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4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9-24조회 304추천 61
2023년 9월 24일 주일 오후
본문: 열왕기상 7장 27절 ~ 29절
그림으로 그려놨으면 보기 쉽고 간단한데 우리가 집회 때 그런 말씀으로 어렵고 복잡하게 그림 하나 없이 글로 설명을 하니까 읽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왜 그렇게 어렵게 해놨다고 배웠습니까. 왜 글로만 적어놨다고 했습니까. 가로쓰기 성경 읽으면 죄송하지만 성경이 아니란 그런 말이 있습니다. 세로쓰기 성경만 성경이다. 그렇게 인식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성경을 눈에 맞출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은 세상 모두 다 알아서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대로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어려운 건 그리 읽는 게 좋습니다. 세로쓰기는 또박또박 읽을 때에는 자기에게 훨씬 좋습니다. 그림을 그려놓지 않고 어렵게 하는 것은 천천히 또박또박 읽으려고 많이 읽으려고 그랬습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생각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말은 쉬운데 생각을 안해서 쉬운 겁니다. 글로 적어놓고 반복도 있고 섞인 것도 있는데 우리는 다 모르는데 상식으로 모든 신학자들이 전통으로 하는 말이 획 하나도 가감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게 교리입니다. 말씀은 글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순서도 다 그런 겁니다. 여기 갔다 저리 갔다 성경대로 읽는데, 받침도 이거 하다가 저거 하다가 뒤섞여서 섞어놨습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은 생각하라고 그런 것입니다. 성전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해놓은 것은 구약에는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어리기 때문에 보여줘야합니다. 어린 사람에게는 물건을 보여줘야하고 해야합니다. 그런데 장성한 사람은 말로 설명해야합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구약의 성전의 그런 성전의 구조, 그리고 용도 재료 규격 이런 것을 통해서 오늘의 성전된 우리를 가르친 것도 있고 하나님 무엇이고 살아가야하는지를 성전입니다. 성전은 성전이라는 집이 있고 큰 둘레가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성전인데 전체로 말하면 본체 건물, 성전 본체 건물이 있고 무엇과 무엇으로 나누어집니까.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집니다. 성소가 뭘까, 지성수는 무엇일까 성소는 거룩한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향단 하나님 앞에 기도해라 지성소 조심해라 그렇게 말씀을 했고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 전부 조심해라 그랬씁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도 본체와 본체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안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김은득 집사님도 바빠서 일에 치여서 주일에 자기도 모르게 피곤에 절여져 있습니다. 저러다가 나중에 위험합니다. 바쁜 건 정리하고 사업이 바빠도 기도 속에 들어가서 못하고 시간 나는 분들은 볼 게 많으니까 이것도 본다고 못합니다. 다 그렇게 해놓고 산에 가든지 예배당에 가든지 사람 없는 곳 번쩍 거리는 곳에 고요한 곳을 가서 지성소에 양심 속에 들어서 깊이 깊이 들어가면 생각으로 들어가면 그 속에 중생된 영이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필요할겁니다. 이 앞에 보면 낭실이 있습니다. 성전 생활의 준비, 기둥이 들어있습니다. 기둥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한 없이 올라가고 기둥에 머리가 있어서 하나님의 모든 걸 따라가게 조심을 해라, 여러 가지로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기 전에 준비할 낭실에 들어가면 자기를 돌아보고 더 앞에 뜰에 있는 거기에 제일 앞에 못단이 있습니다. 제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그 단 옆에 큰 바다가 있습니다. 아무리 물통이 커봐야 우리 예배당만큼 크진 않습니다. 그렇게 크기는 큰데 바다라고 하기 까지야, 목욕탕도 작은 건데 바다라고 한 것은 바다란 깊은 곳이고 넓은 곳입니다. 그래서 씻는데 깊이 씻어라, 넓이 씻어라 전부 다 씻어라, 강조하면 평생 생활은 씻는 생활입니다. 씻는 걸 크게 말하면 현재를 기점으로 지난 달의 잘못을 회개하고 묻은 때를 벗겨내고 씻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깊이 깊이 씻으라 넓게 씻으라 그리고 오늘 공부하는 좌우에 다섯 개 전부 열 개인데 물두멍을 받쳐주는 것입니다. 복잡하다. 말하면 준비, 성전 구조물 하나하나에역할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다락이란 이런 것이다. 바다는 씻는 것이다. 받쳐주는 것이지요. 바침이 없으면 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씻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굉장히 불편하겠지요. 굳이 받침을 놨습니다. 받침대는 몸통이 있고 어깨가 있습니다. 그게 대부분입니다. 이걸 이제 살펴보는 것입니다. 