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6일 수밤
김동민2025-07-16조회 43추천 8
2025년 7월 16일 수밤
찬송: 69장, 143장
본문: 출애굽기 32장 1절 ~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금송아지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손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가짜 하나님 그렇게 하면 좋습니다. 금송아지로 말하면 파헤쳐보면 눈에 보이는 이게 가장 핵심입니다 가짜하나님. 이번주 공과의 제목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산에서 올라가는 걸 보고 아론이 있었습니다. 뭔가 했으면 좋을텐데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아론이 입을 쥐어박던지 화를 내던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래야하는데 백성들이 하니까 동화되어가지고 신을 만들어야지, 너희 아내들 자녀들 금귀고리 빼어서 가져와라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금송아지가 뭐라는 소립니까. 이게 하나님이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금송아지를 만들어놨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낮추고 엉망을 만드는 거지요. 인간들이 하나님을 장난감으로 만듭니다. 하나님 아빠, 그거 나쁜 짓입니다. 아리랑 타령을 붙여서 노래 붙이는 게 이런 짓과 꼭 같은 겁니다. 하나님을 말하자면은 이스라엘아 이는 뭐지요, 만든 금송아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루어낸 신이다. 인간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요. 그렇게 제단을 쌓아놓고 먹고 마시고 춤을 추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는 금송아지라는 제목 자체가 원인이 뭐냐, 그걸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걸 금송아지를 만들게 되었느냐 시대는 다르고 형태는 달라도 6000년 인간 역사 속에 사람 일 모두 우상 만들게 됩니다. 초급우상, 보이고 만져지는 그게 대부분 그랬고 20세기 들어와서 보이는 것이 하나의 것일 뿐이다. 옛날에는 비행기, 천둥 소리만 들어도 신인 줄 알았습니다. 원리를 알고나니까 그런 보이는 우상은 겁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것으로 수준이 올라가게 된 겁니다. 자기의 밖에서 자기의 심신을 주장하는, 형체를 가진 우상입니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초급 우상이고 중급 우상이란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내 밖에서 나의 언행심사 나의 사리판단 취사평사 비판평가 이런 동력이 되는 게 중급 우상입니다. 그래서 직장 사업 돈 향락 사람 일 취미 심신의 활동의 작용을 주장하는 원동력이 되면 중급우상이 되는 것이고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는 나를 고급 우상이라고 되는 겁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최첨단에 이런 시대도 초급 우상을 섬기는 그런 정신은 안 그렇고 지식은 안 그런데 실제 보면 보이는 그런 형체가진 우상을 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주교, 불교, 일반 이종교들 기이하게도 보이는 걸 자꾸 찾아들어가는 겁니다. 기어나오는 거지요. 목사가 설교할려면 가운을 입어야하고 겉 모습을 아주 위엄스럽게 보여야하고 일반 교단의 목사는 목소리부터 다릅니다. 엄숙하게 메시지는 선포해야하고 손을 높이 들어서 축도를 해야하고 보이는 뭔가를 해야합니다. 십자가를 붙여야하고 그림을 그려야하고 이게 모두 칼빈 종교개혁이 타파했을 거 같은데 거꾸로 나가고 있는 거지요. 정통교파들 치고 안 그런 교파 없습니다. 기독교 성경 속에 나오는 인분들 성화라고 하지요 그림들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하는 곳이 우리 공회말고 없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열 두 사도 이런 그림들 이런 거 다 그럽니다. 우리 공회에도 제가 서부교회 처음 갔을 때가 77년도인데 1층 강단 뒤에 목자가 지팡이 짓고 양 데리고 가는 것을 그려놨습니다. 저 서부교회도 그랬습니다. 목사님께서 없애버린거지요.
그 성화를 가지고 잘한다는 것은 아니고 여름성경학교 때 구연동화라고 동화처럼 하기도 했습니다. 소풍도 다녔고. 그런데 가다가 아닌 줄 알고 없애버린거지요. 성화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고 껍데기를 보고 믿는 겁니다. 문제는 금송아지 우상인데 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됐느냐 이 시기가 출애굽 대략 100일 남짓한 시점입니다. 100일이 아마 안됐을겁니다. 시내산에 올라간게 50일 만입니다. 십계명 받은 게 오십일, 금식한게 40일이니까 구십일 정도 되지요. 석달 열흘입니다. 왜 이게 중요하냐. 어떤 일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다가 평생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기억해야할 것. 붙들어야할 것이 있는데 사람이기 때문에 잊을 수도 있습니다. 백 목사님 같은 분은 평생 사시면서 작은 것 하나도 세밀하게 기억합니다. 필요없는 건 아예 잊어버립니다.
