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6일 금일 오후
김동민2023-08-16조회 304추천 51
2023년 8월 16일 주일 오후
찬송: 153장
본문: 사무엘하 7장 1절 ~ 3절
왕이 다윗 왕입니다.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감성이라던지 이런 것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의 감성적으로 되어있으면 얼굴 표정이 나오고 생활이 나오게 됩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원한적인 기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 원한을 풀어달라고 말하는데 재판관이 가난하니까 무시합니다. 그런데 계속 가서 간청을 하니까 들어준다고 그랬습니다. 마음에 한이 맺히니까 벌어나게 되는겁니다. 자꾸 무슨 말을 하면 말일 수도 있겠지만 연관된 자기 속에 느껴지는 바 깨달아지는 바가 있는 겁니다. 없는 거는 나오지 않습니다. 말로만 하는 기도, 하나님께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마음에 외쳐서 하나님께 간절한 소원이 되면 기도가 되고 언행과 생활이 맞게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기도한 그대로 말이 가야하고 행동에 따라가야하고 사람이 되어져갈 때 바른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동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서쪽으로 가는 게 있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마음 속에 느낀 바가 있으면 나온 바가 되고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다윗은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480년 세월을 떠돌아다니고 그러면서 한 건데 하나님 자기의 전부의 되는 법괘가 말하자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는 거지요. 목사가 아니라도 장로가 아니라도. 하나님을 알고 교회를 안다면 내 집을 팔아서라도 해야겠다 이런 걸 가지고 있어야 정상적인 믿는 사람입니다. 마음만은 그리 가져야하고 진심으로 해야합니다. 기도하고 그런 소원을 간절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윗은 간절한 소원입니다. 성전을 짓고 싶은데 짓지 말라하니까 있는 힘을 다해서 준비해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드는 기구들의 크기라든지 솔로몬이 지은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길 원했지만 안된다 그러시고 어떻게 보여주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요단강 건너기 전 모세는 그 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들어갈 땅을 모두 보여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지어질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아내냈습니다. 이게 간절한 소원입니다. 성전을 공부하면서 참 성전이 되어야겠다 말과 우리 생활과 따로 된 것이 되고 자기 복음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걸 참고로 기억을 하시고, 공과로 들어가서 성전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집, 다 아시죠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계신 집이 성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에 법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괘가 있고 하나님이 계셔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말할 때 하나님 오신 집이고 말씀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하십니다. 성전을 통해서 달리 말하면 성전을 중심을 역사하신다, 이스라엘의 중심이었고 모든 활동의 중심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하시고 생활하고 있고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성전을 항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위해서 모세가 성막을 만들었을 때 그 안에 기구를 다 넣고 등불을 켜고 향을 키고 하나님 영광에 충만해서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대로 계속 나가면 성전이 되고 구원의 성공이 되어지는데 솔로몬의 성전으로 온전하게 만들어놓고 보여주신 그대로 성전이 바르게 있으면 그들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성전 생활을 점점 멀리하고 성전을 더럽히고 솔로몬이 왕비들에게 끌려갔을 때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기도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점점 쪼그라들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성전이 없어서 망했고 남쪽 유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집이고 말씀이 계신 집인데 성전을 통해 역사하신다, 중심이 성전입니다. 우리들이 온전한 성전이 되도록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이 역사이십니다. 하나님을 모신 집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모신 생활을 할 때 가는겁니다. 하나님을 모시면 지난 주에 이걸 좀 말씀을 드렸는데 성전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는 게 중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이 되어집니다. 신랑과 신부 관계 신부를 말씀할 때는 주님 만을 바라봅니다. 주님만 자기 전부 살아서 이게 신부된 교회의 전도입니다. 또 몸이라 그럴 때는 머리 따라 움직이는 겁니다. 머리 가는대로 움직여지는, 이게 몸입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것, 신부라는 것은 주님만 바라보는 것, 주님에게 따라 움직이는 것, 아들이 되고 신부가 되고 그러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게 중점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게 말씀으로 모시는 겁니다. 구약에는 모든 생활이 성전이고 법괘고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성전이 있어야하고 지성소에 심어놓고 앞에 나오면 재단이 있고 입구에 들어갈 때부터 재단을 통해서 휘장을 열고 들어가는 이게 구약의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순서입니다. 