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8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6-18조회 349추천 69
2023년 6월 18일 주일 오후
찬송: 77장, 115장
본문: 출애굽기 13장 21절 ~ 22절
성경에는 간단하게 기록된 말씀에 많은 이치가 들어있는 게 성경입니다. 온 세상에 둘 곳이 없는 만큼 간추리고 간추려서 필요한 말씀만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꼭 필요한 글자로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글자 한 자 한 자 획 한 자 한자까지 필요한 글자로 기록된 것입니다. 두 절을 읽었는데 두 절 속에 많은 도리가 있습니다.
주일은 주일만 주일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어떤 경우도 우리가 못할지라도 말씀은 절대 법이기 때문에 설교 때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고 양심껏 하시지요 잘 판단을 하셔야합니다. 주일은 지키는 게 맞는데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겁니다. 원칙을 말합니다. 주일은 일주일에 한 번 주일이 주일입니다. 아무날이나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주일이라는 것은 그냥 갈 수 있으면 가고 못 오면 못 오고 그건 주일이 아닙니다. 주일은 어떤 경우라도 이렇게 말하면 괴롭고 그런 분들이 있을 거 같은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주일이라는 것은 시험이 떨어져도 못 지켜도 회사가 망해도 주일은 지켜야합니다. 주일입니다. 주일은 언제라고요 날이 정해져 있습니다. 주일만이 주일입니다. 다른 날은 주일이 아닙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예배 드려도 주일 안 지키면 주일 어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배도 오전 예배 드리고 바쁘면 오후 예배 드리고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주일은 주일날만 주일이고 예배는 정한 시간만 예배이고 모두 괴롭겠지만 정한 시간에 예배 드리는 게 정한 장소가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그런 분들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 공회를 사모하고 있는데 너무 멀리 있는 분들 그래서는 안되지만 서부교회 장로님 주일 날 워낙 유명한 분인데 한 번 외국에 나갈 때가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고 십 년에 한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참 괴로웠습니다. 이것 외에는 주일은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 예배당에서 드리는 겁니다. 우리 오전 예배 지하에서 여섯 분 드리는데 그거 정상아닙니다. 1층에서 예배당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습니다. 지하에서 예배 드리고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주일은 주일날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편한 자리에 앉아야 되는겁니까. 앞 자리 비었는데 뒤에 앉으면 어린 신앙에 하면 안 좋은 겁니다. 앞 자리가 비었고 오늘 오전에 보니까 안에 서너 자리 있고 텅텅 비었습니다. 예배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몸이 아프면 앞에 앉았다가 살짝 나갔다 오시면 됩니다. 주일 날은 주일만 주일입니다. 정한 시간만 예배입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게 예배입니다. 요즘 실시간 예배 때문에 예배가 다 대체된다고 합니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아주 없앨 수는 없고 부득이한 분들이 있는데 새벽 기도 출석 보고서 40명입니다. 적게 오면 20명 25명입니다. 이런 거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그래도 내가 사람을 좋게 하든 하나님 좋게 하든 교인들 괴롭게 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이 틀린 말이면 저를 엉터리라고 욕을 해도 됩니다. 신앙생활은 형편 따라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주인이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민주주의입니다. 모든 권리가 백성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하니까 기독교는 독재주의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 서서 좋아가지고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각자 형편을 살피시되 고쳐나가야합니다. 시대가 말세가 되고 구역 식구들도 되도록 예배당 와야합니다. 오전에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하고 안 믿는 사람하고 다르다는 뜻인데 몇 가지가 다르다고요? 네 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근본이 다릅니다. 근본, 뿌리 종자가 다릅니다. 우리는 종자가 다릅니다. 감나무하고 배나무하고는 종자가 다릅니다. 어릴 때는 비슷한 거 같아도 병아리하고 오리 새끼는 처음에 비슷해도 오리는 물을 따라갑니다. 종자가 다른 겁니다. 날 때부터 틀린겁니다. 