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9일 수밤
2026년 9월 9일 수밤
찬송: 137장
본문: 마태복음 25장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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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달란트 비유 충성에 대한 말씀인데 연관되어서 화요일 새벽말씀 시간되시면 재독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양성원에 있었고 다시 듣기로 들었는데 은혜를 받았습니다.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건데 충성을 가르친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입니다. 비유를 가지고 가르치는 것만 가르치신건데, 달란트를 가지고 충성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충성이란 무엇이 충성이냐, 바른 충성이란 어떤 것이냐, 아는대로 비유와 실상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방편입니다. 실제를 가르치기 위한 방편, 끌어다가 설명한 것이 비유입니다. 비유지만 비슷한 것이니까 어디까지나 비유고 비유보다 실상은 더 실질적이고 강한 겁니다. 당연한 겁니다. 실체와 그림자가 비교 못할 거처럼, 그림자는 아무리 뚜렷해도 그림자는 그림자입니다. 가짜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가짜는 가짜입니다. 동에다가 금을 입혀놓으면 금처럼 생겼으나 금이 아닌 것처럼, 실상은 비유보다 더 강하다, 실질적인다 생각을 해봐야합니다. 훨씬 더 강한겁니다. 달란트 비유에 집주인이 있고 맡긴 게 있고 회개하는 게 있고 칭찬이 있고 핑계가 있고 처리가 있는데 실제로는 더 크게 다가온다고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잘해도 주인을 위한 것이 아니면 충성이 안됩니다. 요압이 그렇게 충성했는데 끝에 가보니까 충신인데 충신이 아니었습니다. 요압의 그 충신의 동기와 목적은 충성이 아닌겁니다. 주인의 뜻대로 생각대로, 주인에게 유익이 되어야하고 그리고 주인의 뜻대로 되어야 그게 충성이지 다르게 움직이면 충성이 아니다, 그래서 주인을 위하는 방향과 동기 목적과 주인에게 순종하는 방편 이게 되어야 충성입니다. 자기를 다 바치는 거, 이게 충성입니다. 주인을 위해서 주인을 뜻대로 자기를 다 바치는 게 충성이다. 성경도 충성은 그런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니까 비유입니다. 실상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주인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생각하고 종들이 있으니까 우리를 생각하고 충성이 있으니까 우리를 돌아보고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처리를 생각하고, 주인이 타국에 다른 나라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서 주인의 소유를 맡겼습니다. 주인의 것이라는 말이지요. 받은 것을 자기 임의로 사용했으나 주인의 것입니다. 청지기 비유에, 주인에게 가던 소유의 마음대로 다 쓰는데 결정적으로 잊어버린 게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비유인데 주인이 자기 소유를 종들에게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것을 우리에게 맡겨두셨다는 거지요. 이게 실제로 그런 겁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종들된 우리에게 맡겨놓으신 겁니다. 기본적으로 나와 내 전부는 다 하나님의 것이다. 이걸 인식해야하는데, 기본적으로 깔고 있어야하는데 잊어버리지 않고 순종하기 참 어려운 겁니다.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 주일, 선악과 십일조 주일은 같은 의미를 가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하지요, 십일조를 안 하는 사람은 선악과를 따먹는 거고 주일을 어기는 겁니다. 그런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현재 형편이 안 되어서 지금 설교 시간에 전하는 말씀은 원론적입니다. 그리고 적용하는데에는 이렇게 해놓고 누가 저에게 와서 십일조하면 됩니까 하면 사람에 맞게 하는 겁니다 라고 하지만 집사님이 오시면 안하면 죄라고 해야합니다.
뭐든지 과부화가 되면 터져버립니다.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적당히 하라는 말이 아니고, 알맞게 해야합니다. 거기에 맞게, 자동차를 타고 일반 고속도로를 타고 200키로로 달리면 죽으려고 하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은. 자동차를 100키로 90키로 100정도, 이렇게 안전하게 달리는 게 가장 좋은 거지요. 자기 의지와 상관이 없습니다. 쉽게 노출되어버립니다. 젊은 사람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강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주셨습니다. 나와 내 전부는 하나님의 것이다, 주인이 자기 소유를 맡긴 것과 같으니, 재능대로, 이건 비유니까 주인이 보니까 재능대로, 이 종 한테는 이만큼, 이 종한테는 이만큼이 낫겠다, 한 달란트는 버립니다. 1리터 되는 그릇에 2리터를 담으면 몇 리터가 담겨있지요. 1리터, 나머지는 버리는 겁니다. 이것 그릇이라고 그러니다. 사람도 그릇을 키워야 경제를 담을 그릇을 키워야 그런 겁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입니다. 100억 정도 담을 그릇이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1억에 100억하면 치여죽습니다. 사람도 그렇고 기술도 그렇고 재능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부터 우리 각 사람의 정도가 하나님께 재능입니다. 그 사람의 외모 건강 안에 담긴 마음, 전부 주신 재능입니다. 각 사람에게 주셨다, 주셨는데, 그 주신 분량이 사람마다 다른 겁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다 다르게 주신 겁니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왜 나는 적게 줘. 사람은 팔이 안으로 굽고 공평이 아니니까, 공평이라는 단어도 참 잘해야합니다. 세상이라는 울타리에서 정의를 찾고 공평을 찾고 의를 찾으면 바보가 되는 겁니다. 이 세상은 죄악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라는 울타리를 통해서 공평을 부르짖는 놈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단체 그런 사람들 속에 뒤지고 보면 깨어놓고 약육강식의 것으로 비리가 다 나옵니다. 깨끗한 척하고 공평 부르짓는 거기서 보니까 온갖 비리가 다 튀어나오지 않습니까. 