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5일 금밤
2026년 9월 25일 금밤
찬송: 99장
본문: 에베소서 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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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참 중요한 겁니다. 아는 게 중요하고 은혜받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망은이라고 했습니다. 망은이 되면 배은이 되게 됩니다. 결과는 망하는 겁니다. 세상도 신앙도 그 원리는 같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안 믿는 사람과는 모든 게 달라야합니다. 다르게 태어났고, 다른 법을 주셨고 다른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다르게 살아야하는 겁니다. 자주 드는 예지만 땅에 사는 동물과 어류는 사는 것이 다릅니다. 땅속에 살던 굼벵이 시절과 굼벵이가 성장하면 뭐가 되지요, 매미가 됩니다. 굼벵이 때 생활과 매미가 되고 난 생활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립다고 옛날로 땅 속에 들어가면 죽습니다. 굼벵이는 굼벵이로 살고, 성체가 되면 나무 위에서 살아야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근본이 다른 겁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되는 겁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이인칭이라고 하지요, 나 말고 너입니다. 너희라 그랬으니 나말고 너희들, 사도 바울이 기록한 성경은데 너희라 그랬으니까,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쓰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너희를 살리셨도다. 뭐가 빠졌지요. 바울이 빠졌잖습니까. 너희 속에 바울은 들어가야합니까 안 들어가야합니까. 바울은 들어가는 겁니다, 왜 우리라 하지 않고 너희라고 했습니까. 이런 걸 글자를 가르켜서 만드는 사람은 별별 만드는 말이었는데 너희를 살리셨다, 바울은 안 죽었느냐, 바울은 안 살리셨느냐, 바울이 목회자 입장에서 선생님 입장에서 가르치는 표시를 그랬다. 당연히 바울도 들어가는 겁니다.
1절부터 5절까지 보면 시점으로 시간의 표시로 과거 현재 미래가 있는데 과거를 나타내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과거를 나타내는 것으로 한 것이 몇 군데가 됩니다. 찾아봅시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때도 과거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행하여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 아들들 거하는데 영이라. 우리도 그 가운데에서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자녀 이었더니. 과거 표시가 다섯 개입니까. 죽었던 우리, 그때에, 따랐으니, 다섯 가지로 과거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거를 기록한 것은 과거라는 것은 지날 과 자입니다. 옛날을 과거라고 합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이력이고, 그런 것이고 흔적입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현재 있는 자리에서 집에서 출발해서 걸어오셨지요. 예배당에 앉아있는 이전시간까지입니다. 집에서 왔습니까, 순천에서 왔습니다. 왔습니다, 과거입니다. 지나간 세월 생애를 과거라 그러고 요약해서 잘 적으면 이력이라고 합니다. 이걸 가르쳐서 이력서라고 합니다. 흔적입니다, 발자취.
눈이 오면 눈 위를 걸어가면 발자국이 남습니다. 안 걸어가면 안 남습니다. 걸어가면 발자국이 남습니다. 그게 과거입니다. 열 발자국 걸어가면 자기 걸어간 흔적입니다. 걸어갈 때 예쁘게 사뿐 사뿐 걸어가면 발자국도 그렇게 남습니다. 뒹굴면서 가면 그렇게 됩니다. 자기가 살아온 모습입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좋은 과거를 살고 잘못 살면 나쁜 과거로 기억이 되게 되는 겁니다. 사람마다 과거는 있습니다. 과거인데 그 과거가 좋은 과거가 있는데, 개인의 과거 이력은 개인이 이력인데 전체로 모이면 역사라고 합니다. 이력과 역사는 범위차이지 같은 말입니다. 한 나라의 흔적은 역사가 되는 겁니다. 자기 과거는 역사가 되는 겁니다. 유력한 그런 분들은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잘 살았다는 분들은 자서전을 적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서 평전이라고 평가하면서 쓰는 전기도 있습니다. 그게 한 사람의 역사를 기록한 건들인데 우리같은 사람들은 기록할 것도 없습니다만은, 살아온 위인들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겁니다.
