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0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8-20조회 449추천 40
2023년 8월 20일 주일 오후
찬송: 16장, 18장
본문: 열왕기상 5장 5절 ~ 6절
여기 본문에 보니까 5절 세 번째 여호와께서 네 부친 다윗에게 위하여, 위가 높은 데 위 자가 아니라 자리 위 자입니다. 상 위가 아니라 자리라는 뜻입니다. 너를 이어서 임금 자리에, 발음할 때 조심해야합니다. 오전에 지난 주 말씀에 복습을 했고 집을 지었으면 기초가 필요하고 실제 건축에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 재료로 지어야하는데 다른 말로 자제라고 하는데 자제가 나쁘면 그 집이 부실하게 되고 빼먹게 되면 부실공사가 되고 잘못하면 무너집니다. 살아가다보면 사람은 점점 흐려지고 나태해집니다. 그게 모든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세상 떠나는 그날 까지 자신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지막까지 그렇게 하니까 밑에 사람들은 힘들어 죽겠는데 계속 조으면 터져버립니다. 건축하려면 자리가 있어야하고 들어갈 물량이 있어야합니다. 구약의 성전은 물질적이고 신약의 성전은 우리가 성전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위가 성전이고 마음 요소가 성전입니다. 그 인격이 사람 심신 요소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 하나 하나가 전부 집을 다 지어졌습니다. 이 지어진 집을 분해하면 재료가 나와야겠지요. 이것들이 조립이 돼서 그렇게 되는 거처럼 사람의 여러 가지 지체가 모여서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 성전을 지으려면 나의 심신, 성전 전문 쟤료들입니다.
재료가 부실하면 옛날에 집에 지을 때 모래가 많아서 바다 모래를 써서 건축 부실한 데가 있었습니다. 자제가 부실하면 건축물이 부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고로 화려하고 동시에 튼튼해야해서 솔로몬의 성정입니다. 금으로 은으로 백향목으로 그렇게 최고 좋은 재료들 모아서 집을 지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야합니다. 잘 믿어서 성화된 분들을 보면 어떤 사건 처리하는 거 사리 판단하는 거 철저하고 존경스럽고 그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앞선 종들의 생애는 전기를 읽어보면 좋은 겁니다. 그런 경우도 신앙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인격이고 그런 재료를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처신 하나 처리 하나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인격이고 그분들의 성전의 그만큼 되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 하나 가지고 성전이 될 수 없고 돌 하나 만으로 될 수 없고 돌이 아주 좋아도 성전의 한 모퉁이에 세우더라도 그걸로는 안됩니다. 금으로 해도 안됩니다. 놋도 필요하고 백향목도 필요하고 그런 겁니다. 심신의 모든 요소가 성전 재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성전이기 때문에 심신 지체들이니까 그런 재료들이기 때문에 아주 좋은 양지대의 재료들 골재들이 될 때 잘 조합이 되면 성전이 되어집니다. 온전한 성전이란 온전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백향목은 높은 나무입니다. 키가 큰 나무입니다. 우리들이 내 심신 요소가 백향목처럼 높아야한다, 키가 커야하고 높아야하고 우리는 사람이니까 키가 커서 높은 게 아니고 권세가 높아서 높은 것이 아니고 뭐가 높아서 높은 것이 아니고 그 속의 마음의 뜻이 높고 소망이 높고 깨달음이 높고 가치관적으로 평가 비교적으로 보다 더 높은 것을 가져야겠다 그 말이지요. 말도 말을 아무렇게나 하지 말고 또 텔레비전의 웃고 떠드는 그런 것들을 보면 말의 수준이 낮아져버립니다. 고급의 말을 쓰는 게 좋은 겁니다. 그래서 공부를 해도 만화책가지고 하면 좋은 것이고 성경도 그런 것이고, 우리의 생각을 높게 뜻을 높게 말도 높게 행동도 수준 높게 높은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겠다. 깊이가 있어야겠습니다. 깊이 없이 높이 올라가면 무너져버립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사람들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범위를 넓혀서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지식도 그렇고 그래서 백향목은 높은 나무입니다. 깊이 따지고 높이고 깊이 들어가고 넓히고 그러면서 생활에서 말도 행동도 모든 관계도 판단도 비판 평가도 일처리도 그리 될 때 우리라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옥상에서 턱 달려있는데 15층 앞에 올라가면 높이 올라가면 보이겠죠. 그런데 낮으면 안 보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보게 됩니다. 시기도 많고 질투도 많고 요셉은 어릴 때 형제들 사이에서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보디발의 집에 갔을 때는 필요한 게 있었고 시기 질투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애굽 사람들은 요셉을 아버지처럼 생각했습니다. 