몸통 모양은 4규빗 4규빗 정사각형입니다. 안정된 모습입니다. 안정된 모습의 그런 통이고 몸통입니다. 몸통 위에 자리가 있고 테두리가 있고 이렇습니다. 몸통 옆에 사자 소 그런 게 몸통이고 하단에는 발이 달려있고 바퀴가 있고 이래 생긴 것입니다. 몸통은 4규빗 4규빗입니다. 그리고 상단 위에는 먹는 자리가 있고 그리고 내민 게 있고 원형 모양의 겉은 사각으로 되어있습니다. 테두리가 있고 하단에는 발이 달려있고 어깨같은 게 있고 그 옆에는 바퀴가 있고 이렇게 되어있는게 받침입니다. 그래서 27절 놋이라는 것은 무엇이라고요. 연단입니다. 연단이란 두드려서 사람을 두드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현실이라는 것이라 현실을 주실 때 연단을 받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회개하고 말씀을 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회개 안하고 연단이 안 되는 겁니다. 잠오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힘들면 피하고 도망치고 그러면 노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되는대로 따라가면 사람 따라 유행따라 어려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나름대로 지조를 가지고 이몸이 죽고 죽어 누굽니까. 지키려다가 죽어버렸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왕 지키려고 목숨 바쳤습니다. 부산에서는 해운대는 다를련지 모르겠습니다. 해운대 쪽의 고등학생들은 다를 것이고 대치동쪽의 학생들은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3-4시간 하고 죽도록 한답니다. 그리 되기 까지는 연단이 필요한 겁니다. 아침에 피곤하면 새벽기도 안 오고 일이 바빠서 피곤해서 할 일 다 하고 새벽기도 하고 무슨 신앙생활 하고, 그럴 때 어려워도 힘들어도 회개하고 지키는 게 신앙입니다. 연단이 되는 것입니다. 열을 만들었으니 넓이가 가로세로 네 규빗입니다. 전부 다입니다. 네 규빗이라 그 바침을 제거, 제거라는 말이 어려운데 받침의 생긴 모양이 이러하니 판이 있습니다. 비어있지 않고 안에 판이 있고 29절 판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사자와 소와 그 판에 있습니다. 새겨져 있습니다. 몸통입니다. 판에 사자와 소와 그런 것들이 있다. 말씀 생활에 있다. 회개하는 사람은 치료가 되고 회개는 치료고 땅으로 말하면 거름을 뿌리는 겁니다. 그걸 심으면 잘 자랍니다. 그리고 말씀 생활에 무조건 승리하는 겁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주님을 믿는 생활이 편리한 것입니다. 말씀 생활에는 무조건 이깁니다.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은 양심을 써서 하나님 앞에 속을 썩였고 수도 없이 날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참고 참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렇게 수 많은 기회를 주셨는데 날려서 그정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 100전 50승하면 반 토막이고 100전 70승하면 70퍼센트 이긴 것이고 30승하면 70퍼센트 진 것입니다. 승리가 많을수록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사자는 회개 생활입니다. 말이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 말은 최대한 줄이는 게 좋습니다. 그리 나가면 주님 동행이 되어집니다.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습니다. 놓는 자리는 보이지 않는 수입니다. 뭐든지 가정이 가정으로 가정 답게 아버지든 희생이든 수고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움직이면 말 없이 있는 겁니다.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새겨져 있습니다. 30절 그 받침에 각각 놋 바퀴와 축이 있습니다. 자동차도 바퀴와 옛날에는 다 그랬습니다. 요즘 자동차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은 바퀴와 바퀴를 연결해서 축이 있습니다. 발 밑에는 어깨같은 게 있는데 어깨 같은 것은 바퀴는 동그랗게 생겼겠죠 어깨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어깨는 사람 어깨처럼 생겼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어깨라는 의미는 제사장들이 옷에 어깨 위에 견장을 붙입니다.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서 놓습니다. 열두 지파를 다 책임지는 메는 것이고 책임 진다는 것이지요. 발 밑에 있습니다. 어깨라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지금 그 설명이 받침이라는 설명이고 그것은 회개니까 떠받쳐주는 게 어깨입니다. 말씀 순종하려고 하려면 손해보는 게 많습니다. 믿는 사람이 무엇이든지 책임지는 게 없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출발할 때부터 따라가는 겁니다. 말씀 생활은 책임을 지는데 그것은 자기가 희생이 되는 것이고 수고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도, 책임지면 영광이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받침에 바퀴에 축은 연결이 되었는데 바퀴의 높이는 각각 한 규빗 반입니다. 자동차 타이어 높이 정도 됩니까. 반이며 바퀴의 제도, 생긴 모양, 그 축과 살과 다 부어 만들었고 다 당연한 건데 그리고 병거, 전투 신앙. 마차, 전쟁할 때 끌고 요즘으로 말하면 탱크, 장갑차 같은 것입니다. 그 바퀴가 굉장히 튼튼해야합니다. 바퀴는 같은 재료같은데 다 부어만들었습니다.
