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연구소의 세종연구실과 대동교회 건축 – 1신
행정실2024-06-14조회 114추천 13
본 연구소의 세종연구실과 연구소가 운영하는 공회의 대동교회 예배당을 건축하기 위해 오늘 토지를 매입했다. 토지는 예배당과 별관 및 주차장까지 순차적으로 갖출 수 있는 제반 조건이 구비 되었으나, 건축 허가와 잔금을 지출한 후 구체적인 위치와 평수 등 세부 사항을 발표하게 된다.
참고로,
연구소는 1982년 백영희 목사님이 서부교회의 예배당 2층 사무실에 '서부교회 편집실'로 출발시켜 설교 출간을 맡겼고, 1984년 연구부장을 St. Louis로 보내어 노선 연구를 위한 견문을 제공했으며, 1988년에 서부교회와 별개 기관으로 독립을 시켜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가 전임자의 설교와 연구를 차단할 때를 대비했으며, 1989년 3월에는 연구부장을 여수의 신풍교회로 파송하여 신풍연구소를 부산연구소와 나란히 운영시켜 부산연구소의 훗날 변절을 대비 시켰다.
목사님 생전이 미리 말씀한 대로 1991년 1월에 서부교회 후임이 부임하면서 연구소에 대한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지원까지 차단하고 직원들을 제명해 나갔으며, 1997년에는 설교록을 출간한다는 이유로 신풍연구소 관련자 모두 제명하여, 이후 신풍연구소는 실질적으로 '백영희 목회연구소'의 모든 사명과 업무를 단독으로 수행해 왔다.
서부교회와 부산연구소의 제명 때문에 또한 인터넷과 컴퓨터의 발전으로 목사님 생전보다 설교 자료는 무제한으로 제공되면서 공회의 노선 연구도 활발하게 되면서 직원들이 출석할 교회와 생활을 위해 직원들은 차례로 개척을 했고, 부산공회3이 형성 되었다. 연구와 자료 제공의 지역적 역할적 분담을 위해 연구소는 서울에 강동교회의 예배당을 마련하면서 서울연구실을 추진했고, 이번에는 세종시에 직원들의 출석과 목회를 위해 세종연구실과 대동교회 예배당을 강동 때처럼 공회와 연구소 회계로 토지를 매입했고 건축도 진행하게 된다.
부공3은 목사님 사후에 오랜 기간 이 노선에 시대적 지도자를 주시지 않을 것이고 그대로 주님 오실 수 있다는 교회사의 경험과 판단 때문에, 목사님 사후 직후부터 이 노선에 자신의 신앙과 생활을 모두 기울일 직원들에게 가정에서 재독으로만 이 노선을 고수할 각오를 부탁하면서, 일단 기회 주시는 대로 각자 지역 별로 교회를 개척하여 가정교회보다는 일단 교회로 모이게 부탁을 하다 보니 연구소의 직원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손양원도 애양원교회에 부임하면서 직원 교회를 출발 시켜 오늘의 신풍교회로 이어 졌다. 공회가 그렇고, 시대적 고비마다 새로운 출발은 그렇게 되어 왔다.
토지와 건축에 필요한 비용은 현재 부채 없이 확보한 상태다. 연구소와 공회와 소속 교회들이 2024년 5월 집회 때 확정했으나 연구소나 공회의 의미를 아는 분들이 개인 연보를 문의하여 연구소나 공회 사무실로 제안하면 참여할 길이 있고 개인 연보의 액수에 따라 기존 교회들의 분담액은 최근 연구소의 증축 등 다른 부분에 사용할 수 있다.
참고로,
연구소는 1982년 백영희 목사님이 서부교회의 예배당 2층 사무실에 '서부교회 편집실'로 출발시켜 설교 출간을 맡겼고, 1984년 연구부장을 St. Louis로 보내어 노선 연구를 위한 견문을 제공했으며, 1988년에 서부교회와 별개 기관으로 독립을 시켜 목사님 사후 서부교회가 전임자의 설교와 연구를 차단할 때를 대비했으며, 1989년 3월에는 연구부장을 여수의 신풍교회로 파송하여 신풍연구소를 부산연구소와 나란히 운영시켜 부산연구소의 훗날 변절을 대비 시켰다.
목사님 생전이 미리 말씀한 대로 1991년 1월에 서부교회 후임이 부임하면서 연구소에 대한 서부교회와 총공회의 지원까지 차단하고 직원들을 제명해 나갔으며, 1997년에는 설교록을 출간한다는 이유로 신풍연구소 관련자 모두 제명하여, 이후 신풍연구소는 실질적으로 '백영희 목회연구소'의 모든 사명과 업무를 단독으로 수행해 왔다.
서부교회와 부산연구소의 제명 때문에 또한 인터넷과 컴퓨터의 발전으로 목사님 생전보다 설교 자료는 무제한으로 제공되면서 공회의 노선 연구도 활발하게 되면서 직원들이 출석할 교회와 생활을 위해 직원들은 차례로 개척을 했고, 부산공회3이 형성 되었다. 연구와 자료 제공의 지역적 역할적 분담을 위해 연구소는 서울에 강동교회의 예배당을 마련하면서 서울연구실을 추진했고, 이번에는 세종시에 직원들의 출석과 목회를 위해 세종연구실과 대동교회 예배당을 강동 때처럼 공회와 연구소 회계로 토지를 매입했고 건축도 진행하게 된다.
부공3은 목사님 사후에 오랜 기간 이 노선에 시대적 지도자를 주시지 않을 것이고 그대로 주님 오실 수 있다는 교회사의 경험과 판단 때문에, 목사님 사후 직후부터 이 노선에 자신의 신앙과 생활을 모두 기울일 직원들에게 가정에서 재독으로만 이 노선을 고수할 각오를 부탁하면서, 일단 기회 주시는 대로 각자 지역 별로 교회를 개척하여 가정교회보다는 일단 교회로 모이게 부탁을 하다 보니 연구소의 직원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손양원도 애양원교회에 부임하면서 직원 교회를 출발 시켜 오늘의 신풍교회로 이어 졌다. 공회가 그렇고, 시대적 고비마다 새로운 출발은 그렇게 되어 왔다.
토지와 건축에 필요한 비용은 현재 부채 없이 확보한 상태다. 연구소와 공회와 소속 교회들이 2024년 5월 집회 때 확정했으나 연구소나 공회의 의미를 아는 분들이 개인 연보를 문의하여 연구소나 공회 사무실로 제안하면 참여할 길이 있고 개인 연보의 액수에 따라 기존 교회들의 분담액은 최근 연구소의 증축 등 다른 부분에 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