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9일 수요일
김동민2025-01-29조회 87추천 9
2025년 1월 29일 수밤
찬송: 81장, 83장
본문: 창세기 3장 2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제목이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정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생각했던 말씀은 하나님이 두렵다, 열 가지 하나님께 대해서 생각하는 중에서 첫 번째가 하나님을 알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알아야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자기 자신도 관련된 사람들도 일단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먼저 해야할 것이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알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본능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노력한다고 알아지지 않는 것도 있고 사람에게 맡겨서 알아가도록 하신 것도 있습니다. 노력에서 알 수 없는 것은 안되는 것이고 노력해서 알아야할 것은 알아야합니다. 아는 만큼 모든 것을 바로 상대하고 바로 취급하고 바로 관계를 가질 수가 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바로 할 수 없는 겁니다.
바르게 관계를 맺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는 없는 것이고 몰라서 할 수 없으면 영생을 하는 생활에 구원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번만 주신 인생 세월입니다. 우리가 계속 시간이 반복이 되고 우리의 인체가 계속 수도없이 공급이 되면서 생명유지가 되니까 오늘을 내일처럼 내일을 오늘처럼 반복이 되는 거 같은 데 한 번 지나간 세월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상식입니다. 두 번 다시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유다서에서 우리 구원에 단번에 주신 도라고 했습니다. 단번으로 끝나는 겁니다.
지나간 세월이 내 몸에 살아간 순수 기능이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한 번 지나간 세월 흘러간 물은 다시 위로 역류하지 않습니다. 쏜 살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꽂히고 끝나는거지. 세월이 그래서 쏜살 같고 여류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 세월에 따라서 심신의 요소들도 가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세월이 갈수록 점점 늙어가지 젊어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어느정도 넘어가면 넘어가는 겁니다. 해가 뜨면 올라오다가 넘어가면 내려가는 것처럼. 그런데 해가 동쪽에서 뜬 해는 마지막에 서쪽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그 세월 속에 우리 심신의 모든 기능 요소도 노쇠해져 가는 것으로 끝나는 거지요.
바로 알지 못하면 소중한 것을 하면 참 허비하게 되는 것이고 안다고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 그렇지만 아는 것으로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두렵습니까. 사람이 찾아오고 아시면 화를 내겠고 매를 맞을 건데, 화를 내실거고 매를 맞을 건데 그래서 화내시고 매를 맞을 것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지 말자 그럽니까. 뻔히 매 맞을 줄 알면서도 하는 게 철 없는 아이들이고 청소년 시절이지요. 부모님이 안 두려운 게 아니고 그렇게 몇 번 잘못을 하고 그렇게 하고 나서 그러면 자기 절제가 되어서 매가 두려워서 하고 싶은 거 함부로 못합니다.
부모님께서 하시면 자녀들은 못하고 악습들이 부모님의 매 앞에 꺾여버립니다. 이게 문제는 아버지가 어머니가 자녀들을 그렇게 엄하게 다스리고 장악해버리면 가장 좋은데 그럴려면 부모님들이 자녀들보다 모든 면으로 흠과 점이 없다는 만큼 하면서 잡히는 겁니다. 부모님은 그리하지 않고 잡기만 잡으면 전부 다 탈선되어 나가버립니다. 일반 보통으로는 그렇게 못하지요. 말하자면 적정 선에서 타협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기에 잘못을 알고 있으니까 아이들도 지나치게 못하는 거지요. 대신 달래기도 하고 살살 달래고 같이 놀아주고 그건 괜찮은거지요. 하나님도 두려운데 두려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이 세상에 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이라는 것도 감당할만큼 역사하시지 전에 한 번 말씀드린 거 같은데 너무 뜨거워서 뜨겁다는게 진리를 근거한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찬송할 때에도 말씀을 전하고 들을 때에도.
