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6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7-16조회 437추천 66
2023년 7월 16일 주일 오후
찬송: 102장, 108장
본문: 욥기 1장 15절
신앙에 실패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을 안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조차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사람의 타락 과정 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입니다. 룻과 같은 모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겁니다. 특별히 성경적으로 외모가 잘났습니까 천재입니까 돈이 많습니까. 다윗도 마찬가지고 요셉도 그렇고 성경의 위대한 신앙 성공한 이름을 보면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이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룻이라는 사람이 우리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울같은 사람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인물이 달랐고 용맹했고 남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러지 않았고 요셉은 그러지 않았고 우리보다 훨씬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안되는가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더 많이 주셨는데 더 못하냐 이거죠. 그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요소는 나 자신이지 요소가 없는겁니다. 오늘 오후에 시간될지 모르겠지만 일곱가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룻이라는 사람은 여인입니다. 여인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인이고 현숙하다는 말은 여자인 게 아닌가 무관하지 않을까. 또 거기에 처한 형편에 상관없이 룻이 들어간 그런 걸음을 찾아가게 되는겁니다. 구원의 도리 이치를 찾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첫째입니다. 룻이라는 사람은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조금 못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형편을 막론하고 무슨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하였을까 나오미라는 사람은 유다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입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 만날 때 나 혼자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행복하게 잘 사는데 나만 몇 개 힘들고 고달픈데 이 성경에 표현한대로 악중악입니다. 어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신앙생활하다보면 별별 어려움을 다 만납니다. 아무죄도 안 지었는데 억울하게 누명쓰고 억울한 소리 들을 때도 있고 몸이 아플 때도 있고 별별 어려움을 다 하는 것이 세상 사람이고 그럴 때 믿음 생활하다가 어려울 때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망한다, 두 글자로 필망입니다. 필망. 반드시 망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중단하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예외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망합니다. 나오미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고향,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아주 더러운 족속과 들어갑니다. 쫄닥 망해버렸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니까 룻이라는 성숙한 며느리도 있고 돌아와서 예수님에게 서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아니었지만 집안을 그렇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잘 되었지 않으냐, 그게 복 없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고 은혜입니다. 반드시 배울 것은 탈선된 길을 갔는데 쫄딱 망했습니다. 남편 죽었고 쫄닥 망했지 않습니까.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했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기쁨입니다. 하지만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 복을 받을 사람인데 쫄닥 망했습니다. 그 괴로움 방식 때 나오미는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룻이라는 사람을 나오미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룻이라는 사람이 복된 결말을 받은 것은 다른 중심과 인도와 함께 성숙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복된 결과가 있었다는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의 이름을 져버리면 망합니다. 두 글자로 필망입니다. 세 번째. 회개하고 돌아오면 긍휼과 소망입니다. 병이 들어있으면 고쳐야합니다. 고쳐야 건강해집니다. 병을 고쳐서 견강해집니다. 회개라 그럽니다. 병든 사람이 치료를 받으려면 무엇을 따라가야합니까. 쓴 약을 먹야하고 고통이 따라갑니다. 그래야 병이 치료되고 건강이 회복됩니다. 고통이 따라갑니다. 고통없는 회개는 없는 겁니다. 물질적으로 생각하면 빈곤이든지 사람 관계가 잘못돼서 오해를 받던지 그 옆면에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지난 오일밤 예배일 때 아합을 살펴봤습니다. 가장 타락한 왕입니다. 아합이 이세벨이라는 여인에게 유혹돼서 스스로 팔려서 유혹돼서 마구잡이로 된겁니다. 수많은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의 종을 쳤고 엘리야를 보내서 이토록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 벌이 있겠지요. 아합에게 속한 남자 다 죽을 것이고 개가 먹을 것이고 미천하게 죽을 것이라 하니까 아합도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겁을 먹었죠.. 불택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웃습니다. 택자는 그런 말씀 들을 때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성경을 읽을 때 조금이라도 믿어지면 택자라는 증거입니다. 아합은 택자입니다. 그래서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하나님 오실 때 그렇습니다. 엘리아를 불러서 아합이 그 죄인 중에 죄인에게 스스로 자기를 낮추니까 내가 말했던 재앙을 아합시대에 내리지 않고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합니다. 아합이 그 회개를 계속 했었다면 뭐가 생깁니까. 회개는 무엇과 무엇이 따라온다고요. 긍휼과 소망이 따라옵니다. 아합이 그것을 계속 했더라면 소망이 따라옵니다. 마음이 약했습니다. 사람의 아주 큰 약이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끈기나 이런 것을 고쳐야합니다. 반복이되면 나중에 내성이 생겨서 강팍해집니다. 넘어져서 약해서 다시 넘어져버리고 회개하니까 긍휼이 있었고 나오미가 잘못된 길을 갔는데 회개하고 돌아섰습니다. 다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말씀 드렸습니다. 룻의 신앙에서 남녀노소 입장형편을 떠나서 구원의 도리를 떠나 어떻게 찾아보자, 두 번째 신앙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필망이다. 세 번째 긍휼과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네 번째 나오미가 자기 형편을 알기 때문에 남편, 자기 고향 흉년에 들어왔고 돌아가야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같이 돌아가지만은 누구의 나라입니까. 두 여인의 나라입니다. 모압은 나오미에게는 이방 나라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 여기가 너희 나라니까 있어라. 아직 젊으니까 좋은 남편 만나서 아이 낳고 살아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시어머니의 바른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욥기에서 배울 것, 이게 복받을 마음입니다. 그리해라 두 며느리가 어머니를 따라가겠습니다. 인간관계적으로 다른 것인데 다시 나오미가 내 딸들아 그러지 말아라. 너희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사람 다운 사람입니다.
