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10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9-10조회 317추천 30
2023년 9월 10일 주일 오후
찬송: 108장, 148장
본문: 열왕기상 6장 2절
신앙생활은 다 모든 것이 필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연성이란 자연성인데 조금 더 강조해서 필연성이라고 합니다. 자연성 필연성이라는 말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깨지는 겁니다. 이런 것을 말하면 자연이라고 그렇고 그걸 강조하면 필연이라고 그렇습니다 반드시 필연적으로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은 반드시 그렇게 하게 되어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제가 아니고 자의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식의 왕 논리의 왕 가치관을 가지고 합니다. 금반지하고 맛있는 과자를 주면 아이들은 과자를 가져가지 금반지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지식이 없다는 말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보이는대로 세상에서도 배운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나라마다 지식성이 있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은 국민들을 가르치려 그럽니다. 모르면 결국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알면 아는 범위 안에서 가치를 알게 되어있고 가치를 따져서 가치가 큰 것을 따라갑니다. 이런 것은 논리적이라고 합니다. 논리를 따지고 이런 걸 모르면 눈에 보이는대로 취하고 이러면 참 문제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지식이고 그게 기초로 삼아서 가치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조롱을 당하고 그래도 주일을 꼬박꼬박 지킵니다. 신앙에 힘을 쓰는 거하고 자기 나름대로 가치를 알아준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은 믿음이 있어야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것으로 따져나가는 사람이 믿음 생활을 안할 수가 없는 것이고 가치를 따져서 좋은 것을 취하고 그러면 따지는 것의 변수가 바로 마귀의 역사입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인데 논리적으로 가치를 따져나가는 사람이라면 어둡습니다. 이성적인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어려운데 다른 것을 미혹을 줍니다. 그것은 감성이라든지 다른 약한 면을 건드려서 뻔히 알면서도 넘어지게 됩니다. 어쨌든 기독교는 논리로 따져야합니다. 그래서 옳고 바르고 그런 것을 찾습니다. 상식적으로 기억하십시다. 성전은 한 번 더 전체 구조를 살펴보면 입구가 동쪽에 있습니다. 동쪽에서 방향으로 말하면 서쪽의 반대지요. 동쪽인데 하나님이 동쪽에 계신다 그런데 방향만 가지고 뭘 하면 안되는 겁니다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성소는 지성소는 입구로 말하면 동쪽에서 출발하면 하나님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독립하면서 그럴 수도 있는 겁니다. 성전 해석에 생각해봅니다. 동쪽입니다.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 안에 들어서면 마당이 있습니다. 마당에 한 가운데 바다가 있습니다. 크기가 크기라 동서남북으로 세 마리씩 열 두 마리 소가 받치고 있습니다. 삼천 밭이라고 그럽니다.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좌우로 물통이 5개씩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물을 짓고 있습니다. 뜰에서 성전 본체로 들어가면 기둥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소가 있습니다. 성전에 동쪽을 가지고 서남으로 돌아가면서 다 만들어놨습니다. 다락을 만들어 놨는데 이게 성전 전체의 구조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 성전 근처에서 전체 규모가 길이가 60입니다. 길이라는 것은 긴다는 뜻인데 성전 본체 길이 장이 60규빗입니다. 길이 전부가 말하면 60이 됩니다. 전부를 가르켜 60규빗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끝까지 성전의 본체의 길이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하나님이 중심이고 주체고 그분이 능동입니다. 그분의 말씀 기쁨 영광 이게 전부지 하나님을 두고 믿는 사람이 자기가 나오면 삐집니다. 그게 전부 자기인데 그거 고치기 전에 아득하게 들여옵니다. 기본적으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거든 자기 부인하면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걸아가야하는데 안 믿는 사람이 일반 생활을 살아가고 한 평생을 살아가다보면 인생길인데 그 전부 다를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하는 것이고 말씀에 가르침을 받는 것인데 전부다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기본적인 가장 가볍게 아무것도 손에 안 들게 합니다.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데 그대로 달려다가 아는 사람 만나서 인사하고 쉬어가고 그럽니다. 