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4일 밤예배 설교타이핑입니다.
새싹22013-05-27조회 465추천 44
어떤 분이 설교 원고 원하시는 거 같아서 제가 저번 주 금밤 설교를 타이핑 한 게 있어서 올려봅니다.
어디다 올려놔야 할 지 몰라서 이곳에 올렸습니다. (게시글은 삭제하셔도 무방합니다.)
비록 동천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늘 목사님 설교로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13년 5월 24일 동천교회 금밤예배
말씀 :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 많으니라
이 본문의 내용은 우리도 공부를 많이 했고 또 집회 때도 여러 번 우리가 재독을 통해서 말씀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말씀인데
이번 집회 때는 이 말씀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우냐
말하자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지 아니하고 피조물을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소망 두지 아니하고 피조물에게 소망 두는 그래서 피조물 바라보고 의지하고 피조물에게 순종하는 이것을 바꿔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이것으로 바꾸는 그게 얼마나 어려우냐 그게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만큼 그보다 더 어렵다 그리 말씀했습니다. 그런 각도로 공부를 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다 그러하듯이 이 말씀도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같이 한 번 해보실까요. 구원도리
도리라 그 말은 길을 걸어가는 이치다.
쉽게 말하면 길을 가는 방법이라 그 뜻입니다.
밥을 하는 방법, 또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을 어려운 말로 도리라. 그리 말합니다. 구원의 도리 이치라 그 뜻입니다.
그러면 이치라는 말은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예를 들어 말씀하시길 알밤을 갖다 놓고 한 개, 두 개, 세 개, 다섯 개 알밤 세는 법을 배웠습니다. 알밤이 다섯 개 있으니까 알밤 한 개, 두 개… 다섯 개 알밤 세는 방법을 배웠는데 세는 법을 가르쳐놓고 그 다음에 감자를 다섯 개 놓고 이거 몇 갠지 세봐라 하니까 말하기를 뭐라고 합니까 알밤 세는 법은 배웠지만 감자 세는 법은 안 배웠는데요 그리 말하면 딱한 노릇이다 그리 말하죠. 알밤 세는 법이나 고구마 세는 법이나 감자 세는 법이나 자동차 세는 법이나 숫자 세는 법은 똑같지요.
이것처럼 구원의 도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많으니 이것을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 순종하는 것으로 바꿔야 되겠다.
근데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냐?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게 구원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 된다.
이게 구원 도린데 고 도리는 하나님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도 해당이 되고
거기서 우리 생활의 또 다른 이치를 찾아보면 다른 것이 나오는 겁니다.
오늘 밤에는 이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요 본문 내용이
17절부터 연결이 됩니다. 성경 한 번 보시죠. 17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대 이 사람이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이 사람은 청년입니다. 청년이니까 좀 젊은 사람이죠. 청년이고 직업은 누가복음 18장인가 보면 공무원입니다. 관원이라고 그랬으니까 공무원이죠
.
그러면 청년이면서 공무원인 이 사람이 이 부자 청년 돈 많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여쭙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으로 불렀지만 이 청년은 선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냥 자기 보기에 예수님이 좋아 보이고 선하게 보이니까 그렇게 불렀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구하러 왔습니까?
영생 얻는 법을 알려고 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을 드리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요것도 우리가 여기서 하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그래서 선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선의 정의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 중심, 위주가 되면 선이되고 어떤 외부적으로 거룩하게 또 남을 위하는 이타적으로 그렇게 보여져도 하나님 중심 아닌 것은 전부 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또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아니하신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선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악이 없는 겁니다.
왜 그런가?
왜 하나님 한 분만 선하고 하나님에게는 악이 왜 없는가?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각을 하면서 들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악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 받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왜 하나님은 악이 없고 하나님 한 분만 선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당신만이 완전하니까. 당신만이 자존자니까. 당신이 모든 만존재의 원인자며 근본이시니까. 그래서 하나님만 선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 한 분이 전부다 그래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 예정 속에 든 것이고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섭리로 되는 것이지 절대 예정을 벗어난 어떤 존재나 절대 주권을 벗어난 어떤 작용이 있을 수가 절대 없습니다. 없어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고 없어야 기독교가 성립이 되는데 이 사실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시고 네가 계명을 아나니 계명들을 지켜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십계명 순서는 그대로 아니라도 말씀을 하십니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속여 취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계명들을 지켜라 뭣하기 위해서요?
무엇 하기 위해서 계명 지킵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겠나이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계명들을 지켜라
살인하지 말아라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마음속에서부터 간음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남의 구원에 해 되는 말 하지 말아라.
속여서 취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 말씀하신 계명 하나하나를 하나님 말씀 하나하나를 지켜라 그러면 영생이 된다.
그러니까 이 청년이 말하기를 선생님 이런 계명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했다 그랬습니다. 참 잘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하나 첫째 오늘 밤 말씀 기억을 합시다.
영생은 얻는 법이 뭣이냐?
영생을 얻으려면 뭘 하라구요?
영생을 얻으려면 뭐 합니까?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목적은 예수 믿기 위해서 사는 것이고
예수님 믿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믿음 생활은 주일을 지킵니다.
주일을 왜 지킵니까? 영생을 얻으려고 지키는 겁니다.
성경 읽습니다. 성경 왜 읽습니까? 영생을 얻으려고 읽습니다.
기도합니다. 기도 왜 합니까? 영생을 얻으려고 기도 합니다.
심방하고 전도합니다. 왜 합니까? 영생 얻으려고 합니다.
연보 합니다. 십일조 하고 연보 합니다. 영생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새벽기도 나옵니다. 왜 나옵니까? 영생을 얻으려고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자기 자신을 돌아봅시다.
오늘 새벽에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다니다가 오래도록 따라다녔는데 첨에는 주님
따라 다니니까 말씀을 들어도 신기하고 하시는 일도 신기하고 너무 신기한 것이많아서 재밌게 따라다녔는데 몇 달 따라다니고 한 3년쯤 됐을까요? 따라다니면서 보니까 늘 주님 하시는 말씀은 하늘의 복음, 어려운 말씀 이런 걸 가르치고 또 표적도 그것도 한번 보고 두 번 보니까 주님도 그것만 하고 있지 않고 그러니까 원래 그래 하는거 싶고 이러니까 첨에는 세상에 베드로가 예수님 첨 만났을 때 메시야라고 했죠. 메시야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메시야는 조상들부터 수 천년 동안 고대하던 구주 메시야입니다.
말하자면 오늘 이 시대에 과거 백목사님 말씀 듣고 백목사님께 은혜 받은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말씀이 어디 있나 그래가지고 전부 다 뒤집어 졌습니다. 그것처럼 그보다 더했겠지요.
사도바울을 만난 사람들은 사도바울 앞에서 다 뒤집어 집니다.