백 목사님이라고 은혜롭게만 하셨겠습니까. 그럴 때 필기를 하면 지금은 그 분이 다른 곳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충청도쪽에 개척해서 부장까지 한 목사님인데 형님 따라서 가버렸습니다. 같이 계실 때 있었기 때문에 옆자리 앉거든요. 그러면 은혜로워서 주여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뜨거워서 못 견디면서 그러는 걸 직접 겪어봤습니다. 그게 마음이 뜨거운거지요. 듣기도 하면서 생각하니까 참 이치시로다. 인간 구원의 도리이기 때문에 보통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백목사님 같은 분은 뜨거운겁니다. 그렇게 뜨거운 것,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입니다. 두려운 정도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느낌도 다르게 되는 겁니다. 두려운데 두려우신 하나님을 다 두려워하면 견디지를 못해서 각 사람에게 맞게만 하십니다. 그래서 알대로 알 자가 누가 있고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하는가. 성경을 통해서 두려워할려면 첫째 읽어야하고 외워야하고 배워야하고 연구해야한다고 합니다. 설교라는 것은 설교자가 합니다. 듣는 분들이 듣고 누가 설교한 것을 듣고 자기 복음으로 받아서 삼지 않으면 그 설교는 설교자의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닌 겁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록은 아주 귀한 곳인데 배워서 연구해서 자기 말씀으로 받아야하지 만들어야하지 자기 말씀으로 만들어야하는 것은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그렇게 생각해보셨는지 몰라도 백목사님께 은혜를 받고 나서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없는 하나님은 무슨 의미가 있고 상관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셨고 그런데 하나님이 완전자 자존자 전지전능자 그런데 그 안에 내가 없다면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하나님이 계시는데 나 없는 하나님은 무관하지 않습니까.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다음으로 더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으니까 먼저 앞세울순 없는 건데 하나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하고 자기와 관계를 맺어나가야하지 남편의 하나님 따로 있고 아내의 하나님 따로 있는데 같을 수가 없는 겁니다.
두 사람이 한 하나님을 모시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한 몸이고 한 교회가 되는거고 그래서 각각다르는 겁니다. 목사 하나님과 교회 하나님은 실제 관계와 전혀 다릅니다. 백 목사님의 하나님과 우리의 하나님이 같나요 다윗의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이 같은가요. 자기 하나님으로 자기 알아야합니다. 설교라는 것은 도와드리는 겁니다. 돕는겁니다. 모두들 먹고 살아야하고 직장 가져야하고 바쁘기 때문에 성경 연구할 시간 없고 하니까 목사가 대표로 정하고 알아가지고 자기 것으로 삼아야하지 자기 것으로 삼아버리면 알고 알되 자기가 알아야합니다. 자기가 읽고 자기가 듣고 생각해야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은 저는 백 목사님의 설교록을 저만큼 많이 본 사람을 없을겁니다. 그런데 저는 원고 그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서부교회에서 생전에 설교를 한 번 했는데 안되는거지요. 그래서 설교록을 읽으면서 도리를 삼아가지고 제 머리 속에 담아서 전했지 그냥 원고읽고 전해본 적은 한 번도 제 기억에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는 공과를 가지고 읽는 것은 그거 초등학교 1학년도 합니다. 아무도 합니다. 원고를 읽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준비해서 실수할까 싶어서 보고 하긴 하지만 머리 속에 다 담에서 이치를 깨닫고 해서 자기 머리 속에 다 담아서 전하는거지 실제는 머리 속에 다 들어있어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원고 준비해서 하는 거지 실제로는 다 외워서 넣어놔야합니다. 그래서 설교하는 사람은 수십번 머리 속으로 하는 겁니다. 시간도 재어보고, 찬송하는 시간 몇 분, 찬송하는 몇 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만들어서 머리 속에서 수십번 돌리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면 나오게 되고 그리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말씀에 어긋나지 않으면 영감으로 인도하시는 그런 게 있는 겁니다. 해 보면은 느낍니다. 자기도 몰랐던 걸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서 아는 게 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알되 자기가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자꾸 생각을 하고 어떤 분일까 찾아야합니다. 