말씀이 따라가는데 이런 생각 저것 다 따라가면 안됩니다. 어느 정도 자라가면 세상에 있다는 말은 이방의 도움을 받아서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중심은 늘 성전이 중심이지 신앙생활이 어려운겁니다. 어쨌든 가다가 쉬면서도 끝까지 가야 신앙생활이 성공이 되어집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마지막까지입니다. 넓이는 넓다고 하는 것입니다. 20규빗입니다. 품이라고 합니다. 자기 품. 우리 가족들끼리 사는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불편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잠자리에 아는 사람이라도 잠자기 쉽지 않습니다. 남의 자녀를 데려다 양자를 삼는 건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일반적인데 한국에서는 안그렇습니다. 과거 서부교회 반사를 하지만 반사라 그러면 예사였습니다. 집에 데려다가 밥 먹이고 고등학생 즈음 되니까 물건을 훔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런 자세를 가져야하고 가까운 사람을 챙겨야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입니다. 가장이 가정 돌볼 줄 모르고 주부가 남편을 모르고 그러는 거 보통 일 아니라지요.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신 성전이 있는데 모피는 올라가면 됩니다. 30규빗, 하나님을 향해서 점점 온전하고 깨끗하게 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성전은 신앙생활입니다. 점점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이고 하나 생각이 소원이 욕심이 취미가 이상이 이런 것들이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게 되어야합니다. 취미도 이런 거 하지 말고 초월하고 이왕이면은 어디 놀러다니는 것 보다도 산기도 가는 게 취미로 나을 것이고 다른 것 보다는 성경 보는 게 나을 것이고 그렇습니다. 올라가면서 영생을 하는 것인데 높이라고 그렇습니다. 성소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는 20규빗이다. 점점 좁아집니다. 그래서 필연성입니다. 하나님향해 올라가다보면 사람이 없어집니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없어지고 자기 밑으로 사람이 생깁니다. 점점 올라가서 보니까 비슷한 사람도 줄고 산입니다. 밑으로 사람이 많아지는데 주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가 배운 사람은 은혜받은 사람 줄어들어야합니다. 지성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좀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평소에도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좁다, 무조건 어려운 일만 맞춰간다는 것은 살기 어렵고 신앙생활은 고행주의는 넓은 길입니다. 좁은 문은 정확한 겁니다. 갈수록 점점 정확한 것입니다. 점점 더 세밀해집니다. 그래서 얼마나 더 작은 것을 찾아내느냐 이걸 쓸 수 있는 것이 과학입니다. 지성소는 좌우 길이도 넓이도 높이도 20규빗이다 정사각형입니다. 규격입니다.
집이 있으면 방만 있으면 됩니까. 잠자는 안방만 있으면 되지. 식당도 있고 주방도 있고 다용도실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다 있듯이 필요할 듯이 온전한 집이 되는 것처럼 낭실 다락 이런 게 있어야 집다운 집이 됩니다. 이런 양식이나 그런 것들이 믿는 사람들의 성전이니까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성전이고 나 자신에게 있어야하고 나에게 있어야한다. 집회 가서 좀 다르지만 텐트를 쳐서 없으면 불편하다,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봅니다. 예배시작 10분 전부터 교독하고 찬송을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에는 예배당가는데 자기 옷차림이나 머리나 돌아보는게 낭실의 생활입니다. 예배 시작 전에 앉아서도 좀 준비하는 게 낭실입니다. 그런 논리로 따진다면 지각하는 사람들은 낭실이 없고 쑥 들어오는 겁니다. 예배시간 지각을 하더라도 빨리오는게 마음을 준비하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들어갈 때 조심하고 나올 때 보고, 장이 길이가 20규빗입니다. 길이니까 앞에서 들어가는 게 그리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광이 20규빗이니까 장이 20규빗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길이가 20규빗이고 광이 20규빗이니까 길이가 20규빗이니까 성소의 장 길이잖습니까. 낭실의 장, 길이는 20규빗이고 광은 앞에서부터 있습니다. 60규빗입니다. 창문과 다락방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창문은 채광창이라고 그럽니다. 햇빛을 들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창문이라는 것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고 햇빛과 공기가 순환하는 거, 이게 창문입니다. 변치않는 불변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소망도 진리도 중심도 변치않아야 하는데 창문, 소통이라는 것은 안에 것이 밖에 나오고 안의 것이 밖에 나오는 것은 창문이라는 것은 탁한 공기를 내보내고 성전을 가지고 하면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 받은 은혜, 밖에 나가서 살아야하는 것이고 전부다 이 세상사람인데 성소 안에 들어가야하는 것인데 일반 건축물에는 창의 이탈과 실질적인 성전 위치의 그런 반대라고 합니다. 