근데 예수님이니까 얼마나 설교를 은혜 있게 잘했고 권능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주님을 따라 다니던 베드로가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한달 두 달 주님말씀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고 주님 얼굴 보고 또 보고 만나고 또 만나니까 사람인지라 세월이 지나가니까 나중에는 오늘 봐도 어제 그 주님 또 한달 있다 봐도 한달 전의 그 주님 한달 뒤에 말씀 들어도 내나 그 말씀 일년 뒤에 봐도 내나 그 주님 주름살 하나 더 생기고 예를 들면 머리 좀 희여졌지 내나 그 예수님 그 음성 그 목소리 내나 그런 설교 그런 역사 크게 벗어나는 게 없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3년쯤 따라다니다가 주님을 버리고 고기잡이하러 가버렸습니다. 낙심을 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을 떠나서 고기잡이 하러 가버렸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그 베드로를 찾아서 심방을 가셔서 깊은데 가서 그물 내려 고기 잡으라 그러시니까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은 한번 해보자 하고 했는데 전에 많이 봤지만 하나님 은혜가 있으니까 그날은 특별하게 크게 와 닿아서 세상에 지금까지 주님 말씀을 다 허투로 들었는데 오늘 들어 보니까 이거 도무지 인간의 모든 이치와 역사와 상식과 통계를 다 뒤집어 엎는 이런 말씀이구나! 그렇다면 지난 3년동안 내가 다 한쪽귀로 듣고 흘려버린 그 주님 모든 말씀이 전부 이런 영생의 권능의 말씀인데 그 말씀 전부 흘려 떠내려 보냈고 무시했고 이런 구주 메시야를 내가 맘속으로 홀대하고 무시했구나.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기 행적을 알고 주님에 대한 자기 태도를 자기가 아니까 주님 앞에 고꾸라져서 납작 엎드려져서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 때 주님이 위로하시면서 그 자세를 버리지 않으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질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해보기를
우리는 첨 예수 믿을 때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그렇게 좋고 찬송가 58장을 하면 어깨가 들썩이고 속에서 막 춤추고픈 그런 마음들이 많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그 자체에 놀랐고 그 분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만큼 놀랐고 그 분의 그 구원세계에 영생의 구원세계를 깨달아 알고 나서는 뒤집어져서 모든 것 전부 다 집어 던지고 영생을 바라보고 이 영생 이루기 위해서 달려가겠다고 달려갔던 그런 분들이 이 자리에도 제법 여러 분이 계실 겁니다. 많이.
그리고 주님 대속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고 밤 새워 기도도 하고 울어도 보고 좋아서 목이 쉬도록 찬송도 하고 그리 다 해봤을 겁니다
.
그런 생활을 하다 하다 계속 자꾸 하다 보니까 나이도 들고 세상생활 자꾸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내나 그것이 자꾸 계속이 되다 보니까 그만 식어지고 재미가 없어져서 차차 차차 가라앉아 가는 그런 생활이 되어 졌습니다. 현재 우리도 그런 모습을 가진 우리가 아닌가 그래서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그 말씀을 생각해 봤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뭐 하러 왔다고요?
영생 얻는 법을 얻으러 왔습니다. 배우러 왔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영생 얻기 위해서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성경을 읽고 기도 하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연보하고 밤 예배 나오고 새벽기도 나오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모든 생활 전부다가 영생 얻기 위해서 하는데 우리 자신 한 번 돌아보죠. 정말 우리 속에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들 속에 영생에 대한 소망이 얼마만큼 강하나 남아있습니까?
이 청년은 이런 계명 다 지키고 주님을 찾아와서 계명들을 다 지켰는데도 뭔가 쫌 확신이 없어서 주님 찾아왔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주님 말씀입니다. 계명들을 지켜라.
그러면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우리는 영생 얻기 위해서 하고 있는가?
내가 과연 지금 사는 모든 생활, 신앙생활이 영생을 바라보고 영생을 소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우리 모든 신앙생활의 목적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바로 건설구원이고 성화구원입니다.
모든 건설구원, 성화구원에 관련된 모든 구원의 도리, 교리 전부다가 영생입니다.
한말로 말하니까 영생입니다.
영생을 소망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 영생이라는 가치는 우리에게 얼마나 남아있을까?
한 번 첫째 요걸 가지고 돌아보십시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영생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계명 지키지 않는 영생은 없습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영생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계명이고 그 모든 계명은 모두 지키면 영생이 되는 겁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신앙생활 하는데 영생을 얻으려면 주님 말씀 하시기를 계명들을 지켜라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는 영생을 욕망하고 있는가? 영생을 바라보고 계명들을 바로 지키고 있는가?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좀 새롭게 하십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계명들 지켜라 하고 쭉 나열하니까 이 청년이 말하길 선생님 이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영생을 바라보고 영생 얻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계명들은 또박또박 지켰으니 주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주님이 사랑스러워서 그러냐 그런데 내가 보니까 네게 다른 거 다 계명 지켜 잘했는데 한가지가 딱 부족하다. 한가지가 부족하다.
그러니 청년이 속으로 계명들 살인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고 거짓말 하지 않았고 속여 취하지 않았고 부모를 다 공경했고 다 기록 안됐어도 양심에 거리끼는 거 하나도 하지 않았고 그러니 오늘까지 어려서부터 살아왔으니까 한가지 지키는 거야 뭐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싶으니까 자신만만했겠죠
주님 말씀 하시기를 너에게 한가지가 부족하다 그것만 지키면 되겠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한가지 부족한 것은 너에게 있는 소유를 다 팔아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다. 영생이 있을 것이다. 요래 말씀하시니까
이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그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이 청년이 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왜 슬펐습니까 부자청년이? 왜 슬펐고 왜 근심했습니까?
이 청년이 주님 말씀을 듣고 왜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까? 왜 슬펐고 근심이 되었습니까?
주님 말씀대로 하면 영생을 얻으려면 영생 얻기 위해서 그날까지 온갖 계명을 다 지켰는데 우리가 살아보면 알지 않습니까? 계명 지키기가 쉽습니까? 계명 지키기가 쉽습니까?
자기 현실에서 일반적인 것도 있지만은 한번도 계명을 어기지 않고 다 지켜나가려면 계명 지키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계명들 하나도 빠지지 아니하고 다 지켜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이제는 다 됐다 싶었는데 주님이 하신 말씀이 마지막 하나. 하나만 더하면 되겠다. 무엇입니까? 네게 있는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러니까 그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면서 돌아갔다.
이 부자가 왜 슬픈 기색 띠고 근심했습니까?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주님 쫓아가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계명들을 지키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이 해당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요것은 사람마다 다 각각 다릅니다.
