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4일 수밤
2026년 6월 24일 수밤
찬송: 121장
본문: 역대하 19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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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사밧의 실수와 결과로 제목을 잡았습니다. 여호사밧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선천적으로도 아주 좋은 왕족이고 다윗의 5대손입니다. 위대한 인물의 집계라는 것은 자본이 되어집니다. 조상을 팔아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조상 만나면 자손들이 덕을 보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다윗의 직계입니다. 여호사밧은 후천적으로 하나님 밖에 잘 산 사람입니다. 많은 이스라엘 왕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런 왕이 여호사밧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수를 해서 후대의 참혹한 결과와 재앙을 여호사밧이 해버렸습니다. 안타까운 결과를 맺게 됩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실수를 모르지 않았나 그런 게 있을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는 깨달았다고 성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버지는 아사왕입니다. 할아버지는 아비야 왕이고 증조 할아버지는 르호보암이고 고조는 솔로몬이고 5대 위로 올라가면 다윗입니다.
여호사밧의 사돈이 누굽니까. 아합과 이세벨입니다. 이거 기억해야합니다. 사람이 참 이런 관계를 맺는 것 중에서 혈통으로 맺어지는 관계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사돈, 인외적으로 맺어지는 혼인 관계입니다. 사돈이라는 게 묘한 것이 있습니다. 옛날 말에 지금은 좀 말이 다르지요, 지금은 집안에 있고 그런데 옛날에는 밖에 있었습니다. 거처하는 곳에서 멀리 있어서 옛날에 뒷간이라고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뒤쪽에 있다고 해서, 냄새나고 구더기 버글버글하니까 저 뒤에 멀리 떨어진, 그래서 밤되면 귀신나올까 무서워서 못 나왔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은 변소는 머리가 되고 어른들 아시지요, 사돈은 멀어야한다. 그런데 사돈을 맺으면 그러면서도 다음대가 혈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기 대에 와서 수평으로 윗대는 금수저인데 수평으로 뻗어나가기를 영 잘못 뻗어나갔습니다. 그 악한 아합을 사돈 맺고 이세벨을 맺어서 딸을 데려왔습니다. 아달랴를 데려왔습니다.
가장 위대한 인물이, 신앙 생활을 잘못했으면, 죄를 많이 지었으면 모르겠는데, 알고도 어기고 모르고도 어기고 별별 사정 때문에 계명을 예사로 지는 게 우리들인데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계명을 안 어겼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명령, 강하게 계명, 계명보다 더 강한 단어는 없습니다. 계명은 명령보다 더 강한 게 계명, 이 계명을 여호사밧은 두려워서 다 지켰습니다. 온 나라에 우상을 다 섬겼는데 아비아도 아사도 우상을 타파했지만 여호사밧 정도였습니다. 이게 그래서 우상을 다 제거한 것이 여호사밧이었습니다. 온 세계 곳곳에 우상이 가득 차있습니다. 말세까지 되면 하늘까지 교회까지 예배당까지 다 차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백성을 잘 선도했습니다. 잘 다스릴 뿐 아니고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했습니다. 제사장들 재판관들 세워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런 노력을 많이 있습니다. 군사가 116만명이었습니다. 150만이 넘어서 다윗 시대 만큼 안되는데, 그렇게 여호사밧은 부국강병, 모든 세계 곳곳의 정치가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부국강병입니다. 부자 나라 만들고 강한 나라 만드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그것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부나 군사를 의지하지 않았고, 히스기야처럼 내보내지 않고, 히스기야는 기도할 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군사가, 그래서 메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기고 나니까 엉뚱한 짓 하다가 실수가 있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군사가 100만명이 넘어도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이런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우상을 다 없애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과 관계가 바로 된다면, 사람이 심령이 밝아집니다. 심령이 밝아진다는 것은 영안이 밝아지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을 밝혀주셔서 그렇게 됩니다. 여호사밧처럼 되면 심령이 밝아서 그렇지 않을 거 같은데, 왜 그렇게 했을까. 아합과 더불어 사돈을 맺고, 잘못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자를 사랑하는 것, 직접적으로 죄를 안 지었는데 결과적으로 죄가 된 거지요. 계명 어기는 죄는 안했는데 악한 자를 도왔으니 공범이 된 거고 미워하는 자를 도왔으니까 적이 된 거지요.