시기가 많았습니다. 올라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시기질투 하는 사람이 있고 올라가면 별별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창조 위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있는 사람이 성화되면서 되는 그런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짐을 넘어서는 하나님을 나타나는데 있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해 봐야하는 겁니다. 그 다음 백향목은, 높은 나무, 곧은 나무라고 그랬습니다. 높으면서 곧기 때문에 백향목이고 곧은 것은 정직한 것입니다. 바른 것, 반듯한 것, 고정입니다. 말이 반듯해야합니다. 말도 정직하고 처리도 정직하고 모든 것이 곧아야합니다. 정직한 것은 쭉 나가는 건데 치우치는 것은 죽게 놔두는 것입니다. 옆에 무슨 말하든지 생기든지 상관없이 하나님, 진리, 구원 천국 이것만 보고 나가야합니다. 여기에 별별게 다 달라들어 흔들려버리면 안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다들 받아야합니다. 전부 다 돈에 휘둘리고 사람에 휘둘리고 합리화를 시킵니다. 그게 이단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 교회도 옛날에 그런 것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고 없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굽은 것도 요즘은 나무를 가로로 만들어서 진짜베기도 있는 것입니다. 곧아야합니다. 사람들 자체가 곧아야하고 판단이 있어야하고 옳아야합니다. 흔들리거나 꿇리지 않아야합니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그 사람은 자기 죽을 것을 그런 군주 때문에 그렇지만 우리는 주님을 향한 그 단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융통성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릴 때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특징이 융통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타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로지 곧게 만든 사람. 하나님께서 야곱의 곧은 것을 보시고 붙드신 것입니다. 고속도로 갔다가 옛날에 길을 만들 때는 기술이 좋으니까 그러니까 곧게 나가니까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어야하고 사람이란 것은 인격이라는 것은 요소들로 만드는 것이고 작용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모여서 평소 생활이 모여서 다윗이 골리앗을 잡을 때 뭘로 잡았다고. 뭘로 잡았습니까. 물맷돌로 잡았죠. 물맷돌이 어디에 쓰는 겁니다. 평소에 양칠 때 쓰던 것입니다. 양칠 때 늑대가 곰이 오면 쫓아내야하니까 그걸로 잡아버렸습니다. 우리가 감당 못하겠지만 다 하는 겁니다. 평소 생활이 그리 안 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재료가 나쁜데 골재가 나쁜데 나무가 나쁜 나무면 좋은 집이 안 나온 겁니다. 철근이 녹이 슬었으면 좋은 튼튼한 것 안 나옵니다. 시멘트가 약하면 튼튼한 집이 안 나옵니다. 하나 하나 튼튼해야합니다. 이것들의 작용을 움직이니 판단도 그리 관계도 반듯해야 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 구원이라는 것은 철저한 논리고 과학입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30만개가 되어도 빈틈 없이 작동이 되어서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이 로켓이 되는 게 과학입니다. 과학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것보다 철저한게 사람이고 그보다 더한게 마음이고 그보다 더한 게 영입니다. 인간 세계를 초월했기 때문에 철저한 과학이기 때문에 우리가 깨닫지 못해도 되게 되어졌습니다. 사람이 죽으니 부활이 있는데 인간이 없는 건데 부활이 진리에 속한 것이라면 이치에 진리를 하는 것입니다만 말하기 조심스러우나 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이치 논리 그거 때문에 부활이 있지 않겠는가. 성경이 그런 것입니다. 알만하면 들어보고 연구해서 응용도 해야하는데 졸고 있어서 뭔지 모르겠습니다. 곧은 나무가 두 번째, 곧다는 말은 좌 우로 흔들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곧게는 인내가 필요한 겁니다. 굳은 심지가 필요합니다. 이사야 26장입니까. 곧으려면 정직해야, 정직하려면 곧으려고 굳은 심지가 있어야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동되지 않고 온 세상은 곧게 나가는 사람, 그럴 때 흔들지 않아야합니다. 눈에 보이는 저 원수처럼 생긴 적이 나의 적이고 형제의 적이고 부모의 적이고 집안의 적이 나를 만나면 내 편이 됩니다. 문제는 원수가 내 집안 식구가 되어서 내 편들이 나를 곧게 만들었는데 그 사실을 내가 깨닫지 못하면 왜 못 느끼는가 자기중심 살면서 못 느끼면 어렵습니다.