나도 어머니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이게 룻의 본심입니다. 그래서 앞선 사람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앞서가고 다기를 따라온 것은 말리지만 맞게 하는 겁니다. 내가 가니까 따라오라 이건 안되는 겁니다. 새벽기도를 못 나오다가 기도하고 성경읽고 자기 돌아보고 새벽기도 나가야겠다. 그래서 부모님 새벽기도 나갈건데 모두 함께 같이 가자 이건 틀린겁니다. 아이들한테 새벽기도 가자는 말 하지 않고 그 다음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내가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그동안 안 나가서 죄송했는데 덜 죄송하고 맑은 공기 마시고 참 좋더라 그런데 쉽지 않겠지. 나오미는 나는 가겠다. 너는 따라오지 말아라. 옳은 걸 가르치고 앞서가고 신앙을 따라서 야곱이 그랬지요. 에서는 야곱의 것을 모릅니다. 에서는 통이 큽니다. 야곱은 양 한 마리 소 한마니라 새끼낳는 고통을 압니다. 그래서 에서가 함께가자니까 양과 염소와 소가 새끼를 가져서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이게 목자의 길입니다. 나오미는 시어머니인데 룻이게 참된 목자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바른 자세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일단 가르치고 앞서가고 따라가는 것은 형편에 맞게 하는 겁니다. 따라가는 것은 배우고 끝까지 가는 겁니다. 이게 엘리사였고 그러면 다섯 번째 나오미의 관계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입니다. 속으로는 신앙 지도자고 교인이었고 제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오미라는 사람은 며느리로만 보지 않고 자기 교인으로 상대하는 겁니다. 전도가 무슨 뜻입니까. 전도라는 말의 의미는 도를 전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려주는 게 전도입니다. 기독교 전도하는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 전도입니다. 어찌보면 조건이 좋고 우리나라 조선 500년으로 보면 택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시어머니로써 며느리에게 신앙 지도자고 겉으로니느 며느리인데 신앙지도자로 하나님을 전했고 구원을 알렸습니다. 소문을 들었을 겁니다만 실제로 접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나오미입니다. 시어머니가 어지간히 잘해가지고 다른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는 어지간히 잘해가지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은혜받고 존경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나오미 인격 생활 속에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는겁니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목사고 아무리 말을 천상 뭐라고 합니까. 청산유수라고 합니까. 잘해도 말 가지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없습니다. 설교 아무리 잘해도 설교로 변화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설교자와 하나님의 관계가 독실한 관계가 되어야합니다. 이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와 하나님 관계에 따라서 된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얼마나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 설교자하고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보시면 능력이 되게 됩니다.