스스로 계셨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알아야합니다. 자존자다 스스로 계셨다 그게 무슨 뜻인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스스로 있는 게 이 세상에 뭐 있지. 그러면 그분에게서 나온 그게 자존자는 모든 존재의 근본 복의 근원 사람의 근원 생명과 존귀와 연관시켜서 자존자에게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전지전능지가 무슨 뜻이지. 능치못함이 없습니다. 설교록에서는 한 번 나오던가요. 모든 존재의 시작과 과정과 결말이 그분으로 인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전지전능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다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첫째 알아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어느정도 아는가. 이름, 하나님의 이름을 아시는가요. 우리의 존재 창조주 주권자 그분의 목적이 뭐냐 뜻이 뭐냐 일이 뭐냐 그 분의 성품이 어떠하냐 사람으로 말하면 외형이 뭐고 이름이 뭐고 학벌은 어찌되냐 성품은 어찌되냐 입맛은 어떠냐. 이름만 얼굴만 아는 것은 껍데기만 아는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알아야한다 그 말은 그 분이 모든 것을 다 속속들이 한 겁니다. 모르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지. 다른 건 다 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결혼의 첫사랑은 무슨 사랑이라고 합니까. 결혼의 첫사랑을 풋사랑이라고 합니다. 풋과일. 알지요. 풋과일은 싱싱한데 안 익은 겁니다. 맛이 없는거지요. 부부 결혼의 첫사랑은 풋사랑이고 껍데기 사랑입니다. 이게 살아가면서 진짜 참 사랑으로 가면 거기서 거기로 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아는 줄 알았는데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 경우가 많습니다. 얘가 이런 애였어. 몰랐던거죠. 껍데기만 아는 겁니다. 속속들이 몰랐고. 그래서 자녀들과 부모님은 생활 속에서 수 많은 대화 입고 자고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녀는 부모님께 비밀이 없어야합니다. 알기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 경험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야 진짜 부모자녀 관계가 되는 거고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그렇습니다.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로써는 알 때 까지 알아야합니다. 첫째는 알아야하고 둘째는 믿어야합니다. 하나님 자기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거지요. 지식이라는 것은 피상적인 가변적인 것입니다. 믿으면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교제가 시작되는 겁니다. 신인 교제가 시작되는 거지요. 이게 진짜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순종이 나오는 겁니다. 아는 만큼 순종이 되고 믿는 만큼 순종이 됩니다. 경험이 되고 체험이 됩니다.
알고 믿고 그리고 순종해야합니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닌 겁니다. 100프로 다 순종만 하면 참 좋을 건데 사람인지라 순종하다가 다윗은 성경에 이삭은 하나님을 거역한 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삭의 평생은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삭의 평생은 기복이 없습니다. 이삭 자체가 어릴 때 제물로 바쳐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도 이삭은 온유했습니다. 이삭은 어릴 때 이미 순교신앙이고 다 바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지만은 잠깐 방심한 사이에 죄를 지어버렸고 죄를 짓고 나서 벌벌 떨었지만은 사랑하시는 만큼 매를 때리니까 평생을 두고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순종에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해서 높이게 되지요. 그러면 의지하고 바라보고 친밀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두렵기만하고 친밀함이 없으면 사람이 없으면 폭군이 됩니다. 두렵지만 이걸 우리가 깨달아 아는 게 중요한거죠. 그래서 그분의 중요함을 알아야하고 종합적으로 아는 게 중요한겁니다. 그래서 모시고 살면 닮아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지혜적으로 속성적으로 하나님을 닮아서 사람이 점점 성화되게 되는 겁니다.