부자청년에게는 요게 딱 걸렸습니다.
그러면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 날까지 주님 앞에 찾아오기까지 부자 청년은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열심히 노력해서 계명들을 전부 다 지켰습니다. 계명들을 지킬 때 때로는 손해도 봤을 것이고 욕도 먹었을 것이고 참기도 참았을 것이고 노력도 했을 것이고 자기 마음과 몸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또박또박 전부 다 지켰습니다.
다 지켰는데 그래서 영생이 된 줄 알았는데 주님 앞에 오니까 한가지가 부족하다 그러면 그 한가지 쯤이야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킬 수 있다. 그런데 네게 있는 소유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 줘라. 이러니까 이 청년은 재물이 많기 때문에 딱 걸려서 그만 고 재물 때문에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그것 때문에 주님도 버리고 영생도 버리고 그래서 주님을 버리려니까 영생을 버리려니까 많이 슬펐고 근심이 되어져서 괴로운 마음으로 그러나 자기 가진 그 재물 한가지를 꺾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영생을 버리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때까지 그렇게 노력하던 이 부자가 주님이 영생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니까 영생을 버리고 주님도 버리고 자기 가진 것 한가지 고것에 붙들려서 가버렸습니다.
오늘 밤 두 번째로 기억할 말씀 이겁니다.
첫째는 우리 믿는 사람은 이 부자 청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겁니다. 영생은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 요게 첫번쨉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계명들을 다 지켜 나가는 데 이 부자청년이 계명들을 다 지켰는데 열심히 지켰는데 자기도 알지 못하던 자기 속의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자기 속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이 청년이 몰랐습니다.
이 사람은 재물이 많으니까 재물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했으면 학벌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으면 좋은 머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 배경이 좋으면 집안 배경도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났으면 부모도 될 수 있습니다. 또 좋은 아내 만났으면 아내도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남편 만났으면 남편도 될 수 있습니다. 똑똑한 자녀를 뒀으면 그 자녀도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몸이 건강하면 건강도 될 수 있고, 자기의 지능이 탁월하면 지능도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기술이 있으면 기술도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자기 속에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켜나가는데 자기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데 이 부자청년은 몰랐습니다. 아는 것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이 영생을 욕망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 계명을 또박또박 다 지킵니다.
계명 다 지키고 계명만 지킵니까?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고 온갖 것 다 합니다 다 하는데 그 하는 속에 그 깊은 속에 자기가 아는 것도 있고 알지 못하는 것도 있는데 계명 지키는 것, 봉사하는 거, 수고하는 거, 희생하는 거, 열심히 죽도록 충성하는 것 그 속에 가장 깊은 속에 자기가 충성하고 계명 지키는 그 모든 것 전부를 다 능가할 수 있는 한가지가 자기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두 번째로 기억을 해야 됩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 부자청년은 재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성격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설교록에 많이 나온 이야긴데 어떤 장로님이 계시는데 그 장로님은 저를 모르고 저는 같은 서부교회에서 봤으니까 얼굴을 압니다. 아주 머리가 허였고 인상이 아주 선하게 인자하게 생긴 아주 참 좋은 분입니다. 교양도 있고 지식도 있고 아주 훌륭한 그런 분입니다.
그 장로님이 언제 한번 백목사님과 금정산에 가시다가 백목사님께서 장로님은 그 자존심을 뽑아야 되는데 그 자존심 때문에 큰일입니다. 이러니까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예, 목사님 저는 자존심 이거 상하면 죽으면 죽었지 저는 자존심은 못 꺾습니다. 자존심에 걸리면 고만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자존심만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한가지 부족한 것이 고 자존심입니다.
사람마다 이게 다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속에는 그 한 가지 그게 비중이 얼마나 크냐 그 비중은 주님도 버리고 영생도 버리는 비중입니다. 그 힘은 그 비중은 그 한 가지의 세력은 한 가지 세력은 자기가 그날까지 지키는 수많은 계명 지킬 수 있는 그 모든 신앙의 힘.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희생하는 모든 희생, 또 기도하는 그 열정과 그 충성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고 심방하고 가르치고 희생하는 봉사와 희생과 수고, 자기의 전투력과 자기 수고, 희생, 봉사, 충성, 자기를 꺾고 낮추는 모든 것 이 수많은 것들을 전부다 한꺼번에 다 꺾을 수 있는 고 세력 가진 것이 자기 속에 있는 한가지 부족한 바로 고놈입니다
.
요 세력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되고 요게 무엇인지를 알아서 이런 것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고것까지 넘어가야 비로소 영생이 되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런데 이걸 발견을 해도 꺾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그 다음 세 번째 그래서 주님이 부자청년이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주님이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이러니까 요즘 그리 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는데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이 마가복음10장 23절의 이런 말씀들은 일반적으로 건설구원교리와 삼분교리와 기능교리를 알지 못하면 이것은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겁니다. 난해절로 되어 있습니다. 해석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니까 제자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믿으면 가는 줄 알았는데.
한번 더 그 말씀 합니다. 소위 세상 말에 한 술 더 뜹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불가능하다 그 말이죠. 그 부자가 무엇입니까? 부자는 어떤 부자를 말하는 겁니까?
이 청년은 부자니까 재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겁니까?
바로 한가지 부족한 거 그게 무엇인지 모릅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사람마다 주시는 성격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형편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모든 게 다 다르니까 하나님의 요구가 다르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예를 들자면 눈에게 원하는 거 귀에게 원하는 거 코에게 원하는 거 손발에게 원하는 거 원하시는 뜻이 다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눈에게 냄새 맡으라 하지 않습니다. 코에게 보라지 않습니다. 입에게 들으라 하지 않습니다. 귀에게 말하라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주신 성향, 분량, 위치가 다 다르니까 역할이 다 다르니까 요구가 다 다르고 뜻이 다르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짐작을 하지만 눈이 밝은 사람들이 보면은 짐작은 하지만 정확하게 보기는 어렵고 참 눈 밝은 사람은 보면 알 것이고 본인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데 깊이 양심 쓰고 찾아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걸 모르면 그걸 모르면 말하자면은 그의 모든 신앙생활은 전부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은 어떤 면에서 마귀의 손바닥 안에 놀고 있는 신앙생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귀가 신앙생활 할 때 우리를 유혹할 때 그물을 넓게 쳐서 그물 넓게 쳐서 말하자면 옛날에 고래 잡을 때 포경선이 고래 잡을 때는 작살 가지고 탁 쏘아놓고 그 다음에 그 작살과 연결된 줄을 굉장히 길게 해놔서 따라다니면서 줄을 풀어주니까 이놈이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죠. 줄을 풀고 같이 따라다니니까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찔려서 피를 많이 흘리면 힘이 빠지면 축 쳐지고 죽으니까 그때 잡아들이죠
그물을 넓게 치면은 그 그물 안에 있는 고기는 마음껏 헤엄칩니다. 그물을 안 땡기면 그 안에서 평생 먹고 삽니다. 그 안에서 나서 자라서 예를 들면은 물고기들이니까 새끼 놓고 새끼 기르고 몇 대까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물 안에 있는 고기라서 땡기면 다 들어옵니다.