현숙한 여인의 값은 진주보다 귀하다. 남자에게는 현숙한 아내를 가진 것이 값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지 남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녀가 상관없습니다. 노소가 상관없고. 자기 입장이나 구원해버렸습니다. 사람이 깨끗했습니다. 룻이라는 사람은 맑았습니다. 맑다는 말은 다른 게 섞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면 섞여있자 않은 것을 맑다고 합니다. 깨끗하고 맑을 수 있는 조건이 자기가 없습니다. 자기 욕심 자기 의심 자기 자존심. 그러기 때문에 룻이라는 사람은 변했고 깨끗했습니다. 세 번째는 룻이라는 사람은 헌신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몸을 바친다고 합니다. 헌금. 연보를 바치는 겁니다. 헌신, 말하자면 룻이라는 사람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는 그러면서도 지혜가 있습니다. 상황 판단을 잘합니다. 해야하는 안 해야하는 말. 겸손과 같은 말입니다. 통하는 게 있습니다. 겸손은 지혜롭습니다. 그 상황에 따라 맞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섯 번째 굳은 심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려도 굳게 결심한 것을 보고 이 며느리에게는 안되겠구나, 그래서 나오미가 그쳤습니다. 이방 여인이 앞날에 나오면 나오미가 결혼시켜서 상상도 못하는겁니다. 나오미가 쫄닥망했습니다. 남편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렸는데 이방인입니다.
헌신이 따라가야합니다. 이 일을 따지지 않습니다. 맡겼으니까 그러면서 지혜가 있습니다. 합당한 말을 하는겁니다. 그리고 처신도 그렇습니다. 이것도 중요한데 환경, 처지는 최악이었습니다. 최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 속에 그의 중심과 모든 언행과 처신과 생활과 모두다가 일곱가지로 현숙함으로 나갔기 때문에 예수님 조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기생 라합도 그랬습니다. 우리보다 극도로 연약한데 피동되지 않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식 속에 내 자식 속에 환경을 입장을 사랑을 뽑아내지 않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생 라합같은 지혜, 처신 그리고 여기 룻같은 현숙함. 배경 좋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공부 많이한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서울대 하버드대를 그러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기가, 그래서 일곱가지 현숙함. 이것을 가장 어려운 의지를 극복해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것이 되는 겁니다. 그때그때 순간을 지나감에 따라서 결정되게 되는겁니다. 그때 최선을 다해서 현숙함으로 대처하는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02장, 108장
본문: 욥기 1장 15절
신앙에 실패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을 안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조차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사람의 타락 과정 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입니다. 룻과 같은 모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겁니다. 특별히 성경적으로 외모가 잘났습니까 천재입니까 돈이 많습니까. 다윗도 마찬가지고 요셉도 그렇고 성경의 위대한 신앙 성공한 이름을 보면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이름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룻이라는 사람이 우리와 별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울같은 사람은 우리와 달랐습니다. 인물이 달랐고 용맹했고 남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러지 않았고 요셉은 그러지 않았고 우리보다 훨씬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우리는 안되는가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더 많이 주셨는데 더 못하냐 이거죠. 그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믿는 사람의 가장 큰 요소는 나 자신이지 요소가 없는겁니다. 오늘 오후에 시간될지 모르겠지만 일곱가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룻이라는 사람은 여인입니다. 여인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여인이고 현숙하다는 말은 여자인 게 아닌가 무관하지 않을까. 또 거기에 처한 형편에 상관없이 룻이 들어간 그런 걸음을 찾아가게 되는겁니다. 구원의 도리 이치를 찾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첫째입니다. 룻이라는 사람은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조금 못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형편을 막론하고 무슨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하였을까 나오미라는 사람은 유다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입니다. 흉년이 들었습니다.