두 번째는 뭐가 다릅니까. 졸고 있으면 안됩니다. 예배시간 졸면 손해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의 예지만 실제로 있습니다. 소망이 하늘에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과정이 다릅니다. 살아가는 법칙이 다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마구잡이로 삽니다. 네 번째는 뭐가 다릅니까 결과가 다릅니다. 결과는 필연적으로 다른겁니다. 구원의 차이입니다. 결과가 같아서 되겠습니까. 기억하면서 숨을 쉬어야하는데 3분까지는 괜찮은데 계속 해서 쉬는 겁니다. 심장도 쉬지 않고 뛰어야 사는 겁니다. 음식도 사람이 먹고 소화시키고 평생을 먹어줘야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람에서 벗어나 강아지가 될 수 없는 겁니다. 사람은 평생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의 신앙 생활은 쉬어가도 쉬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쉴 때가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피곤해서 쉬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쉬었습니다. 잠을 잤습니다. 밥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도망을 칩니다. 밤이고 낮이고 기쁠 때가 슬플 때나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면 신앙 생활이 아닙니까. 그래서 1년 365일 신앙 생활인데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고난이라는 것은 힘들고 괴롭고 하는 것입니다. 직장인 한 분은 연세가 많으시고 코로나 걸려서 올 수 없으셨고 그런 분은 마음이 괴로웠을 겁니다. 괴로워할 분은 괴로워하고 설교록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누가 들어야하는데 하고 그 사람 쳐다보면 없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만듭니다. 지금 요즘은 독감이 유행이라서 몸이 아픕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의 고난이라고 합니다. 또 갑작스럽게 아이가 다친다던지 생각해보십시오, 사고난 것이 있고 사람들 갈등이 생겨집니다. 근심 걱정입니다. 자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부모는 눈물로 탄식을 하며 밤을 세웁니다. 자식들은 그 심정 모릅니다. 이런 게 하나의 고난입니다. 요즘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거의 없지요. 어쨌든 여러 가지 고난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믿는 사람이 있는 고난을 말합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고난이 없었습니다. 죄가 없었으니까.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모든 고난 죄 때문입니다. 개인을 봐야하지 챙겨야하지 아마 몸 몇 개도 모자른줄 아는데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져버리면 안됩니다. 하늘과 땅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는 겁니다. 땅은 갈라고 그러면 온갖 굴복이 다 있는 겁니다. 강도 있고 바다도 있고 호수도 있고 계곡도 있고 온갖 게 다 있는 겁니다. 별별 일 다 있는 게 땅입니다. 그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는 이스라엘은 바다가 막고 있습니다. 못가는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따라가라니까 바다가 갈라져버립니다. 양식이 없습니다. 괜찮다 가면 된다 하늘에서 줘버립니다. 막히지는 않는데 이 길입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은 어린데도 구원이 다 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르보로암 집인가 모르겠는데 왕자 하나가 죽었는데 그 집에서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선한 뜻을 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려도 일찍 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뺑뺑 돌면서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뺑뺑 돌리면서 별별 우여곡절 다 겪었습니다. 그 속에서 몸도 아파 봐야하고 싸움도 당해야하고 온갖 고생다 겪으면서 자기란 자기를 알게 되기 때문에,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그렇게 인도했는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60만명이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데 몽땅 다 지옥갔냐 그건 아니고 건설구원 실패한 건가 그것도 아닙니다. 다 차이가 있습니다. 60만명이 구름 기둥이 인구를 받아서 홍해 바다에서 건너갔습니다. 순종입니까. 순종한 그 부분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 중에서 불순종도 있었지만 순종이 굉장히 많습니다. 성막을 만들 때 즐거워서 만들었습니다. 그 성막은 출애굽기 20절 이하의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닙니다. 가나안에 못 들어간 사람들이 만든 겁니다. 그 사람들이 다 지옥갔다. 그건 아닙니다.