성전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운 것입니다. 왜 마음 속에 왜 생활 속에 모든 행동 속에 사리 판단 속에 말씀이 들어가지 않으면 힘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사리 판단하고 결정도 말씀으로 하고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게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가르친 것은 근본이신 성전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근본이며 주인이며 주권자이십니다. 알게 하시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중요합니다. 자기 부모님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젊은 사람이 버릇없이 합니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단군의 자손. 사람이 자기의 근본이라는 것을 모르면 문제가 생깁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연구를 합니다. 회사 사장이나 이사장이나 사원들이 근본을 알아서 회사에 창립 이념과 목적을 알면 굉장히 좋아할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본이십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근본을 아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주권자이시니까, 그 하나님을 알고 아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것은 알고 모시고 알아야 바로 모실 수 있고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모든 영육에 필요한 복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성전을 가르친 의미고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무엇이 중점이라고 하셨습니까. 뭐가 중점인가요.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몸을 말할 때는 따라 움직이는 걸 말합니다. 성전을 말할 때는 성전이란 하나님을 모시는 게 중점입니다. 하나님 모시는 게 중심이기 때문에 왜 모셔야 하느냐, 첫째 알아야하니까 알고 모시고 모시면 바로 맺어지게 되고 거기서 영육의 것이 오게 되고 온전한 구원이 이뤄지게 되기 때문에 간절히 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학생을 가르칠 때 우리들이 그런 것처럼 성전이 되어야하는 것을 강조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뭐냐 하나님 오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생활은 중심이 성전이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필요한 배경 지식들이 필요한겁니다. 성막으로 출발하면 출애굽 하고 난 다음에 애굽에서 난 다음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마자 출애굽기 25장을 합니다. 1년에 걸쳐서 성막을 지었는데 이때는 말하자면 임시적입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중심이 애굽에 있을 때는 성막을 만들 수도 없었고 전체적으로 그때는 없었다고 볼 수 있고, 애굽에 있을 때도 모세같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겁니다. 어머니로부터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도 개인적으로 성전 생활은 다니엘, 모르드개 이런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서도 성전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성전 생활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해방되고 난 다음, 비로소 성전 생활을 하게 되는 그래서 성막 생활을 해라, 그 이유를 바로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합니다 로 말했습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 앞에 징계 받아서 죽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핑계거리 말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주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했습니다. 해방되어서 광야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성막을 지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장 정상이라 그 말입니다. 정상은 말 그대로 정상입니다. 그게 문제가 생기면 이상이 되고 탈선이 되는 겁니다. 잠을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낮에 일하고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정상생활입니다. 일상이 그렇게 그리운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일 오전 예배 새벽 기도 이 생활이 정상적으로 안되면 사고가 생긴겁니다. 새벽 기도는 매일은 못 나와도 일주일에 몇 번 나와야합니다. 예배 생활이 되어야 정상 생활이 됩니다. 예배가 바로 되어야 바로 되느니라. 모든 진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겁니다. 비정상적인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과학의 발명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나고 나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모신 생활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생활을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못한겁니다. 코로나 핑계로 나라에서는 막았고 이럴 때는 예배 안 드리는 신앙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고약한 소리 하고. 정상적인 예배생활이 안된겁니다. 어릴 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은 유동적이었습니다. 어릴 때 법괘도 계속 이동이 되었고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하고 어릴 때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런 겁니다. 