이렇게 신앙이 철저한 것처럼 이렇게 몰랐을까. 왜 몰랐습니까.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가장 기본적으로 여호사밧이 이 사실을 왜 몰랐겠습니까. 가장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안 열어주시면 모르는 거지요. 안 보여주시면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만 전부 삼는 여호사밧인데 왜 그 사실을 안 알려주셨을까. 이걸 왜 안 알려주셨을까. 여호사밧은 동족사랑을 말했습니다. 전도라기보다 과거 서부교회 때에 안효일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수학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교사를 실제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수학 과외 교사였었거든요. 열심이었는데 이분이 노방 전도하다가, 마이크들고 노방에서 전도하거든요. 주일 날 오전 마치고 나서 점심 사이에 나가서 전도하고 예배보고 그랬습니다. 어떤 분이 마트에서 장을 봐서 오는 겁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라고 하니까 교회 다닙니다. 그래서 더 잘 믿으십시오 했다고 합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동족 사랑을 통해서 구원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연혼 맺은 게 아니었을까, 사람이라는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한쪽에 집중하다보면 다른 쪽을 보기 힘든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인에게 다윗이 꽂혀버리니까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큰 죄를 지어버렸습니다. 솔로몬도 우상을 갖다놓고 섬겼습니다. 여호사밧이 민족을 사랑해서 인도하려는 거기에 다 기울이다보니까 그를 방편으로 아합과 사돈 맺어서 친근해져서 아합이 올라갈 때 방문했고 그때 칠려는데 같이 가겠습니까 하니까 당연히 가지요, 내 백성이 당신 백성이고 내 군사가 당신 군사입니다. 남북은 한민족이지요. 한국과 중국, 일본은 다르지만 남북은 한동족이지 않습니까.
윗대에서 갈라졌지만 통일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열 두 지파를 가른 것은 솔로몬의 죄 때문이지만 이유가 있어서 갈라 놓은 겁니다. 여호사밧은 같은 동족 사랑에 집중하고 매진하다보니까 다른 면을 좀 생각지 못한 것이 아닐까. 아합과 연혼을 맺고 사돈을 맺고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 인해서 결과는 공부한대로, 참혹한 결과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이름이 뭐지요. 여호람입니다. 여호람의 아내 이름이 아달리야입니다. 여호람은 장남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 장남이 여호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남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맞지만 절대는 아닙니다. 솔로몬은 장남이 아닙니다.
성경 기록에 보면 왕이 되고 나서 지혜를 받아서 특별한 지혜를 가졌으나 실제는 압살롬이었습니다. 비교 안될만큼 압살롬이 탁월했습니다. 굉장한 인물이었습니다. 나라 전부를 제편 만든 사람이 압살롬입니다. 다윗의 통치를 하는 시기에 제 편 만든 사람이 여호사밧입니다. 압살롬, 그래서 반드시 장자가 왕이 되어야하는 건 아닙니다. 악한 아합의 딸을 삼아서 사돈 맺고 여호람이 맏아들이라서 왕위를 물려줬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들들에게는 튼튼한 성을 얻었는데 여호람이 동생들을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래서 큰 죄로 인해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여호사밧 손자일 때 여호람 아들일 때 여호람 시대에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다 죽어버립니다. 여호사밧 당대에는 재앙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위로 내려오는 그것을 잘못 뻗어나가서 그 잘못 뻗은 결과로 밑으로 한 게 되어버립니다. 당대에는 그런 게 없었으나, 죽고 나니까 여호람이 동생들 다 죽여서 엉망이 되었고, 아들들 전부 다 죽고 아하시야만 남았고 손자대 내려가서는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는데 그 아시야가 아합 집에, 그때 아들이 왕이 동명이인, 여호람이 왕이었습니다.
문명 갔다가 예후한테 아합의 집을 처리하라고 한 예후에게 죽었고 다른 이복 형제가 있을건데 그 씨를 모조리 아달랴가 다 죽여버렸습니다. 하나 몰래 빼돌렸는데 여호세바라는 아내가 몰래 요하스를 빼냅니다. 그때 죽었으면 다 끊겼습니다. 귀신 이 아달랴가 다 씨를 말리려고 했는데 아달랴가 6년을 숨겨놓고 아달랴가 다스렸으니까 엉망이 되었겠지요. 완전히 엉망이 된 그런 7년에서 죽이고 왕으로 세웁니다. 그래서 여호야다가 죽을 때 묘실에 장사를 지냅니다. 황처럼 대합니다. 여호사밧의 이런 실수라고 말할 수 있겠죠. 죄라기 보다, 여호사밧의 실수를 하나님께서 그대로 말하자면 공위의 법대로 처리를 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더불어 연혼을 맺고 사귀고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데려오고 맏아들을 세워서 나라를 엉망으로 망했는데 그대로 그렇게 처리가 되어버립니다. 개입을 하셔서 여호사밧의 잘못의 실수를 돌려서 바로 잡게 안하시고 마지막까지 가게해서 공의의 법대로 처리를 해버립니다.