신약에 애굽의 역사 홍해바다 가른 거 물 마신 거 만나 메추라기 먹은 것 곳곳에 기록해놨습니다. 전부다 기억을 더듬으면서 알립니다. 스데반이 이야기 다 하거든요. 순교하기 전에 몇 천 년이 지나도 기억을하는데, 잊을 수야 잊을 수 없는 겁니다. 수십년이 지났을 지라도 반석에서 물낸거 쓴 물이 달아진 거 만나 메추라기 먹고 있는 거 잊을 수 없는 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과 석달 정도 되는 시점에 잊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무지할 지라도 바로 알고 기억했다면 신을 만들라는 말을 할 수 없는겁니다. 200만명 되는 다니엘서에 보면 1장에 다니엘이 나오고 2장에 느부갓네살이 나옵니까. 1잘에 다니엘이 나오고 3장인가 거기에 몇 장이지요, 우상 만들어놓고 절해라고 할 그때에 다니엘은 어떻게 했느냐 안나오거든요. 동시대거든요. 우상에 절 안해서 그리 되었는데 아무것도 안됩니까. 다니엘이 절할 이유는 없는거겠지요. 다니엘은 상관이 없어서 초월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기록 안하는 겁니다. 우상을 초월해버린거지요. 그런 곳에 곳곳에 있습니다.
주일날 말씀드렸는데 다윗이 블레셋을 망명갔을 때, 사울 때 죽는 그 전쟁이 되는데 블레셋에 망명가 있었고 그 안에 있었습니다. 다윗을 전쟁에 데려갈라고 했습니다. 전쟁가서 싸워야한다고 하니까 싸워야하지요. 싸우겠습니다. 당연히 간다고 큰소리 쳤지요. 그런데 갈 수 있습니까 못합니까. 블레셋과 한 편이 되어서 이스라엘 전쟁을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까. 참 곤란하지요. 간다고 그럽니다. 그랬는데 그 다윗이 거기서 양편을 하나님 앞에서 아기스 앞에서 줄타기가 아니고 양쪽을 하나님의 틈을 타서 그렇게 어기지 않고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장군들을 막아버린겁니다. 그 참 어려운 겁니다. 그런 거 보고 깨달을 때가 있어야하는데, 신앙생활을 보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그런 길을 딱 열어버립니다. 그게 보는 신앙의 경험이 되는 거지요. 이스라엘이 100일 남짓한 그때 그 순간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보통 문제가 아닌 겁니다. 믿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접할 수 있는데 일을 수 있는 건 잊어야합니다. 잊지 말아야할 걸 잊어버리면 쓸데없는 것이 되는 것을 참고로 기억합시다.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느냐, 만들었는데 왜 만들었느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사랑의 역사인데 우리의 구원 역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는 보이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것이 사랑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거룩한 분입니다. 불완전하고 죄많은 인간이 접하면 바로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중보자를 두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내게 하신 겁니다. 하나님을 하시고 역사하신 것이 사람은 물질이고 육을 가졌고 하나님을 아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고 방편인데 그 방편이 사람에게 정도로 맞춰 사시는 것이지요. 아이들하고 대화할 때 세 살짜리 아이들하고 대화할 때 무엇을 맞추라고요. 눈높이를 맞춰라 그게 무슨 말이지요. 실제 눈의 높이를 맞추라는 말입니다. 표현이 그러한게 아니고 어른은 170이 넘고 아이가 1미터 되면 아이는 서고 아이하고 대화할려면 앉아서 눈높이를 맞춰서 그렇게 대화를 해야 대화가 되는 겁니다. 실제 물리적인 높이를 앉아가지고 무릎을 꿇던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대화하라는 겁니다. 당연히 언어표현도 알아듣도록 해야하지요. 그게 사랑입니다. 참된 선생님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람을 길러가실 때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뜻 자체를 맞춘다는 것이 아니고 뜻 자체를 맞추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글자가 어느나라 글자입니다. 이건 한글입니다. 한글 맞지요. 민준이 한 글 맞지요. 한국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기록해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사람이 역사하실 때는 보이는 것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알게 하시는 겁니다. 모세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은 보이는 사람입니다. 모세의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렸습니다. 애굽에서 모세가 행한 이적은 저거 눈에 보였습니다 전부 다 봤잖습니까. 모세 말입니까 하나님 말씀입니까. 모세가 전한 가나안 땅으로 간다는 걸 모세의 입을 통해서 행했습니다. 그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열 가지 이적도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게 다 됐지요. 보이는 모세를 통해서 들리는 음성을 통해서 보이는 구름기둥 불기둥 통해서 해놨습니다. 알기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환하게 보이고 들리는데.