좋은 과거가 있는데 현재도 있으면 좋습니다. 잘 살았고 현재도 좋으면 계속해서 잘 살면 됩니다. 과거는 좋았는데 잘 살았는데 현재가 잘못살고 있으면 회개를 해야합니다. 현재 잘못 살고 있는데, 잘못 살고 있으면서 잘 살았던 열심히 살았던 그러면 죄를 짓는 게 됩니다. 과거에 잘 살았는데 현재에 잘못살면 회개를 해야합니다. 과거에 나빴는데 현재에도 나쁘면 어떻게 될까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나도 잘못 살았는데, 잘못 산 과거는 중단시키고 멈추고 돌아서면 됩니다. 유력한 시 중에서 고라 자손의 시가 많이 나옵니다. 고라 아시지요. 고라 압니까. 고라가 누구지요. 모세를 반대를 하다가 250명이 땅이 입을 벌려서 죽은 고라입니다. 가장 큰 벌을 받은 인물들은데 자손들은 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좋은 것만 따라가고 고라자손의 시가 많습니다. 아버지가 잘못하면 아들이 끊어버리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어가면 따라가는 겁니다. 현재는 바로 살면 됩니다. 현재는 좋으면 그걸 계속 해나가면 됩니다. 몇 가지, 처음에 참고로 너희의 허물과 너희라는 말, 왜 자기를 포함하지 않았을까, 목회자로써 가르치는 위치를 나타냈다는 겁니다.
본문은 과거를 기록합니다. 이 과거가, 사람의 기억력에 따라서 자기 어릴 적 시절을 기억하는 분도 있고 저처럼 어린 시절을 기억을 못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상하게 저는 어린 시절이 기억이 잘 안납니다. 어떻게 살았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납니다. 과거는 기억을 하는 게 좋은데, 무조건 할 것은 아니지만, 역사를 기억하라, 역대를 기억하라, 역사라는 것은 잊어버리면 안되는 것이고 과거 중에서 잊어버리는 게 좋은 과거도 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 앞에 잘한 거 충성한 거 상 받을 거, 다른 사람 볼 때 자랑스러운 것은 잊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사도바울은 자랑스러운 건 다 잊어버렸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런다는 것은 안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은혜베풀고 잊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남에게 잘못한 건 기억하지 않고 잘한 것만 기억하고, 남이 자기에게 피해 끼친 것은 다 기억을 하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 봤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 끼친 것은 잊어버리고, 자기가 남에게 말로 관계로 그렇게 다 잊어버리고, 자기에게 아픈 말 다 한 것은 평생 안 잊어버리고, 큰 불행입니다. 악인이라고 합니다. 반대가 되어야합니다. 다 잊어버려도 됩니다.
모태 신앙도 죽었을 때가 있었는데 드러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느낄 수가 없습니다. 표시나가 죽었던 때가 없었음으로 실감을 못하는 겁니다. 대부분은 주일날 교회 안 다닌 적이 있었습니까. 언제였지, 그때가 죽었던 때로 본다면 없었는데, 살짝 바꾸는 겁니다 그래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안 믿는 사람들은 죽어있는 사람들입니다. 택자 불택자가 있다고 했지요. 택자 불택자가 섞여있습니다. 그러나 불택자는 죽어있을 것이고 택자는 살아날 겁니다. 모태 신앙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믿어서 죽었던 사람들의 생활은 생각해보니까, 죽었던 우리를 바꿔서 죽었을 우리다. 주님이 살려주지 않았으면 죽었던인데, 실감있게 할려면 죽었을 것은 현재 죽어있는 사람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주일을 모르는 사람들 예배를 모르는 사람들 신앙 생활 모르는 사람들 이런 우리의 생활을 모르는 것처럼 살았을 우리들이다.
과거를 기록하고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죽었던 자입니다. 그런데 대신 죽으시고 살려주신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큰 근혜를 받은 사람들이고 큰 생명을 빚진 사람들입니다. 망은이고 배은입니다. 사람인지라 살아가다 보면 알면서도 지식은 알고 소원이 있는데 실제 생활은 배은의 생활 얼마나 하는지 모릅니다. 죽었던 우리를 기억하십시다. 그 가운데에서 행하여 죽은 가운데입니다. 죽은 가운데에서는 실제로 그런 것은 공간적인 개념을 넘어서서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산 겁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버리고 떠나서 간 곳이 소돔과 고모라인데, 아브라함 갈 때는 산자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에 가니까 죽은 사람들 있는 데로 가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이 좋은 게임방이 좋으면 그게 있는 겁니다. 안 믿는 사람들처럼 영화보는 게 좋으면 사망이라는 환경 속에 그래서 너희를 보냄이 환경 속에서 산자로 살아야하는데 죽은자로 살면 그런 사망이라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 생활 자체가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 떠나고 양심의 가책을 벗어나서 그 영향을 안 받기가 그렇습니다.