화를 낼 수도 있고 자기 고집대로 할 수도 있고 싸움도 할 수 있습니다. 480년 지나고 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석재, 돌입니다. 크고 귀한 돌, 놋 철재 이런 것으로 튼튼하게 지어서 7년에 걸쳤습니다. 장성한 신앙이라 그 뜻입니다. 믿는 사람이 어릴 때는 별별 모습이 다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어갈수록 말씀을 가지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를 고치고 배워서 다른 길로 가서 사람이 점점 바꾸어져야합니다. 480년 지나서 성전 지었는데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어도 그 성질이 죽지 않으면 습성이 고쳐지지 않으면 평생 그거 때문에 자기 구원이 다 빠지는 것입니다. 제일 밑에 걸 기준으로 합니다. 장점을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으시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깎여 내려와서 그만큼 사람이 구원이 허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막은 어릴 때 임시였고 어린 신앙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이스라엘의 아주 최전성기 때입니다. 그때 성전을 지었습니다. 사람이 장성한 모습이 되어야합니다. 흔들리고 문제 생기면 부부가 결혼하고 나면 많이 싸웁니다. 부부싸움이 있는 게 정상이고 없으면 신기한 것이고 아니면 이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부가 결혼해서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런 저런 소리를 해도 정상 소리가 되는 겁니다. 성경적으로 그런 겁니다. 이상한 게 아니고 성경적으로 다를 수도 있고 그리 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을 따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목표해서 말씀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바꾸어서 고쳐서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그거 안할 바에는 믿어서 뭐하겠습니까. 어떤 분이 방언을 말하는데 부정은 안합니다. 그런데 그 방언을 어디에 쓰려고요. 그게 신앙생활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 하나님은 쓸데 없는 것은 안하는 분입니다. 백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한 진리를 말하는데 각자 형편이 다 다른데 말씀은 하나가 나가는데 각자 자기 형편에서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나오면 다 내 말씀입니다. 말씀은 하난데 그게 역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안되지만은 사람이 약하다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약하니까 힘을 써야하고 그게 헛되기 위한 것이 되어 사람이 넘어지게 되는 겁니다. 약하면 넘어져도 된다. 귀신이 하는 소리입니다. 주님을 못박은 그 죄값으로 성전의 역사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내가 하나님 성전이 되면 영과 육이 같이 되고 내가 성전 생활이 잘못되면 엉망이 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상관이 없는데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해야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
찬송: 153장
본문: 사무엘하 7장 1절 ~ 3절
왕이 다윗 왕입니다.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찌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감성이라던지 이런 것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의 감성적으로 되어있으면 얼굴 표정이 나오고 생활이 나오게 됩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원한적인 기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기 원한을 풀어달라고 말하는데 재판관이 가난하니까 무시합니다. 그런데 계속 가서 간청을 하니까 들어준다고 그랬습니다. 마음에 한이 맺히니까 벌어나게 되는겁니다. 자꾸 무슨 말을 하면 말일 수도 있겠지만 연관된 자기 속에 느껴지는 바 깨달아지는 바가 있는 겁니다. 없는 거는 나오지 않습니다. 말로만 하는 기도, 하나님께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마음에 외쳐서 하나님께 간절한 소원이 되면 기도가 되고 언행과 생활이 맞게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기도한 그대로 말이 가야하고 행동에 따라가야하고 사람이 되어져갈 때 바른 기도가 됩니다. 기도는 동쪽으로 가는 게 좋겠다, 서쪽으로 가는 게 있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마음 속에 느낀 바가 있으면 나온 바가 되고 강하게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다윗은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480년 세월을 떠돌아다니고 그러면서 한 건데 하나님 자기의 전부의 되는 법괘가 말하자면 마음이 편할 리가 없는 거지요. 목사가 아니라도 장로가 아니라도. 하나님을 알고 교회를 안다면 내 집을 팔아서라도 해야겠다 이런 걸 가지고 있어야 정상적인 믿는 사람입니다. 마음만은 그리 가져야하고 진심으로 해야합니다. 기도하고 그런 소원을 간절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윗은 간절한 소원입니다. 성전을 짓고 싶은데 짓지 말라하니까 있는 힘을 다해서 준비해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드는 기구들의 크기라든지 솔로몬이 지은 것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길 원했지만 안된다 그러시고 어떻게 보여주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요단강 건너기 전 모세는 그 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들어갈 땅을 모두 보여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지어질 것이라는 것을 모두 알아내냈습니다. 이게 간절한 소원입니다. 성전을 공부하면서 참 성전이 되어야겠다 말과 우리 생활과 따로 된 것이 되고 자기 복음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걸 참고로 기억을 하시고, 공과로 들어가서 성전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집, 다 아시죠 성전입니다. 