나보고 전하라고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 통해서 말씀하셨구나. 모세가 손을 드니까 지팡이를 치니까 하수가 피가 됐습니다. 어떻게 하니까 이가 티끌이 이로 변해버립니다. 암흑에 며칠 동안 밤이 됩니다. 이건 모세가 할 수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아론이 들기도하고 모세가 들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건 모세가 했습니다. 아론이 하다가 모세를 통해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지요.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 보내라고 합니다. 그 말이 모세가 하는 말이 아니고 10번이나 하나님 말씀입니다. 새겨들으십시오. 그러면 따라가면 되는데 바로나 애굽 사람들이야 안한다 치고 하나님 하시는 구나 모세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모세를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 거지요. 모세가 붙든 그 하나님을 나도 가까이할려고 노력하는 이건 하지 않고 모세 말만 듣고 모세 들은대로 하는 줄줄줄 따라다닌 겁니다.
모세가 붙든 하나님을 찾았어야했고 만났어야했는데 하지 못한 겁니다. 오늘 이 원리는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사람이 봐야 알 수있고 그것을 통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은 가지만은 성경은 원본 성경 없어도 보이는 겁니까 안 보이는 겁니까. 보이는 겁니다.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람의 글로 써놨습니다. 보이는 글 속에 성경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생된 표는 나는데, 모세를 그리 했듯이 구약의 모든 종들 그리했듯이 다윗이라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은 복을 받았습니다. 갈수록 점점 타락해 가는 겁니다. 모든 게 다 원리가 같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게 역사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물질 복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겁니까. 안 보이는 겁니까. 보이는 겁니다. 보이는 복을 주시는 겁니다.
설교를 합니다. 귀에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들리시지요, 들리게 역사하는 겁니다. 그 설교가 바르다면 보이는 설교자가 들리는 말씀으로 합니다. 설교가 바른 설교자라면 보이는 그 사람 속에 들리는 그 말씀 속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고 역사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하는 사람을 볼 것이 아니고 따질 것이 아니고 들리는 말씀을 들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치로 하는 겁니다. 이게 되지 않으면 마지막에 금송아지로 되고 마는 겁니다. 어렵게 하는 게 아닌 겁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보이게 다 그러니 그렇게 어린 때기 때문에 이 무지한 불과 100일도 채 안되어서 전부 다 잊어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게 신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괘씸했습니까. 없애고 새민족 만든다고 하니까 모세가 안된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바로 되었으면 모두가 비중이 같습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백 목사님 한 분은 총공회 전체와 같은 분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겁니다. 서부교회와 총공회, 백목사님은 하나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서부 교회라는 큰 교회는 백영희 조사님이 가실 때는 40명이었습니다. 몇 십년 되니까 큰 교회 되어버렸지요. 신풍 목사님 가실 때는 예배당 하나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거기 마을이 다 신풍교회가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 보이지 않는 역사 보이지 않는 결과 보이지 않는 장소 보이지 않은 것들 이런 것을 찾아야하고 만나야하고 찾아야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히브리 11장 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도치법을 써놨습니다.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데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돌아보는 것, 한 말로 돌아보는 겁니다. 우리의 관과 취하는 전부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근심걱정도 희로애락도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야겠다. 보이는 세상에서 살고있지만 마지막에 모두 어디갑니까.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가게 됩니다. 보이는 세상 두고 갈 건데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 돌아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69장, 143장