마귀가 믿는 사람에게 그물을 넓게 치면은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면서 주일도 지키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연보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새벽기도 나오고 집회도 가고 수고 봉사하고 오만 것 다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잘 믿는 줄 압니다.
그런데 마귀는 압니다. 저 놈은 아무리 저리 충성해도 요거 하나 딱 걸면 100% 넘어진다. 고게 있는 사람은 마귀가 마음껏 하게 둡니다. 그러다가 한 번씩 코를 딱 걸어 넘어뜨립니다.
넘어뜨리면 그 때까지 신앙생활 한 거 다 헛일입니다.
고거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러니까 그의 모든 신앙생활 전부다 마귀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그거 이기기 전에는 영생은 없는 겁니다.
고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인데 이것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걸 찾아야 됩니다.
나에게 이것은 무엇일까? 고것만 나오면 넘어지는 겁니다. 고것만 걸리면 넘어집니다.
그것이 예를 들자면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인데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은 재물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자존심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어떤 하나의 욕심이 될 수 있고, 악습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뭐가 될 지 모릅니다.
그런 것들 하나가 있어서 그게 걸리면 그만 탕탕 100% 넘어져버립니다.
고것이 한 가지 부족한 것인데 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주님을 버리게 만듭니다.
영생도 던져 버리게 만듭니다.
자기가 그때까지 신앙생활 한 모든 것을 전부다 넘어뜨립니다.
그 모든 전부보다 힘이 더 센 것이 한 가지 부족입니다.
고게 무엇일까?
우리가 그것을 알고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다 이것을 알고 나면
평생의 신앙생활은 많은 것을 위해서 싸우지 않습니다. 고 거 하나를 발견하고 나면 고 거 하나를 목적하고 고놈을 표시로 두고 고것을 이기고 고것과 더불어 싸워 이기기 위해 평생을 애를 쓰는 것이 많은 사람의 신앙생활입니다.
두 번째 이거 기억하십시다.
한가지 부족한 거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버리게 합니다. 영생도 던져 버리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 버린다 그러니까 크게 어려운 거 같죠?
가룟 유다가 예수님 팔아먹은 것이 어마어마하게 큰 죄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 팔아먹는 것은 가룟 유다보다 열 배, 스무 배, 백배, 이백 배 더 많이 우린 주님 팔아먹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그런데도 우린 못 느낍니다. 주님 떠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그렇게 와 닿지 않습니다.
그냥 마음속으로 죄 한번 지으면 주님 떠나버립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주님 떠나버립니다. 영생은 그 순간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못 느끼지요.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이런 것과 비교 못할 만큼 싸우고 싸우고 싸워도 마지막에자기가 알고도 넘어지는 겁니다.
내가 이것은 틀림없이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죄다. 주님 버리는 것이고 영생 버리는 것이다.
이 부자 청년은 네게 있는 소유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할 때 슬픈 기색을 띤 것은 영생을 얻으려면 자기 소유 다 버려야 되고 자기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거 다 버려야 되고 영생과 주님 얻으려면 버려야 되고 이걸 버리지 않으려면 주님과 영생 버려야 되고 그래서 슬픈 기색을 띠고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은 주님 버리고 영생 버리고 근심하면서 자기 소유를 따라 가버렸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의 정확하게는 몰라도 백의 구십은 비율로 따져 90%가 넘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한가지에 넘어지고 맙니다.
이 부자는 한 가지인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몇 가지나 되는 줄 모릅니다.
한가지 넘어서면 또 나오고 넘어서면 또 나오고 그래서 마지막 최종에 하나도 없어 가지고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다 내놓고 주님 영생 이것 위해서는 내놓지 못할 것이 없는 꺾지 못할 것이 없는 완전한 거기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영생이 이루어 진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세 번째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 말씀하시기를
도무지 이것은 안 되는 거다.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그러니까 이것은 안 된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 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여기서 이번 집회 때 소망을 가졌지요
그럼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우리가 못하는데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뭘 해야 한다고 그랬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해주실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 되겠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 겁니다.
오늘 밤에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앞에 두 가지를 기억을 하고 영생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 속에 영생을 욕망하며 영생을 위한 계명 지키는 생활을 나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 한번 살펴보십시다.
내가 영생을 욕망하고 있는가?
영생을 바라보고 있는가? 영생 얻기 위해서 나는 계명 지키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자신을 끊임없이 단속하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두 번째 이 영생 얻는 신앙생활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도 마지막에 한 가지 부족한 것 요것이 걸리는 게 있으면 결국 마지막 요것이 낚시바늘이 돼서 나를 걸고 넘어지니까 요것이 내게 무엇이 있을까? 몇 가지 있을까? 요걸 찾아서 요걸 끊는 노력을 해야 되고.
이거 끊는 것은 사람 힘으로 안되기 때문에
세 번째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든 신앙생활 구원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라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생활이라 그러니까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긍휼을 구하는 도우심을 구하는 쉬지 않는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세 번째 결론으로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을 소망하고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소망하고 있는가?
영생을 소망하는 욕망하는 그 욕망이 내가 얼마나 강하게 남아 있는가?
주님 따라 다니다가 별 재미없어서 떠나서 고기 잡으러 떠났던 베드로처럼 영생을 소망하고 하늘의 구원을 소망하고 주님 대속에 감격했던 우리들이 이 모든 것 다 식어져서 가라앉아서 가정생활에 직장생활에 자녀 양육 교육에 학교생활에 세상생활에 도취되고 잠자고 있는 우리들은 되어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 한 번 돌아보고 우리 속에 모든 신앙생활 전부를 다 꺾어버릴 주님과 영생을 다 버리고 도망칠 한가지 부족한 거 요게 내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찾아보고 요걸 능가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끊이지 않아야겠습니다.
어디다 올려놔야 할 지 몰라서 이곳에 올렸습니다. (게시글은 삭제하셔도 무방합니다.)
비록 동천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늘 목사님 설교로 많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2013년 5월 24일 동천교회 금밤예배
말씀 :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 많으니라
이 본문의 내용은 우리도 공부를 많이 했고 또 집회 때도 여러 번 우리가 재독을 통해서 말씀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잘 알고 있는 말씀인데
이번 집회 때는 이 말씀으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우냐
말하자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우리들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지 아니하고 피조물을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소망 두지 아니하고 피조물에게 소망 두는 그래서 피조물 바라보고 의지하고 피조물에게 순종하는 이것을 바꿔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이것으로 바꾸는 그게 얼마나 어려우냐 그게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만큼 그보다 더 어렵다 그리 말씀했습니다. 그런 각도로 공부를 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이 다 그러하듯이 이 말씀도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같이 한 번 해보실까요. 구원도리
도리라 그 말은 길을 걸어가는 이치다.
