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9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10-29조회 286추천 35
2023년 10월 29일 주일 오후
찬송: 147장, 145장
본문: 열왕기상 8장 1절 ~ 4절
찬송가 145장에 보면 주 날개 밑 평안하게 쉰다는 뜻인데 주 날개 밑, 성전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가 있습니다. 날개 활짝 펴고 있고 그 밑에 법궤가 있습니다. 천사의 날개 밑 법궤, 그게 주 날개 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찬송 가사 지으신 분이 그것까지 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법궤를 보호한다는 말은, 오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라서 그 법을 쓴 돌판을 넣어서 법궤가 된 것입니다. 사과를 넣으면 사과궤짝이 되는 것인데 법이 새겨진 돌을 넣어서 법궤라고 합니다.
계약은 어기면 안되는게 계약입니다. 그러면 무조건 서로 도장을 찍습니다. 붉은색 도장을 찍습니다. 그러면 그 계약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약은 그러지 않아도 하나님이 선포하신 계약은 절대적입니다. 법궤, 언약궤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누구에게 주셨다 그랬습니까.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돌판을 하나님이 직접 기록했습니다. 어떻게 기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글씨를 썼지요. 그러니까 얼굴이 새파래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판에 글을 쓰셨는데 어떻게 쓰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직접 기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전달하셨고 모세가 그 돌판을 받아서 하늘에서 던져주셨을까 받았을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는데 어떻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만드신 건 맞습니다. 모세가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파해서 백성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에게 주셨고 백성들에게 전했고 백성들이 손자의 손자에게 이어지도록 한겁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어진 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주셨습니다. 사람은 사람이나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야할 말은 하는 것이고 안해야할 말은 안하는 것입니다. 해선 안된는 말을 해선 안되는 겁니다. 삼손이 말해서는 안될 비밀을 말해서 삼손이 눈 뽑히고 머리카락 베이고 죽었습니다. 덩치는 크고 힘은 센데 마음이 약해서 말의 실수한 겁니다. 해서는 안될 말을 해서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은 사람을 위해서 써주신 겁니다. 전할 말씀은 전하는 것이고 담이둘 말씀은 담아둘 것이고,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주셨고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주신 목적입니다. 설명을 하기 위해서 어떤 세상인지 보여드렸고 질문 드리겠습니다. 오전에 종교, 철학, 사상을 말씀드렸는데 그게 그런 말한 핵심의 목적이 뭡니까. 깊이는 몰라도 이런 게 있다고 말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왜 그 말이 나온겁니까. 그 모든 건 다 무슨 세계라고 했습니까. 아시는 분, 그 전부는 무슨 세계라 그랬습니다. 물질 세계. 깊게 들어가면 마음의 세계입니다. 온 세상은 마음에 영을 빼놓고 어떤 종교 철학사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자체는 논리적으로 반듯하고 보다 더 그럴듯하게 나오면 점령이 되는 겁니다.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질가지고 안됩니다. 말씀 만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말씀 만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인격이 없습니다. 말씀은 인격이 없고 보지못합니다.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합니다. 그런데 정통교단에서 배우기를 진리라는 것은 독자적인 권위를 가졌다. 진리는 독자적인 능력이 있다. 정통교단에서 이렇게 주장한답니다. 말씀은 진리인데 말 그대로 무인격이니까 자동적인 활동, 자동 역사, 자가적인 활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무인격 존재는, 돌은 나무토막은 생명 없는 것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자동차라는 것은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는 기계장치, 전기장치는 전기라는 동력이 돌아가니까 됩니다. 로봇도 그렇습니다. AI라는 인공지능도 그렇습니다. 알파고보다 더 나은 인공지능이 나오는데 전기 빼버리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사람은 저절로 움직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독립적인 활동을 못하는 게 진리인데 잘 들어주셔야합니다. 의논해봐야 하는데, 백목사님 설교록도 그렇고 진리는 독립적인 독자적인 권위를 가졌고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리는 진리이기 때문에 절대성을 가졌습니다. 필연성이라는 뜻입니다. 필연성이 무슨 뜻입니까.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한 살을 바늘로 찌르면 아픕니다. 피가 도는 피부를 바늘로 찌르면 피가 납니다. 끊는 물에 나물을 넣으면 삶겨집니다. 그렇게 안 될 수가 있습니까? 그게 진리입니다. 진리는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 진리는 절대성입니다. 그말 같으면 이해가 가는데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진리를 두고 독자적인 능력을 넘어서서 더 강하게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독자적인 능력이라는 말이 절대성이다, 필연적이라는 말인지 거기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진리가 마치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독자적인 능력이라는 말은 스스로 힘을 가졌다는 말이거든요. 