받침의 둥근테두리입니다. 전부 다 테두리가 있고 테두리 높이가 반 규빗입니다. 내민 것이 있는데 내민 것 말고 혼돈되는 게 이 부분인데 한 규빗 되게 되는 게 있고 버팀대가 또 있는데 이 버팀대가 내미는 걸 따로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31절 고가 한 규빗 되게 한 규빗 반 되게하고 나머지는 하면 받침에 버팀대가 있는데 판이 있습니다. 그러면 36절에 보니까 버팀대 놋판이 있습니다. 그 밑에는 다른 거니까 빈 곳을 따라 그거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님을 모시는 것은 깨끗이 기본입니다. 깨끗하지 않으면 신앙 출발이 없습니다.
본문: 열왕기상 7장 27절 ~ 29절
그림으로 그려놨으면 보기 쉽고 간단한데 우리가 집회 때 그런 말씀으로 어렵고 복잡하게 그림 하나 없이 글로 설명을 하니까 읽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습니다. 왜 그렇게 어렵게 해놨다고 배웠습니까. 왜 글로만 적어놨다고 했습니까. 가로쓰기 성경 읽으면 죄송하지만 성경이 아니란 그런 말이 있습니다. 세로쓰기 성경만 성경이다. 그렇게 인식을 가지는 게 좋습니다. 성경을 눈에 맞출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은 세상 모두 다 알아서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대로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어려운 건 그리 읽는 게 좋습니다. 세로쓰기는 또박또박 읽을 때에는 자기에게 훨씬 좋습니다. 그림을 그려놓지 않고 어렵게 하는 것은 천천히 또박또박 읽으려고 많이 읽으려고 그랬습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생각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말은 쉬운데 생각을 안해서 쉬운 겁니다. 글로 적어놓고 반복도 있고 섞인 것도 있는데 우리는 다 모르는데 상식으로 모든 신학자들이 전통으로 하는 말이 획 하나도 가감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게 교리입니다. 말씀은 글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순서도 다 그런 겁니다. 여기 갔다 저리 갔다 성경대로 읽는데, 받침도 이거 하다가 저거 하다가 뒤섞여서 섞어놨습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은 생각하라고 그런 것입니다. 성전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해놓은 것은 구약에는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어리기 때문에 보여줘야합니다. 어린 사람에게는 물건을 보여줘야하고 해야합니다. 그런데 장성한 사람은 말로 설명해야합니다. 그런 시대입니다. 구약의 성전의 그런 성전의 구조, 그리고 용도 재료 규격 이런 것을 통해서 오늘의 성전된 우리를 가르친 것도 있고 하나님 무엇이고 살아가야하는지를 성전입니다. 성전은 성전이라는 집이 있고 큰 둘레가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면 성전인데 전체로 말하면 본체 건물, 성전 본체 건물이 있고 무엇과 무엇으로 나누어집니까.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어집니다. 성소가 뭘까, 지성수는 무엇일까 성소는 거룩한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것입니다. 향단 하나님 앞에 기도해라 지성소 조심해라 그렇게 말씀을 했고 하나님께서 거기 계신다 전부 조심해라 그랬씁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도 본체와 본체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안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김은득 집사님도 바빠서 일에 치여서 주일에 자기도 모르게 피곤에 절여져 있습니다. 저러다가 나중에 위험합니다. 바쁜 건 정리하고 사업이 바빠도 기도 속에 들어가서 못하고 시간 나는 분들은 볼 게 많으니까 이것도 본다고 못합니다. 