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 만날 때 나 혼자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 행복하게 잘 사는데 나만 몇 개 힘들고 고달픈데 이 성경에 표현한대로 악중악입니다. 어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이 신앙생활하다보면 별별 어려움을 다 만납니다. 아무죄도 안 지었는데 억울하게 누명쓰고 억울한 소리 들을 때도 있고 몸이 아플 때도 있고 별별 어려움을 다 하는 것이 세상 사람이고 그럴 때 믿음 생활하다가 어려울 때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망한다, 두 글자로 필망입니다. 필망. 반드시 망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을 중단하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예외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망합니다. 나오미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고향,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아주 더러운 족속과 들어갑니다. 쫄닥 망해버렸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니까 룻이라는 성숙한 며느리도 있고 돌아와서 예수님에게 서게 되었습니다. 나오미가 아니었지만 집안을 그렇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잘 되었지 않으냐, 그게 복 없는 사람의 생각입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고 은혜입니다. 반드시 배울 것은 탈선된 길을 갔는데 쫄딱 망했습니다. 남편 죽었고 쫄닥 망했지 않습니까.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했다. 나오미라는 이름은 기쁨입니다. 하지만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하나님 복을 받을 사람인데 쫄닥 망했습니다. 그 괴로움 방식 때 나오미는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룻이라는 사람을 나오미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룻이라는 사람이 복된 결말을 받은 것은 다른 중심과 인도와 함께 성숙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복된 결과가 있었다는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의 이름을 져버리면 망합니다. 두 글자로 필망입니다. 세 번째. 회개하고 돌아오면 긍휼과 소망입니다. 병이 들어있으면 고쳐야합니다. 고쳐야 건강해집니다. 병을 고쳐서 견강해집니다. 회개라 그럽니다. 병든 사람이 치료를 받으려면 무엇을 따라가야합니까. 쓴 약을 먹야하고 고통이 따라갑니다. 그래야 병이 치료되고 건강이 회복됩니다. 고통이 따라갑니다. 고통없는 회개는 없는 겁니다. 물질적으로 생각하면 빈곤이든지 사람 관계가 잘못돼서 오해를 받던지 그 옆면에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지난 오일밤 예배일 때 아합을 살펴봤습니다. 가장 타락한 왕입니다. 아합이 이세벨이라는 여인에게 유혹돼서 스스로 팔려서 유혹돼서 마구잡이로 된겁니다. 수많은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의 종을 쳤고 엘리야를 보내서 이토록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 벌이 있겠지요. 아합에게 속한 남자 다 죽을 것이고 개가 먹을 것이고 미천하게 죽을 것이라 하니까 아합도 하나님 믿는 사람입니다. 겁을 먹었죠.. 불택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웃습니다. 택자는 그런 말씀 들을 때 두려움이 있는 겁니다. 성경을 읽을 때 조금이라도 믿어지면 택자라는 증거입니다. 아합은 택자입니다. 그래서 새파랗게 질렸습니다. 하나님 오실 때 그렇습니다. 엘리아를 불러서 아합이 그 죄인 중에 죄인에게 스스로 자기를 낮추니까 내가 말했던 재앙을 아합시대에 내리지 않고 아들 시대에 내리겠다고 합니다. 아합이 그 회개를 계속 했었다면 뭐가 생깁니까. 회개는 무엇과 무엇이 따라온다고요. 긍휼과 소망이 따라옵니다. 아합이 그것을 계속 했더라면 소망이 따라옵니다. 마음이 약했습니다. 사람의 아주 큰 약이 되어있을 수 있습니다. 그 대신에 끈기나 이런 것을 고쳐야합니다. 반복이되면 나중에 내성이 생겨서 강팍해집니다. 넘어져서 약해서 다시 넘어져버리고 회개하니까 긍휼이 있었고 나오미가 잘못된 길을 갔는데 회개하고 돌아섰습니다. 다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세 가지 말씀 드렸습니다. 룻의 신앙에서 남녀노소 입장형편을 떠나서 구원의 도리를 떠나 어떻게 찾아보자, 두 번째 신앙에서 벗어나면 반드시 필망이다. 세 번째 긍휼과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네 번째 나오미가 자기 형편을 알기 때문에 남편, 자기 고향 흉년에 들어왔고 돌아가야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같이 돌아가지만은 누구의 나라입니까. 두 여인의 나라입니다. 모압은 나오미에게는 이방 나라입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 여기가 너희 나라니까 있어라. 아직 젊으니까 좋은 남편 만나서 아이 낳고 살아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시어머니의 바른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욥기에서 배울 것, 이게 복받을 마음입니다. 그리해라 두 며느리가 어머니를 따라가겠습니다. 인간관계적으로 다른 것인데 다시 나오미가 내 딸들아 그러지 말아라. 너희들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사람 다운 사람입니다.