10가지를 생각하면 좋겠고 하나님에 대한 열 가지는 전부 성경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알아야하고 믿어야하고 행해야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천국도 모릅니다. 구원도 모릅니다. 성경 아는 것은 읽어서 지식으로 알고 믿음으로 알고 실행해서 알아야하지 일반 철학자들이나 안 믿는 사람들도 압니다. 알려면 첫째 교과서 내용을 알려면 읽어야합니다. 다는 못 외우는데 중요한 것은 외워야합니다. 모든 공부의 출발은 암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외운 것은 평생 기록합니다. 우리 학생들 전도서 안 잊어버릴려고 해야합니다. 예배시간에 배우고 양성원에 배우고 그래서 그래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겁니다. 이해되는 것은 하고 이해 안되는 것은 보고 또 보고. 한문 공부 해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시라고 있죠. 한자로 시를 짓는 것. 벼슬은 요즘말로 과거 보는 사람 전부 한자로 다 시를 지어야합니다. 그거 영어보다 몇 배 더 어렵습니다. 만약에 한문으로 성경해놨으면은 우리같은 사람은 못 읽습니다. 한글로 그래서 세종대왕에게 감사해야합니다. 한국 사람들 한글 성경 읽도록 하셨으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라도 선하게 쓰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해주셨다.
의사들이 요즘은 덜합니다. 병원에 쓰는 그거 알아듣습니까. 그거 쓰면 일반 환자들 못알아듣습니다. 판사들의 그런 언어들 그런 것들을 모르는 거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어로 기록하면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감사하고 열심히 읽고 외우고 배우고 연구하고 실행해야합니다. 그래야 첫째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고 정확무오한 말씀이고 절대 진리입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그게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번주는 여기까지만 가르치고 기억을 하면서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고 알아가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81장, 83장
본문: 창세기 3장 2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제목이 두려우신 하나님이라고 그렇게 정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생각했던 말씀은 하나님이 두렵다, 열 가지 하나님께 대해서 생각하는 중에서 첫 번째가 하나님을 알아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알아야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세상에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자기 자신도 관련된 사람들도 일단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에 있어서 먼저 해야할 것이 아는 것입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알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본능적으로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노력한다고 알아지지 않는 것도 있고 사람에게 맡겨서 알아가도록 하신 것도 있습니다. 노력에서 알 수 없는 것은 안되는 것이고 노력해서 알아야할 것은 알아야합니다. 아는 만큼 모든 것을 바로 상대하고 바로 취급하고 바로 관계를 가질 수가 있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르면 바로 할 수 없는 겁니다.
바르게 관계를 맺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는 없는 것이고 몰라서 할 수 없으면 영생을 하는 생활에 구원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 번만 주신 인생 세월입니다. 우리가 계속 시간이 반복이 되고 우리의 인체가 계속 수도없이 공급이 되면서 생명유지가 되니까 오늘을 내일처럼 내일을 오늘처럼 반복이 되는 거 같은 데 한 번 지나간 세월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상식입니다. 두 번 다시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걸 유다서에서 우리 구원에 단번에 주신 도라고 했습니다. 단번으로 끝나는 겁니다.
지나간 세월이 내 몸에 살아간 순수 기능이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한 번 지나간 세월 흘러간 물은 다시 위로 역류하지 않습니다. 쏜 살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꽂히고 끝나는거지. 세월이 그래서 쏜살 같고 여류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 세월에 따라서 심신의 요소들도 가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세월이 갈수록 점점 늙어가지 젊어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어느정도 넘어가면 넘어가는 겁니다. 해가 뜨면 올라오다가 넘어가면 내려가는 것처럼. 그런데 해가 동쪽에서 뜬 해는 마지막에 서쪽으로 넘어가는 겁니다. 그 세월 속에 우리 심신의 모든 기능 요소도 노쇠해져 가는 것으로 끝나는 거지요.