스스로의 힘을 가진 것입니다. 외부의 제 3의 간섭받지 않고 진리다. 절대성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은 올려주시고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그러죠.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 무인격의 물체는 작용되거나 전달되는 것이 없습니다. 무인격의 존재는 인격을 하지 않고는 제 3의 존재를 통하지 않고는 전파되는 수는 없다. 맞습니까. 바위는 무인격체입니다. 시냇가에 있는 바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월 속에 변합니다. 안 움직이는데, 스스로 변합니까 객관적입니까. 물에 깎이는 거지요. 객관역사입니다. 줄기는 무인격입니다. 참된 이치입니다. 그게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 무슨 뜻일까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 속에 들어갔는데 허공에서 역사할 수 있을까, 생명이 놓는 존재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 떨어지면 가만히있습니까 돌아다닙니다. 낙엽이 가만히 있나요. 어떻게 돌아다닙니까. 바람이 부니까 돌아다닙니다. 낙엽이라는 것이 휘날리는 것은 죄가 그런 것이 아니고 모래 사장에 다리가 달렸습니까. 객관입니다. 사랑이 어떻게 생겼냐하면 하트를 그립니다. 그건 그냥 표시지 사랑은 존재는 하는데 형체가 없습니다. 그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겁니까.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인격체를 가진 존재에게서 나오는겁니다. 그래서 진리는 무인격이 진리인데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가 무슨 말인가, 제 말은 절대성을 가진 것이고 필연성이 가진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진리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사람을 바꿉니까. 진리는 말씀이기 때문에 계속 생각합니다. 찬송 가사는 진리입니다. 교리고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찬송 가사 진리를 통해서 나라는 사람이 감동이 생깁니다. 진리가 독자적인 범위가 있고 능력이 있다면 진리만 가지고는 사람이 변화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안에 성령의 감동이 들어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됐고 모든 사랑을 온전케하고 그러기 위해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가 입는데 그래서 사람이 변화된다. 라고 합니다. 진리 속에는 다른 영감이 있으니까 다른 상식입니다. 바꿔놓는 것입니다. 진리는 진리대로 독자적인 범위를 가졌다고 한다면 이건 이정도하고 연구 좀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왕기상 8장 시점에서 다윗성에 법궤가 있습니다. 언약궤는 어디서 만들어졌습니까. 언제 만들어집니까. 출애굽 1년만에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서 만들어 집니다. 광야에서 법괘를 만들었고 성막을 만들어서 지도를 따라서 조각목으로 실로 배로 염소 가죽으로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성막을 만들어놨습니다. 그 법궤가 있는 곳, 그 받은 돌판에서는 성막, 광야에서 성막을 만드는 것을 합니다. 법궤를 보시면 성막이 늘 인도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은 전부다 무엇이 앞서갑니까. 말씀에 앞서갑니다. 말씀에 따라갑니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모시고 따라갑니다. 무엇을 따라갑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갑니다. 구름기둥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불기둥은 영감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무엇을 하던지 말씀을 따라가야지 말씀 제껴놓고 내 생각 내 처지 내 사정 내 입장 내 적성 내 취미 이런 걸 앞세우면 말씀은 물러서는 겁니다. 회개가 안되는 겁니다. 나를 맞추는 게 신앙이고 원칙입니다. 그리고 항상 서 있을 때 학교를 세운다 하는데 모이면 일단 교육하는 곳을 놓고 이스라엘의 교육은 종교랑 관련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거의 뭐 제도가 그리 될지라도 실제는 그렇습니다. 종교적인 사상이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모든 생활의 중심이 말씀입니다. 평소 생활의 중심은 말씀의 중심이 되어야하고 어기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이 광야에서 이렇게 살았는데 법궤를 메고 갈라졌습니다.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외부적으로 강압이 될 수가 없고 자기 스스로가 말씀과 반대되는 마귀의 종이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줘도 줘도 안먹게 되고 음식을 먹다 안주면 못먹게 되고 죽습니다. 말씀 생활을 안하면 못하게 되고 그러면 죽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죽고 아들들이 타락해서 새로운 떠오르는 별이 생겼으니 누구입니까.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나타났기 때문에 법궤를 스스로 돌려줬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누구에게 해당됩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승리해서 쟁취해갔는데 말씀 때문에 블레셋이 사망의 그런 것들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에 정치 세력에 홈페이지 보니까 걱정되는 글을 써놨던데 복음을 세상으로 하는 대표, 우리나라의 대표 이승만 박사 온 교회가 나서서 마지막에 419이후로 망하고 쫓겨났습니다. 그게 교회가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교회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안됩니다. 다시 찾았습니다.