우리는 별 수 없습니다. 워낙 오래동안 백 목사님 밑에서 배워서 이겨온 거지 지식이 사람을 만듭니다. 자기 속에 다른 게 들어가지고 그런 겁니다. 좌우로 피동되고 치우치고 안되는겁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내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 부인을 하고 나보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를 미워해야 주님을 따라올 수 있습니다. 염세주의입니까. 향기라는 것은 좋은 냄새죠. 반대는 악취입니다. 기본적으로 출발해서 향기는 깨끗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원래의 모습 깨끗하게 되는 것은 악취는 안 나고 향기가 나는 겁니다. 원래 냄새 향취는 다 좋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죄송합니다만 똥을 누고 색이 노랗습니다. 똥 좋네 그렇습니다. 똥은 냄새가 똥 냄새가 나야합니다. 이게 원래 똥입니다. 똥이 하얀색이 되면 큰 병이 생긴겁니다. 검은 색이 되면 진짜 위험한 것입니다. 깨끗할 때 사람은 비로소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것입니다. 사람의 정신이 깨끗하고 판단이 깨끗하고 행동이 깨끗하고 섞여있찌 않습니다. 하늘의 소망이 전부고 그렇스니다. 그런 자기 마음이 될 때 향기가 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타락했고 변질이 됐기 때문에 악취가 납니다. 냄새가 납니다. 사람이 변질되면 냄새가 납니다. 어느 유명한 교수가 이화여대인가 하니까 코를 막고 냄새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는 분은 알 건데.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날개처럼 입었는데 그 교수가 보니까 타락이 돼서 악취가 나서 아이고 냄새야 이랬다고 합니다. 변질이 되면 악취가 난다고 합니다. 욕심이 생각이 말이 그 행동이 생활이 깨끗하게 되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 중심대로. 깨끗하게 살아나가면 좋은 겁니다. 그런 사람은 동남풍이 들어도 예수 향만 핍니다. 그런 사람 그런 인격 그런 심신의 요소,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한 번 보고 또 보고 세월 속에 일처리하는 거 생활 속에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은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향기 좋은 것입니다. 큰 소리치고 주먹질하고 소리지르고 싸움하면 쉽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필요합니다. 다윗도 수많은 전투를 치뤘습니다. 그럴 때는 그렇게하지만은 향기라는 것은 화를 내서 윽박 질러서 싸워서 되는 게 아닙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칼로 쪼개는 건데 방법은 주님의 십자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불편한 자리에 내가 앉아버리면 됩니다.