소통인데 순환인데 안에 것이 밖에 나가고 밖의 것이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산화탄소 이런 것을 내보내고 맑은 공기를 들여보내는 게 역할입니다. 그러니까 말씀 은혜, 성전에서 받은 은혜하고 소통하고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과 같은 것입니다. 떨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배 때 받은 말씀 바깥에 나가서 현실을 살아가다보니까 마음으로 죄짓고 했다가 이게 순환하는 것입니다. 창문, 이러는 것이 하나님 중심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음으로 집이 집답게 되어집니다. 우리의 성전 생활은 잘 모르겠는데, 우리의 성전 생활은 내가 성전이 되어가는 것이고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성전 오신 주님의 말씀과 현실 생활이 떨어지면 안되는 것이고 순환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있어야 성전이 되어야합니다. 영접해서 붙어서 있어야 성전이 성전 답게 되는 겁니다. 제가 신풍도 있고 조례 교회는 안에 있는 거 같고 대동 교회하고 세종 교회하고 서인 교회 가보니까 강남 옆에 작게 설교자가 준비할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거기서 말씀 준비하고 기도하고 그러니까 그게 다락같은 것입니다. 요즘은 다락 잘 없죠. 40세 밑으로 다락 아시는 분 저는 다락에서 많이 살아봤습니다. 벽에 붙은 다락, 그런 보조적인 것인데 다락이란 성전에 붙어있는 보조 부속품인데 본체는 아닌데 없으면 굉장히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다락이라는 것은 중심은 말씀인데 그런 것을 위해서 주일을 예배가 중심입니다. 주일 예배를 위해서 새벽기도를 해야합니다. 주일 예배를 중심으로 하면 새벽기도 같은 거, 새벽 기도를 중심으로 교회가 있는데 찬양대, 또 권찰회인가 다락역할입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자기 신앙 생활에 있습니다.
다락은 항상 위에 있습니다. 외국 삼면에 서쪽 남쪽 북쪽이 있습니다. 어두워도 주님 모시고 어려워도 주님 모시고 이런 것이 다락입니다. 다락의 구조는 3층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1층은 다셧 규빗, 2층 다락은 여섯 규빗 점점 올라갈수록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은 구조를 간단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지성소 성소 낭실 창문 우리가 이런 성전이 되도록 필요한 것이다, 생각해보십시다.
찬송: 108장, 148장
본문: 열왕기상 6장 2절
신앙생활은 다 모든 것이 필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연성이란 자연성인데 조금 더 강조해서 필연성이라고 합니다. 자연성 필연성이라는 말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약한 것은 강한 것에게 깨지는 겁니다. 이런 것을 말하면 자연이라고 그렇고 그걸 강조하면 필연이라고 그렇습니다 반드시 필연적으로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은 반드시 그렇게 하게 되어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제가 아니고 자의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식의 왕 논리의 왕 가치관을 가지고 합니다. 금반지하고 맛있는 과자를 주면 아이들은 과자를 가져가지 금반지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지식이 없다는 말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보이는대로 세상에서도 배운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나라마다 지식성이 있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은 국민들을 가르치려 그럽니다. 모르면 결국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알면 아는 범위 안에서 가치를 알게 되어있고 가치를 따져서 가치가 큰 것을 따라갑니다. 이런 것은 논리적이라고 합니다. 논리를 따지고 이런 걸 모르면 눈에 보이는대로 취하고 이러면 참 문제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지식이고 그게 기초로 삼아서 가치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조롱을 당하고 그래도 주일을 꼬박꼬박 지킵니다. 신앙에 힘을 쓰는 거하고 자기 나름대로 가치를 알아준다고 합니다. 기독교 신앙생활은 믿음이 있어야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것으로 따져나가는 사람이 믿음 생활을 안할 수가 없는 것이고 가치를 따져서 좋은 것을 취하고 그러면 따지는 것의 변수가 바로 마귀의 역사입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인데 논리적으로 가치를 따져나가는 사람이라면 어둡습니다. 이성적인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어려운데 다른 것을 미혹을 줍니다. 그것은 감성이라든지 다른 약한 면을 건드려서 뻔히 알면서도 넘어지게 됩니다. 어쨌든 기독교는 논리로 따져야합니다. 그래서 옳고 바르고 그런 것을 찾습니다. 상식적으로 기억하십시다. 성전은 한 번 더 전체 구조를 살펴보면 입구가 동쪽에 있습니다. 동쪽에서 방향으로 말하면 서쪽의 반대지요. 