그분은 완전자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이 스스로 하려고 하셨고 먼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게 교회라는 겁니다. 걸음 그대로 하나님의 공평의 그대로 천국이 됩니다. 그렇게 안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세상이란 지옥의 모습입니다. 교회가 아니고 마귀 집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게 못박아야겠는데 쉽습니까. 전지자가 주실 때 가장 최고의 것으로 알맞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 겁니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쓰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눈이라는 것은 눈은 동그라면 좋다, 반달처럼 생기면 좋다. 그런데 시력이 마이너스입니다. 좋은 겁니까. 눈이 잘 생겼는데 보는 기능이 떨어져서 그리해도 잘 안 보이면 그거 좋은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사람마다 다르게 주셨습니다. 다르게 생각했으면 억울할 것도 낙심될 것도 비하할 거 없고 발가락이니까 잘하면 되는 거지요. 다른 사람이 볼 때 한 달란트 된 자가 있습니다. 주인의 생각이 없습니다. 자기 생각입니다. 사람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는데 하나님의 것은, 내가 보니까, 내가 보니까 나는 못났네, 나는 작네, 부족하네, 자기 생각입니다. 비하하고 낙심하고 나는 못났으니까 자기 스스로 할 수 없는 겁니다. 나폴레옹이 키가 커서 나폴레옹입니까. 등소평이 키가 저보다 작을겁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사람 몸에 필요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필요없는 걸 만들지 않습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속의 장기 까지도, 임의로 손을 대면 문제가 생깁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천국 건설에 가장 알맞도록 주신 게 주신 겁니다. 하나에게는 다섯,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 사람마다 다르고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주셨을 때는 목적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사람은 작은 우주라고 합니다. 몸도 있고 마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어떤 부분은 몇 퍼센트인데 아닌 사람은 몇 퍼센트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만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이 면이 좋으면 안 좋은 면도 있습니다. 남보다 탁월한 것도 있는 반면에 못한 것도 있습니다. 미인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수명이 짧다. 못나고 오래 사는 게 좋습니까 잘나고 일찍 가는 게 좋겠습니까. 키도 크면 허리에 문제가 생긴다, 약해지는 건데, 머리가 지나치게 좋으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돈은 많은데 자식은 마음대로 안되더라, 가정은 0점이네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부부 사이는 0점이네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섯 달란트만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한 달란트에 속한 사람 볼 때 가난하고 무식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도 다섯 달란트 짜리를 찾아보면 있는 겁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아주 뛰어난 그런 장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장점이 장점인데, 참 좋습니다. 그런데 잘못되면은 장점이 단점으로 바뀔 때 즈음에는 끝장을 내버립니다. 의지력이 있고 다 해서 인정을 받는데, 탁 틀어서 엉뚱한데로 해 버리니까 절제 인내력 끈기 자타의 얼마나 많은 것이 있는지, 그 장점이 자기를 전부 허물고 있습니다. 이게 주신 요소입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큰 죄를 못 저지릅니다. 단점이지요, 그런데 머리가 좋은 사람은 그거 때문에 자기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사람 생각에 사람들이 할 때 좋은 거 아름다운 거 훌륭한 거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꼭 같은 겁니다. 그래서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 했습니다. 장사했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 했습니다. 그것만 다하면 됩니다. 눈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그걸로 하면 되는데 듣고 싶은데 말을 하고 싶은데, 그러면 그때부터 뭐가 되지요, 그 눈은 지옥이 되는 겁니다. 안되는 건데. 귀가 듣고만 있으니까 말할려고 하면 안되는 겁니다. 사람들의 모든 불행이 다 여기서 나옵니다. 이걸 몰라가지고, 그래서 비유는 비유인데 깨닫지 못한 겁니다. 일등을 할려고 합니다 전부. 전부 금메달 딸려고 합니다.
천국에 일등은 몇 명이지요. 그래서 이 세상은 점수 메기는 게 상대평가라고 합니까. 천국은 절대평가. 아닌가요. 그래서 잘난 사람 위대한 사람은 힘들고 어려운겁니다. 다 바쳐야하는 거니까. 그런데 그만큼 그런 사람들은 하니까 돋보이죠. 사람의 앞에 보시면 제 얼굴 보이고 발은 안 보이지요. 발이 없으면 서 있지도 못합니다. 대통령이 노릇하는데 총리 장관이 없으면 못합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몸이 안 움직이면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삼손의 나귀 턱뼈, 삼손의 나귀 턱뼈가 뭐냐 현실입니다. 그 형편입니다. 현재 모습입니다. 그래서 달란트의 분량은 세월에 따라서 변합니다.
달란트 가지고 충성을 가르칩니다. 맞게 했다, 정답이다 그 말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나 받았느냐 하나만 다해라, 현재 너가 할 수 있는 게 그 말이지요. 지금 할 것이 회개냐, 회개해라, 하나님 앞에 한 편 강도가 순교자라는 말도 들었는데 확신은 못하겠고, 구원받았습니다. 그 강도가 뭘 하겠습니까. 예수여 나를 영접하소서, 그게 강도의 다섯 달란트입니다. 두 달란트고 감옥에 있으면 감옥에서 회개하면 됩니다. 길을 가면 길 가면서 하는 겁니다. 운전은 운전하면서 사는 것이고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뭐냐, 다섯 달란트입니다. 그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는 겁니다. 그게 계속 되면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