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신앙은 자전거 타는 것과 같다 합니다.
이치영2014-06-30조회 491추천 48
위엣 것을 소망해야 되는 줄은 알지만
실감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은 바로 말하면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원론적으로 말하면 2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는 설교자의 영감이 부족한 경우이고,
둘째는 본인의 영감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기도하고 회개하여 영감의 은혜가 있도록 힘써야 하고,
교인들은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설교 시간에 마음을 기울여 은혜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미 알고 있는 말씀들은 그대로 실행하여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을 깨닫는 유일한 방법은 아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주님 말에 거한다는 말은 주님 말씀대로 실행하여 산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말은 그 진리를 주인으로 삼아 진리에게 붙들린다는 말입니다.
진리가 그의 주인으로 그를 붙드니 어떤 경우에도 진리로 자유하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위엣 것과 땅엣 것이 있는 줄은 우리가 다 압니다.
위엣 것은 하늘의 것이고, 땅엣 것은 세상 것인 줄도 다 압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마련하고, 땅엣 것은 생각지도 힘쓰지도 말아야 하는 것도 압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위엣 것으로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땅엣 것으로 사는 것인 줄도 압니다.
문제는, 알지만 이 말씀들에 대한 실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알지만 실감적으로 와닿지 않으니 위엣 것으로 살 힘이 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말씀하신 대로 늘 땅엣 것에 마음을 두고 땅엣 것으로 사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하여 심령이 어두워지고 둔해진 연고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자전거 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서 있으면 넘어지고 달리면 달릴수록 더 힘차게 나간다는 것입니다.
땅엣 것으로 사는 생활이 많아지면 땅엣 것에 대해서는 예민해지고 실력도 있어지지만
위엣 것에 대해서는 둔해지고 위엣 것은 와닿지도 않고 그대로 사는 생활이 잘 되지 않습니다.
위엣 것으로 사는 생활이 계속되면
위엣 것에 대해서 예민해지고 밝아지고 위엣 것에 대한 실감이 강해지게 됩니다.
땅엣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더 그러합니다.
신앙생활은 열심을 내면 낼수록 진리도 영감도 더욱 충만해지게 되고
세상생활에 바빠서 신앙이 식어질수록 심령은 어둡고 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주일예배는 생명을 바쳐야 하고, 밤예배 새벽기도는 힘을 다하여 참석해야 합니다.
매일 30분 기도, 산기도, 성경 읽기도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살펴 회개하는 생활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위엣 것으로 사는 것이면서
더욱 말씀 속에 영감으로 충만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신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목사님, 설교록을 읽다가 질문을 드립니다
>
>목사님께서도 주일 설교 말씀에서 늘 하늘엣 것을 소망하라 가르치시고
>
>이는 백 목사님 설교록에도 일관되게 나오는 말씀입니다.
>
>그러나 눈이 어두워 늘 땅엣 것만 바라보고 땅엣 것으로 고민하고 걱정하고 일희일비하는 저희들입니다.
>
>하늘엣 것은 와닿지도 않고 아득히 멀기만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
>하늘엣 것을 소망해야 하는 당위성은 잘 알고 있으나,
>
>이렇게 제 자신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
>참 고민입니다.
>
>
>=================
>그러기에 이 구원을 연구한 자마다 땅엣 것을 찾지 않습니다. 썩어질 것 가지고 영원한 이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제한된 것 가지고 무한한 이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욕된 것 요거는 좋아하지만 이북은 김일성이를 좋아하지만 이남은 싫어해. 이남사람은 이남을 좋아 하지만 이북사람은 싫어해. 이게 다 욕된 것이요. 모든 것이 다 이것이 편벽되고 온전치 못해서 이것에게 영광은 저것에게 욕되고, 저것에게 영광은 이거 욕되지마는, 이런 것을 욕된 것을 쓰며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 이것을 가지고 이 구원에 맞추어 살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다 없어서는 안될 참된 존재로 자기를 구속하여 갈 수 있는 이것이 오늘입니다. 우리는 하루 있다(있다가) 말 것을 일년 있다(있다가) 말 것을, 십년 있다(있다가) 말 것을, 백년도 못갈 것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아서 기대하고 자기의 기업으로 자기의 소유로 삼는 것은 그는 눈먼 자라, 눈먼 자. 눈먼 자라. 가련한 자라.
>
>그런고로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하라' 네 자율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의 말씀과 네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네가 지혜(지혜의) 눈이 밝아 봐라. 무한의 세계가 보일 것이다. 모든 존재의 전체 세계가 보일 것이다. 네가 이제까지의 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국부적이며 얼마나 지역적이며 얼마나 편견적이냐. 얼마나 부분적이냐. 전부가 너희 것인데 이런고로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땅에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 될 수 있다' 는 것을 성경이 말합니다....