사람의 생각 하나가 인식 하나가 무서운 겁니다. 성전을 모셔드리고 이런 것들을 성전에 기록된 것은 법궤를 모시는 것, 말씀을 모시는 것이고 그 중심은 법궤고 말씀입니다. 그 위에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모시는 법궤입니다. 그 법궤 말씀이 이렇게 우여곡적이 많고 어렵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안착,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서 완성이 됐는데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는 성전인데 완전한 성전입니까. 온전한 성전이 안 되어있기 때문에 되기까지의 과정들 겪어서 비로소 변화되고 자라게 되는 과정, 그 우여곡절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성전이 되려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겁니다. 본문에 보니까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오늘 법궤를 생각했고 과정으로 생각하셨고 내 모든 생활과 말씀 중심의, 온전한 성전이 되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47장, 145장
본문: 열왕기상 8장 1절 ~ 4절
찬송가 145장에 보면 주 날개 밑 평안하게 쉰다는 뜻인데 주 날개 밑, 성전 가장 깊은 곳에 지성소가 있습니다. 날개 활짝 펴고 있고 그 밑에 법궤가 있습니다. 천사의 날개 밑 법궤, 그게 주 날개 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찬송 가사 지으신 분이 그것까지 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법궤를 보호한다는 말은, 오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라서 그 법을 쓴 돌판을 넣어서 법궤가 된 것입니다. 사과를 넣으면 사과궤짝이 되는 것인데 법이 새겨진 돌을 넣어서 법궤라고 합니다.
계약은 어기면 안되는게 계약입니다. 그러면 무조건 서로 도장을 찍습니다. 붉은색 도장을 찍습니다. 그러면 그 계약은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약은 그러지 않아도 하나님이 선포하신 계약은 절대적입니다. 법궤, 언약궤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누구에게 주셨다 그랬습니까.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돌판을 하나님이 직접 기록했습니다. 어떻게 기록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글씨를 썼지요. 그러니까 얼굴이 새파래졌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돌판에 글을 쓰셨는데 어떻게 쓰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직접 기록하셨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에게 전달하셨고 모세가 그 돌판을 받아서 하늘에서 던져주셨을까 받았을까.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는데 어떻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만드신 건 맞습니다. 모세가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파해서 백성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에게 주셨고 백성들에게 전했고 백성들이 손자의 손자에게 이어지도록 한겁니다.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이어진 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사람을 위해서 주셨습니다. 사람은 사람이나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야할 말은 하는 것이고 안해야할 말은 안하는 것입니다. 해선 안된는 말을 해선 안되는 겁니다. 삼손이 말해서는 안될 비밀을 말해서 삼손이 눈 뽑히고 머리카락 베이고 죽었습니다. 덩치는 크고 힘은 센데 마음이 약해서 말의 실수한 겁니다. 해서는 안될 말을 해서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은 사람을 위해서 써주신 겁니다. 전할 말씀은 전하는 것이고 담이둘 말씀은 담아둘 것이고,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주셨고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주신 목적입니다. 설명을 하기 위해서 어떤 세상인지 보여드렸고 질문 드리겠습니다. 오전에 종교, 철학, 사상을 말씀드렸는데 그게 그런 말한 핵심의 목적이 뭡니까. 깊이는 몰라도 이런 게 있다고 말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습니까. 왜 그 말이 나온겁니까. 그 모든 건 다 무슨 세계라고 했습니까. 아시는 분, 그 전부는 무슨 세계라 그랬습니다. 