쉽게 말하면 길을 가는 방법이라 그 뜻입니다.
밥을 하는 방법, 또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을 어려운 말로 도리라. 그리 말합니다. 구원의 도리 이치라 그 뜻입니다.
그러면 이치라는 말은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예를 들어 말씀하시길 알밤을 갖다 놓고 한 개, 두 개, 세 개, 다섯 개 알밤 세는 법을 배웠습니다. 알밤이 다섯 개 있으니까 알밤 한 개, 두 개… 다섯 개 알밤 세는 방법을 배웠는데 세는 법을 가르쳐놓고 그 다음에 감자를 다섯 개 놓고 이거 몇 갠지 세봐라 하니까 말하기를 뭐라고 합니까 알밤 세는 법은 배웠지만 감자 세는 법은 안 배웠는데요 그리 말하면 딱한 노릇이다 그리 말하죠. 알밤 세는 법이나 고구마 세는 법이나 감자 세는 법이나 자동차 세는 법이나 숫자 세는 법은 똑같지요.
이것처럼 구원의 도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것이 많으니 이것을 하나님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 순종하는 것으로 바꿔야 되겠다.
근데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냐?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게 구원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해야 된다.
이게 구원 도린데 고 도리는 하나님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도 해당이 되고
거기서 우리 생활의 또 다른 이치를 찾아보면 다른 것이 나오는 겁니다.
오늘 밤에는 이 본문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요 본문 내용이
17절부터 연결이 됩니다. 성경 한 번 보시죠. 17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대 이 사람이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이 사람은 청년입니다. 청년이니까 좀 젊은 사람이죠. 청년이고 직업은 누가복음 18장인가 보면 공무원입니다. 관원이라고 그랬으니까 공무원이죠
.
그러면 청년이면서 공무원인 이 사람이 이 부자 청년 돈 많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여쭙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으로 불렀지만 이 청년은 선의 정의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냥 자기 보기에 예수님이 좋아 보이고 선하게 보이니까 그렇게 불렀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구하러 왔습니까?
영생 얻는 법을 알려고 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을 드리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요것도 우리가 여기서 하나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그래서 선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선의 정의는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 중심, 위주가 되면 선이되고 어떤 외부적으로 거룩하게 또 남을 위하는 이타적으로 그렇게 보여져도 하나님 중심 아닌 것은 전부 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또 야고보서에 보면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 아니하신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선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악이 없는 겁니다.
왜 그런가?
왜 하나님 한 분만 선하고 하나님에게는 악이 왜 없는가?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각을 하면서 들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악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 받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왜 하나님은 악이 없고 하나님 한 분만 선합니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당신만이 완전하니까. 당신만이 자존자니까. 당신이 모든 만존재의 원인자며 근본이시니까. 그래서 하나님만 선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하나님 한 분이 전부다 그래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 예정 속에 든 것이고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섭리로 되는 것이지 절대 예정을 벗어난 어떤 존재나 절대 주권을 벗어난 어떤 작용이 있을 수가 절대 없습니다. 없어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고 없어야 기독교가 성립이 되는데 이 사실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시고 네가 계명을 아나니 계명들을 지켜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십계명 순서는 그대로 아니라도 말씀을 하십니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속여 취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계명들을 지켜라 뭣하기 위해서요?
무엇 하기 위해서 계명 지킵니까?
영생을 얻기 위해서.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겠나이까? 하고 물으니까 예수님께서 계명들을 지켜라
살인하지 말아라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마음속에서부터 간음하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남의 구원에 해 되는 말 하지 말아라.
속여서 취하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 말씀하신 계명 하나하나를 하나님 말씀 하나하나를 지켜라 그러면 영생이 된다.
그러니까 이 청년이 말하기를 선생님 이런 계명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했다 그랬습니다. 참 잘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하나 첫째 오늘 밤 말씀 기억을 합시다.
영생은 얻는 법이 뭣이냐?
영생을 얻으려면 뭘 하라구요?
영생을 얻으려면 뭐 합니까?
계명을 지키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목적은 예수 믿기 위해서 사는 것이고
예수님 믿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믿음 생활은 주일을 지킵니다.
주일을 왜 지킵니까? 영생을 얻으려고 지키는 겁니다.
성경 읽습니다. 성경 왜 읽습니까? 영생을 얻으려고 읽습니다.
기도합니다. 기도 왜 합니까? 영생을 얻으려고 기도 합니다.
심방하고 전도합니다. 왜 합니까? 영생 얻으려고 합니다.
연보 합니다. 십일조 하고 연보 합니다. 영생 얻으려고 하는 겁니다.
새벽기도 나옵니다. 왜 나옵니까? 영생을 얻으려고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하나 자기 자신을 돌아봅시다.
오늘 새벽에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다니다가 오래도록 따라다녔는데 첨에는 주님
따라 다니니까 말씀을 들어도 신기하고 하시는 일도 신기하고 너무 신기한 것이많아서 재밌게 따라다녔는데 몇 달 따라다니고 한 3년쯤 됐을까요? 따라다니면서 보니까 늘 주님 하시는 말씀은 하늘의 복음, 어려운 말씀 이런 걸 가르치고 또 표적도 그것도 한번 보고 두 번 보니까 주님도 그것만 하고 있지 않고 그러니까 원래 그래 하는거 싶고 이러니까 첨에는 세상에 베드로가 예수님 첨 만났을 때 메시야라고 했죠. 메시야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메시야는 조상들부터 수 천년 동안 고대하던 구주 메시야입니다.
말하자면 오늘 이 시대에 과거 백목사님 말씀 듣고 백목사님께 은혜 받은 사람들은 세상에 이런 말씀이 어디 있나 그래가지고 전부 다 뒤집어 졌습니다. 그것처럼 그보다 더했겠지요.
사도바울을 만난 사람들은 사도바울 앞에서 다 뒤집어 집니다.