그들도 건설구원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들어가보면 건설 구원이 많습니다. 이런 이 성경 해석에 대해서 반론하는 사람은 토론을 하면 됩니다. 광야 40년을 돌리는 것은 그들 속에 있는 요소, 이런 것들을 고치기 위해서 광야 40년을 고치신 겁니다. 많이 고치고 가나안에 못 들어갔지만, 이걸 참고로 기억하시면서 그와 같은 원리로 믿는 사람이 세상에 주신 것은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 기르면서 살아가면서 자기를 돌아보라고 합니다. 만사 그러기 때문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어떨 때나 믿는 사람은 신앙 생활로 살아가면서 말씀을 이고 따라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라고 세상을 주신 것이고,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벗어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 갈 때 어떤 종류의 고난을 당하던지 낙심하거나 하지말고 그런 고난 가운데에서 있어야합니다. 낙심이 되고 낙망이 될까봐 여러 종류의 구원을 찾아보면 없을 수가 없는 겁니다. 젖먹이를 벗어나면 걱정이 없을까요 말은 못해도 별별 걱정 다 하는 겁니다. 살아가다 몸이 아플지라도 가정이 어려울 지라도 갈등이 생길 지라도 온갖 종류의 고난이 있을지라도 뜻을 찾아서 순종해서 소망 가운데 믿는 사람의 할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래서 구름 기둥 불 기둥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참 힘들었지만 그들이 가나안에 못 들어가서 1세대가 있었기 때문에 2세대가 있는 겁니다. 성경 해석을 따라가면 광야 40년에서 실패한 사람들하고 가나안에 들어간 2세들 하고 2세들은 들어가서 온갖 죄를 다 지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깨끗한지 모릅니다. 살아봐야 압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77장, 115장
본문: 출애굽기 13장 21절 ~ 22절
성경에는 간단하게 기록된 말씀에 많은 이치가 들어있는 게 성경입니다. 온 세상에 둘 곳이 없는 만큼 간추리고 간추려서 필요한 말씀만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꼭 필요한 글자로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글자 한 자 한 자 획 한 자 한자까지 필요한 글자로 기록된 것입니다. 두 절을 읽었는데 두 절 속에 많은 도리가 있습니다.
주일은 주일만 주일입니다. 그래서 주일은 어떤 경우도 우리가 못할지라도 말씀은 절대 법이기 때문에 설교 때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고 양심껏 하시지요 잘 판단을 하셔야합니다. 주일은 지키는 게 맞는데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겁니다. 원칙을 말합니다. 주일은 일주일에 한 번 주일이 주일입니다. 아무날이나 지킨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주일이라는 것은 그냥 갈 수 있으면 가고 못 오면 못 오고 그건 주일이 아닙니다. 주일은 어떤 경우라도 이렇게 말하면 괴롭고 그런 분들이 있을 거 같은데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주일이라는 것은 시험이 떨어져도 못 지켜도 회사가 망해도 주일은 지켜야합니다. 주일입니다. 주일은 언제라고요 날이 정해져 있습니다. 주일만이 주일입니다. 다른 날은 주일이 아닙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예배 드려도 주일 안 지키면 주일 어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배도 오전 예배 드리고 바쁘면 오후 예배 드리고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주일은 주일날만 주일이고 예배는 정한 시간만 예배이고 모두 괴롭겠지만 정한 시간에 예배 드리는 게 정한 장소가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그런 분들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우리 공회를 사모하고 있는데 너무 멀리 있는 분들 그래서는 안되지만 서부교회 장로님 주일 날 워낙 유명한 분인데 한 번 외국에 나갈 때가 있습니다. 자주는 아니고 십 년에 한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참 괴로웠습니다. 이것 외에는 주일은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 예배당에서 드리는 겁니다. 우리 오전 예배 지하에서 여섯 분 드리는데 그거 정상아닙니다. 