본문: 출애굽기 32장 1절 ~ 9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금송아지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손으로 만든, 눈에 보이는, 가짜 하나님 그렇게 하면 좋습니다. 금송아지로 말하면 파헤쳐보면 눈에 보이는 이게 가장 핵심입니다 가짜하나님. 이번주 공과의 제목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산에서 올라가는 걸 보고 아론이 있었습니다. 뭔가 했으면 좋을텐데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아론이 입을 쥐어박던지 화를 내던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래야하는데 백성들이 하니까 동화되어가지고 신을 만들어야지, 너희 아내들 자녀들 금귀고리 빼어서 가져와라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금송아지가 뭐라는 소립니까. 이게 하나님이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금송아지를 만들어놨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낮추고 엉망을 만드는 거지요. 인간들이 하나님을 장난감으로 만듭니다. 하나님 아빠, 그거 나쁜 짓입니다. 아리랑 타령을 붙여서 노래 붙이는 게 이런 짓과 꼭 같은 겁니다. 하나님을 말하자면은 이스라엘아 이는 뭐지요, 만든 금송아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루어낸 신이다. 인간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요. 그렇게 제단을 쌓아놓고 먹고 마시고 춤을 추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는 금송아지라는 제목 자체가 원인이 뭐냐, 그걸 공부하고 있습니다. 왜 그걸 금송아지를 만들게 되었느냐 시대는 다르고 형태는 달라도 6000년 인간 역사 속에 사람 일 모두 우상 만들게 됩니다. 초급우상, 보이고 만져지는 그게 대부분 그랬고 20세기 들어와서 보이는 것이 하나의 것일 뿐이다. 옛날에는 비행기, 천둥 소리만 들어도 신인 줄 알았습니다. 원리를 알고나니까 그런 보이는 우상은 겁내지 않는데 보이지 않는 것으로 수준이 올라가게 된 겁니다. 자기의 밖에서 자기의 심신을 주장하는, 형체를 가진 우상입니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초급 우상이고 중급 우상이란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내 밖에서 나의 언행심사 나의 사리판단 취사평사 비판평가 이런 동력이 되는 게 중급 우상입니다. 그래서 직장 사업 돈 향락 사람 일 취미 심신의 활동의 작용을 주장하는 원동력이 되면 중급우상이 되는 것이고 내 안에서 나를 주장하는 나를 고급 우상이라고 되는 겁니다. 그런데 21세기에 최첨단에 이런 시대도 초급 우상을 섬기는 그런 정신은 안 그렇고 지식은 안 그런데 실제 보면 보이는 그런 형체가진 우상을 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주교, 불교, 일반 이종교들 기이하게도 보이는 걸 자꾸 찾아들어가는 겁니다. 기어나오는 거지요. 목사가 설교할려면 가운을 입어야하고 겉 모습을 아주 위엄스럽게 보여야하고 일반 교단의 목사는 목소리부터 다릅니다. 엄숙하게 메시지는 선포해야하고 손을 높이 들어서 축도를 해야하고 보이는 뭔가를 해야합니다. 십자가를 붙여야하고 그림을 그려야하고 이게 모두 칼빈 종교개혁이 타파했을 거 같은데 거꾸로 나가고 있는 거지요. 정통교파들 치고 안 그런 교파 없습니다. 기독교 성경 속에 나오는 인분들 성화라고 하지요 그림들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하는 곳이 우리 공회말고 없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열 두 사도 이런 그림들 이런 거 다 그럽니다. 우리 공회에도 제가 서부교회 처음 갔을 때가 77년도인데 1층 강단 뒤에 목자가 지팡이 짓고 양 데리고 가는 것을 그려놨습니다. 저 서부교회도 그랬습니다. 목사님께서 없애버린거지요.
그 성화를 가지고 잘한다는 것은 아니고 여름성경학교 때 구연동화라고 동화처럼 하기도 했습니다. 소풍도 다녔고. 그런데 가다가 아닌 줄 알고 없애버린거지요. 성화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고 껍데기를 보고 믿는 겁니다. 문제는 금송아지 우상인데 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됐느냐 이 시기가 출애굽 대략 100일 남짓한 시점입니다. 100일이 아마 안됐을겁니다. 시내산에 올라간게 50일 만입니다. 십계명 받은 게 오십일, 금식한게 40일이니까 구십일 정도 되지요. 석달 열흘입니다. 왜 이게 중요하냐. 어떤 일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다가 평생 잊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기억해야할 것. 붙들어야할 것이 있는데 사람이기 때문에 잊을 수도 있습니다. 백 목사님 같은 분은 평생 사시면서 작은 것 하나도 세밀하게 기억합니다. 필요없는 건 아예 잊어버립니다.