근데 예수님이니까 얼마나 설교를 은혜 있게 잘했고 권능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주님을 따라 다니던 베드로가 그렇게 따라다니다가 한달 두 달 주님말씀 듣고 또 듣고 보고 또 보고 주님 얼굴 보고 또 보고 만나고 또 만나니까 사람인지라 세월이 지나가니까 나중에는 오늘 봐도 어제 그 주님 또 한달 있다 봐도 한달 전의 그 주님 한달 뒤에 말씀 들어도 내나 그 말씀 일년 뒤에 봐도 내나 그 주님 주름살 하나 더 생기고 예를 들면 머리 좀 희여졌지 내나 그 예수님 그 음성 그 목소리 내나 그런 설교 그런 역사 크게 벗어나는 게 없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3년쯤 따라다니다가 주님을 버리고 고기잡이하러 가버렸습니다. 낙심을 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을 떠나서 고기잡이 하러 가버렸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그 베드로를 찾아서 심방을 가셔서 깊은데 가서 그물 내려 고기 잡으라 그러시니까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은 한번 해보자 하고 했는데 전에 많이 봤지만 하나님 은혜가 있으니까 그날은 특별하게 크게 와 닿아서 세상에 지금까지 주님 말씀을 다 허투로 들었는데 오늘 들어 보니까 이거 도무지 인간의 모든 이치와 역사와 상식과 통계를 다 뒤집어 엎는 이런 말씀이구나! 그렇다면 지난 3년동안 내가 다 한쪽귀로 듣고 흘려버린 그 주님 모든 말씀이 전부 이런 영생의 권능의 말씀인데 그 말씀 전부 흘려 떠내려 보냈고 무시했고 이런 구주 메시야를 내가 맘속으로 홀대하고 무시했구나.
그래서 자기 스스로 자기 행적을 알고 주님에 대한 자기 태도를 자기가 아니까 주님 앞에 고꾸라져서 납작 엎드려져서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 때 주님이 위로하시면서 그 자세를 버리지 않으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질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해보기를
우리는 첨 예수 믿을 때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그렇게 좋고 찬송가 58장을 하면 어깨가 들썩이고 속에서 막 춤추고픈 그런 마음들이 많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그 자체에 놀랐고 그 분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만큼 놀랐고 그 분의 그 구원세계에 영생의 구원세계를 깨달아 알고 나서는 뒤집어져서 모든 것 전부 다 집어 던지고 영생을 바라보고 이 영생 이루기 위해서 달려가겠다고 달려갔던 그런 분들이 이 자리에도 제법 여러 분이 계실 겁니다. 많이.
그리고 주님 대속의 사랑을 깨닫고 감격해서 어쩔 줄 모르고 밤 새워 기도도 하고 울어도 보고 좋아서 목이 쉬도록 찬송도 하고 그리 다 해봤을 겁니다
.
그런 생활을 하다 하다 계속 자꾸 하다 보니까 나이도 들고 세상생활 자꾸 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내나 그것이 자꾸 계속이 되다 보니까 그만 식어지고 재미가 없어져서 차차 차차 가라앉아 가는 그런 생활이 되어 졌습니다. 현재 우리도 그런 모습을 가진 우리가 아닌가 그래서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그 말씀을 생각해 봤었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뭐 하러 왔다고요?
영생 얻는 법을 얻으러 왔습니다. 배우러 왔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영생 얻기 위해서 합니다.
주일을 지키고 성경을 읽고 기도 하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연보하고 밤 예배 나오고 새벽기도 나오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모든 생활 전부다가 영생 얻기 위해서 하는데 우리 자신 한 번 돌아보죠. 정말 우리 속에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들 속에 영생에 대한 소망이 얼마만큼 강하나 남아있습니까?
이 청년은 이런 계명 다 지키고 주님을 찾아와서 계명들을 다 지켰는데도 뭔가 쫌 확신이 없어서 주님 찾아왔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주님 말씀입니다. 계명들을 지켜라.
그러면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우리는 영생 얻기 위해서 하고 있는가?
내가 과연 지금 사는 모든 생활, 신앙생활이 영생을 바라보고 영생을 소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우리 모든 신앙생활의 목적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바로 건설구원이고 성화구원입니다.
모든 건설구원, 성화구원에 관련된 모든 구원의 도리, 교리 전부다가 영생입니다.
한말로 말하니까 영생입니다.
영생을 소망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 영생이라는 가치는 우리에게 얼마나 남아있을까?
한 번 첫째 요걸 가지고 돌아보십시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영생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계명 지키지 않는 영생은 없습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은 영생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계명이고 그 모든 계명은 모두 지키면 영생이 되는 겁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신앙생활 하는데 영생을 얻으려면 주님 말씀 하시기를 계명들을 지켜라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는 영생을 욕망하고 있는가? 영생을 바라보고 계명들을 바로 지키고 있는가?
한번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좀 새롭게 하십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계명들 지켜라 하고 쭉 나열하니까 이 청년이 말하길 선생님 이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영생을 바라보고 영생 얻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계명들은 또박또박 지켰으니 주님이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주님이 사랑스러워서 그러냐 그런데 내가 보니까 네게 다른 거 다 계명 지켜 잘했는데 한가지가 딱 부족하다. 한가지가 부족하다.
그러니 청년이 속으로 계명들 살인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고 거짓말 하지 않았고 속여 취하지 않았고 부모를 다 공경했고 다 기록 안됐어도 양심에 거리끼는 거 하나도 하지 않았고 그러니 오늘까지 어려서부터 살아왔으니까 한가지 지키는 거야 뭐 얼마든지 할 수 있겠다 싶으니까 자신만만했겠죠
주님 말씀 하시기를 너에게 한가지가 부족하다 그것만 지키면 되겠는데
그게 무엇입니까?
한가지 부족한 것은 너에게 있는 소유를 다 팔아가지고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다. 영생이 있을 것이다. 요래 말씀하시니까
이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그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이 청년이 간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왜 슬펐습니까 부자청년이? 왜 슬펐고 왜 근심했습니까?
이 청년이 주님 말씀을 듣고 왜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까? 왜 슬펐고 근심이 되었습니까?
주님 말씀대로 하면 영생을 얻으려면 영생 얻기 위해서 그날까지 온갖 계명을 다 지켰는데 우리가 살아보면 알지 않습니까? 계명 지키기가 쉽습니까? 계명 지키기가 쉽습니까?
자기 현실에서 일반적인 것도 있지만은 한번도 계명을 어기지 않고 다 지켜나가려면 계명 지키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계명들 하나도 빠지지 아니하고 다 지켜 나왔습니다. 나왔는데 이제는 다 됐다 싶었는데 주님이 하신 말씀이 마지막 하나. 하나만 더하면 되겠다. 무엇입니까? 네게 있는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그러니까 그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면서 돌아갔다.
이 부자가 왜 슬픈 기색 띠고 근심했습니까?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주님 쫓아가야 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은 아닙니다.
계명들을 지키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이 해당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요것은 사람마다 다 각각 다릅니다.
부자청년에게는 요게 딱 걸렸습니다.