바로 알지 못하면 소중한 것을 하면 참 허비하게 되는 것이고 안다고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일단 그렇지만 아는 것으로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두렵습니까. 사람이 찾아오고 아시면 화를 내겠고 매를 맞을 건데, 화를 내실거고 매를 맞을 건데 그래서 화내시고 매를 맞을 것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지 말자 그럽니까. 뻔히 매 맞을 줄 알면서도 하는 게 철 없는 아이들이고 청소년 시절이지요. 부모님이 안 두려운 게 아니고 그렇게 몇 번 잘못을 하고 그렇게 하고 나서 그러면 자기 절제가 되어서 매가 두려워서 하고 싶은 거 함부로 못합니다.
부모님께서 하시면 자녀들은 못하고 악습들이 부모님의 매 앞에 꺾여버립니다. 이게 문제는 아버지가 어머니가 자녀들을 그렇게 엄하게 다스리고 장악해버리면 가장 좋은데 그럴려면 부모님들이 자녀들보다 모든 면으로 흠과 점이 없다는 만큼 하면서 잡히는 겁니다. 부모님은 그리하지 않고 잡기만 잡으면 전부 다 탈선되어 나가버립니다. 일반 보통으로는 그렇게 못하지요. 말하자면 적정 선에서 타협을 하는 겁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자기에 잘못을 알고 있으니까 아이들도 지나치게 못하는 거지요. 대신 달래기도 하고 살살 달래고 같이 놀아주고 그건 괜찮은거지요. 하나님도 두려운데 두려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이 세상에 살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이라는 것도 감당할만큼 역사하시지 전에 한 번 말씀드린 거 같은데 너무 뜨거워서 뜨겁다는게 진리를 근거한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감동으로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특히 찬송할 때에도 말씀을 전하고 들을 때에도.
백 목사님이라고 은혜롭게만 하셨겠습니까. 그럴 때 필기를 하면 지금은 그 분이 다른 곳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충청도쪽에 개척해서 부장까지 한 목사님인데 형님 따라서 가버렸습니다. 같이 계실 때 있었기 때문에 옆자리 앉거든요. 그러면 은혜로워서 주여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뜨거워서 못 견디면서 그러는 걸 직접 겪어봤습니다. 그게 마음이 뜨거운거지요. 듣기도 하면서 생각하니까 참 이치시로다. 인간 구원의 도리이기 때문에 보통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백목사님 같은 분은 뜨거운겁니다. 그렇게 뜨거운 것,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입니다. 두려운 정도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느낌도 다르게 되는 겁니다. 두려운데 두려우신 하나님을 다 두려워하면 견디지를 못해서 각 사람에게 맞게만 하십니다. 그래서 알대로 알 자가 누가 있고 두려워할 대로 두려워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하는가. 성경을 통해서 두려워할려면 첫째 읽어야하고 외워야하고 배워야하고 연구해야한다고 합니다. 설교라는 것은 설교자가 합니다. 듣는 분들이 듣고 누가 설교한 것을 듣고 자기 복음으로 받아서 삼지 않으면 그 설교는 설교자의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닌 겁니다. 백목사님의 설교록은 아주 귀한 곳인데 배워서 연구해서 자기 말씀으로 받아야하지 만들어야하지 자기 말씀으로 만들어야하는 것은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그렇게 생각해보셨는지 몰라도 백목사님께 은혜를 받고 나서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없는 하나님은 무슨 의미가 있고 상관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죄를 만드셨고 그런데 하나님이 완전자 자존자 전지전능자 그런데 그 안에 내가 없다면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하나님이 계시는데 나 없는 하나님은 무관하지 않습니까.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 다음으로 더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만드셨으니까 먼저 앞세울순 없는 건데 하나님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하고 자기와 관계를 맺어나가야하지 남편의 하나님 따로 있고 아내의 하나님 따로 있는데 같을 수가 없는 겁니다.