신약에 애굽의 역사 홍해바다 가른 거 물 마신 거 만나 메추라기 먹은 것 곳곳에 기록해놨습니다. 전부다 기억을 더듬으면서 알립니다. 스데반이 이야기 다 하거든요. 순교하기 전에 몇 천 년이 지나도 기억을하는데, 잊을 수야 잊을 수 없는 겁니다. 수십년이 지났을 지라도 반석에서 물낸거 쓴 물이 달아진 거 만나 메추라기 먹고 있는 거 잊을 수 없는 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과 석달 정도 되는 시점에 잊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무지할 지라도 바로 알고 기억했다면 신을 만들라는 말을 할 수 없는겁니다. 200만명 되는 다니엘서에 보면 1장에 다니엘이 나오고 2장에 느부갓네살이 나옵니까. 1잘에 다니엘이 나오고 3장인가 거기에 몇 장이지요, 우상 만들어놓고 절해라고 할 그때에 다니엘은 어떻게 했느냐 안나오거든요. 동시대거든요. 우상에 절 안해서 그리 되었는데 아무것도 안됩니까. 다니엘이 절할 이유는 없는거겠지요. 다니엘은 상관이 없어서 초월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기록 안하는 겁니다. 우상을 초월해버린거지요. 그런 곳에 곳곳에 있습니다.
주일날 말씀드렸는데 다윗이 블레셋을 망명갔을 때, 사울 때 죽는 그 전쟁이 되는데 블레셋에 망명가 있었고 그 안에 있었습니다. 다윗을 전쟁에 데려갈라고 했습니다. 전쟁가서 싸워야한다고 하니까 싸워야하지요. 싸우겠습니다. 당연히 간다고 큰소리 쳤지요. 그런데 갈 수 있습니까 못합니까. 블레셋과 한 편이 되어서 이스라엘 전쟁을 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습니까. 참 곤란하지요. 간다고 그럽니다. 그랬는데 그 다윗이 거기서 양편을 하나님 앞에서 아기스 앞에서 줄타기가 아니고 양쪽을 하나님의 틈을 타서 그렇게 어기지 않고 철저하게 했기 때문에 장군들을 막아버린겁니다. 그 참 어려운 겁니다. 그런 거 보고 깨달을 때가 있어야하는데, 신앙생활을 보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그런 길을 딱 열어버립니다. 그게 보는 신앙의 경험이 되는 거지요. 이스라엘이 100일 남짓한 그때 그 순간에 다 잊어버렸습니다. 보통 문제가 아닌 겁니다. 믿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접할 수 있는데 일을 수 있는 건 잊어야합니다. 잊지 말아야할 걸 잊어버리면 쓸데없는 것이 되는 것을 참고로 기억합시다.
왜 금송아지를 만들었느냐, 만들었는데 왜 만들었느냐,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사랑의 역사인데 우리의 구원 역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는 보이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는 것이 사랑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입니다. 거룩한 분입니다. 불완전하고 죄많은 인간이 접하면 바로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중보자를 두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내게 하신 겁니다. 하나님을 하시고 역사하신 것이 사람은 물질이고 육을 가졌고 하나님을 아는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고 방편인데 그 방편이 사람에게 정도로 맞춰 사시는 것이지요. 아이들하고 대화할 때 세 살짜리 아이들하고 대화할 때 무엇을 맞추라고요. 눈높이를 맞춰라 그게 무슨 말이지요. 실제 눈의 높이를 맞추라는 말입니다. 표현이 그러한게 아니고 어른은 170이 넘고 아이가 1미터 되면 아이는 서고 아이하고 대화할려면 앉아서 눈높이를 맞춰서 그렇게 대화를 해야 대화가 되는 겁니다. 실제 물리적인 높이를 앉아가지고 무릎을 꿇던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대화하라는 겁니다. 당연히 언어표현도 알아듣도록 해야하지요. 그게 사랑입니다. 참된 선생님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람을 길러가실 때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뜻 자체를 맞춘다는 것이 아니고 뜻 자체를 맞추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글자가 어느나라 글자입니다. 이건 한글입니다. 한글 맞지요. 민준이 한 글 맞지요. 한국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기록해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사람이 역사하실 때는 보이는 것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알게 하시는 겁니다. 모세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은 보이는 사람입니다. 모세의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렸습니다. 애굽에서 모세가 행한 이적은 저거 눈에 보였습니다 전부 다 봤잖습니까. 모세 말입니까 하나님 말씀입니까. 모세가 전한 가나안 땅으로 간다는 걸 모세의 입을 통해서 행했습니다. 그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열 가지 이적도 보여주셨습니다. 모든 게 다 됐지요. 보이는 모세를 통해서 들리는 음성을 통해서 보이는 구름기둥 불기둥 통해서 해놨습니다. 알기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렵지 않습니다. 환하게 보이고 들리는데.