나도 어머니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습니다. 이게 룻의 본심입니다. 그래서 앞선 사람은 가르치는 것입니다. 앞서가고 다기를 따라온 것은 말리지만 맞게 하는 겁니다. 내가 가니까 따라오라 이건 안되는 겁니다. 새벽기도를 못 나오다가 기도하고 성경읽고 자기 돌아보고 새벽기도 나가야겠다. 그래서 부모님 새벽기도 나갈건데 모두 함께 같이 가자 이건 틀린겁니다. 아이들한테 새벽기도 가자는 말 하지 않고 그 다음 아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내가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그동안 안 나가서 죄송했는데 덜 죄송하고 맑은 공기 마시고 참 좋더라 그런데 쉽지 않겠지. 나오미는 나는 가겠다. 너는 따라오지 말아라. 옳은 걸 가르치고 앞서가고 신앙을 따라서 야곱이 그랬지요. 에서는 야곱의 것을 모릅니다. 에서는 통이 큽니다. 야곱은 양 한 마리 소 한마니라 새끼낳는 고통을 압니다. 그래서 에서가 함께가자니까 양과 염소와 소가 새끼를 가져서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이게 목자의 길입니다. 나오미는 시어머니인데 룻이게 참된 목자입니다. 그래서 지도자의 바른 자세를 생각해보는 겁니다. 일단 가르치고 앞서가고 따라가는 것은 형편에 맞게 하는 겁니다. 따라가는 것은 배우고 끝까지 가는 겁니다. 이게 엘리사였고 그러면 다섯 번째 나오미의 관계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입니다. 속으로는 신앙 지도자고 교인이었고 제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오미라는 사람은 며느리로만 보지 않고 자기 교인으로 상대하는 겁니다. 전도가 무슨 뜻입니까. 전도라는 말의 의미는 도를 전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려주는 게 전도입니다. 기독교 전도하는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 전도입니다. 어찌보면 조건이 좋고 우리나라 조선 500년으로 보면 택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시어머니로써 며느리에게 신앙 지도자고 겉으로니느 며느리인데 신앙지도자로 하나님을 전했고 구원을 알렸습니다. 소문을 들었을 겁니다만 실제로 접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나오미입니다. 시어머니가 어지간히 잘해가지고 다른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는 어지간히 잘해가지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은혜받고 존경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나오미 인격 생활 속에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는겁니다. 목사는 기본적으로 목사고 아무리 말을 천상 뭐라고 합니까. 청산유수라고 합니까. 잘해도 말 가지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없습니다. 설교 아무리 잘해도 설교로 변화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설교자와 하나님의 관계가 독실한 관계가 되어야합니다. 이해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와 하나님 관계에 따라서 된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이 얼마나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 설교자하고 하나님의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으면 하나님이 나를 보시면 능력이 되게 됩니다.
현숙한 여인의 값은 진주보다 귀하다. 남자에게는 현숙한 아내를 가진 것이 값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지 남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녀가 상관없습니다. 노소가 상관없고. 자기 입장이나 구원해버렸습니다. 사람이 깨끗했습니다. 룻이라는 사람은 맑았습니다. 맑다는 말은 다른 게 섞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면 섞여있자 않은 것을 맑다고 합니다. 깨끗하고 맑을 수 있는 조건이 자기가 없습니다. 자기 욕심 자기 의심 자기 자존심. 그러기 때문에 룻이라는 사람은 변했고 깨끗했습니다. 세 번째는 룻이라는 사람은 헌신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몸을 바친다고 합니다. 헌금. 연보를 바치는 겁니다. 헌신, 말하자면 룻이라는 사람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는 그러면서도 지혜가 있습니다. 상황 판단을 잘합니다. 해야하는 안 해야하는 말. 겸손과 같은 말입니다. 통하는 게 있습니다. 겸손은 지혜롭습니다. 그 상황에 따라 맞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섯 번째 굳은 심지가 있습니다. 그렇게 말려도 굳게 결심한 것을 보고 이 며느리에게는 안되겠구나, 그래서 나오미가 그쳤습니다. 이방 여인이 앞날에 나오면 나오미가 결혼시켜서 상상도 못하는겁니다. 나오미가 쫄닥망했습니다. 남편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렸는데 이방인입니다.
헌신이 따라가야합니다. 이 일을 따지지 않습니다. 맡겼으니까 그러면서 지혜가 있습니다. 합당한 말을 하는겁니다. 그리고 처신도 그렇습니다. 이것도 중요한데 환경, 처지는 최악이었습니다. 최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현실 속에 그의 중심과 모든 언행과 처신과 생활과 모두다가 일곱가지로 현숙함으로 나갔기 때문에 예수님 조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기생 라합도 그랬습니다. 우리보다 극도로 연약한데 피동되지 않고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식 속에 내 자식 속에 환경을 입장을 사랑을 뽑아내지 않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기생 라합같은 지혜, 처신 그리고 여기 룻같은 현숙함. 배경 좋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공부 많이한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서울대 하버드대를 그러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기가, 그래서 일곱가지 현숙함. 이것을 가장 어려운 의지를 극복해서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것이 되는 겁니다. 그때그때 순간을 지나감에 따라서 결정되게 되는겁니다. 그때 최선을 다해서 현숙함으로 대처하는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