1층에서 예배당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습니다. 지하에서 예배 드리고 그건 예배가 아닙니다. 주일은 주일날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편한 자리에 앉아야 되는겁니까. 앞 자리 비었는데 뒤에 앉으면 어린 신앙에 하면 안 좋은 겁니다. 앞 자리가 비었고 오늘 오전에 보니까 안에 서너 자리 있고 텅텅 비었습니다. 예배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몸이 아프면 앞에 앉았다가 살짝 나갔다 오시면 됩니다. 주일 날은 주일만 주일입니다. 정한 시간만 예배입니다. 예배당에서 예배드리는 게 예배입니다. 요즘 실시간 예배 때문에 예배가 다 대체된다고 합니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아주 없앨 수는 없고 부득이한 분들이 있는데 새벽 기도 출석 보고서 40명입니다. 적게 오면 20명 25명입니다. 이런 거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괴롭고 그래도 내가 사람을 좋게 하든 하나님 좋게 하든 교인들 괴롭게 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이 틀린 말이면 저를 엉터리라고 욕을 해도 됩니다. 신앙생활은 형편 따라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주인이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적은 민주주의입니다. 모든 권리가 백성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하니까 기독교는 독재주의라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 한 분만 서서 좋아가지고 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각자 형편을 살피시되 고쳐나가야합니다. 시대가 말세가 되고 구역 식구들도 되도록 예배당 와야합니다. 오전에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하고 안 믿는 사람하고 다르다는 뜻인데 몇 가지가 다르다고요? 네 가지가 다릅니다. 첫째 근본이 다릅니다. 근본, 뿌리 종자가 다릅니다. 우리는 종자가 다릅니다. 감나무하고 배나무하고는 종자가 다릅니다. 어릴 때는 비슷한 거 같아도 병아리하고 오리 새끼는 처음에 비슷해도 오리는 물을 따라갑니다. 종자가 다른 겁니다. 날 때부터 틀린겁니다. 두 번째는 뭐가 다릅니까. 졸고 있으면 안됩니다. 예배시간 졸면 손해입니다. 이런 것은 하나의 예지만 실제로 있습니다. 소망이 하늘에 있습니다. 세 번째는 과정이 다릅니다. 살아가는 법칙이 다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마구잡이로 삽니다. 네 번째는 뭐가 다릅니까 결과가 다릅니다. 결과는 필연적으로 다른겁니다. 구원의 차이입니다. 결과가 같아서 되겠습니까. 기억하면서 숨을 쉬어야하는데 3분까지는 괜찮은데 계속 해서 쉬는 겁니다. 심장도 쉬지 않고 뛰어야 사는 겁니다. 음식도 사람이 먹고 소화시키고 평생을 먹어줘야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람에서 벗어나 강아지가 될 수 없는 겁니다. 사람은 평생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의 신앙 생활은 쉬어가도 쉬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쉴 때가 없는 신앙생활입니다. 피곤해서 쉬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쉬었습니다. 잠을 잤습니다. 밥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도망을 칩니다. 밤이고 낮이고 기쁠 때가 슬플 때나 병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러면 신앙 생활이 아닙니까. 그래서 1년 365일 신앙 생활인데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고난이라는 것은 힘들고 괴롭고 하는 것입니다. 직장인 한 분은 연세가 많으시고 코로나 걸려서 올 수 없으셨고 그런 분은 마음이 괴로웠을 겁니다. 괴로워할 분은 괴로워하고 설교록에도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누가 들어야하는데 하고 그 사람 쳐다보면 없습니다. 마귀가 그렇게 만듭니다. 지금 요즘은 독감이 유행이라서 몸이 아픕니다. 죽을 지경입니다. 이런 것을 하나의 고난이라고 합니다. 또 갑작스럽게 아이가 다친다던지 생각해보십시오, 사고난 것이 있고 사람들 갈등이 생겨집니다. 근심 걱정입니다. 자식들이 말을 안 들으면 부모는 눈물로 탄식을 하며 밤을 세웁니다. 자식들은 그 심정 모릅니다. 이런 게 하나의 고난입니다. 요즘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거의 없지요. 