어느 순간 보니까 애굽나라에게 다 점령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그만큼 안되는데 노력을 해야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모시면 재료입니다. 이런 우리가 되어야 하나님 없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는 레바논이 이방입니다. 이방이라는 것은 세상이고 이 세상은 세상인데 타락한 세상 저주 아래 있는 세상인데 믿는 사람이게는 주님 대속으로 되면서 백향목재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춥고 험한 곳입니다. 위험한 곳이 레바논 이고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사는 것은 단련이 되어야합니다. 성전 재료가 되는 심신, 중점으로 높은 나무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6장, 18장
본문: 열왕기상 5장 5절 ~ 6절
여기 본문에 보니까 5절 세 번째 여호와께서 네 부친 다윗에게 위하여, 위가 높은 데 위 자가 아니라 자리 위 자입니다. 상 위가 아니라 자리라는 뜻입니다. 너를 이어서 임금 자리에, 발음할 때 조심해야합니다. 오전에 지난 주 말씀에 복습을 했고 집을 지었으면 기초가 필요하고 실제 건축에는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 재료로 지어야하는데 다른 말로 자제라고 하는데 자제가 나쁘면 그 집이 부실하게 되고 빼먹게 되면 부실공사가 되고 잘못하면 무너집니다. 살아가다보면 사람은 점점 흐려지고 나태해집니다. 그게 모든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세상 떠나는 그날 까지 자신을 단속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지막까지 그렇게 하니까 밑에 사람들은 힘들어 죽겠는데 계속 조으면 터져버립니다. 건축하려면 자리가 있어야하고 들어갈 물량이 있어야합니다. 구약의 성전은 물질적이고 신약의 성전은 우리가 성전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위가 성전이고 마음 요소가 성전입니다. 그 인격이 사람 심신 요소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그 하나 하나가 전부 집을 다 지어졌습니다. 이 지어진 집을 분해하면 재료가 나와야겠지요. 이것들이 조립이 돼서 그렇게 되는 거처럼 사람의 여러 가지 지체가 모여서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 성전을 지으려면 나의 심신, 성전 전문 쟤료들입니다.
재료가 부실하면 옛날에 집에 지을 때 모래가 많아서 바다 모래를 써서 건축 부실한 데가 있었습니다. 자제가 부실하면 건축물이 부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고로 화려하고 동시에 튼튼해야해서 솔로몬의 성정입니다. 금으로 은으로 백향목으로 그렇게 최고 좋은 재료들 모아서 집을 지었습니다. 우리 자신을 최고의 재료로 만들어야합니다. 잘 믿어서 성화된 분들을 보면 어떤 사건 처리하는 거 사리 판단하는 거 철저하고 존경스럽고 그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앞선 종들의 생애는 전기를 읽어보면 좋은 겁니다. 그런 경우도 신앙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인격이고 그런 재료를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처신 하나 처리 하나 이런 것들이 모여서 인격이고 그분들의 성전의 그만큼 되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 하나 가지고 성전이 될 수 없고 돌 하나 만으로 될 수 없고 돌이 아주 좋아도 성전의 한 모퉁이에 세우더라도 그걸로는 안됩니다. 금으로 해도 안됩니다. 놋도 필요하고 백향목도 필요하고 그런 겁니다. 심신의 모든 요소가 성전 재료 말씀하신 그대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성전이기 때문에 심신 지체들이니까 그런 재료들이기 때문에 아주 좋은 양지대의 재료들 골재들이 될 때 잘 조합이 되면 성전이 되어집니다. 온전한 성전이란 온전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백향목은 높은 나무입니다. 키가 큰 나무입니다. 우리들이 내 심신 요소가 백향목처럼 높아야한다, 키가 커야하고 높아야하고 우리는 사람이니까 키가 커서 높은 게 아니고 권세가 높아서 높은 것이 아니고 뭐가 높아서 높은 것이 아니고 그 속의 마음의 뜻이 높고 소망이 높고 깨달음이 높고 가치관적으로 평가 비교적으로 보다 더 높은 것을 가져야겠다 그 말이지요. 말도 말을 아무렇게나 하지 말고 또 텔레비전의 웃고 떠드는 그런 것들을 보면 말의 수준이 낮아져버립니다. 고급의 말을 쓰는 게 좋은 겁니다. 그래서 공부를 해도 만화책가지고 하면 좋은 것이고 성경도 그런 것이고, 우리의 생각을 높게 뜻을 높게 말도 높게 행동도 수준 높게 높은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겠다. 깊이가 있어야겠습니다. 깊이 없이 높이 올라가면 무너져버립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사람들 인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범위를 넓혀서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지식도 그렇고 그래서 백향목은 높은 나무입니다. 