두 사람이 한 하나님을 모시는 게 가장 이상적인 목적입니다. 그래서 한 몸이고 한 교회가 되는거고 그래서 각각다르는 겁니다. 목사 하나님과 교회 하나님은 실제 관계와 전혀 다릅니다. 백 목사님의 하나님과 우리의 하나님이 같나요 다윗의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이 같은가요. 자기 하나님으로 자기 알아야합니다. 설교라는 것은 도와드리는 겁니다. 돕는겁니다. 모두들 먹고 살아야하고 직장 가져야하고 바쁘기 때문에 성경 연구할 시간 없고 하니까 목사가 대표로 정하고 알아가지고 자기 것으로 삼아야하지 자기 것으로 삼아버리면 알고 알되 자기가 알아야합니다. 자기가 읽고 자기가 듣고 생각해야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은 저는 백 목사님의 설교록을 저만큼 많이 본 사람을 없을겁니다. 그런데 저는 원고 그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서부교회에서 생전에 설교를 한 번 했는데 안되는거지요. 그래서 설교록을 읽으면서 도리를 삼아가지고 제 머리 속에 담아서 전했지 그냥 원고읽고 전해본 적은 한 번도 제 기억에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는 공과를 가지고 읽는 것은 그거 초등학교 1학년도 합니다. 아무도 합니다. 원고를 읽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준비해서 실수할까 싶어서 보고 하긴 하지만 머리 속에 다 담에서 이치를 깨닫고 해서 자기 머리 속에 다 담아서 전하는거지 실제는 머리 속에 다 들어있어야하는 겁니다. 그래서 원고 준비해서 하는 거지 실제로는 다 외워서 넣어놔야합니다. 그래서 설교하는 사람은 수십번 머리 속으로 하는 겁니다. 시간도 재어보고, 찬송하는 시간 몇 분, 찬송하는 몇 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만들어서 머리 속에서 수십번 돌리는 겁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면 나오게 되고 그리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말씀에 어긋나지 않으면 영감으로 인도하시는 그런 게 있는 겁니다. 해 보면은 느낍니다. 자기도 몰랐던 걸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서 아는 게 있습니다.
지금 말씀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야합니다. 알되 자기가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자꾸 생각을 하고 어떤 분일까 찾아야합니다. 스스로 계셨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알아야합니다. 자존자다 스스로 계셨다 그게 무슨 뜻인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스스로 있는 게 이 세상에 뭐 있지. 그러면 그분에게서 나온 그게 자존자는 모든 존재의 근본 복의 근원 사람의 근원 생명과 존귀와 연관시켜서 자존자에게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전지전능지가 무슨 뜻이지. 능치못함이 없습니다. 설교록에서는 한 번 나오던가요. 모든 존재의 시작과 과정과 결말이 그분으로 인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전지전능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다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첫째 알아야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어느정도 아는가. 이름, 하나님의 이름을 아시는가요. 우리의 존재 창조주 주권자 그분의 목적이 뭐냐 뜻이 뭐냐 일이 뭐냐 그 분의 성품이 어떠하냐 사람으로 말하면 외형이 뭐고 이름이 뭐고 학벌은 어찌되냐 성품은 어찌되냐 입맛은 어떠냐. 이름만 얼굴만 아는 것은 껍데기만 아는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알아야한다 그 말은 그 분이 모든 것을 다 속속들이 한 겁니다. 모르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는 믿음이 진짜 믿음이지. 다른 건 다 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결혼의 첫사랑은 무슨 사랑이라고 합니까. 결혼의 첫사랑을 풋사랑이라고 합니다. 풋과일. 알지요. 풋과일은 싱싱한데 안 익은 겁니다. 맛이 없는거지요. 부부 결혼의 첫사랑은 풋사랑이고 껍데기 사랑입니다. 이게 살아가면서 진짜 참 사랑으로 가면 거기서 거기로 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아는 줄 알았는데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 경우가 많습니다. 얘가 이런 애였어. 몰랐던거죠. 껍데기만 아는 겁니다. 속속들이 몰랐고. 그래서 자녀들과 부모님은 생활 속에서 수 많은 대화 입고 자고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자녀는 부모님께 비밀이 없어야합니다. 알기 어렵습니다. 제가 지금 경험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래야 진짜 부모자녀 관계가 되는 거고 하나님과 우리 관계도 그렇습니다.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로써는 알 때 까지 알아야합니다. 첫째는 알아야하고 둘째는 믿어야합니다. 하나님 자기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거지요. 지식이라는 것은 피상적인 가변적인 것입니다. 믿으면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교제가 시작되는 겁니다. 신인 교제가 시작되는 거지요. 이게 진짜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래야 순종이 나오는 겁니다. 아는 만큼 순종이 되고 믿는 만큼 순종이 됩니다. 경험이 되고 체험이 됩니다.