하나님을 계신 집이 성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에 법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괘가 있고 하나님이 계셔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말할 때 하나님 오신 집이고 말씀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하십니다. 성전을 통해서 달리 말하면 성전을 중심을 역사하신다, 이스라엘의 중심이었고 모든 활동의 중심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하시고 생활하고 있고 하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성전을 항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위해서 모세가 성막을 만들었을 때 그 안에 기구를 다 넣고 등불을 켜고 향을 키고 하나님 영광에 충만해서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대로 계속 나가면 성전이 되고 구원의 성공이 되어지는데 솔로몬의 성전으로 온전하게 만들어놓고 보여주신 그대로 성전이 바르게 있으면 그들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성전 생활을 점점 멀리하고 성전을 더럽히고 솔로몬이 왕비들에게 끌려갔을 때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을 기도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점점 쪼그라들고 망하고 말았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성전이 없어서 망했고 남쪽 유다가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집이고 말씀이 계신 집인데 성전을 통해 역사하신다, 중심이 성전입니다. 우리들이 온전한 성전이 되도록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이 역사이십니다. 하나님을 모신 집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모신 생활을 할 때 가는겁니다. 하나님을 모시면 지난 주에 이걸 좀 말씀을 드렸는데 성전생활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는 게 중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구원이 되어집니다. 신랑과 신부 관계 신부를 말씀할 때는 주님 만을 바라봅니다. 주님만 자기 전부 살아서 이게 신부된 교회의 전도입니다. 또 몸이라 그럴 때는 머리 따라 움직이는 겁니다. 머리 가는대로 움직여지는, 이게 몸입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것, 신부라는 것은 주님만 바라보는 것, 주님에게 따라 움직이는 것, 아들이 되고 신부가 되고 그러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게 중점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게 말씀으로 모시는 겁니다. 구약에는 모든 생활이 성전이고 법괘고 그러는 겁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성전이 있어야하고 지성소에 심어놓고 앞에 나오면 재단이 있고 입구에 들어갈 때부터 재단을 통해서 휘장을 열고 들어가는 이게 구약의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순서입니다. 성전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운 것입니다. 왜 마음 속에 왜 생활 속에 모든 행동 속에 사리 판단 속에 말씀이 들어가지 않으면 힘들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행동하고 말하고 사리 판단하고 결정도 말씀으로 하고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게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가르친 것은 근본이신 성전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근본이며 주인이며 주권자이십니다. 알게 하시는 겁니다. 세상에서도 중요합니다. 자기 부모님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젊은 사람이 버릇없이 합니다.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단군의 자손. 사람이 자기의 근본이라는 것을 모르면 문제가 생깁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연구를 합니다. 회사 사장이나 이사장이나 사원들이 근본을 알아서 회사에 창립 이념과 목적을 알면 굉장히 좋아할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본이십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게 중요합니다. 근본을 아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주권자이시니까, 그 하나님을 알고 아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것은 알고 모시고 알아야 바로 모실 수 있고 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모든 영육에 필요한 복을 받을 수 있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성전을 가르친 의미고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무엇이 중점이라고 하셨습니까. 뭐가 중점인가요.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몸을 말할 때는 따라 움직이는 걸 말합니다. 성전을 말할 때는 성전이란 하나님을 모시는 게 중점입니다. 하나님 모시는 게 중심이기 때문에 왜 모셔야 하느냐, 첫째 알아야하니까 알고 모시고 모시면 바로 맺어지게 되고 거기서 영육의 것이 오게 되고 온전한 구원이 이뤄지게 되기 때문에 간절히 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학생을 가르칠 때 우리들이 그런 것처럼 성전이 되어야하는 것을 강조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뭐냐 하나님 오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생활은 중심이 성전이었습니다. 이런 과정들이 필요한 배경 지식들이 필요한겁니다. 성막으로 출발하면 출애굽 하고 난 다음에 애굽에서 난 다음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마자 출애굽기 25장을 합니다. 1년에 걸쳐서 성막을 지었는데 이때는 말하자면 임시적입니다. 가나안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중심이 애굽에 있을 때는 성막을 만들 수도 없었고 전체적으로 그때는 없었다고 볼 수 있고, 애굽에 있을 때도 모세같은 사람은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겁니다. 