아담은 환경을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그랬는데 끌려다녀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게 가장 어려운 겁니다. 어떤 곳이든 이 세상은 죄 아래 있는 세상인데 학교를 가든 학원을 가든 현장 속에서 그 가운데에서 그들처럼 같아보여도 동기는 목적은 방편은 달라야하는 겁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요셉이고 다니엘입니다. 그 가운데에서 의하여 풍속을 좋고, 우리들이 주님 대속이 없었다면 살려줬을 우리들입니다. 추석을 추석으로 지내면 그것입니다. 송편 드셨나요. 송편, 모두 아니면 전 부쳐 드셨나요. 집에 추석이라고 다 모이고 그러셨나요, 우리 교인들도 인사를 가고 그러는데 이게 추석이라고 가고 오시면 세상 풍속을 좇는 겁니다. 추석이니까 공휴일이라서, 주일 지켜야하지요, 양성원 가야하지요, 집회 가야하지요, 어른들한테 인사 드릴 틈이 없는데 일하고 싶어도 안되니까 전념하다가 도덕 윤리적으로 사람 덕을 못 끼쳤던 그럴 때 찾아 뵙고 인사드리고 그러면 쫓지 않게 되는 겁니다. 다 먹으니까 놀러다니고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이 세상 풍속을 쫓은 겁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죄입니다.
그래서 이 사이가 한끗 차이라고 했지요,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생활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 그 속에 중심, 동기, 목적, 방편, 동기 목적 중심은 자기만 압니다. 방픈은 드러납니다. 애매하고 그래서 같은 명절은 지내도 같은 공부를 해도 일을 해도, 그 속에 누가 주인이 되어서 하느냐, 동기가 뭐냐 하나는 생명이고 하나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이 따지는 것이 생명이다, 저는 설교하니까 이렇게 하는 거 같지만 저는 다 못하는 거 같지만은 우리가 주님이 살려주지 않았다면 사망 가운데 죽은 자들 모습 그대로, 취미 그대로 재미 그대로 다 살건데, 우리는 살려주셨기 때문에 살림 받았으니까 영이 살았습니다. 연결이 되었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죽은 자들에게는 줘봐야, 돼지에게 진주던지는 겁니다. 그런데 영이 중생되면 중생된 사람들은 진리된 것을 읽으면 깨달아지고 믿어집니다.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살려주셨기 때문에 생명으로 살게 되었고 사망 가운데 살지 않게 되어있고 이 세상을 풍속을 좇지 않게 되고 이 세상 풍속을 선용을 하는,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잡았으니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악령, 귀신, 그것을 자기의 머리로 대장으로 자기로 삼아서 졸졸 따라다는 겁니다. 내가 누구를 주인으로 대장으로 삼고 누구에게 속해 사느냐, 졸병이 되더라도, 훌륭한 대장 밑에 있으면 괜찮습니다. 부대장이 되어도 잘못하면 역적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머리로 삼느냐, 주인으로 삼느냐, 이게 한편으로 소속이 되는 거지요. 어디에 소속하느냐, 참 중요한 겁니다. 우리도 귀신들에게 제사 지내고 절했을 우리들입니다. 제사 음식을 먹었을 우리들입니다. 불신자처럼 마음대로 돌아다녔을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입니다. 별 사람 있습니까. 그랬을 우리들이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믿음으로 살면 그렇지만은 살림받은 믿는 사람이 지금도 믿음을 떠나버리면은 귀신 따라가는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모르는 거지요. 나로 살지 왜 따라가느냐, 믿는 사람은 압니다. 귀신을 따라다니면서 내가 귀신을 따라다니고 있다, 압니다. 그런데도 따라다닙니다. 그러면 또 울고 난리가 납니다. 뭐든지 귀하면 값이 올라가는 거지요. 평생을 안하던 분들이 눈물을 흘리면 귀한 눈물이 되고 툭하면 울고 그러면 처다보지도 않습니다.
나는 과거의 사람, 훼방자였습니다. 그때는 내가 몰랐습니다. 그래서 긍휼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다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랬을 우리들, 귀신을 따라다녔을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전에는 우리도, 다 우리가 안 그랬지만 그랬던 것도 있었을 것이고 우리 육체 욕심 영과 끊어진 눈이 좋게 마음 좋게 다 그러면 육체입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이들처럼 진노의 자녀, 그런 자녀 자녀는 자녀인데 버림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녀였는데,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살리셨고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라, 우리의 과거를 잊지 마십시다. 죽었던 자입니다. 죽은 가운데에서 살았던 우리들입니다. 풍속을 쫓았을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대신 죽으심으로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면서 이렇게 이랬던 나를 살려주셨으니까 구원 받은 나로 살아야겠다. 큰 흐름으로 세 가지입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살려주신 은혜를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현재 생활을 돌아봐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