동쪽인데 하나님이 동쪽에 계신다 그런데 방향만 가지고 뭘 하면 안되는 겁니다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이 계신 성소는 지성소는 입구로 말하면 동쪽에서 출발하면 하나님이 사모하는 마음으로 독립하면서 그럴 수도 있는 겁니다. 성전 해석에 생각해봅니다. 동쪽입니다.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 안에 들어서면 마당이 있습니다. 마당에 한 가운데 바다가 있습니다. 크기가 크기라 동서남북으로 세 마리씩 열 두 마리 소가 받치고 있습니다. 삼천 밭이라고 그럽니다. 그 바다는 제사장들이 좌우로 물통이 5개씩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물을 짓고 있습니다. 뜰에서 성전 본체로 들어가면 기둥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소가 있습니다. 성전에 동쪽을 가지고 서남으로 돌아가면서 다 만들어놨습니다. 다락을 만들어 놨는데 이게 성전 전체의 구조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 성전 근처에서 전체 규모가 길이가 60입니다. 길이라는 것은 긴다는 뜻인데 성전 본체 길이 장이 60규빗입니다. 길이 전부가 말하면 60이 됩니다. 전부를 가르켜 60규빗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끝까지 성전의 본체의 길이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하나님이 중심이고 주체고 그분이 능동입니다. 그분의 말씀 기쁨 영광 이게 전부지 하나님을 두고 믿는 사람이 자기가 나오면 삐집니다. 그게 전부 자기인데 그거 고치기 전에 아득하게 들여옵니다. 기본적으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거든 자기 부인하면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생을 걸아가야하는데 안 믿는 사람이 일반 생활을 살아가고 한 평생을 살아가다보면 인생길인데 그 전부 다를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하는 것이고 말씀에 가르침을 받는 것인데 전부다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기본적인 가장 가볍게 아무것도 손에 안 들게 합니다. 끝까지 달려갈 수 있는데 그대로 달려다가 아는 사람 만나서 인사하고 쉬어가고 그럽니다. 말씀이 따라가는데 이런 생각 저것 다 따라가면 안됩니다. 어느 정도 자라가면 세상에 있다는 말은 이방의 도움을 받아서 끊을 수 없기 때문에 세상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중심은 늘 성전이 중심이지 신앙생활이 어려운겁니다. 어쨌든 가다가 쉬면서도 끝까지 가야 신앙생활이 성공이 되어집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마지막까지입니다. 넓이는 넓다고 하는 것입니다. 20규빗입니다. 품이라고 합니다. 자기 품. 우리 가족들끼리 사는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불편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잠자리에 아는 사람이라도 잠자기 쉽지 않습니다. 남의 자녀를 데려다 양자를 삼는 건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일반적인데 한국에서는 안그렇습니다. 과거 서부교회 반사를 하지만 반사라 그러면 예사였습니다. 집에 데려다가 밥 먹이고 고등학생 즈음 되니까 물건을 훔친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런 자세를 가져야하고 가까운 사람을 챙겨야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입니다. 가장이 가정 돌볼 줄 모르고 주부가 남편을 모르고 그러는 거 보통 일 아니라지요.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신 성전이 있는데 모피는 올라가면 됩니다. 30규빗, 하나님을 향해서 점점 온전하고 깨끗하게 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성전은 신앙생활입니다. 점점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이고 하나 생각이 소원이 욕심이 취미가 이상이 이런 것들이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게 되어야합니다. 취미도 이런 거 하지 말고 초월하고 이왕이면은 어디 놀러다니는 것 보다도 산기도 가는 게 취미로 나을 것이고 다른 것 보다는 성경 보는 게 나을 것이고 그렇습니다. 올라가면서 영생을 하는 것인데 높이라고 그렇습니다. 성소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는 20규빗이다. 점점 좁아집니다. 그래서 필연성입니다. 하나님향해 올라가다보면 사람이 없어집니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없어지고 자기 밑으로 사람이 생깁니다. 점점 올라가서 보니까 비슷한 사람도 줄고 산입니다. 밑으로 사람이 많아지는데 주변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가 배운 사람은 은혜받은 사람 줄어들어야합니다. 지성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좀은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평소에도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좁다, 무조건 어려운 일만 맞춰간다는 것은 살기 어렵고 신앙생활은 고행주의는 넓은 길입니다. 좁은 문은 정확한 겁니다. 갈수록 점점 정확한 것입니다. 점점 더 세밀해집니다. 그래서 얼마나 더 작은 것을 찾아내느냐 이걸 쓸 수 있는 것이 과학입니다. 지성소는 좌우 길이도 넓이도 높이도 20규빗이다 정사각형입니다. 규격입니다.