어머니로부터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때도 개인적으로 성전 생활은 다니엘, 모르드개 이런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서도 성전 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나라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성전 생활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해방되고 난 다음, 비로소 성전 생활을 하게 되는 그래서 성막 생활을 해라, 그 이유를 바로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합니다 로 말했습니다. 안 그러면 하나님 앞에 징계 받아서 죽습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세가 핑계거리 말해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탈주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했습니다. 해방되어서 광야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성막을 지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가장 정상이라 그 말입니다. 정상은 말 그대로 정상입니다. 그게 문제가 생기면 이상이 되고 탈선이 되는 겁니다. 잠을 잡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낮에 일하고 공부하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정상생활입니다. 일상이 그렇게 그리운 때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일 오전 예배 새벽 기도 이 생활이 정상적으로 안되면 사고가 생긴겁니다. 새벽 기도는 매일은 못 나와도 일주일에 몇 번 나와야합니다. 예배 생활이 되어야 정상 생활이 됩니다. 예배가 바로 되어야 바로 되느니라. 모든 진리는 지극히 정상적인 겁니다. 비정상적인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과학의 발명이라는 것도 알고보면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나고 나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모신 생활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생활을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못한겁니다. 코로나 핑계로 나라에서는 막았고 이럴 때는 예배 안 드리는 신앙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고약한 소리 하고. 정상적인 예배생활이 안된겁니다. 어릴 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것은 유동적이었습니다. 어릴 때 법괘도 계속 이동이 되었고 믿는 사람의 신앙생활하고 어릴 때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그런 겁니다. 화를 낼 수도 있고 자기 고집대로 할 수도 있고 싸움도 할 수 있습니다. 480년 지나고 나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는 석재, 돌입니다. 크고 귀한 돌, 놋 철재 이런 것으로 튼튼하게 지어서 7년에 걸쳤습니다. 장성한 신앙이라 그 뜻입니다. 믿는 사람이 어릴 때는 별별 모습이 다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어갈수록 말씀을 가지고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자기를 고치고 배워서 다른 길로 가서 사람이 점점 바꾸어져야합니다. 480년 지나서 성전 지었는데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20년이 되어도 그 성질이 죽지 않으면 습성이 고쳐지지 않으면 평생 그거 때문에 자기 구원이 다 빠지는 것입니다. 제일 밑에 걸 기준으로 합니다. 장점을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으시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이 깎여 내려와서 그만큼 사람이 구원이 허무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막은 어릴 때 임시였고 어린 신앙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데 이스라엘의 아주 최전성기 때입니다. 그때 성전을 지었습니다. 사람이 장성한 모습이 되어야합니다. 흔들리고 문제 생기면 부부가 결혼하고 나면 많이 싸웁니다. 부부싸움이 있는 게 정상이고 없으면 신기한 것이고 아니면 이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부부가 결혼해서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런 저런 소리를 해도 정상 소리가 되는 겁니다. 성경적으로 그런 겁니다. 이상한 게 아니고 성경적으로 다를 수도 있고 그리 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을 따르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목표해서 말씀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바꾸어서 고쳐서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그거 안할 바에는 믿어서 뭐하겠습니까. 어떤 분이 방언을 말하는데 부정은 안합니다. 그런데 그 방언을 어디에 쓰려고요. 그게 신앙생활에 어떤 도움이 됩니까. 하나님은 쓸데 없는 것은 안하는 분입니다. 백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한 진리를 말하는데 각자 형편이 다 다른데 말씀은 하나가 나가는데 각자 자기 형편에서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나오면 다 내 말씀입니다. 말씀은 하난데 그게 역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안되지만은 사람이 약하다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약하니까 힘을 써야하고 그게 헛되기 위한 것이 되어 사람이 넘어지게 되는 겁니다. 약하면 넘어져도 된다. 귀신이 하는 소리입니다. 주님을 못박은 그 죄값으로 성전의 역사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내가 하나님 성전이 되면 영과 육이 같이 되고 내가 성전 생활이 잘못되면 엉망이 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상관이 없는데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해야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