나보고 전하라고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 통해서 말씀하셨구나. 모세가 손을 드니까 지팡이를 치니까 하수가 피가 됐습니다. 어떻게 하니까 이가 티끌이 이로 변해버립니다. 암흑에 며칠 동안 밤이 됩니다. 이건 모세가 할 수 있는 겁니까 없는 겁니까. 아론이 들기도하고 모세가 들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건 모세가 했습니다. 아론이 하다가 모세를 통해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지요.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의 백성 보내라고 합니다. 그 말이 모세가 하는 말이 아니고 10번이나 하나님 말씀입니다. 새겨들으십시오. 그러면 따라가면 되는데 바로나 애굽 사람들이야 안한다 치고 하나님 하시는 구나 모세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모세를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 거지요. 모세가 붙든 그 하나님을 나도 가까이할려고 노력하는 이건 하지 않고 모세 말만 듣고 모세 들은대로 하는 줄줄줄 따라다닌 겁니다.
모세가 붙든 하나님을 찾았어야했고 만났어야했는데 하지 못한 겁니다. 오늘 이 원리는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사람이 봐야 알 수있고 그것을 통해서 할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은 가지만은 성경은 원본 성경 없어도 보이는 겁니까 안 보이는 겁니까. 보이는 겁니다.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사람의 글로 써놨습니다. 보이는 글 속에 성경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생된 표는 나는데, 모세를 그리 했듯이 구약의 모든 종들 그리했듯이 다윗이라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다윗 시대에 이스라엘은 복을 받았습니다. 갈수록 점점 타락해 가는 겁니다. 모든 게 다 원리가 같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실 때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게 역사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물질 복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겁니까. 안 보이는 겁니까. 보이는 겁니다. 보이는 복을 주시는 겁니다.
설교를 합니다. 귀에 들립니까 안 들립니까. 들리시지요, 들리게 역사하는 겁니다. 그 설교가 바르다면 보이는 설교자가 들리는 말씀으로 합니다. 설교가 바른 설교자라면 보이는 그 사람 속에 들리는 그 말씀 속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있고 역사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하는 사람을 볼 것이 아니고 따질 것이 아니고 들리는 말씀을 들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치로 하는 겁니다. 이게 되지 않으면 마지막에 금송아지로 되고 마는 겁니다. 어렵게 하는 게 아닌 겁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보이게 다 그러니 그렇게 어린 때기 때문에 이 무지한 불과 100일도 채 안되어서 전부 다 잊어버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게 신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괘씸했습니까. 없애고 새민족 만든다고 하니까 모세가 안된다고 했습니다. 목사가 바로 되었으면 모두가 비중이 같습니다. 그래야 정상입니다. 백 목사님 한 분은 총공회 전체와 같은 분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겁니다. 서부교회와 총공회, 백목사님은 하나다. 원리가 그렇습니다. 서부 교회라는 큰 교회는 백영희 조사님이 가실 때는 40명이었습니다. 몇 십년 되니까 큰 교회 되어버렸지요. 신풍 목사님 가실 때는 예배당 하나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거기 마을이 다 신풍교회가 되었습니다.
보이는 것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 보이지 않는 역사 보이지 않는 결과 보이지 않는 장소 보이지 않은 것들 이런 것을 찾아야하고 만나야하고 찾아야 금송아지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히브리 11장 3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도치법을 써놨습니다.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데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돌아보는 것, 한 말로 돌아보는 겁니다. 우리의 관과 취하는 전부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근심걱정도 희로애락도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야겠다. 보이는 세상에서 살고있지만 마지막에 모두 어디갑니까.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가게 됩니다. 보이는 세상 두고 갈 건데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 돌아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