집이 있으면 방만 있으면 됩니까. 잠자는 안방만 있으면 되지. 식당도 있고 주방도 있고 다용도실도 있고 화장실도 있고 다 있듯이 필요할 듯이 온전한 집이 되는 것처럼 낭실 다락 이런 게 있어야 집다운 집이 됩니다. 이런 양식이나 그런 것들이 믿는 사람들의 성전이니까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성전이고 나 자신에게 있어야하고 나에게 있어야한다. 집회 가서 좀 다르지만 텐트를 쳐서 없으면 불편하다,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봅니다. 예배시작 10분 전부터 교독하고 찬송을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오기 전에는 예배당가는데 자기 옷차림이나 머리나 돌아보는게 낭실의 생활입니다. 예배 시작 전에 앉아서도 좀 준비하는 게 낭실입니다. 그런 논리로 따진다면 지각하는 사람들은 낭실이 없고 쑥 들어오는 겁니다. 예배시간 지각을 하더라도 빨리오는게 마음을 준비하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들어갈 때 조심하고 나올 때 보고, 장이 길이가 20규빗입니다. 길이니까 앞에서 들어가는 게 그리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광이 20규빗이니까 장이 20규빗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길이가 20규빗이고 광이 20규빗이니까 길이가 20규빗이니까 성소의 장 길이잖습니까. 낭실의 장, 길이는 20규빗이고 광은 앞에서부터 있습니다. 60규빗입니다. 창문과 다락방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창문은 채광창이라고 그럽니다. 햇빛을 들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창문이라는 것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고 햇빛과 공기가 순환하는 거, 이게 창문입니다. 변치않는 불변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소망도 진리도 중심도 변치않아야 하는데 창문, 소통이라는 것은 안에 것이 밖에 나오고 안의 것이 밖에 나오는 것은 창문이라는 것은 탁한 공기를 내보내고 성전을 가지고 하면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 받은 은혜, 밖에 나가서 살아야하는 것이고 전부다 이 세상사람인데 성소 안에 들어가야하는 것인데 일반 건축물에는 창의 이탈과 실질적인 성전 위치의 그런 반대라고 합니다. 소통인데 순환인데 안에 것이 밖에 나가고 밖의 것이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산화탄소 이런 것을 내보내고 맑은 공기를 들여보내는 게 역할입니다. 그러니까 말씀 은혜, 성전에서 받은 은혜하고 소통하고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과 같은 것입니다. 떨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배 때 받은 말씀 바깥에 나가서 현실을 살아가다보니까 마음으로 죄짓고 했다가 이게 순환하는 것입니다. 창문, 이러는 것이 하나님 중심입니다. 이런 것들이 있음으로 집이 집답게 되어집니다. 우리의 성전 생활은 잘 모르겠는데, 우리의 성전 생활은 내가 성전이 되어가는 것이고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성전 오신 주님의 말씀과 현실 생활이 떨어지면 안되는 것이고 순환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있어야 성전이 되어야합니다. 영접해서 붙어서 있어야 성전이 성전 답게 되는 겁니다. 제가 신풍도 있고 조례 교회는 안에 있는 거 같고 대동 교회하고 세종 교회하고 서인 교회 가보니까 강남 옆에 작게 설교자가 준비할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거기서 말씀 준비하고 기도하고 그러니까 그게 다락같은 것입니다. 요즘은 다락 잘 없죠. 40세 밑으로 다락 아시는 분 저는 다락에서 많이 살아봤습니다. 벽에 붙은 다락, 그런 보조적인 것인데 다락이란 성전에 붙어있는 보조 부속품인데 본체는 아닌데 없으면 굉장히 불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다락이라는 것은 중심은 말씀인데 그런 것을 위해서 주일을 예배가 중심입니다. 주일 예배를 위해서 새벽기도를 해야합니다. 주일 예배를 중심으로 하면 새벽기도 같은 거, 새벽 기도를 중심으로 교회가 있는데 찬양대, 또 권찰회인가 다락역할입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자기 신앙 생활에 있습니다.
다락은 항상 위에 있습니다. 외국 삼면에 서쪽 남쪽 북쪽이 있습니다. 어두워도 주님 모시고 어려워도 주님 모시고 이런 것이 다락입니다. 다락의 구조는 3층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1층은 다셧 규빗, 2층 다락은 여섯 규빗 점점 올라갈수록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오늘은 구조를 간단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지성소 성소 낭실 창문 우리가 이런 성전이 되도록 필요한 것이다, 생각해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