깊이 따지고 높이고 깊이 들어가고 넓히고 그러면서 생활에서 말도 행동도 모든 관계도 판단도 비판 평가도 일처리도 그리 될 때 우리라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옥상에서 턱 달려있는데 15층 앞에 올라가면 높이 올라가면 보이겠죠. 그런데 낮으면 안 보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보게 됩니다. 시기도 많고 질투도 많고 요셉은 어릴 때 형제들 사이에서 시기가 있고 질투가 있고 보디발의 집에 갔을 때는 필요한 게 있었고 시기 질투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애굽 사람들은 요셉을 아버지처럼 생각했습니다. 시기가 많았습니다. 올라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시기질투 하는 사람이 있고 올라가면 별별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창조 위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있는 사람이 성화되면서 되는 그런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짐을 넘어서는 하나님을 나타나는데 있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해 봐야하는 겁니다. 그 다음 백향목은, 높은 나무, 곧은 나무라고 그랬습니다. 높으면서 곧기 때문에 백향목이고 곧은 것은 정직한 것입니다. 바른 것, 반듯한 것, 고정입니다. 말이 반듯해야합니다. 말도 정직하고 처리도 정직하고 모든 것이 곧아야합니다. 정직한 것은 쭉 나가는 건데 치우치는 것은 죽게 놔두는 것입니다. 옆에 무슨 말하든지 생기든지 상관없이 하나님, 진리, 구원 천국 이것만 보고 나가야합니다. 여기에 별별게 다 달라들어 흔들려버리면 안됩니다. 양심의 가책을 다들 받아야합니다. 전부 다 돈에 휘둘리고 사람에 휘둘리고 합리화를 시킵니다. 그게 이단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 교회도 옛날에 그런 것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고 없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굽은 것도 요즘은 나무를 가로로 만들어서 진짜베기도 있는 것입니다. 곧아야합니다. 사람들 자체가 곧아야하고 판단이 있어야하고 옳아야합니다. 흔들리거나 꿇리지 않아야합니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그 사람은 자기 죽을 것을 그런 군주 때문에 그렇지만 우리는 주님을 향한 그 단심을 기르는 것입니다. 융통성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릴 때는 야곱이라는 사람이 특징이 융통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타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로지 곧게 만든 사람. 하나님께서 야곱의 곧은 것을 보시고 붙드신 것입니다. 고속도로 갔다가 옛날에 길을 만들 때는 기술이 좋으니까 그러니까 곧게 나가니까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인격이 있어야하고 사람이란 것은 인격이라는 것은 요소들로 만드는 것이고 작용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모여서 평소 생활이 모여서 다윗이 골리앗을 잡을 때 뭘로 잡았다고. 뭘로 잡았습니까. 물맷돌로 잡았죠. 물맷돌이 어디에 쓰는 겁니다. 평소에 양칠 때 쓰던 것입니다. 양칠 때 늑대가 곰이 오면 쫓아내야하니까 그걸로 잡아버렸습니다. 우리가 감당 못하겠지만 다 하는 겁니다. 평소 생활이 그리 안 되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하는 것입니다. 재료가 나쁜데 골재가 나쁜데 나무가 나쁜 나무면 좋은 집이 안 나온 겁니다. 철근이 녹이 슬었으면 좋은 튼튼한 것 안 나옵니다. 시멘트가 약하면 튼튼한 집이 안 나옵니다. 하나 하나 튼튼해야합니다. 이것들의 작용을 움직이니 판단도 그리 관계도 반듯해야 되는 겁니다. 기독교 신앙 구원이라는 것은 철저한 논리고 과학입니다. 과학이라는 것은 30만개가 되어도 빈틈 없이 작동이 되어서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이 로켓이 되는 게 과학입니다. 과학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것보다 철저한게 사람이고 그보다 더한게 마음이고 그보다 더한 게 영입니다. 인간 세계를 초월했기 때문에 철저한 과학이기 때문에 우리가 깨닫지 못해도 되게 되어졌습니다. 사람이 죽으니 부활이 있는데 인간이 없는 건데 부활이 진리에 속한 것이라면 이치에 진리를 하는 것입니다만 말하기 조심스러우나 길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이치 논리 그거 때문에 부활이 있지 않겠는가. 성경이 그런 것입니다. 알만하면 들어보고 연구해서 응용도 해야하는데 졸고 있어서 뭔지 모르겠습니다. 곧은 나무가 두 번째, 곧다는 말은 좌 우로 흔들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곧게는 인내가 필요한 겁니다. 굳은 심지가 필요합니다. 이사야 26장입니까. 곧으려면 정직해야, 정직하려면 곧으려고 굳은 심지가 있어야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동되지 않고 온 세상은 곧게 나가는 사람, 그럴 때 흔들지 않아야합니다. 눈에 보이는 저 원수처럼 생긴 적이 나의 적이고 형제의 적이고 부모의 적이고 집안의 적이 나를 만나면 내 편이 됩니다. 문제는 원수가 내 집안 식구가 되어서 내 편들이 나를 곧게 만들었는데 그 사실을 내가 깨닫지 못하면 왜 못 느끼는가 자기중심 살면서 못 느끼면 어렵습니다.