그러면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 날까지 주님 앞에 찾아오기까지 부자 청년은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열심히 노력해서 계명들을 전부 다 지켰습니다. 계명들을 지킬 때 때로는 손해도 봤을 것이고 욕도 먹었을 것이고 참기도 참았을 것이고 노력도 했을 것이고 자기 마음과 몸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또박또박 전부 다 지켰습니다.
다 지켰는데 그래서 영생이 된 줄 알았는데 주님 앞에 오니까 한가지가 부족하다 그러면 그 한가지 쯤이야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킬 수 있다. 그런데 네게 있는 소유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 줘라. 이러니까 이 청년은 재물이 많기 때문에 딱 걸려서 그만 고 재물 때문에 자기가 믿고 의지하는 그것 때문에 주님도 버리고 영생도 버리고 그래서 주님을 버리려니까 영생을 버리려니까 많이 슬펐고 근심이 되어져서 괴로운 마음으로 그러나 자기 가진 그 재물 한가지를 꺾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영생을 버리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서 그때까지 그렇게 노력하던 이 부자가 주님이 영생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니까 영생을 버리고 주님도 버리고 자기 가진 것 한가지 고것에 붙들려서 가버렸습니다.
오늘 밤 두 번째로 기억할 말씀 이겁니다.
첫째는 우리 믿는 사람은 이 부자 청년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겁니다. 영생은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 요게 첫번쨉니다.
그런데 두 번째는 계명들을 다 지켜 나가는 데 이 부자청년이 계명들을 다 지켰는데 열심히 지켰는데 자기도 알지 못하던 자기 속의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자기 속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사실을 이 청년이 몰랐습니다.
이 사람은 재물이 많으니까 재물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많이 했으면 학벌입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좋으면 좋은 머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집안 배경이 좋으면 집안 배경도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났으면 부모도 될 수 있습니다. 또 좋은 아내 만났으면 아내도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남편 만났으면 남편도 될 수 있습니다. 똑똑한 자녀를 뒀으면 그 자녀도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몸이 건강하면 건강도 될 수 있고, 자기의 지능이 탁월하면 지능도 될 수 있습니다. 좋은 기술이 있으면 기술도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자기 속에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켜나가는데 자기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데 이 부자청년은 몰랐습니다. 아는 것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이 영생을 욕망하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 계명을 또박또박 다 지킵니다.
계명 다 지키고 계명만 지킵니까?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하고 온갖 것 다 합니다 다 하는데 그 하는 속에 그 깊은 속에 자기가 아는 것도 있고 알지 못하는 것도 있는데 계명 지키는 것, 봉사하는 거, 수고하는 거, 희생하는 거, 열심히 죽도록 충성하는 것 그 속에 가장 깊은 속에 자기가 충성하고 계명 지키는 그 모든 것 전부를 다 능가할 수 있는 한가지가 자기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두 번째로 기억을 해야 됩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이 부자청년은 재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성격일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설교록에 많이 나온 이야긴데 어떤 장로님이 계시는데 그 장로님은 저를 모르고 저는 같은 서부교회에서 봤으니까 얼굴을 압니다. 아주 머리가 허였고 인상이 아주 선하게 인자하게 생긴 아주 참 좋은 분입니다. 교양도 있고 지식도 있고 아주 훌륭한 그런 분입니다.
그 장로님이 언제 한번 백목사님과 금정산에 가시다가 백목사님께서 장로님은 그 자존심을 뽑아야 되는데 그 자존심 때문에 큰일입니다. 이러니까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예, 목사님 저는 자존심 이거 상하면 죽으면 죽었지 저는 자존심은 못 꺾습니다. 자존심에 걸리면 고만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자존심만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한가지 부족한 것이 고 자존심입니다.
사람마다 이게 다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속에는 그 한 가지 그게 비중이 얼마나 크냐 그 비중은 주님도 버리고 영생도 버리는 비중입니다. 그 힘은 그 비중은 그 한 가지의 세력은 한 가지 세력은 자기가 그날까지 지키는 수많은 계명 지킬 수 있는 그 모든 신앙의 힘.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희생하는 모든 희생, 또 기도하는 그 열정과 그 충성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구원하기 위해서 전도하고 심방하고 가르치고 희생하는 봉사와 희생과 수고, 자기의 전투력과 자기 수고, 희생, 봉사, 충성, 자기를 꺾고 낮추는 모든 것 이 수많은 것들을 전부다 한꺼번에 다 꺾을 수 있는 고 세력 가진 것이 자기 속에 있는 한가지 부족한 바로 고놈입니다
.
요 세력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을 알아야 되고 요게 무엇인지를 알아서 이런 것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고것까지 넘어가야 비로소 영생이 되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그런데 이걸 발견을 해도 꺾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그 다음 세 번째 그래서 주님이 부자청년이 슬픈 기색을 띠고 돌아가는 것을 보고 주님이 말씀하시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이러니까 요즘 그리 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는데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이 마가복음10장 23절의 이런 말씀들은 일반적으로 건설구원교리와 삼분교리와 기능교리를 알지 못하면 이것은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겁니다. 난해절로 되어 있습니다. 해석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니까 제자들이 다 깜짝 놀랐습니다.
믿으면 가는 줄 알았는데.
한번 더 그 말씀 합니다. 소위 세상 말에 한 술 더 뜹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불가능하다 그 말이죠. 그 부자가 무엇입니까? 부자는 어떤 부자를 말하는 겁니까?
이 청년은 부자니까 재물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겁니까?
바로 한가지 부족한 거 그게 무엇인지 모릅니다.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사람마다 주시는 성격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형편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고 모든 게 다 다르니까 하나님의 요구가 다르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예를 들자면 눈에게 원하는 거 귀에게 원하는 거 코에게 원하는 거 손발에게 원하는 거 원하시는 뜻이 다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눈에게 냄새 맡으라 하지 않습니다. 코에게 보라지 않습니다. 입에게 들으라 하지 않습니다. 귀에게 말하라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주신 성향, 분량, 위치가 다 다르니까 역할이 다 다르니까 요구가 다 다르고 뜻이 다르다 그 말이죠.
그러니까 짐작을 하지만 눈이 밝은 사람들이 보면은 짐작은 하지만 정확하게 보기는 어렵고 참 눈 밝은 사람은 보면 알 것이고 본인은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데 깊이 양심 쓰고 찾아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걸 모르면 그걸 모르면 말하자면은 그의 모든 신앙생활은 전부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은 어떤 면에서 마귀의 손바닥 안에 놀고 있는 신앙생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귀가 신앙생활 할 때 우리를 유혹할 때 그물을 넓게 쳐서 그물 넓게 쳐서 말하자면 옛날에 고래 잡을 때 포경선이 고래 잡을 때는 작살 가지고 탁 쏘아놓고 그 다음에 그 작살과 연결된 줄을 굉장히 길게 해놔서 따라다니면서 줄을 풀어주니까 이놈이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죠. 줄을 풀고 같이 따라다니니까 몇 시간이고 돌아다니다가 나중에 찔려서 피를 많이 흘리면 힘이 빠지면 축 쳐지고 죽으니까 그때 잡아들이죠
그물을 넓게 치면은 그 그물 안에 있는 고기는 마음껏 헤엄칩니다. 그물을 안 땡기면 그 안에서 평생 먹고 삽니다. 그 안에서 나서 자라서 예를 들면은 물고기들이니까 새끼 놓고 새끼 기르고 몇 대까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물 안에 있는 고기라서 땡기면 다 들어옵니다.