물질 세계. 깊게 들어가면 마음의 세계입니다. 온 세상은 마음에 영을 빼놓고 어떤 종교 철학사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자체는 논리적으로 반듯하고 보다 더 그럴듯하게 나오면 점령이 되는 겁니다.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질가지고 안됩니다. 말씀 만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말씀 만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인격이 없습니다. 말씀은 인격이 없고 보지못합니다.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합니다. 그런데 정통교단에서 배우기를 진리라는 것은 독자적인 권위를 가졌다. 진리는 독자적인 능력이 있다. 정통교단에서 이렇게 주장한답니다. 말씀은 진리인데 말 그대로 무인격이니까 자동적인 활동, 자동 역사, 자가적인 활동을 하는 게 아닙니다. 무인격 존재는, 돌은 나무토막은 생명 없는 것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자동차라는 것은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는 기계장치, 전기장치는 전기라는 동력이 돌아가니까 됩니다. 로봇도 그렇습니다. AI라는 인공지능도 그렇습니다. 알파고보다 더 나은 인공지능이 나오는데 전기 빼버리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사람은 저절로 움직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독립적인 활동을 못하는 게 진리인데 잘 들어주셔야합니다. 의논해봐야 하는데, 백목사님 설교록도 그렇고 진리는 독립적인 독자적인 권위를 가졌고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진리는 진리이기 때문에 절대성을 가졌습니다. 필연성이라는 뜻입니다. 필연성이 무슨 뜻입니까.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한 살을 바늘로 찌르면 아픕니다. 피가 도는 피부를 바늘로 찌르면 피가 납니다. 끊는 물에 나물을 넣으면 삶겨집니다. 그렇게 안 될 수가 있습니까? 그게 진리입니다. 진리는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말이 진리는 절대성입니다. 그말 같으면 이해가 가는데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 진리를 두고 독자적인 능력을 넘어서서 더 강하게 말씀하신 게 있습니다. 독자적인 능력이라는 말이 절대성이다, 필연적이라는 말인지 거기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진리가 마치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는 독자적인 능력이라는 말은 스스로 힘을 가졌다는 말이거든요. 스스로의 힘을 가진 것입니다. 외부의 제 3의 간섭받지 않고 진리다. 절대성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은 올려주시고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그러죠.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 무인격의 물체는 작용되거나 전달되는 것이 없습니다. 무인격의 존재는 인격을 하지 않고는 제 3의 존재를 통하지 않고는 전파되는 수는 없다. 맞습니까. 바위는 무인격체입니다. 시냇가에 있는 바위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월 속에 변합니다. 안 움직이는데, 스스로 변합니까 객관적입니까. 물에 깎이는 거지요. 객관역사입니다. 줄기는 무인격입니다. 참된 이치입니다. 그게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 무슨 뜻일까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는 절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 속에 들어갔는데 허공에서 역사할 수 있을까, 생명이 놓는 존재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 떨어지면 가만히있습니까 돌아다닙니다. 낙엽이 가만히 있나요. 어떻게 돌아다닙니까. 바람이 부니까 돌아다닙니다. 낙엽이라는 것이 휘날리는 것은 죄가 그런 것이 아니고 모래 사장에 다리가 달렸습니까. 객관입니다. 사랑이 어떻게 생겼냐하면 하트를 그립니다. 그건 그냥 표시지 사랑은 존재는 하는데 형체가 없습니다. 그 사랑은 어디서 나오는겁니까.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인격체를 가진 존재에게서 나오는겁니다. 그래서 진리는 무인격이 진리인데 독자적인 능력을 가졌다가 무슨 말인가, 제 말은 절대성을 가진 것이고 필연성이 가진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진리 자체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사람을 바꿉니까. 진리는 말씀이기 때문에 계속 생각합니다. 