다 그렇게 해놓고 산에 가든지 예배당에 가든지 사람 없는 곳 번쩍 거리는 곳에 고요한 곳을 가서 지성소에 양심 속에 들어서 깊이 깊이 들어가면 생각으로 들어가면 그 속에 중생된 영이 있습니다. 이런 생활이 필요할겁니다. 이 앞에 보면 낭실이 있습니다. 성전 생활의 준비, 기둥이 들어있습니다. 기둥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한 없이 올라가고 기둥에 머리가 있어서 하나님의 모든 걸 따라가게 조심을 해라, 여러 가지로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기 전에 준비할 낭실에 들어가면 자기를 돌아보고 더 앞에 뜰에 있는 거기에 제일 앞에 못단이 있습니다. 제물을 태우는 곳입니다. 그 단 옆에 큰 바다가 있습니다. 아무리 물통이 커봐야 우리 예배당만큼 크진 않습니다. 그렇게 크기는 큰데 바다라고 하기 까지야, 목욕탕도 작은 건데 바다라고 한 것은 바다란 깊은 곳이고 넓은 곳입니다. 그래서 씻는데 깊이 씻어라, 넓이 씻어라 전부 다 씻어라, 강조하면 평생 생활은 씻는 생활입니다. 씻는 걸 크게 말하면 현재를 기점으로 지난 달의 잘못을 회개하고 묻은 때를 벗겨내고 씻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깊이 깊이 씻으라 넓게 씻으라 그리고 오늘 공부하는 좌우에 다섯 개 전부 열 개인데 물두멍을 받쳐주는 것입니다. 복잡하다. 말하면 준비, 성전 구조물 하나하나에역할을 생각해보는 겁니다. 다락이란 이런 것이다. 바다는 씻는 것이다. 받쳐주는 것이지요. 바침이 없으면 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씻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굉장히 불편하겠지요. 굳이 받침을 놨습니다. 받침대는 몸통이 있고 어깨가 있습니다. 그게 대부분입니다. 이걸 이제 살펴보는 것입니다. 몸통 모양은 4규빗 4규빗 정사각형입니다. 안정된 모습입니다. 안정된 모습의 그런 통이고 몸통입니다. 몸통 위에 자리가 있고 테두리가 있고 이렇습니다. 몸통 옆에 사자 소 그런 게 몸통이고 하단에는 발이 달려있고 바퀴가 있고 이래 생긴 것입니다. 몸통은 4규빗 4규빗입니다. 그리고 상단 위에는 먹는 자리가 있고 그리고 내민 게 있고 원형 모양의 겉은 사각으로 되어있습니다. 테두리가 있고 하단에는 발이 달려있고 어깨같은 게 있고 그 옆에는 바퀴가 있고 이렇게 되어있는게 받침입니다. 그래서 27절 놋이라는 것은 무엇이라고요. 연단입니다. 연단이란 두드려서 사람을 두드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은 현실이라는 것이라 현실을 주실 때 연단을 받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회개하고 말씀을 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회개 안하고 연단이 안 되는 겁니다. 잠오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힘들면 피하고 도망치고 그러면 노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되는대로 따라가면 사람 따라 유행따라 어려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나름대로 지조를 가지고 이몸이 죽고 죽어 누굽니까. 지키려다가 죽어버렸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왕 지키려고 목숨 바쳤습니다. 부산에서는 해운대는 다를련지 모르겠습니다. 해운대 쪽의 고등학생들은 다를 것이고 대치동쪽의 학생들은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3-4시간 하고 죽도록 한답니다. 그리 되기 까지는 연단이 필요한 겁니다. 아침에 피곤하면 새벽기도 안 오고 일이 바빠서 피곤해서 할 일 다 하고 새벽기도 하고 무슨 신앙생활 하고, 그럴 때 어려워도 힘들어도 회개하고 지키는 게 신앙입니다. 연단이 되는 것입니다. 열을 만들었으니 넓이가 가로세로 네 규빗입니다. 전부 다입니다. 네 규빗이라 그 바침을 제거, 제거라는 말이 어려운데 받침의 생긴 모양이 이러하니 판이 있습니다. 비어있지 않고 안에 판이 있고 29절 판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사자와 소와 그 판에 있습니다. 새겨져 있습니다. 몸통입니다. 판에 사자와 소와 그런 것들이 있다. 