우리는 별 수 없습니다. 워낙 오래동안 백 목사님 밑에서 배워서 이겨온 거지 지식이 사람을 만듭니다. 자기 속에 다른 게 들어가지고 그런 겁니다. 좌우로 피동되고 치우치고 안되는겁니다. 누가 뭐라 그래도 내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 부인을 하고 나보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를 미워해야 주님을 따라올 수 있습니다. 염세주의입니까. 향기라는 것은 좋은 냄새죠. 반대는 악취입니다. 기본적으로 출발해서 향기는 깨끗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원래의 모습 깨끗하게 되는 것은 악취는 안 나고 향기가 나는 겁니다. 원래 냄새 향취는 다 좋은 것입니다. 아이들이 죄송합니다만 똥을 누고 색이 노랗습니다. 똥 좋네 그렇습니다. 똥은 냄새가 똥 냄새가 나야합니다. 이게 원래 똥입니다. 똥이 하얀색이 되면 큰 병이 생긴겁니다. 검은 색이 되면 진짜 위험한 것입니다. 깨끗할 때 사람은 비로소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것입니다. 사람의 정신이 깨끗하고 판단이 깨끗하고 행동이 깨끗하고 섞여있찌 않습니다. 하늘의 소망이 전부고 그렇스니다. 그런 자기 마음이 될 때 향기가 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타락했고 변질이 됐기 때문에 악취가 납니다. 냄새가 납니다. 사람이 변질되면 냄새가 납니다. 어느 유명한 교수가 이화여대인가 하니까 코를 막고 냄새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는 분은 알 건데. 아름답게 화장을 하고 날개처럼 입었는데 그 교수가 보니까 타락이 돼서 악취가 나서 아이고 냄새야 이랬다고 합니다. 변질이 되면 악취가 난다고 합니다. 욕심이 생각이 말이 그 행동이 생활이 깨끗하게 되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 중심대로. 깨끗하게 살아나가면 좋은 겁니다. 그런 사람은 동남풍이 들어도 예수 향만 핍니다. 그런 사람 그런 인격 그런 심신의 요소,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한 번 보고 또 보고 세월 속에 일처리하는 거 생활 속에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은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향기 좋은 것입니다. 큰 소리치고 주먹질하고 소리지르고 싸움하면 쉽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필요합니다. 다윗도 수많은 전투를 치뤘습니다. 그럴 때는 그렇게하지만은 향기라는 것은 화를 내서 윽박 질러서 싸워서 되는 게 아닙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칼로 쪼개는 건데 방법은 주님의 십자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불편한 자리에 내가 앉아버리면 됩니다.
어느 순간 보니까 애굽나라에게 다 점령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그만큼 안되는데 노력을 해야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모시면 재료입니다. 이런 우리가 되어야 하나님 없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때는 레바논이 이방입니다. 이방이라는 것은 세상이고 이 세상은 세상인데 타락한 세상 저주 아래 있는 세상인데 믿는 사람이게는 주님 대속으로 되면서 백향목재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춥고 험한 곳입니다. 위험한 곳이 레바논 이고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사는 것은 단련이 되어야합니다. 성전 재료가 되는 심신, 중점으로 높은 나무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