>
>1981.8.31.주전
>
>
실감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은 바로 말하면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원론적으로 말하면 2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는 설교자의 영감이 부족한 경우이고,
둘째는 본인의 영감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설교자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더욱 기도하고 회개하여 영감의 은혜가 있도록 힘써야 하고,
교인들은 설교자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설교 시간에 마음을 기울여 은혜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이미 알고 있는 말씀들은 그대로 실행하여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경을 깨닫는 유일한 방법은 아는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주님 말에 거한다는 말은 주님 말씀대로 실행하여 산다는 말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말은 그 진리를 주인으로 삼아 진리에게 붙들린다는 말입니다.
진리가 그의 주인으로 그를 붙드니 어떤 경우에도 진리로 자유하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위엣 것과 땅엣 것이 있는 줄은 우리가 다 압니다.
위엣 것은 하늘의 것이고, 땅엣 것은 세상 것인 줄도 다 압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마련하고, 땅엣 것은 생각지도 힘쓰지도 말아야 하는 것도 압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위엣 것으로 사는 것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땅엣 것으로 사는 것인 줄도 압니다.
문제는, 알지만 이 말씀들에 대한 실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알지만 실감적으로 와닿지 않으니 위엣 것으로 살 힘이 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말씀하신 대로 늘 땅엣 것에 마음을 두고 땅엣 것으로 사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하여 심령이 어두워지고 둔해진 연고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자전거 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서 있으면 넘어지고 달리면 달릴수록 더 힘차게 나간다는 것입니다.
땅엣 것으로 사는 생활이 많아지면 땅엣 것에 대해서는 예민해지고 실력도 있어지지만
위엣 것에 대해서는 둔해지고 위엣 것은 와닿지도 않고 그대로 사는 생활이 잘 되지 않습니다.
위엣 것으로 사는 생활이 계속되면
위엣 것에 대해서 예민해지고 밝아지고 위엣 것에 대한 실감이 강해지게 됩니다.
땅엣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지게 됩니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더 그러합니다.
신앙생활은 열심을 내면 낼수록 진리도 영감도 더욱 충만해지게 되고
세상생활에 바빠서 신앙이 식어질수록 심령은 어둡고 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예배 시간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주일예배는 생명을 바쳐야 하고, 밤예배 새벽기도는 힘을 다하여 참석해야 합니다.
매일 30분 기도, 산기도, 성경 읽기도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늘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살펴 회개하는 생활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위엣 것으로 사는 것이면서
더욱 말씀 속에 영감으로 충만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신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목사님, 설교록을 읽다가 질문을 드립니다
>
>목사님께서도 주일 설교 말씀에서 늘 하늘엣 것을 소망하라 가르치시고
>
>이는 백 목사님 설교록에도 일관되게 나오는 말씀입니다.
>
>그러나 눈이 어두워 늘 땅엣 것만 바라보고 땅엣 것으로 고민하고 걱정하고 일희일비하는 저희들입니다.
>
>하늘엣 것은 와닿지도 않고 아득히 멀기만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
>하늘엣 것을 소망해야 하는 당위성은 잘 알고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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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 자신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
>참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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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이 구원을 연구한 자마다 땅엣 것을 찾지 않습니다. 썩어질 것 가지고 영원한 이것을 위하여 노력하고 제한된 것 가지고 무한한 이것을 위해서 노력하고 욕된 것 요거는 좋아하지만 이북은 김일성이를 좋아하지만 이남은 싫어해. 이남사람은 이남을 좋아 하지만 이북사람은 싫어해. 이게 다 욕된 것이요. 모든 것이 다 이것이 편벽되고 온전치 못해서 이것에게 영광은 저것에게 욕되고, 저것에게 영광은 이거 욕되지마는, 이런 것을 욕된 것을 쓰며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고 이것을 가지고 이 구원에 맞추어 살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다 없어서는 안될 참된 존재로 자기를 구속하여 갈 수 있는 이것이 오늘입니다. 우리는 하루 있다(있다가) 말 것을 일년 있다(있다가) 말 것을, 십년 있다(있다가) 말 것을, 백년도 못갈 것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아서 기대하고 자기의 기업으로 자기의 소유로 삼는 것은 그는 눈먼 자라, 눈먼 자. 눈먼 자라. 가련한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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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안약을 사서 발라 보게하라' 네 자율 주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의 말씀과 네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네가 지혜(지혜의) 눈이 밝아 봐라. 무한의 세계가 보일 것이다. 모든 존재의 전체 세계가 보일 것이다. 네가 이제까지의 보고 있는 것은 얼마나 국부적이며 얼마나 지역적이며 얼마나 편견적이냐. 얼마나 부분적이냐. 전부가 너희 것인데 이런고로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땅에 것이나 하늘의 것이나 모든 것이 다 너희 것이 될 수 있다' 는 것을 성경이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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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8.31.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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