말씀 생활에 있다. 회개하는 사람은 치료가 되고 회개는 치료고 땅으로 말하면 거름을 뿌리는 겁니다. 그걸 심으면 잘 자랍니다. 그리고 말씀 생활에 무조건 승리하는 겁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주님을 믿는 생활이 편리한 것입니다. 말씀 생활에는 무조건 이깁니다.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은 양심을 써서 하나님 앞에 속을 썩였고 수도 없이 날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참고 참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그렇게 수 많은 기회를 주셨는데 날려서 그정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전쟁을 해서 100전 50승하면 반 토막이고 100전 70승하면 70퍼센트 이긴 것이고 30승하면 70퍼센트 진 것입니다. 승리가 많을수록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사자는 회개 생활입니다. 말이 많으면 좋지 않습니다. 말은 최대한 줄이는 게 좋습니다. 그리 나가면 주님 동행이 되어집니다.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습니다. 놓는 자리는 보이지 않는 수입니다. 뭐든지 가정이 가정으로 가정 답게 아버지든 희생이든 수고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움직이면 말 없이 있는 겁니다.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새겨져 있습니다. 30절 그 받침에 각각 놋 바퀴와 축이 있습니다. 자동차도 바퀴와 옛날에는 다 그랬습니다. 요즘 자동차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은 바퀴와 바퀴를 연결해서 축이 있습니다. 발 밑에는 어깨같은 게 있는데 어깨 같은 것은 바퀴는 동그랗게 생겼겠죠 어깨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어깨는 사람 어깨처럼 생겼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어깨라는 의미는 제사장들이 옷에 어깨 위에 견장을 붙입니다.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서 놓습니다. 열두 지파를 다 책임지는 메는 것이고 책임 진다는 것이지요. 발 밑에 있습니다. 어깨라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지금 그 설명이 받침이라는 설명이고 그것은 회개니까 떠받쳐주는 게 어깨입니다. 말씀 순종하려고 하려면 손해보는 게 많습니다. 믿는 사람이 무엇이든지 책임지는 게 없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출발할 때부터 따라가는 겁니다. 말씀 생활은 책임을 지는데 그것은 자기가 희생이 되는 것이고 수고하는 것이고 자기 자신도, 책임지면 영광이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받침에 바퀴에 축은 연결이 되었는데 바퀴의 높이는 각각 한 규빗 반입니다. 자동차 타이어 높이 정도 됩니까. 반이며 바퀴의 제도, 생긴 모양, 그 축과 살과 다 부어 만들었고 다 당연한 건데 그리고 병거, 전투 신앙. 마차, 전쟁할 때 끌고 요즘으로 말하면 탱크, 장갑차 같은 것입니다. 그 바퀴가 굉장히 튼튼해야합니다. 바퀴는 같은 재료같은데 다 부어만들었습니다.
받침의 둥근테두리입니다. 전부 다 테두리가 있고 테두리 높이가 반 규빗입니다. 내민 것이 있는데 내민 것 말고 혼돈되는 게 이 부분인데 한 규빗 되게 되는 게 있고 버팀대가 또 있는데 이 버팀대가 내미는 걸 따로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31절 고가 한 규빗 되게 한 규빗 반 되게하고 나머지는 하면 받침에 버팀대가 있는데 판이 있습니다. 그러면 36절에 보니까 버팀대 놋판이 있습니다. 그 밑에는 다른 거니까 빈 곳을 따라 그거는 다른 것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님을 모시는 것은 깨끗이 기본입니다. 깨끗하지 않으면 신앙 출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