나면은 다 해결됩니다. 요셉의 길이 그러했습니다. 어떤 현실 속에서도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습니다. 자기 속에 새사람이 강해져야하고 온전히 점령을 해야합니다. 피와 성령과 진리에 속한 그것을 말합니다. 자기를 고치는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에서 모든 것을 찾고 고침으로 만사원인을 그것이 하는 사람이고 올바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남탓 환경탓 외부탓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옛사람 새사람을 잘 구별해서 옛사람 노릇은 피해야겠고 새사람은 노력을 해야겠는데 어떻게 옛사람을 벗어버릴 수가 있을까, 피와 성령과 진리로 이루어진 애가 쓰다보면은 되어집니다. 주변에 자꾸 갖다 놓으려고 마음을 기울여야합니다. 옛사람으로 살게 되기 때문에 발버둥을 쳐야합니다.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면 안된다고 하면, 코끼리 생각만 납니다. 술마시지 말아야지 하면 술 마시게 되어있습니다.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 옛사람과 싸울 것이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하는 사람을 가까이두고 안보입니다. 옛사람을 주관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이게 666이라, 하나님 바로 아래입니다. 사람보다는 탁월하게 잘합니다 이기려면 이길 수가 없고 마귀보다 강한 존재에 붙어야합니다. 떨쳐내기 위해서 싸울 것이 아니라 진리를 모시고 피를 모시고 노력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정해진 생활의 패턴이라는 것은 중요하고 게으름을 조심해야합니다.
이 자유를 함부로 상대한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인을 생각하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부탁하는 겁니다. 망할 자유도 가진 자유성이니 갈라디아 교인들이 부탁을 하고 이 자유를 하게 하고 비로도 못하는 길인데 갈라디아를 위하여 제일 많이하고 모든 것을 바친 사도바울이 하지 말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거꾸로 되어도 많이 거꾸로 되었는데, 사람의 세계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이 말 몇 마디지만 이 몇마디 속에 삶이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갓난아이는 밤에 자주 깹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녹초가 되어버립니다. 자녀가 그 수고 알겠습니까, 이렇게 널 위해 공부했으니 공부한다고 느낄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부모의 지극한 사랑이라도 교육한다고 되지는 아니합니다. 그런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자녀가 부모가 되어보면 됩니다. 상대를 책망하는 가장 무서운 방법이 무엇인가, 깨닫도록 만드는 겁니다. 사람에 감격하여 원하고 원함으로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깨닫기를 바라는 이것이 나를 위해서 좋고 상대받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깨달아보고 나면, 깨닫고 나니 잘못했습니다. 알고보니 종이 되는 것이 더 마땅합니다. 당신을 위해서 바치겠습니다.
원하고 원함으로 종노릇하게 되는 것이 결과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세계가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의 자유성을 깊은 곳에서부터 원하고 원함으로 죽기까지 바침으로 하는 것이 효력입니다. 사랑을 깨닫고 원하고 원함으로 바치게 되는 것이 사랑의 세계이고 십자가 생활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십자가를 서로 지겠다는 사람만 가득한 겁니다. 반대로 지옥은 십자가를 지우겠다는 사람만 가득합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내 몸같이 하라고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본문 말씀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새사람으로 살아야하기 때문에 실행을 위해서 해야합니다. 주님을 불러주심으로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천국 건설을 마음껏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속에 자유 속에 두 종류, 사람도 두 사람, 어떤 사람으로 사는 것인가, 언행심사의 열매는 자기가 먹습니다. 자기를 존귀하게 만드는 것이고 그러한 겁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는 겁니다. 자본이 있고 현실이 있습니다. 실행하면 됩니다. 새사람으로 살아서 자기구원으로 사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