어쨌든 여러 가지 고난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믿는 사람이 있는 고난을 말합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고난이 없었습니다. 죄가 없었으니까.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모든 고난 죄 때문입니다. 개인을 봐야하지 챙겨야하지 아마 몸 몇 개도 모자른줄 아는데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져버리면 안됩니다. 하늘과 땅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만큼 차이가 있는 겁니다. 땅은 갈라고 그러면 온갖 굴복이 다 있는 겁니다. 강도 있고 바다도 있고 호수도 있고 계곡도 있고 온갖 게 다 있는 겁니다. 별별 일 다 있는 게 땅입니다. 그 구름기둥 불기둥 따라가는 이스라엘은 바다가 막고 있습니다. 못가는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따라가라니까 바다가 갈라져버립니다. 양식이 없습니다. 괜찮다 가면 된다 하늘에서 줘버립니다. 막히지는 않는데 이 길입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은 어린데도 구원이 다 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르보로암 집인가 모르겠는데 왕자 하나가 죽었는데 그 집에서는 그 아이가 하나님의 선한 뜻을 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려도 일찍 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뺑뺑 돌면서 고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뺑뺑 돌리면서 별별 우여곡절 다 겪었습니다. 그 속에서 몸도 아파 봐야하고 싸움도 당해야하고 온갖 고생다 겪으면서 자기란 자기를 알게 되기 때문에,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그렇게 인도했는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60만명이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데 몽땅 다 지옥갔냐 그건 아니고 건설구원 실패한 건가 그것도 아닙니다. 다 차이가 있습니다. 60만명이 구름 기둥이 인구를 받아서 홍해 바다에서 건너갔습니다. 순종입니까. 순종한 그 부분은 어떻게 할 겁니까. 그 중에서 불순종도 있었지만 순종이 굉장히 많습니다. 성막을 만들 때 즐거워서 만들었습니다. 그 성막은 출애굽기 20절 이하의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닙니다. 가나안에 못 들어간 사람들이 만든 겁니다. 그 사람들이 다 지옥갔다. 그건 아닙니다.
그들도 건설구원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들어가보면 건설 구원이 많습니다. 이런 이 성경 해석에 대해서 반론하는 사람은 토론을 하면 됩니다. 광야 40년을 돌리는 것은 그들 속에 있는 요소, 이런 것들을 고치기 위해서 광야 40년을 고치신 겁니다. 많이 고치고 가나안에 못 들어갔지만, 이걸 참고로 기억하시면서 그와 같은 원리로 믿는 사람이 세상에 주신 것은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 기르면서 살아가면서 자기를 돌아보라고 합니다. 만사 그러기 때문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어떨 때나 믿는 사람은 신앙 생활로 살아가면서 말씀을 이고 따라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라고 세상을 주신 것이고,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은 벗어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 갈 때 어떤 종류의 고난을 당하던지 낙심하거나 하지말고 그런 고난 가운데에서 있어야합니다. 낙심이 되고 낙망이 될까봐 여러 종류의 구원을 찾아보면 없을 수가 없는 겁니다. 젖먹이를 벗어나면 걱정이 없을까요 말은 못해도 별별 걱정 다 하는 겁니다. 살아가다 몸이 아플지라도 가정이 어려울 지라도 갈등이 생길 지라도 온갖 종류의 고난이 있을지라도 뜻을 찾아서 순종해서 소망 가운데 믿는 사람의 할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래서 구름 기둥 불 기둥을 따라간 이스라엘이 참 힘들었지만 그들이 가나안에 못 들어가서 1세대가 있었기 때문에 2세대가 있는 겁니다. 성경 해석을 따라가면 광야 40년에서 실패한 사람들하고 가나안에 들어간 2세들 하고 2세들은 들어가서 온갖 죄를 다 지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깨끗한지 모릅니다. 살아봐야 압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