찬송 가사는 진리입니다. 교리고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입니다. 찬송 가사 진리를 통해서 나라는 사람이 감동이 생깁니다. 진리가 독자적인 범위가 있고 능력이 있다면 진리만 가지고는 사람이 변화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안에 성령의 감동이 들어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됐고 모든 사랑을 온전케하고 그러기 위해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역사가 입는데 그래서 사람이 변화된다. 라고 합니다. 진리 속에는 다른 영감이 있으니까 다른 상식입니다. 바꿔놓는 것입니다. 진리는 진리대로 독자적인 범위를 가졌다고 한다면 이건 이정도하고 연구 좀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열왕기상 8장 시점에서 다윗성에 법궤가 있습니다. 언약궤는 어디서 만들어졌습니까. 언제 만들어집니까. 출애굽 1년만에 광야에서 모세를 통해서 만들어 집니다. 광야에서 법괘를 만들었고 성막을 만들어서 지도를 따라서 조각목으로 실로 배로 염소 가죽으로 해달의 가죽으로 만들어서 성막을 만들어놨습니다. 그 법궤가 있는 곳, 그 받은 돌판에서는 성막, 광야에서 성막을 만드는 것을 합니다. 법궤를 보시면 성막이 늘 인도했다, 믿는 사람의 생활은 전부다 무엇이 앞서갑니까. 말씀에 앞서갑니다. 말씀에 따라갑니다. 이스라엘이 말씀을 모시고 따라갑니다. 무엇을 따라갑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갑니다. 구름기둥은 말씀을 의미합니다. 불기둥은 영감을 의미합니다.
믿는 사람의 모든 생활은 무엇을 하던지 말씀을 따라가야지 말씀 제껴놓고 내 생각 내 처지 내 사정 내 입장 내 적성 내 취미 이런 걸 앞세우면 말씀은 물러서는 겁니다. 회개가 안되는 겁니다. 나를 맞추는 게 신앙이고 원칙입니다. 그리고 항상 서 있을 때 학교를 세운다 하는데 모이면 일단 교육하는 곳을 놓고 이스라엘의 교육은 종교랑 관련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거의 뭐 제도가 그리 될지라도 실제는 그렇습니다. 종교적인 사상이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모든 생활의 중심이 말씀입니다. 평소 생활의 중심은 말씀의 중심이 되어야하고 어기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이 광야에서 이렇게 살았는데 법궤를 메고 갈라졌습니다.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외부적으로 강압이 될 수가 없고 자기 스스로가 말씀과 반대되는 마귀의 종이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줘도 줘도 안먹게 되고 음식을 먹다 안주면 못먹게 되고 죽습니다. 말씀 생활을 안하면 못하게 되고 그러면 죽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죽고 아들들이 타락해서 새로운 떠오르는 별이 생겼으니 누구입니까.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이 나타났기 때문에 법궤를 스스로 돌려줬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누구에게 해당됩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승리해서 쟁취해갔는데 말씀 때문에 블레셋이 사망의 그런 것들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에 정치 세력에 홈페이지 보니까 걱정되는 글을 써놨던데 복음을 세상으로 하는 대표, 우리나라의 대표 이승만 박사 온 교회가 나서서 마지막에 419이후로 망하고 쫓겨났습니다. 그게 교회가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교회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안됩니다. 다시 찾았습니다.
사람의 생각 하나가 인식 하나가 무서운 겁니다. 성전을 모셔드리고 이런 것들을 성전에 기록된 것은 법궤를 모시는 것, 말씀을 모시는 것이고 그 중심은 법궤고 말씀입니다. 그 위에는 하나님이고 하나님을 모시는 법궤입니다. 그 법궤 말씀이 이렇게 우여곡적이 많고 어렵다고 합니다. 마지막에 안착,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서 완성이 됐는데 우리가 살아갈 때 우리는 성전인데 완전한 성전입니까. 온전한 성전이 안 되어있기 때문에 되기까지의 과정들 겪어서 비로소 변화되고 자라게 되는 과정, 그 우여곡절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성전이 되려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겁니다. 본문에 보니까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오늘 법궤를 생각했고 과정으로 생각하셨고 내 모든 생활과 말씀 중심의, 온전한 성전이 되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