알고 믿고 그리고 순종해야합니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닌 겁니다. 100프로 다 순종만 하면 참 좋을 건데 사람인지라 순종하다가 다윗은 성경에 이삭은 하나님을 거역한 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삭의 평생은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삭의 평생은 기복이 없습니다. 이삭 자체가 어릴 때 제물로 바쳐진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도 이삭은 온유했습니다. 이삭은 어릴 때 이미 순교신앙이고 다 바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지만은 잠깐 방심한 사이에 죄를 지어버렸고 죄를 짓고 나서 벌벌 떨었지만은 사랑하시는 만큼 매를 때리니까 평생을 두고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순종에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해서 높이게 되지요. 그러면 의지하고 바라보고 친밀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두렵기만하고 친밀함이 없으면 사람이 없으면 폭군이 됩니다. 두렵지만 이걸 우리가 깨달아 아는 게 중요한거죠. 그래서 그분의 중요함을 알아야하고 종합적으로 아는 게 중요한겁니다. 그래서 모시고 살면 닮아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닮는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지혜적으로 속성적으로 하나님을 닮아서 사람이 점점 성화되게 되는 겁니다.
10가지를 생각하면 좋겠고 하나님에 대한 열 가지는 전부 성경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알아야하고 믿어야하고 행해야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하나님을 모릅니다. 천국도 모릅니다. 구원도 모릅니다. 성경 아는 것은 읽어서 지식으로 알고 믿음으로 알고 실행해서 알아야하지 일반 철학자들이나 안 믿는 사람들도 압니다. 알려면 첫째 교과서 내용을 알려면 읽어야합니다. 다는 못 외우는데 중요한 것은 외워야합니다. 모든 공부의 출발은 암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외운 것은 평생 기록합니다. 우리 학생들 전도서 안 잊어버릴려고 해야합니다. 예배시간에 배우고 양성원에 배우고 그래서 그래서 자기 것으로 삼는 겁니다. 이해되는 것은 하고 이해 안되는 것은 보고 또 보고. 한문 공부 해보신 적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시라고 있죠. 한자로 시를 짓는 것. 벼슬은 요즘말로 과거 보는 사람 전부 한자로 다 시를 지어야합니다. 그거 영어보다 몇 배 더 어렵습니다. 만약에 한문으로 성경해놨으면은 우리같은 사람은 못 읽습니다. 한글로 그래서 세종대왕에게 감사해야합니다. 한국 사람들 한글 성경 읽도록 하셨으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라도 선하게 쓰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해주셨다.
의사들이 요즘은 덜합니다. 병원에 쓰는 그거 알아듣습니까. 그거 쓰면 일반 환자들 못알아듣습니다. 판사들의 그런 언어들 그런 것들을 모르는 거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어로 기록하면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감사하고 열심히 읽고 외우고 배우고 연구하고 실행해야합니다. 그래야 첫째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고 정확무오한 말씀이고 절대 진리입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그게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번주는 여기까지만 가르치고 기억을 하면서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고 알아가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기도하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