마귀가 믿는 사람에게 그물을 넓게 치면은 믿는 사람이 신앙생활 하면서 주일도 지키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연보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새벽기도 나오고 집회도 가고 수고 봉사하고 오만 것 다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잘 믿는 줄 압니다.
그런데 마귀는 압니다. 저 놈은 아무리 저리 충성해도 요거 하나 딱 걸면 100% 넘어진다. 고게 있는 사람은 마귀가 마음껏 하게 둡니다. 그러다가 한 번씩 코를 딱 걸어 넘어뜨립니다.
넘어뜨리면 그 때까지 신앙생활 한 거 다 헛일입니다.
고거 때문에 넘어집니다.
그러니까 그의 모든 신앙생활 전부다 마귀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그거 이기기 전에는 영생은 없는 겁니다.
고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인데 이것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걸 찾아야 됩니다.
나에게 이것은 무엇일까? 고것만 나오면 넘어지는 겁니다. 고것만 걸리면 넘어집니다.
그것이 예를 들자면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인데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은 재물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아끼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자존심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의 어떤 하나의 욕심이 될 수 있고, 악습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뭐가 될 지 모릅니다.
그런 것들 하나가 있어서 그게 걸리면 그만 탕탕 100% 넘어져버립니다.
고것이 한 가지 부족한 것인데 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주님을 버리게 만듭니다.
영생도 던져 버리게 만듭니다.
자기가 그때까지 신앙생활 한 모든 것을 전부다 넘어뜨립니다.
그 모든 전부보다 힘이 더 센 것이 한 가지 부족입니다.
고게 무엇일까?
우리가 그것을 알고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다 이것을 알고 나면
평생의 신앙생활은 많은 것을 위해서 싸우지 않습니다. 고 거 하나를 발견하고 나면 고 거 하나를 목적하고 고놈을 표시로 두고 고것을 이기고 고것과 더불어 싸워 이기기 위해 평생을 애를 쓰는 것이 많은 사람의 신앙생활입니다.
두 번째 이거 기억하십시다.
한가지 부족한 거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버리게 합니다. 영생도 던져 버리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 버린다 그러니까 크게 어려운 거 같죠?
가룟 유다가 예수님 팔아먹은 것이 어마어마하게 큰 죄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 팔아먹는 것은 가룟 유다보다 열 배, 스무 배, 백배, 이백 배 더 많이 우린 주님 팔아먹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그런데도 우린 못 느낍니다. 주님 떠나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그렇게 와 닿지 않습니다.
그냥 마음속으로 죄 한번 지으면 주님 떠나버립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주님 떠나버립니다. 영생은 그 순간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못 느끼지요.
한 가지 부족한 것은 이런 것과 비교 못할 만큼 싸우고 싸우고 싸워도 마지막에자기가 알고도 넘어지는 겁니다.
내가 이것은 틀림없이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죄다. 주님 버리는 것이고 영생 버리는 것이다.
이 부자 청년은 네게 있는 소유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할 때 슬픈 기색을 띤 것은 영생을 얻으려면 자기 소유 다 버려야 되고 자기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거 다 버려야 되고 영생과 주님 얻으려면 버려야 되고 이걸 버리지 않으려면 주님과 영생 버려야 되고 그래서 슬픈 기색을 띠고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은 주님 버리고 영생 버리고 근심하면서 자기 소유를 따라 가버렸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의 정확하게는 몰라도 백의 구십은 비율로 따져 90%가 넘을 겁니다. 이런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한가지에 넘어지고 맙니다.
이 부자는 한 가지인데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몇 가지나 되는 줄 모릅니다.
한가지 넘어서면 또 나오고 넘어서면 또 나오고 그래서 마지막 최종에 하나도 없어 가지고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다 내놓고 주님 영생 이것 위해서는 내놓지 못할 것이 없는 꺾지 못할 것이 없는 완전한 거기까지 나아가야 비로소 영생이 이루어 진다 하는 것을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세 번째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 말씀하시기를
도무지 이것은 안 되는 거다.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 그러니까 이것은 안 된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아니 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여기서 이번 집회 때 소망을 가졌지요
그럼 하나님이 할 수 있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가?
우리가 못하는데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뭘 해야 한다고 그랬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해주실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도와주시기를 기도해야 되겠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 겁니다.
오늘 밤에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앞에 두 가지를 기억을 하고 영생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내 속에 영생을 욕망하며 영생을 위한 계명 지키는 생활을 나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면서 우리 자신 한번 살펴보십시다.
내가 영생을 욕망하고 있는가?
영생을 바라보고 있는가? 영생 얻기 위해서 나는 계명 지키는 생활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 자신을 끊임없이 단속하는 우리들이 되야 됩니다.
두 번째 이 영생 얻는 신앙생활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도 마지막에 한 가지 부족한 것 요것이 걸리는 게 있으면 결국 마지막 요것이 낚시바늘이 돼서 나를 걸고 넘어지니까 요것이 내게 무엇이 있을까? 몇 가지 있을까? 요걸 찾아서 요걸 끊는 노력을 해야 되고.
이거 끊는 것은 사람 힘으로 안되기 때문에
세 번째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든 신앙생활 구원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라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 생활이라 그러니까 늘 하나님의 은혜를 긍휼을 구하는 도우심을 구하는 쉬지 않는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세 번째 결론으로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생을 소망하고 주님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소망하고 있는가?
영생을 소망하는 욕망하는 그 욕망이 내가 얼마나 강하게 남아 있는가?
주님 따라 다니다가 별 재미없어서 떠나서 고기 잡으러 떠났던 베드로처럼 영생을 소망하고 하늘의 구원을 소망하고 주님 대속에 감격했던 우리들이 이 모든 것 다 식어져서 가라앉아서 가정생활에 직장생활에 자녀 양육 교육에 학교생활에 세상생활에 도취되고 잠자고 있는 우리들은 되어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 한 번 돌아보고 우리 속에 모든 신앙생활 전부를 다 꺾어버릴 주님과 영생을 다 버리고 도망칠 한가지 부족한 거 요게 내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찾아보고 요걸 능가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가 끊이지 않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