여호사밧이라는 사람은 신앙이 보통 신앙이 아닙니다. 탁월한 신앙이고 장성한 신앙입니다. 다 제대로 갖추려면 있는 동시에 심령도 밝아야하고 그래서 살펴서 했어야 그게 맞는 겁니다. 그래서 장성했으니까 인간관계를 맺었어야합니다. 잘한 것은 잘한 그대로 여호사밧 시대를, 부국강병을 만들어주셨고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에서 실수한 그대로 갚았습니다. 하나도 빼지 않고. 악인을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했으므로 사돈 맺었으니까 그 딸을 며느리로 데려왔으니까 악한 자의 부모의 딸이 안 봐도 뻔한 겁니다. 아들 장남, 자기 아들 딸 보면 어떤 사람들인지 안 보입니까. 앞날을 잘 몰라도, 이런 장점 단점이 있었고 대개 일반적으로 보니까 장남은 아버지 대신인데 밑에 동생들을 잘 챙기는 걸 보면 둘째가 잘 챙기는 거 같습니다. 둘째들이 동생을 알뜰하게 챙기는 거 같은데, 장남은 장남답게 합니다. 여호사밧이 동생인데 아는 거 아닙니다. 왕위를 줄 건지 안하니까 여호사밧이 여호람에게는 왕위를 주고 좋은 성들을 다 맡겼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여호사밧이 여호람을 알 거고 안심이 안 됐을 거 같은데
악한 부모 밑에 있는 그걸 시아버지가 보면 모르겠습니까. 어떤 사람인지 보입니다. 여호사밧이 새아버지니까 그게 보일 거 같은데 그런데 여호사밧은 하나도 처리를 안했습니다. 막아놓으니까 안되는 것이고 여호사밧 스스로는 자체적으로 봤어야하고 파악했어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좋게 해석한다면, 합리화될 수는 없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 19장에 보면 죽고 아합은 죽었는데 여호사밧은 18장 그 기록입니다. 18장이 그 전쟁이고 이어집니다. 아합은 죽었는데 같이 갔던 사돈은 죽었는데 편안히 했습니다. 경고했습니다. 악한 자를 돕고, 아합의 악한 것을 했고 하나님을 미워하는 이세벨에게 충동되어서 아합을 사랑하는 게 옳은 겁니까. 그러면 직접적으로 그렇게 알렸고 그때 다음대를 두고 처리를 했어야합니다. 뭘 처리하면 되지요. 이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뭡니까. 아달랴를 어떻게 쫓아시켜요 이혼을 시켜요, 그건 안되는 거지요. 왕을 바꿔버리면 됩니다. 여호람이 왕을 안 하면 됩니다. 여호사밧은 여호람을 왕으로, 그것도 여호사밧이 여호람을 달래려고 혹시나 싶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닌 거지요. 이걸 보면은 여호사밧의 옳은 대로 하셨고, 실수, 이건 그대로 하나님께서 갚으신 겁니다. 지공지성의 법이고 이치 그대로 해서 갚으셨다고 하는 겁니다. 행한 그대로 갚은 거지요.
잘못 관계맺으니까 그대로 내려가게 된 겁니다. 그대로 적용되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여호사밧이 아합과 더불어 사돈 맺었으면 여호람을 왕을 세우지 않고 다른 아들을 왕으로 세웠으면 할 일이었다고 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면 그렇게 어두워졌거나, 자기 주관대로 판단해서 그랬다 그런데 그 실수가 너무 참혹하고 그대로 갚으신 겁니다.
집회말씀 재독 중에서 환란 날에 네 친구 집에 들어갈지 말지어다. 신앙과 사람은 다른 것이고 신앙이 있다고 해서, 다른 것까지 구비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새벽 기도를 잘 나온다고 성경에 밝은 거 아니고 성경에 밝다고 해서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부부사이 좋다고 자녀까지 잘 기른다고 볼 수 없습니다. 부부 관계와 그 부부가 부모로써 자녀 챙기는 것은 다른 면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녀를 잘 챙긴다고 해서 부부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부의 자녀 사랑의 원동이 뭐가 되었습니까. 아버지의 아들 사랑 어머니의 딸 사랑의 원동은 남편이 되어야합니다. 아내 때문에 사랑해야하는 겁니다. 부부 사이 관계 좋게 잘 지낸다고 그럽니다. 가정이 화목하다고 해서 경제면도 좋으냐.
아무리 예배시간 잘 지키고 그렇다고 해도 경제면에 약해서 잘못하면 경제 복을 못받습니다. 다른 겁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을 깨달은 겁니다. 신앙 생활 참 잘했는데 돈을 벌지 못한다, 벌어도 쓰지 못한다고 하면 경제는 맡기면 안되는 겁니다. 경제면을 잘한다고 해서 신앙 좋다 또 다른 면입니다.
여호사밧이라는 사람이 다 좋았는데 그 혈통을 자기 대에서 동족 사랑에 눈이 어두웠는지 착오였는지 성향이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수평적인 인간관계 잘못으로 집안도 나라도 엉망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거는 그거고 그거는 그거다. 네가 인간 관계를 잘못 맺었으니까 그런 겁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전체적으로 살펴야합니다. 그래서 구매하게 둥글 둥글하게 원만하게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한다면 동기와 목적이 좋아도 방편이 잘못되면 안되는 거다. 방편이 잘못되면 다 잘못되는 겁니다. 오늘 밤 말할 수 있는 것은 위대한 사람이 이렇게 보면 보이는데 안 열어주시니까 그런 것은 여호사밧정도 되는 사람이면 아합 이세벨을 어떻게 돌아가야하는지 알았어야합니다. 그러면 안 맺었어야하는 겁니다. 맺었더라도 선견자의 말을 듣고 왕을 바꿨어야했습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를 돌아보고 다 해도 부족하면 가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원리를 말씀드렸으니까 여러 면을 말해야하는 겁니다.
이 원리가 오늘날 그대로 적용된다는 거 알아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